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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목표는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 육성 미래형 교육과정의 구조는 우선 현행 교육과정에서 10년으로 된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10년에서 9년으로 단축하는 쪽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육과정과 학제가 일치돼 학교 급별 교육과정의 특징을 살릴 수 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성격을 진로 및 진학 교육으로 명료화할 수 있으며, 개별 학교(특히 고등학교)의 특성화된 교육과정 개발이 가능해지고,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다양화 • 특성화됨으로써 대학입시제도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게 된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은 획일적으로 구획된 10개의 교과를 10년 동안 편제함으로써 지역과 학교가 학교 교육과정을 융통성 있게 개발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글로벌 창의 인재 육성은 학교 교육과정이 획일화를 벗어나 다양화되고, 융통적일 때 가능하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교과군 접근을 해 지나치게 많은 교과 수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당 이수 교과목 수를 5~8개 정도로 축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과군 접근을 하게 되면 교과 군 내 하위 교과들 간, 교과군 간 교육내용의 통합 가능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또 학년 군별로 교과를 배치하게 되면 매 학년, 매학기, 매주 동일 교과를 이수하지 않고, 특정 학년, 특정 학기에 교과의 집중 이수가 가능해진다. 교과의 집중 이수가 가능하게 되면 교과에 대한 심층적 학습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고 여기에 교과군 별 최소 이수 시수를 주고, 학교가 총 이수 시수 안에서 가감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이 더 커지게 되고 다양화, 특성화가 더 촉진될 수 있다. 자율화 • 다양화 • 특성화가 핵심 교과 집중 이수제를 고등학교 수준에서 교과 교실제와 졸업 이수 학점제(시수 혹은 단위제)와 함께 도입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개인별 교육과정 구성이 가능해진다. 학점제를 도입하면 조기졸업도 가능하다. 교과 교실제 운영을 잘하게 되면 수준별 학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다. 미래형 교육과정의 편성 운영 체제에 담을 교과의 구조 또한 미래형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총론에서 교과 교육과정의 내용 기준과 성취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자율화, 다양화, 특성화된 학교 교육과정의 책무성을 묻도록 해야 한다. 교과 교육과정의 기준은 교과의 구조 또는 교과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교과 내용의 정수를 선정해 개발해야 한다. 학생들이 단편적 지식 학습에 몰입하게 하는 기준은 피해야 한다. 또한 교과의 내용 지식과 과정 지식을 창의성 증진 학습의 기초가 되도록 균형 있게 조직해야 한다. 낮은 수준의 정보나 사실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사고 과정만 강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미래형 교육과정에서는 수학, 과학, 외국어 교과를 강화해야 한다. 수학과 과학은 당장 효용성이나 생산성이 없어 보이지만, 공학적 창의성이 발현되는 기초가 된다. 국가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교과를 강화해야 하지만, 학생들이 몰입해 재미있게 의미를 이해하고, 배운 것을 새로운 문제 사태에 적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창의 인재 육성을 위해서 외국어 교육 또는 생존 언어 능력을 넘어서 학문적, 전문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단위학교의 자율성 전제돼야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학교 교육과정이 특성화, 다양화되기 위해서는 단위학교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율의 행사에는 학생의 학습 경험의 질에 대한 책무가 동반되어야 한다. 3, 6, 9학년에 전국 공통 학력 성취 평가를 실시해 책무를 묻되, 평가는 글로벌 창의 인재가 보여야 할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영재 교육, 저학력 성취자 교육, 다문화 교육, 특수 교육 대상자를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책무와 질 관리는 학교, 교육청, 교과부가 해야 한다. 미래형 교육과정이라는 변화는 미래를 추동하는 힘이며, 미래형 교육과정은 국가, 사회, 지역, 단위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변화 역량을 요구한다. 우선 모든 구성원들이 변화를 이해해야 하고, 변화하려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법과 제도 정비, 교원의 전문성 신장 등을 위해 인적, 물적 지원이 충분히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1 한 방송사가 최근 며느리 1000명에게 시어머니에게 하는 흔한 거짓말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어머니 벌써 가시게요? 며칠 더 계시다 가세요”가 1위로 꼽혔다고 한다. 설문에서는 며느리의 이 말을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나는 이것을 굳이 거짓말로 분류하고 싶지는 않다. 거짓말과는 좀 다른, ‘빈말’이라고 하고 싶다. 말에 별 악의가 없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빈말로 하는 인사를 듣는 시어머니들은 어떠한가. “너,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 말아라. 내가 네 속아지 모를 줄 알고!” 이런 시어머니는 없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말하는 시어머니가 있다면, 그런 이야말로 죽다 깨어나도 어른 노릇을 할 수 없다. 시어머니 노릇 하기를 포기한 사람이나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빈말의 보살핌에는 역시 빈말의 응대가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네가 해 주는 밥 먹고 있으니 날짜 가는 줄 모르겠다. 너무 편하고 좋구나.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지만, 비라도 오면 고추 모종도 옮겨야 하고…. 내려갔다가 다음에 또 오마.” 물론 이 또한 빈말이다. 비 온다는 예보도 없었고, 고추 모종은 꼭 시어머니가 해야 할 일도 아니다. 이런 빈말 응대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빈말이 굳이 본마음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또 다른 차원의 미더움과 배려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엿보게 된다. 위와 같은 고부 간의 빈말 인사는 두 사람 사이에 탄탄한 심리적 안정의 틀을 만들어 낸다. 빈말 인사조차도 오갈 수 없는 고부 사이에는 갈등이 훨씬 고약한 구조로 드러난다. 빈말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미적(美的)인 거리를 만들어 내는 기제라고나 할까. 이것이 빈말의 매력이다. 2 올 해로 10년 째, 나는 아침 일찍 올림픽 공원에 걷기 운동을 나간다. 나무들이 잘 둘러선 자리 좋은 곳마다 새벽 잠 없는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흘러간 유행가를 단체로 부르기도 한다. 더러 귓전으로 들려오는 할머니들 대화는 대개 며느리에 대한 못마땅함과 섭섭함을 토로하는 것이다. 시어머니 용심은 하늘이 낸다고 한 옛말도 있거니와,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이해도 간다. 지금의 며느리들도 나중에는 피해갈 수 없는 시어머니의 자리가 있을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중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시어머니들의 불만은 바로 이런 말이다. “빈말이라도 제 입으로 ‘어머니 한번 다녀가세요’ 그 소리 한번 하는 걸 못 봤어.” “손자들 노상 맡겨 놓고서는 빈말이면 어때. ‘어머니 힘드시죠’ 그 말 한 마디를 못해요. 내가 인사 듣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너무 정 없이 해.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어휴 속상해.” 그렇다. 빈말이래도 좋다지 않는가. 그 빈말 한 마디만 해주었어도 이렇게까지 섭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연히 할머니들의 푸념을 들은 것이지만 젊은 며느리 세대인들 시어머니 쪽에서 베풀어주는 빈말에 대한 갈증이 왜 없겠는가. 그 아무 것도 아닌 빈말을 왜 그렇게 못하는 것일까. 빈말을 그야말로 텅 비어 있는 말이고, 허언(虛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꼭 막힌 생각인지 모른다. 오히려 빈말의 효용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자기중심의 사고 벽에 갇혀서 답답하게 소통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PAGE BREAK] 3 실제로 있었다는 또 다른 이야기 하나.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어느 시골에 면장님이 새로 왔는데, 그날 저녁 부면장과 함께 인근 식당에 갔다. 두 양반이 다 등심구이 고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고기 먹는 취향은 조금 달라서, 면장은 바짝 다 구운 고기, 이른바 웰던(well-done)을 좋아하고, 부면장은 중간 정도 구운 고기(흔히 양식을 주문할 때, medium이라고 하는)를 좋아했다. 불판에 고기를 올려놓고 고기를 먹기 시작하는데, 고기가 익을 만하면 부면장이 냉큼 냉큼 먼저 다 집어 먹는 것이었다. 미디엄 상태의 고기를 좋아하는 부면장으로서는 굳이 다 익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면장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으나 좀체 기회가 오지 않았다. 고기가 제대로 익기도 전에 부면장이 다 먹어 치우는 것 아닌가. 마침내 면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예끼! 여보게 혼자서 다 먹게나. 나 원 참!” 해프닝에 가까운 장면이지만, 어쩌다 이렇게 민망한 사태로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왕성한 식욕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부면장의 눈치 없음을 탓해야 할까. 이쯤에서 생각나는 텔레비전 라면 광고(CF) 하나가 떠오른다. 워낙 국민 전체가 인상 깊게 받아 들였던 광고인지라, 세월이 한참 지났어도 범국민적 광고인 것처럼 느껴진다. 다 끓여 놓은 라면 한 사발을 앞에 놓고, 코미디언 두 사람이 화면에 나와서, 얼굴 가득 먹고 싶은 표정이 번지면서도, 서로 라면 사발을 상대에게 권하면서 말로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외치는 것이다. 진짜 마음은 내가 먹고 싶은데, 공연히 마음에 없는 말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빈말 인사의 가장 전형적인 장면이다. 분명히 빈말에도 힘이 있다. 앞 이야기에서 면장과 부면장은 빈말의 효용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다. 빈말로라도 “면장님 먼저 드시지요”, “부면장 먼저 드시오” 이렇게 몇 번만 권유를 했더라면, 그렇게 낭패스러운 장면으로 한 걸음에 치달았을까. 빈말 권유를 받는 동안에, 면장은 “나는 익은 고기를 좋아해서 좀 기다려야 합니다”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맛 취향을 말했을 것이다. 부면장 또한 빈말 권유에 얹혀서 이른바 미디엄으로 구운 고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어디쯤서 했을 것이다. 그렇게만 했더라도 그렇게 민망하지는 않은 소통의 가닥을 잡아 나갔을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민망스러운 장면 가운데 하나가 빈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체면 돌아보지 않고 몸으로 또는 말로 다투는 장면이다. 그 다툼의 주인공이 젊은이와 늙은이일 경우에는 타고 있는 사람 모두가 민망하다 못해 어떤 수치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젊은이가 어른 공경할 줄 모른다”고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 배웠느냐?”고 거품 품고 일장 훈시를 하는 늙은 양반의 모습도 각박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고, “여기가 당신 안방이냐, 누구를 훈계하느냐. 그렇게 대접받고 싶으면 자가용 타고 다니시지 지하철 왜 타느냐”고 바락바락 대어드는 젊은이의 말대꾸를 듣노라면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황폐감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빈말을 우리 생활에서 추방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내가 앉아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빈말 한번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여기 앉으시지요”, “아가씨 먼저 앉으세요”, “아저씨 앉으세요”, “젊은이 나는 곧 내리니 앉으시게.” 이렇게 빈말이라도 해 보는 것이다. 상대 또한 빈말로 한 번쯤 사양을 해 주면 속된 말로 참 그림이 좋다. 물론 상대가 냉큼 앉아버렸을 때의 허탈한 상실감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야속함이란 내가 한 말이 빈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런 빈말 덕에 앞의 장면처럼 마치 막 사는 사람들처럼 망가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소위 자존심의 영역이다. 4 빈 말은 그냥 텅 비어 있는 말이 아니다. 딱히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다지 마음에 담고 있지는 않지만, 상대를 생각해서 굳이 말로 표현해 주어야 하는 것이 있다. 이걸 그냥 정직과 부정직의 단순 이분법으로 정직하지 못한 말이라고 딱지를 붙여버리고 나면, 사람 살면서 말 붙이는 일에 숨어 있는 소통의 지혜를 허망하게 놓쳐 버린다는 생각이 든다. 빈말은 심리학 하나를 거느리고 있다. 마음에 넘치는 진정됨이 꽉 차 있어서만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없어도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와 나의 관계가 소중하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깔고서 하는 말이 빈말이다. 빈말의 반대말을 굳이 만들라고 한다면 ‘찬말’이 되겠으나, 이런 말이 실제로는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빈말’이라는 말은 쓰인다. 어떤 말이 실제로 쓰인다는 것은 그 말의 기능이나 값이 그 나름대로 사람살이에서 인정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런데 빈말의 묘미는 생각해 볼수록 오묘하다. 사람 사는 세상이 오묘하다는 것이리라. ‘빈말의 사회학’이 가능해진다. 빈말의 효용을 옛사람들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으로 이미 지혜롭게 터득하였다. 문제아들에게 다가가는 교육적 노력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이치로 시작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걸 일상에서 실천해 보라. 만만치 아니한 인내심과 인간적 수양이 필요함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여기쯤에 도달하면 ‘빈말’은 산처럼 큰 화두로 다가온다. ‘비어 있음’의 가치를 아는 것은 인식론의 고매한 영역이다. 모든 형상들은 그 안의 비어 있는 것들로 인하여 비로소 그 보이는 실체를 드러낸다. 내부의 비어 있는 허공이 없이는 어떤 청자 백자도 그 아름다운 형상의 미를 연출해 낼 수 없다. 말의 작용 또한 그러하다. 빈말 안에 가득 차 있는 지혜들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학교 안에서, 개인적으로, 푸념 삼아 뱉어보던 잡무 경감과 관련된 말들이 최근들어 제도적 차원으로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확대되고 법제화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시대적인 인식에 즈음하여 본고에서는 교원에게 주어진 많은 잡무의 실태와 그 원인들, 그리고 그 대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봄으로써 작금의 시대적인 과제인 ‘교원 잡무 경감 제도화’에 대한 공감대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자 한다. 다른 곳에는 모두 있는 행정업무 전담, 학교에는 없어 교원 잡무에 대해 사람들은 때로 도대체 무슨 업무가 그렇게 많다는 것일까 의문스러워 하기도 한다. 교원의 잡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물론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이 있지만 다음과 같이 간단히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일선 관공서에는 전출/전입, 장학금, 지원금, 봉사활동 등에 전담부서가 있다. 대학에서는 총무처를 이외에 교무처, 학생처가 있어 수강신청, 각종 증명서, 성적, 등록, 자퇴, 취업 등의 모든 고유의 업무를 처리한다. 거기에서 교육을 지원하는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물론 수평비교는 어렵겠지만, 대학의 교수들은 잡무에 빠지지는 않는다. 일반 기업체, 은행, 사회봉사 단체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전담 직원이 그 업무를 집중적으로 처리한다. 그렇다면 일선 학교에서는 어떨까? 학교란 조직체는 고유 업무인 교육과 연구 이외에도 그 조직이 굴러가기 위한 기능적 지원 장치를 필요로 한다. 학교 행정실에서 하고 있는 지극히 사무적이고 하드웨어적인 기능을 제외하고는 학생과 관련되는 대다수 업무들을 교사들이 처리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대학의 교무과, 학생처, 학사지원과의 대부분 업무를 학교의 교무부, 학생부, 연구부, 방과후학교부 등의 지원 인력들, 곧 교사들이 다 맡아서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업무에 쫓기다 보면, 자조적으로 교사의 정의를 ‘잠시 시간을 내 수업을 하는, 약간의 전공과목 지식을 갖춘 행정 사무원’ 정도로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것을 그저, 숭엄한 교육적 사명감이 부족한, 사도가 흔들리는, 뒤틀린 의식 정도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저변에 흐르는 심층적인 고뇌를 밝혀내는 코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 심층적 의미를 디코딩(Decoding)하는 것이 시대적 현자의 몫이 아닐까?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잡무의 실태를 제시해 보겠다. 첫째, 수업, 성적, 전학, 장학금 등을 담당하는 교무부 소속 교사들의 일을 보자. 연가, 조퇴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매일 출장이 발생해, 수업계 교사는 시간표를 조정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의 반을 차지한다. 20명에서 100여 명까지 되는 시간표를 매일 조정해 최소한 교육활동에 무리 없도록 맞추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내일 오후 수업을 모두 빼야 하는 출장 공문이 오늘 퇴근 시점에 도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경우 교사는 야근하거나 서류를 싸들고 와서 작업해 아침에 바로 공지해야 한다. 시험시간표와 감독시간표를 작성할 때, 학기 초 시간표를 재구성할 때면 거의 초죽음이다. 이 작업을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을까? 행정 사무원이? 행정실 직원이? 보조교사가? 교사는 솔직히 자신을 사무원이라고 간주하고 싶은 때가 있다. 약간의 교양을 갖춘 기능직 사무원으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작업을 교육과 연구에 직접 관계없는 행정적인 기능만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사실 학교의 사안 모든 것이 교육과 무관한 것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냉철한 논리의 기반 위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일이다. 잡무의 종류도, 양도 다양하고 예측불허 또한, 교과서 담당자의 업무를 보자. 학기 초에 각 반마다 교과서 권수를 파악한다. 40명×10권×30개의 반이라고 가상해 보자. 1만 2000권이다. 이 숫자를 조사하고 통계 내고, 대금을 계산하고, 책을 수령해 배부해야 한다. 교과서 회사에서 빈 교실에 책을 산더미처럼 넣어 주는 것까지는 해준다. 그다음부터가 교사의 몫이다. 작업복을 제대로 입고 책을 모둠별로 모으고 이동시켜야 한다. 좋은 협상 조건(?)을 내걸어 도와 달라 부탁한 아이들이 말이라도 잘 안 듣는 날에는 그대로 교사가 막노동을 해야 하고 때로는 몸살이 나기도 한다. 원어민 담당교사의 일도 살펴보자. 언어가 통한다는 이유로, 해당 외국어(영어가 많음) 원어민 관리교사는 원어민이 도착할 때부터 출국하는 날까지 그야말로 충실한 집사노릇을 한다. 도마, 칼, 숟가락, 젓가락 구입부터 시작해 등록, 주거, 공과금 계산까지 다 해 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최고의 복지 서비스도 관리교사의 몫이다. 이 행정 업무는 더없이 예측불허이며 허를 찌른다. 환경부 쪽의 일도 보자. 왠지 환경부에 소속되면 이제 ‘몸으로 때워야 할 시점이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숨길 수 없다. 환경부의 사무적 환경조성 관리는 ‘고급스러운 일’(?)에 속한다. 연초가 되면 청소도구를 수거하고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아이들이 잘하면 다행이지만, 집안 정리 못 하는 아이들이 청소도구를 잘 수거, 수령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약 30개 반에 각각 청소도구 10종류씩을 수거하고 투입하는 작업을 한다. 때때로 교사가 직접 몸으로 때우는 것이 더 편할 때가 있다. 교사 몇 명이 며칠 걸려 그 작업을 하기도 한다. [PAGE BREAK] 국정 감사 기간에 절정 이루는 제각각 자료 요청 10월경 국정감사 기간이 다가오면 각종 보고 요청이 쇄도한다. 원어민 사업의 실태, 계획, 운영보고, 등의 유사한 요청이 각종 기관으로부터 날아온다. 때로는 3년 동안의 축적된 기록까지 요청한다. 예산을 지원하는 지자체에서, 일선 교육청에서, 도교육청에서, 시의회 의원이, 도의원이, 빈번히 국회의원들이(한꺼번에 여러사람이 따로따로) 요청한다. 더욱 사람을 몰아붙이는 것은 제출 시한도 임박하게, 그것도 유사한 사안인데 보고 양식은 가지가지 전혀 통일성이 없다. 이미 몇 번이나 자료를 보고했건만 하나는 엑셀로, 하나는 전자업무시스템으로, 다른 하나는 한글 파일로 보고하란다. 그 많은 전자화된 자료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을까? IT 선진국에서 참으로 제도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푸념이 저절로 나온다. 지난해 필자도 한꺼번에 5개의 ‘실태 보고 요청’을 받아 정작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수업시간에는 ‘횡설수설했던’ 기억이 있다. 뭔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밖에도 행정요원의 느낌이 들게 하는 업무는 많다. 대부분 통계를 내는 작업과 보고 서류작성업무가 그렇다. 명찰 값을 거두고, 보충수업 숫자와 대금 액수를 조사, 계산을 하고, 식사 회수 통계를 내고, 재학 증명서를 발행하고, 졸업실태, 진학실태, 취업실태를 조사하고, 학교의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적 영역을 망라하는 갖가지 보고공문 작업에 매달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행정 사무원’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몰려드는 잡무만큼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수업 이제, 학교 교사의 잡무가 많은 이유를 분석해 볼 차례이다. 이것은 교사란 신분의 특수성에 관련된 유의미한 논의가 되리라 생각한다. 분명 보완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사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부분이다. 첫째, 교사의 업무에 있어, 완전한 행정업무와 교육업무를 구분하기가 몹시 어려운 것은 ‘잡무의 교육활동 연계 개연성’ 때문이라 할 것이다. 교사의 수업시간 조정을 ‘행정보조원’이 주도적으로, 효율적으로 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청소지도를 단순한 지시와 안내 역할만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솔선적인 시범이 자주 ‘전문적인 기능 수행자’로 전이되는 수가 많다는 것은 의미 있는 지적이다. 다음으로, 교사가 상대하는 대상이 미성년자인 초 • 중 • 고 학생들이므로 학생들과 관련되지 않는 순수한 단순한 행정업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장학금 관련 보고에는 학생 이해의 주체인 교사가 직접 개입해야 하며, 졸업, 취업, 증명서 발급에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교사가 처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학생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업무의 적합성으로 이어진다는 전제는 부정하기 어려운 면이다. 미성년 학생들에 대한 객관적, 인과적, 사무적 행정의 적용이란 것은 애초부터 성립하기가 어려운 전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이 알지만 좌시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일반인들에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교무행정과 교육활동의 일원화’라고 하는 ‘전통적 전인교육에 대한 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모든 것을 전인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통합적, 종합적, 일원론적으로 보는 ‘동양적 원형적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교사는 모든 역할에 있어 학생들을 전인적으로 지도하고,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덕목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고, 또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이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직능, 사무직능, 사무적 처리 등의 개념이 교육집단 구성원에게는 좀 어색한 면이 있다. 교육현장에서 사무적 행정적 처리가 아직 왠지 좀 나선 것도 사실이다. 해결책을 논하는 글에서 이상과 같은 생각은 해결하기 힘든 한계를 다시 한 번 제시하는 것 같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꼭 짚어야 할 문제들이기도 하다. 세밀한 美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벤치마킹 필요해 이제, 최선은 못되지만, 차선으로서라도 ‘주어진 과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보며 본 논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우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행 교육법 23조 2항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교 및 교육행정기관의 업무를 전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좀 더 보완하는 것이다. 전술했듯이, ‘공문서의 중복 혹은 형식적이라고 보이는 보고요청’은 전자화는 되어 있지만, 표준화 및, 체계적인 보관, 저장이 되어 있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인다. 그래서 대부분의 보고가 일회성으로 끝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DB 구축의 제도화는 긴급한 과제라고 본다. 예를 들어 ‘…업무’를 전문화하고, 표준화하며, 전자화하여 DB화한다’라고 명시하면 어떨까? 이는 보고업무를 획기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세밀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여기에 집적된 자료가 DB로 보관되어서 주 교과부와 지역교육청이 통계를 관리 • 생산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잡다한 통계자료 보고 공문이 교원에게 전달되지 않은 상태로 처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빨리 벤치마킹할 제도라고 본다. 다음으로,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정부의 획기적 교육예산 지원으로 일반 행정에 필요한 인력을 많이 투입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영국은 2003년에 정부, 학교, 교원노조가 협정을 체결해 기술지원, 시설, 행정, 건물 관리 등을 지원인력의 직무로 규정, 교원이 행정•사무적 일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전문적, 제도적인 교무행정보조인력 채용 늘려야 OECD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교사 지원 인력상황은 어떨까? 통계에 따르면 교사지원인력 수는 미국과 프랑스의 1/2의 수준이며, 교원 잡무 경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문지원직인력의 경우 한국은 프랑스의 1/25, 미국의 1/9, 일본의 1/5 수준에 불과한 실정임을 보여주고 있다(2005년 교육인적자원부 자료). 현재의 14학급 이하에 배치되는 교무보조인력의 운영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조원제도가 열악한 신분보장으로 인해, 단순 급사-비서의 역할, 단순 잡무, 심부름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그 개선책 역시 필요하다. 따라서 전문적 • 제도적인 인력채용-미래교사역할 체득-잉여인력 활용 극대화에 대한 로드맵이 그려져야 할 것이다. 14학급 이하에만 교무교조를 두는 제한적이고 지엽적인 처방이 아니라,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교무행정을 위한 인력 채용과 그 제도마련에 국가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제도적인 교무행정 전담부서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까지 나온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교무행정과 교육-연구 활동의 통합운영의 한계성과 문제점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이제 교무행정을 교육활동과 분리시켜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이로써 교무행정에 좀 더 제도적인 구축이 필요하고, 동시에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교사는 교육과 연구에 치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하에서는 경쟁력 있는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교육 효과 최우선 방향에 맞추어, 가시적 학습효과를 창출하는 ‘사교육시장’의 ‘감추어진 손’에 위협받는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소규모이지만, 대학의 학사지원팀과 같은 부서가 일선 초 • 중 • 고 학교에 배치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교사가 ‘보다 멋진, 작품 같은 수업’을 하며 아이 사랑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도록 교원잡무 경감에 대한 입법화가 빨리 추진되었으면 좋겠다. 보다 가까운 곳에 눈을 돌린다면, 따뜻한 사랑이 좀 가려진 것 같지만 선생님들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데에 승부를 걸 수 있도록, 지자체와 행정당국의 과감한 지원으로 교무행정 전담부서가 빨리 설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장 솔직하게 말하자면 교육과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교육자의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교육자의 시대’가 당대에 와주기를 겸연쩍게 소망해 본다.
해당 국가의 교육과정을 조사, 번역, 분석하셨습니다. 그 국가의 교육과정을 어떻게 보셨고,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정진경 = 대만은 각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편성 • 운영하는 데 필요한 안내를 최소한의 교육과정 구성 요소와 지원 사항을 중심으로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 제시되고 있어 대단히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교육이념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교육목표와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기본 능력’을 설정해 교육과정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뚜렷하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죠. 또한 학습영역과 교과목을 구분하고 학습영역 설정에 따른 각 교과목을 분류 • 제시했으며, 과목 수도 적정화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과정에 대한 학교의 자율성 확대의 방향에서 수업시수 제시방식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어 왔지만 각 교과목 등의 학년별 총량 제시방식에 머무르고 있는데 반해 대만은 수업시수를 주당 학년별 총 수업시수와 영역 학습 시수, 탄성 학습 시수로 제시해 각 학교가 시수 설정의 자율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인순 = 호주의 교사들은 모두 교육과정 전문가라 할 만큼 가르치는 과목과 관련된 교육과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과목당 선택되는 1개의 교과서가 있어 교사들이 교육과정보다는 교과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죠. 하지만 호주는 이런 의미의 교과서가 없어서 교사가 교육과정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주변의 다양한 자료와 교재를 취사선택해 활용하면서 각 교수요목의 학습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효과적인 교수 • 학습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공공 출판사가 주교육부(청)와 공동으로 보조교재를 만들어 보급하는데 사용 여부는 학교와 교사가 결정하도록 자율권을 줍니다. 같은 학교, 지역별 교사모임에서 자료나 교수법을 교환해 조율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허윤욱 = 캐나다는 연방 정부에 교육부란 직제가 없고 교육은 10개 주(Province)와 3개 준주(Territory) 소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콜럼비아주도 주 수준의 의도된 교육과정 문서를 제시하되, 그 내용이 우리와는 달리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들로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즉, 명확한 기대수준 혹은 성취기준을 제시하고, 아울러 그것을 학교현장에서 교수 • 학습을 통해 성취하는 모범적 사례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육과정 속에 녹아 있는 다인종 • 다문화로 대변되는 다양성의 실천전략과 노하우는 다인종 • 다문화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나라가 면밀히 분석 • 검토해 봐야 할 부문이라고 생각됐습니다. 김희정 = 지금까지 ‘유토리 교육(여유교육)’을 강조해오던 일본은 이 정책에 따른 학력저하와 실망스러운 PISA 결과 등으로 교육과정의 수정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학력향상, 학습의욕 고취, 학습습관 형성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본의 교육과정을 번역하면서 가장 많이 접했던 단어가 ‘살아가는 힘’, ‘스스로 학습’, ‘학습의욕 향상’과 ‘체험학습’ 등이었습니다. 특히 살아가는 힘으로서 기초 • 기본적인 지식기능의 습득을 강조하고 있고, 그에 따라 주요과목의 필요 수업시수를 늘린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충일 = 미국은 연방정부의 교육부, 주 정부의 교육부, 각 도시의 교육청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교육의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감독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총론에 해당되는 내용이 미국의 경우에는 각 주의 교육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의 내용이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고 교육과정이 올바로 적용되는 지를 평가하는 방법 또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해당 국가의 학교를 직접 방문하셨을 때 느꼈던 점을 말씀해주십시오. 허윤욱 = 한 마디로 교육의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글로 쓰게 하는 문해능력과 수학적 문제해결력 및 창의력과 관계되는 수리능력을 기르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실제 교수 • 학습 시간을 통해서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캐나다는 OECD 국가 중 정보 • 통신 분야에선 세계 선두를 달리는 국가입니다. 하지만 정규 수업시간에 우리처럼 ICT 기자재를 남용하지 않습니다. 유치원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소감을 발표하게 함으로써 ‘본문구절(Text)지식’이 아닌 ‘맥락(Context)지식’을 쌓게 해 경쟁력 있는 미래형 인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김희정 = 일본의 초등학교의 경우, 기초기본질서 교육과 도덕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기초기본 학력을 위해 산수와 국어수업에 보조교사와 팀티칭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개별학습, 완전학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 • 고등학교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입시를 위한 교육시스템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었고 중 3, 고 3의 경우 학교에 다양한 강좌가 개설되어 있어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었습니다. 정진경 = 방문했던 초 • 중 • 고교가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에 있는 대표적인 학교들이라 학교 역사도 오래되었고 교육 시설도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교장선생님들이 매우 열정적이어서 관리자의 학교 운영에 대한 의지의 중요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학교 학부모 회의실에 학부모들이 상주해 학교마다 설치된 ‘교육과정발전위원회’의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학부모가 학교 운영의 한 축으로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와 밀착된 체험활동을 많이 하고 있었으며, 교사들은 동료형 교육활동이 매우 활력 있게 운영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박인순 = 호주 공립학교에 붙어 있던 ‘공립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합니다’라는 구호는 오히려 호주가 안고 있는 사립학교 선호에 따른 공립학교의 교육 질 저하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산층 이상의 학부모가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무료인 공립학교를 외면하고 학비가 1년에 최고 2만 불까지 드는 사립학교를 선호하게 된 배경에는 ‘학력’보다는 신사숙녀교육, 종교교육, 예체능교육 등 ‘전통적 교육 가치’를 높이 보는 학부모의 성향과 전통 있는 사립학교 출신들의 사회적 성공과 관련한 네트워크 효과 등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을 잘하는 사립고를 선호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죠. 김충일 = 대체로 우수한 학교를 방문했는데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상당히 좋고 수업 참여도 또한 높았습니다. 뉴욕의 환경이 열악한 흑인 밀집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도 방문했는데 이 학교는 차분하면서도 열의가 있는 학교장과 함께 교사들이 무보수로 방과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성적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상승해 우수학교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방문하셨을 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김희정 = 일본은 클럽활동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정규수업을 마치면 동아리활동이 학생들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죠.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동아리가 있어서 학교교육과정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각 학교에 야구부 축구부 등이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토, 일요일에도 운영되고 지역별 리그전도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정진경 = 대만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의 경우 한 학년 학급수가 25~26학급으로 매우 큰 학교였는데, 우리나라처럼 특목고를 따로 두지 않고 별도의 교육과정으로 외국어, 수학, 예술 같은 영재 학급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사범대학 졸업생이 의무적으로 1년 동안 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또 공립일지라도 학교에서 필요로 하고 교사가 원할 경우 한 학교에서 계속 재직할 수 있도록 보장해 장기적인 교육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의 경우 교사들에게 부전공을 이수하도록 해, 학생들의 선택 희망 교과의 개설과 교사의 기준 시수를 확보하도록 하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허윤욱 =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에서의 시간 배당 및 편제 제시를 통해 단위학교의 자율성과 실용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일례로 고등학교 과학 교과에서 ‘빛과 소리’ 단원을 배웠다면 마지막 정리단계에서 해당 지도교사는 학습내용과 관계되는 분야에 종사하는 직업, 이를테면 비행기 조종사나 기상예보관을 재량활동 수업시간에 초청해 이론과 함께 실제 운용분야를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이 개별 수업을 통해 장래 진로탐색을 구체화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박인순 = 학교장의 책임경영제로 공립학교도 교장의 교사 배정 권한이 보장되며 행정직원도 학교장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시간제 임시직 등 인원수를 조절할 수 있는 반면 학교에 대한 학부모 및 지역사회의 평가에 의해 동일 학군 내에서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장의 권한과 책임이 크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학교발전기금 모금을 위한 학부모회 주관의 기부행사, 체육/문화 행사, 진학정보 모임, 지역사회 자원봉사 모임 등이 많아서 학부모나 지역사회가 학교의 여러 사업에 많이 참여하면서 의견을 내고, 돕는 모습이었습니다. 김충일 = 방문한 학교의 학교장과 교사들이 학교의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기본적으로 주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교육과정에 더해 인근 명문 주립대학교들의 입시기준에 맞추어 학교의 교육과정이 정해지고 있었으며 우수한 대학교에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키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PAGE BREAK] 이번 연구를 마치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김충일 = 미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기초학력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모든 공립 초 • 중 • 고 교육기관은 주 정부가 정한 교육과정을 올바르게 실시하는 지 점검하기 위한 책무성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각 학교의 수준에 맞는 ‘연간 적정 발전(Adequate Yearly Progress)’을 이뤄내야 하며 이러한 점검은 학교 단위로 이루어짐과 동시에 학생의 하위그룹을 장애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 및 사회 계층별로 나누어서 세부적으로 이들 그룹이 주에서 정한 기준을 통과했는지를 매년 평가하고 있습니다. 만약 2년 연속 적정 발전을 이루지 못하면 여러 단계에 걸친 개선작업을 시작하고 평가 결과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됩니다. 이처럼 철저한 평가 과정을 통해 일선 학교에서 교육과정 기준이 올바로 적용됨을 도모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허윤욱 = 문서로만 존재하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교육대상에 따른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교육의 기본 설계도’로서의 교육과정이 운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민자 가정의 자녀를 위한 ESL 과정, 자폐증 등 특수교육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위한 개별화(IEP)교육, 영어 • 불어 이중 언어 교육을 위한 내용중심 교과지도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목표와 내용, 평가기준과 방법이 학년별 연계성에 따라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 현장의 교사는 교육과정에 담긴 기본 취지와 목표를 충실히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교수 • 학습자료를 확보하고 끊임없이 직무연수시간을 갖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희정 = 학력신장과 기초기본교육에 대한 관심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웃나라인 일본도 교육과정 개정과 교육개혁을 통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래사회는 교육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이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에 대한 국가적인 대대적인 홍보와 성취도 평가, 교사면허갱신제 도입 등을 통해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교육개혁에 대한 필요성과 요구는 전 세계적인 추세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세계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핵심적인 미래인재양성과 성숙한 사회를 위한 시민양성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순 = 호주는 연방정부의 노동, 교육, 가족, 산업관련 부처의 장관으로 이루어진 장관협의회에서 장래 국가 산업현장의 변화에 따른 교육과 직업훈련의 방향을 조절하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10년을 주기로 국가의 교육 비전을 선언문 형태로 발표하고 그에 따른 예산 분배를 하는데 장래 인적자원의 양성 면에서 꼭 필요한 조치인 것 같습니다. 정진경 = 그동안 대만 교육에 관한 최신 자료가 매우 부족했는데, 이번 연구를 계기로 주위 국가들의 학교 현장 속에서의 국가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가 더욱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특히 짧은 기간이었지만, 현장 방문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전체 중화권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묶어서 연구해본다면, 더욱 의미 있는 연구 결과가 나오리라 여겨집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이나 학교에 반영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허윤욱 = 학교교육은 교육과정, 교수 • 학습 및 평가, 교과서 등의 소프트웨어적인 요소, 교원의 양성 • 수급 • 연수 등의 휴먼웨어(Humanware)적 요소, 그리고 행 • 재정 지원 및 교육 시설 • 설비 등의 하드웨어적인 요소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봅니다. 캐나다의 교육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주 수준의 교육과정을 학교 현장에서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이면에는 전문성을 갖춘 교원조직을 학교실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확보 • 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규 교원도 전일제, 반일제, 격일제 근무 등 계약에 따라 다양하게 임용할 수 있으며, 수준별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이웃학교 또는 외부 전문 강사를 초빙한다는 것입니다. 박인순 = 우리나라가 대학입시라는 장애물을 넘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낭비하면서도 기능이 필요한 작업장은 인력이 부족한데 비해 호주는 기술과 실제 경험을 우대하는 사회전반의 경향으로 학교마다 실습위주의 직업교육과정이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직업교육과정에는 현장에서의 실습이 포함되는데 교육장소로 지정되는 작업장은 안전시설 및 교육을 위한 자격을 갖춘 기능공이 있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인증을 받아야 하는 대신 교육비를 지원과 세제혜택을 받습니다. 국가 자격증 제도를 운영해 정규과정을 거쳐 취득한 자격증은 누적되어 전국 어디에서나 인정을 받고 취업 및 상급교육기관 편입이 가능합니다. 김희정 = 클럽, 동아리활동을 통해 취미, 특기 등을 계발할 수 있는 터전이 학교시설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한국 학교에도 도입했으면 합니다. 또한 초등학교에는 학생들이 직접 텃밭을 가꾸어 식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런 부분도 우리나라에 반영한다면 학생들의 정서함양과 체험학습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충일 = 한국에서는 주로 3학년 담임교사들이 진로상담을 하는 반면, 미국은 각 학년 혹은 학생을 담당하는 진로상담교사가 따로 있어 이들이 학생들의 진급과 졸업장 취득을 위한 학점과 교육과정 구성에 대한 상담을 담당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각 대학들이 다양한 입학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만큼 3년간 지속적으로 학생의 진로를 담당하는 진로상담교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는 다소 짧은 시범 실시기간을 거친 후 전면적으로 바꾸기보다는 시대적 요청과 필요에 따라 오랜 검증 기간을 거쳐서 실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 한 과목의 교육과정 기준을 바꾸는데 약 10년에 걸쳐서 학습기준 검토부터 피드백까지 일련의 과정에 다양한 전문가와 실무자, 학생 등의 참여를 유도하고 신중을 기하는 점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진경 = 대만처럼 단위 학교에게 좀 더 폭넓은 교육과정 운영권을 부여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대만은 특별활동, 재량활동 시간에 구체적인 영역 구분이나 편성•운영 지침 등을 두지 않습니다. 교내외의 자원을 활용해 학교의 자율적인 교육과정 활동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선택 중심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79개라는 방대한 과목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11개 영역 • 과목군 만을 제시해 특정 과목 편중 이수 및 이수 기피를 융통성 있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입니다.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통해 세계에서도 내로라할 정도의 무역강국이 됐지만 아직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바로 민주시민의식이다. 민주시민의식 부족은 단순한 교양이나 문화수준의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종 분규와 법적 분쟁을 일으켜 막대한 사회적 지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교육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따라 법무부는 민주시민의식의 근간이 되는 준법정신 함양을 위해 여러 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데 그 중 학생자치법정은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학교의 선도프로그램과 연계해 법치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청소년 선도와 사회성발달에 큰 효과 학생자치법정은 1983년 미국 오데사 시에서 도입된 후 주목받기 시작한 제도로, 이미 미국에서는 청소년 선도와 사회성발달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경기 의정부 광동고와 충북 제천고 등 5개교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올해부터 35개교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4년째 학생자치법정을 운영하고 있는 의정부 광동고의 실제 운영사례를 통해 운영방법과 효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주입이 아닌 스스로의 이성을 통해 도덕심 함양 의정부 광동고등학교(교장 이학송)는 학생자치법정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해오고 있다. 처음 도입당시에는 교사들조차 재판절차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고 학생들도 ‘법정’이라는 명칭에 조금 위축되었다고 한다. 법관도 교사가 맡아 완전한 학생자치법정으로 운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전부터 상벌점제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자치법정과 연계가 용이했고, 교사 대상 연수프로그램과 도입을 처음 건의한 윤성관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이학송 교장은 “유치원에서 배우는 도덕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너지기 쉽다”며 “어느 정도 성장한 고교 때 스스로 이성으로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운영취지를 설명했다. 학생자치법정은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며, 매년 15명을 선발하는데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좋아 지원자가 많다. 학생자치법정의 피고는 벌점 5~9점 정도의 경벌점자가 대상이 되며, 수위가 높은 잘못을 한 학생은 학교선도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한다. 재판은 입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모든 경벌점자를 대상으로 하지는 못하고 학생자치법정의 판사와 부판사가 선정한 건에 대해 해당 학생의 동의를 얻어 실시한다. 학생들이 직접 재판을 해서 벌칙을 주면 학생들 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학부모가 불만을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공개적으로 소명할 기회도 생기고, 재판을 거치지 않은 학생에 대한 징계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벌칙을 내리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고 한다. 학부모들도 처음엔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이내 운영취지를 이해해, 이의를 제기한 경우는 없다. 학생자치법정 도입 전부터 체벌을 지양해왔고 학교에 큰 사고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 사례처럼 체벌이나 사건 • 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흡연학생은 눈에 띄게 줄었다. 비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가끔 실황중계 되는 재판과정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의 태도에도 변화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재판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재판과 ‘5분 발언’의 두 종류로 진행된다. ‘5분 발언’은 즉심판결과 같은 것인데 어감이 좀 좋지 않아 ‘5분 발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올해부터 학생자치법정을 담당하고 있는 위효승 교사는 “첫 임용 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학생자치법정을 맡게 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학생들이 스스로 너무 잘하고 체계도 잘 잡혀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며, “모든 일은 학생들이 알아서 하고 교사는 회의록 검토 등 행정 위주의 지원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올해 3학년이 되어 후배들에 대한 조언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이준경 학생은 “그동안 학생자치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를 담당하며 색다른 경험을 했다. 재미는 물론 법을 좀 더 친숙하게 느끼고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PAGE BREAK] 학생변호사의 탄탄한 논리에 교장도 고개를 끄덕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떠들어서 감독 선생님께 받은 벌점은 인정하지만, 지적받았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께서 추가 벌점을 준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벌점 1점을 받아야 할 한 가지 행동으로 벌점 2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변호사의 변론에 방청석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이 교장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모의재판이 아닌 실제 사안을 갖고 하는 재판이기 때문에, 피의자석에 앉아 있는 학생은 당연히 억울하다는 표정이고 변호사와 검사의 얼굴에는 당당함과 당혹스러움이 교차한다. 벌점 초과자 2명과 5분 발언 대상자 3명을 대상으로 열린 이날 재판은 주심판사의 개정선포를 시작으로 실제 법정에서 하는 재판과 같은 절차로 진행됐다. 물론 학생자치법정이기 때문에 주 • 부심과 검사, 변호사, 피의자, 배심원까지 모두 학생이 맡는다. 이 교장과 담당교사도 법정에 들어와 있지만 방청석 한쪽에 앉아 지켜볼 뿐 재판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학생자치법정에서는 교장도 한 명의 방청객일 뿐이다. 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한 절차로 진행 재판의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대상자선정회의에서 재판 대상자를 선정해 해당 벌점초과자의 기록을 각 담당 변호사와 검사에게 벌점의 사유 등이 적혀있는 기록을 통보하고, 기록을 받은 변호사와 검사는 2~4주가량 사건을 조사한다. 배심원은 재판 1~2주 전 선착순으로(학교규칙을 자주 어기는 학생 제외) 8~9명이 선발되며, 재판이 열릴 때까지 배심원 관련 교육을 받고 배심원장을 선출한다. 개정 후 검사와 변호사의 증인 심문을 거처 벌점초과자들의 최종진술까지 재판이 진행되면, 판사가 휴정을 선언한다. 이때 배심원단은 배심원실로 이동해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배심원회의를 통해 작성된 배심원 합의문은 배심원장이 낭독한 뒤 재판부에 전달되며, 재판부는 이 의견을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수정해 판결한다. 판결이 내려지면 벌점초과자는 정해진 기간 내에 처벌을 수행한 뒤 담당교사에게 확인을 받고 재판부에 확인서를 제출하면 모든 과정이 종료된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절차는 얼마 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에 학생자치법정이 도입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아 그 성과를 단정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오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님에도, 실제 법정 못지않은 진지함과 탄탄한 논리로 스스로의 공과를 논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학생자치법정이 큰 교육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학생선도와 교육의 양 측면에서 효과를 인정받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는 학생자치법정이 우리 공교육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간의 생애 - 이야기 한 자락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은 대개, 문득, 예상치 않게 다가온다. 그리고 가뭇없이 자취를 감춘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의 생애를 간단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라는 요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든지, 배우자를 만나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든지, 약력을 소개할 일이 있을 때 우리는 그러한 주문을 받는다. 남에게 나를 소개할 경우 이력서(履歷書)라는 양식을 이용한다. 이력서에는 출생과 연관된 사항, 학력, 경력, 업적 등을 항목화하여 기록하게 되어 있다. 사회에 진출하는 초기 이력서를 생각해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력서 한 줄 추가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던 선배 이야기가 실감을 더한다. 더구나 처음 내는 이력서에는 경력이 있을 수 없어 당황하기 십상이다. 사람들이 늘 하는 말대로 우리들 삶은 복잡다단(複雜多端)하다. 굽이와 가닥이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으로 얽히고설킨다. 가슴에는 한도 많고 원도 많고 때로는 환희가 넘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환희로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더구나 돌아볼 때는 어슴푸레한 망각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좀 과장하면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생애도 잘 정리가 되지를 않는다. 내 생애를 정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처럼 남의 생애 또한 정리가 쉽지를 않을 것은 의당 그러하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생애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력서에는 기록하기 어려운 사항이지만 기억이 뚜렷한 일들이 있는 법이다. 그 기억이 선명한 이야기들을 기록한다면, 말로 정리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내밀성을 지닌 생애 이야기가 된다. 우리들은 대부분 부지런히, 열심히 산다. 천성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부지런함이 남을 앞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성과 근면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이 성공적으로 생애를 경영하는 예는 없다. 그런데도 내 생애를 이야기해 보라면 이야기 거리가 없어서 허둥거리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맥을 잇지 못하고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맥을 이어가는 것은 시간축과 공간축을 따라 사건을 의미 있게 배열하는 구성작업이다. 시간의 연속성과 공간의 폭과 넓이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世界, die Welt)이다. 세계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고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것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살아가면서 관여하는 일들이 세계의 지평을 이룬다. 그런가 하면 이상(理想)으로 생각하고 추구하는 관념의 영역 또한 세계의 지평을 형성한다. 이처럼 시공간으로 구체화되는 생애의 장면들을 이어나갈 때 이야기는 완결성을 지니게 된다. 신혼 생활을 꿈같다고 한다. 그리고 신혼생활 중에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에 가고 하는 일반적 과정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태어날 때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태실(胎室)에서 어떻게 산고를 치렀고, 똥오줌을 가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기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버이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는 노래를 듣고 눈물을 글썽이더라도, 그 아이의 생애를 혹은 나의 삶을 이야기로 정리하기 어려운 까닭은 시간에 따라 구체성이 마모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구체성을 유지하고 상황에 따라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생애는 싱싱한 감성을 길어올리고 신선한 빛을 발하게 된다. 이처럼 한 인간의 생애는 이야기로 재구성될 때 논리성과 구체성을 띠게 된다. 문학의 영토 안에서의 이야기 우리말에서 이야기라는 용어는 그 사용 범위가 너무 넓어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이야기를 이야기한다고 할 경우, 불어의 재귀동사처럼 쓰이는 용법인데, 앞뒤의 ‘이야기’를 잘 규정하지 않으면 뜻을 알기 어렵다. 그래서 서사문학(敍事文學)이니 소설문학이니 하는 것들로 장르가 분화된다. 문학의 기본장르는 잘 아는 대로 서정, 서사, 극 그리고 교술(敎述, didactic genre, thematic genre) 등으로 구분된다. 서사문학 장르의 원형은 서사시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서양의 서사시는 그리스어 에포스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라는 점, 과거사의 기억이라는 점을 강조할 때 역사와 구분되지 않는다. 극은 물론이고 교술도 때로 이야기를 포함하기 때문에 문학을 크게 가른다면 서정과 서사로 영역이 나뉜다. 서정은 노래고 서사는 이야기이다. 이 둘의 속성을 잘 그린 예를 시인 최두석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시 노래와 이야기는 이렇게 되어 있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이 시의 첫 행은 시의 내용 전체를 아포리즘으로 압축한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노래는 생의 리듬이나 충동과 연관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는 아무래도 격정적이다. 그런데 그 노래는 사리 분별을 헤아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베개에 떨어진 머리카락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건’을 처리하는 데는 선후가 맞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격정을 벗어난 논리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수행된다. 그래서 노래를 주로 하는 시인도 이성적인 삶을 운용하는 데는 이야기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감성과 논리를 주체 안에 통합하면서 진행된다. 이야기는 그러한 삶의 통합성을 지향한다. 시 속에 이야기를 포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시를 포함하는 것은 선례들이 있거니와, 시 쓰는 사연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문학이 가치 있는 체험의 언어적 형상화라는 명제는 가치 있는 삶의 이야기라고 바꾸어도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잘할 줄 아는 사람은 문학을 하는 것이고, 그 가치의 높낮이는 이야기를 거듭하는 데 따라 향상되게 마련이다.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 작가 이상(李箱)은 이런 말을 했다. “비밀이 없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허전하다.” 실감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비밀로 가득한 인생이 얼마나 폭폭하게 살아야 할 것인가 싶기도 하다. 비밀을 털어 놓으면 비밀이 아니다. 비밀을 지키고 있어야 비밀이고, 그 매력은 비공개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비밀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호기심이 일게 마련이다. 나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기 싫은 것은 남의 비밀을 캐거나 훔쳐보고 싶은 욕망의 다른 쪽이다. 나의 치부(恥部)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치부를 드러낸 것이 인생의 진실 일부를 담고 있지 않으면 스캔들로 전락한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자서전에 거짓을 쓰기도 어렵고 자서전에다가 진실을 담보로 부끄러운 이야기를 쓰기도 쉽지 않다. 수필도 마찬가지이다. 수필은 주로 작가의 체험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문학 양식으로 규정된다. 진솔하게 털어 놓기 고약한 소재는 수필에서 제외된다. 우아한 이야기를 시종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동안에 가면이 끼어들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끄러운 이야기에 인생의 진실을 담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이 허구적 상상력(虛構的 想像力, Fictional imagination)이다. 소설을 곧바로 허구라고 하는 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 그러나 허구양식으로 소설을 규정하는 것은 소설의 가능성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뜻을 지닌다. 허구는 신적(神的)인 속성을 지닌다. 신이란 절대자를 뜻한다. 절대자는 모든 것은 초월한다. 쉽게 말하자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 소위(所爲)가 모두 정당성을 지니는 그런 존재가 신이다. 뒤집어 말하면 허구적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서는 현실과 사실의 논리 이외에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 허구는 나의 이야기라도 남의 이야기로 들어 달라는 요청이다. 그리고 그 증거를 묻지 말아 달라는 묵계의 승인이다. 그러니까, 소설에 서술된 내용을 작가의 체험으로 알고 작가의 도덕성을 의문시한다면 소설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니다. 소설 속에 외입과 도박과 마약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것은 작중인물, 허구적 인물의 체험이지 작가의 체험이 아니다. 그러니까 허구는 작가의 현실체험에 대한 강박을 풀어주는 장치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모든 것을 상상해서 소설에 녹여 넣는다고 생각하지 말 일이다. 작가를 신으로 비유하는 것은 비유일 따름이다. 작가는 사회 • 문화적으로 흘러가는 맥락에 의존하는 존재이다. 체험의 일부가 작품 속에 용해(溶解)되어 형상화에 기여할 뿐이지,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쉽게 말해서 자가가 소재를 발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좀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자. 그리하여 작가의 교사적 소명이나 성직자적 의무 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야기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할 일이다. 남을 내세워 세상을 비평하기도 하고, 못된 놈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내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처럼 전개하는 데 소설의 매력이 있다. 연암 박지원도 그의 열하일기 속에 소설을 써 넣으면서 들은 이야기라고, 남의 이야기라고 발명(發明)을 하고 있지 않던가. 법정에 섰더라도 내게 불리한 증언을 안 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 내용이 내 품위를 손상하고 집안을 망신스럽게 하는 경우라면 자서전처럼 쓰되 남의 이야기라고 하라. 방법은 간단하다. 죄를 모두 고백하고 그 죄 그대로 벌을 받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경우라도, 표지에다가 소설(小說)이라고 두 자만 써 넣으면 면책특권을 얻게 된다. 자서전을 쓰고서 소설이라고 장르를 달아 둔다고 해서 벌칙이 내리지 않는다. 허구는 신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나의 세계를 키운다 모든 문학이 그렇듯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이야기를 쓴다. 남의 이야기도 내가 하는 한은 나의 이야기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선택했다는 것이 나의 주체적 판단이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가 된다. 좀 확대 해석을 하자면 남이 남의 이야기를 쓴 소설을 내가 읽을 경우, 그것은 나의 문학이다. 나의 감성과 지성과 윤리감각에 영향을 행사하는 이야기라면 그것은 나의 이야기요, 나의 문학이 아니겠는가. 나의 이야기가 나를 위한 것이란 뜻은 내가 쓰는 이야기가 혹은 소설이 결국 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는 뜻이다. 이광수는 전집 20권으로 표현되는 그의 세계를 구축하고 산 것이다. 채만식은 전집 10권으로 그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다른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들이 소설로 형상화한 삶은 그의 실제 삶의 한편에 혹은 곁에 자리잡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구체적인 몸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 그의 세계를 형성한다면, 작가들은 허구적 상상력의 세계를 따로 지니고 사는 이들이다. 작가가 구축한 허구적 상상력의 세계는 현실세계를 반영한다. 현실 세계의 여러 면모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만큼 작가는 일상을 넘어서는 세계를 경험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하고많은 사건이 등장한다. 작가는 그러한 사건에 관여하는 것이다. 관여 방식은 일정하지 않다. 동조자가 될 수도 있고 비판세력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그리는 세계는 작가가 사는 실제 현실을 구축하는 자료 역할을 한다. 어느 작가의 작품이 많이 읽힌다면 그렇게 작품을 읽는다는 ‘독서현상’이 그 사회를 구성하는 자료가 된다. 그런 예로 마담 보바리를 들 수 있다. 주인공 엠마가 파리 같은 대도시로 나가고 싶은 열망으로 생애를 망치는 것은, 당시 유행하던 삼류소설을 마구 읽은 결과이다. 이는 당대 사회의 면모를 반영한다. 한편으로 마담 보바리를 읽고 그 도덕성을 법정에서 논의하고 하던 것은 당대 사회를 형성하는 소재가 된다. 이처럼 소설로 대표되는 이야기문학은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를 형성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결국 작가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작품 속에서 재구성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리스의 20세기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문학에서 예수, 석가, 성 프란체스코, 콜럼버스, 알렉산더 대왕 등 인류사의 성인이나 영웅에 해당하는 인물을 다루었다. 이는 이 작가가 형성해 나가는 세계가 그러한 성인들의 행적과 연관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작가의 세계와 교합하면서 다시 구축하는 또 다른 세계이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전기를 읽기도 하고, 그가 남긴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읽기도 하면서 이순신의 생애에 공감하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이순신이 되어서, 혹은 이순신과 함께 행동하는 서술자가 되어서 이순신의 행동과 심리와 이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야기를 쓰는 것만큼 절실하지는 않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작가가 구축한 세계이고, 그 세계를 살았다는 점에서 작가의 생애 스펙트럼에 둥두렷이 떠오르는 원광(圓光)과도 같은 아우라이다. 작가는 작품을 씀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키워나가는 사람이다. 소설을 쓰는 것,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작가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한다. 거기에 남의 이야기가 추가되고 대비적으로 의미가 부여된다. 이야기는 삶에 대한 해석 행위이다. 삶의 해석으로서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삶의 지평을 확대해 준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경우, 생애에 논리를 부여해 주고, 구체성을 확충해 주며, 삶의 가치를 증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의 이런 가치를 인정한다면, 우선 자신의 생애부터 정리해 보기 바란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라.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의 의미나 가치는 다시 숙고해볼 일이다. 사람살이는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게 마련이다. 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 나가면서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환희하는 가운데 여러분의 세계는 커간다. 이는 인생의 허무감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매일 터져 나오는 좋지 않은 소식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지만, 아직 우리의 삶은 비교적 평온해 보입니다. 물론 아주 가까운 주변에서도 삶을 건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이웃이 있지만 막상 내 일이 아니면 아주 극소수의 예외적인 문제로 치부해버리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르몽드 티플로마티크에서 만든 르몽드 세계사라는 책을 펼치는 순간 이러한 생각은 180도 바뀝니다. 사회과 부도를 연상하게 하는 이 책을 펼치면 세상을 평온하게 바라보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이고, 또 그런 판단의 첫 기준이 되는 우리나라는 이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평온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 소수인 셈이죠. 오래된 역사가 아닌 오늘의 세계사 이 책은 ‘세계사’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역사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과거인 2000년 전후부터 오늘의 세계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스쳐 듣기라도 했을 법한 것들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살아왔던 것일 뿐입니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우리나라를 주제로 다룬 섹션이 없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아시아의 부상’이라는 제목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아시아에 할당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를 주제로 다룬 부분이 없다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한반도가 주제가 되긴 했지만 주인공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핵과 기아를 중심으로 한 북한입니다. 아직도 서구에서 바라볼 때 우리나라는 중심국이 아닌 주변국가인가 봅니다. 그래도 군데군데 우리나라와 관련한 자료를 보면 부쩍 성장한 우리나라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상위권인 인간계발지수라든가 우리나라 인구의 20배에 달하는 중국 • 인도와 별 차이가 없는 GDP나 해외직접투자액은 가슴 한 구석을 뿌듯하게 해줍니다. 한편, 사회문제를 다룰 때 교육 문제를 빼놓기란 쉽지 않은데 교육에 관한 섹션이 매우 적다는 것도 약간 의외입니다. ‘교육을 희생시키는 개발도상국’이라는 제목으로 다루고는 있지만 교육문제라기 보다는 ‘소득불평등에 따른 후진국과 저소득 계층의 문맹률’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또한 경제문제나 지역갈등, 문화, 여성문제를 이야기할 때 부분적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교육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차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마저도 건강이나 식량문제에 밀려 아주 작은 분량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직 이 세상은 생존의 문제가 시급한 사람이 많고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고 있나 봅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먹고 입는데 아낌이 없고, 교육열이 높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 더 어색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 ‘우리가 해결해야할 전 지구적 이유와 쟁점들’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세상의 많은 문제점을 담고 있는 이 책을 보면, 다음 한 구석이 답답해지고 몇 년 안에 피할 수 없는 재앙에 부딪힐 것 같은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는 많은 도표와 주요현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어 수능이나 논술의 보조교재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제가 독자 여러분이 얻었으면 하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나 보조교재로서의 효율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관심입니다. 세계여행도 일반화되었고,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상이 크게 향상되었음에도 아직 우리가 국제사회에 이바지하는 부분은 턱없이 낮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책 르몽드 세계사를 통해 세상으로 눈을 돌려보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은 어떻고 또 자신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면, 의외의 곳에서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지도 모릅니다. | 강중민 jmkang@kfta.or.kr
스승과 선생 교단에서 평생을 살아온 내가 종종 ‘스승’과 ‘선생’ 문제로 고민해본 적이 있다. 국어사전(새 국어사전, 교학사)에서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있다. 선생, 사군(師君), 함장(函丈), 영어로 master를 첨부해 놓았고 ‘선생’은 ① 스승. teacher, ② 학예에 능한 사람, ③ 교원에 대한 일컬음. sir, ④ 나이나 학식이 맞서거나 그 이상인 사람에 대한 일컬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선생과 스승은 동의어인가 하면서도 석연치 않았다. ‘선생’은 일찍이 저명한 정치가나 사회 인사의 호칭으로 써왔고 최근에는 원로 연예인들에게도 자주 쓰인다. 그렇다면 나도 선생이었으니까 김구 선생이나 김대중 선생의 반열에 서게 된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런 등식은 너무 어색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비약이 되어 묘한 이질감과 자괴감마저 들었다. 재직시절, 주변의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이면 어떻고 스승이면 어떠냐며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쓴다면서 부질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두 단어의 뉘앙스가 다른 것을 느끼며 ‘스승’과 ‘선생’을 동의(同意)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 문화권과는 달리 불교 문화권에서는 일찍이 그것을 구분하고 있었다. 불가(佛家)에서는 스승을 일컬어 ‘열반(涅槃)을 얻게 하는 위대한 사람’이라 해 여래교사를 사부(師傅)라 했고 티베트에서는 ‘라마’라 했다.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傅는 사람이 실타래를 들고 있는 형상에서 온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사를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본에서처럼 선생(せんせ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선생의 날’이라 하지 않고 ‘스승의 날’이라고 한다. 스승, 그는 누구인가 우리의 전통 가치 속에는 스승을 하늘처럼 존중했다. 더구나 선비 사회에서는 서로가 누구의 문하생(門下生)인가를 묻곤 했으며 거기서 연유된 것이 학파(學派)와 학맥(學脈)이었다. 철학자 플루타크는 부모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 있게 하기를 배웠다고 했다. 사사(師事)라는 말도 “스승으로 삼고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다. 진화론을 증명한 찰스 다윈의 뒤에는 스승 헨슬로가 있었고, 삼중고의 장애인 헬렌 켈러의 뒤에는 설리번이라는 스승이 있었으며, 증자(曾子)의 뒤에는 맹자가 있었다. 스승을 두고 “수양산 그늘이 관동팔십리를 간다”라고 한 것이나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청어람(靑於藍)’이라는 명언의 뜻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훌륭한 스승의 문하에서 훌륭한 제자가 태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선생님’만 계셨지 ‘스승’은 없던 것 같고, 나 또한 분명히 ‘선생’일 뿐이었지 ‘스승’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사범교육을 마칠 때까지 교사는 어떤 인격의 소유자여야 하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배운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이 약관의 나이에 교과서 하나만을 들고 교단에 섰다. 가히 무식(無識)과 무지(無知)는 두려움조차 몰랐다. 그 황량(荒凉)한 땅에서 수십 성상 암담하게 살면서 뒤늦게 나 나름대로 터득한 것이 영문자 ‘TEACHER’에 담긴 개똥철학(?)이었다. T는, Technique라고 생각했다. 교사이자 스승은 가르치는 방법은 물론이고 아동을 정신적으로 양육하고 지도하는데 남달리 독특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여겼고 또한 그것이 전문가의 조건이라고 보았다. 어쩌다 집에 놀러 온 엄마의 친구나 가가호호 가정을 방문해 도서와 학습지를 파는 아줌마들이나 학원 강사들도 학교 선생님과 똑같이 가르칠 수 있다면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교사의 지도 능력을 능가한다면 이는 교사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침해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여겼다. 똑같은 구구단을 암기하는 데도 교사가 가르치는 방법과 엄마가 가르치는 방법은 확연히 달라야만 한다는 뜻이다. E는 Excite이다. 매일 교수 • 학습 자료를 인터넷이나 전자 매체에서 제작한 프로그램 같은 공산품에만 의존해 여과 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답습(踏襲)한다면 교사를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음악 시간에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을 모니터에 띄어놓고 아이들보고 따라 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면 전문가이기는커녕 기계에 교수권을 빼앗기고 전쟁에 나가 제대로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투항(投降)해 버린 패장(敗將)과 다를 바 없다. 교사는 날마다, 시간마다, 새로운 교수 방법과 학습자의 흥미와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참신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로 하여금 교수 • 학습 시간에 “야! 요것 봐라!”하는 탄성이 나오게 해야 하고 언제나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신(新)나고 신(神)나고 신(信)나는 장(場)이 되게 해야 한다. 공자도 이르기를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구일신(苟日新)이라 했다.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고 영원히 새로워야만 한다는 뜻이다. A는 Assist이다. 교수 • 학습을 교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자율성을 존중해 학습자 중심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는 사고의 전환, 방법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타율에서부터 자율로의 전환, 교과서로부터 참고서로의 전환, 지도하는 것으로부터 구성하는 것으로의 전환, 교사 중심으로부터 학생 중심으로의 전환, 이끄는 것으로부터 밀어주는 것으로의 전환, 강화로부터 흥미로의 전환이 있어야만 한다. 농구경기에서는 자신이 충분히 득점할 수 있는데도 그 기회를 동료에게 돌려주는 것을 ‘어시스트’라고 한다. 어시스트는 나의 영광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도우며 대리 만족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있을지라도 교사가 전면에 나서서 장(場)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측면에서 어린이에게 어시스트하는 역할을 많이 해야한다. C는 Character이다. 교사는 교사다운 인격과 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가 장사꾼다운 개성을 가지고 있거나 정치꾼다운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교사는 항상 학습자를 생각해야 하고 이들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노심초사(勞心焦思)해야만 한다. 직업을 말하는 영어에는 Job, Work, Profession, Occupation, Vocation, Employment, Business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에 우리들이 생소한 단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부른다’는 뜻의 Calling이다. 교직이 여기에 해당한다. 스승이요, 교사는 단순한 노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한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전문가의 자질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하늘의 부름을 받는 소명(召命)이 없으면 될 수 없는 것이 교사이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는 그에게 특별한 인격과 품성을 요구한다. 어린이들에게 말이나 글로 가르치지 않더라도 선생님의 태도와 행동을 통해 감동할 수 있도록 본(本)을 보여야만 한다. 제자들 앞에서는 바르고 아름다운 차림으로 서야 하며 올곧은 인격 관리를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교직의 불문율이요, 규범이다. 비록 범부(凡夫)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는 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극한의 경지에서도 도덕과 윤리를 저해하는 행위를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상대가 미워도 살인할 수 없으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빵을 훔쳐 먹을 순 없고 아무리 놀고 싶어도 오락실에 드나들 수 없으며 아무리 급하다 할지라도 길에다 방뇨할 수 없다. 교사는 자기 아들딸보다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자신의 영달에 앞서 문제아동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학교 선생님과 학원 강사의 다른 점일지도 모른다. H는 Heart이다. 교사는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몸도 마음조차 가난하고 궁핍할지라도 교사다. 스승은 자기 직업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아무리 남들이 멸시하더라도 자기 직업에 대해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아무리 힘들지라도 교직에 충성을 다할 줄 알아야 한다. 사도(師道)의 길은 헌신의 길이며 보시(布施)의 길이다. 몸과 마음을 태워 몽매한 제자들의 가슴에 촛불을 밝혀야 하고 척박하고 썩어가는 세상에 한 줌의 소금이 되어야만 한다. 교육과정이 천 번을 바뀐다 한들 교사에게 제자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속빈 강정에 불과할 뿐이다. 얼마 전에 강원도 홍천군 내 산간벽지에 있는 C초등학교를 방문했더니 교무실에 가슴 뭉클한 현판이 눈길을 끌었다. ‘평범한 교사는 말로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으로 하고, 수월한 교사는 모범을 보이지만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준다.’ E는 Evaluation이다. 교사는 가르치면서 동시에 평가를 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수시로 진단평가도 하고 특정 기간에 총괄평가도 한다. 이것은 아동의 평가이면서 동시에 자신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어떻게 가르쳤나를 알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아동으로부터, 나아가서는 사회로부터 알게 모르게 자신이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R은 Responsibility이다. 교사는 적어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내에서 교수 • 학습을 수행하는 일이나 아동의 생활지도를 하는 일까지 모든 것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다. 아동의 학습이 부진한 일이나 교우관계가 나쁘거나 나아가서는 정신발달이 지체되는 일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나쁜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거나 순간의 실수를 모면하기 위해 합리화하거나 핑계 대지 말아야 한다. [PAGE BREAK] 나는 어떤 교사인가 44년간, 나는 교단에서 젊었을 땐 열정 한 가지만 있었지 제자에 대한 애정은커녕 판단력이나 분석력도 부족한데다가 제도마저 지식 중심의 입시(入試)라는 현안(懸案)에 매달려 마치 전쟁터 같은 생활을 했다. 스승이 아니라 ‘선생질’을 한 것이다. 많은 시간, 우리 반 아이들은 외워야만 했다. 이유는 불문곡직하고 음악이나 미술 교과마저도 달달 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험 점수가 나쁘면 여지없이 매를 들었고 매일 나약한 아이들의 어깨에 산더미 같은 숙제를 얹어주었다. 독하고 매서우며 점수와 등수에 무지하게 인색한 선생이었다. 그런 내가 더러는 유명 교사로 불려 다녔다. 그 시절은 교사의 자질이나 테크닉은 필요 없었다. 아이들에게 매질을 잘하고 잘 외울 수 있도록 어떤 ‘메커니즘’을 만들어 주기만 하면 유능한 교사였으니까. 그런 모진 세월이 가고 어느 날 문득 이순(耳順)을 넘기면서 직을 물러났을 때에 나의 심신은 물론 인격조차 몹시 피폐해 있었다. 내 평생에 가르친 사람을 헤아린다면 족히 수천 명에 이를 테지만 명절이라고 해야 세배는커녕 눈먼 생선 한 꾸러미 보내는 제자가 한 사람도 없다. 어쩌다 경향 각지에서 졸업생들이 동창회를 한다고 연락이라도 오는 날이면 감히 얼굴을 들고 갈 수가 없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숨어버리기 바쁘다. 나는 실패한 교사였다. 인생도 헛산 것이다. 훗날 내가 죽으면 제자들이 내 묘비 앞에 서서 “참 지독한 선생이었어, 숙제 안 해오면 그날은 죽는 날이었지….”, “왜 그렇게 들들 볶았는지 몰라” 하면서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다. 교직 생활은 물론이고 인성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용렬(庸劣)했다. 그런데 이런 모질고 척박했던 내 마음에 한 가지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무척 귀엽고 예뻐 보인 것이다. 조건 없이 사랑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서로 눈물을 흘기며 두 주먹을 쥐고 싸우는 모습도 귀엽고, 무엇인가 토라져 입술을 삐뚤어 문 채 눈을 흘기는 모습도 예쁘고, 심지어는 바지에 똥을 싼 모습도 예뻤다. 이순(耳順)이라는 나이가 나를 바꾸어 놓은 것이었나, 아니면 이제야 겨우 철이 드는 것인가. 그때부터 나는 지난 일들을 참회했다. 점수 좋은 순으로 사랑을 배분(配分)했던 일이며, 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외우기만 잘하는 아이만을 사랑했던 일이며, 시험지와 책을 팔아서 용돈에 보탠 일이며, 때마다 어머니가 봉투를 가져다주는 아이를 더욱 사랑했던 일 등, 참으로 더럽고 치사하고 수치스럽던 일들이 부유물(浮遊物)처럼 떠올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지식중심의 교육, 입시중심의 교육에 찌들어 모질고 각박하게 지내며 오로지 자기 유익과 영달만을 찾아 교단을 더럽혔던 내가 교감, 교장을 하면서 도덕과 윤리와 인성을 운운했고 교육연구원 연구사, 교육청 장학사를 거쳐 교육부 연구관의 자리까지 올라가 견강부회(牽强附會)하였으니 참으로 기가 찰 일이었다. 이런 인간이 국가백년대계를 섭렵한다 했으니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만도 천우신조(天佑神助)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단에서 겨우 철이 드는가 싶더니 참회할 겨를도 없이 바로 옷을 벗어야만 했다. 교단에서 내가 지은 죄는 아마도 무덤까지 가지고 가서 신 앞에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유명한 주자십회(朱子十悔) 중에도 “교사가 제자들을 잘 못 가르치고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이 없다. 꼭 있어야 할 말이라 여겨 ‘불성교제(不誠敎弟)하면 퇴후회(退後悔)’라는 구절을 만들어 봤다. 묘비에 새길 비문 제삿날에 쓰는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라는 지방(紙榜)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생(生)을 궁극까지 배워서 명덕을 밝히고 마음 본연의 상태, 곧 선신(仙身)의 상태로 화현(化現)하시어 이 자리에 강림하소서’라는 뜻으로 쓴다. 여기서 학생이라는 신분이 눈에 들어온다. 벼슬이나 관직이 없는 사람에게 쓰인다고 하니까 내가 죽으면 ‘현고선생부군신위’로 쓰게 되는 것인가. 아주 어색해진다. 묘지에 가면 ‘○○○之墓’라는 묘비가 있다. ‘인류의 교사 요한 • 하인리히 • 페스탈로치 여기 잠들다.’ 스위스의 페스탈로치 묘비에 새겨 있는 비문이다. 망자(亡者)의 행적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훗날 내 묘비에는 어떤 비문을 남기게 될까. 그날이 가까워지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09년 청소년주간(5.25-31)을 맞아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여 재능과 소질 등 숨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청소년, 학부모, 지도자 등 청소년관련 종사자들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주고 받는 교류의 장으로! △청소년시설, 단체 등 청소년 육성 인프라들이 활성화되고 발전할 수 있는 도약의 장으로! 라는 구호 아래 제5회 청소년 박람회를 대구에서 5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 간 개최하고 있다. 청소년 박람회는 매년 개최되고 있는데 제1~3회는 서울에서, 제4회는 광주에서, 6회 부산에서 개최 될 예정이다. COLORFUL YOUTH! 대한민국 청소년, 세계를 디자인하다! 라는 취지에서 대구에서 개최된 청소년박람회에서는 135개 단체 260여 개의 부스에서 이루어지는 다문화 및 국제교류 또는 친환경체험, 진로․진학 상담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활동 전시관에서는 청소년유해매체 예방과 아동․청소년의 문제관리를 위한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체험활동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외 청소년 국제포럼 및 정책토론회 등 16개 특별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청소년, 교사와 청소년지도자 및 청소년관련 육성인프라에 대한 다양한 정보습득의 기회가 열렸다. 주요 참가부스는 다음과 같다. 기획전시관 1. 다문화 및 국제교류의 장 ○ 대륙별 문화특성 전달 : (사)국제청소년연합 (IYF) ○ 아프리카 어린이들 생활 사진전시 : 아프리카 러브레터 ○ 남북한 문화교류 : 한겨례중고등학교, (사)남북청소년교류연맹 ○ 국제청소년 교류 : 한국로타리청소년연합. ○ 다문화 이해 : 평택대학교 청소년복지학과 다문화청소년동아리, 다문화 체험부스 2. 친환경 체험 ○ 환경문제 안내 및 미래 녹색직업 안내 : 닥터안 자연사랑연구소 ○ 친환경 물품 만들기 : 원경고, 시립동대문청소년수련관, (사)청소년교육센터 ○ 친환경 에너지 전시 체험 : 대구흥사단 ○ 농심함양과 체험활동 : 대구광역시 4-H연합회 3. 진로/진학 ○ Job festival : 대구노동청 ○ 적성 및 진로상담 : (주)라파에듀 평생교육원, (주)적성과 미래, 동서대학교 등 활동 전시관 1. 청소년 유해 매체 예방 ○ 건전한 문화의식 함양 : (재)아르미청소년문화재단, (사)청소년 교육센터 ○ 마약류 및 의약품 오남용에 대한 홍보 : 식품의약품안전청 ○ 금연의 중요성 및 상담 : 대구시 북구보건소 ○ 청소년문제 상담 : 대구한의대 소모임‘너나들이’ ○ 건전한 게임문화 소개 : 서강대 게임교육원 2. 청소년 이색체험, 이색학과 ○ 진로 모색 : 호텔관광, 놀이지도, 식품조리, 미용, 메이크업 등 ○ 미래 산업 체험 : 로봇 제어과, 천체 관측 등 3. 청소년 문제 관리 ○ 현재의 고민 해결 : 청소년 상담원, 청소년 쉼터 등 ○ 이성간의 문제 : 청소년 성 문화센터 등 ○ 자아발견 : 적성검사 등 4. 아동 문제 관리 ○ 실종․학대 상담 : 아동학대예방교육, 실종아동 찾아주기 운동 본부 ○ 예방보호 프로젝트 : 질병관리 본부, 소방 방재청, 생활 안전협회 등 이번 청소년박람회는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따라 일부 활동이 축소되기도 하였으나 영남권에서 최초로 개최된 박람회로 전국에서 다양한 기관이 참석하였으며, 대구지방농동청 등의 협조로 진로 체험박람회가 동시에 개최되어 많은 도움이 된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너무 많은 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구경도 못하고 기다리다가 어쩔수 없이 돌아간 학교가 있으며 EXCO의 1층과 3층을 전시장으로 활용하였지만 홍보가 안되어 1층밖에 구경하지 못하여 너무 안타까웠다(서울에서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였는데). 각급학교에서는 이들 관련기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청소년 활동의 전문분야별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들 관련 기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유익한 정보를 얻기를 권장한다.
며칠 전에 학부모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아프다고 아무런 말도 없이 수업 시간 중에 엎드리고도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않고 게다가 태도면에서 교사가 점수를 감하겠다고 하는 데도 계속 누워있는 자세. 게다가 자식을 두둔하는 전화를 하는 학부모의 처세에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그런 사실을 어떻게 이야기했는지는 몰라도 학부모가 학교에 전화를 하여 수업 시간에 점수를 깎는다고 전화를 하는. 참으로 교사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교사를 생각하기에 교사의 점수까지 참견하는 일이 일어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부모가 학교에 간섭할 일이 있고 없는가를 생각하지도 않고 학교까지 찾아와서 오히려 항의를 할 자세를 취하는 것은 교권 침해를 넘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자식을 맡겨 교육을 올바르게 시켜 달라고 하는 학부모가 오히려 학생의 잘못을 책망하기는커녕 잘못을 두둔하는 자세를 생각해 보노라면 오늘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학부모를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교사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도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 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학교에 와서 교사들의 잘못을 꼬집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학교에 대한 흐름을 알고자 하는 것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자 어디 있겠는가? 오늘의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학교 교사들의 능력 운운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 현실의 교육의 잘못을 바로잡아가야 할 학부모들의 수수방관이 더 잘못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 찾아와서 자기 자식 잘못된 것을 교사에게 바로잡아 줄 것을 더 부탁드리기는커녕 학교에 찾아와 교사들의 고유 권한조차 침해하려고 하는 학부모의 자세는,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시켜 달라고 학교에 맡기고서 해야 할 태도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본래 사교육은 공교육을 보완해 주는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시작되었으나 요즘 사교육이 공교육의 자리를 선점하여 공교육을 흔들고 있다. 이 처럼 사교육은 양적 및 질적으로 공교육을 능가할 정도로 번창하였으며 슬림화된 조직으로 발 빠르게 교육수요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교육의 번창은 결국 학부모의 가계비 부담을 가중시켜 가정경제는 물론 국민경제마저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사교육비 부담이 개인적 측면에서는 교육투자로 인식되지만, 국가사회 전체적으로는 교육생산성 향상과는 달리 교육의 이중적 비용으로 교육비 과다로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 사교육은 질적 뿐만 아니라 이제 양적으로도 공교육을 능가할 정도로 기업화가 되었고, 학생들은 사교육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으며, 학생들의 의식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한 사례로 어떤 초등학생은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느라 학교 숙제는 못했다"고 하거나 "학원을 가야 하니까 청소당번을 못하겠다"고 말한다. 심지어 학원에서 이미 다 배운 내용이라면서 학교수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중․고등학교에서는 ‘학교에서는 자고, 친구 사귀고, 쉬고, 시험을 치는 곳이고 진짜 배우는 곳은 학원에서 배워요.’라고 학생들은 말한다. 이처럼 낮에 학교에서는 자고 밤에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 같은 사교육의 문제를 보다 못한 정부는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 방안이 발표한지 몇일 못가서 철회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미 번창된 사교육 시장이 하루아침에 정부 규제로 절서를 잡긴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80년대 ‘학원단속’ 같은 법규를 실시한 적도 있었지만 수요자의 욕구가 강한 사교육의 문제는 그리 쉽지 해결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평교사 451명, 교장. 교감 115명 등 전국 초․중․고교 교원 587명을 상대로 실시한 '사교육비 경감방안'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인 300명(51.11%)이 사교육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수능시험을 꼽았다. 그리고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는 '내신제도의 절대평가 전환 및 내신 반영비율 축소'에 가장 많았다. 또한 학원 심야학습 금지정책 도입과 관련해선 10명 중 6명 이상이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조사 대상자 중 274명(46.68%)이 '학생의 건강권 및 인권보호를 위해 필요하다', 103명(17.55%)이 '사교육비 경감에 효과가 있다'고 각각 대답했다. 사교육의 문제 해결은 공교육의 신뢰 회복을 통하여 이를 활성화하는 방법 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 그래서 교과부는 지난달에 공교육 활성화를 통한 사교육 없는 학교 정책을 발표하고, 사교육 없는 시범학교로 지정한 곳은 3년 동안 매년 평균 1억5000만 원 지원하여 정규수업을 내실화하고, 방과후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교육시설을 확충하는 등 공교육의 힘을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교육을 하지 않은 데신 학교에서 자율학습, 방과후 공부,특기적성 교육 강화 등 장소만 학원에서 학교라는 것 이외는 별다른 것이 없다. 자못 사교육이 없는 학교가 아니라 정부가 사교육비를 주고 학교가 학원그 자체가 되어버린 느낌도 든다. 지금 우리는 EBS 교육방송을 통하여 과외를 하고 나라이다. 즉 국가가 공적으로 괴외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활동이 온통 대학입시에 쏠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의 사교육 없는 학교정책은 정부가 학교 스스로 ‘돈을 줄 테니 사교육을 줄여라’ 라는 정책이지만, 사실 학교에서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 다만 학생들을 학원보다는 학교에 머물게 하고 스타 학원 강사를 학교로 초빙하여 교육하는 방법밖엔 다른 대안은 없다. 문제는 사교육을 인위적으로 억누르기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공교육을 강화하는 게 정책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 공교육이 학부모, 학생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 사교육 수요가 그만큼 줄어든다. 이 같은 이유에서 교과부는 교원평가를 통해 교육의 질을 향상하고, 학교장에게 권한과 자율성을 확대하며, 특목고의 지필평가 금지, 그리고 학생들이 교과목 교사를 찾아가는 교과교실제를 운영하여 사교육을 줄이는 대책을 내놓았다. 교과교실제는 당장 금년 2학기부터 30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학생들이 학원에 가는 이유가 공교육이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을 못 받기 때문인데 교과교실제와 수준별 수업이 잘되면 사교육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학부모가 사교육을 선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 자식은 남 자식보다 앞서야 한다’는 이기적인 욕망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학교 선생님이 못 가르쳐서 학원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이 잘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학원에서 선행학습으로 이미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다시 공부한다고 할 땐 주의집중이 잘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학습에 임하니 수업시간에 주의집중을 하기보다는 떠들거나 다른 공부 하거나 심지어는 잠자기까지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학입시를 개선하고, 학벌사회를 없애고, 대학평준화를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공교육을 강화해 봐도 사교육의 수요를 줄일 수 없다. 이미 우리나라 학생들은 좋은 내신을 얻기 위해선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라는 이름의 사교육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 학습하기도 전에 학원에서는 선행학습으로 익혀 버리고, 학원의 암기수업이 점수나 내신등급 향상에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였고, 이를 통해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학교공부보다 학원공부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학생들에게 머리속에 심어져 있다. 이와 같이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교육보다 사교육을 선호하는 이유를 보면, 첫째는 공교육의 불신 풍조, 둘째는 고학력 추구의 사회적 병리현상, 셋째는 공교육기관의 열악한 교실환경, 넷째는 학급 내 학생들의 이질성 문제, 다섯째는 공교육의 부실한 교육과정 운영, 여섯째는 점수중심의 대학입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대학입시 제도는 우리나라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의 교육 방향을 결정짓고, 그 방향에 따라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개척하여 확장하여 왔다. 이러한 사교육은 공교육과 차별화하여 학생들에게 개별화되고 전문화된 교육을 하고, 변화되는 입시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교육수요자의 만족도를 높여 사교육 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 그야 말로 소수정예의 학생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개인지도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교육비, 즉 ‘과외비가 많이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부익부 빈익빈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과외비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는 과다한 사교육으로 말미암아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되었다’는 점이다. 최근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학생의 약 40%가 "학원수업이 학교수업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는 사교육으로 인하여 ‘학생들의 여가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중학생이 7시간, 고등학생이 8시간 학교 수업시간을 받고 있으며, 방과 후에도 중학생은 약 3시간, 고등학생은 약 3시간 반 정도 더 공부하고 있다. 넷째는 ‘학생들 간의 과열경쟁이다’. 학생들은 친구들과의 어울림보다는 학교수업 끝나면 대부분 학원으로 가기 바쁘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성적이 떨어져서 보충하는 사교육이 아니라 남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하는 불필요한 사교육이다. 사교육의 해결 방안은 무엇보다 공교육의 내실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교육의 팽창은 공교육의 황폐가 주원인이므로 공교육의 내실화가 사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교사 스스로가 교육개혁의 주체임을 인식하고 책임감을 갖고 학생들과 학부모의 교육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는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올바른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학부모의 잘못된 교육열은 과도한 사교육의 문제를 유발시키고, 결국은 공교육의 불신과 부실로 공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 잊어서는 안된다. 셋째, 대학입학제도의 개선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입시와 맞물려있다. 지금처럼 학원에서 하는 암기식 교육, 점수위주의 교육에서 입학사정관 제도와 같은 학생의 잠재적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입시제도로 개선되면 사교육을 잠재울 수 있다. 넷째, 기업에서 신입사원 채용할 때 출신학교를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고, 성적과 지식위주의 선발방법에서 다양한 면접 중심의 선발할 때 공교육은 재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교육에 대한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논의하였다. 사교육 문제는 한마디로 공교육의 강화가 선행되고, 사교육의 공교육 보완 역할 개선, 대학입시 및 기업의 입사시험의 개선 정책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추진은 당장 그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만 꾸준하게 추진하고 실천될 때 그 효과는 점차적으로 나타나리라 확신한다.
때로는 약소국의 재물로, 당파와 역모사건에 휩싸여, 부왕의 독선이나 야망 때문에, 일반백성보다 못한 처절하고 애달픈 숙명 속에 사라져간 ‘왕이 못된 세자들’- 이들이 분명 한때는 별빛보다 찬란했던 1국의 2인자들이었다. 불행했던 세자들의 삶과 죽음을 재조명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내겐 너무나 강렬했다. 우리 모두 퇴직이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여정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한 직장의 2인자이거나 그 방향에 놓여 있고, 또 가족구성 서열로 볼 때 2인자이거나 그 부모이며 1인자의 자녀 또는 형제이기 때문에. 이 책은 ‘영조실록’ ‘한중록’ 같은 수많은 사료와 단행본 ‘세월이여 왕조여’ 같은 수 십 권의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조선의 세자 27명 중 왕이 되지 못한 12명의 2인자들에 관한 역사이야기이다. 애절하고 때로는 비통했던 생애를 들여다보면 왕조시대 세자의 운명이란 결코 화려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창의적 능력의 발휘나 능동적 이상실현과는 먼 막중한 의무와 복종, 수동적 대리청정이나 모범적 예절 강요의 틈바구니에서 역사의 풍파를 헤쳐가지 못하고 희생된 꽃봉오리였다. 뒤주안에 죽는구나 불쌍한 사도세자/ 꽃피는 청춘도…’ 가요로 친근해진 이름 사도세자, 그에 대해 궁금해서 먼저 읽었다. 조선의 세자들 중 크나큰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태어났지만 그처럼 참혹하고 의혹스런 죽음을 피하지 못한 사연은 어떤지 요술주머니처럼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고 있다. 첫돌 지나자 세자에 책봉되어 유교적 공부에 정진해야 하는 고달픔은 천재의 숙명이라 치고, 처음으로 아버지 영조가 “세자에게 양위하겠다”고 선언하여 엄청난 괴로움을 안긴 것이 다섯 살 때라니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영단이라 해도 너무나 정치적이며 비인간적 교활함인 것이다. 신동이라고 촉망받던 세자는 4색당파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왕 분부 잘 받드는 모범생이 되었다가, 자신의 뜻대로 무엇 하나도 할 수 없는 꼭두각시 문제아로 변한다. 한창 나이에 세자궁에 갇혀 억지로 학문을 익히며 아침저녁 부왕과 모후, 웃어른께 문안하는 것을 비롯해 각종 행사주관과 참석은 요즘 말로 하면 취미, 재능, 장래희망과도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은 당파에 따라 각색이 되고 변질되어 비행으로 낙인찍혀 마침내 쿠데타의 수괴가 된다. 영조는 세자를 정적이자 자신의 왕위를 노리는 역적으로 보았고, 세자는 절망에 빠져 더욱 절대적 고립에 놓이게 되는데, 저자 함규진은 그가 뒤주 속이 아닌 강서원 골방에서 죽었다는 추정을 하면서 사도세자를 숨 막히게 한 것은 ‘뒤주도 골방도 아닌 조선이 만든 위선적이고 경직된 세자제도’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효율적이고 시기와 질투와 모함을 낳게 하는 세자제도는 비민주적 비효율적이고 비교육적, 불공정한 결점투성이 제도였고, 후손이 없었던 많은 경우를 보면 결코 우생학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수백 년 동안 지탱해 왔는지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든다. 갖은 고생 끝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 인조의 의심과 경계심 속에 두 달 만에 죽은 소현세자. 아버지의 벼루에 맞아 사망했는지 독살의 소문은 진실이 아닌지 몰라도 세자의 사후 아내와 아들 셋까지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역사의 흔적은 씻을 수 없는 아픔이다. 지금도 타향살이라면 1년도 지겨운데 타국에 8년간 볼모살이 한 소현세자 이왕은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세자이다. 의안대군 이방석은 조선 최초의 세자이자 살해된 첫 세자요, 역사의 희생자이다. 이복형제들에 의해 죽고 난 후에도 왕자의 난에 관련된 역적에 포함시킬 것인지 아닌지 모호한 처지에 놓였다는데 태종 이방원은 형제들의 죽음과 자신은 무관했다고 변명했던 것이다. 태종의 실제적 맏아들이며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양녕, 그가 왕좌에 연연하지 않고 ‘세종의 위대함을 미리 꿰뚫어 보고 나라와 백성의 행복을 위해 일부러 미친 짓을 해가며 자신보다 나은 동생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준 그 깊은 뜻’에 관한 한, 실록을 꼼꼼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 역사적 인물 중 당시의 참모습을 벗어나 실제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진 ‘전설적 인물’ 중 하나가 양녕대군 이제. 이 밖에도 세조의 맏아들로 세자가 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병마에 희생된 의경세자 이장,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맏아들로 20세에 병사한 순회세자 이부, 영조와 정빈 이씨의 맏아들로 태어나 2년간 세자 노릇하고 사후에 황제 칭호를 받은 효장세자 이행,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문효세자 이향, 순조의 맏아들로 성군의 자질이 남달랐다던 효명세자 이영, 조선의 왕으로는 파격적이었고 세자 교육에도 남달랐던 아버지가 폐위되는 바람에 함께 “새 둥지가 무너지는 통에 아울러 깨지는 새알”처럼 사라져 간 연산군의 폐세자 이황, 광해군의 이질… 비록 왕의 칭호는 얻었지만 우리 모두 조선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영친왕,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략 결혼한 조선의 세자이면서 일본 황실의 일원이었던 정체성이 모호한 인물. 일본군 육군장성의 신분과 조선왕조 전통의 후예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 사이에서 끝내 실어증을 앓아 조선말도 일본말도 못하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민족의 한과 서러움을 각인시켜준 마지막 세자 영친왕, 노년의 삶은 어느 죽음보다 비극적이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30일 학교 체육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회장은 이날 전남 여수에서 개막한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석한 뒤 "일부 학교가 체육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체육을 무시하지 말고 현행 제도가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나친 입시 경쟁으로 체육 과목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청소년들의 체격은 비대해졌지만 체력은 매우 약한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몸이 튼튼해야 다른 일도 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제유도연맹(IJF) 회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 구단주를 지내기도 한 박 회장은 취임 때부터 학교 체육의 활성화를 강조해 왔다. 박 회장은 또 고등학교에서 엘리트 스포츠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운동선수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학생들은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모든 학생을 교실에서 공부만 시키고 있다"며 "고등학생 정도 되면 운동을 직업으로 택하는 학생들은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넓혀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남보다 힘들고 고달픈 운동선수의 길을 걷는 어린 학생선수들의 의지와 꿈을 평가하지 않고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참 안타깝다"며 덧붙였다. 박 회장은 "2월 취임 후 그동안 학교 스포츠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해 왔다"며 "문화체육관광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관계부처와 협조해 제도를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교육청은 전공 교사가 없거나 희망자가 적어 개설하지 못한 고등학교의 선택과목에 대한 원격수업을 8월부터 본격 시작한다고 30일 밝혔다. 강원도교육청은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6억원을 들여 강원교육정보원에 미개설 과목에 대해 원격수업을 할 수 있는 장비 등을 갖추고 8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수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원격수업을 하는 중국어Ⅰ, 지구과학Ⅰ, 경제 등 3개 과목별로 5명씩 도내 교사들로 15명의 강사를 위촉했으며, 원격수업으로 300명의 학생이 혜택을 보게 된다. 이는 현행 선택중심 교육 과정상 고등학교 2,3학년이 선택할 수 있는 81개 과목 중 특정과목에 대한 희망자가 극히 적거나 전공 교사가 없어 과목을 편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원도교육청은 원격수업 과목을 매년 확대할 방침이며 이외의 미개설 과목을 신청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지정한 과목으로 선택을 유도할 방침이다. 강원도교육청은 미개설 과목을 신청한 학생들을 위해 2004년부터 희망 지역별로 3~5개의 학교를 지정해 위탁교육을 했으며 그동안 1천여명이 수업을 받았다. 강원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은 진로 및 수능시험과 밀접하게 연관돼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정상 일부 과목이 편성되지 않아 학생들이 불편을 겪었다"며 "원격수업이 이뤄지면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전에 수학여행단을 태운 버스가 기찻길의 건널목에서 열차와 충돌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희생당한 사건이 있었다.그 이후로 초, 중학교에서는 한동안 수학여행이 사라졌었다. 수학여행 금지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 다시 수학여행을 다녀왔었지만, 중학교 시절에는 수학여행에 관한 추억이 없다. 학교인근으로 소풍만 다녀왔을 뿐이다. 주5일 수업제의 영향으로 소풍을 가는 학교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매년 학교교육계획에 빠지지 않는 것이 수련활동과 체험활동(수학여행)이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는 수학여행이 매우많이 활성화되어있다. 중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을 갈 수 없도록 되어있었으나, 어느때부터인가중학교도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교들이 많아졌다. 해외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해외로 떠나던 수학여행이 국 내,외의 경기침체로 인해 올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자연스럽게 국내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교들이 많아졌는데, 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문제의 진원지는 같은 장소에 많은 학교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의 수학여행 장소로는 제주도가 단연 최고로 꼽힌다. 그런데 제주도는 수학여행지로는 적격지이지만, 육로로는 접근이 어렵다. 따라서 항공편이나 배편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배편은 비용이 저렴한 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 이용하기 어렵다. 특히 수학여행이 2박3일이나 3박4일로 실시되는 학교가 주를 이룬다는 것도 배편을 이용하기 어려운 점이다. 결국 항공편을 이용해야 하는데, 문제는 항공사들의 자세에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려면 최소한 1년전 쯤에 항공편 예약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의 경우는 이런 현상이 더욱더 심하다. 그런데 일찍 예약을 하더라도 편안한 시간대에 편안하게 이용하기 어렵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항공사에서는 당일에 전체 이용학교 인원만큼 항공권 예약을 받고 수학여행 떠나기 1개월 전쯤에 좌석배정과 시간 배정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때문에 오전10시-11시경에 떠나야만 원활한 수학여행이 이루어짐에도 이 시간대에 이용이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한마디로 항공사에서 편한대로 인원을 배정하고, 편한대로 시간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새벽에 학교를 출발해야 하는 경우, 가까운 김포공항을 두고 멀리 인천공항으로 가야하는 경우, 같은 학교임에도 김포와 인천공항으로 분산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항공사 측에서야 별로 손해볼 일이 아니지만, 학교의 입장에서는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한경우는 전세기를 투입할 것으로 가정하고 예약을 받고나서 최종적으로는 정기편만으로 편성하여 피해를 보는 사례도 발생하게 된다. 이럴경우, 학사일정 변경등 수학여행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된다. 한 항공사에 문의한 결과, 이런 문제는 항공사와 여행사의 문제라고 한다. 즉 일선학교와는 직접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은 자기들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항공사의 단체예약업무를 수행하는부서에서는 여행사와만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할인률 등을 정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일선학교와 직접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때문에 결국은 학교에서만 피해를 보는 것이다. 저가항공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원하는 시간대의 항공편을 확보하기 어렵다. 항공사측에서는 올해들어 지난해보다 30%정도의 제주도 수학여행이 폭주하여 어쩔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은 어쩔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미 잡혀진 수학여행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실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학사일정을 바꾸어서라도 실시를 하게 된다. 항공사의 횡포로 볼 수 밖에없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보여진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공사와 학교와의 직접적인 계약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일찍 예약을 해도 원하는 시간대의 항공편을 이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행사 관계자들 역시 불만을 토로한다. 날짜만 정해질 뿐 시간대를 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혹여 시간이 정해져도 출발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용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예약상황에 따라 시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항공사와 여행사의 역학관계가 어떤 구도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길이 없다. 그렇더라도 현재구조를 조금은 바꿀 필요가 있다. 육로를 이용하는 경우의 차량처럼 학교에서 직접 예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단체예약이 직접 어렵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약은 선착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로 알고있다. 따라서 학교별로 예약이 가능하다면 미리미리 예약하여 편리한 시간대에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항공사에서는 펄쩍 뛸 문제이지만, 일선학교 입장에서는 항공사의 횡포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5월 29일 금요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본교 과학동 국어과 교실에서 두 시간 동안 독서토론회가 진행되었다. (가)와 (나)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을 비교서술하고, (가)와 (나) 중 한 관점을 택하여 다른 관점을 비판하고 과학기술을 인식하는 올바른 태도를 서술하라는 문제로 40여명의 학생들은 글을 쓰고 서론의 의견에 대해 토론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학생들은 시군대회를 거쳐 도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미국 기업에 이어 대학들도 투자실적 악화와 기부금 감소 등으로 재정난이 가중되면서 신용등급 하락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 다트머스대학이 지난 주 최고 신용등급인 'AAA' 등급에서 강등당하면서 신용등급이 떨어진 대학의 대열에 합류했다. 신용평가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는 다트머스대학의 투자손실, 기부금 감소, 대규모 채권발행 등을 신용등급 하향 조정의 이유로 들었다. 무디스는 전체적으로 미국 55개 대학에 대해 전망 등급을 '부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서만 20개 대학의 등급을 낮췄다. 무디스의 존 넬슨 이사는 이런 대학들의 등급 하락이 닷컴 거품의 붕괴 때 나타났던 현상에 비유하면서 "이번에는 당시 상황을 능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신용등급의 하향 조정이 가져오는 문제는 바로 차입금리의 상승이다. 금융위기의 타격 때문에 대학들의 재정난이 깊어지면서 차입금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는데, 등급 하락으로 인해 예전보다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조달비용의 증가는 이미 대학 확장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등록금을 인상하는가 하면 급여를 삭감하고 직원을 줄이는 등 타격을 입은 대학들의 재정난을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대학들은 건설공사 등 1회성 프로젝트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곤 했는데 금융위기 이후엔 신용도가 높은 대학들도 일상적인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무디스 집계에 따르면 최근 수 개월간 'AAA' 또는 'AA' 등급의 12개 대학이 일상적인 채무상환이나 지출을 위해 60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차입했다. 하버드와 프린스턴이 모두 유동성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15억달러, 1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다트머스대학의 애덤 켈러 재정.행정담당 부총장은 신용등급 하향 조정 때문에 다음 달 발행예정인 4억5천만달러 규모의 채권에 대해 0.1∼0.2%포인트의 금리를 더 지급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2학년 12명 꼬마들이만든 조기와 서거하신 대통령 할아버지께 쓴 편지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라던 아이들 5월 26일 방과후학교글쓰기 프로그램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1,2학년 17명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는 날이었습니다. 자기 소개서를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과 가장 슬펐던 일, 자기의 장점과 단점, 특기 등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발표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자기 작품을 들고 나와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 재원이가 가장 슬펐던 날이 '대통령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겨우 아홉 살 꼬마에게 그렇게 슬프게 각인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어떤 식으로든지 공부 시간에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보다 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아픈 상처로 남았을 대통령의 서거 사건이니까요. 그래서 오늘 국민장을 치르는 날이라서 아침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바른생활 과목과 연계시켜서 시사 교육도 하고 죽음의 문제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먼저,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하기 위해 태극기 사용을 지도하기 위해 물어보았습니다. 태극기도 없는 아이들 "얘들아, 자기 집에 태극기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볼까?" 12명 중에 단 3명의 아이들만 태극기가 있다는 답변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여러분은 대한민국 사람인데 태극기도 없어요? 오늘 집에 가면 태극기를 꼭 사 주시라고 알림장에 쓰세요." 그런 다음 태극기를 직접 만들어 보게 하고 슬픈 날에 달아야 하는 조기도 함께 만들어 보게 하였습니다. 수학 시간의 길이 재기를 이용하여 깃폭만큼 내려 붙이게 하니 수학 공부도 되었습니다. 나라의 슬픈 날에는 조기를 달아서 마음을 표현하는 거라고, 나라가 있어서 좋은 점을 발표하게 했습니다. 차가운 이성보다 따스한 가슴이 필요해요 그리고나서 우리들은 국민장을 치르는 곳이나 봉하마을에 가서 위로하지 못하니 어떤 방법이 좋은지 물었습니다. 마침 국어 책에서 배운 '마을을 전하는 편지 쓰기'를 생각하며 우리는 돌아가신 대통령 할아버지께 감사와 위로하는 말,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겠노라는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감동시킨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걸 말해 주었습니다. 그 동안의 우리 교육은 차가운 이성을 중시하고 가슴으로 사는 아름다운 마음 교육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보내기보다는 흠을 잡고 몰아부치는 무서운 세상 속에 이 아이들이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며 친구 끼리 서로 아끼는 것부터 예쁘게 사는 모습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새로 전학 온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흉을 보거나 따돌리며 같이 놀아주지 않는 모습, 착한 행동보다 국어 수학 만점 받는 아이들만 대접 받는 교실을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견디기 힘든 일 앞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충분히 지도했습니다. 예민한 사회 문제, 외면할 수 없어요 오늘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정규교육과정 속에는 없지만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엄청난 사회 문제를 교실로 끌어들여 나라의 소중함,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인생인가 하는 철학적 문제, 아름다운 조화, 배려와 같은 덕목을 2학년 수준에 맞게 가르치면서 이 나라의 기둥으로 멋지게 살아갈 이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했습니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그 싹을 키워 나가는 선생으로서 냉정함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가신 분이 바라는 나라의 모습을 위해 싹을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점심 시간에는 밖으로 나가 놀며, "얘, 00아, 우리랑 같이 놀자." 하면서 전학 온 아이를 챙기는 예쁜 아이들 목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금방 깨닫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편견 없이 세상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2학년 아이들의 편지 "대통령 할아버지, 저는 봉하마을에도 못 가서 우리 반 친구들이랑 조기를 만들고 편지를 씁니다. 저도 어른이 되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겠어요. 소방관이 되어서 사람들을 많이 구해 주겠어요. 저는 더 예쁘게 살게요. 덕진초 2학년 서재필" "대통령 할아버지, 돌아가셔서 슬프지만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우리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를 사랑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어요. 내일은 시험인데 글씨도 더 예쁘게 쓸게요. 저를 응원해 주세요. 덕진초 2학년 박사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라던 아홉 살 아이들이 오늘의 이 상처가 곪지 않고 아름다운 진주로 키워 갈 수 있도록 더욱 사랑하고 섬세하게 관찰하며 슬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긴장해야 함을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슬픔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받았을 우리 아이들의 아픔에 보다 교육적이고 발전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생각합니다.
과거도 그랬듯이 미래는 더욱 빠른 정보화 사회로 변화의 물결이 요구되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러니까 구태의연한 우리들의 사고(생각과행동)방식도 과거와 같은 패러다임으로는 새 시대를 살아 갈 수 없으므로 국민 모두의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들의 이기적인 집단의식이나 행동은 국가의 장래를 좀 먹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므로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의식과 행동변화가 요구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받아드리려고 국민들로부터 지탄과 저항을 받으면서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위한 개혁과 혁신을 주도한 지난 정부들의 노력을 재조명 해 보고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식변화는 한 마디로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고, 한 수레바퀴 안에서 공존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개혁은 각종정책을 입안하는 해당기관이 해야 할 일로 제도나 법을 고치거나 제정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혁신은 만들어진 제도나 법을 자기 수준에 맞게 실천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느 국가든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난극복을 하거나 발전된 국가의 원동력은 교육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교육을 개혁하거나 혁신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에서 시도한 교육개혁은 우리의 교육을 앞당기기는커녕 상당기간 후퇴시키는 결과만 남겼다. 그 당시 한국교육은 큰 변화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때 유행했던 말 8판중에는 ‘교장은 미칠 판 ’,‘교감은 눈치판 ’, 교사는 ‘죽을 판 ’‘이판사판’,‘학생은 놀자판 ’“개판‘,‘교실은 난장판’,‘교무실은 싸움판 ’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교육백년지대계를 위한 교육개혁의 방향을 기대할 수 할 수 있었겠는가? 2009년3월19일 안산시민신문에 김재덕/기업가치평가사 (재)경기테크노파크 기술개발지원팀장의 기고문의 내용을 상기해 보면 우리교육 개혁이나 혁신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본문의 내용은 살펴보자 얼마 전 오바마 미 대통령의 한국 교육에 대한 발언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대부분 오바마가 순수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를 칭찬했다기 보다는, 단순히 미국보다 한국이 연간 수업일수가 약 한달 정도 많다는 예를 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주종을 이룬다. 그러면서 우리의 교육현실에 대해 개탄한다. 자율과 창의와는 거리가 먼 척박한 우리의 교육현실과 지나치게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히 교원평가나 학교평가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공교육의 정상화를 부르짖는다. 우리의 교육환경에 너무 문제가 많다는 것이 한결같은 결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체계나 교육환경의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나 미국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갈등과 혼란을 거듭하며 변화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교육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새 술은 새 부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멸된다. 오늘 고객에게 새롭고 신비하게 느껴진 상품이나 서비스도 내일이면 그 감동이 사라지고 얼마 가지 않아 새로운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디지털을 바탕으로 한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완전한 교육체계나 환경을 구현하고 그것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체계나 교육환경의 문제로 인해 새로운 갈등이 유발되고 지속적으로 혼란을 겪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주체들이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감지하고 시의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대학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대학 가운데는 아직도 ‘순수학문’이나 ‘상아탑’을 운운하며,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긴박하게 요구되는 대학의 미래상을 애써 외면하는 곳이 아직도 많다. 대학의 상업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온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학생들은 기업에 취업하기도 어렵지만, 막상 직장을 잡더라도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워 나가야 한다. 그러나 변화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주도해 나가는 선진국의 대학은 다르다. 스웨덴IT 대학의 예를 들어보자. 스톡홀름에서 서북쪽으로 17km 떨어져 있는 66만 평 규모의 시스타(Kista) 사이언스파크. ‘모바일 밸리’로 불리는 이곳은 스웨덴 경제의 심장으로 약 160개국 75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협업이 많은 시스타의 풍토를 닮기라도 하려는 듯 스웨덴왕립공대(KTH)와 스톡홀름대가 2001년 함께 만든 특이한 대학이 바로 IT 대학이다. IT대학은 기업에 연구 인력을 제공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졸업생의 취업률은 100%다. 대학 건물 1층에 있는 식당에서 교수와 기업체 임원이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고, 학생과 기업체 연구원들이 자연스럽게 연구를 주제로 대화를 한다. 산학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기업의 직원이 된 것처럼 아예 그곳 연구소로 출근하고, 그 기업의 컴퓨터와 연구기자재를 마치 소속 연구원인 것처럼 사용한다. 산학협력의 정신은 대학 교육 과정에도 배어 있어서 모든 수업은 현장 위주로 진행된다. 학위 마지막 단계에서 수행한 프로젝트는 민간업체로부터 평가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 선두를 다투고 있는 스웨덴이나 핀란드는 바로 이러한 교육체계와 환경에서 그 원천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달러화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를 주름잡았던 미국은 변화에 민감하지 못했다. 마이클 포터 교수가 지적했듯이, 미국은 교육개혁에 실패했고, 국가적 차원에서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기반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미국에서 꿈을 키워왔던 아시아계의 젊은 연구자들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던 우수한 두뇌들이 이제 각자의 국가로 돌아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주목했던 것이다. 제2의 부흥을 일으켜 다시 한번 초강대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력양성과 교육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미국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스웨덴이나 핀란드와 같은 국가들과 같이 경쟁력 있는 교육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세계적인 석학으로 손꼽히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교수는 “기존의 교육제도를 개선하기보다 아예 교육의 새판을 짜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는 “급변하는 21세기에는 지난 20세기 방식의 교육으로는 희망이 없다”며 “모바일, 네트워크, 리얼타임, 유비쿼터스 개념의 교육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교육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오마에 겐이치 교수가 주장하듯, 메모리(암기)는 모바일로, 커닝 금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피라미드는 네트워크로 바뀌어야 한다. 21세기 국가의 부는 군사력이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 지역의 경쟁력도 지역주민에 의해 결정되고 그 저변에는 여지없이 교육과 문화의 질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고 다양하고 창조적인 문화의 창출과 이를 확대·발전시켜 나가는 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하며 끝을 맺었다.
대학의 여학생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지도자급 여교수는 2%에 그칠 정도로 교수사회에서 심각한 성 불균형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여교수들이 나서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나도선 울산대 교수는 29일 홍익대 와우관에서 '여교수의 역량 강화와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로 열린 `제22회 전국여교수연합회 춘계학술대회'에 앞서 배포한 발제문에서 "지도자급 여교수가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여교수들은 대학과 사회의 리더가 되기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현재 대학의 여학생 비율이 50% 정도인데도 여교수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며 특히 지도자급 여교수는 2%도 안 되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있다"며 이러한 불균형 상태를 해결하는데 여교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제안했다. 그는 여교수들이 가사와 육아에 시달리고 연구실적에 얽매여 성공적인 교수가 되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지도자급 여교수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여성들이 취업, 승진 등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 상황을 언급하며 여교수들이 현재의 불균형적인 상황 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여학생들을 지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오명숙 홍익대 교수는 `여학생 역할모델로서의 여교수'라는 발표문을 통해 "교수와 여학생의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수업은 여학생의 진로 개발에 중요한 요소다. 수업 중 진로 개발에 장애가 되는 사회적, 심리적 부정적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수업 과정에서 여성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예제의 활용, 여성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과제의 개발, 여성의 업적에 대한 조사와 홍보 등의 교수 학습법을 제시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는 `대학운영에서 여교수의 역할'이란 주제문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대학에서 여교수의 행정 참여를 보면 이전보다 보직 여교수의 비율이 많이 증가했지만 아직은 미흡한 상황이다"며 대학 운영에서 여교수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교수들의 의견을 취합해 대학본부에 전달하고 이를 정책에 포함할 수 있는 공식기구의 확대 운영이 필요하고 연구와 교육과 관련해 학내 여성 구성원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에 여교수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