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일과 행정의 비능률을 버리고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개혁이라고 한다면, 우리 교육계도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충분한 사전 연구나 대안 없이 현행 제도를 뒤집어엎어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 발전이 아닌 퇴보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이주호 의원 등이 국회에 발의한 ‘교육공무원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개혁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못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개정안이라 하겠다. 이 법률안의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교장·교감 자격증이 이원화되어 불필요한 승진경쟁” 이라고 했는데 이는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다.
우리 사회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해 가고 있다. 경쟁 없는 곳에는 발전도 없다. 교직 사회에서도 교육관련 연구와 연수를 통해 선의의 경쟁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수준 높은 교육이 제공되고 있다. 물론 승진 제도에도 개선해야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어떤 근거로 현재의 시스템을 ‘불필요한 승진 경쟁’으로 규정짓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교감 자격증제 폐지’도 안 될 말이다. 교육행정가로서 검증된 이들을 선발해 교감으로 승진시키고 경력 있는 교감을 교장으로 선발하는 지금의 제도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제도이다. 이런 제도를 두고 과열 경쟁을 해결하기 위해 교장 자격 요건을 완화한다고 하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 자격 요건을 완화하여 검증되지 못한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오히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더 혼란해질 것이 명백하다.
‘공모 교장제’를 통해 교장 자격을 완화하고 교사 자격도 없는 사람을 공모로 뽑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들이 교장으로 선정되겠는가. 바로 뒷거래 잘 하는 사람, 정치 잘 하는 사람, 권력 있고 연줄 있는 사람,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 인기에 편승하려는 사람이 교장이 될 것이다.
교장은 학교 운영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학, 심리학 등 다양한 교육자적 자질을 갖춰야 한다. 끊임없이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안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이다.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교장 자격이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교장을 공모한다는 것은 마치 의사 자격이 없는 유명인에게 흰색 가운을 입히고 병원 원장으로 임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에게 수술을 맡겼다가 생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발 문제는 또 어떠한가. 일차로 검증된 교감 중에서 우수한 경영자를 선별하기도 어려운데 외부 인사를 어떤 방법으로 공정하게 검증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랜 교직 경력과 교감으로서의 충분한 경험을 갖고도 교장 역할 수행은 만만치 않다. 그런데 교직 경험이 전혀 없는 교장이 과연 제대로 된 정책 결정과 교육서비스 제공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직 경력을 무시하는 승진제도는 학교에서 교육다운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함으로써 학교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국가백년대계인 교육문제를 깊은 고민 없이 졸속으로 처리하려는 처사들이 심히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