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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교단문학상 동화 당선작> 무당벌레

나나야, 나 어떠니? 이 머리핀 참 예쁘지? 나는 나비를 좋아하거든. 여기 잠자리도 있어. 이것도 예쁘지? 그리고 여기 이 풍뎅이도 좀 봐. 진짜 같지? 풍뎅이는 진짜로 봐도 아주 예쁘단다. 풍뎅이보다 더 예쁜 벌레는 무당벌레인데 무당벌레가 붙어 있는 핀은 없더라. 사실은 아줌마들 목걸이 파는 곳에 왕무당벌레 부로우치가 있었는데 그건 유리 장 속에 들어 있어서 보고만 왔어. 진짜로는 내 손톱만큼보다도 작은 벌레인데 백화점에 있는 것은 진짜보다 다섯 배쯤은 클 거야.

나나야, 오늘 우리 선생님 옷에는 왕거미가 한 마리 붙어 있었단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아주 많이 달린 예쁜 거미였어. 검정색 옷의 깃에 붙어 있는데 아주 멋있었어. 그런데 내짝 종수는 그게 독거미라더라. 그렇게 예쁜 독거미가 세상에 어딨니?

우리 선생님도 나처럼 곤충들을 좋아하시나 봐. 모자에도 잠자리를 두 마리씩이나 달고 다니신다. 내가 만약 무당벌레 부로우치를 선생님께 드린다면 선생님이 아주 기뻐하실 거야. 나는 아까 무당벌레 앞에서 선생님 생각을 했어. 나나야, 너도 우리 선생님을 한 번 보았다면 그 무당벌레가 정말 잘 어울리실 거라고 믿을 거야.

내일은 이 언니가 너를 학교에 데리고 가 줄게. 우리 선생님은 인형이나 장난감을 학교에 가지고 오는 것을 아주 싫어하시거든. 그러니까 너는 내 주머니 속에서 절대로 나오면 안 돼. 친구들이 한눈을 팔 때 내가 너를 살짝 꺼내어 선생님 모습을 보여 줄게. 그럼 오늘은 일찍 자자. 내일은 학교 공부 마치고 갈 곳이 많아 문구점에도 가야하고 백화점에도 가야 해. 오늘 갔던 곳 말고 조금 먼 곳에 있는 백화점에 가 봐야 하거든. 예쁜 곤충 머리핀이 있나 보러 가는 거야. 백화점에 갈 땐 너를 이 줄에 매어 가지고 목에 걸고 다닐게. 그곳은 엄청 넓고 으리으리하단다. 네 친구 인형들도 아주 많을 거야.

“선생님, 리나 아직 안 왔는데요?”
“리나요, 아까 문구점에서 봤어요.”
“저두요, 리나가 문구점 앞에 서 있는 거 봤어요.”
첫째 시간이 시작되었는데도 리나가 나타나지 않자 여기저기서 리나 얘기가 나옵니다. 이때에 교실 뒷문이 살짝 열리며 리나 얼굴이 나타납니다.
“야아, 우리 리나 호랑이로구나. 친구들이 얘기하자마자 금방 나타나다니……. 리나야, 내일부터는 5분만 일찍 와라. 알았지?”

활짝 웃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리나는 지난해의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지각을 할 적마다 교실 귀퉁이에서 쪼그려 앉아 있었던 일을 말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지각한 날은 청소도 했지요, 말머리 같이 길쭉한 얼굴을 한 노처녀 선생님의 노기 등등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같았으면 이 상황에서 제자리로 유유히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지요.

‘난 우리 선생님한테 예쁜 무당벌레 부로우치를 드릴 거야.’
리나는 제자리로 들어가며 어제 백화점 진열대 속으로 들여다보았던 무당벌레 부로우치를 생각했습니다. 나나에겐 더 큰 백화점을 구경시켜 준다고 했는데, 선생님 때문에 어제 갔던 그 백화점엘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리에 앉은 리나는 주머니에서 나나를 살짝 꺼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습니다.

“나나야, 어떠니? 우리 선생님 정말 이쁘지, 그치?”
바로 그 순간 짝꿍 종수가 나나를 낚아채었습니다.
“선생님, 리나가 인형 갖고 왔어요.”
종수의 말에 교실 안 백 개의 눈동자가 리나에게로 모아졌습니다.
“그거 이리 내놔!”
리나가 어찌나 큰소리를 질렀던지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한순간에 리나의 큰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리나의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 내렸습니다.
“아악!”

리나의 비명 소리에 선생님도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셨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도 발표를 할 때에도 리나의 목소리는 개미소리처럼 작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리나의 소리가 교실이 떠나갈 것처럼 컸으니 모두가 놀랐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리나는 아주 큰소리로 목놓아 울었습니다. 종수가 들고 있는 인형은 목이 꺾여 이상한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종수에게 얼굴을 찡그리셨습니다. 인형을 집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셨습니다.

“리나야, 이런 것 학교에 가지고 오지 말아야지. 공부할 때 방해가 되는 것은 학교에 갖고 오지 않기로 했잖아. 이따가 집에 갈 때 돌려 줄 테니까 울리 말아라. 계속 울면 안 줄 거야.”

리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종수하고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하다고 열 번도 더 말했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다 간 텅 빈 교실에 선생님과 리나가 마주 앉았습니다.

“리나야, 이 쪽지 양호 선생님께 갖다 드려라.”
선생님이 꼭꼭 접은 쪽지를 들고 양호실에 갔더니 양호 선생님은 방끗 웃으시며 동그란 반창고를 집어주셨습니다. 교실로 돌아온 리나는 선생님 앞에 그것을 내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서랍에서 목이 부러진 인형을 꺼내셨습니다.

“리나야, 이거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형하고 똑같이 생겼구나.”
“이거요. 텔레토비에서 나오는 아이예요.”
리나는 선생님이 나나를 알아보시는 것이 너무나 기뻐서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리나야, 얘 이름이 뭐니?”
“나나예요. 김나나.”
“인형이 성도 있니?”
“내 동생이거든요.”
“그래서 아까 그렇게 슬프게 울었었구나.”
리나의 큰 눈에 또 눈물이 고였습니다.
“울긴……. 선생님이 치료해 줄 테니까 걱정 말아라.”

선생님은 서랍을 뒤적여서 깜짝 본드를 찾아내셨습니다. 나나의 잘려진 목에 깜짝 본드를 바르고 호호 입김을 쐬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리나와 눈이 마주치자 방끗 웃으셨습니다. 예쁜 보조개가 한쪽 얼굴에 꽃처럼 피어났습니다. 눈물을 글썽였던 리나의 얼굴도 꽃처럼 환해졌습니다. 반창고를 목에 정성껏 둘러 붙이는 선생님의 새끼손가락엔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습니다. 손톱까지도 예쁜 선생님이 리나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책상 서랍을 여셨습니다. 선생님의 서랍 속에는 별의 별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요리조리 살펴보시던 선생님은 서랍 뒤쪽 구석에서 동그랗게 말아놓은 초록색 리본 묶음을 꺼내셨습니다. 그것을 도르르 풀어내어 가위로 예쁘게 모양내어 자르더니 나나의 목에 스카프처럼 둘러 매어주셨습니다.

“리나야, 어떠니? 이만하면 치료가 아주 잘된 거지?”
노란색 나나의 몸에 초록색 스카프는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나나는 다치기 전보다도 훨씬 예쁜 모습이 되었습니다.
“리나야, 앞으론 인형 같은 거 학교에 갖고 오지 말아라. 또한번 목 부러지면 이젠 못 고쳐.”
리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나야, 어때? 우리 선생님 정말로 되게 예쁘지? 너도 우리 선생님한테 반했다구? 나도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너 정말 안 아프니? 백화점 구경가도 되겠어? 이젠 기분이 좋아졌다구? 문구점엔 아침에 갔었으니까 이제 백화점엘 가는 거다. 아침에 너 문구점에서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 거 처음 봤지? 그 문구점 아줌마가 마음이 좋아서 다른 문구점보다 언제나 애들이 많단다. 이것 봐, 이 무지개 지우개 예쁘지?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본 무지개하고 색깔이 아주 똑같애. 이건 향수 지우개란다. 냄새가 아주 좋지? 이건 꼭 연필 같지? 난쟁이 뚱뚱보 연필. 이건 이 뾰족한 부분이 있어서 아주 좁은 칸에 있는 글자도 한 글자씩 지울 수 있어. 이 곰돌이 지우개는 쓸 수가 없네. 귀로 지우면 귀가 없어지고, 코로 지우면 코가 없어질 테니까. 그럼 이건 네 동생으로 해 줄까? 나나야, 너 아기곰 푸우 아니? 아주 귀여운 곰이거든. 그러니까 얘 이름을 푸나라고 지어주자. 나는 김리나, 너는 김나나, 얘는 김푸나, 우하하하!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나나야, 너는 나처럼 여자 애지만 얘는 남자 동생이야. 알았지? 우린 이제부터 삼총사가 되는 거야.

나나야, 저기 저 큰 건물 보이지? 저게 백화점이라는 곳이야. 저 속에는 없는 게 없어. 먹는 것도 있어. 지하에 가면 햄버거 파는 곳도 있는데 아주 맛있게 생겼다. 나는 그게 제일 먹고 싶어. 엄마가 미국에서 오면 그 햄버거 열 개만 사달라고 할 거야. 너랑 푸나도 한 개씩 줄게. 나나야, 저기 저 입구에 근사한 모자 쓴 아저씨는 참 무서워. 우리들같이 조그만 애들이 들어가려고 하면 막 눈을 부릅뜨고 야단을 쳐. 그래서 예쁜 아줌마 뒤를 바짝 따라 들어가야 해. 그러니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야 한단다. 옳지! 됐다. 이 아줌마를 따라가면 되겠다. 나나야, 이 아줌마 꼭 우리 엄마 같지? 저거 봐. 저 아저씨도 우리 엄마인 줄 알고 나를 안 잡잖아.


휴우, 이젠 살았다. 나나야, 여기가 바로 어제 내 머리핀들이 있던 자리야, 저것 봐. 내 것과 똑같은 것들이 많이 있지? 그리고 저어기 아줌마들이 많은 저곳이 무당벌레 부로우치가 있는 곳이야. 저 곳으로 가보자. 아줌마들은 귀걸이 목걸이, 그리고 부로우치를 되게 좋아하나 봐. 어제보다도 더 사람이 많네. 아하! 세일을 하는구나. 너 세일이 뭔지 모르지. 세일은 아주 많이 깎아 준다는 뜻이야. 천원짜리를 백원에도 살 수 있다는 것이야. 우와! 그런데 세일을 했는데도 이렇게 비싸다니……. 나나야, 이것 봐. 이게 바로 무당벌레야. 어떤 아줌마가 살려고 했었나 봐. 어저께는 저 유리장 속에 들어 있었거든. 참 예쁘지?

“선생님, 리나 엄마입니다. 진작에 찾아뵈어야 했는데, 이렇게 전학 가는 날에야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실은 제가…….”
“짐작은 했었습니다만…….”
“선생님, 부끄럽습니다. 아이를 떼어놓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리나는 아빠를 미국에 두고 혼자만 돌아온 엄마가 이상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엄마의 모습이 다른 아줌마들보다 곱지 않아 이상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를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엄마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할머니가 너희 엄마라고 하는 걸 보면 엄마인 것이 확실한가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서먹하기는 해도 하여튼 엄마가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곧 미국에 가서 아빠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이젠 백화점 구경을 혼자서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습니다. 엄마가 햄버거도 사 주실 것을 생각하니 기쁩니다. 이젠 머리핀도 모으지 않고 지우개도 모으지 않을 것입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한가을입니다. 선생님은 은행잎 색깔의 스카프를 사려고 백화점에 갔습니다. 백화점 입구에서 수위 아저씨가 한 어린아이의 팔을 우악스럽게 잡고 야단을 치고 이었습니다.

“너 나랑 경찰서에 가자.”
바동거리고 우는 여자 아이의 손엔 보라색 텔레토비 인형이 하나 들려 있었습니다. 리나보다 조금 작은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은 문득 리나가 생각났습니다.
“아저씨, 이 인형 값 얼마예요?”
“만 원짜리라는데 아주머니가 내 주시겠소? 그러면 안 되지요. 얄팍한 동정이 도둑을 기르는 거예요. 요즘 이런 애가 한둘이 아니라서 백화점에서 아주 골치예요.”
“아저씨, 그런 게 아니라 이 아인 우리 동네 아인데 제가 만 원 드릴 테니 놓아주세요. 애 엄마에게 말씀드려 교육시키도록 할게요.”

선생님은 스카프를 살 돈으로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리나처럼 할머니와 산다는 아이, 리나처럼 엄마 아빠는 미국에 있다는 아이, 아이가 먹을 햄버거와 할머니가 드실 만두를 사서 들려 보내며 손가락 걸어 나쁜 짓 않기로 맹세한 아이의 집은 꼬불꼬불 산동네 움막이었습니다. 산동네 꼬불길 자락을 벗어날 즈음에 가로등 불빛이 눈부신 앞에서 선생님은 가슴에 단 무당벌레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리나가 전학가던 날 선생님 책상 위에 놓고 간 선물입니다. 수많은 보석이 전등불에 반사되어 눈이 부십니다.

‘혹시 우리 리나가…….’
선생님은 가슴에서 무당벌레를 떼어 가방 속에 넣으셨습니다. 무당벌레 한 마리가 가슴을 파고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고 쓰리다고 말할 수도 없는 야릇한 아픔이 선생님 가슴 가득 고여 차고 넘칩니다. 선생님은 두 번 다시 무당벌레를 가슴에 달지 않았습니다. 리나를 닮은 아이들을 만날 적마다 무당벌레는 선생님 가슴 속에 야릇한 아픔을 남기며 기어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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