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북아 각국들은 영토・역사・자원・핵문제 등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과 충돌을 벌였다. 특히 천안함, 연평도 피폭 사건 등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남북통일과 민족적 존립문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복잡하고 심각한 국제정세 속에서 그 해법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려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은 선조들의 발자취 속에서 터득한 교훈들을 바탕으로 오늘의 삶을 성찰하면서 내일을 설계하고 올바른 길로 찾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학문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왕학(帝王學)의 핵심으로 국정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실례로 중국의 마오쩌뚱은 자치통감을 끼고 살았고, 영국의 처칠 수상은 국정의 해법을 역사 속에서 찾곤 했다.
역사는 공동체의 기억으로서 어느 민족이나 국민을 막론하고 정체성과 단결력, 존망을 좌우하는 정신적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그래서 역사의식이 투철하지 못해 단결하지 못한 민족이나 국가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곤 했다. 또한 현실사회에서 역사는 그 나라의 민족이나 국민의 국제적 위상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역사를 갖지 못한 민족이나 국민들은 종종 외국에서 푸대접을 받곤 한다.
이처럼 역사가 중요할진대, 우리 사회에서 역사, 특히 한국사는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을까? 국사과목은 원래 고교까지 필수과목이었다. 그런데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세계화의 슬로건 속에 고1까지만, 현 정권 들어서는 중3까지만 필수과목으로 배우도록 고쳤다. 한국사가 고교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현재 고교생들은 우리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2010학년도 수능시험 전체 응시자 가운데 10.9%만이 한국사를 선택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반면 일본에서는 대입시험에서 일본사를 선택하는 비율(2009년 40%)이 높을 뿐더러 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지자체들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애국주의’가 국가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부상하면서 민족주의 및 역사교육이 한층 강화되고 있으며, 중국 근현대사는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 최근 주요 국가들의 역사과목 수업비율은 독일(20%), 프랑스(15.5%), 영국(10.8%), 일본(10%), 중국(9.4%), 미국(9%) 순이고, 우리(5%)는 꼴찌다.
우리는 왜 우리 역사를 이렇게 소홀히 취급할까? 그것은 몇 가지 잘못된 인식들 때문이다. 첫째는 ‘국사 해체론’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국사 교육 강화가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한 국수주의를 심화시켜 세계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고 민족적 대립과 충돌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둘째는 역사과목이 단순히 입시를 위한 암기과목에 불과하다는 사회 일각의 몰(沒)역사적인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입시생들은 암기할 것이 많은 역사과목을 기피한다. 셋째는 효율성과 물질적 이익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풍조 속에서 역사를 돈벌이와 무관한 하찮은 학문으로 여기는 편협한 사회인식 때문이다.
중・일 등 동북아의 강대국들이 저마다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역사교육을 강화시켜가는 상황에서, 약소국인 우리가 이렇게 먼저 국사를 해체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궁극적인 생존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또한 역사과목을 암기과목 정도로 인식하는 교육현실과 배금주의적 신자유주의는 치열한 생존경쟁과 민족적 분열, 그리고 이기주의를 심화시켜 궁극적으로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단결, 국가적 존립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감히 예언한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현실의 삶을 성찰하고 올바른 미래로 이끌어주는 이정표인 동시에 공동체의 존망을 좌우하는 정신적 동력이다. 한국사는 그것을 만들어온 우리 자신의 표상이자 얼굴이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면 투철한 역사의식 속에서 우리 역사를 찬란하게 가꾸어야 한다. 민족적 대립과 충돌이 격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북통일과 한민족의 부흥을 실현시키려면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선인(先人)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자기를 알고 타인을 아는 지름길은 바로 ‘역사’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역사가 우리 민족의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일진대, 한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전락시키는 오늘의 교육현실은 피를 토하게 한다. 한국사는 당연히 필수과목으로 해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91.2%가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해야 한다’고 답한 사실을 곱씹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