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오래전에 휴지통에 버렸어야 할 제도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현 정부가 이를 확대 추진하려해 우려스럽다. 교육부는 최근 무자격 공모제 학교 비율을 자율학교 또는 자율형 공립고 중 신청학교의 15%로 제한한 조항을 삭제하는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특정노조 출신 인사 등용문일 뿐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15년 이상의 교육경력만 충족하면 누구나 공모에 응할 수 있어 이미 그 의도에 대한 불신을 자초해 왔다. 그간 임용된 무자격 교장들 중에는 충분한 전문성과 경험 부족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고, 진영논리로 교사 간 갈등을 증폭시킨 경우도 있었으며, 여론 몰이로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교육부는 교장 임용방식을 다양화 해 학교현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듯이 특정 노조 출신의 교장들이 대거 임용됐고, 특히 서울·인천·광주·전남 등의 지역은 제도 시행 이후 100% 특정노조 출신만 교장이 됐다. 특정노조를 제외한 나머지 교사들은 무자격 교장공모에 명함조차 내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정노조의 도움 없이는 무자격교장
2018-01-05 15:21신정 연휴에 일본에 다녀왔다. 역사박물관에 가기 전 버스 안에서 들은 가이드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일본은 백제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발전시킨 나라인데 신라가 일본에 문물을 전파해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그런 일본이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을 통해 문명을 전파해준 스승의 나라를 침략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일본의 ‘두견새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 전국시대의 세 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한자리에 모여 울지 않는 두견새에 대해 담론을 나눴다고 한다. 먼저 도요토미는 훈련을 시켜 울게 만든다고 했고, 오다는 목에 칼을 대고 울라고 명령하고 그래도 울지 않으면 베어버린다고 했다. 도쿠가와는 인내심을 갖고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세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도요토미는 공부하도록 훈련을 시킬 것이고, 오다는 때려서라도 강제로 시킬 것이고, 도쿠가와는 스스로 공부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역사에서는 도쿠가와가 천하를 통일해 결국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게 정답이 됐다. 요즘 학생 체
2018-01-05 15:21황금 개의 해 무술년(戊戌年)이다. 새해를 맞아 모두 각자 바라는 꿈이 있을 것이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빠른 시간보다는 목표를 향한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에 대해 성급해하고 성과에 쉽게 낙담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말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한 라틴어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다. 이는 고대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말로 ‘천천히 서두르라’는 뜻이다. 삶에 있어 서두름과 비교는 언제나 낭패를 가져온다. 만약 어떤 과목을 잘하고 싶다면, 내가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을 것을 믿고 기초부터 차분히 튼튼하게 다져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의 완성된 모습만 보고 그 과정은 간과한 채 속단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탓한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했다. 지난해 이루지 못한 일들이 있어도 나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 목표가 정당한 것이라면 올해 다시 시작하면 된다. 꿈을 이룰 완벽한 나는 기초부터 튼튼한 노력에서 시작됨을 기억하며 페스티나 렌테를 되새겨 보자. 나를 완성시킴에 있어서는 그 조급함을 천천히 해야 한다. ‘나는
2018-01-05 15:21변검술의 ‘변검’(變瞼)은 중국 전통극에서 배우가 얼굴 표정 가면을 재빠르게 바꾸는 것을 지칭한다. 최근에는 이런 변검술을 교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바로 학교폭력을 둘러싼 이야기다. 학교는 교내는 물론 학교 밖 폭력 사건까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를 열어 심의한다. 대부분의 교감은 위원장(진행자 겸 판사) 역할을 맡고 교사위원과 학부모위원들은 검사와 변호사 역할을 넘나들며 협의한다. 자신의 제자 또는 자녀와 비슷한 학생들을 면 대 면으로 접하고는 사건을 요소별로 점수화해 처리한다. 초등은 중등보다 더해서 놀이터, 교습학원, 집에서 경미한 피해를 입어도 전화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고 학폭위 개최를 요구하는 실정이다. 판정시비, 업무부담 시달리는 학폭위 학폭위 개최는 시작 전부터 난관이다. 교내 교원위원과 학부모 위원의 소집은 덜한 편이나 의사, 변호사, 경찰 등 외부위원은 일정을 맞추기가 어렵다.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담당교사는 전화에 매달려야 한다. 학교는 학폭 담당교사(보통 학생부장) 인사 때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학주’라는 안 좋은 의미로 불리고, 학부모에게는 민원 제기의 도화선이 된다. 학교 내·외 행사 질서유지의 책임자
2017-12-29 15:5256( ), 72( ), 99( ) 괄호 안에 들어갈 공통된 말은 무엇일까? 2000년대 중후반 학창시절 혹은 직장생활을 했다면 눈치 챌 단어다. 다름아닌 ‘드림 카카오’다. 문제에 있던 숫자는 제품 속 카카오 함량이다. 2006년 고교 1학년이던 내게 이 초콜릿은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친구들과의 놀잇감이었다. 특히 99% 카카오가 들어있는 제품은 아스팔트 맛으로 통용됐고 다양한 내기의 벌칙도구로도 이용됐다. 항상 달달한 존재로만 인식됐던 초콜릿의 배신이었다. 교직이 아니라 내가 ‘쓴’ 사람이었다 사실 초콜릿이 달콤한 이유는 주재료인 카카오가 아니라 추가로 들어가는 재료들이 달기 때문이다. 지금은 초콜릿처럼 달달한 교직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2013년 처음 발령받았던 때를 생각하면 99% 카카오 못지않은 씁쓸함의 연속이었다. 교대를 막 졸업하고 발령받은 신규 교사가 학교 현실을 직시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본교에 새로 부임한 교사 소개를 마치고 교실로 올라와 마주한 학생들은 임용고시 면접관보다 더 커 보였다. 학생들은 새롭게 같은 반이 된 친구들과 이야기하기 바빴고 6학년 학생들에게 담임교사는 별 관심사가 아니었다. 준비해왔던 인사말을 꺼내기 전에 "자리에
2017-12-29 15:51현재 중학교 3학년부장을 맡고 있는 나는 최근 난처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우리 아이 때 문과와 이과가 통합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 "수능은 그대로 분리해서 보는 게 맞나요?" 정책 탓에 혼란스러워 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보며 명쾌한 답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 요즘이다. 교육정책 결정 과정의 편향성 교사는 가르치는 전문가로 교과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생활지도의 전문가로 그 역할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이상의 공부가 필요하다. 당장 2015 개정교육과정이 교육현장에 도입된 상태이고, 한 교실에 두 명의 교사를 배치한다는 1교실 2교사제 역시 실행을 앞두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이미 시범학교 운영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논란을 갖고 있는 중학교 자유학기제는 자유학년제로 확대돼 2019년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또 대학 입시의 영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해 논란이 되고 있는 학종은 확대 추세에 있으며, 수능은 절대평가의 범위와 과목이 정해지지 않아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하나의 현상을 넘어 우리 교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정책에 따라 학교의 교
2017-12-15 15:01학생의 잠재력과 성장과정을 ‘정성적’으로 평가한다는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은 현재 주요 대학 입학 정원의 70%를 선발하는 대세가 됐다. 현장에서는 학종에 명운을 걸고 전교생 비교과 활동은 물론 갖가지 특별활동들을 만들어 학생부를 ‘화장(化粧)’하고 있다. 그럼에도 학생이 왜 합격하고 왜 떨어졌는지 아무도 답해 주지 않는 현실이 요즘 고3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교육 원인에 대한 현장의 고민 학종의 전면 확대를 약속한 현 정부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 협의체를 만들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내는 대안들이 현실적 해법이 될지 의문스럽다. 대학 서열의 강고한 벽이 존재하는 한 중등 교육은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근원적인 환부를 직시하지 않은 채 학종 확대라는 답을 정해 놓고 실현 방법에만 몰두하는 대책이 문제를 해결해 줄 리 없다.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유권자의 한 표를 얻어내기 위한 근시안적인 정책들만 만들다보니 백년대계가 난마처럼 얽힌 게 아닐까. 현장에서 생각하는 학종의 본질적인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수능 시험과 학종 중 어떤 것이 더 사교육 유발 요인인가다. 많은 이들은 수능 시험이…
2017-12-15 15:00민주주의의 힘은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에 기반하고 있다. ‘촛불 시민’의 힘으로 퇴행적인 한국사 ‘국정화 시도’가 기적같이 중단되고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는 불가피하게 2015교육과정 적용 시기를 유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며칠 전 개정교육과정 시안이 얼굴을 드러냈다. 시안은 공청회를 거치면서 앞으로 다듬어지겠지만 학교 현장의 현실적 조건들을 고려해 적합한 완성품이 나올 수 있도록 더욱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안에 나타난 계열성과 현장 적합성에 대해 몇 가지 고려가 필요한 것들이 있다.세계사 분리로 시수문제 해결 한계 이번 시안은 세계사와 한국사를 분리해 중 2때 세계사, 중 3때 한국사를 학습하도록 하고 있다. 또 세계사는 동서양 통사, 한국사는 전근대사 중심의 통사로 구성했다. 특히 고등학교는 3:7 정도의 비율로 근현대사가 중심이어서 예전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분위기가 배어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먼저 그간 중학교에서 세계사와 한국사를 통합해 2년에 걸쳐 역사1,역사2로 배우던 것을 학년별로 세계사와 한국사를 분리해 배우도록 편재한 것은 의미 있다. 지금까지 많은 학교가 세계사를 건너뛰
2017-12-08 15:392011년부터 초등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2년 전에 5학년 아이들과 1년을 보낼 때의 일이다. 경인(가명)이는 참 밝고 친구들에게 친절한 아이였다. 하지만 수학 시간만 되면 기가 죽어 있었다. 흔히 얘기하는 ‘수포자’(수학포기자)였던 것이다. 교사로서 그 아이가 참 안타까웠다. 어느 날 수학 시간의 학습주제는 ‘삼각형 그리기’였다. 삼각형을 그릴 수 있는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날은 두 변과 끼인각을 알 때 삼각형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역시나 경인이는 시작조차 하지 못하도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하교한 후 교실에서 수많은 고민을 했다. ‘왜 똑같은 조건으로 가르쳤는데 경인이만 어려워하는 걸까?’경인이는 왜 수포자여야 했을까 하지만 그런 고민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그날 밤 바둑 모임에서 깨달았다. 나보다 바둑을 잘 두시는 분과 함께 연습 바둑을 하는 날이었는데 그분보다 한참 하수였기 때문에 ‘접바둑’을 두게 됐다. 접바둑은 바둑을 두는 방식과 관련된 용어다. 바둑을 두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비슷한 실력끼리 돌 가리기를 통해 흑과 백이 번갈아 한 번씩 두는 호선바둑, 두 번째는 1치수(1단이나 1급) 차이가 나서 실력이 조
2017-12-08 15:38해마다 이맘때면 학교는 맘이 편치 못하다. ‘11월의 괴담’이라 할 만큼 교사들을 긴장시키고 스트레스를 주는 ‘교원평가제’ 때문이다. 교원평가는 교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일단 취지는 좋다. 학생들의 학습욕구와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교사들부터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취지’가 애초의 설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교원평가는 교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사기만 떨어뜨리고 있다. 욕설·인신공격 난무하는 교원평가 이번 11월에 실시된 교원평가도 여지없이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됐다. 소위 자유서술식 평가 항목인 주관식 평가에 악플 수준의 욕설이 난무한 것이다. 물론 교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거나 수업의 개선점을 적은 학생들도 많다. 그러나 ‘익명’을 악용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적은 경우도 많다. 한 언론 기사에 공개된 "이 ○○○은 그냥 (학교에서) 나가야 함", "성형 너무 티가 나서 거슬려요" 등등은 인신공격에 가깝다. 교육부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늦게나마 파악하고 욕설이나 비속어 등을 ‘금칙어’로 설정해 결과지에 보이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학생
2017-12-01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