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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누가 편향된 역사관을 강요하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교과서는 무오류의 경전이다. 학부모들 가운데도 교과서를 검증하자는 사람은 없다. 왜 일까. 바로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과서는 과연 이러한 무조건적 신뢰와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근․현대사교과서 내용을 착실히 익힌 학생이 해방공간의 혼란한 상황에서 건국을 결단한 초대 대통령의 모습은커녕, 실체도 잘 모르고, 대한민국 헌법의 윤곽조차 알고 있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한편 20세기의 계몽화된 정치사에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부자간 권력세습이 이루어지고 반인권국가로 낙인찍힐 정도로 가혹한 전체주의적 수령통치를 일삼아온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리식 사회주의’를 가꾸는 사람들로만 알고 있다면, 학생들의 인권감수성은 퇴행하지 않을 것인가. 또 강제동원된 북한의 천리마 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한국의 성공한 새마을 운동은 폄하하는 교과서라면, 학생들에게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상황처럼 ‘아노미’ 현상을 강요하게 되지 않겠는가. 유감스럽지만, 그것이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그런 교과서로 학생들은 배우고 시험을 보며 또 그런 내용을 위주로 서술된 참고서를 사서 열심히 본다. 또 그런 왜곡된 교과서로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0세기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단연 1948년 8월15일의 건국이다. 대한민국정부수립이 갖는 문명사적 의미는 분단국가의 결핍적 범주를 능가하는 것이다. 건국을 계기로 유교국가의 ‘조선인’이 근대의 ‘한국인’으로 바뀌었으며, 협력과 경쟁의 게임규칙이 억압과 일방적 지시를 기조로 하는 왕조국가나 식민지국가의 인치적 통치에서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및 시장질서를 규정하는 헌법의 규제 하에 놓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집단의 한 부분으로만 인식됐던 개인은 집단으로부터 독립된 인격적 존재로서 ‘권리의 담지자’가 되었다. 바로 이러한 변화가 대한민국 건국과 제헌헌법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현대사 교과서들은 건국을 미군정과 일부 단정세력에 의한 집권정도로 ‘에피소드화’하고 있는가하면, 시대정신의 구현이라고 해야 할 산업화도 집권세력이 정권의 정당성확보의 차원에서 추진한 ‘왜곡된 산업화’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래서 말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면서도 문명사적 의미보다는 문제점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소개되어있다.

확실히 이러한 서술방식은 편향된 서술이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보는 데는 반성적 성찰이 있어야 하지만, 사실과 진실까지 왜곡할 정도의 자학사관은 곤란하다. 왜 교과서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실패했다는 죄의식과 더불어 실패한 국가이며 반인권적 국가인 북한을 주민들의 지지를 받는 정권으로 평가하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어야 할까.

경제에 관한 서술역시 부실하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기업가정신과 시장질서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이 담보될 수 있고 제2의 정주영이나 이병철 같은 세계적 기업가들이 출현할 수 있는데, 시장행위나 기업활동 등을 고무하기는커녕,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는 표현들이 부지기수다. 그것은 지금 한국이 누리는 번영이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결과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민주화에 대한 기술이 온통 각종 운동사로 점철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산업현장에서 묵묵히 일해 온 서민들의 일상적 노고를 경시한 채 저항적 운동만이 가치 있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학생들은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될 것인가.

이런 왜곡서술들을 보면 교과서 저자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외부세계와 단절된 나머지 비교사적 안목과 성찰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한 채, 자신만의 좁은 생각에 갇혀 있다. 교과서가 편향되었다는 지적은 그동안 많이 나왔지만 요지부동, 고쳐진 것은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게으른 지성’이거나 ‘편향된 고집불통의 지성’의 소산이며, 교육인적자원부도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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