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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실종 아동이 5년간 44.3% 증가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실종 아동을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는 질문사전등록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종배(사진·충북 충주)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5년간 아동 실종 신고가 44.3%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도별로 보면 2014년 1만 5230명부터 시작해 2015년 1만 9428명, 2016년 1만 9869명, 2017년 1만 9954명, 2018년 2만 1980명으로 매년 증가추세다. 2019년 3월 기준 아동 실종도 4442명이며, 아직 미발견된 아동도 606명에 달한다. 정부는 2012년 실종아동 등의 발생을 예방하고 실종 아동을 조속히 발견하기 위해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지문사전등록제를 실시한 바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문 미등록의 경우 미아발견 소요 시간이 평균 94시간으로 실종아동을 찾기 위한 골든타임인 실종 후 48시간의 두 배가량 걸린다. 이렇듯 지문사전등록제가 큰 효과를 거둠에도 불구하고, 시행 6년이 지난 18년 말 기준 아동들의 지문사전등록률은 48.3%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문 등 사전 등록 현장 방문 사업 예산은 2017년 18억 원에서 2018년 11억 원, 2019년 8억 원으로 대폭 줄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내년 예산도 올해와 동일하다. 지문사전등록률이 절반에 불과함에도 기재부가 사전등록제가 정착됐다는 이유로 예산을 삭감한 것이다. 이 의원은 “실종 아동을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지문사전등록제 홍보를 강화하고 등록률을 높이기 위한 예산을 증액하는 등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청소년연맹은 교보생명과 함께 어린이날 연휴를 맞이해4~5일양일간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유아·아동 3만여 명을 대상으로 미아방지 예방을 위한 목걸이 달아주기 캠페인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교보생명의 후원으로 한국청소년연맹의 전국 18개 지역연맹과 9개수탁기관이 주관해 대규모로 진행된다.각 지역별 테마파크, 공원, 경기장, 박물관, 관광명소 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 미아발생률이 높은 장소에서 열린다. 우리나라의 실종아동 발생 건수는 평균 2만 건이 넘는 상황이며,그 중 3~7세 사이 아동의 미아발생률이 전체 45.2%로 가장 높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특히 5월은연중 미아발생률이 가장 높은 달이다. 이에 한국청소년연맹은미아발생률최소화를 위해2017년부터 캠페인을 3년째 지속하고 있다. 부스운영에는 한국청소년연맹 소속 누리단(중학생), 한별단(고등학생), 한울회(대학생) 단원이 직접 봉사자로 참여하며 매직풍선, 바람개비 만들기, 목공DIY 머리끈, 한복입기 등의 체험활동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26개 소속 연구기관은 8일더케이호텔서울에서 국책연구기관의 정책연구 성과를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2019 대국민 연구성과 보고회’를 개최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원장 성기선)은 이 보고회의 주관 기관 중의 하나로 참여하여 교육미래분야 세션에서 기관 대표과제 3개를 소개할 예정이다. 첫째, ‘교육 자치 강화에 따른 교육과정 거버넌스의 변화 방향 탐색’(연구책임자 이승미)에서는, 교육 자치 강화 정책에 따른 우리나라 세 수준의 교육과정(국가-지역-학교)의 역할과 책무성 범위를 명료화하고 이에 대한 지원 방안을 제안한다. 둘째, ‘OECD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PISA 2018 본검사 시행 및 PISA 2015 상위국 성취 특성 비교’(연구책임자 조성민)에서는, PISA 2015에서 우수한 성취 결과를 보이는 상위국(대한민국, 싱가포르, 에스토니아, 일본, 캐나다, 핀란드)의 성취 특성을 비교·분석해, 우리나라 학생들의 성취 특성을 보완하기 위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셋째, ‘미래사회 대비 교육과정, 교수학습, 교육평가 비전 연구(Ⅲ) : 초·중등학교의 교육평가 방향을 중심으로’(연구책임자 박혜영)에서는, 미래사회의 변화에 따른 초·중등학교 교육평가의 방향을 탐색하고 향후 우리나라 교육평가의 비전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실천전략을 제안한다. 특히, 박혜영 연구책임자는 교육미래분야 세션에서 기관 대표로 과제를 발표하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오프라인 수업만 있었던 교총의 교육전문직 강좌를 이제는 온라인에서도 편리하게 수강할 수 있게 됐다. 한국교총 종합교육연수원은 지난달 15일 교육전문직 온라인 사이트(www.edupro.or.kr)를 론칭했다. 지역과 관계없이 PC와 휴대폰 등 전국 어디서나 교육전문직 강좌를 수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 개설된 온라인 사이트에는 △교육전문직 정석 △교육적문직 퍼펙트 등 종합강좌는 물론 △교육정책논술 △수업장학 및 컨설팅 △교직실무 △집단면접 △전문직 주관식 교육학 등 단과 강좌도 구성됐다. 이밖에 각 지역별 출제 경향을 분석한 시‧도별 맞춤 강좌도 만나볼 수 있다. 한국교총 종합교육연수원은 지난 20여 년간 전국 시‧도별 동향 파악 및 현장 교원의 핵심 역량 강화에 집중하는 등 다양하고 전문적인 강좌를 꾸준히 개설해온 결과 다수의 장학사와 교육연구사를 배출해 왔다. 연수원 관계자는 “이번 온라인 강좌 개설로 기존 오프라인 수업의 한계였던 접근성의 불편함을 해소해 지역에 관계없이 누구나 편리한 수강이 가능해졌다”며 “시험의 핵심 내용을 망라해 전문직을 준비하는 교사들에게 방향성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www.edupro.or.kr 에서 확인 할 수 있다.
01 1994년이니까 벌써 25년 전의 일이다. 가수 임종환이 레게(Reggae)풍의 노래, ‘그냥 걸었어’를 발표하여 대중음악계에 큰 주목을 받았다. 매우 특이한 노래 형식을 구사하여,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 노래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 오는 날이면 라디오 방송의 DJ들은 어김없이 이 노래를 틀어주곤 했다. 나로서는 이 노래에 따라붙는 대화체의 가사가 재미있었다. 이 노래의 의미 구조는 소박하다. 주인공 남자는 빗길을 걸으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는 남자가 일찍이 좋아했던 존재, 그러나 지금은 멀어져 있는 사람, 그래서 남자는 안타깝고, 아쉽다. 무의식 안에서도 그녀가 그립다. 노래가 시작되면, 전주와 더불어 전화를 받는 그녀의 전화음 목소리 “여보세요”가 나온다. 가라앉은 듯한 저음의 차분한 목소리이다. 이어서 주인공 남자가 전화 속 그녀에게 노래로 말을 한다. 노래는, 전화음으로 된 ‘그녀의 짧은 물음’과, 그 물음에 답하는 남자의 말로 이어진다. 노래 가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 ) 안의 말은 전화음으로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이다. (여보세요?)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해서/ 오랜만에 빗속을 걸으니 옛 생각도 나대.// 울적해 노래도 불렀어. 저절로 눈물이 흐르데./너도 내 모습을 보았다면 바보라고 했을거야.// (전화 왜 했어?) 정말이야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냐.// (거기 어디야?) 미안해 너희 집 앞이야. 난 너를 사랑해 우-우우 (비 많이 맞았지?) 우우 나 그냥 갈까. (잠깐만 기다려 나갈게) 02 노래의 제목은 ‘그냥 걸었어’이다. 남자는 그녀가 무어라 묻든 ‘그냥 걸었어.’라 말한다. ‘걸었어’에는 두 가지 뜻이 다 들어 있다. ‘별생각 없이 전화를 걸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녀의 집까지 무작정 걸었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노래 가사는 이런 중의적 표현이 더 울림이 클 수 있다. 문제는 ‘그냥’이란 말이다. 왜 그냥 걸었단 말인가. ‘그냥’을 사전에서 찾으면, 세 가지의 뜻풀이가 나온다. 첫째는 ‘아무런 변화 없는’, 둘째는 ‘줄곧’, 셋째는 ‘아무런 조건이나 까닭 없이’ 등으로 풀이되어 있다. ‘그냥 걸었어’를 사전 뜻대로 적용해 보면, ‘아무런 변화 없이 걸었어’의 뜻이 되거나, ‘별 까닭 없이 걸었어’가 되거나, ‘그대로 줄곧 걸었어’의 뜻이 될 뿐이다. 이렇게만 풀이했을 때 노래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가? 아니다. 맹탕의 맛이다. 사전적 풀이로는 가닿을 수 없는 심층의 의미가 ‘그냥’이란 말에 숨겨져 있다. ‘그냥’이란 말의 심층 의미는 한국인의 심리 정서 원형에서 살아 움직인다. 말은 사전적 의미와 더불어서 그것을 사용하는 문화적 맥락에서 깊은 맛이 우러난다. ‘그냥’이란 말에 숨어 있는 심리와 정서와 태도는 어떤 것인가. 혹시 애써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을 더 꼭꼭 숨기어 감추려는 심리가 개입하지는 않았을까. 그럴 때 ‘그냥’이란 말이 얼마나 좋은 은폐 막이 되어서, 우리 내면의 부끄러움 따위를 숨겨주는 역할을 하는지 느껴 보았으리라. ‘그냥’이란 말은 그 지시하는 바 의미가 모호하다. 그래서 ‘그냥’이란 말에 내 부끄러움이 숨어 있기가 편하다. ‘그냥’이란 말의 의미 작용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 남자는 자기 마음을 오로지 숨기기 위해서 ‘그냥’이라고 말하는 건가. 아닐 것이다.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그녀가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는 심리 또한 ‘그냥’이란 말에 묻어 있다. ‘그냥 걸었어’를 반복해서 말하는 행위 자체에 ‘그녀에게 다가서고 싶은 소망’이 들어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할 뿐이다. 그 주춤거리는 소망이 ‘그냥’이란 말에 서식한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그냥’이란 말에 담긴 감정의 무늬가 얼마나 복잡 섬세한지를 알겠다. 03 한국 사람들 대화에서 이런 장면은 흔하다. 무어라고 물었는데, 그 대답이란 것이 모호하다. “박선생을 좋아하시는 거지요?”라고 물었는데, “글쎄요”라고 답을 한다. “요즘 무얼 하고 지내니?”하고 물었는데, “그냥요.”라고 대답한다. 딱히 내용 있는 답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답을 아니 하는 것도 아닌, 그런 답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라 할 것이다. 문화 인류학자인 강신표 교수는 30여 년 전에 벌써 한국인이 사용하는 ‘글쎄’라는 말에는 무려 30여 가지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다고 했다.(한국문화연구, 1985) ‘글쎄’가 그러한 만큼 ‘그냥’이란 말도, 그 의미의 숨은 층위가 깊고도 다양하다. 논리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하기 그지없는 한국인의 심리나 정서를 안으로 품고 있는 대표적인 말들이다. 사전이 밝혀 놓은 뜻 이외에도 다양한 의미 변이를 해 온 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변이되고 확장되는 의미를 그 말의 ‘문화적 의미’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말이 종전에 쓰이던 뜻에서 변이되어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새롭게 널리 공유되면, 그 말은 문화적으로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그냥’은 원래는 아무런 의도나 목적이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실제로 사용하는 심리 맥락에서 보면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그냥 걸었어’라는 노래 가사에서 ‘그냥’은 문자 그대로의 ‘그냥’이 아니다. 그냥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그 어떤 상태보다도 감정적으로 고조되어 있고, 그 마음에는 어떤 의도가 배어 있다. 그 어떤 심리보다도 민감해 있다. 또 자아 내면을 숨기는 듯 드러내는 언어적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 이게 어디 아무 목적이나 까닭 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냥’을 노래한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노래에서의 ‘그냥’은 한국인들만이 알 수 있는 심리와 소통 문화를 담고 있다. 또 이 노래를 즐기는 대중들도 ‘그냥’이란 말에서 그런 심리와 상황을 즐겁게 누리고 공유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들을수록 마치 내 마음 같고, 그래서 따라 부르고 싶은 것이다. 04 ‘그냥’이란 말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 밋밋한 듯하지만, 모종의 의연함 같은 것이 비치기도 한다. ‘그냥’을 나의 지혜 안에서 ‘나의 언어’로 태어나게 할 때, 더욱 그렇다. 사실 모든 언어는 나의 경험과 의지 안에서 ‘나의 언어’가 될 때, 새로운 힘을 가진다. ‘그냥’을 나의 주관적 언어로 만날 수 있는 지혜를 키워 보자. ‘그냥’을 ‘자기 다스림의 언어’로 친숙하게 갈무리할 수 있도록 해 보자. 밖으로부터 가해지는 어떤 힘이 나를 끌어가려고 할 때, 나의 태도를 물어온다. 너는 어떻게 할 건데? 그때 ‘그냥’이라고 말해 보자. 내가 내 안을 향해서 말해 보자. 흔들리지 않는 자아를 만날지도 모른다. 현실의 어려움과 대결하며 나의 정체성이 도전받을 때, 급변하는 환경에 나의 적응력이 도전받을 때, 내가 내린 결심과 내가 세운 계획들이 다시 나를 강박할 때, ‘그냥’을 ‘자기 해방의 언어’로 삼아서 자유로운 나를 구축해 보자.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물음 앞에 나의 자아를 떠올리며,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더욱 유연한 자유와 더욱 단단해지는 자아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 ‘그냥’은 각자의 자기 성찰 안에서 진화하고 발달한다.
한국교총은 그동안 교원의 교육활동보호를 위해 개선되어야 할 법률 즉, 「교원지위향상 및 교육활동보호를 위한 특별법」(이하 「교원지위법」), 「아동복지법」,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정을 위해 힘써왔다. 교사의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 교총은 이른바 ‘교권 3법’의 개정을 위해 국회 기자회견, 교육부에 의견 전달, 국회 앞 릴레이 시위, 입법청원 서명, 헌법재판소에 서한문 전달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교원지위법」과 「아동복지법」은 개정되었고, 「학교폭력예방법」은 개정안이 교육위원회를 통과하여 법제사법위원회와 통과만을 남겨두고 있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교권을 보호하자는 구호는 저 너머에 존재하는 이상이며,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교원과 학생, 학부모는 교권보호라는 총론에는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실제로 분쟁이 발생하여 논의하는 단계인 각론에서 교권은 가장 뒤로 밀리며, 종국에는 교사가 양보하고 희생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기에 교권보호는 학생·학부모·교사의 자발적인 노력이나 개인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고,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권 3법 개정을 크게 환영한다. ● 교원지위법 「교원지위법」은 2019년 3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정부로 이송되어 4월 16일 공포됐다. 개정된 「교원지위법」의 시행은 공포 6개월 후이므로 2019년 10월 17일부터 시행된다. 개정된 「교원지위법」의 핵심내용은 교권침해 학생에 대한 조치강화(학급교체, 전학 조치 등)와 교육감(교육부 장관)의 고발의무이다. 지금까지 교권침해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1항 각호에 따라 ①학교 내의 봉사, ②사회봉사, ③특별교육이수, ④출석정지(1회 10일 이내, 연간 30일 이내), ⑤퇴학처분 등의 조치가 가능했다. 개정된 「교원지위법」은 ⑥학급교체, ⑦전학 조치가 추가되었고, 출석정지도 「학교폭력예방법」과 같이 기간 제한이 삭제되었다. 다만, 「학교폭력예방법」은 조치의 병과를 허용하여 전학과 출석정지를 함께 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교원지위법」은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여 병과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보고를 받은 관할청(교육감 또는 교육부 장관)은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형사처벌 규정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수사기관에 고발할 것을 의무화 했다. 학생이 교권을 침해 하면 일반적으로 학교규칙(선도규정)에 의거 선도위원회를 개최하여 징계한다. 그런데 2013년 2월 5일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가 ‘학교교권보호위원회’로 바뀌면서 교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선도위원회를 개최해야 하는지,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해야 하는지, 개최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각 위원회의 기능은 어떻게 되는지 혼란이 있었다. 시·도별로 세부적인 내용은 차이가 있으나 학생 선도조치(징계)는 선도위원회가 하고, 피해교원 보호조치는 교권보호위원회가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교원지위법」 개정으로 교권침해에 대해서만 기간 제한이 없는 출석정지·학급교체·전학이 신설되면서 교권침해 사안은 종전대로 선도위원회가 선도조치를 할지, 교권보호위원회가 선도조치를 할지 학칙으로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학생징계는 중·고등학교에서는 흔히 있는 일로 중등에서는 선도위원회가 자주 개최된다. 그런데 초등학교는 학칙으로는 선도규정이 있으나 실제로 선도위원회를 거의 개최하지 않는다. 초등학교는 교권침해가 발생하더라도 학칙에 따라 처리하지 않고 학부모와 상담을 하여 적절히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초등학교도 교권침해가 발생하면 학칙에 따라 징계를 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2항은 학생징계는 ‘사유의 경중에 따라 징계의 종류를 단계별로 적용하여 학생에게 개전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습적인 교권침해 학생을 전학시키기 위해서는 사전에 교내 선도조치를 통해 단계적 처분을 해야 하고, 전학을 보내기 위해서는 학칙에 따른 징계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결국 초등학교도 학칙에 따른 징계가 일반화될 전망이다. 교권침해는 학생인권침해나 학교폭력 또는 학교안전사고로 인한 민원으로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교에서 교권침해로 전학·학급교체 등의 조치를 하면 학생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행정심판·재심·소송 등의 불복절차로 나아갈 확률이 높다. 앞으로는 또 개정된 「교원지위법」에 따라 학교가 내린 처분에 대한 분쟁도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처분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학급교체·전학과 같은 중징계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문제 학생을 학교에서 배제하는 수단으로 교권침해 강제전학을 사용한다면 소송 등의 불복절차를 거치면서 조치가 번복될 수 있고, 설령 학교가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학교도 상처를 입고 교육력을 소모할 것이다. 또한 교권침해 강제전학의 빈도가 높아진다면 문제 학생을 서로 주고받는 소위 폭탄돌리기 즉, 강제전학 남발의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강제전학은 어느 학교든 교권침해 학생을 받아야 하므로 결국은 제로섬이다. 따라서 학교는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 및 교권보호를 위해서 해당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만 전학과 같은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 아동복지법 기존 「아동복지법」은 아동학대관련범죄로 벌금형과 같은 경미한 형사처분을 받아도 10년동안 학교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취업제한 규정이 있었다. 교총은 몇 년 전부터 해당 규정의 위헌성을 인지하고 법률 개정을 주장하였고,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해당 조항의 위헌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2018년 12월 11일 국회는 법률을 개정하여 아동학대관련범죄의 형을 선고할 때 법원이 취업제한 기간을 10년의 범위에서 결정하도록 하였다. 개정된 「아동복지법」은 2019년 6월 12일 시행되며, ▲시행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부칙에서 벌금은 1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이나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확정된 사람은 3년, ▲3년 초과의 징역형 등이 확정된 사람은 5년의 취업제한 기간이 적용된다. 개정 전 일률적으로 10년간 취업제한을 부과하는 조항의 위헌성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국회·보건복지부·교육부는 국민 눈치를 보면서 나서지 않고 뒷짐만 졌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후에야 법률이 개정되었다. 입법기관이나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헌법재판소에게 책임을 떠넘겨서 마지못해 한 것은 매우 아쉬우나 법률 개정으로 교사들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 학교폭력예방법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①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교육지원청 이관, ②경미한 학교폭력은 학교장에게 종결권 부여이며, 법률이 개정되면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교육부 훈령)을 개정하여 1·2·3호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학교폭력 처리의 대원칙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였다. 교육적 해결을 위해 학교가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았으면 언론과 관할청은 학교폭력 은폐·축소·화해종용으로 간주하였다. 학교폭력사안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개최→재심→행정심판→소송 등의 절차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교육이나 화해는 사라지고 불신과 처벌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법률 개정으로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종전에는 잘못을 인정해 서면사과 처분이라도 받으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므로,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가해학생으로 인정돼 처벌을 받으면 학교와 기나긴 법적 다툼을 시작하였다. 법률이 개정된다면 가해학생도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 않는 경미한 조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종전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면 학교는 민원이나 행정적인 업무에 시달렸다. 실제로 자치위원회 이후에 재심·행정심판·소송이 제기되면 학교가 분쟁의 당사자가 되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법률이 개정되면 교육지원청이 법적 절차의 당사자가 되어 학교는 분쟁업무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법률이 개정되더라도 학교의 중재에 응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입장을 고수하면 결국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되더라도 사안조사는 여전히 학교가 담당한다. 교육지원청은 관련학생 측의 주장이 상반되면 학교의 의견에 보다 비중을 두어 고려할 수밖에 없으므로 학교의 입장이 매우 중요해 진다. 학교는 교육지원청에 보내는 문서의 문구 하나도 신중하게 기재하여야 할 것이고, 관련학생 측은 서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기재해달라고 학교를 압박할 것이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불복절차에서 학교의 사안조사보고서가 증거로 제출되면 해당 학생 측이 학교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지원청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개최된다면 교육적 기능은 퇴색하고, 재판·징계위원회로의 성격이 강해질 것이다. 변호사를 대동하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참석하는 경우가 일반화될 것이며, 학교폭력의 특성상 일방이 변호사를 선임하면 다른 한쪽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맞대응할 것이다. 교권 3법 개정으로 학교현장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며, 일시적인 혼란도 있을 수 있고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교육부·교육청은 법률 개정에 따른 세부 규정을 조속히 정비하고 학교현장에 안내하여 교권 3법이 학교현장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권 3법의 개정이 학교의 행정적 편의와 부담경감, 책임회피를 위한 방향으로 운용되어서는 안 되고 교권회복을 통해 학생의 인권존중, 학생의 학습권 보장, 학교현장의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분쟁 감소를 위한 방향으로 운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저는 최근에 교육학의 기반인 인간발달학과 심리학 공부에 푹 빠져 있습니다. 매우 재미있는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 몇 가지를 선생님들께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거북해진 5월을 맞이한 선생님들께서 이 글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즐거우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육체적 웰빙, 정신적 힐링 심리학에 ABC가 있더군요. 심리학은 1900년대 초에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행동(Behavior, 신체)에 대한 연구를 필두로 철학에서 과학 학문으로 이전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컴퓨터 개발과 더불어 인지(Cognition, 생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습니다. 주관적이어서 과학에서 배제되었던 감정(Affect, 정서)은 겨우 2000년대 초에 뇌과학의 도움을 받아 심리학에 포함되었습니다. 드디어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본격화된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적 웰빙을 거처 정신적 힐링을 추구하지만, 행복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가 있는 게 매우 신기합니다. 우리 뇌는 신경계를 통해서 초당 1천 100만개의 체감 정보를 접수하지만 겨우 50개 의식할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체감 정보를 의식하게 될까요? 몸이 정상적일 때는 구태여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지만 배고프거나, 무덥거나, 공격을 당할 때는 인지해야 합니다. 불편함과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감각은 부정성에 우선적으로 반응하도록 세팅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생각마저 부정에 치우쳐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생각을 2만 5000번 내지 7만 5000번 한답니다. 흔한 표현 그대로 하루 평균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셈이니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요! 문제는 그 많은 생각 중에 70~80%가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은 곧바로 잊어도 되지만 부정적 생각은 해소될 때까지 붙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일단 마음이 놓이며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공부를 못하면 아이의 미래가 걱정이 되고 성적이 올라갈 때까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온종일 온갖 미해결 과제에 골몰하는 게지요. 결론적으로 인간은 불쌍하게도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게끔 편향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삶 자체가 괴로움(苦)이라 하는지도 모릅니다. 웰빙도 힐링도 다 찰나일 뿐 행복감을 지속시키기 어림없습니다. 행복의 비결, ABCD 모델 최근 연구에 의하면 행복이란 부정적 감정이 전무한 상태가 아니라고 합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만약 부정적 감정이 없어야 한다면 심한 스트레스로 가득 찬 세상에 살면서 행복하기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행복의 비결은 부정적 감정보다 긍정적 감정을 더 많이 만나서 최소 1대3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랍니다. 강력한 긍정적 감정 한방이 아니라 소소한 긍정적 감정을 자주 경험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마 그래서 요즘 ‘소확행’이 대세인 모양입니다. 향기로운 커피 한잔, 친구와 떡볶이 한 접시, 따뜻한 무릎담요 한 장이면 족합니다. 그러나 소확행은 빠르게 시시해지기에 우리는 점차 더 큰 자극을 찾게 됩니다. 그럼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 저는 ABC가 아니라 ABCD 모델을 제안합니다. 우리 정서(A)에 신체(B)와 인지(C) 영역 외에 영성(Divinity) 영역도 개입한다는 새로운 모델입니다. 영성은 가치관과 존재성에 대한 것입니다. 신체 영역에서 체감이, 생각(想) 영역에서 상감(想感)이 유발되듯이 영성 영역에서는 영감이 유발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을 세 가지 방법으로 확증합니다. 체험은 신체 영역의 활동으로 직접 보고 듣고 만져서 확신을 가지는 암묵지입니다. 경험(經驗)은 책(경서)을 공부함으로써 확증을 얻는 형식지입니다. 영험(靈驗)은 글과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초인지이며, 이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 해당합니다. 영감과 영험은 나보다 더 큰 존재를 만날 때에 느낄 수 있습니다. 성인군자를 비롯하여 대자연을 접할 때 감동을 합니다. 감동이 바로 내적 동기유발이며 자율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하늘에 계시든, 친부모님이든, 또는 부모님 같은 선생님이든 그들에게 관리와 지시를 받는가, 아니면 관심과 지지를 받는가에 따라 아이의 기본 정서 상태가 달라집니다. 기본 정서를 결정하는 관심과 지지 관리와 지시는 무시하는 미움이고, 관심과 지지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미움을 받으면 피해망상에 패배주의적 사고방식이 생겨날 것이고 사랑을 받으면 행복하고 성공하는 삶의 방식을 터득할 것입니다. 미움에서 악함이 나오고 사랑에서 선함이 나옵니다. 저는 선함의 핵심은 감사함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함은 가치의 발견입니다. 처음에는 어느 무엇 때문에 감사하다가, 존재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지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어느덧 내 마음에 감사함이 가득 찹니다. 예를 들어 따듯한 밥상을 차려주신 부모님이 감사합니다. 헤아려보니 밥상을 2만 번이나 차려주셨습니다. 또한 보살펴주시고 등록금도 주셨습니다. 이 하나하나에 대해 감사함을 곱씹다보면 어느새 부모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감사하게 다가옵니다. 깨닫고 보니 동생도 고맙고, 친구도 고맙고, 이웃도 고맙고,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비가 내려도 고맙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도 고맙습니다. 이렇게 감사함을 두루 느낄 때 어느새 내 마음이 감사함으로 충만해집니다. 감사함을 느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오로지 내 마음이며, 어느 정도 느낄 것인가 역시 내 마음껏 입니다. 끝없이 채울 수 있는 긍정적 감정이 감사함이어서 행복비율 1:3을 쉬이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선한 상태가 되면 동물같이 생존 본능에 머물거나 부정적 미해결 과제에 매몰되지 않고 창의적이며 희망찬 비전에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에 배려하고 베풀고 기여하는 행위로 절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교직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감사합니다. 방학이 있어서 감사하고, 연금이 있어서 감사하고, 아직 날 필요로 하는 학생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교사가 세상 드물게 우수한 인재집단이라는 사실이 감사하고, 학부모의 교육열이 감사하고, 교육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감사합니다. 학생들도 감사함으로 충만해지는 방법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이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고 분석을 잘하고 계산을 잘해봤자 인공지능 발끝도 따라갈 수 없는 세상입니다. 어차피 학생들이 필요한 지식은 그들 스스로 맘껏 접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식 전달에서 해방되고 지혜 전달에 치중하면 됩니다. 그래서 다시금 우리가 학생들에게 큰 존재가 되어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스승이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날이 바로 이번 5월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럴 때 5월이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고 행복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어느새 금요일 아침, 한 주가 끝나갈 무렵이지만 오늘도 정신없기는 매한가지이다. 6시 30분 무렵 눈을 뜬다. 이미 출근한 남편은 아마 오늘도 아침 식사를 거르고 갔을 것이다. 서둘러 밥상을 차리고 옷을 입고, 둘째 아이를 깨워 세수하라고 시켜놓고 화장을 한다. 밥상에 앉으면서 첫째 아이 방문도 열어 깨워둔다. 7시 25분, 둘째 아이와 집을 나선다. 다행히도 아침 돌봄을 시행하는 초등학교 덕에 아이를 맡기고 걸어서 학교로 출근한다. 중간에 다리를 건널 때 보이는 양재천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봄 풍경을 곁눈질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걷는 출근길…. 이 시간이 조금 더 여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중학생인 첫째 아이는 혼자 밥을 먹고 8시 무렵 집을 나설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다. 조금 일찍 철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첫째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을 미뤄둔다. 7시 50분 학교에 도착해 아침 전달 사항을 챙겨서 8시 조회를 위해 교실에 입실한다. 3월 마지막 주가 되니까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유인물의 양도 조금 줄어든 것 같다. 아차, 독감으로 결석했던 학생들이 미처 내지 못한 동의서와 동아리 배정서, 결석 신고서를 챙겨야지. 조회를 마치고 교무실에서 아침에 바빠서 스쳐 지나갔던 동료 교사들과 잠깐 아침 인사를 나눈다. 교무실은 커피 냄새로 그윽하다. 8시 30분. 1교시 종소리를 듣고 수업에 들어간다. 올해부터 2학년생들은 선택과목 수가 대폭 늘어나서 하루에 한 두 시간을 빼고는 모두 이동 수업을 해야 한다. 다행히 문학수업은 학급 단위로 해당 반 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된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가 오늘 수업해야 할 소단원이다. 오늘 이 반에서 하는 수업이 첫 수업이라 다소 긴장된다. 첫 수업의 긴장감은 20년이 지나도 늘 한결같다는 사실이 놀랍다. ‘안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이 천지 차이라는 사실에 당황하며, 수업을 위해서는 가르칠 내용을 구조화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달아가던 초임 시절, 계획했던 수업내용을 머릿속에 그리며 교실로 가던 복도에는 긴장과 설렘이 만드는 두근거림이 가득했다. 그 때는 20년쯤 후에는 다를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뜻밖에도 ‘가도 가도 수업은 똑같더라~’이다. 교실에 들어서고, 인사를 나누고, 칠판에 단원 제목을 쓰고, 동주라는 영화를 보았냐고 질문을 던져본다. 정작 나는 보지 못했지만 몇몇이 보았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보다 실제 윤동주가 더 잘생기지 않았냐는 실없는 농담을 던져본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저항 시인이면서 순수 청년의 전형이기도 한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를 한 행씩 읽어나간다. 어느새 칠판 한가득 판서 내용이 쌓이고 종이 울린다. 글쓰기 과제물을 걷고 다음 시간에 있을 발표를 희망한 학생들에게 발표 방식을 전달한 후 교실 문을 나선다. 오늘 수업이 나쁘지 않았다고 느낀다. 보람과 자부심이 슬쩍 지나간다. 두 아이가 따라 나오며 수업내용에 대해 질문을 한다. 간단히 대답해 주고 2학년부 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2교시는 공강 시간이지만 기획 선생님과 2학년부의 진로 심화 프로그램 계획을 논의하느라 학생들 과제물을 읽을 계획이 흐트러져 버렸다. 희망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진로 심화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할지, 학교 일정·예산·프로그램을 맡길 업체 사정까지 고려하다 보니 계획이 이렇게 저렇게 자꾸 바뀐다. 수많은 가능성 중 몇 가지를 정리하고, 학생 오리엔테이션 날짜까지 결정했다. 5월 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에 3번은 출근해야겠다. 그나저나 이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잘 진행될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진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강사나 기관에 대한 네트워크가 없어 구청 등에서 지원하는 지역 진로센터와 아는 분들에게 아름아름 문의해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강사를 섭외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그래도 공문으로 안내를 받은 대학생 멘토링을 신청해서 조금 더 다양한 프로그램 구성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강사분들이 잘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5·6교시가 동아리 시간이라서 3교시 수업 후에 간단히 학급 종례를 했다. 4교시는 담임 회의 자료를 준비하다가 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 후 4교시를 끝낸 직후인 12시 10분부터는 학급 학생과 20분 정도 상담을 하였다. 번호 순서대로 돌리는 학기 초 상담이다. 성적과 교우관계 등을 파악하고 격려도 보탰다. 밝은 성격이라 1년 간 학급 생활을 잘 해 나갈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학생이었다. 상담 후 오후 1시부터 20분간 담임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2학년부 교무실에 의자 여러 개를 놓아두고 바닥의 먼지를 쓸어낸다. 어제가 담당 학생들이 청소하는 날이었지만 쓰레기통과 재활용 쓰레기를 힘들게 비우고 온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바닥 청소까지 하라고 하지를 못했다. 특별구역 청소는 모르겠지만 교무실 청소까지 학생들에게 맡기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담임 회의에서는 진로심화프로그램 대상자를 확정하고 한두 가지 협의사항을 논의하였다. 주로 학년 담임들의 지도 방식을 통일해야 하는 사안들에 대한 논의였다. 이 중에는 생리 결석이 남용되지 않도록 지도하는 방안에 대한 것도 있었다. 학생 인권을 지키면서도 생리 결석이 부당하게 남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한 여러 의견들이 오고 갔다. 1시 20분 5교시, 시작종이 울리고도 회의가 조금 더 진행되었지만 동아리 시간이라서 조금 여유 있게 논의를 마무리 짓는다. 회의 도중에 오늘 간부 수련회를 가는 우리 반 학급회장과 부회장, 우애부원들이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담임교사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는 아이들이 기특해서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5,6교시 동아리 시간이 3시에 종료된다. 4월 초반에 수련회 답사를 가야 하는데, 차량 연료비는 어떻게 지급되는지 행정실에 문의한다. 행정실 직원이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신다. 덕분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당일에 카드를 지급받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답사에 참여하는 2학년 부장인 나와 기획 선생님 모두 장거리 운전에 그다지 자신이 없다. 그래도 내가 운전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주말에는 차량 점검을 받아야 할까 보다. 전화하는 사이 오늘로 예정되었던 2번째 상담 학생이 교무실 문을 들어선다. 이런저런 이야기에 상담이 좀 길어져 어느새 퇴근 무렵이 된다. 퇴근은 어제 세워두었던 자동차로 해야 한다. 어제 교문 지도 순번이라 일찍 출근하기 위해 자동차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미세 먼지 최악이라 취소가 되는 바람에 일찍 온 보람이 없어졌다. 그래도 덕분에 하루의 시작이 여유로워 좋았는데, 문제는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까 차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냥 집에 가버렸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생기는 건망증 탓일까, 정신없이 흘러가는 바쁜 일과 탓일까. 암튼 그 이야기로 헛웃음을 날리며 동료 교사들과 인사를 나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시험 문제 내야지….” “어~ 정말. 쉴 틈이 없네요. 그래도 어떻게든 쉬시고 오시길~. 오늘은 자동차 잘 챙겨가세요…. ㅎㅎ” “그래요…. ㅎㅎ” 피어나기 시작한 봄꽃들로 아름다운 교정 한 켠에 세워진 나의 자동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잠깐 차 안에서 한숨을 돌린다. 교직 5년차에 구입했던 내 차를 15년째 타고 있다. 새 차 냄새가 가시지 않던 반짝이던 그 차가 이제 구닥다리가 다 되어 버렸다.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었겠지 싶어 씁쓸해 진다. 4시 30분. 아차, 둘째 돌봄교실에 5시까지 데리러 가야지. 주말이라고 긴장이 풀려서 깜빡 잊으면 안 되지. 애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늘은 첫째 아이 학부모들과 반모임도 있는 날이다. 그것도 잊으면 안 되지…. 자동차에서 서둘러 내린다. 둘째를 데려와 아침에 못 하고 갔던 설거지를 하고 저녁 밥상을 차린다. 저녁 6시 30분. 둘째 아이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당부대로 일찍 퇴근한 남편을 남겨 놓고, 치킨집 반모임을 하러 간다. 돌아온 시간은 10시 30분. 첫째 아이와 3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해 보는구나…. 고맙고 좋은 마음이 든다. 이야기를 쓰다 보니 참 바쁜 하루였던 것 같다. 요새는 교직생활이 책 한 권 읽을 수 없이 빡빡하다고들 한다. 그런 바쁜 직장생활과 아이들을 섬세하게 챙겨야 하는 요즘 엄마의 역할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받은 사랑만큼 성장하는 아이들을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돌봐야 하는 교사 엄마들은 학교와 집 어느 쪽도 소홀할 수 없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지켜내느라 힘들었던 탓인지 지난 봄방학 끝날 무렵 시작된 허리통증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잘 자라주는 아이들이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 그 아이들을 잘 지켜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책임이 막중한 40대, 그래서 아플 수도 없는 40대라고 하지 않나. 바쁜 주말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 스트레칭으로 허리통증을 완화시킨 후에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내가 지켜낸 건강은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살아오면서 많은 복을 누렸다. 그중에서도 좋은 스승을 만나고 가르침을 받는 복을 누렸다. 스승들의 가르침은 길을 잃고 헤매거나 나태해질 때 나침반이 되고, 격려의 다독임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만난 스승들은 청소년기의 필자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일이 가치 있는 일인지를 알려주셨다. 대학에서 만난 스승들은 필자에게 평생을 견지해야 할 학문하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또 학문으로의 길을 열어주셨다. 중·고등학교의 스승들이 인생의 큰길을 제시하셨다면, 대학 때의 스승들은 그 길을 살아갈 방법을 일러주신 셈이다. 시대를 앞서간, 남다른 교육철학을 가진 서원출 교장선생님 몇 년 전, 십여 명의 친구들이 모인 적이 있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고등학교 동창인 자리였는데 그날따라 필자가 약속 시각에 조금 늦었다. 필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친구 중 한 명이 “너 잘 왔다. 근데 너 보수야? 진보야?”라고 묻는 것이다. “나야, 건전한 보수지”하고 답했다. 필자의 대답을 들은 친구들이 일제히 웃으며 “네가 무슨 보수야, 넌 진보야 진보!”라며 놀리듯이 말했다. 그 자리에서 진보는 조금 부정적인 의미로 필자에게 들려왔다. 그래서 필자가 “내가 진보야?”하고 친구들에게 되물으면서 “나랑 같은 보성중·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은 다 진보 아니냐?”라고 덧붙였다. 필자의 말에 친구들은 어리둥절 해했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가 진보인 이유를 설명했다. 시대를 앞서간, 남다른 교육철학을 가진 서원출(徐元出, 1900~1966. 사진) 교장선생님이 계셨기에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자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필자가 중·고등학교에 다닌 1950년대 남학생들은 ‘까까머리’로 머리를 깎고, 학생들은 교복 윗옷 주머니 위쪽에 이름표를 달고 다녔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관에는 대개 ‘학생 출입불가’ 푯말이 붙어 있어서 학생들은 영화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보성중고등학교는 그런 규정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우리는 학창시절 내내 머리를 빡빡 깎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 그 당시에 머리를 깎지 않은 학교는 우리 학교가 전국에서 유일했을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참전했다 돌아온 선배 상이군인도 있었다. 우리보다 서너 살 많던 상이군인 학생들이 교내에서 담배를 피워도 아무도 나무라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두발의 자유를 준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보성학교의 남다른 면모는 또 있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교복 윗주머니에 달던 명찰을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달지 않았다. 이름표는 학생지도의 편의라는 핑계로 학생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라며 교장선생님은 이름표 다는 것을 금지하셨다. 게다가 학생의 영화관 출입금지에 대해서는 문화예술의 한 장르인 영화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며 자유롭게 영화를 즐기도록 허용했다. 그 시절에는 범법과 규칙 위반은 무엇이든 단속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학생의 영화관 출입을 막으려고 여러 학교 선생님들이 번갈아 가며 영화관으로 선도를 나왔다. 그런데 필자가 영화를 보러 갔다가 다른 학교 선생님에게 걸렸다. 보름쯤 후에 훈육주임 선생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선생님께서 “너 영화관에 갔더라? 어느 극장 갔느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평화극장 갔는데요.”라고 대답했더니 선생님의 말씀이 걸작이었다. “야 임마! 한번을 가더라도 일류극장엘 가지 왜 삼류극장에 갔냐? 가봐.”라고 하셨다. 훈육주임 선생님은 필자가 ‘극장에 간 사실 확인’과 ‘좋은 극장가라’는 조언으로 상황을 종료했다. 아마도 다른 학교 같았으면 선도와 훈육의 말씀을 한참 동안 들었어야 할 상황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학교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교과목에 군사훈련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군사훈련을 받으려고 운동장에 모였는데 교장선생님이 “학생에게, 그것도 공부시간에 무슨 군사훈련이냐. 열심히 할 필요 없다”라고 하셨다는 이야기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물론 교장선생님은 우리에게 군사훈련을 열심히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교장선생님이라는 든든한 ‘빽’을 믿고 운동장 가의 나무 그늘로 가서 책을 읽거나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처참했다. 제식훈련 평가를 앞두고 6열 종대로 행진을 연습하는데 횡으로도 종으로도 대열이 맞지 않았다. 실전의 날, 영관급 장교가 조회대에서 사열하는데 우리의 대오(隊伍)는 여전히 엉망이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우리를 나무라지 않았다. 전후라는 살벌한 상황에서도 우리 학교는 그렇듯 자유롭게 학생들의 권리를 존중했다. 보성의 학생들이 누린 교육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일화이다. 우리 학교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문·이과로 나누지 않았다. 다른 학교는 2학년이 되면 문·이과를 나누어 수업하는데 우리 학교는 그런 구별이 없어서 3학년이 되자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문과를 지망하는 학생은 물리 같은 이과시간에 역사나 사회과목을 공부하고, 이과를 지망하는 학생은 문과시간에 물리나 수학 같은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 대표가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문·이과로 나누어 수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우리 보성고등학교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원이 아니다”는 말로 단호히 거절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학교 분위기는 뒤숭숭했고 필자도 그런 처사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고 불만을 표했다. 그런데 필자가 사회인이 되자, 학교는 원칙을 지켜야 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중요성을 알게 해준 보성고등학교. 보성고등학교는 내 인생에서 옳은 것을 위해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용기를 가르쳐준 곳이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끝내며 필자는 친구들에게 “이런 교육을 받은 우리는 모두 행운아라 할 만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서원출 교장선생님은 보성고등학교에서 자유롭고, 인간의 권리를 중시하는 교육이념을 실천하셨다. 그래서 훗날,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 ‘스승의 사랑’을 온몸으로 터득했음을 차츰 알게 되었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통해 청소년기의 가치관 형성에 큰 틀을 놓아주신 서원출 교장선생님을 필자가 큰 스승으로 흠모하는 이유이다.
사과나무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떠오르는가.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과일 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과일 꽃이 피는 4~5월엔 온갖 꽃들이 만발할 때여서 과일 꽃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일 꽃 자태도 웬만한 원예종 꽃이나 야생화 못지않다. 특히 사과꽃, 배꽃, 복숭아꽃, 앵두꽃, 모과꽃 등은 꽃도 어여쁜 데다 얘깃거리도 참 많은 꽃이다. 풋사랑의 싱그러움을 담은 사과꽃 향기 사과나무꽃은 하얀 5장의 꽃잎에 황금색 꽃술이 달린다. 꽃봉오리는 처음에는 분홍색을 띠다 활짝 피면서 흰색으로 변하는데, 분홍색이 아직 남아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 그즈음 사과꽃은 수줍어 살짝 붉어진 아가씨의 볼을 연상시킨다. 사과꽃은 향기가 참 좋다. 이 향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잘 익은 사과가 가득 담긴 박스를 처음 개봉할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 맑고 싱그러운 향기다. 은희경 소설 새의 선물에선 사과꽃 향기가 조숙한 소녀의 풋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새의 선물은 남도의 지방 소읍에 사는 조숙한 소녀가 주인공인 성장소설이다. 삼촌의 서울 친구인 허석이 서울에서 내려왔을 때 가족들은 밤 영화를 본 다음 과수원 길로 산책을 간다. 풋사랑의 시작이다.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진정 나는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과수원이 가까워질수록 꽃향기가 진해진다. 사과꽃 냄새다. 삼촌과 허석이 앞서서 걷고 그 뒤를 나와 이모가 따라간다. 어두운 숲길에는 정적이 깃들어 있고 사과꽃 향기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하늘에는 별도 있다. (…중략…)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다만 허석, 그와 밤 숲길과 사과꽃 향기뿐이다. 사과꽃 향기에 쌓여 그와 내가 봄 숲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과수원의 사과나무꽃은 이 소설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나’는 허석이 그리우면 8월의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풋사과가 매달린 과수원 길을 한없이 걷는다. 풋사랑이라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요즘은 서울 종로 길거리나 공원 같은 곳에도 사과나무를 많이 심어놓아 과수원까지 가지 않아도 맑은 사과꽃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은은한 품격이 느껴지는 순백의 배꽃 공지영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는 ‘배꽃 같은 여자’ 소희가 나온다. 이 소설은 신부 서품을 앞둔 젊은 수사(修士) 요한이 세속 여성과 사랑에 빠져 방황하다가 한 단계 성숙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젊은 수사를 사랑에 빠지게 한 주인공은 아빠스(Abbas·대수도원 원장)의 조카, 소희였다. 요한 수사가 소희를 처음 만나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불암산, 요셉 수도원, 흰 배꽃…. 그래, 그녀의 이름을 여기에서 처음 발음해보기로 한다. 김소희, 소화 데레사.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헐렁한 완두콩빛 스웨터에 무릎까지 오는 나풀거리는 흰 스커트를 입었고 납작하고 세련된 연둣빛 데크슈즈를 신고 있었다. 내가 멀리서 그 아름답고 하늘하늘한 실루엣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다른 수사와 배꽃 사이를 걷고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를 쓸어 올리다가 함께 걷던 수사의 무슨 말인가에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어댔다. 내가 처음 본 것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 뒤로 검은 수도복을 입었지만 29살 젊은이인 요한 수사에게 ‘흰 배꽃 사이로 걸어가던 그녀의 무릎 아래서 흔들리던 흰 스커트’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요한 수사는 아빠스의 지시에 따라 소희의 논문 연구를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요한 수사는 신부 서품을 앞둔 ‘하느님의 사람’이었다. 더구나 소희에게는 어릴 때 약속한 헌신적인 약혼자가 있었다. 결국 소희는 떠나고 요한은 이별의 고통을 겪는다. 배꽃은 흰색의 꽃잎 5장에 검은 점을 단 꽃술이 조화를 이룬 것이 품격을 느끼게 하는 꽃이다. 은은한 향기도 좋다. 특히 5월 산들바람에 하얀 꽃잎들이 흩날리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이 소설을 읽고 배꽃이 필 무렵 불암산 기슭에 있는 요셉 수도원(경기도 남양주)에 가보았다. 나풀거리는 흰 스커트를 입고, 흰 배꽃 사이를 걷는 아가씨는 볼 수 없었지만, 드넓은 과수원에서 마침 절정에 이른 하얀 배꽃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과일 꽃 중의 여왕, 매혹적인 모과꽃 복숭아꽃(복사꽃)은 꽃색이 연분홍색인데다 꽃 안쪽으로 갈수록 붉어지는 것이 요염한 느낌을 주는 꽃이다. 조지훈의 시 승무에서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가 괜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복사꽃은 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이중섭 그림에서 자주 나오는 꽃이다. 제목이 ‘벚꽃 위의 새’인 그림(은은한 푸른빛을 배경으로 하얀 새 한 마리가 가지에 앉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도 사실은 벚꽃이 아니라 복사꽃을 그린 것이다. 이중섭은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천도복숭아를 그려 주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서 복사꽃은 무릉도원 즉, 낙원을 상징하는 꽃이다. 앵두나무(추천명은 앵도나무)꽃은 동글동글 귀여운 꽃잎에 꽃술 아랫부분이 붉은빛이 돌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경복궁에 가면 유난히 앵두나무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경복궁에 앵두나무가 많은 데는 사연이 있다. ‘문종실록’에는 문종이 왕세자 시절 앵두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세종이 앵두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효심이 깊은 문종이 손수 앵두나무를 심고 직접 물을 주면서 정성껏 길렀다는 것이다. 세종은 “여러 곳에서 진상하는 앵두도 많지만 세자가 따다 준 앵두라 더욱 맛이 있다”며 세자의 효심을 칭찬했다. ‘모과’는 무엇보다 울퉁불퉁 못생긴 것이 특징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까지 있다. 그러나 꽃에 이르면 상황이 180도 다르다. 봄에 진한 분홍색으로 피는 모과꽃이 뜻밖에도 아주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향기까지 아주 좋다. 과일 꽃 중에서 여왕을 뽑는다면 아마 모과꽃이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내가 심사해도 모과꽃을 고를 것 같다. 모과나무는 꽃도 예쁘지만, 수피도 아름답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매끄러운 줄기에 있는 얼룩얼룩한 무늬가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처럼 과일나무들은 과실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예쁜 꽃들도 선사하는 고마운 나무들이다. 올봄이 가기 전에, 과일나무가 있으면 꼭 한번 꽃과 눈을 마주쳐 보기 바란다.
흔히 장편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 문장’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우주와도 같은 장편소설의 세계관을 빚어나가는 첫걸음을 어떻게 떼느냐에 따라 작품 전체의 맛이 달라진다. 위대한 소설들의 유명한 도입부 몇 가지를 기억한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도입부도 기억할 만하다. “내가 지금보다 어리고 약하던 시절 아버지가 해주신 충고를 기억한다.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최근 들어 이와 같은 명작에 필적할 만한 ‘첫 문장’을 읽었다. 놀랍게도 2017년에 나온 작품이다.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는 다음과 같은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조선 여자 ‘순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민진 작가는 박경리의 ‘토지’에 맞먹는 집중력으로 역사의 질곡 속에서 그저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조선인들의 삶을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그려낸다. 작품 속에서 너무 가난했던 조선 사람들은 굶주림을 피해 일본으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빈민촌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돼지를 포함한 가축들과 한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게 이들의 숙명이었다. 조선인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일본 아이들에게 차별과 따돌림을 당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 나이에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간 작가가 일제강점기 조선과 세계대전 종전 시점 무렵의 일본을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던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심금을 울린다. 소설의 백미는 이 아픔과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끝끝내 피어나는 삶의 희망을 작가가 결코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느냐’던 신경림 시인의 노래처럼 순자의 가족 역시 도저히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부둥켜 안는다. 이 소설은 애플이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시작하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TV플러스’에 의해 8부작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배경이 조선과 일본임은 물론 대부분의 배우들이 조선인과 일본인인 이 작품을 애플이 어떻게 그려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고, 우리는 상관이 있다” 시간이 흘러 한국과 일본 모두 가난에서 탈출했다. 대충 벗어난 수준이 아니라 앞서가고 있다. 흔히 유럽이나 미국보다 못하지 않느냐는 반문이 돌아오지만, 한국만큼 한국인들의 삶에 최적화된 나라는 단언컨대 없다. 완벽하지는 않아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겠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는 걸 잠깐 여행만 나가봐도 깨닫게 된다. 문제는 이전 세대들이 그토록 원하던 풍요를 손에 넣었으면서도 우리의 내면이 여전히, 아니 어쩌면 이전보다 더 어둡다는 사실이다. ‘빅 픽처’를 쓴 미국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인간은 단점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말한 그대로다. 현 시점에서 한국인들이 느끼는 불만이나 불행은 매년 ‘문학사상’이 선정해 발표하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상문학상 작품집, 나아가 다수의 한국 소설들에는 삶의 희망보다는 절망이, 잘 될 거라는 낙관보다는 어차피 또 실패할 거라는 비관론이 대세다. 올해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심사평을 보면 심지어 심사위원들이 보기에도 “전반적으로 너무 침울하다”는 코멘트가 눈에 띈다. 한국 작가들이 이렇게까지 내면의 어둠에 천착하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한국 사회에서의 삶이 유달리 침울해 할 만한 것이어서? 아니면 한국 작가들이 대체로 너무 비관적이어서? 지나치게 섬세해서? 모르긴 해도 이민진 작가가 지적한 대로 “역사가 우릴 망쳐놨다”는 문제의식이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국내 역사학자 다수의 견해를 고려했을 때 많은 숫자의 한국 작가들에게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됐을 나라’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시작 단계부터 잘못된 씨앗을 뿌렸으니 그 열매에 대해서도 좋은 말을 해줄 수 없다는 게 다수 한국 작가들의 생각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를 얼마나 망쳐놨건 일제 강점기만큼 절망적인 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의 이 험난한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삶의 의미를 길어 올려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작품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많아져도 되는 거 아닐까. 어쩌면 너무 늦게 나온 건지도 모르는 소설 ‘파친코’를 읽은 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역사를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작가들, 선생님들, 학생들이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고.
요행이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을 넘어선 뜻밖의 행운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행은 조선시대 수험생들에게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어서 당시 교육 문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주요 요인이었으며, 조선시대 교육이 안고 있던 최대 고민 중의 하나였다. 이처럼 요행은 조선시대 교육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였다. 요행을 기대하는 것은 일부 수험생들에게나 해당되는 현상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행심리가 당시 얼마나 많은 수험생들에게 내재되어 있었는가를 알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혹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요행에 의존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과거에 합격한 수험생들이어야 한다고 강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수험생 중에서 요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의 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별시(別試), 요행심을 부추기다 조선시대 유생들에게 요행심을 불러일으킨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별시(別試)였다. 별시란 과거의 변종으로서, 과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실시되지 않았던 특별시험이었다. 정규시험인 식년시(式年試)가 7단계의 복잡한 시험을 거쳐야 합격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별시는 한두 차례의 시험을 통해 합격이 결정되었다. 이처럼 식년시는 요행이 허용되기 어려운 시험이었던 반면 별시는 요행의 여지가 많았다. 이는 비단 절차가 간단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두 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별시가 너무나 빈번하게 실시되었다는 데 있었다. 다음 기록에서처럼, 별시가 자주 실시되는 만큼 합격 확률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수험생들에게 만연되어 있었다. 근래 별시가 너무 잦아서 매년 응시하면 학업을 이루지 못한 자도 간혹 합격하므로 사람들은 모두 요행심을 가질 뿐 학업에 힘쓰지 않으니, 사람을 자주 뽑는 것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 도리어 해가 됩니다. - 중종실록 33년 2월 계유 두 번째 이유는 그 시험 방식이 일종의 논술시험과도 같은 제술시험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술시험을 실시함으로써 요행을 바라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래 기록이 잘 설명해 준다. 해마다 별시를 행하여, 선비들에게 시험을 보이지 않는 해가 없었는데, 모두 제술을 사용하였으므로, 선비들이 모두 요행을 바라며 독서에 힘쓰지 않습니다. - 성종실록 3년 4월 계미 그런데 이와 같이 제술시험이 요행심을 자극하게 된 것은 그 시험을 준비하는 방식과 관계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상 문제집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생들은 자신들의 예상 문제집이 적중하기만을 바라는 요행심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험관에게 요행을 기대하다 제술시험이 수험생들의 요행심을 자극하게 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험관과 관련이 있었는데, 수험생들은 시험관에게 요행을 기대하는 풍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상 문제집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관이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합격시켜 주기를 기대하였다. 이렇게 기대를 하게 된 데는 시험관들이 읽어야 할 답안지가 엄청나게 많아 제대로 채점을 할 수 없어 능력이 뛰어난 유생이 아니더라도 요행히 합격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험관이 비록 많다고는 하나 게으른 나머지 모두 (답안지) 보기를 좋아하지 아니하고 제대로 보는 사람은 그중 불과 1∼2명뿐이니…(중략)…글 잘하는 자가 낙방하고 요행을 바란 자가 합격하게 된다. 그러므로 유생들이 운수를 믿고 재주를 믿지 아니하여 마침내 학업을 게을리하고 요행만 다투어 바란다. - 명종실록 8년 6월 갑신 이러한 상황은 조선 후기로 가면 더욱 심각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응시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별시의 경우 당일에 합격자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 채점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짧아 시험관이 손에 잡히는 답안지만 채점을 하게 되고 이들 중 합격자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시험을 운영하는 법이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7, 8천 명의 답안지를 처리해야 하므로, 정밀하게 가릴 겨를이 없습니다. 따라서 손이 가는 대로 당락을 결정하니, 요행히 급제하는 자가 대부분입니다. - 영조실록 45년 10월 무진 그 후 응시자가 수만 명까지 늘어나게 되자, 시험관들이 반나절 동안에 채점하기가 불가능하여 답안지 중에서 앞의 몇 줄만 읽고 채점하거나, 빨리 낸 답안지만을 채점하는 폐단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요행으로 합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러한 사실을 당시 수험생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행을 기대하고 응시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들 합격자 중에는 서찰도 쓸 줄 모르는 유생들도 많았는데, 이들 수만 명의 응시자들은 실력이 합격을 좌우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오직 기대할 것은 요행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합격한다는 것은 요행 중의 요행으로서, 바로 오늘날 ‘로또 당첨’과도 같은 것이었다. 학업의 포기, 그리고 요행의 기대 수험생들이 요행에 기대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과거시험 준비를 위한 학습 분량이 너무 과도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의 경우는 사서(四書)와 일경만을 준비하면 되었던 것에 비해, 조선은 사서와 삼경 전체를 공부해야만 했다. 특히 정조 때 영의정 김상철은 우리나라 선비들이 칠서(사서삼경)를 외우는 것은 일생을 다 바치더라도 성공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 만큼 조선의 과거시험 과목들은 수험생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 대부분 수험생들은 아예 학업을 포기한 채 요행의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이런 상황은 교재를 갖추고 있었던 유생들에 국한된 것이었고, 당시 서적의 부족 문제로 교재를 제대로 갖출 수 없었던 수많은 유생들은 어쩔 수 없이 정상적인 학습이 불가능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시험 응시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편법으로서 예상 문제집에 의존하여 시험에 응시하려 했다. 이렇게 예상 문제집에만 기댔던 유생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바로 요행이었던 것이다. 시험이라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수험생들로 하여금 요행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지만, 조선시대는 단 한 번의 요행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수험생들의 요행심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의 최대 연결고리라 할 수 있는 별시를 혁파하는 것이었음에도 당시 왕들은 별시가 백성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 여겼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중단하려 하지 않았다. 당시에 별시가 수험생들의 요행심을 자극하다 보니, 전국의 수험생들이 별시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운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우려되었던 것은 가난한 수험생들의 상경에 따른 비용 지출 및 농사의 지장이었다. 별시는 전반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수험생들의 경제력을 소모시키는 요인이 됐고, 특히 경제적 하층에 속하는 수험생들의 생계 기반마저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요행’이 당시 비정상적인 일부 수험생들에만 국한된 것이라기보다는 수험생 전반과 관련된 문제였다. 오늘날 많은 전문가들은 논술시험을 가리켜 ‘로또 시험’이라고 한다. 이처럼 지금의 논술시험은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수험생들에게 일말의 요행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학입시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는 지금의 학생들 역시 요행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VENEZIA는 라틴어로 ‘계속해서 오라’, ‘또 다시오라’는 뜻이다. 도시의 뜻처럼 계속해서 머물고 싶고, 또다시 한번 가고 싶은 그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손꼽히는 베네치아를 소개한다.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곡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 배경지로 유명한 베네치아는 셀 수 없을 만큼의 나무 기둥 위에 건설한 118개 섬으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물의 도시’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동차가 다니지 않으며, 심지어 응급 구조차량마저도 차량이 아닌 선박인 진기한 광경을 자아낸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400여개의 다리와 작은 골목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건축물 등 베네치아에 들어오는 순간 카메라 셔터는 바삐 움직이고, 나의 심장 또한 바삐 뛴다. 베네치아 여행은 산타루치아역에서부터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많은 여행자의 고민 중 하나는 ‘베네치아 어디에 숙소를 구해야 좋을까?’이다. 보통 산타루치아역(본섬)과 메스트레역(육지) 중에서 저울질한다. 메스트레역 근처 숙소는 산타루치아역보다 숙소 값이 저렴하고 깨끗하다는 장점이 있다. 산타루치아역(본섬) 숙소가 오래되고, 물가라는 특성상 모기와 해충이 많아 여행객들의 불편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왕 베네치아에 온 것, 베네치아 여행의 시작점인 산타루치아역 즉, 본섬을 중심으로 숙소 잡기를 추천한다. 도보로 여러 군데 돌아다니려면 기차로 한 번 더 이동해야하는 메스트레역보다 본섬의 숙소가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또한 밤에도 치안이 괜찮을뿐더러 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도시의 야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며, 여행다운 여행을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베네치아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종탑으로!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은 핵심 관광지역이다.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마르코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 산 마르코 광장에 우뚝 선 거대한 종탑, 베네치아 총독 건물이었던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죄인들이 교도소에 들어가기 직전 아름다운 베네치아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을 탄식했다는 탄식의 다리 등 다양한 관광지역이 밀집해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중 베네치아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산 마르코 광장에 우뚝 선 종탑은 꼭 가야할 곳이다. 산 마르코 광장에 들어서면 산 마르코 대성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종탑 앞에 종탑 꼭대기 전망대로 올라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둘 중 고민하다 종탑 꼭대기로 올라가는 줄에 섰고,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1인당 8유로, 정원이 겨우 10명인 엘리베이터, 언제 줄을 서느냐에 따라 의외로 많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지만 꼭 가야 한다. 일단 종탑 꼭대기에 올라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붉은 지붕으로 구성된 베네치아, 그리고 베네치아를 둘러싼 푸른 바다 모습에 모든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탄성만 지르게 될 테니까. 베네치아 운송수단, 바보레토와 곤돌라 베네치아에서는 다른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두 가지 운송수단을 타보는 것이 좋다. 바로 바보레토와 곤돌라이다. 바보레토는 주요 관광지를 이어주는 수상 버스이며, 곤돌라는 뱃사공이 운전하는 작은 배로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수로를 이동할 때 이용하는 전통적인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최근엔 관광객들의 증가로 좁은 수로보다는 관광코스를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바보레토와 곤돌라는 대부분 낮에 운행하기 때문에 ‘저녁 시간엔 무엇을 타고 베네치아를 관광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 때쯤, 지인으로부터 한국인 보트 야경투어를 추천을 받았다. 수상보트를 타고 저녁 7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베네치아 본섬을 벗어나 바닷가 쪽까지 나갈 수 있으며, 베네치아 골목골목을 볼 수 있다는 솔깃한 말에 당장 예약했다. 이 결정은 종탑과 더불어 베네치아에서의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다. 베네치아 구석구석을 보트에서 보면 수로에서 보거나 걸으면서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베네치아에서 수상보트를 가진 유일한 한국인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베네치아의 옛 모습과 옛 스토리들은 ‘베네치아에서의 제2여행’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베네치아의 집들 대부분은 물길 앞에 정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도로가 없었고, 모두 수로를 통해 이동했기 때문에 수로 쪽으로 문을 내는 것이 정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다리가 연결되어 대부분 이 정문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베네치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는 조선소 앞을 지나며 어떤 조선소보다 웅장했지만, 쇠퇴한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네치아가 조선업보다는 관광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인 듯 보였기 때문이다. 곳곳의 베네치아를 지탱해주고 있는 나무 막대들과 베네치아를 비추는 바닷가 석양이 어우러져 보트투어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알록달록 나의 퍼스널 칼라 찾아보는 부라노섬 부라노섬은 베네치아 본섬에서 바보레토를 타고 1시간쯤 이동하면 갈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알록달록한 집의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기도 하다. 베네치아의 거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데, 안개가 많은 베네치아 특성상 안전을 위해 배를 밝은색 페인트로 칠하던 것이 집까지 이어져 현재 형형색색 예쁜 색깔의 집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늦은 밤 귀가하는 어부들이 행여나 비슷한 집 모양 때문에 자기 집을 구별하지 못할까 봐 색을 알록달록하게 칠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색 앞에서 모두 사진을 찍거나, 필자처럼 이탈리아 국기 색의 벽을 찾아 이탈리아에 왔다는 것을 인증하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오랜 전통의 유리세공으로 유명한 무노라섬 역시 바보레토를 타고 갈 수 있는데, 부라노섬 바로 전 정거장이다. 우리가 쓰는 안경과 거울도 무라노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유리공예 장인들이 많은 무라노섬도 가보길 추천한다. 에필로그 베네치아에 다시 가게 된다면 매년 1월 말 ~ 3월 초, 세계 10대 축제라고 손꼽히는 베네치아의 가면축제와 불꽃축제의 시기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 ‘또다시 오라!’는 베네치아의 말처럼 내 마음속에 1순위인 도시. 파란 하늘, 파란 바다, 베네치아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 속에서 불꽃과 함께 다시 한 번 푹 빠지고 싶다.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 474쪽, 1만9800) 막연한 편견과 두려움을 이기고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소개한다. 인간을 오류로 빠뜨리는 인간의 비합리적 본능 10가지를 밝히고, 특정한 사건을 확대 해석하거나 왜곡된 관점을 갖지 않는 길을 제시한다. 대중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극적인 통계 놀음만큼 세상이 극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제력 수업 (피터 홀린스 지음, 공민희 옮김, 포레스트북스 펴냄, 228쪽, 1만4000원) 자제력은 단순히 ‘참는 힘’을 말하지 않는다. 바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을 포기하고 자신을 단련하며 보다 나은 결과로 나아가게 하는 위대한 힘이다. 그래서 흙수저로 태어나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최고의 나를 만드는 공감능력 (헬렌 리스·리즈 네포렌트 지음, 김은지 옮김, 코리아닷컴 펴냄, 304쪽, 1만5000원) 타인과의 교감을 의미하는 공감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능력이다. 공감능력이 발휘되려면 타인에 대한 인지와 이해,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의 세 가지 활동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같은 공감능력을 훈련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경제 편 (이경덕 지음, 사계절 펴냄, 272쪽, 1만6000원) 신용과 화폐, 부채, 교환과 재분배, 노동, 소비 등 인간 사회의 경제이야기를 제삼자의 시선을 빌어 풀어냈다. 지구에 정착한 외계인이 쓴 가상 보고서라는 엉뚱한 설정으로 인류의 역사를 재치 있게 풍자하며 돌아보고, 인간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탐색한다.
호기심 미술수업 (마리아크리스티나 자인비트겐슈타인 노테봄 지음, 손희경 옮김, 아트북스 펴냄 , 136쪽, 1만5000원) 14세기부터 20세기 초의 명화들에 담긴 재미난 이야기를 소개하고 다양한 질문을 통해 경험의 폭을 넓혀준다. 동물, 왕족, 가족, 과학 등 13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술 거장들의 명화 50여 점을 소개한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부터, 구석구석의 소품까지 여러 이야기를 통해 자기만의 감상법을 찾게 도와준다.
십대들을 위한 맛있는 인문학 (정정희 지음, 맘에드림 펴냄, 244쪽, 1만2000원) 배고픔보다는 비만 걱정이 커지고, 엄마의 손맛보다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편의점 즉석식품이 점점 친숙해져가는 시대다. 음식이 이렇게 풍족해지기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먹거리의 산업화와 세계화의 명암을 살펴본다.
소년 영웅과 할아버지 독립군 (김은식 지음, 김동성 그림, 나무야 펴냄, 148쪽, 1만3000원) 일제강점기의 소년 윤우의와 노인 강우규의 삶을 그린 아동청소년 역사 소설. 소년은 훗날 이름을 ‘봉길’로 고치고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윤봉길 의사가 된다. 서로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내던진 두 인물의 삶을 통해 독립운동의 가치를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