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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교폭력 문제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대구 한 학교에서는 두 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광주에서도 왕따를 당하던 학생이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어제오늘의 비극이 아니다.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가해자나 피해자의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2000년대 초반 학교폭력 발생빈도가 약 8.5%에서 지난해 17.8%로 크게 늘었다. 중학생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초·중·고를 합한 전체 학교폭력의 약 70%가 중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실제로 2008년~2010년까지 3년 동안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심의한 학교폭력 사건은 2만2,241건이었다. 이 중 69%에 해당하는 1만 5,311건이 중 학교에서 발생했다. 이런 특성은 전문가들의 연구에서도 잘 나타난다. 영국 런던대 인지신경학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청소년기에는 난폭한 운전, 음주, 폭력 등 위험한 활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주변 연령대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만 14세가 되면 정점에 이르는데 우리로 보면 중학교 2~3학년에 해당하는 시기다. 또한 이때는 신체적으로 급성장하면서 물리력에 의존하려는 욕구가 가장 큰 때다. ‘거침없는 중2’ 때문에 북한이 남침을 못한다는 농담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말 그대로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다. 학교폭력은 복합적 문제의 결과물 폭력에 대한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구조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학교 대형화(giant school)의 문제도 있다. ‘자이언트 스쿨화’는 필자의 진단이다. 경제적 양극화, 가정의 해체,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같은 사회·환경적 변화도 영향이 크다. 입시경쟁도 물론 한 몫을 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과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24%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더불어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대학진학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다. 여기에 대학의 숫자가 급증하면서 대학 졸업자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달라졌다. 이제는 너도나도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이 된 만큼 과거처럼 대학졸업 여부가 관건이 아닌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더욱 중요한 사회적 평가가 되었다. 실제로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지방대학들이 어느 정도 평가를 받았지만 현재는 사회적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는 예들이 이런 분위기를 잘 방증하고 있다. 대학진학에 대한 양적 기회는 늘었지만 질적인 부분에서는 과거에 비해 더욱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것, 바로 이런 변화도 학교폭력을 더욱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기제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학교폭력은 학교울타리 안에서 발생한 것일 뿐 실제로는 학교 밖의 다양한 원인들이 얽혀 발생하는 ‘폭력의 종합세트’인 셈이다. ‘관계관리’ 잘 하는 교사 돼야 교육학자 매니스와 멜저(Manis Meltzer)에 의하면, 학교생활은 교사와 학생 간의 계속되는 협상으로 이루어진다. 그 속에 확인, 해석, 계산, 선택과 같은 상호적인 역동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학생들과의 협상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장악의 대상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학생들을 파트너로 인정해야 협상이 가능해진다. 공지영과 지승호의 책 괜찮다. 다 괜찮다에 나오는 “남들 눈엔 비뚤어져 보여도, 벌레 먹어 보여도 괜찮다. 넌 어느 순간에도 원본이야.” 바로 이런 인식을 지녀야 관계관리가 가능해진다. 이런 시각에서 아이들과 협상하지 않으면 백전백패(百戰百敗)하고만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교육적인 지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춘기를 겪는 시기란 점도 인식해야 한다. 사춘기는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다. 말릴수록 에너지는 더욱 들끓는다. 끓는 기름을 식히기 위해 물을 부어보라. 생각하지 않아도 결과는 뻔하다. 그러므로 협상과정에서 울타리를 크게 치는 것이 중요하다. ‘울타리 있는 방목’으로 생각하면 의외로 쉽게 풀린다. 참고로 ‘울타리 있는 방목’, ‘관계관리’란말은 필자가 담론에서 사용하는 조어다. 교사의 공감적 리더십도 필요하다. 공감적 격려는 학생의 감정과 정서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면의 세계는 어떤지, 인지 심리학적 특성은 어떤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감’, ‘경청’,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관계관리 기술의 핵심이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강조되는 공감리더십도 이런 것 아니겠는가. 아이들 내면에 집중하자 과거 우리의 경험이 그랬듯, 아이들은 교사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다. 자신의 고민과 내면을 말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부분들을 교사가 선제적으로 살펴야 한다. 아이들을 집단 이데올로기 속에서 보지 않고 개인으로 보면 문제가 보인다. 누가 속으로 곪아 가는지, 누가 힘들어 하는지 살필 수 있다. 세심한 눈으로 아이들의 내면에 집중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폭력적인 아이들은 폭력이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체벌 중심의 물리적 지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식의 지도는 폭력을 확대 재생산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실제로 스포츠계의 폭력이나 군대 폭력이 대물림 되는 것은 이런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폭력에 대한 무감 각을 키운 탓이다. 문제 아이들은 일면 마음의 환자들이다. 마음의 상처가 폭력이란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학교폭력은 학생들의 내면을 살피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다. 아이들이 이를 느끼는 순간 변화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아이들과 감정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사랑의 소통·밀착지도가 최우선 학교폭력이 어제오늘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환경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면서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속에서 중요한 숙제는 학교폭력을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할 것이냐의 문제다. 학교폭력은 일단 발생하면 교사들이 지도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사후처리도 쉽지 않다. 교사들의 예방·선제적 개입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예방적 개입’의 기본은 무엇일까? 바로 교사들의 밀착지도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생들과의 관계관리를 통한 소통도 중요하다. 이로써 아이들 내부의 역학관계나 학생 개개인에 대한 상황파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드는 것, 결코 불가능한 현실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 받았다는 입장에서 상처 주었다는 입장으로 가는 것 상처 준 걸 알아챌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노희경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중에 나오는 말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소통이라면, 소통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다. 일회성 지도가 아닌 지속 적인 관찰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협동학습연구회 협동학습의 개념조차 낯설었던 10년 전, 협동학습 연구를 시작해 한국 실정에 맞는 협동학습 이론과 실천 사례를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연구회가 있다. 바로 한국협동학습연구회(회장 김현섭)다. 2000년 서울 대림중 교사 3~5명이 모여 시작한 이 연구회는 현재 전국 모임만 13개, 격주로 열리는 정기모임에 참여하는 연구회원만 150여 명이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협동학습연구회 홈페이지(educoop.njoyschool.net)를 통해 협동학습 관련 자료와 정보를 나누는 자료회원까지 포함하면 8000여 명에 이른다. 김현섭 회장(서울 구현고 교사)는 “제대로 된 이론서 하나 없이 협동학습 연구를 시작해 외국모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다인수 학급’이라는 열악한 우리나라 교실 상황에 맞춰 협동학습 모형을 새롭게 변형하거나 개발하는 등 고민을 많이 해왔다”고 말했다. 수업모형만 150개, 20~30개만 알아도 수업이 달라진다 협동학습은 ‘또래 가르치기’를 통해 이질적인 학생들이 공통의 학습 목표에 따라 함께 학습하는 교수전략으로 조별학습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조별학습과는 달리 무임승차나 일벌레, 방해꾼, 소외 학생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김 회장은 “조별학습이 ‘비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였다면 협동학습은 ‘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여서 디테일 하고 꼼꼼하게 구성돼 있어 모든 아이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다”면서 “기존 수업 방식에 비해 체계적으로 접근해 나갈 수 있고 교과와 상관없이 다양한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 수업모형만 해도 150개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중에서 20~30개만 알아도 수업이 달라지고, 3~4개만 활용할 수 있어도 제대로 된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교사 중심 수업의 방식에 익숙했던 교사들이 학생 중심의, 체제가 완전히 다른 수업의 색다른 경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협동학습의 특징 때문에 협동학습연구회는 다른 연구회는 달리 초 · 중 · 고 교사들이 모두 모인 범 교과 연구회로 구성됐다. 협동학습의 교수 · 학습 방법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고 배우며, 각 과목별 수업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은 연구회의 교과모임을 통해 보완한다. 연구회원은 주로 학기 중에는 지역별로 모여 활동을 하는데, 현재 서울, 인천, 안산 · 수원, 광주, 대전, 논산, 공주, 부산, 울산 등 13개 지역모임이 꾸려져 있다. 지역별 정기모임에 참여해 협동학습 이론을 공부하고 각자 학교에서 실천한 협동학습 사례를 공유한다. 방학 때에는 지역을 떠나 교과별 소모임을 통해 각 교과의 수업지도안을 함께 만들고 연구한다. 중등에만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 등 6개 교과모임이 따로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이런 유기적인 네트워크는 지역과 교과를 넘어 모든 연구회 교사들의 결속력을 강화한다. 기본-심화-전문 3단계의 체계적이고 까다로운 연수과정 연간 700명 이상의 교사들이 전국에서 열리는 협동학습연구회 세미나를 수료한다. 하지만 세미나를 통해 협동학습에 관심이 생겨 연구회의 문을 두드려도 쉽게 정회원이 되기는 어렵다. 단순히 협동학습의 수업기술을 배우기보다 함께 연구하고 배우는 회원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는 기본과정, 심화과정, 전문과정 3단계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데 협동학습에 관심이 있는 교사라면 협동학습 세미나를 수료해야 기본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기본과정은 협동학습의 전반적인 내용을 배우기 위한 1년간의 협동학습 개론서 스터디로 이루어지는 새내기 교육과정을 마스터해야 정식 연구회원이 된다. 이때는 별도의 멘토 교사가 새내기 교사의 협동학습 연구를 이끌어 준다. 정식 연구회원이 되면 지역모임이나 교과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1학기 이상 현장에서 실천한 교사들이 심화과정에 참여할 수 있으며 전문과정은 심화과정을 이수하고 1년 이상 실천하면서 전문적인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할 만큼 조건이 까다롭다. 전문과정을 수료해야 전문위원으로 위촉 되는데 이 전문위원들은 협동학습 연구회의 강사교육과 프로젝트 리더 역할 등 실질적인 연구회 운영에 참여하게 된다. 단계별로 구성된 체계적인 연수과정은 통해 기존 회원들의 연구와의 격차를 줄일 수 있고 회원 수가 많아도 연구회를 탄탄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 된다. 김 회장은 “협동학습연구회가 협동학습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연구하며 함께 발전해나가는 전문적인 교사 학습 공동체이길 바란다”면서 “단계별 연수 과정은 단순히 수업기술을 배우러 오기보다 내가 직접 연구하고 배워간다는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수 과정과 연구가 힘들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로서 성장하고 배우는 것이 너무 많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협동학습연구회”라고 말했다. -------------------------------------------------------------------------------------------- “실패를 경험해야 성공적인 협동학습 할 수 있습니다” 한국협동학습연구회 김현섭 회장 협동학습과 함께 해오신 지 10년, 그동안 쉼 없이 열정적으로 연구해온 협동학습만의 매력이 있다면. “처음에 재미있는 수업방법이어서 시작했지만 국내에 관련 자료도 없던 시절부터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하다 보니 협동학습이 경쟁 위주의 우리 교육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됐습니다. 성적이 다른 아이들이 서로 또래 가르치기를 통해서 배움의 성장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협동학습이 지향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교사에게도 교사중심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 중심 수업을 하게 하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협동학습을 실천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은 수업 준비에 특히 큰 부담을 느낀다고 합니다.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동안 해왔던 수업 방법이 단 며칠의 연수로 달라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이 협동학습 수업을 하면 분명 처음에는 실패합니다. 그러나 협동학습은 그런 시행착오 없이 배울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해요. 보통 수업은 ‘티칭’이지만 협동학습은 ‘러닝’이 기본입니다. 교사가 아무리 준비되어 있어도 협동학습 수업에서 아이들의 반응은 다를 수 있죠. 그런 과정에서 교사도 아이들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실패를 하면서 보완해 나가야 성공적인 수업을 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중심이 되는 협동학습 수업에서의 교사의 역할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데. “협동학습이 학생중심 수업이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활동을 시키고 교사는 관찰만 하면 실패합니다. 교사가 주도하되,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모둠에 들어가 피드백 하거나 잘하는 팀은 칭찬하고 못하는 팀은 격려해서 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수업 과정에서의 교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협동학습에 관심이 있는 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꼭 협동학습연구회가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서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시길 바랍니다. 교사 혼자 협동학습을 하다보면 실패를 거듭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쉽게 지쳐서 포기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함께 하는 사람이 많으면 지치지 않아요. 실패한 경험을 나누다 보면 문제점도 찾을 수 있고 계속 연구하게 하는 동기유발이 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안보의식과 안보교육 실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안보 일반, 정책, 북한에 대한 청소년의 인식 분석 자료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2008년 6월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한 리서치 앤 리서치 ‘청소년 안전 안보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선 6 · 25 발발 연도를 묻는 질문에 1950년을 모르는 비율이 56.8%였다. 참으로 놀라운 상태가 아닐 수 없다. 전쟁 시 한국을 도와줄 국가와 관련된 질문에는 미국(67.3%), 일본 및 북한 (7.1%) 순이었고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에 대한 질문에도 미국(28.4%), 북한(24.5%) 순이라고 답변했다. 이러한 결과는 학교 교사들에 의해 ‘주적개념’에 대한 인식이 전혀 전달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 보여진다. 이외에도 안보를 위해 협력이 필요한 국가에 대한 질문에 미국(34.6%), 북한 (22.3%) 등으로 답을 해 안보의식에 있어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특히 미국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데도 이런 상황이라면 반대로 미국 청소년들이 반한 감정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암담하다. 우리의 친구가 누구이고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후진국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2010년 6월 23일 행안부 여론조사에도 심각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조사에서도 역시 6 · 25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다고 정확히 알고 있는 청소년은 41.3%에 불과했으며 20대 경우도 46.3%로 청소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북한이 6 · 25전쟁을 일으켰다고 질문에 맞게 응답한 비율은 청소년 63.7%, 성인은 79.6%였다. 청소년이나 20~30대 성인에게 6 · 25를 생생한 현실로 인식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이렇게 볼 때 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 그리고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교육이라도 제대로 시켜야 하는데 과연 어른들은 잘하고 있을까. 객관성을 빙자해 마치 남의 나라 전쟁인 양 다루거나 심지어 거꾸로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가. 더 이상 초 · 중 · 고 학교에서 남침을 논쟁하는 어리석은 교육은 종식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지난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과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교총이 서울 시내 초(5 · 6학년), 중 · 고교생 12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학생들의 안보관과 남북관계에 대한 의식 수준이 심각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연평도 피격이 북한의 도발인 것을 모르거나, 한국의 군사 훈련이 북한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등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응답자의 4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북한이 6 · 25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학생이 26%, 6 · 25 발발 연도(1950년)를 정확히 쓴 학생은 50.1%에 그쳤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모르는 학생도 36%에 달했으며 또한 중 · 고교생에게 “우리나라의 안보에 가장 위협을 주는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를 묻는 질문에는 76%만 북한이라고 답변했고, 나머지 24%는 일본, 중국, 미국 등이라고 대답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경험하면서 앞으로 통일교육보다는 안보교육의 강화가 더욱 절실하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청소년의 안보의식이 저하된 원인을 분석해보면 우선 안보교육이 전무하고 건전한 국가관과 북한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는 학교안보교육 교사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왜곡전달하고 있다는 것, 통일교재는 있어도 안보교재는 없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통일과 안보는 엄연히 다르다. 튼튼한 안보 하에서 평화통일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보교육의 내용 중에는 안보론, 전쟁론, 평화론, 분단론, 통일론, 군사론, 국가관, 민족관, 세계관 등이 콘텐츠 속에 있어야 한다. 건전한 안보교사 육성 … 인센티브 지급도 아무리 교재가 개발되고 안보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져도 40~50분간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안보교육은 교사의 멘탈리티(Mentality)에 달려있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안보교육에 있어서는 백지 상태여서 노랑색으로 표현하면 노랑색으로, 파랑색으로 설명하면 파랑색으로, 그리고 빨강색으로 가르치면 빨강색으로 그대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안보교육은 더욱 중요성을 갖는다. 이를 위해서는 건전한 역사의식과 국가관을 갖고 있는, 애국적이고 책임 있는 교사가 안보교육을 전담해야 하며 체계적인 안보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 교육 내에 안보교육이 이루어지고 양적 확대를 위한 지원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안보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에게는 우선 인센티브나 승진가산점이 부여되어야 하며 우선 UN군에 참여한 6 · 25 참전국의 참전용사 가족과 후손들, 안보선진국 안보단체와의 네트워킹이 형성되도록 수시로 안보교육을 위한 해외 연수나 방문 프로그램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 동시에 이러한 해외 역사 탐방을 통해 6 · 25전쟁과 관련한 근현대사의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할 것이다. 또한 안보교육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청소년 국제 안보 워크숍 및 캠프’를 추진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외국 안보기관 및 단체와의 교류협력을 정례화하고, 외국 안보교육 기관 등과의 네트워크 구축도 필요하다. 북한의 현실 분명히 가르치고 한국사 필수 과목으로 교과서를 통한 안보교육 실태를 보면 거의 전무하거나 사회교과서, 근현대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어도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일부 교과서에서만 북한과 남한에 대해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고 있다. 이제 분명한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북한 김일성이 무력적화통일로 6 · 25남침 한국전쟁을 도발했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세계최초로 평화를 위해 조직된 UN에서 1950년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 자유와 평화를 위해 21개국의 UN군을 최초로 파견한 세계최초의 전쟁이 한반도에서 있었고 이때의 전쟁영웅의 활약상도 소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남한과 북한, 서울과 평양이 모두 초토화 되었으나 2011년 현재 시점에서 남한은 산업화 · 민주화에 성공하고, 경제대국으로 G-20 정상회담의 의장국으로 발돋움한 사실도 명확히 알려야 한다. 반면, 북한은 여전히 연간 50여 만 명 상당이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그동안 300여 만 명이 굶어 죽었으며 탈북자가 속출하고 있으나 오히려 핵실험, 핵개발을 논하고 있고 정치범수용소에 반 김일성-김정일 독재투쟁을 한 북한주민 20여 만 명을 수용하고 있는 북한의 실제적인 현실 등이 적시되어야 한다. 1953년 휴전협정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행위가 470여 차례 있었고, 2010년 3월 26일과 11월 23일 북한의 무력도발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그대로 교과서에 수록해 청소년 안보의식에 대한 강화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정체성과 애국심, 국가관 등이 바로 잡혀지는 데는 교과서에서의 사실 기록이 출발점이어야 한다. 또 한국사 교육이 초 · 중 · 고에서 필수과목이 되어야 하고 각종 입시, 고시, 공무원임용시험에 국사 과목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 콘텐츠 개발과 함께 이에 대한 초 · 중고 학생의 눈높이에 따른 스토리텔링이 개발되어야 한다. 스토리텔링 주요 주제 사례로는 △ 독립운동, △ 대한민국 독립과 수립, △ 분단과 통일, △ 6 · 25전쟁 비극, △ 산업화와 기적의 경제발전, △민주화와 글로벌 선진민주시민의식, △ 글로벌시대 주역과 국가선진화, △ 북한의 실상 - 탈북사태, 핵개발과 3대 부자세습체제 비판, △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 - 통일한국의 비전 제시, △ 선진안보국가와 천안함 침몰 사례와 연평도포격 등이 있다. 이런 주제를 스토리텔링의 대상으로 소개하고 휴전 이후 평화를 가장한 북한의 무력도발행위 등을 가감없이 보여 주어야 한다. 여기에 추가해서 안보현장체험 시 향토문화사, 향토학자, 역사해설사, 문화해설사처럼 안보해설사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현장에서 감칠맛나고 감동적이며 흥미 있게 안보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안보교사나 안보가이드를 양성해야 한다. 청소년 안보 현장답사 시 이해하기 쉽도록 독립운동, 6 · 25전쟁 등 관련해서도 스토리텔링식 안내판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방송과 사이버공간을 활용한 안보교육 운영 국가정체성 및 국가안보 수호를 위해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안보교육을 운영해야 한다. 사이버 안보센터에서 사이버 공간에 탑재한 안보관련 내용을 청소년을 위한 사이버 안보뉴스레터로 배포하고 사이버 안보논객을 양성해 자유토론방에 기고하게 해 적극적인 대응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온라인상에서 Q A와 퀴즈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올바른 역사의 홍보물을 제작해 관계기관에 전달하고 사이버 상에서 청소년 홍보를 해야 한다. 시민안보단체와 전문가들에 의한 특강, 세미나, 강연회를 사이버 상으로 실시하고 이를 시청하는 인증제를 실시해 학교봉사점수에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인터넷 등 청소년 관심 및 접근매체 활용을 통한 방안도 있다. ‘인터넷’, ‘스마트폰’, ‘트위터’ 등 최신 기술력과 주부들의 ‘입소문’ 등이 최근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주요 기제가 되고 있으므로 이를 홍보에 적용할 수도 있다. 공영방송, 국군의 방송, 교육방송, 안보평화통일 방송 등에 인기 연예인을 출연시켜 청소년에게 자연스럽게 안보교육에 접근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천안함의 조사결과를 믿지 않는 국민이 30% 정도이다. 다행인 것은 연평도 포격 이후에 청년들의 해병대지원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청소년들이 안보불감증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이런 현상을 보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보거버넌스’ 활용해 네트워킹 강화 이러한 학교에서의 안보교육과 병행해 가정 및 지역사회에서의 안보교육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어야 한다. 가정-시민단체-학교-국가가 연계해 ‘안보거버넌스’를 구축해서 대부분 같은 수준의 안보지식과 정보를 전달 받아야 안보에 대한 확실한 신뢰가 보장될 것이다. 그리고 안보교육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민의 자긍심과 역사의식 제고, 세밀하고 효율적인 국가유공자예우 및 명예존중, 매년 6 · 25전쟁 행사를 청소년 안보교육의 산교육장으로 만드는 것 등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 안보교육훈련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청소년 안보교육을 학교 밖인 국립현충원,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청소년 연수기관 등 지방교육기관으로 점진적으로 확대해 실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학교-가정-시민단체와의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정보교류, 공동학습 프로그램 등 전방위적인 안보교육이 필요하다. 가정 및 지역사회에서의 안보교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안보거버넌스를 활용해 NGO와의 네트위킹을 강화한다. 학부모들도 안보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해 안보에 관련한 교육과 정보를 상당 수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지난 1월 소말리아 해적단으로부터 자랑스럽게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해낸 청해부대도 이 시대의 영웅으로서 안보교육의 일환으로 활용해야 한다. 부처별 중복 문제 일원화해 안보교육 추진해야 무엇보다 시간의 낭비 없고 실효성 있는 청소년 안보교육훈련 방안을 추진하는데 힘써야 한다. 청소년 안보교육지원 추진체계 개선을 통해 각급 학교 간, 부처 간 중복 문제를 해소해 교육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안보 전문기관 위탁교육 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로 일원화하고, 청소년 안보교육 지원 사업을 신설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적 교류증대와 국방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안보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분단국가로서 우리는 인도적 지원, 민간 부문에 대한 교류와 동시에 첨단 국방력 강화 수행이 필요하다. 6 · 25전쟁 이후 겉으로는 평화를 가장하고 안으로는 핵실험, 핵개발을 하는 북한의 이중성과 대남무력도발 행위에 대해 반드시 청소년들에게 안보교육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 청소년 안보교육에 대한 교사 중심의 학교 교육 외에도 학부모 중심의 가정교육, 시민사회 중심의 지역사회교육 등이 매우 소중하다. 또한 안보교육 전달자인 안보해설사, 안보가이드, 안보교사, 안보강사, 안보교수 등이 우선적으로 올바른 국가관과 안보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부 교사나 시민단체의 종북좌파적인 안보관이나 북한관이 시정되어야 청소년 안보교육의 효과가 클 것이다. UN군의 도움을 받은 국가로서,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서 안보 분야에서도 국제적 협력과 교류를 통해 스마트한 안보선진국으로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가 한국이다. 이제 분단이 된 지 ‘칠순’에 가까워 오면서 많은 것들이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잊혀 가는 것이 많아 너무 안타깝다. 최근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정세와 안보에 대해서 우려를 하고 있다. 요즘 세대들은 ‘6. 25 노래’를 배운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한다. 전쟁의 아픔을 잊고 사는 지금, 천안함 피격에 이은 연평도 무력 도발이 안보 불감증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북한의 행위는 국제법에 위배되는 명백한 전쟁도발 행위로써 어떠한 이유와 명분으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민족, 반평화 적대행위이다. 이렇듯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행위 속에서 청소년들의 희미해진 국가안보관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욱 걱정되게 한다. 탈북학생 위탁 교육 삼죽초, 북한 실상 알 수 있어 10여 년 전부터 탈북학생들을 위탁 교육시키고 있는 경기 안성 삼죽초의 교장으로서 그 탈북학생들의 눈물겨운 탈출기를 들어보면 정말 가슴 아프고,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전국의 학생들에게 이 탈북학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왜 대한민국으로 목숨을 걸고 탈출해 왔는지를 직접 삼죽초에 와서 탈북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를 깊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탈북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삼죽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내용을 소개하면서 보다 바람직한 통일 · 안보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삼죽초는 경기 안성 삼죽면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학교다. 그런데 1999년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가 안성시 삼죽면에 설립되면서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사회적응교육이 이루어졌다. 학령기 탈북 유 · 초등학생들의 교육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듬해인 2000년부터 탈북 초등학생, 2004년부터 탈북 유치원생들을 삼죽초에 특례입학시켜 위탁교육을 하게 되었다. 탈북 유 · 초등학생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탈북학생의 학교적응에 문제점을 느껴 연구학교를 신청하게 됐으며 2001년부터 탈북학생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4차례 재지정, 운영되고 있다. 삼죽초 통일교육 목표는 국가차원의 통일교육 목표인 미래지향적 통일관, 건전한 안보관, 균형 있는 북한관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본교의 특수한 상황에 따른 통일교육의 목표를 재설정했다. 일반학생과 탈북학생 간의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하는 통일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탈북학생들이 새로운 사회와 학교환경에 즐겁고 자유로운 원만한 생활을 통해 조기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일반학생, 탈북학생 간 올바른 이해에 중점 둔 프로그램 운영 삼죽초의 통일교육은 통일을 위한 탈북학생 교육을 미리 준비하는데 있다. 남과 북의 학생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는 민족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본교에서는 탈북 유 · 초등학생 입국초기 교육지원을 통해 학교 · 사회생활 적응능력과 학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교육지원을 하고 있다. 첫째, 탈북 유 · 초등학생 적응교육 기반을 조성해 적응교육 관계기관과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탈북학생 통합교육과정을 편성 · 운영하며, 다양한 어울림 활동을 통해 연대감을 조성하고 있다. 둘째, 다양한 적응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 적용해 탈북학생의 학교 · 사회생활 적응능력 향상을 위한 나눔공동체 프로그램과 남한 사회 · 문화 적응 프로그램 운영,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평가도구 적용을 통해 학력 향상 지원을 하고 있다. 셋째, 정착지 학교 탈북학생 교육지원을 위해 탈북학생 교육자료 개발과 탈북학생 학부모 상담 · 연수, 정착지 학교 교사 연수지원을 하고 있다. 본교에 재학 중인 탈북학생은 현재 유치원생 15명, 초등학생, 30명이다. 탈북학생들은 기수별로 매달 특례입학을 하며 3개월 후에는 정착지 학교로 전출을 가게 된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219명의 유치원생과 859명의 초등학생이 본교를 거쳐 정착지 학교로 갔다. 탈북학생들에게 삼죽초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입국해서 처음으로 다니게 되는 학교이며 처음으로 남한 학생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게 된다. 오랜 세월 다른 문화 속에서 생활했던 탈북학생들은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렵기만하다. 이런 친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본교에 적응교육을 받는 3개월 동안 탈북학생들을 도와 줄 평생친구를 맺어줘 학교생활에서의 어려움을 도와주도록 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 성격이 활발한 학생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으나 많은 학생들은 사회 · 문화적 이질감으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탈북 유 · 초등생의 적응교육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이 운영되고 있다. 탈북학생 나눔공동체 프로그램 탈북학생들의 대부분은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해 공동체 생활에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손 나누기, 위문활동, 환경 · 시설 보존활동 등 나눔공동체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활동과정에서 나눔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게 하고자 했다. 남한 사회 · 문화 적응 프로그램 남한의 사회 ·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12주의 적응교육 기간 동안 교육문화, 교통문화, 문화재, 가정문화, 공공기관, 놀이문화 체험학습의 6개 영역을 선정해 운영했다. 남한 사회 · 문화 적응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민주사회 및 학교생활에 대한 바람직한 가치관을 기르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며, 문화 차이를 최소화해 조기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탈북학생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평가도구 적용 대부분의 탈북학생들은 다른 교육문화, 교육내용, 교육방법, 학습공백으로 인해 연령대비 학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탈북학생 학년 배정 및 학력 진단을 위한 진단평가 도구를 저 · 중 · 고학년으로 나누어 적용하였으며 그 결과를 누가 기록하고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후 다시 평가를 실시해 기초학력 향상의 전후 비교를 위한 자료로 활용했다. 오랜 시간 몸에 배인 생활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은 너무나도 부족한 시간이며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탈북학생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며 개별적인 수준차가 크고 학생 수가 많아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탈북학생들은 본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좋아한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이 앞으로 겪게 될 학교 및 사회생활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통일교육 환경 학생들이 자주 접하는 위치에 마련돼야 삼죽초의 학생들은 입학해서 졸업 때까지 많은 탈북학생들과 생활하게 되며 평생친구로서 역할을 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런 경험들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쉽게 해보지 못할 값진 경험이며 재산이다. 다양한 어울림 활동들을 많이 하면서 남과 북의 학생들이 서로에 대해 이해하며 우리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남한 사회 · 문화 적응 프로그램에 가장 관심도 많고 호응도도 높게 나타났다.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 느끼며 참여하는 체험활동이 학생들에게 가장 효과적이며 특히 가정문화체험은 오산, 수원, 용인에 있는 협력학교 학생들 가정의 신청을 받아 1박 2일 홈스테이 방식으로 탈북학생들에게 남한 가정의 생활을 경험하게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남과 북의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며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통일교육 환경은 학생들이 자주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조성이 되어야하며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한다. 각 교실에 있는 게시판의 일부를 통일관련 게시물 전시로 활용하고 복도 및 계단 전체 벽면을 통일교육원에서 지원해준 통일관련 패널을 전시했으며 통일시화, 통일협동작품, 통일조각보, 통일골든벨 등을 통해 미래 통일 한국을 이끌어갈 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바른 이해와 올바른 통일관을 심어줄 수 있었다. 점점 늘어가는 탈북학생 수, 지도에 어려움 많아 삼죽초에 재직 중인 교사들은 탈북학생 교육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탈북학생들과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 상황들을 일반학급과 특별학급 교사들이 서로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간담회를 하며 탈북학생 교육과 관련된 자체연수도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통일교육원에서 이루어지는 연수에도 참가해 통일문제와 탈북학생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경기 안성교육지원청 ‘제2브랜드(남북어울림 통일교육) 사업’ 중 남북어울림 통일축제가 지난해 9월 10일(금) 경기 안성 한겨레중 · 고등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 본교 탈북학생과 평생친구 64명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제, 우리 함께 가요’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반팔티셔츠를 입고 평생친구 결연식, 친교의 시간, 통일교육 자료 및 통일문예 전시, 공연관람, 개막식, 탈북학생과 평생친구 합창, 통일 풍선 날리기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진행되었다. 탈북학생교육 연구학교를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은 탈북주민 적응교육 기간의 변화(8주 · 9주 · 12주), 매달 한 기수씩 특례입학하고 퇴소하는 시스템, 점점 늘어가는 탈북학생 수 등이다. 하나원 적응교육 기간의 변화로 특별학급 교육과정도 현재 12주로 맞추어져 운영되고 있다. 매달 한 기수씩 들어오고 나가는 시스템은 행사운영, 학급 분위기, 탈북학생 특정학년 편중현상, 책 · 걸상 부족 등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예산 지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의 문제들은 계획을 세워 예산을 신청하고 지원 받아 해결했으나 그 외의 것들은 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감내하며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탈북학생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가 학생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지도하는데 있다. 그렇다고 이런 부담을 교사와 학교에 전적으로 떠넘기기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적 지원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람직한 통일 · 안보교육의 방향 첫째,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지도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서 북한의 실상을 접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는지 장마당에서 음식을 주워 먹거나 바짝 마른 몸으로 다니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거 이전·표현 등의 자유도 없고 김씨 일가의 세습에 따른 유일사상교육이 반복되고 있어도 누구하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북한이다. 화폐개혁의 실패가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외화 수입의 대부분이 군사력 향상에 쓰이고 있다. 식량 생산이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릴 만큼도 안 되는데 외국의 원조가 주민들에게 균등하게 공급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북한의 이런 실상들을 여과없이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둘째, 북한을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체험학습장을 만들어야 한다. 안보교육, 통일 교육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고 북한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지도해야 한다. 다행히 삼죽초는 북한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고, 탈북학생들이 40여 명 다니고 있으며 가까이 하나원이 있어 북한의 실상을 전달할 수 있는 자원이 많다. 체험공간만 조성된다면 많은 학생들에게 체험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탈북학생들을 직접 만나봄으로써 북한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왜 탈북을 할 수밖에 없었고 탈북하는 과정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생생한 그들의 육성을 들려줘야 통일 · 안보교육이 왜 필요한지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다. 셋째, 정치인과 언론인, 교사 등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성세대들의 대북관이 확고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언론과 방송이고,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들의 말 한마디는 인터넷을 타고 청소년들 사이에 번져 나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치인이나 언론인, 교사의 말과 행동은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잣대가 되기 때문에 기성세대는 확고한 대북관을 갖고 검증된 것들을 표현해야 한다. 무책임한 표현과 검증되지 않은 대북관은 학생들의 통일 · 안보교육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넷째,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 통일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다양한 부분에서의 교류를 통해 부분적인 통합에서 완전통합이 될 수 있도록 소통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살아온 남과 북이 한순간에 통일이 된다면 많은 혼란이 있을 것이고 통일 후 발생할 다양한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지기반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통일 후 소요되는 기반시설, 교육, 복지 등에 소요되는 비용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국민들은 북한의 주민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인드 형성과 통일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민간부분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한다. 이와 같이 통일 · 안보교육은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체험을 통해 나라의 소중함과 통일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며 곧 일어날 수 있는 통일을 대비해 확고한 대북관과 국가관을 올바르게 형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한 국어교사가 한글날을 맞이해 중학교 학생들에게 한글을 주제로 특별한 수업을 실시했다. 선생님은 한글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만약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으셨다면, 이 교실에서 보이는 칠판, 게시판, 책의 모든 글자가 아마도 한문이었겠죠?” 그러자 몇 명의 학생이 동시에 감탄사를 외쳤다. “정말 황당해요. 헐~” 이 이야기는 단순히 웃고 넘기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이다. 최근 학생들이 쓰는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비속어, 욕설, 은어가 넘쳐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말들은 소수의 학생이 사용하는 장난 섞인 애교가 아니라, 많은 초 · 중 · 고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 현상’이 되고 있다. 청소년 언어가 비속어, 욕설로 얼룩진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인터넷의 사용과 매스컴의 영향을 들 수 있다. 학생들은 온라인 게임을 하며 상대방을 욕하거나 화를 분출하기 위해 욕설을 하고 있으며, 채팅을 하거나 게시판에 글을 남기며 나쁜 말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둘째, 단순한 재미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습관적으로 나쁜 말을 쓰는 청소년의 태도에 원인이 있다. 학생들은 상대방이 밉고 화를 내기 위해 욕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재미를 느끼고 마음속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자주 나쁜 말을 사용하면서 언어 습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청소년 또래 집단의 성격상 친한 친구의 욕설을 따라하며 동질감을 느끼며,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셋째, 어른들의 잘못된 언어 사용에도 그 책임이 있다. 학생들에게 비속어나 욕설을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면 어른들도 그런 말을 사용하면서 청소년만 탓한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바르지 못한 언어를 사용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 면이 있다. 넷째, 결과론적인 원인이지만, 잘못된 청소년 언어를 제어해 주고 교정해 주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이 부족했다. 청소년이 비속어, 욕설을 사용하는 현상을 일시적으로 보고 어른들은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큰 소용돌이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나쁜 언어가 습관화된 말투가 되어 가며, 비판 없는 사용으로 인해 빠르게 전파가 된다는 점이다. 단순한 재미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욕설이라 하더라도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 또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욕설을 사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학생과 어른들은 소통이 단절되고 있어서, 얼마 전 미국에 청소년 언어 해독 사이트가 생긴 것처럼 통역과 번역이 필요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동량인 청소년 언어가 훼손되고 변질된다는 점은 거시적 차원에서 우리나라의 언어문화가 점점 수준이 낮아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문제는 청소년이라는 특정 연령층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 학교,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함께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먼저 언어 순화를 위해 학생들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며, 교육과정 속에 언어 순화 내용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이것은 국어교사만의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되며 전 교사가 바른 언어 교육에 동참하는 시스템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아름다운 우리말,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운동을 전개하며 올바른 언어 사용을 약속하는 다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나쁜 언어에 대해 반성과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정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의 나쁜 말을 당당히 교정해 주고, 좋은 말을 쓰도록 마음속으로 다지며, 자치활동이나 학급회의를 통해 자율적인 학생 문화 개선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타율적인 통제와 교육보다는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진정한 성찰이 더 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근자에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지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마음먹고 읽었다. 소설 데미안은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한국에 선풍적 인기를 몰고 상륙해,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소설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권장도서 목록에 빠짐없이 올라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성장기 교양을 보증하는 대표적 독서 브랜드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지니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요즘 데미안은 그때와 같은 강렬한 독서 열기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른바 스테디셀러의 명망은 여전하다. 1919년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하니, 이 소설이 지닌 감동의 보편성이 대단하다. 나도 물론 대학 시절 데미안을 읽었다. 그뿐이랴. 친구들과 어울리던 청량리시장 막걸리 집에서는 누가 더 진지하게 읽었는지를 경쟁이라도 하듯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때는 지적 허영심 같은 것도 있어서 모르는 것도 아는 척, 불확실한 것도 확신에 찬 듯 그렇게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 나름의 사고와 앎의 순수성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데미안은 대충 이런 이야기이다. 10대 초반의 주인공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라는 악동에게 어두운 악의 체험을 고통스럽게 강요당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도움의 주인공 ‘데미안’을 만나 정신의 긴장과 해방, 지식과 무지, 선망과 열등감, 자아와 타자, 선과 악의 본질을 경험한다. 그런 경험에서 삶과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키우며 자아의 정신세계를 성장시켜가는 이야기이다. 스토리라인으로만 두고 보면 그다지 흥미진진한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 눈을 뜨면서, 밝고 안온하게 보호된 유년의 순수한 세계를 넘어 어둡고 칙칙하고 불량스러운 것들과 대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성장기를 진지하게 대입한다. 세상의 음험한 것들에 저항하고 굴복하면서 순수의 영혼이 울먹거리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그런 불량하고 음험한 것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런 양극을 오가며 다시 자아를 다독거리기도 하고, 주변의 타자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자리로 나아가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프란츠 크로머가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있었다. 내가 맨 처음으로 만났던 나의 크로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난 김○○이라는 아이였는데, 무언가 작은 꼬투리를 잡아서 돈을 가져오라고 위협했다. 그 돈을 그가 정한 날에 가져오지 않으면 이른바 벌칙 이자가 가속도를 달고 늘어 나갔다. 학교에 가는 일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그가 불량스럽고 힘이 세기는 했지만 나는 그를 제압할 방법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내 아버지가 그 작은 시골 학교에 선생님이었다.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기만 해도 문제는 일시에 해결된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되는 것이 너무 창피했다. 자존감이 허물어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그에게 지혜롭게 보복할 수 있는 학급의 직책과 담임의 신임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방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나에게도 ‘데미안’과 같은 조력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그 당시는 물론 데미안을 읽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이런 고통스러운 상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생각을 어렴풋 잠깐 잠깐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무슨 확실한 결심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4학년 1학기 내내 고통스럽게 지내던 나에게 의외로 완전무결한 해결방안이 저절로 찾아 왔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사흘인가 되던 날 나를 괴롭히던 김○○가 웅덩이에서 멱을 감다가 익사했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겪었던 정신의 충격은 참으로 싱클레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 세상과 우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질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그렇게 죽음으로 데려간 신에게 감사하다는 기도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대응은 왠지 유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은 김○○이 꿈에 나타나서 돈을 가져오라고 닦달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했다. 이것은 나에게 막강한 혼돈이고 두려움이고 경이로움이고 긴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김○○가 죽고 난 뒤에도 그 누구에게도 그가 나를 괴롭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이 경험을 반추해 보면, 나는 순수한 아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정반대의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에도 나는 또 다른 크로머들과 꾸준히 내 인생의 무대에서 조우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자전거로 귀가하는 30리 하굣길 소도시 외곽 삼거리 골목에서 폭력으로 돈을 갈취하던 또 다른 크로머들은 지나고 보니 친근감으로 소생하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다시 쑥스럽게 만나기도 하고, 마흔 넘어서는 친구로 가까워지는 길을 함께 간다. 불량기는 무언가 고약한 운명에 의해서 덧칠되는 순수의 그림자쯤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전체 인생 역정에서 김○○를 포함한 나의 크로머들은 나를 어떻게 도와주었을까. 나의 순수에 어떤 면역을 키워 주었을까. 다소 딱딱하고 현학적인 이야기로 흘렀으므로 좀 재미난 이야기로 마무리해보자. 새해를 맞으면서 얼굴 한 번 보자고 옛날 어린 시절 고향 친구들 몇 명이 모였다. 자라던 시절의 순진무구하던 이야기들은 지금 들어보면 우습기도 하고 스스로 귀엽기도 하다. 따끈한 소주 한 잔이 돌고 우리는 함께 공유할 만한 그 옛날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오늘의 나이 든 연륜의 등불 아래 비추어 보았다. 무역업을 하는 나의 친구 박 사장이 어린 시절 자신의 순진무구를 이야기한다. 가정교육이 엄격하고, 남녀의 성적 이야기에 대한 것은 철저히 금기시 되었던 시절을 우리는 지냈다. 성(性)에 대한 금기는 성에 대한 무지와 소외로도 이어졌는데 이것이 곧 순수한 청년으로 인식되는 면도 없지 않았다. 박 사장은 키가 작아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아이 취급이었고, 또 자신도 그런 분위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성적 음양의 이치를 모를 정도였단다. 그러니까 데미안식으로 말하면 그는 밝고 안온한 유년의 분위기에만 머물러 있었다고나 할까. 고1 어느 봄날 그의 큰 누나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시골 소도시의 구석진 마을이므로 동네가 다 아는 경사였던 셈이다. 결혼식 날 아침, 마을 골목의 불량기 있는 또래 아이들이 지나가는 고1 짜리 박 사장을 음험하게 히히덕거리며 불러 세웠다. 착하고 순진한 박 사장을 놀려주려는 속셈이었다. “야! 니네 큰 누나 오늘 결혼하지?” “그래 그렇다. 왜?” “오늘 첫날밤 너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알아?” “무슨 일은 무슨 일? 그냥 신랑 신부가 다정하게 자는 거지.” 바로 이 대목에서 녀석들의 킥킥거림과 희희덕거리는 숨결이 높았음은 물론이다. 녀석들은 소년 박 사장에게 첫날밤 신랑 신부가 육체적으로 결합하는 일에 대해서, 매우 불량하고 저속한 언어로 설명해 주었다. 박 사장은 이해도 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첫날밤에 신랑신부가 한다는 그 해괴망측한 사건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라고 놀리는 분위기를 용납할 수 없었다. “더러운 놈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큰 소리로 외치며 그들에게 대들었단다. “우리 누나는 그런 누나가 아니야. 너희들이 우리 누나를 몰라. 우리 누나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누나가 아니야!!” 녀석들의 웃음이 왁자지껄하게 터져 나왔을 것이 보지 않아도 훤하다. 그런데 오늘 이만큼 나이가 들어서 이 추억담을 펼쳐놓는 박 사장의 표정이 맑고 밝다. 자신의 순진무구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도 비쳐 있다. 더구나 이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하는 우리들 모두도 참으로 맑고 아름다운 소품 하나를 마음의 풍경으로 담아 두는 듯하다. 박 사장은 그 순진무구의 힘으로 그의 인생을 그답게 경영해 왔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에 밝은 박수를 치는 우리들 마음은 순수의 편에 가있다. 그런데 기묘한 느낌을 어떻게 한다지. 불량기 가득 묻어 내었던 그 친구들도 밉지가 않다. 순수는 그 혼자만으로는 시들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다. 순수는 불량과 불순의 도움으로 마침내 이름답게 성숙한다. 총체적 삶으로서의 인생이 마침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순수는 무엇으로 성숙하는가.
‘관념적 예절’보다 ‘실천적 예절’ 중요해 실천중심 예절 교육을 강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실천중심’을 강조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예절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하지만 초등교육에서 계속 강조돼 왔어도 몇 십년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죠. 아이들은 점점 더 예절 바르지 않고,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2007년 통계청 청소년 백서에 따르면 약 55%의 청소년들이 예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 예절을 행동으로 옮기는 청소년은 40%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예절교육에 대한 의미와 접근 방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절교육은 이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장동초 예절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이 예절 바른 마음과 행동을 습관화하는 데 있습니다. 밥을 먹듯 습관적으로 몸에 배게 하는 것이죠.” 6년간 반복해 배우는 20가지의 예절 중점 요소 다른 학교의 예절 교육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예절교육에 대해 구체적인 지도방법을 가지고 세부적인 실천 방안을 반복해 지도하는 것입니다. ‘예절을 지켜라’, ‘예절은 이런 것이다’, ‘○○ 예절이 중요하다’는 식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예절지도는 지양합니다. 교육과정을 분석해 꼭 지켜야 하는 예절 중점 요소 20가지(학년 공통요소 3개, 학년별 지도요소 17개)1)를 추출하고, 31개의 지도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문제 상황을 통해 어떻게 예절을 지켜야 하는지를 배우죠. 학년이 올라가면 중점 요소도 누적해서 배웁니다. 2학년에 올라가면 1학년 중점요소+2학년 중점요소를 배우는 식이죠. 이렇게 6년 동안 중점 요소를 집중적으로 반복 지도해 습관화하고 학생들은 일기처럼 자신의 예절 태도를 기록하고 되돌아보는 ‘마음의 행진’ 실천 기록장을 통해 예절 습관 의지를 다집니다.” 예절 지도 매뉴얼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지속적으로 같은 내용이 반복 교육되려면 매뉴얼이 꼭 필요했습니다. 각 매뉴얼마다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학습 단서로 구체적인 상황이 제시되어 있고 지도 단계별로 돼 있어 어떤 교사든 통일성 있고 쉽게 지도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 예화 자료뿐 아니라 수업 자료, 관련 사이트까지 자세히 소개해 매뉴얼 하나만으로 예절교육 지도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무엇보다 교사가 지도하기 쉬워야 반복지도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재량활동 시간, ‘상황중심 관계 맺기 프로그램’ ‘실천’을 강조하신다는 말씀대로 재량활동시간에 운영하시는 ‘상황중심 관계 맺기 프로그램’도 눈에 띕니다. “예절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모든 생활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이 강조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상황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는 훈련을 하고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위한 ‘마음 이해 프로그램’, 대화 능력 신장을 위한 ‘언어 순화 프로그램’, 인격존중을 위한 ‘인간관계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죠. 프로그램 이름처럼 ‘마음이해 프로그램’의 마음조절 파트에서는 ‘내 마음속 천사와 악마에게’, ‘거울 일보 기자 되기’ 등 구체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상대방과 자신을 이해하고 관계를 긍정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지도합니다.” 학부모와 연계한 예절교육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반복 지도를 해도 집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희망하는 학부모에 한해 그날 배운 예절 교육 내용을 SMS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집에서는 학부모가 같은 내용을 반복 지도함으로써 한 가지라도 더 습관화하자는 것이죠. 또 예절 실천 자율 동아리 ‘예절 띠앗’도 운영하는데 학부모가 주체가 돼 3~5명의 학생과 띠앗을 이뤄 학교 밖 상황에서의 책임감 있는 예절 행동을 배웁니다. 3개의 예절 띠앗이 구성돼 활동하는데 예절교육에 대한 지역사회 관심을 유도할 뿐 아니라 학교 홍보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죠.” 언어 순화 위한 ‘예쁜 마음 동요 도전 60곡 대회’ 최근에 학생들의 언어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바른 말 사용, 언어 예절 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학생들의 언어 문제, 참 심각합니다. 언어순화도 하고 고운 심성을 기르게 하려고 ‘예쁜 마음 동요 도전 60곡 대회’를 열었습니다. 동요는 아이들이 예쁜 언어들을 접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고운 마음을 기르게 하는데 요즘은 학교에서도 동요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아 늘 안타까웠습니다. 학기 초에 동요 60곡을 선정해 노랫말을 전교생에게 나눠준 후 아침, 점심시간을 이용해 동요를 들려줍니다. 노래방을 준비해 가사를 보지 않고 동요 60곡을 가장 많이 외워 부르는 학생에게 시상하는데 2년간 동요 60곡을 모두 외워 부르는 아이가 500명이 넘습니다. 집에서도 동요를 들으며 연습할 만큼 참여도가 높습니다.” “이제 초등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 아이들의 학력이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요즘, 눈에 보이는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예절 교육을 강조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육과정 운영에서 도덕 시수를 늘리는 학교가 많지 않죠.(웃음) 저는 이제 초등 교육이 무엇을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창의적인 인재, 리더를 키우려면 오히려 기본이 바로 선 교육이 필요하죠. 또 초등학교에서 시험 점수보다도 중요한 것이 자존감을 길러 주는 것입니다. 예절교육이 잘돼서 기본이 바로 된 아이들을 길러 낼 수 있다면 공부는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심성을 기른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크게 효과를 볼 수 없어도 먼 훗날 우리 학교 아이들은 언제 어느 장소, 어느 일터에 가서도 밝은 미소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리더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학교를 경영하시면서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기 위해 또 강조하시는 것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미래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려면 초등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꿈’이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질과 능력을 길러주고 어떤 것을 가장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가를 학교에서 발견해 그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동초의 모토가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입니다. 장동초 현관에는 1050명 학생의 꿈이 펼쳐져 있습니다. 학년초에 자신의 꿈을 적고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실천할지를 ‘꿈 플래너’에 기록하죠. ‘나는 교수가 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책을 10분 더 읽겠다’는 등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인 실천 전략을 담습니다. 학년이 올라가 꿈이 바뀐다면 꿈이 바뀌는 이유를 적고 다시 꿈 플래너를 기록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꿈(목표)를 찾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 이상미 smlee24@kfta.or.kr 1) 학년 공통요소(바른 식사 예절, 복도 통행 예절, 표정 관리 예절), 1학년 중점 요소(바른 인사, 바른 자세), 2학년 중점 요소(바르고 고운 말 ①, 바른 옷차림), 3학년 중점 요소(화장실 사용하기, 정리․정돈하기, 약속 지키기), 4학년 중점 요소(바르고 고운 말 ②, 시간 약속 지키기, 친척 간의 예절), 5학년 중점요소(네티켓 ①, 토의․토론 예절, 도서관 사용 예절), 6학년 중점요소(네티켓 ②, 감상 예절, 감정 조절, 국가 예절)
학생 대 교사의 비율, 학급당 학생 수 등은 교육개혁이나 학교교육 환경 개선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표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을수록, 학생 대 교사의 비율이 낮을수록 개별 학생이 받는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그간 ‘학급규모 감소’는 미국 교육정책 논의의 단골 주제였고 엄청난 규모의 교육재정이 관련 정책에 투입되어 왔다. 사립재단의 교육지원 또한 학급 규모 감소와 관련된 경우가 많은데, 엄청난 재정 규모를 자랑하는 빌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학교 및 학급 규모 축소 프로그램 ‘작은 학교 개혁 운동(Small-School Reform)’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작은 학교 운동’의 전반기 5년(2000∼2005)을 시행방법에 따라 비교 평가한 학술 논문(2008년)에 따르면, 신생학교 설립 시 작은 학교로 출발한 경우와 규모가 큰 학교를 축소해 작은 학교로 변형한 경우에 그 성과에 여러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규모가 작은 신생학교의 경우, 초기 발생하는 다양한 업무의 폭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구성원들이 이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원래 규모가 컸던 학교를 쪼개어 작은 학교로 새로 출발한 경우는 기존의 인적자원 활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학교 운영 방식을 보였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의 측면에서도 신생 소규모 학교의 경우에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으나 후자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종합적으로 학교 규모가 학생들의 성취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에는 증거자료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급규모와 학업 성취도 간 영향에 관한 전문가인 스탠퍼드 대학의 Hanushek 교수가 꾸준히 주장해 온 바와도 일맥상통하는데, 그의 책 학급 규모에 관한 논쟁(The Class Size Debate, 2002)에 의하면 투입되는 재정액에 비해 학급규모의 축소가 학생들의 성취향상에 기여하는 바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자인 Ronald F. Ferguson이 펴낸 보고서 ‘본보기 고등학교의 비법(How High Schools Become Exemplary)’이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Ferguson 교수는 4100명의 학생이 재학해 미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매사추세츠 주 Brockton 고등학교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대규모 학교의 교육개혁 성공사례를 보여준다. Brockton 고교는 원래 문제학교의 대명사였다.그러나 메사추세츠가 졸업 기준을 강화해 고교 졸업예정자들이 주가 정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명시함에 따라, 학생들의 졸업률과 장래를 걱정하기 시작한 교사와 교장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학교 교육의 질 개선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사(교장)의 노력은 향후 ‘학교개혁위원회’로 발전되어 학교개혁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Brockton 고등학교의 성과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미국 교육개혁에서 줄곧 주창되어 온 ‘작은 학교가 낫다’라는 모토에 상당한 충격을 준 사례로 미국 교육계에 큰 반향이 예상된다고 논평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규모가 큰 학교를 소규모 학교로 재구조하는 데 막대한 규모의 교육재정을 투자하는 것이 그동안 미국 교육개혁의 주요 트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교사 대 학생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거나 학급규모가 너무 커서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형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높은 수준의 교수 · 학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겠으나, 분명한 것은 단순히 교사 대 학생 비율을 낮추거나 학교 및 학급의 규모를 축소하는 것만으로 성공적인 학교운영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의 한 백화점 플레이스테이션 앞에는 ‘학교 갔다 와서 갖고 놀자’라는 문구가 붙여져 있다. 노이쾰른 지역 백화점 ‘카슈타트’에는 오전 10시부터 사람들이 붐비는데 이들 손님 중 대부분은 미성년자다. 대부분이 원래 학교에 가야 할 평일 오전 시간에 무단결석 학생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가전제품 전문백화점인 ‘자투른’이나 ‘메디아마르크트’는 플레이스테이션, 위, 엑스박스 콘솔 게임기들을 오전에는 꺼둔다. 실제 노이쾰른 지역은 저소득층과 이주민의 밀집 거주 지역으로 이주민 통합 논쟁 때 미디어에 단골로 등장하는 지역인데 학생들의 무단결석 실상은 다른 지역보다 더 심각하다. 수많은 학생들이 며칠씩, 몇 주씩 결석하고 한 학급에 반 정도가 결석한 경우도 허다하다. 이주민 출신 학생 중 중학교 졸업장도 못 따고 중퇴하는 비율이 25%다. [PART VIEW] 이 때문에 2009년부터 베를린 시는 노이쾰른 지역에 무단결석 학생 재활을 위한 기숙학교를 운영 중인데 ‘나사렛’이라는 기독교 계통 청소년 복지기관이 내놓은 프로젝트다. 특히 무단결석이 심한 학생들을 모아 놓고 심리 상담과 집중교육을 통해 교화시킨다. 한 학생 당 들어가는 비용은 2400유로로 만만치 않지만 학부형의 소득에 따라 책정된 수업료를 내고, 나머지는 시에서 후원한다. 이 기숙학교의 이름은 ‘생활과 배움(Leben und Lernen)’으로 전에 고아원으로 쓰던 건물을 활용했다. 모두 4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지만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은 12세에서 16세 사이의 남학생 5명, 여학생 2명으로 모두 7명인데 대부분이 이주민 출신이다. 이들은 방학기간을 제외하고 일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담당교사들의 보호 하에 기숙학교에 머물러야 하며 주말에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기숙학교에서 그룹토론, 과제물 수행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이 기숙학교의 목표는 이 학생들이 다시 일반 학교에 가서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 학생들에게 새벽 6시 반부터 시작하는 기숙학교 생활은 힘든 적응기간이다. 학교 다닐 시간에 길거리에 돌아다니며, 쇼핑센터를 돌아다닌 것이 원래 일상이었던 이아들이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동기를 갖게 하는 일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학습능력도 현저히 떨어져 초등학교 수준부터 시작해야 하기 일쑤인데다 집중력도 떨어져 처음 수업은 하루 네 시간 정도만 진행한다. 수업이나 다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도 이들 청소년들에겐 어려운 부분이다. 이 학교 마리온 자이델 교장은 “이 학생들은 생애 처음으로 엄격하게 짜인 하루일과를 보내므로 적응하기 어려워한다”면서 “함께 요리하고 청소하고 여가시간도 같이 보내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활동은 ‘자율적인 강제’ 형식으로 이뤄진다. 담당 교육사들은 이들이 기거하는 기숙사에서 50m 남짓 떨어져 있는 학교 건물까지 가는 길을 동행해 교사에게 아이들을 넘겨준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곳을 마음대로 빠져나갈 길은 없다. 친구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가족들은 오후에 이 기숙학교를 방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선 이 기숙학교를 두고 ‘무단결석학생감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그래도 한시름을 놓을 수 있다. 학부모들도 이 학교가 문제아 재활 기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996년 말 교육부의 체벌 금지 지시가 있었는데 그때 교육현장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악동이 있는데도 체벌을 하지 않고 훌륭한 학생지도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교사는 위선자가 아니면, 도를 닦은 교사이거나 신통력을 가진 교사라고 평가했다. 또 ‘사랑의 매’까지 들지 못하게 하는 것도 교권(?) 침해라고 했다. 과거의 사례를 재론하는 이유는 2010년에 서울 ・ 경기 ・ 강원 교육청의 체벌금지 시행 후에 나타난 교사의 반응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무기력한 교사가 되라는 것 같다고 말한다. 문제 학생 지도를 위해서 교육자로서 정열을 기울이지 말아라, 무사안일한 교사가 되라는 것이다. 체벌금지 조치는 난장판인 교육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서울 명문 여대의 교육학 교수는 사대에 진학해서 교육학을 배워보니 매가 아닌 방법으로도 학생지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초 ・ 중 ・ 고교 교사들만 모르는 것 같다는 고백을 했다고 한다. 또 학생 체벌을 하는 교사의 태도를 보면 이성을 잃고, 체벌을 시작하면서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진다고 한다. 학생에 따라 차이를 두며 교사가 특별히 싫어하는 학생에게 더 심하게 체벌한다고도 한다.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과 독일, 영국, 태국도 학생 체벌을 일부 한다. 보수적인 영국은 그동안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해왔으나, 2010년부터 허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꿨는데 그 이유는 교권 회복과 엄격한 훈육은 교육의 책무라는 인식 전환과 각성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학생 체벌은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일 만큼 장단점이 있다. 절제된 체벌은 필요하다는 교육계와 교사, 학생의 정서를 고려해 체벌의 단점은 시정하고 장점은 살리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기회에 실현가능한 학생 체벌관련 논란의 해법을 제안한다. 첫째, 체벌정책을 수립할 때 교육학계에서 설득력 있게 제안되고 있는 체벌 찬 ・ 반론을 반영한다. 둘째, 교육계에서 체벌 지침과 같은 해법을 입안할 때, 법원의 학생 체벌 관련 판례를 반영하면 교권과 학생의 인권 보호가 가능하다. 셋째, 체벌의 절차적 정당성(Procedural justice)을 존중하면서 체벌을 허용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반영한다. 넷째, 학교에서 체벌이 성행하는 이유와 조건을 제거하는 대책을 추진한다.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의 직전 교육에서 학급경영 기술과 방법에 대한 소양을 보다 강화시켜 교단에서의 학생지도 역량을 제고시키면 치기어린 청소년들을 제대로 통솔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섯째, 교육학(예 : 교사론)에서 개발, 응용하고 있는 교사 효율성 훈련(TET) 프로그램이나 ‘당신도 유능한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교사자질 향상 프로그램을 각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시 ・ 도교육청 교원 연수원에서 진행한다. 여섯째, 초 ・ 중 ・ 고교에 상담전담 교사를 증원, 배치해 이들이 체벌 대상일 수 있는 학생들의 거칠고 치기 어린 문제 행동을 예방, 치료, 상담하는 등 심리치료 교육에 역량을 발휘하면 체벌 없는 교육 환경 조성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체벌이나 처벌 대상일 수도 있었을 초 ・ 중 ・ 고 학생들 중에 학문적(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이나 아동이상심리학)으로 정신발달장애로 지목되는 불행한 학생들이 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정서 ・ 행동 ・ 성격 장애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학습장애, 그리고 위기에 처한 청소년(at-Risk Youth)1) 등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되고 있는 이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도록 보호하고 지켜주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여덟째, 귀한 내 자녀가 학교에서 체벌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가정에서부터 반듯하게 자라도록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훈육하자. 자식 농사를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부모가 나서야 한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면 학교에서 교사에게도 순종한다. 내 자녀 이기주의, 과잉보호만 있고 제대로 된 가정교육이 실종된 오늘날 야수같이 거친 청소년들의 생활지도에 교사들은 너무 힘들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동과 청소년 시절과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다. 자녀 훈육을 학교에만 일임하고 부모는 방관자가 되어서는 성과를 거둘 수가 없으므로 부모와 교사가 협력하여 그 몫을 분담해서 개입해야 한다. 아홉째, 교사보다 더 크고 힘센 남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여교사들의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열번째, 교사의 체벌을 금지하더라도 학생 체벌의 상위개념인 처벌권, 훈육권은 인정, 허용하는 것이 교육적이다. 학생의 잘못된 행동(Misbehavior)을 엄히 문책하는 것도 교육의 책무이다. 잘못된 행동을 온정주의로만 다루면 그 학생에게 도움이 안 된다. 어른 사회에서도 상벌기제가 작동한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교육계의 산적한 많은 중요한 문제들 중에서 학생 체벌 문제는 교육감의 4년 임기 중에서 긴급하게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교육 현안은 아니라고 본다. 교육에서 학생과 교사는 경중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그런데도 학생 위주의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서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다. 체벌 금지조치로 학습지도와 생활지도에 따른 교사의 역량이 약화되고 교실붕괴가 심화되는 상황을 과도기적 현상으로만 판단하고 방치할 것인가. 체벌을 금지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교사가 학생을 무서워하는 학생 무서움증이 교사에게 나타난다고 하지 않는가. 체벌을 하지 않고도 학생지도가 가능하지만 학교 교실 상황은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다. 1) 우울증과 불안, 조울증을 겪고 있는 청소년, 학대받는 아동, 이혼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청소년들, 소년가장, 물질 오・남용에 중독된 청소년, 미혼모, 가출청소년 등
작년 모 공중파 방송에서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학생의 성취도가 대학 입시 하나로 평가받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대놓고 대학 입학을 강조’하는 드라마의 등장은 그리 놀랍지 않다. 도리어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현실을 잘 반영한, 영리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재능도 취미도 다 다른 학생들이 오직 한 길, 대학에 목을 매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일까. 가치관이 형성되는 인생의 소중한 시기를 입시 경쟁에 바친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그렇게 해서 대학에 입학한 후에 그들의 인생 목표는 무엇이 될까. 대안을 찾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던 중에 학교를 다룬 도발적인 영화 한 편을 발견했다. 바로 작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클래스다. 교육에 관한 도발적 질문 영화 클래스 한 상호작용과 다양한 시도로 완성된 영화에서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생동감과 현장감이 매순간 느껴진다. 그런데 클래스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런 외적인 형식이 아니다. 실제 교육현장을 리얼하게 담아낸 영화가 보여주는, 엉망진창인 교실 풍경이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도 학생들은 자기 일 하기에 바쁘다. 수업 시간에 떠든다고 핀잔하면 또박또박 대들고, 책을 읽어 보라고 하면 지금 책 읽을 기분이 아니라며 반항한다. 무력한 교사와 무례한 학생,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공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이런 풍경은 교육이 전 지구촌의 보편적 문제임을 체감하게 해준다. 로랑 감독은 교육 문제에 더해 프랑스의 사회적 과제인 인종문제를 학교로 옮겨와 고민의 장을 확대한다. 파리 교외의 삼류 중학교에 속한 프랑수아의 교실에선 말끝마다 대꾸하기를 즐겨하는 아랍계 여자아이, 불법체류자의 자녀인 중국인 남자아이, 다른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온 흑인 남자아이 등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학생들로 인해 여러 돌발 상황들이 벌어진다. 성, 인종, 계급별로 세심하게 대비된 인물들 간의 역학 관계는 이 작은 교실을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든다. “외국인 학생들이 프랑스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감독은 다문화, 다인종 국가로서의 프랑스가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생생한 교육현장 체험 소설 클래스 영화 클래스의 원작 소설 클래스는 질 높은 공교육 시스템으로 높게 평가받던 프랑스 교육의 실상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프랑스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은 파리 빈민가의 모차르트 중학교를 배경으로 시니컬한 록 마니아 교사와 반항심 가득한 말썽꾸러기 학생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개학날 출근하기 싫어 앞으로 남은 수업일수를 따지는 주인공 교사는 졸업반인 3학년 담임을 맡게 된다. 대부분이 이민 가정 출신인 학생들의 학습 태도나 수준은 엉망진창이다. 주인공의 고충은 일 년 동안 계속되고, 다양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갖가지 사건 사고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말썽만 부리던 아이들은 때때로 천진난만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고뭉치에 반항이 일상화된 아이들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다. 저자인 프랑수아 베고도는 오해와 말다툼이 빈번한 사제관계,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웃음과 활기가 끊이지 않는 교실 풍경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 보인다. 본인이 파리의 한 중학교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재직하며 겪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완성한 만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학생들과 시니컬하고 무기력한 선생님이 벌이는 소동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프랑스의 생생한 교육현장을 솔직하게 묘사한 이야기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불안정한 교권, 반항하는 아이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교육 불평등 문제가 화두가 되는 요즘 세태에서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기 소설과 영화 클래스는 심각한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무거운 주제의식으로 관객을 훈계하지 않는다. 냉정한 듯 무심한 카메라가 담아내는 대립과 갈등의 이면에서 예기치 않은 교감의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교과서에서는 ‘주체적인 인간’에 대해 배우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이 상존하는 한국 사회와 대비되어,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발언권을 주고,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일단 그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는 클래스 속 어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고민을 안겨 준다. 생소한 프랑스 교육시스템을 엿보는 것도 이 영화의 부가적인 재미다. 학생 평가를 담임이나 교과 담당 교사 홀로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함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참신하고, 그 자리에 학생 대표가 참석해서 얼마나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듯이 소통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교사 프랑수아의 오랜 인내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제 간에 쌓여온 앙금은 끝내 폭발하고 만다. 완벽할 수 없는 어른과 미성숙한 아이들이 섞여 있는 교실은 끓어서 넘치기 직전의 용광로와 같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찾아온 파국을 지켜보며 관객의 한숨은 늘어만 간다. 하지만 로랑 감독은 이런 용광로의 감정적 분출을 차단하면서 ‘있는 그대로’ 볼 것을 요구한다. 그저 무력한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교사와 학생이 어우러져 축구를 하는 운동장의 활기와 어지럽혀진 채 텅 빈 교실의 정적을 대비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제시하는 미래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웅적인 선생님도, 어느 한순간 개과천선하는 학생도, 시스템의 변화도 없는 현실에서 클래스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토대로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섣불리 미래를 재단하지 않는 이 영화는, 지난한 기다림의 과정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조금씩 변화시킬 것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클래스의 원제인 ‘벽 사이에서’처럼 그 구성원들에게 학교는 사방 벽으로 가로막힌 탈출구 없는 공간이다. “가르쳐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 “배워보면 알죠, 말 뿐이라는 거”. 영화 포스터의 카피처럼 이 시대의 교실은 소통 부재와 부조리한 시스템의 문제가 그대로 노출되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따라서 우리가 ‘미래의 희망’이라고 쉽게 말하는 아이들을 온전히 보듬는 일은 사회 공동체의 책임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과 부딪히며 인생을 경험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위해 현실을 저당 잡힌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배우는 것이다.
연구회 회보만으로도 초등 영어 교육 역사 읽을 수 있어 ‘서울초등영어교과교육연구회’(회장 이재관)는 올해로 창립한 지 27년이 된 역사가 깊은 교과연구회다. 1981년 국민학교에서도 특활시간에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교사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교육영역이었던 영어 지도를 위해 1984년 이 모임은 시작했다. 현재도 550여 명의 교사가 참여할 만큼 활발하다. 일 년에 두 번 발행되는 회보만 살펴봐도 영어 교육의 흐름, 영어 지도 교사들의 노력 등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박관수 서울 갈현초 교사는 1985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회보를 연구해 한국초등영어 교육 정책의 변화를 △1980년대(영어 교사의 입을 틔우는 연수 시대), △1990년대(영어 교수 자료 개발 및 교수법 연구 시대), △2000년대(영어를 영어로 가르치자는 연수의 시대 - 캠프와 영어마을), △2010년대(다른 교과도 영어를 사용해 지도하는 시대)라고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대에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외국인 등에게 한글과 우리의 문화를 영어로 활발히 가르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박 교사는 “지난 30년을 돌이켜 보면서 10년 단위로 영어 교육의 방향이 이렇게 바뀌어 가는 것에 새삼 놀랐다”면서 “30년의 세월 동안 서울초등영어교육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해 온 분들의 노고가 현재는 물론 앞으로의 우리 영어 교육에 큰 지표를 열 것이라고 생각하니 흐뭇하다”고 했다. 연구회의 오랜 역사는 아직까지도 탄탄하게 연구회가 운영되는 기반이 된다. 박 교사처럼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활동한 회원이 있는가 하면 신규 교사 시절에 연구회 활동을 시작해 이제는 교장, 교감이 된 회원들까지 있다. 연구회 구성원들이 오랜 시간 활동을 이어오면서 생긴 강한 결속력이 다른 동호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재관 회장(서울 충무초 교장)은 “평교사부터 활동해 온 김미숙 삼릉초 교장, 이사라 돈암초 교감, 홍경희 매동초 교감 등 회원들의 열정이 연구회를 이끄는 힘”이라며 “1~2년을 알아온 사이가 아니어서 다른 교과연구회보다도 더 끈끈한 정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어가 자산인 연구회 교사들, 사회 공헌 활동도 준비해 연구회는 학교단위 영어체험캠프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 및 자료 제공, 서울초등영어경시대회 개최(올해 24회), LTRC(교사 대상 영어회화 연수), 영어지도교사를 위한 동 · 하계 연수 등 초등 영어의 다양한 분과에 대한 연구 및 연수를 주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각 시 · 도교육청에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능력이 뛰어난 영어교사를 선발하는 ‘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 인증제’를 실시하는 추세에 따라 TEE 세미나를 진행해 학교 현장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손세호 서울 동북초 교사는 “99년 신규교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구회 활동을 해오면서 영어라는 공통 관심사 속에서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사들을 만나 교사로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면서 “서울이라는 같은 지역 영어 교사로서 서로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연구회는 이제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함께 영어를 연구했던 활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 공헌도 생각하고 있는 것. 박관수 교사는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가 되어감에 따라 영어를 잘하는 교사들의 능력을 살리는 사회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다문화 가정이나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를 영어로 가르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을 해 나가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서울초등영어교과교육연구회 이재관 회장 “27년간 다져온 팀워크가 연구회의 힘이죠” 다른 교과 연구회와는 차별화 되는 서울초등영어교과교육연구회만의 매력이 있다면. “27년 동안 함께 다져온 팀워크가 대단합니다. 행사부, 연구부, 연수부, 편집부, 미디어부 등 각 부서별 부회장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연구회 업무가 진행되는데 가족같이 맺어져 있어 서로 화합하면서 즐겁게 연구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활동해 오신 분들이 많아 연구회에 대한 애정이 깊어 신기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십니다. 그게 연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죠.” 연구회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중점에 두시는 것은. “선생님들이 영어 교수 · 학습 방법을 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선생님들에게 영어 교육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수업방법 개선을 위한 동 · 하계 연수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영어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초등학교 영어는 바탕을 쌓는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그래야 집중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중 · 고교로 올라가서 영어실력이 도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등학교 영어 교육에서는 특히 학습 결손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어의 기본기를 다져줘야 어른이 되어서도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올해는 연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입니까? “교원들은 올해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습니다. 3개의 교육과정이 함께 운영되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새 교육과정과 새 교과서에 맞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함께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영어에 관심이 있는데 아직 연구회에 참여하지 않은 선생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구회의 문은 늘 열려있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참여하는 연구회여서 소외될까 걱정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끈끈한 정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폭도 넓히고 영어에 관해 함께 고민하다 보면 학교생활이 더 재미있어집니다.”
일반적으로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점가에서는 여름, 겨울의 방학기간과 신학기인 3월, 9월을 제외하면 모두 비수기라고 한다. 출판관계자 입장에서 책의 판매량만 보면 3월 신학기가 독서의 계절이다. 주로 팔리는 책도 문제집과 참고서 등 학습지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종류도 학습비법과 공부의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공부기술’ 책들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입시만이 전부인 한국 학생들의 조건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책을 사서 읽기라도 해준다면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학생시절의 나도 책을 산다고 말씀드리면 부모님께서 흔쾌히 용돈을 내주셨다. 그 돈 중 일부는 다른 용도에 충당되곤 했다. 부모님은 어쩌면 그 사실을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산다고 하면 늘 관대하게 넘어가주셨던 것 같다. 이처럼 학생이 책을 본다는 일은 언제나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 청소년 시기에 독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새삼스레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책을 안 읽는 어른들, 책을 읽는 아이들 최근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어른들의 걱정을 자주 듣는다. 영상세대인 요새 아이들은 인터넷과 게임에 빠져서 인쇄매체인 책을 점점 안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요새 아이들은 어느 시절보다 많은 독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매년 조사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 중 2009년도 결과를 살펴보면, 초 · 중 · 고생의 한 학기 독서율은 93.7%로 2000년 이후 최고의 독서율을 기록했다. 반대로 성인의 독서율은 71.7%로 2008년도보다 0.5% 하락했다. 성인들 10명 중 3명은 1년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요새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이 더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성인 독서량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심각히 낮은 수준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책을 읽는 비율이 급격히 낮아진다. 실제로 학년이 오를수록 책을 안 읽는 현상이 발견된다. 독서를 하지 않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독서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학년이 높아갈수록 입시의 압박 때문에 책을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독서량이 많은 초등학생도 책을 읽는 이유는 대부분 어른들이 시켜서이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은 학습용 만화인데, 선행학습의 방편으로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 다음으로 많이 읽는 책은 전래동화나 창작동화이다. 최근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동화를 이야기해주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사실 인류 역사상 독서는 그리 오래된 문화가 아니다. 유럽의 경우 18세기까지 책을 낭독하는 것을 듣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읽는 것은 정보를 얻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교감하고 느끼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래서 어릴수록 책을 읽히는 것보다 읽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것에는 많은 부모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들은 흔하지 않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책을 읽지는 않고 아이들이 책을 읽었는지 확인하기만 한다. 아이들에게 독후감 쓰기 등을 시키면서 관리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가 독서에 염증을 느낀다. 독서가 즐거운 취미가 아니라 의무적인 일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억지로 책을 읽어야만 하는 아이들 이러한 사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극성에 강제로 책을 읽다가 학년이 올라가거나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책을 멀리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억지로 책을 읽게 한다고 ‘독서습관’이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닌지라, 아이들에게 독서를 열심히 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할 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이제 책만이 주요한 정보습득의 수단은 아니다. 최신의 정보는 인터넷에서 더 빠르고 많이 찾을 수 있다. 독서는 한정된 시간을 관리하면서 생기는 충분한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만큼 독서는 다른 편한 오락거리들에 우선권을 빼앗기기 쉽다. 아이들의 독서 습관을 기르려면 책을 빠르고 많이 읽게 시키는 것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입학사정관제도의 일환으로 ‘독서이력제’를 계획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자기주도 학습전형으로 향후 대학입시, 특목고, 국제중 면접에 중요한 면접전형의 도구로 활용한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가 읽은 책으로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인증하게 한다면, 독서가 자기검열이나 과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독서이력제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이 책을 읽는 흥미를 잃어버리게 할 것이다. 독서이력제는 오히려 독서습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유명한 소설가이자 독서광이고 도서관 관장이었던 호르헤 보르헤스는 독서를 ‘지적 모험’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책이란 읽기 전에는 한낱 종이 뭉치에 불과하지만, 읽은 후에는 지식이 되는 신기한 매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모험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호기심’이라고 보르헤스는 이야기한다. 그의 책 바벨의 도서관은 책을 읽는 것들이 얼마나 흥미롭고 긴장되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책을 읽는 재미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아이들은 꾸준한 독서습관을 기르지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책을 읽는 재미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독서의 방법들 책을 읽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참을성 있게 읽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바른 자세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강박적 주문이 책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편안한 분위기와 환경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게 해 줄 필요가 있다.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마치 웹서핑을 하듯 자유로운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책을 띄엄띄엄 두서없이 읽는 것도 독서의 한 방법이다. 인터넷 시대에서는 마치 하이퍼텍스트처럼 독서를 하는 것이 오히려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조지 P. 란도 교수는 창조적 활동으로 능동적인 독서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철학자 데리다는 고전적인 텍스트라는 개념은 이미 상실되었고 새로운 텍스트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은 앞으로의 독서문화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상상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나루케 마코토의 책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에서는 이러한 병렬적 독서법으로 서로 다른 책의 내용을 연결할 수 있는 것에서 아이들의 창의성이 나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책을 한 권만 꾸준히 읽는 것도 좋지만 여러 책들을 한꺼번에 읽는 것이 오히려 책에 있는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상상력과 발상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사람들이 책을 읽고 나서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은 전체의 20~30%뿐이라고 한다. 그 역시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잊히고 남는 것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나중에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면서 기억이 지속되고 정보처리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독서가 습관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정보와 기억이 반복되면서 독서의 필요성과 즐거움을 익힌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읽지 않아도 책에 대해서 말하게 하라 마지막으로 꼭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대범한 주장도 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책을 읽는 것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이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지만 흔히 말하는 고전 명작들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 교수들도 전문분야의 책을 다 섭렵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책의 내용을 알고 있으며 그것들에 관해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소 뻔뻔해 보이기도 하는데, 저자는 책을 전부 읽지 않아도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책을 꼭 봐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요즘 아이들에게 독서감상문 숙제를 시키면 인터넷 검색을 해서 요약본을 베껴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을 양심을 속이는 나쁜 짓이라고 취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한 공립학교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아이들의 문화를 인정하며 새로운 과제를 내준다. 예컨대 햄릿을 읽고 난 후에 햄릿의 내용을 새롭게 꾸며 오라는 숙제를 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은 책의 내용을 새롭게 ‘꾸며보면서’ 고전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은 수동적인 독서에 지치는 아이들이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즐거운 독자가 되기를 원해서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는 빠르게 낡은 정보가 되는 이 시대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는 정보를 빨리 찾고, 서로 다른 정보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독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앞으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면 말이다.
설레는 3월이다. 몇 학년을 맡게 되었는가? 어떤 아이들을 만났는가? 혹시라도 말썽꾸러기 꼬리표를 달고 온 아이들이 우리 반에는 없는가? 교실 위치는 어디인가? 남향인가? 계단 옆인가? 동학년의 구성은 어떠한가? 내 이웃 반 동료교사는 누구인가? 등으로 시작해서 학교업무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맡게 되었는지 아니면 전혀 생소한 업무를 맡아 걱정이 되는지 등에 의해 교사의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시기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사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는가에 따라 평상심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오든지 아니면 불평스런 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정권을 가진 이에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든지 한다. 내가 원하던 상황이 아닐 때 대개의 교사들은 다소 마음과 기분이 상하더라도 속으로 삭인다. 관리자인들 내게 이렇게 하고 싶었겠나? 어쩔 수 없는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지만 왜 나만 희생해야 되지? 하는 반문으로 씁쓸한 기분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나마 최후의 판단은 아이들을 보고 나서 해도 되므로 일단 교실에 들어와서 약간 어색한 분위기로 앉아 있는 아이들을 쭉 살펴본다. 첫날은 대개 아이들도 긴장해서 새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을 낯설어하거나 주변 친구들을 탐색하면서 나름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대로 교실 분위기가 조용하다. 그런데 이런 긴장감은 며칠뿐 여전히 자유본능 아이들이 틈새를 이용해서 장난을 치며 슬슬 새 담임선생님의 눈치를 살핀다. 노련한 선생님은 이런 녀석들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모른척하는 행동을 거듭하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면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한다. 선생님의 목표는 그 녀석으로 하여금, ‘우리 선생님 고단수라서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네!’라는 생각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먹혀들지 않고 그 녀석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하면 순조롭게 넘기기가 힘들다.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럴 때 선생님은 다음 중 어떤 반응을 하게 되는지 생각해보자. [PART VIEW] A 교사 : ‘저 녀석을 초반에 확 잡지 않으면 우리 반이 1년 동안 힘들겠다. 일벌백계로 본을 보여야지….’ B 교사 : ‘올해도 왕건이가 있군? 작년 1년 동안 지긋지긋하던 작은 왕건이로 얼마나 힘들었는데 올해도 고생문이 훤하네. 내 팔자야!’ C 교사 : ‘이 녀석아 너와 나의 만남은 운명인가보다. 1년 동안 한번 잘 해보자.’ D 교사 : ‘너 아주 기대가 되는 아이로구나’라고 말하며 오히려 왕건이를 의아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교사를 화나게 하는 아이들이 어찌 이런 왕건이 뿐이랴? 이렇게 드러내놓고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경우는 오히려 미리 마음가짐을 준비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정도가 심하지는 않다. 교사들이 가장 화가 많이 나는 경우는 학생들로부터 무시당했다고 생각될 때이다. 가르침을 받는 어린아이들이 교사의 권위를 무시한다고 스스로 느끼게 되면 슬슬 화가 나게 된다. 이 감정을 잘 다스려야 스트레스를 견디면서 교단에서 행복감을 누릴 수 있다. 1년을 시작하는 3월에 교사의 감정조절을 주제로 첫 시작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 한해 아이들 상황이 어떻든지, 동료교사 상황이 어떻든지, 맡은 업무가 어떻든지 속상하고 화가 나는 상황을 지혜롭게 조절하면서 행복하게 지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자. 선생님들은 화가 날 때 어떤 행동을 많이 할까? 한 조사에서 교사들이 화가 날 때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의 우선순위를 알아본 내용이 재미있다. 그 순위와 그것이 미칠 영향을 살펴보자. 교사들이 화가 날 때 가장 많이 하는 행동 순위 1. 화를 내게 한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어떤 한 아이에게 화가 났는데 여럿이 모두 듣도록 갑자기 소리를 지르니 다른 아이들까지 깜짝 놀라면서 선생님에 대해 근거 있는(아이들이 생각하기에) 평가를 하게 된다. 우리 선생님은 화를 잘 낸다고. 순위 2. 학습 내용을 설명하다가 화를 나게 하는 아이로 인해 갑자기 설명을 멈추고 그 아이를 째려본다. 평소 인자하고 친절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째려보는 모습을 보는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겠는가? 선생님의 이중성을 간파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순위 3. 가르치던 행동을 멈추고 그때부터 수업시간에 지켜야 할 예절 바른 행동에 대해 일장훈시를 한다. 훈시가 길어지면 가정교육까지 자연스레 들먹이게 되고 너희 부모님 운운하며 필요 없는 말까지 하게 된다. 이것은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가정교육 내지는 부모님까지 욕을 먹인다는 것이…. 순위 4. 화를 내게 한 아이의 주변에 앉은 아이들에게 동조를 구한다. ‘너희들도 들었지? 봤지?’ 등등으로. 그런데 저학년에서는 혹시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고학년에서는 이런 식으로 하다간 교사가 거의 외면당한다. 아주 가까운 옆 짝에게 ‘너도 들었지, 봤지?’하고 물어보면 10명 중 8, 9명은 “아니요. 못 들었는데요. 못 봤는데요”라고 한다. 나아가 한 술 더 떠서 “얘 안 그랬어요”하고 변호까지 해준다. 이 말을 듣는 교사는 더 화가 난다. 교사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보아서 고쳐주려고 다가가는데 아이들은 똘똘 뭉쳐서 교사를 따돌리는 상황이 갑자기 벌어지는 것이다. 순위 5. 벌칙을 적용한다. 이제는 체벌을 할 수 없으니 대체벌을 적용해 ‘넌, 학급생활규정 제 몇 항을 몇 회 어겼다. 3회의 지도와 경고를 다 받아도 변하지 않는구나. 성찰교실로 가서 상담실 선생님을 만나거라’ 하는 식이다. 지금까지 말한 교사의 행동을 보며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느 것이 교육적이고 어느 것이 비교육적인지 판단이 된다. 대개 모든 사람들은 이성적인 상황에서는 금방 사리분별이 되지만 이미 화가 난 상황에서는 자신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만일 앞에 앉은 사람이 어른이라면 그렇게 하진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라고 생각해서 더 쉽게 화를 내지만 아이들의 인격이 어른의 인격과 같다고 생각해보면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화가 날 때 어떤 신체반응이 일어나는가?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면 화를 내는 행동으로 표현되는데 일단 화가 나면 다음과 같은 신체반응이 일어난다. 화가 날 경우 나타나는 신체 반응 1. 가슴이 두근거린다. 2. 맥박이 빨라진다. 3. 숨이 거칠어진다. 4.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5. 얼굴이 빨개진다. 6. 근육이 긴장된다(얼굴 모습이 달라진다). 7. 두 주먹이 불끈, 두 다리가 팽팽해진다. 8. 언성이 높아진다(싸움으로 연결되기 쉽다). 9. 무언가를 치거나 부수는 행동이 수반되기도 한다(폭력유발). 10. 기타 이렇게 심각한 증상이 자주 거듭되다 보면 자기 몸에 해를 끼치게 되며 이것은 각종 심인성 질환(Psychosomatic)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즉, 고혈압, 위장장애, 두통, 우울증상, 천식, 피부염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일상생활의 만사가 귀찮아진다. 이렇게 되면 많은 아이들을 매일 매시간 상대해야 하는 교사의 표정이 밝을 리가 없고 나아가 교실 분위기도 짜증스럽고 어두워질 수 있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러면 화가 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화를 참으면 병으로 발전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화가 날 때 참지 말고 건강하게 발산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화가 날 때, 이렇게 해보자 1. 화는 기쁨이나 슬픔처럼 일반적인 감정 중의 하나라고 인정해야 한다(화를 낸 자신에 대해 사회적인 죄책감을 갖지 않기 위해서다). 2. 내가 화가 났음을 인식하는 즉시 독백을 한다. 자기인식을 통해 나로부터 화를 객관화하기 위함이다(00야, 너 지금 화가 나 있구나!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해야지). 3. 상대방에게 내가 화가 났음을 알려야 한다. 아이들에게 ‘얘들아, 선생님 지금 화가 났어’, ‘선생님이 지금 화가 나려고 해’하는 식으로 간단히 말할 수도 있고 ‘얘들아, 너희들이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떠들어서 중요한 내용을 놓치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화가 나려고 해.’ 이렇게 ‘I-message’ 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아이들이 선생님의 화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다. 4. 즉각적인 행동(언어 포함)을 멈추고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① 심호흡하기 ② 눈을 감고 화가 난 자신의 얼굴 모습 떠올리기 또는 화가 난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기(혐오증을 느껴 표정관리를 의식하도록) ③ 숫자를 거꾸로 천천히 세기(20부터 1까지) ④ 창가로 가서 파란 하늘을 응시하기 ⑤ 자기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떠올리기(아기, 사랑하는 이, 좋은 친구 등) ⑥ 기타 이렇게 하려면 학년 초에 아이들과 미리 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그래서 아이들끼리도 서로 간에 상대방이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경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아이들은 화가 난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서 화를 더 돋우는 행동을 한다. 이때 교사는 그 아이가 미처 몰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임을 깨닫고 나쁜 태도로 몰아가지 말아야 한다. 화가 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하도록 지도해보자. ‘화가 난 사람을 도와주는 법’ 지도하기 1. 개인적으로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어도 화가 난 사람 앞에서는 잠시 동안 내색하지 않기 2, 화가 난 상황을 걱정해주는 표정 짓기 3. 걱정해주는 어조로 말하기(화가 많이 났네, 어쩌지? 화가 날만도 하네 등) 4. 화가 난 사람이 화가 풀리도록 기다려주기(기다리는 동안 옆에서 즐겁게 놀지 않기 - 약 올릴 수 있다) 5. 화가 조금 풀리는 듯하면 함께 놀자고 분위기 조성하기 6. 화가 완전히 풀렸을 때 하고 싶은 말을 부드럽게 말하기(“아까 네가 화내는 모습을 보기가 민망했어”, “평소에 그렇게 친절하던 네가 딴 사람처럼 낯설었어” 등) ‘화’와 관련된 생활지도의 실제 그러면 이제 교실 안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을 통해 교사가 화를 내지 않으면서 지도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 교사는 5학년 학급을 맡고 있고 학생들은 지금 모둠별 학습을 진행 중이다. 토론할 주제를 주고 모둠을 돌아보며 도와줄 일을 살피고 있는 동안 갑자기 민수와 진규가 티격태격하며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서 교사는 ‘그만하지’하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그치지 않고 계속 언쟁을 한다. ‘그만두지 못하겠니?’ 아까보다 더 강한 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 순간에 민수가 갑자기 진규의 필통을 홱 집어던져 필통이 깨지고 말았다. 그만두라고 다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필통을 집어던져 깨뜨리는 민수를 보는 서 교사!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화가 난다. 서 교사의 목소리는 떨리기까지 한다. ‘너희들, 선생님이 그만 하라고 하면 멈춰야지. 그만 하라는 말을 무시하고 물건을 던지고 깨뜨리는 행동을 지금 내 앞에서 하는 거니?’ 분석 아이들의 일로 인해 서 교사가 화가 나서 언성이 높아지다가 그래도 말을 안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느낄 정도의 분노감이 팽배해졌다. 첫 번째로 말했던 ‘그만하지’는 별로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흔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두 번째로 말한 ‘그만두지 못하겠니?’는 다소 짜증 섞인 말이며 그 말 뒤에는 ‘그만두지 않으면 혼날 줄 알아’가 생략된 말이다. 세 번째로 말한 ‘… 그만하라는 말을 무시하고 물건을 던져 깨뜨리는 행동을 지금 내 앞에서 하는 거니?’ 이쯤 되면 상당히 분노가 서려서 협박 내지는 나쁜 녀석들이라고 무시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계다. 적용 ‘화 다스리기’를 통해 이 상황을 교육적으로 접근해보자. 1. 민수와 진규가 다투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가까이 가서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무슨 일로 그러는지 처음부터 말해주겠니? 2. 그래도 다툴 때 (단호하지만 화는 내지 않으며) 자, 둘 다 지금부터 모든 행동 스톱(stop)!! 3. 그래도 필통을 던지고 드디어 깨뜨렸을 때 이때는 교사가 화가 몹시 많이 난 상황이라 즉시 자기조절을 해야 한다. ① 상황을 객관화시키기 : ‘쟤들이 드디어 일을 저질렀구나.’(독백) ② 화 감정을 조절한 후 말하기 가. 모든 행동을 ‘스톱!’하라는 선생님 지시를 어기고 문제를 일으켰구나! 나. 진규는 자리에 앉아서 네 할 일을 계속하고 민수는 뒷자리(반성자리)에 가서 잠시 앉아 있거라. 다. (잠시 후, 민수에게 가서) “민수야, 네가 한 일을 자세히 말해주겠니? 처음부터 필통을 부수려고 했었니?”(민수 “그건 아니에요.”) “그럼 어쩌다가 필통을 부서지게 했지?”(민수 “화가 나서 던져버렸어요.”) “그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면 무엇일까?”(민수 “화가 날 때 행동 멈추기를 하지 않은 것이요.”) “잘 알고 있구나! 그 행동을 어떻게 바꾸었었더라면 좋았을까?”(민수 “필통을 집어던지는 대신 심호흡을 하거나 숫자 거꾸로 세기를 했어야 돼요.”) “정말 좋은 생각을 하고 있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민수 “진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필통을 다시 사줘요.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하겠어요.”) 자,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교사가 화를 내던 상황을 앞서 소개한 ‘화 다스리기’를 통해 자신과 아이들에게 유익한 방법으로 적용해보았다. 여기에서 초점은 화가 난다고 필통을 던져 깨뜨린 행동이다. 누가 처음부터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는지부터 캐묻게 되면 문제 해결이 복잡해진다.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언쟁을 하며 말로 싸우는 것은 주변에 방해가 안 된다면 웬만하면 허용하는 것이 낫다. 화를 내봐야 화를 다스리는 법도 터득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화를 억압하며 꾹꾹 눌러 참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다만 화가 난다고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교사도 화를 조절하면서 교육적으로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아무리 효과가 기대되는 좋은 방법이라도 직접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3월, 아이들과 더불어 ‘화 다스리기’ 특별시간을 가져보자.
최근 인류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는 용어 중 하나가 글로벌화다. 글로벌화의 의미는 ‘지구촌 사회’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이 하나의 마을처럼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글로벌화의 흐름 속에서 예외적일 수 있는 장소는 세계 그 어디에도 없다. 한반도는 글로벌화의 현실 중 일부이고, 글로벌화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움직임 속에 한국경제 역시 일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고용시장은 이미 오래 전에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경기도 안양시 시화호 주변 산업단지에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서울 가리봉동에도 중국 이주노동자들이 마을을 조성했다. 아시아 각지에서 ‘코리안 드림’을 찾아 사람들이 이주해 오고 있다. 이러한 양상 속에 몽골 지역에서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 들어오고 있다. 이들의 경우, 가족 모두가 입국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버지가 먼저 오고, 어머니가 그 다음에 오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온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 학교에 새로운 과제가 나타난다. 부모의 뒤를 이어 이주해 온 아이들은 한국어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처지다. 이러한 아이들을 지역사회에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인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최근 서울교대에서 양성한 이중언어강사 요원들은 바로 이들에게 자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친다. 이중언어강사 요원들의 노력, 부모의 후원 등 한국에서의 삶은 이들에게 언어 문제의 해결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해준다. 언어 소통이 가능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PART VIEW] 언어문제만큼이나 진지한 고민 필요한 역사교육 이번 호에서 필자는 ‘역사 속의 타자를 상대화하기’라는 주제로 사회과 반편견교육에 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자 한다. 사실 우리가 이방인들을 만날 때, 이들은 다른 사람, 즉 타자이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경계가 있으며, ‘그들’에 대한 관계 설정이 중대 사안이다. 여기서 ‘그들’에 대한 사고방식이 편견으로 고착화할 가능성이 있다. 다문화교육은 타자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가지면서 공존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열린 마음을 길러주고자 하는 발상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우리’라는 범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우리’는 나를 포함하는 여러 집단 주체들이다. 그리고 근대 사회에서 가장 강고하게 결집된 ‘우리’가 바로 ‘민족공동체’이다. 민족공동체는 매우 자명한 대상으로 파악되지만, 사실상 역사적인 산물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이라는 저술에서 민족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구성물로 파악했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민족이라는 관념도 언젠가는 변형되고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사고가 가능하다면 민족이라는 이름의 ‘우리’를 절대화하려는 힘으로부터 좀 더 유연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민족이라는 공동체 내부 구성원들이 순수혈통을 공유하는 집단인지 의문을 가지는 데까지 확산적인 사고가 가능해질 수 있다. 다시 부모 따라 한국에 온 몽골 아이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본다. 학기 초에 몽골 아이 ‘바토르’가 6학년 교실에 들어 왔다. 반 아이들은 5학년 시절을 함께 보내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몽골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초등학생들은 어른들보다 이질성에 대해 훨씬 관대하다. 처음에는 차이가 주는 생경함에 놀라지만 그러한 차이는 쉽게 극복하고 금방 친구가 된다. 다소 통과의례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학급에서 경험을 공유하면서 연대 의식을 가진다. 물론 담임교사의 여러 가지 배려에 의해 몽골아이 ‘바토르’는 학교에 빨리 적응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공식적인 교육과정에서 나타난다. 근대적 민족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초등 교과서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한국이라는 지역 내부와 그 외부 사이 관계 설정을 다루는 교과는 바로 사회과이다. 사회과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기르는 가장 전형적인 교과이다. 사회과 교육과정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자들을 한국인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한다. 사회과 교육내용 중에서도 ‘국사’ 분야는 민족 구성의 스토리로 가득 차 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외부 세계에 대한 관념들은 거의 대부분이 ‘국사’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교재화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몽골은 고려시대의 역사 이야기 속에서 우리 민족을 침략한 북방 세력으로 전형화되고 있다. “중국을 정복하고 아시아의 대부분과 유럽의 일부까지 지배했던 몽고가 고려를 침략해 왔다. 압록강을 건넌 몽고군은 귀주성이 무너지지 않자, 귀주성을 내버려 두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고려의 군대와 백성들은 힘을 합쳐 몽고군에 맞서 싸웠다. ...(중략)... 그 후에도 몽고는 계속 고려를 침입하였고, 고려는 이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고려는 약 40년간의 항쟁을 끝으로 몽고와 강화하였고, 이후 몽고의 간섭을 받았다.” -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과 교과서, 31쪽 위의 교과서 서술 내용은 특정 세력을 타자화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여기서 나의 논점은 몽골의 침략을 역사적인 허구로 보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초등학교 교육과정 전체에서 몽골 지역 이야기가 다른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몽항쟁의 역사 이야기만을 통해 몽골 지역을 표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대몽항쟁의 역사 시간에 몽골에서 온 ‘바토르’는 어떤 처지에 놓이는가? 교재 내용과는 상관없이, 사회과 수업이라는 담론공동체에서 ‘바토르’는 포용과 연대의 범주에 자리할 수 있는가? 공식적인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몽골에 대한 기억은 다분히 부정적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몽골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인지 숙고가 필요하다. 고대 역사 시기로 가면, 이렇게 고정된 기억은 금방 상대화된다. 2009년 7월 18일 은 통일신라의 주역인 김 씨 왕조를 다루며, 이들이 경주 땅의 토박이가 아니며, 지금의 몽골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임을 밝혔다. 고고학적 발굴과 사료 분석에 의하자면, 이들은 중국에서는 흉노라고 부르고, 서양에서는 스키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삼국을 통일한 중심 세력들이 경주 땅의 토박이가 아니라 이주민들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고대에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근대인들의 사고방식에 비추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다. 근대인들은 민족국가의 신화 속에서 사고하기 때문이다. 최근 박노자 교수는 그의 저술, 거꾸로 보는 고대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역사 쓰기란 현재적 선택의 문제다. 타자에 대한 적대성을 부각하며 국가주의적 내부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역사 속의 전란들을 ‘타민족과의 영웅적 항쟁’으로 쓸 수 있는가 하면, 타자들과의 섞임, 어울림, 교류를 중심에 놓는 역사를 저술함으로써 국경을 넘는 지역공동체 만들기를 지향할 수도 있다.” (55쪽) 앞서 국정 교과서에 나타난 대몽항쟁의 역사 이외에 다른 역사 서술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몽골지역과 한반도 지역 사이의 문화 교류와 이주의 기억들을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학생들이 대몽항쟁의 역사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교류와 전파의 역사 내용도 학습하면서 글로벌 시대 다문화 공생의 미덕을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업 예시 자료 역사 속의 타자를 상대화하기 ⊙ 수업목표 1. 동아시아 구도 속에서 신라사회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2. 고대사의 구성원들이 살아간 모습을 통해 다문화주의의 시각을 기를 수 있다. ⊙ 수업활동 ⊙ 교사는 사진A를 제시하면서 질문한다. 여기는 어디일까요? ☞ 모르겠습니다. ⊙ 사진A에 나오는 숲에서 본 모습이 사진B입니다. 여기는 어디일까요? ☞ 경주입니다 ⊙ 사진A의 장소는 어디일까요? 혹시 아는 사람 있나요? ☞ 네. 계림입니다. ⊙ 계림은 어떤 장소입니까? ☞ 김알지 탄생 설화의 장소입니다. ⊙ 김알지는 누구입니까? ☞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입니다. ⊙ 신라 김씨 왕조가 한 일은 무엇인가요? ☞ 삼국통일의 주역입니다. ⊙ 그럼, 김씨 왕조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 원래 신라사람들이 아닌가요? ⊙ 김씨 왕조들은 지금의 몽골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럼, 과연 김씨 왕조들이 몽골 지역에서 왔는지 다 함께 공부해봅시다. 몽골에서 부모 따라 이주해 온 아이들, 더 나아가 부모 중 한 사람이 몽골 출신인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도 우리 시대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면, 역사 속의 타자를 상대화하는 작업은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대몽 항쟁의 기억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를 풍요롭게 한 원천 중 하나로도 몽골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가르쳐야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은 주변 국가의 사람들을 오랑캐라고 불렀다. 오랑캐라는 표현은 타자화의 담론이다. 타자들은 삶의 주역이 될 수 없으며, 비정상의 주체들이다. 비정상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대우가 야만적이라고 할지라도 정당화된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중심과 주변, 동일자와 타자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의 분류 체계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 경계들은 생득적이거나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지리 ·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사회구성물이며, 힘의 역학 관계에 따라 가변적이다. ‘우리’가 지금 현재 자연화하고 있는 표상 체계 속의 ‘그들’은 타자화 과정의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표상 체계를 달리하면 관계의 새로움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표상 체계를 추구할 것이냐 이며, 왜 그러한 표상 체계를 구축했는지 정당한 논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계속 그러해 왔기 때문에 현재의 표상 체계를 옹호하고 고집한다면 그러한 표상 체계가 간직하고 있는 문제점과 오류, 한계들을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체계 안에서 신음하는 타자들을 희망의 반대편으로 위치시키기 때문에 반인간적이다. 역사와 지리, 그리고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이 이분법적인 구도로만 구획화될 경우와 다양한 각도로 다가설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경우를 비교해 본다면, 어떤 의미 효과의 차이가 있을까? 아울러, 우리 역사를 항상 한반도 내부에서만 파악해야 할지, 아니면, 동아시아 관계의 흐름 속에서 더 나아가 글로벌 역사의 과정 속에서 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도나 중국의 석굴사원은 굴을 파서 지었지만, 우리나라의 석굴암은 석굴을 조립 형태로 축조한 인공 석굴사원입니다. 왜 이렇게 축조 방식에 차이가 날까요?” 4일 오전 10시20분 부산 동구 경남여고 1학년 7반 교실에서 열린 ‘역사-과학’ 수업 시간. 교단에는 2명의 교사가 올라섰다. 수업 주제는 ‘석굴암의 수수께끼’. 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이 학교 강은영 교사와 과학교사 출신인 조갑룡 교장이 석굴암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원리를 공동으로 설명하는 수업이다. (중략) 두 명의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제 강점기의 석굴암 보수공사로 인해 생긴 습기 문제에 대해 설명해 주고, 학생들에게 석굴암의 보존 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주기도 했다. 이 수업을 들은 1학년 박송주 양은 “이렇게 두 명의 선생님이 두 과목을 접목시켜 한꺼번에 가르치는 수업은 처음”이라며 “원래 역사 수업은 좀 지루하다고 느꼈는데 과학적 원리와 함께 공부하니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은 경남여고가 이번 학기부터 시도하는 코티칭(Co-teaching)의 시범수업으로 열렸다. 코티칭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조 교장이 과학교사로 직접 교단에 선 것도 새로운 수업 방식을 앞장서서 실행해 보이겠다는 의지였다. 조 교장은 “이제는 지식의 통합이 필요한 시대”라며 “학문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통합적 사고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기존의 수업 방식으로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고 말했다. 경남여고는 교실수업 개선을 위해 올해 초부터 코티칭 도입을 추진해 왔다. 국어 영어 수학 물리 지리 역사 미술 윤리 음악 등 9개 과목 10명의 교사가 현재 코티칭을 연구 중이다.(중략)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학교가 수업에 참가한 2개 반 학생 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수업이 재미있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2%(18명)가 “매우 그렇다”, 49%(28명)가 “그렇다”고 답해 81%가 “재밌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수업 방법이 통합적 교과 이해에 도움이 되었냐”는 질문에는 44%(25명)가 “매우 그렇다”, 35%(20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부산일보 2009년 9월 8일 자에 실린 경남여고 기사 진실의 순간 역대로 음악 앨범이 가장 많이 팔린 뮤지션은 누구일까.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호텔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로 널리 알려진 그룹 이글스(Eagles)다. 그들의 앨범 데어 그레이티스트 히트(Their Greatest Hits) : 1971~1975는 무려 2900만 장이나 팔렸다. 그 전설의 이글스가 올해 3월에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갖는다. 요즘은 예전만큼 음반이 판매되지는 않는다. 이글스의 경우 흘러간 그룹이어서가 아니라 음반 시장이 MP3 등으로 대체되었고 더욱이 지금 전 세계의 대중들은 음반 구입보다는 공연장을 찾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다. 그러나 음악은 디지털화될 수 있어도 수많은 관객이 공연장에 모여 벌이는 한 판의 열광과 감동은 음반으로는 불가능하다. 이제 뮤지션들은 음반을 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중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낸다. 2007년 ‘We Can Funk’로 유명한 미국의 가수 프린스(Prince)가 영국 투어를 시작하면서 새 앨범을 영국의 2대 타블로이드지 중의 하나인 데일리 미러(Daily Mirror) 지의 일요판에 끼워 공짜로 독자들에게 뿌렸는데 그 결과 라이선스료와 콘서트 투어 등으로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마돈나(Madonna)의 경우 워너브러더스 엔터테인먼트(Warner Bros. Entertainment, Inc.)와 계약을 끝낸 후에는 음반사가 아니라 공연 기획사와 계약을 한 것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공연이 음반을 누르고 다시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1200W의 ‘바우어스 월킨스(Bowers Wilkins)’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의 소리가 최고인 줄 알다가 어느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지나가던 중년의 남자가 연주한 피아노 소리에 전율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록의 예술’이 아닌 ‘순간의 예술’이라는 음악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던 지휘자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12~1996). 그는 스튜디오에서 여러 번 녹음해서 만든 음반은 아름답지만 가짜 음악이며, 음악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했다. 음반이나 음원이 아름다운 음악은 전달할 지 모르지만 연주자와 관객의 영혼이 부딪히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8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를 장식하면서 사진작가 스티브 맥거리(Steve McCurry)를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사진 ‘아프간의 소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소녀의 눈동자는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순간의 치열한 진실을 말해 주고 있다. 수업 또한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진실이어야 하지 않을까. 교사와 학생의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벌이는 수업 역시 진실의 순간들로 채워져야 한다. 그것은 곧 감동이며 감동은 아름다운 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식전달 수업은 음반을 듣는 것과 같다. 그런 수업은 어디에서도 가능하다. 수업은 세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고 자신의 심음(心音)을 쏟아내는 선생님의 공연이어야 한다. 생물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파브르를 가르쳐라 〈생각의 탄생(Sparks of Genius)〉을 쓴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창안한 과학자의 삶과 사고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이를테면 생물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곤충학을 집대성한 파브르를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시인 김용택은 20년 넘게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만 가르쳤다. “우리 학교는 참으로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뒤로는 우람한 휘문산이 있고, 앞으로는 아름다운 섬진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산과 강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산을 닮고 강을 닮은 큰 사람이 우리 학교에서 반드시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김용택은 수요일마다 전교생에게 동시를 가르쳤다. “풀꽃, 상추, 소나무들을 보여주고 시를 씌웁니다. 글 쓰는 기술보다 흙과 자연을 가르치는 거죠.” 김용택은 섬진강을 ‘나를 키운 시인학교’라고 했지만 시골 아이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다듬은 건 섬진강을 사랑한 시인이었다. 언니가 아랫방으로 가면/ 달님이 언니를 따라가고/ 내가 엄마 따라 밖에 가도/ 달님이 나를 따라온다/ 그런데/ 신기하게/ 하늘에는 달이 하나뿐인데/ 어떻게 온 세상을/ 다 비출까.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가르쳤던 전북 임실 덕치초 어린이가 쓴 시다. 전교생이 자작시 114편을 모아 2005년 말 우리 형 새똥을 맞았다를 냈다. 글을 갓 배운 1학년 지현이도 ‘벚꽃이 예쁩니다/ 예쁜 벚꽃을 보면 이모 생각이 납니다’라고 썼다. 나는 이제 30여 년의 교단에서 하얀 머리의 선생이 되었다. 제자는 스승을 닮는다던가! 어느 날 문득 나의 모습에서 거울을 보듯 닮아있는 고등학교 시절의 스승 김태홍 선생님의 모습을 본다. 수업은 물론 조 · 종례 때의 훈화까지도 그분의 그것을 흉내 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서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수업시간 내내 ‘시’보다는 ‘시인의 사생활’ 이야기로 우리들을 끊임없이 유혹(?)하셨고, 그것은 결국 점수 따는 것에 관심을 두는 우리들을 좋은 가르침으로 배우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김옥균 등에 대한 감칠맛 나는 야사(野史)로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하시던 세계사 선생님의 자신감 넘치는 수업에 설득당하기도 했고, 지지리도 재미없게 수업을 진행하시는 분을 싫어하기도 했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좋았던 선생님과 싫었던 선생님의 기억은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말은 사실이다. 학창 시절의 선생님을 거울삼아 다르게 도전해야 한다. 싫어했던 선생님이 한 실수를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최고의 교사는 늘 공부하는 사람이며 교사는 결국 학생을 가르치는 학생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사의 역할은 정보 전달이 아니다. 정보와 지식은 책을 읽으면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면 학창 시절에 배운 지식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지식 그 자체의 용도 또한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얼마나 배웠느냐’보다는 ‘생각하는 방법의 변화가 얼마나 이루어 졌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학생들이 ‘생각하는 방법의 변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장차 더 나은 학습 및 사고(思考)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소통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관심사가 교사의 관심사여야 하며 그들의 관심사에 대한 호기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 호기심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사람은 매력을 잃어가면서 나이와는 상관없이 늙는다. 종종, 주저리주저리 수업만 하는, 호기심이 사라진 듯한 선생님을 본다. 그러면 아이들은 졸고 있다.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잘 가르쳤지만 그들이 배우지 않았다”라는 것은 “나는 팔았지만 고객이 사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우둔한 학습자는 없다. 학습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업도 상품이다. 따라서 확보된 고객이라고 불량수업(불량상품)을 강매해서는 안 된다. 좋은 수업은 없다. 좋아하는 수업이 있을 뿐이다. “내가 무엇을 가르쳤냐” 보다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냐”가 중요하다. 변화없이 지루한 수업을 하는 것은 양념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학생들이 자고 있다면 가르침은 있되 배움은 없는 것이다. 공부 못한다고 질책하고 야단만 치는 것은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에게 “왜 기운이 없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보편성과 진정성으로 아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수업을 꿈꾸셨던 전임 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자료이다. 선생님! 색깔은 어떤 겁니까?/ 굉장하지!/ 선생님은 어떤 색깔을 좋아하세요?/ 파란색!/ 그건 뭐 같은데요?/ 파란색은 자전거를 탈 때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같지! 앞을 보지 못하는, 그러나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있는 아이와 선생님의 아름다운 수업 장면이다. 모든 수업은 다르고, 모든 학생들 또한 모두 다르다. 그래서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룹 이글스의 기타리스트인 글렌 플라이(Glenn Frey)와 조 월시(Joe Walsh)는 공연을 할 때 30여 대의 기타를 무대 뒤에 준비해 둔다고 한다. 연주곡마다 표현하려는 맛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곡에 맞는 기타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연주곡마다의 매력을 통해 관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다양한 감동과 신선함을 주기 위한 그들의 열정과 진정성에 박수를 보내면서, 올 2월에 열린 우리 학교 ‘2011학년도 교육계획서 수립을 위한 교직원 워크숍’의 기조 강연에서 그룹 이글스의 연주 실황과 함께 이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사용자 만족도 점검은 첫째, 설문에 의한 방법으로 시설사업 완료 후 3개월 이상 사용한 후 교직원, 학생, 학부모 등 40여명을 대상으로 학교 시설 배치 및 평면에 대한 만족도와 각 실의 크기 및 위치, 전기 · 통신 · 설비시설에 대한 만족도, 화장실 사용상의 만족도, 건물의 마감 및 조경에 대한 만족도 등 시설 전반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학교에서 설치하는 책걸상, 사물함은 별도 설문을 통해 선호도 및 사용상의 만족도와 개선사항에 대해 점검했다. [PART VIEW] 두 번째는 학교 방문을 통한 방법인데 대상 학교를 시설담당자가 직접 방문해 학교장, 행정실장과의 면담을 통해 학교 전반에 대한 설계와 시공과정 및 법규적인 사항을 우선 설명하고, 불만족 사항에 대해서는 현장을 확인 후 문제점 및 개선방법을 협의하는 한편 시공 상 불만족 사항에 대해서는 바로 시정될 수 있도록 시공사에 연락해 조치토록 했다. 또한 매우 만족하는 시설에 대해서도 현장을 확인하고 학교관계자의 만족 사유를 청취해 추후 설계 시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했다. 만족도 조사 분석 결과 점검 학교에서는 대체로 시설 전반에 대해 만족하고 있으며, 학교 전체 배치에 대해는 특별한 불만족 사항은 없었다. 다만 시공 상의 부분적인 하자가 있을 경우 사용자의 만족도는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이렇게 조사된 현장에서의 요구 또는 불만족 사항을 통해 시사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 설계 및 시공 부문 □과거의 교실은 60명 정원으로 때에 따라서 60명 이상을 수용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 감소와 학급당 정원의 감소로 35명 정원의 한 교실을 8m×8m로 만들고 있어 사물함 배치 등에 불편을 겪고 있다. 장방형에 익숙해진 것도 불편의 한 이유이다. □과거에 사용되었던 장방형에 대한 연구는 교육과학기술부 차원에서 논의해 볼만 하다. □지하주차장은 눈이 올 때 눈이 경사로에 쌓여 빙판을 이루거나 우기 시 경사로를 따라 빗물이 주차장에 유입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입구 바닥은 차단배수로를, 상부는 투명한 지붕재로 덮어 시공했다. □관리상 담장이 좋으나 도시설계 등에 의해서 생울타리 설치로 정해진 경우가 대부분으로 관할 시 · 군 · 구청 등에 경관 심의 등으로 설치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 추가로 펜스 등을 설치할 때 주의가 요구된다. □물 쓰는 실(가사실, 과학실) 하부에 컴퓨터실이 위치하게 설계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Wet zone’과 ‘Dry zone’을 묶음으로 설계를 해야 하며 가능한 한 두 zone이 혼재돼서는 안 된다. □원하는 실들을 1층에 모두 배치하면 이보다 더 좋은 배치가 없겠지만 한정된 공간에 설치해야 하므로 이때는 상하로 배치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다만, 배기 팬의 용량 및 적정위치를 선정해 배치하는 것으로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 □중 · 석식 운영체제인 고등학교, 특히 인문계고는 여러 끼니를 해결해야 하고 배식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넓은 급식소를 원한다. 300~400석 규모로 설치하고 있으나 그래도 부족한 공간이다. 특히나 다목적실 하부층에 급식소를 설치하는 관계와 건폐율, 용적률에 의한 전체 면적의 배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이 발생되고 있다. □유치원의 놀이터는 아주 유용한 공간이므로 필수인데 교실에서 직접 나갈 수 있는 출입문과 손을 씻고 신발을 털고 들어오는 시설이 필요하다. □외부벽체에 설치되는 선홈통1)은 1교실 당(91.8㎡) 직경 75㎜ 선홈통을 설치하면 가능하나 최근 게릴라성 집중 호우 등이 많아 관리가 용이한 루프드레인 설치, 배수관경 넓히기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재래식 옥외 화장실이 있는 학교도 있었는데 화장실 개량 사업과 수질 오염방지, 관리의 어려움(동파, 외부인 사용)으로 옥외 화장실을 철거했다. 그 대신 옥내 화장실 1층 일부를 주민 등이 학교를 이용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기로 했다. □바닥재는 친환경적인 원목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우수하나 습기에 약해 우기에는 솟음 현상이 발생한다. 시공 시 인위적인 간격을 두어 시공을 하고는 있으나 가장 많은 하자가 발생되기 때문에 충분이 건조된 양질의 원목으로 철저한 시공이 필요하다. 강화마루는 미끄럼, 긁힘, 내구성 등에 불리해 권장하고 싶지 않다. □차량통행 구간에 보도블록을 설치하면 보도블록이 깨지는 경우가 있어 차도구간은 가능한한 아스콘을 설치해야 한다. 다만 시공 시 5°C 이하에서 시공을 하면 안 된다. □국민체육진흥관리공단 등에서 지원을 받아 학교 자체로 인조잔디를 설치한 경우가 많은데 인조잔디는 고무 칩이 유해물질을 발생시켜 지양하고 있다. 다만, 천연잔디구장은 자연친화적이고 좋으나 관리가 어렵고 벌레 등을 퇴치하기 위해 농약 등을 살포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방충망은 해충 유입 방지를 위해 필히 설계 시 반영되어야 하고 특히 외곽에 숲 등이 있는 학교나 야간에 이용 빈도가 높은 인문계고 일반교실, 식당 등은 꼭 설치되어야 한다. □장애인화장실의 출입문은 자동개폐를 우선으로 하고 튼튼한 재질을 사용해야 한다. □발코니 공간에 출입문을 설치해 활용이 가능하도록 하되 안전을 고려해 난간대를 규정(1.1m) 이상 충분히 높게 설치해야 한다. □복도창이 높아 교실 내부를 볼 수 없을 경우 관리자는 교실 내부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하고, 반대로 교사는 볼 수 없도록 하는 것을 원한다. 그럴 경우 출입문에 조그만 유리창을 설치하면 된다. □맑고 고운 피부는 수시로 화장을 하며 관리를 해야 아름답듯이 건축마감 역시 똑같다. 유지관리에 최소의 노력이 드는 너무 밝지 않은 색상으로 외부(판넬) 및 내부 마감재(바닥재)를 선정해 시공하는 것이 좋다. □기존 학교 운동장에는 구령대를 넓고 거대하게 했으나 좁은 부지 내에 많은 실 배치로 운동장이 좁아지는데다 최근에는 권위적인 구령대 설치를 지양하고 있다. 따라서 구령대 하단에 외부 기자재 창고 설치가 곤란해 교사동 일부에 작게 창고를 설치하는 추세다. □교실문의 개폐방식은 미서기 방식과 여닫이 방식이 있는데 서로 장단점이 있다. 원칙은 없다. 다만 여닫이인 경우 복도 쪽으로 열리면 유사시 탈출하기 좋으나 평상시에 복도를 왕래할 때 부딪치는 단점이 있고 교실 쪽으로 열리면 실내공간이 부족하고 유사시 불리하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교실 출입문은 유사시 방화문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다. 미서기문은 잠금이 용이치 못할 뿐 아니라 잠금장치를 학생들이 파손하는 경우가 많아 사용자 의견을 고려해 급별로 달리 적용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이중창 단부에는 스톱어를 설치해 창살을 쉽게 잡아 열고 닫기가 쉽도록 한다.
일을 하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일이 싫은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 “내게 그런 핑곌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가수 김건모의 ‘핑계’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어떤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핑계 거리를 만들어 일에 임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현장에서도 각자 나름대로의 갖가지 핑계를 대고 있다. 일면 당연하고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핑계를 스스로 방법을 찾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하고 일에 임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핑계를 일삼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해도 핑계를 일삼는다. 42년간 교육에 몸담아 오면서 많은 핑계를 댔고 또 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공동체 모두의 지혜를 모아 핑계를 대기보다는 방법을 찾아 좋은 교육에 힘을 모을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희망을 교육에서 찾는다고 하지 않는가. 누가 뭐래도 우리는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 교단에 선 것이다. 항상 학습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비쳐질까를 생각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라는 노랫말처럼 말이다. [PART VIEW] ‘일을 하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일이 싫은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고 한다.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 최적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일에 따른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해가는 슬기로움과 지혜를 발휘한다. 또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보람도 느낀다. 결국에는 일을 멋지게 성공시키며 자기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 세계의 문명을 바꾼 발명가들이 그러했고, 어려움에서 나라를 구한 명장들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방법과 핑계’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을까? ‘방법’에는 일을 하려는 의지가 엿보이고 의욕이 넘치며 삶의 활기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희망이 있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깔려 있다. 실패 확률보다는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 방법을 찾는 도중에 일이 싫었던 동료도 자기편으로 돌아와 그 일에 동참하게 한다. 바로 긍정의 힘이다. 하지만 ‘핑계’를 찾는 사람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핑계를 해결해 주면 또 다른 핑계를 만들어 들고 나온다. 끊임없이 핑계만 대다가 결국은 일의 끝을 보기 어렵고, 동료들도 함께 있는 것조차 싫다며 짜증내며 달아난다. 바로 부정의 힘이다. 학년 말에는 없던 부진아, 학년 초가 되면 왜 다시 많아질까? 교육은 긍정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에 가장 알맞은 방법을 찾는 긍정의 힘만이 개인과 가정, 사회와 국가 그리고 인류의 앞날을 밝고 희망차게 하고, 나아가서는 온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미리 핑계를 대기보다 새로운 방법을 찾는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방법을 찾는 것’이고, 어떤 것이 ‘핑계를 대는 것’일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방법과 핑계’는 종종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구별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교육을 잘하려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이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방법을 찾는 사람은 어렵고 힘들어도,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열심히 교육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 일을 하는 도중 어려움이 생기면 자기의 노력부족으로 생각하며 더 열심히 노력을 한다. 하지만 핑계를 앞세우는 사람은 처음의 핑계가 해결되면 또 다른 핑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핑계를 대다가도 최종의 결과가 좋게 끝나면 갑자기 돌변해 모두 자기의 공이라고 내세운다. ‘못 되면 조상 탓, 잘 되면 내 탓’이란 말이 생각난다. 학교를 예로 들어 보자. 한 학년이 끝나는 2월말에는 학습부진아나 학력 미달자가 거의 없다. 하지만 한 학년씩 올라간 3월 초에 새 담임이 조사하면 다시 생겨난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나도 담임을 하던 그 시절 그런 교사 중의 하나였다. 미리 핑계 거리를 만들어 놓고 그 학생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면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이제 핑계는 그만 대자. 주어진 환경에서 교육자다운 자세로 ‘좋은 교육’을 하는 교육자의 길을 가야 한다. 교육은 긍정의 힘을 키우는 것 교육자가 부정적인 시각으로 교육을 바라본다면 교육이 바람직한 쪽으로 갈 수 없다. 살다보면 어려움도 있고 즐거움도 있기 마련이다. 삶의 어렵고 힘든 점만 강조한다면 삶의 가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농산어촌에 근무하는 교사 중에는 간혹 학부모들의 교육 수준이 낮고 학생들의 학력이 낮다고 푸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을 잘 가르치려고 교육자의 길을 자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학생들이 우리 교사들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학교로 몰려들고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뒤를 따르지 않는가? 똑똑하고 예쁘고 잘 사는 학생들만 골라 가르친다면, 어렵고 힘든 가정의 자녀들은 누가 가르칠 것인가? 몇몇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교사로 인해 ‘좋은 교육’에 대한 의욕이 꺾일까봐 걱정스럽다. 교육은 긍정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긍정의 힘이다. 교육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긍정의 힘을 심어줘야 한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행동을 본받으며 자란다. 가르치는 교육보다 보여주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 옛날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던 것’은 선생님의 일상생활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학업성취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요구된다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의 목적이자 목표이며, 교육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에서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교원양성기관에서도 교육과정을 통해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교육한다. 교원을 재교육하는 연수원에서의 교육내용도 모두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학업성취도’란 무엇인가? 학업성취도를 단순히 점수를 높이기 위해 문제집을 많이 다루고 시험을 자주 치러 점수만을 높이는 하나의 훈련이라고 보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나는 학업성취도를 높인다는 데는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학업성취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더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업성취도를 지필평가에서 나타난 결과적인 수치로 생각한다면 이는 일선 교육현장의 교육과정 운영의 파행을 불러올 수도 있다. 실망만 남겼던 ‘자유교양대회’ 1970년대 중반 ‘자유교양대회’란 것이 있었다. 초 · 중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나도 이런 취지에 적극 찬성해 희망 학생 모두를 참여시켰다. 충북 보은의 중초초등학교(지금은 폐교됨) 3~6학년 학생 30~40명을 데리고 시작했다. 학교 예산으로 책을 구입했는데 충분하지 않아 학년별로 몇 질씩만 사서 서로 돌려 읽으며 ‘자유교양대회’를 준비하기로 했다. 아주 조그마한 농촌 지역이어서 전기가 들어 온 지 몇 달도 되지 않았을 때이다. 방과 방 사이의 벽에 작은 구멍을 내어 5촉의 작은 전구나 형광등 하나로 방 두 개를 모두 밝히며 몇 푼 안 되는 전기세를 아끼던 아주 가난했던 시절이어서, 집에서는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날씨가 춥지 않은 여름을 이용해 학교 교실 2칸을 밤에도 개방했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학교로 다시 와서 책을 읽다가 학교에 가져다 놓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아침은 집에 가서 먹고 다시 학교에 등교하게 하는 ‘밤에도 열린학교’를 그 때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학년별로 필독서를 한 권씩 모두 읽은 다음 모여서 읽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내가 등장인물이라면 그 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를 토론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짧게나마 책을 읽은 느낌을 글로 남겨 서로 돌아가며 읽기도 했었다. 이런 활동을 중심으로 한 독서교육이 바람직했고, 학생들도 책 읽는 것을 마냥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 해 가을 ‘자유교양대회’에 참가하고 나서 나의 이런 즐거움은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자유교양대회’를 위해 당시의 도시 학교들은 책을 읽히기보다 예상문제집을 푸는 데 더 중점을 두었다. 그것도 한두 권이 아니라 몇 권씩 말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필독도서보다 예상 문제집을 더 많이 풀었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험을 보았단다. 흡사 오늘날의 ‘학업성취도 대비 교육(?)’과 비슷했다. 책을 즐겁게 읽게 하기보다는 문제집을 열심히 풀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특정 사실만을 암기하도록 한 자유교양대회는 독서교육의 본질을 왜곡한 하나의 상술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실망스러웠다. 그 후로 이 같은 대회는 없어졌지만 이런 해프닝을 통해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것은 훌륭한 교수 · 학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훌륭한 교수 · 학습으로 서로 토론하며 생각을 주고받기보다 시험점수만을 높이려는 교육과 그런 것을 은근히 조장하는 정책도 싫다. 교수 · 학습이 좋아지려면 훌륭한 교사가 우선되어야 한다. 문제집만 다루고 시험 보는 요령만을 익히는 교육으로 간다면, 그 옛날의 ‘자유교양대회’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교수 · 학습은 학습자의 발달상황, 교실환경 등 수없이 많은 변수들에 대처해야 하는 하나의 종합예술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다. 교육을 원점에서 재조망하고, 교육답게 만들자. 교육이란 말을 ‘가르치다’라는 말과 등식화 해버리는 데도 문제가 있다. 위키백과는 교육을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 ‘인간이 잠재적으로 가진 여러 가지 능력을 끌어내거나 지식, 기능, 태도 등을 몸에 익히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개인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달시키고 그에 따라 사회가 유지,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활동’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교육은 의도된 교육과정에 따라 지도되는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를 꾀하는 활동’인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라는 측면에서만 볼 때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으로 양분하여 가르치는 사람을 주(主)로, 배우는 사람을 종(從)의 변인에 놓고 생각하는 것은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다. 오늘날에는 교육을 ‘학생들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내어 개인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가 유지 발전하는 것을 목표하는 활동’이라 하여 학습자의 입장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교수 · 학습이 절실히 요구된다. 1969년 3월 1일 초임발령을 받아 교단에 설 때만 해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을 실감했다. 동네 어른들 모두 선생님을 대단한 존재로 대해줬고, 동네의 잔치에는 꼭 초대되었으며, 모를 내거나 추수를 해도 선생님을 모셔(?)다 식사를 대접했다. 가정방문을 가면 흰 쌀밥을 대접하며,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리곤 병신이 안 될 만큼 때려서라도 잘 가르쳐 달라곤 했다. 그 시절 학교 선생님은 학교의 신이었다. 옛날이야기도 선생님의 입을 통해서, 다른 나라 이야기며, 우주이야기 서울이야기도 모두가 선생님의 입을 통해서만 들었고, 모든 교과내용도 선생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었다. 그 때는 주입식교육이 주를 이루었기에 교사 활동이 주가 되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배워야 했다. 한 학급에 60~70명, 때론 교실 하나 가득 학생들을 몰아넣고 가르쳐야 했다. 하지만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가르쳤다. 앉아서 하는 수업은 용서가 안 됐다. 맨손 수업도 안 된다며 단매 괘도나 지도, 지구본 등을 들고 가서 가르쳤다. 뻣뻣한 손가락으로 풍금을 치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도 불렀다. 체육복을 입고 아이들과 함께 뜀틀도 넘고 운동장도 달렸다. 발견학습, 과제학습, 탐구학습, 완전학습 등 새로운 학습이론이 나올 때마다 연구의 붐도 일었다. 임상장학이다, 동료장학이다 하며 서로의 수업을 참관한 후 검토하며 보다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순수한 교육 사랑의 마음과 열정을 실천한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교육을 원점에서 재조망해 보자. 그리고 교육을 교육답게 만들자. 1990년대 초반 열린교육에서 보았던 가능성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열린교육에 미쳐(?) 전국의 ‘열린교육 밤샘 워크숍’을 쫓아다녔다. 학교에서 출장비를 받은 것도 없이 사비를 털어서 다녔다. 그것도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진행하는 무박 2일 코스였다. 누가 시킨 것도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승진 가산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센티브가 주어졌던 것도 아니다. 모두가 ‘좋은 교육’을 하고 싶어서, 교육을 보다 잘하고 싶어서 모였다. 대학교수나 먼저 열린교육을 실시한 선생님들로부터 교수 · 이론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교수 · 학습에 필요한 자료를 함께 제작하는 실습도 하고, 그 활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좋은 교수-학습을 위한 동기유발, 도입활동, 본 활동 몇 가지, 예상 및 가설 세우기, 실험 및 토론, 검증 및 가설확인, 이론정리, 형성평가 및 차시학습 안내 등 수업의 단계별 활동에 대한 상세한 안내와 사례 발표 및 토론이 이어졌다. 참가자는 학생이 되어 모의수업에도 참여했다. 그동안 배운 이론과 스스로 만든 자료를 가지고 교수 · 학습 단계에 따른 활동을 하며 아이들처럼 마냥 신이 났다. 바로 열린교육의 불꽃이 타오르던 때였다. 한 · 일간의 열린교육 교류도 아주 활발히 이루어졌다. 일본의 ‘개별화 · 개성화교육’이 우리의 열린교육과 만나면서 새로운 교육 모델을 찾게 되었다. 충청북도에서도 열린교육 한 · 일교류 활동을 활발히 추진하며 일본의 선진학교를 방문했고, 일본 교수를 모셔다 강의를 듣기도 했다. 문제는 열린교육이 채 뿌리도 내리기 전에 ‘시 · 도교육청 평가’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열린교육에서 하던 어느 한 부분만을 부각시키며 우왕좌왕하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이게 좋다고 하면 이쪽으로 쏠리고, 또 다른 학교에서 저게 좋다고 하면 저쪽으로 쏠리곤 했다. 마치 뿌리 없는 풍선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 미아가 된 꼴이었다. 이때부터 열린교육이 선생님들의 외면을 받고,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열린교육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 아니다. 열린교육은 ‘좋은 교육’운동이었다. 모두가 마음을 열자는 것이었다. 교사 상호간에 서로 수업을 보며 동료장학을 해 주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열린교육에서는 그랬다. 학부모들에게도 마음을 열고, 교실 문도 활짝 열었다.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의 수업을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연간 또는 월간 · 주간 학습계획을 학부모들에게 알려 주었다. 때로는 학부모나 학생도 동참하게 했다. 학생들에게도 열린교육의 문은 활짝 열렸다. 자기 자리에서만 꼼짝도 안하고 하루 종일 공부하던 학교생활이 자기 수준에 맞는 친구들끼리 모둠을 이뤄 공부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배울 것이 있으면 눈높이 차원에서 서로 묻고 가르쳐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학생이고 선생님이었다. 서로 경쟁만 일삼는 오늘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선생님은 조언자, 조력자, 협력자, 가이드이다. 오히려 학생들이 선생님을 가르치려고도 했다. 원리 법칙을 찾고 예상한 결과가 딱 맞아떨어지니 신날 수밖에 없었다. 교실 안은 질서가 없는 듯 보였지만 활발한 교육활동이 이루어졌고, 선생님은 학생들 개개인의 학습활동을 체크하며 학습에 결손이 없는지를 챙겼다. 자기가 학습하는 과정을 자기 스스로 학습지에 기록했고, 모든 활동이 끝나면 스스로 평가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해결하거나 또는 학생끼리 토론을 벌여 해결했다. 그래도 모르면 선생님과의 토론 활동에서 해법을 찾았다. 스스로 할 자유를 주는 것도 교육 같은 또래, 같은 눈높이에서의 교육이 더욱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운전면허를 금방 딴 사람이 운전면허 따는 방법을 가르치면 눈높이가 같아 가장 잘 이해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학생들도 같은 또래의 눈높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과 여러 가지 역할 놀이를 통해 교사에게 배우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알게 모르게 배워간다. 다투고 화해하며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승자의 기쁨과 패자의 분함도 배운다. 그렇게 사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루었을 때 무한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맛본다. 가령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어린 학생 스스로 유리창을 깨끗이 닦아보았다. 닦고 나서 보니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유리창이 아주 깨끗하다. 자기 실력이 대단하고 자기보다 유리창을 더 잘 닦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어머니가 안 계실 때 설거지를 해보니, 접시며 그릇에 윤기가 번진다. 청소를 해 놓고 나서도 놀라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나서도, 옷을 개어 놓고도,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도 놀란다. 그러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힘 즉, 자생력을 키워나간다. 그런데 가정도 학교도 그렇게 기쁨을 맛보도록,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하란다.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하면 뭐가 어떻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선을 그을 때도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공을 차도, 컴퓨터를 해도, 내가 생각한 대로가 아니라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만 해야 한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목청껏 소리치고 마음껏 운동장을 달리고 싶어도 모두가 정해진 시간표대로 해야 한다. 학교에는 선생님보다 학생이 많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함께 계획도 세우고, 스스로 규칙을 정해 잘 할 수 있도록 지켜보아 줄 수는 없을까? 잠시도 기다려 주지 못하고 언제까지 잔소리만 쏟아 부을 것인가.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다. 교사들이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학생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보아 주자.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학습의 효과는 배가 된다. 학생들이 원하는 ‘배움의 방식’과 타협하면서 새로운 길 모색해야 1980년, 일본에 교육원장으로 파견 나가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일본 돗도리현[鳥取縣] 아오야쵸[靑谷町]에 있는 인문계고인 아오야고[靑谷高] 특별활동 시간에 1~2학년을 대상으로 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후 2시간씩 한국어 강좌를 나갔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림없었을 일이다. 인문계고에서 그것도 대입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과목을 일주일에 2시간씩이나 하다니 말이다. 수강생이 한 30명 정도는 되었는데, 인사말부터, 이름 말하기, 한글 자모 익히기, 간단한 문장 익히기, 한국 문화 익히기 등의 순서로 이어지는 강좌가 학생들의 흥미를 끌었다. 가을 동아리 발표회에서는 그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연습해 한국 노래와 춤, 한국 의상 발표회, 김치와 빈대떡 시식회, 한국 영화 감상, 한국 교과서 소개를 하며 신나했다. 아마도 그들 중 누군가는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교는 고정된 틀에 얽매어 있다. 답답하고 옴짝달싹 할 수 없어 갑갑하다. 동물원의 곰이 뛰쳐나와 마음껏 산과 들을 질주하고 싶듯, 우리 학생들도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마음껏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 행복이 어떤 행복인지도 모르더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행복한 교육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배우면서 행복하고 즐겁도록 교사들도 더 연구를 해야 한다. 교육과정도 학생에 맞추고, 교재 내용이나 교육 방법에서도 학생들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학생 중심으로 그들의 심리 상태를 최대한 반영해 그들이 원하는 ‘배움의 방식’과 타협하면서 새롭게 바꾸어볼 필요가 있다. 배움은 삶의 내용이기도 하고 삶의 방법이기도 하다. 내 인생 내가 살아가듯, 내가 배울 것은 내가 즐겁고 신나게 배워가며 행복한 그런 학교가 ‘행복한 배움터’라고 생각한다. 오늘 지금이 행복한 배움터, 그리고 먼 훗날의 행복한 삶을 배우고 익히는 배움터가 바로 대한민국의 학교이다.
도시와 농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큰 차이가 있으며 상급 학교로 올라갈수록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학력 격차는 학교 간 차이보다는 학생의 가정환경이나 개인적 특성에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대학교 논술시험에서 군 지역 출신 합격생들의 점수가 가장 높아, 교육 환경이나 사교육이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인문계 정시 모집에서 치른 논술고사 평균 점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교육을 가장 적게 받은 군 지역 합격자들의 점수가 23.58로 가장 높았고, 서울시가 23.42, 광역시가 23.41, 시 지역은 23.36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군 지역 23.52, 시 지역 23.50, 서울 23.49, 광역시 23.47 순이었다. 왜 읍 · 면지역 학교의 학력향상이 중요한가 [PART VIEW]위의 두 신문기사를 통해 읍 · 면지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도시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 격차가 상급학교로 갈수록 심화됨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일부 농촌 학교 학생들의 능력이 도시의 학생들보다 우수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농산어촌의 고등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통폐합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다양한 학교 유형화 정책 등으로 학교 간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도시와 달리 학생들의 정의적 측면과 가정배경 등에서도 많은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다. 이렇게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지역의 교사들은 근무여건이 열악할 뿐 아니라 교과수업 및 행정업무 부담 가중, 복지시설 미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나 수학능력시험 결과 분석에 의하면 읍 · 면지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낮으며, 특히 수능에서 읍 · 면지역은 7, 8등급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행인 것은 농어촌특별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이 대학생활, 특히 학업성취도 부분에서 잘 적응하는 것으로 나타나, 농어촌 학생들의 부족한 부분을 잘 보완해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학업성취 부분의 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읍 · 면지역 일반계고등학교의 학업성취도를 살펴보고, 학력향상을 위해 노력한 일부 학교와 본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읍 · 면지역 일반계고등학교의 학업성취도 향상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온 지역격차 학업성취도를 준거변수로 삼아 도시규모 간 중등학교의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들은 모두 일관된 결과를 보고하고 있는데, 서울, 광역시, 중소도시 간의 학업성취도 평균의 격차는 적은 반면, 읍 · 면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현저하게 낮은 성취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강상진 교수 등이 2005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읍 · 면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모든 교과에서 현저하게 성취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자기존중감, 학습동기 등도 현저하게 낮아 지역 간 격차가 전인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경근 교수 역시 일반계고 학생들의 수능성적이 지역 및 계층에 따라 매우 심각한 격차를 보인다며, 주요 원인으로 지역과 부모의 학력을 꼽았다. 한국교육개발원 류방란 실장팀의 연구에서도 학교급이 높아지고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부모의 직업군이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낙후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총체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교육격차의 심화는 노동시장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는 교육격차 확대를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교육격차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기제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읍 · 면지역 고등학교들의 교육 현황과 학력 수준 대도시 학생들이 사교육에 참여하는 시간은 2008년을 기준으로 주당 5시간인데 비해 읍 · 면지역 학생들은 2.4시간으로 절반이 되지 못하며, 참여비율(58.2%와 33.4%) 및 월평균 사교육비(23.3만 원과 8.4만 원)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참여비율이나 월평균 사교육비가 매년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농산어촌 우수교나 기숙형 고등학교로 지정받은 학교는 대체로 활성화되고 있으나, 정부지원이 이들 학교에 집중되면서 인근 소규모 학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또한 전반적으로 교육여건이 불비하나 대학진학률은 도농 간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특별전형(농어촌특별전형이나 지역균형선발 등)이나 수시모집을 통해 대학진학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발표한 2010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지역별 표준점수와 등급 비율은 대도시와 중소도시에서 유사하게 나타났으나, 읍 · 면지역에서는 6등급과 7등급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그리고 표준점수 평균은 읍 · 면지역이 대도시와 중소도시에 비해 모든 영역에서 매우 낮았다. 특히 언어, 외국어, 수리 가에서 하위등급인 8등급과 9등급은 대도시와 중소도시에 비해 2배를 넘고 있다. 지난해 강상진 교수가 1995학년도부터 2010학년도까지의 도시규모별 수능 평균점수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읍 · 면 지역의 수능평균이 다른 도시지역보다 확연히 낮았고, 그 차이가 지난 16년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었다. 도시지역과 읍 · 면지역의 수능평균은 크게는 7점 이상의 차이가 났다. 2009년과 2010년도에 다소 격차가 줄었으나 그래도 6점에 가까웠다. 이 연구에서 사용한 수능 표준점수의 표준편차가 10이므로, 이는 0.6~0.7의 표준편차의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즉, 읍 · 면지역 일반계고 학생들의 평균점수는 도시지역에서는 하위권에 불과한 것이다. 2007년에 실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고1의 경우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의 5개 교과 모두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평균 차이는 거의 없는 반면, 읍 · 면 지역의 평균은 타 지역에 비해 매우 낮았다. 이러한 지역간 성취도 격차는 2003년 이후 학업성취도 추이분석 결과에서 계속 나타나는 현상이며,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역 간 격차가 줄어들기보다는 더욱 광범위한 교과로 확대되고 있다. 읍 · 면지역에서 학력향상을 보인 여러 학교들 이러한 상황에서 읍 · 면지역 학교의 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우선 교과부에서 기초학력 향상 우수학교로 지정한 몇 학교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면에 위치한 퇴계원고는 학교-교사-학부모를 연계한 동기 부여 및 진로 교육 프로그램(Dream Designer 파일 관리, 플래닝 페스티벌, 꿈꾸는 U 페스티벌, 학부모를 위한 진로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해 성과를 보였다. 구체적으로는 학습 및 진로적성 검사를 실시해 성격적, 정서적, 정성적 측면에 기반을 두고 학습 습관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학습전략을 수립했으며, 드림 디자이너(Dream Designer) 코칭 파일을 통한 학력 신장을 추구했다. 대구시 읍지역에 소재한 다사고는 교과교사가 개념원리와 문제 중심으로 수준별 교재를 자체 제작해 보정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트렉제 수준별 맞춤식 학습지도를 실시했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최우선으로 삼아 선진학교 방문, 수준별 교수학습 자료 제작 활용, 수업연구 연수 등을 매월 1회 이상 실시하는 등 기초학력 미달학생 지도를 위한 교사의 수업 전문성 함양에 중점을 두었다. 전남의 도서벽지에 소재한 고금고는 학력향상을 위한 교원의 인식제고와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고, 전교원이 ‘백설공주 자기주도학습 지도사가 되다’라는 직무연수에 참여했으며, 사례연구 중심의 학력 향상 관련 직원 연수를 매월 1회씩 실시하는 등 교원의 연수를 강화했다. 그리고 ‘행복한 학교생활길잡이(보정교육 자료)’와 ‘수능 일기’를 자체 제작해 활용했으며, 학습 동기를 강화하기 위해 성공한 선배의 특강과 방학 중 선배 동문의 귀향 멘토링 등을 실시했다. 천안시의 농어촌 지역에 위치한 성환고는 성취동기 제고를 위해 ‘좌절금지 마음맞춤 학생 공감 Wee Class’(찾아가는 상담, 자긍심 함양 상담 프로그램, 성환비전스쿨, 상담중심의 대학생 멘토링제 등)와 수준별 맞춤식 학습을 위한 공부맞춤 학력향상 프로젝트(수준별 방과후 학교, 2+2 수준별 수업 등) 및 ‘내 안의 나를 찾는 적성 맞춤 동아리 활동’(학생 중심의 성공 동아리 운영, 학력증진목표관리제 등)을 활성화했다. 학업성취도에서 두각을 보인 학교들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우수한 학교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기초학력 미달학생 지도에 대한 학교의 책무성을 다하기 위해 담임교사 책임지도를 강조하고 기초학력 미달학생에 대해 정규-방과 후-방학 중 시간을 연계 지도해 단위학교의 기초학력 미달 제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이는 기초학력 미달학생의 특징을 학급담임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어, 담임교사 책임지도제를 통한 학습부진학생 연계 지도가 목표를 달성하기 쉽기 때문이다. 두 번째 특징은 학교장이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모든 구성원들이 학력향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인센티브를 활용하고, 학력 미달학생 지도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을 제고해 학력 미달학생 지도를 교사의 가장 중요한 교육활동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것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세 번째는 학교 안팎의 물적 · 인적 자원을 합리적으로 결합, 학습부진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학력 미달학생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열악한 학교 실태 및 여건을 충분히 파악해 학력 미달학생 지도를 위한 자료 활용을 효율화하고, 지역사회와의 연계 지도를 하면 학력 미달학생 지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와부고 역시 경기도 읍지역에 소재한 공립고다. 90%가 초빙된 우수한 교사진을 바탕으로 수준별 수업, 학생선택 중심의 교육과정, 블록타임제를 기초로 한 교과교실제, 방과후 교과별 · 수준별 수업(무학년제)등 학생중심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다음 페이지의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국연합모의고사에서 획기적인 학력향상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언어영역의 경우 1등급 학생의 비율을 1% 올리는 것이 무척 어려운데 3.11%나 향상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리고 2등급은 0.42%, 3등급은 5.50%로 모두 증가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수리영역의 경우 1등급은 증가했으나 2, 3등급이 감소한 것은 수리에 대한 기본 학력 저하와 여학생 비율이 높아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외국어 영역은 1등급이 0.03%, 2등급이 8.80%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학력향상을 보였다. 위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된 이유에 대해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대상으로 중복하여 순서대로 5가지를 선택하게 한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수한 교사진의 열정이 어린 양질의 수업으로 학습의 흥미를 가졌을 뿐 아니라, 동기가 유발되어 더욱 열심히 학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9 방과후학교 우수프로그램상을 받은 다양한 교과별 · 수준별 방과후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해 수준별로 강좌를 개설했기 때문이다. 특히 방과후 프로그램에서 대학생과 학원강사 및 인근 학교 교사 등을 활용한 것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학생 선택중심의 맟춤형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 및 블록타임제를 기초로 한 교과교실제 운영 등으로 공강 시간에 자기주도 학습이 생활화된 점 또한 중요한 학력향상 요인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학생 중심으로 수준에 맞춘 교사들의 열정어린 수업과 방과후 프로그램의 학생 선택 중심 운영 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수사례에 비춰본 학업성취도 증진 방안 수학능력시험 및 학력향상 우수학교들은 공통적으로 방과후 · 방학 중 특별보충수업과 학습부진학생 전담교사 배치 및 외부인력 활용 프로그램 운영과 학생별 학습자료 개발 · 제공 등으로 학습부진 학생지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2010년 평가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인 학력향상 중점학교의 성공요인 분석 결과, 학교장의 리더십과 교사들의 적극적 학생지도, 학습부진 원인 등에 대한 체계적 진단 · 관리 등 학생지도의 학교 책무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무엇보다 학교장의 적극적 · 변혁적인 리더십과 교사들의 헌신이 중요하다. 학교장은 학교교육의 성과를 강조하며, 관련제도, 지역사회, 타 학교 및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주변 환경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관리할 필요가 있다. 교사들 역시 학생지도를 위한 근무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더라도 수업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타 학교의 사례 등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한다.1) 둘째, 학생의 진로와 진학을 학교교육의 주된 성과로 인식하고 면학분위기 조성에 주력하는 한편, 학생 개개인의 각종 시험성적 및 체험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특히 다양한 특기 · 적성 교육활동과 체험학습을 진학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2) 셋째, 학생들의 수준과 특기 · 적성을 고려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준별 교육과정을 내실 있게 운영하고 다양한 교과별 · 수준별 방과후 프로그램을 개설해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며, EBS 교육방송 활용 및 멘토링을 통한 효율적인 교수 학습지원이 필요하다.3) 넷째, 학습에 주력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생활지도를 엄격히 하고, 자습시간은 물론, 식사시간이나 청소시간에도 교사 임장지도로 친밀감과 면학분위기를 조성한다. 끝으로 학생 선발제도, 정부와 시 · 도교육청의 정책기조 등 주변 환경변화를 경험하면서, 이를 학교 발전의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즉, 정부의 농산어촌 살리기 정책이나, 농어촌 우수학교, 지역 거점학교, 기숙형 공립고, 사교육 없는 학교, 혁신학교, 자율형 공립고, 교과교실제 등 정부와 시 · 도교육청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학교역량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정책적 · 제도적 지원도 뒤따라야 우선 시 · 도교육청은 읍 · 면지역 학교들을 자율학교로 지정해야 한다. 자율학교로 지정되면 50% 교원의 초빙권과 교육과정의 자율성 및 학교 경영 전반의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4) 교육과정의 자율성은 곧바로 학생들의 선택권을 확대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진로 및 진학지도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편성해 운영할 기초를 담보한다. 교장과 교사 초빙권은 우수교원의 확보로 수업의 질적 개선과 학교운영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두 번째로 농어촌 근무 교사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많은 시 · 도교육청이 승진가산점제나 전보 혜택을 주고는 있으나, 보다 파격적으로 그 혜택을 늘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수한 교원들이 농어촌에 근무하게 되어 학생들의 학력향상을 기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읍 · 면지역 학교에 근무할 기간제 또는 계약제 교사의 자격 완화다. 일전에도 농산어촌 교육여건 사업에서 논의되었으나, 일부 교직단체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교사자격증 유무를 그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한 학생들의 교과 선택권이나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 및 소규모 학교에서의 다양한 진로 중심 교육과정 운영에 한계를 보이게 된다. 따라서 자율형 공립고나 특성화고 수준으로 기간제 또는 계약제 교사의 자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학습장애, 학습부진 등에 대한 유형별 학습부진 판별 도구 및 보정 프로그램과 학부모 상담 프로그램 개발 및 교원 연수 등 단위학교 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이 읍 · 면지역 학교에 우선 이뤄져야 한다. 다섯 번째로 교육지원청은 단위학교에서 정규교육과정 및 방과후 프로그램 등을 위해 학교가 요청하는 강사를 지원해야 하며, 입시상담 전문요원의 파견 및 학부모 상담 등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학력향상 지원 컨설팅단 및 모니터링단의 운영을 확대해 학교교육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우수학교 모델의 발굴 · 확산이다. 학력향상 우수학교를 발굴하여 사례집을 발간하고 배포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운영 성과 발표회나 전달 연수 등을 통해 우수학교 모델을 일반학교로 확산시켜야 한다. 일곱 번째로 대학입시에서 농어촌 지역 학생의 특별전형을 확대해야 한다. 농어촌 학생들이 대개 농어촌 특별전형이나 지역균형 선발 등 수시모집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비율이 높고, 진학한 후에 학력향상 부분에서 매우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로 볼 때, 이의 확대는 농어촌지역 학생들의 이동을 억제하고 학력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끝으로 중 · 고교의 경우, 방과후 학교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방과후 학교에 참여한 학생들이 해당 교과에서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모든 학교급에서 교과 관련 EBS 교육방송을 청취한 학생들의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낮으며, 보통학력 이상 비율도 대부분 교과에서 EBS 교육방송을 청취한 학생들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방과후 · 방학중 특별보충수업과 학습부진 학생 전담교사 배치 및 외부인력 활용, 학생별 학습자료 개발 · 제공 등 학습부진 학생지도를 위한 활동들이 일반학교보다 학력향상 중점학교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읍 · 면지역 학교들이 위와 같이 긍정적인 결과를 보인 정책이나 프로그램 등의 혜택을 우선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1) 경북 울진고 교원들은 학교 인근에 거주하며 정규수업이외에도 방과 후, 자기주도학습 시간, 방학 중에도 학생지도에 매진하는 한편, 부장교사들은 타 학교 사례를 방문을 통해 벤치마킹하고자 함. 2) 경남 장유고는 일부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학교 특성화 사업(과학거점학교 등)을 운영, 학교 교육의 활기를 불어넣고 있으며, 학생의 과목선택권과 학습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 3) 충남 홍성고의 수준별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S-Learning, Level-Up Academy 등), 아침학교 운영 등 4) 강원 평창고, 교사 대부분이 관사에서 생활함으로써 학생에 대한 지속적인 지도가 가능하며, 초빙교장이 의욕적으로 학교를 경영하고, 초빙교사 유치 등으로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교육만족도를 높이고 있음.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고위간부의 인사 비리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복마전이라는 부끄러운 이름과 함께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오비이락인진 몰라도 이후로 국내 유수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로비 사건과 관련해 각종 부정행위가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그 와중에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제기하면서 그것이 세간의 화두가 되었던 일이 있다. 공정사회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공정과 정의를 동의어로 풀이하고 있었다. 정의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 하고 이는 플라톤의 철학에서 지혜, 용기, 절제의 완전한 조화를 이르는 말이라고 부연했다. 불현듯 서슬이 시퍼렇던 제6공화국 때 정치 이슈로 등장했던 ‘정의구현 사회’와 ‘삼청(三淸)교육’을 연상하게 된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정부에서 국책으로 사회구조를 개조해보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을 돌이켜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정의는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제우스의 판도라 상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은 어째서 판도라의 상자를 짊어지고 수없이 모순에 당착해 비틀거리면서도 정의를 연모하고 있는 걸까. 교육계의 비리도 몇몇 사람들의 법적 심판으로 끝이 나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과 함께 수면 아래로 침잠하고 말았다.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가면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이 있다. 이 회관 정문에 ‘법의 여신상’이 우뚝 서 있는데, 오른손에는 천칭저울을 등불처럼 높이 쳐들고 있고, 왼손에는 큰 칼을 지팡이처럼 집고 있으며, 눈은 지그시 감고, 머리에는 관을 쓴 모습이다. 미국 맨해튼에 횃불과 성경을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는 대조적이다. 법률관계 기관의 정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조각이지만 그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작품의 의미를 새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찍부터, 조각의 여신에서 저울은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 편견이 배제된 평등을, 칼은 국가로부터 나온 법의 엄격한 집행을, 감은 눈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공평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법의 여신’ 말고 ‘정의의 여신상’도 있다. 법의 여신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문헌에 따르면, 정의의 여신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의 마아트(Maat)인데, 그는 정의뿐 아니라 진리, 질서를 상징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정의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케’(Dike)이다. 디케라는 말은 법(法)과 정의(正義)의 합성어이고 이것이 로마시대로 오면서 정의의 여신 ‘디케’에다가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어 유스티치아(Justitia)라는 말이 탄생했으며, ‘정의(Justice)’란 단어도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본다. 서구에서는 법과 정의의 연관성을 바탕으로 인격화시킨 ‘정의의 여신상’을 법의 상징물로 여겨 각 도시의 시청, 법원, 광장 등에 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법률관계 기관의 정문에는 이 조각이 서 있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공정이나 정의는 모두 법과 관계된 개념이다. 그러니까 법대로 하면 된다는 뜻이고 불공정이라면 법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의 구현보다는 청렴 교육을 우리들 곁에 판도라의 상자가 있는 한 정의 구현은 어렵지 싶다. 그나마 우리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청렴교육이라 할 수 있다. 교육계 비리가 급물살을 타면서 학교에서는 청렴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던 모양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청렴에 대한 글짓기를 해오라는 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하고 묻는 글이 의외로 많았다. 누군가 나한테도 갑자기 그 뜻을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까 하는 걱정이 엄습한다. ‘청렴’은 추상명사이기 때문에 그 개념을 누구나 선명하게 떠올리지 못한다. 관념적인 명제 앞에서 우리가 그것을 구상화하는 데는 남다른 고등사고가 필요하다. 그 단어가 난해하다기보다 그것에 적합한 설명이나 부연하는 과정이 난감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청렴,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청렴을 한자로는 ‘맑을 청(淸)+검소할 렴(廉)’으로 쓴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이니까 이것을 파자(跛者)로 풀이해보면 청(淸)자는 ‘수( )+청(靑)’이니까 ‘물이 푸르도록 맑다’는 뜻이고 렴(廉)자는 ‘엄()+염(兼)’의 합성이니 선비가 공직에서는 물론 집안의 사생활에서까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겸손(謙遜), 겸양(謙讓), 겸허(謙虛) 등이 파생된다. 국어사전에는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이라 했고 영어로는 ① A man of integrity ② An upright man 했다. 전자는 진실성을 말하고 후자는 정의를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 살펴보아도 그 개념이 극명하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 개념인 탐욕(貪慾), 오만(傲慢), 불손(不遜)을 가져오니까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청렴 앞에서 자유로운 자 그렇다면, 청렴 앞에서 과연 누가 자유로운가를 자문(自問)하게 된다. 누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까. 공자, 예수, 부처를 빼고 누가 청렴이라는 잣대 위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이 땅에 살고 있는 성직자? 정치가? 법률가? 학자? 그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면 교사도 어쩔 수 없지 싶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경쟁사회에서 숨 쉬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너무도 초인적인 행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경에 보면 유대인들이 창녀를 잡아다 놓고 손가락질을 하며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을 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나와 돌을 던지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절에도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기록을 더듬게 된다. 정말, 청렴 앞에서 누가 먼저 청렴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스레 내 낯이 붉어지는 연유는 무얼까. 청렴, 그 형이하학 필자가 교육계의 비리를 보면서 혼자서 개탄하고 있는 사이에 청렴에 관한 활동을 하는 기관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 새삼 놀랐다. ‘청렴한 세상’을 비롯해 ‘국민권익위원회’, ‘청소년 청렴 교육’, ‘대한민국 크린 웨이브’, ‘클린시티감시단’, ‘한국전력공사협력회사 청렴 포털’,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청렴관리시스템’ 등 열 손가락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낯선 기관들이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저들은 이미 청렴에 관해 엄청난 과업을 진행하고 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야 청렴이 무엇인가를 상고(上考)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그런 큰일은 저명한 기관에서 하고 나는 청렴 이하의 차원에서 요즘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수뢰(受賂)에 관해 아주 소시안적인 고찰을 피력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형법」에 보면 수뢰, 사전수뢰, 제삼자뇌물제공, 알선 수뢰, 뇌물공여 등 많은 조항의 처벌 규정이 나온다. 그중에서 제129조(수뢰, 사전수뢰)를 보면 ①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할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②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될 자가 그 담당할 직무에 관해 청탁을 받고 뇌물을 수수(收受), 요구 또는 약속한 후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참고로 제133조(뇌물공여)를 보면 뇌물을 약속, 공여 또는 공여의 의사를 표시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항의 행위에 공할 목적으로 제 삼자에게 금품을 교부하거나 그 정을 알면서 교부를 받은 자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처벌 내용을 읽다 보면 섬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금단(禁斷)의 선을 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음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잠시 이 문제를 관조해 보기 위해서 문화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문화권은 크게 정문화권(情文化圈)과 의문화권(意文化圈)으로 나눈다. 전자는 감성(Pathos) 중심의 문화권이고 후자는 이성(Logos) 중심의 문화권이라고 한다. 감성 중심의 문화권은 판단이나 행위를 감정적으로 하고 그 때문에 공공의식보다는 공동의식이 크다고 할까. 여기에 감정적인 판단이 앞서기 때문에 근린(近隣)의 정(情)을 중심으로 하는 도당(徒黨)형성 현상이 많다. 이와 같은 집단 심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혈연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연과 학연 심지어는 같은 종교생활을 한다는 조건으로 이루어진 신연(信緣)이나 군대생활을 함께 했다는 군연(軍緣)까지 작용을 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는 종씨(宗氏)라는 것도 인연으로 작용하는 문화권이다. 여기서 연(緣)이란 ‘묶음’이나 ‘끈’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사색당쟁(四色黨爭)도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교장 자리에 있을 때 고향 선배가 찾아와 청탁하면 정에 끌려 차마 거절하지 못하다가 마침내는 법망(法網)의 제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을 극복해 보려고 용기백배해 거절하면 여지없이 이런 말을 하며 눈을 흘기고 간다. “같은 학교를 다닌 선배의 부탁인데 감히 그럴 수 있나?” 감성중심 문화권에서 자주 보는 현상이다. 그런 입소문이 팽배해지면 동창회에서는 동창의식이 희박하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마침내는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이름으로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Pathos 문화권’에서는 이런 약점의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그 후유증도 적지 않음을 자주 본다. 이들은 우리 고향,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 집안, 우리 학년, 우리 학교, 우리 종교라는 조건 앞에서 취약한 반면에 ‘우리 모임’이 아닌 ‘다른 모임’에 대해서는 매우 배타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지역감정의 발로나 종교단체들의 충돌과 배타적인 아집(我執), 그 종교단체 안에서도 파벌이 형성되어 사분오열(四分五裂)함으로써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 ‘Pathos 중심’이 친애력(親愛力)은 제고할 수 있을지 모르나 공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응집력(凝集力)을 신장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공공(公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를 희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성(理性) 중심 문화권은 조금 다르다. 이성(Logos)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주관적이라고 하기보다는 객관적이고 나(I)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You) 중심이 강하기 때문에 공공의식이 강하다. 공공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나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하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유권을 포기할 수도 있다. Logos 문화권에서는 Police-Line을 넘지 않는다. 규정이나 법이라는 테두리를 넘는 것을 금기시한다. 이 문화권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총리로 있을 때 의회에 가기 위해 과속을 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였다. 경찰 오토바이가 차를 세웠다. “날 세” 하니 경찰이 처칠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그렇게 바쁘시면 제가 에스코트를 해드리겠습니다”하며 앞장을 섰다. 처칠이 무사히 의회 연설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더니 그 경찰이 있었다. “이젠, 에스코트는 필요 없네”라고 말하며 웃는 처칠에게 경찰이 말했다. “각하! 과속 딱지를 떼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성 중심 문화권의 대표적인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나라를 떠올렸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사돈의 팔촌까지, 아니 그의 고향 친구나 동창생들까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청백리 청렴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청백리(淸白吏)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청렴이 청백리에서부터 연원(淵源)했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에는 ‘염리’(廉吏)로 불렸다가 조선 시대에 ‘염근리’(廉謹吏)라 했다가 ‘청백리(淸白吏)’라 했다. 청백리란 ‘청귀(淸貴)한 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품행이 단정하고 순결하며 자기 일신은 물론 가내(家內)까지도 청백해 오천(汚賤)에 조종되지 않는 정신을 가진 관리’를 지칭했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제도권에서 청백리가 거명되었고 청백리상을 주는 제도까지 있었다. 교육계에서 그 청백리상을 타신 P교장을 내가 알고 있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초등계의 여러 요직을 섭렵하시다가 나중에는 서울 모 여중에서 퇴임하신 분이다. 그분이 남긴 에피소드가 있다. 1970~1980년대, 학교사회에서는 좋은 학년이나 편한 보직을 받기 위해서 교장이나 교감을 상대로 이른바 운동(?)을 하는 관행이 있었다. 대체로 선생님들이 중학교에서는 중 3을 선호했고 초등학교 같으면 6학년 담임이 경합의 대상이었다. 선물 공세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현금 봉투로 거래했다. 2월 말, 학년담임 발표를 할 때 보면 주요 학년에는 유명한 교사들이 배치되게 마련이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학교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해마다 계속해서 6학년을 맡는 교사들은 교내에서 가히 쥐락펴락하는 명사(?)였다. P교장이 부임하게 된 D중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긴장했다. 청백리상을 받으신 분에게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 학년도가 가까이 되면서부터 선생님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생겨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게 아닌가.” “아무리 청백리라 해도 P교장도 공자님이 아닌데, 여느 교장과 다를 게 있겠나.” “맞아, 오히려 다른 교장들보다 더욱 테크닉할지도 몰라.” 설왕설래하던 중에 그래도 통 큰 고참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마음으로 맨 먼저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의외로 교장이 웃으며 천연스럽게 봉투를 받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이 일이 입소문으로 교내에 확산됐다. “그러면 그렇지, 청백리가 땅 파먹고 살겠나.” “청백리는 고려조나 조선시대나 있는 일이지.”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들이 은밀히 교장실을 드나들며 서로 시치미를 뗐다. 2월 말, 학년 담임과 보직 발표 날이 다가왔다. 교장실을 다녀온 사람은 모두 기대에 벅차 가슴이 부풀었다. 드디어 교장이 학년 담임 배치자료를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모두 가슴을 조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순간이었다. 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교장의 인사말과 함께 발표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전개되고 말았다. “K 선생님 15만 원, L선생님 20만 원, P선생님 10만 원….” P교장은 학년 발표는 하지 않고 교장실에 놓고 간 선생님들의 봉투 액수를 발표하는 것이었다. 발표할 때마다 해당 선생님들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중에는 평소에 불의(不義)와는 절대로 누구하고도 타협하지 않는다며 장담하던 사람도 있고, 신실한 크리스천에다가 수줍고 온순해서 감히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여기던 여선생님도 있고, 언제나 얌전하고 정직하기로 동학년에서 정평이 났던 선생님도 있었다. “모두 우리 선생님들의 열의가 대단해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주신 성의를 모두 모으니까 큰돈이 되어 강당에 피아노를 한 대 들여놓기로 했습니다.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교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선생님들이 모두 낄낄거리고 웃다가 나중에는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박장대소를 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 교육계는 ‘장천 감오백’이라는 은어가 유행하고 있었다. 교장이 되려면 천만 원을 내야하고 교감으로 승진하려면 오백이라는 뜻인데 P교장의 일화는 썩어가는 교단에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로 나는 교단에서 그런 분이 계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더욱 부패해져 급기야는 수도 교육의 총수가 법의 심판대에 서는 일까지 빚어지고 말았다. 물론 나도 청렴 앞에서는 떳떳하지 못하다. 변명 같지만, 나는 청렴이라고 하기보다 유혹을 이기기 어려웠다고 해야 할 같다. 교장이 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의 하나가 반대급부라는 유혹이다. 1997년경 선배 교장의 소개장을 들고 젊은이가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사업가였다. 그는 학교에 무료로 컴퓨터실을 만들고 30여 명이 공부할 수 있는 기기 일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대금은 1년간 수혜자로부터 회수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까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 학생이 수강료를 내고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소정의 국가고시를 통해 자격증을 부여한다고 하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것이 아닌가 싶어 흔쾌히 승낙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교내에 컴퓨터용 책상이며 고급 탁자, 그리고 와이드 스크린과 각종 제어장치까지 훌륭한 컴퓨터실이 생겼다. 나는 교장으로 부임한 이래 매우 큰일을 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공사를 마치자 사장이 내 앞에 고가의 노트북 한 대를 내미는 것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라서 무척 갖고 싶은 것이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서 사양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소개해준 선배가 나보고 ‘새가슴’이라고 비아냥거림을 했다. 소견이 좁고 옹색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뜻이다. 갖고 싶긴 했지만 한 번 사양한 터라 나중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개월 후, 그것이 사건화되어 선배가 교육청과 검찰로 호출되어 혼 줄이 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따지고 보면 나도 직접 소유하진 않았을 뿐이지 그 마음을 감히 청렴에 비유할 순 없었다. 오히려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였고 비겁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업주가 몰래 내 차 안에 넣어 두었다면 아마도 두 눈 감고 가지고 왔지 싶다. 그리고 청렴한 척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며 살았을 거다. 특히 내가 전문직에 있으면서는 여러 사람들한테 청탁을 받아 그 대가를 준 것은 없지만 돈을 받은 적이 적지 않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사악하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왔다. 국회 청문회나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뢰(收賂)와 관해 ‘금품은 받았지만 청탁한 일이 없다’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청렴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진 지 오래다. 청백리란 소극적인 의미로 ‘부패하지 않은 관리’로 인식되었는데 그보다 더 적극적 의미로는 ‘깨끗한 관리’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청렴정신은 ① 탐욕의 억제 ② 매명(買名)행위의 금지 ③ 성품의 온화성 등을 내포하고 있으며 선비사상과 함께 백의민족의 예의국가관에 의한 전통적 민족정신으로 여겨졌다. 이른바 가장 이상적인 관료의 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