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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현의 낭만갤러리] 윈슬로 호머의 <해변 풍경, 1869>

 

바다에서 찾는 여유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의 1869년 작품 <해변 풍경>은 해변가의 아이들을 묘사한 작품으로, 그는 미국 수채화를 회화적 예술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교와 아이들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던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1836~1910)는 19세기 미국 미술사에서 사실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이행하는 전환기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호머는 남북전쟁 시기 삽화가로 활동하면서 현장성과 사실성을 기반으로 한 그림을 다수 남겼으며, 이는 미국적 사실주의 미술의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특히 그는 도시와 산업보다는 농촌·해안·전쟁의 흔적 같은 일상의 심층에 주목함으로써 미국인의 정체성과 민중의 감정을 포착했다.


호머는 전 생애에 걸쳐 아이들과 학교, 그리고 일상적인 어린이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시골 학교 앞에서 소년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을 그린 <채찍놀이(Snap the Whip)>를 비롯하여 교실 수업 장면 속 교사와 학생을 담은 작품들에는 학교생활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바닷가 파도와 함께하는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해변 풍경(Beach Scene)>은 수채와 연필을 혼합한 작품으로, 호머가 초기 회화세계에서 어떻게 자연을 관찰하고 해석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연필과 흑연 드로잉 위에 수채를 얹는 방식으로 채색하여, 윤곽선과 색채 효과가 동시에 돋보이도록 했다. 수채화 특유의 은은한 혼색 효과도 뚜렷이 드러난다. 


호머는 젖은 종이에 물감을 번지게 하는 습식(wet-on-wet)기법과 마른 종이에 강한 색을 얹는 건식(dry brush)기법을 교차 활용함으로써 풍부한 질감과 리듬감을 창출하였다. 특히 파도나 바람처럼 움직임이 느껴지는 장면에서 이러한 대비가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불필요한 배경 묘사를 자제하고, 화면의 여백을 감정의 여운이 머무는 공간으로 남겨 둔다. 하늘이나 수면, 인물의 주변을 흐리게 남기는 방식은 시적 정서와 응시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미술평론가 로이드 굿리히(Lloyd Goodrich)는 “호머는 수채화에서 ‘그리지 않은 부분’을 회화의 중심으로 만들 줄 아는 화가였다”라고 평하며, 그의 구도에서 여백의 접근방식을 높게 평가하였다. 


화면은 수평의 삼분할 구조로 구성되며, 상단에는 뿌연 하늘, 중단에는 잔잔한 수면, 하단에는 물가와 아이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삼단 구성은 단순하지만 안정적이며, 각 레이어는 하나의 의미 층위를 형성한다. 그림의 오른편에는 세 명의 아이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여아로 보이며, 옅은 드레스와 보닛을 쓰고 해변을 걷거나 앉아 있다. 호머는 이 아이들을 화면의 중심선보다 낮게 배치함으로써 하늘과 물의 공간을 더욱 넓게 확보하고, 인물들을 배경에 감싸지는 존재로 제시한다. 이는 자연이 주체가 되는 풍경 구성 방식으로, 인간은 그 일부로 포함된다.


아이들의 발아래에는 젖은 모래와 얕은 물이 흐르는데, 특히 물 위에 비친 아이들의 반영(reflection)은 작품의 핵심 시각 요소다. 이 반사는 아이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만나는 교차지점을 의미한다. 호머는 이 반사를 정확히 대칭하지 않고, 살짝 번진 수채의 흐름 속에 섞어놓음으로써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색채의 사용은 절제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회백색, 잿빛 하늘, 짙은 회청색 물결, 아이들의 옅은 크림색 의상 등 부드럽고 중간 톤의 색들이 조화를 이룬다. 호머는 강렬한 색을 피하고, 대신 빛의 투명한 질감과 물 위의 반사 효과로 공간감을 형성한다. 이러한 색채 구성은 오히려 감상자로 하여금 미묘한 감정선에 집중하게 만든다.

 

미국적 인상주의의 전조
호머의 <해변 풍경>은  미국 회화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인상주의가 한창 발전하고 있었고, 미국 화단은 이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모색하고 있었다. 호머는 유럽 유학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수채화에서 보이는 색의 투명성, 순간 포착의 구성, 일상의 장면을 다룬 접근은 인상주의와 유사한 미감을 공유한다.


특히 <해변 풍경>은 유럽 인상주의자 부댕(Eugène Boudin)의 해변 장면을 연상시킨다. 아이들의 구성과 수평 구도, 하늘과 물의 색층이 간결하게 요약된 방식이 모더니즘의 전조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후대 미국 화가들, 예컨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나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초기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형태가 흐릿하고 인물의 비례가 왜곡되었다”라며 혹평하였다. 이에 호머는 원래 하나의 캔버스였던 이 작품을 두 폭으로 잘라 각각 <On the Beach>와 <Beach Scene>이라는 제목으로 나누어 전시하였다. 이후 이 두 조각은 2019년 Cape Ann Museum의 전시에서 약 150년 만에 재결합되었고, 이는 하나의 작품이 시간과 비평의 흐름 속에서 재탄생하는 이야기로 미술사적 주목을 받게 되었다.

 

휴식 속의 새로운 시작
이 작품은 여름 방학을 떠올리게 한다. 해변을 걷거나 바라보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교실을 떠나 드넓은 자연 속에서 새로운 배움을 시작할 기회를 의미한다. 교사 역시 학교를 벗어나 휴식을 즐기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무나 바쁜 요즘의 아이들에게도 교사에게도 여름 방학은 귀중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시원한 파도 속에서 반사된 자신의 형상을 통해 아이들은 세상과의 첫 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비추어보는 여유는 귀중한 기회이다. 파도에 부서지는 물방울 속에서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며 성장한다. 반사하는 흐릿한 물결을 살펴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면 위에 번지는 잔물결을 바라보며, 일상을 벗어나 자연과 만나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학의 쉼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다. 올여름에는 모두에게 휴식을 통한 여유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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