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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12월의 첫날이다. 영하의 온도다. 몸도 얼고 마음도 얼어 학교생활을 하기가 힘든 날이고 달이다. 거기에다 애들은 어수선하다. 선생님들의 분발이 필요한 달이 아닌가 싶다. 좋은 선생님? 인내하며 사는 선생님이다. 한 선생님은 제일 힘든 것이 사람과의 관계라고 하였다. 대인관계가 원만하게 하는 것이 말이 쉽지 정말 어렵다. 자기와 모든 면에서 같은 선생님을 만나기는 어렵다. 반만 같아도 다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긴 세월 동안 한 지붕 밑에서 같은 교직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하다. 선생님과 관계에서도 인내가 필요하고 학생과의 관계에서도 인내가 필요하고 학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인낸가 필요하다. 특히 교감, 교장선생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내는 더욱 필요하다. 인내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백인당중유태화라는 말이 있다. 집안에서 백 번이라도 참으면 큰 평화가 있다는 말이다. 참고 또 참는 것이 가정의 화목을 가져오듯이 학교에서도 참고 또 참으면 늘 잔잔한 호수와 같은 평강을 누릴 수가 있다. 화를 내지 않는 선생님이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를 내는 것은 자기 수양이 덜 되었다고 봐야 한다. 모든 것을 자기 기준에서 판단하기에 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남을 거부하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남을 무시하는 것이다. 화를 내면 결국 자기 손해다. 건강의 손해를 가져온다.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한다. 모든 이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가 없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인내와 연관이 있다. 참는 연습을 하면 화도 참을 수가 있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자신에게 늘 물어보는 것이 좋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지, 아닌지? 나의 잘못과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 남을 괴롭히는 일이 있는지, 없는지? 남을 못살게 구는지, 않는지? 늘 자신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모든 이들에게 본이 될 만한 사람인지, 않은지? 물어보면서 자신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사랑의 발자취를 남기는 선생님이다. 사람은 누구나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간다. 나에게 주어진 학생들에게 사랑의 발자취를 남기면 모든 학생들은 선생님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반대로 미움의 발자취를 남기면 그 발자취 쳐다보지도 않는다. 애들에게 선생님이 미움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 사랑의 대상이 되면 좋겠다.
지난 9월 13일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가 1300회를 맞은 때만 해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 수는 35명이었다. 두 달 넘게 지난 지금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33명으로 줄었다. 11월 1일과 11일 두 분 할머니가 세상을 달리 했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7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해 2월 24일 위안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귀향’이 개봉했을 때만 해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생존자는 45명이었다. 358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던 영화 ‘귀향’ 이후 1년 9개월 남짓 지나는 사이 10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한많은 이 세상과 작별했다. 그렇게 일본군 만행의 확실한 증거라 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속속 세상을 뜨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 지점에서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는 유의미한 영화로 다가온다. 9월 21일 개봉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큰데, 흥행 성공까지 했다. 손익분기점인 180만 명을 훌쩍 넘겨 327만 1862명을 극장으로 불러모은 것. ‘아이 캔 스피크’의 흥행 성공은 여느 상업영화들의 그것과 다른 의미가 있다. ‘귀향’이 그랬듯 일본군 만행과 함께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각인시키거나 되돌아보게 하는 단초가 될 수 있어서다. 사실상 한국형 블록버스터 ‘남한산성’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킹스맨: 골든서클’, 뜻밖의 대박을 일군 ‘범죄도시’ 등 추석대목 영화대전에서 거둔 성적이라 각별해 보이기도 한다. ‘아이 캔 스피크’의 흥행 성공에는 또 다른 긍정적 의미가 있다. 추동력 확보가 그것이다. ‘아이 캔 스피크’의 흥행 성공이 앞으로도 위안부 소재의 상업영화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침 김해숙⋅김희애를 주연으로 한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 제작이나 ‘군함도’ 제작사 외유내강의 ‘환향’ 기획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 캔 스피크’의 시나리오는 CJ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공모전’ 당선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 캔 스피크’는 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2007년 미하원에서 채택된 ‘일본군 위안부 사죄결의안’을 모티브 삼은 영화이기도 하다.영화의 시작은 단순하고 유쾌하다. 일삼아 민원을 넣는 나옥분(나문희) 할머니와 명진구청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가 티격태격하고 있어서다. 그 틈틈이 “하여튼 이 나라 공무원놈들…”이라커니 “공무원 신조 나대지 말자”나 “할머니 없으면 구청 직원들 할 일도 없어요” 같은 대사를 날리며 은근히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따위를 까발리기도 한다.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두 캐릭터의 충돌은, 그러나 세상에 둘도 없는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어낸다. 그 끈이 영어다. 영화시작 40분쯤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영어 가르치기와 배우기가 시작된다. 다름 아닌 “아버지가 술 드시고 실수하신” 덕에 세상과 만난 고딩 남동생을 옥분이 돌봐주는 걸 보고 내린 결정이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는 것은 미국에 사는 남동생과 말하기 위해서이지만, 알고보니 그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다. 옥분은 자살하려던 자신을 구해준 친구 정심(손숙)과 다르게 나라에 등록하지 않고 과거도 숨긴 채 살아왔다. 남동생이 모르는 사람이라며 잡아뗀 것도 누나가 위안부였기 때문이다. 그 점은 어머니 산소에 찾아가 “불쌍한 내 새끼 욕봤다 한마디만 하지 왜 그러고 갔어”하며 우는 옥분의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니까 옥분은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위안부 할머니인 것이다. 할머니가 시장통에서 오지랖 떠는 것도 외로워서다. 미하원 청문회에서의 영어로 하는 증언이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래서다. ‘아이 캔 스피크’(증언하겠습니다)는, 그러나 민재가 청문회 현장에 나타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끝까지세상에 둘도 없는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영화는 “도대체 돈을 얼마나 요구하는거냐?” 따위 일본측 매도와 남매 상봉, 그리고 청문회 참가자들이 옥분에게 미안하다며 악수하는 장면 등 여러 곳에서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구청 직원과 시장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웃의 격려와 성원도 훈훈하게 다가온다. 여느 위안부 소재 영화같지 않은 모습인데, ‘아이 캔 스피크’의 수확이라 할만하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튼실한 시나리오에 그것을 극적으로 잘 버무린 연출이다. 우회적 화법으로 정곡을 찌르면서도 따뜻한 시선이라 할까,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를 단순히 피해 할머니들만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공감케하는 영화이다. 327만 1862명에 그친 관객 수가 오히려 아쉽게 생각될 정도이다. 만 76세 노배우 나문희 연기는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과 별도로 옥분 대사에 표준어가 섞여 100% 매끄럽지 못한 점은 좀 아쉽다. 밀봉하지 않은 봉투에 현금(달러)을 넣어 문틈에 끼워 놓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는 구청 동료 아영(정연주)의 고백도 사족으로 보인다.
올해 새 교장 선생님이 부임하셨다. 부임 첫 날부터 지인들의 방문이 거의 하루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인품이 훌륭하신 분이란 것은 예전에 임시 교사로 같이 근무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면모를 확인하니 더욱더 감동이 밀려왔고 절로 존경의 마음까지 생겼다. 오랜 교직생활을 하면서 훌륭하신 분들을 많이 만나고 헤어졌지만 새로 부임하신 교장 선생님은 거의 최상급에 가까울 정도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학생들에게는 늘 자애로운 분이다. 어느 날인가는 어디서 피자 냄새가 진동해서 출처를 알아보니 교장실이다. 교무부장이라 업무상 자주 뵙는데 그 날은 방송반 아이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피자를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인다. 그 뿐이 아니다. 전교어린이회에서 결정된 모든 안건은 가급적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업무 수첩에 일일이 깨알같이 적고 곧바로 시행하신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축구골대 네트를 고쳐주세요. 연못에 물고기를 다양하게 넣어주세요. 정문이 위험하니 차량 출입을 통제해주세요.” 등 모두 아이들의 복지와 정서 그리고 안전에 연결된 현실적인 문제다. 며칠 전, 첫 눈이 왔다. 교정에도 하얀 눈이 수북이 쌓였다. 교장 선생님은 손수 빗자루를 들고 아이들이 등교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눈을 깔끔하게 치우셨다. 아이들과의 아침 맞이는 교장 선생님이 담당하신다. 새롭게 변한 학교 분위기가 처음에는 구성원들에게 어색했지만 이제는 점차 익숙해졌다. 관리자의 작은 배려와 봉사의 리더십이 학교 현장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교직 생활을 한지도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교직이 다른 직업에 비해 안정되어 있고 스트레스도 별로 없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교직은 매우 힘들고 외로운 직업이다. 몇 해 전, 어느 교수님께서 쓰신 '교사의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 라는 책을 읽어보니 교사들은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동료 교사와의 관계 그리고 관리자와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보고를 본 적이 있다. 그러기에 동료 교사나 관리자와의 원만한 인간관계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작은 친절과 관심에 민감하고 그러한 것 때문에 힘이 생기고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칠 수 있다. 늘 존중과 배려로 교육 공동체를 대하는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충남 서산 서령고(교장 한승택)는 11월30일 1,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 송파수련관에서 청소년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 뮤지컬을 공연했다. 이번 공연은 보건 교사인 이보경 선생님께서 ‘청소년문화예술사업 공모’에 당선돼 이뤄지게 됐다. 신나는 노래와 춤을 시작으로 에이즈 바로알기 OX 퀴즈, 연극 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서 에이즈감염경로와 예방법을 설명했다. 에이즈 감염 경로는 다음과 같다. 에이즈 보균자와의 성관계, 에이즈 보균자의 피 수혈, 에이즈 보균자가 사용했던 주사바늘 사용, 에이즈에 감염된 어머니로부터 아기 출산 등이다.
어떤 교장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마치고 다시 한 번 글쓰기로 정리를 하도록 지도하신다. 이 글도 인성교육 소감으로 원우진 학생이 쓴 글이다. 지난 번 수요일에 전남 생명과학고에서 김광섭 선생님의 진로ㆍ인성교육 수업을 들으러 갔다. 김광섭 선생님께서는 일본으로 강연도 다니시고 책도 내신 의외로 대단하신 분이었다. 심지어 책은 1년에 한 권씩 내는 걸 목표로 계속 1년 마다 책을 출판하신다고 들었다. 김광섭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로 '공부하는 법'을 알려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로는 하루에 단어를 100개를 외우면 다음 날이면 40개 밖에 기억에 남지 않지만, 하루에 단어를 10개씩 외우면 4일이나 걸린다고 단어를 최대한 많이 외우라고 하셨고,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고 하셨다. 그 말의 의미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하고의 문제는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꾹 참고 자리에 오래 앉아 있고, 또한 집중을 잘하느냐를 말씀하신 것 같다. 그리고 진로 인성교육인 만큼 진로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 그 중에서는 진빵 얘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반죽일 때는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한 번 찐빵이 되버리면 다시 반죽으로 되돌아 올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진로는 후회없이 정말 잘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내 특기와 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김광섭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일단 기본적인 공부가 돼야한다는 걸 느꼈고, 또 김광섭 선생님의 경험이나 또는 사연 같은 것을 듣고 성공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 어느 시대나 사회에서에서도 그랬듯이, 특정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가 살았던 시대가 가장 어렵고 혹독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교육 분야도 예외가 아니어서 매 시대마다 교육의 위기가 거론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 학교 교육도 여전히 위기상황으로 회자되고 있다. 교육의 변화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실제로 우리 교육계 내외에서는 1990년을 전후하여 공교육에 대한 문제와 비판이 제기되다가, 90년대 말부터 공교육에 대한 우려와 자성이 본격화되면서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교실붕괴)’, ‘교육은 없다’, ‘학교붕괴’ 등과 같은 과격한 표현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매스컴에서는 왕따, 학교폭력, 기초학력 저하, 교실붕괴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공교육의 위기를 지적했다. 특히 학생들이 학교를 싫어하는 이유로는 첫째 수업이 재미없고, 둘째 지나치게 엄격하고 획일적인 틀 속에 학생들을 가두고 있으며, 셋째 성적으로 줄을 세워 차별하고, 넷째 가르치는 것에 속도감도 없고 참신함이 없으며, 다섯째 시대낙후적인 교육내용과 방법을 강요하고, 여섯째 배울 의욕이 없는 아이들조차 학교가 무리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인 것 등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변화에 둔감하다. 즉, 포스트모던한 청소년 세대들을 여전히 상당 부분, 근대적인 공교육 체제와 방식으로 지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90년대에 들어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문화는 자신들의 자율적인 주권을 강도 높게 표출하고 기존의 질서를 해체시키면서 변화무쌍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다양한 삶의 양식들은 그들의 복장·노래·언어·태도 등을 통해 자유롭게 분출되고 있다. 교사나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행태들이 상당 부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세상은 계속 변화하여 포스트모던한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데, 학교와 학부모는 여전히 모더니즘적인 사유의 틀로 포스트모던한 청소년들의 행태를 판단하려고 드니 상호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미’가 없으면 행동하려 하지 않는 청소년 이처럼 오늘날 청소년들의 가치관은 근대 사회의 청소년들의 가치관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것과 관련해 공교육을 반성해볼 하나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요즘의 포스트모던 사회의 청소년들은 ‘재미’라고 하는 것에 크나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근대 사회의 청소년들은 ‘재미’라고 하는 것에 크나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출세하고 잘 살기 위해서는 싫어도 노동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 그 시대의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 소년들은 ‘재미’가 있는 것에는 철저하게 몰두하지만, 반면에 ‘재미’라고 하는 요소가 결여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철저하게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근대사회와 포스트모던 사회의 청소년들 간의 차이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무시한 채, 오늘날의 공교육은 여전히 입시위주의 재미없고 관심도 없는 지식주입 교육에 의존하는 등 근대적인 방식으로 자유분방한 학생들을 가르치려 하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학교 교육에 등을 돌리게 되고, 결국 이것이 학교붕괴 등과 같은 공교육의 위기로 연결된다. 시대착오적 교육방법에서 벗어나자 이렇게 보면, 우리의 공교육 현장은 교육시설, 교육내용과 방법, 교사의 학생지도방식 등에 있어서 상당 부분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근대적 교육방식에 머물러 있어 그러한 교육체제에 코드가 맞지 않는 청소년들이 학교 교육에 등을 돌리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현장은 지능정보화 사회에 맞지 않는 근대적인 입시방식과, 그에 따른 교육방식이 여전히 주종을 이루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미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에 빠져들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에서의 교육은 유비쿼터스·빅 데이터·클라우드·웹 플렛폼을 활용한 교육방법으로 시대변화에 대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앞서가는 청소년들의 코드에 맞추어야만 공교육이 활력을 찾을 것이다. 그래야 흥미를 느낄 것이 아닌가? 이처럼 시대변화에 걸맞은 획기적인 교육제도와 방식의 변화가 있어야만 공교육은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던 약속. 살바토레 아다모(Salvatore Adamo)의 ‘눈이 내리네 (Tombe La Neige)’를 들으며 우체국 앞 가로수 길을 걷던 게 얼마 만이었던가. 따스한 아메리카노와 ‘안나 카레리나’가 생각나는 12월이다. 어쩌다 저녁 무렵 카페에서 새어 나오는 ‘오, 거룩한 밤(O Holy Night)’은 시리도록 아프다. 바이칼 호의 한랭한 바람이 샤프카를 쓰게 하고, 보드카를 마시게 한다. 남극의 펭귄처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패딩 점퍼 속으로 잔뜩 움츠려도 추위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탁상 달력의 마지막을 남겨두고 일정을 점검하다 보면 어느덧 한 해도 다 가고 말아 ‘성탄절’과 ‘방학식’에서 겨우 마음이 풀린다. 내친김에 동남아 여행이나 가볼까 하는 마음에 여행상품을 찾는 것도 힐링의 한 방편이리라. 초등이건 중등이건 방학이라는 긴 시간은 자아를 찾아 여행 떠나기엔 참 좋은 시기이다. 초등학교 … 꿈· 끼의 향연 ‘학예회’로 한 해 마무리 통상적으로 초등학교는 12월 5일에 시행되는 학업성취도평가를 제외하고 주로 교내 학예회를 개최한다. 아예 한 주간을 꿈·끼 탐색주간으로 설정하여 아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평소 춤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율동을, 악기에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는 연주회를,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발표와 글쓰기까지 진행한다. 그런데 한편 좀 식상하다. 매번 교내 행사가 춤추고, 노래하고 그것도 아니면 글짓기, 그림 그리기로 시간을 메꾼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나노 첨단 시대에 좀 창발적인 기획을 해보면 어떨까. ‘국제 창의력 대회’처럼 조별로 과제를 주고 시간 내에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행사를 하면 창의력은 물론 협동심과 배려심까지 키울 수 있다. 과학상자 조립이나, 고학년을 위한 로봇 대회, 드론 조종 시합, 아니면 보급형 3D 프린터를 이용해 서 모형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물론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이밖에도 토털공예·미니어처·향초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울러 일부 학교에서는 한자인증제 시험을 실시하여 인증서를 수여하는 고마운 일정도 있다.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 캐럴 속에 성탄절을 보내고 방학식을 하면 2017년은 과거가 된다. 중학교 … 무의미한 학기 말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기획 필요 이어 중학교의 학사일정을 보면, 3학년의 경우 지필고사가 11월에 끝난 학교도 있지만, 더러 12월 초까지 이어지는 학교도 있다. 아무튼 대략 12월 4일부터 시작해서 아무리 늦어도 15일이면 모든 학년의 2학기 지필고사는 종료된다. 사실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사일정은 마무리 단계이다. 따라서 학교 현장에서는 꿈·끼 탐색 주간의 행사를 진행하며 방학을 앞둔 아이들에게 축제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시험이 끝난 뒤 학생은 해방감을 만끽하지만 교사는 할 일이 많다. 채점도 해야 하고 나이스 입력도 해야 하며 공문 처리 및 성적 평가회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을 위한 미니축제나 행사는 어쩌면 미봉책이 되기 일쑤이다. 하지만 학사 일정을 알차게 진행하는 학교에서는 각 부서와 동아리의 협조를 얻어 유익한 행사를 펼치기도 한다. 전교생과 함께할 수 있는 ‘골든벨’ 퀴즈라든지, 연극제 또는 뮤지컬을 하거나 진로체험 및 문화체험을 하면 만족도가 높다. 수학여행을 못간 학교에서는 당일치 기라도 체험활동에 나서는 것도 아이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기획하는 과정에 서 안전에 관한 매뉴얼이 복잡하고 차량 섭외가 쉽지 않아 미리 세우지 않은 계획이라면 실행이 어렵다. 그리고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국 잡월드(koreajobworld.or.kr)’ 견학은 4차 산업혁명을 경험하기에 유익하다. 이곳에는 미래의 첨단기술과 미래의 병원, 3D·4D 프린팅 존, 인공지능 로봇 존과 미래의 집이 있어 미래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 이렇듯 중학생도 교사의 손길이 필요하므로 교사가 아이디어를 내서 학기 말이 무의미하지 않 도록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또한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회 정·부회장 선거를 중순에 치르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성적 사정회와 방학식을 하여 12월을 마무리한다. 방학은 보통 29일과 30일에 하게 된다. 잠시 중 3에 대한 고입선발을 살펴보면, 서울지역의 후기 일반계 204개교는 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원서접수를 진행하며, 배정학교에 대한 발표는 2018년 2월 2일에 한다. 경기도의 후기 일반계 고등학교 원서접수는 12월 11일부터 15일까지 이루어지고, 세종시는 12일에서 13일까지 원서접수를 하여 21일에 학교배정을 한다. 경상북도는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원서를 접수하고 22일에 선발고사를 치른다. 부산지역의 후기학교 전 형일정은 13일에서 15일까지 접수를 하고, 전라북도는 다른 시·도보다는 늦은 12월 26일 에서 28일까지 접수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교육청과 학교 홈페이지에서 요항과 전형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고등학교 …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수능 성적 발표 이제 긴장되는 게 고등학교이다. 수능 시험이 11월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의 여파로 1 주일 연기됨에 따라, 12월 12일에 수능성적이 통지된다. 그리고 12월 22일까지 수시모집 대학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실로 합격자 발표를 지켜보는 떨림은 겨울 추위보다 매섭다.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희비가 교차하는 가운데 3학년 담임들의 웃음과 눈물도 교차한다. 3학년 교무실이 이렇게 부산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그나마 1, 2학년 교무실은 덜 바쁘다. 1, 2학년은 중순 무렵 사흘에서 나흘간에 걸친 2차 지필고사를 치르게 된다. 따라서 교사는 수행평가 출제와 서술형 문항 채점 그리고 성적 확인 등으로 좀 바쁘다. 참고로 학생 지도의 팁을 준다면, 고2의 경우 3학년이 되면 열심히 해야지 하는 학생이 있는데 막상 3학년이 되면 뜻처럼 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과 내신을 만회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2학년 2학기 밖에 없다는 것을 담임교사는 학생에게 주지시키면 좋다. 고등학교 역시 기말고사까지 끝나면 나머지 시간은 여벌의 시간처럼 보낸다. 교실에 서는 동영상을 보거나 자습을 하는 학교도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대부분 나름대로 커리큘럼에 따라 행사를 진행한다. 어느 학교는 꿈·끼 주간을 설정하여 음악회 또는 동아리, 특기·적성 발표회를 한다. 아니면 봉사활동, 진로체험활동, 학급별 문화체험을 나가기도 한다. 더러 학력에 신경을 쓰는 학교에서는 경시대회를 하여 포트폴리오를 위한 실력을 쌓는다. 고입선발 입학사무도 시·도에 따라 다르지만 중순쯤이면 전형을 끝내게 된다. 그러고 나면 29일과 30일에 있을 방학을 앞두고 진급 사정회를 겸한 성적 평가회를 한다. 이 같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대청소를 하면 방학이다. 그리고 겨울도 깊어간다. 일부 학교에서는 교직원의 단합 겸 신년도 구상을 위한 워크숍을 간다. 요즘은 연수라면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한 해를 반성하며 구성원의 여론을 듣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듯 올 한 해도 눈물 콧물 흘린 교사들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란다.
성낙인 서울대총장은 지난 11월 9일 한국교총 70주년 교육대토론회 기조강연에서 ▲교원전문성 향상 ▲교권확립 ▲공공선 실현에 앞장서는 교원단체 ▲존경과 신뢰받는 교사상 정립 등을 교총의 미래비전으로 제시했다. 성 총장은 이날 “교총은 우리나라 교육역사를 써내려간 최대·최고의 교원단체로서 교육 발전에 긍정적 인 영향을 끼쳤다”며 지난 70년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교총은 이제 100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정체성 확립과 발전적인 미래상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대한민국이 교육입국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교총이 앞장 서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한국교총 70주년 성찰과 미래 대한민국 교육 30년의 길’을 주제로 한 성 총장 의 기조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구국의 등불로 밝힌 한국교총 70년 한 나라의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그 나라 학생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있는지 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재를 길러내 한 나라의 미래를 창조하는 과업은 교육에서 시작해서 교육으로 완성된다는 자명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말이다. 모름지기 교육이란 그 어떤 요인보다도 교육자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근대교육의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새로운 교육의 씨앗을 뿌리고 구국의 등불 역할을 해온 교원들 의 헌신적인 자세와 노력으로 국가재건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1947년에 창립된 한국교총은 광복 이후 정부수립보다 앞서 창립되었으며 우리나라 교육역사를 써내려간 우리나라 최대·최고의 교원단체로서 교육발전에 이바지했다. 한국교총은 설립 이후 전문직주의를 표방하며 교직의 전문성 신장, 교원의 경제적 지위 향상, 복지 후생 확충뿐만 아니라 교권 신장 및 윤리 확립을 비롯한 교육 여건 개선 등을 위한 활동을 수행해 왔다. 한국교총은 설립 이후 일관성 있게 전문직주의를 표방하며 교직의 전문성 신장, 교원의 경제적 지위 향상, 복지 후생 확충뿐만 아니라 교권 신장 및 윤리 확립을 비롯한 교육제도 쇄신, 교육 여건 개선 등을 위한 활동을 수행해 왔다. 또한 연구활동과 국제 교류 강화를 통한 교직의 위상 제고 등을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활동으로 현장연구 대회, 원격교육연수원 설립, 교육세 도입을 통한 안정적 교육재정확보 기반 마련, 유·초·중등 단일호봉제 도입, 사립학교연금제도 신설, 교원윤리강령 제정, 단체교섭·협의 확보 등이 있다. 그러나 일부 국민에게는 교육권보다 ‘자기들의 이익 관철’이라는 모습으로 비춰져 낮은 신뢰의 눈길을 받기도 했다. 지나친 집단 이기주의나 편협한 주장 등으로 보여져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1999년 7월 교원노조 결성권이 합법화됨에 따라 한국교총은 유일한 합법적 교원단체로서의 활동을 마감하게 되고, 복수 교원단체 시대를 맞았다. 교원단체의 복수화로 단체별 성격과 역할이 다른 계층·단체 사이에 활동이 전개됨으로써 교육현안에 따라 혼란과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한국교총의 정치적·사회적 입지 또한 좁아졌다. 하지만 한국교총은 조직 강화와 다양한 회세 확장 활동 등을 벌이며 조직을 안정화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으며, 교육 본연의 활동을 강화하여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10여 년 간 회원 수가 증가했으며, 사회적 영향력이 되었다. 한국교총은 여전히 최대·최고의 교원단체로서 교원정책과 한국 교육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뿌리조직인 12,000여 개의 학교분회와 190여 개의 시·군·구 교총, 17개 시·도 교총을 아우르는 중앙단체로서 교원이 전문직에 부합하는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중앙정부와 매년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시대, 교육을 위한 자치 고민해야 그러나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이에 따라 전교조가 공식적인 법적 기구로 보호받는 상황이 되면서 건국 이래 지난 반세기에 걸쳐서 단일한 교원단체로서 누려왔던 한국교총의 위상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법과 제도에 비추어 한국교총도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책무를 가지게 됐다. 한국교총은 전교조와 그 탄생에서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구성원이 다 같은 교원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범위에서 협치도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그 탄생의 차이라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협치와 더불어 한국교총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도 숙고할 시점이다. 새로운 시대적 변화는 교육자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교육감은 주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따라 선출하게 됐다. 하지만 교육감직선제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 교육감직선제를 시행하면서도 교육감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헌법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유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감직선제는 나름 타당성을 가지지만 지방자치 단체장 특히 광역단체장 선거에 매몰된 지방자치 선거에서 교육감 후보자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을 가진지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가 진행되어 왔다. 이에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관련 법률을 개정하여 교육감 후보와 광역단체장 후보가 정책적으로 연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총도 이러한 일에 방관자적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여야 할 것이다. 공공선에 근거한 교원단체 활동 패러다임 정립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한국 교육의 부정적인 모습들은 선(善)의지의 부족과 배타적 개인주의와 집단적 이기주의의 발로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선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배타적 개인주의나 집단적 이기주의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모두가 다함께 발전 하는 선한 공동체주의를 배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경쟁이 인간의 ‘선의지’를 침해하고 있다. 또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 이었던 역동성과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우리 헌법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상에 기초한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기초하여 인성을 회복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배려심과 이타심(altruism)을 복원시켜야 한다. 수많은 개인과 집단들이 서로 존중하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인류에 대한 배려와 이타심을 복원하는 선의지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확립해야 한다. 이러한 선의지의 확립은 대학에서의 교육보다는 유아교육, 초·중·고 교육에서의 인성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 초·중등 교육을 통해서 한 사람의 인성과 품성의 기본이 형성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자질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주체인 일선학교 선생님들의 교육관, 교육방법, 역량, 자질 등이 중요하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고귀한 선의지를 확립하고 선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최일선 첨병이다. 앞으로 한국교총의 활동 또한 무엇보다도 이러한 공공선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 문제에 관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이를 1991년에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으로 제정하고 2015년에는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으로 확대, 강화하는 등 교권보호를 위한 한국교총의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여러가지 교육 현안 과제들이나 쟁점들을 둘러싸고 집단이기주의적인 요구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무엇보다도 학교교육의 질 향상(Quality School)을 통한 우수 인재양성이라는 공공선 실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학교교육의 질을 거양할 수 있도록 교육여건 개선과 교원의 전문적 자질 향상, 그리고 교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에 보다 무게중심을 둬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교총은 이익단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그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압력단체 수준을 넘어서서 공공선을 실현하는 주체로서 학생·학부모에게 신뢰와 지지를 받을 때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주고, 교육입국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교직의 전문직 주의의 확립과 교권 보호 아울러 교원의 전문성 향상과 교권보호는 가장 우선돼야 할 가치이다. 아시다시피 교직은 전문직이다. 전문직에게 부합하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교직의 성격을 규정짓는 본질적 사안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1차적인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본질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어떠한 교육관련 구호도 논리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교원의 전문성과 자질은 질 높은 교육의 전제이자, 존경과 신뢰, 교권 존중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총의 활동 또한 교원들이 이러한 본질적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무엇보다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러한 전문직으로서의 교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원들의 실제 학교교육에 있어 높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학생들의 잠재력 개발과 소질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는지 겸허한 반성이 이루어져야 하며,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지하며, 모범적인 선생님이 되도록 세심하게 유의해야 한다. 교원들이 스스로 큰 책임의식을 느끼고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먼저 가져야만 전문성 또한 향상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면 여교사에 대한 성희롱 발생, 폭력 행사 등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넘쳐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아니한다’는 선생님에 대한 경외와 존경으로 상징되 는 말을 차치하고서라도 기본적인 관계마저 무너져버린 현실을 목도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다원화되고 개인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일부 버릇없고 기본적 소양이 되지 않은 학생들에 의해 발생한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그렇게 단순히 넘어갈 수는 없다. 실제 교육현장의 교권 추락은 심각하다. 최근 3년 간 교육부에 접수된 폭행, 폭언·욕설, 성희롱, 수업방해,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건은 1만 2천여 건이 훌쩍 넘어선다. 교권의 추락은 교원이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학교 교육력을 저하시키므로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 피해는 교원뿐만 아니라 결국 학생들과 우리 사회에 되돌아온다. 교권 수호 대책이 필요하다. 교직을 천직으로 여길 수 있는, 교직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간 교육 당국이 이를 위해 수없이 많은 정책을 제시했으나 교권은 계속 추락해 왔다. 공교육 회생은 교사와 학생 간 신뢰가 회복되고 교권이 확립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교권이 무너진 교육현장에는 교육이 존재할 수 없다. 교원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교단의 교육활동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상황에 대하여 학생의 학 습권과 교수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교권이 바로 설 때 비로소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 교권 확립을 위한 이면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교권침해 사례에서 교원들을 보호해 주고 이를 격려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총이 이들의 법적 보호를 위해 교권 옹호 기금을 마련하여 소송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교권 옹호를 위한 법률구조 서비스의 선진화라 할 수 있다. 교권 확립을 위해서는 교육 현장에서 교원들이 편안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째, 교원의 안정적 업무 수행을 위한 물적 기초가 마련돼야 한다. 교총의 노력으로 1972년에 대한교원공제회법이 제정된 것은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더 나아가 1973년에는 사학교원연금법의 제정을 실현하는 데에도 교총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이는 오늘날과 같은 고령화 사회가 현실화된 시점에서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선구적인 일이다. 교직사회의 안정에는 사학교원연금법이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둘째, 학교에서 오늘날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교원 개인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교총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독려한 끝에 ‘학교안전사고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교원이 안전하게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법제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돼야 한다. 존경받고 신뢰받는 새로운 교사상 확립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 등 국내외 교육환경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변화된 기대와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학생, 학부모와 신뢰관계를 구축하면서 학교 밖 더 큰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봉사하며 교육활동의 폭 또한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와 가정, 교원과 학생, 학부모가 함께 협력하는 교육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학교현장과 교육 주체 사이의 원활한 소통 속에 신뢰는 자연스럽게 뿌리내린다. 이제는 교원 스스로도 새 로운 교원상을 정립하고, 교육과 교직의 본질적 가치를 지켜나감과 동시에, 교권과 교육 발전을 위해 일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도덕과 공동체의식, 세계시민의식을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될 때 자연스럽게 교원의 자긍심은 세워지고 교권을 보호하겠다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과 문화형성이 가능하다. 이런 문화는 한 두 사람 교원의 노력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한국교총이 교육 구성원과 구성원을 연결하고 큰 흐름으로 이어가는 조력자가 돼 야 한다. 이런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교원단체의 활동이 절실하다.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라면 ‘무너진 학급’을 한 번쯤은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학급이 무너졌다는 표현은 담임교사와 학생들의 관계가 악화되어 서로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 사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고학년 교실로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에게 ‘판단 기준’과 ‘비교 대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순히 다른 반과의 비교를 넘어 우리 반에 대한 실망이 반복되고 담임교사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 학급 붕괴로 이어진다. 붕괴의 조짐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 간 신뢰관계에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매우 빠른 속도로 무너진다. 미국 범죄학자 조지 켈링(George Kelling)과 정치학자인 제임스 윌슨(James Wilson)이 명명한 ‘깨진 유리창’ 이론은 학급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학급 내 작은 문제를 교사가 해결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학생들은 허용치가 어디까지인지 두고 보자는 듯 점점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깨진 유리창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순간, 담임교사의 권위가 급속도로 하락하게 된다. 주위에서 목격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무너진 학급’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1 _ 우리 선생님이 이상해요 다른 교사에게는 깍듯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이 담임교사만 보면 얼굴을 구기며 돌아섰다. 왜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묻자, “선생님이 우리 이야기를 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친구관계나 생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담임교사에게 가면, 무조건 종이에 써오라고 지도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종이에 열심히 써 가봤자 그 어떤 공감도, 해결책도 얻을 수 없다. 이 종이는 학부모 상담용 종이이며, 그대로 학부모에게 공개되어 아이들은 더 이상 종이에 그 어떤 것도 적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종이는 마치 치부책 같았고, 담임교사는 종이를 손에 쥐고 아이들의 약점을 잡은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2 _ 적의 적은 나의 아군 소통의 부재로 담임교사와 아이들 간 신뢰관계가 깨진 상황 속에서 담임교사가 적이 되고 악의 축이 되어버리자, 담임교사와 반대편에 선 아이들이 힘과 권력을 얻게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해당 아이들은 보통 학급에서는 혼나야 마땅한 행동 들을 마치 영웅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예를 들어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수업 시간에 갑자기 욕설을 하며 나가버려도, 다른 아이들은 ‘아, 담임이 또 ○○○를 열 받게 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이때 담임교사는 나가버린 아이를 잡으러 갈 수도, 남아있는 아이들을 지도할 수도 없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3 _ 수업도 못하는 선생님 수업시간, 담임교사는 혼자 교과서 내용을 소리 내어 읽는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너나할것없이 일어나 공을 던지고 놀거나 춤을 추며 장난을 쳤다. 처음에는 담임교사에 대한 측은한 마음으로 얌전히 앉아 수업을 듣고 있던 여학생들이 “담임선생님 목소리가 전혀 안 들려서 수업을 할 수가 없고, 이제는 학급 관리를 안하시는 선생님이 미워질 지경이다”라고 표현하며 수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2학기 중반 무렵, 8명의 여학생이 급식을 먹은 후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남학생들과의 소통 부재로 힘들어하던 담임교사는 결국 여학생들과의 관계마저도 틀어져 버렸다. #4 _ 무너진 권위, 무너진 결속력 한 번 무너진 학급이 담임 교체 없이 정상 궤도로 돌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담임교사가 권위를 잃은 순간, 학급에서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주 사소한 다툼이 일어났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중재자 역할을 하려 하지 않 았고 아이들 또한 담임교사를 중재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다툼은 아주 집요하고 길게 이어졌다. 결국 이 다툼은 학급 내부 분열과 극심한 왕따라는 커다란 문제가 되어 돌아왔다. 이와 같이 교사의 권위 상실은 결국 학급 내 아이들 간의 결속력조차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같은 학년에서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면, 동학년 교사들은 함께 긴장하게 되고 학년부장의 고민은 깊어진다. 이 경우 학년부장의 권한으로 어디까지 개입을 할 수 있을까? 만약 해당 학급 담임교사가 도움을 거부하면 학년부장이나 동학년 교사들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무너져가는 학급에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 학년 내 교환수업 실시, 상담수업 실시 등 다양한 방법이 거론됐다. 그러나 초등교육현장에서 갑작스레 실시하는 과목별 교환수업은 명분이 부족하고, 해당 학급 학생들에게 아무리 상담수업을 여러 차례 실시해도 담임교사가 함께 바뀌지 않는 이상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학급 붕괴를 다룬 신문 기사나 그에 달린 댓글을 보면 학급이 무너지는 원인을 체벌 금지, 학생인권의 지나친 존중, 그리고 교권이 추락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급 붕괴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개인의 소서사(小敍事)를 중시하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주 인공이 되라고 부추기는데, 교사들은 다양한 장르의 주인공들과 마주하게 되어 큰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결국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지 않고 소통해야 하는데 평균 23.41명의 아이들과 빠짐없이 하루에 한마디라도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전부인 상황에서 ‘주인공 대접’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십 대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까? 벌써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세상살이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서로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도 ‘상대가 끝까지 자신의 의견만을 고수할 때 느끼는 답답함’인데, 이 경우에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일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저마다 엇비슷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난 후에 느끼는 답답함이니까 말이다. 이 상황의 주인공을 학생과 교사로 설정하여 유추해보면 어떻게 될까? 서로가 엇 비슷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는 있을까? 수업은 학생과의 대화가 아니다 사실 ‘교사인 나’는 거의 학생과 대화하지 않는다. 아침 조회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서 지각이나 결석을 챙기고, 바뀐 시간표를 알려주고, 학교생활의 소소한 상황들 을 얘기하는 것, 종례 시간에 교실에서 가정통신문을 배부하고 다음 날 챙겨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청소와 하교를 지도한다. 이런 일을 하는 교사가 틈틈이 학생과 나누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교과시간에 수업을 하는 것? 이것도 대화는 아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언제 학생과 대화를 하는 걸까? 매년 신학기 초에 상담주간을 실시한다. 하지만 소수의 학교를 제외하면 이것도 허울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나면 학생들은 저마다 학원으로 바삐 가야 하고, 교사들은 수업에 우선순위가 밀린 갖가지 업무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상담’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수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상담할 시간을 마련하는 몇몇 학교가 있어서 단 10분이라도 전체 학급 학생들과 개별상담을 실시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에도 ‘교사인 나’는 그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가정환경 언저리와 공부 현황, 꿈, 진로 등에 관해 묻고 답을 듣는 정도인데 이것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서로 담임과 학생으로 만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난 시점에서 서로 마주하고 나누는 질문과 답변일 뿐이다. 조·종례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엎드려있는 아이를 보면 나는 늘 “어디 아프니?”라고 묻지만 이것이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함께 하고 있지만 스스로 ‘교사인 나’를 찾아오는 아이를 제외하고 나면 내가 대화를 나누는 아이는 결단코 많지 않다. 대화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른인 ‘나’는 누구와 대화를 할까? 친구나 맘이 맞는 동료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때로는 영화를 함께 보며 나누는 이야기들, 그 소소한 일과 속에서 서로가 느낀 마음 단편들을 펼쳐놓으며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는 이런 것들이 대화가 아닐까? 마음을 나누는 직장상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떠 한 직장상사와는 대화가 잘 안 되는 걸까? 이사를 해야 해서 하루 연가를 쓰겠다는 교사에게 방학 때 이사하지 왜 학기 중에 이사를 하냐며 교장의 구두결재 먼저 받아오라는 교감과 나는 대화하지 않는다. 같은 질병이라 해도 석 달 전에 제출한 대학병원의 진단서로는 안 되니 진단서를 다시 제출해야 수능 감독을 면할 수 있다는 직장상사와도 나는 ‘대화’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다. 만약 그가 “지병이고 장시간 서 있는 것이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행정상 최근 일자의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면, “이사라는 게 선생님이 편한 시점에 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학기 중에 연가를 신청하는 선생님 마음도 불편하겠네요”라고 말문을 여는 직장상사라면 나는 그와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대화라는 것은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내가 마음을 꺼내놓으면 상대가 그 마음을 도닥여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대화를 통해서 ‘마음’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든든해지는데 교사는 ‘대화’보다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더 능숙한 것 같다. 교사는 학생이 무지의 상태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해시키는 데 주력한다. 이러한 태도는 대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교사는 아이의 문제점에 대해서 아이의 말을 듣기보다는 교사가 가진 정답을 얘기한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학생에게 왜 그랬는지를 묻기보다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우선 논한다. 교사만 그 아이와 대화했을 뿐 아이는 대화하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기 싫다며 무단으로 결석한 아이가 10일 만에 학교에 나타났을 때 ‘교사인 나’는 그 아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왜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게 안전하다는 것, 앞으로 있을 학교의 다양한 행사들, 반 친구들이 너의 소식을 궁금해한다는 것, 하나를 얻으면 다른 것은 잃게 되는 게 세상 인데 검정고시를 치면 세상 사람들이 왜곡된 시선으로 너를 판단하게 된다는 것, 하루를 너 스스로 계획하며 공부하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는 것, 네가 학교에 가지 않음으로 인해 너의 부모님이 느끼는 힘겨움, 공부야 어떻게든 해낼 수 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친구들과 지내면서 대인관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데 학교를 오지 않으면 대인관계 능력을 기를 수 없다는 것 등등을 이야기했다. 30여 분 동안 이어진 대화 동안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겠어?”에 대한 “예”가 전부였다. 나를 비롯해 주변에 있던 어느 교사도 그 아이에게 학교에 오지 않는 시간 동안 어떤 것이 행복했는지 묻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 지내는 동안 무엇이 아쉽고 힘들었는지, 외롭지는 않았는지, 그 아쉬움과 어려움은 어 떻게 달래고 지내왔는지, 긴 하루 동안 무엇을 하며 지내왔는지, 지금 아이의 생각은 어떤지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사만 그 아이와 대화했을 뿐 아이는 교사와 대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그 아이와 ‘대화’했고 ‘상담’했다 고 굳게 믿고 있다. 왜냐하면 ‘교사인 나’는 그 아이가 학교에 와서 반가웠고, 안심했고, 진심으로 그 아이가 학교로 다시 돌아오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교사인 나’와의 대화 동안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자신이 느꼈던 마음 단 한 조각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없었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이러니 내가 선생님하고는 대화를 안 하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상처로 남은 대화 내 기억 속에 상처로 남은 상황은 또 있다. 아침 등교 시간에 화장한 여학생을 불러 세웠다. “너 화장했지?” “안 했는데요.” “안 하긴 뭘 안 해? 비비크림이랑 다 발랐는데! 화장한 것도 모자라서 거짓말까지 하니.” 이 대화는 교사의 지시에 불응해 벌점 5점을 받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났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분노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늦잠을 자다 화들짝 놀라 깨어 세수도 못하고 한걸음에 달려온 월요일 아침의 학교 교문이었다. 전날 밤에 숙제를 펼쳐놓고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식사는 커녕 세수도 못하고 황급히 달려온 탓에 전날에 했던 화장기가 얼굴에 남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입술에 틴트를 바른 여학생을 불러 세워 왜 틴트를 발랐냐고 물었다. 여학생은 끝까지 안 발랐다고 우겼다. “왜 발라놓고 안 발랐다고 해?” “진짜 안 발랐는데요.” “계속 우기네. 이게 안 바른 입술이야?” “진짜 오늘 안 발랐어요. 휴지로 닦아보세요.” “(틴트가 묻어나오지 않자)지금껏 한 번도 안 발랐어?” “지난 토요일에 친구 따라 ○○가서 테스터 발랐어요.” “발랐잖아. 다음부턴 벌점 준다!” 틴트를 발랐다는 오해를 받은 학생과 교사가 나눈 대화의 시작은 입술을 뜯는 버릇으로 인해서 입술에 핏기가 점점이 드러난 것을 교사가 오해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일방적으로 학생의 주장을 부정했고, 자신의 판 단이 틀렸음이 드러난 상황에 직면해서도 물귀신처럼 벌점만 운운할 뿐 오해한 상황에 대한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아이가 강력하게 부정할 때, 그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거나 자신이 그렇게 믿는 이유에 대한 상황설명이라도 주고받았다면 어땠을까? 나도 아프지 않게 대화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동물이다. 하지만 십 대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감정만의 동물이다. 어른도 욱하는 감정을 삭이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십 대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른도 감정을 누르고 이성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십 대는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다. ‘교사인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데 홀로 무수히 많은 질풍노도의 십 대들 속에 존재한다. 그 십 대들은 마치 쓰나미처럼 엄청난 파도로 소리치며 달려오는데, 난 작은 보드 위에 올라 위험스레 파도를 넘으려는 서퍼와 같다. ‘교사인 나’는 넘어져 파도 속으로 잠겨도 다시 뚫고 일어서서 다시 파도를 넘고 싶다. 십 대들의 격한 감정을 타고 유유히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 지치지 않고, 쓰러져버리지 않고, 마음 다치지 않고서 그들 속에서 그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이 마음은 나 혼자만의 갈망일까? 그들도 마음 다치지 않고서, 지치지 않고서, 쓰러져버리기 전에 ‘교사인 나’와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을까?
2017 학교 풍경 ➊ 틈틈이 정감 있게 마주하기 어스름한 석양을 받고 한 교사가 한 학생과 복도에서 운동장 쪽을 보면서 뭔가 소곤거리고 있다.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부장교사를 하다가 올해 다시 1학년 담임을 맡은 A 선생님이다. 그리고 학생은 바로 그 학급의 B라는 것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벌써 몇 번째 목격하는 장면이다. 담임교사와 학생 사이에 오고간 말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 장면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환경이 어렵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그 학생을 포기하지 않는 그 교사의 진정성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B를 대하는 교사의 따뜻한 교육적 태도에 감동하게 된다. 지각이 잦으면 숫자로 누계하여 선도위원회에 회부해 버리고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대화나 정성으로 변화시켜 보고자 하는 방법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 에서 보면 A 교사의 교육활동은 요새 보기 힘든 장면이기 때문이다. 등록금 미납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이해하고 아이에게 정신적·물질적 힘을 주던 동료, 1·2·3등급 숫자가 아닌 척도로 공부의 의미와 인간의 삶 등을 소재 삼아 학생들과 대화하던 선배교사, 찾아온 학생들이 예뻐서 교무실에 옹기종기 앉혀 놓고 셀카가 없어도 훈훈한 사제의 냄새로 울고 웃던 장면을 연출하던 학년부 선생님들 등 예전에는 이런 장면들이 흔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고 그 관계형성의 매개에 SNS가 주요 수단이 되었다. 편리한 소통 도구라고는 하지만 교육적 관점에서는 불편한 도구로 느껴질 때도 많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학교 문화가 웬 말이냐 하겠지만 그래도 교육이 학생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면 교사와 학생은 마주 보고 대화하는 아날로그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 대화의 단절, 형식만 앞세우는 소통, 나와 타인 간 관계 맺기의 불편함 등이 어느 순간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되었다.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소통이라는 단어는 가장 많이 회자되는 어휘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SNS의 장점을 들어가면서 굳이 얼굴 맞대고 얘기 안해도 관계는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 다. 접근이 용이하고, 하고 싶은 말을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을 학교 내의 문제로 적용해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적어도 학교 에서는 정서적 교류나 따뜻한 보살핌 등 실제적 감각을 이용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사와 교사,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 등 어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관계형성의 문제점이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 단절이나 피상적 관계 맺기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교사와 교사 간의 관계형성은 또 어떤가? 전자문서 결재 시스템의 등장으로 결재자와 기안자는 대면 없이도 일을 해결하는 시대이다. 규모가 좀 큰 학교는 같은 학교 교직원인데도 연중 몇 번 인사도 못 하면서 지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시스템이 바꿔 놓은 풍경이라고 합리화하 기에는 좀 간지럽다. 교사끼리도 내적 관계형성이 되어 있어야 무엇이든지 서로 배우고 나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문’에 입각한 ‘공문 처리’의 과정 속에서 기계의 부속품 한 조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사회는 협업의 시대라고 한다.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너만 특별한 아이가 아니고, 모든 구성원이 소중하다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이론적으로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 바로 2017 학교 풍경을 보자. 공동체를 지향하고, 같은 학교 구성 원끼리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행히 교직원 협의회 시간을 이용해 그런 문화를 바꿔 보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보고 듣는다. 그런 자리 역시 삼삼오오 원래 친밀감 있는 교사들 끼리만 모이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욕심이었구나 하는 자괴감만 남을 때도 있다. 또 하나 동일교과 교사끼리 서로 배우고 나누는 활동을 통해 교사들도 성장하 자는 취지와 이 활동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이 더욱 많은 관계를 형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학교 내 전문적학습공동체 시간이 있다. 그러나 이 활동 역시 한계는 있다. 특히 수업나눔활동은 동료끼리 수업을 서로 보면서 같이 성장하 자고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활동 역시 내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채 이루어지면 그 부작용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다. “나는 그 학급의 수업이 유독 힘들어. 이유는 이것이야.” 이 대화 한 마디가 동료의 수업을 이해하게 되면서 서로 방법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수업의 기술을 탓하기에 앞서 근무하는 학교의 환경이나 수업하는 학급의 제반 환경을 바탕으로 한 내적인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서로의 불편함만 남게 된다. 그래서 관계형성을 위한 교사간 대화는 중요하다. 2017 학교 풍경 ➋ 수업에서 대화로 관계 맺기 “깔깔깔, 호호호.” 평소에 다소 무기력하고 반응이 없던 한 학급에서 수업 중 나오는 반응이다. 한 학기에 교과서 내용을 사회문제와 연결해 4개의 주제로 토론하고 논술로 쓰는 시간이었다. “우리 사회는 대화의 단절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특히 성인과 청소년들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두 세대의 언어불통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다. 이 시간에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신조어를 조사해 보고, 그 신조어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토론해 보자”고 했다. 일단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근래에 이런 활기찬 분위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찾아낸 신조어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그 중 ‘김치녀’와 ‘한남충’은 남녀학생들 간의 불꽃 대결을 만들었다. 그러나 ‘급식충’과 ‘틀딱, 꼰대, 아재, 나일리지(나이+마일리지)’ 등의 신조어 부분에서는 교사인 내가 학생들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어쨌든 청소년이 어른을 바라보는 시선, 우리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 분위기에 대한 성찰 등 이 수업에서 얻은 수확은 생각보다 많았다. 무엇보다 인터넷 신조어가 언어를 파괴한다고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사회의 부정적 현상을 고찰할 수 있고, 그것을 계기로 문제를 공론화시켜 문제해결을 하면 좋다는 학생의 발표도 있었다. 주제가 특별해 가능한 수업이었지만 너와 나의 생각, 기성인과 청소년의 사고 등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낯설게 하는 존재인가를 알게 해준 시간이었다. 바뀌는 수업문화 이제 고등학교도 수업이 많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 수능이라는 괴물이 살아 있지만 오지선다형의 국·영·수 실력 쌓기보다 ‘미래 역량’을 키워 성장시키는 교육이 학생들에게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업을 바꾸고, 평가를 다양하게 해서 아이 들에게 정말 필요한 역량을 키워주자는 의식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지식만 전달하고, 빨강펜으로 정답과 오답을 구별하는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성장하는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모든 학교 곳곳에 스며들기를 기대해 본다. 수업도 마찬가지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사제 간 만남이 있는 시간이면서 아이들 학교생활의 8할 이상을 차지 하는 수업이야말로 어찌 보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관계형성을 좌우하는 시간인 것이다. 모든 타인과의 관계가 좋을 필요는 없다. 상대가 나의 적이 될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좋은 게 좋다’는 온정주의도 조직 발전에 도움만 주지 않는다. 학교 구성원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타인과의 관계형성을 위해 먼저 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를 교사이게 하면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사람, 나를 불편하게 하지만 나를 늘 돌아보게 하는 사람, 서슴없이 거친 언어로 발언하지만 내게 힘을 주는 사람 등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남의 베풂을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학교 문화가 필요하다. 학생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존감을 선물해 주는 학생이 있는 만큼 자괴감을 주는 학생도 있는 법이다. 어떤 식의 관계이든 우선 서로를 알아가는 ‘관심의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가 사라지는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대화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제 고등학교도 학생들과 학교에서 마주할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교사가 역동적인 교육적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알기 위한 만남이 필요하다. 그것도 정서와 배려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오프라인에서의 관계 맺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맥락이 있는 생활지도나 질문이 있는 수업, 철학이 있는 학급경영 등 우리가 바라는 교육의 발전적 풍경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눈을 마주하고 나누는 서로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
말은 하고 있지만 전달은 안된다? 학년 말은 교사들에게 무척 힘든 시기이다. 특히 몇 해 전 6학년 담임을 맡아 운영할 때 이 시기를 무척 힘들게 보냈다. 교실에서 친구들 사이에 서로 놀리고 툭툭 치는 일부 아이들의 행동이 반복되었다. 따로 불러 주의도 주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반복되는 문제행동에 녹다운되고 말았다. 말은 하고 있지만 전달되지 않았고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나 혼자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교사로서 무척 자괴감이 들었던 기억이다. 돌이켜보면 모두 소통 부족에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유투버들의 은어를 이해하는 것만이 소통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새롭게 창조되는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비판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단절을 만든다. 또한 소통은 대화 당사자 간의 공감과 이해의 과정인데 문제해결에 교사의 입장만을 너무 앞세워 일방적인 지시를 했던 것이 학생의 반항심만 불태우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 간 소통의 문제는 어디에 서 일어나며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의 문제 원인 먼저 양 주체 간 소통의 불협화음은 각자 경험한 문화의 차이에 기인한다. 상대적으로 관료적인 문화 속에서 주어진 많은 것들을 받아들여야 했던 기성세대와 스마트폰 속의 유투버들과 소통하며 그들만의 창조된 언어를 사용하는 지금의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이전 세대들에게는 ‘요즘 아이들은 자유분방하고 심지어 이기적이다’라는 인식을 하게 한다. 둘째로 교사는 교사양성과정에서 학생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못한다. 수업내용과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학생과 관계를 어떻게 맺고 이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양성과정에서 이에 대한 내용은 매우 미약하다. 교사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살아온 방식대로 학생들과 만날 뿐이다. 셋째로 학교에서 학생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철저히 지식위주의 교과 내용을 습득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교사의 재량을 많이 강화했다고 하지만 진도 나가기 급급한 현실 속에서 학생과의 소통은 요원하기만 하다. 소통의 바람직한 자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정치에서도 큰 이슈가 될 만큼 시대의 과제가 되었다. 탈권위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은 환영받지만 위계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은 저항을 받는다. 교실 또한 다르지 않다. 민주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 과거와 같이 교사의 말을 수용하기만 했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 간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까? 소통의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지 고민해본다. 물론 소통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 모두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교사가 할 수 있는 부분만을 한정해 살펴본다. 먼저 교사는 학생의 관심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끼리 스마트폰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선생님이라면 이 순간 어떻게 행동 해야 할까? 그냥 이야기하든 말든 내버려 둘 것인가, 교실에서 스마트폰 게임에 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학교 밖에서 하라고 할 것인가.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공감이 매우 중요하며 공감을 위한 기술로써 ‘타인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먼저 판단하지 말고 학생이 좋아하는 것에 다가가 보자. 학생의 관심사를 존중하고 이해할 때 소통은 시작될 수 있다. 둘째, 의사소통의 내용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긍정적 대화와 부정적 대화의 비율은 5:1 정도 라고 한다. 소통은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화날 때는 침묵하고 기쁠때 더 많이 말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지시보다는 질문을 통해 생각할 수 있게 하고 꼭 해야 하는 부정적 말이라면 사람이 아닌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도록 한다. 셋째, 학생들과 따로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기 어려운 학교 사정상 일과의 대부분을 보내는 수업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업 방식을 다변화하고 분위기를 허용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전달식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며 토의·토론형 수업, 놀이형 수업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어떤 말을 꺼내도 안전한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넷째, 일과 중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소통을 늘려보자. 중·고등학교에 비해 초등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이 많다. 특히 담임교사라면 훨씬 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교실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수업시간만으로 학생과 소통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 외 다양한 시간을 활용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령 얼마 전 SNS에서 유명했던 미국의 한 선생님처럼 학생들과 아침시간에 인사를 해볼 수 있다. 힙합뮤지션이 하는 거창한 인사가 아니더라도 등교 시 하이파이브, 악수 인사로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인사한다면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가 그 전과 달라질 것 이다. 점심시간에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며 선생님과 대화하며 밥을 먹는다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선생님은 모든 학생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다섯째, 소통이 가능한 환경적 요건을 조성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학생과 교사가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시간에 쫓기고 마음에 여유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교사에게 수업과 학생 지도 본연의 일 외의 업무로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학생과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소통을 위해서는 학생 또한 여유가 필요하다. 엄청난 학습부담 속에서 친구와 경쟁하지 않도록 교사는 학급의 문화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흔히 교사의 전문성을 수업 위주로 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라면 교과 전문성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학급운영의 전문성이라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성공하는 학급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며 그 싹은 바로 소통 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말의 양을 늘린다고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교사의 작은 노력이 우리 교실을 건강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몇몇 지인들과 가을 나들이로 ‘금강산 건봉사(金剛山 乾鳳寺)’에 다녀왔다. 건봉사는 진부령과 거진읍 중간에 위치한 고찰이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그 위치가 남 한임에도 ‘금강산 건봉사’로 불려 왔다. 세월에 순종하고, 역사에 시달려, 흥했던 옛 모습은 간데없는 한적한 고찰이지만, 무심 한 듯 단풍이 붉었다. 건봉사에 가닿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내게는 그것 못지않게 유익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번 나들이에서 교육과 관련한 화두(話頭) 하나를 얻은 것이다. 일행 중 한 분이신 한국 상담대학원대학교 이혜성 총장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가 며칠 동안 내 마음에 감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상담학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갔던 이 총장은 가르치는 실천 경험을 얻기 위해 미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한 학급이 15명 내외여서 개별화 지도가 가능했다. 학생들의 개성과 적성을 다양하 게 존중하고 길러주려는 미국 교육의 풍토를 익힐 수 있었다. 그런데 학생 하나를 주목하게 되었다. 학교생활의 모든 면에서 좋은 활동을 보이는 아이가 있었는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수학 과목이 부진했다. 역사나 과학 과목을 배울 때는 평소 자기가 관심 가지고 관찰하거나 수집했던 것들을 가지고 와서 수업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학생이다. 그런데 유독 수학 과목이 뒤떨어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 교 사는 이 아이에게 특별히 개인 지도를 해주고 싶었다. 젊은 교사로서의 순수한 열정이었다. 아이의 엄마를 학교로 오게 하여 이 문제를 상담했다. 이 교사의 설명과 의욕을 듣고 엄마는 선생님의 관심과 정성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 총장은 아주 참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엄마의 말은 이러했다. “현재 우리 아이가 학교생활에 비교적 재미있고 활발하게 적응하고 있고, 수학 과목이 부족하지만 그 걸 특별히 스트레스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과목들도 많이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생님의 수학 개별 지도가 아이에게 심리·정서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그것이 좀 염려가 됩니다. 제 생각에는 두 가지 염려가 있어요. 선생님의 개별 지도를 받게 되면 우리 아이가 그동안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왔는데, 이제는 ‘아, 내 수학 실력이 남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구나. 그래서 선생님까지 걱정 을 하시는구나. 내가 문제로구나’ 하고 생각할까 봐 염려됩니다. 이를테면 ‘불필요한 열등감’이 생기게 되는 거지요.” 이 교사는 학부모 엄마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말을 이어 갔다. “또 한 가지 염려가 되는 것이 있어요. 선생님 지도 자체가 아이에게 ‘아! 나는 선생님의 특별한 대우와 관심으로 지도를 받는구나. 나는 다른 아이와 다르다’ 하고 생각하게 될까 봐 염려가 됩니다. 그리고 개별 지도를 받아서 수학 실력이 좋아지면 아이가 ‘나는 능력이 뛰어나다. 나는 남보다 훨씬 더 뛰어난 존재이다’ 하고 생각할까 봐 염려가 됩니다. 말하자면 ‘불필요한 우월감’ 이 생기게 되는 거지요.” 이 교사는 이때 참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발달과 교육에 대해서 큰 지혜를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상담 심리학자로서 한국청소년상담원 원장을 하면서도 우리 청소년들의 힘겨운 공부 과업과 청소년기의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해소하고 도와주어야 할지에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한국 청소년들이 세계 에서 가장 우울하고 불행하게 청소년기를 보내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이야기 를 들으면서 자녀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혁명에 가까운 의식 개혁’이 정말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각자의 이기심이 만들어 내는 ‘필요 =의 충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자아를 인식하는 심리의 차원’에서 보면 질적으로는 같은 차원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유로 말하면 열등감과 우월감은 한 나무에서 벋어난 서로 다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타자(남들 : others)에 비추어 보아 내가 나를 어떠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두 감정이기 때문이다. 남들에 비해서 못난 점이 많다고 ‘나’를 느끼면 열등감이고, 남들에 비해서 잘난 점이 많다고 ‘나’를 느끼면 우월감이다. 우리의 일상적 언어 사용을 보면 ‘열등감’ 이나 ‘우월감’ 모두 말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어느 정도 들어 있다. “김 선생은 열등 감을 가지고 있어”라고 말하면 이미 그 말은 김 선생의 성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이 된다. ‘우월감’도 마찬가지다. “박사장, 그 사람은 우월감이 좀 있지”라고 말하면 은연중에 우쭐대고 교만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그 말은 박 사장의 인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그 자체로 불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굳이 ‘불필요한 열등감’과 ‘불필요한 우월감’에주목하는 것은 우리가 교육이라고 노력하 는 것 중에 우리는 좋은 의도로 시도하지만 그것이 종국에는 안 가져도 좋을 열등감을 생기게 하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될 우월감을 만들어 주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아 이의 성적을 높여 보겠다고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특별지도나 과외지도가 그럴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앞뒤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우리는 각자의 자아 속에서 우월감과 열등감은 자리바꿈을 빈번하 게 경험한다. 우월감이 추락하면 열등감으로 변환된다. 내가 잘난 척했던 것들을 어느 순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래서 오히려 못난이처럼 보이는 상황이 되면, 우월감만큼 열등감이 생겨난다. 비유 컨대 잘난 척하던 건달 골목대장이 더 센 상대를 만나 무참히 깨졌을 때, 열패감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 할 것이다. 열등감이 왜곡되면 우월감이 될 수도 있다. 열등감을 무리하게 숨기려 들면, 그것 을 숨기기 위해서 위장된 우월감을 드러내 는 심리적 기제를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이는 가짜 우월감이다. 그런 만큼 급조한 우월감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우월감은 스스로를 서서히 망가뜨리지만 주변의 사람들도 망가뜨려서 위험하다. 군대나 직장 에서 이런 상사를 만나면 아랫사람들은 참으로 힘든 생활을 한다. 학력 결핍이 있는 아이에게 무언가 특별한 지도를 계획하는 것, 그 것도 아주 선의의 지도를 시도하는 것은 필 요한 일이다. 이는 학력을 살피는 차원이다. 그러나 그 필요가 아이의 총체적인 발달과 성장에 어떤 그늘을 드리울지를 살펴 서 결정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일이다. 이는 인간 발달 전체를 살피는 차원이다. 어떤 필요가 더 중요한 필요인가. 어떤 필요와 또 다른 어떤 필요 사이에 ‘학생’을 중심에 놓고 교사는 오래 고민하고 대화해 야 한다. 부모 또한 다르지 않다. 필요와 필요 사이에 ‘자녀’를 중심에 놓고 부모는 오래 살피고 대화해야 한다. 교육의 행로는 이렇듯 오래 사람을 소중하게 살피며 가야 하는 길이다. 자녀의 학업성적을 높이겠다고 온갖 투입을 마다하지 않는 세태이다. 사교육은 자녀의 학업성적을 높여주는 해결사 역할 을 자임한다. 학부모들은 다투어 사교육에 학력 높이기를 의탁한다. 그러나 필요하다 고 해서 모두 유효한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불필요한 요소가 그 안에 들어 있을 수 있다. ‘필요함의 불필요함’을 각성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불필요는 과잉에서 나온다. 자녀교육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남아돌면 그것이 좋은 작용을 하기는 어렵다. 과잉은 정신의 타락을 가져오기에 딱 좋다. 아, 참 그날 이혜성 총장의 이야기 중에는 이런 잠언도 들 어 있었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마음과 정신의 준비가 안 된 자식에게 많 은 재산을 그대로 넘겨주는 것은 마약을 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많은 잉여(剩餘)를 소유하려고 철학 없는 경쟁을 하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이 점에 대한 통찰과 숙고 를 더 많이 해야 한다.
쑥부쟁이· 여뀌 등 가을꽃이 지고 나면 ‘꽃쟁이들’은 무엇을 보러 다닐까. 퉁퉁마디·나문재·칠면초·해홍나물 등 갯벌에서 사는 염생식물(鹽生植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도 대부도·소래습지 공원 등으로 염생식물을 보러 다녔다. 인천국제공항에 가기 위해 영종도에 들어서면 서해 갯벌에 자주색 장관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해홍나물 등 염생식물들이 무리를 이룬 모습이다. 갯벌을 뒤덮은 자줏빛 향연, 함초 원래 함초는 퉁퉁마디의 별칭이지만, 염생식물들을 뭉뚱그려 함초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권지예 단편소설 꽃게 무덤을 읽으면 이 함초의 자주색 이미지가 강하게 남는다. 삼년 전 아내와 이혼한 주인공은 함초밭을 촬영하기 위해 강화도 앞 석모도 갯벌을 찾았다. ‘함초와 나문재 같은 식물이 넓게 깔린 장엄한 자줏빛 뻘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거기서 주인공은 우연히 자살하려는 여인을 구한다. 여인은 스스럼없이 주인공의 집으로 와 살았다. 그런데 여인은 새벽에 일어나 간장게장을 꺼내 먹을 정도로 간장게장을 좋아했고, 게장 요리도 잘했다. 주인공은 여인과 1년 가까이 살면서 사랑을 느꼈지만, 여인은 주인공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여인에겐 사랑의 상처가 있었다. 주인공은 어느 날 여인의 배낭에서 남자 사진을 발견하고 누구냐고 추궁하면서 우발적으로 손찌검을 했다. 다음 날 새벽 여인은 집을 떠났다. 속살을 발라 먹고 남은 꽃게 무덤 같은 자리만 남겨놓고 사라진 것이다. 주인공은 여인을 잊지 못하다 석모도 바닷가에서 그녀의 소지 품들을 떠내려 보내며 그녀를 잊기로 다짐한다. ‘함초’는 이 소설에서 두 남녀가 처음 만난 배경이자 소설에 강렬하면서도 비극적인 색채를 주는 이미지로 쓰이고 있다. 주인공이 떠난 여인을 그리워하다 꿈을 꾸는 장면 이다. 넓은 갯벌엔 무리 지어 자생한 자줏빛 함초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주 넓은 자주색 비로드 치마가 펼쳐진 것 같다. 하늘도 온통 함초잎 빛깔이다. 해는 이미 바다로 떨어졌다. 바다는 은갈치 빛으로 창백하게 반짝인다. 이 글이글 불타는 생피 덩어리 같던 석양이 지고 난 후 수평선 언저리는 점점 검 붉은 자줏빛으로 변하고 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꽃게 무덤’을 구상한 순간에 대해 “2003년 3월, 친구 셋과 함께 강화도에 가서 일몰을 구경하고 꽃게탕을 먹었다. 석모도의 함초밭 이야기를 언뜻 듣고 다음 날부터 안 먹고 안 자고 안 씻고 썼다. 원고 마감을 사흘 앞두고 있었다”고 했다. 작가 권지예는 경북 경주 출신으로,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서클 이화 문학회에서 활동했는데, 기형도· 성석제· 공지영 등이 활동한 연세문학회와 교류가 많았다. 이들은 일찍 등단해 두각을 나타냈지만, 권지예는 대학 졸업 후 교사 생활을 한 후, 미술평론을 하는 남편과 함께 파리 유학을 가 문학박사 학위를 받느라 30대 후반인 1997년에야 등단했다. 단편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을, 꽃게 무덤으로 2005년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짙고, 아름답고, 슬프고, 섬뜩한 해초, 함초 함초밭은 한번 보면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꽃게 무덤말고도 여러 소설에 등 장하고 있다. 동요 반달을 부르는 어머니와 불화를 다룬 윤대녕의 단편 반달에 도 함초가 등장하고 있다. 주인공은 아버지 사망 후 여러 차례 남자를 바꾸는 어머니와 불화하다 군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와 여행을 떠난다. ‘당진으로 가는 길에 개펄 곳곳을 뒤덮고 있는 붉은 함초지대를 스쳐지나’고, 결혼할 여자가 인천 을왕리 바닷가에서 ‘개펄을 뒤덮고 있는 붉은 풀들이 무엇인지’ 묻자 주인공이 ‘소금을 먹고 자라는 함초’라고 대답하는 장면도 있다. 그러면서 강릉 출신인 결혼할 여자가 ‘동해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이기에 궁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후명의 소설 협궤열차는 지금은 사라진 수인선(水仁線) 협궤열차를 무대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대학 때 사귀다 헤어진 류와 다시 만나 협궤열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염생식물의 하나인 나문재가 나오고 있다. 작가는 ‘너른 개펄에 선연한 붉은빛으로 가득히 돋아 있는 나문재의 군락’에 ‘마치 하늘의 나염 공장에서 그 빛깔만 골라 몇만 평의 천을 일부러 갖다 널어놓은 것 같이 보였다’며 ‘짙고, 아름답고, 슬프고, 섬뜩하다’고 했다. 이처럼 여러 소설에 등장하는 염생식물은 갯벌이나 염전 등 바닷물이 드나들거나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 사는 식물을 말한다. 멀리서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 보면 조금씩 다르다. 가장 흔한 것은 해홍나물로, 서해안 일대 육지 가까운 쪽 갯벌에 있는 염생식물은 해홍나물인 경우가 많다. 육지 쪽 갯벌에서 바다 쪽으로 나문재·해홍나물·칠면초 순으로 자란다. ‘바다의 산삼’, 함초 흔히 함초라고 부르는 것은 본래 이름이 퉁퉁마디다. 요즘 ‘바다의 산삼’이다, ‘고혈압· 동맥경화 등 성인병에 좋다, 다이어트 식품이다’며 마구 채취해 서해안 갯벌에서도 잘 살펴야 몇 개체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줄기가 통통하면서도 마디가 뚜렷해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나문재는 50~100cm로 자라 다른 염생식물에 비해 키가 크다. 봄에는 전체적으로 녹색을 띠다가 가을에는 붉게 물든다. 어렸을 때는 잎이 가늘고 길어 소나무 가지처럼 보이다가 크면 해홍나물과 비슷해 보이지만, 열매가 별사탕 모양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해홍나물과 칠면초도 비슷하게 생겼다. 해홍나물은 육지에 가까운 갯벌에서, 칠면초는 갯벌 깊숙이 들어가 자란다. 그래서 간척지 초기에는 칠면초가 주로 자라다가 해가 갈수록 해홍나물로 바뀐다. 그래서 칠면초는 오래된 간척지에서는 보기 힘들다. 칠면초라는 이름은 칠면조처럼 색이 변한다 해서 지은 것이다. 순천만이 칠면초 군락으로 유명하다. 두 식물의 구분 포인트는 첫째, 칠면초는 20~50cm로 키가 작고 보통 나무처럼 홀쭉하며, 해홍식물은 30~60cm로 가지를 많이 쳐서 시골 정자나무처럼 옆으로 퍼져 있다. 칠면초 잎은 곤봉처럼 뭉뚝하고, 해홍나물 잎은 길쭉하고 끝이 뾰족하다. 칠면초는 잎이 원 통형이지만 해홍나물은 잎 한쪽이 평평해 반원형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 나가보면 어중간한 것들도 적지 않아 아주 헷갈린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멀리서 보아도 칠면초인지 해홍나물인지 알 수 있다는데 필자도 빨리 그 경지에 이르고 싶다.
트렌드가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법은 거의 없다. 하나의 거대 트렌드 안에는 그와 전혀 반대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페이스북 이 국가간 장벽을 산산조각 낸 세계화 시대에,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멕시코 간의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과학기술이 언제나 ‘새것’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레트로(retro)에 열광한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퍼져나간 유행어가 있다면 YOLO일 것이다. ‘You Only Live Once’, 이 문장은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의미로 재해석됐다. 더 이상 사람들은 아등바등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봐야 ‘금수저’ 물고 태어난 인간을 이길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뭐 하러 애써” 개천에서 용나는 사례도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뼈 빠지게 노력해서 성공해봐야 인생에 무슨 즐거움이 있겠나 싶은 게 지금의 시대정신이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앨범 제목과 함께 돌아온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신곡 가사 에는 욜로의 정수가 그대로 담겨 있다. “열일 해서 번 나의 pay / 전부 다 내 배에 / 티끌 모아 티끌 탕진잼 다 지불해 / 내 버려둬 과소비해버려도 / 내일 아침 내가 미친놈처럼 / 내 적금을 깨버려도” 흥미로운 건 이 욜로의 반대편에서 ‘21세기형 자린고비’가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그맨 김생민은 장난처럼 시작한 팟캐스트 ‘영수증’을 통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신청자의 영수증을 보면서 이 사람이 얼마나 돈을 낭비하고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김생민은 지금까지의 신사다운 이미지를 버리고 낭비를 일삼는 신청자에게 “스튜핏(stupid)”이라는 독설을 서슴지 않는다. 욜로의 시대에 욜로의 반대말 같은 프로그램이 또한 인기를 얻고 있는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두 극단의 시대 욜로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욕하기 전에, ‘당신은 한 번 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의 의미부터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 번 밖에 못산다는 말이 어째서 현재를 탕진하고 오늘만 산다는 의미가 돼버렸을까? 한 번 밖에 못사는 인생이니 삶의 의미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자 는 의미로 갈 수는 없었을까? 김생민의 영수증도 너무 극단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돈은 쓰는 게 아니라 모으는 것’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모토 자체야 그렇다 치더라도 ‘커피는 누가 사주면 그때 마시는 것’이라는 행동수칙을 넘어서 ‘음악은 1분 스트리밍으로 들으면 된다’에 이르면 절약인지 민폐인지 구분이 모호해진다. 웃자고 하는 말에 너무 정색하는 건지 도 모르지만, 우리가 이제 와서 지향해야 할 캐릭터가 이런 식의 자린고비는 아니지 않을까? 사실 김생민의 영수증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김생민이 보여주는 독설에 있지 않을까 싶다. 미래가 불안하고 삶이 불확실하다보니, 사람들은 그게 누구든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 한 명쯤 나타나, 내 비루한 삶을 욕해도 좋으니 확신에 찬 코멘트를 던져주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반겼던 이유 시계를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으로 돌리면 그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극단의 시대이다. 그리고 그때에도 지금 못지않은, 어쩌면 지금 이상의 불안과 불확실성이 있었다. 독일인들은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오늘의 돈이 내일의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당시의 독일인들이 시장에 사과 하나를 사러 가려면 몸통만 한 가방에 산더미 같은 지폐를 가득 채워서 짊어지고 가야 했다. 그렇게 시장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으면, 어디선가 도둑이 나타나 돈은 탈탈 털어서 가방만 훔쳐 가더라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도대체 이 같은 불안과 불확실성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그 끝이 보이지 않던 바로 그 순간, 히틀러는 사람들의 나약해 진 귓가에 대고 “네 삶이 그 꼴이 된 건 결 코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속삭여 줘, 독일인들에게 히틀러의 초기 이미지는 폭군으로만 보여지지 않았다. 욜로와 영수증을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우리 역시 비슷한 함정에 빠질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도 모른다. 새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내건‘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슬로건이 그 예가 아닐까. 어차피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 이놈의 인생,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객이 되길 자처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때로는 욜로에, 때로는 자린고비에 마음이 이끌려가며 타인이 만든 리듬에 그때그때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이 억측이 틀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천국 그 자체였어. 바다 한가운데에서 거북이·상어·가오리와 함께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파라다이스!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을 거야.” 멕시코에서 만난 한 여행자, 3년째 세계여행 중이라는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려 가게 된 벨리즈의 키 코커(Caye Caulker). 계획에도 없던 곳일 뿐더러 사실 벨리즈란 나라 자체가 있는 줄도 몰랐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키 코커는 벨리즈 시티에서 쾌속 보트를 타고 45분 더 들어간 곳에 위치했다. 기다란 타원형으로 생긴 이 섬은 걸었을 때 짧은 지름이 15분 남짓, 긴 지름은 4km 정도 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2km 정도 구간의 작은 섬이다. 날 것 그대로의 생동감 넘치는 나라, 벨리즈 자연 그대로의 섬 위에는 뚝딱뚝딱 손으로 만든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나무로 된 팻말이라도 하나 세워져 있으면 가게, 그렇지 않으면 가정집이다. 사실 거리의 집들은 너무도 촌스럽고 조잡한 색들의 조합이 틀림없는데 희한하게도 여기처럼 날 것 그대로의 생동감 넘치는 거리를 본 기억이 없다. 도화지의 배경색이 카리브해의 파란색이라서일까? 목이 마르면 그림처럼 서 있는 길거리 야자수 열매 하나를 따 먹으면 그만이다. 하루 일과는 아침을 먹고 가깝거나 먼 바다로 나가 수영을 하거나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키 코커의 바다는 벨리즈 배리어 리프(육지에서 멀지 않은 바닷속에 길게 이어져 있는 산호초) 지역에 속하고 있어 늘 잔잔하고 평화롭다. 한 마리 인어가 되어 각종 물고기와 거북이, 때론 순한 상어들과 함께 수영을 즐 기며 아름다운 산호초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어느새 배가 고파진다. 어슬렁어슬렁 바다에서 걸어 나오며 바라보던 섬을 여전히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다. 매일 봐도 질리지 않던 내가 사랑하는 풍경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섬을 배회하던 중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2박 3일의 요트 투어 여행자를 모집합니다. 작은 섬에서 맞이하는 새해 인사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남편의 눈이 반짝였다. “여보, 우리 여행 가자!” “우리 지금 여행 중이잖아.” “아니, 요트 여행! 여행 중 떠나는 또 다른 여행!” 오호! 바다 위를 가르는 요트를 타고 카리브해를 유유히 누비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두 눈을 떠도, 두 눈을 감아도 한가득 불어오는 코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 요트 세일링을 떠나는 날 아침,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15명의 여행자와 캡틴 케빈, 그리고 선원 둘이 모였다. 탑승자 간의 서먹함은 라저 킹 호를 타기 직전 벗어 던진 신발과 함께 한방에 사라졌다(요트 투어를 하는 동안 신발은 필요 없기 때문에 출발 전 신발을 모두 벗어 한곳에 모아놓는다). 신발과 함께 일상의 모습도 모두 벗어던진 걸까? 모두들 소풍날 아침의 아이들처럼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뱃머리, 갑판 위 등 각자의 취향대로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두 눈을 떠도, 두 눈을 감아도 코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이 한가득 불어온다. 드디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요트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푸른 수평선, 손 내밀면 닿을 듯한 하얀 뭉게구름, 레게 음악에 어깨가 절로 들썩여졌다.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셔 한 손으로 살포시 그 빛을 가리고, 다른 손엔 얼음이 들어간 후르츠 펀치를 들었다. 요트 뒤쪽으로 돌고래 가족이 뒤따르고 있다. 우리는 영화 속 한 장면같은 에메랄드빛 카리브해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사실 라저 킹 호는 넓고 으리으리한 크루즈는 아니다. 선원과 승객 15명이 옹기종기 모여앉거나 누우면 꽉 차는 아담한 돛단배 같은 요트일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한정된 공간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랜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듯 배 위의 우리들은 금세 가까워져 있었다. 바다 보기, 낮잠 자기, 점심 먹고 스노클링, 멍때리며 낚시하기, 그리고 다시 바다 바라보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어느새 첫날 밤을 보낼 무인도에 다다랐다. 100m 달리기를 하면 끝나버릴 것 같고, 야자수 한 그루만이 유일한 주민인 무인도는 만화책에서 꺼내온 듯 너무나도 작고 귀여웠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 데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섬, 그 섬을 지나는 바람을 덮고 누워 달빛에 반짝이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밤하늘에 새겨진 별처럼 또 하나의 추억이 그렇게 가슴속에 새겨졌다. 15소년 표류기 속 주인공이 된 듯 둘째 날 아침이 밝고 어제와 똑같은 풍경이 눈앞에 흐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평화로운 시간이 끝나감 에 아쉬움이 밀려온다. 둘째 날의 무인도는 어제보다는 조금 크지만 그래봤자 섬 한 바퀴를 다 돌아보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저녁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캡틴 케빈과 선원 두 명이 실력 발휘 제대로 해서 우리들의 만찬을 준비해 주었다. 이름하여 ‘랍스터 파티!’ 함부로 구경도 못해 본 랍스터가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여 있다. 우리 모두의 배를 랍스터로만 채워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라니… 그때, 갑자기 선장 캡틴이 외쳤다.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작디작은 섬의 밤하늘에 자그마한 폭죽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우리는 모두 서로를 얼싸안으며 서로의 새해를 축하했다. 모두 다 함께 해피 뉴 이어! 오늘 밤이 지나면 여기 있는 모두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테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 15명은 마치 미지의 섬에 표류한 15소년 표류기 속 주인공이 된 듯 마지막 밤을 함께 즐겼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이 만들어지고 있는 그런 밤이었다. 세 단어로 알아보는 벨리즈 1. English벨리즈는 북쪽으로는 멕시코, 서쪽으로는 과테말라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온두라스만, 동쪽으로는 카리브해와 접해 있다. 국토 면적 22,966㎢ (남한의 1/4 정도)에 인구 36만 명이 조금 넘는 이 작은 나라는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데 반해 영국의 식민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영어를 쓴다. 2. Go Slow키 코커를 대표하는 단어는 ‘Go Slow’다. 섬 곳곳에 이 문장이 눈에 띈다. 한 달가량 키 코커에서 지내면서 느림의 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 중에도 매일 더 많은 것을 보고 얻기 위해 바쁘게 살아온 삶 중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웬만해선 뛸 일도, 화낼 일도 일어나지 않는 섬사람들의 삶에 점점 동화되었고, 거울 속 내 표정은 한층 온화해졌다. 조금 느리더라도 여유롭게 살기, Go Slow. 3. 키 코커 가는 길우리나라에서 벨리즈 시티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인천에서 출발,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약 13 시간 40분)에서 환승하여 벨리즈 시티의 공항(3시간 20분 소요)으로 이동 가능하다. 벨리즈 시티에서 키 코커 섬으로 가는 워터 택시를 타면 키 코커에 도착할 수 있다(약 40분 소요).
전래동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옛이야기 속에는 늘 동물이 나온다. 아예 ‘우화’의 형식으로 동물 자체가 주인공이 돼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야기도 있지만, 전설·민담·전래동화 등 옛이야기에는 교훈과 미담의 동물이 아니라 매우 상징적으로 동물들이 배치 되고 있어 사람의 심리가 동물들에게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살필 수 있는 좋은 모티브가 된다. 동물에게 투영된 ‘낯섦’과 ‘공포’의 심리 일반적으로 동양의 전래동화에는 호랑이와 여우 등이 많이 나오고, 서양의 경우엔 늑대와 개 등이 많이 나온다. 물론 소나 새, 물고기 등의 등장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 보통 서양의 경우는 암소가 많이 나오고, 새 역시 동양보다는 서양에서 조금 더 자주 확인된다. 그러나 물고기는 우리나라의 ‘잉어공주’, ‘용궁공주’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서양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확인되는 듯하다. 사실 전래동화 등 옛이야기 속의 여러 소재들, 이야깃거리들은 동양과 서양을 일괄적으로 묶어 분석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 이유는 비교 문화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온 역사가 다르고 문화적 풍토가 다르고 실제 자연환경에서도 분명한 다름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분석의 잣대로 전래동화 전체를 바라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공통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낯선 것’, ‘두려운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보통 ‘공포’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한다는 말처럼 ‘낯설다’와 ‘두려움’은 분명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프로이트도 이 문제에 주목한 적이 있는데 그의 두려운 낯섦 (uncanny)이라는 논문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잠깐 들여다보자. ‘두려운 낯섦’이라는 감정은 공포감의 한 특이한 변종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오래전부터 친숙했던 것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다. 어떻게 이러한 것이 가능할 것인가, 어떤 조건들이 주어졌을 때 친숙한 것이 이상하게 불안감을 주고, 공포감을 주는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모든 ‘새로운 것’ 즉, 낯선 것이 모두 공포를 자아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분명히 익숙한 것인데 그 안에서 어떤 낯섦이 도출될 때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쥐 이야기’가 이에 합당한 이야기다. 아이들에게는 ‘사람으로 변한 쥐’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진 내용이기도 한데 그 중심 내용을 대강 추려보면 이렇다. 어느 양반집에 시집을 간 며느리는 우연히 아궁이에서 밥을 하다 쥐 한 마리를 만난다. 배가 고파 보이는 그 쥐가 가여웠던 며느리는 매일 조금씩 밥을 주게 되는데, 어느 날 보니 쥐가 며느리 자신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결국 누가 진짜냐 가짜냐 논란이 벌어지고 억울하게도 진짜 며느리가 쫓겨나게 된다. 그 후 며 느리는 간난신고를 겪다가 노파로 변한 고양이를 만난다. 결국 그 고양이의 도움으로 가짜를 몰아내고 진짜 자기의 자리를 찾게 된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옹고집전’이라는 고소설에도 있지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돼 온 이야기로는 ‘밥알’ 대신 며느리의 손톱과 발톱을 먹고 변신한 쥐 이야기 등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또 놀랍게도 인도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는데 주인이 집을 떠나고 없을 때를 틈타 그 주인으로 변신한 쥐가 주인 노릇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때도 역시 고양이의 도움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분명히 익숙하고, 친숙한 것인데 묘하게 낯 설고 그래서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이 프로이트가 말한 ‘두려운 낯섦’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옛이야기들 속에는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하는 ‘두려운 낯섦’의 장치들이 매우 많이 나온다.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 동물은 대체로 쥐·구렁이·뱀·두꺼비 등 조금은 ‘징그럽다, 꺼림칙하다, 무섭다’ 등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동물들이 많다. 한국 전래동화 중 매우 유명한 ‘구렁덩덩 신선비’를 하나 더 살펴보자. 아이들에게는 보통 ‘구렁이가 된 선비’, ‘구렁이 신랑’, ‘뱀에게 시집간 딸’ 등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일종의 이물교혼 즉, 다른 ‘종’과의 혼인담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마치 서양의 신화 ‘에로스와 프시케’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잃어버린 신랑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자식도 없이 가난하게 살던 어느 할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에게 태기가 있고 곧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구렁이였다. 이 할머니의 옆집에는 부자 대감이 살고 있었는데 대감에게는 딸이 셋이었다. 할머니가 아이를 낳은 것을 알고 세 딸이 구경을 왔는데 첫째와 둘째는 구렁이라는 것을 알고 도망쳤지만 셋째 딸만은 피하지 않고 “할머니 구렁덩덩 신선비가 참 예쁘게도 생겼다”고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 후 이 구렁이는 대감 집 셋째 딸과 결혼을 시켜 달라 조르게 되고, 결국 할머니는 부자 대감을 찾아 혼담을 넣는다. 물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첫째, 둘째 딸들은 모두 징그럽다며 거절을 하고 셋째만이 허락을 한다. 첫날밤에 이르러 구렁이가 목욕을 하자 갑자기 너무도 잘생긴 선비로 변했다. 그는 벗은 허물을 새색시에게 주며 “이 허물을 잘 보관해 주시오”라고 말하며 허물이 잘못되면 돌아올 수 없으니 꼭 잘 보관해 달라는 당부를 거듭한다. 그 후 신랑은 서울로 떠나고 새색시는 결국 언니들의 설득에 못 이겨 허물을 보여주게 된다. 이일로 인해 색시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 떠나게 되는데 그 길이 너무도 힘들고 고된 노동과 고난의 길이 되고 만다. 그 후 신랑을 찾아 몇 가지의 시험을 거쳐 다시 잘살게 된다. ‘징그러운’ 동물들을 만나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막 결혼한 여인 또는 이제 결혼을 앞둔 처녀라는 것이 흥미롭다. 사실 프로이트의 제자이면서 분석심리학을 정립한 융은 이 동화 속의 ‘징그러운’ 존재들을 인간의 내면 그림자 즉, 감추고 싶은 부분, 부정적인 부분, 극복해야 할 부분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정신분석의 다른 측면에서는 이들 동물을 ‘남성’의 상징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뱀·구렁이·두꺼비·물고기 등은 남성의 상징으로서 대부분 결혼을 앞둔 신부가 이들 ‘징그러운’ 동물을 외면하게 되지만 이후 첫날밤을 치르며 그 동물의 ‘사람으로 서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 거의 클리셰(Cliché )처럼 등장한다. 이것은 결혼을 앞둔 여주인공이 처음 느끼게 되는 남성에 대한 두려움, 결혼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하는 장치로서 처음엔 ‘두렵고 낯선’ 존재였던 ‘상대’가 동물처럼 느껴졌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후 결혼의 의식을 치르고 드디어 한걸음 성장한 여주인공에게 보여지는 ‘동물’은 더 이상 ‘징그러운’ 상대가 아닌 한 명의 남성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시간엔 우리나라 동화에 많이 등장하는 호랑이 이야기와 서양의 동화에 등장하는 소와 한국의 동화에 등장하는 소가 어떤 의미와 상징을 가지는지 한번 살펴보자. 또한, ‘용궁공주’의 이야기를 통해 씨족사회의 공포를 이겨내는 그 시대 그들만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세월호 참사 이후 수영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를 통해 쉽게 생존수영을 익힐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개발돼 한국교총이 주최한 제48회 전국교육자료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구 죽전초 임성욱·현동호·김진욱 교사와 대구 한솔초 권수현 교사가 공동 제작한 교육자료 ‘거꾸로 교실로 익히는 SOS 수상안전교육’이다. 해난사고 발생으로 위험에 놓이거나 인명을 구조할 상황에 대비한 수영법을 짤막한 동영상으로 제작, 모바일 웹이나 QR 코드, NFC 카드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초적인 수영장 예절부터 물속에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통한 수중 호흡법, 몸을 새우등처럼 굽혀 물에 뜨거나 똑바로 누워 오래 뜨는 방법, 페트병이나 과자 봉지를 이용한 수영법, 인명 구조법 등 수상안전교육의 핵 심적인 내용들을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밌게 구성했다. VOD나 VR로 활용이 가능한 이런 내용의 웹 콘텐츠가 무려 109종에 이른다. 여기에 생존수영에 대한 교육과정 구성부터 학생용 워크북, 교사용 지도서, 학습지, 평가 자료 등을 체계화한 것도 눈길을 끈다. 제작에 참여한 교사들은 “학교 현장에서 수상안전교육을 쉽고 효율적으로 지도하고, 학생들은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 흥미있게 수영 기능을 익히는 데 목적을 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구상에서 완성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한다. ‘SOS 수상안전교육 자료’ 활용 방법은 간단하다. 수영디딤영상 자료를 제공하는 홈페이지에서 교사와 학생은 스마트 기기를 이용, 간단한 접속만으로 생존수영을 배울 수 있다. 다양한 영상 자료가 구비돼 즐겁게 익힐 수 있으며 실제 수영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도 간접 체험기회를 갖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SOS 수상안전교육’은 가상현실을 수업에 입체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스스로 학습이나 또래학습, 거꾸로 수업과 같은 학생 중심 교육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학생들이 수영교육을 받기 전, 집에서나 이동 중에 이 같은 교육자료를 통해 미리 공부한 뒤 수영장에서 배우면 학습효과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임 교사 등 4명의 교사가 수상안전교육 자료 개발에 나선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 수영 교육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은 형식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규 수업시간에 수영교육을 실시하고 3~5학년에서 생존수영 교육이 이뤄지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일회성 체험교육이나 영법 중심에 그쳐, 막상 위험에 직면했을 때 생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임 교사는 “유럽 등 선진국들의 경우 수영 기능보다 실생활에 유용한 수영교육에 방점을 두고 있다”며 “교육방법의 발상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영국은 초등학교 전 학년에서 수영교육을 필수로 하고 있으며 최소 25m를 능숙하게 헤엄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스웨덴은 사고로 물에 빠졌을 때 헤엄쳐 탈출할 수 있는 수준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옷을 입은 채 일정한 거리를 수영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방식이다. 프랑스는 초·중학교에서 6분간 오래 수영하기 등 교육과정에 구체적 기준을 명시하고 있고, 독일은 물에 빠진 사람 구출해 50m 헤엄쳐 나오기 등 청소년 인명구조 자격증 따기를 권장하고 있다. 생존수영교육은 선박사고나 물놀이 중 발생할 수 있는 실제 위급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임 교사는 “자신들이 개발한 SOS 교육자료가 학생들로 하여금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고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초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블로그(www.eduswim.co.kr)를 통해 모든 교사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재벌’, ‘화병’, ‘왕따’, ‘이지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 단어들이 그대로 영어 사전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왕따돌림’을 의미하는 ‘왕따’는 ‘wangtta’로, ‘이지메’는 ‘izime’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왕따’, ‘이지메’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따돌림’, ‘집단 따돌림’과 어떻게 다를까? 무엇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따돌림은 따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을까? 한국의 ‘왕따’와 일본의 ‘이지메’는 그 색깔과 수위와 강도가 ‘따돌림’과는 다르다. 괴롭힘의 강도, 가해자의 참여 범위, 피해자의 고통 정도 등을 고려할 때 전 세계적 으로 나타나는 ‘따돌림’으로 분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왕따의 늪 지독한 왕따에 한 번 걸려든 학생은 그 생을 살기 싫을 만큼 고통의 정도가 심하다. 그래서 자살 시도도 하게 된다. 몇 년 전 필자가 상담했던 고3 여학생은 같은 반 학생 전체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공부를 비교적 잘 하는 데다 행동이 다른 학생과 달리 독특하여 학기 초부터 따돌림이 시작되었고, 여름방학을 지나 2학기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다 9월 에 지방에서 전학을 온 전입생과 친하게 지내려 했으나 왕따 주동자들은 그 전입생에게 마저 압력을 행사하며, 같이 놀지 못하도록 조종했다. 결국 그 여학생은 1년 내내 혼자 급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자살시도를 두 번씩이나 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몸과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망가져 하혈을 몇 번씩 경험했고, 두통과 속쓰림으로 보건실·병원 신세를 진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갑자기 정신을 잃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두어 번 있었다. 2011년 말 대구에서 자살한 권 모 군을 상기시킬 정도의 심각한 사안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남학생보다는 여학생 사회에서 두드러진다. 왜냐하면 여학생은 성향상 친구를 사귈 때 ‘무리 지어 노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관계 지향적 성향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 학급의 여학생 인원이 15명쯤 된다고 할 때, 6~7명씩 두 그룹 정도가 형성되고 나면 자연스레 한 명이 남는 구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한 명을 그냥 ‘특별한 학생’, ‘독특한 아이’, ‘이상한 애’ 정도로 치부해 버리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아예 학급 친구들과의 접촉을 인위적으로 차단시키고 괴롭히는 ‘배타적인 심리’가 작용하면서 필연적으로 왕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학급 인원 구성과 여학생의 특성이 결합하여 따돌림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반 ‘왕따’를 찾아내는 방법 따돌림이란 학교 또는 학급 등 집단에서 한 명 또는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적극성을 가지고 지속적·반복적으로 소외시키거나 심리적 또는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많은 교사가 우리 반에는 (집단)따돌림 현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담임교사가 모르는 일이 바로 나의 학급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반 ‘왕따’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실제로 학급 담임교사가 집단 따돌림 학생을 가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학급 담임교사는 몇몇 학생의 면담과 수업 혹은 조·종례시간에 이루어지는 관찰만으로 학생들의 교우 관계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급에서 하루 종일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교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경우가 많다. 다음은 필자의 생활부장 시절의 경험담이다. 덩치가 작은 한 학생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믿을 만한 제보가 들어왔다. 담임교사에게 넌지시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본인도 나름 그 사안에 대해 알아보았으나 ‘절대 괴롭힘은 없었다’면서 그런 상황을 의심하는 필자에게 항의하듯 대응해왔다.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의 친구 몇몇을 불러 조사해 본 결과 사실무근이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필자가 멀쩡한 반을 이상한 학급으로 몰았다는 식으로 넋두리를 들었다. 그런데 진실은 오래가지 않아 밝혀졌다. 담임교사가 불러서 조사했던 바로 그 아이들이 피해자를 괴롭히고 따돌린 가해자였던 것이다. 이래서 학교폭력 연수 시에 피해학생의 친구를 불러 조사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왕따의 4층 구조 만약 우리 교실에 따돌림이 발생했다면 담임교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아무리 베테랑 교사라도 이러한 사안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피해학생의 심리적 상처를 최소화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왕따의 4층 구조(표 1 참조)에 비추어 학급 내 힘의 역학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 하다. 그리고 2층의 가해자나 가해행동의 주동이 되는 학생을 찾아내야 한다. 학급 내 모든 학생으로부터 진술서(사실확인서)를 받아 사안 조사를 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 다른 학급 학생의 진술서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생활교육부·상담실·위클래스·교감 등 학교 내의 모든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사실 파악에 힘써야 한다. 또한 학교 밖의 스쿨폴리스·위센터·청소년상담복지센터·시도정신보건센터 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다음은 사안 처리 과정에서 꼭 챙겨봐야 할 내용이다. • 피해학생에 대한 지도는 지속적으로 하며 기록 유지 • 피해학생 입장에 서서 지도·지원하고 전문기관 안내 • 유관기관 프로그램 활용 시 가해학생 지도 과정 및 결과 확인 • 궁극적으로 피해자 스스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상담 및 교육적 지원 • 처벌 지향적 조사보다 문제해결에 초점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친구관계가 세상의 전부, 우주 전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피해자의 생각을 이해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주저하거나 거부해도 끝까지 설득하여 일정 정도의 조치를 해야만 이 힘든 술래잡기의 구렁텅이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이해시켜야 한다. 가해자에게 적정한 조치나 교육 없이 몇 마디의 충고·훈계·야단으로 마무리된다면, 2층의 가해자들은 ‘1층 피해 자가 별것도 아닌 일로 담임교사에게 일렀다’는 구실로 피해자를 더욱 심하게 괴롭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피해학생은 입과 마음의 문을 영원히 닫아걸지도 모를 일이다. 왕따의 4층 구조 표1 왕따를 둘러싼 집단 속에서는, 왕따의 중심이 되는 학생이 있고, 동시에 그 외측에는 반드시 왕따에 가담하는 동조집단이 있어,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고립되어 있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학생이 보면, 주변에서 놀려대는 사람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도 ‘괴롭히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1층 : 피해자(왕따를 당하고 있다) 2층 : 가해자(괴롭히고 있다) 3층 : 주변에서 놀려대고 있는 자 → 왕따를 조장·촉진하는 작용 4층 : 보고 못 본 척하는 자 → 결과적으로 왕따를 지지하고 있는 작용 이 외에, 왕따를 말리려고 들어가는 ‘중재자’가 나타난다. 이 층은 ‘보고 못 본 척을 하는 자’의 층에서 적극적 방향으로 분화한 학생들이다. 그들은 폭력을 부정하고,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이 왕따에 대한 비판층을 어떻게 키워 나갈 것인가가 왕따 방지 지도의 과제이다. - 문제행동 대응 메뉴얼(2008, 서울특별시교육청) 왕따의 4층 구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집단은 ‘왕따를 말리려고 들어가는 중재자’이다. 이 층은 4층의 ‘보고 못 본 척을 하는 자’의 층에서 적극적 방향으로 분화한 학생들이다. 그들은 폭력을 부정하고,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이른바 ‘나쁜 편’이 아닌 ‘좋은 편’이다. 이 왕따에 대한 비판층에 대해 어떻게 교육을 시키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가르치며, 어떻게 용기를 북돋을지가 왕따 방지 지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2층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조치와 교육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을 체험하는 스마트폰 앱 등장 최근에는 사이버폭력·사이버따돌림 문제가 심각하다. 이른바 ‘저격’이란 10대 용어가 있다. 페이스북·카카오톡·인스타그램 등의 SNS상에서 한 학생을 표적 삼아 조롱하는 글을 올리면 다른 학생들이 댓글을 다는 식으로 비난을 쏟아붓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그 대상이 본인인지도 모른 채 ‘좋아요’를 눌렀다가 수십 명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돼지 같은 ✽’, ‘걸레’, ‘ㅁㅊㄴ’ 등으로 ‘저격’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찌어찌하여 교사가 적발해 사안 조사하려 해도, 그네들은 ‘ㅁㅊㄴ’이 의미하는 바는 ‘crazy girl’이 아니라 ‘맞췄니?’, ‘마침내’라고 둘러대면서 진실을 조롱하고 사안 조사를 피해 나간다. 그리고는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며 한 아이를 조롱하고 비웃는 상황이며, 당하는 아이는 마치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차라리 주먹으로 신체폭행을 당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저격’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격’에 동조하거나 방조하는 학생들도 언젠가는 자기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역시 이러한 사이버괴롭힘, 사이버따돌림은 그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우울감에 빠져 일부 학생들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한편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는 사이버폭력을 체험할 수 있는 휴대폰 앱, ‘사이버 폭력 백신’을 만들어 무료 배포했다. 이 앱은 실제 학생들이 겪었던 사이버폭력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으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수밖에 없는 폭력의 실체를 단 몇 분 만이라도 경험해 보고 그 심각성을 일깨우고자 제작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사이버폭력의 피해자가 됩니다’라는 안내를 시작으로 가입자의 이름을 입력한 후 시작 버튼을 누르면 아이들의 사이버 공격이 융단폭격으로 진행된다. 당사자는 ‘어···’ 할 겨를도 없이 그들의 요구대로 해당 SNS에 들어가야 하고 그들의 욕설을 온몸으로 감당해내야 한다. 3~4분의 체험이지만 끔찍한 사이버폭력의 실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모든 교사와 학부모 들이 체험해 보시기를 권장한다. 따돌림과 사이버폭력의 최대 피해자는 자존감이 약한 학생들이다. 발달단계의 특성상 청소년의 심리상태는 매우 불안정하며 자존감이 낮을 수 있다. 따라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가해자가 되어 인정사정없이 또 다른 피해자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따돌림이나 사이버폭력 피해 당사자가 되었을 때, 이를 터놓고 상담하거나 의논할 상대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학기 초부터 평상시에 담임교사가 학급 분위기를 ‘정의’에 가깝도록, 그리고 힘듦이 있을 때에는 언제든 상담과 신고가 이루어지도록 부드러운 학급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또한 ‘자존감’과 ‘소속감’은 따돌림 방지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건전한 정신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교사와 학부모는 교육과 양육의 과정에서 이것들의 함양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질의하시는 교원의 보수와 수당제도 등에 대해 각 시·도교육청에서 연수자료로 제공하는 ‘공무원 보수의 이해’를 기초로 최신 법령 개정사항을 반영해 안내 해드리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명절휴가비, 정액급식비, 직급보조비 등 실비변상성격의 수당 및 중·고등 학교의 학교 회계에서 지급되는 수당(교원연구비)에 대한 해설과 함께 QA를 종합·안내해드리겠습니다. 13. 주요수당 안내 – 정액급식비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8조) ○ 지급대상 : 모든 공무원 ※ 주의 : 국외파견공무원 수당을 받는 국외파견공무원과 강등·정직·직위해제 또는 휴직(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 으로 인한 휴직은 제외한다) 중에 있는 사람, 직제와 정원의 개폐나 예산의 감소 등에 따른 폐직·과원 등의 사유로 보직을 받지 못한 사람(소속 기관장으로부터 특정한 업무를 부여받은 사람은 제외)은 정액급식비 지급대상에서 제외됨. ○ 지급액 : 매월 130,000원 14. 주요수당 안내 – 명절휴가비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8조의3) ○ 지급대상 : 설날 및 추석날(지급기준일) 현재 재직 중인 공무원 ○ 지급기준일 : 설날, 추석 ※ 주의 : 지급기준일을 기준으로 각종 휴직의 사유로 근무하지 않는 경우 지급대상에서 제외되며, 휴가(병가,연가 등)의 경우는 지급됨. ○ 지급액 : 지급기준일 현재의 월봉급액 × 60% ○ 지급시기 : 보수지급일 또는 지급기준일 전후 15일 이내에 각 기관장이 정하는 날 ※ 주의 : 월중 인사 발령 시 지급방법 : 월중 인사 발령 시(신규채용, 퇴직, 승진, 승급 등 각종 임용)는 지급기준일(설날, 추석)을 기준으로 결정 15. 주요수당 안내 – 직급보조비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8조의6 및 별표 15) ○ 지급대상 : 모든 공무원 ○ 직급별 지급액 - 단과대학장(3급 상당) : 500,000원 - 학과장(학장보), 교장, 장학관·교육연구관(4급 상당) : 400,000원 - 전문대학 학과장, 교감, 장학관·교육연구관(5급 상당) : 250,000원 - 6급 상당, 장학사, 교육연구사 : 155,000원 ※ 주의 : 교사(수석교사 포함)는 직급보조비 지급대상이 아님. 16. 주요수당 안내 – 교원연구비 (「교원연구비 지급에 관한 규정」 및 시·도별 학교회계 예산편성 기본지침) ○ 지급대상 : 유·초·중학교 교원은 「교원연구비 지급에 관한 규정」에 따라 지급됨. ○ 유·초·중학교 교원의 지급액(「교원연구비 지급에 관한 규정」 별표 1) ✽5년 미만의 중학교 교원 중 도서벽지 근무교원은 3,000원 가산하여 78,000원 지급 ○ 고등학교 교원의 지급액 : 시·도별 학교회계 예산편성 기본지침에 따라 학교운영지원비 세입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급 가능함. - 다음의 내용은 2017년 서울시교육청 소속 고등학교 교원에게 적용되는 금액 기준임 ① 기본연구비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교원의 기본연구비를 달리 정할 수 있음. ② 직책연구비 많은 선생님께서 질의하신 BEST QA Q 교과담당을 하게 되면 담임보다 수당이 적어서 연금이 적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A연금은 「공무원연금법」 제46조 제4항에 따라 평균 기준소득월액의 100만분의 17,000을 받게 되며, 기준소득월액은 동법 시행령 제3조의3 제1항에 따라 비과세소득을 제외한 소득을 말합니다. • (전 년도 과세소득액 - 8개 평균대상 보수 연간소득액 + 공무원 직종 ·직급별 8개보수평균액) ÷ 12월 X (1 + 공무원보수인상률) • ※ (8개 평균대상 보수) 성과상여금, 직무성과금, 성과연봉, 상여금, 시간외근무수당, 야간근무수당, 휴일근무수당, 연가보상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담임수당은 위의 기준소득월 액 계산식에 반영되는 8개 보수가 아니기 때문에 담임수당에 따른 연금의 차이가 있습니다. Q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이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솔교사로서 함께 가며 출장비는 지급받는데, 시간외수당도 신청할 수 있을까요? A출장명령에 따라 출장여비가 지급되는 경우, 별도 의 시간외근무수당은 지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수업시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교육과 정 운영상 불가피한 출장의 경우 예외적으로 병급 지급이 가능하며, 이 경우 당일 총 근무한 시간이 드러나는 객관적인 증빙이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사전에 학교장으로부터 초과근무에 대한 승인을 받았거나, 행사 일정상 불가피하게 정규 근무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했고 그에 대한 증빙자료를 제출하여 학교장의 추후 승인을 받는다면, 초과근무에 대한 시간외근무수당 지급이 가능할 것 입니다. 참고로 교직원체육대회 참가, 교직원 연수 참가, 학교단위 문화공연활동 참여는 불가능하고, 보이스카우트, 문화유적지 답사, 소년·전국체전 참관, 현장체험, 각종 연수 등에 학생인솔을 하는 경우에도 수업 시수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경우 시간외수당의 지급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Q 교원연구비 수당의 지급근거가 학교급별로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요? A유 · 초 교원의 경우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의거해 교원 등에 대한 보전수당의 형태로 과거 교 원연구비를 지급한 바 있으며, 중등교원의 경우 시·도별 학교회계지침에 따라 교원연구비 등을 지급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 의무교육기관 에 학교운영비의 일부로 교원연구비를 지급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2013.8)에 따라 교 원연구비 지급근거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교원연구비 지급에 관한 규정」이 제정됨(2014.5.1)에 따라 중학교 교원에 대한 교원연구비의 지급근거가 마련 되었습니다. 해당 규정 제정 당시 순수 연구비에 한해 시도별 평균금액치인 6만 원을 기준으로 결정되었으며, 연구 비 지원금액 등에 대해서는 동 규정 제5조(재검토 기한)에 따라 2017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매 3년이 되는 시점마다 타당성 검토 후 개선 등의 조치를 하 도록 되어 있습니다. Q 관리수당이 3년 6개월 치가 누락되었습니다. 이 에 대하여 최근 3년 치만 소급하여 지급받았는 데 전 기간에 대해서 지급받을 수 없나요? A관리수당 등은 「민법」 제163조 1호에 따라 3년의 단 기소멸시효를 가진 금전채권으로써 수당이나 급여 의 누락분에 대하여는 청구 시점으로부터 과거 3년에 해당하는 부분만 채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관리수당 지급 누락분은 최근 3년 치만 소급하여 지급받는 것이 현행법률상 규정된 내용이며, 3년의 기간이 지난 누락분에 대하여는 청구할 수 없습니다. Q 과거 급여내역을 확인해보니 매년 1월 시간외 근무수당 중 정액지급분이 지급되지 않을 것을 확인했습니다. 방학 중에도 출근하기도 하는데 12월의 시간외근무수당은 지급되지 않는 것인가요? A시간외근무수당 정액지급분 중 12월분은 해당연도 12월 말에 지급하게 됩니다. 학교마다 지급시기 가 약간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대체로 11월 시간외 근무수당 정액지급분은 11월 급여와 함께 지급하고 12월 시간외수당 정액지급분은 12월 말에 지급하게 됩니다. 이 경우 12월에 근무한 날을 기준으로 15일 이상이 되는 경우 10시간분을 정액분으로 지급하게 됩니다. Q 2016년 12월 16일에 방학을 한 학교의 교사입니 다. 방학 중에는 41조 연수를 통해서 근무하지 않 았습니다. 12월 시간외수당 정액지급분을 받을 수 있나요? 지급받는다면 얼마나 나오게 되나요? A2016년 12월 정규 근무일을 기준으로 실제 출근 근 무일수가 12일인 경우, ‘실제 출근일수가 월 15일 미 만인 경우에는 매 1일마다 15분의 1에 해당하는 금 액을 감액하여 지급’한다는 규정에 따라 10시간분의 시간외근무수당 정액지급분의 금액에서 3/15만 큼 감액하여 지급받게 됩니다. Q 사립학교 교원으로 근무한 경력도 원로교사 수당 산정 기간에 포함되나요? A‘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별표 11. 다. 교직수당에 ‘1) 교육경력(초중등학교 교원근무경력) 30년 이 상이면서 55세 이상인 교원’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사립학교 교사로서 근무한 경력도 포함됩니다. Q 현재 임신에 따라 10월 16일까지 출산휴가 중이며, 바로 이어서 육아휴직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휴가 기간에 추석이 끼어있는데 명절휴가비 지급이 가능한가요? A명절휴가비는 설날 및 추석날(지급기준일) 현재 근 상태인 공무원이 지급대상입니다. 출산휴가는 근 무기간 중 휴가이기 때문에 지급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해당 일에 휴직(공무상 질병휴직 제외)상태 시라면 지급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정정합니다 (1) 지난 2월호 ‘똑똑 교직상식’에 게재되었던 ‘시·도별 학교안전공제회의 보장내용과 대상’의 QA 답변 중 세부 설명과 답변 요지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정정합니다. Q 학교폭력 피해학생에 대하여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고도 지원받을 수 있나요? A학교장이 피해학생 보호를 위하여 긴급하다고 인정하거나, 피해학생이 긴급보호 요청을 하는 경우, 「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 제1항에 따라 자치위원회의 요청 전에 ‘심리상담 및 조언’, ‘일시 보호’, ‘그 밖의 조치’를 할 수 있으며, 이후 자치 위원회에 즉시 보고하여야 합니다. (2) 지난 10월호 ‘똑똑 교직상식’에 게재되었던 ‘교원의 보수와 수당제도 해설(1)’ 중 가족수당의 지급액 관련 설명을 정정합니다. 가족수당은 2017.1.6일자로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별표 5. 가족수당 지급 구분표’의 개정을 통하여 첫째 자녀 2만 원, 둘째 자녀 6만 원, 셋째 이후 자녀 10만 원으로 변경되었습니다.(기존에는 종전 배우자를 제외한 첫째 자녀와 둘째 자녀는 각 1인당 2 만원, 셋째 이후 8만 원이 가족수당으로 지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