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8월말로 퇴직하는 교원들에 대한 명퇴수당 지급 적용이 끝난다. 그래서 많은 명예퇴직 교사와 정년단축으로 일찍 물러나는 정년퇴직 교사들로 교육계가 또 한번 술렁거릴 것 같다.
나도 곧 교직을 떠나게 된다. 40년이 넘게 봉직했던 교직을 뒤로하자니 마음이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그래서 유년시절 뛰놀았던 고향을 문득 찾았다. 보리피리 불던 언덕과 잡초들이 여전히 나를 반겼다.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50년 전 친구들과 바둑판처럼 다듬어져 있는 논다랭이들, 초가에서 모두 슬레이트와 기와지붕으로 바뀐 마을의 모습이 세월의 흐름을 절감케 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았던 내 모교가 멀리 보였다. 이미 지난 학년말에 폐교된 학교지만 한 때는 7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공부했던 학교였다. 그런데 폐교라니…. 모교에서의 햇병아리 교사시절이 떠오른다. 좀 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했던 그 시절이 마음을 마구 때린다.
과거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자꾸 어른거려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차를 몰고 모교로 달려갔다. 녹슨 철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내 동심의 텃밭이요 햇병아리 초년교사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학교가 폐교되다니…. 어디 우리 학교뿐인가. 학생 1인당 교육경비가 너무 과다하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농어촌 학교가 통폐합되었는가. 하지만 학교는 자녀 교육으로만 그치는 곳이 아니다.
문화와 사회생활의 센터로서 지역사회의 중심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몰라주니 안타깝기만 하다. 난 모교를 중심으로 고향에 있는 세 개 학교에서 10년간 청년 교사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 중 한 개 학교만 겨우 존립할거란다.
10년을 보내고서야 나는 고향을 떠나 도시학교로 전근했었다. 그 때의 낯설음이란…. 과거 10여 년 교직생활이 우물안 개구리 생활이었음을 크게 느꼈었다. 유치한 교수법, 사랑이 부족한 학급운영, 기고만장했던 우월감들을 모두 씻어버려야 했다.
도시학교에서 아이들과의 생활을 커다란 변혁이었다. 열정을 바쳤고 방과후 특별활동 시간을 자청해 글짓기 지도에 힘을 쏟았다. 생활문 쓰기와 동시 짓기를 철저히 하고 독후감 쓰기와 일기 쓰기를 지도하면서 학교신문도 만들고 문집도 제작했다.
중년교사가 돼서는 현장교육연구대회며 교육과정 지역화작업, 연구시범학교 공개보고회 등에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교직의 전문성 신장에 조금은 기여했던 것 같다. 30년 가까운 평교사 생활이 주마등처럼 밀려오고 밀려갔다. 모교를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고향을 등지고 차를 몰았다. 이번엔 교장 경력 4년 반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교장은 교직의 꽃이라고 하는데 난 그 세월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왜 교장이 교직의 꽃인지도 모르겠다. 꽃이라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야 하는데 왜 쑥대밭이 되어 고개를 숙이게 됐을까. 정년단축 1년 반만에 수 천 명의 교장들이 꽃이기는커녕 봉오리로 시들었다. 이해찬 전 장관은 교사들의 의식개혁을 위해 정년단축을 단행하면서 새바람을 불어넣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새바람이 부는가. 조금 불어오던 바람도 멈춰버렸다. 원로교사 한 사람이 물러나면 신규교사 2.7명을 채용한다던 경제논리는 어디로 갔는가. 오히려 각 시·도교육청은 명퇴금 지급을 위해 수천 억 원씩 빚만 지고 있다. 초등교는 부족한 교사를 채우기 위해 명퇴교사를 다시 끌어들이고 중등교사 자격소지자들을 교담교사로 임용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호롱불로 공부해서 어려운 입시관문을 통과해 사범교육을 받았던 원로교원만큼 뜨거운 가슴들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 그들에게 세대 차가 심해 학생들을 가르치기 힘들다는 말을 어떻게 그리 쉽게 할 수 있는가. 세대 차가 큰 교원이 무능하다면 지금의 고령 위정자들은 청소년보다 더욱 무능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차창 앞에 만 가지의 상념이 어른거린다. 뜨거운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수많은 뜨거운 가슴들이 곧 사라져갈 것을 생각하니 착잡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