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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약소국의 재물로, 당파와 역모사건에 휩싸여, 부왕의 독선이나 야망 때문에, 일반백성보다 못한 처절하고 애달픈 숙명 속에 사라져간 ‘왕이 못된 세자들’- 이들이 분명 한때는 별빛보다 찬란했던 1국의 2인자들이었다. 불행했던 세자들의 삶과 죽음을 재조명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내겐 너무나 강렬했다. 우리 모두 퇴직이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여정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한 직장의 2인자이거나 그 방향에 놓여 있고, 또 가족구성 서열로 볼 때 2인자이거나 그 부모이며 1인자의 자녀 또는 형제이기 때문에. 이 책은 ‘영조실록’ ‘한중록’ 같은 수많은 사료와 단행본 ‘세월이여 왕조여’ 같은 수 십 권의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조선의 세자 27명 중 왕이 되지 못한 12명의 2인자들에 관한 역사이야기이다. 애절하고 때로는 비통했던 생애를 들여다보면 왕조시대 세자의 운명이란 결코 화려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창의적 능력의 발휘나 능동적 이상실현과는 먼 막중한 의무와 복종, 수동적 대리청정이나 모범적 예절 강요의 틈바구니에서 역사의 풍파를 헤쳐가지 못하고 희생된 꽃봉오리였다. 뒤주안에 죽는구나 불쌍한 사도세자/ 꽃피는 청춘도…’ 가요로 친근해진 이름 사도세자, 그에 대해 궁금해서 먼저 읽었다. 조선의 세자들 중 크나큰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태어났지만 그처럼 참혹하고 의혹스런 죽음을 피하지 못한 사연은 어떤지 요술주머니처럼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고 있다. 첫돌 지나자 세자에 책봉되어 유교적 공부에 정진해야 하는 고달픔은 천재의 숙명이라 치고, 처음으로 아버지 영조가 “세자에게 양위하겠다”고 선언하여 엄청난 괴로움을 안긴 것이 다섯 살 때라니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영단이라 해도 너무나 정치적이며 비인간적 교활함인 것이다. 신동이라고 촉망받던 세자는 4색당파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왕 분부 잘 받드는 모범생이 되었다가, 자신의 뜻대로 무엇 하나도 할 수 없는 꼭두각시 문제아로 변한다. 한창 나이에 세자궁에 갇혀 억지로 학문을 익히며 아침저녁 부왕과 모후, 웃어른께 문안하는 것을 비롯해 각종 행사주관과 참석은 요즘 말로 하면 취미, 재능, 장래희망과도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은 당파에 따라 각색이 되고 변질되어 비행으로 낙인찍혀 마침내 쿠데타의 수괴가 된다. 영조는 세자를 정적이자 자신의 왕위를 노리는 역적으로 보았고, 세자는 절망에 빠져 더욱 절대적 고립에 놓이게 되는데, 저자 함규진은 그가 뒤주 속이 아닌 강서원 골방에서 죽었다는 추정을 하면서 사도세자를 숨 막히게 한 것은 ‘뒤주도 골방도 아닌 조선이 만든 위선적이고 경직된 세자제도’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효율적이고 시기와 질투와 모함을 낳게 하는 세자제도는 비민주적 비효율적이고 비교육적, 불공정한 결점투성이 제도였고, 후손이 없었던 많은 경우를 보면 결코 우생학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수백 년 동안 지탱해 왔는지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든다. 갖은 고생 끝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 인조의 의심과 경계심 속에 두 달 만에 죽은 소현세자. 아버지의 벼루에 맞아 사망했는지 독살의 소문은 진실이 아닌지 몰라도 세자의 사후 아내와 아들 셋까지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역사의 흔적은 씻을 수 없는 아픔이다. 지금도 타향살이라면 1년도 지겨운데 타국에 8년간 볼모살이 한 소현세자 이왕은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세자이다. 의안대군 이방석은 조선 최초의 세자이자 살해된 첫 세자요, 역사의 희생자이다. 이복형제들에 의해 죽고 난 후에도 왕자의 난에 관련된 역적에 포함시킬 것인지 아닌지 모호한 처지에 놓였다는데 태종 이방원은 형제들의 죽음과 자신은 무관했다고 변명했던 것이다. 태종의 실제적 맏아들이며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양녕, 그가 왕좌에 연연하지 않고 ‘세종의 위대함을 미리 꿰뚫어 보고 나라와 백성의 행복을 위해 일부러 미친 짓을 해가며 자신보다 나은 동생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준 그 깊은 뜻’에 관한 한, 실록을 꼼꼼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 역사적 인물 중 당시의 참모습을 벗어나 실제 이상의 존재로 만들어진 ‘전설적 인물’ 중 하나가 양녕대군 이제. 이 밖에도 세조의 맏아들로 세자가 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병마에 희생된 의경세자 이장,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맏아들로 20세에 병사한 순회세자 이부, 영조와 정빈 이씨의 맏아들로 태어나 2년간 세자 노릇하고 사후에 황제 칭호를 받은 효장세자 이행,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난 문효세자 이향, 순조의 맏아들로 성군의 자질이 남달랐다던 효명세자 이영, 조선의 왕으로는 파격적이었고 세자 교육에도 남달랐던 아버지가 폐위되는 바람에 함께 “새 둥지가 무너지는 통에 아울러 깨지는 새알”처럼 사라져 간 연산군의 폐세자 이황, 광해군의 이질… 비록 왕의 칭호는 얻었지만 우리 모두 조선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영친왕,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략 결혼한 조선의 세자이면서 일본 황실의 일원이었던 정체성이 모호한 인물. 일본군 육군장성의 신분과 조선왕조 전통의 후예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 사이에서 끝내 실어증을 앓아 조선말도 일본말도 못하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민족의 한과 서러움을 각인시켜준 마지막 세자 영친왕, 노년의 삶은 어느 죽음보다 비극적이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30일 학교 체육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회장은 이날 전남 여수에서 개막한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석한 뒤 "일부 학교가 체육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체육을 무시하지 말고 현행 제도가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나친 입시 경쟁으로 체육 과목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청소년들의 체격은 비대해졌지만 체력은 매우 약한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몸이 튼튼해야 다른 일도 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제유도연맹(IJF) 회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 구단주를 지내기도 한 박 회장은 취임 때부터 학교 체육의 활성화를 강조해 왔다. 박 회장은 또 고등학교에서 엘리트 스포츠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운동선수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학생들은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모든 학생을 교실에서 공부만 시키고 있다"며 "고등학생 정도 되면 운동을 직업으로 택하는 학생들은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넓혀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남보다 힘들고 고달픈 운동선수의 길을 걷는 어린 학생선수들의 의지와 꿈을 평가하지 않고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참 안타깝다"며 덧붙였다. 박 회장은 "2월 취임 후 그동안 학교 스포츠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해 왔다"며 "문화체육관광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관계부처와 협조해 제도를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교육청은 전공 교사가 없거나 희망자가 적어 개설하지 못한 고등학교의 선택과목에 대한 원격수업을 8월부터 본격 시작한다고 30일 밝혔다. 강원도교육청은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6억원을 들여 강원교육정보원에 미개설 과목에 대해 원격수업을 할 수 있는 장비 등을 갖추고 8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수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원격수업을 하는 중국어Ⅰ, 지구과학Ⅰ, 경제 등 3개 과목별로 5명씩 도내 교사들로 15명의 강사를 위촉했으며, 원격수업으로 300명의 학생이 혜택을 보게 된다. 이는 현행 선택중심 교육 과정상 고등학교 2,3학년이 선택할 수 있는 81개 과목 중 특정과목에 대한 희망자가 극히 적거나 전공 교사가 없어 과목을 편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원도교육청은 원격수업 과목을 매년 확대할 방침이며 이외의 미개설 과목을 신청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지정한 과목으로 선택을 유도할 방침이다. 강원도교육청은 미개설 과목을 신청한 학생들을 위해 2004년부터 희망 지역별로 3~5개의 학교를 지정해 위탁교육을 했으며 그동안 1천여명이 수업을 받았다. 강원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은 진로 및 수능시험과 밀접하게 연관돼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정상 일부 과목이 편성되지 않아 학생들이 불편을 겪었다"며 "원격수업이 이뤄지면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전에 수학여행단을 태운 버스가 기찻길의 건널목에서 열차와 충돌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희생당한 사건이 있었다.그 이후로 초, 중학교에서는 한동안 수학여행이 사라졌었다. 수학여행 금지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 다시 수학여행을 다녀왔었지만, 중학교 시절에는 수학여행에 관한 추억이 없다. 학교인근으로 소풍만 다녀왔을 뿐이다. 주5일 수업제의 영향으로 소풍을 가는 학교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매년 학교교육계획에 빠지지 않는 것이 수련활동과 체험활동(수학여행)이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는 수학여행이 매우많이 활성화되어있다. 중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을 갈 수 없도록 되어있었으나, 어느때부터인가중학교도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교들이 많아졌다. 해외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해외로 떠나던 수학여행이 국 내,외의 경기침체로 인해 올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자연스럽게 국내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교들이 많아졌는데, 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문제의 진원지는 같은 장소에 많은 학교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의 수학여행 장소로는 제주도가 단연 최고로 꼽힌다. 그런데 제주도는 수학여행지로는 적격지이지만, 육로로는 접근이 어렵다. 따라서 항공편이나 배편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배편은 비용이 저렴한 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 이용하기 어렵다. 특히 수학여행이 2박3일이나 3박4일로 실시되는 학교가 주를 이룬다는 것도 배편을 이용하기 어려운 점이다. 결국 항공편을 이용해야 하는데, 문제는 항공사들의 자세에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려면 최소한 1년전 쯤에 항공편 예약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의 경우는 이런 현상이 더욱더 심하다. 그런데 일찍 예약을 하더라도 편안한 시간대에 편안하게 이용하기 어렵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항공사에서는 당일에 전체 이용학교 인원만큼 항공권 예약을 받고 수학여행 떠나기 1개월 전쯤에 좌석배정과 시간 배정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때문에 오전10시-11시경에 떠나야만 원활한 수학여행이 이루어짐에도 이 시간대에 이용이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한마디로 항공사에서 편한대로 인원을 배정하고, 편한대로 시간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새벽에 학교를 출발해야 하는 경우, 가까운 김포공항을 두고 멀리 인천공항으로 가야하는 경우, 같은 학교임에도 김포와 인천공항으로 분산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항공사 측에서야 별로 손해볼 일이 아니지만, 학교의 입장에서는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한경우는 전세기를 투입할 것으로 가정하고 예약을 받고나서 최종적으로는 정기편만으로 편성하여 피해를 보는 사례도 발생하게 된다. 이럴경우, 학사일정 변경등 수학여행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된다. 한 항공사에 문의한 결과, 이런 문제는 항공사와 여행사의 문제라고 한다. 즉 일선학교와는 직접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은 자기들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항공사의 단체예약업무를 수행하는부서에서는 여행사와만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할인률 등을 정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일선학교와 직접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때문에 결국은 학교에서만 피해를 보는 것이다. 저가항공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원하는 시간대의 항공편을 확보하기 어렵다. 항공사측에서는 올해들어 지난해보다 30%정도의 제주도 수학여행이 폭주하여 어쩔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결국은 어쩔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미 잡혀진 수학여행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실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학사일정을 바꾸어서라도 실시를 하게 된다. 항공사의 횡포로 볼 수 밖에없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보여진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공사와 학교와의 직접적인 계약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일찍 예약을 해도 원하는 시간대의 항공편을 이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여행사 관계자들 역시 불만을 토로한다. 날짜만 정해질 뿐 시간대를 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혹여 시간이 정해져도 출발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용학생들과 일반인들의 예약상황에 따라 시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항공사와 여행사의 역학관계가 어떤 구도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길이 없다. 그렇더라도 현재구조를 조금은 바꿀 필요가 있다. 육로를 이용하는 경우의 차량처럼 학교에서 직접 예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단체예약이 직접 어렵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약은 선착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로 알고있다. 따라서 학교별로 예약이 가능하다면 미리미리 예약하여 편리한 시간대에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항공사에서는 펄쩍 뛸 문제이지만, 일선학교 입장에서는 항공사의 횡포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5월 29일 금요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본교 과학동 국어과 교실에서 두 시간 동안 독서토론회가 진행되었다. (가)와 (나)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을 비교서술하고, (가)와 (나) 중 한 관점을 택하여 다른 관점을 비판하고 과학기술을 인식하는 올바른 태도를 서술하라는 문제로 40여명의 학생들은 글을 쓰고 서론의 의견에 대해 토론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학생들은 시군대회를 거쳐 도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미국 기업에 이어 대학들도 투자실적 악화와 기부금 감소 등으로 재정난이 가중되면서 신용등급 하락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 다트머스대학이 지난 주 최고 신용등급인 'AAA' 등급에서 강등당하면서 신용등급이 떨어진 대학의 대열에 합류했다. 신용평가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는 다트머스대학의 투자손실, 기부금 감소, 대규모 채권발행 등을 신용등급 하향 조정의 이유로 들었다. 무디스는 전체적으로 미국 55개 대학에 대해 전망 등급을 '부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서만 20개 대학의 등급을 낮췄다. 무디스의 존 넬슨 이사는 이런 대학들의 등급 하락이 닷컴 거품의 붕괴 때 나타났던 현상에 비유하면서 "이번에는 당시 상황을 능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신용등급의 하향 조정이 가져오는 문제는 바로 차입금리의 상승이다. 금융위기의 타격 때문에 대학들의 재정난이 깊어지면서 차입금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는데, 등급 하락으로 인해 예전보다 더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조달비용의 증가는 이미 대학 확장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등록금을 인상하는가 하면 급여를 삭감하고 직원을 줄이는 등 타격을 입은 대학들의 재정난을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대학들은 건설공사 등 1회성 프로젝트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곤 했는데 금융위기 이후엔 신용도가 높은 대학들도 일상적인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무디스 집계에 따르면 최근 수 개월간 'AAA' 또는 'AA' 등급의 12개 대학이 일상적인 채무상환이나 지출을 위해 60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차입했다. 하버드와 프린스턴이 모두 유동성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15억달러, 1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다트머스대학의 애덤 켈러 재정.행정담당 부총장은 신용등급 하향 조정 때문에 다음 달 발행예정인 4억5천만달러 규모의 채권에 대해 0.1∼0.2%포인트의 금리를 더 지급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2학년 12명 꼬마들이만든 조기와 서거하신 대통령 할아버지께 쓴 편지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라던 아이들 5월 26일 방과후학교글쓰기 프로그램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1,2학년 17명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는 날이었습니다. 자기 소개서를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과 가장 슬펐던 일, 자기의 장점과 단점, 특기 등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공부를 하였습니다. 발표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자기 작품을 들고 나와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반 재원이가 가장 슬펐던 날이 '대통령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겨우 아홉 살 꼬마에게 그렇게 슬프게 각인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어떤 식으로든지 공부 시간에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보다 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아픈 상처로 남았을 대통령의 서거 사건이니까요. 그래서 오늘 국민장을 치르는 날이라서 아침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바른생활 과목과 연계시켜서 시사 교육도 하고 죽음의 문제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먼저,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하기 위해 태극기 사용을 지도하기 위해 물어보았습니다. 태극기도 없는 아이들 "얘들아, 자기 집에 태극기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볼까?" 12명 중에 단 3명의 아이들만 태극기가 있다는 답변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여러분은 대한민국 사람인데 태극기도 없어요? 오늘 집에 가면 태극기를 꼭 사 주시라고 알림장에 쓰세요." 그런 다음 태극기를 직접 만들어 보게 하고 슬픈 날에 달아야 하는 조기도 함께 만들어 보게 하였습니다. 수학 시간의 길이 재기를 이용하여 깃폭만큼 내려 붙이게 하니 수학 공부도 되었습니다. 나라의 슬픈 날에는 조기를 달아서 마음을 표현하는 거라고, 나라가 있어서 좋은 점을 발표하게 했습니다. 차가운 이성보다 따스한 가슴이 필요해요 그리고나서 우리들은 국민장을 치르는 곳이나 봉하마을에 가서 위로하지 못하니 어떤 방법이 좋은지 물었습니다. 마침 국어 책에서 배운 '마을을 전하는 편지 쓰기'를 생각하며 우리는 돌아가신 대통령 할아버지께 감사와 위로하는 말,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겠노라는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감동시킨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걸 말해 주었습니다. 그 동안의 우리 교육은 차가운 이성을 중시하고 가슴으로 사는 아름다운 마음 교육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보내기보다는 흠을 잡고 몰아부치는 무서운 세상 속에 이 아이들이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며 친구 끼리 서로 아끼는 것부터 예쁘게 사는 모습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새로 전학 온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흉을 보거나 따돌리며 같이 놀아주지 않는 모습, 착한 행동보다 국어 수학 만점 받는 아이들만 대접 받는 교실을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견디기 힘든 일 앞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충분히 지도했습니다. 예민한 사회 문제, 외면할 수 없어요 오늘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정규교육과정 속에는 없지만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엄청난 사회 문제를 교실로 끌어들여 나라의 소중함,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인생인가 하는 철학적 문제, 아름다운 조화, 배려와 같은 덕목을 2학년 수준에 맞게 가르치면서 이 나라의 기둥으로 멋지게 살아갈 이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했습니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그 싹을 키워 나가는 선생으로서 냉정함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가신 분이 바라는 나라의 모습을 위해 싹을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오늘 점심 시간에는 밖으로 나가 놀며, "얘, 00아, 우리랑 같이 놀자." 하면서 전학 온 아이를 챙기는 예쁜 아이들 목소리가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금방 깨닫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편견 없이 세상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2학년 아이들의 편지 "대통령 할아버지, 저는 봉하마을에도 못 가서 우리 반 친구들이랑 조기를 만들고 편지를 씁니다. 저도 어른이 되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겠어요. 소방관이 되어서 사람들을 많이 구해 주겠어요. 저는 더 예쁘게 살게요. 덕진초 2학년 서재필" "대통령 할아버지, 돌아가셔서 슬프지만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우리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를 사랑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어요. 내일은 시험인데 글씨도 더 예쁘게 쓸게요. 저를 응원해 주세요. 덕진초 2학년 박사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이라던 아홉 살 아이들이 오늘의 이 상처가 곪지 않고 아름다운 진주로 키워 갈 수 있도록 더욱 사랑하고 섬세하게 관찰하며 슬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긴장해야 함을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슬픔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받았을 우리 아이들의 아픔에 보다 교육적이고 발전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생각합니다.
과거도 그랬듯이 미래는 더욱 빠른 정보화 사회로 변화의 물결이 요구되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러니까 구태의연한 우리들의 사고(생각과행동)방식도 과거와 같은 패러다임으로는 새 시대를 살아 갈 수 없으므로 국민 모두의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들의 이기적인 집단의식이나 행동은 국가의 장래를 좀 먹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므로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의식과 행동변화가 요구된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받아드리려고 국민들로부터 지탄과 저항을 받으면서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위한 개혁과 혁신을 주도한 지난 정부들의 노력을 재조명 해 보고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의식변화는 한 마디로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고, 한 수레바퀴 안에서 공존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개혁은 각종정책을 입안하는 해당기관이 해야 할 일로 제도나 법을 고치거나 제정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혁신은 만들어진 제도나 법을 자기 수준에 맞게 실천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느 국가든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난극복을 하거나 발전된 국가의 원동력은 교육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교육을 개혁하거나 혁신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에서 시도한 교육개혁은 우리의 교육을 앞당기기는커녕 상당기간 후퇴시키는 결과만 남겼다. 그 당시 한국교육은 큰 변화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때 유행했던 말 8판중에는 ‘교장은 미칠 판 ’,‘교감은 눈치판 ’, 교사는 ‘죽을 판 ’‘이판사판’,‘학생은 놀자판 ’“개판‘,‘교실은 난장판’,‘교무실은 싸움판 ’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교육백년지대계를 위한 교육개혁의 방향을 기대할 수 할 수 있었겠는가? 2009년3월19일 안산시민신문에 김재덕/기업가치평가사 (재)경기테크노파크 기술개발지원팀장의 기고문의 내용을 상기해 보면 우리교육 개혁이나 혁신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본문의 내용은 살펴보자 얼마 전 오바마 미 대통령의 한국 교육에 대한 발언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대부분 오바마가 순수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체계를 칭찬했다기 보다는, 단순히 미국보다 한국이 연간 수업일수가 약 한달 정도 많다는 예를 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주종을 이룬다. 그러면서 우리의 교육현실에 대해 개탄한다. 자율과 창의와는 거리가 먼 척박한 우리의 교육현실과 지나치게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히 교원평가나 학교평가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공교육의 정상화를 부르짖는다. 우리의 교육환경에 너무 문제가 많다는 것이 한결같은 결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체계나 교육환경의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나 미국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갈등과 혼란을 거듭하며 변화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교육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새 술은 새 부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멸된다. 오늘 고객에게 새롭고 신비하게 느껴진 상품이나 서비스도 내일이면 그 감동이 사라지고 얼마 가지 않아 새로운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디지털을 바탕으로 한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완전한 교육체계나 환경을 구현하고 그것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체계나 교육환경의 문제로 인해 새로운 갈등이 유발되고 지속적으로 혼란을 겪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주체들이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감지하고 시의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대학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대학 가운데는 아직도 ‘순수학문’이나 ‘상아탑’을 운운하며,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긴박하게 요구되는 대학의 미래상을 애써 외면하는 곳이 아직도 많다. 대학의 상업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온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학생들은 기업에 취업하기도 어렵지만, 막상 직장을 잡더라도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워 나가야 한다. 그러나 변화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주도해 나가는 선진국의 대학은 다르다. 스웨덴IT 대학의 예를 들어보자. 스톡홀름에서 서북쪽으로 17km 떨어져 있는 66만 평 규모의 시스타(Kista) 사이언스파크. ‘모바일 밸리’로 불리는 이곳은 스웨덴 경제의 심장으로 약 160개국 75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협업이 많은 시스타의 풍토를 닮기라도 하려는 듯 스웨덴왕립공대(KTH)와 스톡홀름대가 2001년 함께 만든 특이한 대학이 바로 IT 대학이다. IT대학은 기업에 연구 인력을 제공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졸업생의 취업률은 100%다. 대학 건물 1층에 있는 식당에서 교수와 기업체 임원이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고, 학생과 기업체 연구원들이 자연스럽게 연구를 주제로 대화를 한다. 산학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학생들은 기업의 직원이 된 것처럼 아예 그곳 연구소로 출근하고, 그 기업의 컴퓨터와 연구기자재를 마치 소속 연구원인 것처럼 사용한다. 산학협력의 정신은 대학 교육 과정에도 배어 있어서 모든 수업은 현장 위주로 진행된다. 학위 마지막 단계에서 수행한 프로젝트는 민간업체로부터 평가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 선두를 다투고 있는 스웨덴이나 핀란드는 바로 이러한 교육체계와 환경에서 그 원천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달러화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를 주름잡았던 미국은 변화에 민감하지 못했다. 마이클 포터 교수가 지적했듯이, 미국은 교육개혁에 실패했고, 국가적 차원에서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기반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미국에서 꿈을 키워왔던 아시아계의 젊은 연구자들을 비롯하여 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던 우수한 두뇌들이 이제 각자의 국가로 돌아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주목했던 것이다. 제2의 부흥을 일으켜 다시 한번 초강대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력양성과 교육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미국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스웨덴이나 핀란드와 같은 국가들과 같이 경쟁력 있는 교육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세계적인 석학으로 손꼽히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교수는 “기존의 교육제도를 개선하기보다 아예 교육의 새판을 짜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는 “급변하는 21세기에는 지난 20세기 방식의 교육으로는 희망이 없다”며 “모바일, 네트워크, 리얼타임, 유비쿼터스 개념의 교육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교육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오마에 겐이치 교수가 주장하듯, 메모리(암기)는 모바일로, 커닝 금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피라미드는 네트워크로 바뀌어야 한다. 21세기 국가의 부는 군사력이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 지역의 경쟁력도 지역주민에 의해 결정되고 그 저변에는 여지없이 교육과 문화의 질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고 다양하고 창조적인 문화의 창출과 이를 확대·발전시켜 나가는 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하며 끝을 맺었다.
대학의 여학생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지도자급 여교수는 2%에 그칠 정도로 교수사회에서 심각한 성 불균형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여교수들이 나서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나도선 울산대 교수는 29일 홍익대 와우관에서 '여교수의 역량 강화와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로 열린 `제22회 전국여교수연합회 춘계학술대회'에 앞서 배포한 발제문에서 "지도자급 여교수가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여교수들은 대학과 사회의 리더가 되기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현재 대학의 여학생 비율이 50% 정도인데도 여교수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며 특히 지도자급 여교수는 2%도 안 되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있다"며 이러한 불균형 상태를 해결하는데 여교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제안했다. 그는 여교수들이 가사와 육아에 시달리고 연구실적에 얽매여 성공적인 교수가 되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지도자급 여교수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여성들이 취업, 승진 등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 상황을 언급하며 여교수들이 현재의 불균형적인 상황 때문에 좌절하지 않도록 여학생들을 지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오명숙 홍익대 교수는 `여학생 역할모델로서의 여교수'라는 발표문을 통해 "교수와 여학생의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수업은 여학생의 진로 개발에 중요한 요소다. 수업 중 진로 개발에 장애가 되는 사회적, 심리적 부정적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수업 과정에서 여성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예제의 활용, 여성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과제의 개발, 여성의 업적에 대한 조사와 홍보 등의 교수 학습법을 제시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는 `대학운영에서 여교수의 역할'이란 주제문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대학에서 여교수의 행정 참여를 보면 이전보다 보직 여교수의 비율이 많이 증가했지만 아직은 미흡한 상황이다"며 대학 운영에서 여교수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교수들의 의견을 취합해 대학본부에 전달하고 이를 정책에 포함할 수 있는 공식기구의 확대 운영이 필요하고 연구와 교육과 관련해 학내 여성 구성원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에 여교수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은 외로움을 달래기에 제격이었다. 나에게 재미를 주고 앎의 세계로 이끌었다. 고등학교 때 잿빛 가슴앓이를 심하게 할 때도 책과 함께 했다. 그때 공부는 멀리 가 있었고, 감성도 푸석푸석하게 메마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책은 친구이고, 연인이었다. 책 읽기는 대학의 학과 선택도 쉽게 했다. 국어교육과에 갔다. 그리고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평생 책에 의지하고 산다. 지금도 책이 아니면 한 걸음도 못나가는 어린아이다. 책을 들면 일상과 단절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마음도 편안해진다. 책 앞에서는 몸은 순결해지고, 나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책을 들면 미지에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인다. 최근에도 나는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라는 책을 만나고 마음이 한없이 부유해졌다. 이황은 경북 예안현(오늘날의 안동시)에서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다. 이황은 열두 살 때부터 숙부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그는 1528년(중종 23)에 소과에 입격하고, 승진을 거듭했다. 사화가 일어나자 화를 입어 한때 파직되었다가 복직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가 학문에 몰두하였다. 그는 ‘주자전서(朱子全書)’를 읽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마침내 ‘동방의 주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1555년에는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지어 학문과 사색의 생활을 계속하였다. 이이(李珥)가 그를 방문한 것도 이때의 일이며, 명종이 화공(畵工)에 명하여 도산(陶山)의 경치를 그려오게 하여 완상(玩賞)한 것도 이때이다. 그의 사상은 50~60의 나이에 완성되었는데, 업적도 중요한 것은 모두 이 기간에 되었다. 특히 기대승(奇大升)과 문답한 ‘사단칠정분리기서(四端七情分理氣書)’와 같은 것은 그의 대표적인 명저이다. 이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은 한국 유학자로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을 만큼 중요한 사상이다. 그는 철학적 사색을 학문의 출발점으로 하고,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학문에 임하여 어디까지나 독단과 경솔을 배격하였다. 그는 우주 만물은 이(理)와 기(氣)의 이원적 요소로 구성되어 그 중에 하나라도 결핍되면 우주의 만상을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황의 학문의 근본 입장은 진리를 이론에서 찾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찾으려고 했다. 지(知)와 행(行)의 일치를 주장, 그 기본이 되는 것이 성(誠)이요, 그에 대한 노력으로서 ‘경’(敬)이 있을 뿐이라 하였다. 그는 이 경을 70여 생애를 통하여 실천했다. 퇴계 이황은 당대를 뛰어넘어 우리 겨레의 스승으로 추앙받는다. 그의 철학적 업적도 학계에는 이미 많이 소개되어 있다. 퇴계는 돈에 인물상이 있는 것처럼 일반인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에서는 학자 이황보다 인간 이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편지에는 학문을 하는 자세는 물론이고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인간으로서의 고뇌까지 담겨 있다. 특히 아버지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따뜻함이 느껴진다. 퇴계는 준(寯)이라는 이름을 가진 맏아들과 둘째 아들 채(寀)를 뒀다. 이 책에는 이황이 조정에서 벼슬살이 하면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많다. 고향에 돌아와 있을 때는 반대로 벼슬길에 나간 준에게 보낸 편지들도 있다. 편지에서 퇴계는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학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주 말하고 있다. ‘독서에 뜻을 세울 것, 매일 부지런히 공부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묻고, 학업을 그만두고 게으름을 피우며 세월을 보내고 있지 않는지 걱정’을 하고 있다. 아들 내외가 풍기를 찾아오는 일에 대해 큰 가마를 타지 말 것과 군수가 사택에서 거느리는 종은 정해져 있으니 여종을 데리고 오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퇴계의 검소함과 공직자의 청렴한 자세를 느낄 수 있다. 며느리 병을 걱정하고, 흉년 걱정, 집을 증축하는 일, 손자의 이름 짓기도 편지를 이용했다. 자식이 부모 모시는 도리를 말하고, 처가에 얹혀사는 아들에게는 좋지 않다고 타이르고 있다. 계모상도 친모상같이 지내라며 자식들에게 인간된 도리를 가르치기도 했다. 목화 따는 일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보리와 밀이 아직 여물지 않았는데, 날이 가문 기미가 있으니 더욱 근심이 된다며 농사까지 세심한 마음을 보였다. 퇴계는 집을 떠나 벼슬살이를 하면서 집을 챙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편지다. 편지는 하고 싶은 말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할 수 있다. 또한 편지는 완곡하게 혹은 강하게 말할 수 있어서 심중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퇴계는 편지로 자식을 가르치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생활인이었다. 21세기는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익숙한 시대다. 빠른 속도감 등이 편지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는 내밀한 감정 전달이 쉽지 않다. 기계적이고 허전한 느낌이 있다. 글쓴이의 정성도 확인할 길이 없다. 편지는 따뜻한 낱말과 그리움이 가득한 사연을 보낼 수 있다. 편지는 가슴 속 이야기까지 전할 수 있는 문화이다. 요즘 휴대폰 문자나 이모티콘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고 있는데,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통해서 마음을 전해보라. 옛 것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퇴계의 편지처럼 영원히 책으로도 남을 수 있다.
지구상에는 매일 1,000명의 사람들이 자살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살하는 사연 또한 하루에 1,000가지나 되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가롯 유다의 액사자살(목매달아 죽음), 마릴린 먼로의 약물자살, 헤밍웨이의 엽총자살, 이준 열사의 할복자살,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 연예인들의 비관자살과 수많은 의문의 자살까지 그 사연들은 다양하고 또 기구하다. 우리나라는 90초마다 한 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42분마다 한 명씩 죽는다. 하루 평균 34명, 연간 1만 2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오죽하면 북한에서 남한에서의 자살문제를 심각하게 보도할 정도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지금 자살 중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과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살 뒤에 청소년의 모방자살이 잇따라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는 연인 로테와 결별한 뒤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소설이 발간되자, 베스트셀러가 됐고 유럽에서 소설 속의 베르테르를 모방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때부터 어떤 영향력 있는 인물이 자살하거나 죽었을 경우, 죽음을 모방하는 자살 바이러스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Werther syndrome)’라 부른다. 유명인의 자살에서 오는 동조 의식이 자신의 자살을 합리화하는 효과를 나타내 죽음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2008. 10. 5)에 의하면 유명인이 자살한 직후 자살 사망자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달에는 전달에 비해 남성 자살자수가 16%나 증가했으며, 배우 이은주 씨가 자살한 한 달 사이에 하루 평균 0.84명에서 2.13명, 특히 동일한 방법의 여성 자살자는 2배 이상 급증한 것은 모방 자살의 증거다. 탤런트 안재환 씨의 자살, 미국의 록스타 앨비스 프레슬리의 죽음, 홍콩의 배우 장국영과 일본의 스타 오카다 유키코의 자살 등 유명인의 죽음 직후 10대 청소년 등 많은 사람들이 잇달아 동조 자살했다는 기록은 모두 명백한 ‘베르테르 효과’다. 따라서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는가”라는 동정론이나 개인에게도 자살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논란에 관계없이 자살은 또 다른 죽음을 부른다는 점에서 무서운 ‘사회의 전염병’이다. 자살은 극단적으로 개인화 되고 비인간화 되어 무기력 상태로 치닫는 사회에서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절망감과 궁극적 무기력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자책감이나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개인의 자살로 죄 값이 덮어지거나 명예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유명인의 자살은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 사회 차원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사회병리’ 현상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자살충동을 느낄 만큼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저마다 안고 있는 삶의 무게도 다를 뿐 아니라 똑같은 어려움과 고통을 놓고도 사람에 따라서 해결하는 방법이나 견딜 수 있는 능력도 다른 법이다. 문제는 예전에는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금기시됐던 자살이 요즘엔 사람들의 입에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면서 그리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연이야 어찌되었든 자살은 비교훈적이고 자기모순으로 어떤 논리로도 객관화될 수 없다. 본인은 물론 살아남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치유할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자살,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하는 이유다.
학교에 있을 때 자주 신발을 분실했다, 책을 잃어버렸다. 돈이 없어졌다,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등 각종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많이 받게 된다. 학교 안에서 이러한 도난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외부의 소행일수도 있겠지만 내부의 같은 학생들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학교 안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까?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계속 해야 한다. 명심보감에 “窒慾如防水(질욕여방수)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욕심 막기를 큰 물을 막는 것 같이 하라는 말이다. 욕심을 막아야 한다. 窒慾(질욕)을 해야 한다. 질욕이 바로 욕심을 막는다는 뜻 아닌가? 욕심이 떠오르면 窒慾(질욕)을 떠올려야 한다. 욕심은 끝이 없다. 욕심이 쌓이면 터지게 되어 있다.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도 망하게 한다. 홍수가 나면 어떻게 되나? 둑이 터지면 그 주변의 모든 집과 재산이 모두 피해를 입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욕심이 쌓이고 쌓이면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어 있다. 적은 욕심부터 차단해야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전에 녹여버려야 한다. 욕심이 생길 때마다 즉각 녹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죽고 남도 죽인다는 말을 계속 되뇌어야 한다. 防水(방수)는 물을 막는다는 뜻이다. 비가 왔을 때 집에 물이 새어 들어오면 어떻게 되나? 얼룩을 남기고 나무를 썩게 만들고 집을 망가뜨리고 말지 않는가? 욕심도 아예 물을 막듯이 막아야 자신을 얼룩지지 않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물은 작은 물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여기는 큰 물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욕심을 큰 물을 막듯이 막아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적은 욕심도 큰 물을 막듯이 잘 막아야 자신을 보호하게 되고 이웃도 보호하게 된다. 명품 신발을 꼭 신어야 사는 재미가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옛 어른들을 생각해 보라. 명품 신발이 아니라 보통 신발도 신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신발을 신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래도 사는 재미가 있었고 행복하게 살아온 것을 보지 않는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욕심이 사라지게 된다. 남이 신는 것이 명품이다 할지라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내가 신고 있는 일반화가 더 좋다는 생각을 가지면 욕심을 사라지고 나쁜 생각도 버리게 된다. 돈이 없으면 안 쓰면 된다. 친구들 많이 쓸 때 적게 쓰면 된다. 친구들 돈 자랑할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건전한 사고 자랑하고, 친구가 신 자랑할 때 자기는 건강 자랑하고 친구가 옷 자랑할 때 자기는 마음 자랑하면 된다. 친구가 가진 바깥 것보다 자기가 가진 안의 것 자랑하면 된다. 그러면 욕심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욕심을 가지게 되면 욕심은 자꾸만 커진다. 욕심이 작을 때 없애야 되지 그것을 키우면 감당 못한다. 욕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전에 녹여버려야 한다. 욕심이 강물처럼 불어나면 엄청난 피해를 주고 만다. 강물이 불어나면 어떻게 되나 홍수나 나서 인명피해, 재산피해를 주지 않는가? 그러니 욕심은 쌓이기 전에 녹여야 한다. 욕심은 불어나기 전에 흘러 떠내려 보내야 한다.
5월 9일 - 괴물 엘바 섬 탈출 5월 10일 - 코르시카 태생의 식인귀, 주앙에 상륙 5월 11일 - 맹호, 가쁘게 나타나다 5월 13일 - 참주, 리용에 있다 5월 18일 - 찬탈자, 60시간이면 수도에 도착 5월 19일 - 보나파르트, 무장군 이끌고 전진 중 5월 20일 - 나폴레옹, 내일 파리 외곽에 도달 5월 21일 - 황제 나폴레옹, 지금 퐁텐블로 궁에 계시다 5월 22일 - 황제폐하, 어젯밤 틸릴리궁에 환궁 위 기사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on Bonaparte)가 실각 한 후 1815년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돌아오고 나서 복위하는 데 성공하는 동안의 프랑스 언론의 헤드라인 기사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이른바 100일 천하 이후에 나폴레옹은 자유주의적인 새로운 헌법을 발표하여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과의 타협을 시도했으나,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의 연합 공격으로 완패하여 남대서양의 한가운데에 있는 세인트헬레나에 유폐시킨 후 병사하였다. 문제는 위 헤드라인 변신이 마치 헐크가 옷을 찢고 변하 듯 무궁무진하게 변한 것에 있다. 처음에는 무슨 살인귀(殺人鬼)라고 표현했다가 다시 환궁하여 정권을 휘어잡자 영웅을 떠받들 듯 한 표현은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가. 비록 나라는 다르고 200여 년이 흐른 세월이지만 언론의 못된 행태는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횡행하고 있다. 1998년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차범근 씨에 관한 신문 만화가 생각난다. 그 내용은 위기에 처한 한국 대표 팀을 이끌고 본선에 진출하자 언론은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하였다. 심지어 독일에서 뛴 경력을 바탕으로 컴퓨터 같은 축구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본선 진출 후 연이은 대패로 1등도 못하고 탈락한 채 공항에 도착하자 언론은 표변하였다. 컴퓨터는 무슨 컴퓨터 축구냐, 기종이 286 아니냐, 정신 상태가 해이해졌다는 둥 별의별 소리가 나왔다. 이때 한 쪽에서 국민들이 그게 어찌 차범근 혼자만의 잘못이냐, 외국에 비해 유소년 축구 기반도 없는 상황이고, 예산도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 여러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런 소리를 엿듣던 기자가 다시 돌변하여 차범근만의 잘못이 아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냄비 언론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지금 추모물결이 흐르고 있는 故 노무현 前 대통령에 대한 그간 언론의 보도태도를 말하고자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실례를 들었다. 우선 필자는 노 전 대통령 정치행위에 대해 동의하지 않아 대선에서 표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마음 씀씀이, 권위주의를 타파하려는 생각,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없애려는 노력, 온갖 어려움을 겪어 내더라도 소신과 원칙이 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행동에 대해서는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는 월등하다는 판단을 한다. 하지만 보수적인 정치행태, 그것은 그가 속했던 정당의 면면을 본다면 짐작이 가는 것이다 - 그것에 동의하지 않아 표를 주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동의할 수 있고, 존경을 받을 여지가 많은 분이었다고 지금도 일관되게 생각한다. 문제는 조․중․동이라고 불리는 족벌신문을 포함한 대다수 언론이 그가 재임한 기간 동안 끝없이 모함하고, 헐뜯었던 그런 것은 쏙 감추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조문 행렬에 슬그머니 묻어가는 비열한 짓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표하고, 조문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험담과 그것을 조장하여 검찰, 청와대, 여당 등이 함께 저지른 자살방조 행위에 대해서는 먼저 진심을 갖고 사과를 한 후 조문해야 옳지 않은가 생각한다. 게다가 검찰에서 흘리는 확인되지 않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리 혐의에 대해 언론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 확인을 위한 탐사보도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전달하기 바빴던 그들의 책임방기에 대해 지금은 어떤 언론에서 반성을 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우리 헌법 제27조 4항을 보면,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이 있다. 더군다나 그는 현행범도 아니었는데도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여론에 흘린 정치검찰의 행태와 그에 부화뇌동하여 훌륭한 먹잇감처럼 달려든 대부분 언론의 '토끼몰이' 재판이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주범은 청와대의 무자비한 정치보복이고, 종범은 살아 있는 정권에는 순한 양, 죽은 정권에게는 야차 같은 행태를 보인 정치검찰이며, 이 상황을 즐긴 채 자살을 방조하도록 조장한 언론, 정치권이었다.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사법부에서 판단을 내리고, 비판이라는 것은 그때 가서 해도 절대 늦지 않은 것이다. 언론 본연의 사명을 망각한 지금의 치졸한 행태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진심을 담은 사과가 있어야 할 일이다.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이 소리치리라. 루까복음에 나오는 말이다. 입 다물고 관망한 우리는 죄인이리라.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동아리 홍보를 위해 고양이 가면을 쓴 학생이 뙤약볕 아래에 앉아있다. 2009년 5월 26일(화). 학교 축제 중, 만화동아리 '몽연' 소속의 한 학생이 말가면을 쓴 채 만세를 부르며 동아리학생들을 부르고 있다. 2009년 5월 26일(화). 학교 축제 중, 스크림 가면을 쓴 학생이 익살스런 동작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만화동아리 '몽연' 학생들이 요즘 학생들의정서를 반영하듯, 여성 인기그룹의 가수들을 스캐치해 전시하고 있다. 축제기간 중, 싼 가격에 책을 사고 팔수 있는 '도서교환전'이 열리고 있다. 본교의 식물어원탐구반 전시회도 함께 열렸다. 교내 법경시대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안락사' 문제에 대해 설명한 글이 나붙었다. 행사 중, 잠시 짬을 내어 기념촬영에 응한 학생들. 각종 문제를 풀면 푸짐한 경품도 쏟아진다.
5월 22일 개그우먼 김효진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에 대해 인터넷 매체는 김효진의 웨딩 사진과 함께 배우자를 소개하고 자녀 출산 계획까지 자세히 보도를 했다. 그런데 매체 뉴스 표제어가 크게 둘로 나뉜다. ○ 결혼 김효진 ‘아쉽게도 홀몸 맞아요.’라는 표제 하에, “아이는 둘을 생각 중인데 기회가 된다면 많이 낳고 싶다.”는 계획을 덧붙였다. “많은 분들이 문제 제기를 하시는데 제 나이를 보시곤 또 그렇게 되길 바라는 분들도 계신 것 같다. 아쉽게도 홀몸이 맞다.”(마이데일리, 2009년 05월 22일, 금) ○ 5월의 신부 김효진 ‘정말 홑몸이랍니다.’ 표제 하에 개그우먼 김효진이 22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교회에서 예비신랑 조재만씨와 결혼식을 올리기 전 기자회견에서 손으로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이데일리SPN, 2009년 05월 22일, 금) 최근 연예인들이 속칭 ‘과속 스캔들(혼전 임신을 일컫는 말)’의 중심에 있다. 이에 대해 언론이 김효진도 이미 임신을 한 것이 아니냐며 의심을 품고 표제어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런데 여기서 여자가 임신을 한 것을 ‘홀몸’이라고 하지 않는다. ‘홑몸’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두 단어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홀몸’ 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사람. - 사고로 아내를 잃고 홀몸이 되었다. - 내가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홀몸이니깐 이 집칸이나 있는 것을 탐내는 놈도 있을 것이고….(이광수의 ‘흙’) ‘홑몸’ 1. 딸린 사람이 없는 혼자의 몸. - 그는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홑몸이 되었다. - 나도 처자식이 없는 홑몸이면 그 일에 당장 뛰어들겠다. 2. 아이를 배지 아니한 몸. - 홑몸이 아니다. - 홑몸도 아닌데 장시간의 여행은 무리다. ‘홀몸’의 ‘홀’은 몇몇 명사 앞에 붙는 접두사이다. 이는 ‘짝이 없이 혼자뿐인’의 뜻을 더한다. ‘홀시아버지/홀시어머니/홀아비/홀어미’ 등에 쓴다. ‘홑몸’의 ‘홑’ 역시 일부 명사 앞에 붙는 접두사이다. 이는 ‘한 겹으로 된’ 또는 ‘하나인, 혼자인’의 뜻을 더한다. ‘홑겹/홑고의/홑껍데기/홑꽃/홑날/홑눈/홑대패/홑바지/홑버선/홑옷/홑이불/홑저고리/홑집/홑치마’ 등으로 쓴다. 이때의 ‘홑’은 ‘겹’과 대응된다. ‘겹꽃/겹날/겹눈/겹대패/겹바지/겹버선/겹창/겹치마’ 등은 모두 ‘하나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직 한 벌의 옷을 의미하는 단어는 ‘홑벌’이라 하지 않고 ‘단벌(單-)’이라 한다. 표준어 규정 제22항에 고유어 계열의 단어가 생명을 잃고 그에 대응되는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면, 한자어 계열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 ‘개다리밥상/맞상/군달’을 버리고, ‘개다리소반/겸상/윤달’을 표준어로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참고로 ‘홑’은 단일어 명사로도 쓰인다. 이는 ‘짝을 이루지 아니하거나 겹으로 되지 아니한 것’을 의미한다. ‘이 두루마기는 홑으로 단을 접어 지은 것이다.’라고 쓸 때 ‘홑’은 그 예다.
학교에서는 학부모에게 학교소식이나 행사등을 알리기 위해 가정통신문과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을 활용한다. 학부모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함이다. 특히 가정통신문은 홈페이지의 공지사항보다 학부모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도움이 많이된다. 가정통신문만 꼼꼼히 살펴보아도 아이들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가정통신문은 학교교육활동을 알리기 위한 확실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가정통신문이 순수하게 교육활동을 위한 것이 아닌 경우도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아니 그보다는 필요이상으로 가정통신문이 남발되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책임은 학교에 있다고 이야기 하겠지만, 학교에서는 최소한으로 필요한 사항을 가정통신문으로 내보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가정통신문이 많이지는 것일까. 상급교육행정기관의 요구도 있고, 단순히 학교의 협조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물론 하나씩 따지고 보면 모두 필요한 것이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일반 언론이나 기타의 방법으로 홍보가 가능함에도 가정통신문을 내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최근의 신종인플루엔자에 관한 가정통신문은 벌써 2-3회정도 발송되었다. 국민적인 관심이 높기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긴 하지만, 학교의 입장에서는 1-2회정도면 가능한 통신문을 계속해서 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학부모도 이미 이와 관련하여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보면, 횟수가 다소 많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청소년관련 행사, 불조심, 저작권보호 등도 가정통신문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학부모에게 홍보해도 된다는 생각이다. 굳이 학교의 협조를 얻어야 가능한 부분은 아닐 것이다. 이런 문제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미 수없이 많은 교육을 실시해온 부분이기도 하다. 홈페이지의 팝업창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직접 필요해서 올리는 팝업도 있지만, 일선기관이나 상급교육행정기관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저작권보호, 각종행사안내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로인해 정작 학교에서 꼭 필요로 하는 팝업창을 활성화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팝업을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가능함에도 이런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꼭 옳은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따지고 보면 모두 교육활동과 관련된 사항들이긴 하지만, 그 중요성으로 비추어 볼때 가급적 줄일 수 있었으면 한다. 매년 200 여통의 가정통신문이 나간다고 할 때, 이중 10%만 줄여도 20통의 통신문을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설득력이 약할지 모르지만, 가정통신문의 남발이 종이낭비의 소지도 있다. 따라서 줄일 수 있다면줄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일선학교를 통한 홍보효과를 노리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통한 홍보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년 6월에 치러지는 동시지방선거에 모든 선출직을 한꺼번에 뽑으려는 것은 효율성은 있지만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선거가 1년 밖에 안 남았지만 한번에 8명을 선택해야 한다니 누구를 뽑아야하는지 난감해 하고 있는데 반해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지역주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 수많은 후보가 난립할 것이고 객관식도 4지 선다형으로 고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데 8명을 뽑자면 젊은 사람들도 혼란스러울 텐데 다수를 선택하는데 익숙지 못한 어르신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기대하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교육위원의 수는 국회의원 지역구의 두 배가 넓은 지역에서 한명을 뽑는다고 하니 지역의 대표성이 없다는 것이 교육계의 중론이다. 충북의 경우 155만 도민을 대표하는 교육위원이 4명이라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소선거구제라고 한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최소한 국회의원 수와는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그 지역의 문화나 정서에 걸 맞는 지역의 교육을 위해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교육감은 한 번의 선거가 있어서 알려졌지만 교육위원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유권자에게 선택을 하라는 것은 억지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지역이기주의만 부추겨 당선이 되어도 자기지역 감싸기 현상이 나타 날 텐데 당선자를 내지 못한 지역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게 되고 그 지역교육이 천대받을 것이 아니겠는가? 정당원도 아닌 중립적인 교육자출신의 교육위원을 돈이 많이 드는 주민직선으로 뽑아야하는 논리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교육감도 왜 우리가 선거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 유권자들의 반응인데 교육위원까지 뽑으라면 더 혼란스러울 것이 뻔하다. 무보수 봉사 직이었던 교육 위원에게 광역의원과 같이 보수를 지급하더니 선거비용이 많이 드는 직선제 선거판으로 몰아넣으면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착각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교육자치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우리교육을 지탱해 왔으므로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는 교육가족이 선출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교육을 지방자치 속으로 예속시켜서 교육 자치를 훼손하고 정치논리로 끌고 가면 중립을 유지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혼란과 시행착오만 거듭하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한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 아닌가? 적어도 오랜 세월 지탱해 온 제도를 바꾸려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정치권의 입맛에 맞는 설익은 제도를 고집하면서 무리수를 두는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안정을 유지하며 발전할 것이다. 법적인 절차를 거쳐 제도를 바꾸려고 하지만 교육을 직접담당하고 있는 학교현장의 목소리와 주민들의 의견은 반영이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 교육은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눈이 마주쳐서 마음이 서로 교감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소양을 갖추도록 인성과 실력을 갖추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런 숭고한 교육이 잘되도록 좋은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치논리를 주장하는 세력이 중립을 훼손한다면 교육의 본말이 전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이라는 순수한 싹이 잘 자라도록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두되 발달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가 밝혀지면서 어린이 조기교육 열풍이 번지고 있다. 이로 인한 교육의 부익부빈익빈이 어린이 교육에서부터 시작되고 교육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경향이다. 즉 농어촌 및 도서․벽지 지역이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일부는 취학 전 교육기회 그 자체를 갖지 못하거나 기회를 갖는다 해도 교육의 내용과 질에 있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임시방편적 시책으로 교육양극화를 해소하려는 것은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중간에서 바로 잡으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는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전환하고 의무화 해 교육양극화의 원천적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어느 맞벌이 부부 가정의 6세 어린이의 하루 일과를 보면 그 필요성을 엿볼 수 있다. 8시 15분 경 유치원 차를 타고, 30여 분 여기저기 들러서 유치원에 도착한다. 유치원 수업을 끝내고 집에 오는 시간은 오후 2시 15분 경. 우유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먹고, 피아노학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영어학원을 거쳐 집에 오는 시간은 오후 5시 20분 쯤 된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방문지도 교사와 일주일에 한두 번 수업을 하고, 영어학원에서 받은 CD를 듣기도하며 저녁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동화책을 한 두 권 쯤 읽고 잠자리에 든다. 이것은 중소도시 중류가정의 보통 어린이의 일상으로 사교육비는 25~30만원 정도 든다. 이런 교육을 받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혼재해 있는 곳이 초등학교다. 그 교실의 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선생님에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은 ‘저요, 저요’ 하며 요란하게 답변 기회를 요구한다. 선생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느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명랑하고 신나는 목소리로 답한다. 아이들이 손뼉을 치고 격려한다. 활기가 넘치고 신나는 교실이다. 그런데 몇 명의 아이는 이 활기찬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다. 다른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멋쩍게 덩달아 즐거워한다. 의미 있게 수업을 즐기는 다수 아이들 속에 묻힌 소수 아이들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적절한 취학 전 교육기회를 갖지 못해 초등학교 입학에서부터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아이들의 책임이 아니라 부모의 책임이고 더 나아가 국가의 책임이다. 적어도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학습 출발점 행동 수준은 같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전환하고, 의무화해야 한다. 또 방과후 교육도 활성화 해 취학 전 아이들의 학습준비 격차를 해소하고 사교육비 부담도 줄여야 한다.
미래형교육과정은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행복과 발전을 여는 희망의 길이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추진되고 있는 미래형교육과정은 이른바 ‘국․영․수’와 같은 도구교과 내지는 주지교과만을 위한 교육과정 개정안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서는 시대가 요청하는 바람직한 민주시민이나 마음이 따스한 도덕적 인간을 길러내기보다는 냉혈적인 기계적 인간만을 길러낼 뿐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미래형교육과정팀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념 문제를 올바로 판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을 기르는 것과는 정반대의 노선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극심한 경쟁과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그나마 청소년들에게 최소한의 양심과 정신적인 위안을 제공하고 각자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도록 돕고 있는 교과는 바로 도덕(윤리)교과이다. 도덕(윤리)교과가 이렇게 천대받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청소년들의 양심과 도덕적 이상은 과연 어디에서 누가 책임지고 키울 수 있을 것인가. 도덕교육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주 1시간이라는 턱없이 부족한 시수로 인해 학교 도덕과 교육의 정상적인 운영이 매우 어려웠는데 이번 미래형교육과정에서는 아예 도덕(윤리)교과를 말살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현재 학교 교육이 무엇 때문에 학습 부담에 짓눌려 고통을 받고 있는지 미래형교육과정팀은 정말 모르고 있는지 답답하다. 사교육 열풍을 일으키고 학생들의 지나친 학습 부담의 원인이 되고 있는 ‘국․영․수’를 이제는 아예 정부가 나서서 본격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면, 과연 우리의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는 꺼져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도덕(윤리)교과는 학교 교육에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교과가 아니다. 모든 청소년들에게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하며, 미래의 지도자를 올바로 길러내기 위해 윤리는 반드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정보윤리, 생명윤리, 환경윤리, 과학윤리, 성윤리, 직업윤리, 시민윤리, 경제윤리, 사회윤리, 매체윤리 등 최근에는 그야말로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분야가 윤리와 직결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어찌해 미래형교육과정팀은 윤리를 사회에 통합시키려고 하고 있으며, 심지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윤리를 사회과의 한 과목인 ‘사회문화’ 속에 포함시켜 ‘사회문화윤리’(5) 과목으로 축소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미래형교육과정팀은 ‘교과이기주의’라는 방패를 앞세워 우리 사회의 진실과 시대정신을 가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각 교과교육 전문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학교 교육에 대한 편견과 아집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교육의 역사상 유래가 없는 ‘도덕(윤리)교육의 암흑기’ 내지는 ‘도덕(윤리)교육의 말살기’로 기록될 것이다. 국가교육과정은 특정 집단에 의해 암막 속에서 주도 되는 비민주적인 산물이어서는 안 된다. 이제 미래형교육과정팀도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관계된 다양한 개인이나 집단이 다함께 참여해 합리적 소통을 통해 이해를 구하고 설득해 나갈 때 비로소 그 정책은 정당성을 인정받고 추진력을 얻게 된다. 향후 미래형교육과정팀의 현명한 판단과 결단을 기대한다. 한국의 주요 리더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의 행복과 지속적 발전을 위한 것인지, 자신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말만 잘하고 셈만 잘하는 인간이 과연 우리가 기르고자 하는 인간상의 모든 것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미래형교육과정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 컴퓨터가 왜 이러지?’ 요청장학을 하기로 돼있던 교실의 컴퓨터가 말썽이었다. 평소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컴퓨터도 나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영상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수업 계획 일부를 수정했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았던 것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도 미리 생각해뒀기 때문이다. 드디어 수업이 시작됐다. 수학과 수준별상반 학생들이 대상이며 학습 주제는 ‘미지수가 2개인 일차방정식’. 곱하기를 모르는 학생에게 지수법칙을 설명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듯 과목 특성 상 선수학습요소를 정확히 모르면 학습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도입부분에서 선수학습내용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구성했다. 화려한 겉포장보다는 짜임새 있는 내용구성으로 학생들을 집중시켜보자는 생각이었다. 다른 단원에 비해 설명이 길고 학습요소가 많아서 다소 지루해질 것 같은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지수가 1개인 일차방정식’과 비교, 대조하면서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판서하다가 강조할 부분에서는 색종이를 붙여서 강조하기도 하고, 핵심 요소는 플로터로 크게 인쇄해 계속 볼 수 있도록 칠판 옆 벽면에 붙여두기도 했다. 지루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런 저런 부분에서 보였는지, 학생들도 기대 이상으로 잘 따라줬다. 형성평가와 차시예고까지 마치자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전반적으로 수업 수준을 높게 잡은 편이라 학생들이 탐구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큰 문제없이 마무리했다. 수업을 끝내고 나니 그 때서야 보이는 실수들이 계속 떠오르면서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회의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도 천근만근이었다. 회의실에는 매사에 학교일을 꼼꼼히 챙기시는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부장선생님들께서 계셨다. 장학사께서는 물론 칭찬도 해주셨지만 실제로 수업을 개선할 수 있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전시와 본시를 연결 짓는 수업의 구조화는 잘 됐지만 판서의 구조화가 더 중요하고, 상반 수준의 학생들에 맞는 추가 설명도 필요하다고 했다. 경험을 바탕으로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주셨다. 경험이 부족한 새내기 교사인 나는 학생들의 수준 파악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듯 했다. 사실 처음 요청장학을 하기로 결정했던 날까지만 해도 그저 부담스러운 과제였다. 하지만 어떤 장학이 됐든 그 본래의 취지가 수업의 개선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요청장학은 새내기 교사로서 수업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내게 더더욱 필요한 과제이자, 더더욱 반겨야할 과제임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