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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지나친 부에만 집착하여 대를 잇는 전통교육 부재'의 결과는? '2026년경 초고령 사회' 진입 정책방향 '가정 - 학교 - 사회 - 국가라는 연결고리'에서 총체적 탐색 우리 나라의 고령사회를 걱정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령 사회가 되었다. 2017년 8월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했다는 증거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2000년 고령화사회가 된 지 불과 17년 만에 고령사회가 됐고 10년 뒤인 2026년경이면 초고령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고령사회의 뿌리는 마을에 아이들 울음소리가 그친데 있다. 그 뿌리를 살펴보면 그 원인은 그렇게 복잡하지만은 않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적으로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잘 살기만을 노래하고 대를 이어 지속적 발전 가능성을 후대들에게 전하는 전통적 가치교육을 소홀히 한 것이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가정 - 학교 - 사회 - 국가라는 연결고리에서 총체적 탐색이 필요하다. 현재 저출산으로 인한 초고령화의 결과는 여러 분야의 모습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가장 쉽게 보이는 것이 학교의 감소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 그 감소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심각한 상태이다. 이런 여파는 가장 기초적인 전통적 단위인 문중 종친회에도 이같은 파도는 밀려오고 있다. 6일에는 2년 만에 열리는 필자가 속한 금녕김씨 문중 종친회에 참석하였다. 역시 이곳에도 젊은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추세로 가면 문중 모임도 곧 사라질 징조가 보일 뿐이다.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부모의 자식교육이 아닐 수 없다. 혼자서는 자신의 문중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위기 극복을 위한 열린 마음에서 젊은이들의 참여를 위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젊은이들은 문중이 무엇인지, 대를 이어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제대로 교육받아 본 적이 없다. 자기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뿌리교육이 부재하였다는 증거요 현실이다. 이는 오직 출세와 경제적 부만을 최고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라도 돌아보자. 우리 가르친 교육의 핵심이 무엇어었으며, 지금부터 무엇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때이다.
자식을 버려본 적이 있는가? 아직 없다. 그런데 내 분신과 같은 책을 버린 경험을 얼마 전에 했다.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저서를 버린 것이다. 저자로서는 커다란 결단이다. 왜? 팔고 남은 책을 집에 보관했는데 이제 더 이상 독자들이 찾지를 않는다. 그러다보니 책꽂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나는 자칭 교육칼럼니스트다. 2006년 교감으로 재직 시절 첫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제1집 ‘연(鳶)은 날고 싶다’이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여 책을 출간하였는데 인지료가 5%이다. 책 가격이 1만2천원인데 한 권 팔리면 내게 돌아오는 것은 600원이다. 100권 팔리면 6만원이다. 이 때 깨달았다. ‘저자가 출판하여 돈 버는 것이 아니구나!’ 나 같은 교육리포터는 교육에 관한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출간했다는 자체에 만족하는 것이다. 서호중학교 교장이 되고 나서 제2집 ‘교육사랑은 변치 않는다’(2007). 제3집 ‘새내기 교장이 악당이라고?’(2009). 제4집 ‘이영관의 교육사랑’(2011)을 펴냈고 율전중학교에서는 제5집 ‘행복한 학교 만들기’(2012)를 출간하였다. 제2집부터는 초판을 1천부 씩 찍었다. 다행히 주위에 좋은 분들이 계시어 출간을 축하해 주시고 자비로 구입하여 주위 분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이것이 마음의 빚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저자로서 보유한 교육칼럽집이 남았다. 2집부터 5집까지 몇 백 권이 남았다. 이 책 어떻게 처리할까? 마침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아들과 힘을 합쳐 자가용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아들은 대학 때 배우던 전공서적을 버린다고 한다. 트렁크가 가득 찬다. 폐지로 아파트에 내 놓느니 수고스럽지만 고물상으로 향하였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책, 찾지 않는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다. 종이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고물상에 도착했다. 책을 실은 자가용 무게를 재었다. 트렁크에 있는 책을 고물상에 창고에 던졌다. 내 정신이 아니다. 착잡하기만 하다. 마치 나의 분신이 버려지는 느낌이다. 책을 다 내린 후 자가용 무게를 다시 잰다. 그 차이가 바로 책의 무게. 폐지 1kg 당 150원이란다. 1만 5천원을 받았으니 100kg이다. 서점에서 정상가격으로 팔리면 권당 1만원으로 200권을 계산하면 2백만 원인데 폐지로 계산하니 이 정도다. 지식의 가격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책꽂이의 책을 정리하는 김에 몇 년간 한 번도 펴 보지 않은 책을 처분하기로 했다. 주로 교육 전공서적인데 아내와 함께 선별작업을 하였다. 자가용 트렁크에 실으니 반 정도가 찬다. 지난 번 고물로 판 것이 너무나 허전하여 이번에는 가까이 있는 중고서점으로 향하였다. 폐지로 버려지는 것보다 재활용되기를 바랐던 것. 서점 주인이 책을 살펴보더니 전부 합쳐 2만원 쳐주겠다고 한다. 3만원으로 해 달라니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잘라 말한다. 자신이 쓴 책을, 그 동안 함께 살았던 책을 폐지로 중고서적으로 파니 그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가 없다. 내 영혼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책이다. 그것을 끌어안고 계속 갈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이사할 때 버린 석사학위 논문이 생각난다. 여유본 수 십 권을 보관하니 먼지만 쌓인다. 세월이 오래 되어 다시 펼쳐 볼 이유가 없다. 이사할 때 짐이 된다. 추억 속의 논문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추억마저 버린 것이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면서 추억을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까? 이것은 새로운 인생 출발에 걸림돌이 된다. 과거의 나, 왕년의 나는 현재에 있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거가 현재를 얽어매면 아니 된다고 보았다. 과거를 버리는 일, 정을 떼어내는 일이 이렇게 허전한 줄 미처 몰랐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어 살 수는 없다. 새롭게 출발하려면 과거는 잊어야 한다. 나의 저서, 애지중지하던 책을 버린 것은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오늘 아침 방송을 들으니 짐 정리하는 방법이 나온다. 소유한 물건은 필요와 불필요를 따지지 말고 쓸 것인지 안 쓸 것인지를 따지라는 것이다. 또 ‘나중에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라는 생각은 짐정리에 방해가 된다는 것. 최근 몇 년간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은 책, 입어 보지 않은 옷도 정리 대상이다. 아내가 결혼할 때 세트로 해온 쓰지 않은 도자기 그릇,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증하려고 인터넷에 올려놓으니 답글이 달린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면 연말정산 영수증 처리가 된다고 알려준다. 저자의 책이나 애지중지하게 보던 전문서적을 허전하지 않게 처리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중고 서점에서는 출판연도를 살펴 책의 가치를 따진다. 도서관에서도 오래 된 책은 기증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박물관에 가야할 책은 아니다. 고물상이나 중고서점에 팔아 돈 몇 만원 쥐었다고 허전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에겐 자식과 같은 책을 버린데 대한 정신적 위로가 필요하다.
깨끗한 공공화장실을 보면 그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깨끗한 화장실은 문화인의 척도인 셈이다. 우리 서령고에서는 깨끗한 화장실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청결한 환경을 위해 수시로 청소를 하고 또 아름다운 그림을 거는 한편 학생들에게는 화장실 사용 수칙을 전파하여 스스로 화장실을 깨끗하게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화장실 사용 수칙 첫 번째, 변기를 사용할 때는 소변이 튀지 않도록 변기에 바짝 다가서기. 번째, 사용한 휴지는 변기에 버리기. 단 변기가 막히지 않도록 규격품을 사용하고 조금씩 사용하기. 세 번째, 변기 레버는 작은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지 않도록 반드시 변기 뚜껑을 닫은 뒤 3초 이상 누르고 확인하기. 네 번째, 용변을 본 뒤에는 반드시 손을 씻기. 실제로 많은 질병이 손씻기만으로도 예방효과가 크다고 한다. 다섯 번째, 고장 난 변기나 세면대, 그 외 물품들을 발견했거나 불편한 점이 있으면 즉시 행정실에 연락하여 신속하게 수리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의 경우, 2018년 주요업무계획 설명회에서 ‘교육자치와 학교민주주의’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하면서지역 교육계에 불어 올 교육자치 바람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자치 바람은 문재인 정부가 지방 분권과 교육자치를 위해 그동안 지니고 있던 여러 권한을 시도교육청과 학교로 이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의 자치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이러한 논의에서 교육부와 학교의 시스템에 비해 교육청의 소통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너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우선 교육부의 교육자치 시스템은 그동안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통해 소통해 왔었다.최근에는 교육자치정책협의회를 새로 설치했고, 국가교육회의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의 자치시스템은 학교운영위원회와 교직원회의, 부장교사회의, 전교학생회, 학교학부모회가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다. 반면 교육청의 민주적 자치 시스템은 광주의 경우 지역교육청 학생회의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있다면 월 1회 정기 간부회의가 전부다. 현재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의 교육자치를 위한 민주화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의 교육자치를 위한 민주화 시스템은 어떻게 달라질까? 먼저 교육부는 교육자치정책협의회를 보다 더 강화하고, 국가교육회의를 ‘국가교육위원회’로 발전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 민주화를 위해서는 교무회의와 학생회, 학부모회의 법제화가 추진될 전망이다. 교육청의 추진 계획이 그렇다. 광주광역시교육청 장휘국 교육감은 이번 신년사를 통해 “촛불로 되찾은 민주주의를 학교에서 완성하겠다.”며 “학생회·학부모회·교직원회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교육청에는 “광주시민혁신교육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교의 교육자치를 위한 민주화 시스템 추진 계획은 다음 표와 같다. 문제는 교육부와 학교의 교육자치를 위한 계획과 노력은 명확하고 그 방향도 분명하지만, 교육청 민주화에 대한 계획은 학생자치회 지원과 ‘광주시민혁신교육위원회’ 구성 계획만 발표되었을 뿐 매우 부실할 뿐 아니라 학교민주화 계획과도 그 형평성이 지나치게 맞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학교에는 자율과 자치를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정작 교육청 스스로의 민주화 계획이 없다는 문제제기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교육청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우선 ‘광주시민혁신교육위원회’의 구성 시기와 참여 범위 그리고 역할과 권한에 대한 명확한 후속 계획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의 교육자치정책협의회, 전국시도교육감회의와 유사한 광주학교자치정책협의회 및 광주학교장 협의회 구성에 대한 논의도 서둘러야 한다. 또한 학교민주화 계획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광주교사총회와 광주학교장총회 그리고 광주총학생회와 광주총학부모회 구성과 이의 법제화를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을 밝혀야 한다. 새롭게 요구되는 시교육청의 교육자치와 민주화 시스템은 다음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교육청이 교육부에서 내려주는 교육자치의 과실만 받고, 교육청 스스로의 민주화 노력은 외면한 채, 학교민주화만을 강제하게 되면 또 다른 불통 논란의 소지가 될 뿐 아니라 앞으로 추진해야 할 학교민주화의 동력에도 큰 차질이 예상된다.
어린이 그림이 종북 몰이용? 그림 소동을 보면서 3공시절에 글 때문에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 어린이가 안타까워 정말 세상이 무섭다. 어린이들의 통일염원을 그린 그림을 가지고 종북몰이를 하면서 그 그림을 카렌다에 담았다고 우리 은행을 압박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정말 그렇게도 하실 일이 없는가라고 묻고 싶다. 이 그림은 우리은행에서 그린 그림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만든 그림은 더더구나 아니다. 은행에서 주최한 그림공모전에서 당선작들을 그림으로 사용하였을 뿐이다. 뽑은 교수님들조차 전혀 [종북]이나 [좌빨]이라고 보지 않았기에 뽑은 작품이다. 아니 오히려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통일염원을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하여 뽑은 작품이다. 그런 어린이들이 그림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더구나 남북이 통일을 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그려라는 주제를 받아서 그려진 그림이다. 남과 북이 통일을 하여야 한다는 우리의 소망을 담은 것이다. 그래서 남과 북의 깃발이 그려진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남과 북이 통일을 하자는데 그럼 남과 북의 깃발을 그리지 않고 무엇으로 남과 북을 나타내고 어떻게 표현하라는 말인가? '백두산과 한라산?' '김정은과 박근혜?'당시 대통령은 박근혜이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도 쓰고 표현 하는 것이 예술이고 표현 방법이다. 만약에 북한처럼 모두 같은 방법으로 표현을 하라고 한다면 우리의 문화와 예술의 창작 정신이나 창작열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전제주의 하에서나 독재정권 하에서는 찬란한 문화 예술 작품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 우리은행 탁상용 카렌다에 실린 문제의 그림 통일을 기뻐하며 남과 북의 깃발을 들고 환하게 웃는 이 그림이 어찌 종불인가?ⓒ 김선태[문화예술인은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다른 생각, 남다른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지금 저렇게 요란을 떠는 국회의원들의 머리통 속에는 아직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로 나누고 지배하면서 예술을 억누르고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마도 우리은행을 블랙리스트에 올려야 하고, 그 그림을 그린 학생과 부모도, 그리고 그 어린이의 담임까지도 블랙리스트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통일을 생각하고 그린 남과 북의 깃발을 보고 저렇게 발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 왈 "인공기가 펄럭 인다" "인공기가 나부낀다"라는 말까지 내뱉는다. 하두 요란을 떨어서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저렇게 야단일까? 싶어서 그 그림을 찾아보았다. 그림속의 인공기는 태극기와 같이 나무가 두 손으로 하나씩 들고 웃고 있다. 정확히 말해서 이 그림속의 통일나무는 통일의 기쁨을 가득 안고 남과 북의 기를 양손에 들고 만세를 부르듯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가? 그래서 양손에 양쪽의 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것인데, 이게 어찌 종북이고 좌빨이란 말인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주장이고, 엉터리들이다. 만약에 그러러면 우리말에서 [동무]라는 말이 사라졌듯이 [북]이라는 말도 없애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면 저 사람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버릇처럼 주절대는 [종북]이라는 말도 없어질 것이 아닌가? 요즘 이렇게 야단을 하고 요란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3공화국 시절에 겪은 아동문학 작품 때문에 겪은 두 번의 고초를 떠올리게 된다. 1971년5월3일자 [삼남교육신문]에 실린 꽃술이란 시 한편 때문에 나는 중앙정보부 파견대에 불려 가서 문초를 받아야했다. [꽃술] 흥겨운 듯 수줍은 듯 연분홍빛 진달래/ 송이송이 따서 모아 꽃술 빚어 담궜다가/ 추야장 긴긴밤에 잔에 남실 따루어서/ 진달래 향기속에 봄을 빌어 모셔두고/ 님도 한 잔 나도 한 잔 봄기운에 거나하면/ 금수강산 진달래가 내 속에만 피었어라. 28세 문학청년으로 매일 창작수업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래서 일상을 읊어본 시조 한편을 도내 주간교육신문에 투고하였고 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 때문에 중정파견대에 끌려가서 문초를 받아야 하였었다. 시골 초등학교의 아직 초보겨우 8년차교사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정파견대에 끌려갔으니 얼마나 놀라고 떨었겠는가? "선생님. 진달래가 북한의 나라꽃이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 '그랬던가? 내가 북한의 나라꽃을 어찌 안다고?'" 대답도 못하고 속으로 이런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주먹이 날아왔다. 다행히 아직 젊었기에 피하기는 하였지만, 덕분에 정강이쪼인트를 채였다. 한 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고 진술서인지 뭔지를 쓰고 석방이 되었다. 그 뒤로 글을 쓰는 것이 무서웠다. 함부로 써서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주저하였었다. 1977년에는 [하늬수박]이라는 동화 때문에 이번에는 중정 도분실까지 끌려갔다. 6,25를 겪었던 당시 아이들이 하늬수박하늘타리 열매를 가지고 수류탄을 만들어 논다는 이야기이었는데, 이 글속에서 북한공산당빨치산이 나쁜 놈이라고 쓰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아이들이 그냥 전쟁 흉내를 내면서 노는 모습만을 그렸었는데 꼬투리를 잡고 불러낸 것이었다. 그 때도 도분실까지 서너 시간이나 걸려 왕복하였고, 조사 받느라고 몇 시간 이렇게 하루 종일 보내야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데리고 간 군파견대장은 내 반 어린이가 당시 돈으로 수백만원의 현금과 수표가 든지갑을 주워 와서 내 손으로 잘 전해준 적이 있는 분이어서 나를 곱게 잘 보호해주어서 잘 끝나고 돌아왔지만 참 힘들었던 하루 이었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 겪은 일도 이렇게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머릿속에 맴도는데, 저 그림을 그린 어린이는 지금 얼마나 힘들고 무서울까 싶으니 참 안타깝기만 하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못씁 사람들, 정치하는 사람이거나 언론이나 모두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로 이 어린이가 평생 겪어야할 아픔은 생각은 하여 보았을까?
한국교총이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저지를 위해 국민청원운동에 돌입했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교총은 4일 교육부 앞에서 전면 투쟁 집회를 개최하고 매일 릴레이 집회를 전개함과 동시에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폐지를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을 시작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무자격 교장공모제가 갖는 교육적 문제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에 이 제도가 전면 확대되면 그 폐해는 결국 학생과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게 교총의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전국 교원과 국민 모두의 동참을 호소하는 교총의 국민청원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정부는 사실상 촛불정부를 자임하며 국민과 함께하는 정부 운영을 공식 천명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아직까지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교육 분야에 있어서는 지지율이 30%대에 머물러 제일 낮다. 이는 교육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결코 정부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준엄한 의사표현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교육현장의 혼란과 교육적 폐해가 예상되는 무자격 교장공모제를 전면 확대하는 것은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특정노조의 교장만들기 하이패스’로 확인된 제도를 먼저 손질해야 함에도 오히려 그 길을 더 넓히겠다고 하는 것은 교육현장에서 힘든 업무와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대다수 교사의 순수한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학교와 교원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번 국민청원은 그래서 더 중요하고 더 의미가 크다. 바로 교육자와 국민의 힘으로 비뚤어진 제도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이제 50만 교육자 전체가 동참해야 한다. 나아가 교육가족 모두와 국민들이 함께 하도록 그 의미를 널리 알려야 한다. 모두 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실천해야 우리 교육을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계에 때 아닌 ‘유시민 신드롬’이 일고 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와대 국민청원방에 올린 ‘초등교실을 활용한 공공보육시설 확충’청원에 대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관련 부처의 조속한 협의를 지시해서다. 하지만 이는 현실 여건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이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유휴교실을 교과교육실, 상담실, 토의토론실, 방과후 교실 등 특별실로 사용하고 있다. 유휴교실을 공실(空室)로 두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취학 전 돌봄은 학부모 거주지와 어린이집의 접근성이 핵심이다. 그런데 학생 감소로 인한 유휴교실은 그나마 농어촌, 중소도시에 분포하고, 정작 어린이집 수요가 높은 대도시에는 많지 않다. 특히 초등교에 어린이집을 설치하려면 교실, 관리실, 자료실, 화장실 등 적어도 3~4개 교실이 필요한데 대도시에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학교는 27곳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설 및 운동장 사용, 안전 관리, 급·간식, 차량 증가 등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현행 법령상 유치원은 만 3~5세, 어린이집은 만 0~5세아가 취원한다. 즉 어린이집은 0~2세 영유아반을 더 운영한다. 맞벌이 부부 지원 중심인 어린이집은 초등 하교·퇴근 시각 이후까지 운영되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어린이집 설치는 초등교육의 파행을 야기할 수 있고 관리 주체와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 모든 책임을 학교에 귀착시킬 우려가 높다. 이 점에서 교육과 보육을 일원화하는 유보통합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현재 유치원은 교육기관으로 교육부 관할인데 반해, 어린이집은 보육기관으로 보건복지부 관할이다. 관할 부처, 교육과정, 교사 양성 등의 통일·통합부터 모색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초등교 내 어린이집 설치는 절대로 강행해선 안 된다. 유휴교실이 있다면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국공립 유치원 취원율을 40%대로 제고하는 노력을 먼저 경주해야 한다.
진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오래전에 휴지통에 버렸어야 할 제도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현 정부가 이를 확대 추진하려해 우려스럽다. 교육부는 최근 무자격 공모제 학교 비율을 자율학교 또는 자율형 공립고 중 신청학교의 15%로 제한한 조항을 삭제하는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특정노조 출신 인사 등용문일 뿐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15년 이상의 교육경력만 충족하면 누구나 공모에 응할 수 있어 이미 그 의도에 대한 불신을 자초해 왔다. 그간 임용된 무자격 교장들 중에는 충분한 전문성과 경험 부족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고, 진영논리로 교사 간 갈등을 증폭시킨 경우도 있었으며, 여론 몰이로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교육부는 교장 임용방식을 다양화 해 학교현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듯이 특정 노조 출신의 교장들이 대거 임용됐고, 특히 서울·인천·광주·전남 등의 지역은 제도 시행 이후 100% 특정노조 출신만 교장이 됐다. 특정노조를 제외한 나머지 교사들은 무자격 교장공모에 명함조차 내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정노조의 도움 없이는 무자격교장 공모에서 경쟁력이 전혀 없다는 소문이 정설로 증명된 셈이다. 결국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진영논리를 앞세운 그들만의 전유물로 전락했을 뿐, 교육 발전은 물론 교사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모교장을 경험한 교사들에 따르면 자격 있는 공모교장임에도 불구하고 교장의 존재감이 별로 없다고 한다. 교직원회의나 기타 학교 내 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을 대부분 그대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내에서는 최종 결재권자가 교장임에도 불구하고 교장의 책임감 있는 권한 행사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저 교장도 해당학교 조직 구성원 중 한명일 뿐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고 한다. 이런 것을 민주화라고 외치지만 해당 교장의 입장에서는 민주화에 역행하는 처사일 뿐이다. 학교장의 경영철학과 가치관에 입각한 책임경영은 찾아보기 어렵고, 집단의 힘으로 결정되는 것이 도리어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자격 있는 공모교장이 임용된 현장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데 무자격교장이 임용된다면 더 권한이 무력화되고 혼란은 가중될 게 뻔하다. 진영논리에 학교교육력만 소진 교장임용의 다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라면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가령 현재의 교장 임용제도로 인한 부작용이 매우 크거나 현재 재직 중인 교장들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상존해 대부분의 학교교육이 파행되는 등 제도개선의 필연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무자격 교장공모제의 전면 확대 근거는 매우 미약하다. 도리어 차후에 다른 진영의 정부나 교육감이 들어왔을 때, 손을 쓸 수 없도록 사전에 정지작업을 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앞선다. 현재의 교장 임용제도를 잘 활용하고 개선해도 교장 임용의 다양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교육이 안정돼야 경쟁력 있는 훌륭한 인재 육성이 가능하다. 인재육성이 진영논리보다 우선이다. 한가하게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 논란으로 교육력을 소진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신정 연휴에 일본에 다녀왔다. 역사박물관에 가기 전 버스 안에서 들은 가이드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일본은 백제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발전시킨 나라인데 신라가 일본에 문물을 전파해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그런 일본이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을 통해 문명을 전파해준 스승의 나라를 침략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일본의 ‘두견새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 전국시대의 세 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한자리에 모여 울지 않는 두견새에 대해 담론을 나눴다고 한다. 먼저 도요토미는 훈련을 시켜 울게 만든다고 했고, 오다는 목에 칼을 대고 울라고 명령하고 그래도 울지 않으면 베어버린다고 했다. 도쿠가와는 인내심을 갖고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세 사람의 성격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도요토미는 공부하도록 훈련을 시킬 것이고, 오다는 때려서라도 강제로 시킬 것이고, 도쿠가와는 스스로 공부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역사에서는 도쿠가와가 천하를 통일해 결국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게 정답이 됐다. 요즘 학생 체벌 등은 인권 침해라며 백안시하지만, 솔직히 앞서 말한 셋 중에서 무엇이 옳은 방법인지는 고민스럽다. 각자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부는 두견새를 울리는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인 만큼 스스로 각성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이 공부하도록 강제로 훈련을 시키거나 벌을 줘 통제하기보다는 왜 공부를 해야 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하는 교사가 되도록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황금 개의 해 무술년(戊戌年)이다. 새해를 맞아 모두 각자 바라는 꿈이 있을 것이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빠른 시간보다는 목표를 향한 지속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에 대해 성급해하고 성과에 쉽게 낙담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말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한 라틴어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다. 이는 고대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말로 ‘천천히 서두르라’는 뜻이다. 삶에 있어 서두름과 비교는 언제나 낭패를 가져온다. 만약 어떤 과목을 잘하고 싶다면, 내가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을 것을 믿고 기초부터 차분히 튼튼하게 다져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의 완성된 모습만 보고 그 과정은 간과한 채 속단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탓한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했다. 지난해 이루지 못한 일들이 있어도 나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 목표가 정당한 것이라면 올해 다시 시작하면 된다. 꿈을 이룰 완벽한 나는 기초부터 튼튼한 노력에서 시작됨을 기억하며 페스티나 렌테를 되새겨 보자. 나를 완성시킴에 있어서는 그 조급함을 천천히 해야 한다. ‘나는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입니다. ‘Change’의 g를 c로 바꾸면 ‘Chance’가 됩니다. 변화 속에는 반드시 기회가 숨어있습니다’라고 빌 게이츠는 말했다. 꿈을 이룬 남들의 좋은 습관을 하루라도 빨리 갖겠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나를 완성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내지 말고 천천히 기초부터 다져가는 교육가족이 되길 소망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고향을 떠나 공부를 하던 윤동주가 고향을 찾을 때면 중얼거리던 노래가 아리랑이라 한다. 처음 듣는 말이지만 실제 윤동주는 아리랑을 부르곤 했나 보았다. 다시 동주를 만났다. 활자가 아닌 다른 형태로 동주를 만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동안 활자를 통해 동주는 자주 만났다. 늘 만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활자 속의 동주는 피상적이었다. 부끄러움을 이야기 하고, 부정의 현실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 동주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느끼기엔 무언가 부족했다. 그러다 동주를 간접적이나마 만나고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는 건 분명 기쁨이었다. 생각해보면 첫 번째 만남은 설렘 자체였다. 동주가 태어나고 뛰어 놀며 공부하고 기도했던 북간도 명동촌의 동주 생가를 방문했을 때 그의 시 ‘별 헤는 밤’이나 ‘십자가’란 시가 왜 태어난 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직접 보고 느꼈던 경험은 미지의 여인을 상상하며 다가가는 첫 미팅의 그 설렘 같은 것이라 할까? 함께 간 사람들이 왁자지껄 이야기할 때 어둠 속에서 하나 둘 피어나는 명동촌의 별들을 보면서 고향을 떠난 동주가 먼 타국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되뇌며 얼마나 쓸쓸한 그리움에 몸서리 쳤는가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5년여가 흐른 지금도 그때 그가 다니던 학교와 그가 살던 곳, 예배를 드리던 예배당의 뾰족한 첨탑을 바라본 기억은 뚜렷한데 아쉽게도 그곳에서 그의 흔적을 담아왔던 것들은 조그만 실수로 모두 사라져버렸다. 두 번째 만남은 영화 ‘동주’였다. 영화 속의 동주는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청년이었다. 영화에서 더 반가웠던 것은 동주를 만난 것도 좋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억 저편에 있던 사촌이면서 친구인 송몽규를 만난 것이었다. 조국의 현실에 맞서 싸우자는 몽규와 사색과 시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던 동주. 활자로 보았던 두 사람의 관계를 영화라는 매체를 보는 맛은 새로웠다. 그러나 화면 속의 동주를 보면서 뭔가 모를 조금의 갈증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기획했던 음악극 ‘윤동주’를 만났다. 윤동주와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음악극 형식으로 이루어진‘윤동주’는 일단 형식부터 새로웠다. 극은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와 극, 여기에 교향악단의 연주가 하나된 형태였다. 한 편의 뮤지컬 냄새도 나고 오페라의 냄새도 물씬 풍긴 무대는 동주의 시에 대한 애착과 기독교적인 삶, 그리고 고난과 고뇌 등이 때론 웅장하면서도 잔잔한 파도처럼 펼쳐졌다. 막은 죽음을 알리는 서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윤동주의 시 비애로 문을 열었다. 호젓한 세기의 길을 따라 알 듯 모를 듯한 데로 거닐고저! 아닌 밤중에 튀기듯이 잠자리를 뛰쳐 끝없는 광야를 홀로 거니는 사람의 심사 외로우려니 아~ 이 젊은이는 피라미트처럼 슬프구나 동주의 생가에서 현실감을 느끼고, 영화에서 그의 삶을 바라보았는데 세 번째 만남은 또 다른 색다름이었다. 무대와 나의 거리는 3미터. 그 가까운 곳에서 시작부터 단란한 유년의 동주가 아니라 출구 없는 현실에서 고뇌 가득한 사나이가 광야를 외로이 거니는 동주를 보았다. 관현악단의 쓸쓸함이 베인 연주 속에 합창단 또한 읊조리 듯 피리밋처럼 슬픈 표정을 하고 광야를 홀로 거니는 사람의 외로운 심사를 선율에 맞춰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음악극의 곡을 맡기도 한 이용주의 시 아들의 죽음이 흘러나왔다. 새벽에 꿈속에서 아들의 눈물을 보았다 아들의 몸은 싸늘해 보였다 하지만 눈물을 닦아주고 물을 먹여 준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 연희전문학교 시절 그리고 일본의 유학과 독립운동 혐의로 친구 송몽규와 함께 체포된 동주는 온갖 고문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차디찬 후쿠오카 감옥에서 광복을 몇 달 앞두고 생을 마감한 동주는 우리 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늘 시를 통해서만 만났던 동주를 이제 영화로 음악극이라는 형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시와 삶 그리고 죽음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소망했던 한 청년의 순결한 이상이 그립고 아파서가 아닐까. 그런데 그 그리움과 아픔이 관객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이번 공연한 참가한 전주시립합창단 수석 단원으로 있는 김영지 씨는 윤동주의 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뭉클했어요. 처음 악보를 받고 동주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게 피어올랐어요. 물안개처럼 이라 할까. 처음엔 윤동주를 몰랐어요. 그런데 이번 극을 하면서 윤동주의 삶과 시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번 공연의 특별했던 점을 성악을 전공한 합창단의 노래와 연극을 전공한 이들의 몸울림 그리고 오캐스트라의 협연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었다. 어찌 보면 전혀 다른 형태의 것들이 만나 멋진 하모니를 이뤄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줬다. “연극을 하는 분들이 노래를 많이 살려준 것 같아요. 노래로만 전달할 수 없는 감정들을 몸의 표정을 통해 잘 전달되게 한 것 같아요.” 윤동주. 평생을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소망하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던 청년. 그가 간 지 100년이 되었지만 그는 앞으로 200년 300년 후에도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울수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살아 우이 곁에 있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마을은 흐리고 가뭄으로 푸석푸석한 들판이 보입니다. 남녘에는 겨울 가뭄이 심합니다. 눈도 비도 오지 않아 겨울 작물은 비시비실하고 하우스를 하는 지역은 관정도 말라버렸다고 합니다. 저희 학교 근처는 낙동강과 남강이 인접해 강물을 공급받고 있어 다행입니다. 그런데 농작물 값이 떨어져서 큰일이라고 학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제는 양상추 하우스를 하시는 학부모님께서 지나다 들렀다면서 양상추 한 박스를 주고 가십니다. 주시면 안 된다고 하니, 이건 상품이 못되어 값이 나가지 않는 것으로 그냥 동네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랍니다. 저녁에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아삭한 양상추에 고기와 마늘을 얹어 먹으니 꿀맛입니다. 밥상을 마주하고 앉는 남편의 얼굴을 모처럼 자세히 보니, 주름이 보이고 머리엔 흰 머리가 많습니다. 같이 늙어가는 이 사람과 젊은 시절 참 많이도 싸웠는데 지금은 가족으로 시시콜콜한 식성까지도 공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결혼하여 만나고 싸우고 다시 소중함을 이해하는 과정을 섬세하고 유머와 통찰이 함께 조화를 이룬 책이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철학적 깊이가 있어 읽으며 많은 사유를 동반합니다. 에세이와 소설의 절묘한 조화 속에서 보이는 섬세한 지적 위트와 통찰력은 읽는 이를 깊이 책 속으로 빨아들이면서 제 삶을 다시 돌아보며 젊은 시절의 지긋지긋한 싸움들을 웃으며 회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라비와 커스틴의 삶을 따라가며 수십 년에 걸쳐 사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핍니다. 작가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하며 낭만의 한계와 결혼 제도의 모순을 넘어 성숙한 사랑으로 도약하기 위한 솔직하고 대담한 논의를 펼칩니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꽃의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사춘기에는 증오심마저 품었는데 말이다. 야망을 펼칠 크고 영원한 것들이 있는데 그렇게 작고 일시적인 것에서 기쁨을 얻다니 터무니없어 보였다. 그 자신의 영예와 강렬함을 원했다. 꽃에 붙들린다는 것은 위험한 체념의 상징이었다. 이제 그는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겸양과 실망을 다룰 줄 아는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가 장미의 줄기나 불루벨 꽃잎에 감탄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무엇인가 영구적으로 망가져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고요한 완벽과 즐거움을 간직한 이 자그마한 섬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pp. 273~274 라비는 낭만적 연애를 거쳐 비로소 자신이 결혼할 준비가 되었으며 다른 이를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느낀다. 이 사랑의 핵심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함께한 사람을 덜 물리고 익숙하지 않은 눈으로 새롭게 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비가 내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교무실 창으로 푸석한 들판을 다시 봅니다. 교지의 마지막 작업을 하면서 내 삶에 있어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라는 것으로 돌아가라고 신께서 기회를 준다면 단연코 거절할 것입니다. 젊음이 주는 불꽃같은 빛남도 좋지만 그 젊음을 돌아서 이제는 인생을 관조하며 성찰하는 이 나이가 주는 깊은 갈색의 침착한 모습을 사랑합니다. 빨리 남쪽지역의 가뭄이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김한영 옮김, 은행나무, 2016
새롭게 만난 이순신 국난으로부터 조선을 구한 이순신의 삶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아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다시 이순신을 읽고 싶은 것은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공직자로서 느끼는 부끄러움, 부모로서 공감하는 인간적인 비애, 시대를 앞서간 스승으로서 남긴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울고 웃었다. 그의 단면을 묘사한 일화들을 소개하며 인간 이순신, 공직자 이순신의 모습을 통해 2018년을 살아갈 힘을 얻고자 한다. 그의 평생 동지 유성룡은 이순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순신의 사람됨은 말과 웃음이 적고, 얼굴은 단정해 몸을 닦고 언행을 삼가는 선비와 같았으나 그의 뱃속에는 담기가 있어 자신을 잊고 국난에 몸을 바쳤으니, 이는 평소 수양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다. " 대제학 이식은 "공은 비록 무부들과 사귈망정 기상이 높고 조용하고 침묵했다. 동료 무부들이 종일 실없는 말로 서로 희롱하면서도 감히 이순신에게는 하지 못했다. " 영의정 김육이 이순신의 신도비에 쓴 비문의 한 구절이다. "혹 죄 없이 옥에 갇힐 때에도 죽고 사는 것으로 마음을 요동하지 않았으니, 공은 본시부터 이와 같이 수양한 바가 있으므로 지혜와 생각을 내면 한 가지도 빠지는 것이 없었다." 44쪽 이순신은 충청병사 군관으로 9개월 동안 해미에 머물다가 1580년 7월 만호로 승진하여 지금의 전남 고흥군 도화면에 있는 발포로 간다. 당시 분경(음성적 뇌물)을 하지 않은 알가 군관이 종4품의 무관 벼슬로 임명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새임지에 부임한 직후의 일이다. 이순신의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려고 발포로 사람을 보냐 만호영 객사 앞뜰에서 오동나무를 베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성박의 심부름꾼에게 다름과 같이 호령했다. "이것은 나라의, 물건이라 사사로운 용도로 쓸 수 없다. 또 심은 이의 뜻이 있었을 터인데 어찌 이 오래돤 고목을 하루아침에 벤단 말이냐?" 53쪽 율곡이 이조판서로 있었을 때다. 율곡은 이순신이 훌륭한 인재라는 소문을 듣고 유성룡을 통해 한번 만나자고 청한 일이 있었다. 파직되어 불우한 처지에 놓인 이순신에게 유성룡도 율곡을 만나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나와 율곡이 같은 집안이라 서로 만나보는 것도 좋지만 그가 인사 책임자인 전상의 자리에 있는 동안은 옳지 못한 일이오." 그러고는 끝내 만나지 않았다. 56쪽 23년간 군인 생활 중에 이순신은 세 차례 파직과 두 차례의 백의종군을 겪지만 그 어느 경우에도 남을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죄천시키면 좌천시키는 대로 임지에 가서 그 직무에만 전념했고, 좌천시킨 자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일은 없었다. 부당하게 파면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원망 없이이를 수용했고, 복직 운동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상사의 오해를 받아도 굳이 찾아가 해명하려 들지 않았다. 벼슬을《 주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벼슬을 잃으면 그저 없는 대로 살 뿐이었다. 57쪽 이순신의 진중 일기를 기록 정신의 빛나는 기념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지용희(서겅대 경영학 교수)의 글이 있어 이를 인용한다. 기록은 자료이며 정보이다. 개인의 기록, 기업의 기록, 나아가 국가의 기록은 그대로 경쟁력이다. 장군의 빛나는 기록 정신이 있어 오늘의 그가 있는 것이다. (중략) 전쟁은 길었다. 그리고 참혹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와롭고 괴로웠다.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중략) 지친 장군을 견디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붓과 종이였다. 장군은 일기를 썼다. (중략) 만일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후세에 큰 문화유산을 물려주지 못했음은 물론 자신의 전쟁 준비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9쪽 장군은 전쟁 중에도 일기를 썼다! 필자는 평시에도 일기를 자주 쓰지는 못한다. 교단 일기를 남기고자 노력하지만 그마저도 게을음으로 놓치는 일이 많다. 장군에게 배우는 가장 큰 덕목이 바로 이것이다. 게을음이 스멀스멀 밀고 들어올 때마다 이 책을 곁에 두고 읽으려 한다. 전쟁 중에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도 일기를 쓰고야마는 그 비장한 마음을 느껴야 하니. 매 순간 삶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다간 한 인간의 비장한 삶을, 사랑하는 자식을 왜적의 손에 잃고도 그 애통함을 눈물에 붓을 찍어 그 눈물이 가슴을 타고 손 끝에 이르는 순간마저 기록으로 남긴 애절한 부성애를! 그 눈물이 장군을 다시 세웠을 것이다. 아들의 죽음조차 기록하지 않고는 그는 살아갈 힘이 없었으리라. 이순신을 향한 찬탄은 조선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이웃 일본에서는 최고 명장이요 군신(軍神)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도고 헤이히치로 제독이 러일전쟁 승전을 축하받는 자리에서 자신을 영국의 넬슨과 조선의 이순신에 비겨 칭송하는 축사를 듣고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를 넬슨에 비기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 비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 도쿠토미 이이치로의 《근세일본국민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나서도 이겼다. 조선의 전후 7년간에 걸쳐 책사, 변사, 문사가 있었으나 참으로 이순신 한 사람으로써 자랑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수군 장수들은 이순신이 살 있을 때에 기를 펴지 못했다. 그는 실로 조선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을 통틀어 최고의 영웅이었다. 353쪽 세상을 치유하는 책 이 책은 김종대 헌법재판관이 충무공 정신을 약재로 복용한다면 양극화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우리 사회가 치유될 수 있을리라는 확신을 담아 내놓은 책이다. 이순신을 다룬 책과 기록물, 영화들이 많다. 1975년 어느 책방에서 이순신을 만나 인생의 스승으로 가슴속에 품고 산 김종대 재판관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철저하게 문헌을 조사하였다고 했다. 이 책이 영화 명량의 제작에도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다시 한번 기록 정신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이 책은 어느 한 대목을 발췌하거나 줄거리 형식으로 쓸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 만큼 일자천금의 문장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어느 대목을 펼쳐도 가슴 뭉클한 명장면이, 도도한 장군의 선비 정신이, 행간마다 넘쳐나서 그 어느 대목도 잘라 쓸 수 없었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임진왜란에 비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참혹한 전쟁을 치러낸 인간 이순신에 비긴다면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위로가 절실한 분에게, 힐링이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인간 이순신의 다독임을 권하고 싶다. 이순신에 관한 책이 넘쳐나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한 권을 뽑으라면 이 책은 단연 군계일학이라고, 그러니 이 책만은 어느 집에서나 필독서로 간직했으면 좋겠다. 필자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책으로 들어갈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나는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눈물에 기대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으리라. 생의 마지막 고개를 넘는 순간까지 남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아니 이 책은 필자에겐 이미 경(經)이 되었다. 실존을 설파한 그 어떤 철학서보다, 자기계발을 하라고 등떠미는 얄팍한 성공서적보다 우위에 두고 싶은 책이다. 이것만이 진리라고 목청 돋우는 그 어떤 설교자보다 더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동해야 움직이는 동물이다. 인간 이순신은 신(神)이 아니기에 더욱 따르고 싶은, 배우고 싶은 멘토로서 친근함을 안겨준다. '아버지 이순신이라면 이럴 경우 뭐라고 해 주실까? 직장인 이순신이라면 선생인 나에게 뭐라고 해주실까? ' 2018년을 열며 필자의 인생길에 가끔은 기대어 묻고 싶고 울고 싶은 인생의 스승이 생겨서 행복하다. 그 사람이 현존하는 인물이 아니어도, 언제든 그의 목소리가 담긴 책 속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으니! 말만 앞서는 세상 인심에 비해 묵언수행으로, 철저한 기록 정신으로 죽음까지 넘어선 한 인간의 비장한 기록물 앞에 다시 한번 옷깃을 여며 감사의 눈물을 바치며 이 글을 접고자 한다. 그리고 김종대 작가님에게 존경을 보낸다. 전쟁 중에도 지극한 마음으로 백성을 돌본 공직자 이순신, 어떻게 사는 것이 청렴한 공직자인지. 지극한 효심과 부모로서 친족을 돌보는 어버이의 자세까지 세세히 찾아내어 통합적인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준 작가의 오랜 노력에 감사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에게 절실한 스승이 책 속에서 튀어나와 손짓한다. 다시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배울 것이 별로 없으니 현란한 수사에 넘어가지 말라고.
'작은 후회는 공부에 대한 노력 부족과 꿈 계발에 소홀한 것' '스스로 공부'하는 제가 틀리지 않았다 무슨 분야이든 ‘공부’는 필수 교직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익힌 것들이 많다.어떤 학생이 성장하고 있는가 관찰을 한 결과, 결코 지능이 우수한 것도 아니며, 현재의 성적이 꼭 높은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긍정 마인드'였다. 그러나 실패로 다가가는 아이들은 부모, 선생님을 비롯한 지도자 훈계 자체를 거부하기도 하면서 지도하는 사람에게 반항하는 것이 마치 자신의 올바른 모습이라고 착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거에 대한 후회가 있으며, 자기가 관심과 사랑을 하고 있는 대상이 있다면 다시는 자신처럼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광양여중에서 내가 관심있게 지켜 본제자가 고등학생이 되어 보내온 편지는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스스로 서기 위한 자신의 고민과 각고의 노력을 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었. 이같은 편지글은 미래를 더 의미있게 살기 위하여 고민하는 학생이라면 자신의삶을 돌아보며 살아가게 하는 좋은 자극제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저는 중학교 때 그 누구보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즐겁고 보람차며 여유로운 생활을 했었지요! 아주 조금의 후회라도 있다면, 공부에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던 일과 저의 꿈 계발에 소홀했던 점인 것 같습니다. 탄탄하지 못한 기초 위에 돌을 쌓으려니 힘이 많이 들더군요. 하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선생님의 제자이신 선배님들과 같이 기초를 쌓으며 스스로 노력하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주위에서 학원이나 과외를 많이들 권하는터라 조금씩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나니 스스로 공부하는 저의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핵심은 부족한 만큼 다른 친구들의 몇 배로 노력해야한다는 것이겠지요.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비록 아직은 눈에 띄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자랑스러운 소식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성적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만든 결과가 아님을 그 누구보다도 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에 항상 더 아쉽고 후회됩니다. 얼마 전, 한 선생님께서 저를 위로하시며 “후회가 남지 않는 결과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후회를 줄이기 위해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가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받은 선생님의 편지에서도 ‘지금 열심히 시간을 요리하지 못하면 시간이 보복을 할 것이다.’라는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들어있더군요.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열심히 쪼개고 쪼개서 보람차게 보내 선택의 길에서 여유롭게, 당당하게 선택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IT 컨설턴트’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며 컴퓨터 공학과라는 목표가 새롭게 생겼습니다. 이제는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려 갈 차례이지요. 물론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음악과 춤도 놓고 싶지 않지만 무슨 분야이든 ‘공부’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배워보고 싶던 분야인 ‘컴퓨터’분야를 위해 달리는 자신이 되겠습니다. 언젠간 광양여중에 돌아갔을 때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어 여중 후배들의 꿈이 되고 그 길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일보다 보람차고 그 어떤 성공보다 값지리라 생각합니다.---(생략) '
무자격 교장공모제의 확대는 승진 임용의 근간을 흔들고 교직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설문조사 결과 드러났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교장공모제 확대에 대한 초중고 교사 207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65%의 교사들이 부정적이라는 응답을 한 바가 있다. 교장공모제는 승진을 착실히 준비해 온 일반교사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줄 수 있다. 본인도 교육경력 27년간 벽지농어촌에서 18년을 근무했고 승진을 위해 다양한 스펙을 쌓아왔다. 승진 임용을 위해 농어촌 벽지근무, 연구 연수, 담임 및 생활지도, 각종 자격 취득 등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런데 급작스레 내부형 공모제의 확대 소식을 듣고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물론 능력을 갖춘 사람이 교장이 되어 단위학교를 잘 경영하고 대한민국 교육발전에 기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떤 조직이든 승진을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갖추고 많은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인사라는 것은 공정하고 예측 가능해야 조직원들이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자격 교장 공모제는 차근차근 승진을 준비해온 교사들에게 자괴감을 심어줄 뿐이다.
최근 정부가 시민단체 근무 경력도 공무원 호봉에 반영하는 방안 시행을 밝혔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보수 규정 개정안을 공개하고,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따라 등록된 단체에서 상근(상근ㆍ하루 8시간 이상 근무·유급)한 경력을 호봉으로 산입(算入)ㆍ인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변호사 자격증, 박사 학위, 군 복무 경력 등 특수 경력이 있거나 민간 기업 출신으로 각 부처 업무와 직접 연관(비율 재산정)이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호봉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비공무원의 공무원 경력 인정은 업무 관련성에 따라 비율을 달리해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정부의 이번 시민단체 경력의 공무원 경력 산입 개정안은 업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시민단체 경력을 일괄적으로 호봉으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시민 단체 경력의 공무원 경력 산정 대상 시민단체 1만3833곳(지난해 9월 기준)으로 밝혀졌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현직 전후(前後)에 시민단체 경력이 있는 사람은 일반 공무원뿐 아니라 청와대 행정관, 장관 정책보좌관, 국영기업체 임직원 등도 시민단체 경력이 있으면 혜택을 받게 된다. 공무원 경력의 제한적 인정을 기반으로 하는 현재 경력 산정 원칙에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시민단체 출신이 경력 채용 등을 통해 공무원 신분이 됐을 때도 경력을 적용해 호봉을 인정받게 된다. 현재 공무원 신분인 사람이 과거 시민단체 활동 경력이 있어도 해당 경력을 소급 적용해 호봉이 상향 조정된다.벌써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 우려스런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역차별, 현직 공무원들의 상대적 사기 저하, 시민 단체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현 정부의 코드 인사 산물, 비 관련 단체의 공무원 경력 산입 재고, 비정부단체(NGO) 경력 인정 모순 등 크고 작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정부는 시민단체 경력의 공무원 경력 산입 방안에 대해 시민단체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힘쓴 경력도 공직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강변하지만, 사회적 갈등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이 많았던 쟁점 사안에 대해서 강력 저항, 소송, 불법 시위 등으로 현행 제도와 법령, 정부 등에 맞섰던 세력(사람)들이 이 경력을 공무원 경력으로 인정받고 우대받는 비정상적 사태이다. 이는 결국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법령을 준수하고 납세하고 복무를 한 선량한 사람들이 역차별을 받는 것을 의미 한다. 과거 공무원 경력에 산입되는 비공무원 경력은 아주 제한적으로 비율에 따라 시행돼 왔다. 이를 무시하고 이념ㆍ정치적 성향에 따라 소위 ‘우리 편’ 챙기기식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 현 정부와 법령을 위반한 사람(세력)들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우대받는 상황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특정직 공무원인 교육공무원(교원)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직전 경력, 비공무원 경력은 비율에 따라 아주 엄정하게 인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에 따라 비공무원 경력이 공무원 경력으로 산입돼 이익을 받는 자, 상대적 손해를 받는 자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권 차원이 아니라 윤리와 상규(常規)에 관한 것이다. 유리와 도덕, 상규를 위반한 행정은 위험한 것이다. 비공무원 경력의 공무원 경력 인정과 산입은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사행돼야 한다. 그리고 그 폭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현행 법령을 위반한 사람들이 우대받는 사회는 공정 사회, 정의로운 나라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특히 이번 정부의 시민 단체, 비공무원 경력의 공무원 경력 산입 방안 공표에서 안타깝고 우려스런 점은 단기적, 비공론화 일방적 발표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국민적 관심사, 이해 관련자가 분명하게 갈리는 의제(agenda)는 반드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시행돼야 한다. 즉 공청회, 세미나, T/F 조직, 타국의 사례, 우리나라의 현실적 상황 등 다면적으로 분석하고 종합적인 판단 하에 법령화하고 공표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기간의 탁상공론식 행정과 일방적으로 대국민 공표는 재고돼야 한다. 결국 정부의 이번 방안은 재고돼야 한다. 정책적 숙과 성찰이 필요한 사안이다. 정부의 시민단체 경력의 공무원 경력 산임 및 호봉 반영은 재고되고 신중하게 고려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현직 공무원(교육공무원 포함)들과의 형평성과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반영 비율도 현행 비공무원 경력의 공무원 경력 산입 비율을 고려하여 증감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의 인사와 정책 결정, 행정 등은 공정성과 객관성, 형평성 등을 두루 고려하여 누구나 열심히 일한 사람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시스템(system) 구축에 정부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 현 정부의 인사와 행정을 소위 ‘캠코더(캠프, 코드, 여당)’라고 질타하는 사회 일각과 누리꾼들의 지적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법령을 준수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우대받고 잘 사는 나리이고 사회인 것이다.
소한이라 그런지 오늘도 영하 5도의 날씨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 날씨까지 흐려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런 날일수록 가벼운 운동으로 상태를 잘 유지해야 될 것 같다. 좋은 선생님? 좋은 생각 품고 사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생각대로 산다.도시에 살고 싶은 생각을 품으면 도시에 가서 산다. 농촌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을 가슴에 품으면 농촌에 살게 된다. 작은 아파트에 살고 싶은 생각을 품으면 작은 아파트에 살게 되고 큰 아파트에 살고 싶은 생각을 품으면 큰아파트에 살게 된다. 좋은 생각 품으면 선하게 살기 마련이고 나쁜 생각 품으면 악하게 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에 소중한 무엇인가를 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이는 슬픈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어떤이는 서러운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 어떤이는 아픈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이는 아름다운 기억을 품고 살아갑니다. 기쁜일을 즐겨 떠올리며 반짝이는 좋은 일들을 되새기며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상처 안고 살아가면 평생 피해의식 속에 살기에 학생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 평생 안 좋은 추억 품고 살면 늘 위축된 삶을 살게 되니 애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아름다운 생각, 좋은 생각 품고 살면 좋은 선생님이 된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면 좋은 선생님이 된다. 속이 좁으면 학교생활이 힘들어진다. 하루에 열두 번 애들이나 그의 부모님이나 선생님 때문에 마음에 풍랑이 일어난다. 너그러운 마음이 없으면 감당이 안 된다. 호수 같은 잔잔한 마음,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지녀야 마음의 풍랑이 잔잔해진다. 부모님이 자식 잘 키우면 자식 때문에마음이 너그러위지듯이 선생님이 학생들 잘 교육하면 학생들 때문에 너그러워진다. "자효부심관이라, 자식이 효도하면 아버지의 마음이 너그러워지느니라." 올해는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선생님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자녀에게 '행복한 학습코칭'이 필요 자녀의 학업문제로 인하여 가슴앓이를 하는 학부모가 한두 명이 아니다. 과외를 통하여 돈은 많이 들였는데 성적이 도무지 오르지 않고 아이는 자신과 멀어져 가고 있다는 아픔을 호소하는 한 학부모가 상담을 요청하여 왔다.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문제가 어디있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질문을 하여 보니 자기 자녀를 몽땅 아웃소싱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 인터넷, 그리고 텔레비전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그저 먹여주고 입혀주는 물질적 양육자로 전락되어 있었다. 이러한 교육을 어떤 상품에 비유를 하자면 핵심 부품이 중요하다. 이 부품을 외부 기업에 주고 포장만 자기 회사가 맡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모든 것 다 챙겨주고, 학교에 갈 시간, 학원에 갈 시간을 알리는 시간관리자 내지는 비서가 된 부모의 모습이 보였다. 가끔은 자녀를 윽박지르고 타이르기도 하고 꾀고 구슬려서 12시간 공부만 하게 하려 한다. 이런 삶 속에서는 나날의 일상생활이 사무적인 지시와 경고만이 오갈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설도 쏟아진다. 스트레스가 날마다 쌓여가는 생활이다. 이것은 교육의 기본이 아니다. 이런 아이에게는 조금 기다려주는 것이다. 머나 먼 여행을 가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12년간 30센티 미터 앞의 책만 보라고 하면 어디에서 꿈이 나올 것인가! 이제 부모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꿈을 꾸고 성취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야 한다. 그리고, 꿈 찾아 떠나는 여정을 함께 동행하여 본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더 생각이 굳어지기 전에 학부모는 자녀에게 '행복한 코칭'을 하여야 한다. 정보를 알아보면 학교에서도 코칭수업을 하는데 이를 모르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이 쉬운 길만을 찾기에 스스로 찾아가는 길을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부모는 모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도 자신과 싸우면서, 스스로의 길을 가는 학생이 있다. 3학년인데 작년 1년 동안 꾸준히 나와 만났다. 그러던 중 2학기가 되어 학원을 끊었다는 것이다. 이 학생도 학원을 끊은 후에는 어느 정도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역시 첫 시험은 잘 보지 못했지만 마지막 기말고사에서 10점을 올려 뿌듯하였다고 고백을 하고 있다. 영어도 마찬가지로 힘들었지만 영어 본문을 외우고 문제도 다양하게 풀어봤더니 점차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는 소감이다. 선생님께 배우고 학원도 끊고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조금은 터득한 것 같아서 매우 이번 학년은 잘 보낸 것 같다니 가르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마지막 이 학생의 생각은 자기주도학습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소개시켜주고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로 한 학기 수업 소감문을 정리하고 있다. 남들은 모두 중학교 3학년인데 어떻게 학원이나 과외를 끊겠느냐고 말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서기를 두려워 하지 않은 학생은 자기 자신의 삶에서 운전대를 잘 잡고 이 거친 세상을 잘 살아갈 것으로 믿는다. 이제는 학생에게만 이런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부모가 이런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 길인가를 함께 논의하면서 얽힌 교육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앞으로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EBS(사장 장해랑)는 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채널 정체성 재정립’, ‘이용자 중심의 플랫폼 서비스 제공’, ‘지속 성장기반 구축’을 3대 목표로 내세웠다. 이와 함께 ‘행복한 교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늘 곁에 있는 7개 EBS 채널’, ‘4차 산업혁명시대, 생애주기 맞춤형 콘텐츠’, ‘놀며 체험하는 첨단교육 테마파크’ 등 10대 약속도 내걸었다. 장해랑 사장은 “일산 신사옥 시대를 맞아 2018년을 제2창사 원년으로 삼고 ‘Restart EBS, 교육이 세상을 바꿉니다’를 슬로건으로 이 같은 계획을 담았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각 채널의 방향성을 명확히 해 차별적인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계획이다. 지상파 1TV는 ‘지식, 민주시민 교육채널’으로 하고 2TV는 ‘창의융합 교육채널’로, FM라디오는 ‘인문예술음악’으로 정했다. 플러스1은 ‘수능 채널’, 유아·어린이 채널인 EBSu는 ‘EBS키즈(Kids)’로 명칭을 변경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이날 EBS는 반려견 전문가 강형욱이 출연하는 ‘강형욱과 빅마마의 개슐랭가이드’, 웹드라마 ‘면접후기’, 청춘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마이벌스데이(My Verse. Day)’, 피해자·가해자·방관자의 시선에 따라 각 상황을 체험해보는 ‘학교폭력, 앵그리 키즈’, 다양한 역사 현장과 AR(증강현실)기술을 연계한 ‘역사 호출’ 이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도 소개했다. 또한 ‘다큐 시네마’를 신설해 월 1회 국내 우수 독립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장 사장은 “TV보다 웹과 모바일을 통한 콘텐츠 이용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며 “모바일 인터렉티브 콘텐츠, 실험적인 크로스미디어(멀티플랫폼) 프로그램 제작을 강화해 젊은 시청자에게 적극 다가서겠다”고 말했다.
한국교총 회장단 등 대표단 30명은 무술년 새해를 맞아 2일 오후 현충원을 찾아 조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애국운동가와 호국영령을 추모했다. 대표단은 현충탑에서 헌화, 분향에 이어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