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가을하늘 사이로 노란 은행잎이 눈부시게 비치는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마침 4교시가 공강이기에 식사를 하려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모의고사를 치르던 고3학생들이 시험이 끝났는지 우르르 한꺼번에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쇠라도 소화시킬 나이에 점심시간을 넘겼으니 오죽이나 배가 고팠을까. 한 손으로 주린 배를 움켜잡고 한 손으로는 친구의 등을 두드리며 식당으로 달려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에서 역동성이 느껴졌다. 그때 바로 내 앞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한 학생의 엉덩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의자에 닿는 부분이 너덜너덜하게 꿰매져 있었다. 몇 번이나 기워 입었는지 거의 누빈 이불이나 다름없었다. 그 학생의 기워 입은 교복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얼마나 책상에 앉아있었으면 엉덩이가 저렇게 너덜너덜하게 헤어졌을까. 백마다의 말보다 녀석의 기운 엉덩이가 요즘을 살아가는 고3 학생들의 현실을 웅변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의 그 어떤 수도승도 엉덩이가 헤어지도록 공부에 정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요즘 고3 학생들은 힘이 들다. 그래서 지켜보고는 교사
2009-10-31 08:18배우는 이들은 언제나 잔소리를 먹고 산다. 시도때도 없이 충고 속에서 산다. 잠자리 들 때부터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잔소리를 한다. '일찍 자야 한다. 손발을 씻고 자야 한다. 양치질을 하고 자야 한다. 잠옷을 입고 자야 한다. 감기가 들지 않도록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 등등 잠자리에들 때부터 일어날 때까지 잔소리를 듣는다.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불을 개야 한다. 청소를 해야 한다. 세수를 해야 한다. 양치질을 해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한다. 식사를 골고루 해야 한다. 가방을 챙겨야 한다. 옷을 반듯하게 입어야 한다.' 잔소리의 홍수 속에 머리가 혼란스러울 정도다. 너무나 많은 잔소리를 듣는다. 잔소리가 머리속에서 지워지기 전에 학교에 가면 또 선생님으로부터 잔소리를 듣게 된다. 이러니 배우는 이들은 잔소리 때문에 진절머리가 난다. 잔소리를 듣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왜 귀에 그슬리는 소리를 매일같이 하루도 쉬지 않고 들으면서 살아야 하나? 하고 볼멘소리를 한다. 제발 잔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잔소리가 과연 괴롭히는 독약일까? 아니면 약일까? 채근담에 보면 잔소리가 숫돌이라고 하였다. 채근담 5에는 이런 말이 나
2009-10-29 11:21요즘은 하루하루 뉴스 보고 듣기가 무섭다. 자고 일어나면 신종플루로 인해 20대가 사망했느니, 40대가 사망했느니 하고 그것도 아주 건강한 사람이 신종플루로 인해 사망했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가? 학교에는 급속도로 신종플루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교육가족의 한 사람으로 걱정이 보통이 아니다. 정말 사나운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사나운 비바람이 불면 새들도 걱정스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고 하는데 사람인들 오죽하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낙심하거나 떨며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 채근담 6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疾風怒雨(질풍노우)엔 禽鳥戚戚(금조척척)하고 霽日光風(제일광풍엔)엔 草木欣欣(초목흔흔)하니라.” 이 말은 ‘사나운 비바람이 불면 새들도 걱정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고, 날씨가 개어 화창한 날 산들바람이 불면 초목도 기뻐하는 듯하다.’는 뜻이다. 지금은 분명 疾風怒雨(질풍노우)의 때임은 분명하다. 세차게 바람이 불고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있는 때이다. 신종플루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우리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지만 이 때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계속 되지는 않을 것이다. 때가 되면 곧 霽日光風(제일광풍)의 때가 올 것이다. 아무리 거친 바람이 불
2009-10-28 14:59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을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이 되면 더욱 절감하게 된다. 가을은 대자연에 아름다운 색깔로 채색을 해주는 계절이다. 싱그러운 녹음이 이글거리는 태양의 에너지를 받더니 가을이 되더니 천연색 TV를 보는 것처럼 산듯함을 느낄 수 있다. 교정에 서있는 모든 은행나무는 노랗다 못해 샛노랗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계절이다. 벌써 은행잎이 떨어져 융단을 펼쳐놓은 듯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한다. 유치원아이들이 은행잎을 공중에 뿌리며 펄펄뛰며 좋아하는 모습이 귀엽다. 나무는 그동안 영양분을 받아드리던 잎에 곱게 물을 들이더니 매서운 겨울을 나기 위해 잎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떨어진 잎은 다시 나무뿌리로 영양분을 빨아드릴 거름이 되는 것도 자연의 순환이치가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두지 않는다. 좀 더 곁에 두고 감상했으면 하고 생각하면 어느새 낙엽이 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긴다. 자연은 우리인간에게 필요한 만큼만 주는 것 같다. 그리고 공평하게 혜택을 주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는 것 같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모두
2009-10-28 00:16엊그제 6학년 아이들 대여섯 명이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와 면담신청을 하겠다고 하며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면담이야?” 국어시간에 나오는 면담을 하겠다며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언제라도 좋으니 오너라!” 하루가 지난 오늘 오전에 남자아이들 다섯 명이 먼저 교장실로 들어 왔다. 예약했던 면담을 하려고 왔다며 책과 메모지를 들고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 어떤 내용을 공부하려는 것인지 물었다. 한 아이가 책을 건네주기에 열어보니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면담을 통해 직업을 탐색하며 면담내용을 서로 발표 하면서 말하기 듣기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미리 준비한 질문이 시작되었다. 교장선생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며 어릴적 꿈은 무엇이었느냐? 교장선생님으로서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이며 앞으로 계획까지 제법 날카로운 질문도 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잠시 후에 여학생 여섯 명이 노크를 하며 들어왔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과 면담을 하면 좋을 텐데 가까이 있는 교장과 면담을 하는 것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어린이들은 여러 명이 핸드폰을 꺼내 놓고 녹음을 하였다. 남자 아이들은 한명만 녹음을 하였는데 질문도 남자아이들 보다는 더 세심
2009-10-23 14:44막내가 공부를 소홀히 하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로 진단 할 수 있다. 타고난 능력의 부족, 환경적 요인, 심리적 요인 등이다. 타고난 소질과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한번 적성검사와 지능검사를 해보려고 한다. 검사 결과가 기대 이하라면 기대도 낮춰야 한다. 물론 검사결과에 전적으로 의지하진 않는다. 환경적 문제는 가정과 학교 등 딸의 생활 영역이 된다. 교우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학교의 교육환경 등. 가정환경으로는 부모의 태도 가정의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옛날 어느 교육심리학 책을 보니까 할아버지 아버지가 쓰던 책상, 책 등도 훌륭한 교육환경이 된다는 내용을 본 일이 있다. 심리적 요인도 중요하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갖도록 격려해야 한다. 부모의 가치관, 자녀 학습에 대한 부모의 적절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학생은 공부를 하는 목적을 잘 인식해야 한다. 선생님께 꾸지람 듣지 않기 위해, 부모에게 칭찬 받기 위해 공부할 수도 있다. 공부하는 것이 친구들과 사귀는 방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아가 대학 입학,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공부하기도 한다. 우수한 학생이라면 의사, 변호사, 국제 펀드매니저 등 더 큰 목표를 세우기도 할 것이다.
2009-10-15 11:56초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10월 중순, 전교생이 함께 가을철 체험학습을 갔습니다. 조용하던 시골 학교 운동장에 아침 안개가 걷히며 통학차에서 내려 신나게 달려오던 아이들. 산뜻한 모자에 분홍색 옷차림, 청바지에 소풍 가방을 들고 내린 아이들의 표정은 해맑은 가을 하늘 같았습니다. 보통 때보다 발랄한 아이들 모습에 나도 들떴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소풍가는 날이지요?" "아니야, 체험학습 가는 날이야." "두 사람 다 맞아요." 전교생을 태운 버스는 영광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벌써 추수를 끝낸 벼논엔 이른 봄처럼 파릇한 새순까지 돋았습니다. 가을 햇볕에 엉덩이를 익혀 붉게 익어가는 감들이 매달린 감나무들, 너울대는 억새들도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앞좌석에서 연신 쫑알대는 1학년 꼬마들의 즐거운 목소리를 들으며 내 어린 날의 소풍을 떠올렸습니다.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아리랑 담배 두 갑을 사 주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만 잡수시던 귀한 달걀을 3개씩 싸 주시던 어머니. 시금치 무침과 멸치볶음이 든 네모난 도시락은 40년이 지났어도 신기할 정도로 또렷하게 생각났습니다. 가끔은 어머니가 소풍 간 곳까지 따라오셔서 즐거워했던 풍경이 그리워졌습니다.…
2009-10-13 19:40학업성취도평가를 하루앞두고 시험지를 인수해왔다. 다행히도 포장단위가 크지 않아서 운반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지역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배부가 이루어졌다. 많은 학교에서 교감과 교무부장이 참석했다. 갑자기 교육청이 복잡해 진 느낌이었다. '이러다가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앞으로는 시험지 인수를 수능처럼 새벽에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학업성취도 평가도 수능 수준으로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느학교 교무부장의 이야기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루전날에 시험지를 배부하고, 개봉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봉이 가능하다. 만일 어떤 학교에서 나쁜 마음을 먹고 시험지를 일찍 개봉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다음해에는 분명히 시험당일날 시험지를 수령하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능처럼 새벽부터 시험지를 인수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생각해보니 아찔한 생각이 자꾸 든다. 시험지 인수가 이렇게 철저하게 이루어진 것은 당연히 지난해의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방편을 찾고 있는 것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학
2009-10-13 16:08채근담 2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涉世淺(섭세천)하면 點染亦淺(점염역천)하고 歷事深(역사심)하면 機械亦深(기계역심)이라” 이 말은 ‘세상살이의 경험이 얕으면 세상에 때묻는 것 또한 적고, 세상살이의 경험이 많으면 교묘한 수단으로 사람을 속이는 것 또한 깊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은 인생을 능숙하게 살기보다 정직하고 순박하게 살아가며, 치밀하고 약삭빠르게 살기보다는 어리석음을 취하여 소탈하게 살아간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참된 사람은 정직하고 순박하게 살고 소탈하게 살아가라고 하는 교훈이 담겨져 있다.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하였다. 세상살이의 경험이 많을수록 세속에 물들어 교묘한 수단으로 사람을 속이게 되며 정직하지 못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온갖 수단방법으로 약삭빠르게 살아가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참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소위 君子(군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배우는 학생들은 모두가 군자가 됨을 목적으로 한다. 세상살이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정직해야 한다. 정직을 재산으로 삼아야 하고 정직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비록 삶이 넉넉지 못하다 할지라도 정직을 상실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악을 행하고 남을…
2009-10-13 16:08교정에 내려앉은 가을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학교 숲의 소나무와 단풍나무, 은행나무가 어우러져 가을 느낌을 받으며 풍요로운 정취에 마음은 어느새 편안해진다. 2층에 올라가서 학교 뒤편을 바라보면 누렇게 익은 황금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과의 고장답게 무공해 사과나무를 키우며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들려주는 소리도 정겹게 들려온다. 학교 뒤편 들판에 연못을 만들고 500여차의 마사토를 복토하여 학교 숲을 만든 지도 3년이 되었다. 화강암 자연석으로 연못둘레를 아름답게 조경을 하여 더욱 운치가 있다. 폭포가 흐르는 상단에 심은 소나무는 분재와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한창이더니 이제는 구절초의 청순한 모습이 정원의 운치를 살려 준다. 숲의 향기를 맡으며 자연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에 숲길로 들어서고 만다. 파란잔디를 밟으며 나무와 꽃을 바라본다. 자연은 항상 말이 없지만 무엇인가 정을 느낄 수 있고 함께 공감하는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그래서 가을 길을 걸으면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급식소에서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준비에 열심히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 교실에서는 중간고사를 보느라 절간처럼 조용하다. 유치원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선생님
2009-10-12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