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책을 보는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우리 같이 책을 볼까요?” “예, 선생님!" 침 8시가 되면 교실 문을 여는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꼬마들이 벌써 여럿입니다. 1학년 꼬마들은 아침이면 내게 다가와 미주알고주알 쫑알대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아이들과 나도 함께 이야기하며 까만 눈망울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하는 기쁨을 포기한 채, 도서실에 들어선 것처럼 인사말도 없는 목례하기, 발소리 안 내기, 책장 넘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꼬마들의 작은 몸짓은 귀여움 그 자체랍니다. 우리 학교는 아침 독서 시간을 `사제독서`의 시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공붓감으로 하루를 준비해야 하는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곁에서 책을 펴놓고 책을 읽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바쁜 공문서를 처리하거나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마저도 포기하고 용기를 내어 책을 폈습니다. 내가 일을 하며 조용히 책을 보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따르지 않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오늘부터는 아예 다른 일은 다 던지고 아이들처럼 책을 폈습니다. 발소리를 줄여가며 등교하는 아이들과 조용히 눈인사를 하고 책을 꺼내고 읽을 때까지 곁에 가서 책을 읽고 서 있는 나를 보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2007-06-19 08:41
아침에 귀한 손님을 만났습니다. 분홍의 꽃을 매달고 선 자귀나무입니다. 여름이 시작된 남쪽 땅엔 거의 모심기가 끝나갑니다. 학교 근처의 논들도 수박하우스를하는곳을 빼고 찰랑찰랑 물이 넘치는 논에 모들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무논 옆 산 언저리에는 참 예쁜 우리의 여름 야생화 자귀나무꽃이 피었습니다. 자귀나무꽃이 피면 반갑습니다.마치분홍빛 털이 공작새 깃털처럼 보슬보슬 자귀나무꽃이 어여쁘게 피어있었다. 자귀나무는 '사랑나무', '합환목' 이라고도 불리는 여름철 야생화입니다. 공작깃처럼 고운 분홍빛 꽃도 예쁘지만잎도사랑스러운 나무입니다. 자귀나무의 잎은 밤이면 마주난 두 잎이 꼬오옥 안고 자다, 아침이 되기 무섭게 내숭스럽게 떨어지는... 그래서 자귀나무를 안마당에 심어놓으면 그 집 부부의 금슬이 좋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내일이 단오이기도 해서 아이들에게 우리 야생화를 소개하면서 첫 수업을 시작하려고 자귀나무에 대한 내용을 찾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붉은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한 꽃과 저녁마다 서로 맞붙어 잠을 자는 잎이 매우 인상적인 나무다한자로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등으로 부르며, 이 나무를 집 앞에 심으면 가정이 화목해
2007-06-18 13:37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인가, 아니면 배우는 사람인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선생님 모습이 그립기만 한 오늘의 교단 현실에서 선생님을 굳이 정의하자면 '가르치며 배우는 사람', '부지런히 배워서 가르치는 사람' 쯤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편한 것으로 말하자면, 서 있는 것보다는 앉아 있는 것이 낫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누워있는 것이 낫다는데, 누워있는 것보다 더 편하고 행복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프로이드가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의 하나로 '죽음(thanatos)'을 얘기한 것은 참으로 기막힌 탁견이다. 수업 부담의 가중으로 가르치는 일이 힘들고 버거울 때, “선생이 공부만 안 가르치면 세상에 둘도 없이 좋은 직업인데….” 하면서 던지는 농담 아닌 농담 속에는 '배우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는', '가르치기보다 배우기가 더 힘든' 선생 노릇 하는 사람만의 어려움이 숨겨져 있다. 그래, 부질없고 말도 안 되는 바람 하나 가져볼진대, 학교 다닐 때 한번 배운 지식을 늙어 죽을 때까지 더 이상 공부하지 않고도 써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굳이 먼 기억의 문을 열고 들어갈 필요조차 없이,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사범대학 나와 자격증만
2007-06-14 17:46
"지방 법원장이 보이스피싱에 당해 6,000만원 날렸어요." "저도 그 기사 보았습니다. 그런데 교장실에도 그런 전화가 걸려 옵니다." 며칠 전 교감과 교장이 교무실에서 주고 받은 대화다. 공공기관을 사칭하며 돈을 뜯어내는 전화사기가 극성인 모양이다. 사기범들이 중국에 거점을 두고 있어 범인 잡기에 어렵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전화, 학교에도 종종 걸려온다. 우리 학교의 경우,사기 전화 수법을 쿨메신저로 교직원 전체가 공유해아직까지는 피해를 보지 않았다. 아니다. 자칫 피해를 볼 수 있었던것을 미리 막은 것이다. 얼마전 우리 학교 행정실 직원이 교직원 전체에게 알린내용은 아래와 같다. 법원장이 피해를 보기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다. "학교로 걸려오는 이상한 전화가 있습니다. '카드가 ~~원이 미납되오니 잔액을 확인하시어 입금해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00지방법원에서 출두하라는 공문이 발송되었으나 시행치 않아 독촉하오니 출두하시기 바랍니다.' 등등... 자동안내 멘트 후 문의사항을 원하시면 번호를 누르라는 전화가 요즘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절대 개인 이름과 주민번호를 이야기해 주시지 마시고 바로 끊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학교 교장이 받은 사기전화는…
2007-06-14 08:44요즈음 학교에 가보면 교사들의 책상위에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것이 있다. 바로 확성기인데 우리학교만 하더라도 거의 10-20%정도의 교사들이 확성기를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육성으로 수업을 진행해도어려움이 없었는데, 날이 갈수록 학생들 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육성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학생들과의 정감어린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것을 모를리 없는 교사들이지만 어쩔수 없이 확성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쉽게 넘길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앞으로 확성기를 사용하는 교사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러가지로 학교여건이 변화하면서 어쩔수 없는 선택으로 굳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관련물품을 판매하는 외판원들이 학교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목에 부담이 가던차에 외판원을 만나게 되면 쉽게 구입하는 교사들이 많다. 문제는 확성기의 가격인데, 보통 10-15만원정도 한다. 필요한 교사들은 구입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가는 가격이다. 학교에는 이런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예산이 편성되어 있지 않다. 특별실(특별실은 보통 교실보다 넓은 편이다.)에서 사용하
2007-06-14 08:43
조금 있으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강마을은 6월의 뜨거운 열기가 바깥에서 몰려오는 것 같습니다. 초록빛으로 변한 들판에는땅내맡은 어린 모들이줄을 서서 자라ㅏ고 있습니다. 이렇게 첫여름이 손짓하는 6월의 아침, 강마을 중학교 교무실에서 잠시 차를 한 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학교라는 바쁜 일상에서는 차분하게 앉아 제가 좋아하는 녹차를 우려 마시기는 좀 곤란하고, 그냥 일인용 다기에 한 줌의 차나 아니면 티백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십니다. 마음에 아련아련 보랏빛 수국이 꽃구름처럼 피어날 것 같은 오늘 아침에는 쟈스민차를 마셨습니다. 짙은 이국의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아는 분이 중국을 다녀와서 선물한 것으로 '말리화'라 불리는 쟈스민 꽃향기가 스민 화차(花茶)를 마실 때면 김혜린 씨가 그린 만화 비천무에서 나왔던 '설리'의 안타까운 사랑이 생각납니다. 설리의 춤 속에 섞여나던 말리화 향기, 그리고 슬픈 사랑이 향기롭고 아련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차 향기는 산사 풍경소리가 어우러진 깊은 차입니다. 십여 년 전 오랜 벗이 출가할 즈음 저 역시 도심의 절집에서 학생회의 지도교사로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엔 눈 맑은 어
2007-06-13 13:10
퇴근시간이 되어 예슬이가 학원에서 5시에 공부가 끝난다는 말을 듣고 학원으로 전화를 했더니 4시 반에 집에 갔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고 들었는데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서 혹시 예슬이 어머니냐고 물으니 이모라고 한다. 예슬이 네 집을 방문하려고하니 길 안내를 부탁 하였더니 길이 좀 복잡하다고 하면서 친절히 일러주었다. 예슬이네 집은 제천에서 박달재 옛길을 따라가다가 왼편으로 들어가 놀이터를 지나 다리를 건넌 다음 마을 회관을 지나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마을 회관까지는 갔는데 동네 길을 들어서니 길이 좁아 차를 돌릴 곳도 없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을 가다보니까 다시 시내버스가 다니는 길을 만나 너무 반가웠다. 중학생이 걸어가고 있어 예슬이네 집을 아느냐고 물으니 한참 올라가서 산 밑에 있다고 한다. 혹시 차라도 만나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좁은 마을 농로를 따라 올라가니 할머니 한분이 보여서 예슬이 네 집을 물으니 바로 위라고 가르쳐주어 집 뒤편에서 겨우 차를 돌려놓고 내리려니까 예슬이가 마중을 나와 반가워하였다. 학교에서 볼 때 보다 얼굴이 너무 밝아보였고 나를 보더니 좋아하였다. 시골집 마
2007-06-12 17:394년 전 울산여고에 교감으로 부임할 때 "교육은 사랑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학생들을 사랑하고, 나와 함께 생활하는 동료 선생님들을 사랑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를 사랑한다면 교육의 발전은 물론 생활의 만족과 행복을 가져줄 것입니다"라고 인사를 했었다. 지난 3월 농소중에 부임하면서도 비슷한 인사말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사랑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랑이 밑바탕이 돼 있으면 교육은 반드시 잘되게 되어 있다. 나에게 맡겨진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내 형제자매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보나마나 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에게 감동과 만족을 줄 수 있는 수업을 할 것 아니겠는가?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시간, 열정, 노력 등 모든 것을 투자할 것이고 최선을 다할 것 아니겠는가? 학교 식당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학생들을 내 자식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음식을 얼마나 정성껏 만들겠는가. 혹시 식중독이 일어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언제나 청결하게 하지 않겠는가. 숟가락, 젓가락, 음식그릇 할 것 없이 깨끗하게 소독하며 철저하게 위생관리를 하지 않겠는가. 혹시 음식이 적어 더 먹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나.…
2007-06-12 08:40
어느 순간부터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고, 미래의 모습을 다듬어 보고 싶었다. 어느 순간이랄 것도 없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젊은 사람들이 부러워지고 부터이다. 제법 나이를 먹고 남보다 많은 세월을 흘러왔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새로운 인생 설계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왔다. 뭐랄까. 인생의 정상을 밟지는 않았지만, 이제 정상에서 내려가는 느낌을 가졌다고나 할까. 전에는 머리가 희고 풍기는 인상이 어른스러우면 경외감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위치에 다다르니 뭔가 불안한 느낌이다. 입 밖에 꺼내기는 두려운 면도 있지만, 운이 좋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의 태풍이라도 오면 여기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조심스럽게 아주 신중하게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불뚝불뚝 일어선다. 그동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애써 하지 않았다. 마음을 앞세워 젊은 축에 드는 것처럼 행동하며 살았다. 정상을 향해서 달리기 바빴고,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삶의 즐거움만 찾아다니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너무 외향에 치중하며 걸어왔다. 남이 어떻게 볼까. 남보다 멋있게 걸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
2007-06-12 08:40싱그러운 신록의 계절도 지나고 무더위가 찾아오는 초하의 계절에 접어들면서 여러분의 몸과 마음도 한층 튼튼해지고 넓어졌으면 한다. 입학식 하던 날 그 순수했던 마음과 초롱초롱하게 빛났던 눈동자가 소수이긴 하지만 양심을 저버리는 언행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몹시 가슴이 아프고 마음 한 편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같이 착하고 아름다운 인물들인데 왜 무리만 지면 예와 규범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어기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구나.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철이 없고 자제력이 부족하여 규범을 어길 수도 있지만 뻔히 잘못인줄 알면서도 쉽게 규칙을 어기는 모습들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성현들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반복된 실수를 하게 되면 자신은 물론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누를 끼치게 된다. 작은 댓글 하나가 소중한 생명마저 앗아가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한번 실수는 예쁘게 봐줄 수 있지만 반복되는 실수를 내버려두거나 쉽게 용서를 해 주다 보면 학교는 질서를 잃고 착한 학생들
2007-06-11 1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