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른해진 어느 봄날 오후, 5교시 수업 중이었다.
“악!”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오른쪽 눈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큰 소리로 울며 몸부림치는 진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급히 달려가 진두의 눈에서 두 손을 떼어보려고 했지만 진두는 막무가내였다. 아이들도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순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장면이 있었다. 학년초 아이들 중에는 장난 삼아 뾰족한 연필로 친구들의 엉덩이와 등, 팔뚝에 연필심을 찔러 괴롭히곤 하는 일이 가끔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훈계한 것이 바로 엊그제 아닌가.
나는 떨리는 손으로 눈을 뜨지 못하는 진두의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뒤집어보았다. 빨간 핏덩이가 오른쪽 바깥 눈꼬리 안쪽 부분에 붙어있었다. 우선 핏덩이를 밀며 눈가를 눌러보았지만 핏덩이는 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다시 눈꺼풀을 잡고 핏덩이를 꺼내보려 애를 썼지만 끔찍한 상황은 계속됐다.
‘진두 눈에 핏덩이가 있어요. 제발 눈에 아무 이상이 없도록 좀 도와주세요.’
나는 다급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필사적으로 노력을 거듭했다. 진두마저 조용해진 교실에는 침묵이 흘렀고 내 이마에서는 계속 진땀이 흘렀다.
얼마 후, 애간장을 태우던 핏덩이가 기적처럼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것은 새끼손가락 마디 반쪽 길이만한 빨간 색연필 심이 아닌가.
진두의 옆 분단 오른쪽에 나란히 앉은 문철이가 나를 보며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진두도 문철이를 보며 웃는다. 범인은 문철이었다. 일부러 한 짓은 아니지만 어쩌다 그것이 눈 속에 들어갔을까.
‘색연필 사건’ 이후 아이들 사이에서는 친구를 괴롭히던 장난이 사라졌지만 나는 해마다 그 끔찍한 사건이 떠올라 안전사고 방지에 열을 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