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미셸 박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실험에 참가한 네 살배기 아이들에게 달콤한 마시멜로 과자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15분 간 마시멜로 과자를 먹지 않고 참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 600명중 3분의 1인 200명은 15분을 참지 못한 채 마시멜로를 먹어치웠고, 3분의 2인 400명은 끝까지 기다림으로써 상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그로부터 14년 후에 밝혀졌다. 당시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낸 아이들은 학업 성적이 뛰어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훨씬 원만하며, 스트레스도 효과적으로 관리할 줄 아는 뛰어난 청소년들로 성장해 있었다. 반면 눈앞에 마시멜로를 먹어치운 아이들은 쉽게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곧잘 싸움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10여 년 전의 작은 인내와 기다림이 눈부신 성공을 예비하는 강력한 ‘단서’로 작용한 것이다. 마시멜로 실험결과를 통해 얻은 건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이다. 즉 눈앞의 마시멜로를 바로 먹어치운 것도, 보상을 기다리며 유혹을 물리친 것도 모두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
2006-12-28 13:23사실은 좀 늦었거나 소홀했지 싶다. 창간 3주년, 통권 12호까지 신문을 내면서 영화 촬영장 르포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제3호에서 처음으로 김유정문학촌을 다녀온 후 거의 매호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르포이다. 김유정문학촌·지용문학관·아인스월드·‘야인시대’·‘불멸의 이순신’·‘해신’ 촬영장 등이 그동안 다녀온 곳들이다. 모아 놓고 보니 드라마 촬영장이 3곳이나 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을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경남 합천군 용주면 가호리. 말이 고속도로지 웬만한 국도보다 못한 88고속도로를 달리는 짜증에다가 60km가 최고 속도인 왕복 2차선 도로 주행이 더해진 때문인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자그만치 1,180여 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세트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국민 4명중 1명꼴로 관람한 ‘국민영화’의 위용을 새삼 추억하려는데, 그만것쯤 감내 못하랴 싶었다. ‘전공인’들의 간접체험을 위한 르포를 다닐 때 노상 그랬던 것처럼. 오후 4시 30분 마침내 ‘태극기 휘날리며’ 세트장에 도착했다. 전주 출발 3시간 남짓 지나서였다. 세트장은 마산이 고향인 강제규감독이 합천군으로부터 토지를 무상 지원받아 약 11억원을 들여
2006-12-28 13:23"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홇배이셔도 마침내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 하니라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듧자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뼌한킈 하고져 할따라미니라"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열에 열이 세종대왕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것을 들어온 우리는 한글이 세종대왕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었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아니 한 적도 없을 것이다. '세종어제 훈민정음'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훈민정음은 세종이 지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헌데 이런 생각에 의문을 품고 써내려간 소설이 있다. 북한에서 평양사범을 졸업하고 교육자로 일하고 있다고 하는 박춘명의 소설 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아닌 집현전의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전제하여 글을 진행하고 있다. 거기에 집현전의 학자들 중에서도 성삼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만들었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무얼 했는가? 소설에서 세종대왕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표현할 수 있는…
2006-12-28 13:232005.1.17 월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마더하우스까지 걸어갔다.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 예절에 참례했다. 지난 번과 똑같은 일정이 진행되었다. 다시 깔리 가트 임종의 집으로 갔다. 빨래를 하나씩 체크하여 변이 묻어있는 것은 따로 물에 넣어 헹궈 변을 제거해야 한다. 나머지 빨래는 다른 통에 넣고 비누를 풀어 빨아야 한다. 목욕탕엔 연실 따뜻한 물을 길어다 부어야 한다. 아무리 서둘러도 손이 딸린다. 물 데우는 솥에도 계속 물을 날라다 보충해야한다. 서양인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헌신적으로 봉사에 몰두했다. 서양의 두 할머니가 매일 중증환자의 환부에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다시 붕대로 싸매는 일을 도맡아 했다. 하는 일이 너무 능숙해서 평생을 의사로 살다가 이제 늙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볼 뿐이었다. 칠십은 되었을 서양 할아버지도 매일 나와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일상화된 봉사정신을 보는 것 같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시간이 금세 가는 것 같다. 12시쯤 되어 봉사활동을 끝내고 비비디박에 있는 기차 예약 사무소로 가서 바라나시 행 기차를 예약했다. 295루피. 여행사 수수료가 없으니…
2006-12-28 11:29* 꼭 알아 두어야 할 세가지 어원 우리나라를 외국에서는 여러 가지로 부릅니다.‘코리아, 꼬레, 꼬레아’등 그 나라의 언어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영어권에서는‘코리아’라고 하지요. 이것은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고려’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고려’라고만 부르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아’가 붙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코리아’는 ‘고려 + 아’가 연결되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래서‘Korea’가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 즉 ‘a’는 무엇일까요? 외국의 지명에는 끝에 ‘a’ 많이 보이지 않습니까? ‘America, Canada, China, 오스트리아, 오스트랄리아, 기니아’등 찾아보면 무척 많습니다. 이‘a’는 영어에서 지명을 표시하는 접미사입니다.‘코리아’는‘고려’에‘a’가 붙은 것이고‘China’는‘진’나라(진시황의)의‘진’에‘a’가 붙은 것입니다. 애국가의 가사 2절 중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 일세"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이 중에 `바람서리`를 간혹 `바람소리`로 잘못 알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람서리`입니다. 그 뜻은 `풍상`이란 뜻입니다. 즉 `바람 풍, 서리 상`이지요. 즉 `풍상
2006-12-27 10:322006년 1월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핑이라는 책자가 우리 교육자들에게는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그 줄거리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핑이라는 개구리가 연못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연못의 물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말라가고 있었다. 다른 생물들은 모두 위기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었지만, 개구리 중에서도 탁월한 점프 능력을 가졌던 핑은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연못이 내심 불만이었다. 마침내 연못은 완전히 말랐고 핑은 말라비틀어진 진흙탕에 앉아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새로운 연못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막상 연못을 떠나자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신나게 길을 떠났지만 이내 핑은 수백 미터 높이의 나무덩굴에 갇혀 곧 죽게 될 위기를 맞았다. 체념에 빠져 있을 때 지혜로운 부엉이가 나타나 그를 시험한다. 비록 아직 아무것도 몰랐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핑은 그 시험을 통과하고 부엉이는 기꺼이 그의 스승이 되어주기로 한다. 스승 부엉이는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때부터 새로운 연못으로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하는 강물을 건너기 위한 혹독한 수련이 시작된다. 매일매일 뼈
2006-12-27 07:302005.1.5. 밤 7시 25분 캘커타의 외국인 거리라는 Sudder st.는 외국인들로 붐빈다. 싼 숙소가 몰려 있는 곳인데도 관광철이라 그런지 방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425루피에 겨우 방을 구해 목욕을 하고 일기를 쓴다. 초라한 호텔방이지만 낯익은 느낌이다. 1996년 미국 여행 때 느끼는 것과는 달리 왜 이렇게 낯설지 않고 편안한가. 별로 긴장감이 들지 않는다. 너무나 흔한 가난의 모습, 내게 너무 익숙한 가난의 모습이어서 그럴까. 파크 스트리트에서 만난 자항기르라고 하는 젊은이가 자꾸 영어로 말을 붙여오기에 대꾸를 하다 보니 이젠 내 관광안내원으로 나서려는 것 같다. 캘커타의 뉴 마켓을 구석구석 보여주기도 하고 극장에 가자고 안내하여 그의 친구와 함께 셋이 인도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1.2층으로 된 대형 영화관이다. 표를 내고 들어가니 안내인이 손전등을 들고 일일이 자리를 안내해 준다. 이상한 것은 1층과 2층으로 좌석이 구분되는 데 앞줄부터 순서대로 열을 맞춰 앉히는 것이다. 인도의 극장엔 카스트제도가 있다는 인도 관광 안내서의 구절이 생각났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가지고 오락을 하거나 문자를 띄우거나 한
2006-12-26 14:372005.1.7. 금 호텔을 옮겨 200루피에 묵고 아침 7시 30분 쯤 눈을 떴다. 자항기르가 이제 나의 관광가이들 나서고 싶은 눈치다.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한다. 어떤 미국인은 매일 20$씩을 주었고 어떤 독일인은 매일 7달라씩 주었다는 등, 또 일본사람을 들먹이기도 했다. 공연히 여자 얘기 섹스 얘기도 들먹이며 호감을 사려고 노력하는 것도 같았다. 바라나시에서는 하루에 1,000루피씩 주기도 했다는 얘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것이다. 어제 그저께 계속 안내를 했다는 얘기로 생색을 내며 오늘은 돈을 주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맞긴 맞는 얘기다. 한국이나 미국이라면 하루에 20달라 아니라 50달라라도 주어야 했을 것이다. 20달라래야 20.000정도 아닌가. 1,000루피래야 26,000원이 아닌가. 그의 말이 일리가 있음을 알면서도 내 예산을 감안하면 그것은 터무니 없는 비용이다. 이제 결론은 났다. 그냥 식사와 교통비, 입장료만 제공하고 함께 지내보려고 했었는데 예산상의 부담으로 안되겠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그의 친절이 고맙고 그의 영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유창해서 여러모로 좋은 점이 있지만 경비문제 때문에 오늘은 그에게 솔직하게 얘기를 해
2006-12-26 14:372005.1.8토 밤 9시 45분 오늘은 완전히 혼자 캘커타를 여행했다. 아침에 일찍 깼다가 다시 잠이 들어 9시 30분에 깼다. 제일 먼저 Tagore House엘 가고 싶다. 토요일 Tagore House는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개관이다. 지하철을 타고 Girish Park역에서 내려 20여분 걸어갔더니 Tagre House로 들어가는 Gate가 보였다. 300여년전에 동인도 회사가 캘커타로 옮기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식민지 시절 인도의 수도가 되었던 캘커타는 London 다음가는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1772년에서 1912년까지 140년동안 인도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던 캘커타는 지식인계층이 민족주의적 경향을 띄자 그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영국 정부의 일련의 조치가 취해졌다. 수도는 뉴델리로 옮겨지고 뱅갈주는 분할되었다. 더욱이 인도 독립 후 East Bengal 이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난민사태가 발생하여 부귀영화는 막을 내리고 도시는 급격히 쇠락하였다. 타고르 하우스 인근도 마찬가지다. 길바닥에 쓸어져 잠든 엄마 옆에 두세 명의 젖먹이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매달려있는 모습은 여기저기에 흔하다. 죽은 듯 먼지
2006-12-26 14:372005.1.9 일 맑음 아침 식사 대용으로 바나나를 샀다. 10루피 (260원 정도)에 5개는 주니 배가 부르도록 먹을 수있다. Tram(전철)을 탔는데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정류장 이름도 없고 안내 표시도 없어 난감했다. 시내 구경도 할 겸 무작정 끝까지 갔다. 차장이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 것 같은 데 힌두어로 물으니 알 수 가 없다. 영어를 못하는사람도 많아 의사소통이 안 될 때도 자주 있다. 종점에 내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호텔 근처의 중국음식점 howhua에서 mixed noodle soup(짬뽕)을 먹었다. 56루피였는데 맛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여기저기 LSD라는 간판이 붙은 집으로 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 분당 20루피(520원)란다. 아내가 무척 궁금했었나보다. 162초에 54루피(1400원)를 지불했다. 다시 인터넷 카페에 들러 집으로 메일을 보냈다. 시간당 15루피(390원). 캘커타에서의 인터넷 요금은 싼 편인다. 한글이 지원되어 편리하다. 다만 자판을 외우지 못해 그를 입력하기가 좀 어려워 메일을 영어로 써야 했다. 카페를 나와 길을 걷는다. 거대한 인도인의 행렬에 나는 이방의 나그네, 그러나 미국에서보다는 낯선
2006-12-26 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