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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심사위원·탈락교사·학부모 제각각 감사청구 도교육청, 학교장 직위해제 처분에 논란 계속 강원호반초교에서 실시하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강원도교육청이 학교장에 대해 직위해제 처분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강원도 내 유일하게 내부형 공모제를 실시하는 학교로 선정된 호반초에서는 현직교장과 2명의 평교사가 지원해 공모 심사 절차를 진행했다. 도교육청은 학교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1차 심사위원회 심사를 통해 후보자를 3배수 추천하도록 공문을 전달했다. 그러나 호반초 심사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심사를 통해 3명의 응모자 가운데 2명을 부적격자로 탈락시키고 1명만 춘천교육지원청에 추천했다. 춘천교육청은 해당 학교가 지침대로 추진하지 않았다며 3배수 추천을 재요구했으나 해당 학교 측은 떨어진 2명의 교사가 자격이 미달된 것으로 심사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도교육청은 20일 “지침준수를 요구하는 강원도춘천교육지원청의 지시를 거부하는 등 학교행정 혼란 및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며 학교장에 대해 직위해제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이같은 혼란에는 도교육청이 예시자료로 적격, 부적격 교사를 심사위원회가 판단하도록 했던 작년 회의 시나리오를 보낸 것이 시초가 됐다. 호반초 학운위를 주축으로 하는 심사위원들은 “도교육청에서 배부한 자료대로 최고점과 최하점 1인씩을 제외하고 40점 미만은 부적격 처리하도록 명시돼 있어 그대로 실행했고, 당시 춘천교육청에서 장학사가 참관을 할 때도 아무런 지적이 없었다”며 “교육청이 1차 심사 결과를 무시하고 무조건 3명의 후보자를 올리라면서 학교감사나 교장직위를 가지고 압박을 하고 있다”며 교육청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다. 여기에 전교조 강원지부는 탈락된 전교조 소속 두 명의 교사에 부적격 딱지를 붙여 명예가 훼손됐다며 해당학교에 대한 감사를 도교육청에 청구했다.게다가 일부 학부모들이 “교육청 지침에 따라 교장공모제를 추진하지 않을 경우, 혁신학교 선정이 철회될 우려가 있다"면서 적법한 절차로 심의가 진행됐는지에 대한 감사를 요구해 학교 내부 구성원 간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강원교총은 “그간 교총이 교장공모제에 대한 문제점으로 수차례 제기 하였던 학교의 정치화와 교육 구성원간의 갈등과 대립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해당학교 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심각히 훼손하는 교육청의 부당한 압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교총 “맞춤형 연수 지원부터” 교원평가 장기연수 대상자 선정이 형평성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19일 교과부와 각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장기연수 지명자는 모두 62명(교장 3명, 교사 59명)으로 집계됐다. 당초 기준(동료평가 2.5 미만, 학생 만족도 2.0 미만)에 따라 장기연수 심의대상자로 분류된 161명(교장 15, 교사 146명)의 38.5%다. 교과부 교직발전기획과 담당자는 “시도 심의결과, 참여 학생 수가 10명 이하로 너무 적거나 고의적인 저평가 사례가 다수 발견됐고, 또 명퇴 예정자, 질병자도 많아 실제 장기연수자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온정적, 의도적 면제도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교과부는 이미 면제자 55명은 근거가 미흡해 해당 시도교육청에 시정을 요구한 상태다. 특히, 전북(9명)․전남(7명)․광주(4명) 교육청은 장기연수자를 단 한 명도 지명하지 않아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교과부는 이들 3개 시도의 경우, 합리적인 사유가 아닌데도 면제한 경우가 다수라는 설명이다. 서울 22명, 경기 3명, 강원 3명과도 대조적이다. 결국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일부 시도와 그렇지 않은 시도 교원 간에 불평등 소지가 불거진다. 교원평가에 참여한 교원은 장기연수자로 지명되고, 아예 평가에 참여하지 않은 교원은 연수도, 처벌도 받지 않는 구조가 더 큰 문제다. 교원평가 반대 시도를 중심으로 지난해 평가 시행을 중단한 학교가 103개교, 미참여 교사만도 11.3%(약 4만여 명)에 달한다. 평가점수가 없는 이들은 아예 장단기 연수대상자도 되지 않는다. 결국 평가에 참여한 교사만 손해다. 교과부 담당자는 “이들에 대해 연수를 권고하고 있지만 이것도 강제할 수는 없다”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고 인정했다. 더욱이 이런 불평등은 국회에 계류된 교원평가 관련법이 처리되지 않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어 불만은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는 18일 현행 ‘교원 등의 연수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우선 개정해 법률 개정 전이라도 교원평가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것으로는 평가 미참여, 연수 미참여 교원을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연수규정 개정으로 교원평가에 불응하는 시도교육감에 대해 직무 이행명령이나 재정상 불이익, 직무유기에 대한 형사고발 등을 할 수는 있지만 교원에 대한 처벌은 법률 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교총은 “교원평가와 장기연수 대상자 심사가 공정성을 잃고 억울한 교원만 초래하게 됐다”며 “교과부와 시도는 장기연수를 폐지하고, 맞춤형 연수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부터 힘써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회장 나근형인천시교육감)는 1. 18일 강원도 평창군에서 교육에 관한 정보 교환과 주요 현안을 협의하기 위한 협의회를 갖고 '학생교육관련 교육기관 파견교사 배치 근거 마련 요구' 등 5건의 현안에 대하여 심도 있는 협의를 하였으며, 동계올림픽 개최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담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결의문을 채택했다. 특히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 학생교육관련 교육기관 파견교사 배치 근거 마련 요구 ○ 학교운영위원회 회의 운영상 문제점 해결방안 강구 ○ 신설학교 예정교부금 감액교부 재검토 및 시정요구 ○ 사립유치원 유치원비 신용카드 수수료율 지원 자율화 ○ 학교발전기금 결산시기 조정 5개 안을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인 8시보다 호텔 출발이 35분 늦어졌다. 전날 가이드에게 10분 전까지 로비로 내려오라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전달과정에 혼선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여행은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다. '늦는 게 무슨 대수냐'는 듯 우리 일행은 싱글벙글 웃으며 북쪽으로 향했다.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더라도 자주 보면 식상한다. 페더데일 야생동물원으로 가기 위해 관광버스가 어제 지났던 블루마운틴 고갯길을 오랫동안 달린다. 가이드는 지루함을 달래주려고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데 전날 시드니에 도착하기 바쁘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관광을 했던 터라 아침부터 단잠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건국기념일이 영국의 죄수인단이 도착한 날이고, 대부분의 직장이 12월 23일부터 1월 5일까지 휴가에 들어간다. 올림픽 후 영연방 국가대항 경기가 열리기에 람볼링, 크라켓 등 영국에서 시작된 공으로 하는 경기를 즐긴다. 전철, 버스비 등 기본 물가가 무척 비싸고 모든 농산물을 자급자족한다. 기름 값이 조금 저렴하지만 동에서 서쪽 끝까지 비행기로 5시간 걸릴 만큼 땅이 커 실질적으로는 연료비가 많이 든다.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남섬이 비행기로 3시간 거리지만 최소 2주 이상의 여행경비 때문에 우리나라 교민 중 이웃나라를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교민들이 시드니에 7만여 명, 호주 전역에 12만여 명 살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 특히 부족한 직업군(헤어디자이너, 제빵사) 이민 허용 불발로 많은 돈 투자하며 열심히 공부한 몇 만 명의 사람들이 허탈해하나 일본 등과 대조적으로 한국정부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서운해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오가는 차안에서 듣고,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도 많다. 가이드의 얘기에 귀기울이다보니 동물원에 도착했다. 페더데일 야생동물원은 날지 못하는 새 에뮤, 식물을 통해 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이름이 물이 없다는 뜻인 코알라, 육아낭에서 새끼를 기르고 두 발로 깡충깡충 뛰는 캥거루 등 호주의 희귀동물을 관람하는 곳이다. 야생동물의 생활과 함께 관목림과 나무그늘이 만든 자연 생태계의 모습도 볼만하다. 입구의 풍경이 동물원임을 알린다. 이곳에도 오리너구리가 있는데 나무 뒤에 숨어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잠든 코알라는 기념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만지고 떠들어도 반응이 없다. 코알라는 등을 만져야 하는데 먹이를 제공하는 유칼립투스 나무에 1마리씩만 올라가 생활한다. 잔뜩 겁먹은 표정의 캥거루가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닌다. 늙은 거북이가 있는 파충류관과 옆에서 느리게 걸어 다니는 에뮤도 구경한다. 한국은 영하 13도라는데 이곳은 영상 30도를 오르내려 동물원을 돌아보는 동안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동물원을 나와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북부 휴양지 포트스테판으로 이동해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포트스테판지역의 아나베이에 위치한 스톡턴비치는 바다와 해변, 모래사막이 만든 풍경이 이국적이다. 거대한 양떼처럼 남태평양이 만들어내는 파도와 포말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끝의 고운 모래 해변이 웅장한 사막으로 이어진다. 스톡턴비치는 바다와 사막과 산이 공존하는 진행형 모래사막이다. 입장료를 내면 자기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지만 관광객들은 전용차량인 지프를 타고 사막을 실감하는 드라이브를 즐기며 해풍에 따라 수시로 옮겨 다니는 모래언덕을 찾아간다. 뜨거운 태양에 데워진 모래 때문에 맨발이 고통스럽지만 30여m 높이의 모래언덕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이 아름답고, 모래에서 타는 썰매타기가 이색적인 경험이라 여행객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모래썰매를 타고난 후 바닷가로 내려가면 해수욕을 즐기거나 햇볕에 몸을 태우는 사람들이 많다. 눈길이 쏠리는 이방인이지만 비키니 차림이 아니면 어떤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닷물에 발목만 담가도 더위가 싹 달아난다. 남태평양이 만든 수평선을 바라보며 해변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 앞에 꽤 규모가 큰 람볼링장이 있다. 람볼링을 즐기는 노인들의 인상이 모두 인자하고 여유롭다. 여유로움이 하도 부러워 여행지에서 불현듯 앞에 닥칠 노후를 생각해봤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살이다. 스스로 행복을 찾아내고, 그것을 갈고 닦아 내 것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포트스테판의 넬슨베이는 돌고래와 펠리컨 서식지로 유명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남태평양의 야생 돌고래들이 떼를 지어 유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이 타고 있는 배 주위를 맴돌다가 물 위로 뛰어오르고, 가까이까지 배를 따라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날씨가 좋은데 고래가 보이지 않는 날도 있단다. 그래서 넬슨베이에서 고래 구경하는 것은 고래마음이라는 말이 생겨났나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어딜 가나 깨끗한 하늘, 깨끗한 공기, 깨끗한 바다를 만난다. 배위에서 바라보면 넓은 바다와 접하고 있는 주변 마을의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휴가와 주말을 맞은 도시인들이 여유를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오는 이유를 알게 한다. 주민들이 길거리에서 대형 독수리만한 펠리컨에게 먹이 주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모래사막과 돌고래 관광 등의 사업권을 주며 지역민들을 우대한다. 암까지 무료로 치료해 주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복지정책이 자식에게 유산을 상속하지 않고 기부를 당연시하게 만들었다. 직업선택은 일찍 고등학교에서 결정하고 타일, 목수, 용접 등 한국인이 손재주를 발휘할 수 있는 힘든 일에 보상이 크다. 세계 100위 안에 드는 유명대학이 5곳이나 되고 졸업정원제라 수료자가 많다. 학자금 대여제도가 잘 되어있고 취업 시 전공을 살린 졸업자만 인정한다. 교민들은 혈연과 지연이 작용하는 서류전형이라 취업에 어려움이 많고 의사, 변호사 등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져도 손님이 없다.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언어와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이뤄지는 조기유학의 문제점이 많다. 출산율이 낮아 아기가 태어나면 1만 불씩 지원하고, 상점들이 5시면 문을 닫아 생활이 불편하다. 서서 먹는 문화라 안주를 필요로 하지 않고, 술 취한 사람에게 술을 팔 수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달리는 차안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가 많이 이해되었다. 입구에 청포도가 달려있는 포도밭이 있고, 잘 가꾸어진 정원과 나무들이 탐나는 와인농장을 방문하여 다양한 와인을 맛보고 저녁은 호텔근처의 수모(SUMO)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교민이 운영하는 한식과 스시 전문식당으로 돼지불고기와 된장국이 맛있다. 상추와 쌈장을 여러 번 추가 주문해도 웃으며 갖다 주는 친절서비스가 돋보였다. 여행사에서 추진하는 해외여행은 관광객이 식당과 음식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다. 교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더라도 이렇게 서비스가 좋은 식당을 추천하는 가이드가 신망 받는다. 호텔로 돌아와 씻고 나니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냇가 양옆의 잔디밭은 2010년 마지막 밤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리를 건너 부모님과 함께 나온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족부터 생각하는 게 나이 먹는 증거이고 성인이 된 자식 잘못될까 늘 조바심하는 게 부모마음이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여행에 동참하지 못한 아이들이 생각났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시내의 밤거리를 돌아본 후 맥주와 콜라를 사가지고 호텔로 들어왔다. 소인수인 동행자 19명의 주거지가 전주, 용인, 부산, 수원, 청주로 전국구였다. 이번 여행에 7명이나 동참하신 전주 분들이 초대를 했다. 와인과 소주를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니 더 다정해진다. 때로는 이렇게 맺은 인간관계가 활력소가 된다. 방으로 돌아와 아내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시드니 중심가에서 열리고 있는 새해맞이 행사가 TV에 나왔다. 이곳은 새로운 2011년을 맞이했다고 길거리에서 폭죽을 쏘며 축하하는 시간이지만 한국의 새해맞이는 아직 두 시간이 남았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지만 피곤에 지친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혼자 여행내용을 정리하며 새해를 열었다.
2010 수능 응시자 10.9%만이 ‘한국사’ 선택 국사 홀대는 정체성, 생존 포기 어리석은 짓 최근 동북아 각국들은 영토・역사・자원・핵문제 등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과 충돌을 벌였다. 특히 천안함, 연평도 피폭 사건 등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남북통일과 민족적 존립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복잡하고 심각한 국제정세 속에서 그 해법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려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은 선조들의 발자취 속에서 터득한 교훈들을 바탕으로 오늘의 삶을 성찰하면서 내일을 설계하고 올바른 길로 찾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학문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왕학(帝王學)의 핵심으로 국정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실례로 중국의 마오쩌뚱은 자치통감을 끼고 살았고, 영국의 처칠 수상은 국정의 해법을 역사 속에서 찾곤 했다. 역사는 공동체의 기억으로서 어느 민족이나 국민을 막론하고 정체성과 단결력, 존망을 좌우하는 정신적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그래서 역사의식이 투철하지 못해 단결하지 못한 민족이나 국가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곤 했다. 또한 현실사회에서 역사는 그 나라의 민족이나 국민의 국제적 위상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역사를 갖지 못한 민족이나 국민들은 종종 외국에서 푸대접을 받곤 한다. 이처럼 역사가 중요할진대, 우리 사회에서 역사, 특히 한국사는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을까? 국사과목은 원래 고교까지 필수과목이었다. 그런데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세계화의 슬로건 속에 고1까지만, 현 정권 들어서는 중3까지만 필수과목으로 배우도록 고쳤다. 한국사가 고교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현재 고교생들은 우리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2010학년도 수능시험 전체 응시자 가운데 10.9%만이 한국사를 선택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반면 일본에서는 대입시험에서 일본사를 선택하는 비율(2009년 40%)이 높을 뿐더러 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지자체들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애국주의’가 국가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부상하면서 민족주의 및 역사교육이 한층 강화되고 있으며, 중국 근현대사는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 최근 주요 국가들의 역사과목 수업비율은 독일(20%), 프랑스(15.5%), 영국(10.8%), 일본(10%), 중국(9.4%), 미국(9%) 순이고, 우리(5%)는 꼴찌다. 우리는 왜 우리 역사를 이렇게 소홀히 취급할까? 그것은 몇 가지 잘못된 인식들 때문이다. 첫째는 ‘국사 해체론’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국사 교육 강화가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한 국수주의를 심화시켜 세계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고 민족적 대립과 충돌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둘째는 역사과목이 단순히 입시를 위한 암기과목에 불과하다는 사회 일각의 몰(沒)역사적인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입시생들은 암기할 것이 많은 역사과목을 기피한다. 셋째는 효율성과 물질적 이익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풍조 속에서 역사를 돈벌이와 무관한 하찮은 학문으로 여기는 편협한 사회인식 때문이다. 중・일 등 동북아의 강대국들이 저마다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역사교육을 강화시켜가는 상황에서, 약소국인 우리가 이렇게 먼저 국사를 해체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궁극적인 생존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또한 역사과목을 암기과목 정도로 인식하는 교육현실과 배금주의적 신자유주의는 치열한 생존경쟁과 민족적 분열, 그리고 이기주의를 심화시켜 궁극적으로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단결, 국가적 존립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감히 예언한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현실의 삶을 성찰하고 올바른 미래로 이끌어주는 이정표인 동시에 공동체의 존망을 좌우하는 정신적 동력이다. 한국사는 그것을 만들어온 우리 자신의 표상이자 얼굴이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면 투철한 역사의식 속에서 우리 역사를 찬란하게 가꾸어야 한다. 민족적 대립과 충돌이 격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북통일과 한민족의 부흥을 실현시키려면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선인(先人)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자기를 알고 타인을 아는 지름길은 바로 ‘역사’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역사가 우리 민족의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일진대, 한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전락시키는 오늘의 교육현실은 피를 토하게 한다. 한국사는 당연히 필수과목으로 해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91.2%가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해야 한다’고 답한 사실을 곱씹어봐야 한다.
2011년도 수석교사를 2000명 선발하겠다고 야심차게 대통령께 보고한 교과부의 계획이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예년과는 달리 금년 시․도별 수석교사 선발전형에서 대규모 미달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수석교사(Advanced Skills Teacher)는 교장이나 교감 등의 관리직에 진출하지 않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서 자신의 교수기술을 확산시키는 업무를 맡는 직위를 말한다. 다시 말해, 수석교사는 부장교사와 교감의 중간 위치에서 학교수업 외에 학교와 교육지원청 단위의 수업코칭, 현장연구, 교육과정 등 개발보급, 교내연수 주도, 신임교사 멘토, 교원양성 및 연수기관 강의 등을 맡게 된다. 수석교사가 되면 교과부장관 명의의 인증서와 함께 매달 연구 활동 지원비를 지급되며, 학교상황에 따라 수업시간이 50% 까지 줄어든다. 이러한 수석교사제도는 이미 교육선진국인 영국 등 몇몇 나라에서 시행중인 제도이다. 수석교사제는 그동안 많은 교육정책들과 달리교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정책의 성공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또한 승진보다는 교단교사가 존경받고 잘 가르치는 교사가 우대받는한 차원 높은 수석교사제는 성공적인 교육정책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모든 교원의 관심과 함께우리 교육의 신선한 변화를 예고한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8년부터도입된 수석교사제가4년째 시범운영만 되풀이하면서 이번에 확대운영 계획은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가장 큰문제는 시도별 수석교사 전형에서 우수교사들이 지원을 기피한 것이다. 이 같은 기피현상은 한 마디로 수석교사제에 대한 법적인 뒷받침이 없고, 그 지위와 역할이 불분명하여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1년 단위의 시범제도로 매년 지원해야 하는 부담도 있고, 주당 수업시간의 감축으로 인하여 당해학교 교사의 수업시간의 증가에 대한 불편한 점도 기피의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수석교사제는 그 운영에서도 애매한 점이 많다. 특히 동료교사에 대한 수업컨설팅을 하라고 수업을 최대 50%까지 줄여 놓고 수업결손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없고, 성과상여금 평가에서는 수업시수가 적어 낮은 등급을 받아야 한다. 또한 당해학교의 교원연수뿐 아니라 인근학교 및 교육지원청의 교원연수 등으로 인한 잦은 출장은 동학년과 관리자와의 심리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수석교사제가 학교현장에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수석교사의 확실한 법적 신분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미 수석교사제 법제화 법안은 국회 교과위에 상정되어 계류 중이지만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4년째 시범운영 중이라면 하루 빨리 법제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1단계 서류평가 및 동료교원 면담, 2단계 수업시연과 수석교사의 역량평가 등을 통해 선발되었다면 교과부장관의 인증제보다는 수석교사 자격증을 발급해 주어야 한다. 또한 지금처럼 수석교사를 시범운영이라는 미명 아래 1년마다 재선발 하는 것보다 교사의 별도정원으로 관리해야 동료교사들로 오는 부담을 줄이고 수석교사로서 당당한 권리와 자존심을 찾을 수있다. 둘째, 수석교사에 대한 확실한 처우가 제시되어야 한다. 거듭되는 말이지만 시범운영이다 보니 수석교사의 연구 활동비도 월 15만원에서 40만원, 주당 수업시수도 초등 12~14시간, 중 10~12시간, 고 8~10시간 내외로 애매한 표현을 하고 있다. 문제는 시․도의 교육예산에 따라 다르게 지급될 수 있고, 학교의 실정에 따라 수업시간의 적용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명확한 규정은 수석교사들로 하여금 마음의 짐인 동시에 동료교사들 간의갈등의 단초가될수 있다. 셋째, 수석교사는 미국의 교사교육교사(training teacher)처럼 교원의 인적자원관리를 위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이 트레이닝 티처는 학생의 수업지도 없이 교사수업계획 및 지도, 교사연수지도 및 관리를 하고 있다.수석교사가 일정시간의 수업을 담당하면서 교사연수를 제대로 관리․ 운영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 마리의 토끼보다는 한 마리 토끼라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제도 하에서는 무리한 요구라 생각된다. 지금까지 수석교사제의 시범운영을 통해 역할, 지위, 권한, 보상에 관해 보다 명료한 법제화 없이는 교과부가 밝힌 "교감, 교장으로의 승진체제 외에 교사로서 가르치는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의 취지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므로교육의 제도나 정책은 보다 철저한 계획과 신중한 시행, 그리고 냉정한 평가가 뒤 따라야 성공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광화문(光化門)은 조선왕조의 상징이다. 통치의 상징물이다.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한 일제는 전각을 헐어내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었다. 그럼에도 광화문은 여론의 반대가 워낙 거세 헐지 못하고 건춘문 옆으로 옮겨 놓았다. 그것이 6·25전쟁 때 피폭을 당해 현판도 소실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철근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복원하고 친필 한글 현판을 단다. 그동안 광화문은 옛 모습이 아니었다. 1990년 복원을 시작했다. 장장 20년 간 이어진 경복궁 복원정비 사업은 2010년 8월 15일 광복 65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드디어 조선왕조의 법궁(法宮ㆍ임금이 머물며 정사를 돌보는 궁궐)으로 건립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복원이 완성되었다. 복원 사업에는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현판 제막식이 하이라이트였다. 광화문 현판은 1866년 고종 중건 당시 영건도감(營建都監·조선시대 국가적인 건축공사를 관장하던 임시관청)의 책임자였던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것을 복원했다. 84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광화문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주었다. 경복궁 복원은 단순한 문화재 복원 사업이 아니었다. 일제에 난도질당한 민족 자존심과 민족정기의 회복이자 잃어버린 역사를 재건하는 대역사였다. 정부가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 광복절을 맞이하여 광화문광장에서 경축식을 열면서 현판 제막식을 함께한 것도 우리 역사를 되찾는다는 의미를 둔 것이다. 그러나 8·15 행사에 맞춰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한 탓인지 복원의 꽃인 현판에 금이 갔다. 판재 중 불량 목재가 끼어 있었다. 숱한 전문가들과 장인이 함께 참여했다는데 그런 일이 발생했다. 현판 제작비는 고사하고 우리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훼손되었다. 복원 석 달 만에 금이 간 광화문 현판을 결국 새로 만들기로 했다. 새로운 현판 제작을 앞두고 글씨를 새로 쓰자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광화문 현판은 임태영이 쓴 현판을 디지털로 복원한 것으로 생동감이 없다는 것이다. 광화문 현판은 나라의 얼굴이랄 수 있는데 복사해 확대한 것이라 죽어 있는 글씨다. 실제로 현재의 글씨는 획이 가늘어 힘이 없고, 무엇보다도 육필(肉筆)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다보니, 고졸하고 예스러운 멋도 없다. 그리고 임태영의 글씨 자체가 광화문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차라리 박 대통령의 한글현판이 월등히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중앙일보가 원로·중견 서예가 14명을 인터뷰한 결과(2011년 1월 13일자 보도)도 11명이 현판 글씨를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글씨를 바꾸자고 한 11명 중 8명은 현대의 서예가가 새로 써야 한다고 답했다. 3명은 새로 쓰거나 추사 등의 글씨에서 집자하자고 답했다. 광화문 현판을 현존 서예가가 다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누가 써야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현존 서예가가 쓰면 복원의 의미도 퇴색되고 역사성도 없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 하자는 주장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김정희가 시대를 초월한 학자라고 볼 때 복원과 역사성이 함께 있어 앞의 방법보다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훈민정음을 집자하자고 제안한다. 이번 조사에서 근원(近園) 김양동(68) 선생님도 우리 문화의 주체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훈민정음을 집자를 주장했다. 훈민정음의 집자는 역사성이 있고,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살려 주는 방법이다. 이 글씨는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우리의 자랑이다. 서예가들은 광화문 현판을 바꾸면서 원래 이름인 한자를 쓰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즉 광화문은 과거의 광화문을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글을 쓰는 건 잘못이라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편협한 사고다. 현판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마당에 새로 제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 현판은 앞으로 수백 년 이상 그곳에 걸려 있게 된다. 앞으로의 역사가 더 중요하다. 더욱 최근 서울시는 세종대로를 한글 상징 거리로 꾸밀 계획이라는 보도다. 국가 상징 거리인 서울 세종대로 주변이 한글과 관련된 마당과 공원 등을 갖춘 한글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새롭게 꾸며진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의 출발점이 되는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거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문화재청은 현판제작에 대한 자문위원회 등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국가적 현안으로 서예가에게만 물을 문제가 아니다. 또 광화문 현판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복원을 꼭 옛날과 똑같이 한다는 좁은 사고도 버려야 한다. 현판 글씨 문제는 세종로 일대의 한글 공원과도 함께 일을 추진하면 답이 명료해진다.
'5시간의 수업을 하고 그 이상 할때는 초과수당을 지급하라' 전교조 서울지부 등 4개 교원노조에서 교섭안건으로 채택한 것이다. 학교경영을 맡고 있는 교장과 교감에게 수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사와 직급이 다른 교장, 교감이 수업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 교섭안건으로 채택된 것인지 궁금하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한 것이라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교장, 교감과 교사는 다른 직위를 가지고 있다. 직위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헤아려야 한다. 5시간이 왜 나왔는지도 궁금하다. 6시간도 있고, 4시간도 있고, 7시간도 있는데 굳이 5시간인 이유가 무엇인가. 타당성있는 시간인지도 밝혀 주고 교섭을 해야 옳다. 왜 그런지 밝히지 못한다면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간혹 발생하는 보강 시간에 교장이나 교감들이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특강 비슷한 수업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강제로 수업을 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고, 순전히 자발적으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교장, 교감들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요즈음 같이 인성교육이 강조되는 시대에 교장, 교감의 특강은 신선하게 받아들여 질수 있다. 그러나 매주 5시간의 수업을 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학교경영을 위해 나름대로의 업무가 있을 텐데, 강제로 수업을 시키는 것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필자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사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교장, 교감의 표준수업시수라는 것이 현실과 맞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교사들의 표준수업시수부터 먼저 정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싶다. 왜 그런 주장을 펼치는지 충분히 이해를 시켜야 한다. 교장, 교감이 수업을 함으로써 교사들의 수업경감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지, 아니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인지 밝혀야 한다. 만일 전자의 이유라면 납득하기 어렵다. 수업경감을 위해서라면 해당교과에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재량활동 시간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수업을 하라고 해도 결국은 교사들의 수업경감을 위한 임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부장교사와 일반교사가 하는 일이 다르듯이, 교장, 교감이 하는 일도 많이 다르다. 얼핏보면 별로 할 일없어 보이는 교장, 교감이지만 나름대로 상당한 업무를 하고 있다. 필자가 교장, 교감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학교에 교감이나 교장이 단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를 통해 교장, 교감, 교사가 평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라면 수업을 20시간씩 하라고 했어야 옳다. 그렇게 해야 다른 교사들과 평등해 지는 것 아닌가. 교장, 교감의 수업참여를 독려하기 이전에 자신의 수업을 돌아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진정으로 최선을 다해서 수업을 하고 있는지.... 과다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교섭을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낮이나 밤이나 학생들이 드나드는 곳이 학교이다. 이런 학교에 교사들이 항상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싶다. 방학중 당번교사를 없애면 누가 학교에 남아서 공문처리하고 학생들 전, 출입 담당할 수 있는가.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교살라면 최소한의 기본적인 것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유를 막론하고 최종책임은 학교에 있는 것이다. 이런 학교를 방학이라고 비워도 된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상당한 검토를 통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교섭안건으로 해도 늦지 않다.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그에따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까 싶다. 최소한 보편 타당하고 상식선에서 이야기 될 수 있는 안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하고 있지만 그 변화에 발 빠르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나라는 영원히 후진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변화의 속도에 동참하지 못해 집단간에 갈등이 날이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우리사회의 변화속도를 보면 기업과 사업체는 100마일로, 시민단체는 90마일로, 가족형태는 60마일로, 노동조합은 30마일로, 정부관료조직은 25마일로, 학교는 10마일로, 세계적인 관리기구(UN,IMF,WTO등)는 5마일로, 정치조직은 3마일로, 법은 1마일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빨리 변해야 할 집단이 오히려 변화의 속도가 느리므로 정치의 선진화는 물론 경제선진화도 기대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미래의 직업세계에 미칠 삶의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요즘 들어 전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였으며, 이에 따라 직업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과거에 성장을 주도했던 업종이 사양산업이 되었는가 하면, 새롭게 출현한 산업이 우리 경제의 성장을 주도하는 업종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인해 산업의 변화는 직업의 변화로 이어진다. 고령인구의 증가와 주 5일제 근무의 확산으로 고령인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 관련 직업이나 여가 및 관광 관련 산업분야의 직업들이 새로운 성장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으므로 이러한 직업세계의 변화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여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직업을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직업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직업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미 우리사회도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였고, 하루가 다르게 청년들의 직업시장은 세계화되었다. 그리고 평생직장의 개념은 붕괴되고 평생직업 개념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에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한국직업능력개발원’(http://career.go.kr/career/data_2009/fusion2009_v2/index.html)에서 ‘미래의 직업세계’직업환경 변화와 사회변화를 다음과 같이 예측하고 있다. 첫째,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 .미래 학자들은 21세기는 지식과 정보가 권력을 주도하는 정보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고, 실제로 기술의 진보와 정보화 시대의 도래로 인해 노동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본이나 노동과 같은 유형 자산에 의해 기업의 가치가 정의되었던 산업사회와는 달리 정보화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지적 활동에 의해 창출되는 브랜드, 디자인, 기술 등의 무형 자산이 기업의 가치를 정의하게 된다.즉, 정보화 사회에서 기업 경쟁력의 근원은 자본이나 개인의 노동력이 아닌 새로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개인의 지식 능력 활용 및 생산 능력에 있다.앞으로 이러한 노동시장의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뿐 아니라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식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증대할 것이다. 둘째, 세계화 및 성과주의 확산.정보화와 교통수단의 급속한 기술발전은 전 세계를 하나의 생활권·경제권으로 통합시키는 세계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국가와 국가 간의 규제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국가 간의 상호교류를 의미하는 국제화와 달리, 세계화 속에서는 국가와 국가 간의 규제가 완화되어 전 세계라는 단일시장을 중심으로 보다 광범위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진다.따라서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찾아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등 개인의 구직활동의 범위가 전 세계로 넓혀질 것이며, 국가 간이나 기업 간의 이해관계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국제 관련 전문가의 수요 역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세계화 속에서 나타날 직업세계의 또 다른 변화는 기업의 성과주의 강화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직장문화의 확산이다(성상현, 2004). 직급, 학력 등을 중시하는 연공주위와 달리 성과주의에서는 성과에 대한 개인의 기여도와 능력의 발휘 정도를 중요시하며, 철저히 개인의 능력에 따라 업무실적이 평가된다.IMF 외환위기 이후 몇몇 국내기업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성과주의를 도입해 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기업들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성과주의를 더욱 확산·강화할 것으로 보인다.삼성, LG, 현대, SK 등 대기업들은 해외시장 진출을 통해 한국 기업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의 인력구성 역시 인종과 국적을 망라하여 다양화·복잡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일터의 다문화주의, 즉 다문화·다언어·다민족 인력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직장문화가 확산될 것이다. 셋째, 평생직장에서 평생직업으로.전통적으로 과거에는 사람들이 한 번 직장에 입사하게 되면 그 직장에서 은퇴할 때까지 있는 장기적인 고용 안정을 희망했었다. 이처럼 한 직장에서 평생 동안 일하고 싶어하는 ‘평생직장’의 개념은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사라져 갔다. 그 당시 많은 기업들이 부도로 사라졌고,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게 되었다.또한, 지식기반 산업이 발전하고, 급격한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는 기업 간의 무한경쟁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즉, 승자만이 살아남게 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서는 개인이 몸담고 있는 기업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다른 회사에 합병되어 개인의 일자리가 없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다.이와 더불어 최근의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 중ㆍ장년층의 고용 불안 심화, 임시ㆍ일용직과 계약직의 증가는 우리의 고용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고 있고, 이러한 직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평생직장’은 ‘평생직업’의 개념으로 대체되고 있다. 평생직업’의 개념은 자신의 직업능력을 갈고 닦아서 그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여, 직장을 옮긴다 하더라도 개인의 일에 평생 동안 종사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다. ‘평생직장’의 시대에서는 직장을 여러 번 옮기는 것을 안 좋은 시각으로 바라봤으나 요즘은 직장을 옮기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며,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결국, 개인이 하고 싶을 때까지 개인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고 개인의 경력을 관리해 나가는 ‘평생직업’의 개념은 국경없는 무한경쟁이 더욱 증대되고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으로 개인의 경제수명이 연장되는 미래의 직업세계에서 더욱 중요시될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갈 직업세계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과거 우리나라 경제의 중심축이었던 제조업은 그 자리를 서비스 산업에 넘겨주고 있고, 품목 간의 경계는 물론이고 산업 간의 경계마저 무너지고 통합되고 있으며, 환경문제와 관련된 친환경산업이 산업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비쿼터스의 시대를 맞아 직장의 개념도 바뀌어 직장에 출퇴근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위와 같이 앞으로 직업환경과 직업세계의 변화에 따라 미래 사회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변화속에서도 우리 젊은이들이 보람찬 삶의 행복을 위해서는 교육당국은 교육과정을 과감히 수정 · 보완하고, 중· 고등학교에서는 수준에 맞는 맞춤식 진로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산학협동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부여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도로 곳곳에 결빙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햇볕이 나고 기온이 오르며 얼음은 녹았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웠다. 추운 날씨에 체육관에서 기다릴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생각하니 마음은 조급했지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약속 시간 5분 정도 남겨놓고 나서야 가까스로 교문(부여여중)에 들어섰다. 교장선생님을 찾아뵙기 위해 현관으로 길을 재촉했다. 쉬는 시간인지 아이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으며 낯선 손님에게도 깍듯하게 예의를 차려 인사를 했다. 고풍스런 감청색 교복에 밝은 표정 게다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사, 그것만으로도 아침부터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교장실로 가기 위해 잠시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나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물으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을 뵌 지 근 2년여 만이다. 예전 모습 그대로여서 더욱 마음이 편했다. 반갑게 수인사를 나누고 교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께서 안내한 곳은 교장실이 아니었다. 장학실이란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 아마도 회의를 할 때 사용하는 공간인 듯 싶었다. 오히려 교장실보다는 편하겠다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곳은 교장실이었다. 교직에 들어선 분들에게는 어쩌면 교장선생님은 누구나 한번쯤 듣고 싶은 호칭임에 분명하다. 물론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아이들 가르치는 데서 보람을 찾는 분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나이가 들면 큼지막한 팻말이 붙은 교장실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결재도 하고픈 심정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교장은 ‘학교의 으뜸 직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위치가 곧 권력이라고 이해하면 자칫 권위적인 어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장학이란 말은 ‘공부나 학문을 장려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직위나 직책보다는 교육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교장선생님께서 교장실 대신 장학실로 명칭을 바꾼 것만 봐도 학교의 리더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싶어 마음 한 켠으로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장학실은 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고 문 옆에는 외부 손님을 위한 신발장이 놓여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문은 바깥 복도와 평평하게 처리해 문턱을 없앴다. 누구나 마음 편하게 들어와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마음 씀씀이를 읽을 수 있었다. 실제로 잠깐 동안이었지만 몇몇 선생님들이 자유롭게 장학실로 들어와 교장선생님과 편안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가움은 잠시 접어두고 아이들 얘기로 돌아갔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기본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생활지도로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아이들 다루기가 갈수록 만만치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약간 과장되지 않았나 싶어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확신에 찬 말씀이다보니 오히려 궁금증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제있는 아이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한 후 이를 토대로 부모님과 함께 일정 기간 동안 봉사활동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조취하고 이 과정을 마쳤을 때 학교가 개입하여 정상 생활을 돕는다는 것이다. 흔히 문제 학생의 뒤에는 문제 가정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부모의 의지만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현실임을 감안하면 교장선생님의 의지는 더욱 훌륭해 보였다. 물론 문제 학생이 있으면 가정과 연계하기보다는 학교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쉽고 편안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다보면 징계는 솜방망이에 그치고 문제 학생의 일탈은 악순환을 거듭하게 마련이다. 주말의 시작인 토요일 오전이고 전교생(639명)이 모인 자리인지라 강연이 쉽지 않을 듯 싶었다. 주제 또한 ‘자기 주도적 학습방법’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관심없는 학생들은 졸거나 딴짓할 개연성도 높았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했다. 여러 차례 강연을 해봤지만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흐트러짐없이 연단을 주목하는 것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팔과 다리가 없는 닉부이치치 얘기를 동영상으로 편집하여 보여줄 때는 눈물을 글썽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작은 정보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메모장에 깨알처럼 받아적으며 연단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보일 수가 없었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른다. 다만 연단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에 매료되어 등에 땀이 흐를 정도로 분위기에 취한 기억밖에는 없다. 강의를 진행하는 내내 장학실에서 들었던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기본이 충실합니다.”라고. 그렇다. 기본이 된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학교의 역할과 교사의 본질은 무엇일까? 정치 권력과 그 권력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갖고 있다는 언론이 너도 나도 교사흔들기에 나서고 있는 요즘, 교단에 서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괜히 주눅들고 움츠러들어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다. 그런데 부여여중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오히려 자신감에 넘쳤다. 교장실을 장학실로 바꿔 소통의 폭을 넓히고 문제 학생은 외부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등 원칙과 소신을 갖고 교육활동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촌지가 유행하던 때나 지금처럼 철저한 단속으로 촌지가 거의 사라진 때나 촌지는 남의 일처럼 보였다. 서울에서도 교육여건이 안좋은 곳으로 따진다면 끝에서 따지는 것이 훨씬 빠른 곳에서 20년 이상을 재직해 왔다. 초임발령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다른 교육지원청으로 옮긴 적이 없다. 공납금을 못내는 학생들이 많은 학교, 수학여행비를 못내는 일이 간혹 발생하여 나중에 성인이 되어 갚기로 하고 대납해 주었던 학교 등에서 근무를 해왔다. 소풍때 김밥을 싸오는 학생이 거의 없는 학교에서 생활해 왔다. 소풍지에서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었던 기억도 난다.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서비스로 온 군만두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졸업한지 10년도 더 지난 제자가 찾아온 적이 있다. 중학교 시절 반장인데도 소풍때 선생님에게 김밥들 못 싸다 드려서 식사대접을 하기위해서 왔다고 했다. 주로 그런 학교에서 근무를 해왔다. 언론에서 촌지 이야기가 나오면 '뭐 저런 학교가 다있나. 저 기사 정말인가.'라는 생각을 갖곤 했다. 수년전에 한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촌지를 받거나 학부모들로부터 식사대접을 받는 문제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일이 거의 없는 학교라고 대답했지만 기자가 찾아왔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방송에 나오진 않았다. 기삿거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그 기자에게 한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교사들이 잘못하는 일만 기사로 내보내지 말고 어두운 곳에서 정말 열심히 하는 교사들 좀 찾아보아라. 촌지받는 교사 찾으려는 노력의 절반만 해도 훌륭한 교사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제발 그렇게 좀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기자는 웃으면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교사들을 비난하는 기사는 많이 접해도 교사가 선행을 했거나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사는 거의 접하기 어려웠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촌지의 기준을 3만원으로 못박았다고 한다. 어떤 경우라도 3만원 이상은 촌지로 본다는 것이다. 당연히 징계를 하겠다고 한다. 촌지받는 교사를 신고하여 250만원의 포상금을 타간 경우가 있다고 한다. 촌지를 준 사람이 친인척 관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교사는 상품권으로 받는 30만원을 돌려 주었지만 징계를 피해가지 못했다고 한다. 선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3만원 이하라도 몇번 받게되면 촌지 여 부를 따져서 징계를 한다고 한다. 규정을 어기면 당연히 징계를 받아야 한다. 학부모들이나 교사들 모두 촌지문제에는 냉정해 져야 한다. 아무리 댓가성이 없다고 해도 3만원 이상은 안되기 때문이다. 선물도 받지 말고 식사도 같이 해서는 안된다. 도리어 교사가 식사대접을 하는 편이 훨씬더 편할 것이다. 선물도 안된다. 만일 학부모가 음료수라도 사들고 오면 그것을 마시는 교사들은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 3만원 이하라도 촌지인지 아닌지를 조사하여 징계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올때는 반드시 빈손으로 오라는 안내를 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우리나라 정서상 빈손으로 오라는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규정이 있다면 당연히 지켜야 한다. 다만 교사들이 촌지를 받는지 암행감사를 실시하고 신고자에게 포상금까지 지급하는 것은 정서에 맞지 않는다. 당국에서 교사를 못믿고 학교를 불신하기 때문에 이런 방안이 나오는 것이다. 제발 학교를 좀 믿어 주었으면 좋겠다. 지속적으로 촌지를 받지 않도록 홍보하고 연수를 통해 촌지가 금지되도록 해야 한다. 청렴 연수를 더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불신을 조장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교사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정책독주가 거침없다. 대안 없는 무조건 체벌금지와 다른 교육예산 끌어오기식의 전면적 무상급식에 이어 이번에는 초등 중간․기말고사 폐지를 들고 나왔다. 곽 교육감은 지난해 12월 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초등학교 교실·교사별 상시평가 시스템 도입 구상을 10일 신년 간담회에서 정식으로 밝혔다. 무조건 체벌금지, 복장 두발 자유를 포함한 학생인권조례 추진도 학생들이 두 손 들어 환영할 정책들이었지만 이번 것도 너무나 솔깃한 것이어서 그런지 이미 초등학생 카페에서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찬양하라” “곽노현 교육감님 사랑해요” 라는 환영의 글이 올라오는 등 한껏 들뜬 모습이다. 그러나 학교현장과 학부모의 반응은 반대로 가고 있다. 교총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중간․기말고사 폐지 반대 학교현장 의견은 62%로 매우 높았다. 그 이유로 수행평가만으로는 학생실력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꼽았고, 만약 이 정책을 실행할 경우 74%가 학력저하 우려라는 반응을 보였다. 몇 가지 정책에서 이미 검증되었듯이 곽노현 교육감의 정책은 ‘학생은 찬성, 교원은 반대’라는 등식이 여기서도 성립됨을 보여준다. 학부모들도 “중간․기말고사 폐지로 매일매일 평가로 바뀐다면 시험부담이 오히려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 “시험자체가 없어진다면 학원가서 돈 내고 레벨 테스트 받거나 경시대회에 나가 실력 평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오히려 사교육비가 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세상에 시험 좋아하는 사람이 많겠는가. 시험 전날 학교에 불이라도 났으면 하는 염원을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중간․기말고사가 필요하냐, 안하냐의 논의가 학생편의위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한다. 부정적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것을 폐지하는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전체의 큰 맥락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과 학교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대한민국 존재 사라지는데, 입시교육만 해서야 통일안보 교육예산 삭감해 무상급식 전환 안 돼 우리 대한민국은 지난해에 북한의 어뢰 피격으로 인한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 대한 무차별 포격으로 수많은 장병들과 민간인들이 살상되는 참변을 겪었다. 북한의 이와 같은 무모하고도 무분별한 군사적 행동은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모독하는 도발이라는 표현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다. 이는 정치적 상황이 어찌되었던 무고한 장병과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북한 정권의 이러한 도발행위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당수의 후속 세대들이 이러한 참극이 그냥 영화나 게임의 한 장면 같아서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나?”라는 우려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교총이 서울시내 초(5‧6학년), 중‧고교생 12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학생들의 안보관과 남북관계에 대한 의식 수준이 심각함을 보고하고 있다. 연평도 피격이 북한의 도발인 것을 모르거나, 한국의 군사 훈련이 북한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등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응답자의 4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학생이 26%, 6·25 발발 연도(1950년)를 정확히 쓴 학생은 50.1%에 그쳤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모르는 학생도 36%에 달했다. 또한 중․고교생에게 “우리나라의 안보에 가장 위협을 주는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를 묻는 질문에는 76%만 북한이라고 답변했고, 나머지 24%는 일본, 중국, 미국 등이라고 대답했다. 안보는 국군장병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도 부족한 지금의 상황에서 설문조사 결과와 같은 우리 내부의 불일치는 자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피폭과 같은 사태의 재도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린 학생들에 대한 가정이나 사회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학교 교육을 통한 안보교육이 대단히 중요함을 말해 준다. 최근 한국교총은 한반도 주변 정세를 직시하고 우리 스스로 자주적 안보정신의 재정립을 위해 안보교육의 강화를 역설하고, 안보관련 현장체험학습의 실시 등의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총의 노력과 더불어 우리 교육현장에서 노력해야 할 안보 교육에 대하여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의 학생들에게 안보에 관한 현실을 정확하게 알려 주어야 한다. 대학입시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우리의 학교현실에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격 등에 관한 안보교육은 입시공부에 방해만 되고, 시간만 허비하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존재가 사라진다면 대학입시교육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수백만의 북한 주민이 6. 25 전쟁 중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으로 피난을 내려 온 이유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면 답은 명료하다. 둘째, 정부와 교원단체 등은 교사들의 안보에 관한 인식전환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사들은 승진을 위한 직무연수 등에는 앞 다투어 참여하지만, 안보 관련 교육 연수 등에 대해서는 소극적 참여를 하는 경향이 있음을 본다. 교사들이 계획하는 현장체험학습이나 캠프 등의 프로그램만 봐도 예전에는 통일안보와 관련되어 휴전선 견학, 통일교육관 방문, 국군장병 위문편지 쓰기 등이 반드시 있었지만, 지금은 해외여행이나 스키캠프 등의 즐기는 프로그램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에 비추어 통일안보에 관한 교사의 인식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평화를 상투적으로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군사적 도발을 일삼는 북한의 태도에 대해 다시는 작년과 같은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북한정권은 언제고 무력도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간파하고, 이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통일안보 교육예산을 삭감하여 선심성의 무상급식으로 전환을 시도한 예는 점심 한 끼 먹이려다 모두가 굶을 수도 있다는 현실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작년의 사태들을 교훈삼아 우리의 자주국방을 위한 노력을 다시 처음부터 다져야 한다. 학교현장에서는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 줄 학생들에게 올바른 안보정신과 사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을 통해 길러주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 번영을 이끌어 갈 학생들의 확고한 안보관 정립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없다는 것이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예전에는 ‘즐’이 즐겁게라는 의미로 쓰더니 어느 순간부턴 빈정거리거나 따돌리는 부정적 의미로 바꿔서 쓰더라고요.” 서울지역 중학교 정모 국어교사는 요즘 학생들이 욕설이나 비속어를 악의 없이 장난처럼 쓰는 것을 자주 접하게 된다. 최근에는 ‘레알(정말)’, ‘려차(욕설영어단어를 한글자판으로 친 것)’, ‘무지개매너(매우 매너가 없다)’ 등 뜻조차 알기 어려운 말이 마구 쓰이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정도다. 정 교사는 “워낙 신조어를 쓰다보니깐 욕설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이러다가는 아이들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용어사전을 찾아봐야 될 것 같다”며 “온라인게임과 음란물에 빠져들면서 욕설, 비속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고 토로했다. 4일 교과부와 여성가족부 등 5개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공개한 ‘청소년 언어사용 실태 및 건전화 방안’보고서에 따르면, 초중고생 1260명 중 925명(73.4%)가 매일 욕설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욕을 ‘가끔’사용하는 학생은 41.8%, ‘자주’쓰는 학생은 18.8%,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학생은 12.8%로 나타났다. 욕설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학생은 5.4%에 불과했다. 조사 학생의 53%가 비속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한다고 답했고, 욕설을 사용할 때 ‘별 느낌없다’는 학생이 47%로 나왔다. 그러나 욕설의 의미를 안다는 학생은 27%에 불과했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교총이 지난해 한글날을 맞아 교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원의 66%는 ‘학생들 대화의 반 이상 또는 대화 내용이 조사를 빼놓고는 욕설과 비속어’라고 답했다. 인터넷 사용 이전과 비교한 학생들의 욕설, 비속어, 은어 사용 빈도에 대해 96.2%가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이 욕설, 비속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죄의식 없이 무의식 속에 습관적 사용’이 70.7%, 또래집단의 동질성 및 소외감 부담이 25%로 나타났다. 한국교총은 “학생들의 언어순화를 위해 올바른 언어사용을 위한 특별수업, 학교 내 교사·학생 아름다운 우리말쓰기 캠페인 등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설문조사에서 교원들이 바른말 사용에 대한 교육과정, 학생지도 프로그램 개발, 지침서 발간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을 고려해 교원 연수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정부도 인터넷 매체 종사자를 대상으로 언어·청소년 보호 교육을 실시하고 청소년 대상 언어교육을 강화하는 등 관련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여주와 나팔꽃 “실례합니다. 선생님, 저 여주가 무척 아름답게 보이는 데, 씨앗을 좀 얻어 갈 수는 없을까요 ?” “대단히 죄송합니다. 여기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이걸 따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그렇군요. 그렇지만 전 여길 자주 오는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멋지게 가꾸어진 여주를 보니까 욕심이 나는군요. 한 송이만 얻어 가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비군복을 입은 한 청년이 교실로 들어서면서 애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 저도 한 송이를 따다가 제 방에다 두고 싶어도 따가지 않고 있답니다.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시군요. 죄송합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가시게 되어서......” “괜찮습니다. 미안합니다.” 예비군복을 입은 젊은이는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 먹고 돌아갔습니다. 선생님은 그 사람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은 미안한 상태로 돌아서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아이구 이러다간 내 열맬 빼앗기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히 그렇게 돌려 보내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아휴.’ 정말 가슴이 철렁했던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 조그만 비닐포대에 옮겨 심어지게 된 것은 지난 4월 초순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주인집의 텃밭 한 구석에 우리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여서 흙덩이를 비집고 일어섰습니다. 나의 머리 위에는 주먹만큼 한 흙덩이가 누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걸 들고 일어서려는데 도무지 힘이 들어서 들 수가 없었습니다. 난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려서 옆으로 삐져 나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보다 먼저 고개를 내밀고 나온 친구들이 벌써 본 잎을 살짝 내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바삐 서둘러서 나의 떡잎을 열고서 본 잎은 내밀게 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들 보다 늦으면 그만큼 다른 친구들에게 가려서 햇빛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 ! 내가 늦잠을 잔 것은 아닌데 ? 벌써 들 이렇게 자랐으니 내가 바쁘군, 바빠 !” 하고, 서둘렀기에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여도 별로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자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자라고 있을 때, 우리 주인은 나를 파다가 이렇게 옮겨 주었습니다. 나와 함께 나의 곁에는 조그만 나팔꽃도 한 포기 같이 심어졌습니다. “나팔꽃아, 나와 함께 살게 되어서 기쁘다. 우리 서로 잘 지내보자. 우리 이 좁은 곳에서 함께 살아야 하니까 조금 좁고 답답하겠지만 서로 참고 양보 하면서 살자. 응 ?” 하고, 먼저 인사를 하자, 나팔꽃은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 우리 정답게 살아보자.” 하고, 응답을 해 주었습니다.우린 아주 정답게 오순도순 지내면서 서로 누가 더 먼저 자라나 겨루기를 하였습니다. 저쪽 편에도 우리와 같이 나팔꽃 한 포기와 여주 한 포기가 심어져 있습니다. 그 쪽에서도 우리처럼 정답게 줄기를 뻗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타고 올라가도록 매어 놓은 줄을 따라 날마다 날마다 새잎이 나고 한바퀴씩 줄을 감으면서 기어올랐습니다. 우리가 심어진 비닐포대는 큰 화분보다 훨씬 더 많은 흙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흙은 아주 거름기가 많은 기름진 흙이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교실의 안쪽에 있어서 낮에는 포근한 햇빛을 받고, 밤에는 유리창 안에서 찬바람을 맞을 필요도 없어서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날마다 주는 물은 우리가 목마를지 않을 만큼 충분하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자라는 우리는 아직 땅에 그대로 남아 있는 우리 친구들보다 두 배는 더 크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5월이 끝나갈 무렵에는 벌써 유리창의 중간을 넘어서 위쪽으로 자라 올랐습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천정에 닿기 전에 우리들이 타고 자랄 자리를 다시 만들어 주었습니다. 유리창을 조금 열고 그 사이에다가 조그만 나무토막을 못질하여서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선 그 사이로 우리들이 밖으로 타고 나가는 줄을 매어 주었습니다. 우린 그 좁은 사이를 따라 밖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밖으로 얼굴을 내밀 때는 벌써 햇볕이 따가 와서 덥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을 할 때였습니다. 내가 밖으로 얼굴을 내밀도록 까지 우리 교실의 아이들은 날마다 나의 키를 재고 잎의 숫자를 세어서 관찰기록부에 적어 나갔습니다. 우린 아이들의 이런 모습이 귀엽고 반가워서 더욱 열심히 자랐습니다. 내가 밖으로 얼굴을 내밀던 이튿날, 나와 함께 사는 나팔꽃은 이쁜 꽃을 터뜨렸습니다. 지름이 20 Cm도 더 될 만큼 커다란 꽃송이를 보고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와 아, 나팔꽃이 이렇게 큰 것은 처음 보았다.” “이건 왕 나팔꽃인가 보다.” “야 ! 이 나팔꽃 좀 봐라. 이건 아주 대장 나팔꽃이 피었다.”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데 나는 그만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흥, 제까짓 게 꽃만 크게 피우면 뭘 해 ? 나처럼 이쁜 열매를 맺을 수 있어 야지.” 하고,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 말을 나팔꽃이 들었나 봅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샘을 부리고 그러니 ?” “혼잣말을 한 것을 들었구나?” “그래 난 이렇게 커다란 귀를 가지지 않았니?” “아니 그럼 그 꽃이 너의 귀란 말이냐 ?” “아니, 이 꽃은 나의 얼굴이지 그러니까 난 귀도 이렇게 큰 얼굴 모두가 되 는 거란다.” “미안, 미안해. 난 그냥 조금 시샘이 났을 뿐이야.” “그래. 나도 너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애.” 이렇게 나팔꽃이 나를 쉽게 용서해 주고 이해해 주어서 우린 더 정답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여주는 언제 꽃이 피어요?” 아이들은 나의 꽃을 몹시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꽃망울을 가지지 않고 더 많은 가지를 뻗어 무성하게 자라는 데만 정신을 쏟고 있었습니다. 교실밖에 매어 놓은 줄을 타고 나가면서 나는 파아란 선반을 만들었습니다. 2층 교실의 위쪽에 매어 놓은 덕을 따라 줄기가 뻗어 나가니까 날마다 죽죽 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교실이 운동장보다 교실 하나 만큼이나 높은데다가 우리는 이층의 유리창 위쪽에서 가지를 뻗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있는 높은 곳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우린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나팔꽃아 ! 저기 고개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 기차가 지나는 소리가 들리던데 기차는 어떻게 생겼지 ? 넌 본적이 있니 ?” “아니, 나도 못 보았어. 한번 봤으면 좋겠다. 그지 ?” “글세 말야. 나도 얼른 더 자라서 저 고개 너머를 한번 보았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애.” 이렇게 우리가 속삭이면서 지내고 있을 때에 나도 이젠 예쁜 꽃을 피울 준비를 하였습니다. 가느다란 나의 줄기를 따라 무성하게 자란 잎새들은 창문을 커튼처럼 가려주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잎새들이 날마다날마다 햇빛을 받아 내가 먹고 자랄 양분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날마다 온몸의 구석구석에 영양이 가득 쌓이고, 나는 이젠 아주 조그맣고 곰상스런 꽃송이를 매달게 되었습니다. “야 ! 이거 봐라. 여주도 꽃망울을 달았다.” 관찰을 맡은 아이는 소리를 쳤습니다. 그 소리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하면서 내 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꽃송이가 너무나도 작고 보잘 것이 없이 초라한 것을 보고 실망을 한 모양입니다. “에게게. 이게 꽃송이야 ?.” “글쎄 ? 이거 뭐 너무 초라하지 않아 ?” 아이들이 모두 보잘 것 없는 나의 꽃송이를 보고 한 마디씩하고선 돌아섰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울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나팔꽃이 필 때에 아이들이 너무 감탄을 하여서 나는 언제 꽃피워서 저렇게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나 부럽고 속이 상했는데, 이젠 나의 꽃을 보고 이렇게들 실망을 하니 여간 부끄럽고 섭섭한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번에 불평을 하다가 나팔꽃에게 들켜서 무안을 당한 일이 있어서, 함부로 불평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또 불평을 하면 나는 불평쟁이가 될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이런 말을 할 수도 없고 혼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의 눈물은 꽃송이의 줄기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나의 눈물은 조금씩 줄기를 따라 흘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니까 더욱 슬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슬퍼서 눈물이 나오는 것인지 눈물이 나오니까 슬픈 것인지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를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눈물은 흘리고 있을 때 흘러 내려가던 나의 눈물은 꼬부라진 꽃대의 중간에서 더 이상 흘러가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습니다. 눈물은 조금씩 모여서 점점 더 큰 방울이 되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커진 방울은 마침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눈물은 아슬아슬하게 높은 곳에서 땅바닥까지 떨어져 내렸습니다. “아이 차거, 이게 뭐야 ?” 마침 지나가던 개미의 코앞에 나의 눈물이 떨어지자 개미는 질겁을 하였습니다. 나는 밑을 내려다보면서 “개미야 ! 미안해. 나의 잘못이었어.” 하고 사과를 하였습니다. 개미는 고개를 들어서도 내가 쳐다보이지 않는지 앞다리를 풀잎에다 올려놓고서 올려다보면서 “응, 여주로 구나. 넌 그렇게 높은 곳에 있으니까 좋겠다. 멀리도 내다 볼 수있고.” 하면서 부러워하였습니다. 나는 금방 슬퍼서 눈물을 흘렸던 것도 잊고 “그래 너도 여기까지 올라 와 봐. 저기 고개 마루까지 내려다보인단다.” 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개미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난 거기까지 가려면 한나절은 걸릴 거야.” 개미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개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그래 ? 난 너무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나 때문에 넌 깜짝 놀랐지 않아 ?” “그거야 뭐 언제나 당하는 일인데 뭐 ?” “아무튼 미안하다. 네게 이렇게 널 놀라게 해서.....” 이렇게 사과를 하였지만, 난 아직도 미안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미안해하는 것을 본 나팔꽃은 빙긋이 웃으면서 “야, 여주야 ! 넌 도대체 왜 그렇게 남을 부러워만 하느냔 말이야 ! 넌 너대로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점들이 많지 않아 ? 그걸 살렸어야지 ?” “그러긴 해 ! 그러나 난 나대로 속이 상하지 않아 !” “그러겠지 뭐 ? 이젠 제발 우리 약속대로 잘 지내자. 그렇잖아 !” “미안해 !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구나.” 우리는 이렇게 다시 지금까지처럼 다시 정다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꽃들은 제법 많이 피었어도 열매가 맺히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 왜 여주가 달리지 않아요 ? 나팔꽃은 저렇게 열매가 많이 달렸는데 말야요.” “넌 아직도 그걸 모르니 ?” “모르니까 묻는 거 아냐.” “야 ! 임마 나팔꽃은 암수 구별이 없지만, 여주는 암수 꽃이 따로 있는 거 아니냐 ?” “글쎄 ? 그런 것은 알지만.....” “여주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 거야. 남자와 여자가 있어야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듯이 여주는 암수 꽃이 함께 피어야 열매가 맺히는 것이야.” “암수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 아이들이 이렇게 떠들고 있을 때 장난꾸러기 종수가 들어오면서 “그래 넌 이렇게 암수가 따로 있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 ?” “글쎄 내가 그런 것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뭘 알겠냐 ?” 하고 대답하자. 주먹으로 알밤을 주면서 “그렇겠지 ? 시골에 살아도 넌 농사를 짓는 집이 아니니까 ? 수박, 호박, 박, 오이, 참외, 여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암꽃에는 작은 열매가 맺혀 있는 거야. 그래 가지고 그것이 수분(꽃가루받이)이 되면 암꽃의 밑에 달린 작은 씨방이 자라서 열매가 되는 것이야.” 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제서야 진경이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고맙다.” 아이들이 소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얼른 열매를 맺어야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나팔꽃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면서 나는 어서 열매가 맺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한여름의 땡볕이 내리 쬐자 우리는 이제 목이 마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팔꽃도 나도 수많은 잎새를 달아서 서로 많은 물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침에 물을 주면 서로 더 많이 물을 끌어가려고 다툼을 하였습니다. 서로 싸우지 말고 정답게 지내자고 약속은 하였지만, 우선 목이 마르니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싸움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없이 서로 더 많은 물을 끌어올리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점심때만 되어도 물기가 바짝 말라서 목이 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목이 말라 잎새들이 추욱 늘어지는 것을 본 아이들은 하루에 두 번씩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젠 서로 다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거의 여름방학이 가까워 져서야 나는 앙증맞은 열매가 달린 암꽃을 피웠습니다. 수두룩하게 피어난 숫 꽃들에서 꿀을 따던 벌들이 나의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잔뜩 발라 주었습니다. 벌들은 숫꽃과 암꽃을 번갈아 가면서 달콤한 꿀물을 빨아 갔습니다. 다리에 가득 꽃가루를 모아다가 새끼 벌들의 먹이를 만드노라고 꽃가루도 모아 갔습니다. “아유 달콤해 이 작은 꽃송이에 왠 꿀이 이렇게 많이 들었어?” 꿀벌들은 부지런히 나의 꽃들 사이를 오가면서 두번 세번씩 꿀과 꽃가루를 따갔습니다. 나는 그 덕분에 꽃가루받이를 하여서 예쁜 열매를 달게 되었습니다. 하나, 둘 셋... 열매는 열리기 시작을 하자 날마다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열매는 처음엔 하늘을 향해서 고개를 쳐들고 있었지만, 줄기에서 날마다 날마다 날라 오는 영양을 듬뿍 담아 점점 자라났습니다. 이젠 너무 무거워져서 고개를 숙이고 추욱 늘어져 대롱대롱 아래로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살이 통통 오른 나의 열매들은 덕을 따라 올망졸망 매달려서 서로 크기재기를 하였습니다. 이젠 나팔꽃의 열매는 아주 보잘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만큼 나의 열매는 크고 듬직하였습니다. 더구나 울퉁불퉁한 야릇한 모습을 한 나의 열매 모습은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날씨가 시원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의 열매는 볼그레 익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이 하나 둘 익어가자 우리가 벋어 가는 덕 아래는 아름다운 꽃송이가 달린 것처럼 예뻐 보였습니다. 이젠 나의 모습이 나팔꽃보다 훨씬 더 자랑스러워 보였습니다. 나의 어깨는 저절로 으쓱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날마다 나의 열매들이 익어 가는 것을 즐거워하였습니다. 나의 열매들은 자랑이라도 하듯이 빨갛게 익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다섯 개, 내일은 일곱 개 이렇게 날마다 익어 가는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내가 열매들을 익혀가자 아이들은 날마다 우릴 자랑스럽게 쳐다보았습니다. 다른 교실의 아이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교실에는 이런 것이 없다는데 약간 불만스러웠던가 봅니다. “야, 너희들은 좋겠다. 저렇게 여주가 익어 가니까 얼마나 이쁜지 모르겠다.” 하고 부러워들 하였습니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깨가 으쓱 해지고, 자랑스럽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날마다 하나씩 열매를 익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이제는 너무 많은 열매가 익어서 모두 몇 개가 익었는지 셀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밑에서 보면 나팔꽃 보다 나의 열매들이 익어있는 모습이 훨씬 더 돋보였습니다. 오가다가 나를 바라본 사람들은 누구나 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야, 그것 참 거기에서 저렇게 많은 여주가 열리다니 정말 잘도 익었네.” 칭찬을 들을 때마다 신이 나서 나는 더 많은 열매를 맺는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금년 3월부터 교육과학기술부 수석교사제가 4년째 시범 운영된다. 수석교사는 해당 학교에서 수업을 코치하고 교육과정을 개발, 보급하며 교내연수와 신임교사 지도 등을 담당한다. 한마디로 학교에서 교수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수석교사제는 이미 1980년대부터 교육계에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온 과제다. 실제로 1982년 정책적으로 추진됐다가 중단된 적이 있고, 1995년에도 교육당국이 추진하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 당시 예산 부처에서는 수석교사를 위한 수당까지 확보했으나, 제도 시행과 관련된 미시적 문제들을 갖고 논쟁을 벌이다 기회 자체를 상실했던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수석교사제는 교사가 교육의 중심에 서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동안 많은 정책들이 교사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삼아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제도는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본다. 교단교사가 존경받는 교직풍토가 교육 현장에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어서 반갑고, 교장이 되는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학생을 잘 가르치는 교사를 더 부러워하는 풍토가 아쉬운 상황이어서 더 반가운 것이다. 수석교사가 지향하는 바는 교사 중에 계급이 높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을 잘 가르치는 유능한 교사다. 동료 교사들이 부러워하고, 학생들이 존경하며 학부모들이 신뢰하는 교사를 일컫는다. 우리의 교육은 지금까지 해방이후 교직생활 20~30여 년 이상을 학생교육보다는 관리직으로 승진을 하기위한 일에 열정을 쏟아왔다. 몇 자리 되지 않는 승진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고 승진을 하게 되면 교실현장을 떠나 전문직이나 관리직으로 앉게 되는 것이다. 즉, 유능한 교사일수록 학생지도를 위한 교실현장을 빨리 떠난다는 것이 문제점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년퇴직 시까지 실패한 낙오자로 성공하지 못한 무능한 교사로 위축된 생활을 하도록 하는 교원승진 시스템이 단선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가 직장생활 30여 년이 넘도록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교사로 생활한다는 것은 당연히 무능한 것으로 인식되기가 쉽다.따라서 가족들 보기도 민망하고 주위 친지들이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학생지도를 잘하는 유능한 교사가 정년퇴직 시까지근무하지 못하고접는 것을 숱하게 많이 보아왔다. 수석교사제 도입은 교사들에게 교감·교장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는 단선적 승진구조 체제에서 벗어나 관리직렬(교감→교장)과 교수직렬(선임교사→수석교사)로 2원화함으로써 상위 자격 취득 과정에서 전문성 향상을 유도하는 직무만족을 위한 교원승진 시스템이다. 이는 교직생애 주기에 따른 교원들의 전문성 개발을 지속적으로 유도·촉진시킴으로써 교직사회에 창조적 긴장과 활력을 불어 넣고, 학교를 전문적 학습공동체로 전환시키기 위해 교원 승진의 단선화의 폐단에서 벗어나 투 트랙(관리직렬과 교수직렬)으로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시범운영 수석교사제는 2008년도에는 초등 88명 중등 84명 172명, 2009년 초등 150명, 중등 145명 계 295명, 2010년 초등170명 중등 163명 333명이 활동을 해 왔다. 지난 해 3월 제1차 청와대 교육개혁대책협의회에 전국수석교사 대표로 필자가 참석을 하여 금년부터 수석교사 2000명 선발을 필두로 하여 해마다 1000명씩 선발하여 전국 1만 여개 학교에 학교당 1명씩 수석교사가 임용이 되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발표가 있었으나 법제화 미비와 지위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 교육현장의 기대수준과 역할이 너무나 많은 부담으로 작용하여 금년에도 응시자가 극히 미미한 상태에 있다. 이미 수석교사제 법제화 법안은 국회 교과위에 상정되어 계류 중에 있다. 교과부 시범운영이 벌써 3년차 하고 있으나 홍보부족으로 인하여 현장에 있는 교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 및 학부모도 수석교사(首席敎師)가 물가에 돌을 줍는 동호인 교사(水石敎師)가 아닌가 묻는 현실이다. 수석교사제 법제화가 시급히 이루어져 국가경쟁력에서 경제 못지않게 교육도 선점이 되길 기대해 본다.
모임에 가면 남의 이야기를 듣는 축에 속한다. 변변한 말재주도 없고, 또 좌중을 압도할 만한 사회적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얼굴만 내밀고, 끝자리에 앉아 있다 오는 편이다. 엊그제도 주변에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뜻하지 않게 내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발단은 내 옆자리에 중소기업의 임원이라는 사람이 앉고 시작되었다. 그 사람은 늙직했지만 외모에서는 기름이 흘렀다. 말에 자신감이 넘치고 몸짓도 익었다. 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데 툽상스러운 자기 손을 내 무릎에 얹어가며 화제를 주도했다. 그러다가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작품 활동을 여전히 왕성하게(?) 하냐며 알은 체를 해 왔다. 그 순간 주변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면서 그 사람이 다시 말이 많아졌다. 자기 안사람도 얼마 전에 수필가로 데뷔했다는 것이다. 평생교육원에 나가더니 바로 수필가가 되었다고 큰 소리를 친다. 그러더니 책도 곧 출판한다면서 은근히 자랑을 했다. 다시 술이 넘치자 요즘 주변에 작가가 흔하다며 혀끝을 찼다. 작가 배출을 엄정하게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대안도 제시했다. 그 사람은 처음에는 아내를 자랑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갈수록 문단의 현실에 칼날을 세웠다. 잘못된 부분도 있어서 고쳐주고 싶기도 했지만 워낙 거칠어서 말을 섞지 못했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정제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지적한 것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이 있다. 특히 작가가 너무 많다는 말에는 부끄럽기도 했다. 금년 한국문입협회 주소록에 보니 회원 수가 1만1천명이 조금 넘는다. 주변에 단체에 가입해 있지 않은 문인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문인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문인이 많은 것은 일본과 비교해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약 두 배 반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문인수가 3천 여 명에 불과하다. 같은 맥락이지만 문인이 되는 길이 너무 쉽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1990년대 이후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문학지가 우후죽순처럼 탄생했다. 자연히 잡지사는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결국 잡지사는 경영난 극복을 위해 신인 등단 제도를 두고 문단 등용자에게 책을 떠넘기는 장사를 해 왔다. 그러다보니 함량 미달의 작가가 마구 배출되고, 글 한 편도 제대로 못 쓰는 작가가 우글거린다. 그와 더불어 문단은 글 쓰는 문화보다 패거리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일부 문단정치꾼들이 신인 배출을 통해 자파 세력을 지속적으로 불리고 이를 기반으로 문단의 권력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사실 문인이 많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문인이 많으면 우리의 문학이 풍요로워진다. 따라서 자랑거리로 삼아야 한다. 문제는 문인 수가 아니라 작품의 질이다. 문인이 많아지는 만큼 그와 비례해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인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어설픈 글을 쓰면서 문인 행세를 하면 본인은 물론 모든 문인이 공멸하게 된다.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아무나 문인이 되는 상황은 안 된다. 현대는 자격증 시대다. 문인도 전문가로 자격증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공신력 있는 잡지를 통해서 등단하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문인 단체의 개혁이 필요하다. 문인 협회에 식구가 많아지면서 패거리가 탄생하고 권력화 하는 경향이 많다. 문협 선거 때마다 비리가 속출하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집행부는 문학 행사보다는 선거에서 있었던 비방에 대한 보복에 치중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중앙 문단에서 지방 문단까지 자행된다. 문단은 글 쓰는 문화 구현보다 패거리가 모여 반복과 질시를 일삼게 된다. 문인은 문화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다. 시대의 지성인이고, 대중에게 지식을 주는 스승이다. 달빛이 온 세상을 은은히 비추듯 고귀한 언어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는 존재이다. 문인이라고 자랑할 필요는 없지만, 문인이 부끄러운 시대라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는 문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문인이라는 명함보다 글로 말하는 문인이 필요하다. 문인은 스스로 문학습작 및 문학이론 등 문학에 관한 역량을 살찌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독자의 고달픈 인생을 어루만질 수 있는 글을 위해 밤을 밝히고,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문인은 창작의 고통을 천형으로 여기고 글을 써야 한다.
어느 시골노인에게 큰 항아리 두 개가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어깨 위 대나무 양끝에 매달아 물을 길어왔습니다. 한 항아리는 온전했지만, 다른 하나는 금이 간 항아리였습니다. 그 노인은 늘 물을 두 항아리에 가득 담았으나 집에까지 걸어오는 동안에 금이 간 항아리는 물이 새서 반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매일 같이 이런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항상 집에 와보면 물은 한 항아리 반 만 남아 있었습니다. 물론 온전한 항아리는 물이 새지 않으니 주인 앞에서 의기양양했습니다. 금이 간 항아리는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깨진 항아리는 해야 할 자기 몫의 반 밖에 할 수 없었으니 열등의식이 생겼습니다. 만 2년이 지난 후, 패배자로 느껴진 금이 간 항아리는 어느 날 노인에게 자신의 비참한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금이 가서 새다 보니 집에 도착하면 늘 물이 반 항아리밖에 남지 않습니다.” 라고. 노인은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네가 오는 길옆에는 꽃이 있고, 다른 쪽에는 꽃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느냐? 네가 금이 간 것을 일찍이 내가 알았기 때문에 네 쪽에는 길가에 꽃씨를 뿌려두었단다. 그리고 너는 집에 오는 동안에 늘 물을 주면서 왔단 말이다. 2년 동안 나는 그 꽃을 따서 집안을 아름답게 장식해왔다는 것을 기억하렴. 네가 금이 가지 않았더라면 이 집안을 아름답게 장식할 꽃을 아마도 내가 재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학교 상담 활성화를 위한 학교 CEO 연수’(주관 : 경기도용인교육지원청 거점형 Wee센터)에서 특강 강사로부터 감명 깊게 들은 이야기다. 교사 시절 상담교사 자격연수를 받으면서 사람, 인생,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어 자아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었는데 이번 연수도 짧은 이야기 속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이야기를 교육에 적용시켜 본다. 혹시 우리는 공부 잘하고 똑똑한 학생만을 좋아하고 예뻐하지 않았나 반성을 해본다. 선생님의 기대 수준에 따라오지 못하는 조금 부족한 학생, 공부 못하는 학생을 속으로 미워하고 소외시키지는 않았나를 스스로 반성을 해 보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세상은 온전한 사람보다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 더 많다. 아니 신처럼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원한다. 또 그렇게 되라고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을 멀리 한다. 본인 스스로도 온전하지 못하면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노인은 현명하고 지혜롭다. 우선 금이 간 항아리를 진작 알고 있었으면서 깨뜨리거나 내다버리지 않았다. 금이 간 항아리의 약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장점으로 활용하였다. 금이 간 항아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았다. 금이 간 항아리 자체를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나아가 그 자체를 존중하고 선용한 것이다. 물을 길어오기에는 부족하지만 길가 한 쪽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뜨리면서 땅을 적시는 것은 온전한 항아리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금이 간 항아리가 물뿌리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길 한쪽에 꽃씨를 뿌리고 가꾼 꽃을 집안 장식에 쓰는 노인의 혜안이 부럽기만 한 것이다. 조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약점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장점이 된다. 그 장점을 조직에 공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고집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과 점점 멀어지게 마련이다. 약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약점을 약점으로 보지 않고 장점으로 보는 눈이 중요한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상대방의 약점을 장점으로 살려 줄 때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가 된다. 그것이 선진복지사회다. 선생님들이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존경 받을 때 교육력은 살아난다. 그러려면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보는 눈부터 바꾸어야 한다. 말썽쟁이, 불량학생, 문제아 학생들에게도 장점은 있다. 다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일 뿐이다.
기존의 승진위주의 교직문화를 바로잡고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더 유능한 인재를 학교장으로 선발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교장공모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점차 공모교장을 확대하며, 그 경쟁률도 최대 10대 1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에 교원인사 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퇴직교장의 40% 이상을 공모로 선발하는 교장공모제를 확대․시행하였다. 금년이 시행 2회째를 맞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경쟁률이 시들해졌다. 경기도는 78개교에 대한 교장후보를 공모한 결과, 절반 이상이 단독 응모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4개 학교는 1명도 지원하지 않아 공모를 철회하는 일이 일어났다. 예상 외의 결과는 단지 경기도뿐이 아니었다. 전국이 모두 작년 1회와는 달리 낮은 경쟁률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쟁을 통해 유능한 학교경영자를 선발한다'는 애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처럼 교육정책은 몇몇의 교육관료들의 즉흥적인 생각만으로 입안하여 추진해서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사실을 잘 입증하고 있다. 우리는 버릇처럼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하고 있다. 교육만은 보다 신중히 설계하여 추진해야 올바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기영합에 급급한 설익은 교육정책들로 학생을 실험대상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교육정책 중에서도 교원의 정책들은 더욱 서서히 장기계획의 추진하여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교원의 혼란과 학생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필자도 이번에 두 번째 교장공모제에 응시를 했다. 첫 번째 응시에서는 지역을 달리해서 인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4년의 교장의 경력으로 많은 스팩도 제시했지만 3배수에도 들지 못했다. 모두 교감들이 응시한 학교에서 교장경력을 가진 교장이 심사위원의 눈길을 얻지 못함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행 교장공모제 심사 객관성이 무엇이며 어떤 기준이었는지다시 묻고 싶은 심정이다. 교장공모제 응시의 실패감을 맞본 사람이라면 더 이상 응시할 생각이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경력교장뿐 아니라 교장자격을 가지고 새로운 학교경영의 기대감으로 가득한 교감선생님들에게 희망보다 좌절감으로 교원의 자존심마저상처를 주는 교장공모제 더 이상 확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번 교장공모의 낮은 경쟁률은 바로 이러한 문제점에서 나타난 결과로 생각된다. 그리고 교원, 학부모, 외부인사로 구성한 당해학교의 심사위원회의 심의를 보면 이미 객관성이 결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지역적 이기주의 및 온정주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학부모위원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무리한 요구와 욕심, 교원위원들의 공모교장에 대한 업무과중에 대한 경계심과 편안한 근무여건 요구 등은 공모교장의 소신 있는 학교경영을 저해하고 있다. 사실 공모교장은 학교경영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경험, 그리고 경력을 갖고 당해학교의 비전과 목표를 설계하여 제시할 수 있다. 그 외의 외부적인 여건이나 지원은 크게 기대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학교의 개혁과 혁신으로 학생들의 학교 삶이 당장 변화되길 바란다. 이러한 학부모의 기대는 다시 학교에 대한 불만과 불평으로 나타날 수 있는 소지가 있으므로 공모교장은 나름대로 부담감을 갖고 있다. 교장자격을 가진 교감의 경우는 교장공모제에 응시하면 근무평정에서 낮게 평점된다는 염려에서 지원을 꺼려하고 있다. 또한 현행 승진규정에 의하면 교감이 교장공모제에 응시하여 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4년간 근무가 끝나면 발령당시의 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공모학교 교원의 경우는 공모교장의 공약추진으로 인하여 교원의 업무가 과중되고 학교혁신과 교실개혁으로 학생지도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원들은 공모학교 신청을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공모교장에 대한 부담감, 불안감은 교장으로서 역할과 리더십 역량을 위축시켜 공모교장을 꺼려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교육은 교장 혼자서 할 수 없으므로 교원,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모교장이란 이유로 이들이 비협조한다면 자칫 새로운마찰과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로 인하여 교원이 기피하는 학교로 낙인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공모교장, 교육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둘러 도입되는 것이라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교직에 오랜 경력을 가지고 참신한 교육철학으로 어려운 경쟁을 통과하여 교감이 되고, 교장자격을 받아 소신 있게 학교경영을펼칠 수 있는 교육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교육정책만은 슬로우 리더십이 필요하다. 교육 전문성을 갖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장의 교원연수제도가 뒷받침될 때 교원능력평가도 성공할 수 있다. 교원의 자존감과사회적 존경을 받는 교장뿐만 아니라 국민의 사표로 다시 자리잡을 수 있는 선진화된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내년부터 학교교육과정 편성내용을 2월에 정보공시를 통해 알려야 한다고 한다. 4월에 공시하던 것을 2월로 앞당긴 것인데 기본적인 취지와 생각은 맞다. 4월은 이미 학기가 시작된지 한달 이상이 흐른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학교별로 이미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는 시기이고, 1학기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지났기에 정보공시가 제 기능을 확보하려면 앞당기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학교의 현실이다. 2월이면 졸업식이 있고 교원들의 인사이동이 있다. 당연히 학교장도 바뀌게 되고 각 지역의 교육지원청도 전부는 아니지만 수장이 바뀌게 된다. 학교나 교육지원청의 수장이 바뀌면 당연히 역점사업이나 중점사업들이 바뀌게 된다. 2월에 모든 것을 마감하는 것이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현실이다. 사립학교라면 그래도 사정이 좀 괜찮은 편이지만, 공립학교에서는 여러가지 여건상 교육과정을 완성하기 어렵다. 교원의 인사이동이 문제이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학기의 종료가 2월인데 어떻게 2월에 모든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육과정 편성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수가 결정되는 것이 서울의 경우는 1월초다. 1월초나 되어야 교육과정 편성이 가능하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2월에 완성하라는 것은 겨울방학 내내 출근하여 학교에서 업무를 보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물론 방학이라고 출근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쉽지 않은 것이 학교의 현실인 것이다. 예를 들어 평가계획을 모두 세웠는데 다른 학교에서 전입해 오는 교사가 가치관을 달리한다면 2월에 정보공시에 올렸던 내용을 수정해서 다시 올려야 한다. 다시 올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업무가중을 피할수 없기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학교장의 경영관도 교육과정편성에 포함된다. 학교장의 경영관은 학교장이 누구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사안이다. 만일 2월말에 학교장이 새로 부임해 오면 해당학교장은 1년동안 다른 교장의 경영관을 가지고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월이면 학생들의 학급편성이 완전히 이루지지 않는다. 학급편성이 제대로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교육과정을 짜라는 것은 자칫하면 학교가 거짓말을 하도록 방치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행정기관인 교과부에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 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학교의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그에맞는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는 곳이 바로 교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무조건 2월에 교육과정을 완성하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정보공시 항목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지 알 수 업지만 학기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계획을 세워서 내놓으라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따져본다고 뾰족한 수가 나올 수 없지만 나름대로의 의견청취를 충분히 해야 한다. 이번의 발표는 교과부가조금더 생각했어야 한다. 4월이 아닌 3월 중순경으로 앞당기는 것이옳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2월에 정보공시를 하게되면 시기를 맞출 수는 있겠지만 그 이후에 수정고시하는 상황이 여러곳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정보공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의 업무가 가중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볼때, 두 세번의 수정이 따른다면 교사들은 또한번업무가중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게될 것이다. 좀더 신중한 결정이 아쉬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