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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연차 교사입니다. 수업 진행에 있어 방식이나 평가 관련해 늘 조심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활동식 수업을 시도해 보고 싶지만 강의식 수업을 선호하시는 고연차 선생님들 앞에서는 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가 관련해서도 부담이 큽니다. 같은 학년, 같은 교과 수업임에도 단원을 나누어 가르치는 상황에서 제 수업 자료를 당연하다는 듯 요구받거나, 평가 문항 수나 학기 말 생활기록부 작성 부담이 저연차 교사 쪽으로 더 쏠리는 경우를 겪었습니다. 거절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예민하다’라는 말을 들을까 봐 그냥 넘어가게 되는 제 모습도 답답합니다. 또 하나 힘든 점은 업무분장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세대 간 컴퓨터 활용 능력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함께 배우려는 노력 없이, 본래 제 업무와 크게 상관없는 일까지 자연스럽게 맡게 될 때면 부담이 됩니다. 도움을 주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당연한 역할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학생 지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느껴 조언을 구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 힘든 학생들도 많다”라는 말로 가볍게 넘겨지거나, 오히려 제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저연차 교사로서 눈치 보지 않고 의견을 말해 지금의 열정이 오래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고민이 과한 것인가요. (사연자: 한지연(가명) 교사) |
학교라는 곳은 교육의 장이면서 동시에 교사에게는 직장입니다. 때문에 일 자체보다 사람 사이에서 지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맡은 수업이나 업무 자체도 벅찬데, 거기에 눈치까지 보게 되면 하루가 끝났을 때 진이 쏙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연을 읽다 보니 힘드신 이유는 단순히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계속 주변 분들과의 관계를 의식하며 스스로를 조절해 온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한 번 더 삼키고, 부탁을 받아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학생 지도 때문에 흔들려도 티 내지 않으려 버티는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라고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교육방식의 지향점 서로 달라
같은 학년 안에서 교과를 나누어 수업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을 움직이게 하면서 참여를 끌어내는 반면, 어떤 선생님은 설명을 차분하게 오래 해주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어느 한 방식이 무조건 맞고 틀리다기보다는 각자 익숙한 방식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는 셈입니다. 서로 연차가 비슷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의견 개진이 덜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저연차 교사 입장에서는 활동식 수업을 해보고 싶어도 선뜻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합니다. ‘괜히 분위기 흐리는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를 신경 쓰게 되기 쉽습니다. 지금 답답하고 힘든 이유에는 활동식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다른 의견을 편하게 교류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평가나 생활기록부와 관련된 부담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학교에서는 흔히 ‘같이 하는 일’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그 ‘같이’가 늘 비슷한 사람에게 더 무겁게 얹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컴퓨터 작업이 익숙하거나 문서 정리를 빠르게 하는 저연차 교사들이 자연스럽게 맡게 되는 역할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상황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부탁이라기보다 그냥 원래 선생님이 하는 일처럼 굳어지는 때가 옵니다. 내가 시간 들여 만든 자료나 에너지가 너무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더 힘이 빠집니다. 더 답답한 건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다는 점입니다. 막상 말을 하면 괜히 계산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또 한 번 삼키게 되니까요.
선생님께서 힘들어하고 계신 상황을 보면 환경적으로 저연차 교사라면 충분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선생님 내면에 고연차 교사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욕구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불편함이나 다른 의견을 솔직하게 꺼내 놓았다가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저연차 교사라서’, ‘아직 어려서’, 혹은 개인의 성격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는 것은 충분히 두렵고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다툼없는 거절방법 찾아야
그렇다고 해서 계속 참고만 가는 방식이 오래 유지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저연차 시기에는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마음으로 버티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번아웃처럼 무너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아주 작은 선을 세워보는 연습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자료를 요청받았을 때 바로 파일 전체를 넘겨드리기보다 “아직 수정 중이라 정리되는 부분까지만 먼저 공유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보는 것, 업무를 부탁받았을 때도 “지금 맡은 업무 마감이 있어서 바로 하긴 어렵습니다” 정도는 표현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상대를 거절하거나 무례하게 선을 긋는 말이 아니라 감당 가능한 범위를 설명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저연차 교사들은 생활지도에서 확신을 갖고 지도를 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렵다고 이야기하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 힘든 애들도 많다”라는 반응이 돌아오게 되면 잘못 지도한 것인지 의심하고, 정작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결과만 남게 됩니다. 아마 그때 선생님께 필요했던 것은 원래 그렇다는 이야기보다는 충분히 어려울 수 있다는 위로나 구체적으로 특정한 사례를 통해 대처 방법에 대한 조언이었을 것입니다.
학교 현장은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고연차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미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을 굳이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이미 과거에 그런 방법들도 다 해봤지만 지금이 효과적이라는 경험을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선배 교사들이 선생님의 의견을 충분히 물어봐 주고 선뜻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저연차 교사의 입장을 헤아려가면서 의사결정을 하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상황일 때는 상황을 새롭게 해석하고 대처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부터 챙기는 여유 갖기
사연 마지막에 “교사로서의 열정이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 저는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의견을 제시하고 나누는 것, 저연차 교사에게 업무 부담이 지나치게 몰리지 않는 것,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해서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는 것, 교사로서의 동력이 너무 빨리 소진되지 않는 것. 아마 선생님 안에는 이런 마음들이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계속 참고만 가는 방식은 당장은 편할 수 있어도 오래가기는 어렵습니다. 갈등은 줄어들 수 있지만 대신 선생님 마음 안에서 점점 지치는 속도는 빨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하루의 대부분을 다른 교사들과 함께 보내는 직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직생활을 오래 이어간다는 건 단순히 일을 버티는 것보다, 사람 사이에서 내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조절할지를 같이 배워가는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모든 부탁을 다 받아주는 것보다 어떤 부분은 어렵다고 말해보는 것, 혼자 끌어안고 버티기보다 학교 안에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두는 것이 오히려 오래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선생님께 필요한 것도 거창한 변화라기보다,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면서 교직 안에서 선생님만의 속도를 만들어가는 일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