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복 | 서울 동일초 교장 2005년 3월에 학교에 전화가 왔다. 4학년 학생의 아버지라고 한다.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목소리였다. "학교죠? 교장 바꿔요." "제가 교장인데요." "정말 교장 맞아요?" 하면서 '아니? 교장이 남자였는데, 여자가 교장이라니?' 의아해 한다. 그래서 '3월1일자로 새로 부임했다'고 설명을 했지만 의아해 하기에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바꾸어 확인을 시켰더니 좀 멀쑥해 하는 것 같았다. 교장이 바뀐 줄도 몰랐다는 사실을 미안해하는 것 같아 그럴 수 있다고 위로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전날 학교에서 선생님께 맞아서 등에 멍이 들었단다. '아이들끼리 장난치다 그런 건 아닌가'하고 물으니 버럭 화를 낸다. 상황을 모르긴 해도 선생님께 맞아 멍이 들었다고 하니 일단 사과를 했다. 그리고 "왜 하루를 참으셨어요? 어제 당장 학교로 오시든지 아니면 경찰에 고발 하시지요"라고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아니 정말 교장 맞아요? 교장이면 선생님 행위를 변명하고 잘못을 감싸서 최소화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라고 한다. "알아보면 교사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겠지만, 학부모님 자녀가 멍이 들었다면 변명의 여지가
2006-03-01 09:00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수재 가운데 뛰어난 연주자 많아 '모차르트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음악이 머리를 좋게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피아노를 배운 학생이 학업 성적도 우수하다는 조사 결과가 그 동안 여려 차례 나왔다. 그러나 과연 학생이 연주를 하면서 똑똑해져 성적이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피아노 레슨을 받는 학생이 사회경제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자라 성적이 좋은 것인지 밝혀내기란 쉽지 않다. 얼른 보기에 간단해 보이지만 인과 관계를 따지기 매우 어려운 것이 음악과 두뇌 발달의 관계이다. 연주가 두뇌 발달을 촉진한다는 것은 손놀림이 두뇌를 자극할 것이라는 생각과 유명한 과학자들 가운데도 뛰어난 연주가가 많은 데서 막연히 추측돼 왔다. 상대성 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은 모차르트 연구가였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운 막스 플랑크는 작곡을 하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직업적 음악가 못지않게 피아노 연주에도 능했다. 현대 물리학의 두 거장인 아인슈타인과 플랑크는 친한 친구이자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셉 요아힘을 불러 삼중주를 하기도 했다. 필자도 수재가 모이는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연수를 하면서 학생들의 피아노 연주 실력을 보고 깜
2006-03-01 09:00
김연수 | 생태사진가 우아한 발레리나의 몸짓 "꾸룩 꾸룩 꾸욱" 겨울철새의 낙원 천수만 간월호에서 200여 마리 남짓한 큰고니(천연기념물 201호)들이 부르는 합창소리다. 호수를 뒤덮은 물안개 속에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큰고니들의 우아한 자태는 차이코프스키의 를 떠올리게 된다.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보았던 러시아 볼쇼이 오페라단의 기억난다. 발레리나의 선녀 같은 율동에 흠뻑 빠져 치콥의 교향악을 매일같이 반복해 듣던 때가 있었다. 그 발레리나의 원조가 바로 큰고니 들이다. 활주로를 이용한 힘찬 비상 흔히 백조라고 부르는 고니는 11월 말쯤 되면 러시아 툰드라의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 해안가의 호수를 찾았다가 이듬해 3월에 돌아가는 희귀한 겨울철새다. 겨울철이면 수많은 탐조객들이 하얀 천사 같은 이들의 평화로운 춤사위를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갈대밭 속에 위장텐트를 치고 녀석들이 가까이 접근하기를 기다린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동지섣달의 한기에 온몸을 웅크렸다가도, 얼어붙은 호수 가에서 움츠렸던 선녀들이 얼지 않은 호수 한가운데로 서서히 움직이면서 하나 둘 입을 모아 노래 부르면, 어느새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추위 속에서 떨었던 지루함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2006-03-01 09:00
글·사진 | 박하선/사진작가, 여행칼럼니스트 고생 끝에 허락된 왕국과의 첫 만남 여기는 티벳 고원의 서부 변방. 불같은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해발 4000m의 고원에서 나무 한 그루 없는 주변의 산들이 하얀 사막처럼 빛나고 있다. 온 천지가 텅 비어있어 마치 오수(午睡)속의 적막함 같을 것을 느끼게 한다. 세 갈래의 갈림길 옆에 텐트를 치고 지나가는 트럭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지도 이틀이 되었다. 말로만 들어온 '구게 왕국'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오늘도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모래언덕에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기만을 눈이 빠지게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마치 구약성서에서 한 예언자가 신의 계시를 받고 성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너무도 생소한 이 구게 왕국. 9세기 한때 중앙 티벳의 '랑 다르마'왕의 불교에 대한 박해로 인해 흩어져 있던 추종자들을 모아 '예쉐 오(Yeshe O)'라는 사람이 866년에 창건한 왕국이다. 불교의 보존과 전래에 역점을 둔 이 왕국은 예쉐 오 왕 자신도 결국 왕위를 버리고 중이 될 정도로 불교가 크게 번성해 티벳 전역에 다시 불교의 부흥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17세기 카시미르 사람들
2006-03-01 09:00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기원전 221년 시황제의 통일 진제국은 이후 중국 역대왕조의 기틀이 되었으나 결국 15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전란에 시달려왔던 중국인들은 이번에는 전쟁의 고통 대신 급진적인 국정운영과 사상통제, 각종 노동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군주 한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사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외교력'이다. 만약 분쟁이 있을 때마다 무력만을 앞세운다면 비록 승리한다 해도 자국의 아까운 생명과 국가재산을 소모하여 자칫 망국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돈 한 푼 안들이고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면 도랑 치고 가재잡고, 마당 쓸고 돈 줍는 셈이 아닌가? 소진(蘇秦)이 합종책(合從策)을 들고 나와 여섯 나라가 연합하여 북방 오랑캐 나라인 진나라를 고립시키려고 하자(한족 제후국의 입장에서), 진나라는 북방 유목민 특유의 탁월한 정보 수집과 분석력을 발휘하여 장의(張儀)를 발탁, 연횡책(連橫策)을 씀으로써 '진나라 말려 죽이기 작전'을 허사로 돌려놓는데 성공하였다. 즉 다른 여섯 나라 책사들의 술책이 진나라
2006-03-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