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학년도에는 3학년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내가 가르친 26명의 어린이들에게 설문지를 받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권유를 받은 일도 없지만 스스로 학년을 마칠 때마다 하는 일이기도하다. 하지만 설문지를 확인하기까지는 내용이 궁금하고, 혹 부정적이거나 원망하는 아이들이 많으면 어쩌나 긴장도 된다. 점수가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다. 자기의 의견을 솔직하게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꼼꼼히 설명을 해줘도 엉뚱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몇 명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설문의 본뜻보다는 자신의 이해득실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이 주관적으로 평가한 것이기에 정확할 수도 없다. 그래도 해마다 실시하는데 이유가 있다. 요즘 아이들 영리해서 1년 동안 같이 생활하다보면 돌아가는 분위기는 파악하게 되어있다. 사실 설문지라기보다는 1년을 뒤돌아보며 내 자신을 반성하고, 다음 학년도에 만날 아이들에게 더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만들어주기 위해 꼭 필요한 참고자료다. 반에 대한 느낌, 학급운영에 대한 생각, 선생님과의 친밀감, 편애에 대한 생각, 표정에 대한 느낌, 수업이해도 조사가 주목적이었다. 그밖에 수업시간의 분위기, 목소
2007-02-27 23:16퇴근 길, 교정을 나서는 데, 운동장 한 켠에 덩그러이놓인 백 원 짜리 동전 한 개를 보았다. 누구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동전이었나 보다. 멋쩍게 돈을 주웠다. 동전을 줍는 일은 어느 여류시인이 말한 것처럼 다보탑을 줍는순간이다.오늘처럼 이순신 장군을 만나는 것이라면 더 없이 소중한 일이다. 백 원이면 방글라데시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가 가능한 돈이지 않던가. 하지만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듯 하다. 풍요로운 세상을 반증하는 예일까? 10원짜리 동전은 이미 사람들의 안중에 없는 듯하다. 몇 해전부터 청소년 적십자 학생들과 함께 불우이웃 돕기 동전 모으기 행사를펼치고 있다. 올해도 일주일 간 교문 앞에서 동전 모금을 했는데 63,830원이나 모았다. 10원짜리 동전에서 부터 500원짜리 동전까지 다양하다. 간혹 1,000원 지폐도 볼 수 있지만, 언제나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다. 100원, 어린시절 100원은 정말 대단했었다. 무서운 불주사를 맞는 날, 지레 겁을 먹고 엉엉 우는 나를 보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눈물 뚜욱~! 주사 맞고 나면, 엄마가 백원줄게." 그땐 어떠한 고난도 100원 하나면 이겨낼 수 있었다. 두 눈을 찔끔 감
2007-02-27 16:22쿨쿨존은 수업 중에 학생들을 배려하여 잠을 잘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이 곳에서는 만화책도 볼 수 있고, 수업에 방해되지 않는 한 간단한 음료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지역이다. 아울러 손전화를 이용하여 문자나 게임 정도는 할 수 있다. 교실의 맨 뒤쪽에 돗자리를 펴놓아 수업시간 동안 쉴 수 있도록 마련한 휴식 공간인 셈이다. 쿨쿨존을 설치하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어느 한 반에서 수업 중이었다. 잠자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한 명 한 명 학생들을 깨워 일일이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남학생 한 명이 잠자고 있었다. 건장한 남학생으로 소위 말하는 주먹이 짱인 학생이었다. 말 그대로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탓일까? 그 학생은 일어나면서 대뜸, "어떤 개X끼야," 하면서 팔을 뿌리치는 것이 아닌가. "....." 나 역시 놀랐고 황당했다. 아마도 그를 깨운 사람이 옆 친구인 줄 알았나 보다. 나는 그만 분을 참지 못하고 손찌검을 하고 말았다. 물론 나의 경거망동이었고 순전히 내 잘못이다. 폭력을 행사했으니 말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학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심야에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었다. 늘 상 수업중에 잠만 자곤한다. 대부분 선생님들이 그냥 모른체
2007-02-27 16:22연수원은 바다 곁이라 운무로 인해 제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운무(雲霧)가 전혀 없는 날이면 참 좋다. 비가 오고 나면 운무(雲霧)도 체면이 있는 모양인지 맑고 깨끗한 날씨 속에 산책을 할 수 있게 해주어 기쁨이 배가 된다. 5월이 되면 산책로는 온통 신록(新綠)으로 가득 찬다. 나뭇잎은 아침이슬을 머금은 채 굴절 없는 햇살에 더욱 윤기를 더한다. 예쁘고 고운 아가씨의 얼굴처럼 빛난다. 햇살은 오랜만에 찬란하게 비추며 용기를 북돋운다. 운무(雲霧) 없는 동해의 아침 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운무 없는 동해 아침 바다는 잔치 한마당을 방불케 한다. 붉은 태양이 창공(蒼空)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비춘다. 바다는 온통 축제분위기로 휩싸인다. 물새는 그윽이 해상을 날고, 짐 실은 화물선(貨物船)은 일찌감치 뒤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수석(水石)실은 길다란 배는 조심스레 놓을 자리 찾는다. 강태공들은 잔치상에 올릴 고기를 잡을 양 이른 새벽부터 여기저기 바위에 걸터 위험을 무릅쓰고 낚시에 몰두하고 작고 귀여운 새는 쌍쌍이 자리를 차지한다. 젊은 부부, 늙은 부부 찾아와 인사하고 대화한다. 바다는 한창 바쁘다. 부글부글 끓는다. 빙글빙글 돈다.
2007-02-27 15:34포스트잇이라는게 있다. 여기 붙이면 여기 가서 붙고 저기 붙이면 그 곳에 가서 감쪽같이 붙어있는 아주 편리한 기능을 가진 문방구의 하나다. 풀이나 본드처럼 붙였다가 떼면 지저분한 자국이 남아 금방 표가 나는 그런 붙임용이 아닌 어디를 옮겨놓아도 금방 붙인 새것처럼 멀쩡하게 붙어있는 아주 요상한 문방구다. 기능면에서 이처럼 편리한 도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유리한 쪽에 가서 내 편이요 하다가, 그 쪽이 불리하게 되면 다른 쪽에 가서 당신 편이요 하는 철새족들을 포스트잇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는 남들이 가지지 않는 뚜렷한 가치관이라는 게 있다. 힘 있는 자만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어제의 힘 있는 자가 힘이 없어져 아래로 추락해버리면 사나이의 의리고 나부랭이고간에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내동댕이쳐버린다. 죽어라 멸시했던 자라도 1인자의 위치에 오르게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찰싹 붙어 어제까지 받들어 모시던 분을 함께 짓밟는데 앞장서는 그런 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신처럼 믿는 전형의 인물들이다. 약육강식의 세계는 분명 동물의 왕국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세계다. 오늘의 넘버원도 힘이 없어지면 젊고 싱싱한 수컷에게 쫓겨 밀려나야하고 새로운 강자 앞에 우르르…
2007-02-27 09:095월 하순 경에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부는 다음날 새벽에는 새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아마 비바람에 시달렸기 때문이리라. 몸살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창문을 여니 그제야 새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새가 공중을 난다. 몸살 앓은 흔적이 역력함을 알 수 있다. 바깥을 나가보면 1년초(一年草)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수 있다. 쓰러진 것도 있고, 떨어진 것도 있고, 흙 범벅이 되어 있는 것도 있다. 다시 제 모습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비바람이 불지 않았더라면 좀 더 예쁜 모습 더 지녔을 것인데 안타깝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건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못다 핀 꽃의 한(恨), 같은 뿌리 속에서 자란 다른 꽃이 대신해 풀어줄 것으로 생각하니 조금 위로가 된다. 바다 쪽을 바라보니 어제 비바람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뚜렷이 알 수 있다. 바닷물은 흙탕물인가 하면 정신없이 부딪치고 있다. 물결도 어지럽게 울렁댄다. 바닷가의 물거품을 보면 속에 있는 온갖 더러움을 다 쏟아낸 듯하다. 비를 뿌린 검은 구름도 체면이 있는 듯 거의 사라지고 한 구석에만 조금 남아있고, 대부분의 하늘에는 많은 피해를 끼쳐 미안한 듯 엷은 미소를 지닌 채…
2007-02-26 22:03며칠 전 혼자서 등산을 하였다. 일찍 찾아온 봄기운으로 냇물의 흐름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고, 언덕배기 잔디밭에는 새싹들이 고개를 살짝 내밀어 아주 연한 녹색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행렬을 이룰 만큼 많은 등산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혼자서 온 사람, 친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 온 가족이 함께 온 사람들 모두 봄 날씨 같은 화사한 미소와 홍조 띤 얼굴이 싱그러웠다. 주고받는 대화들엔 정감이 넘쳐 난다. 친구들 동정, 건강 유지 비법(?), 작금의 정치 이야기,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유머 등의 대화를 살짝 살짝 들으면서 빠른 발걸음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꽤 넒은 마을길에 들어섰다. 부부인 듯한 남녀와 몇 걸음 앞에 자매인 듯한 여자 어린이들이 걷고 있었다. 동생인 듯한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어린이는 다 내려와 기분이 좋아서인지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 3시간 정도는 족히 걸렸을 등산길이기에 어린이들에게는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끝까지 참고 내려왔다는 자기 만족감도 무척 컸을 것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목이 터져라 노래할 만큼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뒤쪽에 따라가던 아버지인 듯한 사람이 “야, 조용히 해. 노래도 잘못하는 것이 시끄럽게
2007-02-26 12:40e-리포트 코너를 통해 이미 지적을 했듯이, 올해 서울시교육청의 중등교사가 부족현상이 비교적 심각한 상태이다. 각 학교마다 1-2명의 미발령 교사가 있었으나, 최근 발표된신규교사 발령현황을 보면 간접적으로 부족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학교(서울대방중학교, 교장: 이선희)도 국어과 1명과 과학과 1명이 미발령 상태였으나 신규교사 발령은 과학과 1명에 그쳤다. 국어과 교사는 기간제교사를 임용해야 할 형편이다. 기존의 휴직교사를 포함하면 기간제교사가 6명이나 된다. 우리학교 관내인 서울특별시동작교육청(교육장, 박영순)에서는 오늘 신규교사에 대한 발령장수여를 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신규발령을 받은 과학교사를 인솔하기 위해 오후에 교육청을 찾았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발령장수여식이 끝나고 박영순 교육장의 격려가 이어졌다. '여러분들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신 인재들입니다. 앞으로 학생들 지도에 초심을 잃지말고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상적인 인사말로 격려사가 시작되었다. '제가 두 가지만 강조말씀 드리고 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인격을 갖추시라는 것입니다. 인격이란 인간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 및 경향과 그에 따른 독자적인 행
2007-02-24 09:2935년 만에 만난 제자 이야기입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에 참으로 부끄럼 많고 얌전하던 여자 아이였습니다. 담임인 나에게 마음속으로는 정답고 은근히 좋은 감정을 지녔으면서도 차마 말 한마디 못하고 다른 친구들이 선생님 가까이 있으면 늘 한 걸음 물러서서 손톱을 물러 뜯는 버릇을 지녔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가 2년 선배들의 카페에 띄운 내 소식을 알고 연락을 취해 왔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나는 즉시 “네가 보성남교 32회 졸업생 김명자란 말이지?” 하고 물었더니, 깜짝 놀라는 듯이 “어머 선생님 저희들 졸업 기수까지 알고 계셔요?” 하는 것이었다. “물론이지. 네가 너희들 6학년 담임을 맡았다가 4일 만에 발령이 나서 전근이 되었지만, 당연히 알아야지.” 이 제자는 6학년 담임을 해서 졸업을 시켰던 제자는 아니고 5학년 때 담임을 했던 제자였지만, 상당히 많은 추억거리를 가진 제자들이었다. 이렇게 하여 전화가 연결 된 뒤로 약 2주일쯤이 지나서 약속한 음식점에서 제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렇게 얌전만 떨던 제자가 이제 어른이 되어서 고등학생이 있고 초등학교 2학년짜리 늦동이가 있다고 했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2007-02-23 12:15겨울비 같은 봄비가 내립니다. 모처럼의 단비에 겨울 가뭄으로 헉헉거리던 대지가 촉촉하게 입술을 적십니다. 아침 일찍 아이들과 약수터에 가 물을 담아오는데 물이 잴잴거려 콜라병 하나에 오 분 정도 걸립니다. 가뭄 때문인지 약수터의 물도 마른 것 같습니다. 약수터에서 작은 산길을 따라 집으로 오는 길엔 봉분 서너 개가 나란히 누워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봉분 옆 게딱지만한 밭엔 봄똥과 힘없이 땅바닥에 몸을 뉘인 무가 봄을 기다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장난치며 걷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그리고 밝은 목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선생님, 저 민숙이요.” “어, 민숙이. 그래. 근데 아침 일찍부터 웬 전화야?” 민숙인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이인데 일 년에 한두 번 통화를 하는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가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는 일이라 좀 더듬거리자 민숙이가 왜 더듬거리냐며 핀잔을 줍니다. 그러면서 전화를 한 이유를 밝힙니다. “저 엊그제 시험 봤어요. 그런데 불안해서요.” “무슨 시험인데 불안해?” “영양사 시험인데 면접까지 다 봤는데 괜히 불안해서 전화했어요. 이것저것
2007-02-22 0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