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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17일 대전시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회교육위 의원들은 여성관리직 보임 확대, 특수교육 여건개선 등을 집중 질의했다. 특히 3명의 여성 의원들은 여성관리직 임용목표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김정숙의원(한나라)은 "988명의 일반직 공무원중 5급 이상 여성 공무원은 8명뿐이고 장학관은 한 명도 없다. 또 고교에 여성 교감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비롯 초·중·고를 통틀어 여성 교감과 교장의 비율이 2.5%, 6.3%에 불과하다"며 "여성교육공무원의 30% 임용목표제와 교장, 교감 30% 임용목표제를 도입할 의향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가세한 김경천의원(민주)은 "본청에 여성전문직이 몇명이냐"고 즉문했고 홍성표 교육감이 "115명중 25명으로 18.3%"라고 답하자 "내년 국감때는 두배인 36.6%로 올려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대전지역 초등교의 안전사고 발생빈도가 높아 초·중·고 전체 피해보상액의 74%를 차지할 만큼 최악의 상태"라며 "전체 보상액 중 1억4000여만원이 학교나 교육청의 책임에 따른 보상이어서 일선 초등교나 관할 교육청의 안전불감증이 의심스럽다"고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황우여의원(한나라)은 "현재 대전시내 55개 초·중·고교에 82개 특수학급이 개설돼 있지만 경사로 손잡이 및 장애인화장실을 설치한 학교는 18개 학교뿐이고 특수학급의 위치도 2층 이상이 28개 학급에 이르고 있지만 승강기가 설치된 학교는 거의 없다"며 "학교만큼은 장애우를 위한 일등 시설을 갖추도록 예산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임종석의원(민주)은 16개 시·도의 세입결산액에 대한 이자수입액을 분석한 결과, 대전의 이자수입률이 0.56%인 점을 지적하고 과학적인 자금관리 시스템 도입을 촉구했다. 임 의원은 "지출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루 평균 현금보유액을 최소화하고 이자율이 높은 금융상품에 예치한 군포시는 2.14%의 이자수입률을 기록했고 울산교육청은 1.43%의 이자수입률을 보였다"며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면 대전도 연 101억원의 이자수입을 더 올려 222개 초·중·고교에 매년 4550만원을 지원하는 일이 가능하다"며 벤치마킹에 대한 용의를 물었다. 답변에 나선 홍 교육감은 여성관리직 보임 확대와 관련, "승진제도 상 거쳐야 할 단계가 있기 때문에 여성관리직을 크게 늘리기 어렵다"고 답해 또다시 비난을 자초했다. 김정숙의원은 "남 교사에게 연수를 양보하게 하는 학교 현장과 가사에 육아까지 떠맡은 상황에서 도서벽지 근무를 강요하는 것 등등이 여성의 관리직 진출을 막고 있는 것들"이라며 교육감의 의지가 없다고 꾸짖었다. 한편 홍 교육감은 특수학급의 30% 이상이 2층에 있으며 승강기도 없다는 황우여 의원의 지적에 대해 "특수학급에 다니는 장애아 중 지체장애 학생은 19명뿐이고 신설되는 학교에는 승강기가 있다"고 답변해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황 의원은 "이 큰 도시에 지체장애 학생이 19명뿐인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자 홍 교육감은 "나머지는 특수학교에 다닌다"고 답변했다. 이에 황 의원은 "그렇다면 특수학교에는 몇 명의 지체장애 학생이 있느냐"고 따졌고 홍 교육감은 "21명이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황 의원은 격앙된 목소리로 "어떻게 대전시내에 지체장애 학생이 40명뿐인지 다른 시·도와 비교할 때 터무니없다"며 정확한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11일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정숙의원(한나라)은 "전국적으로 중·고교 여학생 편의시설 현황을 보면 대상학교 2815개교 가운데 휴게실을 갖춘 학교는 150개교에 불과하고 탈의실과 보건실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생리대자판기를 갖춘 학교도 490개로 나타나는 등 여학생에 대한 교육당국과 학교측의 무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 "여교원을 위한 복지시설도 탈의실을 갖춘 학교는 전국적으로 10%에도 이르지 못하며 기혼 여성교원을 위한 탁아시설은 겨우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교육감은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김 의원은 "지난 7월 현재 전국에서는 48개교 484학급, 1만8565명이 컨테이너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으며 서울에서도 무려 17개교 233학급, 8623명이 컨테이너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이처럼 현재의 교육환경이 열악한 데도 교육부가 우선 순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고등학교 교실을 신·증축하겠다는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며 "교육감은 임시교실 운영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 밝혀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서울시내 사립학교 법인 상당수가 법정부담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아 서울시교육청이 지원하는 사립학교 재정결함보조금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설훈의원(민주)과 조정무의원(한나라) 등은 "지난 99년 결산기준으로 사립학교 법인의 법정부담금을 100% 낸 학교는 조사대상 112개교 가운데 1개도 없었으며 그 결과 시교육청이 부족한 부담금을 재정결함보조금으로 추가 지원한 금액이 159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설 의원은 "법인의 법정부담금 지출실태를 조사한 결과 103개 대상 학교 가운데 64개교가 법정부담금보다 법인운영비를 더 많이 지출했으며 이 가운데 17개 학교는 법인운영비를 먼저 쓰고 법정부담금은 전혀 내지 않았으며 13개교는 법인운영비가 법정부담금의 10배 이상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도 "법인이 수익용기본재산에서 발생한 수익에서 법인운영비를 과다하게 지출하면서 법정부담경비 부담을 회피하여 교육청에서 부족금액만큼 재정결함보조를 하게 되어 재정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교육위는 11일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이날 여야 의원들은 자립형 사립고 도입 여부·저소득층 자녀의 교육기회 확대·특수교육 및 실업교육 여건 개선 등에 대해 집중 질의하고 나름대로의 대책을 제시했다. 국감 시작에 앞서 이규택 위원장(한나라)은 "의원들이 요구한 408건의 자료 가운데 87건을 해당 의원에게만 제출했다"며 "가급적 다른 의원들도 열람할 수 있게 교육위에 추가로 제출하라"고 밝혔다. 여야는 주요업무 보고도 교육감이 직접 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다른 시·도교육청도 교육감이 업무보고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질의 김덕규의원(민주)은 "현재 서울시내에는 28개 특수학교에 5607명의 장애학생이 있는데 이들의 통학소요시간을 보면 30분 이내 3011명, 1시간 이내 1766명, 2시간 이내 758명, 2시간 이상 72명"이라며 "이는 특수학교가 지역별로 불균형적으로 설치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특수학교 고등부 졸업생 440명중 진학자가 119명, 취업자가 107명으로 장애학생의 진로가 밝지 못한 형편이라며 대책을 촉구했다. 김정숙의원(한나라)은 "전체 여교원의 비율이 54%에 이르고 있지만 지난 6월 현재 교감은 6.5%, 교장은 5.3%로 지난해(교감 7.7%, 교장 6.9%)보다 오히려 줄었다"며 "여성 교감과 교장 30% 임용목표제를 과감히 도입할 의향은 없느냐"고 물었다. 김 의원은 시교육청의 공무원 6809명 가운데 장애인은 52명(0.76%)이라며 이는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이재오의원(한나라)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실패했으며 특히 실업교육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위기의 실업고를 살리기 위해서는 학비 전액 국가지원, 100% 취업보장, 실고 교사 대우 100% 인상, 동일계 진학시 가산점 부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또 "9월1일자 전문직 인사에 문제가 많다"며 "인사기준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김화중의원(민주)은 "서울의 경우 특수학급이 설치된 유치원은 22개교 22학급에 불과하고 학생수는 56명"이라며 나머지는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다. 김경천의원(민주)도 "서울지역 만 3∼5세의 유치원 취원 대상 아동수가 37만8308명인 반면 국·공립유치원은 병설유치원 86개, 병설유치원 4개에 취원아동은 6913명으로 전체 대상아동 중 겨우 1.8%만 취원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현승일의원(한나라)은 "세계적 경쟁시대에 필요한 다양성·창의성·자율성 등을 위해 자립형 사립고 도입이 필요하지 않으냐"며 "교육감이 자립형 사립고 추천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행정계통을 무시하는 위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재정의원(민주)은 "자립형 사립고는 국책사업이고 대통령에게도 보고를 마친 사안인데 교육감이 대통령이나 장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업무보고 및 답변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은 주요업무 보고를 통해 "서울교육 새물결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교육방법 개선을 위한 지원행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유 교육감은 또 ▲통일교육 내실화 ▲특기·적성교육 활성화 ▲실력 향상을 위한 책임지도 체제 확립 ▲학교 교육정보화 지원 체제 구축 등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의원들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유 교육감은 "논란이 되고 있는 교원 성과급은 어떤 형태로든 지급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요구가 있으면 기관장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자립형 사립고와 관련해서는 "서울지역에서 신청한 19개 학교 중 17개교가 재정결함 보조금을 받고 있는 데도 시범운영을 신청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라며 "완전 불가라기보다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각종 사고에 의한 초·중·고생 사망, 부상자수가 해마다 늘고 학교주변의 스쿨존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철현의원(한나라)은 10일 교육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99년부터 올 6월까지 2년반 동안 각종 사고에 의한 초·중·고생 사망, 부상자수는 99년 3383명, 2000년 3886명에 이어 올 6월말 현재는 1964명이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사망자수는 99년 839명, 2000년 847명으로 늘었고 올 6월말 현재는 333명이다. 사고 유형별로는 2년반 동안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이 894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익사(376명), 자살(355명) 순이었다. 학교급별로는 고교생 사망자가 95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초등학생(666명)과 중학생(403명) 순이었다. 성별로는 남학생 사망자수(1367명)가 여학생 사망자수(652명)의 두배 이상이었다. 이밖에 교육부가 김화중의원(민주)에게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이달 현재까지 스쿨존 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또는 부상한 학생은 모두 255개 학교 354명으로 스쿨존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사망은 39명, 부상은 315명이며 시·도별로는 전북·경북이 각 7명, 인천·경기·강원이 각 5명 등으로 비교적 많았다.
안 종 수 "또 왜 전화야, 뭐? 대낮부터 술 처먹구 잘 헌다. 알았어. 내 알아보구 전화할 테니께 끊어. 끊으라니께." 우리가 구 기사 님이라고 부르는 구천석 씨는 핸드폰을 접어 넣으며 투덜댄다. "허구 헌 날 술만 처먹으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질여. 에이구" 투덜대는 그 목소리에는 그래도 짙은 정감이 배어있음을 숨기지 못한다. 가끔 귀찮게 해도 곁에 두지 않으면 못미더워 걱정되는, 의지하고 따르기에 보살펴 주지 않을 수 없는 철없는 동생에 대한 맏형의 투정 같은 느낌이 한껏 묻어있다. 나는 구씨 아저씨에게 자주 전화를 하는 그 남자를 두 번 보았다. 그냥 평범하고 순박한 섬의 어부였다. 이곳 덕적 본 도에서 구씨 아저씨의 소형 쾌속선으로 30여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울도 라는 섬에 사는 사십대 사내이다. "즈이 딸내미들 보구싶다구 술만 처먹으면 내헌티 전화질여. 그깟 생선 몇 푼이나 된다구 맻 마리 잡으면 이놈 저놈 불러모아 설랑 술 마시구 저러는겨. 예편네만 불쌍허지" 구씨 아저씨의 말투는 그의 표현대로 충청도 사투리에 전라도와 황해도 말이 조금씩 가미된 삼도 짬뽕이라는 게 옳다. 구씨 부친은 육이오 때 월남했고 모친은 덕적도 여자요 부인은 충청도 여자라니까 그럴 만도 했다. 덕적도라는 섬의 위치를 보면 구기사의 인맥관계가 수긍이 간다. 덕적도는 지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경기, 충청, 황해 삼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예전의 조기 성황기내지 꽃게 철에 따라 오고갔던 어부들의 행로를 짐작해보더라도 이해가 된다. 특히 황해도 피난민과 조기를 따라 이동했던 전라도를 포함한 서해안 어장의 교류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섞이게 하여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문제여. 예편네 그물 끌르게 하고, 지는 생선 맻 마리 잡아 설랑 대낮부터 저 모냥여" 어디선가 뻐꾸기가 울고 한낮의 고요한 정적 속을 황새 서너 마리가 긴 곡선을 그리며 오르내린다. 창 밖을 내다보며 말없이 서있던 총각 김 선생이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피워 문다. 그는 가끔 창 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쉬듯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교무실 중앙에 놓여있는 낡은 쏘파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던 홍 선생이 고시랑거리는 구씨 아저씨의 투정이 시들해 갈 즈음에 한마디한다. "또 나리 아빠한테서 온 전화 구만" 구씨 아저씨는 응원군을 만난 듯 한껏 볼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내가 지 뭐나 되는지 심통거리나 화통거리만 있으먼 나헌티 하소연이니 거 참..." "다 그게 구 기사 덕이지.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하소연 할 곳 없으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어." 구씨 아저씨는 언제 그랬냐 싶게 넉넉한 표정으로 싱그레 웃으며 홍 선생의 맞은편 자리에 몸을 넓게 펴고 앉으며 한마디한다. "그렇지유 뭐, 지가 누구헌티 술 처먹구 그러것써. 나두 그 사람 맘 다 알어유. 오장 터지겄지. 술 마시면 지 마누라 패고 살림 때려부수고 지랄을 쳐도, 잔정이 많고 이웃지간에 내남없이 잘 어울리구. 퇴끼같은 두 딸네미는 끔찍이두 여겼는디... 하나는 중핵교 1학년 막내는 초등핵교 5학년 인디 지금 인천에 가 있구, 그나마 일인당 삼십 만원씩 보조해준다는 돈도 아직 송금하지 않으니께 이래저래 울화통이 터져갔구 설랑 하루가 멀다하고 술 처먹구 전화 해대구 그러는규." 반백에다 대머리인 홍 선생이 담배를 빼들며 한마디한다. "그 어린것들 인천에 내다놓고 오죽하겠나. 사람 사는 것이 뭔데. 힘들고 가난해도 가족끼리 함께 사는 재민데, 어린 자식새끼들하고 같이 못살고 떨어져 사는 맘이 오죽하겠어." 공문처리에 몰두하고 있는 성 선생이 일이 거의 끝났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야무지게 내뱉는다. "썩을 놈들, 책상 앞에 앉아서 한다는 것이... 한번 와 보고 결정을 했어야지. 순전이 머리로만 계산 한 거야." 교무실 정면을 왼쪽으로 치우쳐 자리잡은 최 선생도 거든다. "정말 그래요. 경제논리로만 정책을 결정하고 먼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곳이 고향이며 통폐합된 덕적 본 도 학생들을 통학시키는 학교버스 기사인 이 기사가 둥글고 큰 얼굴에 힘을 주며 한마디한다. "이건 농어촌 다 죽이자는 거요. 이런 식으로 작은 학교 없애고 통폐합하면 어떤 놈이 이곳에 살어. 고향에 발붙이고 살려고 왔는데, 누가 살 것 습니까?" 그는 뭍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한 두 해 전에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사업을 하며 학교버스 기사로 근무하고 있는 삼십대 후반의 예비 학부형이다. "맞어, 지금 섬에 젊은 사람이 어딨어, 웁써. 울도만 해도 학교 웁서지니께 애들있는 부부들은 살구 싶어두 못 사는겨. 안 그렇겄어." 구 기사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학부형이자 이곳 면사무소 총무계장 이라는 사람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94년 1700여명이던 덕적도 인구가 이제는 1300여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학교가 없어진 일곱 개의 부속 섬에 사는 사람들의 수는 앞으로 더욱 격감하게 아예 무인도가 될지도 모르는 형편이라고 탄식하듯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도서벽지에서 그래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학교다. 빌어먹어도 제 자식은 가르치려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본능과 같은 욕구가 아닌가. 그나마 있던 학교마저 없어지면 학령기의 자녀를 둔 사람들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떠나기 싫어도 고행을 등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인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현관 앞 계단에 서서 담배를 피우던 김 선생이 들어와 이 기사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교무실 뒤편에 세 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고, 두 여자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한 사람은 주간학습 안내문을 작성하고 있는 병설 유치원 교사인 김 선생이고, 한 사람은 금주의 식단표를 짜고 있는 처녀 영양사이다. 컴퓨터 자판 찍는 소리와 한쪽에선 작업이 끝났는지 인쇄하는 소리가 또 어디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에 섞여 이질적으로 들린다. 인쇄를 마친 유치원 김 선생이 인쇄가 끝났는지 사뭇 험악하다가 갑자기 고요해진 분위기를 깨고 밝은 목소리로 주위를 환기시킨다. "이 좋은 날에 다들 왜 그런 표정들이세요?" 얼굴 한 번 찌푸리는 법이 없는 김 선생의 해맑은 웃음에 모두들 싱겁게 웃고 만다. 아무리 도서벽지 학교라도 있는 것은 다 있다. 없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사람이다. 내가 이십 여 년 동안 지냈던 인천에서는 그렇게 넘치던 사람이 이곳에는 없다. 있기야 있다. 그러나 지금 학교 교무실 창으로 내다보이는 학교 운동장에는 인적이 없다. 오월의 눈부신 햇살이 내리고, 드문드문 뻐꾸기가 울고, 햇살에 반짝이며 미풍에 흔들리는 신록이 싱그러운 운동장에는 한낮의 고요가 숨죽이며 흐를 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오후 3시 이후에는 학교버스가 아이들을 실어가 버리고 학교에는 열 명 미만의 교직원만 남아있다. 학교에서 보이는 언덕 위의 교회 지붕과 그 아래로 낮게 펼쳐진 몇 채의 집, 비탈진 밭, 손바닥만한 몇 데기의 계단식 논. 그리고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없어 외롭다는 말을 나는 두 달 여 전에 이 학교 부임해서 이곳 부임 선배인 홍 선생과 성 선생에게 들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70여 킬로미터 떨어진 섬.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공기 좋고 바닷물 깨끗하고 경치가 좋다는 말은 했지만 예전처럼 인심이 좋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특별한 생산물이나 특산물이 있는 곳도 아닌 평범한 그런 섬이다. 경기도에서 인천시로 편입된 후에도 이곳 사람들은 인천과 이곳을 구분해서 부른다. 인천에서 덕적도 들어간다. 인천으로 나간다, 라고 표현한다. 예전 한 때는 고기가 많이 잡히고 황해도 월남 피난민이 몰려, 지금은 폐교되어 허물어져 가는 북리 어항 어귀에 있는 명신 초등학교 학생수가 800명이 넘었었다니 그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한물간 섬이라는 것이다. 이곳 덕적 본 도에서 좀 나가면 우럭이 조금 잡히고, 서포리 해수욕장이 알려져 있어 그나마 물때를 아는 낚시꾼이나 여름 한철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이 있는 뿐인 별 볼일 없는 가난한 섬이라는 곳이 나보다 일 이년 먼저 부임한 그들에게서 얻은 이 섬에 대한 정보였다. 거기에 덧 붙여서, 너 이제 도서벽지 섬에 왔으니 오랜만에 찌든 도시를 떠나 심신을 정화시키러 왔다고 생각하고 잘 적응해라. 그러나 외로움은 각오하라. 이곳 사람들을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고 멀리 하지도 마라. 나는 마지막 말을 알 듯 모를 듯 이해했다. 섬 주민들이 예전처럼 교사를 대하지 않고, 교사를 승진점수를 따러 철새처럼 왔다가 철새처럼 가버리는 그렇고 그런 선생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르게 대한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앞에서 표현한 철새라는 표현은 '이미자'의 노래인 '섬 마을 선생님'의 애틋한 노래가사와는 그 뉴앙스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도 누군들 사람이 그립지 않겠는가. 젊은 시절 한때는 친구가 그립고, 짝사랑하던 여자가 그립고, 무엇인지 딱 잡아 말할 수 없는 알 수 없고 가보지 않은 많은 것이 그리워서 그 그리움으로 얼마나 외로웠던가.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외로움 마저 젊은 날의 감미로운 추억으로 다가오는 내 나이 사십 후반. 되돌아보면 그 그리움들은 목마를 때 찾는 탄산음료나 물과 같았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구하는 맛이 다양한 탄산음료가 아닌, 고향 집 우물 맛처럼 변하지 않는 그리움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이곳 학교는 전 직원이 함께 자리하는 기회가 많다. 전 직원이라야 모두 열 명이다. 교감, 홍 선생, 성 선생, 나, 최 선생, 김 선생, 유치원 교사, 영양사, 올 구월이면 퇴직하는 구 기사, 이 기사가 전부이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면 모두 교무실로 모인다. 잡무도 처리하고 수업 준비도 한다. 이런저런 대화도 오가지만 대체로 학교는 고적하리 만치 조용하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운동장에서 노는 애들도 없다. 가끔씩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나가는 몇 대의 차들이 학교 옆으로 난 북리로 통하는 길을 지나갈 뿐이다. 절간 같은 한 낮의 고요와 권태가 나른하게 흐른다. 99년 올해부터 1.5 킬로미터 남짓 거리에 있는 중고등학교와 통합되어, 구월이 되면 중고등학교에 초등학교 교실을 새로 지어 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있다. 지금은 행정적으로만 통합이 되어 교장은 중등에서 교감은 초등에서 맡고 있다. 구월이 되면 행정적 통합분만 아닌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의 유일한 학교인 덕적초중고등학교가 생겨나는 것이다. 또, 오 스잔나의 음률이 방정맞게 울린다. 구기사가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귀에 댄다. "누구여, 왜 또 전화여. 응 응... 아 글세 알았다니께... 그건 나도 물러. 내도 니 맴 알어. 응, 응 그려 참어야지 어티켜. 알었어. 끊어, 끊으라구." 통화 끝 부분은 항상 핀잔 투로 목소리 톤이 올라가며 `끊어'로 마무리되곤 한다. "여하튼 바쁘셔, 울도 유지답게 정치하랴, 상담하랴, 야단치랴." 남도태생인 성 선생이 한마디한다. 그는 정의파로 한마디를 하더라도 칼칼하고 딱부러지게 한다. "나리 아빠, 승질 나것지. 어린 딸년들 인천에 내보내고 폐교된 학교 둘러보는 맴이 오죽 하것어 이." 맛있게 담배를 피우던 홍 선생도 거든다. "맞아, 그까짓 보조비 및 십 만원이 문제겠어. 애들 때 놓고 눈에 밟혀 잠이 오겠나." 그는 오십 초반의 얼굴이 길고 반백머리에 귀밑머리가 짙은 말이 적고 중후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학교 직원 중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많이 받는 축이다. 늦게 둔 초등학교 막내아들이 아빠를 찾는 전화가 많이 오기 때문이다. 나도 역시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딸이 전화를 자주해서 그와는 막상막하로 전화를 자주 받는 편이다. 평균 한 달에 두세 번 만나볼 수 있는 어린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그와 나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아저씨는 행복한 줄 아셔. 나리 아빠가 허구 헌 말 전화해대고 하소연하고 투정을 부려도 기댈 사람은 아저씨 뿐이라, 좋지 않습니까." 구씨 아저씨는 예의 그 큼지막한 볼웃음을 지으며 느긋한 어조로 말한다. "허긴 그려. 지가 누구한티 하소연 할껴. 내 집에 세 들어서 형제처럼 산 게 얼마 간디. 한 식구지 뭐." 나는 울도에서 무시로 걸려오는 나리 아빠와 구씨 아저씨의 관계를 두어 번의 통화를 통해 금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리 아빠라는 사내와 구씨 아저씨의 통화내용을 간단하게 줄이면 줄거리는 간단하다. 왜 울도에 있는 학교를 없애서 내 새끼를 인천으로 보내 이산가족이 되게 했느냐는 나리 아빠의 분통과, 왜 내게 그런 화풀이를 하느냐고 짜증을 내는 구기사의 타박이 그 내용의 전부였다. 이런 저런 다른 이야기도 오고 갔겠지만 결론적으로 마지막에는 폐교 이야기로 끝나고 만다. 한쪽에서 분통을 터트리면 한쪽에서는 같이 닦달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려, 그려 알았어, 니맴 내 다 알지, 하고 부드럽게 어르면서 전화를 끝내는 단순 반복형 전화였다. 구씨 아저씨에게 술 마시면 전화를 하는 나리 아빠라는 사내는 울도에서 구씨 아저씨와 형님 아우로 지내며 한집에서 지내는 사람이다. 그곳 울도 분교가 폐교되자 울도 분교에서 학교 기사로 근무하던 구씨는 올 팔월에 퇴임을 조건으로 본교인 이곳으로 전근을 해서 그도 역시 우리처럼 주말 부부가 되어 학교 관사 바로 내 옆방에 기거하고 있다. 교육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으로 올해 소야 분교와 울도 분교가 폐교되어 이제 덕적도에는 새로 통합된 덕적 초중고교 하나만 남게 되었다. 덕적 본 도에서 바라다 보이는 소야 분교 학생들은 배를 타고 이곳 학교에 다닐 수 있지만, 울도 분교 학생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인천에 나가 학교를 다녀야 한다. 인천의 친척집이나 여유가 있으면 새로 얻어놓은 셋집에서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 구 기사는 나리 아빠가 걸핏하면 술 마시고 전화해대는 까닭을 털어놓았다. "생각혀바이, 자식새끼라구는 두 딸년 뿐여. 어린 새끼들, 그 것 두 지지배여. 그것들을 인천에다 내다 놓구 같이 따라가 살 형편이 못되니께 환장할꺼 아녀. 벌어논 돈이 있어. 아니면 도둑질 할껴. 지가 나가서 뭘 할껴. 배운 거라곤 괴기잡는 거 뿐인디... 미치는 거지. 돈은 돈대로 나가지, 보듬고 키우던 딸년들, 나이나 많은가. 엘마나 찡할껴이." 언제는 징혀징혀 하더니 이내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한다. "나야 뭐, 자식새끼들 다 커서 물에 나가 제 힘으로 살아들 가고, 퇴직하면 울도에서 괴기나 잡으며 마누라하고 살면 그 뿐이지만 그 사람이야 나 하구는 달러. 한창 나이라 군 하지만 괴기가 그전처럼 많이 잽히나 보듬어 줄 새끼가 옆에 있나, 마누라가 하루좽일 그물 끌러서 그나마 그럭저럭 먹구 사는디... 마누라만 불상허지..." "교육부 장관 물러나야 해요. 아니 그런 교육부 장관 임명해놓고 계속 못 들은 체 하는 이놈의 정부, 하기는 그놈이 그놈이라 더니..." 교무실 밖 현관에서 담배를 피우고 언제 자리에 앉아 있던가 싶던 총각 김 선생이 다시 뻑뻑 소리나게 담배를 피우며 퉁명스럽게 한 말이었다. 그의 그런 열에 받친듯한 말투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올해 이곳 덕적도에 나, 최 선생, 김 선생이 부임해 왔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심정으로 그것에 왔다. 나는 어찌 이렇게 쉽게 섬에 왔나 하고, 최 선생은 어어? 하고 왔단다. 총각 김 선생은 아니 이게 아닌데, 하고 왔단다. 왜 그리 되었는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모두들 떠밀리듯이 왔다는 얘기다. 그 만큼 도서 벽지 근무 선호도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일 이년 전만 해도 옹진군과 강화군이 인천시로 편입된 이래 근무평정 1, 2 순위 그것도 연이어 받아야 원하는 도서 벽지에 근무 할 수 있었다. 1, 2년 전만 해도 사오십대 교사 중 유능한(?) 교사만이 올 수 있던 이곳이 벽지점수가 하향되자 우리같은 교사들도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찬들 고추장도 안 먹는 다잖아요. 지금 교육부 장관은 편견이 심한 것 같아요. 순전히 교육 개혁의 대상을 교사로만 잡은 것 같아요. 교육부 장관 물러나야 해요." 컴퓨터을 조작하던 최 선생이 한말이다. 삼십대 초반의 최 선생은 보살 같은 사람이다. 큰 머리에 토실토실하게 살이 찐 컴퓨터에 능하면서도 인간적이며 부조리와 어떤 종류의 폭력이건 용납하지 않는 평화주의자다. 그러나 요즈음의 교육세태에 대해 말할 때어는 단호하게 직설적이다. "정치가가 교육을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어떻게 교육개혁을 정치, 경제논리로만 하려고 해. 정말 한심해." 총각 선생이 한숨쉬듯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맞장구를 친다. 이곳 섬은 내 첫 부임지였던 육 학급자리 산간학교와는 또 달랐다. 섬은 그곳과는 다르게 폐쇄적이고 좁았으며 답답했다. 육지의 산간 벽지와는 다르게 갇혀있는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이곳까지 하루 두 번 쾌속선이 왕복한다. 칠십 여 킬로를 오십 분에 달라는 쾌속선이 하루 두 번 왕복하는 것은 이 섬의 큰 혜택이다. 우럭 낚시와 몇 군데의 해수욕장이 개장되는 여름 휴가철에는 사백여 석의 정원이 꽉 찰 만큼 관광객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거리가 멀고 배 삯도 왕복 삼만 원이 넘어 이곳을 잘 아는 사람들 외에는 쉽게 배를 타지 못한다. 이곳에 발령을 받고 첫배를 타던 날이 새롭다. 갑판 위에서 소주를 마시며 언젠가 타보았던 통통거리며 달리던 여객선이 아니었다. 외국에서 들여왔다는 프린세스호는 이층으로 사백여 석이 넘는 안락한 좌석과 쾌적한 실내공간으로 그 안에는 깨끗한 매점과 대형 텔레비전이 앞뒤로 네 대나 설치되어 있는 대형 여객선이었다. 우선은 배가 깨끗하고 빨라서 기분이 좋았다. 아침 9시5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생전 처음 먼바다를 행해하는 기분은 상쾌함을 넘어 순수하고 신선한 흥분과 감동을 전해주었다. 이제부터 집을 떠나 낯설고 불편한 섬 생활이 시작된다는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고, 아침 햇빛을 받으며 달리는 배의 창 밖 풍경을 보며 새로운 고장에서의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는 기대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멀리 중국 해 쪽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라는 크고 작은 배들, 그냥 떠있는지 움직이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큰배들, 등대가 서 있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무인도인지 아니면 사람이 살고 있는지 분간하기 힘든 섬들을 지나치면서, 새로 보는 모습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바다는 푸르고 깊고 넓게 물결쳤으며 수평선은 물보라 같은 안개를 품으며 끝없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정말 좋았다. 정말 잘 온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 달에 두 세 번은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날 수 있을 것이다. 그 것 만으로도 좋다고 생각된 지경으로 기분이 좋았다. 정말 오랜만에 눈이 시원하게 확 트이고 가슴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덕적도에 도착해서 바라보이는 선착장 모습은 한마디로 전형적인 섬 마을 그대로였다. 선착장 오른쪽으로 죽 늘어서 있는 자그마한 횟집들과 슈퍼마켓과 담배 가게,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사람들과 매여 있는 몇 척의 배들이 있었다. 선착장으로 이어진 언덕길을 이십여 미터 오르면서 길옆에 매표소 식당 노래방 당구장 중국집 등이 옹기종기 모여 서있었고 그 길을 따라 몇 백 미터 지나 언덕을 내려서면 면사무소와 중고등학교가 있다. 그 아래 덕적도 중심지라 할 마을인 진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우체국 농협 파출소 보건소 식당과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양옥들도 꽤 있었다. 가파른 언덕아내 펼쳐진 작은 마을은 서포리와 북리로 뚫린 두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포리 쪽으로 뚫린 길은 바다를 끼고 산길로 이어져 있었고, 북리로 난 길을 따라 다시 작은 언덕을 넘어서면 그 아래 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배에서 내려 자은 언덕을 두 개를 넘어야 초등학교에 다다르게 된다. 덕적도는 섬이지만 섬 안에 들어서면 산골에 온 느낌이 든다. 언덕에서 본 초등학교는 산을 뒤로하고 옆으로는 북리로 난 길을 끼고 아늑하게 자리한 조용한 산골학교였다. 나는 첫눈에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꿈에 그리듯 그리운 내 첫 부임지였던 산골학교와 분위기가 너무 흡사했지 때문이었다. 다시 이십대 초반의 첫 부임지에서 느꼈던 설레 임을 실로 오랜만에 맛보았다. 아담한 학교 운동장 지나 몇 개의 계단을 오르면 이층으로 된 학교 건물이 있다. 왼쪽에 교장 관사가 있고, 오른쪽 뒤로는 강당과 식당이 있었다. 식당 옆에는 관찰용 간이 기상대와 작은 정원이 있고, 학교 뒤는 비탈이 완만한 산이 있다. 운동장 옆과 아래쪽에 교사들이 기거하는 관사가 있고, 관사 옆에는 실습지가 있다. 전형적인 시골 학교의 모습이었다. 학교는 이곳에서 가장 아늑하고 조용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1, 2학년 복식학급을 담임하게 되었다. 1학년 13명, 2학년 10명. 1학년을 담임한 것도 복식학급을 맡게 된 것도 교육경력 24년 만에 처음이었다. 1, 2학년 다 합쳐봐야 23명, 전체 인원으로는 많지 않다. 그러나 한번 가르쳐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주당 수업시간이 24시간이지만 좀 부풀려 말하면 단일 학급을 맡아서 가르치는 것보다 두 배 이상 힘이 든다.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감을 잡지 힘들었다. 두 학년 합동으로, 교과통합으로, 주제통합, 분리수업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이끌어 보지만 만족스런 수업이 되지 못하고 시간이 모자라 허둥대는 때가 잦아 짜증스럽고 힘겨울 때가 많다. 수학 시간에 1학년은 합동과제를 해결하게 하고, 2학년은 개별지도를 하고 있는데 떠들썩하여 1학년 쪽을 바라보니 교실 한 구석에서 엎치락뒤치락 레슬링을 하고있고, 몇몇 녀석들은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강아지처럼 기어다니고 있었다. 1학년을 다그쳐 자리를 정리해 주고 있는데 2학년 남자녀석들은 티격태격 무슨 일인지 맹렬하게 다투고 있고 여자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모여 무슨 얘기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대고 있었다. "다들 자리에 앉아!" 소리쳤지만 그들은 다투고 낄낄대는데 열중해 있어 내 목소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열이 올라 목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웅성웅성 자리에 앉는다. "손 머리, 눈감아!" 늑대처럼 으르렁거리자 잠시 조용하다. "선생님, 대훈이 눈떴어요." "선생님, 은비 실눈 떠요." 기가 막혀 실실 웃음을 참다보면 어느새 내 지시도 없이 모두가 눈을 뜨고 히히 헤헤거린다. 쉬는 시간만은 정확히 챙기는 녀석이 꼭 있다. "선생님, 11시 20분, 쉬는 시간이네요." 여기저기서 선생님 오줌 마려워요, 물 마시고 싶어요, 하고 떠들어댄다. "그래, 화장실 다녀와." 항복하듯이 수업을 마친다. 쉬는 시간이면 교무실에 모여 10분의 휴식을 취한다. 내가 복식학급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자 3, 4학년 복식학급을 맡고 있는 최 선생이 동감이라는 듯 열을 올린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적극적이면서 왜 소규모 학교 복식수업은 그대로 두는 거지요?" 성 선생이 코방귀를 뀌며 말한다. "교육의 질 좋아하시네. 교사 한 명이라도 줄이려고 통폐합하는 건데, 어떻게 복식학급을 해소하겠나. 여기도 복식학급이 둘인데, 복식학급을 해소하려면 교사 두 명이 증원되어야 하는데 그리 되면 통폐합해서 교사 두 명을 줄일 효과가 없지 않나 이 말이야." 커피를 마시고 있던 이기사가 목소리를 높인다. "정말이지 그거 심각한 문제요. 우리 애가 곧 1학년에 입학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라 구요. 여기 학부형들도 다들 복식학급 문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생각만 하면 뭘 해. 행동으로 보여야지. 학부형들끼리 뭉쳐 가지고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거 아닌가. 말로만 해서 되나." 성 선생이 말하자, 홍 선생도 한마디한다. "맞아, 우리보다는 학부형들이 나서야 돼. 보라구, 지금 여기저기서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부모 집단행동들 말야. 정부에서도 그런 곳의 통폐합은 일단 보류하고 있잖아. 우는 아이 젖 준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며 당하기만 하는 거야." 머쓱해진 이기사가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처럼 내뱉는다. "알기야 알죠. 그렇다구 여기 섬사람들이 뭘 어떻게 해요. 숫자가 많아요 아니면 배운 게 많아서 앞장 설 사람이 있어, 먹구 살기에 바쁜데 시간이 많어, 아니면 교통이 좋아. 힘들어요 힘들어." 홍 선생이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수긍하듯이 말한다. "하긴 그래, 여기 처음 통폐합 결정할 때만 해도 그랬어. 교장이 학부형들을 속인건 아니지만, 학부형들이 통폐합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들도 드물었지. 중고등학교와 통합하면 영어나 예체능과목은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배우는 줄 알고 좋아했더니 말 다했지 뭐. 그 뿐인가, 새로운 시설에다가 최첨단 교육기자재 확보 등등, 엄청나게 좋아지는 줄 알고 있는 학부형들이 대부분이야." "감언이설로 사기 친 거지 뭐, 완전 사기야." 성 선생이 혀을 차듯이 내뱉은 말이다. 99년 올해부터 1.5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행정적으로 통합되어 교장은 중등에서, 교감은 초등에서 맡고 있다. 지금은 따로 떨어져 행정적으로만 통합되어 있지만, 구월이면 중고등 학교에 교실을 새로 짓고 초등학교는 이사를 가야한다. 초등학교에서는 행정적인 통합은 수긍하면서도 물리적인 통합은 못마땅해한다. 굳이 이사를 가야할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관리비를 줄이고 교장, 교감이 한 명씩 줄인 것에 대해서는 모두들 공감을 했다. 그러나 약간의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멀쩡한 초등학교를 없애고 교실을 새로 짓고 비좁은 데로 합쳐야 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계산으로도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초등학교 교사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학교 오른쪽을 지나 북리 어항으로 뚫린 언덕같은 시멘트로 포장된 이차선 신도로이다. 이 신도로는 아직은 포장이 안된 서포리로 통하는 좁은 길과 연결되어 있다. 북리와 서포리를 연결하는 신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학교 왼쪽으로 나있는 가파른 산길이 서포리와 진리의 유일한 통로였단다. 그러니까 지금은 지름길인 언덕길을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북리 우회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덕적도에서 그래도 제법 논밭이 많고, 넓은 백사장이 펼쳐 저 있는 해수욕장이 있는 곳은 서포리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덕적도보다 서포리 해수욕장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나도 서포리 해수욕장이 덕적도에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학교 왼쪽으로 나있는 서포리로 통하는 가파른 산길은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다. 가끔 산나물을 뜯는 몇몇 할머니들이 옛 추억을 더듬듯이 나물 보따리를 짊어지고 지팡이를 끌며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길이 나의 산책로 겸 운동코스가 되었다. 왕복 40여분정도 걸리는 산길을 먼저 부임한 황 선생과 성 선생의 뒤를 따라 올라 갔다. 이 산길의 처음 삼분의 일은 밋밋하다가 점점 경사도가 심해져 마지막 산꼭대기까지 300여 미터는 직선코스로 가파르게 올라야하는 급경사였다. 숨이 턱밑까지 차 오르고 땀이 온몸에 배이면 곧 서포리가 눈에 들어온다. 산꼭대기에서 급하게 내려하다가 집이 있는 논밭이 있고 길이 있고, 길 건너 소나무 숲이 있고 백사장, 그리고 바다 가 있다. 바다는 한없이 펼쳐진 망망 대해가 아니다. 그 건너편에 섬들이 있다. 덕적도는 모두 40여 개의 군소 섬들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가까이는 소야도, 지도, 울도, 핵폐기물 설립 문제로 알려진 굴업도. 사람이 살고 있는 일곱 개의 섬 외에도 무인도로, 한낱 바위섬으로 존재하는 40여 개의 섬으로 덕적 군도를 이루고 있다. 서포리와 진리를 나누는 산꼭대기에 서면 서포리가 내려다보인다. 아침이면 장난감 같은 배 두어 척이 하얀 물살을 가르며 어디론지 떠난다. 고요하고 한적한 아침바다를 가는 배를 보면 바다 가 잠을 깨는 것처럼 보인다. 안개에 둘러싸인 섬들은 제 모습을 감추고 신비스런 자태로 그림처럼 그 곳에 있다. 그냥 그곳에. 바다는 배가 떠나고, 섬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신선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산골 출신인 나는 입체적으로 가로막힌 첩첩산중 육지에서 보지 못했던 평면적인 바다의 무한한 넓음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른다. 바다는 나에게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바다는 프로이드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드의 세계처럼 쾌락과 본능의 출렁임이 용암처럼 들끓는 곳. 그 곳에서 해방과 자유을 찾고자 했던 내 바램은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것에 대한 헛된 꿈인지도 모른다. 아침저녁으로 오르다 보니 주의의 풍경이 익숙해지고 정이 들었다. 20여 년의 도시생활에서 이제는 돌아와 고향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 어느 시 구절처럼 좋았다. 그러나 섬은 물과는 다르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는, 바다 가 보이지 않는 섬 어느 구석에서도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가 보인다. 내가 속해 있는 섬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섬은 먼 육지와 떨어져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느낌은 섬사람들 모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원초적인 외로움이다. 섬이 고향이 아닌 잠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다 떠날 사람들에게 그 외로움은 더하다. 하현달 어스름할 때 소쩍새는 울고, 개구리 울음소리 먼 빗소리처럼 아득히 들려오는 밤이나 혼자서 바닷가에 앉아 낮게 찰싹대는 파도소리를 반복적으로 듣고 있노라면 낭만보다는 외로움이 앞선다. 섬을 떠나는 배를 보면 문득 그리움에 젖는다. "내일 집에 가기는 틀렸네." 구씨 아저씨가 싱그레 웃으며 한숨쉬듯 말한다. 어제 초저녁부터 질금거리던 비가 한밤중이 되면서 굵어지더니 이른 아침에야 개었다. 이곳 섬에서 비가 내린 후면 바람이 분다. 학교 옆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날카로운 금속성을 내면 바다가 칼끝처럼 일어서고 폭풍주의보가 내린다. 빗물에 씻긴 연둣빛 감잎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바람에 떤다. 물기가 남아 반들반들 해진 이파리는 싱싱하다 못해 찬란하다. 아침식사를 하고 교회가 있는 언덕에서 바다 쪽을 보니 멀리 태안 반도가 보인다. 비에 씻긴 후 날이 개면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충청도 땅 건물이 하얗게 보인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휘둘리고, 갓 심은 어린 모들이 물에 잠길 듯 머리를 내밀고 흔들리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황새 몇 마리가 낮게 날다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서포리쪽 산너머로 사라진다. 머리가 시리도록 깨끗한 아침이었다. "날씨 한 번 끝내 주는 구만" "날씨는 끝내 줘도 바람불어 배가 안 뜨니 어쩌나 이잉" 홍 선생과 구기사가 나란히 걸으면서 노랫가락처럼 주고받는다. 그 뒤를 나, 최 선생, 김 선생이 따라 걷는다. "이번 토요일에는 친구 결혼이라 꼭 나가야 하는 데"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지난 주말에도 일직이라 못나갔잖아. 이번에는 꼭 나가야 하는데 날씨가 왜 이 모양이야." 김 선생과 최 선생이 똑같은 억양으로 투덜거린다. 한 달에 두 세 번, 주말이면 집에 가는 낙이 사라져 이제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금요일이면 다음 날 일기에 대해 모두들 예민해진다. 배가 뜨는 토요일 오후 4시. 부둣가는 모처럼 사람 사는 곳처럼 법석댄다. 주차장과 길옆에는 섬을 가로지르는 두 대의 마을 버스와 손님을 맞으려고 나와 있는 민박 집 봉고차들, 물건을 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소형트럭들,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기 위해 나와 있는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다. 배를 타기 위해 나와있는 사람들 외에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배웅하거나 맞기위해 나온 사람들, 그냥 구경나온 사람들, 부둣가 옆에 생선이나 게를 파는 아줌마들, 아이들이 붐 빈다.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은 열차나 버스의 출발과는 다른 가슴 벅차고 설레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소야도를 스치듯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섬에는 어울리지 않는 크고 늘씬한 여객선이 나타나면 부두에도 사람들의 가슴에도 조용하지만 묵직한 술렁임이 인다. 섬에서는 누군가가 오고 가는 것이 비록 길지 않은 하루 이틀의 기간이라도 예사롭지 않은 거동인 것이다. 늘 기다리는 마음이 이곳엔 있다. 그리고 늘 떠나고 싶은 충동이 있다. 그래서 섬은 외로운 것일까. 자주 오가는 뱃길이지만 내게는 항상 새롭다. 나는 항상 창가에 앉는다. 덕적도에서 연안부두까지의 뱃길을 즐긴다. 이 시간을 위해 섬에서의 불편함이나 외로움을 견딘다해도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이 뱃길은 아기자기 하다. 소약도를 옆에 두고 배는 달린다. 시속 70 킬로미터의 속도로, 조금 가다보면 또 섬이 있다. 이작도. 배는 달린다. 제법 망망 대해, 바다 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등대가 있는 작은 섬이 보이고 자월도, 영흥도, 영종도가 보이고 10여분 후면 정박해 있거나 어디론지 떠나는 큰배들이 보인다. 인천 연안부두가 보이고 멀리 고층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연안부두에 내려 개찰구를 빠져 나오면 섬과는 다른 풍경 앞에 아, 집에 왔구나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섬이나 바다와는 다른 풍경들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도 금새, 시끄럽고 혼잡한 도시의 모습이 정답게 느껴진다. 이 혼잡한 도시 저만큼 어딘가에 내 집과 가정이 있기에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온 것이다. 고향이 농촌이고, 섬과 바다의 자연을 좋아한다고 해도 나는 어느새 도시인이 되고 말았구나 하는 느낌이 새롭다.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면 문 앞에서 내내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듯 막내딸이 문을 열고 내게 안겨 매달린다. 매달린 내 딸의 무게만큼 가족과 만난 행복에 젖는다. 일요일 오후 3시에 덕적도 행 여객선은 연안부두를 출항한다. 점심 먹고 곧 가방 싸고 2시에 집을 나선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혹여 배 시간에 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잠자는 시간은 빼고 열 시간도 안 되는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70 킬로미터의 뱃길을 오가야 하니 한편으로는 번잡스럽기도 하고, 오고가는 시간과 만만치 않은 배 삯 만 허비하는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주말에 배를 타고 집에 다녀오는 여행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섬에 도착하여 다시 썰렁한 관사의 작은방에 들어서면, 갓 떠나온 내 집의 아늑함이 떠나올 때 흔들어 주던 딸애의 작은 손만큼 아쉬워 진다. 서포리 쪽 하늘에 구름이 몰리고 그 구름의 바람과 함께 산마루를 스치듯 움직이자 바람이 불기시작 한다. 바다가 칼끝처럼 일어섰다. 바람은 이튿날까지 그치지 앓고 불어댔다. "오늘 또 소야리 애기들 못 나오겠구만" 공문을 분류하던 교감 선생이 창 밖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올해 1월에 중간 발령을 받고 부임한 교감선생은 아이들을 애기들이라고 부르며 아끼는 자상하면서도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가 지칭한 소야리 애기들은, 역시 올해 폐교된 소야 분교 아이들 네 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야리 아이들도 한 달에 삼십 만원씩 보조를 받고 배를 타고 이곳 덕적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 걸음으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배를 타고 다시 학교버스를 타고 와야한다. 오늘처럼 바람이 거세고 폭풍주위 보가 내리면 그나마 학교에 오지 못한다. 유치원 한 명, 그 누나인 삼학년 여자아이, 내가 담임한 이학년 남녀 각 한 명씩. 모두 네명이 통학을 한다. 이들이 학교에 오고가는 어려움을 자세히 알려 된 것은 이곳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였다. 통폐합이 한창 추진되고 통폐합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초여름에 어느 방송국에서 소야리 아이들에 대한 기획 취재가 있었다. 얼마 후 그 내용이 방영되었다. 카메라는 주로 유치원에 다니는 광태 남매에서 맞춰져 있었다. 특히 광태 남매는 부모 없이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고 있다. 광태 남매말고도 이곳 초등학교에는 부모의 이혼이나 부모 중 어느 한쪽이 가출을 했거나, 아니면 부모 또는 부부 중 한쪽이 인천에 나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늙은 조부모나 편부, 편모 슬하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에 일어나는 모습,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배 터까지 가는 모습 등을 보여주었다. 작은 학교를 없애고 본교로 통합되어 겪게되는 아이들의 힘든 하루 일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학교공부가 끝나면 진리 부두에서 소야리로 가는 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 오후 4시경에 배를 타고 간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때가 된다. 그 어린것들이 이른 새벽 집을 나서서 저녁때서야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터인 선착장은 이들에게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아이들이야 노는데 정신이 팔려 시간가는 줄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들을 기다리는 어른들 조바심이야 오죽하겠는가. 언젠가 오후에 들어오는 배로 오는 학교 화물을 가지러 나갔다가 유치원생인 광태가 물이 빠져나간 선착장 아래로 떨어진 사고를 우연히 목격했다. 5 미터가 넘는 선착장 아래는 크고 작은 바위투성이였다. 다행히 돌이 없는 곳에 떨어져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학교공부가 끝나고 광태는 소야리 2학년 어이들과 놀면서 배를 기다린다. 간식으로 빵을 먹으며 선착장 난간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진 것이었다. 그래도 입안에 들어있는 빵을 우물거리며, 놀라고 서러워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광태의 볼이 눈물과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오후 6시가 되면 언덕의 교회아래 하숙집으로 간다. 하숙집이라고 하기보다는 아침저녁 하루 두끼의 식사만 하는 우리들 전용 식당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교감선생과 성 선생은 자취를 하고 나머지 다섯 명은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이곳은 초등학교 쪽에서 중고등 학교로 넘어가는 언덕 위, 교회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방 세 개, 주방하나. 그 중에서 가장 큰 안방이래야 4인용 밥상 두개 붙여 펴놓으면 겨우 대여섯 명이 붙어 앉아 식사 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이 집에는 우리뿐 만 아니라 중고등 학교 교사 5명, 지서 순경 3명, 보건소 의사 3명이 식사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학부형이기도 한 수신이 엄마와 아빠는 덕적도의 착하고 똑똑한 부부의 모델이라고 표현해도 그르지 않을 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유머와 센스가 있는 수신이 엄마와 성실하고 순박한 수신이 아빠는 모두 덕적도 고향이고 같은 덕적고등학교 출신이다. 수신이 아빠는 면사무소 소속의 행정선 기관장이다. 방이 비좁아 3, 4 교대로 식사를 해야 하는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는 아내를 도와 상을 처리고 음식을 준비한다. 지서 순경들, 군 복무로 와있는 보건소 의사들, 중고교 교사들과 함께 어울려 하는 식사시간은 객지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서로 우의를 다질 수 있는 안락한 장소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모두들 교무실로 모인다. 밀린 일도 하고, 잡담도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바둑도 둔다. 초등학교 관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용 거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항상 이곳으로 모인다. 구씨 아저씨가 주말에 울도에 다녀오면 으레 생선이나 소라 등 해산물을 들고 온다. 그런 말이면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진다. 이런 술자리엔 우리들이 부러워하는 유치원 김 선생 부부도 참여한다. 남편인 고 선생은 중학교 국어 선생이다. 초등학교 3, 4학년에 다니는 아들 둘이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교장 관사에서 살림을 하고 있다. 통합된 초중고교 교장은 중고교 교장 관사를 사용하고, 이곳 교장관사는 그들 네 식구가 살림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안주 준비는 늘 그 집에서 한다. 고 선생은 고향이 제주도로 같은 남자라도 반할 만한 선량한 인상과 산뜻한 매너를 지닌 매력적인 40초반의 남자이다. 오늘도 아내인 김 선생과 함께 술안주와 술잔 등을 챙겨 가지고 왔다. 나는 이곳을 `덕적싸롱'이라고 이름 붙였다. 신변접기로부터 교육이나 정치토론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간다. 우리들에게는 이곳이 밤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아늑하고 유쾌한 유일한 휴식처였다. 소주잔이 두 어순 배 돌고 취기가 거나해질 즈음 마침 텔레비전에서 도서벽지 학교 통폐합에 대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연평도의 어느 분교가 폐교되어 그곳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육지에 있는 학교로 가야하는 상황을 집중 취재한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어머니의 인터뷰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망막한 표정의 섬 아낙네의 얼굴이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구씨 아저씨가 삿대질을 하듯이 손가락을 흔들어 가며 흥분한다. "저것 봐, 저거 이. 어띠키 조처럼 똑같은가 이. 나리네 판 났구먼,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예사롭지가 않다. "지난주에 집에 갔더니, 나리 애비 난리더라구. 오랜만에 인천에 나가 새끼들 보구 왔는디, 애들 얼굴이 반쪽이 됐더라구 술처먹구 난리를 치는디, 거참 뭐랄 수도 없구. 둘 다 인천이 싫다구, 울도로 도루 오것다구 떼를 써서 그것들 달래놓구 혼자 배타고 오면서 깡 쇠주를 두 병이나 마셨다구 하더만." 구씨 아저씨는 두어 진술에 취한 건지 아니면 열을 받아서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들 한마디씩 한다. 술잔이 돌수록 도도해진 기분으로 실컷 욕을 해댔다. 일본에서는 학생이 한 명인 곳에도 학교가 있다는 내용이 방영되고 있었다. `한명의 학생이라도 있으며 어디에도 학교는 존재합니다'라고 말하는 일본인 교장의 멘트를 끝으로 방송은 끝났다. 덕적싸롱에 모인 사람들은 그 일본인 교장의 마지막 말을 묘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뒤섞인 기분으로 되씹으며 술자리를 끝내고 관사로 흩어져 갔다. 짙은 어둠 속에서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어느덧 여름방학이 지나고 개학이 되었다. 2학기부터 초등학교는 폐교되고 중고등학교로 통합되어 이사를 가야한다. 거의 일주일 동안 이사준비를 했다. 작은 학교지만 짐은 의외로 많다. 소야도, 울도, 지도, 도갑, 서포리, 면신 등 이미 폐교된 분교에서 보내진 학습자료와 사무용 기기들이 강당과 작은 창고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것들을 넣어 둘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그 많은 자료와 기기들을 창고나 빈 교실에 쌓아 두고 당장 필요한 것만 추려서 이삿짐을 쌌다. 도서벽지 학교 책보내기 운동으로 보내온 많은 아동용 도서와 교육 관련서적들, 풍금, 선풍기, 난로 학습자료, 체육시설 등 많은 것들을 두고 갔다. 그렇다고 팔아치울 만한 것도 아니고 또 그럴 수도 없었다. 그것들은 폐교된 학교의 잔해로 유령처럼 그곳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교사들은 연실 투덜대며 짐을 싸고 날랐다. "원 여기 버려 둔 물건만 가지고도 웬만한 학교 하나 운영하고 남겠네" "아니, 왜 이런 별장 같은 학교 없애고 더부살이를 가야하나, 그것도 조잡하게 지은 조립식 건물로" "한심한 일이지. 이런 아늑한 곳이 이 섬 어디에 있어. 왜 멀쩡한 학교 없애고 황량한 바닷가에 돈 처들이며 궁색하게 교실 짓고 옮겨야 되느냐고." "나도 그게 이해가 안돼. 통폐합이야 결정된 거니까 우리가 뭐라고 말해야 소용없지. 그렇더라도 행정적으로만 통합하고 학교는 그대로 두고도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잖아. 교장 교감은 한 명씩 두고, 기능직도 한 명이면 충분하고 행정실은 어차피 중고교에 있었으니 그대로 운영하면 충분한데, 돈 들여 교실 짓고 우리보고 들어가라니 이게 무슨 짓이냐 말야." 평소에 말이 적고 과묵한 홍 선생이 얼굴을 찌푸리며 길게 말한다. "맞아, 통폐합의 당위성 어쩌구 하지만 실은 순전히 경제 논리만 있는 거야. 교실 새로 짓고 우리가 거기 들어가면 얼마나 돈이 남는다고." 학습자료를 꾸리고있던 최 선생이 땀을 씻으며 성 선생에게 묻는다. "거기에 교실 짓는 돈보다 폐교된 이곳 대여하거나 팔면 돈이 남나보죠?" "흥, 이까짓 섬 땅값, 얼마나 가겠나. 그리고 누가 이걸 사나. 새로 교실 짓는 게 문제가 아닌기라. 선생 수 하나라도 줄이고, 기능직 한 사람 줄이고, 이런저런 관리비 좀 줄이자는 거지. 순 행정부 예산 수판 놀음 이제." "말하자면 인건비 줄이기네요." "그렇지, 이제 바로 교육개혁의 핵심인 거라. 언제는 낙도 분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희생, 봉사 어쩌구 하더니 IMF다 하니까 무언가 가시적으로 보여주려고 정년 단축이네 봉급 반납이네 하고 수판 질만 하고 있는 거지. 땜빵이지 뭐, 땜빵. 큰 구멍 막을 생각은 안 허고 임시 방편으로 작은 구멍만 땜질하는 거야." 성 선생도 무엇이 복받치는지 열변을 토한다. 사설은 끝이 없다. 이삿짐 싸고 나르는 틈틈이 성토는 이어진다. "교육은 백년 지 대계 어쩌구 하면서 이것들은 몇 년 앞을 못 봐. 두고 보라지, 무더기 퇴임으로 언제처럼 교사가 모자라 교사 급조 현상이 오고 말 테니까." "요즘은 언론도 쑥 들어갔어요. 언제는 신문 사설에다 텔레비전 방송이 소규모 학급 통폐합, 교육개혁에 대한 기사가 넘쳐나더니." "언론? 한 때 뿐이야. 유행 같은 거라고,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대중가요 같은거야." "하긴 그래,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양발 걸치는 시키들. 몇 만원자리 촌지에 스승의 날 양말 몇 켤레 선물 받은 것 가지고 서방질 한 년 빤쓰 뒤집듯이 까 발라더니 이제는 또 슬슬 그 빤스 깔고 앉아 고스톱 치는 놈 마냥 고냐 스톱이냐 앞뒤만 재고있어." 언덕 위 교회지붕 아래로부터 학교 운동장으로 넘어오면 안개는 어느새 학교 뒤쪽 고개 넘어 북리 어항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새들이 낮게 나르며 빙빙 돈다. 언덕 위 교회 십자가가 안개 속에 떠 보인다. 아마 교회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이곳 초등학교는 안개 속에 잠긴 별장처럼 보였으리라. 9월 1일자로 덕적초등학교은 사라지고 전국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든 덕적도의 유일한 덕적 유초중고교가 탄생했다. 조용하고 썰렁했던 중고교에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으로 학교가 되살아난 분위기였다. 새로 식당이 생겨 단체급식을 하게되고, 학생수가 증가하여 학교예산도 전보다 풍족해진 중고교 교사들은 화기가 돌았지만 초등학교 교사들은 뭐 씹은 표정들이었다. 더부살이하러 들어온 기분이었다. 새로 지은 교실이 조립식 건물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곳에는 초등학교 교사들이 이주할 관사가 없어 폐교된 초등학교의 관사에서 출퇴근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교육과정이 다르고 학교 운영 방식이 다른 두 개의 이질적인 학교 집단이, 억지로 하나로 통합되어 한 지붕아래 공존해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이사를 끝내고 며칠동안은 내가 `덕적싸롱'이라고 명명했던 교무실로 초등학교 관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텅 빈 교무실엔 몇 개의 낡은 의자와 책상이 남아 있고, 활용하지 못하거나 버려 둔 사무용 기기나 책들이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사람이 떠난 집은 금새 흉가로 변한다더니 정말이었다. 온기는 사라지고 싸늘한 냉기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폐교되어 텅 빈 교실처럼 흉하고 을씨년스런 곳도 없다. 며칠이 지나자 아무도 그 곳에 가지 않게 되었다. 항상 밤 12시 넘어 까지 환하게 켜져 있던 덕적싸롱의 불빛은 사라지고 대신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음산한 어둠이 축축한 바람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며칠 사리에 덕적싸롱은 우리들 기억에만 존재하는 추억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이사간 학교는 바로 옆에 바다가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학교건물이 서있고, 오른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운동장과 바다 사이에 가로 놓여 있다. 그곳을 내려서면 곧바로 바다다. 학교 터로는 최고인지도 모른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나가 달리기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면서 육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멋진 수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람 부는 날이면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굉장하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먼지가 날릴 때는 눈을 뜰 수 없다. 운동장에는 유초등학교 아이들이 즐길만한 놀이기구 하나 없다. 그네 시소 정글짐 철봉 미끄럼틀 농구골대 등 많은 체육시설을 폐교된 초등학교에 두고 왔다. 모두 옮기기도 힘들고 옮긴다 해도 그것들을 모두 설치하기에는 운동장이 좁았다. 거기다가 초등학교 운동장은 물 빠짐이 좋았는데 이곳은 물이 쉬이 빠지지 않아 비가 내리면 며칠동안 운동장에 물이 괴어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곳은 학교 터보다는 휴양지나 해수욕장으로 개발하면 안성맞춤이라는 것이 교사들의 지적이었다. 이곳은 휴양지로 개발하고 먼저 초등학교 자리에 교실을 지어 중고등학교가 이사를 왔더라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더 좋았을 거라는 거였다. 그나저나 모두 물 건너간 얘기였다. 개혁이란 자주 결정권자의 필요에 따라 자기편리 위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니까 말이다. 이사가 끝나자 곧이어 정년 퇴임식이 있었다. 부임한지 1년 반만에 퇴직하는 교장과 울도 분교가 폐교되자 이곳에 와 6개월을 근무한 구 기사가 퇴직하는 것이다. 정년 단축이라는 된서리를 맞고 그 첫 케이스로 학교를 떠나는 이들을 위해 조촐한 퇴임식 행사가 있었다. 교장 퇴임 식은 그래도 식장을 꾸며 교실 두 개를 터놓은 임시 강당에서 갖출 것 다 갖추고 거행되었다. 학부형들과 지역유지들과 기관장들이 초대되어 제법 성황리에 거행되었다. 정년 단축으로 교장이 된지 일년만에 떠나는 노 교장의 눈가엔 잔잔한 애수가 어렸다.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는 통합된 초중고교생들의 노래를 들으며 서있는 그의 지그시 감은 눈까풀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구 기사의 퇴임식은 교장과 같이 거행되지 않았다. 일부 교사들이 교장 퇴임식과 함께 하기를 주장했지만, 그것도 관행인지 결국 구기사의 퇴임식은 이튿날 따로 식당에서 간소하게 이루어졌다. 그것도 우리 초등교사들이 앞장서서 이것저것 준비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전 직원이 참가한 가운데 감사패와 약간의 위로금이 전달되고 회식이 있었다. 울도에서는 그의 아내와 나리 부모가 연락을 받고 나와 있었다. "내야 뭐, 울도에 가서 마누라하고 남은 여생 보내면 되는 겨. 걱정없지 뭐." 구기사가 내게 술잔을 건네주며 예의 그 볼우물이 깊게 패는 그 큼지막한 웃음을 흘리며 한 말이었다. "내가 마지맥으루 울도 분교는 완전히 웁써진겨. 이제 나리 애비하구 낚시나 하면서 살아야겄지. 나두 원래는 어부 아닌감." 내 손을 잡아주며 웃는 그 웃음 속에 반평생을 울도 분교와 함께 하고 이제 폐교되어 사라진 분교와 같이 학교를 떠나는 쓸쓸함이 진한 바다 빛깔처럼 어려 있었다. 구 기사는 예의 그 사람 좋은 넉넉한 웃음을 흘리며 이 사람 저 사람이 건네 주는 술잔을 받으며 괜히 황송해 했다. 술자리를 끝내며 교감 선생이 구 기사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부탁했다. "고마워유. 내 울도에 가서두 잊지 않을 규. 선생님들 내내 건강하시구, 힘들 내세유. 쬐끄만 핵교 울도에만 있다가 그래두 여기 큰 핵교 와서 육개월 근무한거 너무 좋았슈. 고마워유." 하룻밤 더 묵으며 술 한잔 더하고 떠나라는 우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구 기사는 착하고 순해 보이는 그의 아내, 나리 부모와 함께 학교를 나섰다. 내일부터 폭풍주의보가 내린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마중 나온 우리들에게 아는 체를 하며 꾸벅 인사를 하는 나리 아빠는 그사이에 더 초췌하고 구부정해 보였다. 구 기사를 태운 소형 쾌속선은 서쪽으로 넘어가는 석양빛을 옆으로 비껴 받으며 멀리 사라져 갔다. 울도 분교, 소야 분교가 사라지듯이. 그 날 저녁 늦게 비가 내렸다. 섬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바람은 산기슭 소나무 숲을 휘몰아치며 거세게 불었다. 산기슭 소나무의 마른 가지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숲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금속성을 낸다. 비에 젖은 섬이 온몸으로 울고 있었다. 교회 언덕아래 혼자 사는 할머니의 작은 집 좁은 창으로 흐린 불빛이 떨리듯 간신히 새어 나오고 있었고, 덕적싸롱의 깨진 창안으로 세찬 빗발이 들이치고 있었다. 인천연일학교 교사
진주만 공습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를 미국에 안긴 동시다발 항공기 테러는 과연 누구의 소행일까. 극단적 반미(反美)를 주장하는 이슬람 과격파 조직의 소행으로 보는 관측이 가장 유력하다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왜 테러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그들은 왜 그토록 자유를 부르짖을까. 또 왜 그들은 그토록 미국을 싫어하는 것일까. 이슬람! 그 실상을 파헤쳐 줄 책들을 모았다. 이슬람: 이슬람 문명 올바로 이해하기 이슬람은 종교체계만이 아니라 삶과 종교가 일체를 이룬 독특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과 그들의 종교적 율법간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치, 경제분야에서 뿐 아니라, 전쟁, 협상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그들이 항상 이슬람의 깃발을 앞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며, 정교(政敎)분리의 세속적 가치관에 익숙한 서구인들이나 우리가 이슬람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슬람 세계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지난 50여 년 동안 이슬람권과 첨예하게 대립해 온 미국중심의 사고와 인식의 틀을 통해 이슬람 세계를 이해해 왔으니….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말의 허구성, 지하드와 이슬람원리주의의 실상, 팔레스타인 분쟁의 전개와 해결방안, 소수민족 분쟁과 유혈충돌의 배경, 이슬람법의 내용, 일부다처와 여성억압의 문제, 문학과 예술활동, 무슬림들의 음식과 금기, 관혼상제, 이슬람 국가를 움직이는 지도자들, 이슬람지역의 세계문화유산 등 이슬람과 이슬람 문화에 관한 거의 모든 주제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희수 외/ 청아출판사 이슬람세계의 정치와 국제관계 이슬람 정치체계나 정치사상을 어떤 다른 정치체계에 결부시켜 그 유사성을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슬람 고유의 특징과 성격 때문에 서구적 정치학 방법론이나 이론적 분석틀로 이슬람 세계의 정치와 국제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생소한 이슬람의 문화론적 접근법의 논리구조를 요약·소개하고, 다른 종교들과의 비교를 통해 이슬람의 '의미 체계'가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코드를 밝혀내고 있다. 중동지역 주변의 국가와 민족들을 통해 이 지역 정치·문화 역사를 고찰, 현재 정치이슈가 되고 있는 중동평화문제 및 이슬람 세계의 정치와 국제관계를 그에 알맞은 시각으로 해석했다. 금상문 외/ 오름 죽어라! 그대가 죽기 전에 이슬람 문학의 꽃인 시(詩)와 수피 철학(Sufism 신비주의)의 중심 개념을 결합시킨 술탄 바후의 시집, '죽어라! 그대가 죽기 전에'. 이 금언은 선지자 마호메트의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가혹한 권유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행자들이 기필코 통과해야 하는 깨달음의 단계. 육체의 숨이 끊어지기 이전에 정신의 죽음을 이룩해야만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이 역설에 이슬람 신비주의 철학의 정수가 내장되어 있다. 수피 철학과 이슬람 시는 우리에게 낯선 형식이지만, 인간 영혼에 새겨진 물질 세계에 대한 집착을 죽여야 진정한 삶에 이른다는 메시지는 결코 낯설지 않다. 술탄 바후 저/재연 스님 역/ 문학동네 악마의 시(상·하) 납치당한 점보 제트기가 영국 해협 상공에서 폭발한다. 산산이 흩어져 떨어져 내리는 팔다리, 음료 손수레, 산소 마스크 등과 함께 두 사람이 바다를 향해 떨어진다. 한 명은 인도의 전설적인 영화 배우 지브릴 파리슈타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친영파이자 천 가지의 목소리를 가진 살라딘 참자였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은 각각 선과 악을 대표하는 지브릴과 참자의 대결과 갈등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무하마드에 대한 부정적 묘사, 그의 12명 아내에 대한 불경한 비유, 그리고 코란의 일부를 악마의 시에 비유한 것 등 신성 모독으로 비칠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 미래, 현실과 꿈, 신과 악마가 얼키고설키면서 매혹적인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진설하는 작가의 문학적 압도에 독자는 즐거운 목조임을 당할 수 있다. 20세기 최대의 필화사건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1998년 이란의 모하메드 대통령이 루시디 사형선고를 철회했지만 루시디 파문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이슬람 과격파들이 제시한 살해 현상금이 여전히 유효하고, 지난해 초에는 이란 외무부 장관이 작가 사면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뉴욕에 은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루시디는 지금 무사하기는 한 건지... 살만 루시디 저/김진준 역/ 문학세계사
그들이 고려로 돌아간 까닭은? 과거 무협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문파와 국가의 안녕, 명예, 인간의 도리, 혹은 복수 같은 커다란 대의명분을 위해 싸웠다. 그런데 '무사'의 주인공들은? 그들은 오직 집으로, 고려로 돌아가기 위해 싸운다. 중원을 가로질러 터무니없는 사투를 벌이는 동안 조국의 평화나 사신단의 임무 같은 것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오로지 고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들에겐 고려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정말 있었던 것일까.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찾아 떠나 보자. "길을 떠나온 자에게만 집으로 가는 그 아득한 길이 보일 것"이라고 영화 '무사'가 친절히 가르쳐 준 데로…. 1. 고려와 원, 그리고 명 1351년 오랜 볼모생활 끝에 귀국한 공민왕은 원의 지배에서 벗어나길 열망합니다. 그는 승려 신돈이나 성리학자들을 기용, 친원세력을 제거해 나가지요. 1369년엔 명과 국교를 체결, 원을 견제하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1372년 제주도로 말을 징발하러 간 명 사신이 몽골 출신 목동들에게 피살되면서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1374년, 고려에서 귀국하던 명의 사신들이 원 출신 김 의에게 살해되면서 벌어집니다. 이 행위를 실세였던 친원파 이인임이 사주했다고 의심한 명은 1375년 최원, 손천용, 전보, 김보생 등 잇달아 파견된 고려의 사신단 일행을 구금했습니다. 1378년 이들 대부분은 고려로 돌아왔지만, 손천용 사신단은 돌아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영화 '무사'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입니다. 2. 최정과 용호군 고려의 수도 개성을 지키던 중앙군은 2군6위. 그중 2군은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이들의 임무는 국왕과 왕궁경호였으며 그 숫자는 3000명 정도. 무과시험이 없었던 고려에서 장군 등 지휘부는 전통적인 무장집안에서 세습되거나 특별한 전공을 세웠던 사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1170년 무신쿠데타로 무인정권이 들어서고, 몽골-왜구-여진-홍건적 등의 잇따른 침략에 무장들은 실세 중의 실세였습니다. 그렇다면 약관 18세에 장군이 된 최정(주진모)의 하늘을 찌를 듯한 오만과 독단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런 그가 사신단의 정, 부사 모두를 비명횡사케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호위자인 자신이 죽음으로 책임져야할 줄 뻔히 알면서 죽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고려로 돌아간다? 실제로 최원 등은 고려로 돌아간 후 명의 첩자로 몰려 죽음을 당했는데... 그는 왜 그토록 고려로 돌아가려고 했을까요. 3. 진립과 주진군 고려 지방군은 중부이남의 주현군과 북쪽국경의 주진군. 북쪽국경인 양계-북계(평안도)와 동계(함경도)를 지키던 주진군은 잇따른 국경전으로 전쟁경험이 풍부했습니다. 진립(안성기)은 그런 북계지역의 대정(하사관급)을 오래 지낸 인물입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국경전투를 치른 그로선 경험도 없이 거들먹거리는 젊은 장군이나 중앙군이 눈에 가시였을 겁니다. 더구나 돌아가면 처형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하사관인 그가 상관을 죽이거나 중국 내로 도망치지 않고 그들을 도와 굳이 고려로 돌아올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4. 여솔과 노비 여솔(정우성)은 노비입니다. 그것도 솔거노비(주인집에 매인 노비)지요. 아무리 창술에 달통하고 주인에게 인간적 대접을 받았다지만 영화 속 여솔의 캐릭터는 노비로 보기엔 무리가 많습니다. 끊임없이 자유인을 열망했던 그가 고려로 돌아가야 할 이유, 어느 누구보다도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그는 왜 그 길을 가는 걸까요? 주인이 가니까 나도 간다는 '노비근성'? 5. 부용과 홍무제 명황제 홍무제는 냉혹한 공포정치를 폈습니다. 독재권력강화를 위해 개국공신을 포함 5만명이나 처형을 하고 금의위라는 비밀정보조직을 동원, 전 중국을 공포에 떨게 했지요. 그는 26명의 아들과 15명의 딸을 두었습니다. 아들에게 지방제후를 맡겼지만 자식조차 믿지 못해 감시인을 파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홍무제의 초상화를 보면 세상에 그런 험상궂은 얼굴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얽은 얼굴에 튀어나온 이마, 주걱턱에 쭉 찢어진 눈을 가지고 있답니다. 황후 역시 미모는 아니구요. 그렇다면 부용(장쯔이)공주는?!? 환상 속의 그대. 6. 사막 중원의 사막과 초원. 고려의 무사들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인간의 숨결보다는 자연의 거대함이 그대로 배어 나와 묻혀버릴 것만 같은 그런 초월적 공간 탓일까요. 영화는 구체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무사'가 바라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어딘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대한 노스탤지어인 것 같습니다. /서혜정 hjkara@kfta.or.kr
나의 잠재력 키워주셨던 김태영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 충북영동 산골의 범화초등교 3학년 어느 가을날 점심시간. 선생님께서 교탁에 놓고 나가신 바이올린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줄의 조정나사를 좌우로 돌려보았다. 그러자 바이올린 줄이 '뚝'하고 끊어졌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끝내고 나가시면서 "너희들 이 바이올린 절대 만지지 마라! 이 바이올린 줄이 얼만 줄 아냐? 황소 한 마리 값이야! 만지면 안 된다?!"고 엄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황소 한 마리? 큰일났구나! 우리 집에는 송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을 뿐인데…!' 일을 저지른 나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5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교실에는 잠시 긴장이 흘렀고 아이들의 시선은 번갈아 가며 나와 선생님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선생님께서는 바이올린을 보자마자 누가 그랬느냐고 물으셨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무거운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 울면서 선생님께 용서를 빌었다. "선생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용서해 주세요, 선생님!" 하다가 아예 나는 종아리를 걷고 선생님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께서는 창문 쪽을 향해 잠시 눈을 감으시더니 뜻밖에도 "알았다. 내가 더 잘못했구나! 그걸 여기다 놓는 게 아니었는데…" 하시며 한숨을 지으셨다. 나는 차라리 종아리를 몇 대 맞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는 나를 부르시더니 "괜찮다. 내가 대전에 가서 새 줄로 갈아 끼면 된다. 이게 그렇게 만지고 싶었냐? 응? 야, 이 녀석아! 앞으로 너희들을 계속 가르칠 악기니까 만지지 말라고 그런 거야. 황소 한 마리 값은 아니야, 놀랬냐?"하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죄송한 마음은 한량 없었으나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라는 말씀에 다소 마음이 놓였다. 사실 나는 3학년이 될 때까지 만해도 학습부진아였다. 그런 나를 방과후까지 부족한 공부를 돌보아주시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가르쳐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 주셨던 김태영 선생님. 그 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을 간절히 찾아뵙고 싶었다. 충북 충남 교육청에 문의도 하고 수소문도 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님이 계신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못난 제자의 만시지탄(晩時之歎)만 나올 뿐이다. 성명제 서울 삼정초 교감
지원 늘리고 주관부서도 일원화해야 `학교급식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급식으로 인한 피해학생이 올해 1학기 동안 무려 3684명이 발생하는 등 급식사고가 해마다 늘어나 학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피해학생은 늘어나지만 위생상태 점검결과는 오히려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 급식에 대한 불신감도 더욱 팽배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은 직영급식과 관련 업체에 대한 심사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12일 사단법인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가 `학교급식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이같은 논의가 벌어졌다. 내일여성센터 배정원 교육팀장은 "전국에 300여개의 위탁급식업체 난립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의 학교급식 지원 예산 확충을 요구했다. 그래야 학교나 급식업체에 시설비 및 운영비 투자 등으로 무리한 부담을 주지않는다고 설명했다. 배팀장은 따라서 "급식 위탁계약기간을 최소 3년으로 보장. 특별한 사유 없는 한 다시 3년의 재계약 가능토록해 급식업체가 시설비 투자 등에 따른 감가상각비를 소액으로 장기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팀장은 이밖에 ▲급식업체 적격 심사제 도입 ▲급식주관부처를 단일화해 급식관리 행정을 일원화 ▲학교급식법을 개정해 우리 농수축산물을 의무적으로 사용 ▲이에 따른 급식비 상승은 국고 지원 ▲영양의 균형을 인지하고 식생화 예절을 배우는 급식교육 등을 제안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모임 김지혜 사무총장은 "선정된 공급업체에 대한 사전 검품검수 감독 기능을 학교급식 사전검품검수위원회로 하여금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하고 인접한 학교의 그룹화를 통한 동일식단을 적용하면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른식생활건강만들기 뉴트리얼센터 김수현 소장은 "학교 급식은 준비없는 졸속 시행으로 문제가 야기됐다"며 "부모는 주부의 일을 덜어준 차원이 아닌 식생활 개선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하고 아이들은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는 등 식생활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시각의 개혁이 필요하다"도 지적했다. /임형준
eschool 무엇을 담고 있나 교과연구회 홈페이지 지원 회원간 정보 교환에 도움 17일 오픈하는 eSchool(eschool.kfta.or.kr)은 사이버 공간에서 모든 교사가 함께 가꾸고, 배우고, 누리는 `우리들의 학교'를 꿈꾼다. eSchool을 통해 교과연구회와 동호회 활동이 활성화되고 회원 상호간에 정보교환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구성=크게 `교과연구회'와 `동호회', `자료실' 그리고 `열린마당'으로 돼 있다. 교과연구회에는 현재 교총이 결성을 추진 중에 있는 교과연구회 홈페이지가 마련되고 동호회는 교원들의 취미나 친목을 위한 각 동호회홈페이지를 제공한다. 교과연구회는 6월말부터 교총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희망교과연구회 신청을 받아왔다. 이를 기초로 하여 교과, 범교과, 교육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교과연구회가 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교총은 교과연구회 활성화를 위하여 홈페이지 제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재정적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이미 eSchool 안에 결성된 교과연구회 외에 다른 교과연구회를 결성하는 것도 가능하며 각 교과연구회는 자체적으로 영역별, 지역별 조직을 구성할 수 있다. 현재 각 지역별 교과연구회들이 한국교총 교과연구회에 단체로 가입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교총은 일정수의 회원이 확보되면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임원진을 구성하고 한국교총 교과연구회로 등록시킬 계획이다. 열린마당은 회원들이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공간. 자유발언대, 교무수첩, 교직상담, 채팅 등의 메뉴가 제공돼 교육정책에 대한 의견과 교단생활의 느낌, 궁금증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물물교환과 공동구매 메뉴를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운영진은 회원들이 공동구매를 원하는 물품이 있거나 좋은 상품정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의견이나 자료를 제시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회원수가 많은 만큼 유리한 구매조건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자료실은 교과 및 교육정책 그리고 컴퓨터 활용에 필요한 자료들이 탑재될 예정이다. ◇회원가입=eSchool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상으로 이루어진다. 회원자격은 정회원의 경우 교총회원만 부여되며 비회원 교사나 학생, 학부모들은 준회원의 자격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교과연구회나 동호회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해당 연구회나 동호회 홈페이지에서 다시 가입신청을 해야 한다. eSchool 회원가입은 무료지만 교과연구회나 동호회의 경우 자체적으로 책정한 회비가 있을 수 있으므로 가입 전에 회칙을 잘 살펴야 한다. 문의=교육정책연구소 (02)577-7167
실업고교사 70% "퇴직 고려" 사기 저하·학생지도 곤란이 요인 한나라 이재오의원 1718명 대상 조사 실업계 고교 교사 대다수가 실업교육의 현실이 심각한 위기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70% 이상의 교사는 교직을 포기할 생각을 해 본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교육위 이재오의원(한나라)이 실업계고 교사 17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가 결과에 따르면 실업고교의 교육현실이 어느 정도 위기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90.8%의 교사들이 `심각하다'고 응답했으며 이 중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41.5%나 차지했다. 또 교직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면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부의 잘못된 교원정책으로 인한 사기저하(29.1%)'를 1순위로 꼽았으며 다음으로 `수업을 포기할 정도로 학생지도나 교육이 힘들어서(20.7%)', `실업계고 교사로서의 사명감 상실과 미래에 대한 좌절감만 커져서(17.4%)'의 순서였다. `그 정도로 고민한 적이 없다'는 응답은 22.0%로 나타났다. 이의원이 최근 3년간 실업계고 교사들의 퇴직사유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대도시인 서울, 부산, 대구교육청의 경우 전체 851명의 사직자 중 `명퇴이유'가 574명으로 67.5%이고 `개인사정 이유'가 121명으로 14.2%로 나타났다. 정부의 실업교육정책 개선의지가 어느 정도로 느껴지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교육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응답이 71.4%였는데, 관할 교육청은 59.8%로 상대적으로 다소 나은 평가를 했다. 교육부의 실업계고 육성대책 발표이후 학교현장의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78.0%가 `변화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고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공분야 취업률은 `30% 미만'이라는 답변이 41.7%로 가장 많았고 `절반정도'가 25.6%, `70% 정도'가 14.1%였으며 `거의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10.4%나 돼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기 전공분야대로 취업하는 비율이 절반도 안된다고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77.7%를 차지했다. 실업계고교의 운영체제 개편으로 인한 교원의 과부족 현상에 대해서는 `교원의 희생은 없어야하고 현 체제에서 방안을 강구해야한다'는 반응이 64.3%로 압도적인 반면 `교원들이 희생하더라도 실업교육을 위해 반드시 운영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반응도 12.4%가 있었다. 운영체제 개편시 자신이 축소대상이 되었을 경우 어떤 방법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복수·부전공 자격 연수(49.1%)'를 가장 먼저 꼽았고 다음으로 `우선권을 부여하여 시도간 혹은 공사립간 교류(30.6%)'를 원했다. `명퇴신청 수용과 지원확대'는 9.3%에 불과했다. 진학기회 확대를 위한 2년제, 4년제 대학의 특별전형 권장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하며 확대해야 한다'가 67.5%로 가장 많았고 `실업계고의 존립기반이 흔들리므로 반대' 의견은 12.3%에 불과했다. 실업계고의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제고 노력은 어느 정도인지라는 물음에는 `부족하다',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라는 부정적인 응답이 60.5%로 나타났고 정부의 노력에 긍정적인 반응은 18.0%에 불과했다. /임형준 limhj1@kfta.or.kr
모인소프트 i-wapper 개발 학교에서 메일 발송과 조직 업무를 효율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됐다. (주)모인소프트가 출시한 i-wapper 3.0은 교사 및 학생 상호간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메일 기능, 학급별·동아리별 교사간 그룹/멤버 등록 기능, 주소 공유기능, 숙제·성적 관리 및 검색 기능을 통해 교사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유무선 메일 통합패키지. 특히 전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대용량 이메일을 발송할 수 있으며 학교 내부 사용자들사이에 메모나 공지를 보낼 수 있는 기능인 쪽지 기능과 웹에 개인의 하드디스크를 보유하는 웹 사물함 기능, 전화면 템플릿화로 화면을 자유자재로 변경하는 기능 등을 제공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구축에 다양한 도움을 준다. i-wapper3.0은 무선인터넷을 위한 표준 프로토콜을 모두 지원해 단말기의 종류에 구애받지 않는 호환성을 가지고 있다. 또 기능들을 모듈별로 개발돼 기존의 메일서버를 갖추고 있는 학교의 경우 필요한 기능만 별도 구매할 수 있다. 회사측은 현재 신목초등학교와 잠실초등학교에서 i-wapper을 적용할 예정이다. 문의=(02)3480-6838
전국 중고교에서 컴퓨터 교과를 담담하고 있는 교사중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학과를 전공한 교사는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국회 교육위 김경천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컴퓨터 교과 담당 교사는 총 4368명으로 이중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학과를 전공한 교사는 1087명에 불과해 전체의 24.9%로 나타났다. 또 우리 나라의 경우 1차 교육정보화 사업기간 동안 콘텐츠 개발 예산은 연평균 3%대의 예산에 머물렀으며 2005년까지 2단계 교육정보화 추진 예산 중 교육용 컨텐츠 개발에 책정된 예산도 1667억원으로 5년간 총예산 3조 2,874억원의 5.1%에 불과했다. 이는 이웃 일본의 경우 2005년까지 전국의 모든 학교에 컴퓨터 설치 및 인터넷 접속가능 환경을 구축한다는 목표아래 '교육의 정보화 프로젝트'를 총리직속으로 시행하면서 2000년도 총예산 150억엔의 22%인 33억엔을 교육용 컨텐츠 개발예산으로 배정한 것과 대조를 보였다.
서울교련(회장 최재선)은 11일 학내분규가 계속되고 있는 인권학원의 임시이사 전원을 교체하라고 서울시교육청에 요구했다. 서울교련은 성명에서 "편파적인 이사회 운영으로 새로운 분쟁을 야기시킨 이일균 이사장의 사퇴를 환영하지만 학원정상화를 위해서는 상임이사 하승수씨를 비롯한 편향된 임시이사 전원이 함께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교련은 또 "임시이사의 일방적인 학원운영과 시교육청의 미온적인 대처로 사태가 더욱 악화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인권학원 문제의 근본적이고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인사로 이사진이 교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총도 12일 인권학원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려면 임시이사진의 교체와 적법절차 등을 결여한 채 부당하게 선임된 부적격 관리직의 사퇴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교총 관계자는 "학원정상화를 위해 파견된 임시이사진이 징계처분을 받은 관리직을 동일사유 등으로 직위해제하고 제청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특정단체 및 학교 인사들을 관리직에 임용함으로써 새로운 학내 갈등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6월 인권학원에 대한 복무감사를 통해 수업거부·학생선동·감사방해 등의 위법사항이 적발된 전교조 소속 교사 70명의 징계(중징계 5명, 경징계 15명, 경고 50명)를 요구했으나 현재까지 해당 교원들에 대한 징계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한 老교사가 새 학년을 앞두고 겪은 경험담이다. 겨울방학 중 어느 날 老교사는 기차 여행을 떠났다. 출발 직후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여러분들을 목적지까지 편히 모시고 갈 기관사 김 아무개입니다. 저의 운행기록은 총 ×십만 킬로미터이며 운전경력은 30년입니다…목적지까지 안전운행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老교사는 이 방송을 듣고 기발한 발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잊혀지기 전에 급히 쪽지에 생각한 문구를 적었다. `학부모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자녀들은 1년간 맡게될 ×××입니다. 저의 교직경력은 총 30년이며 수업시간 총 수는 3만 3000시간입니다. 저의 주특기는 ××과목이며…앞으로 여러분의 자녀를 열과 성을 다해 사랑으로 가르치겠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老교사는 이런 발상을 두 사람에게 들려줬다. 먼저 후배교사의 반응은 이랬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학부모들이 좋아할까요? 대부분 젊은 교사를 좋아하잖아요. 선생님처럼 나이 많고 머리가 흰 분은 아주 싫어한데요." 다음은 의사 친구의 말이다. "야! 참 멋있는 아이디어다. 지금 당장 가정통신 해 봐. 호응이 대단할 거야. 왜냐하면 환자들은 젊은 의사보다 경험이 많은 의사를 원하거든. 네가 만약 수술을 해야 한다면 초년 의사보다 경험이 많은 의사를 찾지 않겠니? 생명이 달린 문제니까 말야." 老교사는 의사 친구에 말에 용기가 났지만 끝내 가정통신을 하지 않았다. 오랜 경험과 경륜을 높게 평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나이가 많으면 새로운 학습지도 방법을 모르고 신체활동도 활발하지 않다는 선입관을 학부모가, 사회가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老교사의 경험담은 교직사회가 안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이 많은 교사는 점점 홀대받고 있다. 오랜 경험과 경륜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며 사랑과 정성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는 老교사의 노력은 평가절하 되고 있다. 하지만 교육현장을 들여다 보라. 오늘도 푸념을 뒤로한 채 교육을 위해 교실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老교사들을 얼마든 만날 수 있다.
신남호 인천체고 교사·본지 함께하는 교육 자문위원 민주당 임종석 의원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학교폭력 중재위원회 설치와 교육 및 치료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해 법제화를 시도할 전망이다. 또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청소년 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희망적이다. 이는 학생인권에 대한 자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제적 구속력을 발휘하는 법적 장치는 내면적 교화보다 지속성이 약하다. 동시에 이미 `청소년 보호법'이 시행된 지 일년이 지났지만 청소년들은 그 법이 자신들의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법제화보다는 또 다른 관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왕따,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사회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가정에서 학교를 거쳐 국회까지 민주적 생활양식과 논리보다는 힘에 의해 지배되는 지시와 복종의 메커니즘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은 채 무형의 기성 권위에 압도된다. 그리고 그 돌파구는 역시 더욱 약한 자에 대한 가해로 나타난다. 따라서 가정, 학교, 사회에서 효율성과 힘의 지배보다는 다양성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적 생활양식을 실천해 가는 세심한 배려가 요청된다. 교육적으로 볼 때 청소년 폭력의 해법은 역설적이게도 적성교육을 위주로 하면서 인성적 배려를 개입시킬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인성교육 프로그램 그 자체만 강조할 경우 학생들은 싫증을 느끼기 쉽다. 적성교육의 경우, 예컨대 영화에 열정을 불사르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고 치자. 이들이 영화감상, 영화제작, 제작팀간의 토론에 참여하는 그 적성탐색의 시간에 이미 그 학생들의 정서는 순화되고 있다. 동료학생에 대한 왕따와 폭력적 대우가 얼마나 무가치한가를 잠재적으로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동료애를 느끼게 된다. 나아가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보게 된다. 또 자기실현과 직업으로 연결되는 전망이 보일 때, 학생들의 내면세계에서 잠자는 인간사랑과 자연사랑의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교도소 재소자들이 목공 등 기술교육을 받는 과정자체가 사회적응 훈련임과 동시에 인성적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임을 알고 있다. 적성교육은 곧 공교육을 특성화 전략으로 내실화 시킴으로써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에 길을 열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적성교육에 수반되는 학교측의 인성적 배려로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학생자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의 학생들은 두발과 복장에서부터 수업시간표를 스스로 짜기에 이르기까지 학교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거기서 근본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학생들의 소외감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적개심, 그리고 폭력에의 의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이 자체 토의를 거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허용할 경우 학생들은 자신은 물론 타인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긍정적 자아개념을 형성한다. 학생을 학교와 교육의 중심에 놓는다는 상식의 회복에는 교사를 포함하여 교육당국자들의 인내와 결정권을 양보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유흥업소를 포함한 자영업자, 공직자, 기업인들이 교육적 역할을 분담하지 않으면 학교의 적성 및 인성적 배려의 효과는 반감된다. 사회의 유관기관들이 학생들에 대해 적성과 인성에 대한 체험학습과 위탁교육, 학교와 사회의 학점 및 학생평가 자료를 적극 교환할 필요가 있다. 학교와 사회의 벽을 제도적으로 완화시키는 노력이 요망된다. 요컨대 적성교육은 배우고 싶은 욕망에 자유를, 학생자치는 말하고 싶은 욕망에 자유를 허용함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접근이 폭력의 유발요인을 교육적이고도 원천적으로 불식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9월 3일자 한국교육신문 보도에 의하면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의 부교육감 중 전문직은 2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일반직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식견이 높고 행정력이 탁월하신 분들이겠지만 한 시도의 교육과 교사들을 지원·감독하는 부교육감이라는 자리가 온통 일반직 일색이라는 점은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교육을 전문분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마도 국방부 산하 ××사단의 부사단장, 경찰청 산하 ××경찰청의 부청장, 법무부 산하 ××검찰청의 차장검사를 일반직 공무원으로 임명한다면 모두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교육 분야는 점점 전문직의 참여가 축소되는 것일까. 물론 교육도 행정의 한 분야이기 때문에 행정을 전문으로 하는 일반직이 임명돼도 괜찮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정기관의 상하관계는 상명하복의 관계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 최종결정은 일반직 부교육감이 할 수밖에 없다. 요즘에 발생하는 교육정책의 제 문제들이 국민이나 교사들 모두에게 반발을 사는 이유 중 하나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일반직 위주의 탁상행정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부는 `교육은 전문직이 맡아서 해야 한다'는 말을 아예 말든지, 아니면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할 때 더 많은 전문직을 참여시키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원성과상여금 제도개선위원회를 열고 추석전 지급을 결정했다고 한다. 지급예정액의 20%(400억원) 정도는 모든 교원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하고, 나머지 80%(1600억원)는 차등지급의 폭을 최소화한다는 조건으로 제도개선위가 교육인적자원부에 위임했다고 한다. 상과금을 반대하는 측은 교원성과급제도가 통제의 수단이다, 장기적인 계략이 숨어있다 등등과 같은 논리를 펴면서 지리한 논쟁을 끌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교육부는 교육단체간 `의견조율'만 기다리며 소모전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유감스러운 점은 교육부가 모양새는 부총리지만 힘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실질적인 힘이 있으면서도 `교원성과금 집행'이라는 하나의 정책을 놓고 이렇게 장기간 동안 의도적인 교직 사회 힘 빼기를 유도했다면 또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교원들의 정서나 여론을 충분히 알면서, 그리고 어떻게 하면 교원들의 정서에 가장 가까운 해답이 되는지도 잘 알면서, 이렇게 장기간 동안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이 `뜨거운 감자'는 각 시도교육청으로 넘어올 것이다. 그러면 시도교육청 책임자는 교육부의 방침을 정면거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학교 현장의 정서를 고려해 융통성 있는 집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또 단위학교 현장에서도 책임자는 해당 교원의 정서를 최대한 배려해 융통성 있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책임자나 지도자의 리더십이 될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교수의 성과상여금 지급의 실제를 보면, 이미 차등지급의 폭을 최소화해 등급간에 최소 1만 3000여 원 정도의 차이에서 최대 5만 5000여 원 정도의 차이로 지급되고 있다. 가장 많이 받는 교수와 적게 받는 교수의 차이는 약 9만 2000여 원 정도니 별 무리가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개인적인 주관이 상대적으로 강한 집단인 대학의 사례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유감스러운 것은 교육인적자원부를 비롯한 정부의 교원 성과금 관련 정책이다.
2001년 시·도평가 결과…800억 차등배정 첫 도입된 자율특색사업분야 강원, 인천 1위 격년제로 첫 실시된 올 시·도교육청 평가에서 시 권역에서는 광주와 부산이, 도 권역에서는 강원, 충북, 전북이 각각 우수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 처음 도입 실시된 자율·특색사업 분야의 경우 시지역 에서는 인천이 최우수로, 광주·대전이 각각 우수로 선정됐으며 도지역에서는 강원이 최우수로, 경북·충북·전북이 각각 우수로 선정됐다. 10개 평가분야별로는 시지역에서 광주가 5개 영역에서 최우수 로, 4개 영역에서 우수로 선정됐고 부산은 최우수 2, 우수 6개 영 역에서 선정됐다. 이에 반해 서울은 최우수에 1분야만 포함됐고 울산은 우수에 2 개만 진입했다. 도지역의 경우 최우수 분야에 전북 4, 강원 2, 충북 1개 진입했 고 우수 분야의 경우 충북 7, 강원 5, 전북 4개 분야에 진입했다. 이에 반해 전남은 우수 1, 경기는 우수 3개에만 들어갔다. 올 시·도평가는 국가 주요정책사업, 시·도교육청 자율 특색 사업, 일반 정책사업 등 3대 평가영역과 10개 평가분야별로 500 점 만점으로 실시됐다. 평가대상 기간은 99년 3월부터 올 2월까지 2년간이었으며, 이 종재 서울대교수를 위원장으로 30명의 분야별 전문가와 교육관련 NGO대표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 의해 평가가 이뤄졌다. 평가과제와 지표 등은 시·도지역별로 나눠 목표 도달성 중심 의 절대평가로 실시됐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평가는 또 1차 시·도별 자체평가, 2차 제출된 시·도자료에 의한 서면평가, 그 리고 평가위원회의 현장 방문평가 등 3단계로 치뤄졌다. 특색있는 지역 교육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올 처음 도입 실시된 자율·특색사업의 경우 전체평점의 25%(125점)가 배분했다. 또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육청 보유자료로 보고서를 작성토록 했으며 학교방문은 최대한 억제했다. 이와 함께 평가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시·도별로 현장방문 참 관위원을 위촉, 운영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평가 결과에 따라 1000억의 자구노력 지원예산 중 800억원을 시·도별로 차등 배정키로 했다. 이와 함께 11월중 우수사례발표회를 열고 평가보고서를 발간, 배부하기로 했다. /박남화 news2@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