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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명절, 자식으로부터 세배를 받고 덕담도 했다. 성묘를 마치고 나니 하루 여유가 생긴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의 제안으로 당일 코스 서해안 여행을 떠났다. 태안 해변길 제1코스인 바라길을 트레킹하려는 것. 아침을 서둘러 먹고 자가용으로 출발하니 수원에서 학암포 오토캠핑장까지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학암포 해수욕장은 1990년대 초반에 G중학교근무 시절, 보이스카우트 대원을 인솔하여 경기도 캠퍼리에 참가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에 따라 대원을 지도하느라 해수욕을 한 추억은 희미하고 캠프파이어 때 무대를 임시 가설하고 걸스카우트 지도자와 더블MC로 사회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20여 년 만에 이곳을 찾은 것이다. 캠핑장에 주차를 하니 겨울 야영객 몇 가족이 보인다. ‘이 한 겨울에 야영?’이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이야말로 진짜 캠핑족이 아닐까? 자가용을 바로 옆애 두고 커다란 텐트를 치고 취사를 하면서 겨울을 즐기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요즘엔 야영장에 취사장, 화장실 등 기본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캠핑장을 가로질러 가니 곧바로 해수욕장이다.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무엇일까? 모래사장, 바다, 파도가 아니다. 해변에 널린 쓰레기다. 곳곳에 쓰레기가 모아져 있긴 하지만 치우지를 않았다. 행정당국의 힘이 미치지 않은 것. 함께 간 아들은 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 사람의 의식을 탓한다. 해수욕장 오른쪽에 보이는 태안화력발전소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솟아오른다. 태안 해변길은 여기에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이곳을 상징하는 학(鶴)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곧바로 바닷가로 달려간다. 마침 썰물이다. 소분점도 앞에 있는 바다바위와 돌에는 굴껍질이 겹겹이 붙어있다. 이 껍질을 깨고 굴을 채취하는 사람도 보인다. 나도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채취에 성공, 아내와 아들에게 맛 볼 것을 권유하니 고개를 젓는다. 크기는 작지만 자연산 굴에서 자연의 향기를 느낀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변길 트레킹이다. 이곳의 특징은 썰물 때에는 바닷가를 걷고 밀물 때에는 탐방로를 걸으면 된다. 우리는 모래사장에 우리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다. 겨울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별로 없다. 저 넓은 바다와 파도소리, 시원한 바람을 우리 가족이 독차지 한다. 해솔길을 걸으면 오른쪽이 바다다. 바다를 소나무 숲 사이로 보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이 이 길의 매력이다. 이어 도착한 곳은 구례포해수욕장.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데크를 설치해 천사길(1004m)이라 명명해 놓았다. 겨울 바닷바람이 제법 분다. 바닷물이 모래를 실어 나르고 바람이 모래를 이동시킨다. 대나무로 만든 모래포집기가 길게 이어진 모습을 보았다. 이것은 해안 사구의 침식을 막고 모래의 퇴적을 유도하기 위한 인공 구조물인데 인간의 지혜가 엿보인다. 산길을 걷다보니 참호와 이동로가 보인다. “여기서 정말 군인이 근무했느냐?” 아들이 질문한다. 1970년대만 해도 북한의 간첩 침투가 주로 해안을 이용해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먼동해수욕장. 드라마 여러 편을 촬영해 알려진 곳인데 ‘먼동’ 드라마 이름을 따서 해수욕장 이름도 바뀌었다. 작은 섬 위의 소나무와 해변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점심 때가 지나니 배가 고프다. 능파사(能波寺) 양지마루에 앉아 쌀강정과 사과로 시장기를 없앤다. 태안해변길 표지판을 보니 신두리 사구까지는 거리가 가깝지만 신두리해수욕장을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이 바라길은 중간에 식당, 매점이 없다. 종착지인 신두리까지 가는 수밖에없다. 저 멀리 산 아래로 신두리 사구가 보인다. “아빠, 무슨 사구가 공사장 같아!” 맞다. 마치 모래 채취장 같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사구로 해안사구란 ‘사빈의 모래가 날러 쌓인 언덕’을 말한다. 산길 계단을 내려오니 왼쪽에 사구가 보이고 오른쪽은 바다다. 해수욕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해수욕장 끝에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건물이 보인다. 펜션들이 늘어서 있다. 해안이 얼마나 길고 넓은지 진입한 자가용 몇 대가 보인다. 고운 모래에 우리 가족 손바닥을 찍어 추억을 남겼다. 이 바라길에서는 자연이 남긴 예술을 볼 수 있다. 바닷물과 바람이 만들어낸 무늬를 말하는 것이다. 가족여행, 여행을 하면서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누고 여행 추억을 남긴다. 아들에게 중학교 때 대천 앞바다 해수욕과 삽시도 여행 추억을 물으니 기억이 감감하다고 한다. 아내와 내가 기억하는 인상적인 장면도 다르다. 같은 여행을 했는데도 본 것과 들은 것과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추억이 합쳐진다. 이야기가 이어진다. 몇 년 후 태안해변길 트레킹에 대한 어떤 추억이 남아있을까?
“ 자 ! 손들 씻고 와서 점심을 먹기로 하자. 오늘은 3분단과 함께 먹을 차례예요” 하고 선생님이 손을 씻고 오셔서 점심을 먹으려고 보니 작은 방 마을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얘들아, 현이, 희아, 옥이, 경이 네 사람은 어디를 갔니?” “선생님 그 얘들은 뒷산 땅굴에서 먹는대요. 날마다 지네들끼리 모여서 거기서 점심을 먹는대요.” 한꺼번에 와르르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였습니다. “식사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해야 한다.” 날마다 점심시간이면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이 있어서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지만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네 사람 작은 방 마을의 아이들은 유난히 함께 몰려다녔습니다. 아니 몰려다닌다는 말 보다 되레 한데 묶어 다닌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입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한꺼번에 몰려다닐 정도이니 말입니다. 휴전선의 서부 전선 철조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고장은 학교에서 20여m 떨어진 뒷산에 군용 벙커(땅 속에 숨어서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게 만든 군사 시설)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컴컴하고 눅눅한 곳에 몰려가서 점심을 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벌써 몇 번째나 주의를 주셨습니다. 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분단별로 모여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선생님과 함께 먹는 분단을 정해서 차례로 모여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아가며 빠져나가기 때문에 같은 분단에 함께 모이지 않도록 따로따로 나누어 앉게 해주었습니다. 함께 어울리는 것을 줄이려고 청소 분단도 따로따로 되게 바꾸기도 했지만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함께 모여서 의논하고 공부하고 또 다른 아이들과도 어울리고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공부가 끝난 뒤 선생님은 네 명의 아이들을 남겼습니다. “너희들 네 사람은 참 친하게 잘 지내는 구나. 그런데 어디서 점심을 먹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뒷산에서 먹었어요. 선생님과 같이 점심을 먹는 것이 우린 싫단 말이에요. 아이들과 함께 먹는 것도 싫고 그냥 우리 넷이서만 먹고 싶어요.” 하고 경이가 머리를 숙인 채 말을 했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점심시간에 바른 자세로 잘 먹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너희들은 내가 곁에 있는 것이 싫은 모양이로구나.” 하고 말씀하시자 제일 덩치가 커다란 옥이가 “선생님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공부 못한다고 자꾸만 꾸중을 듣는 우리들과 함께 노는 것을 꺼려하고, 미워하고, 놀리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끼리 노는 게 좋아요. 우리들이 지네들 노는데 껴들면 싫어하고 저리 가라고 막 욕하고 그래요.” “아, 그랬었구나. 그러면 내가 아이들에게 얘기를 해야겠구나. 아이들이 함께 놀아주면 너희들도 함께 어울려 놀 수 있겠지?”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러면 아이들에게 오히려 놀림감이 되어요.” 하고 한사코 싫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 선생님은 학급에서 우수하고 모범생이 될만한 명랑한 아이들을 골라 하나씩 짝을 지어서 좀 더 친하게 잘 대해 주고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네 명의 짝꿍패는 더욱더 단단하게 굳어져 갔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짝꿍패들이 한데 어울려 깨어질 줄 모르자 그네들을 더욱 싫어하고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6월 초순 어느 날, 결석이라곤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인데 갑자기 현이가 결석을 하였습니다. 왜 결석을 하였는지 물어 보아도 짝꿍패들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너희들 어쩜 그럴 수가 있니? 그렇게 몰려다니던 친구가 결석을 했는데 까닭을 모른다니?”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시자, 희아는 죽어 가는 소리로 “현이 아파서 병원에 갔대요,” 한 마디 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왜?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거지?” 선생님께서 물으셨지만 고개만 흔들 뿐 서로 눈치만 보는 게 뭔가 석연찮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으면 물을수록 말이 없어지는 짝꿍패들의 버릇을 잘 알고 있으니 선생님도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현이가 핼쑥한 얼굴로 엄마와 함께 교실에 들어왔습니다. “식중독이었던지 토하고 배가 아프다고 야단을 해서 일요일 내내 병원에 가서 누워 있다가 지금 오는 길이에요.” 현이 엄마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짝궁패들의 눈빛은 아픈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닌 잔뜩 겁먹은 모습들이었습니다. 다행히 현이는 이튿날부터 학교에 나오고 별다른 일은 없이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보내면서 이 아이들을 따로 불러 교실정리를 함께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대장 격인 옥이를 따로 불러서 조용히 물으셨습니다. “옥아, 너희들 무슨 일이 있었니? 모두들 물어도 네가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없겠니?” “.........” “선생님이 알기로는 전번 토요일에 너희들 끼리 무슨 일이 있었고, 그래서 현이가 아픈 게 아니라 그 일 때문에 병원에까지 가게 되었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선생님한테 이야기 해 주는 게 좋지 않겠니?” 이렇게 달래 보았으나 옥이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딱 한마디 하고서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그래 ? 그렇게 절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할 수 없지만, 선생님이 이제 대략은 알게 되었는데 더 이상 감추고 그럴 필요가 있겠니? 얘기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달래도 보았지만 아무 말도 없이 얼마 동안을 생각하고 궁리를 하는 듯 하더니 선생님과 눈이 맞추지 못하고 있던 옥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학교에서 돌아가 숙제를 하려고 모두들 옥이네 집으로 가서 모여 한바탕 떠들고 있을 때 옥이 어머니가 논에서 돌아오시더니 악을 쓰면서 호통을 쳤다는 것입니다. “생겨 쳐 먹은 것이 꼭 돼지 같아 가지고 저렇게 공부도 못하는 것이 집안일이라도 좀 도와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너 같은 것을 어디에 써먹겠니? 차라리 나가서 되져 버리면 저런 꼴이라도 안보지. 이 망할 놈의 계집애야.” 하고 욕을 하는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머리를 쥐어뜯기기도 하고 매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꾸중을 잔뜩 들은 것을 본 짝꿍패 아이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면서 집 뒤의 산으로 피해 달아났습니다. 여기에 모여 앉은 아이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들은 공부도 못하고 집안일도 도와드리지 못하는 아무것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아니냐?” 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걱정만 들어온 우리 같은 것이 살아 봐야 부모님들의 걱정거리 밖에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들 그렇다고 서로 이야기를 끝내었습니다. “아무리 잘해 보려고 해도 우린 틀렸나 봐. 부모님 걱정을 덜어 드리려면 차라리 우리가 죽어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정말 바볼까? 나는 공부도 못하고 집안 걱정거리나 되고, 친구들도 잘 어울려 주지도 않고, 이런 꼴로 살아서 무얼 하니? 엄마 말대로 정말 죽어 버리면 좋겠어.”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자 아이들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것이 아니냐? 얼른 죽어 버리믄 부모님의 걱정거리도 덜고 우리도 남의 눈치나 받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 아니냐?” 하는데 마음이 모아졌습니다. 아이들은 몰래 집안으로 들어가서 옥이가 무언가를 찾아 들고 다시 집을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학교 뒷산의 벙커로 가서 옥이가 손에든 쥐약을 꺼냈습니다. 누구보다도 남의 일에 동정을 잘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경이가 “나도 그래, 집에 가면 맨날 욕이나 먹고 동생편만 들어주는 엄마, 아빠가 미워 ! 나도 죽어 버리고 싶어.” 하자 모두들 나도 나도 하면서 함께 죽어 버리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약은 두 병 뿐이고 사람은 네 명이나 되니까 반병씩을 나누어 먹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병의 주둥이 부분을 칼로 자르고 우선 옥이와 현이가 반쯤씩 마시고 나면 나머지 반씩을 경이와 희아가 마시기로 하였습니다. 옥이와 현이가 병을 입에다 대고 플라스틱으로 된 병을 힘을 주어 누르자 입안으로 약이 흘러 들어가는지 꿀꺽 삼키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경이는 더럭 겁이 났습니다. “안돼!” 경이는 현이의 손을 덮쳤습니다. 그러나 벌써 현이는 약병의 2/3쯤을 먹었다가 나머지 반쯤은 흘려버렸습니다. 겁이 난 경이는 약병을 빼앗아 멀리 던져 버리고서 학교의 숙직실로 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아저씨, 현이가 아파서 그러는데 잠깐만 누워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마음씨 좋은 학교 기사아저씨는 아이들을 숙직실에 눕게 하고 밖에 나가서 학교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잠시 후에 돌아온 아저씨는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너희들 왜 이 시간에 학교로 왔어? 집에 안 갈거니 ?” “집에 가기 싫어요.” “꾸중 들었구나? 그럼 저녁도 안 먹었겠구나.” “.........” “그럼 잠깐 기다려라. 응”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몇 백 m나 떨어져 있는 이웃마을의 가게에 가서 빵과 음료수를 사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주셨습니다. “자 ! 이것들을 먹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가거라. 집에서 들 걱정하시지 않겠니? 너희들 잘 되라고 꾸중 하셨을 거야.” 하고 타이르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머리가 아프다던 현이가 토하고 야단이 났습니다. 걱정이 된 아저씨는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왔으면 집으로 보낼 것이지 왜 그런 빵 같은 걸 사다 먹여 가지고 토하고 야단이 나게 해요?” 까닭도 모르는 아저씨는 현이 어머니에게 욕을 먹고 투덜거리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현이는 계속 토하고 야단이 났었고, 병원에 가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원인도 모른 채 주사를 맞고 토하지 않은 약만 먹고서 좀 나았습니다. 이야기를 모두 다 듣고 난 선생님은 작은 방 마을의 짝꿍패 아이들을 모두 숙직실로 불러 들였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고 이해해 주어야 참으로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네 아이들과 마주 앉아 말문을 열자 옥이가 “나는 공부도 못하고 못 생긴데다가 부모님의 속만 썩여 드리는 큰딸이 되어 가지고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도와 드리지도 못하니까 어머니의 말씀대로 죽어 버릴 생각을 했어요.” 하고 말을 마치자 희아가 “부모님도 없는데 할머니만 괴롭혀 드리고, 작은 아빠, 작은 엄마만 귀찮게 하면서 공부도 못하고 살아서 무엇 하겠냐는 생각에 그랬어요.” “공부 못한다고 자꾸 꾸중만 듣고, 또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는데 잘 어울려 주지 않아서 속상했어요.” 현이가 말하자 가만히 앉아만 있던 경아가 “남동생과 단 둘인데 엄마가 계집애는 시집가면 그만 이라고 자꾸만 차별 대우를 하는 게 싫었고, 사람은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것이니 지금 죽으나 나중 죽으나 마찬가지일 뿐 아니라, 이왕 죽을 거라면 고생할 필요 없이 일찍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고 거리낌 없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말했습니다. “너희들 얘기를 듣고 보니 정말 너희들이 어떠한 심정인지 알 것 같구나. 나도 어린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으니까 말이야. 부모님의 무관심, 꾸중, 친구들의 미워함, 집에서의 차별 대우, 이 모든 것들이 너희들을 슬프게 하기에 충분했겠지? 우선 부모님이 너희들을 미워하고, 꾸중하고, 차별대우를 한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이라면 안 되지? 그러나 실상은 정말 너희들이 미워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너희들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앞날을 걱정해서 그러시는 것은 아닐까? 만약 너희들이 아파 누워 있다면 너희 부모님은 어떻게 하시더냐? 꾸중을 하시느라고 너희들에게 욕을 하시기는 했지만 막상 너희들이 앓고 누워 있으면 병원엘 간다, 약방엘 간다 야단을 하시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부모님이 너희들을 진정으로 미워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겠니? 현이야 ! 이번에 네가 아팠을 때 너희 부모님이 너를 정말 미워하시더냐 아니면 참으로 너를 걱정하시더냐? 너희들은 부모님의 심정을 좀 더 이해해 드려야 한단다. 오직 너희들의 장래를 생각하시는 부모님을 말이야.” 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되는 동안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서 조용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현이는 실감이 나는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습니다. “너희들은 부모님이 계시니까 부모님의 고마움을 잘 모르고 있구나. 나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날마다 꾸중하시고 나무래 주실 부모님이라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단다. 너희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 어머니가 안 보이시면 얼마나 허전하니? 난 영영 볼 수 없는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못한 게 너무도 후회스럽단다.” 하시면서 선생님이 눈물을 글썽글썽 해지고 목이 메어서 울먹이시자 아이들은 왈칵 선생님의 목을 끌어안고 울음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이 잘 못 했어요.” 얼마동안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는 아이들을 일으켜 눈물을 닦아주면서 선생님은 “자 ! 이제 우리는 잘 못을 깨닫고 새로이 태어난 셈이다. 이제부터라도 잘하기 위해서 앞으로 할 일을 의논해 보자.” 하시면서 덧붙여 “우선 너희들의 비밀은 지켜 주겠다. 너희들이 얘기하고 싶으면 부모님께 용서를 빌고 앞으로 할 일을 약속해라. 또 학급의 친구들과도 좀 더 여럿이 한데 어울려 지내도록 노력을 하기로 하자.”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짝꿍패들은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는 듯 밝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뒷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궁리 끝에 경이 부모님을 먼저 만나 보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경이의 부모님은 두 분이 모두 대학을 나오셨고, 충분히 의논을 할 상대가 될만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경이네 집으로 경이 몰래 편지를 보내서 멀리 읍내에서 조용히 만나자고 했습니다. 경이 부모님으로부터 읍내의 어느 곳으로 나와 주십사 하는 전화를 받고서 달려 나간 선생님은 이번 일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가시면서 예쁜 옷이라도 한 벌 사 가지고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아들과 차별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를 해주시고요.” 하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께는 잘 못 말씀을 드렸다가는 이야기가 새어 나갈 것 같아서 아주 조심스러웠습니다. 가정방문을 핑계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찾아가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웃 가을 뫼에 먼저 가서 두어 집을 돌다가 농사철이라 사람들을 만날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처럼 작은 방 부락으로 넘어와 짝꿍패들의 집을 찾아가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현이네, 희아네를 돌고, 옥이네까지 들러서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꾸지람이나 체벌을 하기보다는 칭찬을 해가면서 달래어서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자고 부탁을 했습니다. 다행히 짝꿍패들은 조금씩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도 제법 잘 어울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주 만에 그렇게 감추어 왔던 사건의 이야기가 그만 온 동네에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현이의 입을 통해서 사실을 알게 된 현이 엄마가 옥이를 불러다가 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이네 집은 마을에 있는 유일한 구멍가게라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집입니다. “ 야, 이 기집애야! 죽고 싶으면 네 년이나 죽을 것이지, 왜 남의 집 아이까지 데려다가 약을 멕여? 생긴 것부터가 돼지 같이 생겨 가지고, 공부도 못하고, 말도 안 듣고, 못된 생각만 하니까 집에서도 그렇게 미움을 받지! 이 빌어먹을 ×아 !” 이렇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붓고, 거기다가 현이네 이모까지 합세하여 잡아먹을 듯이 야단을 했습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어 옥이는 마을에서 걸어 다니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옥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논둑길이나 산길로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이런 사실을 알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서 곧장 현이네를 찾아가서 현이 엄마를 만나 “ 현이 엄마! 딸의 잘못을 그렇게 온 세상에 떠드는 엄마가 어디 있습니까? 조용히 잘 넘겼고, 이제 아이들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떠들어 가지고 모두 알게 되었으니, 옥이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고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게 됐지 않습니까?” 하고 얘기를 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잘 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울컥 화가 치밀어서 그만 앞뒤 가리지 않고 한 것이 정말 잘 못 됐네요.” 하고 사과를 했지만, 이미 다 알려져 버린 일을 감추기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학급의 아이들에게 대강의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너희들이 좀 더 따뜻하게 친구들을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마음씨를 갖고 정답게 대해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 아니니? 앞으로는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하고 당부를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선생님을 잘 따랐고 친구들 사이에 생긴 갈등은 물론, 가정에서 생긴 일까지 의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방과 후엔 아이들이 선생님 주변에 모여들어서 함께 의논하고 해결 해가는 즐거운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짝꿍패들도 스스로 자신들의 잘 못을 뉘우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차 향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경이는 이미 우등권에 접근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즐겁던 나날도 잠시이고, 나쁜 소식은 여름 방학을 하는 날 오후 늦게 전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옥이가 시냇가에 나갔다가 물에 빠진 동생을 구하려다가 결국 세 자매가 모두 숨이 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불과 100여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시냇가에 공사를 하기 위해 파 놓은 웅덩이 옆에 건져 올려진 세 자매의 시체를 보면서, 선생님은 넋이 나간 듯 붉으레 스러져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서투른 담배를 꼬나 물고 서서 “ 푸우, 푸” 담배 연기만을 내뿜고 서 있었습니다. ‘아! 내가 아직도 어리고 교사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야.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죄는 교사로서 용서받지 못할 일이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시나 봅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선생님들이 모여서 교육청과 경찰서에 사고보고를 내고 여기 저기 연락을 취하는 등 어려운 일들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사방이 깜깜해진 밤에 우리 선생님들은 세 자매를 묻어주기 위해서 나섰습니다. 아이들의 부모는 절대로 못 오게 잡아 앉혀 놓고 마을 어른 몇 분이 함께 나오셔서 도와주었습니다. 모두 함께 산으로 가서 깜깜한 밤에 여기가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산 속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어린 꽃들의 무덤을 만들어졌습니다. 아무런 표지도 않고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는 동네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세 무덤을 만들어 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모두 다 한 없이 무겁기만 하였습니다.
설날 연휴에 가족과 함께 전통시장을 찾았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은 언제 보아도 활기차고 생동감이 있어 좋다. 특히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의욕을 불태울 수 있어 좋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리포터는 한 식당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간판에 써 붙인 차림표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글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육계장'이란 단어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렇듯 잘 못 쓴 집이 한두 집이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육계장’은 ‘육개장’이 맞는 표현이다. 육개장은 쇠고기를 삶아서 결대로 뜯어 고사리를 비롯해 갖은 양념을 하여 얼큰하게 끓여낸 국으로 원래는 개장국에서 온 말이다. 옛날의 ‘개장’이란, 개고기를 끓인 탕(오늘날의 보신탕)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개장은 주로 하층민이 먹던 음식이었기에 지체 높은 양반들은 개고기 먹기를 꺼렸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개장국에 쇠고기를 넣어 국을 끓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육개장이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육개장을 육계장이라고 혼동하는 이유는 아마도 식당에서 육개장에 계란을 풀어주기 때문에 닭을 연상하여 ‘계’라고 쓰거나 아니면 일부 식당에서 육개장에 닭고기를 넣기 때문에 ‘닭계장’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이는 모두 ‘육개장’으로 통일하여 부르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이밖에도 맞춤법에 어긋난 간판 몇 개를 더 찾아보았다. 신사 마춤 양복 - 신사 맞춤 양복, 쭈꾸미볶음 - 주꾸미볶음, 꽁짜폰 - 공짜폰, 드라이크리닝 - 드라이클리닝, 수제 소세지 - 수제 소시지, 안주 일절 - 안주 일체.
평창 동계 올림픽이 감동을 주고 있다. 개막식에서 하늘을 누비던 드론이 오륜기 모양을 그렸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남북 동시 입장과 여자 하키 단일팀 등 뉴스거리도 풍성하다. 각 경기에서도 선수들은 능력 이상을 보여주면서 감동을 선사한다. 한국 설상 최초의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아이언맨 윤성빈은 설날 아침을 들뜨게 했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 아이언맨을 연상하게 하는 안전모를 눌러 쓰고 썰매를 타는 장면이 듬직했다. 스켈레톤이라는 이름조차 낯선 종목에서 윤성빈 선수가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했다. 1~4차 주행 합계 3분20초55를 기록했다. 0.001초를 다투는 경기에서 1.63초 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보였다. 아시아 선수가 썰매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건 이번이 처음이라니 윤 선수의 능력을 느낄만하다. 이런 감동 장면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 덕택이다. 실제로 텔레비전의 발달로 올림픽의 인지도가 급격히 향상되었다. 지구촌 전체에 중계되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방송 중계권 및 광고 수입 등으로 지나치게 상업화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텔레비전 방송은 올림픽을 재미있고, 가까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텔레비전 중계는 과학이 결합된 정확한 기록을 제공해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며칠 전 중계에서도 방송사가 시청자의 이해를 위해 그림 자료를 제시했다. 여기에서 네덜란드는 스피드스케이팅 분야에서 많은 메달을 땄다는 성적표를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개수’라고 써야 하는데 ‘갯수’라고 썼다. ‘개수’라고 써야 하는데 ‘갯수’라고 틀리게 쓰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일반 사람들이 사적으로 메모를 문자를 주고받을 때 이렇게 쓰면 뭐라고 특별히 말하기 쑥스럽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공적 전달 매체다. 텔레비전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맞춤법 오류는 있어서 안 된다. 이 문제는 사이시옷 표기 문제다. 한자어는 사이시옷을 표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수(個數)가 바른 표기다. 한자어의 경우는 숫자(數字), 횟수(回數), 셋방(貰房), 곳간(庫間), 툇간(退間), 찻간(車間)에만 예외적으로 사이시옷이 붙는다. 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예외 규정이다. 한컴오피스를 사용할 때도 바로 잡아주는 표기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인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첨단 과학 시스템이 함께 하는 중계방송은 올림픽의 감동을 더하고 있다. 맞춤법 실수는 그렇게 뛰어난 과학도 필요 없다. 조금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 된다. 혹시 맞춤법이니 대단한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새 2학기 생활기록부 마감 철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담임들은 이맘때가 되면 가장 바쁘다. 무려 10개 항목에 달하는 생기부를 마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활동이나 진로활동,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등은 아이들이 그동안 적어낸 감상문을 토대로 나름대로 정리해서 넣을 수 있다지만, 담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다. 1년 동안 담임을 하면서 40명이 넘는 학생 개개인을 자세히 관찰한 누가기록을 근거로 적어도 일천자 정도를 써 줘야하는 것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은 대학 측에서 따로 추천서를 받지 않고 이것만 가지고 추천서를 대신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니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반 아이들 모두가 사랑스럽고 예뻐 보이지는 않는다. 자기 귀여움은 자기가 받는다는 옛 속담이 있듯이 언제 보아도 예뻐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멀리에 있다가도 뛰어와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 담임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줍는 아이, 단체 활동 때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아이, 지각이나 결석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교칙을 준수하는 아이, 항상 교복을 단정하게 입는 아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 이런 아이들의 종합의견은 규정된 글자 수를 초과할 정도로 아주 글이 술술 잘 써진다. 반면, 진짜 나쁜 학생들도 있다. 선생님이 볼 때만 하는 척하다가 선생님이 사라지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학생, 만만한 선생님 시간에는 온갖 핑계를 대고 수업에 의도적으로 빠지는 학생,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 학교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머리를 기르고 염색을 하고 교복을 마음대로 줄여서 입는 학생, 입만 열면 온갖 거짓말에다 조금만 혼내면 SNS에 인권침해라고 참소하는 글을 올리는 학생, 교실 바닥에 침이나 가래를 거침없이 뱉는 학생, 하지도 않은 체벌을 했다고 헛소문을 내 해당 선생님을 곤경에 빠뜨리는 학생...... 이런 학생들의 종합의견을 쓰려면 정말 너무나 고통스럽다. 사실 그대로 쓰자니 그 학생의 장래가 걱정되고 거짓말로 쓰려니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몇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단 한 줄도 쓰지 못할 때도 왕왕 있다. 이럴 때면 불성실하게 생활한 그 녀석들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교사라는 직업이 수없이 인내하고 참으면서 그런 학생들을 교화하여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 본분인 것을.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입술을 깨물고 다음과 같은 종합의견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위 학생은 학업에는 흥미가 좀 부족하지만 성격이 활달하고 명랑하여 주변에 친구가 많음. 특히 운동을 좋아하여 체육 시간에는 항상 급우들을 리드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재주가 있음. 장차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로 진출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 이러한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목하 고민하는 것이다.
정녕 상호 호혜적인 한ㆍ일 관계는 요원한 것인가? 근래 위안부 합의 논란으로 한일 관계가 극심하게 벌어져 가는 가운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또 다시 재현됐다.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은 고교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고교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전자정부 종합창구'에 고시(告示)했다. 일본의 고시안은 여론수렴 작업을 거쳐 문부과학상이 관보에 고시하면 최종 확정된다. 말이 여론 수렴이지 확정적인 것이다. 이 개정안은 고교 역사총합(종합)과 지리총합, 공공 과목에서 "다케시마(죽도ㆍ竹島·일본에서 부르는 독도의 명칭)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조어도ㆍ釣魚島)열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가르치도록 했다. 이는 한ㆍ일, 중ㆍ일 관계를 명시적으로 왜곡토록 강요한 교과서 오도(誤導) 행정이다.최근 일본 정부가 초ㆍ중에 이어 고교에서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영토 왜곡 교육을 실행토록 하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내놓았다.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과 같은 중요한 교육 정책 지표다. 일본에서의 법적 구속력은 절대적이다.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은 교과서 집필과 검정의 법적 근거이기도 하다. 2009년에 개정된 종전 고교학습지도요령에서도 각 학교에서 영토 교육을 하도록 강조한 바 있지만, 독도나 센카쿠열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었다. 이에 따라 일본 교과서 교육행정은 '학습지도요령-해설서-검정 교과서'라는 체제를 갖는데, 이 역사 왜곡의 3종 세트는 일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독도 영유권 왜곡교육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왜곡 교육의 근거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이번에 공표한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에서 한국과 중국이 각각 주권을 선언한 독도와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를 일본 고유의 영토로 가르치도록 명기했다. 한국과 중국에 일대 도발을 노골적으로 자행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일본은 영토 왜곡 교육을 확대함에 따라 역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벌이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초·중 학습지도요령에서 독도 왜곡 교육을 강화한 데 이어 고교 학습지도요령에서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교육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초ㆍ중ㆍ고교 등 청소년 세대에게 독도를 일본 영유권 지역으로 가르치는 것은 한일 미래 세대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고교 역사종합, 지리종합, 공공 과목에서 독도와 센카쿠 열도를 고유의 영토로 확실히 교육하라고 사실상 의무화했다. 나아가 일본의 국제적인 신의를 의심하게 하고 한반도 침략 역사를 부정하는 것으로 매우 극심한 도발이다. 오는 2022년도 신입생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하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은 국가와 사회의 형성자에 필요한 자질과 능력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공민(公民)에서 필수과목 '공공(公共)'을 신설하고 안전보장 등을 다뤄 주권자 교육에 주력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일본의 ‘공민’은 우리나라의 ‘사회과’와 동격의 교과목이다. 이번 개정안에서 지리역사에서는 근현대의 일본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역사종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고유의 영토를 명시하도록 했다. 지리종합에서도 독도와 센카쿠 열도를 일본의 고유의 영토로 다루게 했다.돌이켜보면 일본은 지난 2008년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서 처음으로 독도에 대한 한국과 일본 간에 영토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표현을 넣었다. 에둘러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이어서 일본은 2014년 1월 중·고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점을 명시했고, 현재 초중고 사회과 교과서(공민 등) 대부분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이제 2022학년도부터 일본의 모든 초ㆍ중ㆍ고교에서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가르치고 배우게 되어 있다. 한국으로서는 끔찍한 일이다. 역사가 정치에 휘둘려 왜곡되는 현상을 21세기 대명천지에 마냥 서서 바라봐야 하는 딱한 처지인 것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은 역사적, 지리적, 국제접적으로도 명확하다. 전 세계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소위 ‘독도’를 한국의 초ㆍ중ㆍ고교에서는 한국 영토, 일본의 초ㆍ중ㆍ고교에서는 일본 영토로 가르치고 배우는 역사 왜곡, 교육 오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청소년들이 자라서 국가 사회를 이끄는 주역일 될 20-30년 뒤의 한ㆍ일 관계와 국제 외교 관계를 유추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도발에 한국 정부는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늘 하던 버릇이라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정치적,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역사와 교육의 최대공약수는 올바르고 올곧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 역시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주역으로서 역사와 교육 바로 세우기에 품격 있는 국격(國格)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걸핏하면 ‘치고 빠지기’식으로 독도 영유권 주장,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을 왜곡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과하고 역사와 교육 바로 세우기에 동참해야 한다. 결국 일본은 이와 같은 쟁점에 대해서 위정자에 따라, 시시때때로 말과 행동을 바꾸는 태도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일본은 진정한 선진국으로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우선 ‘진정한 한일 관계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이번 ‘고교학습지도요령 개정안’ 고시를 여론 수렴 운운하여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고 전향적으로 철회하고 한국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지형학적, 역사적, 정치적, 국제법적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선린 관계다. 이 독도 영유권 주장 억지가 한ㆍ일 선린 관계, 상호 호혜적인 관계에 악재로 작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독도는 한국 땅이다.’
경북 산양중(교장 송이섭)은 12일부터 1박 2일 동안 6학년 졸업생들과 함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경기를 관람하고 오죽헌, 촛대바위 등 강원도의 유명한 장소를 찾아보며 올림픽 열기의 현장을 직접 느끼는 체험을 진행하였다.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기에 앞서 학생들은 대표적인 동계올림픽 경기 종목인 스노보드에 대한 선생님의 사전교육과 영상을 통해 경기 방법과 규칙 등을 습득하였으며 경기 당일 현장에서는 같이 동행한 산양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과 함께 많은 선수들의 여러 가지 동작들을 보면서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경기를 관람 후 학생들은 율곡 이이와 관련하여 유명해진 강릉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오죽헌을 둘러보았으며 애국가 첫 소적의 배경화면으로 나온 추암 촛대바위를 방문하였다. 또한 강원도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닭갈비, 순두부, 해물탕 등을 맛보며 먹거리 체험학습 또한 같이 하였다. 본교 송이섭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국가적인 행사인 동계올림픽 경기를 직접 관전하며 강원도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함으로서 국가를 생각하는 시각과 강원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당부하였다.
경북도교육청 점촌도서관(관장 배경규)은 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다양한 평생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2018년 상반기 평생교육강좌를 운영한다. 6~7세 유아를 대상으로「Hello!! Funny Stories!!(영어 그림책)」, 초등학생은「소소한 감동 그림책 놀이, 한국사 인물과 문화 이야기, 창의미술과 화가이야기」, 학부모를 대상으로「새롭게 배우는 한국사, 손끝의 마법 세밀화 연필스케치, 한필 한필 서예, 누구나 글쓰기 처음부터, 행복을 부르는 하모니카, 어른에게 말하는 그림책 인문학」강좌를 운영한다.배경규 관장은 인문․문화예술 강좌를 통해 책읽기와 글쓰기의 재미를 발견하여 자기 개발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하였으며 , 수강생 모집은 3월 2일부터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www.gbelib.kr/jc)또는 점촌도서관(☎550-3607)으로 문의하면 된다.
경기 소안초(학교장 장수열)는 13일 꿈누리관에서 행복한 제 12회 졸업식을 실시했다. 관악부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6년동안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꽃을 달아 드리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는 큰절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꿈을 영상에 띄우고 교장선생님께서 한 명 한 명씩 졸업장과 특기상 그리고 공로상을 수여하며 격려와 축하의 순서를 마련했다. 졸업 축하 영상을 보면서 내빈과 학부모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졸업생들이 자신들이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힘찬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보냈다. 꿈이 있어 행복한 소안초 제12회 졸업생들이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맹활약하길 기대해본다.
"날마다 새로워져라. 또 날마다 새로워져라." 우리는 누구나 새해를 맞이해작심(作心)을 한다. 이처럼 새해만 아니라 새학년이되면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계획으로 작심이 넘쳐난다.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가꾸는 독서와 몸을 굳세게 하는 운동이 항상 선두를 다툰다. 이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의 경우는 더욱 강렬한 작심을 할 것이다. 자신이 희망하여 시골학교이지만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3년 공부 끝나면 기어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좋은 내신 성적, 좋은 수능 점수를 목표로 하는 작심이 넘쳐나게 된다. 그런데 마음과 뜻대로 잘 안 된다. 그렇다고 슬퍼할 것은 없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흘이 못가 마음먹은 바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새 학년을맞이했다고 공부하는 일이 달라질 까닭이 없고 살아온 일상이 바뀔 이유도 없으니까 말이다. 학기초에 여러가지를 새롭게 요구하는 선생님들의 주문 속에 정신없이 보내게 될 학교생활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기본을 잘 익히고 중학교 때 스스로 계획을 잘 세워 실천한 사람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도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다. 왜? 중학교 습관이 몸에 베어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중학교 생활이 중요한 것이다. 현대물리학에 따르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란 삼차원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인간이 만들어낸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감각은 삼차원까지만 인지할 수 있다. 가령 백지에 점을 찍으면 우리는 곧바로 점의 출현을 알아차린다. 점의 흔적을 좇아 선을 인지하고, 선의 궤적을 좇아 면을 인지한다. 면의 변화를 좇아 입체를 인지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 어떻게 바뀌는지, 건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풍경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생생하게 인지할 수는 없다. 삼차원 공간에 아마도 시간이라고 불리는 무언가를 가미한 사차원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자신과 그 주변에서 일어난 변화를 순간순간 인지하는 것은 우리의 타고난 감각의 한계 때문에 도무지 불가능하다. 시간이란 절대적·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려고 창출한 인공 기관이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이를 통찰함으로써 상대성 이론을 정립해 현대물리학의 세계를 열었다. 하지만 시간이 우리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은 날마다 하루를 돌이켜 새날을 맞이하고 해마다 삶에 문턱을 세워 새로운 삶을 부리는 일이 가장 인간다운 행위임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게 없고 지난 달과 이달이 똑같으며 지난 해와 올해가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은 그저 어리석을 뿐이다. 새해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난 우리 삶의 변화를 성찰하기 위해서이고, 우리 삶에 새롭고 강렬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다. 고대의 현자들은 이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은나라 탕왕은 세수할 때마다 대야에 새긴 글을 읽었다. "날마다 새로워져라. 또 날마다 새로워져라." 새해를 기념해 작심하는 것은 전혀 헛되지 않는다. 사흘이라도 새롭게 살았다면 인생은 그만큼 변화했을 것이다. 사흘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한 인내다. 사흘을 유지한 나를 격려하기 바란다. 그리고 또 다시 사흘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사흘이 처음보다 더 중요하다. 두 번째 사흘을 넘기지 못하면 첫 번째 대단하게 생각하였던 사흘도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는 우수다.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다. 기온도 많이 올라갔고 초목이 싹트는 날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우수가 와야겠다. 좋은 선생님? 걱정하지 않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행복을 앗아가는 원인 중의 하나가 걱정 때문이다. 걱정이 없는 이는 없다. 하지만 걱정을 없애는 이는 지혜로운 이다. 지나간 일로 걱정하고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그야말로 걱정이 팔자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데 어떤이는 50%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고 40%는 과거에 대한 걱정이고 현재에 대한 걱정은 10%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걱정에서 해방되어야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가 있다.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학생들 중에는 가정의 어려움 때문에, 친구와 관계 때문에, 성적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를 볼 수가 있다. 이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 희망을 주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손난로가 생겼다. 이것을 최근에 가지게 되었는데 얼마나 따뜻하게 해 주는지 고맙기만 하다. 우리 선생님이 손난로와 같이 늘 절망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희망을 주면 좋을 것 같다.
[한국교육신문 조성철 기자] 6·13 교육감선거 예비후보자에 13일 40명이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선거전에 불이 붙었다. 거리 유세 등 일찌감치 얼굴알리기에 나선 이들의 선전이 선거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진다.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교육감 예비후보자 현황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40명이 등록해 2.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시·도 별로는 울산·전북·경북 각 6명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 4명, 대구·세종 각 3명, 경기·충북 각 2명, 나머지 시도 각 1명(제주는 0명)으로 집계됐다.후보자의 직업은 교수 등 교육자가 19명으로 가장 많았고, 교육·시민단체 활동가 등 기타가 11명, 무직 9명, 자영업 1명으로 분류됐다. 학력은 대학원 졸업이 29명으로 다수였고 대학원 수료 2명, 대졸 8명, 전문대졸 1명으로 나타났다.성별은 남자 35명, 여자 5명이며 연령대는 50세~59세 14명, 60세~69세 22명, 70세 이상 4명이었다. 후보자 중 9명은 국가보안법, 집시법 위반 등 전과기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등록한 교육감 예비후보는 선거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고 유급 선거사무원을 둘 수 있으며 선거운동용 명함 배부, 전자우편·문자메시지 전송, 선거운동용 어깨띠·후보자임을 나타내는 표지물 착용이 가능하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하거나 자신이 직접 통화하는 전화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선거구 내 가구 수의 10% 이내에서 홍보물 발송 등도 허용된다. 아울러 선거공약 등을 게재한 공약집 1종을 발간해 통상적인 방법으로 판매할 수 있다.▲예비후보자 등록 현황△서울=최명복 (사)한반도평화네트워크 이사장△부산=김성진 부산대 교수, 이요섭 전 부산전자공고 교장, 임해경 전 부산교육감, 함진홍 부산창의교육연구회 회장△대구=강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 김사열 경북대 교수, 이태열 전 대구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인천=고승의 덕신장학재단 이사장△광주=이정선 광주교대 교수△대전=성광진 대전교육연구소 소장△울산=구광렬 울산대 교수, 권오영 울산시의정회 부회장, 노옥희 작은도서관 대표, 박흥수 전 울산교육청 교육국장, 장평규 울산혁신교육연구소 대표, 정찬모 전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세종=송명석 세종교육연구소 소장, 정원희 세종시미래교육정책연구소 소장, 최태호 중부대 교수△경기=배종수 서울교대 명예교수, 임해규 전 17·18대 국회의원△강원=신경호 강원미래교육연구원 원장△충북=심의보 충청대 교수, 황신모 전 청주대 총장△충남=명노희 충남미래교육연구원 원장△전북=서거석 전 전북대 총장, 유광찬 전주교대 교수, 이미영 전북지역교육연구소 대표, 이재경 전 전주교육지원청 교육장,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 황호진 담쟁이교육포럼 이사장△전남=장석웅 전 전교조 위원장△경북=권전탁 전 경북교육청 교육정책국장, 김정수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 안상섭 경북교육연구소 이사장, 이경희 전 경북 포항교육지원청 교육장, 이찬교 전 전교조 경북지부장, 임종식 전 경북교육청 교육정책국장△경남=차재원 전 전교조 경남지부장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대표 이종배, 이하 국민모임)’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최근 진행한 무자격공모교장 관련 설문조사 과정에서 교사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불법으로 입수한 의혹을 제기하며 전교조를 13일 검찰에 고발했다. 이종배 국민모임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서부지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교조는 소속 교사가 아닌 교사들을 상대로도 설문조사를 했는데 번호를 입수하고 문자를 보내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의혹이 있다”며 “전교조 소속 이외 교사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수한 과정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6일 전교조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5일까지전국(17개 시·도) 유·초·중·고교에서 근무하는 교사2158명(전교조 소속은 22.5%)에게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5%가 무자격교장공모제 확대에 찬성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민모임은 발표내용에 교사들의 설문 응답률이 빠져 있는 점, 그리고 전교조 외 78%에 달하는 교사의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입수했는지에 대해 보도자료를 통해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전체 모집단 교사를 대상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제3조, 제16조, 제17조, 제71조 등 관련법에 위배될 혐의가 있다고 본다”면서“또한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제3자에게 넘기거나 이를 알고도 정보를 넘겨받았다면 징역5년 또는 50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모임은 또 이날 고발장에서 “전교조의 설문조사에는 1인이 여러 번 설문할 수 있도록 돼있고, 교사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할 수 있도록 했다”며이에 대한 수사도 촉구했다. 이와 함께 증빙자료가 담긴 USB메모리를 고발장에 동봉했다. 이 대표는 고발장 제출 후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설문조사가 목적을 위해 악용된다면 여론 형성이 아닌 조작에 해당한다”며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
설날이 코앞입니다. 시골의 고모님께서 떡국을 몇 말 하셨다며 한 자루를 보내주셨습니다. 흰쌀떡국에 고명을 얹어 먹으니 설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확 다가섭니다. 저희 4형제가 모두 모이는 설날에는 식구들이 이십 여명이 넘습니다. 설거지는 한 번에 산더미처럼 나옵니다. 돌아서면 밥을 해야 하고 그 사이에 차례에 쓸 부침개도 부치고 나물과 탕을 준비하는 명절은 바쁘고 부산스럽습니다. 명절이 되니 모처럼 얼굴보고 이야기도 하고 밥도 함께 먹으니 반갑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이를 낳는 것과 육아의 대부분은 여성의 몫이고 집안일도 엄마의 일입니다. 명절은 여성의 노동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닐까요. 독서모임 밴드에 한 편의 시가 올라왔습니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었습니다. ‘성’에 관한 담론만큼은 발언하는 사람이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단의 성추행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그녀의 발언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설왕설래하였습니다. 용감한 여성들이 자신이 당했던 그래서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하는 성추행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가 당했던 일이 다른 사람들은 겪지 말아야하고 우리의 아이들은 겪지 말아야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에 대해 다룬 한 편의 책을 읽었습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입니다. 이 책은 지난 달 독서모임에서 한 페이지씩 돌아가면서 낭독하였습니다. 소재와 내용의 전개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를 격하게 공감하게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82년생이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는 경험의 집합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씨와 그녀의 어머니 오미숙씨의 삶 속에서 여성이라는 굴레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희생으로 버티어온 어머니 오미숙씨의 삶과 우리시대의 삼십 대 여성 김지영씨의 삶은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은 듯하였습니다. 김지영 씨는 얼굴형도 예쁘고 콧날도 날렵하니까 쌍꺼풀 수술만 하면 되겠다며 외모에 대한 칭찬인지 충고인지도 계속 늘어놓았다. 남자 친구가 있느냐고 묻더니 원래 골키퍼가 있어야 골 넣을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둥 웃기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했다. 무엇보다 계속 술을 권했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이제 그만 마시겠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김지영 씨는 대답을 속으로 삼키며 눈치껏 빈 컵과 냉면 그릇에 술을 쏟아 버렸다. p.116 며칠 째 저를 괴롭히던 감기 때문에 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일들이 늘 힘들고 어렵습니다. 글쓰기도 책읽기도 공부도 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힘듦이 저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겠지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을 휘감은 성추행 문제들도 이번의 일을 계기로 여성들은 서로 연대하여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고, 남자들은 내 동생 내 딸이 이런 일을 당하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생각해야겠지요. 우리들은 어머니가 여성이고 우리들이 누이도 여성이고 우리의 딸도 여성입니다. 세상의 반이 여성입니다. 함께 가야 오래가고 멀리 갑니다. 힘들지 않고 즐거운 명절이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그런 날 되기를 기도합니다. 즐거운 설날 되십시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대학을 졸업하고 1인 창업으로 미니멀 라이프 프리랜서 준비한다는 아들. 자칭 미니멀리스트다. 온 가족이 함께 실천하는 미니멀 라이프 사례를 만들겠다고 하여 부모와 긴 토론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살림을 다시 합치는 문제와 부모 자식간의 가치관,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생각 차이가 커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아들은 부모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한다. 부모의 질문에그동안 공부하고 실천한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답변한다. 그 덕분에 부모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조금은 접근하게 되었다. 우리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아들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은퇴 2년 만에 책장을 정리한다. 몇 년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이 먼지가 쌓여 책장에 장식용으로 꽂혀 있다. 책장 일곱 곳을 정리하니 열 네 개의 보따리가 나온다. 인생후반기 새 출발의 마음으로 집안을 정리하였다. 다시는 보지 않을 책을 자가용 트렁크에 가득 채워 동네 중고서점에 가니 2만원을 쳐준다. 정들었던 책인데 너무 아깝다. 비교적 신간서적이라고 생각하는 책을 알라딘 중고서적에 판매하니 64권에 8만 원이 조금 넘는다. 3차 정리로 나온 책을 자가용 트렁크, 뒷좌석, 조수석까지 가득 채워 고물상에 가니 5만원을 준다.지식으로서 활용 가능할 때의 책의 가치와 폐지로서의 가치는 천양지차다. 미니멀 라이프는 부부가 힘을 합쳐야 한다. 아내도 방학을 이용하여 날을 잡아 짐정리를 한다. 자가용 트렁크와 뒷좌석에 책을 가득 채우고 입지 않는 옷도 정리하니 몇 보따리가 나온다. 고물상에 가니 책과 옷을 별도로 무게를 잰다. 고물값은 4만원 가까이 나왔다. 우리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공간만 차지하는 보지 않는 책을, 입지 않는 옷을 그동안 끌어안고 산 것을 정리한 것에 의의를 둔다. 여기서 나의 깨달음 하나. 아! 나는 그동안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나의 지식으로 착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두 학교 교장 때에도 교장실 책장을 교육 관련 책으로 가득 채웠다. 이웃 학교를 방문하면교장실의 텅 빈 책꽂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그 학교 교장을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교장실에 책이 꽂혀 있으면 언젠가는 책을 읽는다고 보았다. 또 교장이 책을 읽든지 읽지 않든지 간에 교장실은 책 향기가 풍겨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이것은 아마도 나 자신을 교육계 지식인으로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04년부터 한교닷컴 리포터를 하면서 교육에 관한 글을 쓰고 교감 때에 ‘연(鳶)은 날고 싶다’를 펴냈다. 교장 때에는 경인인보, 중부일보, 경기신문에 월 1회 교육칼럼을 게재하였다. 더 나아가 교육칼럼집을 추가로 네 권 펴내 총 다섯 권의 저자가 되었다. 한국교육신문에도 내 글이 종종 나화 자칭 교육계 오피니언 리더라고 자부하고 살았다. 은퇴하고 나니 현직에서의 나의 착각이, 오만함이 부끄럽고 부질없기만 하다. 나는 39년간교육계라는 우물 안 개구리고 살아온 것이다. 은퇴생활을 하면서 과거는 가능한 한 잊고 현재와 미래를 중히 여기려 한다. 미니멀 라이프의 일환으로 버리기와 비우기 실천하니 책장에 빈 공간이 생긴다. 여유가 생긴 것이다. 마음까지 가벼워진다. 미니멀 라이프는 ‘버리기와 비우기’부터 실천하려 한다. 더 나아가 마음 비우기까지 하려 한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서울등명초(교장 문진철)는 전교생 130여명의 소규모 학교인데다 지역사회 여건상 사회적 배려와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이 많다. 수년 전부터 교육부 어깨동무학교를 통해 학생 스스로 해결 가능한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펴는 이유다. 이 학교는 ‘더불어 행복한 등명 어깨동무’란 명칭으로 전 교직원 사제멘토링, 또래상담반 동아리 운영, 중간놀이를 활용한 전래놀이 또래활동, 전교 학생자치회 운영 등을 통해 학교폭력 피해를 크게 줄여나가고 있다. 학교폭력 피해응답률 학생이 2016년 6명에서 2017년 1명으로 감소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전 교직원 사제멘토링’은 문진철 교장의 절묘한 한 수였다. 소규모학교 특성상 교원 수가 적어 업무과중을 호소하던 차에 행정실 직원은 물론 학교 보안관까지 전 직원에게 멘토 역할을 분담한 것이다. 그랬더니 멘토링 ‘상시 체제’가 구축되고 직원과 서먹서먹하던 아이들이 대화를 시작하는 등 한층 화목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 문 교장은 “교사뿐 아니라 직원 모두가 학생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며 “학교 보안관도 사제멘토링을 통해 아이들과 안부를 주고받다보니 전교생 모두와 친해졌다”고 밝혔다. 보건교사인 김용란 교사가 학교폭력예방 차원에서 ‘또래상담반’을 운영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김 교사는 2016학년도부터 5∼6학년 또래상담반을 맡아 학교폭력예방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정현정 학교생활부장은 “또래상담 기본과정만 이수한 나와 달리 김 선생님은 심화과정까지 이수한 적임자라 요청 드렸는데 잘 도와줘서 좋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각 담임들로부터 친구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배려하는 아이들을 또래 상담자로 키우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개발·보급하고 있는 ‘솔리언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도입해 대화하는 친구 되기, 도움 되는 친구 되기, 학교폭력 대처 등 기본교육을 1학기 8회 이수시켰다. 2학기에는 8회 동안 직접 활동한 결과를 나누고 배워가는 방식이다. 이들 학생은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갈등을 중재하는 활동을 한다. 김 교사는 “초등 단계에서는 깊은 상담을 나누기보다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역할 정도로 접근하고 있다”며 “과학실 함께 가기, 간식 함께 먹기 등 활동을 통해 반에서 힘들었던 아이들이 밝은 모습을 찾아가면 상담자도 보람을 느껴 서로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교 학생자치회 SA(Student Assembly)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소규모학교 특성상 3학년 이상 학생들이 모두 모이기가 용이해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찾아 고쳐나가게 하고 있다. 학생들은 SA를 통해 ‘욕설 없는 주간’, ‘바른말 고운말 쓰기 모범어린이 선발’, ‘학교폭력예방 로고송 발표회’, ‘UCC 발표회’ 등을 운영하며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이외에도 친구에게 손 편지를 써 전달하는 사랑의 우체통, 학교 주변의 숲을 활용한 체험, 1인 1야생화 기르기 등 감성을 자극하는 프로그램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2012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전교생 국악교육, 관현악단 운영 등도 꾸준히 효과를 내고 있다. 문 교장은 “사랑의 우체통은 교직원간, 학생과 교원 간 편지 쓰기로 확대하고 있다”며 “소규모학교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들이 많지만 큰 학교에서도 일반화시킬 만한 요소들은 충분하다. SA의 경우 학년별로 개최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또래상담의 경우 관련 프로그램이 없어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만큼 교총, 교육청 단위에서 개설하면 활용하기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1학년도 대학입학수능시험 국어 과목에서 문법 분야 출제가 안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15 개정교육과정이 2018학년도 고1부터 시작하고, 이들이 시험을 보는 2021학년도에 현재 수능체제로 실시하면 시험 범위에 대한 조절 때문이다.2011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과목은 국어Ⅰ, 국어Ⅱ, 화법과작문, 독서와문법, 문학, 고전이었다. 이 중에서 시험 범위에 제시된 과목이 ‘화법과작문, 독서와문법, 문학’이었다. 2015 개정교육과정은 과목이 달라졌다. ‘국어, 화법과작문, 독서, 언어와매체, 문학’ 그리고 진로 선택 과목으로 ‘실용 국어, 심화 국어, 고전 읽기’이 있다. 이 중에 진로 선택 과목은 시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 선택이 늘었다. 교육부는 2021 수능 시험에서도 세 과목을 유지해야 하는 잣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어와매체’ 과목을 제외하려는 의도를 갖고 설문 조사를 했다.‘언어와매체’ 과목은 과거의 ‘문법’ 과목이다. 과목명에서의 ‘언어’는 사실상 ‘문법’을 의미한다. 이 과목이 형식상으로는 신설과목이지만, 기존 ‘독서와 문법’에서 문법 파트가 분리되어 나온 것이다.2015 개정 교육과정의 특징은 인문학적 소양 향상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독서 교육을 통해 미래 핵심 역량을 키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취지에 따라 독서 교육을 강화하고, 매체 교육에 무게를 뒀다. 이 과정에서 ‘독서’와 ‘언와매체’라는 과목을 분리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4과목으로 늘어난 것은 시대의 흐름과 교육의 필요성을 담은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한 수용 없이 수능 시험으로 4과목은 안 되고 3과목만 된다는 접근은 교육적 판단이 없는 단순한 기계적 판단이다.교육부는 이런 문제가 있는데도 과목 수 선택이라는 경우의 수만 만들어 놓고,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더욱 공문에 ‘언어와매체’ 과목을 제외하는 예시로 두면서 배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언어와매체’는 일반 선택 과목이다. 따라서 수능 시험 범위에 배제될 이유가 없다. 만약 수능 시험 과목에서 배제되면 학교의 정상적인 수업도 어렵다. 당연히 수능 과목이 아니 ‘언어와매체’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새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국어에서는 문법 파트의 일부였던 음운의 변동, 문법요소 등이 고등학교 과정으로 올라갔다. 학생들이 학습에 어려움을 겪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외래어표기법 등과 같은 표기법 파트가 삭제되었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문법 교육은 더욱 중요해졌다.문법 지식은 정확한 언어 사용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문법 지식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차원 높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물론 공통 과목인 국어 교과에 문법 분야가 있다. 하지만 여기는 음운 변동과 한글맞춤법 원리와 내용 등 기초적인 분야만 다루고 있다. ‘언어와매체’에서 다루는 음운의 체계와 변동, 문장의 짜임과 활용 등 국어 능력의 기저가 되는 보다 심층적인 문법 지식을 배워야 한다.국어 교과는 다른 교과와 구별되는 특수성이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과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빼앗기면서도 우리말과 글을 지켜왔다. 한국어는 우리를 한국인답게 하는 언어이면서 자랑스러운 문화다. 고등학교에서 한글이나 한국어 원리에 대한 교육은 사명감을 갖고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현재 우리 사회는 모국어 사용 현상이 위기에 처해 있다. 어린 세대들이 국어생활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올바른 국어의 구조와 운용 원리를 바탕으로 생활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새 시대는 소통의 가치도 중요하다. 국어생활에 필요한 규칙과 규범을 익히고, 수준 높은 언어로 학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문법 교육을 강화를 통해 창의적이고 풍부한 국어사용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교육부는 기계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미래 지향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이번 문제의 초점은 4과목 3과목도 학습 부담을 줄이는 것도 아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 국어 시험 범위에 문법을 포함하는 전제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충남 서령고 제62회 졸업식이 13일 오전 10시 교내 송파수련관에서 실시되었다. 이번 졸업식은 졸업문화개선방침에 따라 간략하게 진행되었으며 심관수 이사장님을 비롯하여 윤주옥 운영위원장과 학생, 학부모 및 내외귀빈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31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번 졸업식에서 교장선생님은 축사를 통해 3년간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게 찬사와 고마움을 표했으며 불철주야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하신 학부모님들께도 노고를 치하했다. 또한 학교발전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동문 및 어머니회원님들께 감사를 표했다. 이어 심관수 이사장님께서는 졸업식 축사에서 앞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며 성장하여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기둥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밖에도 이완섭 시장을 비롯한 많은 내외귀빈들께서 졸업을 맞이한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보냈다. 특히 이번 졸업식은 예년과 달리 중간에 재학생들의 축하 연주와 노래가 공연되어 졸업생들은 물론이고 참석한 내외귀빈들의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졸업생 모두 훌륭한 인재가 되어 모교와 나라를 빛내는 일꾼이 되기를 간절히 빈다.
"여러분, 현대 문학에 대해 이해할 수 있지요?" "있지요? 있지요? 하하하" 2000년 12월 중학교 3학년 교실.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 그랬을까? 수업 자체가 힘들 정도로 소란스러운 국어시간이었다. 유난히 끝부분을 강조해서 높여 말하는 선생님의 말끝을 장난스럽게 따라하는 게 그 때는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시간 45분 동안 쉼 없이 열정적으로 현대 문학을 가르치는 김미은(가명) 국어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나는 끊임없이 선생님의 말투를 따라하고 웃으면서 수업을 방해했다. 철없는 남학생의 장난에도 묵묵히 인내하면서 수업에 최선을 다했던 선생님이 그날만큼은 참을 수 없으셨나 보다. "야, 박현진! 너 그만 안 해!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네, 가면 되잖아요!" 반 친구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게 대답은 했지만, 선생님의 무서운 눈빛과 날카로운 음성에 나의 속마음은 긴장되고 무서웠다. 그 순간부터 남은 수업의 약 10분 정도는 교실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고, 나는 그 수업이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어김없이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교무실로 향하셨다. 나를 울린 한마디 : 현진아, 요즘 너 무슨 일 있는 거 맞지? 교무실 맨 끝 쪽에 있는 선생님의 자리로 가는 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멀리서 보이는 선생님의 표정은 역시나 무서웠고,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앉아 봐. 현진아, 담임 선생님한테 말해두었으니까 오늘은 선생님이랑 얘기 좀 길게 해 보자." 내 우려와는 달리 선생님의 말투와 표정은 따뜻했다. 마치 심한 장난을 친 아들에게 혼을 내고 미안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나는 갑자기 울컥해졌다. "현진아, 요즘 너 무슨 일 있는 거 맞지? 요즘 수업 시간에 아예 안 올 때도 많고, 공부는커녕 일부러 선생님 힘들게 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일이야?" 혼이 날줄만 알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나를 걱정해주시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결국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집에서, 교실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힘들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실, 2000년 중학교 3학년 한 해는 나에게는 정말 큰 풍파를 겪은 해였다. 시작은 좋았다. 3월에는 학급의 반장이 되었고, 3월 말에는 전교부회장선거에 출마에 전교부회장에도 당선되었다. 나는 학급에서 친구도 많고, 유머가 있는 반장이었고, 선생님들의 칭찬을 먹고 사는 밝고 명랑한 제자였다. 하지만, 찬란하고 즐겁던 학창생활은 길게 가지 못했다. 그 해 5월 나의 행복은 갑자기 산산조각 흩어져 버렸다. 우리 집의 가장이자 든든한 내 편이었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게 된 것이었다. 1997년 시작된 IMF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경제위기로 인해 작은 건설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가 나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 이후로 채무와 노동,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어깨의 짐과 함께 사투를 버리다가 지쳐 돌아가시게 된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사춘기에 접어든 남학생에게 이 사건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가족인 어머니와 한 살 터울인 누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겨 놓은 짐을 한꺼번에 다 떠맡게 되면서 그 짐의 무게에 지쳐만 갔다. 우리 세 가족은 누구도 집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고, 각자 삶에 지쳐 점점 방황의 길로 빠져들고 있었다. 학교는 좋았지만 점심시간이 싫었다 결국, 그나마 나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곳은 학교 밖에 없었다. 그곳엔 내 상황을 잘 모르고 편견 없이 대해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나를 믿어주는 선생님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의 문제가 나를 힘들게 했다.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요즘 학교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이 점심시간에 급식을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가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점심시간은 즐거웠다. 따뜻한 보온 도시락에 내가 좋아하는 돈까스 반찬. 김치찌개까지. 남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나의 점심시간은 고통이었다.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줄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숟가락과 젓가락만 싸들고 학교에 갔다. 처음 며칠은 배가 아파서 안 싸왔다고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그 후 며칠은 아침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안 싸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에 지쳐 다음 며칠은 친구들의 도시락을 조금씩 나눠 먹었다(어떤 친구 입장에선 뺏어먹었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이 상황이 계속 되자 나는 친구들에게 더 이상 핑계를 대기 싫어졌고, 학교 자체가 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집에서 나와 아예 학교를 안 가고 어디 공원에서 놀거나, 점심시간이 끝나서야 학교에 갔다. 국어 시간은 일주일에 여러 번 들어서 오전에 수업이 있는 경우도 있고, 오후에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국어 시간에 내가 자꾸 안 보이니 선생님 입장에선 의아하게 생각한 게 당연했던 것이다. 나는 국어 선생님에게 나의 힘든 상황을 가감없이 다 이야기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세 가족 모두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 것. 누나와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며칠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것. 도시락을 싸올 수 없어서 친구들을 보기 힘들어 졌고, 그러다 보니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학교생활도 싫어져서 선생님을 화나게 하고, 자꾸 비뚤어져서 학교에도 자주 안 나왔다는 것 등등. 나의 말을 듣는 선생님은 잠깐의 한눈도 팔지 않고 집중해서 들어주셨다. 내가선생과 상담한시간은 30분 정도였는데, 나의 눈물 반. 콧물 반. 선생님의 눈물 약간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길게 선생님과 이야기해 본 건 처음이었다. 느낌이 묘하면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상담이 끝나고 인사를 하고 가려는 데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현진아, 내일은 학교 몇 시에 올 거야?" "오늘 저녁에 알바 가서 너무 피곤해요. 내일은 1시쯤에 올 것 같아요." "그러지 말고 내일 조금만 일찍 와. 혹시 8시쯤 학교에 와서 선생님한테 잠깐 왔다 가지 않을래?" "내일 일어날 수 있으면 올게요." 나는 어린 마음에 선생님이 나를 감시하려는 하는구나 하고, 대답을 얼버무리며 교무실에서 나와 교실로 갔다. 학교를 마치고 저녁에 쇼핑타워에 있는 음식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12시까지 한 후에 집에 돌아와 잠을 자려는 데 선생님이 한 말이 자꾸 떠올랐다. '내일은 내 말을 열심히 들어주신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딱 하루만 일찍 가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선생님의 도시락 다음 날 아침, 나는 8시 정각에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 저 왔어요! 됐죠? 교실 갈게요." "현진아! 잠깐만!" 가려던 나를 선생님이 붙잡았다. 선생님은 책상 아래에서 정성스럽게 싸여 있는 도시락을 나에게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그 도시락 아래에 이름 쓰는 란에는 '박현진'이라는 이름까지 쓰여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고 흥분해서 감사인사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도시락을 열어 보았다. 햄이 송송 들어가 있는 계란말이와 돼지고기 볶음! 1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아름다운 반찬들이었다. "선생님이 집에서 가족 꺼 싸면서 같이 준비한 거야. 이거 맛있게 먹고, 집에 가기 전에 선생님한테 다 먹고 가지고 와. 대신 절대 남기면 안 돼!" 나는 나도 모르게 또 울컥 해서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대답도 안하고 도시락을 안아 교무실을 뛰쳐 나왔다. 그 날은 정말 오랜만에 점심시간이 기다려졌고, 나는 친구들과 어느 때보다도 밝게 웃으며 맛있는 도시락을 먹으며 행복한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 날 이 후, 선생님은 겨울방학이 될 때까지 보름 정도의 시간을 나를 위해 도시락을 싸주셨다. 나는 매일 아침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이 싸 주신 도시락을 받아서 쌀 한 톨,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운 다음집에 가기 전에 선생님께 다시 드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 나는 선생님 덕분에 남은 학창시철을 즐겁게 학교생활을해나갈 수 있었고,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선생님을 생각하며 교사의 꿈을키우며 공부를 하였고,대학 초등교육과에 입학해서 2008년 임용고사 시험을 치러 당당히 합격해서 교사가 되었다. 나는 이 소식을 김미은 선생님에게 꼭 알리고 싶었다. 교육청의 '스승찾기'를 통해 겨우 겨우 연락에 성공해서 직접 김미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고, 선생님은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셨다. 중학교 때 김미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짓궂게 장난치고 버릇없이 구는 학생에게 손을 내밀어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 주고 아침 일찍 제자를 생각해서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 주신 김미은 선생님. 유난히 추운 올 겨울, 따뜻했던 선생님과 함께한 학창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도 도움이 필요한 제자에게 손을 내밀줄 알고, 따뜻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도움을 주는 선생님 같은 교사가 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