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이주배경학생(다문화 학생)의 비율이 날로 증가하며 우리 교육 현장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다. 이에 발맞춰 학교 현장에서는 주로 ‘다문화 이해 교육’(‘다문화 감수성 교육’, ‘다문화 수용성 교육’ 등으로도 불림)이라는 이름으로 연간 2시간 이상 필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 차는 미묘하다.
이주배경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밀집학교’는 물론이고, 반대로 이주배경학생이 거의 없는 학교 모두에서 “다문화 이해 교육을 해야 하지?”라며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밀집학교는 이미 학생들이 서로의 배경을 이해하며 잘 어울려 지내고 있기에 인위적인 교육이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느끼며, 이주배경학생이 거의 없는 학교는 당장 우리 반에 낯선 배경의 친구가 없으니 이를 남의 일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통계 수치를 통해서도 일부 확인된다. 성평등가족부의 「2024년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를 살펴보면, 청소년의 다문화 수용성 점수는 타 연령대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즉, 현장에서 ‘아이들이 생각보다 편견 없이 잘 지낸다’라고 느끼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다문화 이해 교육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배경에는, 청소년보다 수용성이 현저히 낮고 다름을 경계하는 기성세대의 낡은 인식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심각하게 주목해야 할 지표가 있다. 바로 2024년 조사에서 사상 처음으로 청소년의 다문화 수용성 점수가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갈등 없이 잘 어울려 지내는 듯 보여도, 학생들의 내면에서는 점차 다름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경고음과 같다.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 중요
왜 학생들의 다문화 수용성은 점차 마모되는 것일까. 구마시로 도루는 그의 저서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에서 그 힌트를 제공한다. 그의 통찰처럼 현대 사회는 고도로 윤리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마찰이 없는 ‘쾌적한’ 상태를 지향한다. 문제는 이 쾌적함에 대한 강박이 역설적으로 개인에게 더 큰 불쾌함과 억압의 굴레를 씌운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매끄럽게 통제된 교실에서,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배경이나 언어적 서투름을 가진 이주배경학생의 존재는 종종 매끄러운 질서를 깨뜨리는 ‘불편한 이물질’처럼 여겨지곤 한다. 티끌 하나 없는 방에서 작은 먼지가 더 눈에 띄듯, 쾌적함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다름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마찰음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불관용의 태도는 이승연의 ‘손절 사회’가 지적하는 서늘한 단면과 맞닿아 있다. 오늘날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불편함을 주는 존재와는 갈등을 풀고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관계를 쉽게 끊어버리는 ‘손절’이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는 비이주배경학생이 이주배경학생을 일방적으로 배척하고 차별한다는 의미라기보다, 학생들 전반에 걸쳐 갈등을 피하고 심리적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졌음을 뜻한다.
문화나 언어 차이로 인해 미세한 마찰이 발생했을 때, 서로를 이해하려는 수고로움 대신 무관심이나 관계 단절이라는 ‘손절’을 택해버리는 것이다. 갈등을 회피하고 다름을 지워버리는 법만 익힌 아이들은, 훗날 더 크고 복잡한 세상에 나아갔을 때 타인과 연대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무균실 같은 쾌적함만을 유지하려는 교실에서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 싹틀 수 없다.
변화에 맞는 보편적 교육돼야
그렇다면 차별의 그림자를 지우고 모두가 상생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 다문화 이해 교육의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졌던 교육은 주로 다른 나라의 음식(Food), 의복(Fashion), 축제(Festival), 전통문화 및 민속(Folklore)을 일회성으로 체험하는 이른바 ‘4F 교육’ 중심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피상적인 체험만으로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관계의 갈등을 해결하거나 진정한 의미의 수용성을 기를 수 없다. 하락한 청소년의 다문화 수용성 지표가 이를 증명한다. 앞으로의 실질적인 다문화교육은 표면적인 ‘4F의 껍질’을 깨고 나와, ‘다양성’, ‘관계성’, ‘보편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문화적 차이를 신기한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다름을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는 ‘다양성’ 교육, 약간의 불편함과 마찰을 기꺼이 껴안고 갈등을 조율해 나가는 ‘관계성’ 교육, 그리고 특정한 학생을 시혜적으로 돕는 차원이 아니라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모두가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보편성’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행히 최근 정책 당국 역시 이러한 방향성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의미 있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2026년 교육부가 제안한 다문화 연구학교의 주제를 일회성 행사가 아닌 ‘교과 연계 다문화 이해 교육’으로 설정하여, 일상적인 수업 속으로 다문화교육을 깊이 있게 녹여내려 시도하고 있다. 또한, 이주배경학생 밀집학교 내 비이주배경학생들의 교육력 제고 방안을 함께 연구하며, 어느 한쪽이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교실은 본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부대끼며 자라나는, 조금은 소란스럽고 역동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윤리적 엄숙주의와 쾌적함의 환상에서 벗어나, 때로는 덜컹거리더라도 서로의 다름을 직면하고 이해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르다고 선을 긋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 다양성과 관계성, 보편성의 감각을 기르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주배경학생과 비이주배경학생 모두를 가장 온전하고 훌륭하게 교육하는 길이며,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통합의 미래다. 서로의 다름이 짙은 그림자를 지워주는 빛이 되어줄 때, 비로소 우리 교실은 모두를 위한 배움터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