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7,463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전남 함평 대동향교초(교장 고영운)는 21일 9시 30분부터 학부모를 대상으로 2학기 학교교육과정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설명회는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 계획은 물론 현재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성)폭력 예방교육 및 학부모 연수회를 실시하는 것이다. 필자는 10시 30분부터 '사교육 없는 자녀교육'을 주제로 한 학부모 강의를 실시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생활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어나는 시간부터 아침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학부모의 자세가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은 스스로 실천하는 능력을 억압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신뢰하고 지나치게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과외 학습을 지속하면 초등학교 성적을 상승할 수 있겠지만 평생동안 공부하면서 살아가야 할 미래에는 적합하지 않다. 일찍부터 자녀가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자신의 삶을 경험하면서 반성적인 활동을 축적하여 갈 때 살아갈 힘이 축적되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을 갖기 위해서는 한 분야의 전문가를 직접 만나는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를 보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보완하여 독서를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펴 자신이 가야할 꿈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실제로 꿈이 없어 방황했던 한 여고생이 꿈을 갖게 된 후 성공의 길을 간 김수영의 동영상을 통하여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수회 후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교급식을 공개하고, 직접 맛을 보면서 급식에 관한 점검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에는 각 담임교사와 교육상담을 하는 과정으로 매우 충실하게 진행하여 학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학교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한편 특색교육으로 비즈쿨동아리, 비즈마켓데이 운영, 진로체험의 날 운영, 비즈쿨 페스티벌을 축으로 하는 비즈쿨과 함께하는 진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본교는 1945년 9월 향교초등학교로 개교하여, 1999년 9월 대동초등학교를 통합하고 대신분교장을 본교에 귀속했으며, 2006년 대동향교초등학교로 개칭했다. 학교주변은 오래된 숲이 자리하고 있어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모교로 기념 식수가 본관 앞에 자리하고 있다.
경상북도문경교육지원청(교육장 엄재엽)은 20일 고윤환 문경시장, 고우현 도의회 수석부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문경새재일원에서 초, 중, 고등학교 학부모와 교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7 문경 학부모체육대회를 개최했다. 화창한 가을 날씨 속에서 실시된 이번 행사는 학교별로 학부모와 교원이 팀을 구성해 문경새재 1관문에서 2관문까지 걸으며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면서 문경교육발전을 위한 의견을 교환하고 소통하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엄재엽 교육장은 학부모의 학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문경교육 발전의 토대라고 강조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고윤환 문경시장은 축사를 통해 명품 문경교육 발전을 위해 문경시가 최대한 지원을 할 것을 약속했다. 고우현 도의회수석부의장은 문경지역의 예산확보와 문경지역 학교가 명문학교로 발전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미션수행 결과에서는 점촌중학부모회가 최우수, 점촌초학부모회와 점촌고학부모회가 우수, 마성중학부모회, 가은고학부모회, 문경중학부모회가 장려로 선정돼 시상금을 받았다.한편, 참석한 학부모들은 대회 진행에 매우 만족하며, 이번 대회를 통해 학교와 학부모들이 서로 소통하는 좋은 기회가 됐고, 문경교육발전을 위한 초석이 됐다고 평가했다.
대부도 캠핑시티서 16·17일마술공연, 바비큐파티 “즐거워”자녀 손잡고 별 보며 야외취침“잊지 못할 추억, 만들어 갑니다”내년엔 권역별 캠핑행사 추진 “대부도가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지만 가족과 함께 한 캠핑 자체만으로 행복이었습니다. 잊지 못할 가을을 선물해 준 교총에 감사합니다.”(교총 복지플러스 후기 이승원 교사) “장소도 좋고 이벤트도 좋고~남편이 텐트를 치는 동안 아이들은 페이스페인팅도 하고 풍선도 받았어요~마술공연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딸이 너무 재미있어 했어요.”(교총 복지플러스 후기 김진아 교사) 한국교총(회장 하윤수)이 창립 70주년 이벤트로 회원 70가족을 초대해 ‘교총가족캠핑’을 열었다. 회원 설문조사에서 가장 열렬한 요구를 받은 데다 교총의 ‘생활밀착형, 참여형 복지 실현’ 가치와 맞아떨어져 마련된 행사다. 16~17일 경기도 안산시 소재 ‘365 대부도 캠핑시티’에서 진행된 캠핑은 페이스페인팅, 마술공연, 바비큐파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즐거운 추억을 선사했다. 가족 당 1만원, 사실상 무료인 캠핑 참석 교원들은 “만원의 행복을 실감했다”며 이구동성 전했다. 탁 트인 공간에 맑은 공기, 파란 하늘과 솜털 같은 흰 구름을 이고 앉은 캠핑장은 보는 것만으로 ‘힐링’ 그 자체였다. 여기에 흥미로운 공연, 맛있는 음식, 가족 간의 정담이 곁들여져 이틀 내내 들뜬 표정이었다. 자리를 배정받은 어른들이 텐트를 치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이벤트 부스에서는 페이스페인팅, 피에로 풍선 만들기로 동심을 유혹했다. 얼굴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고 손에 풍선을 들어 ‘교총가족’임을 인증 받은 아이들은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금세 말을 걸고 장난을 치는 사이가 됐다. 진만성 교총 수석부회장은 환영사에서 “좋은 날씨에 마음껏 즐기시고, 학교로 돌아간 후 교육을 위해 더욱 힘 써 달라”고 당부했다. 오후 5시부터는 푸른 잔디밭이 즉석 공연장이 돼 마술사 김영완 씨의 쇼가 펼쳐졌다. 유머 넘치는 말솜씨에 비둘기, 동전, 풍선, 과자원통 등을 활용한 신기한 마술에 300여명의 가족들은 탄성과 환호를 보냈다.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숯불 바비큐파티. 매캐한 연기에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렇게 구워 낸 고기, 해산물 한 점은 호텔요리 부럽지 않았다. 경기 문산중에서 기술 과목을 가르치는 공병찬, 최창민 교사는 동료이기 이전에 대학 선후배 사이. 평소 각별했던 이들은 나란히 캠핑에 당첨되는 행운까지 겹쳤다. 함께 한 아내 김진아(경기 모감중), 성현미(경기 풍동중) 교사 역시 교총 회원이자 동일 과목 교사로 캠핑장은 세미나장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친한 동료였는데 이번에는 5명의 아이들까지 다 모였다”며 “뜻 깊은 시간이 될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월 1, 2회 캠핑을 다닌다는 김광수 인천가림초 교사, 정유미 인천불로초 부부교사는 “아이들도 좋아하고 회원으로서 정말 대접받은 느낌이 든다”며 “이런 행사를 매년 많이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 자녀를 데리고 캠핑 ‘첫경험’에 나선 홍성철 인천 서곶초 교사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캠프를 꼭 가야겠다고 다짐하던 차에 기회를 잡게 됐다”면서 “참석 가족들 모두 화목한 모습을 보니 나까지 행복해지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밤 8시, 노천극장에서는 영화 ‘아빠는 딸’이 상영됐다. 삼삼오오 손을 꼭 잡은 가족들은 영화의 내용처럼 진한 가족의 소중함을 재확인했다. 이번 행사에 대해 회원 가족들은 후기를 통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교총 홈페이지에 사진, 사연을 올리며 감사의 뜻과 함께 전국적인 캠프를 요청했다. 교원복지국 이동호 국장은 “교총 창립 70주년 특별행사로 마련된 캠핑에 뜨거운 호응을 보내주셨다”며 “내년에도 권역별로 행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깨 너머로 글을 읽어 보던 딸아이가 한 마디를 한다. “엄마, 나는 엄마의 글에서 이 부분이 참 좋아.” “어디?” “너는 다 좋은데 이건 안 좋다, 저건 안 좋다라고 지적하는 부분 말이야. 우리도 뻔히 그것이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아는데 선생님들은 칭찬을 하시는 척 우리들을 질책하시거든. 그러면 정작 나는 과연 잘하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라는 의문이 들곤 한단 말이야.” 우리는 해마다 참 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그러나 가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미처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선의로 한 행동과 말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때로는 모질게 몰아친 행동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 때가 있다. 앞서 내가 선의라고 생각했던 잔소리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알짜배기 선의로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반성문을 쓴다. 애초부터 반성문을 쓸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20년 가까운 교직 생활에도 늘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진 후에야 뒤늦게 잘못을 깨닫게 되는 까닭이다. 이럴 때 아이들은 먼저 손을 내밀어 옹졸한 나를 더욱 미안하고 부끄럽게 만들어 버린다. 오히려 아이들이 교사인 나를 성장시키는 셈이다. 어느 순간 이만하면 훌륭한 교사라는 자만에 빠졌었다. 이번 교단 수기 공모전은 이런 자만심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그리고 낙엽을 보며 석이와 같은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런 좋은 계기와 기회를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서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이하 전학연)은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제자 성희롱 의혹으로 조사를 받던 중 목숨을 끊은 故 송경진 전북 상서중 교사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학연은 “경찰이 무혐의로 내사 종결한 사건을 학생인권센터, 인권옹호관이 무리하게 조사해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그럼에도 전북교육청은 사실규명 의지가 없고 교육부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8월31일, 전북교육청 회견에서 학부모 요구를 전했는데도 김승환 교육감은 일언반구 반응이 없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현재 송교사 가족은 학생교육인권센터장, 전북부교육감, 부안교육장, 최초 고발자인 체육교사 등 10여명을 형사고발한 상태”라며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회복이 이뤄질 때까지 함께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전학연은 또 “학생들의 인권만 강조하고 교사의 작은 권리조차 무시하는 학생인권조례는 결국 살인조례가 되고 말았다”며 “교권을 추락시키고 학생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하는 조례를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김규태 전북교육청 부교육감은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불확실한 정보가 확산되는 만큼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이를 바로잡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 등 교총 대표단은 15~17일 베트남 다낭에서 개최한 ‘제33회 한·아세안교육자대회’(ACT+1, ASEAN Council of Teachers)에 참석했다.‘글로벌 문화의 수용과 국가정체성 확립에 있어서의 교육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는 태국, 필리핀 등 8개국 교원대표 500여명이 참석했다. 교총 대표단은 ‘글로벌 시대, 교육의 역할과 갈등’을 주제로 국가보고서를 발표하고 ‘우정의 밤’에서 한복과 아리랑을 선보이며 교육·문화 교류에 나섰다.하윤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교육의 미래를 위한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과 아세안이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한․아세안 교육자대회는 한국과 아세안 국가의 상호 교류를 통해 교육발전을 논의하는 아세안 최대의 교육자 국제대회로 1979년 창설됐다. 한국 대표로 매년 교총이 참석하고 있으며 이번 대회에는 하 회장과 박상식 교총 부회장, 전인선 인천송현초 교사, 강용철 서울 경희여중 교사가 참석한다.
경기교총과 경기도교육청이 교원배상책임보험 일괄 가입, 안심전화서비스 등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양측은 20일 도교육청 방촌홀에서 ‘2017 본교섭 조인식’을 갖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21개조 27개항의 교섭합의서에 서명했다. 주요 합의사항은 인사·임용제도와 관련해 △혁신학교, 자율형공립고도 당해 학교 최근 2년 이내 근무 교원에 대해 교장공모제 지원 제한 △3학급 이상 특수학급 운영 일반학교에 특수 담당 보직교사 배치 △사립 과원교사 공립 특채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복지·근무여건 부분에서는 △남부지역 교원힐링연수 운영 △유치원교사의 돌봄과정 대체근무 시 지원방안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교권 신장을 위해 △도교육청 예산으로 교원배상책임보험 일괄 가입 △안심전화서비스 등에 노력하기로 했다. 아울러 교육환경 개선 및 교원단체 지원을 위해 △교과서 배부업무 부담 경감 △경기교총 현장교육연구대회, 교육자료전에 대한 행·재정 지원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장병문 회장은 “합의사항 이행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현장 교원의 전문성 신장과 교육여건 개선에 기여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교총은 지난 7월 교섭을 요구해 그간 총 5차례의 실무교섭을 통해 최종 합의를 이끌어냈다.
"대 이어 나눔의 삶 실천"으로 지역사회 귀감 "13년째 1억원 이상" 장학금 지원 "아버지의 모습에서 기부하는 삶 배워 실천" 전남 광양시 광양읍 삼대불고기 이형중 대표가 읍내 3개고(광양고, 광양여고, 광양하이텍고) 학생들에게 810만원의 장학금을 차상위 학생들에게 전달해 지역사회에 훈훈한 바람을 일으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04년부터 매년 이들 학교에 장학금을 기탁해 오고 있으며, 총 기탁금은 1억원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아버지가 생전에 지역 학교 학생들을 위하여 지원하는 것을 보고 자라면서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베푸는 삶을 배운 것이다. 또, 10여년 이상 장학금을 전달해 오는 과정에서 "나눔을 통하여 세상 사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으며,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멋진 학생이 되길 바란다"면서 대를 이은 불고기 집에 걸맞게 베품도 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장학금 뿐만아니라 급식비를 못내는 학생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학생도 모르게 교사에게 급식비를 전달해 대신 해결해 주는 선행도 이어오고 있어 지역사회를 밝게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강마을은 여전히 안개로 시작합니다. 희미한 안개가 점령한 논둑 사이로 노란 콩잎이 보이고 콩꼬투리가 토실하게 여물어가는 가을 아침입니다. 앞머리를 적신 강아지풀과 거무스름한 수크령도 물기에 젖어 있습니다. 귀여운 강아지풀의 얼굴 아래에 바랭이 풀과 큰 키의 건장해 보이는 비름, 망초, 둥근 잎의 쇠비름이 보입니다. 분홍 메꽃도 아직 몇 송이 피었고요. 제가 정문에서 아침 학생맞이를 하면서 본 잡초들입니다. 우리들이 매일 보는 풀들이지만 이들과 제대로 눈을 맞추어 본 일이 있을까요? 어여쁜 화초들과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곡식들에게 때맞추어 비료와 물을 주지만, 논둑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이 풀들을 우리는 잡초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런 풀을 좋아합니다. 논둑이나 화단의 가장자리에 수줍게 혹은 억세게 자라는 그들에게는 잘 가꾸어진 꽃밭에서 볼 수 없는 강인함이 느껴집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싹을 틔우고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상강지절 내리는 서리에 미련 없이 이 땅을 떠납니다. 다시 바람살이 매운 초봄 한 줌의 햇살에도 잎을 피워 올립니다. 멋지고 당당한 그 이름을 우리는 잡초라고 합니다. 가을 아침 도서관에 앉아 식물도감 『잡초』를 읽었습니다. 모두 3권으로 된 『잡초』는 잡초의 형태와 생리, 생태에 관한 자료를 수록한 책으로 잡초의 종자를 포함한 주요 기관과 생육 중기의 식물체 사진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운동장가에서 만난 풀들과 등산을 하다 본 들꽃의 이름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잡초는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그네들의 이름을 모를 뿐입니다. 잡초를 이 책에서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식물로서 사람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생육하며 사람과 가축에 유해하고 사람이 원하는 작물 등에 손상을 입혀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오는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최근에는 잡초란 사람의 생활 활동으로 만들어진 교란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되어온 식물(植物)군이라는 잡초의 형성 기원을 바탕으로 잡초란 토양의 인위적 교란이 자주 일어나는 곳에서 사람의 보호를 받지 않고 그 개체군의 증식률의 장시간 평균치 최대에 이르도록 적응 · 진화해 온 식물군이 라고 정의하는 이 늘어나고 있다.1권/21P 논문 자료를 찾으려고 노자 도덕경을 폈는데 책을 뒤적이는데 고사리 잎이 나왔습니다. 지난 봄, 무학산 등산길에 누군가에게 보내려고 책 속에 넣어서 말렸는데 잊어버렸나 봅니다. 초록의 어여쁜 잎을 보니, 봄날의 포근한 눈웃음 같았던 푸른 모습이 기억납니다. 먼 곳의 벗에게 엽서 한 장을 썼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어여쁜 모습, 잡초입니다. 큰 걸음으로 다가서는 가을의 햇살이 따갑습니다. 따가운 햇살 아래 곡식들이 익어가고 과일의 단맛이 깃들고 있습니다. 그 아래 잡초들의 조그만 씨앗들도 열심히 영글어 갑니다. 향기롭고 따뜻한 강마을에서 가을 향기를 보냅니다. 『잡초』, 김동성, 박수현 지음, 이전농업자원도서, 2009
“주선생! 주선생! 큰일 났어! 정윤이가 다쳤대!” 몇 년 전,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둔 어느 오후, 옆 반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성적입력을 마무리하던 나는 정신없이 두드리던 컴퓨터 자판에서 손을 떼고 벌떡 일어섰다. ‘정윤이가 또 뭔가 일을 냈구나. 할머니랑 같이 하교시켰는데 언제 또 학교에 온 거지? 걱정스러운 마음과 지쳐가는 마음이 뒤섞인 채 복도로 뛰어나갔다. “정윤이 보건실에 있나요?” “아니, 아니, 지금 뒷마당에 쓰러져있어,” “네? 쓰러지다니요?” “일단 와봐. 와서 봐.” 내가 목격한 것은 살아오면서 봤던 그 어떤 장면보다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둥그렇게 가지치기가 된 학교 뒷마당 조경수 사이에 쓰러져 있던 아이…. 아이의 두 종아리는 모두 두 동강이가 난 채 다리뼈가 밖으로 튀어나와있었고 이마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이는 여리고 작은 목소리로 “아파,아파.” 중얼거리듯 말하고 있었다. ‘꿈 일거야! 꿈 일거야! 꿈이어야만해. 정윤이가 왜 저기서 저렇게 누워있는 거야.’ 드라마에서 혹은 영화에서 나오던 대사를 내 맘속으로 외치고 있던 그 순간 119응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뭔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한 상태로 정윤이를 태운 응급차에 올라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아이는 3층 화장실에서 라디에이터를 밟고 올라서서 창밖으로 뛰어내린 것이었다. 정윤이는 자폐와 지체장애가 중복된 발달장애1급 판정을 받은 특수아다. 충동성이 매우 강한 정신연령 4세의 아이.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을 구별하지 못하고 기분에 따라 언제든 여기저기 뛰어다니기도 하고 마음껏 소리도 지르던 아이. 급식차가 오면 너무도 신이나 반찬통에 두 손을 담그고 주물러버리는 아이. 공개수업이 있는 날에도 굴하지 않고 칠판 앞까지 나와서 친구의 머리채를 잡고 소리를 지르던 그 아이. 우리 학교에 입학할 당시, 정윤이는 장애가 심해 일반학교보다는 특수학교를 권했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가까운 일반학교에 아이를 보내기를 원했고 우리는 그렇게 A초등학교 1학년2반에서 선생님과 제자로 만나게 됐다. “정윤이는 조금 천천히 자라는 나무란다.” “우리 오늘도 정윤이에게 사랑의 거름을 듬뿍 줘요.” “새끼손가락 손에 걸고 꼭꼭 약속해!”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아침마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그렇게 우리들의 약속노래를 부르며 정윤이와 함께하기 위한 통합학급을 만들어가던 차였다. 다행히 마음 빛깔이 고운 우리 반 아이들은 서로 수호천사를 자청하며 정윤이의 손을 잡고 화장실을 가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울어댈 때는 “정윤이 착하지? 정윤아, 울지마”라며 토닥여주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가 정윤이에게 등짝이나 뒤통수를 맞고 쌍나팔을 불어대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정윤이의 상황을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해주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참으로 기특하고 뿌듯했다. 3월 초에 걱정했던 것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정윤이와 함께 잘 어울려주었고 더구나 이제 곧 여름방학이 다가오니 정신적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날도 정윤이는 배꼽인사를 예쁘게 하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하교를 했다. “누가 그랬니? 왜 다쳤어?” “내가.” “어디서 어떻게 그런거야?” “내가, 내가 그랬어. 뛰었어.” “왜 그랬어?” “그냥, 그냥 날을라고.” 응급실 간호사의 물음에 아이는 “그냥, 그냥 날을라고”라고 말했다. 워낙 심각한 사고인지라 형사들도 와서 아이의 사고경위에 대한 조사를 했다. 다행히 아이의 의식이 또렷해서 사고에 대한 경위는 명백했다. 정윤이 할머니는 아이가 뇌에 통증을 느끼는 감각이 없어서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다행히도 3층에서 떨어졌어도 쇼크사를 당하지 않았고, 살려달라고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고, 그 덕분에 살았다고 했다. 아픈 감각이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정윤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갔고 아버지도 일 때문에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부터 할머니가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학부모에게 전해들은 얘기에 의하면 정윤이는 입학하기 전부터 집에 있기보다는 주로 동네를 배회하곤 했는데 이를 본 동네 아주머니들이 데려다 밥을 먹이곤 했다고 한다. 연로한 할머니 혼자서 이렇게도 에너지가 넘치고 활동량이 많은 아이를 감당하기엔 참으로 벅찼을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기만 기다렸어요. 그냥 혼자 보내주세요. 이렇게 열심히 돌봤는데도 무슨 일이 생기면 지 팔자지요”라며 아이 혼자 보내라는 할머니를 설득해서 꼭 등하교시에는 할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오고 갈 수 있도록 했다. 할머니를 매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 등 아이에 대한 상담과 도움이 될 수 있는 복지관 프로그램이나 혜택 등을 안내하는 것도 한결 수월했다. 주말 아침, 경찰서에서 아이가 길을 잃었다는 연락이 오면 나는 나들이 계획도 취소하고 달려갔다. 학급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싶어서 다양한 인성지도 활동을 학급교육과정에 투입하고 안전사고를 걱정하며 한 순간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랬는데도…. 결국 사고는 벌어지고 말았다. 정말 아이는 그냥 날고 싶었던 것일까? “아유, 우리 정윤이 잘 그리네, 꽃도 그려볼래?” “이쁘지? 이쁘지?” “응 진짜, 이쁘네, 우리 정윤이 닮은 꽃이네.” “이건 선생님 꽃이야.” 그 해 여름방학은 정윤이를 보러 이틀에 한 번은 꼭 병원에 들렀다.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가지고 가서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색종이로 배를 접어보기도 하며 잠깐씩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엄마도 없이 할머니와 덩그러니 병실에 누워있을 정윤이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려왔다. 담임인 나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들 모두가 정윤이의 사고 소식에 안타까워했고, 정윤이를 몰랐던 선생님들도 아이의 사정을 듣고는 병문안을 오셔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가셨다. 특히, 종이접기를 잘 하셨던 4학년 김복순 선생님은 병원에 들러 정윤이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셨다. 학교에서는 아이의 딱한 사정을 알고 선생님들과 교직원들이 아이를 돕기 위한 성금을 모금해 전달했고 학교안전공제회에도 아이의 치료비를 신청했다. 2학기가 시작되어서는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따라올 수 없는 정윤이를 위해 수업자료를 찾아 전달해 주고 병원에서도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여름방학과 2학기가 지나고, 3차례의 수술을 마친 정윤이는 마침내 씩씩하게 학교로 돌아왔다. ‘병원에는 학교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하면 보호자들에게 브로커들이 붙을 것이다.’ ‘학교나 교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더라.’ 아이의 건강과 회복을 걱정하는 순간에 내 귀에 들려오던 우려의 목소리들은 내가 진정한 스승의 마음으로 제자만을 걱정할 수 없게 했다. 고백하건데, 나는 정윤이가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던 시기에 오롯이 정윤이의 회복만을 기원하지 못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정말 내가 학부모에게 소송을 당하는 교사가 되지 않을까하는 근심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이런 마음이 들곤 할 때마다 진심을 다하면 통할 거라는 믿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달라지는 정윤이 할머니의 말씀이나 주변의 염려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불안함에는 신경 쓰지 않고 정윤이만을 보기로 했다. 진심은 통했고 아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의사들도 아이의 빠른 회복속도에 놀랐다고 했다. 특히, 선생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정윤이의 모습에 한 번 더 놀랐다고 한다. 이듬해에 정윤이는 특수학교가 있는 근처 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정윤이는 아직도 가끔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한다. 여전히 에너지가 충만한 목소리로…. “선생님, 나 정윤이, 나 인제 잘 달려, 막 달려.” “나 오늘은 빵 만들기 했어. 선생님도 줄래.” 이런 정윤이의 목소리야말로 아마도 천사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래, 건강해줘서 고맙고, 기운차서 고맙고, 전화해줘서 고맙고, 모든 것이 고맙구나. 정윤이 덕분에 선생님도 이제는 좀 더 강하고 단단하고 커다란 마음그릇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오로지 스승의 마음으로 제자를 생각하고 품어 안을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 되어볼게. 고맙구나. 천천히 자라는 나의 나무, 예쁜 정윤이 나무야!
‘하필이면 거기에 돌부리가 있을게 뭐람.’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와 만나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 입구의 굽이진 길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돌부리에 부딪혀 자동차의 앞 범퍼가 떨어져 나가 버렸다. 계획에 없는 차 수리비의 지출도 속이 쓰린 일이지만 그보다 더 속상한 것은 오랜 운전 경력을 이렇듯 무색하게 만드는 미숙한 나의 운전 실력이다. 그것도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스스로 거들먹거리며 과신할 때쯤이면 꼭 크고 작은 사고로 차를 상하게 하니, 아마 이번에도 부지불식간에 마음 속에 자만심이 들었었나보다. 사실 내가 미숙한 것은 운전뿐이 아니다. 근 20년에 접어드는 교직경력에도 나는 가끔씩 긁히고 떨어져 나가는 크고 작은 사고를 낼 때가 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운전과 마찬가지로 ‘난 참 괜찮은 교사야’라고 자만을 할 때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늘 반성문을 쓴다. 지난 주말,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 만에 열리는 동창회 겸 사은회에 참석했다.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일흔을 바라보며 백발노인이 된 선생님이 반성문을 쓰는 자세로 이 자리에 참석을 하였노라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 내 나이가 서른일곱, 여덟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지금 여러분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였으니 내가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지나보니 모든 것이 다 후회가 되는 일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늘 반성문을 씁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자리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우리의 학창 시절 당시를 떠올리시며 우리는 기억도 못하는 몇 가지 일들을 고해성사처럼 하나씩 풀어 놓으셨다. 아이들과 며칠 전 있었던 일들도 가물가물한 내 입장에서 보면 오래 전의 일들을 가슴 속에 긴 시간동안 간직하시며 아쉬워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훌륭한 교사임에 틀림이 없는데 선생님은 우리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 말씀대로 당시의 선생님보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반성문 쓸 일이 많은 같은 교직의 길을 걷고 있어서인지 어딘가 모르게 어렴풋한 공감이 생겼다. 나도 반성문을 써 보려고 한다. 지적 능력이 4~5세 정도인 초등학교 4학년 우리 반 석이. “야~ 너, 소리 내지마.”, “야~ 너, 내 얘기 하지마.” “야~ 너, 네 자리 가.” “석아~ 너는 왜 이렇게 친구들을 못 살게 괴롭히니?” “아니에요. 쟤네가 먼저 저한테 뭐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보기에 똘이는 조용히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아니에요. 똘이가 저를 보고 가위로 찌른다고 협박했어요. 그래서 저도 복수할거예요.” 무고하게 끔찍한 협박을 했다고 신고를 받은 똘이는 황당함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석이는 잘못도 없는 친구들을 실내화까지 벗어들고는 때리겠다고 뛰어다니며 난리를 피운다. 감기에 걸려 한두 번 기침을 한 아이에게는 시끄럽게 소리를 낸다며 온갖 촉각을 세우고 아이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닦달을 시작한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 알고 있는 그저 늘상 있는 일이지만 이쯤 되면 당하고 있는 아이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보다 못한 나는 중재에 들어간다. “영식이는 감기가 걸려서 기침을 하는 거야. 기침하는 친구는 얼마나 힘들겠니?” “그럼 저도 감기에 걸렸으니까 기침해도 되지요?” 예상했던 결과지만 아이는 오늘도 자신만의 정당한 논리로 수업 시간 내내 거짓 기침으로 ‘켁켁’거리며 수업을 방해한다. 지저분한 외모는 물론이고, 목적을 알 수 없는 강박적인 공격성은 학급 아이들과 교사인 나를 지치게 만들기 일쑤다. “석아~ 내 말 좀 들어, 네 말만 하지 말고!”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아이의 팔을 거칠게 내 쪽으로 잡아끌며 큰 고함을 질러 버린다. “싫어요. 으앙~ 선생님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그래. 으앙.” 이쯤 되면 이젠 그 시간 수업도 물 건너 간 셈이 된다. 나머지 아이들만이라도 수업을 할 수 있게 원어민 선생님에게 학급을 맡기고는 아이를 데리고 건물 뒤편으로 나와 큰 나무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는다. 녀석은 여전히 고장 난 라디오처럼 자신만의 논리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는 녀석의 억울함 만큼이나 답답한 심정으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다 웬일인지 조용해진 주변이 이상해 내려다보니 아이는 언제 그랬나 싶게 주위에 떨어진 낙엽을 하나둘 주워 모으며 몇 번이나 지옥을 맛 본 담임선생님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질문을 해 댄다. “이 나뭇잎은 왜 빨개요? 이 나뭇잎은 왜 노랗지요? 왜 나뭇잎의 색깔이 다 달라요?” ‘아이고, 풋.’ 허망함에 헛웃음이 나오는 순간이다. 나는 오늘도 반성문을 쓴다. “철수야, 너는 다 좋은데, 선생님 말씀마다 말꼬리를 달아서 말하거나 친구들의 말에 비아냥거리는 태도는 좋지 않아.” “민석아, 너는 다 좋은데,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돌아다니거나 친구들과 잡담을 하며 수업을 방해하는 태도가 좋지 않아.” “순이야, 너는 다 좋은데,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거 같아. 기본적인 수학 계산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지식이란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바른 길로 안내하고 지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명감으로 나는 참 많은 잔소리를 학생들에게 한다. 그리고는 잔소리에 공식처럼 늘 “너는 다 좋은데” 식의 긍정 언어로 시작을 하는 것에 스스로 능숙한 교사라고 만족한다. 그런데 오늘 점심 급식 시간에 같이 식사를 하던 우리 반의 한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다 좋으신데, 우리에게 칭찬은 ‘다 좋다’라고만 말씀하시고 우리가 고쳐야 할 점은 참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말씀을 하세요. 칭찬도 이것이 좋고, 저것이 좋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오늘 녀석에게 한 방 먹었다. 나는 오늘도 반성문을 쓴다. 일요일 아침, ‘풀꽃도 꽃이다’라는 소설의 앞부분을 잠깐 읽었다. 이제는 노작가가 된 조정래 씨가 교육계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고 하니 무슨 내용일지 궁금한 마음에 지난 금요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아직 다 읽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항상 시대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라 교육계가 문제는 문제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은 일찍 일어난 탓도 있겠지만 치열한 일주일을 보낸 후의 주말이라 조금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 잠자리에 있는 가족들이 깨지 않은 틈을 타서 산책도 할 겸 읽던 책을 잠시 덮고, 동네에 있는 호수 공원으로 나왔다. 어제 밤에 온 비로 낙엽들이 공원 주위에 이리 저리 떨어져 있었다. 새삼 떨어진 낙엽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 가을이구나.” 간만에 느낀 가을을 이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 여기 저기 떨어져 있는 낙엽을 향해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다가 얼마 전 중학생인 딸 아이 방을 청소하다가 아이의 책상 위에 소복이 쌓여 있던 마른 낙엽더미가 문뜩 떠올랐다. 엄마처럼 낙엽에서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낀 행동이라 생각을 하니 딸아이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라 툴툴거리기만 한 딸이 가끔은 괘씸하고 미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픈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알게 된 것 같아 고마웠다. 그리고 동시에 “선생님, 나뭇잎이 왜 빨개요? 왜 이건 노랗죠?”하며 눈망울을 반짝이던 석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녀석도 아마 그동안 내가 답답해 한 만큼 나를 답답하게 느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내일도 어쩌면 녀석들에게 답답함으로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지를지 모른다. 그리고 또 아이들에게 크게 한 방 먹고 휘청거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오늘 이 순간만은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라는 결심을 해 본다. 비록 그것이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반성문을 쓴다.
며칠 전 퇴근길에 한동안 연락이 없던 제자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요리를 전공하는 녀석인데 내게 오이소박이를 해 준다고 약속한 것을 못 지키고 있던 터였다. 그걸 빌미로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이소박이 안 해오면 안 만나준다고 했었는데 수화기 속 목소리가 겨울날 호빵처럼 따뜻하다. “선생님 전화 오랜만이죠? 변명 같지만 저 바빴어요. 얼마 전에 취업하려고 한 군데 원서를 썼는데 거기 붙었어요. 합격 사실 알고 엄마 아빠 다음으로 처음 전화 드리는 거예요, 기분 좋으시죠?” 녀석은 초임 학교에서 3학년 담임으로 만났던 아이다. 원서를 쓰기 전부터 요리를 하고 싶어 꼭 가고 싶은 학교가 있던 아이였다. 그러나 성적이 썩 좋진 않아서 학년 말 우리 반에서 요리 전공을 원하는 아이 둘이 같은 학교를 썼는데 한 녀석은 붙고 그 녀석은 떨어졌다. 담임으로서 같은 반에서 합격한 녀석에게 드러나게 칭찬을 할 수도 없고 떨어진 녀석이 코가 빠진 모습으로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참으로 마음 에린 나날이었다. 기운 빠져 있던 아이의 마음을 다잡아 주기 위해 조리사 필기시험은 학력과 상관없으니 학년 말 기간에 해보면 어떠냐고 권했을 때 아이는 다행히 새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 녀석이 제법 먼 길을 돌아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게 됐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우리 반에서 38명 중 30등이었던 이 녀석이 작년도 8명 신입사원 모집에 1만6000명이 지원한 곳에 합격했다니 직접 듣고도 신기하고 기특한 일이다. 고교 지원 당시 실망한 자기 마음을 잡아 주어서 고마웠다는 녀석. 사실 내가 고맙단다. 인생은 살아봐야 하고 너희들은 정성껏 키워봐야 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어서. 이제 조만간 네 요리를 맛 볼 날이 있겠구나. 기다리고 있어도 되지?
집에 식물을 몇 가지라도 키우는 사람이라면 흔히 듣는 ‘호야’라는 화초가 있다. 보통은 큰 화분에 곁다리로 흔하게 심겨져 오는 식물이라 그냥 키우다가 큰 식물이 죽어버리면 같이 내다버려지는 경우도 다반사인 식물이다. 그런데 호야는 흔치는 않지만 마치 작은 별꽃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커다랗고 둥근 수국모양의 꽃을 피워낸다고 한다. 집에서 몇 년을 키우던 호야가 꽃 핀 적이 없어 ‘올해는 꼭 꽃을 보고 말리라’ 다짐을 하고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호야가 덩굴을 지저분하게 뻗어낼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잘라 다듬는데 그리 하면 안된단다. 보기 싫고 볼품없는 그 덩굴이 뻗어나서 그 자리 어디쯤에 꽃눈이 나오기 때문이란다. 교단에 선 지 벌써 14년째 접어든다. 이쯤 되면 어떤 교사든 아픈 손가락들을 몇 만났을 것이고 어여쁜 아이들도 손가락 수를 훨씬 넘겼으리라. 생활지도부 교사를 오래해서인지 돌아보면 유독 아픈 손가락들이 많았다. 어떤 분이 ‘이 선생은 매일 그런 녀석들 돌보느라 더 예쁘게 클 수 있는 아이들을 못 봐주는 경우가 많다’며 골고루 관심을 주라고 하신다. 일면 맞는 말씀이지만 성향 탓인지, 시야가 넓지 않아서인지 못난이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담임이 되면 매년 하는 일 중 하나가 한 달에 한 번 학급편지를 보내는 일이다. 한 달 동안 아이들과 소통한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담임이 보내면 학부모들이 회신하여 보내는 아날로그 방식이다. 부모님들의 회신은 아이들 지도에 참고하곤 한다. 3월 첫 달 부모님 회신을 정리하다가 마음에 커다란 돌 하나를 얹어 놓는 듯 무거운 마음을 발견했다. ‘우리 지훈(가명)이는 착한 아이입니다. 첫인상이 강하다고 해서 선생님들의 선입견만으로 우리 아이를 판단하거나 미워하지 말아 주십시오.’ 새 학기에는 의례적이지만 ‘잘 부탁드린다!’나 ‘건강에 대한 부탁’ 선에서 회신이 오가는데 첫 학기 3월 학급편지에 우리 아이를 선입견으로 보지 말라고 쓰신 그 아버지의 답장은 쉽게 못 풀어 낼 수학문제처럼 답답함이 들게 했다. 육아 휴직 뒤 복직한 터라 작년에 지훈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가 없어 다른 분들에게 정보를 찾았다. 지훈이는 수업 시간에 ‘수 틀리면’ 친구들에게나 교사에게 욕을 하고 불손하게 대들었다고 한다. 또한 작년에 동급생 친구들을 여러 번 괴롭히고 때려 1학년 때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징계를 두 번이나 받는 전력이 있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의 화려한 전력을 직접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월 어느날, 같은 반 친구가 다른 친구와 놀다가 실수로 실내화가 발에서 미끄러져 빠졌는데 하필이면 그게 지훈이 자리 위에 있던 선풍기를 맞고 머리 쪽으로 튕겨 맞았다고 한다. 화가 난 지훈이는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는 큼직한 상대방 아이를 흠씬 두들겨 패 주었다. 내가 달려가 확인했을 때에는 이미 상대 친구의 눈과 뺨에 멍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뒤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버님께 연락을 드려 내교하시도록 했고 아버님은 불쾌감이 가득한 얼굴로 학교에 오셨다. 4층 상담실까지 구둣발로 올라오시고 입에는 껌을 씹으시면서. 앞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 드리고 난 뒤에도 아버님은 그 상황에 대해 ‘아이가 깔끔해 실내화가 자기에게 온 것을 못 견뎌서 그런 것 같다’며 계속 아이를 두둔하셨다. 학교에 오실 때부터 지훈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기세로 오신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버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다시 학생 지도 원칙을 말씀드리고 지훈이가 상대방 친구에게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계속 설득했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를 대할 때 아버님이 속상하셨던 부분들을 헤아려 지도하되 원칙은 한결같다고 단호하게 내 입장을 전달했다. 아버님은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가신다고 했다. 돌아서서 가는 지훈 아버님의 구둣발에는 아직도 화가 누그러지지 않았는지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지훈이가 교무실로 불려가는 느낌이 들면 거부감을 가질까봐 일부러 내가 수시로 교실로 가는 방법을 택했다. 어떤 날은 운동장에도 가고 급식실에서도 의도적으로 자주 마주쳤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라 운동장에도 종종 가서 살펴보며 그 때마다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사탕도 입에 넣어주고 어깨도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정말 큰 일이 아니면 소소하게 일어나는 학교 문제들에 대해서는 상담노트에만 적고 지훈이와 직접 해결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렇게 ‘너를 도와줄게’라는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냈다. 담임 경력이 쌓이면서 초임 때와 사뭇 달라진 태도가 하나 있다. 초임 때에는 아이의 잘못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이런 일로 지도를 했노라 매번 말씀드렸다. 그렇게 해서 내가 열심히 지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가정 내에서도 그렇게 지도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 역시도 세 아이의 학부모가 되니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 번호가 갑자기 뜨면 ‘아픈지, 다쳤는지, 싸웠는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그래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버님께 전화를 드리는 것을 줄이고 나와 지훈이만 알고 넘어가는 비밀을 늘렸다.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방과 후 남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지훈이와 ‘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별 생각 없을 줄 알았던 지훈이가 한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미용업에 종사하시는 엄마, 아빠처럼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자신은 손재주가 없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셔서 하지 말아야 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와 소통 할 수 있는 창구 하나를 뚫고 나서 그 날 아버님과 지훈이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눈 뒤 내린 결론은 미용과 관련된 실습 지원은 부모님이, 실제적인 학과 정보나 미용 관련 자료 수집은 담임이 도와 스크랩을 해가며 진로탐색을 해 보자는 것이었다. 아버님과 통화 후 전화를 끊을 무렵에 “선생님, 지난번에 제가 찾아갔을 때에는 제가 좀 흥분을 해서 죄송합니다. 지훈이 이야기만 들으면 그냥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아서요. 학교에서 매일 미움만 받는 것 같아서 제가 좀 죄송한 상황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 날 일부러 선생님 마음 좀 상하시라고 신발도 안 벗고 껌도 씹었는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며 사과를 하셨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지훈이를 키워보기로 마음먹었다. 학업 실력이 저조해 영어 단어 하나도 외우기 힘든 아이랑 하루에 다섯 개씩 영어 단어도 외우고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남아서 미용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부모님은 학원에 보내주시고 미용 관련 단어나 미용도구, 유명한 헤어디자이너 몇 사람들을 롤 모델로 해서 그들의 활동을 수집하고 스크랩을 하는 것은 나와 지훈이가 했다. 꿈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아이를 통해 나 역시도 미용의 역사나 헤어 스타일링 용어 등을 같이 배우니 즐거움도 생겼다. 물론 지훈이는 중간에 슬럼프는 간혹 겪었다. 필기시험에 떨어지고 와서 코가 쑥 빠진 날에는 위로의 짜장면도 사주고 며칠 있다가 다시 시작해보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넉 달 남짓, 아이는 이제 교복 단추가 떨어져도 내게 갖고 와서 달아달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고 감정의 기복도 있어서 때로는 대화의 줄을 이어가기가 힘든 때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아이가 학교 안에서 나를 믿을만한 존재라고 생각해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복도에서 아이들과 달리기를 하는 지훈이의 허리춤을 잡으며 ‘아들, 여기가 마라톤 하는 데야?’하고 혼내면 ‘죄송, 죄송!’하며 웃는 낯으로 대할 정도가 됐다. 엄마의 꾸지람에 화가 나 동네 담벼락을 주먹으로 쳐 피가 철철 나는데도 등교하지 않았을 때는 ‘선생님 기다리고 있을게, 야단치지 않을게 얼른 와’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교무실 앞에 와서 주뼛거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이를 몰아세우지 않고 약속한 대로 그냥 치료만 해주고 따뜻한 핫초코 한 잔 먹이며 어깨만 다독여줬다. 그때 지훈이는 내게 기대어 작은 어깨만 떨고 있었다. 서러움과 속상함이 얽힌 탓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면서 우리끼리 소소한 사건들도 제법 쌓이고 그 만큼 정도 쌓였다. 아이는 한 권의 ‘꿈’ 스크랩을 다 마치고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꿈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한 학년이 올라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나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됐다. 떨어져 있으면서도 간간이 연락하고 격려도 하는 동안 지훈이는 소소한 사건 몇 개 외에는 무사히 중3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은 미용자격증 공부와 학원 수업을 병행하면서 좋아하는 ‘디제잉’학원도 다닌단다. 가끔 꿈에 대해 물으면 미용사와 디제이 사이에서 갈등 중이라며 자못 진지하다. 다행인 건 꿈이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간 이후에도 지훈이 아버님은 내 번호를 지우지 않고 서로 연락하며 지낸다. 지훈이가 꿈을 갖게 된 것도 감사하지만 교사에 대한 불만이나 선입견을 깬 계기가 됐다고 말씀하신다. ‘지훈아, 오늘 학교 땡땡이 안치고 잘 갔지? 날이 춥더라, 옷 따뜻하게 입고가.’ 했더니 ‘네 선생님, 저 이번 주에 미용시험 봐요. 싸랑해요. 쌤~’하고 답장이 온다. ‘와~ 이번에 시험에 붙으면 지훈이랑 피자 먹어야겠네?’ 했더니 ‘히히’ 답장이 LTE급이다. 뒤돌아보면 지훈이는 정말 호야 같은 아이였다. 우리 반 38명에 묻어 온 한 명의 호야. 지금 그 아이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이제 덩굴을 뻗고 잎사귀를 내는 중이다. 그리고 나도 내가 이 아이에게 준 물과 햇볕이 헛되지 않을 것을 믿으며 꽃 피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더디지만, 때로는 거친 시간을 보냈지만 미래에 네가 피워내는 꽃은 얼마나 예쁠까? 여전한 일상이 아니라 역전의 일상을 기다리며 호야꽃보다 더 예쁜 네 꽃을 한 번 바라보고 싶구나. 기다림이 이렇게 즐거운 일인 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날, 그리고 그날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 땅의 선생님들은 두 번의 통곡을 했다. 세월호와 함께 차가운 바다 속에 잠기어 간 304명의 귀한 목숨들을 생각하며 울었고, 아이들을 구하다 실신해 구사일생을 구조됐던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자살 소식에 또 울어야만 했다. 이 글은 교사로서의 내면의 상처를 고백한 글이었다. 교권보호 시스템의 부재는 교사를 향한 무한책임을 요구하기에 뜻하지 않은 사고나 사건 속에 휘말린 교사들은 보호받기보다는 소송을 당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가장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온전히 내 제자만을 걱정하고 염려하지 못하며 갈등하고 두려워했던 내 모습이었다. 글을 통해 나는 그렇게 약한 존재였고 상처받는 존재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었다. 그 고백을 통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랐다. 정윤(가명)이의 사고는 3년이 지나서야 마무리가 됐다. 사건이 종결되기까지 학부모와 이해당사자들과의 만남, 행정적 처리 그리고 내면의 갈등을 겪어오며 마음이 참 아팠다. 정윤이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목소리 그리고 동료선생님들의 도움은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이제는 우리 교육의 장이 울타리 없이 방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받는 선생님도, 아이들도 없도록 든든한 보호시스템이 작동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민규 교감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소감문을 마무리한다.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이하 전학연)은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 부안 상서중에서 근무하다 자살한 고 송경진 교사의 명예회복과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촉구했다. 전학연은 “송교사는 경찰이 무혐의로 내사 종결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북교육청 산하 학생인권센터의 강압적 태도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며 “송교사의 명예회복이 꼭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면서 면접이 중요한 관문으로 떠올랐다. 면접은 대학에 따라 다르고, 전형 유형에 따라도 다르다. 면접은 대입의 최종 단계인 경우가 많다. 면접을 잘하면 곧 합격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면접을 앞둔 수험생들은 구체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 지원 유형을 살펴야 한다. 대학에 따라 학생부종합전형, 일반전형, 예체능특기자전형, 특기자전형, 대학 고유의 특별 전형이 있다. 그리고 다시 학생부종합전형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같은 전형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분류를 하는 이유는 요구하는 역량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에 맞게 자신이 지원한 유형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해당 전형 유형에 맞는 인재상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은 말 그대로 학교생활기록부 사항을 위주로 진행한다. 대학에서는 학생부에 기록되어 있는 우수 사례를 검증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수험생은 학생부 기록 사항을 중심으로 자신의 신상에 관한 예상 질문 위주로 답변을 준비한다. 그리고 면접관은 ‘학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를 가지고 질문을 한다. 지원자는 당연히 이들 내용을 숙지하고, 질문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학생부 기록은 추상적이고 일반화된 기록 위주다. 면접관은 이를 수험생에게 확인한다. 그러므로 수험생은 구체적 사례 등을 근거로 입증해야 한다. 인성을 확인하는 면접도 많이 한다. 인성 면접에서는 수험생이 성장 과정과 학교생활을 통해서 가치관이나 인성, 사회성, 태도 등을 갖추었는지 확인한다. 미래 사회 구성원으로 바른 인성을 가지고, 학습을 꾸준히 할지 판단한다. 학생부교과전형은 구술의 형식으로 진행한다. 면접 자체가 구술로 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구술 면접이라 하면 제시문을 읽고 문제에 답하는 형식을 말한다. 교과전형은 교과 관련 능력을 검증한다. 당연히 제시문 등을 활용하여 지원자의 지식과 사고력을 심층적으로 측정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교육 절감 차원 등의 바람을 타고 문제풀이 형태의 면접은 지양하고 있다. 면접에 대한 오해 가운데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면접에는 반드시 물음에 정확한 답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보다 질문의 의도에 맞는 답을 해야 한다. 말을 잘한다는 핑계로 말을 많이 하면 오히려 추가 질문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는다.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려 답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또 하나, 면접은 정답을 말하는 자리라는 생각도 고쳐야 한다. 최근 대학에서 미리 정의된 문제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면접관에 질문에 기계적으로 답을 하는 경우도 우수한 학생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일반론보다는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펼칠 때 더 호감을 줄 수 있다. 면접은 대화다. 면접관과 대화하듯 말해야 한다.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설득해야 한다.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남겨, 면접관이 되묻고 싶어하도록 한다. 이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면접관과 대화하는 면접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역량이 드러난다. 면접관이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면접의 목적은 결국 우수 학생을 뽑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대학에서는 지원자의 학업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학과 지원동기, 학업 계획, 진로 계획 등에 구체적으로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학업 능력 향상 자료도 필요하다. 이때 막연하게 말하는 것보다 자신의 학생부 사례를 근거로 말하면 신뢰성이 증가된다. 사실 면접 준비에는 왕도가 없다. 질문에 대한 정답도 없는 것이 면접이다. 똑같은 답도 어떻게 어떤 표정으로 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질문에 대한 답도 즉석에서 창의적으로 절실함으로 표현됐다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면접은 길어야 20분 전후로 이루어진다. 대학 합, 불합격을 판단하는데, 20분은 짧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면접 시간은 20분이어도 그 시간에 수험생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이미 고등학교 생활을 충실히 했다면, 그 20분에 3년의 생활이 보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면접 준비는 며칠 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학교생활을 성실히 한다면 그것이 곧 면접을 준비하는 길이다.
경기 소안초(학교장 장수열)는 19일 가게놀이를 실시했다. 동료교원평가의 일환으로 교장 교감 선생님이 수업 참관을 하고 학년별로 공개 수업을 실시했다. 특히 2학년 1반은 우리동네 한 바퀴라는 단원을 공부하면서 가게(직업)놀이 체험 시간을 가졌다. 교실에 분식점, 문구점, 서점, 마트의 네 코너를 마련한 후 먼저 두 팀이 고객(소비자) 역할을 하고 나머지 두 팀은 주인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가게 놀이를 했다. 가게 놀이를 한 후 아이들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값싸고 품질 좋은 물건이 잘 팔려요. 가게를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해요. 돈을 벌어보니 너무 재미있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려서부터 올바른 경제 개념을 심어주고 올바른 소비를 체험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폐교 위기를 딛고 우뚝 선 남면초등학교 담양남면초등학교 3개 교실 증축 개관식을 주관한 조숙희 교장 선생님 담양남면초등학교(교장 조숙희)는 지난 9월 15일, ‘교실 증축’ 개관식을 가졌다. 2년 전만해도 남면초는 전교생이 10명 남짓한 폐교 대상의 학교였지만, 현재 초등학생 38명, 유치원 10명의 규모로 성장하면서 기존의 교실로는 교육의 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교육공동체의 뜻을 모아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열정에 대한 화답이 이루어지게 되어 교실을 증축하는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했다. 15일 열린 개관식에는 담양교육지원청 김남규 교육장, 최형식 군수를 비롯하여 관내 각급 기관장과 사회단체장 및 주민 등이 참석해 학생의 꿈을 키워줄 요람의 개관을 축하했다. 새로이 증축된 교실은 담양교육지원청이 발주하여 5억 6천 711만원을 투입, 2층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일반교실(3실), 화장실(2곳)을 갖췄다고 전했다. 앞으로 3개 학년이 새로운 교실에서 학교 수업의 충실을 기하고 학생들의 꿈과 배움의 열정을 가꾸는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다. 담양교육지원청 김남규 교육장은 축사를 통해 "이제 38명에 이른 학생들을 위해 새 교실을 갖는 기쁘고 자랑스러운 이 자리는 담양의 자랑이요, 남면초등학교의 축복입니다. 한 아이를 제대로 기르기 위해, 사라져 가는 작은 학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남면초등학교와 지역사회가 일으킨 기적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이제라도 남면초등학교처럼 작은학교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선 고마운 분들이 계셔서 담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남면초등학교가 작은학교 살리기의 표본으로 희망의 씨앗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그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며 축하하였다. 개관식 축하 공연에 나선 남면초등학교 학생들의 공연모습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하버드대학교 사이먼 쿠즈네츠 교수는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서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는 있지만, 농업과 농촌이 발전하지 않고서는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경제논리를 앞세워 학생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작은 학교들을 없애기 시작했다. 그 결과 농산어촌에는 아기 울음 소리가 사라졌고 노인들만 지키는 희망이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이자 희망의 등불을 든 학생들을 길러내는 위대한 장소이다. 단 한 명의 학생이 다니더라도 학교를 없애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나간 시간이 말해주고 있다. 한 번 사라진 작은 학교는 지역을 공동화시켰고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은 이제 불안과 어둠으로 힘들어하는, 우리 사회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이제라도 남면초등학교처럼 살아나는 작은 학교가 많아져서 마음 놓고 자식을 낳고 지역의 학교를 보낼 수 있도록 국가와 교육정책 당국, 지방자치단체 모두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절실하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마지막 보루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경제논리만을 앞세워 작은 학교를 없애는 일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게 했는지 돌아볼 때이다. 아기를 낳으면 일부러 시골로 가서 교육시킨다는 핀란드가 교육선진국이 될 수밖에 없다.그들은 단 한 명의 학생에게도 교육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시골 학교에 다녀도 불이익을 당하거나 소외 되지 않는 교육정책을 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시골 풍경 속에서 행복하게 뛰노는 어린이들을 보고 싶다. 수천 년 나라를 잃고도 민족정신을 잊지 않은 유대인이 가장 소중히 생각한 것은 바로 '교육의 힘' 이었음을 !
교사라면 누구나 긴 교직 생활을 하면서 제자들로부터 서신을 받는 일은 가끔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교장이 되고 행정 책임자 위치가 되면 무엇인가 해결하여 주기를 호소하는 편지는 받기 쉽지만 감사의 서신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도교육청에 근무하는 한 장학사님은 나의 졸저 '교육의 텃밭에 씨를 뿌리며'를 읽어 보고 다음과 같이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다음은 매우 바쁜 와중에 보내준 편지 내용이다.
제2교시 2학년 ○반 영어 시간. 아이들의 출석 점검을 위해 교실을 둘러보았다. 수업 시작 전, 그 누구 하나 엎드려 있거나 딴짓을 하면 수업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름대로 방식이었다. 그래서일까? 매시간, 수업 시작 전에 엎드려 있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중간고사로 아이들의 수업 참여가 여느 때와 달라 보였다. 수업을 시작한 지 십 분쯤 지났을까? 한 여학생의 이상한 행동이 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 여학생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여학생의 노골적인 행동에 신경이 거슬렸다. 그래서 그 여학생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가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가가자, 그 여학생은 마치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교과서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어 교과서 밑으로 살짝 삐져나온 또 다른 책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영어 교과서를 펼쳐 놓고 내 눈치를 보며 실질적으로 다른 과목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녀석의 이런 행동에는 분명 말 못 할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개인 과외를 통해 이미 영어 시험 범위까지 공부를 다 마친 상태라 다른 과목을 공부한 것이라고 했다. 녀석이 가끔 수업시간 엎드려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사교육을 통한 선수(先手) 학습이 학교 수업을 지루하게 만든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가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국어, 영어, 수학 과목 중 아이들이 사교육을 제일 많이 받는 과목은 수학이었다. 그리고 영어는 내신 성적 때문에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주당 3회 이상 사교육을 받고 있었으며 매일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사교육비로 매월 약 30만 원 이상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아이들이 한 달에 4회 정도 국어 논술을 하고 있었으나 그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 정시를 준비하는 일부 아이 중, 과학 관련 과목(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명과학)을 과외로 공부하고 있었다. 과외를 받는 아이들 대부분이 개인 과외를 받고 있었으나 비싼 과외비 때문에 거주지와 가까운 동네 교습소에서 과외받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아이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대체로 수업 참여도가 높고 집중력 또한 뛰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과외를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상위 4%에 해당하는 한 아이의 공부비결은 다름 아닌 수업시간이었다. 학교 내신은 모의고사와 달리 수업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구태여 과외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아이의 말이었다. 그리고 모르는 내용은 학교 선생님을 통해 해결한다고 하였으며 체계적인 자투리 시간 활용도 이 아이의 공부비법 중 하나였다. 반면 국어 과목을 제외한 영어와 수학, 과학 과목 일부를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한 아이는 수업시간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주 졸아 선생님으로부터 지적받을 때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내신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듯했다. 사교육 의존 없이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더러 있다. 이러한 학부모의 공통점은 공교육의 불신이다. 따라서 사교육을 줄이고 아이들과 학부모의 이러한 불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일반 사교육과 차별화된 다양한 수업 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입시 위주의 수업에서 탈피,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의 주입식 수업을 지양하고 토론식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육의 질은 결코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