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시간은 언제나 파란만장해요. 저학년의 급식 시간일수록 담임 선생님은 분주하지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서야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선생님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니, 급식 놔두고 왜 컵라면을 드시지?’ 월급에서 꼬박꼬박 공제되는 급식비. ‘돈이 아깝지도 않으신가?’ 궁금했었지요. 그런데 웬걸요. 아이들 급식만 제대로 해도 급식 시간은 성공이라는 것을 저학년 담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어요. 밥을 먹다 토하면서 뿜는 아이. 배식을 잘 받고 자리에 가다 식판을 엎어 버리는 아이. 바닥에 국물을 질질 흘리는 아이. ‘오늘은 제발 쏟지 마라.’ 주문을 외우지만, 결국 진실을 깨닫게 돼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내가 절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요. 일어날 일은 그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요. 다행히도 올해는 2학년 담임이에요. 그래도 1학년보다는 덜하다는 데 감사할 뿐이에요. 배식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한 아이가 빈 급식 판을 가지고 앞으로 나와요. “선생님, 언제 버려요?” “어, 이따가. 아직 배식하고 있잖아.” 그 친구는 30초 간격으로 “선생님 언제 버려요?”를 무한 반복해요. 참다 참다 한마디를 해줬어요. “기다려.…
2020-11-05 15:47교육부는 지난달 5일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학습안전망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한글 해득 수준 진단‧보정과 인공지능(AI) 수학 시스템 도입‧적용이 골자이다. 교육부는 한글 미해득으로 인한 학습 결손을 방지하기 위해 시·도 교육청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 해득 수준을 진단하고, 개인 맞춤형 학습을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코로나19 원격수업으로 인한 학습 결손의 누적이 학력 격차로 이어졌고, 특히 초등 1학년의 한글 해득 수준 격차는 장차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해득력 데이터 부족 학습 결손을 예방하기 위해서 조기 진단의 중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기 못지않게 더욱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의 방법과 내용이다. 원격수업으로 학력 격차가 벌어졌다는 것에 많은 교사와 학부모는 공감한다. 하지만 초등에서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부족하다. 간헐적인 등교 수업에서 관찰‧수집한 제한적인 데이터와 교사의 직관적 판단으로 한글 미해득 학생 수가 늘었다고 판단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교육부는 한글 해득 수준 진단‧보정 프로그램으로 ‘한글 또박또박’을 제시했다. 초등 1학년 한글 해득 수준을 면밀하게 진단하고 그…
2020-10-29 14:35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으로 가장 크게 부각된 것이 바로 ‘돌봄’의 영역이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돌봄(보육)이 이제는 공공성을 넘어서 보편적 복지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올해 처음으로 30만 명이 넘게 초등돌봄교실을 이용하고 있고, 앞으로 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에 초등학생 형제가 집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대형화재로 이어져 형제 중 하나를 떠나보내야 했던 참사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안타까운 라면 형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돌봄은 국가에서 보편적인 복지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편적 복지 차원 접근 필요 사실, 초등돌봄교실은 현재 규정돼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단순하게‘교육부 고시, 초․중등교육과정 총론’에 근거해 시행한다. 때문에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는 꾸준하게 법적인 문제가 제기됐다. 앞으로 교육은 학교에서, 돌봄은 학교 밖에서 이루어져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과 돌봄이 모호하게 3개 부처에 서로 중첩돼 있는 점도 첨예한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다. 초등돌봄교실은 교육부, 지역아동돌봄은 보건복지부, 그리고 아이돌봄서비스는 여성가족부에
2020-10-29 14:29지난 10여 년간 교사에서 교장으로 ‘2단계 점프 승진’하는 무자격 교장공모제의 누적된 폐해가 여실히 드러났다.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까지 무자격 교장공모제를 통해 임용된 교장 238명 중 154명(64.7%)이 특정노조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는 전체 66명 중 44명이 노조 출신으로, 무려 10명 중 7명이 해당된다. 교육감 후보자 시절 선거캠프 인사 등 친노조 성향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80% 이상이라는 게 교육계의 공통된 견해다. 이들은 또 공모 교장의 임기를 마친 후에도 법령에 따라 원직인 교사로 복귀하지 않고, 장학관 등 교육전문직으로 전직해 교육행정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가히 고려·조선 시대 ‘음서제’의 현대판 데자뷰라 할만하다. 지난해 소위 ‘조국 사태’ 이후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등 사회의 불공정을 빗댄 비유와 더불어 최근 공공의대 사태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젊은 세대를 포함한 대다수는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기회와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이 한 바탕 불어닥친 사회적 회오리도 무자격 교장공모제 앞에선 그저 찻잔 속 콧바람일
2020-10-29 11:21강원도교육청이 올해부터 임용시험 지원자를 늘리기 위해 논술과 면접만으로 뽑기로 해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강원도는 2017학년도 교사임용경쟁률이 0.58대1에 불과했다. 2020학년도에는 1.1: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초등교사 수급에 애를 먹은 것은 사실이다. 결국, 고육책을 썼는데, 공정과 신뢰성을 크게 상실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1차 객관식 시험을 폐지하고, 오로지 교직논술과 면접으로만 치르겠다는 것이다. 1차는 교직논술만, 2차는 교직 적성 심층 면접·영어면접으로 하되 면접 배점을 기존 60점에서 80점으로 높였다. 이같이 변경이 가능했던 건 교육공무원 임용후보자 선정시험규칙 제7조에서 ‘응시자가 선발예정인원에 미달되거나 시험실시기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시험의 일부를 면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 때문이다. 당장은 효과를 보이는 듯하다. 2021학년도 초등교사 경쟁률은 2.53대1로 9년 만에 최고치에 이른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겠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논술, 그리고 80점 비중의 면접이라는, 사실상 주관적·정서적 판단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공정성 시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가뜩이나
2020-10-22 16:31교원정원을 한 번에 대폭 감축하지 못하도록 한 안전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교육부가 ‘퇴직자 수 범위 내’에서 교원정원을 감원토록 한 조항을 삭제하는 ‘지방교육행정기관 및 공립의 각급 학교에 두는 국가공무원의 정원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의 개정을 예고한 것이다. 반면, 시·도 정원의 추가배정 규모를 총 정원의 1000분의 1에서 100분의 1로 확대하고, ‘새로운 정책 수요 반영’이라는 사유를 신설했다. 한 마디로 교원정원의 감축 폭의 제한선은 없애되,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의 정책 수요에 따른 인원은 10배 늘리겠다는 방안이다. 학급당 학생 수 등 교육여건은 악화되더라도 정부·교육감의 이념·실험정책에 필요한 교사는 더 많이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학생과 교육의 질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정책 실현에 중점을 둔 교원수급 개악 정책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전통적인 집합수업과 방역 밀집도는 물론, 효과적인 원격수업을 위한 적정 규모의 학급당 학생 수 개념 차제가 새로이 정립되고 있다. 이에 맞춰 유은혜 교육부 장관도 지난 5일 ‘미래교육 10대 과제’ 발표에서 “서울·경기 등 수도권은 학급당 학생 수가 밀집돼 있다”며 “OECD 평균 기준을 넘어 우리의 기
2020-10-22 16:28영어독서가 영어 실력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초등부모들 사이에서 영어원서 읽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영어독서는 보통 초등 저학년 때 파닉스를 익히고 영어원서 읽기훈련용 책인 얇은 리더스를 단계별로 읽으면서 시작된다. 뒤늦게 영어원서 읽기의 효과를 알게 되어 자녀에게도 이를 시도해 보고 싶지만, 자녀가 이미 초등 고학년이거나 중학생이어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러나 영어원서 읽기는 어느 단계, 어느 연령대에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어원서 읽기를 초등생뿐 아니라 중·고교생에게도 권하는 이유는 영어독서야말로 영어 문해력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며, 자신의 수준에 맞는 영어원서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읽어나간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30분 읽기의 효과 2001년 미국 오클랜드에 있는 Langford중학교에서 8주간 읽기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이 학교에서 만12세에서 14세 학생 중 읽기 수준이 자기 학년의 평균 수준보다 3~4년 뒤처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8주간 매일 30분씩 책을 소리 내어 읽게 했다. 이 프로그램을 마친 후, 학생들의 읽기 이해도와 어휘력을 측정해 본 결과, 아주
2020-10-22 16:27(1. 그해 봄) 신을 믿지 않는 나에게 축복을 생각하게 한 사람이 있다. 3월, 봄이 왔건만 때늦은 추위로 따스함이 그리워지던 어느 날 교실에서 그 아이를 처음 보았다.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에 해맑은 웃음을 지닌 소녀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A중학교에 와서 가장 기뻤던 일은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슬픈 일은 제가 졸업하면 선생님을 못 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기간제 교사였으며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던 2011년 그해, 낯선 환경과 부담스러운 사람들의 시선에 잔뜩 위축되어 있던 나였다. S.A의 그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S.A는 나에게 학교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첫 학생이었다. 언제나 밝고,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 교대를 가서 고등학교 남자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엉뚱한 꿈을 지닌 아이였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보름이 약간 지났을까 S.A와 같은 반에 있는 Y.B가 우울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Y.B의 고민은 미술시간에 조별 활동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 예술문화교육을 하러 온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서 앞으로 뛰쳐나가 아기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닐 때 만…
2020-10-22 14:22“선생님께서 어려운 사람 도와주라 가르치셨다 아임니꺼~!” 전화선 너머의 그 녀석은 37살의 아저씨 목소리로 익살스럽게 말했다. 서울살이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나랑 통화할 때는 여전히 거제의 13살 퉁명스러운 남자아이가 된다. “그래, 그랬었지, 그걸 기억하고 실천하는 네 녀석이 기특하다~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춥다, 밥 잘 챙기묵고~” 언제나처럼 엄마 같은 잔소리를 하며 전화를 끊고선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한가득이다. 자칭 자랑스러운 1호 제자인 재완이(가명), 어느새 같이 늙어가는 38살의 제자 녀석…. 그때는 살벌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돌이켜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린 26년 전 12살 재완이의 이야기를, 오늘이 살벌하고 무서운 13살 재훈이에게 들려주며 새록새록 그때를 추억해 보았다. 23살, 거제 시골 6학급의 유일한 여선생님이었던 나는 5학년 42명의 담임이 되었다. 반농반어 가정에 조손가정이 절반을 넘던 93년 즈음의 우리 학교에서 5학년임에도 6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우리들의 일그러운 영웅’의 ‘엄석대’ 같은 존재감을 뽐내는 녀석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재완이였다. 그 당시, 체육진흥회란 이름의 학부모회가 지금의 운영위원회와 같은…
2020-10-20 11:16“아이들이 줄었는데 교사도 줄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흔히들 단순한 경제 논리에 의해 교육을 평가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답은 ‘No’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교사가 하루 동안 학급 아이들의 이름을 얼마나 불러줄 수 있을까? 학생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선생님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결론은 지금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로는 불가능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통계 교육통계를 보자. 초등학교를 예로 들어본다. 2000년 기준으로 초등학교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8.7명이었다. 지금은 서서히 줄어들어 2019년에는 14.6명이 됐다. 수치상으로 큰 변화다. 그런데 실제는 어떤가. 도서벽지 같은 특수한 환경이 아니라면 15명으로 구성된 학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수업을 담당하지 않는 교사 군(群)까지 포함해 작성한 통계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OECD 국가 평균에 근접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OECD 국가들은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계산할 때 수업을 하는 교사만 포함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OECD 교육지표라는 것을 따로 만든다. 이것을
2020-10-15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