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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실존 인물의 기록 상록수 농촌 소설 상록수는 충남 당진 필경사에서 태어났다. 독립을 꿈꾸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요절한 심훈(1901~1936)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필경사(筆耕舍)는 '원고지에 농사를 짓는 집'이다. 필경사가 상록수의 산실이 된 것은 필연이었던 셈이다. 소설 상록수 실제 주인공 '공동경작회' 소설 상록수에 등장하는 '농우회' 회원들(16명)의 얼굴이다. 당시 당진 부곡리에서 농촌운동 모임으로 조직된 '공동경작회'를 운영했던 실제 주인공들이다. '상록수' 남주인공(박동혁)의 실존 인물이자 '공동경작회' 회원이었던 심재영의 회고 글을 통해 공동경작회 활동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공동경작회는 마을 내 야학 사업을 위한 사업기금을 논농사를 통해 마련하기 위해 결성됐다. 처음엔 12명으로 출발해 20명으로 늘어났다. 매주 한 번씩 모여 국내 정세보고, 작업일정 결정, 농사개량법, 교양강좌 등을 논의했다. 공동 경작한 논도 처음 7마지기에서 23마지기로 늘어났다. '공동경작회'는 지금의 영농협동조합의 시조라 할만하다. 소설 상록수에서도 채영신(실존인물 여대생 최영신)을 통해 당시 협동조합의 천국인 덴마크의 농촌혁신 사례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미이뉴스 기사 ‘상록수 속 공동경작회는 3농혁신의 실 모델’ 인용함.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 충남 당진 공동경작회 회원들.1937년 6월 촬영-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심규상 상록수 줄거리 박동혁과 채영신은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했다가 00일보사에서 주최한 보고회 겸 위로회 석상에서 만나 동지가 된다. 동혁은 수원고등농림 학생이고 영신은 여자 신학교 학생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동혁은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고향인 한곡리로 내려가서 농촌 계몽운동을 벌인다. 어느 날, 영신을 총애하는 백현경 여사의 토요간담회에 동혁이 초대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두 번째 만남을 계기로 영신은 청석골로, 동혁은 한곡리로 내려감으로써 농촌계몽운동의 전기가 되는 셈이다. 영신은 결혼하라는 말에 한곡리로 동혁을 찾아옴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 만남을 계기로 둘은 3년 후의 결혼을 약속하게 되고, 결혼과 농촌운동의 선택에서 갈등을 겪던 주인공들은 이후 보다 본격적인 농촌운동에 몰두하게 된다. 동혁은 갖가지 사업을 벌이고 20평짜리 농우회회관까지 장만한다. 지주의 아들인 강기천은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는 당국에서 농촌진흥회 사업을 권장하자 농우회관을 농촌진흥회 회관으로 돌리기 위해 수작을 벌인다. 동혁은 강기천의 수작을 눈치 채고 그의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한다. 기독교 청년회 농촌사업부의 특파원 자격으로 청석골로 내려간 채영신은 부녀회를 조직하는 한편 어린이를 위한 강습소를 마을 예배당을 빌어 운영한다. 영신이 세운 청석학원의 낙성식에 동혁이 초대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만남으로 동혁은 자신의 농촌계몽사업에 대해서 냉철하게 반성하는 기회를 갖게 되며, 보다 실질적인 농촌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영신은 여기저기 부탁을 해서 기부금을 얻어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어느 날 주재소에 출두한 영신은 강습소로 쓰고 있는 집이 좁고 낡았으니 학생을 80명만 받고 기부금은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말라는 주의를 소장으로부터 받는다. 무거운 마음으로 청석골에 돌아온 영신은 학생들을 내쫓는다. 학생들 사이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쫓겨난 아이들은 머리만 내밀고 담에 매달려 있기도 하고 뽕나무에 올라가 있기도 하며 키가 작은 계집애 들은 울고 있다. 그 광경에 감격한 영신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누구든지 학교로 와서 배우라고 한다. 영신은 하루바삐 교실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녀는 재력이 있는 한낭청의 집으로 찾아가서 약속한 기부금 50원을 내줄 것을 간청한다. 이 일로 영신은 기부금 강요 혐의로 주재소 신세를 진다. 출소한 영신을 과로로 쓰러진다. 청석골로 달려간 동혁은 맹장염에 걸린 영신을 입원시킨다. 동혁이가 없는 동안 강기천은 한곡리 농우회의 배신자들을 조종해서 농우회의 회장이 된다. 농우회 회관은 강기천의 뜻대로 진흥회의 회관이 된다. 이에 불만을 품은 동혁의 남동생 동화가 회관에 불을 놓으려다 들킨다. 이 일로 동화와 동혁이 함께 구속된다. 영신은 형무로소 동혁을 면회하러 간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농촌 운동을 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굳게 약속한다. 기독교계의 추천으로 도일해서 공부하고 돌아온 영신은 병이 악화되어 숨지며 그녀를 장사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동혁은 농민을 위해 살 것을 굳게 다짐한다. 심훈의 상록수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최용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꾸며진 이야기 심훈 기념관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심규상 최용신은 1909년 대한제국이 주권을 일본제국주의에 완전히 빼앗기기 1년 전 함경도 덕원군 현면 두남리에서 경주 최씨 창희(昌熙)공의 3녀2남 중 차녀로 태어났다. 원산에서 10여리 떨어진 두남리는 일찍부터 기독교가 전래되어 서양문화와 접촉, 개화된 마을이었다. 이러한 환경은 그녀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하였으며,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게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원산의 루씨보통학교,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협성여자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를 중퇴하기까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목 전희균 목사의 감화와 협성신학교의 황에스더(黃施德)교수의 지도와 영향을 받아 국가와 민족의 살 길은 쪼들고 가난하고 무지한 농촌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갖게 되었다. 천곡에 온지 8개월 만에 강습소 인가를 받아 내고 1년 3개월 만에 강습소를 신축하여 110명의 아동들을 교육시키는 학교로 발전시켰다. 이와 같이 최용신의 천곡에서의 활동은 천곡강습소의 교장 겸 교사로서, 마을 주부들의 주부회 지도자로서, 마을 청년회의 후원자로, 천곡교회의 종으로서 천곡의 온 마을에 그녀의 손길과 마음이 아니 거친 데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천곡의 산 선지자였다. 1935년 장중첩증(腸重疊症)에 의하여 26세의 짧은 인생으로 최용신이 사망하자 천곡마을 사람들은 그를 사회장으로 1,000여명의 조문객의 애도 속에 강습소가 보이는 곳에 안장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를 소재로 작가 심훈이 '상록수'라는 농촌소설을 집필하였으니 상록수의 여주인공(채영신)은 최용신을 모델로 한 작품이었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몰입도가 떨어지는 책 상록수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농촌계몽소설이고 줄거리를 알고 있는 책이라서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잠이 들었고 책장을 덮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책장마다 등장하는 토속어 사투리였다. 한글 소설이 분명한데도 마치 외국어를 읽는 것처럼 독해가 되지 않아서 힘들었다. 많은 사람, 특히 청소년이 많이 읽을 수 있게 하려면 시대에 맞는 언어로 개작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 책이다. 아무리 좋은 책도 번역이 되지 못하는 이 나라의 문학의 현실이 노벨문학상에 먼 이유를 짐작했다. 감정과 정서적 몰입에 방해가 되어 글의 흐름을 끊어놓은 이 책의 집필진에게 화가 났다. 나만의 경험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주인공들이 실제 인물과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박동혁과 채영신은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구국의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복과 안락을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 대다수의 사람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모습, 사랑보다 투자와 거래 대상으로 전락한 결혼 모습, 성폭력과 성추행으로 얼룩진 문란한 성윤리에 몸서리치는 뉴스들이 넘치는 현실이 아닌가? 주인공들은 오직 농촌계몽운동을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행복마저 유보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지고지순한 모습으로 지켜주는 순애보는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와 알퐁스 도데의별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작가라면 두 사람을 결혼부터 시켜서 농촌계몽운동을 하게 했을 것 같다. 서로 이상과 꿈이 같고 대화가 통하는 상대이니 시너지 효과가 나서 보다 더 훌륭하게 진전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깔아야 했으니 어쩔 수 없으리라. 부끄럽게 하는 책 상록수 채영신의 모습은 선생으로 사는 나를 부끄럽게 하는 캐릭터다. 나에게도 가르치는 아이들을 그처럼 걱정하고 몰입했던 때가 있었다. 눈물 흘리며 걱정하며 제자의 인생에 끼어들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매너리즘에 빠져서 죄만 짓지 않는 수준으로 교단에 서 있는 것만 같아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이 나라에는 학업중단 학생이 수만 명이고 학교를 나와도 일자리가 없는 청년 또한 엄청나다. 좁은 문을 향해 한 줄로 서서 커트라인에 걸리지 않으려고 서로 물어뜯으며 폭탄돌리기에 매몰되어 아수라장이 된 현실을 부정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조정래 작가의 소설풀꽃도 꽃이다는 결코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다. 대한민국 교육현장의 아픈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상록수와 같이 읽어야 할 필독서다. 우리는 지금 독립국가가 분명하다. 입에 풀칠을 하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나라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없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잃고 가난하고 비참했던 시절보다 더 패배의식과 냉소주의에 빠져있다. 이러한 상황을 빠져 나올 대안은 바로 상록수의 주인공들이 보여주었다. 바로 계몽정신이다. 좌절과 자기비하에서 벗어나게 하는 ‘교육’에 답이 있다. 현재와 같은 경쟁 일변도의 문화, 갑질 문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의 담론이 절실하다. 그것은 단편적인 입시정책이나 보육대책, 일자리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근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묵정밭이 되어 더 이상 거름기가 남아 있지 않은 정책을 과감히 뒤엎고 사회 전반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전환만이 살 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교육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모든 학생을 편견 없이 소중히 하는 일,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는 일, 뒤처진 학생을 배려하고 이끌어주는 교육정책으로 가난해도 희망을 품고 힘들어도 바라볼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선생님과 정치지도자가 절실함을 죽어가는 채영신을 대신하여 박동혁은 외치고 있으니!
“얘들아, 누가 물속에서 오래동안 숨 안 쉬고 있는지 시합할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깨끗한 모래와 자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냇가에서 실컷 멱을 감고 물장구를 치면서 신나게 놀다 보면 하루해가 금방 저물곤 했다. 물싸움을 하다가 지치면 큰 바위 위로 올라와서 놀다가 잠이 든 친구의 고추를 실로 묶어 놓고 친구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줌을 싸는 모습을 지켜보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시냇가에 있는 큰 돌 몇 개를 살짝 들어보면 그곳에는 영락없이 가재들이 있었는데 빠알간 알을 밴 어미가재들 주변에는 새끼 가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디 가재뿐이겠는가! 송사리, 피라미, 모래무지 같은 1급수에만 산다는 물고기들이 많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고추를 한 소쿠리 따서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돌아오셨다. 왼 종일 밭에서 고추를 따느라 허리가 아팠을 텐데도 불구하고 큰 대야에 물을 가득 받아서 등목을 시켜주셨다. 집에서 학교까지 20여리가 넘는 산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면 계곡을 따라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기도 했다. 지금같이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했던 때라 물 한 잔도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동네 우물가에는 큰 두레박이 있었고 물지게를 지고 이 집 저 집에서 물을 길러 온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손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떨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린시절 시냇가 물은 얼마나 맑고 깨끗했던지 얕은 곳은 밑바닥이 다 보일정도였고 송사리나 피라미 같은 물고기들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쉽게 구경할 수 있었다. 깔을 베고 난 후 또는 가을에 타작을 할 때 땀이 나서 참기 힘들 때면 저수지 물로 풍덩 뛰어 들어 가서 멱을 감았다. 저수지 물에서 수영하는 것이 좀 시시하다 싶으면 조금만 걸어가서 강에서 신나게 수영을 하곤 했었다. 그 때는 저수지나 강물이 맑고 투명한 유리알처럼 깨끗했기 때문에 목욕을 하고나서도 개운하고 시원한 느낌이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동네 앞에 저수지는 아이들의 놀이터요 목욕탕이었다. 지난여름 방학, 고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점심 식사 후 옛날 생각만하고 수돗물을 틀어서 그냥 마시려고 하는데 큰형수님께서 “그냥 드시면 안돼요.”라며 펄펄 끓인 보리차를 주셨다. “형수님, 수돗물은 안심하고 그냥 드시면 되요.”라고 말씀드린 후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 드렸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하고 있는 분이 어찌 형수님뿐이겠는가! 사실 나도 한 때는 그러한 근거 없는 오해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09년부터 환경부와 한국상하후도협회에서 주최했던 전국 초등교사 물 사랑 자문단장을 하면서 그러한 오해가 싹 풀렸다. 초등학생들의 수돗물에 대한 의식을 조사하고 창의적체험 활동 시간에 사용할 물이랑 놀자라는 교재를 개발하는데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정수장을 방문하고 물 사랑 콘텐츠 개선을 위한 모니터링을 실시하면서 수돗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러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수돗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수돗물을 마음 놓고 일상생활에서 마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돗물보다는 정수기 물을 많이 마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수돗물 맛은 세계 7위로 매우 우수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식수로 마시는 비율은 5%정도로 일본, 미국, 영국 등 OECD국가에 비교해 낮은 편이라고 한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아리수’란 페트병 수돗물이 있지만 대부분 공식적인 회의석상에 사용되고 있다. 우리 몸의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물만 잘 마셔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품질 좋고 깨끗한 우리나라 수돗물을 안심하고 많이 마셔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했으면 좋겠다.
경기 일산 경찰서가 최근 관내 초·중·고교 현장학습차량 운전기사에 대한 음주 여부 감식을 교사가 직접 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확인되어 파문이 일고 있다. 일산경찰서는 24일 관내 90여개 학교에 ‘현장학습차량 운전자 음주감지 관련 협조 요청’ 공문(사진)을 보내 관내 초·중·고교 현장학습차량 운전자 음주감지 관련하여 학교별로 음주감지기 구비, 경찰관 임장 불가 시 자체감지 후 이상 있을 시에만 경찰에 통보하라고 했다. 즉 학교가 직접 음주감지기를 구입해 버스기사의 음주 여부를 확인한 뒤 음주가 의심될 경우에만 경찰에 연락하라는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선 학교는 당황 그 자체다. 학교 교사가 음주측정을 할 범적 근거도 없거나와 운전기사가 거부할 경우에는 사법권도 없어 이들을 더 이상 강요할 강제권이 없다. 그러므로 학교에게 음주측정을 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는 일이다. 경찰의 운전기사 음주측정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의 ‘수학여행과 수련활동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 방침으로 시작된 점에서 보면 이는 분명히 정부방침을 거스르는 일이다. 교육부는 당시 학교가 지방경찰청 또는 관할경찰서 교통안전부서에 요청해 출발 당일 학생 수송버스 운전자에 대한 음주측정을 하도록 했다. 당시 안전 문제가 부각되면서 경찰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경찰의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안전을 위한 운전자의 음주 단속은 경찰의 대민봉사의 한 업무이며 경찰의 고유한 사법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함에도 이제 와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은 부처 간의 업무에 대한 이기주의다. 신임 이철성 경찰청장은 취임사에서 "원칙이 상식이 되고 신뢰가 넘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힘을 쏟자"고 했지만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해마다 학기말이면 교사들은 성적처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과목도 한 두 과목이 아니고 많은 과목을 일일이 기록해야하고 또한 부수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기 때문이다. 성적 처리는 교사의 의무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겠지만 문제는 문장으로 서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을 생각하여 대부분 교사들은 공부를 못하고 행동이 불량스러워도 대부분 좋은 점만 써주게 마련이다. 우스갯소리로 자녀들이 중학교에 가면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이 정도였나?"며 자녀의 실체(?)를 알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내 아이가 이 정도였나?’의아해하며 어떤 분들은 초등학교 교사를 원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초등 교사들은 교사들 나름대로 많은 고민이 있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가급적이면 ‘학생의 행동 중 좋은 점은 무엇이 있을까?’고민해서 기술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성적이 워낙 낮고 태도가 불량스러워 행동 수정이 반드시 필요한 아이들조차도 좋은 면만을 써주어야 하다 보니 때로는 갈등을 느낄 때도 있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자신의 행동이나 성적에 솔직히 직면하게 해주는 것이 오히려 학생에게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 수정이 가능할 것이고 학부모들도 자녀의 수준을 직시해서 학업이나 진로 지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전통적인 방법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가져보았다. '수, 우, 미, 양, 가'로 표기하거나 아예 과목별 점수를 그대로 입력해주고 행동 특성 및 교과학습 발달 상황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따라서 향후 초등 생활 통지표 작성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추진되었으면 한다. 첫째, 기존의 교과 학습 발달 상황을 입력함에 있어 글자 수를 100자 이내로 해야 한다. 일정한 기준이 없다보니 담임교사마다 서술의 양이 다르고 좀 많이 서술했으면 성의가 있어 보이고 적게 서술했으면 성의가 없거나 무관심한 듯한 오래를 불러일으키는 등 교사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기 십상이다. 글자 수를 100자 이내로 통일하면 교원 업무경감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여진다. 둘째, 수행 평가도 최상, 상, 중, 중하, 하 등 5단계보다는 일정 기준(60점 이상) 통과했으면 통과,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면 미 통과의 두 단계 방식인 P/F제로 했으면 한다. 셋째, 학부모들이 중간, 기말 성적 또는 상시 평가를 통해 충분히 자녀의 성적을 알 수 있도록 교과 학습 발달 상황도 100자 이내로 서술하거나 기존의 방법인 '수, 우, 미, 양, 가' 또는 기말 성적 평균을 입력하는 방법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렇게 되면 학부모들도 명쾌하게 자녀의 수준을 알 수 있고 자녀들의 능력이나 성적에 대한 오해나 착각이 줄어들 것이다. 기존의 성적 입력 방식은 괜한 오해나 기대심리만 심어줄 뿐 교사들의 업무 경감만 과중되고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투자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급박한 현실 문제에 매달려 미래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다면 장기적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 진입을 바라보면서 인적자원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증거는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선진국은 이미 지식 중심의 경제 발전을 이뤄가고 있으며, 국제적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 현재 교육제도는 젊은이들이 꿈과 끼를 찾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 그 증거가 올 수능에도 재수생이 늘고 재학생이 줄고 있다. 그만큼 제대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지 못한 채 대학만 진학한 결과이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잠재성과 창의성을 찾아주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미래에 대두될 인적자원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핀란드 공교육을 설계한 살베리 교수는 "한국과 미국 등은 교육제도를 표준화하고 일정 기준에 맞출 것을 교사와 학생에게 요구하고 있다"며 "그 보다는 학생의 창의성을 강조하고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교육하며 잠재성을 기반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학생들의 꿈과 끼를 찾아주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자유학기제에 대해서도 지속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유학기제는 학생의 잠재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실험적이고 좋은 아이디어"라면서도 "1년에 한두 번 운동한다고 건강해지지 않듯이 자유학기제를 1학기 동안 진행한다고 청소년들이 곧바로 꿈과 끼를 찾고 자유로워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핀란드는 자유학기제 같은 방식을 전체 학교 시스템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비판 속에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도록 도와준다는 원칙이 꾸준히 실행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 개혁의 방향에 대해 살베리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면서도 "학생들이 종일 노트북이나 태블릿PC, 스마트폰 등을 사용하면서 깊은 생각과 학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답했다. 그는 "아이들은 남과 눈을 마주치며 15분 동안 대화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며 공감능력과 이해력, 사고력 등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살베리 교수는 모든 학생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필수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한국과 핀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코딩 교육 등이 각광받고 있지만 모든 학생이 프로그램 언어를 배울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학생이 코딩을 배우는 것은 자원 낭비이며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만 선택해서 배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살베리 교수는 30년간 핀란드 교육 개혁에 참여하면서 공교육 모델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로 하버드대 객원교수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책분석가, 세계은행 교육 전문가 등을 지냈다.
저자는 스티븐 코비박사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여덟 번째 습관을 추가했는데 그것이 바로 ‘나눔’ 이다. 나눔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이고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즉, ' 더불어 사는 삶 ’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눔의 삶에 대해 어색하며 무슨 큰돈이나 물질이 있어야 가능하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작은 배려와 나눔이 모여서 언젠가는 더 큰 나눔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채근담」이나 「명심보감」에는 노력 없이 얻은 재물이 얼마나 위험한 함정이 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 이기주의에 얽매여서 자식에게 큰 유산을 남겨주지만 결국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나눔은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하며 자선을 베풀지 않아도 되는 이유까지 생각하며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기에 불쌍한 사람이 손을 내민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 손을 잡아 주는 것이 훨씬 인간적인 것이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아름다운 기업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의 구제 사업과 나눔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고 각계각층의 사람들도 나눔의 대열에서 열심히 홍보하고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참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이름 없는 서민들의 동참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정신대 할머니의 기금, 멸치 한 상자의 기금 등 적은 돈이지만 나눔의 정신으로 모아지는 수많은 나눔의 물결이 일었다는 감동적인 구절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역시우리 민족은 예부터 서로 돕고 협동하는 아름다운 미덕이 있는 훌륭한 민족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질풍노도와 같은 험난했던 역사에도 불구하고 서로 돕고 나누는 아름다운 미덕은 전 세계 어느 민족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물질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고 자그마한 것에서부터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 기술, 전문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나눌 것이 없어서 못 나누기 보다는 나눌 수 없는 마음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 올바른 나눔의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기부금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쓰일 수 있는 잘 정비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 동안 변변한 나눔 운동 한번 못 해본 자신이 부끄러웠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잘못된 가치관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갖고 있는 물질 뿐만이 아니라 지식, 아름다운 마음, 사랑의 미소를 이웃과 함께 나누고 가꿔서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국민이 될 것을 조심스럽게 다짐해 본다.
경기 A초등학교 돌봄 교실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이 돌봄 교실에 모여앉아 블록 쌓기, 보드게임, 책읽기, 받아쓰기 대비를 위한 연습은 물론 난타와 체육 그리고 만화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샐 틈 없이 바쁘다. 게다가 한글 미해득 아동들을 위해 한글을 기초부터 가르쳐주고 학교 받아쓰기 시험을 대비해서급수별로 연습도 시켜준다. 맞벌이 부부의 안정적인 돌봄을 위해 시작한 초등 돌봄 교실이 서서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학기 중에는 간식, 방학 중에는 급식을 제공하여 가정처 럼 행복하고 아늑한 보육 환경이 제공되고 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 돌봄 교실 이용 대상이 5-6학년까지 확대되고 방학 중에도 수요에 따라 오전과 오후 돌봄 교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돌봄 교실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에게 안심하고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고 학교 및 지역 돌봄 기관과의 연계체제를 통 해 학부모에게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는데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행 초등 돌봄 교실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 해소와 공교육의 위상 강화에 기여했다고는 하지만 단위학교 초등 돌봄 교실 운영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예산 부족에 따른 돌봄 서비스의 질 저하와 돌봄 공간 부족이다. 유휴교실이 없어 겸용교실을 사용하고 있는 학교가 많은데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이 곧장 교실로 오기 때문에 담 당 교사는 정신없이 바쁘고 담임을 맡은 학급 관리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교사들에게 돌봄 교실 업무는 또 하나의 커다란 업무 부담이다. 또한 돌봄 교실의 확대 운영으로 운영비 부담이 늘어나 15시간미만의 초단시간 근무방식으로 돌봄 강사를 채용하기 때문에 시간제 보육전담사들의 처우가 열악하다. 결과적으로 초단시간 초등 보육 전담사들의 지속가능한 근무와 책무성 제고에도 어려움이 있다. 현행 초등 돌봄 교실은 대부분 오후 돌봄이지만 소수이기는 하지만 저녁 돌봄을 시행하고 있는 학교는 학생들의 귀가 안전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보건교사가 퇴근한 이후의 학생들의 위급상황에 대한 신속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며 저녁 돌봄 교실의 경우 학생 안전 책임이 학교장이나 담당교사에게 부과돼 많은 부담이 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당면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돌봄 교실이 단위 학교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재정확보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초등 돌봄 교실 확대로 전담사의 급여를 지급하고 나면 예산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당연히 초등 돌봄 교실 서비스의 질 제고에 문제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재정확보를 통해 초단시간 초등 보육전담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돌봄 교실의 효율적인 정착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 돌봄 교실을 운영하는 단위학교 상호간에 자료 및 프로그램 공유 등의 네트워크가 잘 이루어져야 하며 지역아동센터와도 유대관계를 강화하여 상호 모니터링을 통한 시사점을 얻을 필요가 있다. 지역 돌봄 서비스 기관과의 실질적인 협력과 연계를 통하여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내실있는 돌봄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다. 셋째, 학생, 학부모가 만족해하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돌봄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마다 지역적 특성과 학교의 여건이 다르고 학부모의 요구도 다양한 만큼 제한된 예산범위 내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학교의 재량권이 강화되어야 한다. 넷째, 열악한 재정 형편을 고려할 때 돌봄 교실 특별 프로그램의 경우 무상 프로그램에 의존하기보다는 수익자 부담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 봐도 좋을 것이다. 학부모에게 돌봄 교실 운영의 취지와 방안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정기적인 학무모 간담회를 통해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고 수요를 파악하여 수익자 부담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단위학교는 돌봄 교실 운영을 위한 장소와 시설만 제공하고, 운영과 관리는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아마 이 제안은 대부분 현장 교사들은 충분히 공감하리라고 생각된다. 위와 같은 문제점이 시급히 해결된다면 단위학교에서 돌봄 교실 운영의 안정적인 정착으로 사교육비가 절감되고 진정한 교육복지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민들의 안전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정책이 속속히 진행되고 있다. 일단 사고가 난 후에야 대책을 수립하는‘사후약방문’보다는 구체적이고 실효성있는 안전을 위한 정책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아주 오래전 유력 일간지에 天災는 있어도 人災는 없었다라는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미 행정당국의 과학적인 재난대비 조치와 이를 믿고 따르는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재난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기사였다. 흔히 자연재해를 天災로 표현한다면 재난은 人災로 표현할 수 있다. 재난의 종류로는 화재, 건물 붕괴, 폭발, 교통사고, 화생방 사고, 환경오염 사고, 산불, 해난(해양)사고, 유․도선사고, 승강기 사고 및 가스 누출 사고 등이 있다. 인위적인 재난은 인간의 부주의와 실수로 일어나는 돌발적인 사고가 많기 때문에 그 충격도 강력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피난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속담에‘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일단 사고를 당한 후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따라서 사전에 재난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예방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크고 작은 재난을 너무도 많이 겪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재산피해도 엄청났다. ‘설마……’했던 일들이 곧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왜 이토록 많은 재난이 끊이지 않고 일어날까? 그 원인은 분명 정부나 개인이 사전에 충분한 예방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평소에 재난 대비훈련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된다. 각종 재난의 위험이나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첫째, 무엇보다도 범국민적으로 재난대비를 위한 구체적이고 끊임없는 노력과 실천의지가 중요하다. 재난대비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고 평소에 국민들에게 각종 재난대비교육 훈련을 실시하고 홍보물을 보급하여 실효성 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초등학교 시기부터 정규교육과정에 도입하여 어렸을 때부터 재난대비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야한다.. 둘째, 재난이 발생하면 즉각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책의 마련이 필요하다. 재난에 대한 경보전달이나 대피 계획을 사전에 확실하게 수립하여 재난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한다. 실습 기자재를 충분히 확보하여 심폐소생술 및 인명 구조 요령, 화생방 방호 요령, 지역 특성에 대한 탐구 등 유사시 일어날 수 있는 재난에 대한 실제상황대비 훈련이 필요하다. 스위스의 경우 재난이나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초등단계와 1-2-3단계로 나눠서 긴급조치를 취하여 재난 대비가 간결․ 신속하며 협력을 중시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재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각종 철도나 도로 등을 건설할 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치밀하고도 튼튼하게 설계하여 안전한 공사를 해야 한다. 교량 , 지하 시설물, 유희 시설물 등 공공 시설물에 대한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안전관리 지도가 필요하며 만약 부실공사를 하는 업체가 발견되면 막중한 벌금과 함께 영업정지 명령이나 경영상의 불이익을 주어야 할 것이다. 재난은 우리 주변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피해를 가급적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대부분의 재난은 평소에 무관심하고 사소하게 생각하여 발생되는 경우가 많다. 그 동안의 많은 재난을 면밀히 분석해 봐도 재난이 예상되는 주변의 작은 것 하나라도 유심히 살펴보고 대처했더라면 예방할 수 있었던 사건들이 많았다. 우리 국민들은 각종 재난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하며 며칠간은 큰 화재거리로 삼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해마다 발생하는 무시무시한 재난들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건물이나 시설물은 즉각 신고하고 재난 예방활동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재난이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해본다.
오래전, 국회 연수국에서 실시하는 시민 의정연수를 받았다. 연수기간 중 국회 본회의장을 견학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던 중 우연히 국회 잔디밭에서 무궁화를 보았다.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무궁화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대한민국의 입법부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내에 우리 꽃 무궁화가 심어져 있다는 게 퍽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았다. 빙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연수기간 내내 점심식사를 하러 오고 갈 때에도 무궁화를 쳐다보면 왠지 푸근하고 고향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어릴 적, 학교 교정이나 고향집 뒤뜰이나 동네 어귀 곳곳에서 이 맘 때쯤이면 아름답게 피어나는 무궁화를 보았다. 한 해를 통틀어 무궁화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계절이 요즘인 것 같다. 하지만 교정이나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나라꽃이 우리들 마음속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 꽃도 아닌 벚꽃이나 장미꽃은 축제까지 벌이며 야단법석이지만 올해도 무궁화는 이 땅의 곳곳에서 피고 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하나 자랑스럽게 보아주는 이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을 때 교수님께서 나라 꽃 사랑하기를 통하여 애국심을 길러야 한다며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셨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 자신부터 무궁화 사랑하기를 실천하고 있는가를 반성해보면 자신이 없다. 우리가 우리나라의 국화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 사람들이 우리 꽃을 알아보며 아끼고 사랑할까? 활짝 핀 무궁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일본의 역사왜곡 사건이 떠오른다. 36년 간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고 우리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민족혼까지 짓밟았던 그들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여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교육부가 2017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부터 한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하지 못하면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國花인 무궁화에 대해 올바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란 뜻을 지닌 무궁화는 어려운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극복해온 우리 민족의 끈끈하고 질긴 민족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國花이며 우리의 민족혼을 잘 나타내주는 소중한 꽃이다. 그 동안 무궁화는 애국가나 우표, 화폐 등을 통해 우리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려왔다. 진정한 무궁화 사랑의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무궁화 선양사업을 위해서는 좀 더 아름다운 무궁화 품종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고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공원, 집 앞이나 뒤뜰 또는 학생들이 자주 볼 수 있는 학교 교정에 무궁화를 많이 심었으면 좋겠다. 둘째, 학교 체육대회나 졸업식․ 입학식 같은 각종 행사의 축하 화환을 무궁화로 하면 어떨까? 흔히 장미나 난을 많이 사용하는데 무궁화를 사용하면 좀 더 친근감이 생기고 나라꽃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전국의 축구 경기장이나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 야구 경기장 주변을 무궁화로 장식하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우리의 국화를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나라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무궁화에 대한 국가적 상징으로서 위상을 높이고, 보급 확대를 위해 국화로 법제화했으면 좋겠다. 구한말부터 식민 지배를 거치며 민족의 꽃인 무궁화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독립기념관에서는 나라꽃 무궁화를 알리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다. 나라꽃을 통하여 애국심을 기르고 진정한 무궁화 사랑하기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마음속으로 무궁화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여러분들, 활쏘기 한 번 배워보세요? 허리와 다리 근육이 길러지고 정신 집중에도 큰 도움이 된답니다.” 지난 번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교사 역사 교육 역량 강화 연수를 받던 중 K대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동안 테니스, 요가, 배드민턴, 복싱 등 여러 가지 운동을 배워 보았지만 매번 자세가 안 좋다거나 운동 신경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좋은 운동이 없을까?’물색하던 차에 활쏘기를 해보라는 말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기쁜 소식이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활터가 있어서 레슨 일정을 잡았다. 3개월 동안은 자세 연습만 했는데 한 동작 한 동작이 마냥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교장(활쏘기를 가르쳐 주는 분)님께서는 자세와 함께 활쏘기 할 때 지켜야할 9가지 규칙(국궁 9훈)도 가르쳐주었다. 국궁은 유교 문화의 전통을 중시해서 예의를 강조하고 수련을 거친 후 초사례까지 치른 후에라야 본격적으로 활을 쏘게 되었다. 활쏘기를 배울수록 국궁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진하게 녹아 들어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 체형을 보더니 목이 길고 어깨가 딱 벌어지고 팔에 유연성이 있어 활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말에 더욱 용기가 생겼다. 덕분에 운동 신경이 부족한 내게 큰 힘이 되어서 요즈음 활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활터가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어 공기도 맑고 청정한 분위기에서 심신을 수련할 수 있어 낮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되어 좋다. 퇴근 후 3개월 동안 추위를 견디며 열심히 활을 배웠다. 지하철에서 내려 가파른 경사가 있는 산까지 오르는 것만 해도 숨이 헐떡거리고 힘이 들었다. 활을 쏘는 자세와 활을 쏘는 사람으로서의 태도 그리고 주변 궁사들과의 예의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긴장의 나날이었다. 팔의 힘과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평소에도 팔굽혀 펴기, 턱걸이, 윗몸 일으키기 등을 부지런히 해야만 했다. 마침 학교에서 체육 전담을 했기에 틈틈이 철봉도 하고 씨름장에서 팔굽혀 펴기도 자주 했다. 그래서인지 별무리 없이 초사례까지 치루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활을 쏠 수 있는 정식 사원(射員)이 될 수 있었다. 양궁이 최대 사거리가 90미터인데 비해 국궁은 145미터 고정 사거리의 어느 과녁판을 맞추어도 명중으로 인정된다는 점이 신기했다. 국궁을 배우면서 내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생활에 활력소가 생겼다는 점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면 늘 생각나는 것이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따뜻한 순대국밥에 막걸리 한 잔을 즐겼는데 활쏘기를 배우면서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활쏘기의 매력은 집중력 향상이다. 평소에도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가 있다고 할 정도로 덜렁대며 한 곳에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좌불안석인 내가 국궁을 배우면서부터 그러한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 틈만 나면 운동장에서 활쏘기 자세를 취해 보면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호연지기를 키우고 있다. 마음의 여유도 신체적 건강도 좋아지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생겼다. 이제는 주변 지인들에게 활쏘기 한 번 배워보라고 이야기하는 ‘국궁 전도사’가 되었다. 앞으로 좋은 기량을 많이 배워서 활쏘기 대회에도 출전하고 국궁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싶다.
최근 전국적으로 학교급식 식중독 사고가 동시다발로 발생하고 있다. 해마다 학교급식 사고가 한 두건은 일어난다. 그래서 급식 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혹시 식중독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 고민한다. 2016 우수급식산업대전이 코엑스에서 열린다기에 큰마음 먹고 다녀왔는데 다양한 업체들이 우수한 품질과 위생을 자랑하며 홍보전을 펼치고 있었다. 시식회와 더불어 먹음직스럽고 청결한 메뉴들이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을 나오며 “요즘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몇 해 전, KOICA 몽골 봉사 현장을 다녀왔다. 몽골인들은 음식을 짜게 먹고 지방이 많은 육류를 즐기면서 채소와 과일은 적게 섭취하는 식습관으로 인해 심각한 만성질환자가 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코이카에서 몽골에 학교급식 지원 사업을 펼치며 올바른 식생활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오래 전, 교사를 대상으로 김치 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공장장이 김치를 담그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집에서 담궈 먹는 김치보다 청결했고 갖은 양념도 많이 들어가 업체에서 생산한 김치에 믿음이 갔다. 하지만 김치 공장을 나오면서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학교급식용 김치의 가격을 물었더니 일반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가격의 1/3 수준으로 단가를 맞춰야 해서 양념이나 다른 재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공장 관계자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아이들이 매일 먹는 김치가 일반인이 먹는 것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16년 8월 25일 세종시 세종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16 학교급식 정책 모니터단 발대식이 열렸다. 보다 안전한 급식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교육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잇따른 부실 급식 비리는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장 청렴하고 정직해야할 영양사까지 급식 비리에 가담했다니 현장교사로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올바른 학교급식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직영 급식을 해야 한다. 일부 급식업체는 학교에 투자한 시설비와 이윤을 고려, 싼 가격에 구매한 수입농산물을 장기보관하거나 한 업체가 여러 학교와 계약해 같은 식단과 식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식중독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보다 위생적이고 안전한 급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급식의 위생 및 안전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 단위 학교의 경우 급식소위원회가 있어 급식에 필요한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체선정을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행하고 있다. 급식의 질을 높이고 안전을 위해서는 위생관리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더불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학교급식 시설비와 운영비에 대한 별도의 재원을 마련해 학생들에게 질 높은 급식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재정 지원뿐만 아니라 행정적 측면에서 급식업체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학교급식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전반적인 시스템을 잘 구축해 나간다면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양질의 급식 제공이 가능할 것이고 국민건강 증진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숙제금지, 담임연임제, 협력교사제 등 “검증 먼저” “특히 담임연임제는 곽노현 전 교육감 실패 전력” 교총은 30일 서울시교육청이초등 1~2학년 숙제 금지, 담임연임제 등을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데 대해“또 하나의 교육실험”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1학년 1학기 받아쓰기 및 알림장 쓰기 등 숙제 금지 △일률적이고 강제적인 숙제 금지 △선행학습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숙제 금지 △초1~2 전문담임․연임제 도입 △한글·수학교육 책임지도를 위한 초1~2 협력교사제 운영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안성맞춤’ 교육과정 운영 계획을발표했다. 내년 1학기부터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한국교총과 서울교총은 즉시 성명을 내고 “초 1∼2학년 숙제 금지 정책과 담임연임제·전문담임제 및 협력교사제 정책은 또 하나의 교육 실험정책”이라면서 “시범실시를 통해 정책효과성부터 검증한 후에 실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철회를촉구했다. 학교숙제보다 학원숙제 부담이 더 큰 현실은 외면하고저소득층 학생들의 기초학력 보장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숙제 자체를 과도하게 문제시했다는 게 교총의 판단이다. 교총은 “숙제의 내용과 방법은 교사가 학생의 학업성취 수준과 학습 부담을 감안해 판단할 사안”이라며 “교사가 전체 학급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해 숙제를 내줄 수도 있는데, 이를 일률적으로 교육청이 강제하는 것은 학생과 교사의 수업권 및 학교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교사가 숙제를 내주는 것이 마치 큰 잘못인 양 책임을 전가해 오히려 숙제를 통해 학업이 뒤처지는 부분을 채워주려는 교사의 열정마저사라지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교총은 “지난 23일 한국교총 하윤수 회장과 진만성 수석부회장이 조 교육감을 방문, 숙제금지와 관련해 반드시 충분한 현장 의견수렴과 시범실시 등을 통해 신중히 접근해줄 것을 요청했음에도 강행하는 것은 현장의 요구를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한 ‘초 1∼2 담임연임제’와 관련해서는 지난 2011년 곽노현 전 교육감이 추진하다 현장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만큼 정책효과성 검증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교총은 “현재 경기, 강원, 전남 등에서 시행 중인 담임연임제는 교사 전보주기·휴직·출산휴가 등에 걸려 적잖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고, 담임연임을 반대하는 학생, 학부모의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며 “전문담임제도 해당 교사의 자발적 희망이 전제돼야 하고, 또 연속성 보장을 위해 전보 등 인사상 고려도 필요한데 이런 동기부여가 빠졌다”고 지적했다. 협력교사제에 대해서도“비정규직 일자리 창출이 우려돼 오히려 정규교사 증원 및 수업 경감이 먼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는 곳이달라졌어요” 지난 8월 초순과 중순, 2주에서 3주 동안 우리나라는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와 뜨거운 폭염 속에서 이겨내기 어려운 여름을 이겨냈던 것이다. 얼마나 무더웠는지 서수원 지역에 있는 일월공원 물놀이장은 연일 어린이들과 함께 찾은 가족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가까이 있는 일월도서관이 새로운 피서지로 등장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즐겼다. 동유럽 7개국을 13일간 다녀왔는데 그 곳도 역시 무더위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우리나라보다는 약간 낮은 기온이었다. 이탈리아의 한국인 현지 가이드는 자신의 피부를 보이면서 “한국에서는 뽀얀 피부였는데 이렇게 까맣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구온난화 현상에 따른 기상 이변은 지구 전 지역 공통현상인가 보다. 귀국 후 시차 적응에 고생하면서 우리 동네를 둘러보았다. 우리 동네는 10 여일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일월공원 텃밭을 둘러보았다. 그 곳에 분양받은 작은 텃밭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텃밭의 농작물들은 잘 자라고 있었다. 방울토마토와 고추는 는 빨갛게 익어가고 옥수수도 열매를 몇 개 맺었다. 가지도 열매를 몇 개 매달아 놓았다. 공원텃밭에 못 보던 것이 하나 보인다. 바로 텃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원두막이다. 그 무더웠던 여름 그늘과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원두막이 탄생한 것이다. 이 쉼터는 텃밭사용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텃밭은 시민들의 힐링 공간이다. 농사는 짓지 않아도 이곳을 둘러보면서 식물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치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니 시골 원두막 풍경이 떠오른다. 다음에는 일월공원 입구에 있는 흙먼지털이개의 장소 이동이다. 그 동안은 이것이 입구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저수지를 산책하면서 늘 불편했던 점이 바로 이 털이개의 위치다. 산책을 마치고 흙먼지를 털고 귀가해야 하는데 다시 산책로를 걸어야 이것을 만난다. 즉 털이개의 설치 위치가 잘못되었던 것. 이것을 바로 잡은 것이다. 입구 쪽으로 30미터 정도 옮기니 해결된 것이다. 이것으로 수원시의 작은 도시행정의 개선을 보는 것이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시민의 눈높이다. 시민의 입장에서 사업을 보는 것이다. 시민의 편의를 생각했다면 맨 처음의 오류는 없었을 것이다. 혹시나 업자말만 듣고 심사숙고 하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다행이 몇 년 지난 다음에 시민의 물편을 인지하고 바로 잡는 용기가 필요했다. 구운동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는 초록색 천막이 세워져 있다. ‘아니, 길가 옆에 있는 저것은 무엇이지?’ 도로변에 익숙하지 않은 천막이다. 그러나 설치 이유에 대해 금방 이해가 간다. 얼마나 뜨거웠던 여름인가? 땡볕에 5분을 버티기가 힘들다. 그대로 땡볕에 있다간 일사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바로 횡당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위한 시설인 것이다. 이름하여 ‘보행자 신호대기 그늘막 쉼터’ 구운동주민센터의 배려다. 요즘 행정의 최우선 기준이 주민의 안전과 복지다. 안전을 담보하지 않은 행정은 주민의 피해를 가져온다. 복지도 커다란 것에서 찾으면 아니 된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것을 개선하면 되는 것이다. 보행자에게 작은 그늘 쉼터를 제공하려는 그 마음이 복지의 시작인 것이다. 돈 들이지 않고 시행할 수 있는 복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다. 다음은 2016 권선 시네마 운영이다. 권선구 지역내 공원 네 곳에서 ‘한 밤의 영화관람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다. 뜨거웠던 한 낮을 뒤로 하고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주민들에게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한 것이다. 영화 제목을 보니 쎄시봉, 국제시장, 인사이드 아웃, 명량 등이다. 영화 선정도 제대로 되었다. 잔디밭 위 대형 화면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명화는 더위를 잊게 한다. 이제 그 뜨거웠던 폭염도 한 풀 꺾이었다. 나는 지난 처서 이후 잠자리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엔 방문과 창문을 닫았다. 다음엔 이부자리를 덮었다. 어제는 양말을 신고 잤다. 따뜻한 잠자리에서 숙면을 취하기 위한 방법이다. 뜨거웠던 여름, 주민들을 위한 수원시의 행정을 찾아보는 것도 뜻 깊다.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행정은 아름답다.
순천은 전라선과 경전선이 교차는 남도지방 교통요지이다. 남쪽으로는 여수, 동쪽으로는 광양, 하동을 거쳐 진주, 부산으로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보성, 장흥을 지나 목포로 연뎔된다. 최근에는 KTX개통으로 수도권에서 접근이 쉬워지고 순천만국가정원 1호 지정과 천연의 갈대숲이 있어 한국 제1의 생태도시로 자리잡으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바로 죽도봉 숲길을 지나 네모 반듯한 집들을 볼 수 있는데 바로1930년대 일제에 의해 조성된 철도문화마을 전경이다, 이곳 순천 조곡동은 근대의 상징으로 철도와 급변했던 한국현대사 속 철도역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근대역사 탐방에 적합한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철도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일요일 아침 조곡생활체육공원에서 힘차게 조기축구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이곳은 철도와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가보는 곳으로 조곡동철도관사마을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기차를 이용해 국내여행을 하는 내일러들의 성지 '순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순천역옆 엘레베이터와 연결된 육교를 지나, 도보 약 7분이면 도착하는 철도문화마을은 상급 관사는 위쪽에 하급관사는 아래 쪽에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 철도회관격인 구락부, 공동목용탕, 주상역이 배치되고 철도관사 입구에 철도병원, 운동장, 합숙소, 기숙사, 배급소가 위치하고 있어 약 90여년 전 마을 정취가 잘 보존되어 있다. 규모나 역사적 가치면에서 유서깊은 곳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나라 기차의 역사를 보여주는 코너도 있는데, 1899년 증기기관차를 시작으로 전기기관차, 디젤기관차...그리고 지금의 KTX까지. 우리나라 철도위를 달리는 기차의 모습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조곡동 주민차치위원회는 마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2011년부터 철도관사마을 유래 찾기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기폭제가되어, 순천시는 이같은 마을이 박물관인 조곡동 재경골을 2016년부터 3년간 약 100억원의 예산을 투자하여 관광자원화 하기로 하였다.이에 철도문화마을을 탈바꿈 시킬 예정으로, 관광명소화 기반 조성, 관광프로그램 및 코스개발, 그리고 마을 경관정비와 관광안내소 설치 및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마을 축제행사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내일러 버스킹과 게스트하우스 페스티벌, 그림책 콘서트, 달빛 동네한바퀴, 관사체험 등을 실시하였다. 이번 축제장에는 일본 도서 전시와 놀이 문화체험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실제로 오사카에서 방문한 일본인도 직접 참여하였다. 한편, 지역 주민들이 평생학습을 통한 기록물 전시와 마을 라디오방송국을 운영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였고, 마을 화폐를 발행하여 관사마을 상가에서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하였으나 다양하고 풍성한 먹거리가 풍부하지 못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주변에 있는 죽도봉숲은 2012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하며 전국 아름다운 숲 10선에 선정된 곳이며, 봉화산 전망에 오르는 데까지 약 1시간 30분 소요된다. 철도문화마을 전경을 보는 마을전망대까지 약 20분 정도 걸린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꽃이 아름답다지만 곧 지고 만다. 백년대계인 사람을 키우는 교육,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장학 사업이야말로 꽃보다 아름다운 일이다. 이종환관정장학재단 명예이사장은 지난 7일 "2015년까지 재단 기금을 1조원으로 확충하기로 하고, 구체적으로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3년 안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1조원 장학재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종환 선생은 사재 3000억원으로 2002년 자신의 아호를 딴 '관정이종환장학재단'을 만들고 10년간 총 8000억원을 쏟아부었다. 개인이 세운 장학재단으로선 아시아 최대 규모다. 재단은 이와 함께 ①자연과학 ②공학 ③인문사회과학 등 3개 분야에서 빼어난 업적을 이룬 학자에게 각각 10억원 정도의 상금을 주는 '관정 아시아 과학상'(가칭)을 만들고, 재단 기금이 1조원이 되는 시점부터 아시아 지역 학자들을 대상으로 수상자를 내기로 했다. 하지만 1조 장학재단'을 발표한 구순 회장님의 생활은 단순하다. '저녁 반찬'은 두부된장국에 삶은 돼지고기였으며, 중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짐 드는 직원도 없이 혼자서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녀올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명예이사장은 경남 의령군에서 태어나 삼영화학그룹을 일으켰다. 부자가 된 뒤에도 '점심은 짜장면, 특식은 삼계탕, 해외 출장은 이코노미석'을 고집했다. 재단 관계자들은 "식당에 가면 이사장님이 '맛있는 거 맘껏 시켜라. 나는 짜장면!' 하시기 때문에 직원들은 감히 짜장면 이상은 못 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장학금은 통 크게 지급한다. 관정재단은 우수한 이공계 학생들을 선발해 국내 대학은 연 1000만원, 해외 대학원 석·박사 과정은 연간 3만~5만5000달러씩 최고 10년간 지급한다. 지금까지 4640여명이 이같은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돈의 가치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코 묻은 돈 모아서 어렵게 만든 돈으로 장학금 주는데, 개중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으로 아는 학생도 물론 있지요. 하지만 그런 일로 한 번도 배신감 느낀 적 없어요. 이제까지 10년 동안 베풀었고, 앞으로 더 베풀 겁니다." 이 명예이사장은 "일본은 노벨상 탄 사람이 10여명인데 우리는 아직 한 명도 없다"면서, "다른 사람들은 장학금 줄 때 '돌아와서 우리 회사에 근무하라'는 식으로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던데 나는 '언젠가 베풀 수 있는 처지가 되면 너도 꼭 베풀어라' '노벨상 타라' 두 가지만 얘기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이분의 삶은 아끼고 아낀 삶의 연속이었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평생 한 번도 식당에서 메뉴판 왼쪽(음식이 적힌 쪽)을 보고 시켜보지 못했어요.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가격이 적힌 오른쪽에 먼저 눈이 가더라고…. 어려운 나라에 태어난 업보요. 내가 장학금 주는 것도 결국 부국강병 하자는 일이오. 장학생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 나오면 좋고, 노벨상 아니라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하나만 나오면 내 돈 수천억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후손 보고 하는 일이오."라며 장학사업에 미래를 걸고 있다. 어떤 장관은 1년에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생활비로 수억을 쓰는 현실이지만 이같은 분들이 우리 나라에 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기 그지 없다.
아이를 키우며 렴형미 처녀시절 나 홀로 공상에 잠길 때며는 무지개 웃는 저 하늘가에서 날개 돋쳐 훨훨 나에게 날아오던 아이 그 애는 얼마나 곱고 튼튼한 사내였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생긴 아이는 눈이 크고 가냘픈 총각 애 총 센 머리칼 탓인 듯 머리는 무거워 보여도 물푸레아지 인 양 매출한 두 다리는 어방없이 날쌘 장난꾸러기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고삐 없는 새끼염소마냥 산으로 강으로 내닫는 그 애를 두고 시어머니도 남편도 나를 탓 합니다 다른 집 애들처럼 붙들어놓고 무슨 재간이든 배워줘야 하지 않는가고 그런 때면 나는 그저 못 들은 척 까맣게 탄 그 애 몸에 비누거품 일구어댑니다 뭐랍니까 그 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데 정다운 이 땅에 축구공마냥 그 애 맘껏 딩구는데 눈 올 때면 눈사람도 되어 보고 비 올 때면 꽃잎마냥 비도 흠뻑 맞거라 고추잠자리 메뚜기도 따라 잡고 따끔따끔 쏠쐐기에 질려도 보려무나 푸르른 이 땅 아름다운 모든 것을 백지같이 깨끗한 네 마음속에 또렷이 소중히 새겨 넣어라 이 엄마 너의 심장은 낳아 주었지만 그 속에서 한생 뜨거이 뛰어야 할 피는 다름 아닌 너 자신이 만들어야 한단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 네가 마음껏 딩구는 땅이 네가 한생토록 안고 살 사랑이기에 아들아, 엄마는 그 어떤 재간보다도 사랑하는 법부터 너에게 배워주련다 그런 심장이 가진 재능은 지구 우에 조국을 들어올리기에...... 여러 해 전 한국문화예술위원 회가 운영하는 사이버문학광장인 '문장'에서 문학집배원 안도현 시인이 메일로 보내 왔던 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이름이 낯설뿐 아니라 성씨도 '염'이 아니라 '렴'이었던 것입니다. '염'씨도 본관에 따라 문화'류'씨처럼 '렴'으로도 쓰나보다 하면서 시를 읽는데 정서는 우리와 거의 같은데 생소한 말이 자꾸 눈에 띄던 것이었습니다. 시를 다 읽고 난 후 생소한 시인이 참 맛깔스럽게 시를 쓰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안도현 시인의 해설을 읽었습니다.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렴형미 시인은 남한의 시인이 아니라 북한의 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어머니의 심정이 이렇게 남북이 똑같을 수가 있습니까? 다만 렴시인은 시를 쓰는 어머니로 탁월한 예지로 아들의 장래를 내다보고 있다는 것이 여느 어머니들과 다를 뿐인 것입니다. 남북의 수많은 엄마들을 대신하여 진정한 자녀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교육이 나아가야할 진정한 방향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밝혀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사상과 이념과는 별개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조용조용 읊조리고 있는 것입니다. 북에도 저렇게 노래하는 젊은 시인이 있다는데 새삼 희망이 솟아나는 것 같습니다. 북쪽의 어머니도 남쪽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자식의 장래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민족의 동질성인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따뜻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북쪽 말을 알아보겠습니다. 물푸레아지-물푸레 나뭇가지 매출한-흠이나 거침새 없이 곧고 밋밋한 어방없이 -어림없이 쏠쐐기-송충이 한생- 일생, 평생 *렴형미: 북녘 땅에서 여섯 살배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인 렴형미 시인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80년대 말부터 시를 발표해 왔다. 렴 시인이 1999년 '전국군중문학현상모집'에 내놓은 시초(詩抄) '시련과 녀인'은 1등에 당선 되었다. 북의 고난의 행군 시기, 어렵고 고달픈 나날 속에서 버거운 삶을 살아나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당선작 '시련과 녀인'을 발표한 뒤, 줄곧 여성들의 다양한 삶과 운명을 노래한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북한 문단에서 꽤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안도현 시인 해설에서)
어제는 우리 학교 학생 두 명이 싸움을 하다 학생부 선생님한테 적발되어 교무실로 불려왔다. 싸움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서로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 한 녀석이 상대방 어머니의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자 이에 화가 난 당사자 학생이 친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며 큰 싸움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학교폭력은 교사들이 대응하기가 참으로 난감하다. 주로 교사들이 자리를 비우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 아이들도 학교폭력에 대해 방관자적 자세를 취하거나 쉬쉬하는 경향이 있는 것 또한 문제이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도 학생부 선생님께서 교내 순찰을 돌지 않았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사건이다. 리포터의 생각에는 사실 이 같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집단 따돌림 같은 정신적 폭력이다. 집단 따돌림 같은 경우 외적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데다 피해 학생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고자질쟁이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더 가혹한 보복이 올 수 있다는 공포감이 있어 대부분 숨기기 때문이다. 집단 따돌림을 지켜보는 나머지 학생들도 공연히 자신들에게 불똥이 퀼 것을 염려하여 방관자로 남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육부가 올해 실시하는 체계적인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대응책 마련은 환영할 만하다. 이번 대응책은 상당히 진전된 대책이다. 그것은 학교폭력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학교폭력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반면, 현 대응책은 사소한 것도 학교폭력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교사들의 책무와 책임감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가해 학생의 책임도 그만큼 심각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학교폭력 처리 과정을 가해자 중심에서 피해자 중심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통상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경우 교사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등한 입장으로 보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주 임무였다. 피해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경우 피해자 측 부모가 많은 합의금을 요구하면 마치 학교폭력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한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 대책은 피해자를 철저히 보호하는 동시에 안정된 상황에서 치료와 보상을 받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했다. 이것은 학생들 스스로 학교폭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겠다는 의도이다.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결국 학생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한 것이다. 폭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폭력 발생 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냐에 대한 자발적 극복 노력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는 점도 좋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도 학교 현장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법이다. 또한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이 구현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예산과 인적자원이 배치되어야 하고 국회 통과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은 근절하려는 지역사회와 사회 전체의 합의도 필요하다. 학교폭력의 문제는 단순히 피해자들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듯하다. 따라서 학교는 물론이요 각 가정과 공동단체, 기업체 등에서 각종 폭력에 대한 예방 교육과 인간 존중 사상을 더욱 강화시켜나가야 한다. 폭력은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학교폭력의 해결은 곧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추구인 동시에 인간 존중 사상의 구현인 것이다. 끝으로 우리 조상들은 ‘신독(愼獨)’이란 두 글자를 항상 벽에 걸어놓고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갔다. 이러한 조상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폭력이 사라진 인간다운 사회를 구현하자.
위대한 역사교육의 현장, 독도를 가다 한겨레신문 제공 : 울릉도와 독도의 기원 전라남도교육청(교육감 장만채)에서 주관한 2016. 독도역사문화탐방을 다녀왔다. 지난 7월 26일부터 7월 29일까지 3박4일 동안 ‘독도, 그 역사의 숨결을 찾아서’ 라는 주제로 2기 대상자 70명이 독도교육 강화를 위해 울릉도, 포항, 경주 일원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역사 교과서까지 왜곡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방위백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용납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을 또 실었다. 우리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올해로 12년째 연속으로 방위백서에 이를 담는 일본의 뻔뻔하고 기막힌 '독도 도발'은 도를 더하고 있다. 일본이 매년 발표하는 외교청서에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난 3월 발표된 일본 고교 1학년생 교과서 검정결과 내년부터 사용될 고교 저학년 사회과 교과서 10권 중 8권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이 실린 것으로 파악됐다. 2013학년도 교과서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더 높아진 수치다. 급기야 일본 초등학교 모의고사 문제에 '독도 불법점령 국가를 택하라'는 4지 선다형 문제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선 학교 현장에서 독도 교육을 강화하려면 교사의 전문성과 역량강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라남도교육청의 방침은 독도교육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한다. 수업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명제는 독도교육에도 예외가 아니다. 교사가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체험만큼 강력한 배움은 없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가 반드시 가 봐야 할 곳 1순위가 ‘독도’라는 확신을 가지게 한 탐방 연수였다. 그동안 독도에 대한 깊이 있는 역사인식보다 일반 상식 수준의 지식과 반일 감정에 얽매인 감정적 대응으로 피상적인 독도교육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전남독도교육실천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 제공한 “독도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교재와 독도 배너 모음전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현장수업에 접목하기 쉬운 수업설계와 사례 중심 교재라는 점에서 이번 탐방에서 얻은 매우 귀중한 열매였다. 2016 독도역사문화탐방을 위해 전라남도교육청에서 제작한 자료집 출발 전 첫날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레다 7월 26일 화요일, 이 날을 위하여 며칠 전부터 준비했다. 학교의 여름방학 보다 하루 빠른 일정이라서 학교와 우리 반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여름방학 마무리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 마쳤다.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모든 일을 마쳤다. 아이들에게 줄 방학 선물 용 책도 준비하고 편지도 써 두고, 생활통지표와 여름방학 계획도 아이들과 함께 미리 세웠다. 전날 간단한 과자 파티도 하고 전반적인 1학기 생활을 돌아보며 즐거웠던 일, 재미있었던 일도 나누었다. 아이들은 출장을 가서 미안하다는 나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101일 동안 어른스러워진 우리 1학년 아이들이 한층 커 보여서 여름방학식을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덜 수 있었다.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가방을 챙기고 짐을 정리하면서 설렜다. 지구별에 여행자로 사는 존재이기에 여행에 대한 DNA가 작동함을 느꼈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1억 5000만km를 반지름으로 한 엄청난 원을 1년에 한 바퀴씩 돈다. 이 원둘레는 초등학교 때 배운 공식(반지름×2×3.14)에 넣으면 약 9억 5000만km. 1년을 초 단위로 바꾸면 약 3200만 초로 나누면 무려 초속 30km(시속 10만8천Km).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1초에 30km라는 무서운 속도로 태양 둘레의 우주공간을 내달리고 있으면서 시속 1천6백70Km로 자전도 하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완벽한 우주선인 지구에서 날마다 엄청난 속도로 우주 속을 날고 있는 여행자인 셈이다. 처음 가보는 울릉도와 독도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들과 풍경들을 상상하며 소풍 가는 아이처럼 즐거웠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고 여행에 대해 정의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명언을 생각하며 이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 달라질 나의 시각이 기대가 되어 참 좋았다. 그 시각은 바로 학교 현장에 재투입되어 독도 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수업으로 나타나야 한다. 역사교육의 이정표를 다시 세우는 공부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산출물이 국가가 투입한 예산의 3배 이상 드러나야 제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2016 독도역사문화탐방연수는 국가가 독도교육을 위해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투자한 기획이기 때문이다. 목적지인 독도를 가기 위해 2기 회원 일행은 광주와 무안에서 출발하여 순천 지리산 휴게소에서 합류하였다. 우리 일행은 차 속에서 짧은 소개를 하기도 하고 독도 연수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를 들으며 함께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번 연수를 위하여 세심하게 교재를 직접 만든 양홍석 선생님으로부터 독도 탐방연수를 위한 사전 안내를 들었다. 전남독도교육실천연구회가 주관하여 전라남도교육청의 독도교육 강화를 위한 사업에 매진하는 모습이 한 권의 교재 속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교재만으로도 독도교육을 하기에 무리가 없는 훌륭한 매뉴얼이 가득했다. 본래 계획은 숙소에서 ‘독도교육에 대한 이해와 실제’를 주제로 1시간 30분 동안 세미나를 할 예정이었으나 숙소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차내 연수로 대체했다. 경북 고령에서 점심을 먹고 2시간 30분을 달려 호미곶에 도착했다. 1999년 12월에 세워진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1999년 6월 제작에 착수한지 6개월만인 그해12월에 완공됐다. 상생의 손은 국가행사인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로서,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인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인 상생의 손은 두 손이 상생(상극의 반대)을 의미하는 곳이다. 우리 일행은 포항 죽도 시장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더운 날씨 속에 오랜 시간 버스로 이동한 탓에 일찍 잠에 들었다. 2016 독도역사문화탐방 첫날 호미곶에서 7월 27일, 수요일 둘째 날 울릉도 일주 포항 숙소에서 눈을 뜬 둘째 날 아침에는 평소의 습관처럼 아침 산책을 나갔다. 내 짝인 김유경 선생님과 가까이에 있는 중학교 교정을 걸으며 인생 이야기를 하며 몇 바퀴를 돌았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인생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나누었다. 하룻밤을 옆 자리에서 같이 자고 밥을 같이 먹는 식구가 되니 긴 세월의 벽을 단숨에 넘어 친구처럼 가까워질 수 있음에 놀랐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멀리 있어도 처음 보았어도 그렇게 단숨에 가족사까지 털어놓을 수 있으니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한다. 조식을 마치고 포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3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울릉도로 향했다. 5시간에 걸친 울릉도 일주 육로 관광 A코스를 돌며 터덜거리는 시골 도로 위를 달리는 작은 버스 속에서 초등학생처럼 설렜다. 관광버스 기사님의 구연동화 같은 멘트를 즐기며 지루하지 않은 일주를 즐겼다. 울릉도 시민홍보대사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만큼 박학다식한 기사님을 보며 학교에 가면 아이들에게 저렇게 재미있고 유익하게 울릉도 이야기를 해주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끼리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송곳봉을 바라보며 부처님 앞에서는 개인적인 소망과 국태민안을 빌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2016 독도역사문화탐방 둘째 날 울릉도 코끼리 바위를 배경으로 3일째, 독도에서 만난 위대한 스승 이번 탐방의 백미인 독도는 7월 28일 목요일인 사흘째에 이루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목욕재계를 하며,물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마음까지 비웠다. 도를 닦듯 청정한 마음으로 임하면 행여 독도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영광을 누릴까 해서! 울릉도에서 독도로 이동하는 데에만 1시간 40분이 걸렸다. 배 멀미로 고생한다며 출발하기 30분 전부터 배 멀미 약을 챙겨 먹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약은 받았으나 먹지는 않았다. 평소에 한 번도 멀미를 하지 않은 자만심의 대가는 혹독했다. 독도 부근에 도착할 때까지는 배 멀미를 하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이 맞지 않아서 독도에 배를 댈 수 없다는 선장의 방송은 출발 전부터 예고되었으나, 멀리서나마 독도를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아침 식사도 거르고 점심 식사는 배 멀미로 먹을 수 없을 만큼 지쳐있었다. 도착할 때까지는 뱃멀미를 참을 만해서 선실에서 보여주는 독도 프로그램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 오랜 풍상 속에서도 저렇듯 자리를 지키고 선 모습이 흡사 거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여 가슴이 저렸다. 결코 추상적으로, 단편적으로 알던 외로운 섬이 아니었다. 온 몸으로 세찬 파도와 바람으로 수십 억 년을 살아낸 독도는 일상의 하찮은 아픔에 힘겨워하는 나를 세차게 나무라고 있었다!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2016 독도역사문화탐방 셋째 날 독도를 떠나오며 선상에서 찍은 사진 독도 관련 축제에 인문학적 옷을 입혔으면 입도하지 못한 채 몇 분 동안 머무른 선상에서 만난 위대한 스승, 독도는 텔레비전 화면으로만 보던 독도가 분명했지만 살아 숨 쉬는 모습은 강렬했다. 선장님에게 독도의 나이를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3시간 30분,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1시간 40분 동안 선실에서 독도 관련 영화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한 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를 지니는가? 이사부 장군이나 안용복의 일대기를 드라마나 시나리오로 공모를 하여 드라마를 제작하거나 영화를 만들어 독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인슈타인은 한 트럭의 지식보다 한 숟갈의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박 겉핥기식의 축제보다 사람들의 감성과 이성을 자극하는 인문학적 접근이 독도교육이나 체험프로그램에 필요하다는 절실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울릉도나 독도를 다녀간 사람들이 이사부나 안용복을 얼마나 알고 돌아갈까? 대장금의 장금이는 실존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에서 매우 즐겨 보는 드라마로 성공하며 한류 열품을 불러 일으켰다. 실존 인물이 아님에도 스토리텔링의 멋진 옷을 입고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독도를 거론할 때 등장하는 이사부나 안용복의 실제 이야기에 스토리텔링의 날개를 달아 드라마나 영화를 마들어 세계 시장에 내놓는다면 광고 그 이상의 홍보가 되리라 생각하니 마치 내가 글을 쓴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가 된 듯 흥분되어 여러 선생님에게 내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독도를 보고 得道를 경험하다 노자는 “아는 사람은 말이 없고 말이 많은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독도는 바로 道人이었다.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자연의 스승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압도되었다. 배 멀미의 고통조차 사치스런 수식어였다. 정규방송을 시작할 때,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해돋이를 중개할 때 보던 독도가 아니었다. 거인의 모습으로 위대한 자연의 스승의 얼굴로 나타난 독도를 보는 순간 궁금해졌다. 관심은 관찰이 되고 앎의 대상이 된다. 독도의 나이를 알아 본 순간 그 동안의 무지가 부끄러워졌다. 독도의 나이도 모르면서 선생으로 살아왔다니! 독도는 해저 약 2,000m에서 솟아 오른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신생대 3기 플라이오세 전기 약 460만 년 전부터 생성되기 시작했다. 독도는 270만 년 전에 해수면 위로 올라왔고, 바닷물과 빗물에 용암이 식으면서 섬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하나의 섬이었던 독도는 250만 년 전 파랑에 의한 파식에 의해 두개로 나누어 졌고, 바람과 파도에 계속 씻기고 부서져 210만 년 전 무렵에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독도는 우리나라 화산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울릉도와 비교하면 약 250만년, 제주도와 비교하면 약 340만년 앞선다. 독도를알고 가르쳐야 일본을 이긴다 공자는 ‘앎’과 관련하여 사람을 네 수준으로 분류하였다. ①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최상이요, (生而知之 생이지지) ② 배워서 아는 자가 그 다음이요, (學而知之 학이지지) ③ 곤란을 겪으면서 배우는 자가 그 다음이다. (困而知之 곤이지지) ④ 곤란을 겪으면서도 배우지 않는 자를 최하위로 여긴다. (困而不學 곤이불학) 이 단계에 이르면 하늘이 그들을 버린다. 배움을 외면한 대가를 치른다. 사람이 곧 하늘이니! -『공자처럼 학습하라』 중에서 즐겁게 배우도록 이끄는 일, 곤란을 겪으면서도 배우게 하는 일, 단 한 사람이라도 困而不學의 제자를 만들지 않는 일이 선생의 사명임을 깊이 깨닫는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교과서를 왜곡하는 어려운 일을 겪고서야 독도교육에 열을 올리는 이 나라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곤이불학의 지경을 겪으면서도 독도교육을 포기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독도역사문화탐방은 계속되어야 함을 생각한다. 교사를 넘어 학생들도 위정자도 여행 코스에서 제1순위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태어나 그렇게 힘든 배 멀미를 겪었지만 독도를 바라보는 순간의 비장함과 감동은 배 멀미를 상쇄시키고도 남으니! 한 순간도 편안하게 쉬지 못한 채 억겁의 세월을 거센 바람과 파도 속에서도 의연한 모습은 인생의 멘토가 되고도 남던 벅찬 순간은 힘들 순간이 닥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위로가 되어 주리라! 삶에 지친 이들에게,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에게 독도를 보고 오라고 꼭 말해 주고 싶다. 최고의 스승은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준다. 나는 풍경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품고 왔으니 프루스트의 말은 백번 옳았다. 가까운 시일 안에 독도를 비행기로 갈 수 있게 된다니 참 다행이다. 2천년 가까이 나라를 잃고도 재기한 이스라엘 민족의 건국 이야기를 들으면 역사 교육의 위대함에 놀란다. 그들은 이민족의 지배 아래 뿔뿔이 흩어졌을 때에도 뿌리 교육, 역사 교육만은 생명처럼 지켜낸 결과 오늘의 이스라엘이 되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35년 동안 나라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사관에 물들었고 친일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으며 내 나라 영토를 유린하는 그들을 응징하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 분통이 터진다. 마음에 비해 따라가지 못한 체력으로 뱃멀미를 한 탓에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정신은 오히려 상기된 채 사흘 째 밤을 보냈다. 몸도 쉬어야 하고 어쩐지 경건해야 될 것만 같았다. 독도에서 울릉도로 돌아오는 동안 시달린 여독으로 마지막 날 일정에 차질을 빚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여러 선생님이 챙겨 주며 위로한 덕분에 다시 생기를 찾았다. 우리는 다시 포항을 거쳐 경주보문단지 숙소에서 여장을 풀었다. 김철민, 양홍석 선생님의 열정에서 전남교육의 희망을 보다 7월 29일 금요일, 이제 3박 4일의 마지막 아침이 왔다. 일찍 일어나 한국콘도 주변을 산책했다. 짧은 3일 동안 겪은 희로애락을 생각하니 인생의 트랙은 늘 반복되고 비슷한 모습이라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조식을 마치고 독도탐방 연수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더운 날씨와 숙소 사정으로 미루어 둔 세미나를 합동으로 가질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숙소 현관에 독도 교육에 필요한 배너를 설치한 김철민 선생님 노력의 결정체가 전시되어 있었다. 체계적이고 산뜻하게 준비한 여러 개의 배너를 보며 사진을 찍고 탐독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 자료 그대로 파일로 받아서 일선 학교에서 제작하여 연중 전시물로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철민 선생님이 제작해서 전시한 독도 배너 모음전- 학교 현장에서 매우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전시 자료임. 일회성 전시가 아닌 지속적으로 전시 가능한 독도교육에 매우 좋은 자료임-문의 하면 파일로 받을 수 있다고 함. 김철민 선생님(나주상업고등학교)은 독도탐방연수 2기 회원들을 대상으로 독도 중등 수업 자료를 소개하였다. 독도의 역사를 시대 별로 개괄적으로 보여주며 수업의 흐름을 안내하여 독도 수업의 실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모의재판을 진행하는 본시 학습과 수업안을 소개하였다. 거기다 모의재판 대본까지 수록하여 누구라도 독도 수업에 활용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독도 수업안을 설계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수업을 실시하며 독도교육에 매진해 온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더위 속에 장거리에도 불구하고 각종 기자재와 배너 자료를 준비하여 독도탐방연수의 목표를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노고가 가상하고 감사했다. 2016 독도역사문화탐방 마지막 날 김철민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이어서 ‘독도야! 놀자! 독도골든벨’을 주제로 양홍석 선생님(도초고등학교)의 강의가 이어졌다. 독도 교육에 대한 고민, 학생 스스로 만드는 즐거운 독도골든벨, 독도골든벨 피드백, 독도골든벨 운영 효과와 반성, 2015학년도 역사탐구반 독도골든벨개최 계획까지 수록하여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에 충분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기획부터 실천 방법과 내용을 상세히 안내하여 현장에서 바로 투입할 수 있을 만큼 실제적인 자료와 파일을 제공해 주었고 역사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의 열정에 감동하였다. 양홍석 선생님은 연수 기간 내내 진행요원으로서 회원들의 편의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도 아끼지 않아서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갖게 했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만남 이번 연수에서는 아름다운 일화도 많았지만 특히 생각나는 모습이 있어 소개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가르친 스승과 제자가 이번 연수에 함께 참여하여 보여준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 선생님들을 즐겁게 했다. 그 주인공은 담양 무정초 황송애 선생님의 제자인 나주 다시초 박도현 선생님이다. 이 분들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엄마와 아들처럼 붙어 다니며 끈끈한 사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은사님이 멀미할 까 봐 돗자리를 사드리고 틈만 나면 모시고 다니는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숙소에서 저녁 나들이도 같이 나가고 뭐든 함께 나눠 먹고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교단에 선 모든 선생님의 희망사항이 아닐까.1982년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선생님과 제자가 34년 후 같은 교직에서 같은 날 같은 버스로 함께 탐방연수를 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 분들은 그야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한 분들 같았다. 교직의 아름다움이,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은사인 담양 무정초 황송애 선생님과 제자인 나주 다시초 박도현 선생님이 필자의 요청에 의해 다정한 모습을 공개했다. 가슴 뜨거운 선생님으로 독도를 가르치리라 2016 독도역사문화탐방 연수단장 도교육청 박석주장학관의 인상적인 마무리 멘트 시간 아쉬움을 안고 헤어지는 시간, 연수의 끝자락에 선 선생님들에게 박석주 단장의 마무리 멘트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치 한 시간 수업을 끝내고 학생들에게 알게 된 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게 하는 선생님의 정리 활동 같았다. 끝마무리는 시작보다 더 중요하다. 방향성을 확인하고 심화 학습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2016 독도역사문화탐방연수 2기 단장 도교육청 박석주 장학관은, “3박 4일 동안 2016 독도 탐방연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합니다. 이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수고하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번 탐방연수가 독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일깨우고 독도수업 역량강화의 계기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독도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강화되어 선생님들의 교육적 상상력과 애국심으로 전남교육의 기둥이 되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독도탐방연수에 참가한 선생님들은 앞으로 독도교육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배움 중심 테마(수학)여행으로 행복한 추억을 아로새긴 여행의 즐거움을 안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았다. 직접 체험만큼 위대한 교육은 없다. 교육의 성공 여부는 실천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다 많은 선생님들에 독도탐방 연수의 기회가 주어져서 생동감 넘치는 독도 수업을 행동으로, 재미있는 독도골든벨로, 독도동아리 활동으로 심화되길 바란다. 단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교육을 추구하며 독도교육을 위한 선생님의 역량 강화에 힘쓰는 전라남도교육청의 뷰티플 마인드에 감사드린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독도탐방 연수 소감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들려주리라. 전라남도교육청이 추구하는 ‘꿈을 키우는 교실, 행복한 전남교육’ 실현을 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 땅 독도를 가르치리라!
◎ 미국 7월 24일 일요일 뉴욕 맨해튼의 눈물 14시간의 비행 끝에 맞은 지구 반대편은 아직 일요일 오전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허드슨 강을 가로지르는 해저터널 2.2㎞ 통과하여 뉴욕 맨해튼에 진입한다. 거대한 빌딩 숲 맨해튼의 차량 이동은 동서(STREET)와 남북(AVENUE)으로 모두 일방통행이다. 그리고 블록으로 나누어지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틈이 없다. 앞을 내다보며 건설된 도시만큼 규칙과 질서가 있으며 상하수관도 모두 동으로 되어 식수 오염은 걱정이 없다고 한다. 또한, 영화 ‘나 홀로 집에 2’의 촬영지며 650만 마리의 반려견이 함께 사는 만큼 길거리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띈다. 빌딩 숲 사이에 정차한다. 첫 식사자리인데 낯섦과 함께 찾아온 13시간 시차가 음식 맛도 느끼기 어렵게 한다. 조금 빨리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시선을 80도로 높인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만큼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드는 수밖에 없다. 오가는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과 패션 속에 선 또 다른 이방인을 보며 정말 타국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오후 2시 빼곡한 빌딩 숲 사이에 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도착한다. 뉴욕현대미술관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는 13만 점의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전시하고 있는데 5층의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이라 그 진품을 보기 위해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미술작품 감상에 무식쟁이인지라 전시관만 기웃거린다. 다행히 고흐, 피카소, 마네, 모네의 작품은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추상파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면 작가의 처지에서 보는 제3의 마음의 눈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이는 난해함을 자랑하는 현대 시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형태이다. 장시간 비행과 시차가 피곤함과 함께 외로움으로 몰려온다. 냉방 속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몸이 지친다. 잠시 1층 바깥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조각공원’으로 나온다. 말이 공원이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에 인공적으로 만든 분수와 나무, 유리창에 반사된 열기, 조형물, 휴식을 취하는 사람뿐이다. 다리도 쉴 겸 잠시 앉은 의자에서 눈을 감는다. 잠깐의 휴식이 생기를 준다. 다시 몸을 일으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향한다. 이 건물은 1929년 기공식을 통해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뒤인 1931년에 공사를 마쳤으며, 1953년 최종적으로 안테나 탑이 설치되어 전체 높이는 443m이다. 그리고 약 41년 동안 세계 최고층 마천루 자리를 지켰지만, 그동안 많은 고층 빌딩이 세워져 3번째로 높은 마천루가 되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로 세계 무역 센터가 파괴되자 다시 2012년까지는 뉴욕 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2013년 신세계무역센터 프리덤 타워가 541m로 공사가 완료되어 뉴욕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이 되었다. 이 건물은 완공 당시만 해도 명성을 얻지 못했는데 영화 킹콩이 촬영되어 개봉된 이후 뉴욕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한다. 빌딩 전망대로 가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86층 전망대에 도착한다. 추락방지를 위한 보호 창살 사이로 맨해튼 중심부와 뉴욕시가 눈에 들어온다. 기다랗고 다양한 모습과 색을 가진 직육면체 블록을 이곳저곳에 세워놓은 맨해튼 중심부. 그리고 빌딩 사이로 일정한 구획을 나누어 난 길에 개미처럼 보이는 자동차의 움직임이 혈관을 타고 움직이는 혈구 같다.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인간이 기계와 도구를 사용하는 호모사피엔스의 기술력으로 이 거대한 빌딩 숲을 만들어 낸 것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전망대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환상의 표정을 지으며 기념촬영에 바쁘다. 하지만 눈은 계속 9.11테러 당시 건물이 있었던 세계무역센터 자리로 향한다. 그 당시 방송을 통해서 생중계된 처참한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아픔을 알고 있을까? 창조와 파괴, 선과 악의 두 모습이 존재하는 인간의 마음을 아쉽게 관조해 본다. 마천루에서 내려와 다시 인파로 분비는 맨해튼 도심을 걸어 저녁식사장소로 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동차 행렬, 관광을 유도하는 호객꾼 여느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 많은 차량이 다니지만 버스를 제외한 모든 자동차는 휘발유만 사용하는 것과 지리적으로 바다를 낀 평지여서 공기 이동이 원활하여 미세먼지가 적은 쾌적한 도심을 유지하고 있다. 저녁은 김치찌개에 라면 사리가 곁들인 부대찌개 형태이다. 우리의 전통 김치찌개와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긴 하루의 일정을 접고 숙소로 향한다. 어두워지는 뉴욕시의 하늘, 맨해튼의 마천루를 밝히는 조명을 뒤로 뉴저지 주로 들어간다. 맨해튼의 높은 건물 숲과 수많은 인파와 자동차 행렬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그리고 무너져간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이 어둠이 스크린으로 된 하늘에 생생한 눈물로 떨어진다.
나라가 없는 설움은 직접 당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 근무할 때 8.15 광복절 행사 때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애국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는 노령의 재일동포들의 모습이 아직도 머리를 스쳐간다. 이제는 그런 아픔을 직접 느낀 세대도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런 사람 가운데 기억되는 사람이 바로 손기정(1912~ 2002) 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손기정 선수는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섰다. 그의 마라톤 제패는 민족의 쾌거였다. 하지만 금메달을 목에 건 그의 표정은 매우 어둡게 느껴진다. 식민지 조선 청년 손기정은 기념품으로 받은 월계수 묘목을 들어 일장기가 새겨진 가슴을 가렸다. 일본 국가가 연주되고 일장기가 오르는 동안 그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사인 요청을 받으면 일본식 이름 대신 '손긔졍'이란 한글을 쓰고, 그 옆에 한반도를 그려주었던 스물네 살 청년에게 시상대 위의 짧은 순간은 잊고 싶은 기억이었을지도 모른다. 80년이 흐른 지난 8월 19일 리우올림픽 배드민턴 경기에서 일본의 마쓰토모 미사키,다카하시 아야카 조가 여자 복식 우승을 차지했다. 준결승에서 한국의 정경은,신승찬 조를 이겼다. 한국팀을 누르고 올라온 이들은 사상 첫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을 일본에 안겼다 주었다. 경기 후 환호하는 두 사람 뒤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1980~90년대 한국 배드민턴 최고 스타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박주봉(52) 감독이었다. 일본 선수들을 안아준 그의 왼쪽 가슴엔 일장기가 선명하게 보였다. 박 감독은 2004년부터 13년째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배드민턴 변방이었던 일본에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일본팀의 체질을 바꿔놓았다. 대표팀 전문 훈련 시설을 만들고 합숙 훈련을 도입하는 한편 뿌리 깊은 패배 의식을 고치려 노력했다고 한다. 박 감독이 도입한 '한국식 시스템'은 4년 뒤 베이징올림픽에서부터 위력을 발휘했다. 여자 복식팀이 준결승에 올랐다. 이어 출전한 런던올림픽에선 은메달, 이번엔 금메달까지 거머쥐었다. 일본 국민은 자국의 배드민턴 종목의 도약에 '박주봉 감독이 없었다면 일본 배드민턴이 평생 빛 볼 일 없었을 것'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그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박주봉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키며 '박 감독은 친일파냐'란 비난을 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일본이 우리 나라 감독에게 배워서 금을 땄다니 정말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80년 전 나라를 잃었을 땐 세계를 제패하고도 지우고 싶었던 한 서린 일장기가 이번 리우에서는 한국 지도자의 능력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자랑스러운 성취의 상징이 됐다. 한국인 손으로 만들어낸 세계 1등이란 결과는 한국인 가슴의 일장기가 더 이상 치욕이 아니라 자랑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보기 싫었던 일장기가 이렇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만큼 자랑스러운앞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고 이를 따르는 선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지도자가 훌륭해도 선수와 소통이 안된다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이는 스포츠에만 해당하는 사례가 아니다. 해방 이후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배웠고, 그를 바탕으로 일본을 뛰어넘기 위해 땀 흘려 뛰었다. 자동차, 반도체 산업의 발전이 그렇게 이뤄졌다. 그러나 이런 흐름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한 극일은 이런 것이다. 극일은 요란스럽게 떠드는 구호가 아니라 실력 문제이다. 일본팀을 이끌고 올림픽 무대 정상에 선 박주봉 감독이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이룬 성과와 그가 받은 박수가 한·일 양국에 과거사의 아픔을 털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모델이 되길 바란다. 아직도 이 지구촌에는 어두운 곳이 많다. 한일양국이 배우고 가르치고 협력하면서 이 어두운 지구촌 사회를 밝혀 나가길 기대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