얼마 전 몇몇 신문과 방송들은 송유근이라는 아동이 모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사를 대단한 뉴스거리로 보도했다. 초등학생의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게 된 일은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내 기억으로 초·중·고의 정규학교과정을 모두 뛰어 넘고 바로 대학에 들어간 일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다. 또 그 아동을 입학시킨 대학에서도 대단한 결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학생을 위해 많은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그 학생의 부모와 교육을 담당하는 어른들 모두가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신문기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요즘 회자되는 영재교육, 혹은 수월성 교육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재교육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속진이고, 다른 하나는 심화이다. 전자는 자신의 연령과 학년을 뛰어넘어 능력에 맞추어 앞서가게 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자신의 나이에 맞는 수준의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하면서 좀더 깊이 있는 내용을 따로 배우게 하는 방법이다. 이 둘은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송유근 아동이 선택한 방법은 속진이다.
속진을 통한 영재교육은 미국 정규 영재학교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지적능력이 높고 학습속도가 빠른 학생들에게 적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속진의 범위를 얼마나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2년 내지 3년 정도의 속진을 하는 것이 학생의 정서발달과 관련하여 바람직하다고 하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입장이다.
또한 속진을 할 경우에도 한꺼번에 몇 학년을 뛰어 넘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이 달성해야할 과제를 한 단계 한 단계 확인하고 속진을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3학년에 있는 학생이 자신의 교과과정을 모두 달성하였는지의 여부가 전문가들의 합의를 통해 인정된다면 그 때 속진을 결정해야 한다.
속진을 할 경우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일은 속진을 원하는 학생들이 특정교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지만 다른 교과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속진을 원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수학과 과학 분야에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은 인간의 인지적 능력과 정서적 능력 모두를 고르게 발달시키도록 구성되어 있다. 수학과 과학과 같은 인지적 능력이 우수하다고 해서 그 학생이 사회적·정서적 발달도 이렇게 빠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능지수가 150이상인 학생들이 여러 가지 정서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은 아주 흔한 일이다. 최근에 발표된 미국 영재교육 논문들은 영재들의 사회적·정서적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영재들의 지적 발달과 사회적·정서적 발달의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적능력도 점점 발휘하기가 어려워진다. 지적 능력은 안정된 정서의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송유근 아동에 대한 또 다른 우려는 인간의 지적 능력의 발달 속도는 인생을 통해 다양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린 나이에 지적 능력의 발달 속도가 대단히 빨랐다가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그 속도가 느려지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도 성립된다. 영재성은 조숙성과 같은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지만 지적 능력의 발달 속도가 평생 동안 꾸준히 빠르게만 발달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재들에게 우리가 거는 기대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창의적 산출물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이지 대학에 먼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만일 대학에는 먼저 들어갔으나 작금에 신문과 방송에서 발표되는 것들과 같은 세계적인 연구실적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대학에 일찍 들어 간 것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