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언제 밥이나 한번 합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말을 한두 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말을 하는 쪽에서는 이 말의 친화적 효능을 상당히 믿는 눈치이다. 그러니까 이 인사법이 이처럼 널리 만연되어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듣는 쪽에서는 이 말에 대한 신뢰가 그다지 높지는 않다. 그저 말로만 던져 보는 립 서비스(lip service) 정도의 관심일 뿐, 실제로 밥을 먹자고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말처럼 맥 빠지는 거짓말이 없다고 한다. 이를테면 ‘빈말 인사’라는 것이다. 서로가 그렇게 되지 않을 줄 다 알면서 주고받는 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유독 한국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얼마 전 어떤 영어 신문의 칼럼 (editorial)에서 보았는데, 미국인들도 친밀해지려는 의도를 이런 표현으로 한다고 한다. “Let’s have lunch someday” 하고 당장이라도 같이 밥 먹을 듯 말해도, 그 someday는 언제일지 모르는 someday일 뿐이라는 것이다. “We’ll have to do lunch someday”라고 말하면 제법 강한 의지가 표명된 것 같지만, 이…
2014-09-01 09:00첫째 귀에서 소리가 나는 이명(耳鳴) 증세가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뜰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귀에서 앵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다. 아이는 그 소리에 신기하여 혼자서 신이 났다. 그래서 동무에게 가만히 이렇게 속삭였다. “얘, 너 이 소리 좀 들어 봐. 내 귀에서 앵 소리가 난다. 피리 부는 소리, 생황 부는 소리가 다 들린다.” 그 동무가 귀를 가져다 맞대고, 아무리 들어보아도 아무것도 들리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명이 있는 아이가 딱하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남이 자기 귀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시골 사람과 같이 잠을 자는데, 그 시골 사람이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마치 숨이 막히는 듯, 휘파람을 부는 듯, 탄식을 하는 듯, 한숨을 쉬는 듯, 불을 부는 듯, 물이 끓는 듯, 빈 수레가 덜컥거리는 듯한데, 들이쉴 때는 톱을 켜는 듯하다가, 내쉴 때는 돼지가 씨근거리는 듯했다. 같이 자던 사람이 흔들어 깨우자, 그는 불끈 화를 내면서 말했다. “내가 언제 코를 골았단 말이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문집 연암집(燕巖集) 가운데 ‘공작관문고 자서(孔雀館文稿自序)’
2014-08-01 09:00“그저 선생님만 믿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주치의를 시작하면서 처음 듣기 시작한 이 말을 나는 지금도 여전히 듣는다. 부모가 아이를 입원시키면서, 아내가 남편을 입원시키면서 그들은 내 손을 꼭 부여잡고 강렬한 의지를 가득 담아 말한다. “그저 선생님만 믿습니다.” 의사라고 영원히 이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그저 선생님만 믿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저 아이를 맡기면서, 믿고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참 죄스러운 상황이다. 요즈음 선생님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뻔히 아는데, 거기에 책임감까지 추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학교 상황을 보면, 나는 바쁘고 힘든데 사람들은 그저 ‘의사니까…그래야 하는 거 아냐’라고 말하던 인턴?레지던트 때의 수련생활이 연상된다. 아마 교사의 마음도 비슷할 것 같다. 책임과 의무는 많고, 보상은 적고…. 하지만 사람들은 ‘교사니까…. 선생님이니까….’ 하면서 무관심하다. 기대와 실망, 안정과 고립 역설적이게도 교사는 선망의 직업이기도 하다. 매년 교사 임용고시 경쟁률은 수십 대 일을 넘어서고, 결혼 상대자로 항상 상위권에 랭크된다. 시절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
2014-08-01 09:00
치열한 삶의 현장이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 난공불락. 삼국시대부터 2천여 년의 긴 시간동안 남한산성은 단 한 번도 함락당한 적이 없는 천혜의 요새였다. 치욕의 역사라고 말하는 병자호란 당시에도 인조는 47일 만에 스스로 서문 밖을 빠져나와 무릎을 꿇었고, 청은 ‘어떠한 경우라도 남한산성을 보수하거나 새로 쌓아서는 안 된다’라는 단서를 항복문서에 담았다. 과연, 남한산성에서는 북한산과 올림픽대교, 남산, 제2롯데월드까지 한눈에 보인다. 남한산성에서 야경을 감상하는 최고의 포인트는 서문 성곽 위다. 성곽 아래 전망대가 설치되어있지만, 저녁이 되면 사진촬영을 위한 삼각대가 사람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던 한낮의 도심이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순간,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눌러진다. 묘한 감정이 온 몸에 퍼진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전체를 바라보니 치열함은 보이지 않고 아름다움만 눈에 들어온다. 번잡했던 생각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하루를 정리하고 또다시 돌아올 내일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 맛에 모기에게 뜯겨가며 야경을 즐기나보다. ‘도시 야경’과 함께하는 한여름 밤의 추억 바다와 계곡에서 즐기는 나들이가 아니라면,
2014-08-01 09:00오랜 세월 흉허물 없이 지내는 벗을 막역지우(莫逆之友)라 부른다. 막역하다는 표현 속에는 무슨 짓을 해도 상대방 마음을 거스를 일 없을 거라는 절대적 믿음이 담겨있다. 때문에 서로 막말하며 방심하는 사이를 막역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막역’이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 의식적 노력이 불필요한 관계를 뜻할 뿐, 상대에게 마음대로 굴 수 있는 방만한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막역해지기 위해선 오랜 세월 쌓인 관심과 애정 그리고 속 깊은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오랜 세월 막역함을 유지할 진정한 벗을 얻을 수 있을까? 율곡 선생은 친구 많기로 유명했던 후배 윤근수에게 보낸 충고의 편지에서 벗을 세 종류로 나눴다. 먼저 문우(文友)가 있다. 이는 서로의 취향과 호오를 이해하기에 심미적 삶을 함께할 수 있는 벗이긴 하지만 취향이 바뀌면 쉬이 변한다. 다음으로 벼슬살이를 함께하는 환우(宦友)가 있다. 이는 험난한 관직 생활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지를 의미하는데, 정치적 이해관계가 갈리는 순간 사이도 틀어지게 마련이다. 끝으로 영원한 진리인 도를 향해 함께 걷는 도우(道友)가 있다. 오직 도우만이 세속의 이해타산과 관계없이 변하지 않
2014-08-01 09:00자기가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의 이름을 우리 시대의 사건과 연결 짓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는 삶에게 있어서 자신의 이름과 어떤 유일한 일과를 연결 짓는 일이다. - 링컨 너와의 관계 맺음 우리는 ‘나’ 아닌 모든 것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다. 개구리는 ‘우물’ 안이라는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고, 연어는 ‘강’이나 ‘바다’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관계성’을 파악하는 것이 우리 존재의 이유가 될 것이다. 각자 나름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 안에서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정체성(identity)을 안다’는 것이다. 나와 세계와의 관계 파악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방황하고 좌절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의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의미한다. 공연예술( Performing arts)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연주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 세계에 몰두하여 삶을 살아간다. 철학하는 사람들의 세계는 무엇일까? 바로 ‘우주’이다. 따라서 철학자의 세계가 가장 크다. 세계 내 존재(In-der-welt sein
2014-08-01 09:00축구는 19세기 중반경에 영국에서 성립됐다. 같은 시기 미국에선 야구가 나타났지만, 이땐 미국이 아닌 영국이 세계 패권국이었다. 따라서 영국 배들이 전 세계를 누볐고 그 영국 배들을 따라 축구가 야구보다 먼저 세계화됐다. 한반도에도 19세기 후반경에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군함의 선원들에 의해 축구가 전파됐다. 그래서 한국 축구는 영국 핏줄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기업 중심으로 발전하는 미국 특유의 문화도 야구의 세계화를 막았다. 미국의 야구관계자들은 철저한 기업논리에 입각해 자국 내에서 독점적 야구리그를 형성하는 데에만 열중했다. 당장의 수익을 만들어주지 않는 해외 진출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메이저리그이고, 리그의 시장이 자국 내에서 완전히 포화상태에 달한 20세기 말경에 이르러서나 그들은 해외진출을 시도하게 된다. 그래서 노모 히데오나 박찬호 같은 선수들이 미국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 선수들이 수입됨으로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메이저리그 시장으로 편입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들은 뒤이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라는 세계대회까지 만들지만 이미 축구가 인류를 대표하는 종목으로 자리 잡은 뒤였다. 축구는 각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2014-08-01 09:00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 상태의 분단국가로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게 ‘통일’은 어떤 의미일까? 청소년들은 통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 통일에 관심이 있기는 할까? 통일과 북한에 대한 청소년들의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통일교육협의회가 전국 중·고교생 2천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청소년 통일의식 조사에 따르면 ‘통일과 북한 문제에 관심 없다’ 27.1%, ‘한국 전쟁이 일어난 연도를 모른다’ 23.1% 였다. 특히 북한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73.8%로 압도적이었고, ‘통일은 필요 없다’라고 답한 청소년도 25.7%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하냐’는 아이들의 질문 1950년 이후 ‘통일’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전쟁의 피폐함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전후(戰後) 세대이기 때문인지, 이미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할 국가적 대업’이 아닌 ‘별생각 없는 정치적 구호’가 되어버렸다. 학교 현장은 어떨까? 학교 현장에서 통일교육은 교사,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서 대체로 교과서 중심의 주입식 강의로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은 통일문제에 무관심하다가도 이산가족 상봉, 무인 정찰기…
2014-08-01 09:00녀석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들이 마음에 안 드는 아이 험담을 늘어놓는다. “선생님도 우리 입장이 되어보면, 우리가 왜 쟤를 싫어하는지 알걸요?” 그래 어디 한번 들어나보자며 말미를 준다. “걔는요, 문제가 뭔 줄 알아요? 온갖 이쁜 척을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셀카를 찍는다는 거죠. 페북에 올려서 관심 받으려는 관종이라니까요”, “우리한테 지적질을 한다니까요. 주제를 몰라요”…. 치명적 사유는 없다. 다들 자기들 입장과 기준에서만 한 사람을 재단하고 몰아붙일 뿐. 자기들 입맛에 안 맞는 아이는 눈빛 교환 몇 번으로 그 아이만 제외하고 연합해버린다. 그리고는 서둘러 자기들의 입장을 정당화시켜버리는 요즘 아이들이다. “아이고, 욘석들아. 안 이쁘면 셀카도 못찍냐? 그럼 난 얼굴 가리고 다닐까? 페북하면 다 관종이냐? 그럼 이 세상 사람들 다 관종이냐?”…. 내 기준에서 너희도 다 똑같다. 그러니 우리 서로 편 가르지 말고 이해하면서 살자꾸나. 태어나보니 그런 걸 어쩌랴. 유전적으로 환경적으로 물려받은 성향이 그러한 것을 어찌하랴. 처음부터 다르게 태어났으니,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2014-08-01 09:00첫째 휴일 오후 아파트 동네에 있는 상가 가게에 들렀다. 건전지 몇 개를 사려고 기웃거리는데, 학용품 코너 쪽에서 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오십 대 주인아저씨가 2학년짜리 꼬마 아이 하나를 붙들고서 아이의 집 전화번호를 묻고 있고, 아이는 불안한 기색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상황을 살펴보니 이 녀석이 장난감 모형 자동차 하나를 훔치려다가 지금 막 주인아저씨에게 딱 걸린 것이다. 나는 주인아저씨라는 분을 주목하였다. 주인아저씨는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야단을 치거나 하지도 않는다. 물론 여기 도둑질 하는 아이 잡았다고 큰 소리로 광고를 하지도 않는다. 경찰서에 넘기겠다고 겁을 주거나 하지도 않는다. 흔히 그러하듯이 그 아이의 부모를 아이 앞에서 비난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염려해 가면서, 그저 조용조용 아이에게 집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주인아저씨는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영철이네 엄마이시지요? 여기 아파트 입구 상가 학용품 가게인데요. 영철이가 우리 가게에서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는 모양인데요, 엄마께서 지금 잠깐 가게로 와주시겠어요? 와 보시면 알게 됩니다. 곧 오세요.” 엄마가 바로 왔다. 주인아저씨는…
2014-07-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