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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교육신문 백승호 기자] 교육부가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방안을 발표한데 대해 교총이 총력 투쟁을 선언하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교총은 사이버 시위, 청와대·교육부 앞 집회, 시도 및 학교별 규탄대회 등을 통해 전 회원·조직과 함께 끝까지 저지 활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국교총과 17개 시·도교총은 27일 서울 서초구 교총회관에서 ‘한국교총-17개 시·도교총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의 일방적이고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한 행태를 규탄하고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방침의 철회를 촉구한다”며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모든 조직력을 동원에 총력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앞서 교육부는 26일 교장공모제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이를 반영한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자율학교와 자율형공립고에서 실시하는 내부형 공모학교 가운데 교장자격증 미소지자가 응모할 수 있는 학교를 15%로 제한했던 규정을 폐지했다. 또 교육부가 매학기 교장공모 추진계획을 통해 교장 결원의 3분의 1이상 3분의 2이하를 공모제로 뽑도록 한 권고도 하지 않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무자격(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를 공약했고 교육분야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교총은 성명을 통해 “그동안 수차례 공식 간담과 단체교섭 및 의견서 제출 등을 통해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에 대한 우려와 문제점을 지적했음에도 정부는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교총은 또 무자격 교장공모제의 폐단을 지적하며 ▲교단의 안정과 학교 조직 근간 훼손 ▲교원승진제도 무력화 ▲직선교육감 코드·보은인사, 특정 노조 출신 교장 만들기 전락 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참석자들은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는 20년 이상 교육경력, 근무성적, 연구실적, 연수실적 등을 축적하고 각종 기피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교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것”이라며 “열심히 수업하고 근무하는 교사보다 인기영합주의 교사, 교육감 눈치만 보는 교사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공모학교 지정 권고 비율 삭제는 교육감의 의지에 따라 교장 임용 방식이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이라며 “학교의 선거장·정치장·코드화를 초래하게 될 권고비율 삭제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정부가 아무런 검증절차나 제도 개선에 대한 연구도 없이 제도를 일방적으로 확대하려는 것은 교육현장을 무시하고 정책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비민주적인 처사”라며 “정부의 국정철학인 ‘공정한 과정’ 약속과 정면 배치되는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교총은 철회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전조직·회원 항의서한 및 의견서 전달, 사이버 시위 전개 ▲교육공무원법 개정 입법 청원 ▲국민·교육계·국회 대상 무자격 교장공모제 문제점 알리기 ▲청와대 및 정부 청사 앞 시위 ▲시·도별, 학교별 릴레이 규탄 대회 및 전국 교육자 총궐기 등 강력히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도 28일 각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제히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밝혔다.
연수방법 다양화, 보조인력‧기기 확충 등 지원 필요개인‧학교 노력 넘어 국가‧교육청 차원의 정책 기대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지난달 19일 서울시교육청 경희궁홀. 20여 명의 중증 장애교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장애교사 지원방안에 대한 현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교사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편안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다.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애로사항이나 고충보다는 아이들과의 추억, 보람이었다.김헌용(시각‧1급) 서울 구룡중 교사는 매년 교원평가에서 학생들의 자율서술 문항 첫머리에 쓰여 있었던 ‘시각장애인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란 문구가 최근 전혀 눈에 띄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나를 장애인이 아니라 여느 교사들과 다름없이 바라봐 준다는 사실이 참 감동스러웠다”며 “최근에는 학생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어 지하철역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점자블록이 생기는 등 아이들의 성숙한 생각과 행동에 교사로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고 밝혔다.김필우(시각‧1급) 서울정민학교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생일마다 기타를 치며 축하노래를 해주는 것이 ‘축하 전담’이라는 일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김 교사는 “중증‧중복 장애학교로 발화가 안 되거나 인지가 낮은 학생이 많아 초임 때는 난감한 적이 많았지만 다른 학급 학생의 생일이더라도 모두 챙겨 음악으로 소통하다보니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교사들의 요구는 장애가 수업‧업무에 장애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연수 방법을 다양화하고 보조인력, 보조기기를 확충하는 등 장애 유형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편도환(시각‧1급) 서울 수락중 교사는 “장애교원들은 연수에서 어떤 것을 들어야 전문성이 신장될 수 있는가보다 어떤 연수를 들을 수 있는가가 먼저”라며 “웹 접근성이나 음성지원 등 장애교원 연수에 대한 지침이나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성규(청각‧2급) 서울정인학교 교사도 “교직경력 15년 간 수화나 자막통역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집합이나 원격연수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연수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배 교사는 또 1‧2급 중증장애교원 전보 우대와 관련해 “청각장애는 타 장애와는 달리 2등급이 최고 등급이어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다”며 “이밖에도 여전히 많은 장애교원들이 담임업무에서 배제되거나 근평, 성과급에서 최하점을 받는 등 차별을 받고 있어 이에 대한 인식개선, 정책 보완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교육청 차원의 장애교원 지원 전담인력 배치에 대한 요구도 나왔다. 편도환 교사는 “현재는 보조인력, 보조기기, 연수 등 필요한 것을 요구해도 교육청 안에서 조차도 부서가 나뉘어 있기 때문에 통합관리가 어렵다”면서 “개인이나 단위학교의 노력만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부분들을 교육청이나 국가 차원에서 챙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내 장애 교원 570여 명 중 보조인력을 지원받는 인원은 18명 뿐”이라며 “필요 여부에 대한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충분한 예산도 확보됐으면 한다”고 조언했다.장애 유형과 정도에 맞는 지원도 당부했다. 박춘봉(시각‧1급) 서울정진학교 교사는 저시력 시각장애로 수업과 활동은 지장이 없지만 컴퓨터 업무 시 클릭 등 사소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홍상희(뇌병변‧1급) 서울 영원중 교사도 칼질이나 가위질같이 정교한 작업이나 무거운 짐을 들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동료 교원들에게 도움 받고 있지만 본인도 바쁜 상황이라 미안함이 크다”며 “공익근무요원이나 실무사를 통해 간단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장애정도에 맞는 다양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끝으로 김헌용 교사는 “새해에는 개인이나 학교의 노력을 넘어 교육청이나 국가 차원에서 장애 교원의 근무 여건 개선을 위해 본격적인 정책을 펼친다면 훨씬 더 장애친화적인 학교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며 “장애교원들도 학교 다양성에 도움이 되는 새롭고 풍부한 교육현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예람 기자 yrkim@kfta.or.kr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학교 중심의 초등돌봄서비스가 지방자지단체 중심으로 이동한다. 정부는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을 위해 지자체 중심의 새로운 서비스모델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교육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이하 관계부처)는 27일 그랜드힐튼호텔 서울에서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운영을 위한 현장 정책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의 시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방과후학교·초등돌봄교실(교육부), 지역아동센터·다함께 돌봄사업(복지부),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아이돌봄서비스·공동육아나눔터(여가부) 등 부처별로 산재된 돌봄사업을 일원화 하면서 중첩되거나 부족한 부분을 정리하면서 강화시키는 중장기 지원책을 마련한다. 226개 기초지자체(시·군·구)마다 지역적 특성이 각기 다른 만큼 중앙부처가 획일화된 정책을 만들어 내려 보내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대신 각자 알맞은 지자체·교육(지원)청 협업 기반의 맞춤형 돌봄사업 모델을 구축해 운영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관계부처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시범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올해 10개 이내 지역을 선정해 지원하고 2020년까지 30개 지역까지 늘려 모범 사례를 구축한 뒤 2021년부터 이를 토대로 전면 시행할 예정이다. 이들 부처는 추진 과정에서 지자체가 주축이 돼 교육(지원)청과 협업할 것을 주문하고 나서 추후 학교 측 부담을 줄이는데 힘을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토론자들은 물론 관련부처 담당자들까지 지자체 중심으로의 이관, 컨트롤타워 구축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이태수 꽃동네대학교 교수는 “학계는 중·장기적으로 지자체가 주축이 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지자체와 학교의 운영 부담은 6대4 내지 7대3으로 조종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김성희 광주 월산초 교장은 학교 중심의 초등돌봄교실 운영에 있어 학교 본연의 역할이 침해되는 부분, 그리고 지역 기관과의 정보 공유 부족 문제로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김 교장은 “13년 간 운영하면서 학교 측 부담이 있어 지자체가 맡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고, 질적 수준을 높이는데 지자체와의 협조가 안 돼 한계가 있었다”면서 “방과후학교, 돌봄교실이 이뤄지게 되면 겸용교실의 경우 교사들이 교실에서 교재연구를 하지 못하는가 하면 학교 본연의 교육과정 진행에도 문제를 겪는다”고 털어놨다. 관계부처 역시 지자체가 주축이 돼야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지자체장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인적·물적 자원의 유기적 연계·협력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배경택 복지부 인구정책총괄과장은 “취약계층 아이들 위주로 진행됐던 초등생 돌봄을 전체 아이들로 확대한다는 인식 전환과 함께 이에 맞춰 지자체별 우수모델 발굴 및 지원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해는 점점 저물어가고 한파는 계속된다. 이럴수록 감기 조심하고 학교생활에 임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선생님? 만족할 줄 아는 선생님이다. 얼마 전 초.중.고 학생들에게 선호하는 직업을 물었는데 초중고 모두가 교사가 되겠다는 꿈이 1위였다.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다. 주위 환경이 열악해도 만족하고 대우가 썩 좋지 않아도 감사할 줄 아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선생님이다. 상처 없는 이는 없다. 상처를 잘 치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부의 상처가 단단해지는 것처럼 속이 좁아진다. 속이 좁은 사람은 지도자로 쓰임받을 수가 없다. 학생들의 상처는 선생님이 치유해주지 않으면 해줄 사람이 없다. 의사처럼 치유자가 되면 좋을 것 같다. 나도 상처가 많은데 어떡해? 이런 생각은 갖지 말기 바란다. 반성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다짐도 계획을 세웠지만 부족한 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자기 평가를 냉혹하게 평가해서 반성해 보고 새해에는 더욱 좋은 평가를 밭을 수 있도록 조목조목 반성하면 좋겠다.
3년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식을 치르고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저를 축하해주러 멀리서 직접 와주신 분들도 계시고, 사정이 생겨 못 오신 분들은 다른 분들을 통해 마음을 대신 전달해주시기도 했지요. 이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앞으로 차곡차곡 보답하기 위해서는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축의금 기록부'이지요. 결혼할 당시에는 신혼여행에 다녀와 한 번 보고 나서는 오히려 이것을 볼 일이 별로 없었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인생을 살아가다보니 결혼이나 돌잔치 같이 좋은 소식도 있지만, 가족을 여의는 안타까운 소식도 함께 듣게 되어 나이가 들수록 부조를 위해 이 기록부를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대학 동기 결혼하는데 축의 얼마하지?" "우리 결혼식때 축의금 얼마 했는지 봐볼게. 5만원 했네." "요즘 밥값만 3만원이 넘어. 둘이 가는데 5만원이면 될까?." "5만원? 혼자 가면 몰라도 둘이 가는데 10만원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결혼식 전날이면 어김없이 오가는 저희 부부의 대화입니다. 사실, 축의금의 원래 의미는 결혼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주는 돈이지만 최근에는 그 의미가 많이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사회생활의 일부로 변질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또, 축의금과 관련되서 나름대로의 규칙들도 생겨나게 되었죠. '나에게 축의금을 준 사람에게는 축의금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주지 않는다.', '완전 가까운 사람은 10만원, 조금 가까운 사람은 5만원, 그냥 지인은 3만원' 이런 식으로 규칙을 만들어 놓는 겁니다. 이런 규칙들이 자칫 보면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급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과 돈을 기준으로 친교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황금만능주의와 지나친 합리성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까지 깊숙하게 박혀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제자가 준 축의금과 편지, 나를 반성하다 며칠 전 '축의금 기록부'에 적어 놓지 못했던 소중한 축의금과 한통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3년 전 제가 담임을 했던 제자 주영이(가명)의 편지와 축의금 천 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이 편지를 읽으니 새삼스레 주영이와 함께 보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3년 전 제가 결혼하던 해에 저는 새로운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자들은 그 학교에 전근 간 후 처음 만나게 된 아이들이었고, 제가 결혼한 달이 학기가 시작하고 딱 3개월이 지난 6월이었기 때문에 저와 제자들이 서로를 완벽히 알지는 못하는 탐색의 시기였습니다. 그런지라 제 결혼소식에 대해 아주 뒤늦게 알리게 되었지요. 결혼을 하기 전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제자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알린 것이 아니었고, 결혼 후 신혼여행을 가서 일주일 간 제가 아닌 다른 선생님과 수업을 하게 되니 선생님이 보고 싶어도 참으라는 농담 섞인 말과 함께 알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결혼식을 잘 마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일주일 만에 학교에 출근한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 멀리서 주영이가 쭈뼛쭈뼛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평소 집에서 있었던 일이나 친구와 있었던 일을 저에게 가감없이 재잘거리는 귀여운 아이였는데 그날따라 뭔가 부끄러운지 제 눈치를 슬슬 보는 것이었습니다..제 앞으로 다가온 주영이가 여러 번 접어 꾸깃꾸깃한 편지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모은 돈이에요. 결혼 축하드려요. 제 일주일 용돈이랑 축하 편지에요." 특별휴가로 다녀온 신혼여행 기간이 딱 일주일이었는데, 주영이가 제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지난주에 부모님께 받은 일주일 용돈 천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제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아 두었다가 저에게 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영이의 진심어린축하의 마음에 감동했습니다.물론, 그 돈을 받고 제 지갑에 있는 더 빳빳한 천원짜리를 돌려주었지만 주영이가 준 편지 속에 접혀 있던 꾸깃꾸깃한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은 무엇보다 소중한 제 보물이 되었지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쓰지 못하고작은 상자에고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주영이가 진심을 담아 저에게 준 편지와 축의금은 제 머리가 아닌 가슴 속에 잊혀 지지 않고 앞으로도 생생하게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돈'이 아닌 진정어린 축하를 담은 '축의금'을 전달하자 축의금이나 조의금 같은 부조금은 우리 조상들이 서로 힘든 일을 번갈아 도우면서 시작된 전통문화의 하나입니다. 저는 수업과 일상생활을 통해 아이들에게 진심어린 축하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왔지만, 정작 저 자신은 진심어린 축하가 무엇인지 잊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꺼내 본 주영이의 편지와 축의금을 보면서 제가 전달했던 축의금과 조의금이 당사자들의 큰 경조사에 힘이 되어주는 진정한 의미의 부조였는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제자의 진심어린 마음이 저에게 반성의 시간을 준 것이지요. 얼마 전에 다녀온 친구 아들의 돌잔치에서 제가 건넨 하얀 봉투는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앞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의 '축의금''이었을까요? 아니면, '내지 않으면 면이 서지 않는다', '나에게 축의금을 줬으니 나도 줘야지'와 같은 계산적인 의미를 갖는 단순한 '돈' 그 자체였을까요? 앞으로 가는 경조사는 주영이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며 저 역시 진실된 의미의 부조를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충남 서산 서령고는 27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제30회 서령제 및 동아리발표대회를 가졌다. 이번 대회는 1부-동아리발표대회 전시부문, 2부-동아리발표대회 발표부문, 3부-서령제 학생공연 등 총 3부로 나누어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진 행사에서 하이라이트는 서령제 학생 공연이었다. 방송제, 관악부 합주, 노래(트로트.랩), 공연(춤.댄스), 태안여고 댄스팀 등이 출연해 분위기를 한껏 달궜다. 이번 축제는 서령인의 끼와 재능을 맘껏 발휘한 시간이었다. 장진호 학생회장은 인사말에서 “젊음이 있기에 열정이 넘치고, 그 열정이 있기에 우리는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축제를 준비해왔다”며 “공부할 때는 학생다운 모습으로 공부에 매진하고, 놀 때는 화끈하게 놀 수 있는 그런 뜨거운 열기를 이번 축제에서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며 성공적인 축제의 한마당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 함성과 박수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된 폐회 및 뒷정리에서도 서령인들의 깔끔한 정리 모습을 보여 한결 성숙한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이번 서령제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모든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해 성황을 이뤘다. 특히 이번 축제는 동아리발표대회와 함께 진행되어 뜻이 더욱 깊다.
최근 교육부가 내부형 교장 공모제 확대를 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교장 자격증 미소지자가 지원할 수 있는 '내부형 공모 학교'의 제한 규정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교장 공모제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2018학년도부터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운영하려는 학교 중 15%까지만 교장 자격증 미소지자가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현행 규정을 없애는 것이다. 내부형 공모제 확대 등을 담은 이 방안이 포함된 교육공무원임용령은 입법예고 등을 거쳐 2018년 9월 1일자 임용 교장 공모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가 교장으로 임용되는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확대 시행하기로 함에 따라 특정 노조 출신의 공모 교장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007년 처음 도입된 교장공모제는 승진 중심의 교직 문화를 개선하고 능력 있는 교장을 공모해 학교 자율화와 책임경영을 실현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이번 개선 방안은 현행 신청학교의 15%만 교장공모제를 시행할 수 있는 규정을 없애고 학교공모교장심사위원회 교원·학부모·외부위원 비율을 명시하는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안에 대해서 교직단체의 입장이 찬반 양론이 갈리고 국민적 여론도 둘 갈래로 양분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통교육을 담당하는 초ㆍ중ㆍ고교 교장 자격증은 교직 경력 20년이 넘는 교사가 교감을 거친 뒤 교장 자격 연수를 이수해야 얻을 수 있다. 교장 자격증은 교사로 출발하여 다양한 경력, 연수, 복무 등을 종합하여 얻는다. 즉 근무성적, 연수성적, 가산점 등을 종합하여 자격연수 대상자로 선정된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면 50세 초반에 교장 자격증을 얻고 교장으로 임용된다.교육부는 교장공모제가 학교 혁신과 교육 개혁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기제라고 항변한다. 젊고 능력 있는 교장을 임용해 학교 현장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냉 수 있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유능하고 민주적 소양이 풍부한 평교사가 교장을 맡을 기회가 늘어나 학교혁신과 민주적 학교운영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보고 있는 편향적 시각이다. 2012학년도 이후 5년간 전국적으로 73명의 무자격 내부형 교장이 임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해 학교가 혁신됐다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 73명 중에 특정 노조 출신 교사가 무자격으로 교장에 임용된 것이 52명으로 비율이 71.2%이다. 특히 진보 성향 교육감이 있는 서울·인천·광주·전남 지역에선 무자격 공모 교장은 전원이 특정 노조 출신 교사였다. 교육감과의 친분 관계에 의해 교장이 될 수 있는 내부형 교장 공모제 확대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다. 교장공모제는 교육감 코드인사, 보은인사, 특정 노조 출신 교장 진입 통로이고 교육감 눈치만 살피고 포퓰리즘적인 교사가 교장에 임용되는 소위 ‘무자격 교장 공모제’라는 혹평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결국 내부형 공모제가 본래 취지와 달리 특정 이념ㆍ정치적 성향 교사들의 B코스 교장 진출 통로로 악용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특정 교직단체ㆍ노조 출신이 아니면 무자격 교장 공모제 통과는 불가능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진솔한 교육에 진력하기보다 특정 노조 활동에 전념하다가 15년 만에 교장이 되는 경우를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지대한 것이다. 내부형 교장 공모제 확대는 평생동안 교육·연구 경력을 쌓아온 수많은 교원들의 미래 예측 자기 관리를 송두리째 흔드는 비현장 친화적 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교육부의 입법예고인 무자격 내부형 교장 공모 학교 확대가 특정 교직단체, 특정 노조 출신 교사의 교장 진출 확대책이 아닌가 하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교육혁신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무자격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 입법예고를 철회해야 한다. 아무런 검증 없이 무자격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확대하는 것은 교육 혁신이나 개혁이 아니라 개악인 것이다. 학교 경역의 중핵인 학교장을 특정 이념ㆍ정치 성향에 매몰시키고 교육현장을 도외시한 비민주적 탁상행정이다. 이번 교육부의 입법예고는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로 교단 안정과 학교조직 근간 훼손, 교원승진제도 무력화, 직선교육감 끼리끼리 코드·보은인사, 특정 노조 출신 교장 지원 전락이라는 지적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현행 내부형 교장 공모제 비율 15%가 낮다는 입장이지만, 평생을 교단에 바친 상록수 교사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상대적 박탈감이 지대하다. 인사는 만사라 했다. 교원 인사도 평생을 교단에 봉직한 교원들이 수긍하는 인사가 바른 인사다. 학교장은 교직의 꽃이자 교육행정, 학교행정의 중핵(core)이다. 이러한 교장을 이념ㆍ정치적 성향으로 비정통적 교장 진출의 통로로 왜곡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이번 교육부의 무자격 내부형 교장 공모제 확대 관련 입법예고는 교단 안정을 위해 반드시 철회돼야 할 것이다.
‘2017 나의 10대 뉴스’에 들어간 대안학교 강사. 오늘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수료식이 있는 날이다. 공식 명칭은 ‘소중한 학교 결과발표회 및 수료식’. ‘오늘은 아무런 사고 없이, 속 썩이지 않고 무사히 행사를 잘 끝마칠 수 있을까?’ 대안학교 강사라면 날마다 하루 한 번씩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왜? 순탄한 날보다 급변하는 날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대안학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반 정규학교 교육과정으로는 학생들의 특기와 적성을 살릴 수 없어 특별한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학교. 또 하나는 정규학교에서 도저히 적응이 어려워 특별한 형태로 운영되는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이다. 내가 강사로 뛴 곳은 바로 후자의 학교다. 일반학교에서는 상식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 깜작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늘 긴장해야 하는 학교다. 오늘 이 학교에 9명의 학생이 수료를 한다. 3학년 6명, 2학년 3명이다. 여학생이 8명이고 남학생은 1명이다. 행사장엔 내빈들을 모셨다. 경기도의회 부의장, 수원시의원, 서둔동장, 지역교육지원청 관계자, 파출소 지구대장, 마을금고 이사장, 마을만들기 르네상스 센터장, 원적교 담당교사, 학부모들도 참석했다. 대안학교 지도교사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학생들은 어제 예행연습도 마쳤다. 수료생 9명은 준비한 프로그램은 제대로 펼쳤을까? 대안학교 수료식은 축하공연으로 막이 올랐다. 소중한 학교 이현숙 교장이 인사말씀을 하고 있다. 교장 선생님과 운영위원회 교사들과 사전 협의가 있었다. 수료식만 갖는 것이 아니라 결과발표회를 겸해서 갖고. 행사진행은 교사 진행보다는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진행을 하고. 그리하여 1부 진행은 학생이, 2부는 교사가 사회를 보았다. 경과보고는 내가 맡기로 하였다. 학생들 공연은 두드림과 우클레레 연주, 피아노 연주로 정하였다. 다함께 부르는 곡으로는 우리 가요 ‘마이 웨이’가 정해졌다. 졸업가 가사는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 1부 축하 공연으로 식전공개행사가 시작되었다. ‘소리모아 우클앙상블’의 귀에 익은 연주로 수료식 분위기를 띄운 것, 내빈과 학부모들도 함께 손뼉을 치며 흥겨움을 맞추고 흥을 돋운다. 학교장 인사에서는 솔직한 고백이 이어진다. 학교의 하루 시작은 설렘과 기대로 시작하지만 여지없이 실망으로 돌아오는 참담함을 피력한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이라고 호소한다. 2부에서는 재학생들의 축하공연. 신명나는 두드림(난타), 우클앙상블, 피아노 연주가 연주가 선을 보였다. 수료생이 소수이기에 중복 출연은 당연하다. 친구에게, 선배들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이 있었다. 부모님과 선생님께 드리는 글은 안타깝게도 생략되고 말았다. 이게 바로 이들의 특성이다. 아마도 강사의 지도부실과 학생들의 준비 미흡이 원인일 것이다. 수료생들이 신명나는 두드림 공연을 하고 있다. 내빈들이 상장을 수여하고 격려를 하고 있다. 시상과 수료증 전달 시간. 학교에서는 수료생 모두에게 상장을 준비하였다. 이들의 장점을 살려 사기를 앙양해 주려는 교육적 의도가 있었던 것. 내빈들이 나와 격려를 하면서 학생에게 상장을 직접 읽고 전달한다. 각자에게 전달된 상은 인성교육분야에서 친절상, 창의상, 우애상, 협동상, 책임상, 메이크업상, 포토상이다. 교육과정분야에서는 글쓰기상, 예능상 등이다. 수료증을 전달하는 교장 선생님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다함께 노래 부르는 시간에는 윤태규 가수의 ‘마이 웨이’다. 어찌하여 이 가요가 학생들에게 각인되어서 선정되었을까? 멜로디도 익히기 쉽지만 바로 그 가사에 있었다. 바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내가 가야 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 일어나 한 번 더 부딪혀 보는 거야” 이들에게는 다시 일어나려는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흔히들 ‘선생님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한다. 교사의 길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정규학교에서 39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이 대안학교에서 7개월간 겪은 일이 가슴이 저리다. 정규학교에서의 고생은 별거 아니다. 이곳 교사들은 마음고생이 무척 심하다. 학생들이 교사를 무시하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이들을 다스릴 만한 방법이 없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보면 교직에 회의감이 든다. 그러나 여기 교사들은 그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었다. 교사들이여,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교육부의 교장공모제 확대를 위한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안’ 입법예고에 27일 한국교총과 17개 시․도교총은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을 비롯한 17개 시․도교총 회장단은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직선교육감의 코드․보은인사, 특정노조 출신 교장 만들기로 전략한 선례가 있고 불공정한 제도”라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현 정부의 약속과 배치된다”고 밝혔다. 교총은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전 조직․회원 항의 서한 및 의견서 전달 △교육공무원법 개정 입법 청원 △전국교육자 총궐기대회 등 강력 투쟁할 것을 예고했다.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주제는 '공부' 선배의 조언에 귀 기울이자 '다른 사람과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한 경쟁'으로 최근의 '학습 방해물은 스마트폰' 올해는 '자기주도학습법'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초,중학생들을 많이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의외로 학습의 기본자세, 학교 수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모르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녀를 가진 우리 부모님들 시선에는 자기 자식과 주변의 아이들만 눈에 잡힐 것이다. 내 자녀가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학교 성적의 결과만 보지 말고, 평상시에 자녀가 학교 수업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선생님과의 관계, 수행평가에 대한 학생의자세, 친구 관계 등등. 많은 학생들을 만나면 정말 다양한 수준의 아이들을 보면서 인간사회의 오묘함을 느낀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은 공부라는 주제이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이여, 열심히 배우자! 아무도 그대들의 운명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단지 공부를 시험 잘 보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된다. 외고, 자사고 입시 개편 등 아무리 급변하고 요동치는 입시 정국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인정받는다는 원칙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고, 혼란스러워 하지 말고, 선배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자. 그래서 오늘은 순천동산여중을 2015년 2월에 졸업하고 순천매산여고에서 고교생활을 멋지게 보내고 모든 사람이 선망한 대학에 진학한 선배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동행하였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정보가 많은 탓인지선배,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 정보의 가장 큰 근원지는 책이다. 그러나 정말 영향력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실제로 이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이야기다. 항상 학생들에게 시간은 부족하다. 그리고 할 것은 많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모두가 강조하는 공통점의 첫째는 목적의식이다. 목적의식이라고 거창한 게 아니다. 지금 당장 두 달 앞,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험에 몇 점을 받겠다는 소소한 목표도 좋다. 자신의 행동선언이다. 자신의 공부계획을 세워서 앞으로 있을 시험에 일정을 표시하고 각 과목의 점수나 전체 평균 점수를 목표로 하는 것도 좋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월 주 일 단위로 공부해야 할 분량을 정하고 달성할 수 있는 정도의 목표라도 정해야 한다. “왜 공부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롱런할 수 있다. 일단은 중간 수준의 학생이라면 “이번 모의고사에서90점을 받기 위해 공부한다”는 목표를 추천하고 싶다. 가고 싶은 상급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고 합격선에 맞춰 3, 6, 9, 11월 각각의 모의고사에서 받고자 하는 영역별 목표 점수를 정한 뒤 그 점수에 도달하기 위해 공부할 교재와 분량을 정하면 된다. 장차 목표가 대기업 취직이라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유리하다. 이를 위해 중, 고등학교 때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성장해야 한 단계씩 전진이 가능하다. 목적의식이 뚜렷해지면 전처럼 어렵지 않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작게는 곧 다가올 모의고사 점수로, 조금 더 크게는 올해 성적을 올리겠다는 계획으로,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고 목표를 설정했다면 이제 좀 더 세밀한 공부 습관만 잡으면 된다.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아직도 획일화되어 있다 보니 일률적인 가치관에 의하여 학력 경쟁을 중요시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사람과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한 경쟁'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즉, 나의 개성이나 강점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이것을 살리는 경쟁이다. 자신의 흥미, 관심 등 전혀 재미가 없는 것을 한다는 것은 괴로운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일찌기 자신만의 분야를 찾기 위해 선배, 부모, 선생님의 조언을 잘 들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수능으로 대학진학을 생각한다면 주중에는 문학 지문 몇 개, 비문학 지문 몇 개, 수학 문제 몇 개, 과학 문제 몇 개 푼다는 식으로 하루에 해야 할 4개 영역별 공부 분량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주말에는 주중에 공부한 내용 중 어려웠던 부분을 다시 점검하고, 모의고사 문제를 풀거나 주중에 세웠던 계획 중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부분을 보충해야 한다. 어제 계획한 공부를 다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해서 어제의 공부를 오늘 하면 애써 세운 계획이 무의미하게 계속 밀리는 악성 도미노 현상을 겪을 수도 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도 집중력이 높은 학생과 낮은 학생은 공부의 효율성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집중력이 높은 학생은 자신이 집중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바로 궤도를 수정해 집중력을 높인다. 반대로 집중력이 낮은 사람은 자기가 딴생각을 하는지 금방 알지 못하고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 헛되이 보낸 시간에 대해 괴로워한다. 그런 잡념 속에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곤 한다. 집중력 현황판 만들기도도움이 된다.집중력이 떨어지면 집중력 현황판을 만들어본다. 공부할 때 종이 한 장을 옆에 두고 딴생각이 날 때마다 그 내용과 시간을 쓴다. 공부에 방해가 됐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면 집중력이 깨진 시간과 방해 요인의 종류, 방해 요인을 해결하는데 들인 시간을 적어본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하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면 통화를 시작한 시간과 끝낸 시간을 기록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 인터넷 서핑을 했다면 마찬가지로 강의를 다 들은 시간과 서핑을 끝낸 시간을 현황판에 기록한다. 공부를 다 끝낸 다음에 방해 요인을 필수(어쩔 수 없는 방해거리), 중요(꼭 처리해야 할 방해거리), 낮음(미뤄도 되는 방해거리) 등으로 방해가 주는 가치의 척도를 분류한다. 집중이 안 된다고 막연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보다 자신의 학습 시간이 어떤 주기로 움직이는지, 자신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음이나 가족의 심부름 등 주위 환경이 문제라면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최근에는 가장 큰 방해물이 스마트폰이다. 이것 때문에 부모와의 갈등도 심해진다. 가장 성적이 우수한 박수빈 학생도 하루를 보낸 자신의 평가에서 " 11시 전까지는 나름 시간을 잘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핸드폰을 만진 것과 동시에 시간을 안타깝게 흘려보냈다. 절제력을 가지고 핸드폰 사용을 줄여야겠다."면서 다시 자신을 추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방학을 맞이하여 자유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오늘 학교에서자율 시간이 많이 주여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한 점이 아쉽고..."라고 자신을 평가하면서 반성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서울대 합격한 박수빈 선배, 후배 찾아 꿈 이야기 각종 체험학습 보고서 쓰기, 독후감 쓰기, 영어표현력 경시대회, 생각나무 키우기'에서실력 발휘 학교 수업을 충실하게 하기 중학생 시절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야 한다. 이는 꿈을 정하고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꿈이 없으면 힘을 낼 수가 없다. 동기부여가 안되기 때문이다. 꿈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순천동산여중은 다른 학교보다 먼저1학년 2학기를 '자유학기제'로 실시했다. 이 기간에는 다양한 진로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꿈을 찾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만일 찾지 못하였다면 아직도 늦지 않으니 탐색 작업을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26일은 특별히 순천동산여중을 2015년 2월에 졸업해 이번 대입에서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게 된 박수빈 학생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중학교 생활 중 어떻게 공부하였으며, 후배들에게 어떻게 중학교 생활을 잘 보낼 것인가에 대해 알려달라는 초청을 받아 1학년 4반 교실,27일은 1반, 3반 교실을 찾았다. 남은 2년간이 인생의 진로 결정을 하는 중요한 기로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한 시간 동안 질문하고 답하기를 통해 진로 탐색을 하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 순천동산여중 3년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있다면? - 중학교 생활둥 꼭 공부에만 신경 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전체 석차가 5등이 된 적도 있었다. 운동도 좋아하여 피구동아리에 들어가 건강하게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주어진 학교 수업 시간을 가장 소중히 하여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중학교 때 실천한 공부 방법을 소개한다면? - 대부분 성적 우수한 학생들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가장 먼저 학교수업에 충실하고, 수업중 한 번도 잠을 잔 적이 없었다. ▲ 서울대학교 진학을 결정하게 된 동기와 고교 공부 중 가장 힘든 것을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 처음에는 서울대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였는데 고등학교에 가서 밀알장학생 선배들을 만나면서 서울대 진학에 대한 꿈이 생겼고,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격려를 많이 받았다. ▲ 지금까지 공부가 힘들었을텐데 진로결정에 가장 도움을 준 분이 있다면 소개하여 주시길? - 특별한 분이 아닌 중학교에서부터 선생님과 관계를 좋게 하여 선생님들의 격려가 많았던 것 같았다. 중학교 3학년 때 밀알장학금을 받고 더욱 열심히 해야하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 관내 입학 초등학생들에게 순천동산여중의 좋은 점을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순천동산여중은 현재 내가 다니는 순천매산여고 보다도 운동장을 비롯하여 학교 내부 시설이 너무나 좋다. 하지만 주변 초등학교 학부모나 학생들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 현재 재학생들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를 후배들에게 잘 소개하여 순천동산여중이 좋은 학교로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재학생 모두가 노력을 하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입소문이 나게 해야 한다. ▲ 미래의 꿈을 소개하여 주신다면? - 중학교 때는 약사가 되는 꿈을 꾸었지만 점차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 커져 생명바이오소재학과를 진학하게 되었다. 장차 의료치기를 만드는 연구자의 길도 생각하고있다. 꿈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순천동산여중은 다른 학교보다 먼저1학년 2학기를 '자유학기제'로 실시했다. 이 기간에는 다양한 진로체험을 통하여 자신의 꿈을 찾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만일 찾지 못하였다면 아직도 늦지 않으니 탐색 작업을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박수빈 학생(순천매산여고 3학년)은 순천동산여중 재학중 이 제47기 학원밀알장학생으로 선발돼 고교 3년간 연 200만원과 대학입학준비금으로 300만원 총 900만원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하게 돼 순천지역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학생은 평소 학교생활에서 '각종 체험학습 보고서 쓰기, 독후감 쓰기, 영어표현력 경시대회, 생각나무 키우기'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졸업할 당시 꿈은 “약사가 되어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앞으로 ‘희망을 주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꿈 ”이라고 했다.
경북 문경공고(교장 함종환)는 매력적인 직업계고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2일 문경새재(경북 문경시 문경읍 소재)에서 1, 2학년 재학생 210명을 대상으로 사제동행 문경새재 둘레길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매직(매력적인 직업계고)사업 중 핵심프로그램인 비젼을 제시하는 학교, 흥미롭게 경험하는 실전수업, 머물고 싶은 행복 공간, 이웃과 함께하는 학교 만들기와 학업중단 예방 및 건전한 성장 발달에 도움을 주고, 위기 학생 및 부적응학생들의 심신을 정화하고 또한, 사제동행 문경새재 둘레길 걷기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지속적인 관리와 잠재력을 개발하고 학교적응력을 높이고자 인성교육 실천차원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 본 프로그램 주요 미션으로는 학급별 단체사진 찍기, 신길원 현감 충렬비 인증샷 찍기, 산불됴심비 인증샷 찍기, 시가 있는 옛길에서 시비(시가 새겨져 있는 비석)인증샷 찍기, 문경새재 민요비 인증샷 찍기, 주막 인증샷 찍기 등을 통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참여도를 크게 높이는 한편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여 푸짐한 상품을 시상하기도 하였다. 함종환 교장은 본교가 2017 대한민국 미래학교박람회 참가학교 선정과 더불어 2017 학업중단 예방 우수학교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모든 교직원이 학생 인성교육 실천을 위해 함께 노력한 결과이며, 향후 본교가 글로벌 BEST 특성화고로 자리메김하기 위해서는 교육청과 학교운영위원회, 동창회, 유관기관 등을 비롯하여 지역사회의 성원이 필요하며“모든 구성원이 다함께 Go Together”하자고 힘주어 말하였다.
경북 문경공고(교장 함종환)는 매력적인 직업계고 육성 및 생활지도 특별지원학교 어울림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교폭력 예방활동 및 인성함양을 위해 1일부터 28일까지 약 한 달간의 긴 시간에 걸쳐 전교생을 대상으로 매력적이고 다양한 사제동행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동장군처럼 꽁꽁 얼어붙은 학생들의 마음을 활짝 열고 있어 주위로부터 크게 주목받고 있다. 매직(매력적인 직업계고)사업 중 핵심프로그램인 비젼을 제시하는 학교, 흥미롭게 경험하는 실전수업, 머물고 싶은 행복 공간, 이웃과 함께하는 학교 만들기와 학업중단 예방 및 건전한 성장 발달에 도움을 주고, 위기 학생 및 부적응학생들의 심신을 정화하여 학생들에게 자존감을 높이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글로벌 산업인재를 육성하고자 인성교육 실천차원에서 본 매직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 본 사제동행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첫째, 사제동행 학교폭력 예방 UCC공모전, 둘째, 사제동행 도자기 빗기/굽기 체험, 셋째, 사제동행 학교폭력 예방 골든벨 대회, 넷째, 사제동행 문경새재 들레길 걷기 등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참여하게 됨으로서 사제지간 정이 싹트고 학생들 간에도 우정이 쌓아져 천년지기가 되는 디딤돌이 되었다고 하였다. 함종환 교장은 본교가 2017 대한민국 미래학교박람회 참가학교 선정과 더불어 2017 학업중단 예방 우수학교에 선정되어 경상북도교육청 이영우교육감으로부터 우수상과 표창패를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모든 교직원이 학생 인성교육 실천을 위해 함께 노력한 결과이며, 향후 본교가 글로벌 BEST 특성화고로 자리메김하기 위해서는 교육청과 학교운영위원회, 동창회, 유관기관 등을 비롯하여 지역사회의 성원이 필요하며“모든 구성원이 다함께 Go Together”하자고 힘주어 말하였다.
교총은 학생 성추행 누명으로 자살한 전북 교사, 학부모의 요구대로 학생을 휴게소에 내려줬다가 아동학대로 몰린 대구 교사 등에 소송비를 지원한다. 교총 교권옹호기금운영위원회는 1일 심의를 통해 올 하반기 교권침해 23건에 대한 소송비 4750만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14일 해당 시도교총에 소송비 보조금 신청에 대한 심의결과를 통보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8월 학생 7명에 대한 성추행 누명으로 자살한 전북 부안 송 모 교사의 유가족이 전북교육청과 전북학생인권센터 관계자들을 상대로 형사 고소한 사건에 대해 소송비 300만원을 지원한다. 유가족은 무리한 조사와 비상식적인 행정처분으로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했다며 고소했다. 또 ‘휴게소 방치’ 사건으로 알려지며 교육청으로부터 직위해제 처분을 받고 학부모로부터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형사 피소된 대구 초등 교사에 대해서도 소송비 500만원을 지원한다. 체험학습을 가는 도중 6학년 여학생이 복통을 호소하자, 갓길에 버스를 세울 수 없어 버스 안에서 용변을 보게 하고 학부모 요구대로 휴게소에 학생을 남겨뒀는데,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민원을 제기해 수사를 받고 있는 건이다. 이외에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아 교실 뒤에 서있으라고 한 경기 A초 교사에 대해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건, 학생 간 다툼으로 부상을 입은 학생의 학부모가 원만한 화해가 이뤄지지 않자 학교장과 담임교사, 가해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대해 각각 소송비 25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교총은 학교안전사고, 신분 피해, 학부모와의 분쟁 등으로 소송이나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교총 회원에 대해 변호사 선임료를 보조해주고 있다. 소송에 대해서는 심급별로 500만원 이내로 3심까지 최고 1500만원, 교원소청심사나 행정심판 등에 대해서는 200만원 이내에서 지원하고 있다.
겨울 햇살이 창가를 통해 들어오고 있다. 푸른 하늘이 보인다. 바깥 날씨는 완전무장을 하고 나가야 견딜 수가 있다. 이런 날씨 속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선생님? 학생들의 질의에 정확하게 대답하는 선생님이다. 오늘 길음 주변에 있는 농협은행(중앙회)에 볼 일이 있어 찾아갔다. 한 분에게 물었다. 주변에 농협은행이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대답했다. 분명 길음 주변에 있는 것을 네이버로 검색을 했는데 없다고 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없다고 하니 더 힘들었다.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질의에 모를 때도 있다. 그러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빙 둘러 더 헷갈리게 만들면 안 된다. 길을 가다가 아파트 청소하시는 분에게 물었다. 가르쳐 주셨는데 대충 알아들었을 뿐이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질의에 확실하게 알아듣도록 해야지 대충 알게 하는 것도 안 된다. 또 물어야 했다. 친절하게 가르쳐주기는 하는데 농협은행과 단위농협을 혼돈하고 있었다. 즉 정확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어물어 찾아가니 농협은행이 아니고 단위농협이었다. 혹독한 날씨 속에 걸어가니 다리는 무겁고 또 실망했다. 들어가니 입구에 한 직원이 있었다. 농협은행이 어딘지 물으니 찾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8단지 주변이라고 했다. 8단지가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농협은행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선생님의 정확한 지식의 전달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무엇을 물어도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친절한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이제 길음역을 가는 길을 묻게 되었다. 한 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반면에 어떤 분은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질의에 답변을 해주어야 하겠다. 애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면 그 다음부터 질문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것 같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길을 묻곤 하면 아주 친절하게 갈 길을 안내해 주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경기 안산서초 책나래 봉사단 어머니에서는 18~21일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연극을 도서관에서 공연하였다. 연극은 기본생활습관을 형성해야하는 저학년 아동들을 대상으로 학교생활 중 공감하기 쉬운 내용을 코믹하고 기발한 요소들을 넣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공연에서 다양한 표정과 몸짓, 목소리로 실감나게 연기하기 위해 어머니들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매일 모여 약 45일간 연습을 했다. 연극소품부터 대본각색까지 모두 어머니들이 손수 준비하였다. 이번 연극은 어머니들이 해설부터 실감나는 연기까지 완벽히 소화해 아이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문화 체험 소외 계층의 아이들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연극을 관람한 학생 이○은 “엄마들이 책을 보고 따라하니까 책을 읽는 것보다 실감나고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하였다. 관람한 교사 이○은 “어머님들의 연기 수준과 극의 완성도가 높아 아이들의 몰입도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연극이라는 장르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도 재미있게 관람한 것 같습니다. 어머님들께 감사합니다.”라고 전했다.
며칠 전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교원문학회 동인지 ‘교원문학’을 잡지로 정식 등록했다. 2016년 창간호에 이어 지난 5월 ‘교원문학’ 제2호를 발간한 걸 생각하면 좀 더딘 행보라 할 수 있다. 이것저것 서류 구비하는 것도 번거로웠지만, 어차피 만만찮은 교원문학회 운영비를 감당할 요량으로 창립하고 회장도 맡아서 그런지 굳이 등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교원문학’을 잡지로 애써 정식 등록한 것은 도의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신청하기 위해서다. 시에 잡지 등록이 되어 있어야 신청 자격이 주어지는 것을 비로소 알게된 것이라 할까. 교원문학상은 그렇다쳐도 ‘전북고교생문학대전’같이 이런저런 문학회보다 한 발 나아간 활동을 하고 있는데, 탈락할 이유가 없다는 은근한 자신감도 작용했지 싶다. 이를테면 곧 있을 2018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신청 준비를 나름 마친 셈이다. 이제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사업 신청후 결과를 기다릴 일만 남게 되었지만, 다른 문학회에 대한 부러움이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것은 동시에 교원문학회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다름이 아니다. 교원문학회 회원 수가 다른 문학회에 비해 너무 적음을 새삼 깨닫게된 것이다. 속된 말로 ‘쪽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문학상 시상식을 참석하거나 이런저런 동인지들을 받아보면서 절로 든 생각이다. 가령 시인들은 전북시인협회 회원들이다. 회지 말미에 실린 회원 주소록을 보니 230명이 넘는다. 수필가들은 전북수필문학회 회원들이다. 나 같은 평론가나 시인들도 회원으로 있지만, 그 수가 150명이다. 장르 불문한 ‘한국미래문화’ 회원은 타지 116명을 포함해 250명이 넘는다. 그것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한국미래문화’ 제28집은 기존 ‘한국미래문학’에서 제호를 바꿔 새롭게 출간된 회지다. 제호뿐 아니다. (사)한국미래문화연구원은 회원 가입 유무를 물어 회원제 문화예술단체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전에 없었던 회비납부의 의무가 회원들에게 지워졌음은 물론이다. 나 역시 가입을 희망해 회원이 되었는데, 그 주소록을 꼼꼼히 살펴보니 일종의 의문이 생긴다. 내가 교원문학회 가입을 권했을 때 거절했던 교원문인들이 상당수 있어서다. 그 의문엔 두 가지 답이 가능할 수 있다. 먼저 회비다. ‘한국미래문화’ 일반 회원 회비는 1만 원이다. 반면 교원문학회 연회비는 5만 원이다. 입회비도 따로 5만 원을 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회장에 대한 불신이나 비호감일 수 있다. 지난 해 교원문학회 창립 당시 회원은 20명이었다. 아쉬워하면서도 회원 수가 증가하길 고대(苦待)했던 발간사와 달리 제2호를 펴낼 때는 오히려 1명이 줄어든 19명이었다. 3명이 탈퇴하고 2명이 새로 들어온 결과다. 정기총회 안건중 하나로 심도있게 회원 배가 논의를 했을 정도다. 온전한 파악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전⋅현직 교원 문인은 도내에만 100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100명만 잡아도 그중 20%가 채 안 되게 참여한 교원문학회다. 이건 문제가 좀 있지 않나? 시인이면 자연스럽게 전북시인협회 소속이듯 전⋅현직 교원은 자동으로 교원문학회 회원이 될 것이란 아전인수적 착각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그것을 깨닫는 지금 참 서글프다. 그럴망정 최근 저서나 회장으로 있는 동인지를 보내준 교원문인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교원문학회 가입 안내문을 보냈다. 설마 전⋅현직 교원임을 밝히기 꺼려 교원문학회 입회를 안하는지 너무 ‘쎈’ 회비 때문 망설이는지 알 수 없지만, 이대로 안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 교원문학회 새해 소망은 회원 수가 많이많이 늘어나는 것이다. 교원문학회는 여느 문학회와 다르다. 선생님으로서의 자부심을 뿌듯하게 가진 채 문학활동하는 교원만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문학회여서다. 한교닷컴 이용 전⋅현직 교원 문인에게도 동참을 권한다. 입회는 입회원서 없이 입회비 납부로 완료된다. 현재는 전북도내 전⋅현직 교원 문인들이 주축이지만, 교원문학회는 원칙적으로 전국 문학회임을 표방하고 있다. 회지 ‘교원문학’이 필요하거나 입회 뜻이 있는 분은 연락바란다. 연락처는 메일 yeon590@dreamwiz.com, 손전화 016-654-9593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꿈꾼다. 행복은 누구나 원하는 삶의 가지로서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은 정말 행복합니까?”라고 물어보면 과연“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한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남들이 안 된 것을 이야기하며 불행을 즐기려는 생각이 있는 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사랑을 줄 때는 아무 조건 없이 진실 된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한다. 최근 일본에서 은퇴한 60대 여성을 대상으로 행복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행복한 사람을 공부를 시작하거나 취미활동을 하거나 남을 위해 나눔과 봉사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란 보고가 있었다. 오늘 당장 먹고 잘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행복하다. 행복도‘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파티나 연회에서 나온 음식은 음식이 아니라 작품을 내놓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게 되고 격식과 매너를 지켜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맛있는 식사를 하기 힘들다고 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배고프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보람 있는 일에 육체노동을 하고 땀을 흠뻑 흘린 후에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의 재산, 행복, 용모를 더 부러워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더 가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요즈음 드라마나 방송에서는 더욱 더 그러한 것 같다. 자꾸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데 정작 그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을까? 궁금하다. 요즈음은 바쁘지 않게 사는 사람들이 비정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출세, 성공, 일중독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을까? 진정한 행복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유지 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진정한 행복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길 때 가능하다. 어릴 적 모습처럼 새해에는 순간순간 순수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냐. 영임이가 날 보고 웃잖아.” 하자, 영임이가 다시 낄낄거리면서 “너 이마에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썼어.” 하였다. 이 말에 아이들은 모두 우리 쪽을 바라보고서는 승희의 이마에 팔뚝으로 문지른 자국이 흙투성이 인 것을 보고 한 바탕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승희가 울상이 되어서 “왜에. 얼굴에 뭣이 묻었는데?” “얼굴이 아니라 이마에 흙이 묻었다구.....” 내가 대답을 해주자 승희는 그제야 웃으면서 “넌 안 묻은 줄 알고, 너희들도 다 묻었어. 옆에 사람에게 물어봐.” 하며, 웃어 버리고 말았다. 약 4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이미 일이 끝난 아이들이 잠시 쉬었다가 다른 사람의 줄을 잡아서 도와주기 시작하였다. 형주는 어느 새에 자기 줄을 널펀하게 다 베어 눕혀 놓고서 선생님의 두둑을 거꾸로 베어 오고 있었다. 문섭이도 다 베고 나서 가장 길게 남은 승희의 줄에서 중간에서부터 베어서 도와주고 있었다. 우리는 1학년 입학을 해서 졸업을 하도록 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같은 반에서 그대로 올라가기 때문에 모두 한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만약 한 동네에 사는 여자아이가 아파서 걷지 못할 만큼 심하면 남자아이들이 들쳐 업고 달려갈 만큼 우리들은 남자, 여자를 따지고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에서나 남자니 여자니 따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었고, 이렇게 도와주어도 어느 누구도 흉을 보거나 이상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같은 학급의 친구일 뿐이었고, 서로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커다란 논의 보리 베기가 끝나기까지는 불과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찌나 열심히 베었든지 모두들 말을 하는 것도 잊은 듯했다, 승희네가 몇 마디 하는 사이에 웃음꽃을 피운 것이 전부였다. 선생님도 얼굴에 땀방울이 맺혀서 주르르 흘러내리고 등줄기를 타고 내린 땀이 흘러 내여서 바지의 허리띠 부근이 흠뻑 젖어 있었다. “자, 잠깐 쉬자, 우리가 벤 것이 450평이라는데 꼭 25분이 걸렸나보다. 이렇게 하다보면 오늘 너무 많이 베게 될 것 같은 데 걱정이다 너무 힘을 빼지 말아라. 하루 종일 베려면 안 된다.” 하시면서, 논둑에 걸터앉으셨다. 나는 그냥 쉬는 것보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자고 생각해서 “ 산 위에서 부는 바람......” 하고 노래를 시작하였다. 모두들 따라 불러 주어서 금세 음악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다음 논으로 가서 자기가 맡을 줄을 잡으면서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 어쩐지 신이 나고 힘이 덜 드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더운 날씨가 점점 더 견딜 수가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무더위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작업은 멈추지 않았고, 우리가 지나는 들판은 깨끗하게 면도를 한 듯이 보리가 베어져 눕고 말았다. 벌써 들판의 한 부분이 우리들의 손으로 깨끗하게 베어져 가고 하늘 높이 떠오른 햇볕은 목덜미를 따끔거릴 정도로 따가워 졌다. 우리는 시내에 가서 파놓은 웅덩이에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땀을 닦고, 목에 두르면 훨씬 더 시원해졌다. 한 시간쯤 일을 하고 잠시 쉬고, 다시 시작하여 쉬기를 세 번째 하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논주인 되시는 분들이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 주셔서 그걸 먹으면서 잠시잠시 쉬었기 때문에 우린 그리 지치지는 않았다. 들판 한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밑으로 모여든 우리는 들판을 지나온 바람이 뜨뜻한 무더위로 우리를 감싸 안았지만, 땀을 흘린 우리는 그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더운 줄을 몰랐다. 점심을 먹고 나자 남자아이들은 시내의 웅덩이에서 멱을 감느라고 소란스러웠다. 여자아이들도 가고 싶었지만 시내에 물이 넉넉하지 않아서 갈 수가 없었다. 우리들이 그늘에서 친구들과 손뼉치기를 하면서 놀고 있을 때, 남자아이들이 돌아오면서 “야 ! 너희들도 좀 씻고 와라. 그래도 물에 씻으니까 훨씬 낫다. 더운 줄을 모르겠어.” 하면서 우리더러 가보라고 하였다. 정말 우리들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물이 얼마나 있어서 남자들이 더럽혀 놓은 물웅덩이가 깨끗해 졌을까 ?’ 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야 ! 여자들도 가서 좀 씻어라. 옷을 벗고 들어 갈만한 물은 없어도 발목을 적시고 씻을 수는 있는 모양이다.”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가보라고 하셔서 일단 우리들은 시냇가로 가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시냇가에 가자마자 제법 물이 고인 웅덩이를 발견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풍덩”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옷들을 입은 채로 물 속에 뛰어 들어서 서로 물을 끼얹기도 하고, 물 속에 텀벙 잠기기도 하였다. 금세 시냇가는 왁자그르르 우리들의 소리로 채워져 버렸다. 한 동안 정신없이 물장난을 하고 있는 동안에 시간은 벌써 제법 흘렀던가 보다 선생님께서 그만 나오라는 호루라기를 길게 불어 주셨다. 우리는 잔뜩 젖은 옷을 대충 물기를 훑어 내려서 털고 나섰다. 그 정도만으로도 얼마나 시원했는지, 아마도 시원한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의 물 속도 이만큼 시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시 옷이 좀 마를 동안에 우리는 들판 한가운데서 신나는 음악 시간을 하였다. 교실 안에서 부른 노래보다는 너른 들판 한 가운데서 마음껏 소리를 질러 보는 것도 상쾌한 기분이었다. 오후에 우리는 정말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모른다. 그 많은 논들이 우리가 지나는 대로 깨끗하게 깎여져 들어 누운 것만 보아도 기분이 좋았다. 오후 5시가 되어서 해가 좀 설풋하게 기울자 이제 더위는 좀 가신 것 같았지만, 우리는 상당히 지쳐 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보리를 베는 논의 주인아저씨가 우리들이 쉬는 시간에 맞춰서 간식을 가지고 오셨다. “자, 아이들아 나오너라. 세참 가지고 왔다. 시원한 아이스 바를 사왔어 !” 하시자 아이들은 모두 베던 낫을 내던지고 논둑으로 나왔다. 선생님께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야 ! 다친다. 너무 달리지 마라. 위험하니까. 모두 다 줄 수 있게 사오셨을 거니까 차례로 와도 돼. 염려들 말고.....” 하시면서 안전을 당부 하셨다. 아이들이 몰려 와서 줄을 서자 아저씨가 모두 하나씩 아이스 바를 들려 주셨다. 우리는 너무 반갑고 시원해서 더위가 다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둘째 날의 작업이 끝났을 때는 오후 5시 20분경 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에 우리는 아침에 약속했던 대로 9,000평이나 되는 논을 모두 베고 나서도, 600평을 더 베었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 사람이 한 마지기 가까이씩이나 벤 것이란다. 선생님은 한 마지기가 얼마나 되는 땅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면서 우리에게 “야 ! 너희들 정말 국민학교 6학년이 맞니? 아무래도 너희들은 농군들인가 보다. 너희들이 오늘 벤 논은 9,600평이나 되는데, 한 사람이 대략 저 논 한 뙤기 만큼씩이나 벤 거야. 엄청나지 않니?” 하시면서 우리들을 칭찬해 주셨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많은 논을 베었는지 다시 한번 우리가 벤 자리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이 이 들판에서 보리를 벤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벤 자리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정말 들판의 한 부분을 몽땅 베어 버린 것이었다. “자, 이제 오늘의 작업은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지치고 힘이 들 테니까 집에 돌아가서는 시원한 물로 깨끗이 씻고 나서 벽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서 약 30분만 있으면 다리 아픈 것이 좀 풀릴 것이다. 꼭 그렇게 좀 해라. 알겠지?” “오늘 우리가 너무 많은 일을 했어. 내일을 아무리 많은 부탁이 있어도 우리가 너무 무리하게 해선 안 되겠다. 너희들의 힘에 겨운 일을 시킨 것은 오늘 내가 잘 못 생각 한 거야. 내일은 좀 적게 할 테니까 오늘 잘 쉬고 나오도록 해라.” 하시면서 피로가 쉽게 풀리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우리는 학교에 가서 가방을 가지고 돌아 와야 했지만 너무 힘이 들어서 내일 공부한 한 시간 책만 들고 가면 되니까 그냥 가기로 하였다. 들판에서 우리 마을은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우리는 들판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지친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기운이 없어서 터덜터덜 돌아갔다. 선생님도 오늘 일을 끝내고 나서는 혼자서 계산을 해보셨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신 것이다. 사실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 시간까지 잔다고 생각하고 잠이 든 것이 그만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났었다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억지로 깨워서 저녁을 한술 떠먹고 다시 들어 눕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손아귀가 아파서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았다. 오빠가 어깨를 주물러 주고, 팔목 운동을 시켜주기까지 하였지만, 아침밥을 먹으려니까 수저를 잘 쥘 수가 없었다. 이런 나의 꼴을 보신 아버지께서 혀를 차시면서 “아니 어린것들에게 얼마나 일을 시켰으면 저렇게 수저질을 못하고 저럴까? 아직 어린 학생들인데 농촌 일손 돕기도 좋지만 어지간히 해야지 아이들이 견디겠어?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저렇게 함부로 일을 시킬 수가 있나? 원.....” 하시는 것을 듣고 나는 만약 아버지가 학교에 오시면 선생님과 싸움이라도 벌이 실 것 만 같아서 “아버지, 그게 아니어요. 농촌 일손 돕기도 하고 품삯을 받아서 우리들 가을 수학여행을 가자고 우리들이 하자고 그런 것 이예요. 선생님도 우리랑 함께 일을 하시느라고 옷도 땀으로 다 젖고 기운이 없어서 흔들거릴 지경이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어제처럼 많이 하면 안 되겠다고 하시면서 우리들이 팔 다리를 쉽게 풀리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어요.” “저 녀석은 제 아비 말은 안 듣더니 선생님은 감싸고돌면서 하는 짓이 뭐야 지금?” “ 아앙, 아빠가 학교에 와서 선생님이랑 싸움이라도 하면 나는 학급에서 쫓겨난단 말 이예요.” “왜? 네가 일러 바쳤다고 선생님이 혼낼까 봐서?” “아니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쫓겨나요. 우리가 그렇게 하자고 결정을 했으니까 선생님이 책임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알았으니 어서 밥 먹고 나가서 오늘은 열 마지기씩만 베어라.” 아버지께서 우리들이 하는 일이 못 마땅하셔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한 사람이 열 마지기라니 그러면 어제 학급 전체가 벤 만큼씩을 베어란 말인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게 미운 소리는 하셨지만, 나를 위해서 아버지는 낫을 잘 갈아서 다치지 않게 새끼로 말아서 잘 싸서 내 운동화 옆에 놔주셨다. 엊저녁 같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니 그래도 몸이 개운하여서 얼른 학교를 향하였다. 어제 가방도 안 가져 왔기 때문에 첫째 시간에 공부할 국어 책만 한 권 달랑 들고, 낫을 들었으니 학교에 가는 것인지 일터에 가는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일에 지친 우리들이지만 아침에 집 앞에 나서니 아이들은 언제 그렇게 힘든 일을 했느냐는 듯이 여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몸이 약한 윤숙이도 힘든 기색도 없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팔이 아프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어제처럼 많은 논을 베지 않기로 했다. 어제 너희들이 너무 무리를 해서 몸살이 나서 다들 학교에 못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단 한 사람도 결석을 하지 않고 다 나왔으니 참 다행이구나. 엊저녁에 힘들었지?”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들은 합창이라도 하듯이 “아아니요.” 하자, 선생님은 어깨를 휘돌리는 동작을 하시면서 “그래? 난 엊저녁에 어깨가 아파서 아이들에게 두들겨라, 주물러라 야단을 했는데?” 하시자, 우리들은 “에게, 그 꼬마들이 두들겨서 시원해요?” 하고 선생님을 놀리기까지 하였다. 선생님은 학교 안의 사택에서 사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선생님 댁의 아이들을 잘 안다. 2학년짜리 딸아이와 다섯 살, 네 살짜리 두 아들을 두셨는데,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우리들을 잘 따라서 가끔씩 아이들을 데리고 놀아 주기도 한다. 아직 세 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을 밀어 주면서 귀여워서 서로 업어 주려고 쟁탈전이 벌어 지기도 하였었다. 그런데 그런 꼬마들이 두들겨 보았자 선생님의 어깨가 시원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시간 공부를 마치자 벌써 우리들이 작업을 하러 갈 논의 주인이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일손이 없는 노인들만 사시는 댁이어서 우선 해드리기로 약속을 했더니, 혹시 다른 곳으로 갈까 걱정이 되셔서 미리 와서 기다리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왕 일손을 돕는 것이지만 일할 만한 젊은 분이 안 계신 그런 댁의 일부터 해 드리는 게 우리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서 우선적으로 해드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새끼미 마을의 앞들에서 베기로 한 날 이었다. 이 마을의 원호 가족 한 집과 노인들만 있는 집, 그리고 우리 반의 정아네 인데, 할아버지가 농삿일을 하시고 아버지는 몸이 허약하여 일을 못하시는 댁인데, 할아버지께서 앓아 누우셨다고 해서 그 집의 일손을 도와 드리기로 약속을 하였다. 학교에서 동남쪽으로 시내를 건너서 산기슭으로부터 흘러내린 듯이 펼쳐진 들판이었다. 그래서 논들이 계단식이고 그리 넓은 것이 별로 없이 한배미가 보통 한 두 마지기씩이나 되는 것들이었다. 300에서 500평 정도의 논바닥에 아이들이 한꺼번에 들어 갈 수가 없어서 두 세 배미씩 나누어서 들어섰다. 아이들이 힘이 들기는 하였지만, 사흘째가 되니까 낫질을 하는 요령이 생기고 보리 베기에 익숙해져서 점점 더 베는 속도가 빨라졌다. 학교에서 건너와서 우리 동네 정자나무 아래에다가 도시락을 가져다 두고, 논에 들어서서 작업을 시작 한 것이 10시 30분이 조금 지나서였는데,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정아네 집의 논 7마지기를 몽땅 다 베어 버렸고, 원호 가정의 논 다섯 마지기까지 거의 다 베었다. 점심 전에 3,600평이나 되는 논의 보리를 다 벤 셈이 된 것이다. 정자나무 아래 제법 너른 마당이 있어서 점심을 여기서 먹게 되었다. 나는 우리 집에 가서 커다란 주전자에다가 시원한 물을 퍼 가지고 와서 선생님께 드리자 “고맙다. 은자야. 집까지 제법 먼데 일부러 가서 이렇게 시원한 물을 떠오니 고맙구나. 아이들이 얼마나 반갑겠니?” 하시면서, 차례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셔서 모두 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점심시간에 잠시 쉬라고 하나 아이들은 그 동안에 고누를 두는 아이들, 씨름을 하는 아이들,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로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선생님께서 정자나무에 기대고 눈을 감으시면서 “얘들아 앉아서 놀자 !” 라고 큰 소리를 하셔서 우리들은 하던 놀이를 멈추고 잠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바로 이 자리에 이렇게 앉아서 ‘얘들아 앉아서 놀자!’라고 했던 선생님의 친구가 있었단다. 지금부터 약 30년 전의 일이구나.” 하시자 아이들은 하던 놀이를 멈추고 모두들 선생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30년 전쯤의 일이다. 이 마을에 살던 선생님의 친구가 몹시 집안이 가난하여서 끼니를 제대로 먹고 살 수가 없었단다. 그 무렵에는 모내기를 하면 모내기 나온 사람들의 식구는 모두 다 나와서 모내기하는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지. 부잣집에서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모두 점심을 대접하는 것이 풍습이었단다. 그래서 그 친구가 아침도 굶고 나와서 기다리다가 점심을 먹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밥그릇은 이렇게 커다란 그릇에다가 고봉으로 수북하게 밥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가득 담은 어머니의 밥을 그 친구가 혼자서 다 먹은 거야. 겨우 일곱 살짜리가 말이야. 어머니는 다시 타다 잡수셨지만, 일곱, 여덟 살 밖에 안 되는 아이가 어른 밥을 수북하게 한 그릇 다 먹었으니 얼마나 배가 불렀겠니? 배가 남산만 해 가지고 여기 이렇게 기대고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지금 너희들처럼 뛰어 너는 거야. 이 친구 뛰고는 싶은데 배가 불러서 뛸 수가 없으니까 친구들에게 한 말이..” 선생님이 여기까지 이야기 하셨으니 무슨 말인지 모를 우리들이 아니었다. 모두들 입을 모아서 합창을 하였다. “얘들아 앉아서 노올자 !”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는 모두들 손뼉을 치며 깔깔거리고 한바탕 웃음보따리를 풀었다. 우리 선생님이 우리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라셨는데, 학교 다닐 적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여서 그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우리 학교로 발령을 받아 오셨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이 동네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신 것은 처음이었다. 잠시 쉬었다가 오후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아이들은 또 다시 시끌벅적하게 놀이를 시작하였다. 정말 나무에 기대어서 ‘얘들아 앉아서 놀자’ 하는 얘들도 있었다. 오후엔 비가 내릴 듯이 구름이 끼어서 작업하기엔 좋았지만, 어른들은 이제 비가 올 가봐 걱정들을 하셨다. 그렇다고 베기로 한 논을 다 베지 않고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서 보리를 베어 나갔다. 오전 보다 훨씬 더 일을 하기가 쉽고, 시원하였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서 열심히 일을 한 덕분에 어제 보다 도 더 많은 실적을 올렸다. 오늘을 10,000평이 넘는 논의 보리를 베었다. 11,400평을 베었는데도 어제 보다 40분이나 빨리 끝났다. 더 벨 논만 있었으면, 아마도 40마지기는 베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논을 베고 나자 동네 어른들이 나오셔서 혀를 내두르셨다. “아니? 이 아이들이 하루에 11,000평을 더 베었단 말이야? 그럼 거의 한 사람이 한 마지기씩을 베었는데? 그럼 어른들과 같은 거 아니야? 아이구 놀래라. 원 아이들이 뭐 이렇게 일을 잘해?” 하시는 분은 바로 이 동네 이장님이셨다. “야 ! 너희들 이젠 저희들이 어른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하게 생겼는데?” 하시면서 앞에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어제 너무 힘들어 하길레 오늘은 조금 적에 하겠다고 했는데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이 베었는데도 이렇게 일찍 끝났는데요.” 하고 이장님께 말씀드리고 나서 “자, 오늘 일은 여기서 마친다. 너희들이 너무 일을 잘해서 이장님이 이렇게 칭찬을 하셨는데, 난 너희들이 지칠까봐 걱정이다. 집에 가서 잘 씻고 다리도 좀 주물러야 한다. 팔과 어깨도 주무르고 푹 쉬도록 하여라.‘ 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너무 일찍 끝나서 섭섭한지 한바탕 놀이를 하다가 떠났다. 우리는 이렇게 날마다 이 동네 저 동네로 다니면서 보리 베기를 한 것이 열흘 동안이나 되었고, 그 동안에 번 돈이 64,000원이나 되었다. 320마지기96,000평나 되는 논의 보리를 우리가 다 베어낸 것이다. 완전히 우리 고장의 논보리의 1/3은 우리가 베었다고 소문이 났다. 이렇게 열흘씩이나 보리를 베고 나니 아이들은 코피를 쏟는 아이들도 있고 모두들 지쳤다. 선생님은 이런 우리들을 보면서 “아무리 나가고 싶어도 안 된다. 난 너희들이 스스로 벌어서 수학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을 보고 지금까지 함께 일을 했지만 , 이젠 나도 지쳐서 더 이상 안 되겠다. 너희들 벌써 코피를 쏟은 아이가 몇 이냐?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은 작업을 나가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더 이상 내 보낼 수 없어. 이젠 안 나간다. 알겠나?”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기가 죽었다. 날마다 돈이 불어나는 것이 좋아서 계속 하자고 하였지만, 지친 아이들이 많아서 더 이상 할 수가 없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선 나도 지쳐서 이제 그만 했으면 싶었다. 그 동안 못한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서 우리는 체육 음악 같은 시간은 줄이면서 우선 국, 산, 사, 자 4과목의 공부를 계속 하였다. 오후 5시가 되도록 하루 열 시간이라도 좋다고 공부에 매달린 우리는 4일 동안에 열흘 동안의 모자란 공부 진도를 거의 다 맞추었다. 우리는 매달마다 월말 일제 고사를 보아서 그 점수만 가지고 성적을 내었기 때문에 안 배우고 시험을 볼 수 없어서 무척 바빴다. 월말이 다가왔었기 때문에 일제고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작업을 하느라고 시험 범위까지 배우지도 못해서 서둘러야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자습시간까지 공부 시간으로 해서 간신히 시험 범위까지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6월 첫 주에 5월말 일제고사를 치르고 나자,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조금 내렸다. 이 비가 오자 농촌은 진짜 야단이 났다. 지금까지 논에 물이 없어서 갈지도 못하고 논둑을 붙이는 일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니까, 논을 갈고 논둑을 붙여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일에 매달려서 단 한 사람도 일손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또 다시 우리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게 되었다. [모내기 농촌일손 돕기 운동]을 펼쳐라 는 지시가 잇달아 내려 왔다. 하긴 그 때만 하여도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대부분이 농사에서 얻던 시절인데 이렇게 날씨가 가물어서 전 국민이 나서서 가뭄대책을 서두르다가 비가 왔으니, 온 나라의 모든 힘을 다 모아서 모내기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만약에 위에서 이런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농사일을 돕기 위해서 농번기 방학을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이기도 하였다.
1977년의 봄은 유난히도 빨리 찾아 왔었다. 지난 겨울에도 별다른 추위가 없이 넘어갔을 뿐만 아니라, 수북하게 쌓일 만큼 눈다운 눈이 내린 적도 없었다. 비가 내린 것도 아니어서 봄이 돼도 파란 싹들이 제대로 돋아나기나 할 것인지가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겨우내 비가 내리지 않은 들판은 봄이 되자 얼었던 것이 녹으면서 온통 먼지만 풀썩거리는 사막과도 같았다. 벌써 물이 고이고 못자리를 할 준비를 해야 할 논바닥은 허옇게 메말라 있고, 쟁기질을 하는 논에서 뽀얗게 먼지가 피어올랐다. 논바닥이 요 모양일 때 밭에 심은 보리나 밀은 자라지 못해서 앙당하게 퍼지기만 하고 키가 자라지 못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 전에 보리밭에 풀을 매고 북을 주어서 보리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작업을 할 때에도 온통 먼지가 날려서 허옇게 흙먼지를 덮어써야만 했다. 하긴 그래서 논에 심은 보리는 다른 해 보다는 훨씬 더 좋은 편이었다.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리는 해에는 보리를 심은 논에 물기가 많아서 보리가 물손물기가 많아 해를 입어 죽어 가는 일을 받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논이 바짝 말라서 밭처럼 고슬고슬하기 때문에 논에 심은 보리는 오히려 아주 잘 자라 주었다. 농부들은 이런 논보리에 정성을 쏟아서 보리 고랑을 쳐 올려서 보리 논 두둑에 뿌려주는 북주기에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 논보리는 다른 해보다 훨씬 더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3월이 되고 4월이 되어도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비가 오겠지, 오겠지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못자리를 해야 할 때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으니까 정부에서도 걱정이 되어서 각 마을별로 공동 못자리를 만들라고 권하였다. 물대기가 편하고 물을 끌어 올 수 있는 곳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힘을 모아서 모를 기를 수 있게 한 곳에 못자리를 만들면 물이 부족하더라도 한 곳에만 대기 때문에 좀 더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양수기나 저수지, 댐이 지금처럼 물을 많이 끌어 올 수 있는 그런 형편이 아니었던 시절이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이 시냇가에 집중적으로 공동 못자리를 만들었지만, 가뭄이 계속 되자 그것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5월도 중순이 되었건만 비가 내리지 않아서 시냇물도 말라서 흐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시내의 바닥을 파서 웅덩이를 만들고 그 웅덩이에 고인 물을 퍼 올려서 못자리의 모들이나마 말라비틀어지지 않게 지켜보려고 노력을 하였다. 이렇게 되자 정부에서는 이처럼 가뭄에 시달리는 농촌을 돕기 위해 어린이들까지 나서서 가뭄극복을 위해 노력 봉사를 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래서 우리 어린이들까지 들판에 나가서 못자리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시내 바닥에 고인 물을 세수 대야나 양동이로 길러다가 말라 비틀어져 가는 못자리에 뿌려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각자가 물을 떠서 가지고 가서 못자리에 뿌리는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까 앞의 아이들이 뿌리고 간 자리만 다시 뿌리기도 하고 좁은 논둑길을 오가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점차로 두 줄로 나란히 서서 물을 퍼서 올려 보내면 이어받기를 해서 못자리에 가면 차례로 받아서 뿌려 주는 사람이 있어서 일은 좀 더 효과적이었다. 비가 오지 않아서 논바닥에서는 먼지가 풀썩거리고 메마른 논바닥의 열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한 평의 못자리라도 더 살려 보자고 우리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물을 퍼 날랐고, 못자리는 조금씩 파랗게 생기를 되찾았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우리 못자리도 좀 해줘요”하고 선생님을 졸랐다. 선생님들도 있는 힘을 다해서 해보자고는 하지만 어린 우리들은 땀이 비 오듯 흐르면서 먼지투성이가 돼갔다. 이렇게 애를 써서 물을 퍼 나르는 모습을 보고 차마 시킬 수가 없었던지 학교 옆의 일부만을 하고는 계속 할 수 없다고 다음으로 미루고 해서 하루 두 시간씩만 물대기 작업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동안에 이미 온 몸은 흙투성이가 되고 땀에 흠뻑 젖어서 옷까지 흙투성이가 되곤 했다. 어린 우리들까지 나서서 못자리 살리기를 하게 되자, 마을의 어른들도 더 이상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냇가를 파고 물을 퍼 올려서 못자리를 살리는 일에 힘을 쏟게 됐다. 점차 마른못자리가 없어지게 됐다. 그러나 못자리의 모가 겨우 목숨을 건지는 정도에서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학교에 우물을 파도록 교육청에서 지원이 나와서 학교 마당에 구멍을 뚫고 우물을 판 곳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우물물을 멀리에 있는 곳까지 끌어가서 못자리를 살리는 데 이용하니 학교 부근의 논들은 우선 갈증을 풀 수가 있었다. 이젠 이 들판에 모내기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온 들판을 가득 매운 보리를 베어 내어야만 모를 심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이제는 보리 베는 일이 급하게 됏다. 가뭄 극복에 힘을 쏟느라고 보리 베기를 할 손이 모자란 농촌의 일손을 돕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이 무렵만 해도 농촌의 학교에서는 보리 베기나 모내기시기에 맞춰서 농번기 휴가라는 것을 하여 우리 같은 어린이들도 농촌의 바쁜 일손을 돕게 했었다. 그렇지만 올해 같은 때는 농번기 휴가가 문제가 아니라 가뭄 극복과 보리 베기, 모내기라는 일이 한꺼번에 해야 하는 농촌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학생들을 동원하여 도와주라는 지시가 내려 졌다. 보리는 벼와 달리 나란히 베지 않아도 탈곡기에 그냥 쓸어 넣어서 털 수 있는 곡식이다. 우리들 같은 어린이들의 손으로 베어도 탈곡을 하는데 크게 불편하거나 어려움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어른들처럼 품삯을 다 받을 수는 없지만, 일부만 받고 일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한 푼도 안 받는 다면 너도나도 해 달라고 해서 어린이들이 다 해주지도 못하고 갈등만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쨌든 우리는 논의 보리를 베러 가야 했다. 처음에 나가서 보리를 베려니까 쉽지는 않았다. 물론 집에서 소먹일 풀을 베어 보기는 하였지만, 보리를 베어 보지 않았던 어린이가 더 많았기 때문에 처음엔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베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몸을 다치지 않게 주의할 점도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첫날 논에 나가서 조금씩 일을 익혔다. 어른들은 한 마지기(약 300평)를 베는데 300원을 받는데 우리 어린이들은 200원만을 받기로 돼 있었다. 우리는 첫날 약 3,000 평을 베었다. 물론 하루 종일이 아니고 오전 공부가 끝나고 나서 오후에만 하여서 많이 벨 수가 없었다. 하루에 우리가 번 돈이 2,000원이 되었다. 우리는 이튿날 아침에 학급회를 열어서 이 돈을 쓸 곳을 의논했다. “우리 이 돈을 모아서 가을 수학여행을 가면 어떻겠어요,” 반장인 경수의 의견은 우리 모두에게 환영을 받았다. “선생님 우리가 수학여행을 가려면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건대요?” 역시 계산에 밝은 영호의 질문이었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갈 수학여행지에 따라 달라지고, 며칠 동안을 갈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우리 고장의 도시에 2박3일 정도로 간다면 약 3,000원 정도면 될 것이다”라고 일러 주셨다. 그래서 우리들은“그렇다면 우리들이 돈을 모아서 수학여행을 갔다 올 수 있게 열심히 보리 베기를 해보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들이 모은 돈으로 수학여행을 가도록 하려면 우리 모두 열심히 보리 베기를 해야 한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래서 의논을 마친 그 날부터 우리는 아침 시간만 공부를 하고 나서 낫을 들고 들판으로 나갔다. 첫날 우리가 3,000평을 베어서 2,000원을 벌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쓸 돈을 저축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우리들을 장난을 하거나 게으름을 피울 이유가 없어졌다. 혹시 누가 게으름을 피우면 우리 스스로가 “야 ! 명직이 넌 혼자만 편하길 바래? 누군 허리 안 아프고 힘 안 들겠어?” 하고 꾸짖으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일어서곤 하였다. 선생님은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그래도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말아라. 무엇보다 낫을 가지고 하는 일이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들하고, 알았지?” 하고 우리들을 격려 해주시기도 하고, 선생님이 앞장을 서셔서 일을 해나가셨다. 아무리 우리가 잘해보려고 해도 선생님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 보리논의 한 두둑씩을 맡아서 베어 나갔다. 자기 몫을 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끝나도록 좀 쉴 수도 있다. 그러나 일찍 끝난 남자아이들은 이런 일에 서투를 수밖에 없는 여자아이들이 아직 저 만큼 베어 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쉬고만 있지 않았다. 가장 많이 남은 여자아이가 베어 오는 두둑을 중간에서 싹둑 잘라서 베어 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우리들이 힘껏 벤 덕분에 우리는 처음 시작한 다음날이자 우리가 보리 베기 삯으로 수학여행 비용을 마련하자고 결정을 한 첫날에는 논 7,200평을 베어서 하루에 4,800원을 벌었다. 일이 끝나고 오후 5시가 거의 되어서 선생님은 오늘 한일을 반성해보는 자리를 가졌다. “자, 오늘 우리가 벤 보리논의 모습을 보아라. 저기 언덕에서부터 여가까지 우리 학교 전체 면적보다도 두 배는 될 만큼 많은 논을 우리가 모두 베었구나”하시면서“오늘 품삯까지 합하면 벌써 두 사람 몫은 벌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모두 “와 !” 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좋아했고,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이렇게 수학여행 비용이 착착 저금되고 있다는 게 너무 좋아서 힘 드는 줄을 몰랐다. 힘든 일을 하였으면서도, 우리들은 신바람이 났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자랑스럽게 오늘 우리가 한 일을 이야기했다. “오늘 우리가 논 7,200평을 베어서 우리 고장의 일손을 돕기도 하지만, 우리가 번 돈으로 수학여행 비용으로 하기로 했는데 오늘까지 두 사람 몫을 더 벌었다고 하셨어요. 우리 열심히 일해서 집안일도 돕고 수학여행 비용도 벌 거예요”하자, 어머니는 걱정스런 목소리로“너희들이 힘든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는지 걱정이구나. 몸살이라도 나면 안 된다. 너무 애쓰지 말아라”하셨고, 오빠는 이런 어머니께“에이, 경미가 언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애예요. 보나마나 꾀나 부리고 제일 꼴찌를 하고 있을 텐데 몸살이 날 까닭이 있어요?” 하면서 혀를 날름 내밀며 나를 놀렸다. “에이, 오빠, 또 날 어린애로 봐. 만날 그런 오빤 뭐 잘하는 게 있어?” “요게? 또 나를 무시하고 덤벼? 너 한 대 얻어맞아 볼래?” “에이, 넌 오빠가 되가지고 동생을 그렇게 놀리고 그러냐? 좀 듬직 해봐라. 그러니까 동생이 널 무시하려는 거 아니냐?” 하면서 오빠를 나무라셔서 다행히 그것으로 끝났지만, 오빠가 종주먹을 해 가지고 군밤을 먹이는 모습을 해서 어머니께 또 꾸중을 들어야 했다. 저녁을 먹은 나는 지쳤는지 금세 잠이 몰려 왔다. 이를 닦았는지 안 닦았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벌써 어머니가 아침상을 들고 들어오시면서 “경미가 아주 지쳤구나. 오늘 학교에 갈 수는 있겠니? 그렇게 힘이 들어서 며칠이나 견딜까? 아무래도 걱정이다. 어서 씻고 오너라. 밥 먹자.” 하시면서, 나를 깨워주신 것이었다. 나는 환한 아침 햇살을 보면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서 뛰어 나갔다. 마음속으로 ‘아차 늦었구나. 서둘러야겠는데.....’ 하면서 서둘러 세수를 하고, 들어가서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아버지가 갈아서 잘 싸놓은 낫을 가방에 꽂고 나서 집을 나섰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나의 인사를 받은 어머니가 “그래, 네가 지금 학교 가는 거니? 논에 보리 베러 가는 거지?” 하고 놀리셨다. 물론 하루 종일 일을 하게 될 것이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일이니 그것도 학교 공부라고 생각하니까 논에 일하러 나가는 것도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아침 인사를 나누는 교실의 분위기는 다른 날보다 훨씬 더 밝고 신이 난 것이었다. “그래, 어제 너무 많은 일을 해서 힘들었지? 혹시 몸살이 난 사람은 없을까 걱정을 했는데..... 그래도 너희들 모두 밝은 표정으로 나온 걸 보니까 정말 반갑구나. 힘들었지?” “네에,” 우리들의 목소리는 힘차고 밝았다. 선생님은 이런 우리들을 보고서 “ 너희들 그렇게 힘든 일을 한 아이들 같지 않구나. 정말 괜찮은 거니?” “네에.”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신 선생님의 표정은 환하게 웃어 주시고 계셨다. “어제 너희들이 너무 많은 논을 베어 치웠기 때문에 오늘은 쉬네 부락 부근으로 가기로 했다. 그랬더니 어제 보다 더 많은 논을 베어 달라고 신청이 들어 왔는데, 너희들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할 수 있는데 까지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시는 말씀을 끊고 명식이가 “선생님 얼마나 많은데요? 우리 오늘은 30마지기를 베어 버릴 거예요.” 하며 팔뚝을 들어서 뽀빠이 흉내를 내었다. 이런 모습을 본 아이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고, 선생님도 웃으시면서 “야, 명식이 ! 너 혼자서 30 마지기를 벨 거라고?” 하시자 아이들은 모두 “와 !”하고 웃음으로 즐거운 한 바탕을 만들었다. “오늘 베어 달라고 신청을 한 논이 꼭 30 마지기이거든. 그럼 그걸 정말 다 벨 수 있을까? 너희들 생각은 어때?”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들은 누가 시킨 것도 의논을 한 것도 아니지만 모두 한결 같이 “다 벨 거예요.” 하고 합창을 하였다. 정말 우리는 그 많은 논을 다 벨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의 아이들 작업장면**** 첫째 시간을 공부하는 동안도 아이들은 논에 가서 일하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 힘든 일을 하기 싫다는 아이는 없었다. 어서 나가서 오늘 베기로 한 30마지기를 다 베자는 생각들 뿐이었다. 첫째 시간이 끝나자 선생님은 “난 이제 교무실에 가서 오늘 작업을 나간다고 신고를 해야 하거든, 너희들은 낫 조심하고 작업 준비들을 갖추고 운동장에 나가서 모여 있거라.” 하신다. 우리들은 마치 소풍을 나가는 아이들만큼이나 신바람이 나서 “와 ! 아.” 하고 함성을 지르며 좋아들 하였다. 물론 작업을 하면 늘 꼴찌를 하는 몸이 약한 성애 같은 아이들은 기가 죽어서 아이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아무리 일이 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이렇게 야단인데 혼자서 그런 말을 할 용기도 없었다. 또 논에 나가면 아이들의 도움을 받는 데, 공연히 아이들에게 미움을 살까 봐서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은 낫을 챙겨 들고 목에 수건을 질끈 묶은 아이도 있었고, 작은 수건을 허리춤에 찬 아이도 있었다. “야 ! 문식이 넌 아주 마당쇠 같다. 마당쇠!” 정근이가 문식이를 놀리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도리어 “예이, 무엇을 할 깝쇼 마님!” 하며, 마당쇠 흉내를 내어서 온 교실이 한 바탕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우리들이 운동장에 줄을 지어 모여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선생님과 함께 교장선생님께서 함께 나오셔서 우리에게로 오셨다. 선생님이 반장에게 눈짓을 하자 반장이 “차렷, 교장 선생님께 경례 !” 하고 경례를 하자 다시 돌아서서 “열중 쉬어 !” 하자 교장선생님은 “험, 험”하시면서 목을 가다듬고서 “너희들이 작업을 한 것에 대해서 선생님께 잘 들었다. 우리 고장의 일손을 돕고 너희들이 결정한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낫을 가지고 하는 일이니까 우선 다치지 않게 조심들 해야 한다. 너무 욕심을 부려서 일을 하다가 몸살이 나거나 하면 안 되니까 천천히 조심들 해야 한다. 자 열심히 해라. 다치지 않게 몸조심하고, 알았지?”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는 힘차게 “예.” 하고 대답을 하였고,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곧장 출발을 하여서 쉬내 동네 부근으로 가기 위해 들판을 가로질러 나갔다. 교실 보다 덥고 먼지가 풀썩이기는 하지만 들판을 나오니, 기분이 좋았다. 소풍을 가는 것처럼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면서 걸었다. 우리들은 마치 적군을 물리치러 나선 국군처럼 씩씩하고 용감하였다. 오늘 하루의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미리 알았다면 아마도 우린 기절을 하고 말았을는지도 모른다. 9.000평이라는 면적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 학교 전체의 면적이 3,000평 남짓 밖에 되지 않으면 그 세 배나 되는 넓은 면적이 아닌가? 그러나 우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일을 하는 요령도 생겼고, 일을 잘 하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지지 않을 만큼 익숙하게 보리를 베어 젖히는 것을 본 어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기 때문에 겁날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도착하자, 논의 주인 되시는 장수동 이장님은 우리들에게 “아직 어리고 공부해야할 너희들에게 이런 일을 시킨 것은 미안하다. 그러나 이왕 일을 하러 나왔으면 어른들에게 욕먹지 않게 깨끗하게 일을 해주어야 하는 거야. 너희들도 모두 우리 고장의 아이들이고, 농사를 짓는 집의 자녀들이니까 모두 내 집의 일이다 하고 생각하고 일을 해야 하는 거야. 알겠지?” 하고, 말씀을 하시고 나서 선생님께 따로 부탁을 하시면서 조금 후에 새참을 준비해 오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마을로 돌아 가셨다. 우리들은 각자의 옷이나 도시락을 모아서 더워지지 않게 잘 덮어서 햇볕을 가려 놓은 뒤에 각자 한 두둑씩 일을 맡았다. 아무래도 힘이 약하고 일이 서투른 여자들에게는 귀퉁이의 두둑이 짧은 것을 맡기고 남자들은 한 가운데 두둑이 긴 것들을 맡았다. 요즘처럼 논이 반듯하게 농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니까 아무리 부잣집의 논이라도 모두 비뚤비뚤 땅 모양이 생긴 대로 둑을 지어 만든 논들이었다. 그래서 논에 심은 보리의 두둑은 모두 그 길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른 그 부근에 있는 여러 논의 보리를 베어야 하였으므로, 남자들은 서로 두둑이 길고 보리가 잘 자란 것을 고르려고 하였다. 그래야 다른 아이들과 같이 끝날 수 있고, 다른 아이들보다 잘 하는 아이들이 더 많이 베어야 한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오늘의 일을 시작 해보자. 너희들이 지치면 안 되니까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 때 까지 열심히 베고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잠시 쉬어 가지고 다시 시작하도록 한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자.” 선생님은 말씀을 마치자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어 주셨다. 우리들은 마치 마라톤 선수가 힘차게 결승점을 향하여 달려가듯이 모두 자기가 맡은 논 두둑에 덤벼들어서 보리를 베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어찌나 열심히 베는지 말소리 하나 나지 않고 마치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처럼 사그락사그락 보리들이 베어져 눕는 소리만 들려왔다. 선생님이 맡은 두둑의 길이가 가장 길지만 선생님도 만만찮은 솜씨로 보리를 베어 나가시기 때문에 따라 붙은 사람은 형주와 문섭이 뿐이었다. 두 아이는 키도 크고 힘도 좋아서 집에 가면 어른 몫을 한다고 소문이 난 일꾼들이다. 우리들이 사는 곳은 읍내에서도 40리가 되는 면 소재지에서도 또 십리 길을 더 들어와야 하는 산골 마을이다. 오죽 했으면 정부에서 지정한 벽지교통이 불편하고 뒤진 고장로 지정을 받은 고장이었다. 그래서 하루네 4번씩 다니는 버스가 생긴 것도 몇 년이 되지 않고 늘 십리 길을 걸어 다녔다. 큰 장을 보려면 삼십리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이런 일은 결혼 같은 큰 잔치나 있어야 마차를 동원하여 함께 보는 그런 고장이다. 그래서 이 고장의 아이들은 모두 우리처럼 농촌에서 집안의 일을 도와 가면서 자랐기 때문에 대부분이 어느 정도의 농사일을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 고장에서는 이런 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일단 보리 베기가 시작되자 들판은 사그락 거리는 낫질 소리만 들려오고 우리들의 이마에는 금세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가 손등이며 발들에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런 더위에서 힘든 일을 하는 우리들은 이마의 땀을 쓱 팔뚝으로 문지르고 만다. 그러면 팔뚝에 묻은 흙먼지가 이마에 굵은 줄을 그리고 말았다. 이런 모습을 본 아이들은 옆의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히죽거리는 것이었다. 내 왼쪽 곁에 두둑을 맡은 영임이가 오른쪽에서 베던 승희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보이자 승희는 힘이 들어서 주저앉으면서 “왜에? 내가 뭐 잘못 했어?” 하고, 나의 쪽을 향하여 말을 걸었다. 나는 나에게 그런 줄 알고 의아해서 “뭐? 나보고 그러는 거야?” 했더니, 승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