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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지나친 체벌은 독(毒), 적절한 체벌은 약(藥) 화요일 아침 직원조회시간, 전 교직원을 대상으로 도교육청에서 내려온 체벌금지에 따른 대체프로그램 연수가 실시되었다. 내용인 즉, 앞으로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모든 체벌 행위가 금지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교사 개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체벌금지가 공론화됨에 따라 이에 따른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학교별 도교육청 체벌 대체 프로그램 예시 안에 따라 운영하고 있으나 이것 또한 현실과 동떨어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체벌을 찬성하는 일부 교사들은 상황에 따라 체벌이 약이 될 수 있다며 이 규정을 강도 있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먹구구식의 체벌 대체 프로그램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는 교사들도 있었다. 체벌이 필요할 때마다 기준안을 꺼내놓고 적용시키는 것도 모양새가 우습다고 본다. 마치 법 조항을 따지듯 아이들과 승강이를 벌이는 것 또한 교사로서 할 짓이 못 되는 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교사들은 기준안 자체를 확실히 암기하여 체벌이 필요할 때마다 조항을 제시하여 거기에 따른 벌을 줘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반복적인 수업방해와 교사 지도에 불응하는 아이에게 대체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방과 후 아이들을 남겨놓는 것도 문제가 많다. 교사는 그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퇴근도 하지 않고 남아 있어야 하며 심지어 그 아이들을 특별히 지도해야 하는 교사까지 배정해야 한다. 체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생각했던 대로 아이들 대부분이 체벌금지에 찬성하였으며 그 이유로 교사의 비인격적인 행동은 오히려 반성은커녕 감정만 더 상하게 할 뿐이라고 답하였다. 체벌을 찬성하는 소수 아이들은 말로 타일러 듣지 않는 아이들로 선의 피해를 보는 쪽은 늘 자신들이라며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적절한 체벌이라고 하였다. 꼭 체벌이 필요한 경우,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체벌은 반성문을 쓰는 것과 청소였다. 특히 본교와 같이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교실이나 교무실 등에서 손을 들고 서 있게 하는 체벌은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어 아이들이 그다지 좋아하는 체벌이 아니었다. 어떤 남학생은 우스갯소리로 그럴 바에 차라리 몇 대 맞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다. 체벌금지가 법제화되어 시행될 경우, 학교마다 체벌은 감소하겠지만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하는 일부 교사들이 언어 폭행을 일삼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사의 언어 폭행이 체벌보다 더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졸업 후, 학교를 방문한 제자의 입에서 학창시절 내가 한 말에 상처를 입었다며 하소연하는 제자를 대할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제자는 세월이 지난 뒤에도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 어떤 대책 프로그램을 제시해도 체벌에 대한 부작용은 끊이지 않으리라 본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마인드를 전환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한, 잘못된 생활습관이 결국 학교생활까지 이어져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장소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가 지나친 아이들의 행동은 수업방해, 교사 폭행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와 같은 아이들에게 도교육청이 제시하는 대체 프로그램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학교는 도교육청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학교 실정에 맞는 대책 안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학생부와 상담부의 기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두 부서를 중심으로 문제아를 위한 집단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생활의 부적응이 곧 교사에게 좋지 않은 감정으로 대하게 되고 심지어 교사 폭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체벌금지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기 전에 선행(先行)되어야 하는 것은 사제 간의 정이 아닌가 싶다. 소수의 학생들 아니 일부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대한민국 모든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생활에서 체벌을 마치 필요조건처럼 여겨졌던 구세대도 체벌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꿀 필요가 있고 체벌을 무조건 나쁘게만 여기고 있는 요즘 신세대도 체벌을 무조건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지나친 체벌은 독이 될 수 있지만 적절한 체벌은 약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랑 받은 쥐 미국 어느 대학에서 쥐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했다. 첫 번째 그룹은 한 마리씩 구분된 쥐에게 충분한 먹이를 주었다. 두 번째 그룹은 다섯 마리 쥐를 함께 지내게 하며 먹이를 주었다. 세 번째 그룹은 사람의 손에 쥐를 놓고 쓰다듬어 주면서 먹이를 주었다. 그 결과 첫 번째 쥐는 6백일을 살았도 두 번째 쥐는 7백일을 살았다. 그런데 세 번째 쥐는 무려 9백50일을 살았다. 또 학자들은 쥐를 해부하여 뇌를 살펴보았다. 세 번째 그룹의 쥐들이 다른 쥐들 보다 뇌가 크고 무거웠으면 잘 발달해 있었다고 한다. 용기를 주는 말 소설 아이반호로 유명한 영국의 계관시인 월터스콧은 어린시절 '멍청한 아이'로 놀림을 받았다. 그는 열등생이 쓰는 종이모자를 쓰고 교실 한구석에서 침울하게 지냈다. 그러나 스콧은 문학에 관심이 있어 좋은 시를 보면 열심히 외웠다. 그가 열세 살쯤 되었을 때 유명한 문필가 모임에 참석했는데 여기서 그의 운명이 변했다. 당시 유명한 시인이었던 로버트 번주가 우연히 스콧의 시 암송을 듣고는, "꼬마야, 너는 언젠가 영국의 위대한 인물이 될 거다." 라고 칭찬했다. 번즈의 칭찬을 받은 이 '열등생'은 그때부터 용기와 꿈을 가지고 인생을 개척, 1800년대에는 영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시인, 소설가, 법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은 한 인격을 변화시킨 것이다. 체벌, 그 대안을 찾아서 체벌금지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면 금지로 인해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들까지 기사로 접한다. 체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직 교사와 모범생(?)들이다. 학부모가 내놓고 체벌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말로 통하지 않는 아이들, 자식 같은 아이들이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며 이죽거리는 행동까지 보인다는 하소연들이 넘친다. 나도 그런 아이들을 만나는 게 힘들어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6학년 영재반 교육 연임을 거절했다. 그런가 하면 체벌로 인해 피해를 본 학생과 학부모의 고소 고발로 여론의 뭇매를 맞거나 아예 교단에서 내려서야 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한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고 교육하기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 대안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뚜렷한 대안 없이 학교 현장에 내맡겨진 셈이다. 필자 또한 체벌로 인해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있기에 체벌에 관한한 최대한 신중하게 처신해 왔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초등학교 고학년은 지금의 중,고등학생처럼 사춘기를 지나며 선생님이나 어른들께 버릇 없이 구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것을 몇 번 제지하다가 고집을 부리는 우리 반 반장 엉덩이를 20대 가까이 때린 경험이 있다. 잘 하겠노라는 다짐을 받기 위한 것이었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섞이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그때 우리 반에서 가장 내 말을 잘 따르고 학급 일에 모범을 보인 반장의 반항이었기에 더 흥분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학생과 나쁘게 헤어지진 않았지만 내 가슴 속에는 응어리로 남아 있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상처를 생각하며 체벌을 해야 할 때마다 여러 번 생각하여 그 방법을 바꾸기 위해 애썼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대화가 먼저 내 나름대로 정한 체벌 규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행동이 현저할 때, 여러 번에 걸쳐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날 때, 습관적으로 학습을 방해하거나 과제를 소홀히 할 때등과 같이 단순한 실수가 아닌 고의성이 짙은 잘못에 대해서는 1차로 철저한 상담을 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따로 남겨 놓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거나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문제 행동 뒤에는 의외의 사정이 숨겨진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의 반항은 어찌 보면 관심을 가져 달라는 우회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1단계에서 해결이 되었으나 반복 될 경우에는 선생님도 장기전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흡을가다듬고 본인이 쓴 반성문에 부모님이 친필로 답신을 쓴 것을 받아오게 하는 방법을 쓴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먼저 화를 내면 이미 게임에 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화를 내는 선생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이죽거림이나 뒷말로 뒤에서 무시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일단 화를 먼저 내는 사람이 진다고 생각한다. 교육하는 일이 아이들을 이겨야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참음과 기다림을 밑바닥에 깔고 어버이의 가슴에다 냉철한, 그러면서도 따스한 온기를 지녀야 가능한 선생의 길! 부모의 친필 싸인이나 편지를 받아오게 하는 방법은 매를 맞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체벌(매를 들거나 벌을 서게 하는 일)보다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다. 이런 방법으로 통하지 않는 아이들은 없었다. 초등학생이라서 이 방법이 순진하게 통했던 것일까? 세상이 날로 변해 집은 있으나 가정이 없는 아이들이 많은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물질을 앞서 가지 못한 정신 문명의 황폐함에서 기인된다고 생각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사는 지 근본적인 물음은 던져 두고 남들 따라 장에 가고 학교에 가고 어른이 되어 부모된 자세나 교육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지 못하고 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음에서 기인되는 것은 아닐까. 법으로 규제하는 체벌 금지, 대안일 수 없다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육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체벌 또한 선생님의 역량이며 책임도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체벌할 수 있다고 해도 체벌하지 않는 선생님이 있을 수 있고, 체벌하지 말라고 법으로 정해도 체벌하는 선생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체벌금지를 하면 교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문란해진다고 말하는 것도 그럴 듯한 이유가 될 수 없으니 난감하다. 결국은 체벌금지는 법 규정 이전에 선생님 각자의 뚜렷한 소신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체벌을 하여 불이익을 보면서까지 할 바에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할 수 밖에 없지 않냐고 하는 말도 그리 좋게 들리지 않는다. 소극적으로 피난처를 찾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때려서라도 가르쳐 달라는 학부모도 있지만 그걸 진심이라고 믿지는 말아야 한다. 속으로는 때리지 않고도 잘 가르칠 수 있기를, 그렇게 무한한 사랑과 능력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는 뜻이 숨겨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자랑은 아니지만, 교직 경력 30년 동안 체벌을 하면서까지 열심히 정열적으로 가르쳐서 주셔서 감사하다고 한 제자는 한, 두명에 그친다. 대부분 자상하게 대화하고 함께 아파하며 참고 기다려 주며 가슴으로 가르친 제자들이 잊지 않고 자식처럼 찾아준다. 체벌이 뜨거운 태양이라면, 인내하는 방법이 훈풍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체벌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의 문 앞에 서 있다. 언제까지 구시대의 잔재인 독재 시대의 강압과 군사 문화의 전유물인 폭력이나 체벌 문화를 필요악으로 여기며 합리화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바야흐로 세상은 인권시대이다. 민주주의를 배우는 교정에서 빠른 효과를 보겠노라고, 모범생들의 학습을 방해한다고, 선생님의 훈육에 대든다고 체벌을 합리화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없어질 체벌문화라면 힘들더라도 함께 대안을 찾을 일이다. 가정 폭력으로 맞고 자란 아이들이 다시 때린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맞고 군대 가서도 맞으면서 체벌이 세습되는 것이다. 학교 폭력을 추방하자고 결의 대회를 하면서 선생님의 체벌은 어쩔 수 없으니, 필요악으로 용인하자고 하는 것도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이제는 정말 머리를 싸매면서 공부를 하고 그 상황에 대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3가지 원칙을 세워 놓고 가능한한 기록으로 남기며 대처하고 있다. 1.체벌이 아니면 그 학생을 지도할 방법이 없는가? 2.체벌이 그 학생에게 유익이 되는가? 3.문제 행동을 하기까지학생의 사정이나 형편에 관해 몇 차례나 기록을 남기고 상담을 했는가? 서두에 인용한 사랑 받은 쥐와 용기를 주는 말에는 체벌이나 사랑의 매는 없다. 선생님이 때려 주어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이제는 힘들더라도 '사랑의 매'는 괜찮다는 어설픈 교육철학은 던져버리자고 나 자신에게 다짐해 본다. 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고통과 책임만 따를 뿐이다.
SBS드라마스페셜 ‘대물’이 시끄럽다. 그도 그럴 것이 ‘대물’은 26.3%로 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며 ‘뜨고’ 있는 중이다. “‘여성대통령 드라마’ 관전법” 같은 칼럼 등 일간신문들이 앞다퉈 관련 기사를 내보내고 있기도 하다. 원칙적으로 한창 방송중인 드라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종영까지 기다릴 수 없게된 이유이다. 논란의 한가운데엔 ‘여성 대통령’이 있다. 작가와 PD교체 등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위기다. 여야 정치권 반응도 제각각이다. 특히 민주당은 ‘박근혜 띄우기’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내 친이계 또한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불편한 심기가 완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웅 SBS드라마 국장은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봐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드라마로만 보더라도 ‘대물’에는 두 가지 문제가 엄존한다. 이제 4분의 1쯤 나간 초반 전개이니 속단할 수는 없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캐릭터의 희화화다. 희화성을 기반으로 하는 시트콤이 아닌데도 ‘대물’에는 웃기지 않는 등장인물이 거의 없다. 대통령(이순재)에서부터 지청장(이재용), 하도야 검사(권상우), 그리고 많은 국회의원들까지 딱딱하거나 엄격한 모습이 일반적·상식적일 인물들 희화화는 드라마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현실정치판의 ‘아니면 말고’식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하더라도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주인공 서혜림(고현정)을 돈키호테형 인물로 그려나가는 것은 진짜 심각한 문제다. 클린정치한다며 법정선거비용만으로 보궐선거를 치르고, 공천받은 후보가 기획·전략 등 당의 지원을 거부한 채 ‘나홀로’ 선거 운동으로 당선되는 건 그야말로 코미디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방송시기이다. 2004년 MBC TV는 ‘영웅시대’를 방송한 바 있다. 100부작이었으나 조기 종영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띄우기 논란이 거셌다. 결국 드라마에서 영웅으로 부각되었던 이명박 서울시장은, 대통령이 되었다. 요컨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1년 6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여성대통령’ 드라마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모습이 비중있게 그려질 때 어떤 식으로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력 여성 대통령 후보가 없다면 별일 아니지만, 그렇지 않으니 문제인 것이다. 하기 쉬운 말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지만, 무릇 대중은 그렇지 못한 속성에 노출되어 있다. 세계적으로도 선거에서 방송을 이용, 당선된 일이 많다. 방송은 원래 그런 것인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면 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
▨ 사례 S교사는 칠판을 낙서장처럼 사용한다. 마치 대학 강사가 강의 하듯이 설명하면서 이쪽에 날아가는 글씨로 썼다가 저쪽에 아무렇게 쓰기도 한다. 학생들은 교사가 설명하는 것을 듣고 나름대로 정리를 하지만 아무래도 정리가 잘 안 된다. 때론 그림도 그리지만 그 것도 좀 대충 그려서 잠시 다른 생각이라도 했다간 무엇인지 잘 알아 볼 수가 없다. ▶ 무엇이 문제인가: 판서의 구조화가 요구됨 판서가 제멋대로 낙서하듯이 설명을 하게 되면(판서라고 할 수도 없지만) 학생들은 학습 내용을 당장은 이해하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게 된다. ▶ 왜 문제인가: 학습 내용 전달 부정확 교사가 열심히 설명하면서 수업을 해도 시간이 지나 나중에 학생들이 공책에 정리된 것을 들쳐보고 공부를 할 때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생들도 학습장 정리를 대충하게 된다. 교사가 판서를 잘 해주지 않고 대충하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도 당연히 따라하게 마련이다. 교사는 학습장을 구조화 하여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나는 설명하느라 이렇게 썼지만 너희는 바르게 쓰라고 해도 학생들은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 어떻게 개선하나: 논리적으로 압축된 형태의 구조화된 판서 학습한 내용을 핵심을 간추려서 논 리적으로 압축된 형태로 판서를 하면 학생들은 나중에 학습한 내용을 기억해 내기가 쉽다. 빈칸을 이용한 판서 판서의 내용을 모두 쓰는 대신 중요한 부분을 빈 칸으로 남겨두고 학생들에게 빈칸을 채우게 하면 흥미유발과 형성평가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앞 글자만 적어주는 판서 학습문제 : 흉내 내는 말을 사용하여 말하여 봅시다.(2학년 국어) * 흉내 내는 말을 사용하면 좋은 점 - 구 - 실 - 재 (수업에서 이미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에 구체적이다. 실감난다.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학습 내용이 ‘구’, ‘실’, ‘재’만 말해도 척척 나온다.) 학생들의 발표를 교사가 정리해서 판서 학생들의 발표를 주의 깊게 듣고 간결하게 요약하여 판서를 해준다면 학생들은 더욱 발표 의욕을 갖게 하고 학습에도 열심히 참여하게 된다. 발표를 위해 조사활동도 더욱 잘 해오게 될 것이다. 자료제공=한국교육과정평가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수능시험을 치르겠다고 응시원서를 낸 학생은 사상 처음으로 70만 명이 넘었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시모집에서 수능최저학력기준과 무관한 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을 제외하더라도 이번 수능시험은 대략 60만 명 내외의 수험생들이 응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는 수험생들과 이들을 뒷바라지한 학부모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초조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철저한 시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결국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지난 7일 삼수생 김모 씨가 경기 성남시의 수능시험지 인쇄 공장에서 시험지를 훔치려다 미수에 그쳤다. 다행히 경찰관 36명이 2교대로 24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기에 시험지 유출은 막을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을 보며 기억하기 싫지만 2004년 대규모 수능부정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휴대전화 메시지를 이용한 정답 전송과 대리시험 등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바 있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부정행위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을 산 일이 있다. 이후로도 수능시험은 아니지만 2007년 김포외고 입시와 2008년 고3 전국연합학력고사에서 문제지가 유출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수학능력시험은 수험생들이 적게는 일 년부터 많게는 십수년 동안 피와 땀을 흘리며 준비했기에 철저한 관리와 운영은 당연하다. 입시제도가 다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능은 대입전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능 결과에 따라 젊은이들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 정도로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따라서 수능시험과 관련된 제반 사항은 티끌만한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교육 당국은 이번 수능시험지 절도 미수 사건을 접하며 시험문제 유출에 대한 유혹과 시도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험 출제, 시험지 인쇄, 시험지 배포, 채점 등 전 과정에 걸쳐 철통같은 보안책이 요망된다. 더불어 예방 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수험생들은 부정행위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망치게 하는 일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축하합니다! 충남 서산 서령고 이상현 군, 2충1효 전국학생백일장대회에서 대상 수상! 지난 10월 23일(토), 태안군 남면 숭의사 일원에서 실시된 2충1효 전국학생백일장대회에서 충남 서산 서령고 1학년 5반 이상현 군이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이 군은 '화개고등학교 1학년 7반'이란 제목으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화개라는 고장에서 근무하는고등학교 교사의 시선으로 지역감정 문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정밀하게 묘사해 심사위원들로부터 소재와 이야기 전개방식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2충1효 전국학생백일장대회는 올해로 2회 째를 맞고 있으며 전국에서 문학에 관심이 많은 초·중·고 학생 및 일반인 500여명이 참가해 각자의 필력을 겨뤘다.
중 고등학교 시절이 벌써 1년 밖에 남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우려곡절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학교라는 곳에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이 남아있다. 나열해 보자면 첫째는 폭력, 둘째는 왕따, 셋째는 흡연문제이다. 이 중에서 미래에도 가장 해결되기 어려울 거라는 흡연 문제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의 흡연율은 아시아 1위이고 앞으로도 흡연율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 흡연 문제로 인해 청소년들의 건강문제에 까지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완전히 성숙하기 이전의 청소년의 흡연이 성인이 되어서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2배이상 높아진다고 한다. 이렇듯 청소년의 흡연이 증가할 때 국가의 입장에서도 반가운 소식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교육으로 학생들의 금연을 촉구하고 있다. 흡연예방교육을 통해 흡연의 무서움을 고취시키게 만들고, 흡연동영상을 보여주며 흡연의 심각성을 촉구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흡연 학생들을 모아놓고 금연 교육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도 예전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정작 아직까지도 흡연은 막지 못했다. 오히려 증가했다. 그렇다면 결국 새로운 해결방안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어른들, 특히 학교 선생님들의 흡연을 자제해야 한다. 흡연에 대한 발언을 들어보면,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어른이니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니까, 스트레스 받으니까...’라는 이유로 흡연이 가능하다는 자기 합리주의 사고를 펼친다. 결국 그에 대항해서 학생들은 ‘입시에 스트레스 받고, 내신에 고통받고, 취업도 어려운데 미래를 도통 모르겠고...’하는 반박의 논리를 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듯이 선생님들의 모범으로 인해 학생들의 흡연 변명을 미리 막아야 한다. 둘째, 흡연 적발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 해야 한다. 흡연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선생님들의 흡연학생 감시가 우스울 수 있다. 선생님들의 감시를 벗어날 수 있는 장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그 학생들의 적발까지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몰래피는 간큰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노력만 조금 더 하신다면 충분히 적발 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적발된 학생들에게는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오명을 남기는 일벌백계를 행하여 흡연학생들의 압박을 가해 주어야 한다. 셋째, 청소년 보호법을 강화 시켜야 한다. 현재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파는 가게가 적발시에는 몇 개월 영업정지로 경미한 처벌을 가하는 수준이다. 청소년 보호법을 강화해서 그런 가게들이 적발시에 더 강력한 처벌을 주어 다시는 청소년 들에게 담배를 파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결국 흡연 해결방안은 시대의 추세에 맞게 강경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실질적인 행동과 법안 개정은 필수라고 본다. 그리고 막무가내의 흡연학생들에게 억압적인 행동은 반발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온화하게 대응할 필요도 있다. 물론 필자의 해결방안도 100% 확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여러조건으로 인해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더러운 공기를 학교에서나마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 가지 관문 어떤 현인의 제자 중에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특히 이 사람은 말을 지어내 남을 험담하고 다녔다. 현인은 조용히 제자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은 생명의 수분이요, 파멸의 무기라네. 남을 판단하는 말은 삼대문을 통과한 후에 해야하는 법일세." "그게 도대체 어떤 문입니까?" "첫째로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둘째로 자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 하는 문을 통과해야지. 셋째는 이웃에 무슨 유익이 있을까 하는 문을 통과해야 할 걸세." 선생은 그 업의 특성 상 학생들에게 늘 잔소리를 달고 삽니다. 교직원 간에도 업무의 특성 상 본의 아니게 충고를 하거나 불평 불만을 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매우 사소한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공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많은 말을 달고 사는 직업입니다. 그러다보니 소통의 부재에서, 생각의 차이에서, 같은 표현이라 하더라도 전달 상황에 따라서 오래가 생기기도 하여 어려움에 처하는 일이 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선생님의 말을 처음부터 듣지 않고 꼬리만 듣고 집에 가서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그것이 칭찬이라면 괜찮지만 혹시 꾸지람이나 질책을 주는 경우라면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말을 한 사람의 의도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내용만 전달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 아침에 위의 세 가지 관문을 읽고 느낀 바가 많아서 함께 나누고 싶어서 올립니다. 학교도 엄연히 직장이기에 교직원 간에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특히 매사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거나 태클까지 거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 직장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니까요. 교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인간 관계의 망이 거의 다 노출되어 살아야 하는 학교도 이제는 더 이상 안전 지대가 아님을 실감합니다. 오랜 세월 거의 성역에 가까웠던 교직 사회는 정보 공개 시대를 지나며 먼지 하나 없어야 하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세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맡은 업무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는 일, 학부모를 비롯한 대민 관계에서도 세 가지 관문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습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러면서도 의연한 선생이고 싶습니다. 특히 모든 불행의 단초인 내 입에 세 가지 열쇠를 채워서 달고 살아야하겠습니다.
주말에 결혼식이 겹치는 바람에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결혼날짜로 길일에 해당되는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결혼식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세군데를 다녀오고 나서야 정신을 겨우 차릴 수 있었다. 하기야 요즈음이 결혼철이니 두세군데 다니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바쁜 삶에 이런일이라도 있어야 예전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두번째 결혼식장에서 거의 4년이상을 만나지 못했던 예전동료를 만났다. 오랫만에 만나서 기쁨이 두배였다. 어느새 주름살도 많아졌고 머리고 거의 백발이 되어가는 모습이 요즈음의 교직생활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식사를 하면서 그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도 놀랍다는 생각밖에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체벌금지가 시작된지 겨우 1주일 정도 흘렀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어느 교사가 수업을 하는데 한 학생이 자꾸 분위기를 흐리기에 몇번 주의를 주었는데 계속해서 무시하길래, 수업이 끝난 후 교무실로 데리고 내려와서 훈계를 하면서 야단을 쳤는데, 갑자기 그 학생이 '제가 선생님을 때리길 했어요. 아니면 욕을 했어요. 정말 왜 그러세요. 그냥좀 놔두세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주위에 있던 교사들이 듣고 야단을 쳤는데, 도리어 그 학생이 어이없다는 듯이 교무실을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그일 이후에 결국 그 학교에서는 그 학생에 대한 징계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지도하기 위해 매를 들었던 교사들이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대로 교칙을 적용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 학교의 특성상 정서에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일의 빈도가 갈수록 많아질 수 있기에 우려가 되는 것이다. 학생들을 엄격한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는 것은 교사들이라면 누구나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급적 감싸안고 싶은 것이 우리나라 교사들의 정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처음부터 규정을 철저히 적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형평성 문제등이 제기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학생들 지도가 정말로 어려워질 것이다.' 현재의 서울시내 학교들의 상황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설득력이 있다. 체벌금지조치가 내려진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서서히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 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체벌금지가 세계적 추세라고 하지만 그들의 정서와 우리나라의 정서는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매를 비난하는 의견도 많지만 우리나라 정서에서는 기본적인 사랑의 매는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폭력과 사랑의 매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폭력으로 인한 문제는 철저히 하되, 사회통념상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체벌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체벌이라고단정짓지 말고 많은 학생들이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기본이 지켜지는 것이 더 우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수업 분위기가 더 흐려졌어요. 공부에 방해되니 친구를 때려주세요. 매를 들지 않는데 선생님 말을 누가 듣겠어요. 차라리 맞고 끝나는 게 편해요." 체벌 전면금지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의 학생이나 학부형들이 털어놓은 얘기란다. 손들기나 팔굽혀펴기까지 어떤 형태의 체벌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 체벌 전면금지 지침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더라도 모두의 입맛에 맞추기는 어렵다. 특히 대상자가 학생, 학부모, 교사로 구분되는 교육은 더 그러하다. 8일 머니투데이가 발표한 서울 시내 초·중·고교 체벌 전면금지 여론조사에 의하면 찬성 32.1%, 반대 64.9%로 반대 의견이 훨씬 높다. 맞지 않도록 법으로 보호해주니 학생들로서는 당연히 좋아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체벌 당사자인 학생층의 반대 응답률이 75.8%로 평균을 10% 넘게 초과했다. 이 수치로 보면 아이들도 혼란을 겪고 있는 게 분명하다. 체벌이 교육적이냐 비교육적인 수단이냐를 떠나 체벌금지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극소수이더라도 체벌 없이 지도가 어려운 학생들이 존재하고, 그 아이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게 문제다. 오늘날의 교육현장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를 살펴봐야 한다. 체벌금지가 다수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그냥 방치하는 교육방종이나 교육포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주관이 뚜렷한 교사들이 어려운 일을 감수하며 속 깊은 정으로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가장 좋은 교육이고, 감정이 개입된 체벌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 다 안다. 그동안 일부 교사의 지나친 체벌이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교사도 감정의 동물이라 치미는 화를 못 참는 경우도 있다. 오냐오냐 받아주면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려는 아이도 있다. 교사의 권위가 사라지면 교실의 질서가 문란해져 교사들이 고압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때도 많다. 교실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성장통을 겪는 과정이지만 집에서 부모에게 반항하고, 학교에서 교사에게 대드는 아이를 말로 지도하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더구나 부모가 자기 자식만 감싸거나 나는 포기했으니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며 발뺌하면 교사들은 허탈감과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학교가 소란스런 아이들과 무기력한 교사들이 공존하는 교육현장으로 전락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체벌 전면금지 지침이 발표된 후 체벌금지를 시행하지 않는 다른 시도의 학생이나 학부모들까지 체벌에 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상·벌점제, 상담교실, 교내 봉사활동, 학부모 소환제 등 여러 가지 체벌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체벌금지가 뿌리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체벌금지가 비타민 역할을 하도록 부작용을 최소화하하려면 다양한 공론과정을 통해 학생의 학습권과 인권, 교사의 교수권이 같이 보호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부 시간에 옷에 실수하는 아이들 우리 2학년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책은 재미있는 제목들의 책이랍니다. 주로 똥이나 오줌, 방귀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지요. 공부 시간에 그런 단어만 나와도 금방 웃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들입니다. 심지어 그런 종류의 책만 즐겨 읽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정규 시간이 끝난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마련하는 독서발표회 시간이면 똥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의 인기가 높습니다. 웃겨주기 때문이지요. 그런 아이들이 실제로 방귀를 뀌거나 뒷처리를 잘 못해서 교실에서 냄새를 풍기는 아이들을 보는 시각은 거의 '응징' 수준에 가깝습니다. 아직도 어린 아이들이라 때로는 본의 아니게 옷에 실수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학기 초부터 아랫도리 속옷과 바지를 여벌로 교실에 갖다 놓게 합니다. 아침식사가 잘못되었거나 우유가 몸에 맞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런 일이 가끔 생기기도 하니까요. 개인별 지도를 하다가 내가 발견한 경우는 그래도 낫습니다. 아이들 몰래 얼른 조치를 취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이들이 코를 그러쥐고 말합니다. "선생님, 이상한 냄새가 나요. 똥 냄새가 나요. 철수(가명)가 그런 것 같아요." "어허,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야, 아마 어떤 친구가 아침에 속옷을 못 갈아입었나 봐요. 그 친구가 미안할 테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여러분은 그런 적 없어요?" 일단 아이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얼른 쉬는 시간을 주어 밖으로 나가게 해서 문제의 아이를 심부름 보낸 것처럼 다른 곳으로 가게 합니다. 옷이 교실에 없으면 집에 얼른 연락해서 해결합니다. 2학년 아이들은 호기심 덩어리라 친구가 안 보이면 기어코 찾습니다. "선생님, 철수가 안 보이는데요?" "응, 철수가 갑자기 배탈이 나서 아빠가 집에 데려갔어요. 곧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본의 아닌 거짓말로 둘러대지만 아이들은 그 아이가 올 때까지 자꾸 묻습니다. 왜 오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아이들의 엉덩이를 유심히 보거나 개별지도를 하려고 곁에 가서 코를 킁킁대는 버릇까지 생겼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학교 공부를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거나 학업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들, 아침 식사를 못하고 오는 결손 가정의 아이들은 좋아하는 음식은 과도하게 먹으려고 하고 싫어하는 음식은 매우 싫어해서 배탈이 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그야말로 학습 진도가 엉망이 되어버립니다. 애들 몰래 처리해 주랴, 상처 받지 않게 숨겨 주랴, 혼비백산하여 공부를 어떻게 시켰는지 모르지요. 부모와 상담을 해 보면 자신의 욕구를 음식으로 해결하려는 보상 심리가 있어서 마구 먹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식사지도를 하면서 모든 욕심이 음식을 많이 먹으려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을 가르치고 음식에 감사하며 먹기, 적당히 남기지 않고 먹기, 좋아하는 것만 먹지 않기를 지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학교 수업 시간 40분을 참지 못하고 실수하는 아이들에게는 예외적으로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을 용인해 줍니다. 규칙을 준수하게 하는 엄격한 직선도 필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곡선을 가미하지 않으면 날마다 냄새와 싸우며 수업 시간 자체가 엉망이 되어 버리니까요. 선생님이 방귀도 못 뀌게 한다고? 냄새 이야기가 나오니 아주 오래 전 일이 생각납니다. 읍내 학교에서 6학년 36명을 담임할 때였습니다. 3월 중순을 지날 무렵, 2교시 중간쯤이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교실 뒤쪽 창문을 열었습니다. 아직 찬바람이 매서운 3월에 창문을 여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아직 추운데 왜 자꾸 문을 여는 거지? 어서 창문 좀 닫아요." "선생님, 냄새가 나서 공부를 못 하겠어요." "무슨 냄새? 누가 벌써 도시락이라도 먹은 거니?" "아니오, 영수(가명)가 방귀를 뀌어서 그래요. 그것도 여러 방을 뀌었습니다." "영수는 거의 날마다 이런답니다. 그래서 짝꿍하기가 싫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진지하게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킥킥대며 웃는 소리, 영수를 향해 쏟아지는 농담으로 금방 웃음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얘들아, 영수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니?" "아니에요, 영수는 5학년 때까지 쭈~욱 그랬어요. 방귀가 나오면 아무 때나 뀐답니다. 냄새 나서 싫어요. 선생님! 자기 엄마가 방귀를 참으면 병 된다고 아무 때나 뿡뿡 뀌라고 했대요." "영수야, 참말이니? 어머니께서 교실에서도 아무 때나 뿡뿡 뀌라고 했니? "예,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그러셨어요. 방귀를 참으면 병 된다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방귀를 참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수 본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오히려 억울하다는 말투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아무 때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귀를 뀌었다는 말에 웃음도 나오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하던 수업을 뒤로 미루고 그 상황을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수는 친구도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몸도 훨씬 작아서 4학년쯤 되어보일 정도였습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별명이 '방구쟁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냥 웃어 넘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할 위험까지 내포된 그 애의 행동은 교육적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영수에게도 건강상 무슨 사정이 있어서,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어쩌다 나온 방귀라면 모르지만 참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조용한 수업 시간에 친구들을 습관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것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영수를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실은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공공시설입니다. 그러니 나 혼자 사는 곳처럼 행동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나에게는 자유스런 행동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면 자신의 행동을 고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뱃속이 불편하여 방귀를 꼭 뀌어야 할 상황이라면 교실 뒷문을 열고 살짝 밖으로 나가서 복도에서 처리하고 들어와도 됩니다. 선생님에게 눈짓만 하고 나가면 됩니다. 다른 친구들도 영수가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니 이상한 별명으로 영수를 힘들게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지도한 뒤로 더 이상 수업 시간에 창문을 열거나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영수가 다른 아이들에게 방귀쟁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일도, 친구들이 기피하여 짝꿍을 하지 않으려는 일도 없었습니다. 황당한 오해, 가정방문으로 풀었어요 그런데 해결된 줄로만 알고 있던 '방귀 사건'이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3월 하순 전교생 가정방문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학급의 모든 어린이의 집을 방문하여 실태 파악을 했습니다. 먼 곳에 있는 아이들 집에 다녀오면 몇 시간이 걸리고 신발 굽이 다 망가지던 때였습니다. 자가용도 없던 시절이라 걸어서 다니다 보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도 생겼던 때였습니다. 영수는 학교 밑에 사는 아이라서 제일 늦게 방문했습니다. 먼 곳에 사는 아이들은 방문할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 방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아이들은 시간을 내기가 쉬우므로 가장 나중으로 남겨 두었지요. 영수네 집은 학교에서 제일 가까웠기에 가장 나중에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들은 영수 엄마의 첫마디가 나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우리 영수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니까 선생님이 방귀도 뀌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더군요. 방귀를 못 뀌니 뱃속이 편하지 않아서 공부 시간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합니다." 처음 만난 나에게 첫마디부터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이면 그동안 쌓인 불만이 얼마나 컸는지 알만했습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공부 시간에 아무 때나 방귀를 뀌어서 아이들이 코를 막고 창문을 열어대니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그래서 다른 아이들 몰래 살짝 밖에 나가서 처리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집에 가서는 선생님이 방귀도 못 뀌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영수가 엄마 말씀대로 아무 때나 방귀를 뀌는 바람에 아이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 같이 짝꿍을 하지 않으려는 일까지 생기면 되겠습니까?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는 습관을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6학년이나 되었는데 그런 일로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건 원하지 않으시지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아이 말만 듣고 오해를 했습니다. 앞으로는 저도 주의를 주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어려서부터 어른들보다 더 크게 방귀를 뀌어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몸도 약하고 아들도 저 하나뿐이라서 저 하는 대로 두어서 그런가 봅니다. 저는 선생님이 얼마나 무섭게 하면 우리 아이가 방귀조차 뀌지 못할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오히려 그런 일을 계기로 그 학부모님과 더 친하게 되어서 허물 없는 사이로 지내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지요. 영수도 아이들과 더 잘 어울리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영수가 졸업하던 날, 감사하다며 속옷 선물까지 안겨 주셨으니 '방귀 사건'이 맺어준 좋은 인연이었지요.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방귀 사건은 어제 일처럼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 그 일은 식사 시간이나 공부 시간에 교양 있고 예의 바른 행동을 가르칠 때 아주 좋은 예화 자료로 활용합니다.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면서도 자기들의 이야기처럼 들리니 참 좋아합니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의 싹으로 그 뒤로 영수는 방귀를 뀌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웃기는 일이 없이 졸업하는 날까지 별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하는 말만 믿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오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자기 잘못이나 실수는 쏙 빼놓고 친구나 선생님의 언행을 문제 삼아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나는 그 일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한층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나로서는 매우 당연한 교육 활동일지라도, 다른 아이들이 볼 때에도 객관적일지라도, 듣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매우 주관적인 해석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가정방문도 없고 학부모의 학교 방문도 거의 없으니 학교 생활의 단면은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가정통신문을 내기도 하고 전화나 문자로 알림장으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오해가 생기는 것은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허심탄회하게 학부모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여야 아이들 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학급 담임으로서 느끼는 애로 사항과 부모로서 느끼는 어려움이 서로 통해야 아이를 이해하고 더 나은 교육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자식을 둔 학부모로 살고 있을 영수(가명)는 자신의 자식에게는 이렇게 가르치리라 믿습니다. "얘야,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나 교실, 밥을 먹는 곳에서는 방귀를 함부로 뀌어서는 안 된단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 몰래 밖에 나가서 해결하는 거란다. 다른 사람이나 친구가 너를 방귀쟁이라고 놀리면 좋겠니?"
상대방 설득시키는 것은 소통이 아냐 가장 이야기를 잘 하는 것은 듣는 것 최근 들어 소통에 대한 교육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소통의 연속인데 소통이라는 것이 뭔가 특별한 것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날마다 소통이라는 바다 속에서 살고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소통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소통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소통의 목적이 내 밖의 세상을 나에 맞추어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통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 밖의 세상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나아가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와 나 아닌 것의 구분을 떠나 나와 또 다른 내가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이 바로 소통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소통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떠올리는 순간 소통은 보다 원활해지고 소통과 관련된 많은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내가 네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자신이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첫 아이의 담임을 만나려고 하니 어찌나 떨리고 당황스럽던지 깊은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채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왔다던 제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교사인 자신도 그러한데 학교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 학부모들은 처음에 자기를 찾아오려고 했을 때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하며 이해가 되더란다. 그 이후부터는 아무리 바빠도 찾아오는 학부모가 있으면 일을 멈추고 의자를 내밀며 차도 권하고 따스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학부모가 담임을 한 번 만나려고 하면 몇 번 계획을 세우고, 만나면 무슨 이야기로 먼저 시작해야 할지, 혹시 음료수라도 들고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등등 많은 고민을 하며 준비하게 된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담임을 찾아갔더니 바쁘다며 잠시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거나, 아니면 지친 모습으로 그리 반갑지 않게 맞이할 때 찾아온 학부모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소통을 위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사용하는 소통매체에 대한 이해이다. 오래 같이 산 사람은 굳이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눈빛만으로도 상대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서로의 언어와 몸짓 하나하나까지 공유하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대화하고자 할 경우에는 외국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할 때에는 그들의 언어와 몸짓, 그리고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자기 언어와 자기 문화에 갇혀있지 말고 세상으로 나와 학생, 학부모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을 시도할 때 소통의 밝은 빛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교사가 먼저 학생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나 게임에 친숙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범을 보이며 필요성을 설명할 때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소통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소통을 성공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상호신뢰이다. 성공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가 믿고 건너올 수 있는 소통을 위한 다리를 만드는 데 먼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수확하고자 하면 먼저 씨를 뿌려야 하듯이 소통하고자 한다면 나와 상대방을 이어줄 신뢰라는 다리를 먼저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소통을 위해 하나 더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뿌린 씨가 곧바로 익는 것이 아니듯이 내가 만들어 놓은 다리로 상대방이 곧바로 건너오게 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건너올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다리가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돌보며, 그 다리 위에 불을 환히 밝혀 놓고, 안심하고 건너올 수 있도록 늘 준비하는 일일 것이다. 소통과 관련한 또 하나의 오해는 이야기를 조리 있게 감동적으로 잘하여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이 소통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이야기를 잘 하는 것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고 있듯이 성공적인 소통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성공적인 소통은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얻을 수 있는 결실이다. 비록 힘든 일이지만 의식하지 않고 이러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때 세상이 아름답게 다가올 것이다. 어떤 운동 하나를 재미있게 즐기려고 해도 오랜 연습을 필요로 하는데 삶의 모습을 좌우하는 소통이라는 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노력의 결과 세상이 아름답게 다가온다면 나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볼만하지 않는가?
학교 자율성·창의성이 교육과정 성패 가름 문제점 극복, 현장안착 책무도 단위학교에 2009개정교육과정의 현장 적용이 2011학년도 신학기로 다가왔다. 지난 해 고시된 2009 개정 교육과정은 그 동안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연수와 홍보를 진행해왔다. 또 일선 초ㆍ중ㆍ고교에서는 2009 개정교육과정 적용과 밀접하게 관련된 2011학년도용 검정 교과서 심의ㆍ선정 및 주문을 이미 마무리했다. 2009 개정교육과정은 2011학년도 신학기부터 전국 초ㆍ중ㆍ고에서 연차적으로 적용된다.2009 개정교육과정은 세계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등 글로벌 창의 인재 육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존 교육과정의 구조를 개선, 단위 학교의 자율권과 창의성을 극대화하려는 새로운 교육과정이다. 2009 개정교육과정은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등 두 영역으로 편제되어 있다. 그리고 교과군, 학년군, 집중 이수제, 기준 시수의 20% 증감 이수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였다. 사회ㆍ도덕, 과학ㆍ실과, 예술(음악ㆍ미술)등 교과군이 신설되었고, 재량활동과 특별활동 그리고 ‘우리들은 1학년’이 통합되어 창의적 체험활동이 편제되었다. 또 초등학교의 저ㆍ중ㆍ고학년, 중학교와 고등학교별로 학년군을 도입하였고, 매 학기 8개 교과목 이하 이수를 바탕으로 특정 교과목의 학년ㆍ학기 집중 이수와 기준시수 20% 이내의 증감 이수를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교과목 편제, 교과서 선정, 집중 이수제 등이 함께 연계되고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2009 개정교육과정의 핵심인 집중 이수제와 20% 증감 적용 교과목이 몇몇 주 교과목 위주에 그칠 우려가 있고, 귀국자 자녀와 중도 전입 학생에 대한 보충 학습 과정 등 이행 조치 곤란 등이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사실 2009 개정교육과정은 애초의 명칭인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개명된 데서 보듯이 전면 도입에 다소 애로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이론과 학교교육 현실 간의 간극이 매우 넓다는 지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고시된 교육과정에서는 교육과정의 자율화 차원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 해결을 단위 학교와 학교장에게 일임하고 있다. 2009 개정교육과정의 핵심은 단위학교의 자율ㆍ창의적 교육의 지향이다. 따라서 각 단위 학교마다 특성화된 교육과정 편성ㆍ운영으로 교육의 다양화를 모색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위 학교와 학교장, 교사들에게 교육과정 결정권이 폭넓게 부여되고, 또 바람직하게 발휘되어야 한다. 2009 개정교육과정이 현실 여건과 다소간 유리(遊離)되어 있더라도 단위 학교와 교원, 학생 등의 요구와 여건을 최대한 고려해 학교교육과정을 창의적으로 편성(개발)하고 운영(실행)해야 한다. 국가 수준의 고시된 교육과정을 학교 교육과정에서 자율권을 갖고 창의적으로 보완ㆍ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2009 개정교육과정의 전면 도입과 적용에 즈음하여 교원양성기관인 교ㆍ사대의 학과별 모집정원조정, 교원임용시험, 장기적인 교원수급 계획 등이 교육과정과 상호 연계되어야 교육 현장의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09 개정교육과정의 전면 도입ㆍ적용을 앞두고 유념해야 할 점은 제 아무리 금과옥조처럼 훌륭한 교육과정일지라도 전국 모든 지역과 학교의 여건,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완벽하게 포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결정권자로서의 학교장과 교사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교육과정 개발ㆍ실행의 성패를 가름하는 열쇠가 된다. 즉 전국의 모든 학교가 당해 학교와 지역, 학생, 교직원, 학부모 등의 여건과 요구를 고려해 이에 적합한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학교교육과정을 편성ㆍ운영하여야 한다. 2009 개정교육과정 도입ㆍ적용에는 교육과정관 전환과 교육과정 수용의 열린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교육과정 중앙 집중화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지방 분권화 차원에서 단위 학교의 특성화 교육과정 프로그램이 설계(design)되고 실행(implement)되어야 한다. 모름지기 2009 개정교육과정은 ‘교과서 중심’에서 ‘교육과정 중심’으로, ‘주어진 교육과정’에서 ‘실현해가는 교육과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교원’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교원’으로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학교장을 비롯한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율권과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교육과정이 곧 2009 개정교육과정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2009 개정교육과정이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점을 슬기롭게 극복해 학교 현장에 안착시킬 권한과 책무도 교육과정 설계자이자 실행자인 학교장과 교사들에게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 기관의 교원연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매년 일만 여명에 이르는 연수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연수종별에 따라 연수생들이 연수에 임하는 자세나 분위기가 현격하게 다르다. 직무연수는 대부분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참여하기 때문에 매우 긍정적인 편이다. 반면 자격연수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초긴장 상태이다. 1급 정교사나 교감 자격연수에 참여한 연수생들을 보면 점수를 위한 치열한 경쟁 때문에 함께 더불어 가야할 연수생끼리 비인간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특히 교감자격연수 연수생 중에는 과도한 성적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과열현상은 현행 교육공무원의 승진제도에 기인한다. 현재 교육공무원 승진후보자 평정 지침은 크게 경력‧근무성적 평정, 연수성적 및 가산점 평정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경력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채워지는 점수이고, 근무성적은 근무실적 및 근무수행능력을 평정하는 제도로 누구에게나 여러 번 기회가 주어진다. 지역 가산점 역시 시‧도 마다 적용 내용은 다르지만 많은 부가점수들이 하향 조정되거나 대체 확보 종류가 다양해 변별력이 거의 없다. 그러나 자격연수의 경우는 단 한 번의 연수성적 결과로 승진이나 발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1급 정교사 자격연수의 점수가 좋지 못하면 대체할 점수가 없으며, 결국은 20년 이후에나 있을 승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처럼 자격연수 점수가 절대적이다 보니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점수가 좋지 않은 사람은 승진을 포기하거나, 자아실현 욕구를 상실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제는 자격연수를 보다 자율‧능동적 연수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이에 자격연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몇 가지 개선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보완할 연수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은 이후 전문상담교사 자격연수 외엔 교사로서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격연수가 없는 것이 현 실정이다. 이에 각 시·도 연수원에서 5년 또는 10년 주기의 자격연수에 상응하는 연수기회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둘째, 자격연수 평가 방법을 개선하고 승진평정에 필요한 자격연수 점수의 하향조정이 필요하다. 자격연수 평가기준이 상대평가이고, 평가결과에 관심이 많다보니 토의ㆍ토론활동이나 분임활동 등 다양한 평가를 하고 싶어도, 객관성 및 변별력 문제 때문에 선다형 평가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승진 평정에서 자격연수 점수를 하향 조정하거나 점수 급간을 줄인다면 평가 방법 개선은 물론, 지나치게 점수 의존적인 연수방향도 개선될 것이다. 셋째, 일정횟수의 직무연수 실적을 자격연수로 대체하는 방안이다. 다양한 전문적 직무연수를 각 연수기관에서 개설하고, 스스로 찾아 하는 맞춤식 연수활동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교수ㆍ학습지도, 생활지도, 교육행정 등 직무와 관련된 교과목 및 교수요목을 편성해 놓고 교원들이 선택적으로 연수에 참여하게 해 일정 한도의 연수이수 결과를 승진평정 자격연수 점수로 대체할 수 있게 한다면, 교원의 연수 참여 동기부여 및 자기연찬 기회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교원 자격연수는 자격을 넘어 교원의 자질과 전문성을 신장시키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상대평가 결과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는 현 제도의 단점을 보완해 연수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그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교원 연수체계를 개선하는 등 교원 자격연수와 관련된 제도 전반을 재정비해 본질을 추구하는 교육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미국의 경기침체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조짐은 있지만, 아직 경기침체가 끝났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최근 '경기침체는 과연 끝난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 미국 경제는 일부 성장과 침체가 공존한 가운데 여전히 경기침체를 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지난 2007년 12월에 시작된 경기침체가 종료됐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다는 것이다. 또한 이 경제전문지는 "현재의 경기회복 속도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고 빈혈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 경제는 금융위기가 촉발된 시기보다는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시작된 것으로 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그 이유로는 여전히 높은 실업률과 저조한 소비 실적이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미국 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전체적으로 미국 내 일자리 13만1000개가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실업률이 9.5%로 10%대에 육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득이 줄어든 서민들이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아 소비심리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미국사회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의 교육현장도 피해가지 않았다. 주 정부가 파산 위기에 몰릴 정도로 재정상황이 열악한 캘리포니아주는 교육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학교들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주립대학들과 커뮤니티 칼리지 등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대학들이 예산부족으로 강사들과 교직원들을 해고하면서 기존의 강의수를 대폭 줄였다.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계열인 학교의 경우 예산부족으로 이번 학기 수업 규모를 지난해 보다 11%나 축소시켰다. 캘리포니아 주립대(California State University) 계열의 학교들도 지난해 약 5억 달러의 주정부 지원금이 축소되면서 23개 캠퍼스의 수업 규모를 대폭 줄였다. 이러한 재정악화로 인한 수업규모의 축소가 고스란히 학생들의 피해로 연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교육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커뮤니티 칼리지에서만 약 14만명이 수업규모의 축소로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학생비자를 유지하기 위해 규정학점(학기당 12학점)을 수강해야 하는 유학생들의 경우, 개설 강의수 감소로 규정학점을 수강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일부 유학생들은 규정학점을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과목을 억지로 수강하고 있으며 수천 달러의 등록비를 낭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졸업을 위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필수과목의 경우 각 과목마다 대기자수가 50여 명이 넘으면서 필수과목 수강신청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결국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인한 교육예산 감소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기침체로 인한 교육 예산 감소의 여파는 미국의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 학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 예산 감소로 학생들에게 수업에 필요한 문구류는 물론 휴지, 쓰레기봉투 등 생활필수품까지 지참하고 등교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껏 미국의 초중고는 학교에 가져올 필수항목으로 수업에 필요한 문구류만을 요구 했었다. 그런데 이번 학기부터 미국의 지역 교육구들이 학교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문구류 외에 생활필수품까지 필수항목에 포함시킨 것이다. 페이퍼 타올, 클로락스 와이퍼, 베이비 와이퍼, 쓰레기봉투, 손 세정용 물비누, 티슈, 면봉, 비누, 종이접시, 종이컵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 학기까지 학교가 제공했던 물품들을 교육예산 삭감으로 인한 학교의 재정 감소로 더 이상 제공할 수 없게 되자 학생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학교의 교육환경을 열악하게 만들고, 학부모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키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기침체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데다, 경기침체가 계속 되는 동안 학생들의 교육환경은 점점 나빠져 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경기침체로 열악해진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기업들과 시민단체 등 민간단체들이 적극 나서야 할 차례다. 기업들과 시민단체들이 학교·지역교육구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교육환경 개선에 적극 동참 하는 것만이 위기에 빠진 미국의 교육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일정 수험생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요즘 고3 아이들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아마도 그건 시험이 다가옴에 따라 그만큼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교실 문을 여는 것조차 미안할 때가 있다. 조금이나마 아이들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 언제부턴가 야간자율학습시간 교실을 출입할 때는 항상 뒷문을 이용하곤 한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휴대전화의 전원을 꼭 확인해 본다. 지난 화요일 밤(3일). 자율학습감독을 위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교실 뒷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담임인 나의 출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그런 행동이 조금 야속하기도 했으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내 발걸음이 아이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둘씩 살폈다. 긴장해서인지 아이들의 얼굴은 많이 상기해 보였다. 그런데 교탁 앞에 자리 두 개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 생활을 잘하고 있는 터라 처음에는 그 아이들의 부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화장실에 갔다가 잠깐 늦는 줄만 알았다. 몇 분이 지나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 몇 명을 보내 찾아보게 하였다. 특히 두 명 중 한 아이는 10월에 발표된 수시모집에 모두 낙방하여 방황을 많이 했었다. 간신히 마음을 잡고 수능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다른 한 아이는 그나마 학교 내신이 좋아 수시모집에 지원한 대학(다섯 군데) 모두 1단계에 합격하여 지난 10월에 심층면접과 논술을 보고 왔다. 그리고 11월(4일, 5일, 8일, 9일, 16일)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특히 논술 준비를 위해 방학을 이용해 고액 과외까지 받은 아이였다. 잠시 뒤, 친구들과 함께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나를 보자 울먹이기 시작하였다. 조금 전까지 고요했던 교실이 갑자기 그 아이들의 울음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부하고 있던 아이들도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생님, 저 대학 떨어졌어요. 어쩌면 좋아요?” “발표일이 내일인데…” “아니에요. 조금 전에 확인했어요.” “선생님, 저 대학에 또 떨어졌어요.” “……” 알고 보니 대학의 합격자 발표일이 하루 앞당겨진 것이었다. 떨어진 사실을 알고 도저히 공부할 기분이 생기지 않았다고 하였다. 문득 지난달 논술을 보고 온 뒤, 상당히 자신감이 넘쳐났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려졌다. 그래서 담임인 나 또한 내심 합격했으리라 생각했다. 이 대학 전형을 위해 서울에 소재한 논술 학원까지 다녔는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수능시험을 며칠 앞두고 생긴 일이라 담임으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불합격으로 그 후유증이 얼마 남지 않은 수능 당일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남아 있는 합격자 발표였다. 만에 하나 발표일이 남아 있는 대학 중 한군데라도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이 아이는 심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친구의 위로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갔으나 책상에 엎드려 계속해서 흐느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수험생의 이런 마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대학의 입시일정 처사에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일부러 수험생을 골탕먹이려는 대학 측의 의도로 보였다. 수능 최저학력이 없는 대학의 경우, 최소 수능 한 달 전에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여 아이들이 그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능 최저학력이 있는 대학의 경우, 발표 일을 수능 이후로 하여 아이들이 최저학력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능시험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현실의 대학입시 일정은 수험생을 배려하기보다 대학의 실리에 맞춰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특히 발표일이 수능시험 이틀 전인 16일에 발표되는 대학마저 이 아이가 떨어져 수능시험을 망치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겠는가. 오늘도 이 아이들을 위해서 담임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해 본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18일(목요일) 시험을 끝내고 나오는 아이들을 위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를 수첩에 적어둬야겠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교원의 정치활동 참여’와 관련해 국회 내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회가 교원단체의 정치적 기본권 주장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외면하기 보다는 공청회 등을 통해 활발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2일 입법조사처가 발행한 이슈와 논점 140호 ‘교원단체 정치활동의 쟁점 및 과제’에 따르면 “교원단체의 정치활동 허용을 요구하는 입법청원 계획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것”이라며 교총은 앞으로 대의원회 및 회원 여론조사 수렴 등을 통해 구체적인 정치참여 범위 등을 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주요쟁점에 대해 ‘공무원이 국민전체의 봉사자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어느 정파에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정치활동 금지 찬성론’과 ‘공무와 사적인 정치적 기본권은 구분할 필요가 있고 직무상 독립을 보장받는 상황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적합논리가 아니라는 정치활동 금지 반대론’이 있다고 소개했다. 또 해외 사례와 관련해 보고서는 미국의 양대 교원단체인 전국교육연합회(NEA)와 미국교사연맹(AFT)이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고 있고, 영국은 교원 개인의 정치참여를 기본권으로 당연히 인정받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독일 역시 교원단체가 정치조직은 아니지만 개인이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밝히고 있고, 조직차원에서 다양한 교섭과 의견개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본의 경우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에 의해 정치활동이 제한되고 있고, ‘교육공무원특례법’에 의해 교원은 규제되고 있다면서도 간접적인 정치활동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보고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관련해 유연한 해석을 하며 합리적인 조정과 의견수렴과정을 거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교원의 정치참여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참여금지 법률들이 헌법적으로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는 현행법에 대한 결정이라며 교원 및 교원단체의 정치활동을 허용하자는 법률개정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입법․정책적 대안들을 마련해 정부, 교원단체, 시민사회 간의 합리적 조정과 의견수렴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모든 초 중 고교에서 체벌 전면 금지 조치가 11월 1일을 기해 실시되었다.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 발표에 이에 진보 교육감들의 새로운 교육정책에 대해 일선학교 교직원들이나 학부모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반응이다. 획기적인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그 평가에 대한 결과가 드려나겠지만 너무 성급한 결정이지 않나하는 걱정스런 생각이다. 개방화 시대에 맞춰 우리 교육도 수요자 중심교육으로 이미 흘려가고 있고, 국제화 추세에 맞게 학생 인권에도 관심도 커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시기에 굳이 이런 정책으로 학생들을 자극하며 실시해야할 시기냐 하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란 말은 누구든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급한 정책은 혼란을 좌초한다는 것도 누구든 부인하지 않는다. 특히 교육정책은 신중하게 결정하고 실시해야 한다. 교육전문가는 물론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펼쳐나가야 새로운 정책에 대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사전 예고 기간도 없이 실시된 것이다. 오늘 첫날의 기사를 보면, 학생들은 "지각하고 숙제 안하는 애들이 많아졌어요", 교사들은 "벌점밖에 제재할 방법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체벌 사라져 반갑지만 면학분위기가…" 등으로 나타났다. 물론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뒷면에 가려진 각가지 문제점들은 보지 않아도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사실 학생들의 생활지도는 우리의 초·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에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 구체적인 사항은 학교규칙에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처럼 학부모의 목소리가 큰 현실에서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작은 벌도 못 세우는 현실이다. 한국교총에서도 교육적인 체벌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여러번 언론에 강조한 적이 있다. 교육은 교사의 사랑과 학생의 존경, 그리고 학부모의 믿음 없이는 바람직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의 옛날 교육을 대표하는 서당교육의 그림에서회초리를 든 훈장의 모습을 보아왔다. 가느다란 회초리와 학동의 모습에서 인권보다는 훈장님의 교육을 위한 제자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은 체벌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교육적인 체벌규정을 굳이 선언적인 규제보다 법규적으로 제한하고, 그 책임을 교사에 물어야 하느냐가 문제이다. 이번 발표로 체벌하는 교사는 범법자로 취급 받아야 된다.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는 사람이다. 학생들의 잠재적 능력을 찾아주고 개발해 주며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교사는 키워주신 부모님과 동등하게 평가 받아온 것이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직접적으로 체벌을 하지 않아도 정신적 심적 고통도 규제 대상이 되어 학생이 신고를 하면 교사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야말로 학생들의 바람직한 지도에 새로운 걸림돌로 사제지간의 정이란 말도 이젠사라질 지도 모른다. 물론 학생지도에는 체벌 없이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따끔한 정신적인 고통이 비교육적인 행동을 수정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요즘 학생들의 비교육적 행동들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행동을 교육적으로 지도하기 위한 성찰교실 등 몇 가지의 대안을 제시하였지만 그것이 교육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일까도 생각해 봐야한다. 물론 미국과 같은 교육선진국에서도 벌점제를 통하여 학부모 소환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교육에 대한 의식이 선진국의 수준과는 문화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존경받는 교사란 말도 곧 사라질 것이다. 아니 이미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경찰에 교사를 신고하는 세상이라 생각하면 끔찍하다. 교사는 혼자서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때론 교육적으로 전체 학생들을 위해 통제해야할 때가 있다. 핸드폰 소리로 수업 분위기를 해치고, 숙제를 하지 않을 때, 흡연과 지각을 할 때, 그리고 교육적인 통제 방법까지 따르지 않을 때 과연 그 피해는 누구에게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지도교사가 답답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학생에게 그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교육은 한 마디로 미성숙자를 성숙자로 만드는 일이다. 학생들의 인권만큼 교사의 교육적인 지도 권한인 교권도 생각해야 한다. 어떤 정책이 우리교육을 위해 교육적으로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냐를 평가하여 신중한 결정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교사의 학생 체벌이 정당하다고 한 말은 아니다. 이미 학교체벌이 사라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교육은 역사의 수레바퀴와 함께 교육적 환경 변화를 통하여 서서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갑작스런 교육적 충격과 혼란보다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행정이 필요한 것이다.
에듀파인 시스템은 교직원들에게는 당연히 말 많고 탈 많은 것이긴 하지만 이 시스템을 시행하고 정착시켜야 하는데 당위성이 존재하고, 한교신문 을 통해 장세진 선생님이 (교원잡무 진짜 제로가 되려면, 2010.8.30 한교신문 기사 참조) 시스템의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 있기에 느낀점을 몇 자 적고자 한다. 에듀파인 시스템이란? 에듀파인 시스템(edufine system, 지방교육 행․재정통합시스템)은 정부회계에서도 기업회계에서 적용하는 발생주의ㆍ복식부기에의한 결산을 하도록 회계 관련법이 개정됨에 따라 기존에 사용하던 NEIS 회계 프로그램으로는 발생주의ㆍ복식부기회계를 처리를 할 수 없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여기서 과거로 올라가면 이 발생주의ㆍ복식부기회계는 지난 1997년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정부 회계시스템을 발생주의에서 복식부기로 변경시킨다는 약조를 하였기에 유예기간을 두어서 시행한 것이다. 발생주의는 현금의 수수와 관계없이 거래가 발생된 시점에 인식하는 기준이며, 이에 따라 거래는 발생하였으나 현금의 유입과 유출이 이루어지기 이전 시점에 인식한다. 반면에 복식부기는 하나의 거래를 둘 이상 계정의 왼쪽(차변)과 오른쪽(대변)에 자산, 부채, 순자산, 수익, 비용 중에서 이중으로 기록하는 기록방식으로 현금의 드나듦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정에 따라서 국가 재정상태 및 운용결과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발생주의와 복식부기 회계 원리를 기초로 한 회계기준에 따라 거래의 사실과 경제적 실질을 반영하여 회계처리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에듀파인 시스템 과연 불편한가? 아무리 완벽한 어떤 체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착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전의 나이스 회계시스템은 물품, 지출, 세입 등이 모두 따로 운영되고 그 과정도 복잡한 편이었는데 이것을 하나의 에듀파인 시스템에 모았기에 그 과정 또한 복잡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생소한 각종 회계용어가 난무하는데 교원들은 더 어쩌겠는가. 더욱이 이전의 수기로 운영되던 것을 전산 상으로 운영하다 보니 결재의 신속성이 오히려 늦어질 수도 있는 개연성도 존재하긴 한다. 단지 사용자들의 눈과 손에 익기 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이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여 운용에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한다면 모르지만 단지 정착 초기에 이전 시스템 보다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기피한다는 것은 그 정당성을 용인받기 어렵다고 본다. 에듀파인 시스템으로 인해 교직원들은 업무가 가중되는가? 업무가 일부 가중된다는 것은 이전에는 서류 한 장에 결재만 받아서 넘기면 모든 것이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서류 결재도 하고 시스템에 입력도 따로 한다는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 것으로 본다. 즉, 간단한 지출품의는 시스템 상에 입력하여 직접 지출처리하면 될 것이고, 꼭 서면결재가 필요하다면 그 결재를 근거로 해서 직접 행정직원이 원인행위를 해서 지출품의 입력 단계 생략도 무방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업무가 늘어난다고 볼 수 없다. 아울러 장 선생님의 위 기사 내용 중 사실을 바로 잡을 것이 있기에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이른바 임시 전도자금 지출에 관한 것인데 즉, 백일장을 학생들이 나가는데 그 경비(아마 차비나 식비 정도로 추정)를 인솔 선생님이 받아서 나누어 주어야 하는 가에 대한 불만으로, 이것은 행정실 직원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적한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임시 전도자금 지출은 채주에게 직접 계좌송금을 못하거나 신용카드를 쓰지 못할 경우에 임시로 출납원을 지정해서 현금을 쓰게 한 다음에 정산서를 제출토록 하는 것이다. 즉, 학생들에게 지급할 경비를 학생계좌에 입금하여 쓰게 하면 비효율적이므로 인솔교사 한 사람에게 출납토록 임시로 지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임시전도 자금을 인솔교사가 집행하고 정산하는 절차는 올바른 것이다. 교직원이 협조해서 시스템 정착시켜야 비록 학교 현장 근무자가 아닌 관계로 현장에서 느끼는 불편을 100% 안다고 할 수 없으나, 본 시스템을 3년 전에 미리경험한 직원으로서 느낀 점을 적어 보았다. 앞에서도 거론한 것이지만 새로운 시스템이건 사람이건 간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모름지기 적절한 유예기간이 주어져야 하는데 조금 성급하게 도입하여 애꿎은 교직원 간 위화감과 불화만 조성한 꼴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은 내 업무다, 네 업무다 가르기 보다는 어차피 해야 하고 정착시켜야 할 시스템이라면 서로 간에 마음을 모으고 도와주는 혜량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체벌금지가 갑자기 이슈로 떠올랐다. 체벌금지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학생들의 행동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 체벌금지 첫날이었지만 알려진 것처럼 학교가 혼란스럽진 않았다. 학생이나 교사들 모두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일부 언론에서 학생들이 교사에게 항의했다는 기사는 이미 2학기 시작된 직후부터 있었던 일이다. 오늘부터 그런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이미 이슈가 되었던 것이 체벌금지이다. 지금쯤 시들해질 수도 있다. 교사들은 그냥 수업만 열심히 하고 나오면 그만이다. 학생들과의 관계는 자꾸 소원해질 수 밖에 없다. 체벌을 금지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하고 가까이 지낼 수 있겠는가. 교사의 자질을 문제삼아도 어쩔수 없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체벌금지 사례를 이야기하지만 그들과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교사의 역할이 이제는 가르치는 일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수업시간에 제대로 학습하는 것은 교사들의 몫이 아니고 학생들의 몫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눈치를 보면서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런일은 있을 수 없다. 교사의 역할이 모호해진 상황이 된 것이다. 체벌금지 첫날에는 아무일도 없었다고 해도 앞으로는 다양한 일들이 학교에서 발생할 것이다. 체벌하던 예전에도 학생들이 교사에게 대들었는데 체벌금지가 뭐 대수냐는 이야기를 접했다. 20년 넘게 교사생활하면서 최소한 임용되고 14-5년 동안은 학생들이 대드는 것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이 없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대들고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일은 불과 10년도 되지 않는다. 빈번해진 것은 5년 남짓이 아닐까 싶다. 예전의 학생들과 비교하면 예전의 학생들이 섭섭해 할 것이다. 그런일은 최근들어 자주 발생하는 일들이다. 많은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훌륭한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어한다.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학생들 때문에 이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학생들에게 인권이 중요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학생들에게는 학습권이라는 인권이상의 권리가 있다. 대다수의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학교에서 할일이 아닌가. 일부 학생들을 위한 대다수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학생들도 체벌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체벌당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체벌을 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중학교 학생들임에도 이런 의식이 강한 학생들이 상당히 있다. 휴대폰을 학교에서 보관했다가 돌려주는 것에도 많은 학생들이 찬성하고 있다. 체벌금지 시키면 학생들이 인권보호 받았다고 기뻐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체벌금지보다 학생들의 학습권 확보, 어떻게 사교육을 이길수 있는 공교육을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때려서 졸업시킬 학생을 안때리고 밖으로 내모는 시기가 점점더 다가오고 있다. 체벌금지가 그렇게 급한 일이었는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