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쉬울 것 같으면서도, 막상 하려고 들면 어려운 일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시험 공부하는 학생들이 크게 공감하는 것 중에는, ‘시험보기 일주일 전부터 열심히 공부하기’가 있다. 리모컨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는 ‘리모컨 없이 텔레비전 채널 바꾸기’도 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주식투자를 좀 해 본 사람들은 ‘주식으로 돈 벌기’가 어렵다는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한다. 지적 재산권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풍토에서는 ‘컴퓨터 CD, 정품으로 구입하기’가 엄청 어려운 일에 속한다. 또 있다. 호사가(好事家)들에 따르면, ‘다리가 아름다운 여성의 각선미를 30초 동안 쳐다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쉬울 것 같은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쉬울 것 같은 데 쉽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들이 상식의 습속(習俗)에서 벗어나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시험공부라는 것이 계획과 실천이 따로 논다. 당일 벼락치기가 되기 십상이다. 학생들에게는 이미 상식화 된 습관이 되었다. 또 리모컨 자체가 디지털 환경에서는 상식적 기구가 되어 버렸다. ‘주식으로 돈 벌기’는 남의 이야기일 때는 쉽지만 내 이야기일 때는 어렵다
2007-11-01 09:00
								프로 야구 원년부터 활약하여, 프로 야구 초창기 아주 잘 나갔던 선수 중에 OB 베어스의 신경식 선수가 있다. 188㎝의 큰 키에 시원한 장타를 날리고, 학 다리처럼 긴 다리를 벋어 1루 수비를 멋있게 해내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인상적이다. OB 베어스 팬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일반 대중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던 선수였다. 그가 선수로 한창 기량을 발휘하던 무렵, 어느 자리에서인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신경식은 어려서부터 야구에 재능을 발휘하여 초·중학교시절부터 야구 선수로 뽑혀 활약을 하였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집에서는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 주지 못했다고 한다. 어려운 살림에 이런저런 고생을 하던 그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닭을 길러 계란을 모으면, 그걸 장날에는 머리에 이고 가서, 장에 내어 팔아 가계를 꾸렸단다. 운동하는 아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사뭇 안타깝고 아쉬웠을 것이다. 그 살림에 고기를 사 먹이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단다. 장에 내다 팔아야 하므로 계란조차도 제대로 마음 놓고 먹일 형편이 아니었다. 또한 형편이 괜찮다고 한들, 이미 검약의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 어머니로서는 아끼고…
2007-10-01 09:00
								언제부터인가 생활 주변에 우스개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다. 우리 사회가 먹고 살만 하니까 생겨난 소통의 여유 징후라고나 할까. 사석에서라도 능동적 발신자가 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생리를 반영한 것이라고나 할까. 소통의 여유를 가지는 사회는 토론을 풍성하게 하는 사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사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너나없이 재미있는 이야기 한두 개쯤은 챙겨 가지고 다니면서, 고만고만한 친교의 자리에서 적절하게 활용한다. 이런 현상을 불러오게 된 원인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이런 현상의 결과로 보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 공간에는 각종 우스개 이야기들이 허다하게 떠돌아다닌다. 학자들은 ‘새로운 구비문학의 시대’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우스운 이야기도 자꾸 들으면 면역이 생기는 모양이다. 어지간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웃으려고 들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스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음에 소통의 건강성이 있기도 하다. 우스운 이야기에도 여러 층위가 있어서 질박한 웃음을 불러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지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웃음도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 종류의 우스개 이야기들이 있다. 이야기의 내용
2007-09-01 09:00
								교직에서의 방학은 타 직종의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어쨌든 가르치는 본업에서 잠시 놓여나는 시간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방학은 무수히 의욕적인 계획으로부터 시작하여, 안타까운 미수(未遂)의 허망함으로 끝나기 일쑤지만, 그래도 속아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번 방학도 이런저런 계획에 마음들을 설레곤 한다. 그러나 나를 질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연마와 단련을 위해서는 방학이 유용하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고생 그 자체가 문제이라기보다는 ‘진정성’이 문제가 될 뿐이다. 진정성이 살아나는 것이라면 삼복염천의 고생이라도 달고 흔쾌할 수 있다. 대학 1학년 시절, 여름방학과 더불어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내가 존경하며 따랐던 기숙사 선배들은 방학 동안에 읽을 책을 미리 정하여 독한 마음으로 반드시 독파하도록 하라고 했다. 막연하기는 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았다. 턱없는 지적 허영으로 무조건 고답한 책들을 잔뜩 챙겨 넣고 싶었다. 무언가 목마름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소해 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막했다. 학문에 대한 낭만적 동경과 지적 소망을 품고 들어 온 대학
2007-08-01 09:00
								어른이나 아이나 도무지 사람 될 것 같지 않은 못된 행태를 보이면, 당장 협기를 동원하여 매섭게 나무라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성정(性情)이 거칠고 양심 없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 하는 짓이 고약하여 선량한 이웃을 건드리고, 찍찍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서 늘 문제거리를 만들고 다니는 사람들, 어디든 그런 족속이 있게 마련이다. 생각 같아서는 불러서 혼꾸멍내 주고 싶은데, 세상이 워낙 험하여 무슨 행패를 어떻게 겪을지 몰라서 억지로 참고 있으려면 마침내 분(憤)하고 노(怒)한 마음이 되어 버린다.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해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심심치 않게 생긴다. 요즘은 초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사람[人性]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나는 느낌이다. 그래도 학교라는 곳이 사람을 가르치고 기르는 곳이기에, 또 명색이 선생의 자리에 있는 자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불러서 훈계를 하고 야단을 치면, 요즘 아이들, 불쑥 침 뱉듯이 내뱉는 말이 있다. “나 원래 그런 놈이에요.” 불만과 못마땅함의 표정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인 채 들이대는 말이다. 훈계를 하는 쪽에서 듣기로는 기가 차는 말이다. 그런데…
2007-07-01 09:00
								인간문화재 판소리 명창으로 유명했던 동초(東超) 김연수(金演洙, 1907~1974)옹의 일화이다. 그가 만년에 병고와 외로움으로 시달릴 때, 몇몇 제자들이 찾아와 스승의 형편을 어렵사리 보살폈다. 그런데 지난 날 김연수 선생의 총애를 크게 입어 출세한 제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스승의 어려움과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찾아오기는커녕 도대체 안부 인사 한번 없었다. 주변에서 그 제자의 그릇됨을 탓하며, 선생에게 그를 불러 한번 호되게 나무랄 것을 재촉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동초 선생이 하셨다는 말씀이 걸작이다. “내 그 녀석을 불러 욕을 바가지로 해 주려다가, (혹시라도 내 욕을 듣고 뉘우쳐서) 그 놈 사람 될까 싶어서 그만 두었네.” 이쯤 되면 욕의 기술과 품격이 경지를 넘어선다. 직접 욕설을 건네지 않았으면서도, 훨씬 더 짜릿한 울림을 전한다. 판소리 명인다운 말의 경륜이 묻어 있다. 말[言語]이 주인을 제대로 만나, 그 장면에 마땅한 의미의 울림을 기막히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연수 선생의 욕이 짜릿한 설득력과 지적 운치를 획득하고 있는 것은 그가 격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미 욕 자체로부터 저만치 벗어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수준의 욕을
2007-06-01 09:00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듣던 말들이 그때는 그저 평범하고 무덤덤했는데, 나이가 들고 인생을 살아볼수록, ‘참으로 신통방통 맞는 말씀이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예닐곱 살 되던 무렵, 할머니께서는 무언가 칭얼대는 나를 달래시며,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라는 말로 철부지 나를 달래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그럼 이제 자면 떡 줘야 돼” 이렇게 억지를 부렸던 생각이 난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는 이 말의 뜻을 어렴풋 알 것 같다. 어린 사람들은 인생의 경륜이 풍부한 어른의 말을 경청하면 삶의 지혜와 이로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이 말의 참뜻일 것이다. 자식을 기르면서 새삼 이 말의 뜻을 절감할 때가 있다. 길이 아닌 길을 막무가내로 가려는 아이들을 간곡히 계도해야 하는, 선생의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도 이 말은 일종의 묵시록처럼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런데 이 말보다도 훨씬 더 울림이 크게, 훨씬 더 강하게, 훨씬 더 깊이 각인되어 온 말이 있다. 그것은 ‘말이 씨 된다.’라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분별없이 촐싹거리면서 덕스럽지 못한 말
2007-05-01 09:00
								실생활에서 엽전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지만, 엽전이라는 말은 지금도 드물지 않게 쓰인다. “엽전들 같으니라고!” “엽전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이런 엽전들!” 등등의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굴 두고 엽전 같다고 하는가. 이 말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은 알아차리겠지만, ‘엽전’이라는 말은 한국 사람을 비하할 때 쓰이는 말이다. 엽전이 ‘못난 한국인’을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다. 엽전이라는 말이 이런 뜻으로 쓰이는 걸 막상 엽전이 안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서운해 할 것인가. 엽전이란 말의 뜻이 이렇게 고약하게 쓰이게 된 연유를 《우리말 유래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그 사연이 이러하다. 개화기 무렵, 사용하기에 좋은 화폐인 종이돈[지전, 紙錢]이 새로 나왔는데도, 우리 한국 사람들이 종이돈에 익숙해지지 않고, 옛날에 쓰던 엽전을 그냥 쓰기를 고집했다고 하는 데서 생긴 말이란다. 즉 이렇듯 낡고 낡은 인습에서 탈피하지 않으려고 했던 한국 사람을 낮추어서 빗대어 쓰던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종이돈이 처음 생겨나던 개화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엽전 같은’이라는 말이 생겨난 셈이다. 말이라는 것이 ‘발 달린 짐승’과 같아서 이런저런 맥락에…
2007-04-01 09:00
								누군가와 언쟁하다가 상대가 하는 공격의 말 중에, 듣자마자 숨이 탁 막히는 말이 있다. 하나는 “나잇값이나 하세요!”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값이나 하세요!”하는 것이다. 이 말은 상대가 아무리 정중하고 부드럽고 경어체로 말해도 듣는 쪽에서는 치명적인 내상(內傷)을 입는다. 내상을 입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차라리 천한 쌍욕보다도 더 듣기 고약하다. 특히 상대가 나보다 한 살이라도 젊은 경우는 그 모욕감이 오래 남는다. 그리고 오랜 모욕감에 비례하여 두고두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부질없는 질문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두 개의 욕 가운데 어느 욕이 더 심한 욕일까 하고 묻는다면, 어떤 쪽이라고 답을 할지 모르겠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어 딱히 정답을 제시할 형편은 아니다. 내 경우라면 나는 ‘이름값이나 제대로 하라.’는 말이 더 심한 욕으로 느껴진다. 부연하자면 단순히 욕의 표현이 심하다는 문제라기보다, 이 욕으로 인하여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심리 기제가 더 강하게 작동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나잇값이나 하라는 말은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경고로 쉽사리 해석이 되는데, 이름값을 못한단 말은 또 무엇인가. ‘이름값이나 제대로 하라’는…
2007-03-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