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이란 잘못된 행동으로 피해를 드리게 되어 사죄의 마음으로 반성합니다. 향후 본인은 얼마간 무면허 상태이기 때문에, 본인의 차량은 수리해서 팔고, 집에서 근무지까지 멀기는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로 출퇴근을 병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무면허 운전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이와 같이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 않고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자녀로부터 존경받는 가장이 되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판사님께서 이러한 형편을 고려하시어 선처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인터넷 포털 검색에서 ‘반성문’을 치고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반성문 양식과 예문’을 올려놓은 사이트들이 있었다. 위에 소개한 글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사람이 법원의 판사에게 제출한 반성문인데, 인터넷에 있는 예시 글의 일부를 옮겨와 본 것이다. 물론 전문을 다 받아 가려면 유료이다. 이런 식으로 돈을 내고서라도 반성문 양식과 예문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반성문 장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음주운전 사고는 분명 잘못된 것이기에 재판에서 처벌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하니 반성문 아니라 더한 것을 제출해서라도 처벌을 경감하고 싶은 입장일 것이다. 그
2017-11-01 09:00가을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중에서 여뀌를 빼놓을 수 없다. 이삭 모양 꽃대에 붉은색 꽃이 좁쌀처럼 촘촘히 달려 있는 것이 여뀌 무리다. 냇가 등 습지는 단연 여뀌들 세상이고, 산기슭이나 도심 공터에서도 여뀌 무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을은 여뀌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여뀌는 흔하디 흔해서 사람들이 눈길을 잘 주지 않는 꽃이다. 그저 잡초려니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도 여뀌는 너무 흔하면서도 복잡하기만 하다며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꽃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예쁜 모습을 포착하면 담는 정도의 꽃이다. 다른 꽃들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도 많고 얘깃거리도 많은데 여뀌는 그런 것도 거의 없다. 여뀌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피고 지는 꽃이다. 더구나 소도 먹지 않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식물이라는 인식도 퍼져 있다. 논밭에도 무성하게 자라는 경우가 많아 농사꾼에게는 귀찮은 잡초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읽다 보면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10권짜리 대하소설인 이 작품 2권에만 여뀌에 대한 묘사가 세 번 등장하고 있다. “강모는 망설이는 강실이의 팔을 잡으며
2017-11-01 09:00그녀, 아내의 이야기 남편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뉴욕에 입성했다. 군대 제대 후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채 달랑 100만 원을 손에 쥐고 뉴욕으로 떠나 3년을 버틴 이야기, 난 이걸 백 번도 넘게 들었다.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로 때우고, 정기 승차권 한 장으로 여러 명의 친구들과 돌려써야만 했던 궁핍했던 유학 시절의 이야기 말이다. 올랜도에서 신나게 논 후 뉴욕으로 향하는 18시 간의 버스 안에서 그의 회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반발심 때문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함께 그려나가고 싶은 우리의 하얀 도화지에 완성된 그림이 먼 저 그려져 있어 샘이 났던 것 같다. 도착 첫 날, 화려한 브로드웨이 42번가를 그려 넣으려 무지개색 펜을 딱 들었는데, “아! 그건 여기 이미 다 그려져 있어!” 하며 날 안내하는 T군. 여행에서 느끼는 나의 즐거움 중에는 호기심 어린 T군의 눈을 보는 것과 열정 적으로 누르는 그의 셔터 소리를 듣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게 빠져버린 뉴욕 여행은 그저 싱겁게만 느껴졌다. 일주일이 지나고, 함께 캐나다로 단풍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고 자꾸 미루는 남편이…
2017-11-01 09:00‘미끄럽다’는 형용사이다. 느낌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물의 바닥이나 표면을 손으로 만졌을 때, 느껴지는 어떤 부드럽고 매끈한 질감을 나타내는 말이다. ‘미끄럽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거침없이 저절로 밀려 나갈 정도로 번드럽다’로 풀이되어 있다. ‘번드럽다’라는 말이 좀 낯설다. 그래서 이 말을 다시 사전에서 찾아본다. ‘껄껄하지 않고 윤기가 나도록 미끄럽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미끄럽다’와 ‘번드럽다’는 뜻이 비슷한 말이다. ‘번드럽다’에는 좀 다른 뜻도 있다. ‘사람됨이 어수룩한 맛이 없고 몹시 약삭빠르다’라는 뜻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말도 원래 ‘미끄럽다’가 사물의 질감을 나타낼 때 쓰였던 것을 사람의 성격이나 태도에 옮겨와서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끄러운 사람’이라고 직설법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미꾸라지 같은 녀석’이라든가 ‘기름 뱀장어 같은 사람’ 등으로 비유하여 쓰는 예는 많다. 이런 것을 보면, ‘미끄러움’이 그냥 촉감의 표현으로만 끝나지 않고,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을 표현하는 데로도 동원됨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원래는 자연과 사물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로 형용사가 만들어졌어도, 그 말이 인간사회에서 쓰이는 동안에는 인간의…
2017-10-01 00:00초가을 경기도 가평 화악산에 오르면 곳곳에 보라색 보석을 박아놓은 듯하다. 한두 송이가 아니라 눈길 닿는 곳마다 있고, 아예 밭처럼 군락을 이룬 곳도 있다. 금강초롱꽃 이다. 꽃이 줄기 끝부터 피기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면서 차례로 피는데, 진짜 보라색 초롱을 들고 있는 것 같다. 꽃송이 곡선은 청자에서 흐르는 유려한 선을 닮았다. 꽃을 들어 속을 들여다보니 세 갈래로 갈라진 암술이 수줍은 듯 흔들린다. 금강초롱꽃은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의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 특산 식물이다. 1909년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발견해 금강초롱꽃이란 이름이 붙었다. 높은 산 중에서도 꼭대기 부근에서만 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야 ‘알현’할 수 있는 꽃이다. 설악산·오대산에서도 볼 수 있지만 금강초롱하면 화악산 금강초롱이다. 화악산 금강초롱이 가장 색도 선명하고 곱다. 화악산 금강초롱이 국내 제일인 ‘미스 금강초롱’인 것이다.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1~2년에 한 번씩은 금강초롱을 보러 화악산에 오른다. 물론 금강초롱이 필 무렵 화악산에서는 꽃이 닻처럼 생긴 닻꽃, 진범, 과남풀 등 다른 예쁜 꽃들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야생화 모임인 ‘야생화를 사랑
2017-10-01 00:00위대한 역사학자 폴 존슨은 ‘현대’의 시작을 1919년으로 봤다. 이 시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현실’로 증명됐다. 지금이나 그때나 상대성 이론은 너무 어렵지만,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전 인류를 흥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과학 기술의 도움만 있다면 인간은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이 물리학 측면에서 현대를 열었다면 인간 심리의 측면에서도 대변혁이 일어났다. 선봉에 선 사람은 프로이트였다. 리비도, 에로스, 타나토스 같은 용어들이 저잣거리에서조차 넘쳐흘렀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구현해 줄 과학기술의 도움만 있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 막시즘(Marxism) 또한 힘을 얻었다. 소련공산당의 아버지 레닌은 막시즘의 완성을 위해서 과학기술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그가 사망했을 때 소련은 레닌의 시신을 보존했다. 이는 레닌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두번째 이유가 더 중요했다. 그들은 ‘언젠가 과학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레닌을 물리적으로 부활시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밋빛 기대감의 처참한 결말 현
2017-10-01 00:00‘까먹은 척 현관 앞에 놓고 나갈까?’ 한국을 떠나는 날 운동화 끈을 묶으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또 냅다 버리고 싶은 준비물, 가이드북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첫 대륙인 중남미 편만 챙겨 넣었다. 들으면 알만한 도시들로만 구성되었고 내용 중에 반은 눈곱만큼도 매력적이지 않은 사진들이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북 이 손에 쥐어져 있으면 녀석에게 의지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들 다 가는 곳에 나만 못 가 본다면 뒤처지고 손해 보는 심정이랄까? 한마디로 가이드북 노예로의 전락이다. 중남미를 여행하며 지나간 곳의 페이지들을 조금씩 찢다 보니 어느새 책은 너덜 너덜해져 있었다. 에콰도르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날 마침내 그놈의 계륵같은 가이드북으로부터 해방! 물론 처음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봐야 할지, 어디서 자야 할지 막막했지만 이내 세상의 길은 한국어 가이드북만이 알려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동안 손에 쥔 책이 밝혀 주는 길이 너무나 확고해서 수천수만이나 되는 샛길들을 그냥 지나쳤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대신 유럽 여행에선 틈만 나면 구글을 이용해 정보를 검색했다. 현재의…
2017-10-01 00:00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인에 의한 동화집은 심의린이 편찬한 ‘조선동화대집’이다. 오래도록 채록한 구전 민담과 설화 중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묶어 1926년 처음 출간했다.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에는 이전에 나온 조선총독부의 ‘조선동화집’에는 없었던 ‘의좋은 형제’, ‘은혜 갚은 까치’ 등이 처음 등장했으며, ‘형제담’을 다룬 동화도 모두 8편쯤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숫자 ‘3’과 관련된 작품도 눈에 띈다. 노승을 도와 부자가 되는 동생과 욕심으로 망하는 형의 이야기를 다룬 ‘세 개의 보물’과 못된 성질의 두 형과 막내 이야기를 다룬 ‘두 형의 회개’라는 작품이다. 여기서는 ‘두 형의 회개’를 잠깐 들여다보자. 어느 마을에 욕심 많고 괴팍한 성격의 두 형과 마음씨 착한 막내가 살고 있 었다. 막내는 정직하고 욕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두 형은 부모님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막내를 내쫓아 버린다. 길을 헤매던 막내는 다친 노승을 발견하고 그를 도와준 뒤 세 개의 선물을 얻게 된다. 자리 한 닢, 바가지 한 짝, 젓가락 한 매가 그것이다. 후에 막내는 이 물건들을 잘 사용하여 부자가 되고 벌을 받아 가난해진 형들을 받아들여 다시 우애롭게 살
2017-10-01 00:00가을은 들국화의 계절이다. 도심을 걷거나 가까운 산을 오르다보면 국화처럼 생긴 흰색·연보라색·노란색 꽃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꽃들을 흔히 들국화라 부른다. 들국화라고 불러도 틀린 건 아니지만, 들국화는 가을에 피는 야생 국화류를 총칭하기 때문에 ‘들국화’라는 종은 따로 없다. 사람들이 들국화라 부르는 꽃들의 실제 이름은 무엇일까. 들국화라 부르는 꽃은 연보라색 계열인 벌개미취·쑥부쟁이·구절초, 노란색인 산국과 감국 등 다섯 가지가 대표적이다. 이들 다섯 가지 들국화만 구분할 수 있어도 올 가을 산과 들을 다닐때 느낌이 전과 다를 것이다. 벌개미취, 쑥부쟁이, 구절초는 비슷하게 생겼다. 필자도 처음 꽃에 관심을 가졌을 때 이 셋을 구분하는 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상당한 시간도 걸렸다. 이 세 가지를 잘 구분하면 야생화 초보 딱지를 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서울 도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연보라색 들국화는 벌개미취다. 벌개미취는 빠르면 7월 말부터 초가을까지 피기 때문에 ‘가을의 전령’이라 할 수 있다. 벌개미취는 원래 산에 사는 야생화였다. 그러나 요즘은 산보다 도심 화단이나 도로가에서 더 흔히 볼 수 있다. 연보랏빛 꽃이 크고 풍성한 데
2017-09-01 00:00캠핑카 여행을 하며 미국 유타 주에 있는 커내브라는 마을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아니야, 여기도 없어.” 해가 진 후 우리는 마을 곳곳을 돌며 도둑놈처럼 기웃기웃 염탐을 했다. 거북이처럼 느릿하게, 작은 마을의 이 구석 저 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돌기 시작한 지 여덟 바퀴 만에 마침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바로 여기야! 여기서 와이파이가 터져!” 캠핑카일 경우 그날의 잠자리를 좌지우지하는 건 화장실의 존재 유무다. 그래서 휴게소 화장실 근처가 차숙을 하기에 딱 좋다. 하지만 화장실과 부엌까지 딸린 캠핑카에서 없는 건 딱 하나, 문명인의 필수품 와이파이다. 우리나라처럼 인심 후하게 무료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드물기 때문에 운이 좋아야 어쩌다 동네 한두 개쯤 비밀번호가 없는 와이파이를 찾을 수 있다. 오늘은 운 좋게 코인 세탁소 옆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퇴근하듯 이 공터로 돌아온 지도 벌써 나흘이 지났다. 코딱지만한 마을에 나흘씩이나 머물고 있는 이유는 ‘더 웨이브(The Wave)’라는 관광지 때문이다. 쉽게 떨어져 나가는 사암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루에 딱 20명에게만 출입이 허락된 곳이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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