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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경인교대 설립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경기도는 최근 12개 업체가 참여한 경인교대 설립용역 설계입찰에서 14억7360만원을 써낸 (주)정민종합건축사무소를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낙찰업체가 내년 8월까지 기본 실시설계를 완료하면 9월부터 공사를 착공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이에 앞서 지난 달 5일, 설립부지인 안양시 석수동 6의 8 일대 6만 6000평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건교부에 요청해 현재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안양시는 또 내년 6월까지 도시기본계획 변경 등의 행정절차를 완료해 대학부지로 최종 확정키로 했으며 교육부 역시 학교명을 현재의 인천교대를 경인교대로 바꿔 경인교대 경기캠퍼스로 하기로 내부방침을 결정한바 있다.
백영균(한국교원대 교수)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란 최근에 논란이 많은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교육행정 정보화로 생산성 극대화, 교육행정 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을 통한 국민 만족도 제고, 그리고 디지털 행정을 통한 일하는 방식 개편으로 21C 국가경쟁력 확보 및 교육행정의 전자정부 구현을 목표로 하여 2002년도에 개발이 완료되어 본격적인 활용을 눈앞에 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기획, 교육장학, 보건체육, 교원인사, 일반직인사, 급여, 재정, 시설, 법인, 기타 행정 등 교육행정 전 분야인 10개 대영역을 대상으로 업무 분석 및 재설계를 통한 정보화를 이루었으며, 교육장학 영역은 다시 장학, 시험, 교무·학사, 평생교육 등 4개의 중영역으로 다시 나뉜다. 논란이 집중되어 있는 기존의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은 새로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교무·학사’ 중영역에 해당된다. 2002년도의 계획만 보더라도 6월에 소프트웨어 개발 완료, 7~8월에 5개 시도교육청 시범 운영, 9월에는 자료입력 및 기존자료 변환 처리, 그리고 물적 기반을 조성하며 교무업무 관련 시스템을 학교에서 운영하도록 하고 10월에는 이 시스템의 전면적 사용을 계획하였다. 기존의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과는 달리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학교와 교육행정기관의 교육행정 업무를 인터넷으로 연결 처리할 수 있으며, 학교와 교육행정기관에서 수행되는 모든 업무를 27개 영역으로 분류 추진하고 있다. 35쪽의 그림에서 보듯이 이 시스템은 교육인적자원부, 교육청, 각급학교,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여러 가지의 혜택을 주도록 구성되어 있다. 즉 신속 정확한 행정업무의 처리를 통하여 업무경감 및 행정업무의 편이성을 확보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교총 등 교원단체로부터의 ‘시범기간이 짧고, 교육이 충분치 못하여 학기중에 전면 적용이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시행시기를 재검토해 달라는 요구’로 인하여 이 시스템의 도입은 연기되었다. 최근에 시달된 2002년 9월 3일자 교육부 공문에 의하면 교무·학사 영역 등에 대해서는 2002년 9월부터 시범학교를 통한 시범운영 후 2003년 3월부터 적용·시행키로 한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2002년 2학기 중 ‘시범학교’는 새 시스템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적용하고, ‘시범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는 기존의 ‘학교종합정보시스템’에 의하여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또한 시범학교는 시·도교육청별로 별도 지정하고, 시범학교로 지정된 학교의 경우에도 중3 및 고3의 교무·학사 업무는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에 의하여 처리하여야 하고, 입시관련 자료 등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추진과정 및 시행상의 문제점과 시사점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시행과정상의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여러 언론기관 및 단체 등에 의하여 이미 표출이 되었음에도 이를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새로운 시스템을 더욱 확실하게 검증하여 현장에서 거부감이 없이 도입과 활용이 되어 의도하고 있는 행정업무의 효율성을 확보하자는 의미에서이다. 또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가시적인 노력이 필요한가를 제시하고자 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PAGE BREAK]첫째,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몇 번의 교육행정전산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1997년 단일관리형(SA) 시스템이 도입되어 종합생활기록부와 건강기록부의 입력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후에 1999년 클라이언트-서버 시스템인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이 도입되어 학교 내 네트워크를 이용한 교무업무, 학습지도안, 평가, 통지표 등의 입력과 활용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는 2002년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도입되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서버를 통해 전국적인 교육행정망이 구성될 즈음에 이른 것이다. 정보통신의 기술은 급격하게 발전하여 이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즉 어떤 시스템을 개발하여 활용할 즈음이면 신기술이 개발되어 과거의 시스템은 불합리하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여 항상 새 기술에 의존하려고 기다릴 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는 시사점은 적어도 개발되고 있는 시스템이 최신의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시의 기술로서는 업무처리 및 시스템 운용상의 오류가 없는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시스템을 개발하려면 개발의 준비와 개발된 이후의 시범적용 등을 통하여 충분한 도입·활용이 검증되고 확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과거의 두 시스템은 너무 졸속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의 시스템의 준비 및 개발 기간이 너무 짧아 시스템의 오류를 내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미 오류들이 보고되고 있으며 현장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들이 표출되고 있다. 둘째, 사용의 주체인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생략되었다.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의 업무처리 상황에 대한 충분한 홍보와 그에 대한 동의를 얻는 과정이 없어서 갑작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이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거의 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과거의 시스템에 있어서 시스템 전환에 따른 각종 연수 실시, 기존 자료 변환 처리 및 재입력 작업으로 인한 잡무 증가, 시스템의 불안과 프로그램의 잦은 패치와 업그레이드로 인한 시행착오 등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으며 이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은 극에 이르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과정이 어느 정도 수용이 되었으며 그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하여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학교정보화사업이 교육행정 효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정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셋째, 새 시스템 추진의 목적 재확인과 그 결과에 대한 확신을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구축으로 ‘교원 잡무의 경감 및 교무업무처리 등 교육행정의 효율화를 통해 교수-학습 및 연구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교육의 질 제고’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안정화될 때까지는 기존의 ‘학교종합정보시스템’을 병행해서 운용하겠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침에서 알 수 있듯이 일선 학교에서 당분간 두 개의 시스템을 운용’하게 하려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기존 자료의 변환문제도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잘못하면 일일이 재입력해야 한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이는 결코 교원의 업무 경감이 아니라 업무의 급증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의 재고와 아울러 업무 경감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여 교원들에게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주어야 할 것이다. 넷째, 도입되는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충분하게 체크되어야 한다. 새로 도입되는 시스템의 설계 및 개발 일정이 너무 짧아서 이 점을 충분하게 극복되었는지에 대한 확신을 사용자들은 갖고 있지를 못하다. 실제로 연수를 받은 교사들이 연수중에 접속을 시도하였을 때에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서버의 불안정성이었다고 한다. 이를 단 몇 개월의 시범적용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전면적인 도입은 늦추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PAGE BREAK]다섯째, 교육행정 업무의 처리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시스템 개발에 적용되었는지를 체크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교육의 과정에서 발생되는 모든 자료를 전산화할 필요는 없는 것이며,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교육의 활동을 방해하는 경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결과의 활용에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교육 과정(process)의 편이성 또는 유용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료는 많을수록 그 유용가치가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료 얻기 위하여 교육 본연의 임무가 소홀히 되거나 그를 수행하는 시간이 전용되는 경우가 발생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쉽게 말하면 교육적으로 유용하고 교사의 교육활동에 도움이 되는 자료로 최소화되어야 하며 통계 및 행정 편의를 위한 자료의 입력은 교원들로 하여금 큰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다. 여섯째, 프로그램의 현장의 수용성 및 적용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면 시스템이 갖추고 있는 기능들이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새로운 시스템은 관행의 업무 흐름을 바꾸어놓을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이 시스템에서 행하기를 고집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력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은 종종 시스템 설계 및 개발에 해당 업무에 능통한 인력이 충분히 참여하지 못해서 비롯될 때도 많다. 만일 그렇다면 이 시스템은 활용상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미 지적된 사항들을 예로 들면, ‘기초시간표 등록’은 외부 시간표 작성 프로그램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다시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 있으며 강사 정보 관리, 개설 프로그램 관리, 기간차수 관리, 지원학생 관리 등 기존에 해당 업무 교사가 별도로 작성하지 않았던 (전자)장부가 새로이 등장하여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업무는 새 시스템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종이 결재는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본다. 앞으로의 과제와 제언 교육행정의 효율성과 교원의 업무 경감을 위해 도입되는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추진의 주체인 행정부와 시스템 활용의 주체자이며 수요자인 교원, 학생, 학부모의 공동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행정 시스템과 교육활동업무지원 시스템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교육행정 시스템은 교육활동업무지원 시스템이라는 인식을 수혜자인 교원들이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장에서 외면을 받고 활용이 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시스템이 수정되고 보완된다면 위에서 지적한 측면에서 교사의 편이성과 업무 경감이 어느 정도 되는 지를 정확하게 예견하여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시스템에 대한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스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 못한 교사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의 장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도입이 되었을 때 변할 수 있는 업무처리가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현장 교사 대상의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교사들의 의견 수렴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시범적용의 기간에는 특히 업무 분석 및 표준화에 대한 현장 교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반영할 필요가 있다. 넷째로 시스템 도입에 따른 역기능이 없어야 한다. 정부는 본격적인 개통에 앞서 교원단체, 시스템 전문가, 그리고 교사 및 학부모 등 각계의 의견을 재수렴해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운영 주체는 일선 교사들이다. 일선 교사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면 시스템은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자칫 좋아진 시스템의 성과도 미비할 수 있다.[PAGE BREAK]다섯째로 정보의 공개에 대한 거리낌이 있다. 그리고 또한 정보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모든 업무의 효율화만을 전제로 하는 전산화는 자칫하면 고유한 본연의 교육활동을 저해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번거로울 뿐 아니라 교육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사용하기에 편한 시스템이 사용을 하기가 귀찮은 시스템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다. 효율화가 누구를 위한 효율화인지를 염두에 두고 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여섯째로 교사에게 요구하는 시스템 사용의 수준이 명시되어야 한다. 시스템의 관리자인지 시스템에의 자료 입력자인지 어느 정도의 시간 투자를 요구하는지 등이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교사의 업무가 아닌 부분이 시스템에 들어와 있다면 어느 교사가 자료를 입력하고 자기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또는 관련이 없는 시스템을 활용하려고 할 것인가?
하종명(경남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학교 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전국의 학교가 개학과 함께 술렁이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뒤늦게 일선 학교 현장들의 여론을 수렴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핵심인 교무·학사 부문을 내년으로 연기했지만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잦은 시스템 변경과 그에 따른 각종 연수 실시, 기존 자료 변환 처리 및 재입력 작업으로 인한 잡무 증가, 시스템의 불안과 프로그램의 잦은 패치와 업그레이드로 인한 시행착오 등으로 학교가 혼란스럽고 교원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는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학생 출결은 물론 학생과 학부모의 세세한 정보까지 상당히 많은 항목을 입력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교사 업무, 특히 정보 담당 교사의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 현장에서는 가뜩이나 많은 각종 잡무가 본연의 교육활동을 가로막고 있는데, 이로 인해 학생 교육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학교 현장의 입장에서 교무·학사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불안정한 시스템 운영 새로운 시스템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고, 운영 프로그램도 매일같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으며, 서버의 용량 및 처리 속도도 불충분하여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따른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매 교시 수업 후에 담당 교사가 출결을 인터넷을 통해 입력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같은 시간대에 전국적으로 수만 명의 교사가 동시에 서버에 접속하는 경우 현재의 서버로는 가동이 중지되거나 접속 불량과 처리 속도 문제로 엄청난 불만을 가져올 것이다. 실제로 연수를 받았던 교사들의 가장 큰 불만은 ‘서버의 불안정성이었다’ 라는 사실은 준비 부재의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영역별 프로그램의 문제점 1) 기준년도·학기 관리 당해년도의 학기를 등록하고 수정하는 한편, 교무학년도와 학기를 선택하고 수업학년도와 학기를 선택하는 기능을 하는 곳으로 여기서 몇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PAGE BREAK]먼저 현재 교무년도·학기가 2002학년도 1학기인데 방학기간중 2학기 수업준비 관련 업무(수업개설 등)를 수행하려면, 수업년도·수업학기를 2002학년도 2학기로 변경한 후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수업학년도를 교무학년도+1로 해야 되는데, 만약 2002학년도 2월에 실수로 수업학년도와 교무학년도를 같이 하여 작업을 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진행이 되는가? 2002학년도 2월이나 다음학년도 둘 중 하나에는 문제점이 생성될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2002학년도 1학기에, 2002학년도 2학기 수업 개설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교무학기와 수업학기를 동일한 상태에서 수업 개설을 하면 데이터는 2002학년도 1학기로 개설이 된다는 것이다. 교사의 실수보다는 프로그램의 불안정성에 대한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2) 반(班)정보 관리 학년도를 선택한 후 해당년도의 반(班)정보를 등록하는 기능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교사의 불만은 매 학년마다의 등록 문제이다. 반정보 등록은 매 학년마다 설정해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런 작업의 번거로움 때문에 전년도 자료를 일괄 복사하는 기준정보·반정보 일괄복사 기능을 추가하기는 하였지만 C/S 처럼 반 편성만 하면 모든 자료가 일괄 복사 기능 없이 자료변화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또한 특수학급과 가상학급 여부의 판별 기준이 애매하여 자세한 기준과 함께 특수학급과 가상학급에 대한 사용편리성을 고려하여,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만약 학년별로 한 개 반씩 특수학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명목상 전교에서 한 개의 특수학급이 있다고 가정하고 대부분의 수업은 자기 반에서 듣고, 특정 시간에만 특수반에 가서 수업을 듣는 것은 특수학급인지 가상학급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 등이다. 3) 교육행정 정보 시스템 시간표 관리 ‘기초시간표 등록’에서 외부 시간표 작성 프로그램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다시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시간표 작성 기능까지도 포함시켜 이중 작업을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학교행사 또는 교사 사정에 따라 시간표를 변경해야 할 경우 이 또한 일일이 그 변동 사항을 입력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보강 처리 문제에서는 동일교과 교사 대체 수업이나, 타교과 교사의 경우나 유인물 대체 수업의 경우, 이를 보강으로 인정하고 있는지도 궁금한 사항인 것이다. 그리고 시간표를 작성하는 데 있어 일괄 입력이 불가능하다. 기존의 C/S에서 일괄입력 부분이 필요한 부분에 다소 있어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한 경우가 많았었다. 하지만 일괄입력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나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화면에서 보여지는 내용에서 1반에 국어가 2반에서 국어로 사용되는 것과 달리 1반의 국어의 코드값으로 2반의 국어 코드값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서로간의 코드가 중복될 수 없고, 또한 교사 개인의 코드와 시간별 코드값이 서로 연계되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일괄입력 키는 상당히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수상의 경우는 일괄입력이 가능하다. 수상할 학생을 모두 선택한 후 수상할 상을 입력하면 모두에게 적용되어 개인별 등록 및 수상대장으로 자동 연계되도록 되어 있다.[PAGE BREAK]4) 불필요한 프로그램 사용 일일출결등록 및 마감 업무에 있어 교과담임이 직접 매 시간마다 학생에 대한 출결자료를 입력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같은 시간대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 명의 교사가 동시에 접속할 경우 서버가 견뎌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한 시간 수업 출결을 위해 교실에서는 별도 출석부(명렬)에 기재한 후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내려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인증받은 후 해당 메뉴로 찾아가서 교과출결을 등록하고 마감하는 절차가 너무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려 교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메뉴얼에는 교과출결은 교과담임의 권한이며 담당조차 손댈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또한 교실에서 인터넷을 접속하여 출결을 직접 체크 할 경우, 교과담임이나 담당의 ID, 비밀번호가 학생들에게 노출되었을 경우 출결 조작의 우려가 있다. 출결이 잘못되었을 경우 정정 절차가 복잡한 점도 문제가 있다. 일일 마감이 된 후 출결 정정을 위해서는 별도의 정정을 위한 결재 절차가 필요하여 또 하나의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월별 마감 후에는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이에 대한 문제 발생 소지도 가지고 있다. 담임교사의 출장이나 결근 등으로 인한 공석시 출결 등록 및 마감 권한은 어디에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 교무실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한 후 출결을 등록하고 마감해야 하는데, 어떤 형태로든 교실 수업에서 출결을 기록하기 위한 장부가 존재할 수밖에 없어 이중 작업이 될 수도 있다. 5) 성적 처리 성적처리시 카드리딩 선행 작업을 하고 카드리딩을 해야 하는 데 별도의 프로그램이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질 성적처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제시가 부족한 실정이다. 카드리더에 관한 프로그램의 제시가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져야 하며, 현재 프로그램에서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재고해 봐야 한다. 프로그램의 자체 개발의 틀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외부업체의 프로그램 사용여부에 대하여서도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6) 프로그램의 사용 연기에 따른 수기 작성 현재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개통되지 않기 때문에 중3, 고3을 제외한 모든 C/S 상의 업무처리가 전면 중단된 상태이고, 이후의 업무는 수기로 하였다가 시스템이 개통된 이후에 교육행정시스템에서 추가 입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의 전출입 경우는 자세한 기능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또한 과거 C/S에서 수기로 처리한다는 것은 어느 범위를 이야기하는지 애매한 부분을 남기고 있다. 즉, 이미 제출된 자료에서 모든 1, 2학년 학생에 대한 생활기록부를 출력하여 둔 상태에서 수기 작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명쾌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7) 매뉴얼 관련 현재 빈번한 패치로 사용자 메뉴얼에 수록된 내용과 실제 프로그램과 대부분 다른 상태이다. 매뉴얼 내용 배치도 요구 사항에 따라, 기능 설명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에 대하여 자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또한 학교급별로 다양한 사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포함한 다양한 매뉴얼의 보급이 필요하다. 8) 기타 이외에 지면상의 관계로 학교교육과정의 특기적성교육관리, 학적의 기본학적 입력자료, 학생생활의 특별활동·생활지도 관리, 성적의 성적 파일·지필평가처리·성적관리의 보안 문제 등 다양한 영역의 기능상 문제점을 일선 학교현장에 알맞게 보완·개선하여야 할 것이다. [PAGE BREAK]교육행정정보시스템 프로그램 개선 방안 이처럼 학교현장의 입장에서 본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프로그램의 불안정성은 S/A나 C/S처럼 한두 가지가 아니며 계속 업데이트 되는 자료를 다운받을 때마다 좋아할 교사는 아무도 없다. 조금 더 완벽한 프로그램이 운영될 때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금 적응되어 가고 있는 C/S를 사용한 후에 서서히 접목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몇 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홈페이지에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트리 구조를 공개하고 각 구조·항목에 대한 현장교사들의 의견을 받을 수 있는 게시판이나 창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각 항목에 대한 문제점이나 프로그램의 불안정성을 조사하여 수정하고 학교현장의 의견으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둘째, 내년 시행을 꼭 목표로 하지 말고 시스템을 완벽(오류를 최대한 줄인)한 상태로 실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시행 전에 수정·보완 상황을 몇 번이고 공개해서 학교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 개인 정보의 보안성 강화, 입력 자료 내용의 간소화, 시스템 운영의 간편화, 시스템 활용의 다양화(학교 자율성 강화), 입력된 데이터베이스의 실제 가치성, 불필요한 누가 기록 삭제 등을 목표로 시스템을 수정·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점은 개인 정보 보안성 강화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넷째, 교육인적자원부는 학생, 학부모로부터 아무런 동의 없이 세세한 전자 정보를 파악, 입력하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될 경우를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검증되지 않은 새 시스템의 시행착오 문제는 덮어두고라도 같은 시간에 수만 명의 교사들이 서버에 동시에 접속할 경우 벌어질 혼란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학생의 신상 관리를 위해서 학생의 주민번호와 휴대폰 번호, 이메일 주소(부모의 정보도 포함) 등이 입력된다. 물론 학생과의 상담이나 행동발달상황, 그리고 교사의 근태 상황과 수업시간, 근무성적까지 입력되어 공개된다. 과연 이 모든 자료가 입력되어야 하는지, 또한 각종 자료를 어느 정도까지 입력, 활용할 것인지, 그리고 입력이 꼭 필요한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재엽(경기 수원 권선초 교사) 시작하며 지난 9월 교육인적자원부는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중 교원들의 주업무인 교무·학사 부분의 시행 시기를 내년 3월로 연기하고 나머지 재산, 예산, 회계 등 22개 영역은 당초 예정대로 10월말 개통한다고 밝혔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를 위해 시범운영기관을 확대하고 시행 전 사용자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현장의 저성능 컴퓨터에 대한 교체 작업을 병행키로 하였으나, 교원단체가 그동안 문제로 지적한 교사 업무 증가, 개인 정보 침해, 예산 낭비 문제 등은 여전히 논란의 불씨로 남아 있다. 당초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전자정부 11개 핵심과제 중의 하나이자 학교정보화 2단계 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사업이었다. 기존의 교육행정 업무는 교육청별 단위 업무 중심의 시스템 개발로 인해 서식, 코드, 업무 처리 절차 등의 표준이 미비하고 전산 기종, 응용 소프트웨어의 다양성으로 정보 공동 활용과 호환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도교육청의 비표준화된 업무 처리로 체계적인 교육행정정보화가 어렵고, 도시화와 정보통신 발달 등으로 이에 부응하는 교원, 학생, 학부모의 교육정보 서비스에 대한 요구 증대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서비스 체제 혁신이 부족한 것도 문제점이었다.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여 비효율적 요인을 제거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행정정보화를 위해 추진한 사업으로 지난 6월부터 각 시·도교육청에 521억 원 규모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2002년 10월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지나치게 방대한 양의 입력 내용과 기존 c/s 방식을 3년도 안돼 바꾸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세세한 개인 신상정보 입력에 따른 개인 정보 침해 우려, 기초 정보 입력과 각종 누가 기록에 따른 교사의 업무 부담 증가 등 도입에 따른 역기능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교원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근거 없는 낙관론과 대안 없는 비관론을 경계하며 합의의 장으로 교육행정업무의 정보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이자 흐름이다. 교육부는 교육행정이 전산화되면 업무의 효율성과 정확성, 투명성이 확보되고 궁극적으로 교원의 업무 경감 및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으며, 교육행정정보 공유를 통한 행정서비스의 신속·정확한 민원 처리로 국민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학교교육과정, 학적, 성적, 학생생활기록부, 학생생활 등을 관장하게 될 교무·학사 시스템의 경우 시·도교육청의 공동 서버 설치로 학교간 연계가 가능해진다는 측면에서 효율성을, 시간표와 출결관리 등의 자동통계기능 측면에서 자동화를, 그리고 교원이 직접 학교내 서버를 관리하던 과거와 달리 시·도교육청에서 서버를 관리함에 따르는 편리성을 3가지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PAGE BREAK]그러나 새 시스템 운영 주체인 일선 교사들의 인식은 사뭇 다르다. 기존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과 비교할 때 개선된 점도 있으나, 교육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보입력이라기보다는 유용성이 작은 정보까지 행정편의 위주로 누가 기록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방대한 양의 정보입력은 교사들을 학생들 곁이 아닌 컴퓨터 책상 앞에 묶어 둘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시스템에 대한 학교현장의 인식 부족으로 전산 업무를 맡고 있는 교사들의 업무 부담과 책임은 기존 C/S 시스템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히려 교육업무에 한정되었던 기존 시스템과 달리 교무·학사 외에 인사, 회계, 물품, 시설 등 교육행정 전반에 걸친 업무로 시스템 관리자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사용을 위한 전자인증서 발급 과정에서 시스템 관리자가 교감, 행정실장, 정보부장 중 누가 되어야 하는지 서로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서 경험이 부족한 젊은 전산업무 담당 교사를 시스템 관리자로 선정하는 학교가 대부분인 형국이다. 현장 교사들의 불신은 이미 99년부터 도입된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 운영에서 시작된 것이다. 불완전한 시스템으로 밤을 지새우며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던 선생님들의 고생을 교육부가 기억하고 있다면 새 시스템은 철저한 사전 분석과 충분한 시범운영 기간을 두어야 했다. 하지만 10월 도입을 앞두고 여름방학 때 전격적으로 이뤄진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연수는 잦은 오류와 접속 불가, 잡무 경감 기대를 무색하게 하는 세세한 정보 입력 등으로 선생님들을 시행 전부터 또다시 실망하게 만들었다. 새 시스템 도입 과정에서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홈페이지의 ‘묻고 답하기’ 게시판은 교육부와 학교 현장과의 현실적 괴리를 여실히 드러내며 합의 부재의 우리 교육 현실을 함축하고 있었다.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제7차 교육과정의 적용, 교원 성과급 문제, 자립형 사립고 문제, 그리고 최근의 초등학교 3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기초학력 진단평가까지 교육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여러 입장 차이로 자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정책 집행에 앞서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보완을 위해 일선 교사들을 비롯한 교육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충하는 가치들 속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할 수 있는 타협과 절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지만 한쪽은 교육적 요구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제기하고, 다른 한쪽은 이것이야 말로 교육 발전을 위한 일이요, 우려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한다. 교사들은 행정업무 지원이 아닌 교육활동 지원이 시급하다고 하고 정부는 행정 지원은 넓은 의미에서 교육활동 지원과 다름 아니라고 한다. 교육에 있어서 ‘학생의 학습권 보장’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들이 잡무로부터 해방되어 가르치는 본연의 임무에 몰두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아이들의 학습 권리가 전자정부 구축과 업무의 효율성 제고라는 명제가 학생들의 교육 활동을 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낭만적이고 근거 없는 낙관론과 구체적인 대안 없는 비관론 사이에서 표류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우리의 어린 학생들이자 교육 구성원 모두이다.[PAGE BREAK] 수단적 효율성만 강조하다 보면 교육적 효과 기대할 수 없어 교육인적자원부는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교육정보화 조기 시행으로 2001년도에 단위 학교 멀티미디어실 구축, 교단선진화 장비 도입, 학내망 구축, 인터넷 연결, 교사 1인 1PC 보급 등이 완료됨에 따라 좀더 진보된 교육행정정책 패러다임을 보이기 위해 그동안 운영해 오던 교육 행정 업무를 ‘통합적 정보화’로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고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16개 시·도교육청 및 교육인적자원부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든 교육행정기관 및 초·중등학교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단위 학교 내 행정처리는 물론 교육행정기관에서 처리해야 할 학사, 인사, 재정 등 교육행정 제반 업무를 전자적으로 연계 처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정부의 기대대로라면 이제 곧 획기적인 교육행정 서비스를 통해 행정업무가 대폭 경감이 되고 표준화를 통한 업무 처리의 간편화로 교사는 학생 지도 등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일하는 방식이 개편되어 종이 없는 사무 처리가 가능해지고 정보의 실시간 공유 및 통계 작성의 자동화로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런 기대가 곧바로 현실로 이어질 거라 믿는 교사는 없다.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은 전자정부 구현이라는 당면 사업 앞에서 기술과 정보의 함수에만 집착한 나머지 사람과 공동체라는 변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교육행정 정보화의 성패는 기술이나 하드웨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 주체와 사용자들의 문화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 인프라 구축과 각종 핑크빛 정보화 지수가 곧바로 학교 현장의 정보화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추진한 교육정보화 사업은 이전의 교육 방법을 모두 옛날 것으로 만들면서 교사들을 컴퓨터 앞으로 내몰았고 사실 교수-학습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아직도 많은 교사들이 교육정보화가 왜 필요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정보화 사업은 변화하는 세대에 대한 시대적 요구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전자 민주주의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공을 전제로 하듯이 교육부가 생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 역시 일방향적인 정부 주도의 수직적 사업 추진으로는 본질적인 변화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철저한 후보 계획(Back Dating)을 통해 교육정보화가 궁극적으로 구현될 학교 현장이 기술이나 하드웨어가 아닌 구성원의 사고와 문화의 틀이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교육현장이 황폐화된 원인이 교육을 교육적 시각에서 보지 않고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효율성만을 강조한 데서 기인했다는 것을 뼈저린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행정업무의 효율성과 교육활동의 효율성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교사들이 우려하는 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출석을 체크하고 학생 자료를 축적하고 관리하느라 정작 아이들과 상담하고 수업 연구할 시간을 빼앗긴다면 이것이야말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PAGE BREAK] 익명권 고려치 않은 개인 정보 수집이 문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시각 중의 하나가 바로 학생, 교사, 학부모의 개인 정보가 외부에 노출됨에 따른 개인 정보 침해 문제다. 교육부는 개인 정보 침해 및 유출 문제에 대해 개인 정보 침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교사들은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필수 사항 외에는 교사들이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입력하면 되고 해킹은 사업자인 삼성 SDS가 기술적 보안장치를 마련한 만큼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는 하나, 과연 현장에서 선택적인 입력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고 웹 기반 시스템이 갖는 보안과 해킹의 취약점이 완전히 극복될 것이라 믿기는 무리다. 담임 교사의 학급경영록에 기록해 두는 것으로도 충분한 학부모의 학력이나 직업, 이메일 주소나 직장 연락처 등을 시스템에 기록하는 것은 업무 부담이기 전에 심각한 익명권 침해이다. 그것이 자발적인 기록이 아닐 때는 더욱 그렇다. 최근에는 익명권의 개념이 단순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권리가 아니라,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자신과 관련된 개인 정보가 자신도 모르게 타인이나 집단에 의해 추적되고 수집되고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경우 네트워크 망을 통해 남겨진 개인 정보와 관련된 데이터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에게는 정보 이용 가치가 높은 것임에 틀림없다. 정보가 인간을 소비하는 시대이다. 교육부는 교육적 유용 가치가 낮은 학생, 학부모의 개인 정보의 입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필수적인 입력 요소가 아닌 개인 정보의 입력 항목을 삭제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맺으며 교육부는 교육행정정보 시스템(NEIS)의 영문 이니셜을 ‘나이스’로 표기하고 있다. 계속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해 말 그대로 나이스(NICE)한 시스템으로 정착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안한다. 첫째, 그간 S/A와 C/S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경험한 시행착오와 프로그램 오류를 전국단위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에서 반복하지 않도록 안정성과 지원체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시스템의 잦은 변화는 업무 혼선과 함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지속적인 운영을 통해 교육 공동체 구성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앞으로 교육행정 정보화의 화두가 될 모바일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둘째, 전산 처리에 맞지 않는 관련 법규의 현실에 맞는 개정이 선행되어야 하고 수기 장부와 전산 자료의 이중처리 여부도 혼돈이 없도록 명확하게 정리해 주어야 한다. 셋째, 시·도교육청과 학교간 시스템 업무 분장 및 책임 소재에 대한 불분명함으로 인해 갈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학교생활기록부 및 교무업무, 회계장부, 인사기록카드 등의 관리 책임은 학교장으로 되어 있으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도입으로 학교내 중요한 자료가 시·도교육청에 있게 되어 발행하는 책임 소재문제가 모호한 상태다.[PAGE BREAK] 넷째,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이 반영되어 중·고등학교의 실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시스템을 제작한 후 초등학교도 그대로 적용함에 따라 초등 교과 학습지도와 생활지도, 평가방법 등에서 초등이 가지는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되어 왔다. 오랜 기간 초등은 중등과 같은 시스템을 운영해 왔는데 이는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걸치는 것과 같이 매우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그간 여러 차례 제기된 초등 현장의 요구가 적극 반영되어야 한다. 다섯째, 기관, 학교 평가 등으로 학교경영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CEO 연수를 강화하여 관리자의 역할을 제고해야 한다. 이는 학교 차원에서 시스템 운영에 능동적인 태도를 갖도록 유도하는데 효과적임과 동시에 전산 업무 담당자에게 집중된 컴퓨터와 네트워크, 시스템 관리 등의 업무 부담을 적절히 분배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또한 시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모든 직무연수에 시스템에 대한 연수 시간을 넣어서 시스템 사용자에 대한 연수를 업무별로 세분화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실시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보화를 위한 표준화·계량화·객관화가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정상적이고 창의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필요 조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김병산(경기 구리 토평고 교사)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행정의 효율적 정보화로 교육행정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교육행정기관의 업무를 경감함으로써 교육행정 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을 통한 국민 만족도를 제고하고자 하여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NEIS)’을 2000년 9월부터 계획하여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1997년 ‘S.A(Stand Alone)’ 시스템을 도입했었고, 1999년부터는 ‘C/S(Client-Server)’ 시스템으로 변경하여 학교생활기록부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NEIS’ 시스템을 도입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은 기존의 시스템과 비교하여 여러 가지의 장점이 있다. 학교의 모든 업무가 전국단위로 통일이 된다는 점, WEB 방식의 시스템으로 학교 이외의 시간과 공간에서 업무의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 교육인적자원부와 시·도교육청의 공동 참여로 표준화된 시스템이라는 점, 학교 단위의 하드웨어 시스템 관리가 필요 없어진 점, 학생의 전·출입시에 온라인으로 가능하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핵심업무인 교무·학사부분은 2003년 3월로 시행시기를 연기하였다. 담당교사로서 이와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새로 도입되는 시스템이 정말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고, 시스템 연기 발표로 인하여 그동안에 투자한 시간과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허탈한 마음까지 든다. 담당교사로서 바라본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의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앞으로 추진시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생각해 보았다. 현실적이고 편리한 시스템 첫째,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시스템이 학교에서 사용하기에 현실적이고 편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시스템은 매 시간 수업 후에 담당교사가 출결을 인터넷을 통해 입력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학교 상황을 도외시한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거의 매일 10여 건이 넘게 수업교환과 결보강이 생기고, 학생이 등교하지 않는 경우 집에 연락이 안 되어 결석 사유를 정확히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매 시간마다 출결처리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앞으로 이렇게 진행이 된다면 쉬는 시간은 교재연구, 교재·교구 준비와 학생지도는 뒷전이 되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인증을 받고 출결 마감하는 시간으로 보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스템 개발자들은 학교의 상황을 잘 알고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자문교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 개발 시에 지원했던 교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지만 형식적인 형태만 취했다고 보인다. 이 시스템의 교무·학사 부분은 학교의 교사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 현장의 요구가 최대한 받아들여진 시스템이어야 한다. 학교 업무를 잘 알지 못하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면 담당교사들은 또 수없이 많은 경우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다. 이는 이미 ‘C/S’ 운영 시에도 나타났던 문제점이었다.[PAGE BREAK] 시스템 운영의 지원체제 둘째, 시스템 운영의 지원체제가 확실해야 한다. 잦은 시스템의 변경으로 인해 담당교사들은 이중 삼중의 업무부담이 있었다. 지금까지 변경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숙지하는데 걸린 시간과 ‘S.A’에서 ‘C/S’로 자료를 변경하고 ‘C/S’에서 ‘NEIS’로 변경하면서 DB변경에 따른 오류를 수정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학교에서 생활기록부 시스템을 담당하는 교사는 교재연구나 학생지도보다는 프로그램을 숙지하고 학교행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지원 센터에는 전화상담 10명, 인터넷 2명, 관리자 1명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인원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지원해 줄 수 있을까. 이는 ‘C/S’에서 ‘NEIS’로 자료변환 시에도 드러났다. 각 학교의 문의 전화가 많아서 3대의 전화를 나중에야 증설했었다. 본격적인 시스템이 운영되면 더 많은 문의가 있을 것이다. 각 학교별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려면 먼저 각 시·도교육청 단위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지원센터를 운영하여 인터넷과 전화를 통한 원활한 지원과 상담이 선행되어야 한다. 담당교사들의 분야별 연수 셋째, 담당교사들의 분야별 연수가 필요하다. 이번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담당교사들에게 방학동안 2∼3일간의 연수를 실시하였으나 연수해주는 교사도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고, 서버의 접속도 원활하지 않아서 실습은 거의 하지 못하고 메뉴얼만 보는 실정이었다. 이는 오히려 ‘C/S’ 시스템을 도입할 때보다도 부족한 연수였다. 이러한 형식적인 연수로는 시스템에 대한 확실한 숙지도 어렵고, 담당교사들조차도 불신만 더해간다. 현재 대부분의 담당교사들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대해서 정확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홈페이지(http://edusys.moe.go.kr)의 ‘Q&A 게시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학교와 교사들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운영 담당교사와 몇몇 교사들에게만 한정된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이번 시스템은 ‘C/S’처럼 몇몇 담당하는 교사들만 고생하는 시스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교무·학사 부분을 몇 개의 분야로 나누어서 보다 실질적인 연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또한 각급 학교에서도 학교 내 전달연수를 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확보가 필요하다. 교사들의 충분한 이해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시스템의 성과는 미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범운영학교의 확대 넷째, 각 시·도교육청 단위로 시범운영학교가 확대되어 시스템이 충분히 검증된 후에 시행되어야 한다. 5개 시·도교육청의 15개 학교에서 시험적으로 운영을 하였지만 기간이 짧아 형식적인 검증이었다. 2003년 2월까지 확보된 시간도 시스템을 검증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완벽하게 준비한 프로그램도 실제 적용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시범운영학교가 아닌 미리 학교에서 시행해 보고 생기는 문제점들을 분석하여 프로그램을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PAGE BREAK]지난 ‘C/S’ 시스템의 경우 경기도교육청은 19개의 고등학교에서 1년 동안 시범운영을 하였지만 이때도 충분한 검증은 아니었다. 이는 이미 ‘C/S’ 시스템에서의 많은 버그들을 해결하기 위해 패치 프로그램을 설치했고, 설치 후에 생기는 오류들을 해결하기 위해 담당교사가 여기저기 수없이 전화 통화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다소 시행 시기가 늦춰지더라도 서버와 프로그램의 안정성을 확보한 다음 시행되었으면 한다. 프로그램의 오류 해결을 담당교사의 몫으로 돌리는 일이 다시 생겨서는 안될 것이다. 하드웨어의 지원 다섯째, 하드웨어의 지원이 완벽해야 한다. 담당교사 연수 시에도 서버에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시스템이 개통되면 잘될 것이라고 했지만 전체 교사가 서버에 접속하였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서버의 용량과 처리 속도가 의문스럽다. 또한 시스템을 운영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의 학교들이 많다. 4∼5년 전에 들어온 컴퓨터로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권장 운영사양은 윈도98 이상, 익스플로러5.5 이상, 1024×768의 최적해상도이다. 하지만 아직도 학교에서는 16Mb 램과 2GB 이하의 하드디스크, 윈도95의 운영체제를 쓰는 교사가 70%가 넘는다. 사양이 부족한 컴퓨터로 서버에 접속하려면 업무 처리에만 걸리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특히 지방의 학교들은 더 열악하다. 학교별 회선속도의 불충분 문제, 노후된 컴퓨터의 업그레이드 불능 문제 등을 우선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한다.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인식 여섯째, 각급 학교의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인증서 발급이 이루어지면서 논란이 많은 사항이다. ‘시스템 관리자’란 학교를 대표하여 모든 권한을 가지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업무의 권한을 분배하는 직책이다. 따라서 학교 단위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시작은 ‘시스템 관리자’에서부터 시작된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각급 학교 내 업무분장을 통해서 ‘시스템 관리자’를 임명하라고 하지만 왠지 어려운 일에 대한 책임을 학교로 전가하는 듯이 느껴진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가 ‘시스템 관리자’로 정보부장을 지목하고 있다. 예전 ‘C/S’에서도 그랬듯이 부서간 업무의 협조가 원활하리라고 보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정보부의 한 업무로만 인식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하지만 이번 시스템은 ‘C/S’ 시스템보다는 광범위한 범위의 업무가 될 것이 틀림없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시스템 관리자’는 교감선생님이든 행정실장이든 교무부장이든 정보부장이든지 교육청 단위에서의 임명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학교 단위에서도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잡음 없이 학교 단위의 업무를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보안상 완벽한 시스템 일곱째, 보안상 완벽한 시스템이어야 한다. 교사들은 ‘해킹은 사업자인 삼성SDS가 기술적 보안장치를 마련한 만큼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만약 학생들의 성적이 노출된다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PAGE BREAK]보안의 문제를 철저하게 하기 위해 공인인증서를 발급 받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공인인증서 발급을 단지 귀찮고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있다. 교사들의 인식 부족도 문제지만 이 시스템에 대한 충분하지 못한 홍보가 더 큰 문제로 보인다. 또한 학생의 신상관리 입력의 경우 학생의 주민번호, 휴대폰 번호, 이메일 주소뿐 아니라 부모의 주민번호, 직업, 학력, 휴대폰 번호까지 입력하고 있어 불필요한 정보까지 전산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정보의 입력 작업은 단순한 잡무로 끝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연기 결정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현장 교사들의 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이라도 연기 결정을 한 것에 대해서는 희망을 느낀다. 여름방학 내내 전전긍긍하던 교사들은 어디서 정신적·시간적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그 동안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며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 그토록 많은 글을 올렸는데도 교육인적자원부의 공식적인 답변은 단 한번도 이루어지지 않아 선생님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최근에 모 행정사무관이라는 분이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름으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답변을 하시면서 선생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누그러졌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진작 이렇게 교사들 편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연기 발표를 하면서도 이유부터 명시하였어야 했다. 물론 그 이유가 일부 교사들이나 교육단체들이 반대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한 이유들이 타당했기 때문이었고 교육인적자원부가 일부 교사, 일부 교육단체가 반대한다고 정말 해야 할 일을 연기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연기를 결정했다는 것은 실패, 혹은 실수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분명히 시기적으로나 내용 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9월에 맞추어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것이 무리인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추진했던 것도 실수다. 기존 ‘C/S’가 수많은 패치 작업과 오류를 불러 일으켰지만 그럭저럭 운영돼 왔던 것처럼 교육행정정보시스템도 일단 가동되면 그럭저럭 흘러갈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에는 신중해야 하고, 완벽한 준비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담당교사들은 처음부터 명확한 기준도 방안도 방법도 없이 그냥 9월부터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시작한다는 말만 들었고, 그 다음에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전화해서 묻거나 행정정보 시스템에서 동료교사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버텨 왔다. 교육인적자원부 차원의 정확한 답변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마다 말이 달랐고 홈페이지 답변자마다 답이 다른 것도 있었다. 뚜렷한 지침이 없어 대부분의 담당교사들은 아침부터 멍하니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홈페이지 앞에 앉아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얼마나 많은 혼란이 있었는지 그리고 뒤늦은 연기 결정으로 당분간 얼마나 혼란스러울지는 담당교사만 아는 사실이다.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의 연기 발표로 기다릴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당장 7월말부터 9월까지의 누적된 생활기록부 업무를 다시 해야 하고, 앞으로의 연수와 ‘C/S’의 자료변환에도 준비하여야 한다. 또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27개 영역 중에서 교무·학사 부분은 연기되었지만 다른 22개 영역들은 시행되므로 이것도 정상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추진하는 교육행정의 전산화는 시대의 흐름에서 볼 때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달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시스템 활용 계획을 사용자 편에서 현실적으로 추진하여 이를 활용하는 교사들의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구축으로 ‘교원 잡무의 경감 및 교무업무처리 등 교육행정의 효율화를 통해 교수-학습 및 연구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교육의 질 제고’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의 말이 현실화되기를 바란다.
이경상 /한국청소년개발원 부연구위원 월드컵 신문화체험 특징 및 실태 2002 월드컵 응원에 참여한 한국 청소년들의 응원문화 체험의 특징은 높은 자발적 참여도와 적극적인 자기표현, 신공동체적 징후들(새로운 의사소통의 양식, 정서적 일체감, 높은 질서의식)의 표출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우선 기존의 한국 역사에서 여러 가지 대규모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주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로 동원되고 통제된 상태에서 미리 정해진 방식에 의해 수동적으로 여러 가지 상징이나 구호들을 소극적으로 표출한 경험이 지배적이었음에 비해, 이번 월드컵 응원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강제적인 동원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에 기초해서 참여하고 자율적으로 발생·유통되고 수용된 응원방식을 따라 여러 가지 상징이나 구호들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말 한국청소년개발원에서 서울시 중·고등학교 청소년 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월드컵 한국경기를 관람·응원한 바가 있으며 월드컵 한국경기 응원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57.6%가 한번 이상 거리응원에도 참가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리응원에 참가한 청소년들의 비율을 참여횟수별로 살펴보면 1∼2번 참여한 청소년의 비율이 31.4%, 3∼4번 참여한 청소년의 비율이 14.9%로 나타나고 있으며 5번 이상 참여한 청소년의 비율도 11.3%로 나타나 청소년들의 거리응원 참가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거리응원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87.7%가 누구의 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의에 의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응답해 거의 대부분의 청소년 거리응원 참여가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월드컵 응원에 참여한 전체 청소년들의 79.9%가 붉은 T셔츠를 입고 응원에 참여했으며 43.2%가 페이스페인팅이나 바디페인팅을 하고 응원에 참여했으며 태극기를 옷이나 목도리, 망토 등으로 사용하여 태극기 응원을 펼친 경우도 63.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이나 '오! 필승 꼬레아∼'등의 구호와 몸짓으로 응원한 비율도 90%대의 비율로 나타났으며 옆 사람과의 하이파이브나 팔짱, 어깨동무, 포옹 등으로 한국경기의 응원과 기쁨의 순간을 표출한 청소년들도 58.5%∼76.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체 청소년의 64.6%가 거리행진에 참여한 바가 있으며 차량에 올라타는 등의 차량을 이용한 응원경험의 비율도 27.4%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치는 청소년들이 월드컵 응원기간 동안에 한국 경기의 응원을 위한 자신의 의사표시를 옷이나 신체, 구호, 몸짓 등을 사용하여 주저 없이 적극적으로 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리응원에 참여한 청소년들만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붉은 T셔츠를 입은 경우가 89.9%, 페이스페인팅이나 바디페인팅이 54.7%, 태극기를 사용한 경우가 79.5%, '대∼한민국'이나 '오! 필승 꼬레아∼'등의 구호와 몸짓의 비율이 각각 96.0%와 96.8%, 옆 사람과의 하이파이브가 85.2%, 팔짱이나 어깨동무가 75.4%, 포옹이 69.6%, 거리행진에 참여한 경우가 84.6%, 차량응원이 34.0%의 비율로 나타나 거리응원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전체 청소년들에 비해 옷이나 신체, 구호, 몸짓 등을 사용한 응원의 의사표시가 좀 더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번 월드컵 응원문화가 강제나 타율보다는 자발적 참여와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응원의 의사표시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의사소통양식을 바탕으로 높은 정서적 일체감을 형성하고 상당히 높은 질서의식을 보여준 것도 또 하나의 새로운 특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거리응원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93.8%가 거리응원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대∼한민국'의 응원구호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을 통해 일체감을 느껴본 바가 있으며 70.9%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거리낌없이 하이파이브나 어깨동무, 포옹 등의 몸짓을 주고받은 바가 있으며 85.8%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이나 횡단보도 등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대∼한민국'의 구호를 주고받은 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월드컵 거리응원문화가 일시적이나마 오프라인 상에서 낯선 사람과의 일체적 소통감을 형성하게 하는 기제로 중요하게 작용하였음을 나타낸다. 한편 거리응원 참여 청소년들의 69.9%가 인터넷 게시판에 월드컵과 관련하여 남이 올린 글을 읽은 적이 있으며 44.6%가 인터넷 게시판에 월드컵과 관련하여 글을 올린 적이 있음을 보여주어, 거리응원 동안에도 N세대의 청소년들에게 인터넷은 여전히 중요한 의사소통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리응원동안의 청소년 질서의식도 아주 높았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십만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서도 청소년 거리응원 경험자의 84.9%가 월드컵 기간 중 안전사고를 목격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으며 78.2%가 옆 사람이랑 사소한 말다툼이상의 갈등을 빚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청소년 거리응원 참여자의 75.0%가 옆 사람을 위해 약간이라도 자리를 내어 준 경험이 있으며 56.2%가 거리응원동안에 가져온 물과 음식을 남들과 나눠 먹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남에 대한 배려가 거리응원동안에 잘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 거리응원 참여자의 80.5%가 길거리 응원에서 깔고 앉았던 종이, 음료수병, 휴지 등을 청소한 후에 귀가했다고 응답하여 사회에 대한 배려도 거리응원동안에 잘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PAGE BREAK]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월드컵 신(응원)문화체험의 기본적인 특징은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한 자율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신공동체주의 문화적 징후들의 표출'로 특징 지워볼 수 있다. 신 공동체주의 징후에 대한 이해 그러면 이러한 사실들(facts), 즉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한 자율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신공동체주의 문화적 징후들의 표출'로서의 월드컵 응원문화체험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의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우리 청소년들이 일으킨 공동체주의적 문화혁명과도 같은 것으로 보는 시각을 수용해도 좋을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콘서트 문화와 같이 우리 청소년들이 심각한 의미부여 없이 그저 즐기기 위한 놀이문화의 외연이 월드컵이라는 축제마당에서 단순히 확대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선 필자는 마치 청소년들이 공동체주의적 문화혁명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과잉확대하는 해석의 위험성을 경계하고자 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이번 청소년들의 월드컵 응원참여 행위는 한국의 국가권력이나 경제적·사회적 문화권력이 '허용된 축제적 일탈의 장소와 행위'를 기회구조로서 제공한 바탕위에 심각하고 진지한 공동체적 가치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 경기의 승리라는 공동의 집단이기적 애국심(한국 축구경기의 승리에 대한 기원이 애국심이라는 개념의 외연과 내포를 다 끌어안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것이라고 생각되지만)과 응원놀이마당의 단순한 재미추구가 목적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청소년개발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응원에 참여한 주된 이유로는 '축구에 대한 관심보다는 한국의 거듭된 승리로 인해 애국심이 생겨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41.2%로 제일 많았고 '원래 축구를 좋아하였으므로'라고 응답한 사람이 38.8%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축구에 대한 관심보다는 응원분위기를 틈타 실컷 즐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청소년이 11.3%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원래 축구에 대한 관심이외에 사상 최초의 월드컵 4강 신화 달성이라는 한국의 거듭된 승리가 청소년들의 월드컵 참여열기에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작용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이런 응원 참여열기의 축제적 분위기에 편승해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응원에 동참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오프라인상에서의 새로운 의사소통양식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 일체감의 실현이라든가 높은 질서의식 등의 신공동체적 징후들은 주로 한국경기의 승리와 재미추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발현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에게 일정부분 체화된 신공동체적 징후들은 그 자체가 행위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므로 과잉해석논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일정정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 축구경기의 승리라는 집단이기적인 목적과 놀이문화의 단순한 재미추구가 아닌 자원봉사와 같은 공동체적 가치의 실현이 목적이 되는 곳에서도 자발성과 적극성 그리고 공동체적 일체감, 남에 대한 배려 같은 이번 월드컵 응원문화에 발현된 공동체적 징후를 띠는 행위들이 나타날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 또한 공동체적 가치가 목적이 아니고 이익실현이 목적이 되는 곳이라 하더라도 이번 경우처럼 공동의 욕구충족과 이익실현의 목적이 아니고 서로간의 개인이익과 욕구의 실현목적이 충돌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공존의 질서의식이 나타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필자는 동시에 우리 청소년들의 이러한 월드컵 응원문화체험에 대해 아무 것도 아닌양 과소평가하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개인주의적인 합리성을 바탕으로 파편화되어 있고 때로는 이기적이기도 한 청소년들이 수단으로서나마 신공동체주의적 체험을 경험했다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번 월드컵 응원문화를 계기로 나타난 우리 청소년들의 신응원문화체험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수단으로서 나타난 신공동체적 징후들에 대한 체험'이라고 요약,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W세대의 창조적 확대 발전 기대 그러면 우리는 '수단으로서 나타난 신공동체적 징후들에 대한 체험'으로 요약되는 우리 청소년들의 월드컵 응원문화의 새로운 체험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W세대'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할 만큼의 새로운 세대경험으로 간주해도 좋은 것인가?[PAGE BREAK] 우리가 이번 월드컵 한국경기 응원에 지배적으로 참여한 신세대들의 독특한 응원문화체험을 가리켜 'W(문화체험)세대'라고 구분하여 지칭할 때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기존의 세대문화체험에 비추어 새로운 문화체험이 등장했다는 것이고 그 문화체험이 광범위하게(확률적 제일성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체화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선 문화체험이 보편적이라는 말은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월드컵 한국경기동안에 형성된 독특한 응원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번 월드컵 한국경기 응원에 청소년들의 거의 전부가 한국의 경기를 관람·응원한 바가 있으며 이 중 57.6%가 한번 이상 거리응원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번 월드컵 응원문화는 청소년들에게 보편적인 체험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문화체험이 새로운 것이라는 말은 두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기존의 청소년문화에 비해 새로운 청소년문화가 표출되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 세대의 세대체험에 비해 새로운 모습의 청소년 문화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청소년들의 모습은 개인적이다 못해 이기적이고 책보다는 인터넷중독이나 휴대전화 중독에 빠져 있고 대중스타를 쫓아 콘서트 장을 즐겨 찾아가며 음주·흡연에 유흥비 마련을 위해 불법아르바이트에도 과감히 나서는 주로 부정적인 모습인데 반해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나타난 청소년들의 모습은 개인적이기만 한 줄 알았던 청소년들이 태극기를 망토로 휘날리며 애국심을 여지없이 표출하고 인터넷 채팅·게임중독이나 휴대폰 중독에 빠져 있었던 줄로만 알았던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매개로 붉은 악마를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오프라인 상에서 '대∼한민국'의 구호를 주고받으며 신공동체적 징후들을 마구 쏟아내었으며 콘서트 장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거리응원의 문화를 창출해 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화체험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기존의 4.19세대, 386세대들의 체험이 주로 정치적인 문화체험을 통해 세대문화를 형성했던 데에 비해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나타난 청소년들의 새로운 문화체험은 여가와 놀이라는 문화체험을 통해 새로운 세대문화를 형성했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세대경험과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의 생각으로는 새롭고 보편적인 체험인가의 측면에만 국한해서 볼 때 'W(문화체험)세대'라는 명칭정도는 붙여도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러한 자발성에 기초한 신공동체적 징후들이 목적이 아니라 놀이마당의 재미를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서 발현된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놀이마당의 재미추구가 아닌 다른 가치가 목적이 되는 행위에서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따라서 향후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까지도 고려하면 'W세대'라는 명칭이 개념의 완전성을 획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필자는 수단으로서 발현된 것이지만 자발성에 기초한 신공동체적 징후들에 대한 체험으로 요약되는 신문화 형성의 주역인 'W세대'가 자신들의 세대경험을 소중하게 살려나가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러한 'W세대'의 문화가 수단에서만 머물지 말고 목적으로도 일정부분 창조적으로 확대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수단으로서 발현된 공동체적 징후나 높은 질서의식을 청소년들이 스스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스포츠, 발표회, 음악회 등을 자발적으로 열고 즐길 수 있는 크고 작은 장소들을 마련해주어야 하며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서 우리 'W세대'의 청소년들이 축구경기 외에 다른 문화적인 욕구가 목적이 되는 행위에서도 자발성에 기초한 공동체적 징후나 높은 질서의식을 수단으로서 계속 쌓아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에서 수단적 체험으로 축적된 청소년들의 신공동체적 경험들을 자원봉사 등의 공동체적 가치를 함양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연결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우리 청소년들을 과도한 경쟁위주의 입시체제, 폭력, 유해환경, 불법아르바이트에 의한 노동착취 등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보호하는 기존의 고민들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김정운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교수 나이를 잣대로 한 방식에서 탈피 W세대는 한국문화사에서 유래가 없는 특정한 집단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W세대는 2002년 서울에서 열렸던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사건으로 '재미있게 즐겼던' 집단을 지칭한다.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이 특수한 집단의 이름을 W세대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미국의 반전세대나 유럽의 68세대, 우리 현대사의 4.19세대나 6.10세대와 같은 문화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업주의의 질펀한 잔치에 불과한 월드컵에 온 나라가 들썩인 것도 그리 달갑게 느끼지 않는 이들도 많다. 철없는 W세대를 계급 없는 사회, 전쟁 없는 사회,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를 위해 치열하게 싸운 반전세대나 68세대,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4.19세대나 6.10세대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며 문화사적 의미를 운운하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이들도 있다. W세대는 축구놀이나 신나게 즐겼던 철없는 젊은애들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로 이 '재미'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기 때문에 W세대는 여타 다른 세대만큼 중요한 문화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재미'라는 가치와 아울러 W세대라는 호칭이 가지는 문화사적 의미는 우선 나이라고 하는 참으로 설득력 없는 세대구분방식을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나이를 통한 집단 구분은 근대적 사고의 핵심이다. W세대라는 호칭은 한국 사회가 근대적 사고의 틀을 벗어난 21세기적 사고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구태의연한 연령에 의거해 규정하자면 W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충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젊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듯하다. 이제까지 세대구분으로 나누자면 청소년기 혹은 청년초기에 이르는 이들이다. 지금까지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는 아주 간단한 실험으로도 증명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이란 단어 뒤에 아무런 단어나 연결시키라고 하면 대부분 '청소년범죄' '청소년문제'와 같은 단어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뒤쪽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단어의 앞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라고 하면 '비행청소년'과 같은 단어 이외에는 달리 어울리는 표현이 없는 듯하다. 심리학자들이 청소년 문제와 관련하여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자아 정체감 또한 청소년의 부정적 사회적 표상을 확립하는데 일조를 한다. Erikson의 정신분석학적 발달이론은 청소년기는 자아정체감이 확립되어야 하는 불안정한 시기로 규정한다. 즉 자아가 없는 아주 황당한 시기라는 것이다. 청소년의 사회적 표상이 이런 방식으로 형성되는 배후에는 18세기 이 후에 나타난 순수한 아동으로서의 개념과 발달 또는 진보, 성숙이라는 근대적 이념이 버티고 있다. 우리 청소년이 얻은 새로운 이름 프랑스 문화사가인 Aries는 아동의 개념이 18세기 유럽에서 만들어 진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자세히 밝히고 있다.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아동의 개념이 구성되고 아동에서 성인에로의 이행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시기로서 청소년 개념이 만들어 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행과정을 어떠한 논리로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아동-청소년-성인의 이행논리는 근대의 구성물인 발달, 또는 진보의 개념에서 얻어 진다. 근대성의 핵심은 이성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성적 사유에 대한 신념은 보다 진보한 세계가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이를 모든 사람이 수긍하는 객관적인 방식으로 성취해 낼 수 있다는 세계관으로 이어진다. 즉 변화를 진보로 이해하고 이 진보를 성취하겠다는 세계관이다.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철학자의 과제를 기억해 보라. 이 때 세계사는 미개에서 문명으로 이어지는 단선론적인 발전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유럽역사 속에서 이와 같은 진보 이념의 발견은 불평등, 억압, 착취의 구조를 개혁해 나가는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방식의 억압과 착취를 가능케 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이를 변증법이라 하는 것 같다. 문명발달이라는 보편적 설명 틀에 따라 인종의 개념이 만들어지고 이 인종을 문명화 정도에 따라 일렬로 배치하는 문명화론의 배후에는 생물학적인 '발생반복설(recapitulation theory)'이 자리잡고 있다. 개체의 발생은 종족발생을 반복한다는 생물학 이론이 사회진화론으로 변조되면서 진보의 이념은 또 다른 억압의 도구가 되기 시작한다. 아동/성인, 여성/남성, 미개/문명의 이분법이 단선론적인 진보의 논리에 따라 재배치된 것이다. 물론 성인은 아동을, 남성은 여성을, 문명은 미개를 계몽해야 할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다.[PAGE BREAK] 나이에 따라 발달과정을 배치하는 심리학 이론 역시 이러한 발생반복설의 또 다른 얼굴이다. 흔히 계단으로 떠올리는 발달의 메타포는 아동에서 성인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나이에 따라 일렬로 나열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나이에 따른 발달이 문명화 정도를 측정하는 동일한 척도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아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청소년은 미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문명화되지도 않은 고약한 존재로 인식한 것도 바로 생물학의 발생반복설을 인간 개체발달과정에 적용한 Hall이라는 심리학자의 이론에서부터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로서의 청소년 개념을 고안해 낸 것도 바로 그다. 결국 이행기로서의 청소년은 갖가지 문제를 포함하는 불안정한 시기로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다. 이제까지 청소년이라는 이름은 발달과정에서 불안정한 시기로 인식되어 왔다. 개화 초기, 소년, 청소년, 청년 등의 단어들은 희망과 연관되어 있었다. 당시 청소년은 근대적 교육의 객체이면서 계몽의 주체였다. 브나르도 운동과 같은 농촌계몽운동에서 청소년은 불안정한 문제의 시기로 인식되기보다는 사회변화의 주체로 인식되었다.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그러했다. 그러나 근대의 단선론적 진보이념이 교육제도로 구체화되고 기능적 체계를 갖춘 이 후 청소년에 대한 우리사회에서의 사회적 표상은 서구의 그것과 동일한 부정적 내용을 갖게 된다. 그 후 우리사회의 청소년은 몇 명이 함께 몰려있기만 해도 불량청소년이 되었다. 밤길에 한 무리의 청소년을 마주치면 건장한 성인도 흠칫할 정도가 된 것이다. 이러한 청소년이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W세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차이 W세대는 이전의 청소년 세대 개념에서 필수적인 발달, 진보를 위한 교육의 강박적 내용이 빠져있다. 물론 비슷한 다른 이름도 있었다. X세대, N세대 등등. 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가 더 강한 이들 이름에 비해 W세대는 전혀 새로운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재미'라고 하는 차원이다.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재미, 즐거움과 같은 단어들은 왠지 내놓고 추구해서는 안 되는 가치였다. 엄숙하고 진지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다. 웃는 표정은 왠지 경박해 보였다. 즐거워도 즐거운 내색을 내놓고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오죽하면 변소에서나 맘놓고 웃을 수 있었을까. 재미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와 결합된 W세대는 이전의 미성숙하고 교육받아야 하고 언제든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는 그 청소년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오히려 기성세대에게 재미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를 가르치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착각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우선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이 같은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W세대가 빨간 옷을 입고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광화문으로 몰려들 때 청소년세대가 항상 걱정스러웠던 기성세대는 기뻐했다. 국가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철없던 것들이 드디어 애국심이 생겼구나. 87년 광화문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던 40대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다. 그러나 그 '대∼한민국'과 이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W세대에게 '대∼한민국'은 '재미'의 기호일 따름이다. '대∼한민국' 대신 H.O.T가 되었든 G.O.D가 되었든 별 차이가 없다. 그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은 분단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이 수 십년에 만나 우느라고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는 그 '대한민국'이 아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은 더 더욱 아니다. 그저 재미있는 '대∼한민국'이면 족할 뿐이다. 우연하게도 '재미'의 코드가 '대∼한민국'이었을 뿐이었다. 착각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거리응원이 선수들을 격려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축구장과 한참 떨어져 있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응원이란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투지를 북돋아주기 위해 하는 일이다. 즉 우리편이 이기기 위해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축구경기의 승리가 목적이고 응원은 수단일 따름이다. 거리응원은 사정이 좀 다르다. 도대체 무엇을 응원한단 말인가. 선수들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말만 응원이지 응원이 아닌 것이다. 선수들이 응원을 통해 힘을 얻어 축구경기를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응원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응원하면서 즐기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이 때 전광판에서 보여지는 축구는 이 재미를 매개해 주는 수단일 따름이다. 물론 축구를 이기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이겨야만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즐길 수 있다면 축구경기는 어찌 되었든 그리 큰 상관이 없었다. '재미'의 주인이 되는 '재미' 발견 거리응원은 놀이의 주체가 되는 즐거움이 어떠한지를 경험케 해주었다. 축구선수들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내가 주인공이었다. 빨간 옷 입고 얼굴에 태극문양 그리고 아무 때나 '대∼한민국'을 외치면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엇박자로 장단을 맞춰주는 그들은 경기장에서 축구선수들이 골을 넣어야만 기뻐하는 기성세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TV앞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다가 골 못 넣으면 욕설을 퍼붓는 것 이외에는 달리 축구를 즐길 줄 몰랐던 그들은 관객, 즉 객체에 불과했다. 한번도 재미의 주인인 적이 없었던 그들에게 그 철없는 W세대는 '재미의 주인이 되는 그 재미'가 어떤지를 가르쳐 준 것이었다.[PAGE BREAK] 기성세대들도 나름의 재미를 찾아 헤맸다. 마라톤이 그 중 하나다. 최근 마라톤 행사는 개최하기만 하면 남는 장사가 된다고 한다. 42.195㎞를 뛰는 괴로움을 즐기겠다는 마조히스트들이 줄을 선다는 것이다. 대개 30, 40대의 중년 남자들이다. 건강을 생각하여 뛴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중년남자들에게 마라톤을 완주하는 일은 건강에 오히려 해롭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런데 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중년의 마라톤 중독자들이 갈수록 많아진다고 한다. 세상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믿을 것은 내 몸으로 느끼는 이 고통뿐이라는 것이다. 하도 믿을 수 없는 험한 세상을 살아와서 이제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내 몸 하나뿐이라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또 다른 재미를 찾아 나선 이들이 있다. 노사모가 그들이다. 이들은 마라톤을 즐기는 마조히스트들보다는 약간 젊다. 20, 30대가 주를 이룬다. 아직도 정치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인 이들은 한 정치가의 팬클럽을 자처하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심지어는 가족을 총동원하고 자기 주머니를 털어 가며 한 정치인을 후원한다. 가만히 보면 무척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아주 새로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 후원하는 일이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새로운 변화인 것 같다. 그러나 적이 분명하고 승패에 따라 희비가 너무 분명한 노사모는 여전히 재미가 목적이 아니라 승리가 목적인 것 같다. W세대는 재미가 목적이다. 이는 이전 세대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차원이다. 축구나 여타의 것들이 수단이 되고 재미가 목적이 되는 수단-목적 뒤집기는 사람끼리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원숭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원숭이도 말할 수 있다는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발견했다. 물론 발성구조가 인간과 다르기 때문에 음성을 통한 말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기호를 이용한 말하기는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의도와 남의 의도를 구분하는 능력 등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단 원숭이들 사이에서 자란 원숭이는 이런 능력이 없고 사람들 사이에서 자란 원숭이들만 이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들 사이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뜻이다. '수단-목적' 뒤집기가 낳은 결과 '눈길맞추기(joint attention)'는 물건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기가 눈을 맞추는 행위를 뜻한다. 이 눈길맞추기가 바로 인간에게만 있는 뭔가 특별한 것이다. 언어는 물건의 이름을 익히는 것부터 출발한다. 물건의 이름을 익히기 위해서는 엄마와 아이가 같은 물건을 바라보는 과정, 즉 눈길맞추기가 있어야 한다. 같은 물건을 바라보며 엄마가 말하는 물건의 이름을 익히는 것이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틀이다. 우리가 같은 주제를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대화가 되는 것처럼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약간 어려운 말로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형성이라고 한다. 눈길맞추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엄마가 수단이 되고 물건이 목적이 되는 '지시적 눈길맞추기(imperative joint-attention)'가 있다. 아기가 엄마에게 물건을 달라고 눈짓하는 경우이다. 이 때 아이의 관심은 엄마가 아니다. 물건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두 번째 눈길맞추기는 '의사소통적 눈길맞추기(communicative joint-attention)'이다. 낯선 물건을 보면 아이는 엄마와 눈을 마주친다. 엄마의 설명을 원하는 것이다. 즉 목적은 엄마의 설명이고 물건이 수단이 된다. 의사소통적 눈길맞추기의 전형적인 형태는 엄마와 아이가 물건을 가지고 놀 때이다. 물건을 가지는 것이 아기의 목적이 아니다. 물건으로 매개되는 엄마의 이야기, 정서적 반응을 즐기는 것이다. 이 과정이 인간만이 가진 의사소통능력의 기원인 것이다.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근대성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판이 한참일 때, Habermas는 꽤나 용감했다. 다들 이성에 대한 신화를 포기하자고 주장하는데 그래도 이성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쉽게 하자면 하버마스는 근대적 이성이란 포스트모던 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몹쓸 것이고 당장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완의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 근대성의 문제는 도구적 이성이 비대해져 일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일 뿐, 이성자체가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성의 진정한 완성은 '의사소통적 합리성(kommunikative Rationalitaet)'이 구현될 때 가능하다고 한다.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기원이라는 주장에 그리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면 W세대의 수단-목적 뒤집기는 하버마스가 무척 행복해할 현상이다. 재미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는 놀이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고 놀이에서 의사소통적 행위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와 엄마의 눈길맞추기 놀이의 목적은 재미이고 이 현상을 우리는 '잘 논다'고 한다. 잘 노는 사람이 남도 잘 이해하고 의사소통도 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드러운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 재미를 추구할 줄 아는 W세대가 주인이 될 사회는 상당히 부드러운 사회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지탱해 온 힘은 노동을 통한 성공, 성취에 대한 욕망이다.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성공시대의 주된 내용은 그들이 얼마나 자기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에 몰두했었나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재미를 희생하고 일에 몰두하고 사회적 성취를 이뤄내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로 강요되었다. 노동을 통한 성공, 성취가 절대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의 특징은 불안과 적개심이다. 앞에 있으면 불안하고 뒤에 쳐져도 불안하다. 앞에 있는 사람이 예쁘게 보일 리 없고 나를 제치고 앞에 끼어 드는 이에 대한 적개심은 이로 말로 다 할 수 없다. 도로는 이런 현상이 가장 잘 관찰되는 곳이다. 아무도 앞에 끼어 드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 단순히 늦어지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뒤져있는 것도 견딜 수 없는데 도로에서까지 뒤쳐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사회는 한마디로 말이 되는 사회이다. 재미는 정서적 현상이다. 정서는 전염성이 강하다. 또 정서는 공유할 때 그 내용이 풍부해진다. 빨간 옷 사 입고 모두 광화문으로 나섰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서가 공유되는 것은 의사소통행위의 핵심이다. 아기와 엄마의 눈길맞추기가 끊임없는 '정서조율(affect attunement)'과정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의사소통행위란 메시지의 교환이 아니다. '의도(intention)'를 공유하고 '정서(emotion)'를 공유하고 '주의(attention)'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함께 즐기면서 우리는 의사소통능력을 배운다.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는 함께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문화란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서로 인사하고 손을 잡고 눈을 맞추는 방식이 각 문화마다 다르다.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리츄얼화 된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다양한 방식이 문화로 존재하는 사회가 살만한 사회다. 그래서 놀 줄 아는 W세대가 주인이 되면 적개심보다는 서로 말이 통하는 부드러운 사회가 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대중매체와 소비 시장의 합작품 우리는 최근 들어 무수히 다양한 세대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변화에 민감한 시선을 갖고 있는 대중매체와 구매력 창출이라는 목표를 가진 소비시장이 힘을 합해 끊임없이 다양한 세대 군(群)을 창출해온 때문이다. 소비문화와 대중매체의 합작품으로써 가장 널리 알려진 예로는 X세대를 들 수 있다. X세대란 용어는 더글라스 쿠플랑(Douglas Coupland)이 쓴 동명 소설에서 따온 것으로 쿠플랑 자신은 당시 영국의 펑크 록 그룹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라 한다.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던 X세대는 1961년∼1975년 기간 중 태어난 동년배 집단을 지칭한다. 이들은 '지칠 줄 모르는(restless) 냉정한(disaffected) 세대'로서 정치적 무관심을 통해 정치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쇠락하는 미국의 영향력 속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합리화하고자 하는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X세대의 뒤를 이어 등장한 세대로는 N세대, i세대를 들 수 있다. 먼저 컴퓨터-정보통신의 발전 속에서 성장한 N세대는 PC나 휴대폰 접속을 중요시하는 네트워크 세대로서 편지 대신 전자메일을 보내고 얼굴을 마주하는 대화보다는 모니터와 컴퓨터를 매개로 한 채팅을 즐기며 막강한 정보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한편 인터넷 세대를 지칭하는 i세대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N세대 및 PC세대와 구분 짓기 위해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1994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인지능력이 생길 때부터 인터넷에 친숙한 이들은 전자책(electronic book)에 막대한 분량의 정보를 담아 가지고 다닐 것이며 이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현실세계 못지 않게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단 이들 다양한 세대군에 대한 평가는 양가적(兩價的) 특성을 보이고 있다. 곧 사이버 공간에 익숙한 이들은 아이디어의 참신성과 창조력에 있어서 이전 세대와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개성이 넘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복제화된 개성이 대부분이고 정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세대란 무엇인가. 개념을 정의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세대에 관한 한 모든 학자들을 만족시켜주는 개념 정의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세대 개념의 모호성을 통해 인간경험의 다중(多重)성을 추론해보는 것이 더욱 현명한지 모를 일이다. 학자들마다 다양한 세대의 개념 단순한 일대기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한 세대란 평균적으로 개인의 출생에서부터 그 개인의 첫 자녀가 태어날 때까지를 지칭한다. 이 경우 한 세대는 출생율과 사망율의 변화에 따른 가족주기의 변화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략 15년부터 30년 사이라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세대란 이처럼 단순한 시간 개념에 입각하여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가장 포괄적인 동의를 확보하고 있는 세대 정의는 독일의 사회학자 칼 만하임(Karl Mannheim)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서 "사회 변화의 역동적 과정 속에서 생물학과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사회현상"이 곧 세대라 본다. 여기서 세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진정 동시대인이라는 의미를 갖도록 만들어주는 주요한 요인"에 대한 해석이다. 더불어 세대가 사회변화의 동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대를 묶어주는 힘(generation bond)이 필요한데 이는 어린 시절부터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자리하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곧 17세를 전후하여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는 동일한 역사적 상황을 지나오면서 차후 동일한 시대정신을 구성하게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단 만하임의 세대 개념은 탁월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보다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분석적 도구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이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만하임의 뒤를 이어 세대 개념에 관심을 집중한 N. 라이더는 세대 개념을 동년배(cohort) 개념으로 치환하였다. 라이더는 만하임의 틀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바 '역사적 경험과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세대 개념 대신 동년배 집단은 동일한 역사적 경험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코호트의 단순 비교야말로 사회구조적 변화를 연구함에 있어 매우 유용한 전략이라 주장하였다.[PAGE BREAK] 만하임에 충실한 세대 개념이 다시 등장한 것은 M. 릴리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이다. 릴리는 '연령의 사회학'을 통해 사회는 연령에 따라 구조화되고 사회구성원은 연령에 따라 층화되며 자원과 기회의 분배방식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연령이 매우 중요한 구분기준이 된다는 소위 '연령 계층론'을 발전시켰다. '연령 계층론'은 동일 코호트가 동일한 노화 과정을 거치는가 하는 문제와 코호트별 노화과정의 차이가 사회구조적 변화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여기서 개인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이 교차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생애주기(life course) 접근법은 연령 계층론이 추적하고 있는 문제의 답을 찾는데 매우 유용한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세대 개념을 설정하는 작업의 다양성과는 별도로 세대 연구의 주요 관심사는 세대 구분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세대구분 방식은 인구학적 패러다임에 의한 것으로 미국사회를 대상으로 한 대표적 세대구분은 1900∼1926년 출생한 '진동(Swing) 세대', 1927∼1945년 출생한 '침묵(Silent) 세대', 1946∼1964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 1965∼1979년 출생한 '부머랭 세대', 그리고 1980년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자녀 세대'가 그것이다. W세대에 대한 적극적 의미부여 인구학적 패러다임과 중첩되면서도 다소 방식을 달리하는 세대 구분의 예로는 정치적 접근이 있다. 이 구분 방식은 10대 20대에 경험했던 정치적 사건이 이후의 가치관 형성에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정치사회화 이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구분에 따르면 1899∼1910년에 출생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 1911∼1926년 출생하여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 1927∼1942년 출생하여 냉전과 스푸트니크의 충격을 경험한 세대, 1943∼1958년 출생하여 흑인민권운동·베트남 전쟁·워터게이트를 목격한 세대, 그리고 1959∼1973년 출생한 레이건 세대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들 각각의 세대가 정치적 활동이나 정책 선호도에 있어 각기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해방 이후 '압축성장 과정(농축된 변화)'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세대간 경험의 단절과 세대갈등의 증폭이 일상화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세대구분에 대한 학자들의 합의는 물론이고 세대 개념에 대한 논의조차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은 반성을 요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다만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사건을 동시에 고려하여 회자되고 있는 세대로는 해방과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 곧 이어 정치적 독재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극심한 경제적 빈곤을 경험하면서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4.19세대, 경제개발계획과 새마을 운동으로 대변되는 근대화의 주역을 담당한 5.16세대, 굴욕적 한일외교에 반대하여 민족 자주권과 자존권을 주창하던 6.3세대, 경제성장으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를 지켜보면서 정치적 민주화를 희생해야했던 유신세대, 광주 민중항쟁을 거쳐 시민혁명을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낸 6.29 세대 등이 '세대의 정치학'을 구성해왔다 하겠다. 최근 우리가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W세대'는 과연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일단은 2002 한일 월드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세대 정의의 필요조건을 충족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이 경험에 대한 역사적 해석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더불어 W세대로 지칭되는 경험의 특수성이 향후 사회변동의 원동력으로 기능할 것인지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W세대 논의의 핵심은 그 출현 자체가 대중매체의 구성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덕분에 개념이 먼저 출현하고 이 개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체를 찾아가는 작업이 뒤따랐다. 이는 비단 W세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앞서 예를 들었던 대중매체와 시장자본주의의 합작품으로써의 세대 대부분이 유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과연 실체를 갖고있는 집단인가 흥미로운 사실은 W세대를 구성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면 W세대의 신바람은 대회기간 중 열정적 에너지의 아낌없는 분출, 자발적 공동체 형성, 개방적 세계관 과시 등 가시적인 특징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한국인의 문화적 공통 체험이 되는 과정에서 W세대는 기성세대를 향해 우리 젊은 세대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동시에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W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재미를 가르쳐 준 세대이고 재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세대로서 '수단-목적 뒤집기'를 통해 사람끼리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결정적 수단을 확보한 세대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 의미를 부여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한데 궁금한 것은 왜 우리가 W세대를 향해 이토록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는 바로 W세대가 실체로서의 세대이기보다는 의미 구성물로서의 세대이기 때문이요, 존재로서의 세대이기보다 당위로서의 세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곧 W세대 논의는 W세대가 진정 그러한 특성을 갖고 있는가 실증적 검증을 하는데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W세대는 그러한 특성을 가져야 한다는 '바람'(wishful thinking)의 표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PAGE BREAK] 이 과정에서 W세대가 등장하게 된 배경(왜 대중매체는 W세대를 부각시켰는가?)에 숨어있는 정치적 논리가 희석되고 W세대의 특성에 대한 실증적 차원의 탐색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른바 신세대 및 386세대의 논의에서도 반복된 우리의 나이브함이었다. 앞으로 W세대 논의가 이들의 특징을 스케치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보다 공고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한국적 맥락에서 세대 개념이 갖는 의미를 치밀하고도 심층적인 수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W세대라는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데이터 확보가 따라야 할 것이다. 정작 W세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W세대를 구성하는 행위자 자신의 경험에 대한 주체적 해석이 부분적으로 진행되긴 했으나 매우 취약함은 W세대 논의가 필히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나아가 W세대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필히 여타 세대와의 비교 작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W세대의 특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 특성이 연령효과인지 세대효과인지에 대한 구분도 필요하고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동일한 역사적 시간과 이질적 개인적 시간의 만남의 의미를 다각도로 해석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 때 '현대성'이라는 맥락이 W세대의 경험에 어떠한 방식으로 투사되고 있는지 여부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가장 중요하게는 W세대가 의미 있는 사회변동의 축으로 작용할 것인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후속 작업이 일정한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세대와의 비교 수반되어야 W세대 논의가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교육 현장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기에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근저에는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W세대 논의 속에서 점차 그 중요성을 확대해가고 있는 자아 정체성과 관련해서 그 구성 과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현대성을 특징짓는 현상의 하나로 자아의 확장과 더불어 '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Identity)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정체성이란 나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원천이자 나의 경험의 총체를 구성하는 개념이다. 바로 이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 개인은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행위양식에 있어 일관성을 결여한 모순을 보이게 된다. 여기서 정체성과 역할을 둘러싸고 개념상의 혼돈을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다. 역할이란 사회제도 및 조직에 의해 기대되는 바 행위규범을 구조화한 것으로서 규정을 따르면 역할 수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하기에 역할은 동시에 다중의 역할 수행이 가능하며 역할갈등이 발생할 경우엔 협상 전략을 활용하여 해소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반면 정체성의 경우는 역할과 달리 다중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물론 정체성과 역할은 중복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자 동시에 자신이 아버지임을 내면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정체성은 존재 이유를 제공해주고 개별자로서의 주체성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역할보다 더욱 강력한 의미를 갖고 개인에게 다가온다. 이들 정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에는 다음 3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합법적(legitimizing) 정체성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합리화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부과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둘째, 저항적(resistance) 정체성은 지배질서로부터 소외되고 낙인찍힌 행위자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서 이들의 생존 전략은 지배구조에 반대하거나 지배질서로부터 자신을 차별화 하는 '정체성의 정치학'을 구사하게 된다. 셋째, 투사적(project) 정체성은 행위자들이 사회적 위상을 재정립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정체성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이 개인에게 허용해주는 긍정적 의미로부터 찾을 수 있다. 이 점에서 W세대에게 부여된 다양한 긍정적 의미 곧 '파격적 옷차림과 열광적 응원을 통한 개성의 발휘'에서 감지되는 '자신감'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가벼움과 무거움의 조화'를 이루어낸 디지털 세대의 '융합적 잠재력' 등은 지금까지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채색되어온 청소년들에겐 새로운 저항적 정체성을 넘어 투사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풍부한 토양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긍정적 정체성 발견 더 더욱 W세대의 등장에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정체성 구성 과정이 보다 다이내믹하게 진행된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엘리트층이 합법적 정체성을 부과하는 작업이 점차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고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주장했던 '성찰적 자아 개념' 역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퇴색하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대신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공동체적 성향에 기초한 저항적 정체성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기회로부터 부당하게 배제 당해온 경험의 공유'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집단적 경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기존의 가치 및 지배질서를 전복해 가리라는 것이다. 이 때 물론 배타적 집단주의는 경계해야할 것이나 W세대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청소년 세대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포함시키는 가치에 대해서는 적극적 의미를 부여해 주어야할 것이다. '검은 것은 아름답다'를 통해 흑인의 정체성에 내재되어 있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 구성에 성공한 예나, 가부장제하의 정체성을 부인함으로써 여성 자신은 물론 남성과 어린이의 해방까지 모색한 페미니즘의 시도 등은 앞으로 W세대 정체성 구성에 있어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역사적 교훈이라 하겠다. W세대의 의미를 교육 현장과 관련시켜 논의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민족국가의 중요성이 감퇴되는 자리에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한 문화적 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의 씨앗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른바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민족국가의 등장과 쌍생아를 이루던 민족주의의 쇠퇴를 가져온 이 시대에 오히려 '대∼한민국'으로 상징되는 민족 개념의 부상은 단순한 흥미를 뛰어 넘어 귀추가 주목되는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 이에 W세대를 주도한 청소년을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민족의 의미를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정리해낼 것인가가 우리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 셈이다.[PAGE BREAK] 지금까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민족주의의 쇠퇴를 기정사실화 해온 입장에서는 민족이란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전제로 민족국가 건설을 주도하던 일부 엘리트층이 고안해 낸 '상상의 공동체' 내지 '인위적 역사의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점차 축소(shrunken)되고 동질화되는 하이테크 세계 속에서 오히려 그들과 우리를 명백히 구분하려는 정체성의 욕구가 강렬해지는 현상에 주목하는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오늘날의 '민족'은 국가와는 독립적으로 자신들만의 의미를 구성해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쩌면 민족국가가 상상의 공동체라는 사실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 수용해야하는 명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 이유는 민족에 내재되어 있는 소속감이나 아이콘 숭배는 예외 없이 문화적으로 구성되어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W세대와 우리 교육현장의 과제 이제 네트워크 사회에서 '민족'을 화두로 할 때면 첫째,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둘째, 민족주의 및 민족국가를 서구중심의 시각에 비추어 비(非)서구에 이식된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 셋째, 민족주의는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고 대중 또한 엘리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등을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고 더불어 오늘날의 민족주의는 전진적(proactive)이기보다 복고적(reactive)이기에 정치적 성향보다는 문화적 색채가 강하고 기존 국가체제를 대변하기보다는 전통 문화로서의 국가 이미지를 옹호하려는 경향이 강함을 주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의 민족주의는 앞에 '문화적'이란 수식어를 붙여 마땅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개념은 코사쿠 요시노(Kosaku Yoshino)가 일본의 민족주의를 분석하면서 고안해낸 개념인데 그에 따르면 "문화적 민족주의란 국민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창조하고 유지·강화함으로써 국가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것"으로 "이는 시기적으로 문화적 아이덴티티가 약화되고 위협받을 때 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화적 민족주의 개념은 W세대가 보여주었던 바 열광적인 '대∼한민국'의 외침 속에서 배타적 집단주의나 열광적 국가주의와는 분명 차별화되는 독특한 '하나됨'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경우에도 일정한 현실 적합성을 확보했다고 생각된다. 엘리트와 대중의 구분을 넘어선 W세대의 민족적 공동체 의식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기억이 오랜 생명력을 획득'하게 되고 '대한민국이라는 코드를 통해 우리와 그들이 융합적 공동체를 이룬 경험'이 공유된 역사를 구성하게 된다면 W세대의 민족은 문화적 민족주의의 이름을 부여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교육 현장 앞에 놓인 과제는 W세대가 공유하게 된 경험의 다채로움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나아가 이들만의 경험이 포스트 월드컵 시대를 열어 가는 한국사회에 역동적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길을 적극 찾아주는 일이 되어야 하리라.
글·사진 /김재일 두레생태기행 회장 법주사는 진표율사가 지은 미륵의 집 먼 옛날 완주 땅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여러 친구와 함께 소를 먹이러 산으로 갔다. 소년은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동안 냇가에 가서 개구리를 잡았다. 소년은 버들가지에 개구리를 꿰어서 물에 담가두고는 물놀이를 했다. 날이 저물자 소년은 잡은 개구리를 그만 깜박 잊어버리고는 소를 몰고 바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해에 소년은 다시 소를 먹이러 그 골짜기로 갔다. 그런데 작년에 잊어버리고 온 그 개구리들이 버들가지에 꿴 채로 그 때까지 살아서 울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소년은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여러 날을 잠 못 든 소년은 홀연히 집을 나서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중에 큰 스님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신라 하대에 미륵불교를 일으킨 진표율사의 출가에 얽힌 이야기이다. 법주사는 진표율사가 백두대간 속리산 품속에 지은 미륵의 절집이다. 속리산과 법주사는 궁합이 잘 맞는다. 사찰문화는 사찰환경의 꽃으로 피고 진다. 따라서 사찰문화 체험은 사찰의 환경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비로소 효과가 배가된다. 속리산 들머리인 보은 외속리 장안마을에 옛 집 몇 채가 있다. 이 집은 전통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와는 거리가 멀다. 속리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집 뒤에서 Y자형으로 갈라진다. 집 뒤에 물을 두면 홍수의 범람이 염려스럽다. 그래서 집 뒤에다 야트막한 제방을 쌓아 빙 둘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나 물에 잠겼다. 게다가 산에 기대지 않고 농경지 한가운데 지은 집이라서 사방이 허(虛)하다. 이를 막기 위해 담들을 비교적 높게 쌓았다. 집 뒤에다 가산(假山)을 만들고 우람한 솔밭을 담처럼 두른 것도 그런 까닭에서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풍수와 같은 조상들의 생태적 지혜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 즉 풍수를 통해서 '자연 읽기'를 가르치고 풍수를 통해 자연에 조화된 삶을 가르치는 것이다. 열두구비 말티재를 넘는다. 해발이라야 기껏 400m 안팎. 말티재 열두구비는 세조 임금과 인연이 깊다. '말티고개'라는 지명은 세조가 물이 좋다는 복천암을 찾아갈 때 고개가 너무 가파르고 좁아서 가마에서 내려 말을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이 있다. 열두구비 말티재를 넘어서 만나는 속리천은 1급수 하천이다. 버들치와 피라미를 비롯해서 맑은 물을 좋아하는 7종의 민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곳곳에 갈대와 물억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대꽃이 채 피기 전에 산간사람들은 갈대이삭을 뽑아 빗자루를 만들어 대처에 나가 팔았다. 그러나 지금은 갈목비를 만드는 사람도 없고 갈목비를 사다 쓰는 이들도 없다. 해마다 갈대만 헝클어지고 있다. 풍수같은 조상의 생태적 지혜 배워야 천연기념물 정이품송은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하는 길에 스스로 가지를 치켜올려 편히 지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는 그래서 정2품의 작위를 받았다는 전설의 소나무다. 우리 나라 소나무를 다섯 가지 생태형으로 분류할 때 이 정이품송은 중부내륙형 소나무에 속한다. 언제 보아도 단아하며 기품이 있다. 비록 늙고 병들어도 노신(老臣)의 기품은 여전하다. 그러나 수령이 600년에 이른다는 정이품송도 이제 노후병색이 역력하다. 산림청은 정이품송이 죽기 전에 건강한 후손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신부감을 구한 결과 삼척 준경묘에 있는 금강송이 최종적으로 간택되었다. 정이품송 부근에 학생들과 시민들을 위한 야생화 테마파크가 최근 조성되었다. 1㎞ 가량의 계곡 주변 조성된 3000여평의 테마파크에는 수백 종의 식물들이 있다. 나비를 비롯한 곤충 관찰도 가능하다. 목본류로는 보리수, 마가목, 팥배나무, 회화나무, 모감주, 쥐똥나무, 병아리꽃나무, 흰말채나무, 병꽃나무 등 50여 종이 식재되어 있다. 야생화는 족도리풀, 단풍취, 용머리, 부처꽃, 참나리, 금불초 등이 심어져 있다. 또 어류·수서곤충·수서식물 등을 관찰할 수 있는 8자형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현장 해설이 필요하면 전화(043-542-5267)나 이메일(songni@npa.or.kr)로 신청하면 된다. 속리산 주차장에 이르면 멀리 속리산의 한 자락이 보인다. 해발 1058m의 속리산을 제대로 보려면 여러 날이 걸리겠지만 당일로 돌아보는 데는 주차장-오리숲-법주사-복천암-문장대를 왕복하는 코스가 무난하다. 개울에는 달뿌리풀이 물억새와 갈대들을 괄시하며 물가에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갈대와 흡사하지만 물이 닿는 모래땅을 좋아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2m 가량 되며 줄기에 털이 나 있다. 지상으로 뻗은 마디의 수염뿌리로 번식하기도 하지만 털이 있는 씨앗이 바람에 날려서 번식하기도 한다.[PAGE BREAK] 오리숲은 속리산 품안이요 법주사의 오지랖이다. 오리숲에는 몇 종류의 참나무를 중심으로 고로쇠나무, 국수나무, 까치박달, 단풍나무, 덜꿩나무, 물푸레나무, 병꽃나무, 산딸나무, 산벚나무, 산철쭉, 산초나무, 생강나무, 싸리나무, 진달래, 쪽동백나무, 풍개나무 등의 활엽수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활엽수들 사이로 이따금 노송이 서 있다. 소나무와 활엽수의 싸움은 번번이 활엽수의 승리로 끝나지만 소나무의 덩지가 크면 활엽수도 맥을 못 춘다. 오리숲과 계곡 숲으로 들어서면 박새, 곤줄박이와 같은 박새류를 비롯하여 쇠딱다구리, 오색딱다구리, 어치, 잣새 등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육식성 조류로는 천연기념물인 올빼미와 수리부엉이를 비롯하여 쇠부엉이, 소쩍새, 솔부엉이 등이 살고 있다. 3000여 평의 테마파크에 볼거리 많아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면 키 작은 봉교비(奉敎碑)가 서 있다. 봉교(奉敎)란 '왕이 내린 명령'을 말한다. 내용인 즉 속리산에 들어와 함부로 유흥하지 말고 속리산 스님들에게 함부로 부역을 시키지 말라는 왕의 명령이다. 먹고 마시고 흔들고 노는 향락 취향의 관광에 대한 경고의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다. 봉교 주변으로 전나무들이 장승처럼 서서 숲을 이루고 있다. 전나무는 서늘하고 다습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개울이 가까운 곳에 터를 잘 잡고 있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측근보다 직근이 약하기 때문에 바람 센 곳에서는 잘 넘어지는 편이다. 낙엽송은 일제 식민시대에 들어온 나무이다. 이름도 'Japanese larch'이다. 침엽수 가운데 유일하게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 수정교 다리 아래로 속리천이 내려가고 있다. 계곡 주변의 나무들이 계곡 안쪽을 향해 모두 고개를 내밀고 있다. 조금이라도 햇볕을 더 받기 위함이다. 도로변의 가로수들이 안쪽으로 굽어서 터널을 이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금강문(金剛門)을 지나면 천왕문 앞에 두 그루의 잘 자란 전나무가 마치 금강역사처럼 버티고 서 있다. 법주사는 탑이 없는 절이다. 그래서 천왕문 위쪽에 자리한 팔상전이 탑을 대신한다. 아니, 팔상전 자체가 나무로 지은 거대한 목탑이다. 그리고 석탑이건 목탑이건 탑은 모두가 나무를 닮았다. 특히 이곳의 팔상전은 잘 자란 한 그루의 침엽수를 보는 듯하다. 가람배치의 중심축에 따라 팔상전을 지나면 석등이 있고 석등을 지나면 대웅보전이 자리한다. 보물 제915호인 대웅보전 계단에는 불교를 지켜주는 돌원숭이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대개 대웅보전 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 게 원칙이다. 목조건물은 습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또 대웅보전 앞에 나무를 심어놓으면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가는 빛의 반사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주사에는 대웅보전 앞에 잘 자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표찰에는 '염주나무'라고 되어 있지만 불자들은 보리수(菩提樹)로 알고 있다. 가끔 이름만 듣고 이 나무가 부처님이 성도 하신 그 보리수나무인 줄 알고 열심히 합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인도의 보리수나무는 이 나무가 아니다. 절에 와서는 담도 볼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법주사에서는 부서진 기와조각들을 주워 모아 황토에 섞어서 담을 쌓은 곳이 많다. 폐자재의 재활용 측면에서 좋은 예가 된다. 가을이 되어 붉게 단풍든 담쟁이가 흙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담쟁이는 낙엽활엽수 덩굴식물이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데 여름에 작은 황록색 꽃이 핀다. 열매는 하얀 가루로 덮여 있으며 가을에 검게 익는다. 문장대로 등산로는 나무 공부에 적격 도로 나와 수정교를 건너면 왼쪽으로 복천암-중사자암-문장대 가는 길이 나 있다. 조금 올라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내속리면 사람들의 상수원이다. 건너편 솔숲이 건강해서 건너다보는 눈 맛이 좋다. 가끔 물위로 원앙들이 날아든다. 둥지도 아마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건너편 산기슭의 어느 고목에 틀었을 것이다. 원앙은 오리과에 속하는 천연기념물이다. 우리 나라 텃새 중에서 가장 예쁜 새다. 텃새라고는 해도 얼음이 얼면 먹이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평야지대로 내려간다. 상수원을 지나 조금 오르면 오른쪽에 세조가 목욕했다는 목욕소가 있다. 길섶에는 김의털이 나 있다. 실낱처럼 가는 잎은 곧추서지 못하고 마치 할아버지 긴 수염 같이 땅표면에 누워있다. 건조한 땅을 좋아하지만 숲 속에서 자주 보인다.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정을 지나 복천암까지는 단풍 숲길이다. 붉은 단풍은 여름이 끝나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나무의 푸른 엽록소(잎파랑이) 생산이 멈추면서부터 물들기 시작한다. 붉게 물드는 나무에는 단풍나무류, 진달래, 철쭉, 산벚나무, 화살나무, 붉나무, 옻나무, 산딸나무, 매자나무, 윤노리나무 등이 있다. 은행나무처럼 노랗게 물드는 것들은 잎 속에 카로티노이드라는 색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생강나무, 고로쇠나무, 느릅나무, 미류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버즘나무(플라타너스) 등은 노랗게 물든다. 갈색 단풍은 카로티노이드에 더하여 탄닌이 생긴 때문이다. 갈색물이 드는 나무로는 모든 참나무 종류와 느티나무 등이 있다. 단풍은 일교차가 심할수록 깨끗이 물든다. 복천암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암이다. 마당에 향나무를 심은 것도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함일 것이다. 극락보전 주위로 꽃향유가 무리지어서 피어있다. 꽃향유는 한해살이풀로 한쪽으로 치우쳐서 빽빽하게 피고 늦가을에 열매가 익는다. 속리산에는 가는꽃향유가 희귀종으로 자라고 있다. 문장대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나무 공부하기에 좋다. 노각나무는 꽃과 수피가 아름다운 교목이다. 노랗게 물드는 단풍도 일색이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소 교목으로 산목련이라고도 한다. 주황색으로 물드는 단풍이 좋아서 정원수로도 심는다. 문장대에 오르면 신선대를 지나 최고봉인 천왕봉까지 가는 산행로가 있으나 학생들을 인솔한 산행이라면 무리하면서 천왕봉을 등정할 이유는 없다.
"빛과 소리의 세계로 빠져든다" 강원도 강릉 쪽으로 여행을 한다고 하면 에디슨 박물관을 찾아보라고 권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에는 아예 에디슨 박물관의 관람을 위해 강릉으로 떠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1992년 11월 개관, 10여 년의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매년 30만명 이상의 내외국인이 다녀가는 강릉의 명소 에디슨 박물관은 어떤 곳일까. 정식 이름은 '참소리 축음기 & 에디슨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소리의 세계(1전시관)' '영상의 세계(2전시관)' '빛의 세계(3전시관)'를 보여주는 3개의 전시관과 미국 에디슨 박물관보다 더 많은 자료가 전시된 '에디슨 발명품관',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자동차와 자동차 왕 헨리포드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T-카' 등이 전시된 '자동차전시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물은 축음기 4500여점, 음반 15만장, 서적 1000권, 기타 5000여점 등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1전시관은 소리의 역사를 보고들을 수 있는 장으로 축음기 발전에 따른 소리의 변천 및 축음기가 만들어지기 이전인 200∼300년 전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제작된 오르간과 뮤직박스, 라디오, 전축의 소리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2전시관에서는 에디슨의 영사기로부터 1925년 존 베어드가 만든 TV까지 오늘날의 영화, 비디오, DVD, 그리고 영사기 내부에 담겨진 각 시대의 위인들과 에디슨의 일생을 영화로 감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3전시관은 전구를 사용하기 이전에 Gas등에서부터 에디슨 최초의 전구(1879년) 및 당시의 발전기를 전시하고 있다. 대나무 필라멘트 전구와 수많은 전구들이 불빛을 밝히고 당시의 스탠드형 전구까지 전시돼있어 그 시대의 과학을 느끼는 장으로 부족함이 없다. 관심을 끄는 에디슨 발명품관에는 에디슨의 발명품 850점을 전시,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의 발전모습과 에디슨 개인의 삶을 통해 삶과 과학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볼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에디슨의 3대 발명품으로 꼽히는 축음기·영사기·전구를 중심으로 에디슨이 생전에 발명특허를 얻었던 생활용품, 자필 편지, 유물·유품을 비롯해 그가 경영하던 10여 개 기업의 주주명부·의사록·주식·채권 등도 그대로 전시해 살아있는 에디슨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자동차전시관에는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자동차(배터리카)와 세계 3대 축음기 회사인 영국의 HMV 축음기사에서 축음기 판매·홍보에 활용한 '그랜츠 햄' 자동차 등이 전시돼 있다. 그렇다면 이 박물관은 누가 만들었을까. 현 관장인 손성목씨(60)의 일생일대 노력으로 탄생했다. 손 관장이 축음기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14세 때라고 한다. 그는 삼촌에게서 고장난 축음기를 선물 받고 그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분해와 조립을 거듭한 뒤 그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매료돼 그 후 45여 년 동안 세계 60여 개 국을 돌아다니면서 희귀한 축음기를 수집해 왔다고 한다. 그 동안 수집한 명품들로는 에디슨 발명품 800여 점, 원통형 실린더 축음기 300여 점, 원반 축음기 640여 점, 포터블 축음기 185점, 뮤직박스 및 기타 기기 65점, 라디오 300여 점, 텔레비전 20여 점, 전축 70여 점, 레코드판 12만여 장 등이다. 내년 2월이면 경포대 호수가 3층 짜리 신축 건물로 이전을 앞두고 있는 박물관 측은 "이전과 동시에 그 동안 협소한 공간 때문에 전시하지 못했던 새롭고 희귀한 뮤직박스, 축음기 및 에디슨 발명품과 그의 유품일체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기기와 소리를 수집하고 그 명품들과 아름다운 참소리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의=(033)652-2500 글·이낙진 기자 leenj@kfta.or.kr
"교수-학습 질 향상은 우리 손에…" 교육행위가 이뤄지면 반드시 평가가 뒤따른다. 물론 교육행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평가는 실시된다. 일반적으로 평가는 '교육과정 및 수업 프로그램에 의하여 교육목표가 실제로 어느 정도 실현되었는지를 밝히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학생의 교육목적 달성도를 알아보고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평가는 필수적이다. 교수-학습의 질 향상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되고 수준별 교수-학습이 강조되면서 평가에 대한 일선 교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찍이 평가의 중요성을 간파한 몇몇 사람이 한국초등교육평가연구회를 만들었다. 1995년 국립교육평가원(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근무하던 평가전문위원들이 주축이 됐다. 창립 당시 200여명의 회원으로 출발, 현재는 451명의 교원이 회원으로 가입돼있다. 시·도지회 13개를 두고 있다. 현 회장(3대)은 임갑섭 서울서이초등학교 교장이다. 임 회장은 국립교육평가원 초등학교평가실장으로 연구회 탄생의 산파역을 하며 초대회장을 맡았었고 김영완 전 회장(1996∼99)에 이어 2000부터 다시 회장을 맡고 있다. 임 회장은 "교수-학습은 궁극적으로 평가를 통해 학습목표 성취여부를 파악하고 이를 환류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여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라며 "학습평가 활동이야말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첫 단계"라고 말했다. 연구회는 각종 평가관련 책자 발간·보급, 평가문항 개발·보급, 교원 연수, 회지 발간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그 동안 발간한 책자는 『평가문항 개발 기법(1995)』 『창의성 교육 문을 열다(1995)』 『수행평가의 이론과 실제(1995)』 『수행평가 이렇게 합시다(1995)』 『제7차 교육과정 수준별 학습·평가 이렇게 합시다(2000∼2002)』 등이다. 평가문항은 『총괄평가 문항』 『수학경시대회 문항』 『수행평가의 모든 것』 등이 있다. 책자는 회원 및 서울시내 초등학교에 무료로 배포했으나 지방에 거주하는 교원들의 신청이 늘면서 일부는 실비로 보급하기도 한다. 연구회에서 발간한 책 중에 백미는 『제7차 교육과정 수준별 학습·평가 이렇게 합시다』를 꼽을 수 있다. 2000년 초등학교 1, 2학년부터 도입된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춰 1학년 1학기 국어-수학·2학년 1학기 국어-수학 등 두 권이 먼저 나왔고 이어 1, 2학년 2학기용과 3, 4학년 1학기용 국어-사회·수학-과학과 2학기용 등이 잇따라 출간되었으며 지난 9월 5, 6학년 2학기용까지 모두 20권이 완간됐다. 7차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했거나 평가를 전공한 교사가 중심이 돼 집필한 이 책은 교과서의 단원 구성 체제와 차시별 교수-학습 단계에 맞춰 형성평가 또는 학습과정 평가가 용이하도록 구성됐다. 특히 교수-학습 단계에 따른 지도방법과 다양한 자료를 제시, 심화·보충학습 자료로 활용하는데 손색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결한 디자인으로 학생들은 평가 문항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교사들은 교수-학습시 따로 편집하지 않고 복사하여 쓰도록 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연구회는 매년 동·하계 자율연수와 직무연수를 실시한다. 지금까지 2000여명이 연수를 마쳤다. 수시로 세미나를 열기도하고 평가관련 자료의 발간도 열심이다. 이런 활발한 활동 탓에 1999부터 4년 연속 교육부 전국단위 우수 교과연구 서클로 선정됐으며 지난해는 최우수 교과연구 서클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 기간동안 서울시교육청 우수 교과연구 서클에 선정된 것은 물론이다. 문의=(02)3474-7024, 432-6922 글·이낙진 기자 leenj@kfta.or.kr
진동섭(서울대 교수, 교육행정) 대통령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교원들은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인재들을 양성하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40만 교원들의 현안 문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장래가 달려 있다. 따라서 교원들은 누구에게 대한민국의 장래를 맡길 것인지 심사숙고해서 귀중한 한 표를 던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가? 바로 교육 대통령이 될 사람이다. 교육 대통령이 될만한 사람은, 첫째 가정 교육은 물론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다.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은 학교 교육의 존재와 그 혜택을 경시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교육을 잘 시켜 온 사람이다. 새로운 대통령은 가정에서는 자식과 친인척 교육, 직장에서는 비서와 직원 교육을 잘 시켜온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자녀와 친인척 그리고 비서와 각료들이 국정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교육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교육에 대한 식견이 분명한 사람이다. 대통령은 교육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고, 견해가 분명한 사람이 돼야 한다. 대통령은 세계 교육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한국 교육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끝으로 대통령은 교육 발전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해서 실적과 업적을 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녀가 다닌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 참여해서 학교 발전을 위해 봉사를 했던지, 지역사회의 교육을 위해 기여를 했던지, 교육 관련 정책 자문회 등에 참여해서 도움을 준 경험이 단 한 가지라도 있는 사람이라야, 교육을 챙기려고 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현재 붕괴 상태에 있다고 한다. 50여 년 역사 중에서 현재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교와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현상은 교사들은 가르치는 일에서 손을 놓고 있고 학생들은 배우는 일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실업계 고등학교가 무너진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방 대학과 사립 대학이 망한다고 한다. 기초 학문이 고사 직전에 있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잘 나가던 이공계 대학이 쓰러진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교육의 병적인 증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도 그것은 있었고, 그 전 정권에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교육 병의 심각함을 정치가, 경제인, 학부모, 심지어는 교원조차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교육에 병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부실하면 부실할수록 사교육 기관과 입시 관련 기업은 엄청나게 번창하게 마련이다. 셋째는 정치가, 경제인, 학부모들이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다. 이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교육에 대한 투자는 뒷전에 밀어둔다. 학교에서 좋은 인적 자원들을 배출해 주어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주장하면서, 좋은 학교를 만드는 것에 대한 협조와 지원에는 인색하다. 그리고 인성 교육을 강조하면서, 자녀 입시 지도에 소홀한 학교와 교사들을 비난한다. 교육에 관련된 집단들이 이러한 상태에 있는 한, 우리 교육의 병을 조속히 고치는 것은 어렵다. 교육 대통령은 우리 나라 ‘교육병’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와 협조를 얻어내고 합의를 이루어 내야 한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교육의 기반을 다지고, 기강을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PAGE BREAK]이런 대통령을 뽑으려면, 교원들은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들의 과거의 활동, 경력 그리고 업적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지켜보아야 한다. 선거 참모들이 써준 공약보다 중요한 것은 입후보자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경험과 업적 및 실적이다. 다음으로 교원들은 출마자들의 언행을 유심히 지켜보아야 한다. 경제계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과학기술계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과학기술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문화계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는 문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교육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만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는 그런 사람은 뽑지 말아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가? 그들은 실제로 교육 대통령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는가? 그렇다면 약속은 왜 했고 그것을 왜 지키지 않았는가? 표는 가깝고 절실하지만, 교육 투자는 긴급을 요하지 않고 효과는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대통령을 뽑을 때마다 “어디 진짜 교육 대통령감 없습니까?”라고 묻게 되는 것이다.
임승천 /서울 구일고 교사·시인 우리 사회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선생님이 비를 들고 교실을 쓸고 있는데 한 학생이 자기 발을 올리며 "여기도 쓸어주세요"라고 말한다.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예절이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 현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편의주의적 발상 등은 많은 사람에게 불쾌감·실망감과 함께 교육적 문제점도 돌아보게 한다. 초기 농경사회에서 가지고 있었던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가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마을의 규칙이나 어른들의 가르침은 사회를 유지하고 이끌어 가는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요즘에는 청소년들의 잘못된 언행을 보고도 이를 나무라는 어른이 너무 적다.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예절교육이나 질서교육조차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집안에서도 각종 과외나 학원공부에 시달리며 시간에 쫓겨 생활하는 자녀를 크게 다그치지 못하는 현실이 바로 과잉보호나 원칙 없이 교육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오늘의 가정이 적은 수의 자녀를 가지다 보니 모든 것이 자녀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게 마련이다. 학교에서조차 휴지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가르친 올바른 예절교육은 자녀들의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올바른 교육을 받은 자녀가 성장했을 때 올바른 사람이 되고 올바른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분명하다. 부모 모두 직장에 나가는 맞벌이 가정이 많기 때문에 가장 교육이 소홀해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은 예절교육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의 인성교육 필요성은 너무나 절실한 문제이다. 올바른 생활지도와 질서교육의 바탕 위에서 삭막해져 있는 교육현장을 다시 세워야 한다. 물론 이것은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다. 가정, 학교, 사회 모두의 공동 책임이라 할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능숙하고 영상매체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의 특징을 보면 지구력과 인내심이 부족하다. 오래도록 앉아 할 수 있는 일을 기피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올바른 인격의 교육은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지혜와 바른 삶을 영위케 하는 능력 및 의지를 심어 준다. 인성교육의 방편으로는 봉사 활동, 각종 체험 활동, 부모와의 대화, 명상 및 독서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활동이 인성교육적 측면에서 이루어진다면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장애인과의 생활, 노인들과의 대화, 공공기관에서의 봉사, 바쁜 일손 덜어주기 등을 통해 이러한 일들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배울 수 있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간다는 자긍심도 얻을 수 있다. 더구나 인격적 만남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더 큰 교훈도 준다. 자신의 취미나 관심 분야에서의 체험은 앞으로의 진로나 직업에 대한 준비 및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좋은 책을 읽는 습관과 지속적이고 심도 있는 독서는 견문의 확장 및 새로운 사고와 발상의 전환에 적절하다. 부모와의 인격적 대화는 가치관 정립은 물론 인격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지속적이고 진지한 대화, 일관성 있는 본보기와 실천에 의한 공감의 폭을 넓혀간다면 인성교육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력과 인내심도 인격적으로 바르게 사용될 때 더욱 유용하다. 창의력 교육도 필요하다. 우리 교육은 입시를 위한 획일적 교육에서 다양함을 찾아가는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가정, 학교, 사회 모두가 창의적 사회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교육정책 당국의 과감한 교육시설 투자가 있어야 하겠고 학부모들의 넓고 바른 태도 변화와 모든 교육주체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도 있어야 한다. 교사들 또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이를 이끌 마음 자세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창의적 인간은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그 일을 스스로 찾아 목표를 정한 후 노력하는 정신과 목표 달성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 줄도 알고 도전의식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때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 생생한 체험을 통해 온몸으로 느끼기, 백과 사전식 공부 방법 등을 필요로 한다. 인식 주체의 필요성에 따라 이런 과정이 스스로 계획되고 실천될 때 창의력을 가진 바람직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교육이 공감하고 실천해야 할 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한다. △판단의 소리(내가 옳고 내가 관리한다)보다 인식의 소리(수용과 이해)를 높여야 한다 △모든 종류의 경험과 기회가 필요하므로 어떤 일정한 틀에 넣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차와 요구에 따른 반응에 적절하게 맞추어 나가자 △부모와 자녀의 방식에서 차이점과 유사점을 파악하고 인식하고 인정해 나가자 △적당한 체벌(체벌이 과하면 자신감이 없고 주눅이 든다)과 칭찬(칭찬이 과하면 이기적이고 버릇이 없어진다)이 필요하다.
장병학 /충북 진천삼수초 교장 21세기 지구촌 시대를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미래사회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적응하며 살아나갈까.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시켜야할까. 우선 우리가 살아갈 새 세기의 미래사회를 예견해보자. 다가오는 사회는 속도의 사회로 우리가 제일 먼저 느끼게 되고 또한 적응해야 할 것이 바로 속도일 것이다. 21세기의 인류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게 됨은 숙명적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정보와 기술의 시대로써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문자 그대로 동에서 서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전해지는 상황에 다를 것이다. 그리고 질의 시대로써 변화가 많고 복잡하며 심리적 불안감이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삶의 질이 높아지고 폭은 넓어질 것이다. 넷째, 창조의 시대로써 남과 다름으로 인해 위축감과 열등감을 느꼈던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래 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독창적이고 다양하며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섯째, 감성의 시대로서 감성 지능이 높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것은 기계와 기계 사이에서 인간성과 감성이 자꾸만 메말라 갈 때 아름다운 감성과 따뜻한 마음, 남을 배려하는 여유를 가진 자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개성의 시대로써 탈 획일화의 길목에서 개성은 미래사회의 중요한 특성이 아닐 수 없으며 남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색깔이 생산과 직업의 세계에서도 존중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가정중심의 시대로써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올 것이며 생활의 모든 면이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끝으로 세계화 시대로써 지역화, 지구촌화, 다문화의 세상이 전개될 것이다. 지역성을 초월하여 시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이동하며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만연될 것이다. 미래사회는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대화능력이 있는 사람, 스트레스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할 것이다. 앞으로는 미래사회를 살아갈 우리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더욱 커지게 된다. 이제 부모는 자녀를 '오늘의 자식'에서 '미래의 자식'으로 보아야 한다.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자녀의 인간성을 어떠한 방향으로 형성시켜야할 지에 기본을 두는 교육을 해야 한다. 또 '나의 자식'에서 '우리의 자식'으로 보아야 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생각이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고 나만의 자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의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기적 개성에서 이타적 개성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또한 개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의 개성임을 잊어서는 안되며 단순한 수재에서 도덕적인 재능인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특히 다가오는 미래 사회에서는 단순한 역할밖에 감당하지 못하는 지식인보다는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고 창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재능인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고의 틀을 순응성에서 도전성으로 바꿔야 하고 다양하게 사고하면서 적극적인 사고 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자기주도적 수용적 태도를 길러주어야 한다. 한편 21세기 지구촌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가오는 세계 각국의 여러 나라의 선두에 서기 위해, 또한 주도적인 우리의 미래 사회를 슬기롭게 극복해나가기 위해 다함께 내 아이와 함께 환경보호 운동을 실천해가야 함은 물론 나와 내 아이가 살아갈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교육적으로 탐색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 아이와 함께 사회 봉사 활동을 실천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줘야 한다. 또한 내 아이와 함께 문화활동을 실천해감으로써 민주시민으로 자질을 키워줘야 한다. 그래서 변화와 스트레스가 많은 미래사회를 살아갈 우리의 자녀들이 각종 문화활동을 통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미래사회는 또한 정보화사회이니 만큼 자녀와 함께 사이버 세계로 여행을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나 찾아보고 아이와 함께 사이버 세계로 여행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자녀와 함께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그 세계로 찾아들어야 한다. 끝으로 21세기 우리의 미래사회는 속도의 시대, 정보와 기술의 시대, 질의 시대, 창조의 시대, 감성의 시대, 개성의 시대, 가정 중심의 시대, 세계화 시대가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복잡다단한 미래사회를 살아갈 우리의 자녀를 위한 교육방법에 변화가 따라온다. 교사와 부모의 책임은 어느 때보다 커진다. 학교, 가정, 사회교육이 하나가돼 '생각'을 바꿈으로써 우리의 아이들을 21세기에 걸 맞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