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신학년도의 시작이다. 교직경력 4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에도 언제나 이때쯤이면 마음이 설렌다. 나와 함께 생활하게 될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일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매년 입학식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호기심을 가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교육자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무한한 책무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어엿한 세계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기초적인 소양을 쌓아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입학시즌만 되면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 생겨나고 있다. 1,2월생의 아이를 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입학유예를 신청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도 16명의 적령 아동 중에서 입학유예를 신청한 아이들이 4명이나 된다. 입학유예를 신청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주된 이유가 ‘1년 더 키워서 학교에 보내면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인 것 같다.
이러한 경우는 자녀를 적게 두는 요즈음 젊은 부모들 자녀교육관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내 자녀를 다른 아이들보다 시작부터 더 우수한 상태에서 출발시키고자 하는 부모들의 이기심과 과잉보호의 전형인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자녀관은 우리 아이들의 바른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기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짧은 안목 속에서 입학유예를 거쳐 입학한 아이들이 과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다년간의 현장경험과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비공식 통계자료 등을 통하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다. 입학유예 기간을 거쳐 입학한 아이들의 대부분이 학습태도가 엉망이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막무가내 식 대장노릇을 하려 들고, 이미 여러 번의 선수학습을 통해 학습한 내용들이다 보니 학습에도 흥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어 결국에는 학교생활 자체가 시들해져버리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관점에서 부모가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식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아주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가정과 유치원에서 나와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협력자, 조력자 역할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 부모들의 과잉보호는 이제 정말 사절이다. 언제까지 아이들을 신발을 신겨주고 숟가락질을 대신해서 아침을 먹이는 유아로만 놓아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