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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교육신문 조성철 기자]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교육자치를 헌법으로 보장하자는 개헌안이 제시됐다. 국회, 지자체 일각에서 제기되는 일반자치와의 통합 주장을 종식시키자는 의미다. 대한교육법학회와 한국교육개발원은 8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교육 분야 개헌 과제와 방향 탐색’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교육개발원 황준성 학교교육연구실장은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델파이 조사를 통해 현행 헌법중 교육에 대해 규정한 제31조 6개 조항 별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중 개헌 요구가 가장 많았던 조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한 제4항이었다. 전문가들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는 불확실한 문구가 다툼을 유발하고 오히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제한, 침해하는 근거로 활용된다고 우려했다. 또 헌재가 헌법상 제도적 보장의 하나로 인정하는 지방교육자치를 제31조에 추가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했다. 실제로 헌재는 ‘지방교육자치제도는 중앙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지역자치(=지방자치)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보장의 문화자치(=교육자치)라고 하는 이중의 자치를 핵심으로 하면서 지방분권 및 일반행정으로부터 독립을 핵심 원칙으로 한다’(헌재 2000.3.30. 99헌바113)고 한데 이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의 보장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31조 제4항을 기반으로 하는 헌법상 제도보장으로 국회제정법률로도 그 본질을 침해할 수 없다’(헌재 2002.3.28. 2000 헌마283·778(병합))고 한 바 있다. 황 실장은 “이런 데도 현행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12조에는 ‘국가는 교육자치와 지방자치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며 “다툼을 종식시킨다는 차원에서 헌법에 지방교육자치제도를 직접 명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제4항을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지방교육자치제도는 법률로 보장한다’로 규정할 것을 제안했다. 기존에 포함했던 대학의 자율성은 제22조 제1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에 삽입해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지며, 대학의 자치는 법률로 보장된다’로 바꾸는 방안을 냈다. 나머지 조항들은 국민의 능동적 학습권과 교육에 대한 지자체의 책무성 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다. 먼저 제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모든 국민은 학습의 자유를 가지며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피동적 의미의 교육이 아닌 적극적 의미의 ‘학습’을 강조하고, 교육권과 학습권을 명확히 구분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의견(57%)을 반영했다. 제2항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에 대해서는 현행 유지 의견을 냈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제3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며, 무상의 범위와 내용은 법률로 정한다’는 내용으로 정리했다. 전문가들은 교육의 책임주체로 국가와 함께 지자체를 명시하고, 무상의 범위·내용에 있어 다툼이 있는 만큼 법률로 구체화하는데 합의했다. 제5항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으로, 제6항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에는 ‘교육과정’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다듬었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전교생 46명뿐인 시골학교가 소프트웨어(SW)교육 프로젝트 학습을 통해 ‘미세먼지 신호등’을 만들고, 이를 인근 양로원 등에 나눔 활동까지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6일 경기 화성 장명초(교장 김선배)에서 직접 확인한 미세먼지 신호등은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한 모습을 자랑했다. 아두이노 회로와 3D프린터로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꺼져있던 신호등을 전원에 연결하자마자 총 네 칸의 전구 중 왼쪽에서 두 번째 녹색 불이 켜졌다. 미세먼지 ‘보통’을 알리는 신호였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한 결과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이를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명초 SW동아리 ‘소셜메이커스(Social Makers)’ 소속 9명의 아이들이다. 5학년 2명, 6학년 7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자신이 개발한 신호등을 여러 개 만들어 병설유치원, 인근 양로원 등에 설치하고 직접 사용법을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까지 연다. 아이들은 “양로원 어르신들이 가끔 학교에서 산책하시는데 미세먼지가 나쁜 날에도 나오시는 모습이 안타까워 꼭 설치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선생님들이 SW교육 과정에서 사회공헌을 강조해 더욱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들이 미세먼지 신호등을 개발한 프로젝트 학습 과정은 올해 한국과학창의재단 창의우수학습사례에도 이름을 올렸다. 2015년부터 SW 선진학교로 선정돼 전교생을 상대로 꾸준히 관련 교육을 진행한 학교는 이번 프로젝트 외에도 잇따라 수상소식을 전하고 있다. 전교생 50명이 채 되지 않는 시골학교에서 이 같은 결실을 맺은 데에는 방과 후, 주말도 반납한 선생님들의 열정 덕이었다. 신태섭(32) 연구부장이 이끄는 동아리는 올해 세 차례 프로젝트를 수행해 모두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화장실 청결 문제 해결을 다룬 1차 프로젝트는 SW교육 수기 공모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큐로학교와 화상 원격 회의 끝에 산악사고 문제를 드론으로 해결한 2차 프로젝트는 국제수업 교류 우수사례로 교육감상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아이들은 1, 2차 프로젝트의 시행착오를 보완해 보다 심도 있는 3차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미세먼지 신호등’을 만들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올해 초등교로는 유일하게 ‘삼성전자 주니어 SW 아카데미 미래교육 모델학교’에 선정돼 수천만 원의 지원금과 전문 컨설팅을 받는 행운도 누렸다. 신 부장은 “방과 후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원에 가는 대도시와 많이 다른 교육환경이다 보니 SW교육으로 역량을 키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도학교에 지원했다”며 “선정된 이후 다행히 반응이 좋아 아이들이 잘 따라줬고 그 결과 3년차에 수준 높은 프로젝트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신 부장은 3년 간 SW교육을 단계별로 진행하면서 거의 매일 싸우던 아이들이 서로 손을 먼저 내미는 인성을 기르게 되고, 미래 꿈을 갖게 된 것을 큰 성과로 봤다. 최다은(6학년) 양은 “우리의 프로젝트가 실생활에 도움이 될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보람찼다”고 했고, 최현서(6학년) 군은 “의사가 꿈이었지만 SW를 알게 된 후 로봇공학자의 꿈도 갖게 됐다. 어른이 되면 수술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김선배 교장의 관심과 지원도 한 몫 했다. 김 교장은 그동안 교장단 회의, 연수 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미래교육에 관심을 가져왔고, 신 부장 등 젊은 교사를 주축으로 시도한 SW교육 등 창의융합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교장은 “교사들의 열정 덕분에 좋은 모델을 만들게 됐고 앞으로도 아낌없이 지지할 것”이라면서 “보다 많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서 꿈을 길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파주교총(회장 우종수)은 최근 경기도 파주시 목동동 소재 운정365정형외과의원(원장 이동봉)과 회원 복지를 위해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에 따르면 파주교총 회원, 또는 회원직을 유지한 채 퇴직한 이들에게도 국가 부담 보험료를 제외한 병원비 가운데 20%를 감산하는 혜택을 부여한다. 회원 여부는 첫 방문 시 확인하고, 이후 방문 때는 확인절차 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교총 교원복지국은 회원 500명을 대상으로 22일 오후 7시 전국 5개 권역에서 영화 ‘원더’ 시사회를 진행한다. 교총 복지플러스에서 응모하면 추첨을 통해 1인 2매 티켓을 증정한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고전(사진) 제주대 교육대 교수가 대한교육법학회 학술상(一峰 정태수 학술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8일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열린 ‘2017 대한교육법학회 연차대회’와 함께 진행됐다. 수상 논문은 ‘한국의 지방교육자치 입법정신에 관한 교육법학적 논의’(2017.3)다. 고 교수는 1997년 박사학위 취득 이후 20여 년 간 ‘교육법학연구’ 학술지에 26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등 업적을 쌓아왔다. 또한 일본·중국·대만 등 아시아교육법연구회 등 국제학술 활동도 활발히 펼쳐왔다. 이 상은 정태수(86) 초대 학회장이 2016년 12월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5000만원의 사재를 헌정, 제정된 것으로 국내 유일의 교육법학 분야 학술상이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공병영(사진) 충북도립대학 제6대 총장은 5일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나섰다. 임기는 2017년 11월 30일부터 2021년 11월 29일까지다. 공 총장은 취임사에서 “소통과 혁신을 바탕으로 온 힘을 쏟아 작지만 강한대학으로 키우겠다”며 “교육부의 국정과제인 공영형 전문대 육성에 적극 동참해 직업교육과 평생교육 거점대학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공 총장은 부산 출신으로 동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대통령비서실 행정관과 교육부 지방교육혁신과장, 평가지원과장, 서울대 시설관리국장, 장관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근대화의 과정에서 외국의 교육제도를 모방한 것이 많다. 특히 해방 후는 미국식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미국은 나라가 크고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는 만큼, 미국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엄마가 됐지만 약에 찌들어 정부 보조로 먹고 살며 아이는 계획없이 낳지만 교육에는 전혀 무관심한 부모가 있는가 하면, 신념이나 종교, 경제 상황에 따라 아이를 집에서 교육시키는 홈스쿨링 부모도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의 삶의 긴 여정에는 언젠가는 실패가 따른다. 실패없는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발명왕 에디슨은 자신에게 다가온 실패에 현명하게 대처한 사람 중 하나였다. 어느 날 화재가 갑자기 발생해 실험실 안에는 각종 화학약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불길이 한번 치솟자 걷잡을 수 없게 됐다. 모든 사람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에디슨은 철저하게 소멸돼가는 자신의 평생의 성과를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에디슨은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게 변해버린 폐허 앞에서 말했다. “내 모든 실패가 날아가 버렸다. 다시 시작하게 해준 신이여, 감사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재가 일어나고 3주 만에 에디슨은 그의 첫 번째 축음기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때 그에 나이가 67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기회로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낸 일화는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역경을 이겨내는 힘은 가르쳐서 되는 능력이 아니다. 이런 성격은 아동기의 가정 환경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한마디로 어려움과 실패를 어떻게 대면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형성된다. 따라서 아이를 세심하게 돌보되 과보호 하면 배워야 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는 쉬운 일 또한 아니다. 내 자식만큼은 편한 길을 가게 하겠다는 부모의 여린 마음 때문이다. 학교 가는 길조차도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자동차로 실어 나르는 모습은 우리 나라만의 모습은 아닐런지! 우리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패를 경험해도 좋다는 환경을 만드는 여유이다. 그래서실패를 맛보고 그것을 극복할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 아이와 부모를 위하는 길이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고 교회 마다 반짝이는 불빛이 아름답습니다. 저 역시 송년회를 한 곳에서 하였습니다. 벗들과 경주에서 모여 맛난 것을 먹고 술도 한 잔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보냈습니다. 그 중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지인은 무척 얼굴이 상해 있었습니다. 20년 사업을 하면서 현재가 가장 힘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회사에서 보유하였던 땅과 재산을 처분하여 겨우 운영이 되었다고 하며, 앞으로 더 힘들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지 아니면 자기만 바라보는 회사식구들을 위해 버텨보아야 하는지 짙은 고민이 어려 있었습니다. 저 역시 지난 한 해를 아직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우선 차분하게 돌아볼 틈이 없이 방학 전까지 행사들로 빼곡하고 개인적인 공부도 끝자락에 있어서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2017년의 저와 2018년의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2017년의 부채와 자금을 그대로 연계되어 다시 시작하는 나이겠지요. 계속해서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장석주가 쓴 『들뢰즈, 김훈, 카프카』입니다. 이 책은 질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바탕으로 한국문학의 작품들에 대한 평론이 들어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저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넘기 위해 여름 방학을 꼬박 그 책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고원은 높고 깊어서 힘이 들었습니다. 마음 속에서 간질간질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 이렇게 저를 괴롭히면서 놓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석주는 이 책을 여러 번에 거쳐 읽고 나름의 방향을 잡았다고 합니다. 『들뢰즈, 김훈, 카프카』 속에서 그런 들뢰즈의 이론들이 주루룩 밀려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유목론, 탈지층화, 리좀, 전쟁기계 등의 단어들이 저에게 접속을 요구하고 저를 탈주시킵니다. 즐겁고 행복하면서 질투가 올라옵니다. 새로운 책을 쓴다는 것은 세계를 종과 횡으로 횡단하는 선들, 경도와 위도, 그 양태를 꿰뚫고 나아가며 유동하는 선을 찾는 일이다. 좌표, 역학, 정향들의 체계들은 항상 창조적인 탈영토화가 아니라 초월 지리들을 우선적으로 머금고 있다. 사유는 그 의미화의 지층에서 올라오는 진동과 압력을 받는다. 모든 방향으로 열린 접속을 찾는다면 우리 사유를 ~되기를 향해 열린 절대적 극한으로 몰아가야 한다. /P13 어둠이 최고조이 이르는 동지가 멀지 않았습니다. 한 해의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우리들은 새 날을 열기 위해 버텨야 합니다. 모두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지층을 향해 새롭게 접속하시는 12월 되십시오. 『들뢰즈, 김훈, 카프카』, 장석주 지음, 작가정신, 민음사, 2006
경기 소안초 조원표 교사는 함께하는 부천청렴문화 조성 및 확산을 위한 2017년도 청렴작품 공모전에서 에세이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본 공모전은 포스터, 표어(캘리그라피 포함), 에세이 부문으로 시행됐고 학생 및 교직원을 대상으로 했다. 조 교사는 커피 한 잔도 안되나요?라는 제목의 글로 우수상을 받았는데 오랜 교직생활의 경험과 청탁금지법 시행후 변화된 교직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주제를 다뤘다.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이해 모든 공직자들이 스스로 청렴을 실천해 본인도 떳떳하고 국민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에도 흥행실패 대작 이야기다. 이름하여 흥행실패 대작 2탄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흥행부진’이란 글에서 이미 말한 바 있듯 ‘남한산성’은 10월 3일 추석특선 영화로 개봉했다. 개봉 5일째까지만 해도 ‘역대 추석 연휴에 개봉한 영화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였지만, 이후 ‘범죄도시’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남한산성’의 최종 관객 수는 384만 8446명(12월 10일 기준)이다. 순제작비만 155억 원으로 알려졌으니 손익분기점은 대략 500만 명쯤이다. 관객 수와 손익분기점만 단순 비교하면 ‘군함도’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의 흥행실패라 할 수 있다. 이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않았던 결과이다. ‘군함도’가 여름 최고 기대작이었듯 ‘남한산성’이 추석 대목 최강자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남한산성’이 대작 사극이란 점이다. 전통적으로 추석 대목 강자는 사극이란 통계가 작용했지 싶다. 다음은 감독과 배우들이다. 황동혁은 ‘도가니’(2011)⋅‘수상한 그녀’(2014)의 히트로 흥행감독의 반열에 든 감독이다. 배우는 이병헌(최명길 역)⋅김윤석(김상헌 역)⋅박해일(인조 역)⋅고수(서날쇠 역) 등 초호화 캐스팅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70만 부 이상 판매된 김훈 소설가의 동명소설 ‘남한산성’이 원작인 점도 추가된다. 그 외 리뷰를 비롯한 이병헌⋅김윤석⋅황동혁⋅김훈의 배우⋅감독⋅원작자 인터뷰 등 신문의 ‘지원사격’도 여느 영화보다 많은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개봉 초반 관객몰이가 의심의 여지를 없게 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이 쭈욱 이어지는 일만 남은 셈이었다. 그러나 ‘5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 30일까지 벌어진 치욕의 병자호란, 47일간의 혹독한 겨울을 그린 영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비극적 역사를 정공법으로 보여준다. 팩션의 역사드라마가 아닌 정통 대하사극이라 할까. 단, 인물 중심의 대사가 주요 전개 수법이다.일단 설원(雪原)에 펼쳐진 어마어마한 청나라 군대라든가 군막사 등 스펙터클한 장면이 대작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서로 죽이고 죽는 전투장면의 리얼함이라든가 전장(戰場)에서 죽은 병사의 눈알을 쪼아먹는 까마귀떼, 그리고 모가지가 잘려나간 채 여기저기 내걸린 조선인 얼굴 등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비극적 역사의 무게감에 눌려 생겨난 가슴 먹먹함이다. 그 먹먹함은 나라가 멸망 위기에 처했을 때 최명길과 김상헌중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지 고민을 동반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삼배구고두(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의 치욕을 당하기까지 도대체 임금이며 위정자들은 뭘했는지 반문하게 만든다. 이미 44년 전 임진왜란을 겪은 바 있는데도 그 모양이라서다. 영화는 ‘이게 나라냐?’ 하는 의문도 갖게 만든다. 일개 대장장이인 날쇠가 가마니 아이디어를 내고, 잘 맞지 않는 총 정비까지 맡아 할 정도의 나라이니 말이다. 특히 칠복(이다윗)을 통해서 ‘이게 나라냐?’ 하는 비판이 낭자하다. 가령 김상헌에게 “이 엄동설한에 싸우게 하실려면 얼어죽지는 않게 해줘야 하지 않냐”며 씹는 식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둬 겨울을 편히 날 수 있는 세상을 꿈꿀 뿐”인 날쇠는 목숨을 건 격서 전달에 나선다. 무능한 임금, 전쟁 와중에도 비난이나 반대만 일삼는 신하들 모습과 현란한 대비를 이룬다. 뭔가 찡한 울림을 주는 일반 백성의 모습이다. 오늘날 대통령 등 집권자나 위정자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게 해주는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다시 그 먹먹함은 콧등 시큰해짐으로 이어진다. 가령 “상헌을 버리지 말라”는 명길에게 “경도 나의 충신이다”는 인조의 모습에서 왜인지 콧등이 시큰해진다. 청황제에게 “조선의 백성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는 명길의 화친을 위한 간절함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영화는 민족적 비극을 재현함으로써 역사의 교훈을 아로새기게 한다. 그러나 관객이 느낄 어떤 카타르시스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하는데, 극적 재미없이 정공법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인 때문이지 싶다. 굳이 제11장으로 나눠 전개한 이야기도 그중 하나로 보인다. 이야기 흐름이 끊겨 긴밀한 인과적 구성을 포기한 옴니버스식 전개가 되고 말아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닮아가고 있는 한국영화의 너무 긴 상영시간도 문제다. 상영시간을 120분쯤으로 했더라면 정공법으로 인한 지루함을 느낄 짬 없이 몰입에 도움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설마 이것 때문 사람들 발길이 뚝 끊겼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시작 화면 자막에서 ‘한양’이 아닌 “서울로 들이닥쳤다”가 주는 생소함도 빼놓을 수 없는 아쉬운 대목이다. 김상헌의 날쇠를 향한 큰 절도 좀 아니지 싶다. 자신이 죽인 뱃사공 손녀를 부탁하고, 피지배계층에 대한 위정자로서의 속죄의 뜻이 담긴 행동일지라도 그렇다.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 캐릭터와 충돌하고 있어서다. 김상헌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한 선비 또는 사대부의 표상쯤 되는 캐릭터인데, 그렇듯 진일보한 행동을 할 수 있나 의문이 생겨서다.
[한국교육신문 윤문영 기자] 최근 서울 A초는 5·6학년 여학생이 주말에 교회 놀이터에서 어울리다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된 것이 117(학교폭력 긴급전화)에 신고되면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를 열어야 했다. B교사는 “교내에서 일어난 일이면 목격 학생이나 교사를 통해 사안조사가 그나마 수월하지만 외부에서 일어난 일은 학생 말도 서로 어긋나다보니 상황 자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먼저 신고한 학생을 피해자로 간주하게 되는 모순이 있다”며 “경찰처럼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있다거나 목격자를 탐문할 수 있는 권한도 없는 교사에게 객관적인 입증 자료를 확보해 사안을 조사하라는 것은 무리”라고 토로했다. 이어 “요즘 학부모들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와 진상 파악이나 학폭위 과정에서의 허점을 빌미로 소송을 거는 것이 비일비재해지고 이로 인해 교사만 다치게 되다보니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서울 C중은 방과 후에 학교 밖에서 3개 학교 학생들이 얽혀 서로 폭행한 사건으로 공동 학폭위를 열어야 했다. 보통 피해 학생이 있는 학교에서 학폭위가 개최되는데, 쌍방 폭행 사안이라 주관 학교를 어디로 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담당 교사들 간 갈등을 겪었다. 같은 사건을 두고 각 학교별로 담당 교사가 제각각 학생 면담, 증거 수집 등을 하고 협의해야 하다보니 교내 사건보다 처리 과정도 너무 복잡했다. 학폭위가 열리는 곳으로 학생들을 직접 데리고 출장까지 가야하다보니 수업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일선 교사들이 학교 ‘밖’ 폭력까지 떠안아 학폭위를 열어야 하면서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처럼 수사권도 없다보니 사안 파악에 한계가 있고 자칫 이로 인한 소송 제기 우려까지 가중되면서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폭행, 협박, 따돌림 등을 통해 신체나 정신·재산상의 피해를 주는 것을 학교폭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교육부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학교 밖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가해자가 성인일지라도 피해자가 학생인 경우는 모두 학교폭력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지도권이 미칠 수 없는 학교 밖 사건까지 학폭위를 열도록 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서울 D고 인성지도부장은 “최근에 지역이 다른 11개 중학교 학생들이 얽힌 학폭 사건이 발생해 공동 학폭위를 개최한 경우가 있었다”며 “쌍방 폭행으로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다보니 학폭위 회의만도 10시간은 더 걸렸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학폭위 1건에만도 필요한 공문이 10개가 넘는데, 공동 학폭위를 여는 경우에는 위원 선정, 일정 조율 등 업무가 추가적으로 발생해 수업을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E중 교장은 “교사의 지도력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도 결국은 학교에서 떠맡아 아이들을 불러 사안 조사해야 하고 절차적 하자로 고소를 당하니 선생님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며 “교내 학폭도 학부모들은 믿지 못해 불복하는데 교사의 조사가 미흡할 수밖에 없는 학교밖 학폭에는 오죽하겠느냐”고 털어놨다. 경기 F중 교사는 “학폭예방법에서 학교 내외라고 규정돼 있지만 교육부가 유권해석을 지나치게 넓게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다보니 가정 폭력, 길가다 어른한테 맞은 것까지 모두 학교폭력에 해당되고 학폭위를 열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학교폭력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B교사는 “학원 강사나 학부모가 관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까지 모두 학교가 떠안게 하는 현행 학폭 개념은 지나치게 학교에만 책임을 지우고 가정의 책임을 소극적으로 만든다”며 “학교 정상화와 가정 교육의 책임감 부여를 위해 학교폭력의 범위 조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 계류된 9건의 학교폭력예방법개정안 중 학교폭력 정의 부분을 다룬 것이 없는데 이로 인해 교육 현장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걸 안다”며 “학교폭력의 범위를 학교 내에서나 학교 교육과정을 위해 외부에 나간 경우 등으로 한정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법 개정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우선 공동 학폭위에 대해서라도 외부 기관에서 맡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 C중 교사는 “2~3개 학교가 얽힌 학폭위는 이제 일반적인 일이 됐을 정도”라며 “궁극적으로는 권역별이나 교육지원청 단위로 학폭위를 운영해야 교사들도 정상적인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고 일관성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만큼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교총도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해 관련 전문가들이 학폭위 업무를 처리토록 하고 경미한 학생 간 다툼은 무조건 학폭위를 열기보다는 학교장 종결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만약 일본 학생들이 우리학교에 방문한다면 그렇게까지 격하게 환영할 수 있을지? 책상에는 낙서,복도에는 쓰레기 하나 없고, 바닥에껌딱지도 없다 치마 짧게 입고 싶지만 학교 규정 때문에 전남 장성교육지원청 주관으로 일본 체험 학습을 실시한 후 한 학생의 기록이다. 나는 평소 일본에 꼭 한 번 다녀오고 싶었다. 평소에도 라멘이나 스시, 타코야키 같은 일본 음식들을 정말 좋아했고, 일본의 약국이나 편의점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국외체험학습을 가게 됐을 때 굉장히 기뻤다. 그리고 정말 성실하게 참여하리라고 다짐했다. 이번 체험학습은 내 상상만큼이나 재미있었고 내 상상 이상으로 유익한 체험학습이었다. 첫 날, 일본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국 공항과 크게 다른 점도 없었고, 한글도 간간이 보여서 일본에 왔다는 것이 확 와 닿지는 않았다. 공항에서 마중온 버스를 타자 그제서야 일본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우리는 버스의 왼쪽으로 탔고, 기사님은 오른쪽에 앉아계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버스를 타고 캐널시티에 갔다. 나는 일본에 오기 몇 주 전부터 쇼핑리스트를 준비했었다. 그리고 그 쇼핑리스트에 있는 모든 물건은 이 캐널시티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 설렜고, 기대됐다. 캐널시티 안을 걸어다니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깨끗하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쇼핑타운인 만큼 길바닥이나 벤치 등의 위에 일회용 커피컵 하나쯤 올려져있을 법도 한데 커피컵은 커녕 휴지조각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정말 심하게 깨끗했다. 나는 캐널시티에서 유명한 분수쇼를 보거나 라멘스타디움에 가지는 못했지만 드럭스토어에서 내가 사고 싶었던 것들을 전부 샀다. 그 드럭스토어는 5000엔 이상부터 면세가 가능했다. 나는 물건을 꽤 많이 구매해 면세를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권이 있어야 면세를 할 수 있었는데 나는 여권을 선생님께 맡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곳에서 돈을 엄청 쓴 후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갔다. 숙소로 가는 길에 하카타 역의 야경을 보았는데 역과 역 주변 나무들에 설치된 조명들이 여리여리 반짝반짝 빛나는게 꼭 온 몸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굉장히 아름다웠고, 인상 깊었다. 둘째 날엔 후쿠오카 주재 한국총영사관과 스미요시 초‧중학교에 방문했다. 후쿠오카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규슈지역 7개 현과 오키나와현을 관할하는 영사관이다. 우리는 그 영사관에서 영사님을 뵙고, 여러 말씀을 들은 후 질문도 해 보았다. 이전에도 외교관을 만날 기회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흔치 않을 우리들에게 총 영사관 방문은 정말 뜻 깊고 유익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영사관에서 나와 밥을 먹으러 가기 전 대형 마트에 한번 들렸다. 그곳에서 나는 친구 우림이와 무엇을 할지 몰라 방황하다가 타코야키를 발견해 사서 먹어보았다. 한국 타코야키와 맛에서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먹은 타코야키는 문어가 굉장히 컸다. 그래서 ‘아 이게 타코야키구나’ 라는 생각이들었다. 타코야키를 먹은 후 옆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보이길래 그것도 먹어보았다. 정말 엄청났다. 너무 맛있었다. 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진짜 너무 맛있다는 말만 50번은 한 것 같다. 다음에 꼭 다시 먹어보고 싶다. 그렇게 큰 여운을 남긴채 우리는 마트에서 나와 점심을 먹고 스미요시초‧중학교에 갔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 일본 학생들이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어설픈 한국어지만 '안녕하세요'라고 외치기도 하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그런 격한 환영에 얼떨떨해 하며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걸어갔다. 정말 너무 감사했다. 만약 일본 학생들이 우리학교에 방문한다면 그렇게까지 격하게 환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환영을 받으며 학교 내부로 들어갔다. 학교 안에서 교장선생님의 환영사를 듣고, 스미요시중학교 3학년 학생인 히나리 언니와 함께 본젹적으로 학교를 관찰했다. 히나리 언니는 한국어를 매우 잘 했는데,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했다. 스미요시 초‧중학교는 굉장히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다. 이 학교를 지은지 3년 밖에 안돼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똑같이 3년이 된 우리 백암중과 비교해 보았을 때 정말 깨끗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실 책상에는 낙서도 없었고, 복도에는 쓰레기 하나 없었으며, 바닥에 눌러붙은 껌딱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깨끗함이 첫 번째로 눈에 띄었다. 두 번째로는 여학생들의 치마가 무릎보다는 발목에 가까울 정도로 긴 것이 눈에 띄었다. 무릎위로 올라오는 치마를 입은 여학생은 한 명 도 없었다. 너무 신기해서 히나리 언니에게 물어보니 치마를 짧게 입고 싶은 학생도 많지만 학교 규정이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그렇게 입는다고 했다. 계속 보다보니 긴 치마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중학생들의 수업을 구경했는데 미술수업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교실안에 정적이 흐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굉장히 조용했다. 학생들 모두 잡담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그리고 있는 작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점은 정말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구경한 다음 3학년 언니 오빠들과 대화도 해 보았는데, 서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모르니 영어로 대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영어로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는 내가 감사말을 전했다. 이틀 동안 외우려고 연습했는데 정작 말을 할때는 머리가 하얗게 돼서 조금씩 메모지를 보며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세 번째 날에는 먼저 나가사키에 있는 평화공원에 갔다. 평화공원은 1945년 나가사키 원폭투하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나는 이곳에서 나가사키 원폭투하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게 됐다. 특히 어린아이가 마실 물이 없어 웅덩이에 고인 기름때 낀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는 정말 안타까웠다. 평화공원에 간 뒤에는 네덜란드를 테마로 한 테마파크인 하우스텐보스에 갔다. 나는 이 곳에 가는 것을 굉장히 많이 기대했었다. 하우스텐보스는 정말 네덜란드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만큼 건축물이나 거리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세세한 것들까지 모두 네덜란드풍이라 예쁜 사진들을 찍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만 기념품들은 너무 비싸고, VR같은 체험들은 줄이 너무 길거나 무서워보여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마지막 날에는 개구리 절이라 불리는 뇨이린지에 갔다. 개구리를 뜻하는 일본어인 카에루는 '돌아오다'라는 뜻도 있어 뇨이린지에 가면 과거에 있던 좋은 것들을 모두 돌아오게 해준다고 한다. 그곳에는 개구리 동상이 굉장히 많았는데 징그러운 동상들도 있었지만 귀여운 동상들도 많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하카타 타워에서 후쿠오카 시내의 전망을 구경했다. 탁 트인 경치가 정말 멋졌다. 이곳에서 보는 야경도 멋질 것 같다. 이렇게 일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장성에 도착했을땐 벌써 9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조금 피곤했지만 그래도 정말 행복했다. 이번 체험학습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됐다. 특히 일본 사람들의 깊은 배려심에 정말 놀랐고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유익한 체험학습이었고, 다른 친구들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됐으면 좋겠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통일교육 체험 장소가 거의 없는 지역이라 다른 수업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김나영 경남 진목초 교사는 통일부와 교육부가 공동주최하고 한국교총이 후원한 ‘제5회 학교통일교육 연구대회’에서 8일 교육부장관상(1등급)이 결정되자 이 같은 소감을 남겼다. 김 교사는 ‘분단과 국경을 넘는 세계시민, 4통8달 평화통일심성 함양 프로젝트’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다. 통일교육 체험처가 거의 전무한 지역에서 일군 결과라 더욱 관심을 모았다. 그는 “수도권과 달리 거제는 통일교육을 할 수 있는 체험지가 거의 없는 불모지여서 여러 방면으로 더욱 노력하긴 했다”고 털어놨다. 김 교사는 통일교육도 결국 이질적인 문화권 사람과의 소통, 배려가 중요하다는 면에서 세계시민교육, 다문화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보다 포괄적인 ‘마음교육’에 집중했다. 시리아 난민 희생자 ‘쿠르디’ 추모, 평화통일 사전 만들기, 평화 손길 지도 만들기 등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지역 자원을 최대한 활용,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등을 탐방하기도 했다. 그의 연구명 중 ‘4통8달’은 ‘다름 인정하기’, ‘역사 속 통일 실마리 찾기’, ‘타산지석의 교훈 찾기’, ‘세계시민으로서의 심성’ 등 네 가지 주제를 8개월에 나눠 진행한다는 뜻이다. 또한 이 교육을 통해 사통팔달의 사전적 의미대로 평화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마음결로 북한이나 세계 곳곳을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담고 있다. 김도형 경기 운정초 교사, 이경은 서울신당초 교사, 김주연 세종 두루중 교사도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경은 교사는 ‘거꾸로 교실 「통일 채널(CHANNEL) 펼쳐라! 통일물꼬 트여라!」’로 교육효과를 입증했다. ‘채널(CHANNEL)’ 프로그램은 수업 전 교사가 제작한 디딤영상 접속(Contact), 디딤영상 접속 후 자신의 배움 목표 설정, 디딤영상 내용 정리(Homework), 교실에서 배움 목표 확인(Aim), 학습내용에서 남·북한 공통점·차이점 찾아 항해하기(Navigate North and South Korea), 배움 표현하기(Express), 통일에 대한 관심 생활화하기(Live together)로 구성됐다. 이 교사는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분단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 통일한국에서의 꿈을 설계하는 등 ‘살아가는 힘’을 갖추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추진했다”고 말했다. 중등 부분 유일한 최우수상인 김주연 세종 두루중 교사는 ‘참여·체험형 「공감 통일한국 프로젝트」 완성’으로 입상했다. 도덕 교과 속 통일교육, 자유학기제 활동(소통, 마음체험, 토론, 비전나누기 등), 통일동아리 활동(탐구, 토론, 문화활동, 봉사, 나눔 등), 교내 체험행사(통일교육주간 및 통일문화주간 활동) 등 다차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김 교사는 “통일교육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아이들이 남·북한 통일 문제가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고 당면한 문제임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것”이라면서 “학생들이 평화통일에 공감하는 통일교육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에는 총 107편(초등 86, 중등 21)이 접수돼 지난달 두 차례 심사를 거쳐 입상작 21편(초등 17, 중등 4)이 최종 선정됐다. 2·3등급에게는 각각 통일교육원장상과 교총회장상이 시상됐으며, 수상자 전원에게 승진가점과 소정의 상금이 주어지게 된다. 입상작은 연구대회 네트워크(에듀넷·티-클리어, www.edunet.net)와 통일교육원 홈페이지(www.uniedu.go.kr)에 게시해 수업에 도움이 되도록 할 예정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학생 참여 중심의 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해 교사의 전문성 제고, 교수·학습 자료 개발·보급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교육부가 ‘교육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은 입법예고를 통한 의견수렴을 거친 뒤 내년 1월 시행된다. 일찍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초ㆍ중등교육을 시ㆍ도교육청으로 이관하고 교육부는 고등교육, 평생교육, 직업교육 등을 맡겠다고 역할 분담을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교육부의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초ㆍ중등교육의 등한시가 우려된다. 우선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던 학교정책실 직제가 현저히 축소된다. 교육부를 고등ㆍ평생ㆍ직업교육 중심으로 개편하고 교육혁신을 본격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 골격이다. 사실 초·중등 교육은 국가 교육의 근간인데, 단지 대선 공약이라는 미명 아래 이를 관장하는 학교정책실을 축소하기로 하고 그 역할을 시도교육청으로 이관하는 것은 국가백년지대계의 교육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예고된 교육부의 조직개편안은 국가교육과정 및 시·도별 교육여건 격차를 조율할 기구의 부재와 기능 약화가 명약관화해서 우려되고 있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학교정책실의 현행 학교정책관과 교육과정정책관, 학교복지정책관 등 3국 체제에서 2국으로 축소해 학교혁산정책관과 교육과정정책관으로 편제된다. 즉 학교혁신정책관이 학교제도와 고교체제개편 등 학교정책과 교원정책을 담당하고 교육과정정책관은 기존대로 교육과정에 대한 전반을 관장한다. 교육과정정책관 산하에는 민주시민교육과가 신설돼 학생자치와 학생인권, 인성교육 등을 담당한다. 학생지원국을 신설해 다문화교육, 탈북학생교육, 장애학생 지원, 학생상담과 학교폭력예방, 정신건강 관련 업무를 맡는다. 아울러 기존에 학교정책실 소속이었던 학생복지정책관은 독립된 교육복지정책국으로 격상돼 유아교육, 초등 돌봄교실 등과 연계한 정책을 담당한다. 다문화교육, 탈북학생교육, 장애학생 지원, 학생상담과 학교폭력예방 등을 강화하고 유아교육과 돌봄교실을 별도의 기구를 신설하여 관장하는 것은 이해되나, 이들 교육의 영역이 전적으로 유ㆍ초ㆍ중등교육의 하위 영역이라는 점을 전제하면 연계성 차원에서 조율과 조정이 원활하지 않을 우려가 없지 않다. 분명히 이들 영역의 교육과 교육정책이 각자도생식, 중구난방식으로 전개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전적으로 체계적으로 교육정책이 입안되고 해당 교육이 전개돼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기존 교육자치강화지원팀을 확대해 ‘지방교육자치강화추진단’이 3년 간 한시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이 추진단은 교육부가 관장하던 초중등교육의 시ㆍ도교육청 지방 이양(이관)을 위한 조직으로 시·도교육청과 단위학교 자율성 확대를 위한 과제 발굴, 법령 정비, 자치 역량 강화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대선 공약 이행의 관점에서 입법예고된 이번 개정안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여 시행과정에서 상당 부분을 현실에 맞게 다듬어져 시행돼야 할 것으로 사료되고 있다. 교육부에서 고등교육, 평생교육, 직업교육 등을 직접 관장하고 초ㆍ중등교육 등은 시ㆍ도교육청으로 이양한다는 것은 허울은 그럴듯하지만, 막상 본질적으로 분석해보면 초중등교육의 전국적 조율과 교육 격차 해소는 전적으로 교육부 차원에서 조율, 조정돼야 한다. 전국 17개 시ㆍ도교육청(지역)의 여건과 환경이 전혀 다르고 지방재정 자립도도 격차가 크다. 만약 교육부가 초중등교육을 전적으로 각 시ㆍ도교육청에 이양하고 위임한 사항에 대해서 관여를 하지 않으면 분명 초중등교육이 하향 평준화될 우려가 없지 않다. 교육부가 중앙에서 중심을 잡아주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교육부의 이번 ‘교육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가 유·초·중등교육 관장 기능을 축소하고 고등교육과 평생 및 직업교육 정책 기능을 강화로 2분화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초ㆍ중등교육은 기초ㆍ기본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의 허브다. 부실한 초ㆍ중등교육에서 내실 있는 고등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이다. 따라서 이번 교육의 개정안 입법예고가 초중등교육 홀대, 고등교육 강화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기보다는 초ㆍ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함께 중시되고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초중등교육은 시도교육청으로 이양되지만, 고교 직업교육은 직업교육정책관 밑으로는 특성화고를 담당하는 중등직업교육과와 전문대학정책과를 설치해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직업교육의 정책 간 연계하는 등의 미스매치에 따른 업무 조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한편 교육부 2국 체제에서 기존 교육과정정책관과 함께 신설되는 학교혁신정책관의 명칭과 역할 재고(再考)가 요구되고 있다. 학교혁신정책관은 학교제도와 고교체제개편 등 학교정책과 교원정책을 담당하는데, 초ㆍ중학교 체제와 혁신 업무의 각 시ㆍ도교육청 업무 조율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울러, 학교혁신정책관의 ‘학교혁신’이 진보 성향 장관과 교육감들의 교육 이념적 접근으로 오해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교육과 학교를 보수와 혁신으로 양단할 수도 없거니와 혁신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어도 꾸준히 변화와 개선을 지향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학교혁신, 교육혁신은 어느 한 정권이나 정부, 교육청(감) 등의 전유물이 아니다. 교육과 학교는 근본적으로 서서히 변화와 개선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교육부의 ‘교육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가 일방적인 교육부의 업무 재배치가 아니라, 이를 통해 교육자치를 기반으로 한 시ㆍ도교육청의 권한에 버금가도록 학교 권한이 강화되고 학교자율이 보장될 수 있도록 최종 시행과정에서 업무 관장이 재설정되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교육부는 입법예고와 의견수렴 기간 동안 각 교원(교직)단체의 의견뿐만 아니라, 전문가, 학부모, 학생 등을 포함한 전 국민의 의견을 종합하여 보다 바람직한 직제 개편과 업무 관장안이 마련되고 현장 친화적으로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가 주관하는 ‘2017 경기도 청소년 대토론회’가 오는 16일 오전 11시부터 경기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다.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청소년 복지, 스스로 내딛는 행복의 첫 발걸음’이다. 청소년 복지에 관심이 있는 경기도 청소년 및 관계자 150여 명이 모여 청소년 복지 및 자립지원 정책에 관한 열띤 토론을 벌인다. 토론을 통해 제안된 정책은 토론 이후 관련 기관에 제출되어 향후 경기도 청소년정책 발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특별히 이번 토론회는 경기도차세대위원회에서 고안한 ‘삼색(三色)토론’ 방식으로 진행된다. 토론 참여자는 이슈 탐색 – 원인 탐색 – 정책 탐색의 3단계를 통해 보다 쉽게 현재 시행 중인 청소년 복지 정책의 현황을 파악하여 필요한 정책을 발굴할 수 있다. 행사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경기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홈페이지(www.gysc.or.kr) 및 경기도차세대위원회 페이스북(ko-kr.facebook.com/ggyouth/)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인 참가자의 경우 네이버 폼(naver.me/xUlCYHBt), 단체 참가자는 이메일(kgyvc@hanmail.net)을 통해 11일까지 접수 가능하다.
마침 소멸기간이 임박한 영화 할인쿠폰이 하나 있어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그전부터 눈여겨보았던 ‘남한산성’을 보기 위해서였다. 남한산성은 황동혁 감독의 수작으로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간의 항전기록을 담은 영화이다. 영상이 정갈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편집이 대번 눈길을 사로잡았다. 러닝 타임 140분 동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제1장 두 신하 영화의 서두는 주화파인 최명길과 척화파인 김상헌의 논쟁으로 시작된다. 청나라의 총사령관 용골대는 대명 제국과의 군신관계를 끊는다면 군사를 물리겠다고 한다. 이에 김상헌은 명분과 의리상 그렇게는 못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된다. 제2장 오직 싸움이 있을 뿐이다 김상헌이 인조께 아뢴다. 전하, 지금 군사들은 남한산성의 성채에서 매서운 북풍에 얼어 죽고 있사옵니다. 손은 터지고 발은 동상으로 썩어 들어가 창과 활시위를 당길 수가 없나이다. 하루 빨리 사대부들의 의관을 걷어 병사들에게 입히심이 옳을 줄로 아옵니다.이에 영의정 김류는 이렇게 말한다. 김상헌의 말은 지극히 옳으나 이는 불가한 줄로 아옵니다. 만약 사대부의 의관을 걷어 병사들에게 준다면 이는 사대부의 권위를 스스로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조선이란 나라는 없어지게 되옵니다. 하오니 김상헌의 말은 심히 망령되어 받아들일 수가 없나이다.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인데도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대부들의 사고방식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제3장 서날쇠의 조총 칼은 무디고 창은 구부러졌다. 조총의 총신도 휘어져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이에 서날쇠는 김상헌에게 고장난 무기들을 수거해 자신의 대장간에서 벼를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김상헌은 기꺼이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무기들을 수리해준다. 무기를 수리한 후 첫 전투에서 우리 군은 대승을 거두게 된다. 현실을 외면한 채 온갖 말의 잔치만을 일삼던 관리자들에 대한 일침이었다. 제4장 나루터에서 태어난 아이 적의 길잡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상헌은 나루터에서 늙은 사공을 죽인다. 그 늙은 사공에게는 어린 손녀가 있었다.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김상헌은 그걸 알면서도 오직 나라를 위해 늙은 사공을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그 늙은 사공의 손녀는 남한산성으로 찾아들게 되고 그 어린아이가 사공의 딸임을 간파한 김상헌은 그 소녀를 거두어 자신의 딸처럼 보살핀다. 어린 소녀에게 떡국을 먹이기 위해 자신은 배가 부르다며 흰 떡국을 소녀에게 양보하는 김상헌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제5장 가마니와 말고기 성채에서 얼어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해 가마니를 나누어주면 좋겠다는 서날쇠의 청에 말에게 먹일 사료가 부족하다고 반대하는 대신들을 보며 요즘 소위 말하는 “무엇이 중한디?”가 생각났다. 이에 김상헌은 말한다. 말은 없어도 싸울 수가 있지만 군사가 없으면 싸울 수 없다며 백성들에게서 가마니를 거두어 군사들에게 보온용으로 나누어주었다. 제6장 삼전도의 칸 삼전도의 칸은 청나라 황제인 청 태종을 가리킨다. 우리의 열 배가 넘는 13만 대군을 거느린 청 태종은 송파에 진을 치고 남한산성을 에워싼 채 느긋하게 고사 작전을 펼친다. 잘 훈련된 군대와 조직, 그리고 사기가 충천한 군대의 수장으로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최명길은 청 진영을 방문해 그들의 군비와 위엄을 사실대로 보고하며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사대부들은 최명길을 오히려 적의 첩자로 몰아 처단하려 한다. 진실을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제7장 북문 전투 서날쇠의 건의를 받아들인 김상헌이 그동안 무디고 고장난 병장기들을 모두 벼리고 수리한 뒤 새롭게 군을 정비한 뒤 무당에게 택일을 받는다. 그리고 나서 치른 첫 전투가 바로 북문 전투였다. 결과는 당연히 우리 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관리들이 따뜻한 방안에 앉아서 입으로만 싸울 때 서날쇠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은 현장에서 병졸로 경험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그렇다. 위정자는 반드시 현실을 살피고 현장 경험을 해봐야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제8장 적의 아가리 새해를 맞아 적 진영을 살펴보고자 각종 예물을 들고 청 태조를 찾아 하례를 올린다. 그러자 청 태종은 너희는 지금 식량이 떨어져 말까지 잡아먹는다고 들었다. 너희가 가져온 소와 양식은 다시 가져가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거라.나라에 힘이 없으면 사신으로 간 사람들이 이렇듯 능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주는 것이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최명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제9장 보름달이 차는 날 인조가 주화파인 최명길의 청을 받아들여 항복 쪽으로 기울며 김상헌에게 항복문서 초안을 부탁하자 김상헌은 이렇게 말하며 오열한다. 전하, 오랑캐에게 삶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겠나이다. 이에 최명길은 조선팔도에 어찌 문장가가 김상헌만 있겠나이까. 항복문서는 제가 기초하겠사오니 부디 김상헌의 존명은 지켜주소서.항복문서 쓰기를 거부하는 김상헌이나 스스로 항복문서 쓰기를 자청하는 최명길이나 어찌 이 나라의 충신이 아니랴. 항복문서를 찢는 사람이 있으면 그 조각을 주워 다시 맞추는 사람도 있어야하는 법. 제10장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청 태종이 남한산성을 둘러싸고 항복을 권유하자 인조가 신하들 앞에서 선언한다. 나는 살고자 한다. 이 말을 들은 김상헌은 오랑캐에게 구차하게 삶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죽겠나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김상헌이 단호함이었다. 하지만 최명길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고 항변한다. 최명길에게 있어 실리가 중요한 것이지 형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사고방식은 그가 어려서부터 양명학을 수학한 때문이었다. 마지막 장 삶의 길 김상헌 : 자네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려고 하는가?최명길 : 살아야만 임금과 백성이 함께하는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 아닙니까.김상헌 : 틀렸네. 새로운 세상이란 이 세상 모든 낡은 것이 사라진 뒤에야 열린다네. 심지어 우리가 세운 임금마저도 사라져야 되네. 마지막 김상헌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와 김상헌의 생각이 너무나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경상북도문경교육지원청(교육장 엄재엽)은 7일 관내 유·초·중·고 학교운영위원장 및 교육지원청 관계자를 대상으로 2017년 학교운영위원장 연수를 실시했다.이번 현장 연수는 영천에 있는 기숙형 별빛 중학교를 방문하여 신축 학교의 교육현장을 살펴보고 지역의 교육 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이어서 포항 호미곶 및 포스코 역사박물관을 방문하여 근현대사에 중요한 제철문화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엄재엽 교육장은 “이번 현장 연수가 학교운영위원 상호간의 정보교환, 소통과 친목을 도모하여 지역 교육 현안에 대해 학교운영위원장 및 학부모가 학교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차렷, 땅” 호각소리에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었다. “남자이겨라, 여자 이겨라.” 자기 팀이 이기라고 신나게 응원을 한다. 그런데 맨 먼저 출발한 남자 아이가그만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 졌다. 졌어.” 남자 아이들이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아이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런데여자 아이 중 한 명이 달리기에 자신이 없었던지 걷다시피 하였고남자 아이가 거침없이 추격을 하여 반 바퀴이상의 거리 차이가 많이 좁혀지게 되었다. “우와 ” 드디어 다음 주자가 여자아이를 앞지르고 말았고 결국 남자 아이들의 승리로 이어달리기가 끝이 났다. 이것은엊그제 5교시 우리 반 남여이어달리기의 진풍경이다. 물론 여자 아이들이 불리할 것을 염려하여 반바퀴 정도는남자아이들 보다 앞서 출발을 시켰다. 아이들의 이어달리기를 지켜보면서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다보면나중에는 분명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보았다. 2017년이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왔다. 세월이 참으로 너무 빠르다. 모두들 지난해 못 이루었던 계획들을꼭 이루어보겠다고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다짐을 하면서 새 출발을 했을 것이다. 2018년 새해에는우리 현장 교사들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 나를 바꾸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다. 밝은 표정과 다정한 인사, 친절한 말 한마디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새해에는무한긍정의 자세로 자신도 행복하고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행복을 주는 교사가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었지만, 진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경란이는 진이의 책상을 바라보면서 섭섭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진이네는 방학동안에 서울로 이사를 해버렸다는 소식을 갓바위 아이들에게서 들었지만 진이는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어떻게든지 편지라도 한 통 보내 줄줄 알았는데 너무 한다고 생각이든 경란이는 진이가 보고 싶으면서도 미운 생각이 들었습니다.이런 경란이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며칠 안에 진이의 편지가 날아왔다. 경란이는 ‘역시 나의 친구 진이야‘ 하는 생각으러 편지를 뜯었다.경란이에게경란아, 난 이제 서울로 와서 여기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있지만, 그곳에서 너희들과 지내던 때가 생각이 나서 못 견디겠어. 여기 아이들은 나에게 잘 해준다고 하는 모양인데 도무지 정이 들지 않아. 모두들 왜 그렇게 잘들 사는지 우리 집만 가난뱅이 같고, 마치 아이들이 나에게 ’얘 이 거지야‘ 하는 것만 같아서 늘 자신이 없고 부끄러워. 그러니까 아이들은 더욱 나를 우습게 보는지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아. 난 지금도 그곳에서 잘해주던 너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꿈에도 늘 그곳에서만 놀곤 한단다. 선생님께도 따로 편지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 친구들에게도 소식이나 전해 주면 좋겠어. 아직 여기에 정이 들지 않아서 고생을 하고 있는가 봐. 우리 아버지는 여기저기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우선 먹고살기는 할 것 같은데, 너무 돈 쓸 곳이 많아서 힘이 드시는 것 같애. 경란아 답장 꼭 해 줘. 이 다음에 다시 쓸게. 안녕. 진이가경란이는 진이의 편지를 읽고 나니 더욱 진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 복잡한 서울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더 진이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진이네는 서울에 오자마자 홍제동 산동네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서대문구 홍제동 산 1-100번지 산골짜기를 따라 산등성이까지 야금야금 먹어 가는 판자 집들이 이제 골짜기를 넘어가서 이웃동네까지 연결이 되어 버린 곳입니다. 어찌나 가파른지 아무래도 한번에 올라가기가 힘들만큼 험한 골목길을 요리조리 꼬불꼬불 올라가야 했습니다. 학교까지 가는데도 20분은 걸어가야 하는데 골목길을 걷자면 키가 닫을 듯한 지붕들을 타고 나오는 연탄 냄새와 화장실의 냄새가 코를 싸잡고 다녀야 할 만큼 심했습니다.진이 아버지는 이웃마을아저씨와 짝을 이루어 건축 일을 하시러 다녔습니다. 농촌에서 일을 하시던 분이라서 그리 힘들어하시지는 않지만 저녁에 돌아오실 때는 솜처럼 지친 몸에 술을 드시고 곤드레가 되어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하루 일당인 오천 원을 받아들면 온 식구가 먹고 살 쌀을 몇 되 살수 있었다. 농촌에서 일할 때보다는 훨씬 많은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연탄을 사야하고 물 한 바가지라도 돈이 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길을 가더라도 이제는 걸어서 다니는 것보다는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서울 생활이다 보니, 돈이 모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일년이 다 가도록 하루살이 같은 생활을 하다보니 이제 앞날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사 온지 일년이 지나자 집주인은 집세를 올려 달라고 독촉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진이 엄마, 아무리 어려운 줄을 안다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동네에서 우리 집보다 싼 집은 없어요. 다른 집처럼 많은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십만 원은 올려 주어야겠어요. 그래도 다른 집보다는 삼십만 원은 싸게 드리는 것이에요. 그 많은 식구들을 데리고 다른 집에 가보세요. 누가 방을 주기나 하는지. 식구가 많고 아이들이 많으면 방을 주지 않는 게 서울사람들이에요.”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었다. 적어도 두 달은 안 먹고 버텨야 할 만큼 많은 돈이었습니다.“여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 이 산동네도 이렇게 집값이 비싸니 더 싼 곳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 아니겠어요.”“글쎄, 더 싼 곳을 찾아보아야지요. 어디든 가면 살 곳이 있겠지요.”“그런 곳을 어디서 찾는단 말이오. 이제는 서울을 떠나야 할 거 아니에요 ?”“어디로 떠나야 한다는 말이오. 여기보다 못한 곳이라면 이제 다시 시골로 돌아가자는 말이오?”“아니 ?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소. 우리가 그 곳을 떠날 때 사람들은 얼마나 부러워들 했소. 그런데 이렇게 초라하게 돌아갈 수는 없지 않소. 우리 끝까지 버텨냅시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잘 살 날이 돌아오겠지. 그렇찮소?”아버지와 어머니는 며칠을 두고 이렇게 걱정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뾰쪽한 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어쩔 수 없이 진이네는 저 변두리에 있는 진관내동이라는 서울의 끝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 동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시골처럼 벼농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채소와 꽃을 가꾸는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고들 있었습니다. 이제 먹고살기 위해서는 온 식구가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이는 학교에 다녀오면 이웃 비닐하우스에서 꽃모종을 내는 일을 도와주고 용돈을 얻어 쓰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진이의 어머니는 이미 비닐하우스 마을에서는 소문난 일군으로 사방에서 어서 오라고 손을 벌일 만큼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농촌에서 일을 하던 솜씨로 꼼꼼히 일을 해주게 때문에 서로 데려가려고 미리 돈을 가져다가 맡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살림은 크게 나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절대로 돈이 생긴다고 해서 함부로 돈을 쓰거나, 돈이 생긴 것처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항상 나아지는 것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날마다 불어나는 저금통장의 금액을 보면서 몇 년 만 더 고생을 하면 우리도 비닐하우스를 얻어서 꽃 농사를 한 번 지어 보자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잘 하면 2,3년 후면 이제 조그만 비닐하우스를 하나 마련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희망에 부풀은 진이네의 생활은 이제 조금씩 즐거운 가족의 분위기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아버지는 술타령을 하시지 않고, 돈이 생기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나서서 하려고 하였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이렇게 나서서 무언가를 하고 또 아껴서 돈을 모아 가는데 살림이 불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이제는 용돈도 벌어 쓰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학교에서 끝나는 시간도 더 늦어졌지만 이제 서울의 아이들에게 지지 않으려면 더 부지런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따라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밖에 일을 하러 나가시고 없는 집안일을 알뜰히 해드리는 것이 집안일을 돕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진이는 용돈을 버는 일보다 집안일을 열심히 도와드리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 바로 숙제를 하고 틈이 생기지 않도록 집안의 청소며, 부엌에 들어가서 식구들의 저녁 끼니를 준비하는 일까지 모두 어머니가 믿어 버리고 일을 할 수 있도록 말끔하게 처리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진이의 집안일 돕기는 동네에서 소문이 나서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 누가 자랑을 해서가 아니라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두 진이의 부지런한 것을 부러워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까 이제는 소문난 효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진이 엄마는 얼마나 좋을꼬, 저렇게 착하고 야무진 효녀를 두어서..... 집안일을 그렇게 깔끔하게 잘 한다면서요 ?”이런 칭찬을 들은 진이 어머니는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보다 몇 배 자랑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집안일을 그렇게 도와주니까 다른 사람보다 안심을 하고 일을 할 수가 있어서 다른 집에서 일을 할 때도 더 환영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돈을 살그머니 더 얹어 주는 집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해준 대가라고는 하지만 여간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한 진이 어머니는 더 열심히 일을 해주었습니다.이렇게 온 동네에서 칭찬을 받으면서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그렇게 창피한 일이 없다고 생각을 다진 진이는 공부도 밤을 새우듯 열심히 하여서 학교 성적도 점점 올라가서 우등권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중2년이 되는 해(서울로 이사를 한지 4년째)에는 이제 진이네가 자신의 비닐하우스를 마련하기로 한 해였습니다.사실 그동안에 아끼고 모은 돈으로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만 되었다면 벌써 마련하고 남을 비닐하우스가 이렇게 늦어진 것은 해마다 돈을 모은 만큼 땅을 빌리는 값도 뛰어 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채에 100만원 안팎이던 하우스 사용료가 해마다 30,40만원씩이나 올라간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곳의 농사가 수지가 맞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올라가는 부동산 값은 이제 서울 시내보다는 이렇게 변두리에서 더 많이 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개발이 되면 이런 땅을 사두어야 한 몫을 잡는다고 생각한 서울시내 부자들의 자가용이 드나들면서 날마다 값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땅값이 오르니까 비싼 땅을 싸게 빌려 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농사를 하는 사람들만 더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미루다가는 이제 오르는 전세 값도 제대로 댈 수가 없겠다고 생각을 한 진이 부모님은 큰 결심을 하였습니다.4.꿈은 사라지고이제까지 모아온 돈이 조금 모자라기는 하지만 너무 착실한 진이네를 믿는 동네 사람들이 돈을 빌려 주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이제는 용기를 내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결심을 하신 것이었습니다.이곳의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면 하우스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그것에서 일년 내내 꽃을 가꾸거나 채소를 가꾸어서 소득을 올리면 네다섯 식구가 매달려도 살아 갈만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이곳은 하우스가 아주 많아서 일일이 생산한 것을 가지고 팔러 다닐 필요도 없이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미리 돈을 주기까지 하니까 팔 곳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이 없는 곳이었습니다.이런 사정을 생각하여 기왕이면 이 마을에서 하우스를 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마을 변두리에 두 채의 하우스를 가진 사람이 농사를 짓는 게 싫어서 남에게 빌려 주고자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알까 봐서 얼른 계약을 하지 않으면 구하기 힘든 하우스를 당장 계약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사람과 마주 앉아 의논을 하였습니다.“그 하우스가 그렇게 쉽게 나온 것을 보면 별로 재미를 못 본 게 아닐까요?”아버지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서 물었습니다,“이 양반이? 하기 싫으면 관두시오. 지금 이 하우스가 나왔다는 말만 나오면 누가 먼저 계약을 하는지 모를 지경인데 당신에게 차지나 갈 것 같아서 그러오?”“아따 이 양반 성질은 ? 아, 묻지도 말라는 말이오?”“글쎄, 싫으면 관두라는 것 아니오. 아마 내일이면 다른 사람이 계약을 하고 말 것인데 그때는 후회하게 될 것이오.”소개를 하겠다는 사람은 어지간히 서두르고 주인이라는 사람은“여보시오. 복덕방을 하려면 이렇게 하는 거요? 바쁜 사람 나오 라 더니 이렇게 의심이나 받으란 말이오? 그만 두시오. 난 바빠서 가 보겠소. 이제 그만 갈 테니 내일이라도 당신이 임시 계약을 하고 연락을 하시오.”하고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복덕방아저씨는 죄송해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겠다는 듯이 죄송해 하면서 전송을 해드리고 들어와서는“여보시오. 최씨 ! 나 당하는 꼴 보았소? 당신이란 사람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오. 아직 터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 도와주려고 했더니 망신만 당하지 않았소.”하고 신경질을 부리며 자리를 뜨려는 것을 아버지가 옷자락을 붙들고 사정을 하였습니다.“여보시오. 이러면 되오? 날 도와주려면 끝까지 좀 도와주시오. 시골에서 올라와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 잘 알지 않소.”이렇게 사정을 하여 간신히 붙들어 앉히고 사정사정을 하여서 계약을 하게 된 것입니다.변두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장 값이 싸고 땅이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얻기가 쉽지 않은 비닐하우스를 보증금 150만원에 연 30만원씩이나 주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을 때, 진이네 식구들은 돈이 조금 모자라기는 하지만 자기들의 하우스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이제 우리도 스스로가 한만큼의 소득을 올릴 수가 있게 되었다.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우리 모두 온 힘을 다해 보기로 하자.”아버지의 말씀은 온 가족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이 한층 더한 것이었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가족들이 신바람이 나는 며칠을 보내고 나서, 이제 진이네가 장만한 비닐하우스를 찾아가서 비워줄 것을 부탁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서 나란히 손을 마주 잡고서 부풀은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는 듯,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비닐하우스에 다달아 문을 열고 들어서며“안녕 하세요 ? 주인님은 어디 계시죠 ?”“누구시죠 ?”“네에, 아직 연락을 받지 못하셨군요. 지난 15일에 하우스를 전세계약을 하였는데요. 혹시 주인이 알려 주시지 않으셨나요 ?”“무슨 소리예요 ? 누구에게 전세계약을 하셨다구요 ?”“주인이 강경식씨가 아니었나요 ?”“주인이요 ? 이건 우리 것인데요 ?”“아니 그럼 강경식씨가 아니란 말이에요 ?”“무얼 잘 못 알고 오셨나 보군요. 딴 곳에 가서 알아보십시오. 여긴 우리가 이렇게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누가 전세를 내어주었단 말입니까 ?”“뭐라구요 ? 아니 그럼 우리가 돈을 준 것은......... ?”아버지는 그만 머리를 싸쥐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여보 ! 여보 ! 정신 차리세요.”어머니는 그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지만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며칠을 멍하니 먼 산만을 바라다보면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몇 달을 보내야 하였습니다.경찰서로 검찰청으로 찾아다니며 애원을 해봐도 어느 누구도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형식적으로 문서나 접수 할 뿐이었습니다.그 동안에 진이네는 이제 꿈도 희망도 모두 사라져 버린 빈껍데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날마다 가족들의 먹거리를 마련하는 것만도 벅찰 지경인데, 돈을 빌려준 이웃들은 이제 돈을 받지 못 할 것을 염려하여 눈치코치 살펴주는 법이 없이 재촉이 불같았습니다. 그렇게도 믿고 다정했었던 이웃 사람들이건만 잘 못 되어서 돈을 떼이게 되었다고 하니까 도와주기는커녕 자신의 돈부터 달라고 야단들을 하는 것이 너무나 야속하기만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끔 불편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시고 싸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5. 귀향의 길한달 가까이 사기를 치고 도망을 간 두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여기저기 알아도 보았지만, 더 이상 그를 찾는 방법도 없거니와 찾는다고 하더라도 사기란 어지간히 지능범이라서 경찰에서도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법률구조공단에서의 설명을 듣고서는 더 이상 버틸 힘마저 없어져 버렸습니다.그날 밤 어머니는 죽기로 결심을 하셨던지 농약을 마셔 버리셨습니다.자리에 들었다가 설풋이 잠이 들었는데 어머니가 신음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진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란 아버지는 아직 술이 덜 깬 목소리로“뭐어? 엄마가 어떻다고?”“아버지, 어머니가 이상해요. 갑자기 신음을 하시면서 쓰러지셨어요.”“뭐? 어디가 아픈 가부다.”아버지는 술기운을 못 이기겠다는 듯이 그냥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진이가 불을 켜고 살피다가 방구석에 뒹구는 농약 병을 발견하였습니다.“아버지, 엄마가 농약을 마셨나 봐요. 어서요......”이 말에 아버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에게로 다가오셨습니다.“진이야. 어서 엄마를 등에 업혀라. 어서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어서.”이렇게 다급하게 집을 나섰는데 마침 응급실에 불이 켜진 동네 의원을 발견하였습니다. 다행히 얼른 발견이 되었기 때문에 가까운 동네 의원에서 위세척을 하는 등 응급 처치를 잘해서 큰 탈이 없이 3일 만에 퇴원을 하셨습니다.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두 분의 이야기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 왔습니다.“여보, 우리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살아 보았자 우리 같은 촌뜨기들은 서울 사람들의 밥 노릇이나 하지 어디 이게 사람의 새끼들이 사는 곳입니까? 우리는 더 이상 여기서 살아갈 자신이 없지 않아요. 다시 내려갑시다.”어머니의 말씀에 이어 아버지는“당신의 마음을 알만하오. 나도 지금 생각을 해왔오. 이렇게 살아보았자 아무런 앞날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오. 그래서 차라리 고향에 내려가서 내가 어려서부터 몸에 익힌 농사를 짓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소, 다만 우리가 여기 와서 익힌 비닐하우스를 거기에 가서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고 있었소. 당신 생각은 어떻소?”“그래요. 우리 내려가서 거기에서 땅을 빌리면 싸게 빌린 것 아니겠소. 여기서 익힌 것이니 하우스를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오. 3년 동안 배운 지식을 이용한다면 거기에서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소. 나도 이제는 제법 알게 되었으니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책임을 질 거예요.”두 분의 마음은 이미 서울을 떠나 고향 들판에서 비닐하우스를 짓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진이는 마음속으로 차라리 잘 됐지 뭐. 그렇게라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기운을 차려서 열심히 하신다면 충분히 잘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일주일 후 어느 날 밤에 진이네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이삿짐을 지고 나섰습니다. 물론 가까운 이웃들에게는 자신들이 가는 곳의 주소도 알리고 그 동안 진 빚은 방세를 빼어서 모두 갚았습니다. 다만 서울까지 왔다가 못살고 떠난다는 말을 듣기가 너무 서러워서 밤에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고향에 도착을 한 진이네는 곧장 이웃 사람들에게 청하여 마을 앞 논을 몇 마지기 세를 얻었습니다. 비닐하우스를 짓지 않은 빈 땅이라지만 서울에서의 1/10도 안 되는 싼 땅 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동네에서 가장 농토가 많은 부잣집이라서 농사철에 농사를 돕는다는 조건으로 몇 마지기는 그냥 보리를 심어 먹도록 주기도 하였습니다. 진이네 온 가족이 힘을 합쳐서 논에 보리를 심고 북을 주고 가꾸는데 전력을 하였습니다. 겨우내 남의 집 보리밭도 매고 남의 집이라면 달려가서 도와주고 나섰기 때문에 식구들이 굶주리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봄에는 보리를 많이 거두어 보리밥이라도 먹고 살수 있게 되었고, 비닐하우스에 심은 채소는 겨울 동안 제법 돈벌이가 되어서 당장 하우스를 짓는데 들었던 비용은 갚아 나갔습니다. 이렇게 몇 년 만 고생을 하면 빚을 벗고 나설 수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진이네가 하는 일이라면 서로 도와서 함께 살기를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에 더욱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해를 보내고 나니 이제 지긋지긋한 서울은 완전히 머리에서 사라진 듯 모두들 이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이웃들의 고마운 도움으로 먹고사는 문제는 간신히 해결이 되었습니다.그러나 이렇게 겨우 먹고사는 데만 매달려서는 도저히 앞날이 없을 것이라는 걱정에 무엇인가 좀더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이것저것 찾아도 보았고, 농촌지도소의 도움을 받기 위해 영농교육에도 찾아다니면서 아버지는 새로운 작목에 눈을 돌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