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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필자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중소기업 취업연계율 제고를 위한 중소기업인식개선교육 등을 통해 직업교육정책에 대한 현장의 의견을 듣게 된다. ‘선취업 후진학’으로 대표되는 MB정부의 직업교육정책에 대해서는 몇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와 기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직업교육정책을 이야기 할 때 주로 학교나 정부 등 공급자 중심으로만 논의가 이뤄져 수요자인 기업현장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 듯하다. 최근 우수학생의 특성화고 진학이 늘고 취업 희망학생의 비율 역시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며 이들 우수자원이 중소기업 현장에 유입되는 선순환구조가 이뤄진다면 더 할 나위없이 환영할만한 반가운 현상이다. 최근 동향에 의하면 2008년 19%에 불과했던 특성화고 취업률이 금년 1월 기준으로 42%에 이르고 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일부 특성화고의 경우에는 취업 희망률이 80%를 상회하고 있어 고졸 취업 생태계가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눈높이가 공공기관, 대기업, 금융기관 중심으로 맞춰져 중소기업 취업을 외면하게 된다면 중소기업의 인력난과 경쟁력 저하가 심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실업인구는 84만 명이고 그 중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청년실업은 32만 명, 중소기업의 부족인력은 23만 7000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청년실업자 32만 명이 취업눈높이를 조금 낮추고 중소기업에서 꿈과 미래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눈높이의 미스매칭으로 발생하는 중소기업의 인력난과 청년실업은 자연 해소되리라 믿는다. 중소기업 근무의 강점이라면 업무 전반에 걸쳐 다양한 업무 경험을 통해 종합적인 전문성을 쌓을 수 있고, 창업을 준비하거나 계속 공부할 기회도 많다는 데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을 해소하고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사, 학부모, 정부, 기업 모두의 유기적인 노력과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학교, 교사, 학부모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막상 취업을 하더라도 일에 대한 자긍심, 미래에 대한 목표의식,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내심이나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고 직업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는 기업현장의 목소리를 새겨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극소수이지만 일부의 경우에는 생산현장 적응능력과 같은 전문성 측면에서도 보완할 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학교의 생활기록부 같은 기초자료가 부실해 취업학생의 진로지도에 어려움이 크다는 점을 하소연하기도 한다. 따라서 학교와 교사, 학생과 학부모가 혼연일체가 돼 이런 문제들을 개선·보완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특히 차기 정부에 바라는 것은 ‘선취업 후진학’ 정책이 학교와 사회현장에서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후진학’을 위한 사내대학 활성화 등 전방위적인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 사내대학이 주로 대기업과 대기업협력업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개별 중소기업에까지 사내대학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표성과 공공성을 지닌 기관에서 사내대학을 설립·운영할 수 있는 지원제도를 마련하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으리라 본다. 셋째,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임금지원이나 병역단축, 세제우대를 포함한 특례저축제도 도입 등의 지원책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넷째, 단일호봉제와 같이 학력차별 없는 능력위주의 인사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는 개별 중소기업의 승진모델을 발굴·전파·육성함으로써 특성화고 출신 학생들이 학력의 벽을 극복하고 승진과 대우에서 차별 없는 사회분위기가 확산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인들도 근무환경과 근로조건 개선 등을 위한 자구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상대적으로 낮은 취업선호도를 높이는 동시에 개별 취업생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이 중소기업 현장에서 꿈과 비전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도록 소통하고 공유하는 노력을 함께해야 할 것이다.
정몽준 의원. 정치인 가운데 그만큼 화려한 이력을 지닌 사람도 드물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대에서 경영학 석사,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만큼 공부하기까지는 본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넉넉한 가정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 1위의 조선회사인 현대중공업의 실질적 오너로 고문을 맡고 있으며 대한축구협회장, 국제축구협회(FIFA) 부회장도 역임했다. 게다가 이번 충선에서 접전 끝에 승리함으로써 현역 최다선(7선)의 영광도 거머쥐었다.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정 의원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2002 한·일월드컵 때의 모습이다. 당시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대회 개최와 대한민국 4강 신화까지 일궈냈다. 정 의원이 체육인으로서 대중적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면 교육자로서는 베일에 가려진 면이 많다. 그러나 사실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교육계에서도 큰 역할을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친인 고 정주영회장이 설립한 학교법인 현대학원과 울산대학교 등이 포함된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런 그가 집권당 대통령 예비후보로 나섰기에 교육에 대한 철학과 정책만큼은 신중하고 사려 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5월, 속전속결식으로 교육공약을 발표했다. 교육문제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는 의해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는 한 해 20조원이 넘는 사교육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입시지옥에 내몰린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하고 내신과 수능위주로 입시 제도를 단순화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입전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면 마술처럼 사교육과 입시지옥이 해결될 듯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위험한 발상이다. 입학사정관제로 인해 공교육 정상화의 싹이 조금씩 돋아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 학교 현장에는 아이들이 소질과 적성을 찾아 이를 계발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진로교육이 강화되고 도구과목 중심의 보충수업도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반영하는 수업으로 서서히 변화되고 있다. 정문준 의원도 현장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어보기 바란다. 내신 때문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친구의 노트를 훔치거나 아예 찢어 버리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고3이 되면 정규수업시간에도 멀쩡한 교과서를 제쳐두고 수능문제풀이에 열을 올리는 것이 대한민국 고3 교실의 현실이다. 그런 안타까운 현상이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조금씩 희석되면서 공교육의 역할과 책무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설립 50년 이내 세계 대학평가에서 우리나라의 포스텍이 1위에 올랐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카이스트(KAIST)도 5위로 뒤를 이었다. 포스텍은 오랫동안 수능과 전혀 무관하게 입학사정관제로만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최근 들어 카이스트(KAIST)도 포스텍과 동일한 방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 이들 대학이 수능을 반영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주입식, 암기식 위주의 평가 방법으로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올해부터 정원의 80%를 입학사정관제로 뽑기로 결정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 의원의 공약문에는 ‘교권 붕괴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학교폭력은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고 개탄하는 내용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교대 등 일부 교원양성대학들이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보다 점수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따뜻한 인성을 지닌 예비 교사를 선발하기 위해 대입전형을 입학사정관제로 바꿨다. 이제 공부만 잘하는 냉정한 학생이 교단에 서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 정 의원이 교총을 방문했다. 그런데 순서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이 나라의 지도자를 꿈꾸는 분이라면 교원의 의사를 대변하는 최대 교원단체의 의견을 묻고 신중하게 고려해 공약을 발표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후보들보다 교육문제에 관심이 높아 교총을 방문한 것으로 이해하고는 싶다. 정 의원은 축구에 조예가 깊은 분이기에 일명 ‘뻥축구’의 문제점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뻥축구’는 상대편으로 공을 길게 차놓고 모두가 달려 들어가면 그만인 단순한 전술이다. 강한 상대를 만나 세밀한 작전 수행 능력이 부족할 경우 흔히 써먹는다. 치밀한 전략을 필요로 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에 비춰볼 때, 아직도 ‘뻥축구’에 미련이 남아있다면 이는 축구 변방으로 전락하는 지름길이나 다름없다. 정몽준 의원께 묻는다. 후진적인 ‘뻥축구’와 내신과 수능 위주로만 개편된 ‘줄세우기식 대입전형’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 기획시리즈-구자억의 중국의 민낯을 보라 중국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바뀔 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시장경제에 능통한 인재였다. 2010년 들어 세계화의 여파 속에서 중국은 비장의 카드를 내밀게 된다. 국민의 50%를 교육받은 인재로 만들어 인재대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제 중국은 세계의 인재수출국가로 부상하려 하고 있다. 그럼 중국에서 인재란 무엇인가? 중국에서는 인재를 다섯 가지 각도에서 해석한다. 첫째, ‘人’과 ‘材’를 합친 ‘人材’다. 기본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의미의 ‘人材’는 인재의 원재료에 해당된다. 둘째, ‘人’과 ‘才’를 합친 ‘人才’다. 이 경우의 인재란 신속히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능력과 소양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기업에서 보면 필수불가결한 직원을 의미한다. 셋째, ‘人’과 ‘財’를 합친 ‘人財’다. 이 경우의 인재는 노력을 통하여 기업에 커다란 재부와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을 말한다. 인재 중에서도 정상급 인재를 뜻한다. 넷째, ‘人’과 ‘在’를 합친 ‘人在’다. 일정기간의 직장경험이 있는 일반적 업무는 비교적 잘 처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진취성이 부족하고, 무사안일한 면이 있다. 다섯째, ‘人’과 ‘裁’를 합친 ‘人裁’다. 이런 인재는 기업에 공을 세우는 것도 없고, 어떤 경우 손실을 입히기도 한다. 또 기업 내부에 불필요한 잡음을 일으키기도 하는 유형이다. 이렇게 인재의 의미를 구분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人在’와 ‘人裁’를 제외한 ‘人才’와 ‘人材’, ‘人財’는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그 해석에 따라 약간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人才’는 ‘人材’가 적당한 교육과 훈련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고, ‘人財’는 ‘人才’가 창조적 능력과 경험을 통해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 인재라고 할 때는 보편적으로 ‘人才’로 통칭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人才’가 어떤 특정한 우수 인재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03년 이전에는 중등전문학교 이상의 학력과 초급 이상의 직위를 가진 사람을 인재라고 규정해, 학력이나 직위에 의해 인재와 비인재를 구분했다. 그러다가 2003년 이후 인재의 개념이 포괄적, 평등적으로 발전했다. 도덕, 지식, 능력, 업적을 인재를 재는 주요 기준으로 삼고, 학력, 직위, 경력, 신분 등을 인재를 선발하는 기준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이런 관점은 국민 모두 누구나 인재가 될 수 있고, 인재라는 가정을 가지고 있는 개념 규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재에 대한 관점은 그 나라 사회 문화의 제약을 받는다. 사회 문화의 선택은 인재관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가치기준이 된다. 중국의 경우 사회체제의 변화에 따라 기대하는 인간상도 조금씩 변화를 겪어왔다.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온 이후에는 사상이 중요한 인재의 기준이었고, 문화혁명시기에는 사상 중에서도 극좌의 사상이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았다. 개혁개방이후에는 사상도 있고 전문성도 있는(又紅又專) 인재가 요구됐으며, 최근에는 사상(紅)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전문성(專)을 가진 사람이 더 가치 있는 인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재의 표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일반적으로 뒤에 현대화가 진행된 국가들은 서구화를 인재의 표준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과정에서 외국의 사상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의 전통 관념은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서구적 가치와 공산주의 가치의 이율배반적인 공존의 문제도 있다. 앞으로 중국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궁금하다.
최근 학교 폭력과 학생들의 자살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교육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로부터 온라인 게임의 폭력성까지 다양한 문제점들이 논의되고 그에 대한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학교폭력 근절 방안 마련이나 대학입시 제도 개혁 같은 거시적인 대책들과 함께 학생들의 인성과 성품을 계발시키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싱가포르에서 강조되고 있는 인성과 시민성 교육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헝수이킷 싱가포르 교육부 장관은 “가치관과 인성 계발을 우리 교육체제의 핵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학생중심의 가치지향 교육(student-centric, values-driven education)을 싱가포르 교육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기존의 인성교육은 바람직한 국가관을 고취시키는데 초점을 맞췄으나 현재 싱가포르의 교육계는 학생 개개인의 성품을 향상시키는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인성 계발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별개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공동체의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시민성 교육이 인성교육과 병행되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교대의 쟈스민 심(Jasmine Sim) 교수는 “싱가포르의 인성과 시민성 교육의 초점은 학생들이 단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설득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도덕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실제적인 딜레마 상황 속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관점을 고려해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경험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싱가포르 학교에서는 인성을 주입식으로 계발시킬 수 없다는 자각에 기반을 두고 실생활의 경험과 밀접하게 관련된 방식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단위 학교별로 모든 교직원들이 함께 참여해 학교가 지향하는 비전과 가치에 대해 논의한 다음 그 가치들을 학교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반영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의 정책들이 재해석되고 교사들이 추구하는 학교의 가치들이 공유되며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다. 그 결과 인성 교육은 다른 교과와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수학, 과학 등 일반 교과 수업이나 방과후 활동과 통합돼 실시된다. 싱가포르 부킷뷰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연극을 활용한 영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부킷뷰 초등학교(Bukit View Primary School)는 영어와 모국어 수업에 연극을 언어 학습과 가치관 계발을 위한 주요 교수법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역할극은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 속에서 도덕적 가치관을 적용하고 성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 학생들에게 연극의 세부내용을 정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 창의성을 촉진시키고, 조별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책임감을 갖고 서로 돕는 법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 연극 외에도 체험학습과 탐구학습 등을 통한 인성과 시민성 교육이 교과 교육과 통합돼 실시되고 있다. 학생중심의 가치지향 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쟈스민 심 교수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과의 지속적인 대화가 인성과 시민성 교육을 준비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예비교사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싱가포르 국립교대에서는 모든 예비교사들이 20명씩 한 조가 돼 환경보호와 같은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되돌아보고 공동체에서의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공동체의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싱가포르의 인성과 시민성 교육은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를 통합시키고 사회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강조됐다. 그러나 최근 학생 중심의 자율적인 인성 교육으로 전환한 것은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학생들의 사회적, 정서적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부분이다. 싱가포르의 인성과 시민성 교육의 변화가 우리나라의 학교 폭력을 포함한 제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성찰이 필요하다.
교육이 변하려면 어느 나라나 정치인을 잘 뽑아야 한다. 교육이 정치 포퓰리즘에 이용돼 무너지기 시작하면 백년대계가 맥없이 흔들릴 수도 있다. 최근 독일 교육자들 사이에 문제로 자주 거론되는 독일의 수능시험 격인 아비투어(Abitur)의 무력화가 바로 그 단적인 예다. 독일 교육학자인 에버하드 샬호른 박사는 “아비투어는 연방 교육부와 주 교육청의 정책 홍보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며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 한 지 오래된 시대에 뒤진 선발시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1788년 프로이센 공화국에서 시작해 오늘에 이른 아비투어는 독일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이다. 아비투어는 200여 년 동안 사회적 약자에게는 신분 상승을 위한 통과의례라는 의미가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기득권의 신분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제도적으로는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지만 서민들은 개천에서 용이 날 정도로 뛰어나지 않는 이상 통과하기 쉽지 않았다.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결국 하층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귀족들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지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과거 아비투어에 합격하는 계층은 대부분 상류층의 자녀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오랜 시간 독일 사회에서 아비투어 합격증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기준이기도 했다. 이런 아비투어에 대한 서민들의 시각은 당연히 부정적이었다. 서민층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이런 인식을 이용했다. 인기를 얻기 위해 누구나 쉽게 아비투어에 합격할 수 있도록 점점 수준을 낮춰갔다. 아비투어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더 많은 학생들을 합격시켜 교육정책의 성공을 입증하는데 골몰했다. 그 결과 오늘날 아비투어는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차이를 보일 만큼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내게 됐다. 일단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이 과거에 비해 갈수록 늘어났으며 합격률 또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얼마 전 바덴뷰텐베르크 주 지방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 학생들의 아비투어 합격률은 2011년에 98%를 기록했다. 직업학교의 경우도 전문대학입학자격인 파흐아비투어에 응시한 학생 중 94.4%가 합격했다. 정치인들이 이와 같은 결과에 만족하며 교육정책이 성공했다고 축배를 들고 있을 때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것은 대학이었다. 아비투어에 합격했음에도 전공 공부를 위한 기초지식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 갈수록 많아진 것이다. 결국 자체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가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앞장선 대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의대다. 몇 년 전부터 하이델베르크 의대는 의대지원자를 위한 자연과학 분야 시험인 TMS(Test fr medizinische Studiengnge)를 권장하고 선발과정에서 40% 정도를 반영한다. 10%가 직업교육을 받은 지원자에게 주는 가산점이고 그 대상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50%라고 볼 수 있다. 올해부터는 뮌헨의대와 다른 여러 대학에서도 TMS를 대폭 수용하기로 했다. 아비투어가 선발기능을 상실한 결과는 바로 교육예산의 증가로도 이어진다. 대학입학을 위한 별도의 시험이 생겨나니 교육비는 점점 늘어나고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혼란이 예고된다. 결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아비투어를 불신하게 되면 아비투어는 머지않은 장래에 교육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핀란드와 비교했을 때 독일 교육정책이 실패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핀란드가 저소득층과 학습부진아를 대폭적으로 지원하는 교육정책을 세우고 있을 때 독일은 정치 포퓰리즘의 해법으로 접근한 것이다. 독일의 실패한 입시제도 개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은 노숙자 자립을 위한 ‘빅이슈’ 등의 잡지도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노숙자란 아직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하물며 알코올 중독자는 어떨까. ‘실종일기’의 작가인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그 경험을 만화 ‘실종일기’로 펴냈는데 ‘이 사람 자기를 희화화하고 있잖아?’, ‘본인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는데?’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냉정하게 그 경험을 바라보고 있다. 책 말미의 대담에서 ‘자신을 제 3자의 입장에 놓는 것이 개그의 기본’이라고 말하는 그의 어투에서 만화 세계에서 잔뼈 굵은 작가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다. 주제는 심각하지만, 둥글둥글한 그림체로 유쾌하게,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노숙자 경험과 알코올중독 병원 입원기를 그려냈다. 웃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데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다. 만화도 때려 치고 목을 매 죽겠다는 각오로 산에 들어갔다가 다른 노숙자의 음식을 훔쳐 먹기도 하고, 버려진 술병들에서 한 방울씩 술을 모아 ‘아즈마 칵테일’이라며 마시는 그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으면 이상하다. 아마 알코올 의존증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처절하게 웃고 말 것이다. 특히 알코올 중독 병동에서 동료 환자나 간호사 등 여러 사람을 인물의 특징을 잡아 기록한 것이 웃기면서도 처절하다.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 ‘웃프다’ 라는 말이 이 책에 적합한 말인지도 모른다. 웃기면서 슬픈데 한국에서는 이런 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세계2위의 알코올 중독자를 가진 나라지만 인식도 아직 낮고, 책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사실 알코올 의존증 뿐 아니라 다른 정신장애 역시 모두 그렇다. 정신과 한번 드나들면 정신병자, 막장,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면에서 한국 사람들이 정신과를 꺼려하는 것은 결혼 안한 아가씨가 간단한 검진 때문에라도 산부인과 가기 싫어하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특히 알코올 의존증은 정신장애지만 그냥 ‘인간쓰레기’ 정도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들 중에는 인간쓰레기가 많긴 하다. 왜 ‘우리’라고 말하는가 하면, 필자 역시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꽤 오랫동안 받고 있기 때문이다. 증상은 호전됐다가 악화됐다 한다. 이 병의 완치율은 20%정도인데, 아즈마 히데오의 말로는 그나마 50대가 되면 다 죽어 버린다고 한다. 알코올 의존증 전문치료 병동은 직계 가족 2인 이상의 동의가 있을 경우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 1989년 만화, 가족 모두 내팽개치고 책 제목처럼 실종되어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배관공으로 일하기도 하던 그는 1998년 결국 연속음주, 즉 자는 시간 이외에는 모두 술을 마시는 지경까지 처해 환각을 보는 고통을 겪다가 강제입원조치를 당한다. 아즈마 히데오는 결국 AA(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모임, 영화에서 흔히 둥글게 모여앉아 자신의 중독 증상을 고백하던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한국에도 지부가 있다)와 연이 닿아 구제받았지만, 같이 치료받던 사람들이 금주하다가 무너지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본다. 알코올 중독자는 ‘문제 음주자’들과 다르다. 문제 음주자란 술을 마시는 습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이들은 술 마시는 습관을 교정할 경우 문제없이 음주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들은 다르다. 이들에게는 ‘즐기면서 마시면 되잖아, 본인이 조절하면 되잖아’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인플루엔자에 걸렸을 때 ‘세균을 스스로 조절하면 되잖아’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인 것이다. 필자 역시 지난해 8개월 정도 완전 금주에 성공했지만 결국 올해 들어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도 또 병원에 간다. ‘이게 나아질 수 있을까’, 스스로도 계속 의심하면서 나아지려고 애쓴다.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알코올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실종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다면 AA나 전문 병원을 찾아서 치료받기를 권하고 싶다. 지난 4년 간 치료를 받고 있고, 나아질 때도 있고 안 나아질 때도 있지만, 적어도 병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만은 확고한 발전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사고를 많이 쳤고, 본인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이게 병이라 생각하지 않고 인격의 문제(물론 그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라고만 생각했다면 아마 지금쯤 나는 어느 차가운 길바닥에 죽어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본인의 알코올 문제나 주변 사람들의 알코올 문제로 고통 받아 본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남들 보기에는 멀쩡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 몇 년이나 지냈던 유명 칼럼니스트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캐럴라인 냅)과 같이 읽으면 좋다.
“진보교육감들이 있는 교육청에서는 평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지난달 28일 경기도교육청의 교장공모제 사례를 다룬 내일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교조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도교육청은 알려진 바와 달리 ‘적극’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교육청이 하반기 내부형 공모제로 지정한 학교는 19개교. 이 가운데 평교사가 지원 가능한 내부형 교장공모제 대상이 되는 학교는 19개교의 15%에 해당하는 3개 학교다. 교육공무원임용령 제12조의6 제2항에는 내부형공모제 중 교장자격 미소지자가 교장에 공모할 수 있는 비율을 내부형 공모제 대상 학교의 15% 범위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초등 2곳과 중학교 1곳을 평교사 지원이 가능한 내부형 교장공모제 학교로 지정했지만, 경기A교육지원청 산하 초등 2개교는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 공모자격을 교장 자격증을 소지한 교원으로 국한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한 교원단체가 성명을 통해 “…이번 교장 공모 결과를 보면 경기도교육청의 개혁의지가 퇴색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기도교육청은 철저한 원인 분석과 반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의 보도 내용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두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사실과 달랐다. 경기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은 해당 학교에 평교사가 응모할 수 있도록 너무나 적극적으로 학교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형 공모학교 예정학교인 두 개교 중 한 학교에 따르면, 교육지원청 교수학습국장과 교육지원과장 등이 출장 중이던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교장자격증 소지자로 국한한 공모기준을 바꿔줄 것을 요청하고, 학교를 직접 찾아와 교사와 학운위원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펼쳤으며, 교장이 “학교운영위원회 등 학교 구성원이 원치 않는다”고 말하였다. 이후 학운위원 등이 교육청에 항의하자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더 이상 무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한 학교도 유사한 과정을 겪었다.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 교원역량혁신 과장은 "교육청이 의지가 없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해당학교 3곳 모두 교육감 직권지정도 가능하지만 학교 구성원이 반대하는데 무리하면서까지 지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교육청이 의지가 없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 이상 어떻게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겠는가. 경기도뿐만이 아니다. 광주, 전남, 전북 등 진보교육감 진영에서 특히 공모제는 인기가 없다. 광주는 초등 6곳 가운데 4곳이 미달, 재공고 끝에 겨우 대상학교를 채웠다. 전북도 10개 대상 학교 중 5개 학교는 재공고 중이며, 나머지 5곳도 경쟁률은 2.4대1에 그쳤다. 현장 교원들은 그 원인을 ‘학습효과’라고 이야기 한다. 2007년 시행 당시부터 학연, 지연, 담합 등 각종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됐으며, 공모교장의 정책 도 학교 구성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등 득보다 실이 많음을 시행착오 끝에 체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교총은 5일 교장공모제 개선 첫 TF회의를 열고, 공모비율 20%를 포함한 다각적 개선 방안 마련 작업에 들어간다. 지난달 교과부 교섭을 통해 ‘11월까지 교장공모제 정책성과 및 현황 분석을 통해 공모 내용 및 절차·비율조정 등 제도개선’ 하기로 한 합의를 실천하기 위함이다. 40%(혁신학교 포함 50%)까지 허용된 교장공모제는 이미 그 수준을 채우는 것이 힘겨울 만큼 외면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에선 학교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청의 개입을 공공연하게 요구하며 사실을 호도·왜곡하고 교육현장을 어지럽히는 수단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교장공모제를 교과부는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
박범신의 장편소설 ‘은교’가 영화로 개봉되었다. 지난 4월 26일의 일이다. 개봉 15일 만에 전국 11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아마 ‘스타작가’라는 원작자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은교’(감독 정지우)는 개봉 무렵 일간신문들이 앞다퉈 논산으로 낙향한 박범신 근황과 함께 영화 리뷰를 일제히 싣기도 했다. 필자가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은, 그러나 그 때문이 아니다. ‘은교’가 마침 제13회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상영된 때문이라 해야 옳다. 국제 영화제 상영작과 연결시켜 ‘은교’를 본 것은 맙소사! 09시 시작 1회 상영작이었다. 조조할인에 카드할인까지 중·고생 단체관람비 정도로 극장 영화를 보다니 횡재가 따로 없었다. 09시 상영영화를 본 것은 필자로선 생애 최초의 일이다. 이를테면 역사적인 일인 셈이다. 엉뚱하게도 필자 혼자, 그 드넓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 되나 하는 기우는 상영시각이 임박하면서 깨지고 말았다. 16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왔던 것. 놀라운 것은 16명의 면면이다. 40대로 보이는 아줌마 2명을 빼놓곤 전부 20대 초·중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이 영화의 관객층을 주도하는 세대이긴 하지만, ‘은교’의 경우 다소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젊은이들선 영화를 통해 딱히 건질만한 핵심 명제 같은 것이 ‘은교’에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오전 9시라곤 하지만, 고작 14명 젊은 관객을 두고 너무 지나친 의미 부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과연 그들은 ‘은교’에서 무엇을 보려 한 것일까? 앞에서 말했듯 ‘은교’는 화제작이다. “30대 배우 박해일의 백발노인 변신, 신인 여배우 김고은에 대한 꽁꽁 숨긴 신비주의 홍보전략, 박범신작가의 동명소설인 원작…”(동아일보, 2012.4.24) 등이 관심거리였다. 나아가 여배우 파격노출 및 적나라한 섹스신이라든가 ‘해피엔드’(1999)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정지우 감독의 신작 등도 화제였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내지 ‘아니다’가 될 것 같다. 이미 소설을 통해 알려진 대로 ‘은교’는 70세(소설에선 69세) 국민시인 이적요(박해일)와 17세 여고생 은교(김고은),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끼어 있는 소설가 서지우(김무열) 3명의 애증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에선 늙음과 젊음, 사랑과 섹스, 문학과 사이비문학 등이 그리 숨 가쁘지 않게 교차한다. 오히려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이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것은 일단 영화가 원작소설보다 못하다는 의미의 다른 말이다. 사실 소설 ‘은교’는 참 독한 연애소설이면서 연애소설만은 아닌 작품으로 읽힌다. 70세 노인, 그것도 국민시인이라 추앙받는 노인이 17세 여고생을 사랑하는 해괴한 일이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결코 욕정이나 섹스 따위 세속적 사랑놀음이 파격적으로 그려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도 ‘꿈, 호텔 캘리포니아’ 꼭지를 통해 은교와의 섹스가 판타지로 펼쳐지지만, 이적요는 은교에 대한 욕망을 절제한다. 자신도 모르게 은교를 보거나 대하며 페니스가 일어설 때 이적요는 은교를 “건너편 벽까지 밀려나 머리를 부딪힐 정도”로 밀쳐낸다. 거기서 늙음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보질 않는다. 예컨대 서지우가 사주한 노랑머리 청년으로부터 “당신, 지금 썩은 관처럼 보여”라는 무지막지한 말을 듣는 식이다. 이적요로선 평생 처음 겪는 모멸감이다. 그로 인해 짐짓 은교를 멀리 하기로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한 카페 등에서 입장을 거부 당하기도 한다. 이적요는 그런 세상에 대해 저항한다. 은교와의 끈을 끊게 하는 그 늙음에 절규한다. 물론, 노상 하는 말이지만 영화가 원작소설과 같을 필요는 없다. 원작자 박범신 역시 “불만을 이야기하자면 밤새워 이야기해야 하지만, 영화는 영화로서 보아야 옳아”(서울신문, 2012.4.21)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원작의 주제를 이만큼 알뜰하게 재해석한 경우는 많지 않았어. 감독과 출연진에게 고맙지” 하면서도 “그렇다고 만족스러웠다는 것은 아니야”(앞의 서울신문)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가 원작소설과 같을 필요는 없더라도 응당 문제는 남는다. ‘은교’의 경우 소설 속 은교를 죽여버린 영화가 되어버린 점이 그것이다. 제목과 달리 은교가 객체로 놓인 소설의 약점을 극복한 것은 좋다. 소설에서 은교는 원조교제나 하는 그냥 평범하거나 영악한 여고생일 뿐이다. 가령 서지우와의 ‘이층집’에서 “아이 참, 영어 단어 암기해요. 내일 영어 시험 본다구요!”라며 짜증내는 걸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선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이적요가 창문을 통해 훔쳐보는 서지우와의 이층집에서 은교는 묻는다. “여고생이 왜 남자와 섹스하는 줄 아냐?”고. 서지우의 즉답이 없자 은교는 스스로 “외로워서”라고 대답한다. 결국 여고생이 외로워서 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더 놀랄 일은 원작에 없는 이런 영화 대목을 원작자가 맘에 들어 했다는 사실이다. 원작자가 맘에 들어 했다니 할 말이 없어야 할까? 그건 아니다. 은교라는, 참 독한 연애소설이면서 연애소설만은 아닌 소설 속 캐릭터의 너무 심한 왜곡이기 때문이다. 은교의 그런 태도는 서지우, 상대적으로 국민시인에다가 욕망 자제로 일관해온 이적요와 콘트라스트되는 서지우라는 캐릭터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요컨대 남녀간 섹스에 대한 당위성보다 원조교제를 할 수밖에 없는 은교라야 이적요의 그것들이 사랑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서지우의 “더러운 스캔들” 운운에 불같이 화를 낸 거라든가 은교와 오붓이 하는 데이트에 매우 만족해하는 것, 서지우를 죽일 생각으로 한 핸들조작 등 일련의 상황이나 액션이 이적요의 사랑행각으로 귀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인 은교는 외로워서 섹스를 나누는 여고생이라면 너무 쌩뚱맞지 않은가? 그런 은교라면 차라리 이적요와 그리되어야 영화내적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기 및 체모 노출과 격렬한 이층집이 꼭 필요했는지도 의문이다. 이적요의 홀랑 벗은 모습은 ‘늙음’의 표상으로 설득력이 생기지만, 은교의 격렬한 이층집은 쌩뚱맞다. 17세 여고생이 엑스타시에 전율하는, 마치 ‘애마부인’ 같은 몸짓을 하고 있어서다. 설사 그걸 지켜보는 이적요의 ‘늙음’을 자극하기 위한 의도였을지라도, 그건 아니지 싶다. 또 다른 아쉬움은 그만 놓쳐버린 주옥 같은 대사들이다. 요컨대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파스칼), “연애가 주는 최대의 행복은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처음 쥐는 것이다”(스탕달)같이 이적요의 은교에 대한 사랑을 어필시키는 소설 속 대사를 전혀 살려내지 못한 것이다. ‘이상문학상’에다가 출판사 겸 잡지이름 ‘문학동네’가 여러 차례 간접선전된 것도 다소 의아스럽다. 영화가 사회적 의무를 다할 책임은 없지만, 그리고 청소년관람불가영화라곤 하지만 은교의 나이나 신분 때문인지 ‘은교’에 대한 여고생들의 관심이 커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은교는 외로워서 남자와 이층집을 짓는 애마부인 캐릭터가 아니어야 했다. 가난 때문 어쩔 수 없이, 그러니까 오르가즘과는 하등 상관없이 오히려 섹스에 고통스러워하는 은교여야 했다. 마치 청년처럼 들리는 목소리를 빼고 30대 박해일의 70대 노인 연기는 300대 1의 경쟁을 뚫고 발탁된 김고은보다 한 수 위다. 특히 첫 부분 은교에게 한눈에 반한 노인 박해일의 표정연기는 일품이다. 김고은의 경우 자연산 얼굴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이미지가 돋보이긴 하지만, 글쎄 빈약한 가슴이나 별로 뇌쇄적이지 못한 표정 등이 이적요를 바위틈 지나 청춘을 다시 찾은 뱀 같은 열정의 노인으로 만들었을지는 의문이다. 부록으로 시는 어떤가? 이적요를 위하여 이적요는 69 또는 70살의 국민시인이다 어느날 17살 은교가 잠자는 모습을 처음 본 후로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는 파스칼의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독한 사랑의 늪에 빠져든다 이적요는 송장이란 소릴 들을망정 은교와의 데이트만으로도 숫총각처럼 마음이 달뜬다 안마시술소에서와 달리 가운뎃다리가 서곤 하는 희귀한 경험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이적요는 다만 꿈속에서 은교와 사랑을 나누고 그만 죽어버린다 영화에선 살아 남지만 이적요에게 은교는 없다 사랑이라는 욕망을 우정 절제하는 이적요의 사랑은? 사랑이다 외로워서라며 애마부인 같은 몸짓으로 서지우와 ‘이층집’ 짓는 17살 여고생 은교를 사랑한 이적요 때로 사랑은 그런 것이다.
최근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없다가 느닷없이 생겨난 일이 아닐텐데도 새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정부가 잇따른 학생자살의 배후에 또아릴 튼 학교폭력 대책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전에도 정부는 학교에 전직 경찰을 배치하는 소위 ‘스쿨 폴리스’와, 사각지대 등 교내 우범지역 CCTV 설치 따위 학교폭력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일견 그럴 듯한 대책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스쿨 폴리스나 CCTV 설치 같은 대책이 학교폭력 근절로 이어지지 않아서다. 오히려 학습권이나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만 드러낸 채 학교폭력문제는 지금 이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런 대책들은 실효성 면에서 의문을 자아냈다. 가령 2인 1조의 전직 경찰들이 무급으로 교내 순찰과 학생상담․지도 등을 한다고 했지만, 순찰이라면 모를까 전문가들도 못하는 상담․지도 등을 평생 경찰 노릇만 한 그들이 어찌 할지 의문이었다. 또 아무리 착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지만, 무급 봉사로 그 많은 전직 경찰이 충원될지도 미지수였다. 실제로 폭력사태가 발생했을 때 사법권이 없는 전직 경찰들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도 의문스러웠다. 고작 학생들을 붙들어 경찰에 인계하는 정도라면 침소봉대의 어리석음이라는 우려마저 낳았다. 이번에도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복수담임제, 가해학생 출석정지 및 전학, 가해학생 학부모 소환, 학교전담경찰관 배치, 학교폭력 은폐시 교장과 교사 중징계, 체육시간 확대 및 국어·도덕·사회시간 등을 통한 인성교육 강화 등이다. 그러나 그것들도 실효성 면에서 의문 투성이다. 우선 복수담임제가 그렇다. 지금도 부담임이 있어 복수담임제는 일견 하나마나한 얘기일 수 있다. 담임기피 현상을 돌파해 강제로 배정한다해도 담임수당이라든가 ‘창구이원화’로 빚어질 혼란 등은 어찌 할 건지 궁금하다. 가해학생에 대한 출석정지, 전학 조치와 학부모 소환도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전학의 경우, 다른 학교로 건너가 다시 ‘활동’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가해학생 학부모가 소환에 불응하면 고작 과태료 부과를 검토한다니 그것으로 대책이 되겠는가? 다음 체육시간 확대와 인성교육 강화이다. 학년말 계획한 학사력에 의해 새학기 교육과정이 이뤄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체육시간을 늘리라는 것은 학교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국어·도덕·사회 과목에서 꼽사리 끼는 식으로 인성교육을 강화하라는 것도 그렇다. 학교폭력에 대한 진짜 대책은 따로 있다. 범죄 없는 사회란 존재하기 힘든게 일종의 법칙이다. 그나마 학교폭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은 학생들에게 죄짓지 않는 어른들이 많아지는 방법밖에 없다. 예컨대 허구헌날 국회는 정쟁으로 거친 말이나 몸싸움 같은 폭력이 난무한다. 우리 학생들이 그걸 보고 뭘 배우겠는가? 학생들이 몸담고 있는 학교로 시선을 돌려보면 더 심각하다. 사제간의 대화와 토론은 없다. 학생들은 오로지 외우기와 찍기만을 강요당한다. 학생들은 수직적 구조 속에서 위로부터 일방적 명령과 지시만 듣는다. 그것도 모자라 2명의 시험감독에서 보듯 수많은 선량한 학생들이 준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런 전체주의적 사고가 그들을 옥죄는 한 학교폭력은 건재할 수밖에 없다. 피는 피를 부르고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 법 아닌가!그것과 함께 병행해야 할 대책이 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영구 퇴출이 그것이다. 일견 너무 냉혹한 논리같지만 그렇지 않다. 폭력을 가해 남을 괴롭히는 짓은 헌법에 명시된 행복하게 살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단순한 애들 장난이 아닌 ‘헌법침해사범’으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과연 무엇이 학교폭력의 진짜 대책인지를 살펴 즉각 시행하기 바란다. 강제 보충수업이나 방과후학교, 일제고사를 통한 성적순 줄세우기 따위 학생들을 옥죄는 시스템으로는 그 어떤 학교폭력 대책도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학교의 본래 기능이 복구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약 150명의 학생이 미 응시한 가운데 지난달 26일, 전국의 약 180만 명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렀다. 미 응시 학생 수는 지난해의 190명, 2010년의 436명보다 줄어든 숫자다. 올해도 어김없이 일부 교원노조, 학부모단체 등에서 이를 '일제고사'로 매도하며 반대운동을 전개한 상황을 감안할 때 그 숫자는 미미하다. 그럼에도 5년 동안 매년 학업성취도 평가 찬반 논란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이제 진지한 고민을 할 시점이 됐다. 평가는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고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가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신과 자녀의 정확한 학업성취수준을 알 수 있도록 하고, 교사와 학교의 수업을 개선하고, 뒤처지는 학교와 학생에 대한 국가책무를 다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극단적인 반대와 거부는 학생평가가 중요한 교육활동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까지 이어지는 보충학습, 문제풀이 위주의 진행 등 일부의 교육파행 부작용 또한 전혀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이런 부작용은 시·도교육청 평가나 학교성과급 평가에서 학업성취도 평가 향상도 등이 반영됨에 따라 교육현장이 부담을 갖게 되는 데서 비롯된다. 학생들의 학업성취 변인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뒤처지는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정부가 겸허히 수용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교육이 평가 거부·반대정서에 몰입돼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평가 만능주의에 빠져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평가가 끝났다고 손을 놓을 것이 아니라 교총이 현장 교원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제안한 것처럼 교육청·학교평가에서 학업성취도평가 제외, 초등학교 평가교과에서 영어 제외, 열악한 학교 우선 지원·컨설팅, 지역 배경·교육여건 공표 등의 개선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수용해야 한다. 많은 현장의 교원은 평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성취도 평가가 당초 취지대로 학생교육에 도움을 주는 시험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따라서 교과부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학교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평가 취지에 적합한 활용 방안과 현장지원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교통통신과 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유럽의 경제위기가 유럽의 문제만이 아닌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는 세계화 시대의 성공요소, 유능 섹터를 올릴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세계화 시대(Globalization Age)라는 것이 우리한테 성큼 와 우리가 입고 있는 옷, 먹는 음식, 살고 있는 집에 보면 80%가 다른 세상에서 온 물건들이다. 우리는 그 안에 우리의 몸을 담그고 살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40대 이하에 있는 젊은이들은 반드시 세계어 하나 정도는 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세대나 윗세대는 세계어를 못해도 크게 바보 취급 안 받았다. 앞으로 밑에 있는 젊은 세대들은 세계어를 못하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면서 스트레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괴롭힘 당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했어도 세계어가 안되서 취업할 때, 승진할 때마다 굉장히 고통을 받는데 기왕 할 거라면 빨리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세계어는 무엇이냐? 전 세계에는 언어가 6천가지 정도가 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세계어는 역시 영어로, 영어는 전 세계 인구의 거의 1/3이 쓰고 있고 웬만한 나라에서 영어공부는 다 시키고 있다. UN같은 곳에서도 공용어로 쓰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식으로 배우고 있고, 요즘엔 한국말도 채 배우기 전에 영어를 가르치고 5,6살만 되면 학원에 가서 배우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어를 잘 못한다. 그렇다면 안되는 이유를 알고 방법을 바꿔야 한다. 안되는 원리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우리가 어머니한테 한글을 배울 때는 쓰기부터 하지 않고 듣기부터 하였다. 듣기부터 한 다음에 엄마 말을 따라서 하고, 세 번째 엄마를 어떻게 쓰는지 공부한다. 쓰기가 맨 뒤에 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때는 쓰기부터 하는게 실패 원인이다. 만약 누군가가 다시 언어를 하고 싶다면 반드시 책만 들여다보지 말고 듣기부터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세계어로 강력하게 떠오르는 것이 중국어이다. 공식 인구 13억이며, 비공식 인구까지 치면 14억이라고 한다. 거기다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이 6천만명이라고 하니까 전 세계 인구 65억중에 약 15억 가량이 중국사람이다. 중국어는 이미 세계어가 돼 있다. 중국의 경제 상황이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면 세계어는 안되겠지만 중국은 미국하고 맞장을 뜰 수 있는 대단한 국가로 이미 부상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어는 틀림없이 영어와 함께 세계어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거기에 비해서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같은 언어는 전공분야에서는 많이 쓰일 용어이지만, 세계어가 되기에는 힘이 약하다. 따라서 기회가 되면 영어를 다시 한번 잘 리뷰하고 영어가 웬만큼 편안하게 된다면 중국어를 습득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을 아이들이 가슴으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실제 체험학습이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은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약 30여년 전 보이스카우트 대원을 인솔하여 한국잼버리에 가 느낀 점은 그곳에 가서야 영어가 안되니 저녁에 돌아와 텐트에서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안되니 속이 타서 묻는 것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진정 자기 자녀를 국제적 마인드를 기르고 싶다면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는 학교에 보내면 된다.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든 귀족학교가 아니다. 시골 전남 보성강가에 위치한 용정중학교는 특성화 교육으로 1학년 때는 일본에 이동수업을 실시하고, 2학년 때는 중국으로 장소를 옮기어 백두산 천지에 올라 우리 민족의 영산임을 체험하고 있다. 그들이 먼 훗날 내가 체험한 이 설레임이 20년, 30년 후에 '오늘의 나'를 있게 하였다는 감동을 심어주기 위해 학교장을 비롯한 선생님들은 오늘도 그들과 함께 일본, 중국 땅을 동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이 점점 치열하여 지는 세상에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위대한 직장을 만들기 위하여 혼신을 다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학교는 경쟁의 바람이 거세게 불지 않아서인지 변화를 인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교육계에도 학교 구성원들의 변해야만 한다는 의식에서 전국적으로 혁신학교 바람이 서서히 일고 있다. 변하는길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외부의 충격에 의한 변화이고 또 하나는 내부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학습에 의한 변화일 것이다. 이제 학교도 변하지 않으면, 교육의 성과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시대적 흐름을 읽은 때문인지,지난 주 6월 29일(금) 오후 1시 30분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 전북 군산시 교장단(대표 회현중 교장 이항근)일행 22명의 본교 방문이 있었다. 전남의 혁신학교인무지개학교의 운영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교장 선생님들의 방문이었다. 마침 점심 시간 교정에서 쉬고 있던 아이들이 반갑고 정겨운 인사로 환영하는 가운데 교장선생님들은 본교 도서실로 발길을 옮겼다. 자연스레 이루어진 아이들의 환대와 본교 교감선생님의 학교 설명에 이어 교육과정 운영 전반을 비롯하여 학생생활지도 등 학교현장의 관심사에 대하여 질문이 이어졌으며, 방문한 교장 선생님들께서는 방문을 환대하여 주신 본교에 감사를 표시하며 기분 좋고 유익한 방문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점심 후, 잠깐이나마 휴식을 가지려고 교정을 거닐었다. 교정의 벤치 여기저기에는 점심을 먹고 난 아이들이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 중 일부는 점심 대용으로 매점에서 산 과자와 빵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을 피해 쉴 곳을 찾았다. 점심시간이라 어느 곳 하나 아이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그나마 찾은 곳이 교실과 조금 떨어진 체육관 주위 쉼터였다. 5교시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잠깐 쉬어야겠다는 요량으로 벤치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순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누군가가 버려놓은 껌이 양복바지 엉덩이 부분에 묻은 것이 아닌가? 화가 났지만 우선 껌을 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모두를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벤치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이들이 씹다 버린 껌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나와 같은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벤치 주변은 아이들이 버린 과자 봉지와 휴지로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심지어 아이들은 바닥에 버린 것도 모자라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나뭇가지에 끼워 넣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학교에서 비치해 둔 쓰레기통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데는 아이들의 의식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배워 온 생활습관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퇴색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참다못해 아이들 몇 명과 함께 교정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기로 하였다. 잠깐 주운 쓰레기가 쓰레기봉투 반을 채울 정도로 교정은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 또한 놀라는 눈치였다. 청소시간 반별 담당구역을 정해놓고 청소를 시키고 있지만, 그때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은 어떠한가? 습관이 잘 길들지 않는 탓에 아이들은 매점에서 사온 과자를 먹고 난 뒤,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교실 바닥에 그대로 버려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고민하다가 아이들의 습관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쓰레기 벌점제였다. 즉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 주변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벌점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벌점 30점이 되면 일주일 동안 점심시간을 이용해 교정 주변 쓰레기를 줍게 하였다. 그리고 매점에서 산 과자를 교실로 가져오지 못하게 하였다. 따라서 청소시간, 교실이 깨끗하다고 판단되면 실장 권한으로 정리 정돈만 하고 쓸기와 닦기를 생략해도 관계없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이 벌점제에 대해 아이들은 불만이 많았다. 특히 자리에 떨어진 휴지를 발로 차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다가 언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버린 쓰레기가 아니라며 발뺌을 하다가 야단을 맞기도 하였다. 한편 자신의 구역을 확실히 정해놓고 관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청소 벌점제가 시행된 후, 교실은 예전보다 매우 깨끗해 졌으며 매일 넘쳐났던 쓰레기통의 쓰레기도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렸던 아이들의 습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아이들의 습관은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 또한 다양해진 것 같다. 화가 날 때마다, 화장을 하거나 욕설을 퍼붓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하고 싶은 말을 낙서로 풀기도 하고 심지어 분풀이로 학교 시설물을 부수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집어 던지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아이들도 있어 의외였다. 한번은 생각 없이 창문 밖으로 쓰레기를 던진 아이를 잡아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쓰레기를 던지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주변이 더러워진다는 사실보다 단지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그 아이의 말에 황당하기까지 했다. 중요한 사실은 쓰레기를 버리고 난 뒤, 자신의 행동에 전혀 반성할 줄 모르는 아이들의 태도였다. 아이들에게 예전에 없던 버릇이 갑자기 생겨난 데는 인성을 무시한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요즘 아이들. 학교생활을 하면서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나름대로 해소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현실은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받아줄 만큼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아무런 부담이 없고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쓰레기 투척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요즘 교정 주변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줍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있지만 학교현장은 줍는 사람보다 버리는 사람이 더 많아 담당 부서인 환경부는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진정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성적보다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시민의식이 아닐까 싶다. 교과서에서 배운 기본 소양을 실천하지 않는 아이들이 설령, 사회 큰 인물이 된다 할지라도 과연 언행일치를 실천하는 사람(人)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따라서 지나친 지식 강요보다 기본을 실천할 줄 아는 덕목을 가르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쓰레기 없는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 또한 잘 알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일거양실(一擧兩失)의 어리석음보다 쓰레기를 주우며 스트레스를 푸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지혜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얘들아, 쓰레기 주우며 스트레스 해소하지 않을래?"
구름을 귀하게 여길 때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초여름의 한더위에 구름이 햇볕을 가리지 않는다면 햇볕이 마른 땅을 태우고 농식물을 태우고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할 것이다. 구름이 고맙다. 더군다나 비구름은 더욱 고맙다. 구름이 비를 만들어 내려주지 않으면 자연도 타고 사람도 탄다. 농식물이 탄다. 버텨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중부지방에 비가 어느 정도 내려 가뭄이 해소되었다고 하니 반갑다. 우리 선생님들은 구름과 같다. 태양이 마른 땅을 태울 때 구름이 더위를 가려 스러지게 하듯이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태양과 같은 뜨거움이 가슴을 태울 때 그들을 시원하게 해준다. 더위로 인해 가슴이 시꺼멓게 타들어갈 때 그들의 구름이 돼 준다. 그들의 그늘이 되어 준다. 그러면 그들은 한숨 놓는다. 더위를 피해간다.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 농부들이 한더위에 들에서 일을 할 때면 제일 반가운 것이 구름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기진맥진할 때 구름이 그늘이 되어 주고 더위를 막아 스러지게 한다면 농부들은 한없이 기쁘다. 고마워하면서 더욱 열심히 일을 한다. 학생들도 이 더운 한 여름 힘들고 짜증날 때 선생님이 구름이 되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더위를 식혀주고 힘을 실어주면 학생들은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면학에 몰두하게 된다.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 평소에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며 꿈을 향해 나아간다. 꿈을 가지되 항상 큰 꿈을 가지라는 말씀을 되새겨본다. 명심보감 성심편에 “작은 배는 무거운 물건을 싣기 어렵고, 으슥한 길은 혼자 다니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한 말씀을 떠올린다. 무거운 물건을 싣기 위해 큰 배가 되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기 위해서는 넓은 길이 되어야 한다. 큰 배와 같은 인물, 큰 길과 같은 인재가 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아무리 더워도 지치지 않는다. 아무리 더워도 주춤하지 않는다. 아무리 더워도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더워도 앞만 바라본다. 아무리 더워도 뒤로 돌아보지 않는다. 아무리 더워도 목표를 향한다. 아무리 더워도 최선을 다한다. 나에게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구름 같은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선생님들은 비구름과 같다. 물이 필요할 때 비구름이 되어 비를 뿌려주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식수를 기다리는 이들은 안다. 생활에 필요한 물이 필요한 사람들은 안다.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부는 안다. 그들의 기다림에 만족을 주는 비구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물이 곧 생명이다. 물이 있으면 모든 것이 풍성하다. 모든 것이 생기가 넘친다. 열매가 풍성해진다. 물이 있으면 사람들은 언제나 그 곳을 찾는다. 짐승도 찾는다. 온갖 식물도 찾는다. 물이 너무 고맙다. 이런 물은 비구름이 뿌려준다. 그러기에 비구름이 몰려오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할 때가 많다. 몰라서 애타게 기다리기도 하고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선생님을 찾기도 한다. 생활에 어려움을 만나서 선생님을 기다리기도 하고 친구 때문에 선생님의 도움을 기다릴 때도 있다. 진로문제로 고민하면서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리기도 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목마른 학생들이 갈증의 해갈을 위해 얼마나 선생님을 찾는지 모른다. 이 때 우리 선생님들이 비구름이 되어 비를 뿌려주면 학생들은 시원함을 느낀다. 새 힘을 얻는다. 새 방향을 찾는다.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활로를 찾는다. 목마를 때 한 방울 물은 단 이슬과 같다. 우리 선생님은 목마른 학생들에게 다가가 한 방울의 물을 공급해야 한다. 그러면 그 학생은 단 이슬과 같은 쾌감을 느끼게 된다. 기쁨을 얻게 된다. 만족을 하게 된다.
사교육을 받으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 다 보내니, 우리아이가 처질까 싶어 보낸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기본적인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으로 보고 아이들 가르친다고 하더라. 특목고 갈려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는 것은 기본이다. 학부모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들이다. 학원을 안보내고 선행학습을 받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이는 풍토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사교육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선행학습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선행학습으로 인해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이 매년 20조원은 족히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약간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통계는 학생수 감소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학생수 감소가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하든지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국민들 대부분의 생각이다. 오죽하면 "선행학급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까. 사교육이 사라져야 하고, 특히 선행학습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을 한다.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어떤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더욱더 안타깝다. 사교육에 대한 열풍을 넘어 현재의 상황은 광풍이라는 표현이 좀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사회적, 국가적으로 위기상황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런 사교육 열풍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뜨거운 만큼 좀더 연구가 되어야 할 문제이다. 법으로 금지하게 되면 어쩌면 더욱더 음성적인 형태의 사교육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도 학원의 늦은시간교습, 고액과외등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런 형태의 사교육이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접하지 못했다. 규제하면 규제할 수록 교묘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사교육의 현실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도 철저하게 사교육을 금지 시켰지만 근절되지 않았었다. 도리어 음성적인 사교육은 더욱더 높은 비용을 들여서라고 했던 것이다. 법보다 사회적 분위기가 우선이다. 공교육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고, 방과후학교를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자연적인 유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부모들의 인식개선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부모들의 인식이 변하기 전에는 그 어떤 처방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사교육과 관련된 현실적인 정책들을 펼치면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이다.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었을때,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안하면 법을 지키는 것이다. 만일 적발이 되었을때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증거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학교마다 교육과정 운영이 다른 현재의 상황에서 선행학습 금지법은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본다. 특히 2009개정교육과정에서는 학교마다 학년별로 배우는 과목이 상이하다. 국,영,수는 그래도 같은 시기에 배우는 경우가 많겠지만, 나머지 과목의 교육과정은 학교마다 다르기 때문에 선행학습에 관한 구분이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한 법을 만들면 단속인력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되는 부분이다. 숨바꼭질이 지속된다면 법의 제정 취지가 무색해질 뿐이다. 기본적으로 법을 제정하더라도 선행학습이 급속히 줄어들 것으로 보기 어렵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법을 제정하는 것이 상징성은 있을지 몰라도 실효성은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선행학습은 학생과 학부모의 인식변화가 우선되어야 해결될 문제로 본다. 따라서 조급하게 법으로 규제함으로써 풍선효과를 유발하기 보다는 사회적, 국가적인 분위기 쇄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노력과 입시제도 개선등은 그동안 수없이 논의되었던 내용이기에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방과후교육의 활성화, 학부모연수강화, 각급학교에서 출제하는 시험문제의 다양화를 꾀한다면선행학습의 필요성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장원리에 맡기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성숙한 사회가 되기위한 노력을 하되, 조급하게 접근하지 말고 다소 시간이 지나더라도 기다리자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하지만 인식의 변화는 언젠가는 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인위적인 금지는 반발현상이 나타나지만 자연적인 분위기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체벌이 금지되고 인권조례가 교육현장 깊숙히 들어와 있다. 매일같이 학생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사가 가르치는 사람인지 학생들과의 마찰을 이겨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지 구분이 애매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교사들의 지시에 불응하는 경우는 이제는 일상화 되어 있다. 학교폭력 문제로 몸살을 앓는 학교들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학교내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도 상당수 있다고 본다. 그래도 아직은 교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학생들이 더 많지만 계속해서 이런 분위기가 지속될지는 미지수이다. 우리학교의 배움터 지킴이는 경찰간부 출신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보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했다. 아직도 경찰관모습이많이 남아있는 분이다. 점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나눈 대화를 정리해 보았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는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간혹 여유가 있을때 선생님들을 지켜 보았더니, 학생들이 정말로 많이 오는 곳이 생활지도부 더라고요. 수업시간에 불손한 태도로 적발된 학생, 쉬는 시간에 싸우는 학생, 준비물 없이 수업에 참여하여 교사로부터 지도를 받다가 반항하여 오는 학생들이 정말 많더라고요."(우리학교 배움터 지킴이는 생활지도부에 소속되어 있다.) "처음에는 생활지도부 선생님들은 수업을 안하는지 알았어요. 학생 생활지도만 전담하는 선생님들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수업을 하시더라고요. 학생들 지도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빼앗기면서 어떻게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제대로 수업을 하지 못한다고 봐야 하겠지요. 쉬는 시간이나 비는 시간이 되면 학생들 지도에 정신이 없더라고요."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중요하긴 하지만, 담임이나 교과담당선생님이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생활지도부에 학생지도를 의뢰한다고 하는데, 수업을 어떻게 할 수 있느지에 대한 방안이 정책적으로 연구되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 사안에 대해 100% 공감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각 학교에 학생들의 사안을 조사하여 처리까지 전담할 수 있는 전담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에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인력 말입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학생들이 잘못하면 벌점을 부과하는데, 이 학생들이 벌점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더라고요. 제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월담을 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이 학생들을 데려다가 벌점을 부과하도록 했는데, 돌아서서 자기들끼리 웃고 나가더라고요. 상·벌점제를 잘 활용하면 학생 생활지도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지만, 최소한 중학교에서는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 더 강력한 방안이 나와야 합니다. 어차피 체벌은 할 수 없는 분위기라면 학생과 학부모가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합니다. 벌점 받아봐야 몇번 와서 교육 받으면 경감되니 벌점을 받아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어떤 방안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올해부터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에 학교에서 받은 상·벌점 상황도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폭력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최소한 매 학년말에 학생 개개인에 대한 상·벌점 상황을 기록하다면 기록하는 그 자체 만으로도 학생들에게 뭔가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꼭 상급학교 입시에 적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뭔가 필요한 조치기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했다. "학교의 이런 상황을 교육청이나 교육부(그는 교과부를 교육부라고 했다.)에서 분명히 알고 있을텐데 왜 손을 놓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모르고 있어서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분명한 직무유기입니다. 학교에 와보면 금방 알수 있는 일을 모른다면 말이 안되는 소리지요."
수능 EBS 연계가 올 해로 3년째에 접어든다. 이제 고3을 비롯한 수험생들도 연계의 의미를 알고 나름 대처를 해나가고 있으며 열심히 하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책과 씨름 중이다. 작년 수험생 중에도 쉬운 수능과 맞물려 수능에서 역전의 기회를 잡아 자신이 바라는 대학에 보기 좋게 합격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의 변화가 고무적이라는 것이다. EBS 수능 연계 이전의 고3 선생님들은 수능대비용 참고서를 선정한 후 그것을 매년 반복해서 가르친다. 아무 문제가 없다. 학생들은 신년도가 되면 어김없이 바뀌게 되어 있었으니깐. 선생님 입장에선 작년에 가르쳤던 것을 다시 가르치니 교재연구에 여유가 있고 수업중에도 '중 독경 외우듯'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수능에 EBS가 연계되고 EBS 교재는 매년 어김없이 바뀐다.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은 고3 수험생만큼이나 시간을 투자해 준비를 해야한다. 수험생이 따로 없다. 선생님 입장에선 변화무쌍한 입시정보에다 EBS 교재연구에다 잠시도 책과 떠나 여유로울 때가 별로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인 것 같다. 고3 진학실 분위기는 예년과 너무도 다르다. 쉬는 시간 조차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복도에서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년의 학생은 수험선수 선생님은 지도자라는 공식이 깨지고 함께 뛰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성립이 이루어져 가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러한 긍정적인 모습 속에 굉장한 어부지리까지도 숨어 있으니 그것 또한 반겨야 할 것 같다. 이런 식이면 사교육은 곧 맥을 못출 것 같기도 하다. 실재로 고3이 되면 다니던 학원을 정리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기본이 많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EBS교재 중심으로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공부를 도와 줄 과외 정도에서 만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매일이 아닌 일주일 주말 정도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를 잘 살리면 지금 고2가 치르는 수능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EBS와의 연계율을 고려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B형은 현재와 같이, A형은 연계율을 더 높이면 된다. 이런 제대로된 방향성을 계속 유지한다면 “봄 볕에 눈 녹듯” 사교육의 병폐도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다음은 서로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두 교사가 학부모 도우미 활용에 관해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김 교사 : 학부모 도우미를 활용하라는 공문이 왔는데, 실제로 해 보려니 여러 가지 문제가 있네요. 박 교사 : 어떤 문제가 있나요? 김 교사 :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 간담회에서 여러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은 좋은데, 학부모 도우미는 좀 다르잖아요. 학부모가 우리 반에 들어와서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어색할 것 같네요. 아이 부모가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 아이에게 눈길 한번이라도 더 줘야 할 것 같고, 학부모가 우리 반을 다녀가면 밖에 우리 반 이야기가 떠돌 것 같기도 하고……. 박 교사 : 저도 처음에는 선생님처럼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교내 학부모 협력 관련 연 수에서 배운 내용을 실천해 보니 학부모 도우미도 숙제 점검, 교실 정리 정돈, 보충학습 지도 등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김 교사 : 그렇지만 교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우리 학교 문화도 학부모 도우미 활용에 영향을 주는것 같아요. 박 교사 : 그래서 학교 문화가 중요하죠. 저도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동료 선생님들이 학부모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활발하게 협력하시는 것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실제로 능력 있는 학부모 도우미를 활용해 보니 아이들 교육에도 그렇고,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김 교사 : 그런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학부모 도우미 활용이 생소한 것이라 그런지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네요. 새로운 시도 같은 것을 싫어한다랄까…….선생님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박 교사 : 그렇군요. 우리 학교 문화와 많이 다르네요.[PART VIEW] [출제의도] 최근 학교가 방과후 학교프로그램 운영이나 외부강사의 초빙 등으로 외부에 개방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학교는 폐쇄적인 성향이 강하고, 교실은 ‘비밀의 화원’처럼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간의 소통 부재는 공교육의 불신과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교사들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하나 교사의 어려움이나 문제들을 이해해 주는 집단이나 지지 세력이 없는 것은 공교육의 정상화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교육활동에 학부모 도우미를 참여시 킴으로써 학생 지도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학부모들이 교사들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란 차원에서 본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개요작성] 1. 서론 (1) 교육은 교육공동체 형성이 이루어질 때 가장 효과적이다. (2) 그런데 최근 매스컴 보도에 의하면 교사와 학부모 간에 깊은 불신과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3) 이는 소통과 정보공유부족으로 교육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4) 참다운 교육공동체 형성을 위해 교사의 의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 본론 1) 교사와 학부모 간 협력의 필요성 정보공유를 통해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지도하고, 수업이나 교육의 효과성 증진 2) 교사들이 학부모 도우미 협력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 (1)학부모와 교사간의 신뢰관계 형성 부족 (2) 학부모의 참여에 대한 보상을 주어야 한다거나학습분위기를 해칠 것이라는 편견 (3) 폐쇄적인 학교풍토로 학부모의 조언이나 참여를 간섭이나 자율성 침해로 인식 (4) 교사 자신이 교육의 전문가라는 잘못된 인식 3) 학부모와 협력증진 방안 (1)학부모를 교육의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2) 학부모와 신뢰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3) 학부모의 역할을 구체화하고, 역할수행을 안내한다. (4)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를 권장하고 안내한다. 3. 결론 1)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2) 요약 : 학부모 도우미는 아동의 생활 지도나 학습 지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동반자 관계속에서 상호신뢰를 형성하고 열린 마음으로 학부모의 협력과 도우미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3) 과제 :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 스스로 개방적인 자세와 학교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모범답안] 1. 서론 교육은 교육공동체 형성이 바탕이 될 때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매스컴보도에 의하면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 간에 깊은 불신과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교육풍토 속에서는 아이들의 바람직한 교육을 위한 소통과 정보공유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학교의 효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참다운 교육공동체 형성을 위해 교사의 의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 본론 1) 교사와 학부모 간 협력의 필요성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학부모의 협력은 우선, 자녀에 대한 정보공유를 통해 아이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지도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다양한 재능을 가진 학부모를 교육활동에 참여시켜 교육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학교와 교사의 입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므로 교육공동체 형성에도 기여할 것이다. 2) 교사들이 학부모 도우미 협력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 그런데 교사가 학부모 도우미의 협력을 부담스러워한다. 그 이유는 우선, 학부모와 교사 간의 신뢰 부족에 기인한다. 래포 형성이 안된 상태에서는 서로 어색하여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둘째, 학부모의 참여에 대한 보상을 주어야 한다거나 학습분위기를 해칠 것이라는 편견이나 고정관념 때문이다. 셋째, 폐쇄적인 학교풍토로 인해 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조언이나 참여를 간섭이나 자율성 침해로 여기는 때문이다. 끝으로 독단주의 사고에 기인하여 교육의 전문가는 교사 자신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3) 학부모와 협력증진 방안 따라서 학부모와의 협력 증진을 위해서는 우선, 학부모를 교육의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 교육은 학생의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학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학부모와 신뢰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교사는 개방적이고 허용적인 자세로 자녀와 교육 문제 등에 대해 학부모와 진지하게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 학부모의 역할을 구체화하고, 역할수행을 안내한다. 예컨대 학급 도우미, 방과후 학교 강사나 명예교사 등 다양한 활동에서의 역할내용과 방법을 친절히 안내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한다. 넷째,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를 권장하고 안내한다. 학부모 참여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역할수행을 위한 연수를 활성화하며, 다양한 능력과 기술을 지닌 학부모를 적극 발굴하여 학교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3. 결론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교사가 학부모 도우미의 정보와 도움을 효과적으로 지원받는다면 아동의 생활 지도나 학습 지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교육공동체라는 동반자 관계 속에서 상호신뢰를 형성하고 열린 마음으로 학부모의 협력과 도우미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들 스스로 개방적인 자세와 학교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참고자료 1] 혁신학교와 학부모의 역할 1. 혁신학교의 특징 혁신학교는 한마디로 말해 공교육혁신의 모델 학교이다. 때문에 혁신학교는 공립학교 혁신의 출발점이자 확산의 거점인 것이다. 학교혁신의 모델로서의 혁신학교는 기존 학교의 관행을 벗어나 새로운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교운영체제, 교육과정 등 모든 면에서 혁신하고자 하는 학교이다. 혁신학교는 배움(인성, 지성)과 돌봄(건강, 안전)의 책임교육을 실현하고, 학생, 학부모, 교원, 지역사회의 교육적 요구가 서로 소통하는 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문화 공동체로서 모든 학생의 수월성을 추구하는 학교로 규정된다. 즉 혁신학교는 기존의 입시중심, 관료주의적 교육관행을 혁파하고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의 교육적 요구를 수용하여 모든 학생의 성장과 행복이 보장되는 배움과 돌봄의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교육복지 실현과 수업혁신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혁신을 추진하는 학교이다. 2. 혁신학교의 운영원리 혁신학교는 교원, 학생,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 모든 학교 구성원이 주인이 되어 학교 실정과 주어진 여건에 맞게 실현 가능한 것부터 단기적 과제와 중장기적인 과제로 나누어 차례차례 해결하여 궁극적으로 완성된 학교혁신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협력과 참여의 새로운 학교 문화를 형성해내야 혁신학교 구성원의 의지에 기초하여 혁신학교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학교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추구하게 되며, 이를 위해 전문성과 책무성 중심의 학습공동체 구축, 교수-학습 중심의 운영 시스템, 지역사회와 참여와 협력 확대를 필연적으로 연계하여 실현해 가게 되는 것이다. 3. 학교 거버넌스의 의미 학교 거버넌스는 학교 운영에 있어 교사, 학생, 학부모 간의 권력 분산의 체제, 즉 학교 주체 간의 소통과 참여의 전면화를 의미한다. 학교 거버넌스를 통해 학교 비전의 공유, 각 주체의 권리와 책무성 공유, 파트너십 형성 등이 이루어진다. 학생 자치활동의 확대와 학교 운영참여, 교장 및 교사와 학부모의 소통 확대, 학부모의 학교 운영 참여 등은 민주적 학교 거버넌스의 필수적 요소이다. 민주적 학교 거버넌스에서 학부모의 위상과 역할은 대폭 강화된다. 그것은 학교(교사)와의 직접 소통 확대, 학교 참여 확대로 나타난다. 4. 혁신학교의 성장을 위한 학부모의 역할과 과제 첫째, 직접 교육을 담당할 주체는 교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학부모의 소원이 간절해도 교사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학교혁신은 불가능한 것이기에 교사와의 소통과 협력의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한다. 둘째, 혁신학교를 요구하는 학부모의 혁신학교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되고, 올바른 방향을 가져야 한다. 막연한 요구와 상호 모순된 요구가 뒤엉킨 상태에서는 추진 동력이 제대로 형성되기 어렵고, 혁신학교가 추진되더라도 곧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셋째, 학교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자세와 의지를 갖춰야 한다. 참여와 협력이야말로 혁신학교를 추진하는 핵심 동력이 아닐 수 없다. 학부모의 참여와 협력의 질과 양에 의해 혁신학교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넷째, 내 자녀, 내 학교에 머물지 않고 지역과 교육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혁신학교는 내 자녀가 다니고 행복을 누려야 할 학교를 넘어서 지역의 다른 학교들, 나아가 한국의 모든 학교를 혁신할 출발점이자 모델로서의 학교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참고: http://blog.daum.net/hs5198/7082842) [참고자료 2] 참여와 협력을 통한 행복한 학교 문화 만들기 경기도 광주하남교육지원청(교육장 김규성)은 23일 소회의실에서 초·중등 교장, 교사, 교총, 전교조, 학교운영위원, 학부모, 어머니폴리스 단체 대표 등 10여 명을 대상으로 참여와 협력을 통한 학교 문화 만들기 간담회를 실시했다. 김규성 교육장은 광주하남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교육공동체 역할의 중요성과 함께, 우리 교육지원청은 미래형 학력향상, 학교폭력 예방, 교원 역량강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공교육이 신뢰받고 교육공동체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초등 경사단 대표 이현수는 “참여와 협력으로 학부모 지원단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으며, 앞으로도 이런 소통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날 간담회에서는 진정성 있는 대화와 소통으로 교육공동체 대표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었고, 이러한 의견과 함께 광주하남교육지원청은 광주하남혁신교육정책의 목표를 공유하여 역동적인 학교 문화를 창출하는데 앞장설 계획이다.
[PART VIEW] Ⅰ. 서론 학교교육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학생들이 자치활동의 활성화를 통하여 인권존중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인 삶의 자세를 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학생 자치활동은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여 본래의 목적을 잃고 형식화되면서 자치활동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학생자치활동이 활성화 되어야 하는 이유와 학교에서의 추진방안 및 교육청의 지원방안을 제시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학교 생활규정 제·개정에 대하여 논술하고자 한다. Ⅱ. 학생자치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 첫째,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민주적 삶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학창시절에 민주주의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학생 자치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둘째,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 제시와 경청 및 공감을 통해 생활 속에서 직면하는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학생 자치활동이 실시되어야 한다. 셋째,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방어하고 행사함과 동시에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옹호하고 허용할 줄 아는 삶의 자세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생자치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Ⅲ. 자치 활동의 실천 현황 첫째, 학급 자치활동을 운영함에 있어 많은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학급회의 진행 요령(토론방법 등) 부족, 학생의 적극적 참여(회의 주제 부적합 등) 부족, 연간 운영시간 및 자치활동 지원 부족, 교사의 자치활동 지도능력 부족 등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학생들의 민주시민 실천역량이 부족하다. 학생들은 민주시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지만, 실제 시민활동에 참여하는 정도는 매우 낮으며, 학교에서도 학생자치 활동의 중요성은 주장하면서도 학생들이 자기의 문제로 인식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태도는 매우 부족하다. Ⅳ. 자치 활동의 지도 원리 첫째, 학생들에게 자주성과 자율성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되, 자주성과 자율성이 단계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둘째, 교사는 세부 활동의 내용과 운영방법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며, 필요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조언해 준다. 셋째, 자치 활동의 내용과 방법에서 학생들의 발달 수준을 충분히 고려하여 지도한다. 넷째, 자치 활동이 주로 학급단위의 협의나 역할 분담을 통해 이루어지거나 학교나 지역사회 단위의 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체득될 수 있도록 지도한다. 다섯째, 협의 활동 지도에 있어 학생들로 하여금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결정된 사항은 자발적으로 엄격히 실천하도록 지도한다. 여섯째, 학생들이 협의하거나 실천해야 할 주제나 역할은 가능한 한 학생들의 생활 또는 흥미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들 가운데에서 선정한다. 일곱째, 자치활동의 성공적 운영을 위하여 사전·사후 지도를 철저히 함은 물론 수시로 학생들과 평가·분석의 기회를 가진다. 여덟째, 다른 영역에서 자치 활동의 성격에 부합하는 활동이 전개될 경우, 자치 활동과의 관련을 적극 도모하여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Ⅴ. 학생자치활동의 활성화 방안 1. 학교에서의 활성화 방안 첫째, 학급회의 및 학생회의 등을 정례화한다. 형식에 치우치거나 다른 활동으로 대체하고 있는 학급 자치활동 회의시간을 확보하고, 학급단위의 의견이 학교단위의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활용한다. 둘째, 학생 중심의 특색 있는 자치활동이 운영되도록 한다. 졸업식, 입학식, 축제, 발표회, 기타 학생 관련 행사 등 학생들이 기획·운영하는 학교 행사를 활성화하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며, 학생 자치활동 공간도 확보해 주고 자치활동 예산 운영에 대한 자율권도 부여한다. 셋째,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한다. 학교 규칙 제·개정 과정에서의 학생의견 수렴을 제도화하고 학생회가 주관이 되어 학교생활 규칙을 제정·실천하며, 학교운영위원회의 학생생활 관련 안건 심의 시 학생대표 등이 참석하여 발언하거나 의견을 수렴하여 건의할 수 있게 한다. 넷째, 인사예절, 학교폭력 예방, 기본 생활습관 실천을 위한 활동을 전개한다. 등하교 시간에 학생 대표들이 참여하여 인사예절의 모범을 보이고 자율적인 학교내 질서유지와 교통안전 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한다. 다섯째, 학교폭력 예방과 인성·생활·인권교육을 위한 교내 방송을 학생 주관으로 실시하고 교사들도 동참할 수 있도록 한다. 여섯째, 학교공동체의 민주적 의견 수렴을 통해 학교생활규정을 제·개정한다. 학생생활지도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규정 정비 시 학생·교원·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고, 실제 운용에도 학교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도록 한다. 일곱째, 학교생활규정을 자율적으로 준수하는 풍토를 조성한다. 학교생활규정에 대하여 충분히 교육하고 홍보를 강화하며, 학생의 인격을 고려한 교육적 차원의 지도 방법을 적용하고, 학생회 중심의 자율 준수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덟째, 그 외에도 학교 홈페이지에 학생 자치활동 관련 메뉴 운영을 활성화하며, 학생 대표와 학교장과의 대화의 시간 운영 등을 통해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학교문화를 형성한다. 2. 교육청에서의 지원방안 첫째, 학생 자치활동 역량 강화 캠프 운영, 학생 참여위원 역량 강화 및 리더십 향상을 위한 지원, 민주시민교육 체험활동 지원 및 학생 자치활동 운영 매뉴얼 등을 제작하여 보급한다. 둘째, 자율과 참여 중심의 학생 자치활동 조직 운영 및 활동결과 발표 기회의 장을 열어 주어 ‘민주주의와 인권’이 자연스럽게 체화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셋째, 학교장을 중심으로 전 교직원과 학교공동체가 학교 주요사항에 대한 의사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여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이 책임의식을 제고하고 약속·준법 등의 민주적 생활 습관을 배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넷째, 경청·공감 능력, 대화의 기술, 공적 토론 참여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등 학생 자치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및 연수 기회를 확대하여 제공한다. 학생회 임원 캠프, ‘삶의 기술’ 학교, 학생 자치활동 캠프 등 자치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기회를 확대하고, 유관기관 현장 체험(견학)학습 등을 통해 지식학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배우는 지식과 세상에서 겪는 경험이 통합되도록 지원한다. Ⅵ. 민주적인 학교생활규정의 제·개정 1. 민주적인 절차 첫째, 학교생활규정 제·개정위원회를 구성한다.(학생, 학부모, 교원으로 구성) 둘째, 제·개정안을 발의한다.(학교 구성원의 발의, 관련 법령이나 지침 등의 개정이 있는 경우) 셋째,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다.(학급회의, 학생회의) 넷째,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한다.(교직원 회의) 다섯째,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한다.(학부모 회의 또는 설문조사) 여섯째, 1차 시안을 마련한다.(의견 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초안 작성) 일곱째, 학생·학부모·교사가 참여하는 공개토론회를 개최하거나, 설문지 등을 통해 확인한다. 여덟째, 최종 학교생활규정 제·개정안을 마련한다. 아홉째,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한다. 열 번째, 최종안을 공포하고 정보 공시한다.(학교홈페이지, 가정통신문) 열한 번째, 학교생활규정에 대한 안내 및 연수를 실시한다.(학교생활규정 준수 서약식 등) 열두 번째, 적용 및 환류를 통해 추후 개정 시 필 요한 사항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분석한다. 2. 제·개정 원칙 첫째, 전교생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 둘째, 올바른 학교생활규정 개정을 위해서는 인권알기를 선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결정권에 있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넷째, 학교공동체(학생, 교원, 학부모) 합의를 통해 개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섯째, 전교생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과정 내 시간(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섯째, 학생주도의 참여를 위해 자치활동 활성화가 필요하다. 일곱째, 학생회 임원의 자치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Ⅶ. 결론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교사가 모두 지도하기는 어렵다. 교사의 개입에 의한 교육활동도 매우 중요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민주시민으로서 살아갈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학습활동을 비롯한 모든 학교생활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민주적인 삶의 자세를 터득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학교 내에서 학생자치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최근 학교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각계각층에서 그 해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인문학’ 교육도 그 대안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인문학이 소위 ‘인성교육’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아’로 지목받는 학생이 과연 도덕과 훈육으로 순치될 수 있을까?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인다. 인성교육보다는 인문학의 본령을 되찾아 인문교육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지금의 난관을 극복하는 데 다소나마 기여할 수 있겠다. 인문교육의 어떤 특성이 이를 가능하게 할까? 인문학(humanities)은 사전적으로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을 뜻하지만, 고대 로마의 키케로가 처음 사용한 ‘인문학(humanitas)’이란 용어는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학문’을 뜻한다. 그는 이 용어를 고대 그리스의 ‘paidea(교육)’에서 착안하여 당시 노예계급에 대비되는 의미에서 시민계급, 즉 ‘자유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교양교육’의 성격을 부여하였다. 이로써 인문학은 ‘자유(libertas)’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모든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인간의 품격과 자질에 관련된 사항을 교육할 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되었다.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기초교육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교양학(artes liberales)의 성격을 띠게 됐고, 그러면서 ‘인간을 자유인으로 키우기 위한 교양교육’이 인문학의 본령이 되었다. 인간다움과 자유로움은 인문학을 받치는 두 축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처한 현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서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는 외부의 모든 조건과 세력에 저항하여 인권과 자유를 최대한 확장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은 성찰(省察)의 학이면서 자율(自律)의 학이다. 인문학의 성찰적 기능은 개인과 사회에 대해 반성하여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모색하는가 하면, 그 자율적 기능은 외부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과 사회가 자립할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한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성찰이고 자율인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그에 따른 ‘자존감의 보존’이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인문학의 전제이고 목표다. ‘자기’는 사랑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이 전제가 흔들리고 목표가 흐려질 경우 인문학은 길을 잃는다. 인간은 사랑과 존중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현실은 이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서 성찰은 단순한 반성이 아니다. 인문학적인 성찰에서는 ‘이해’가 먼저다. 왜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나, 왜 다른 사람에게 존중받지 못하게 되었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고전적인 문학작품들은 대개가 작품 속에서 비행을 저지르는 주인공이 처한 현실을 이해함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 찾는다. 비행의 원인을 진단하는 일이 선행하고, 그 처방이 따른다.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문학은 가르친다. 따라서 잘못도 단지 ‘나의 잘못’만은 아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심리학 교수가 비뚤어진 주인공 윌을 향해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를 반복해서 외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인문학의 치유기능이 여기서 나타난다. 인문학의 성찰에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선행하지만 그게 목표는 아니다. ‘지식’이 인문학의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행위한다. 인간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고자 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로 인해 일그러진 개인과 사회에게 지금까지 있어온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잘즈만(M. Salzman)은 소설 새들은 새장 안에서도 노래한다에서 청소년 재소자를 향해 이렇게 묻는다. “여기에 갇혀 있는 사람 이외의 너는 누구지?” 비행 청소년에게 ‘비행’은 그의 일부가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내부에는 ‘비행을 저지르지 않는 다른 그’가 도사리고 있다. 그 ‘다른 나’를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 인문학의 임무다. 인문교육은 ‘새로운 나’를 발굴하여 그 ‘나’가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도모한다. 삶의 원동력이 나의 밖이 아니라 나의 안에서 흘러나올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리하여 진실로 홀로 설 수 있는 나의 출현을 소망한다. 그래서 숱한 인문 교양서적은 ‘자기 찾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기가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는 길을 찾고, 자신의 취향을 찾고, 자신이 지향하고 싶은 가치를 찾는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의 자기 찾기는 전문적인 기술이나 직업적인 소양을 기르는 지식이 아니라 이를 수단으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과 관계한다. 따라서 자기 찾기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조건과 방향을 겨냥한다. 삶의 맛은 지식에서 오지 않는다. 지식은 삶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인문학은 삶의 과정 자체에 접근한다. 인문학은 어디에서 삶의 참맛을 느껴야 하는지에 눈뜨게 한다. 교양학으로서의 인문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삶의 도구에 관련된 지식의 교육이 아니라 곤경 속에서도 자기를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아는 지혜의 교육이다. 지금 우리의 입시위주 교육에서 학교는 ‘좋은 대학 입학’만이 학습의 목적이 되어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진정한 교양의 효과적인 수단을 파괴하는 당시의 교육 행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에게 최후의 목적지만을 제시하면서 그리로 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온갖 교육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인문학은 인간이 추구하고 돌아가야 할 고향, 어머니다. 어머니로서의 인문학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보듬는 최후의 보루이다. 내가 입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다. 모든 이해타산을 넘어 순수하게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원천이다. 지식이 아니라 삶 자체를 오롯이 떠받들고 있는 주춧돌이다. 보에시우스는 철학의 위안에서 ‘철학의 여신’을 등장시켜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상처를 치유 받는다. 거기서 그는 철학을 “나의 보모(保姆)”라고 칭한다. 인문학은 모든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아이’를 일깨우고 보살피는 어머니다. 아이를 위해 어머니가 일어서야 한다. 지금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를 떠나고 있다. 그 빈자리를 인문학이 메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