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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정성범 | 서울 도성초 교사·시인 7차 교육과정은 학생의 학습과 일상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과 태도의 육성을 위하여 학습자 중심의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하고 있다. 현장 체험학습은 학생 활동 중심 학습을 통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 다양한 표현의 경험, 폭넓은 학습경험, 기본생활 습관 기르기 등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꼭 필요하다. 학교에서 계획하여 실시하는 현장 체험학습은 학년 단위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년 단위 체험학습은 학교의 관리 측면에서는 효율적이나,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아 학생 개개인이 충분한 체험학습을 실시하기가 어렵다. 자칫 학습이라기보다 여행이나 놀이라는 측면이 더 부각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학년 단위 체험학습은 학년 초 교과 관련 장소를 신중히 선택하여 학기 중 1회 정도로 제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체험학습은 학급 단위 소규모 집단별로 다양하게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같은 시기에 학급별로 장소만 달리하여 체험학습을 실시하는 경우, 체험학습 장소별 참가 희망 학생에 대하여 체험학습 실시 후 각 학급 친구들에게 간접 경험의 기회를 주도록 한다. 장소별로 학급 인원을 재배정하는 번거로움은 있으나, 가 본 곳을 또 가게 되는 비효율적인 일을 줄이고 좀 더 신나는 체험학습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학생들에게 학습 목표와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장소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제시해야만 한다. 유사한 학습 목표로 시기를 달리하여 학급별 체험학습을 실시하는 경우에는 선행 실시 학급의 학습 과정 및 결과를 참고할 수 있어 유리하다고 판단된다. 학급 단위 체험학습이라 해도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소모임별로 활동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좀 어렵겠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학생들은 교사로부터 활동 안내를 받아 주어진 시간 내에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다. 가까운 공공 기관이나 공원 등은 초등학생도 학생들만의 계획과 학습이 가능하다.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이지만, 소모임 체험학습의 경우에는 특히 치밀한 사전 안내와 활동 후 세밀한 보고서 작성 및 검토가 필요하다. 학생들과 현장 체험학습을 실시하다 보면 사전 안내 자료 및 체험 학습지·보고서 등을 어떤 양식으로 제시하느냐, 자원인사 또는 인솔도우미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사후 지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학습에 임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왕릉을 견학할 때 단순히 왕릉의 모양을 그리게 하느냐, 왕릉에 대한 사전 지식을 터득하도록 자료를 미리 제시하고 학습지를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서 체험학습에 임하는 호기심은 사뭇 차이가 있다. 그 결과 또한 커다란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필자는 학년 단위로 왕릉을 견학할 때 학급별로 전문 자원봉사자 1명, 인솔 도우미를 2명씩 활용한 적이 있다. 교실에 돌아 와서는 왕릉에 대한 퀴즈대회를 열고 우수한 학생에게는 칭찬과 시상을 하기도 했다. 체험학습 후 간단한 보고서 외에 동시를 쓰게 하고 사진과 함께 학급 홈페이지에 게시도 했다. 필자가 쓴 시도 복도 게시판에 학생 작품 및 활동 사진과 함께 게시했다. 그러고나니 학생들은 다음 체험학습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면서 꿈을 키운다. 체험학습시 아쉬웠던 점이나 더 알고 싶은 점 등은 가족 체험학습으로 연계하여 실시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한다. 요즘 가족 단위로 행사 참여나 여행을 겸한 산행, 해외 여행을 겸한 문화 체험 등 가족 체험 학습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경우든 학교에서 주어진 양식으로 사전 계획서와 사후 보고서를 받는 것 외에 담임교사의 친절한 지도와 안내가 필요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한 사전 지식 습득 외에 학년 수준에 맞는 안내가 필요하다. 체험학습 실시 후 학급 친구들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면 보다 효과적인 가족 체험학습이 가능하다. [PAGE BREAK]현장 체험학습은 청소년단체 활동이나 학교간 도·농 교환 체험 학습을 통하여 실시되는 경우도 있다. 청소년단체에서는 주로 지역 연합회 활동의 일환으로 단체별 특성에 맞는 체험 활동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아가 단위 학교 나름으로 지역사회의 체험학습 장소 및 자원인사를 활용하는 면도 고려해 봄직하다. 학교간 도·농 체험학습의 경우에는 가급적 도·농간 체험 학습경험이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면 교육적 효과는 더욱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말마다 학급 어린이들과 산행을 하며 모둠별로 미리 준비한 장기를 발표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동시를 쓰게 하며 주변의 오물을 치우는 등 일련의 활동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과 호연지기를 키웠던 지난 시절이 새삼 그립다. 바다가 가깝고 숲이 울창한 동해의 작은 마을, 다목적 교실과 교재원이 제대로 갖춰진 시골 학교에서 청소년단체 대원들과 농·어촌 체험 야영을 실시했던 일, 밤하늘에 빛나던 별들을 관측하며 무한한 상상력과 꿈을 키웠던 과학 캠프를 생각하면 흐뭇하기만 하다.
김종원 | 서울 대영고 교감 지금은 직업에 귀천이 없는 시대이지만 3D 직종은 아니더라도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이름을 그대로 말하면 듣기 싫어하던 때가 있었다. 친구 중에 정육점 하는 이가 있어 술 마시고 농담이라도 백정이라면 버럭 화를 내어서 푸줏간 주인으로 불러 잠잠하더니, 얼마 지나자 그것도 듣기 싫어해 정육점 사장으로 불렀더니 한동안 좋아하다가 그것도 찜찜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모든 일을 전문직이라고 하는 시대에 그 흔한 ‘사’자를 붙여달란 말이지? 그래 큰마음 먹고 ‘육류가공사’라고 불러 주었더니 얼굴이 활짝 펴지는 것이 아닌가? 세상은 바야흐로 모든 사람들이 잘난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직급도 인플레가 되었다. 부엌데기라고 하던 것이 50년 전인데 식모로, 다시 가정부로 부르다가 요즈음엔 ‘가정관리사’로 부른다고 한다. 광복 후 우체부 또는 체전부라고 하더니 얼마 후에 우편배달부로 고쳐 부르더니, ‘배달부가 무어냐, 우편집배원이지’하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은 ‘새소식전령사’로 불러야 격에 어울린다고 할 것이다. 거간꾼 하다가 복덕방할아버지라고 하더니, 이젠 자격시험까지 합격해야 ‘공인중개사’가 된다. 유산균음료 배달원아주머니는 ‘영양공급사’로, 거리청소부는 환경미화원이라는데 곧 ‘환경미화사’로 바뀔 것이다. 학교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은 용인이라고 하다가 기사 또는 기능직공무원이라고 고쳐 불렀다. 얼마 안 가서 기능사라고 부를 것 같다. 수위 일을 맡으면 경비기능사, 보일러공은 보일러기능사, 목공은 목제기능사로 말이다. 간호원이 간호사가 된 것은 벌써 옛일이고 보니 교원들도 이제 직급을 올려 주어야 전반적으로 직급이 상향조정된 사회 분위기에 어울릴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때 교장은 1급 공무원 대우를 했는데 지금은 학교 급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체감하는 현행 교원들의 직급은 어떠한가? 초등학교에는 서무부장으로 7급인 주사보와 교사·교감이 있으니 초등학교 교장은 5급 사무관 정도로 인식되고 있고, 중학교엔 서무부장인 6급 주사와 교사·교감이 있으니 중학교 교장은 4급 서기관 정도로 인식되고 있으며, 고등학교에는 5급 사무관인 행정실장과 교사·교감이 있으니 고등학교 교장은 3급 부이사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엔 경찰서장이 새로 부임하는 관내 초등학교 교장에게 칼 차고 가서 거수경례를 할 정도로 초등학교 교장의 위상이 높았으니, 직급 인플레 시대에 1공화국에 비하여 5·16쿠데타 이후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추어진 교원들의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겠다. 1공화국 때처럼 초·중·고등학교 교장은 1급 관리관급으로 대우하고, 교감은 2급 이사관급으로 해야 할 것이다. 평생 해 보아야 평교사라고 불평하는 교사들도 호봉에 따라 직급을 부여하여 불만을 해소하여야 인재들이 몰릴 것이다. 어떤 이들은 수석교사제니 선임교사제니 하는 말들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제도는 일부 몇 사람에 국한되는 것으로서 전체 교원들 위상을 높이는 데는 흡족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하겠다. 오히려 전체 교원들 위상을 높이는 쪽으로 호봉에 따른 직급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PAGE BREAK]1∼15호봉까지는 6급 주사급 교사로, 15∼30호봉까지는 5급 사무관급 교사로, 31∼35호봉까지는 4급 서기관급 교사로, 36호봉 이상은 3급 부이사관급 교사로 대우한다면 2세 교육에 헌신할 우수한 인재들이 교직의 문을 더욱 힘차게 두드릴 것이다. 여기에 교감은 2급 이사관급, 교장은 1급 관리관급으로 일반공무원들과 연결시 위상을 보완한다면 한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동양적인 교직관에도 다가가는 품위유지형 교직 안정화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승진 심사를 엄격히 하여 학생교육에 태만하거나 무능한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도태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원들을 우대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백년대계라는 중차대한 2세 교육 업무를 그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교원노조법을 호봉에 따른 교원 직급화 정책으로 대체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정책으로 교직 안정을 꾀하여 이 나라 백년대계를 더욱 튼튼하게 해야 할 것이다.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으로 흥청대는 정치권이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 그리 엄청난 돈을 들이지 않고도 교원들에게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주어 결과적으로 이 나라 미래를 밝게 한다면 이보다 시급하고 뜻깊은 정책도 없을 것이다. 처음 시작은 어느 직종보다도 보수나 품위 유지에 있어서 우위에 있다고 하는 교직이 시간이 갈수록 초라해진다면 어찌 우수한 인재가 교직의 문을 힘차게 두드리랴. 국가의 미래를 열어갈 2세들을 길러내는 교육의 성패는 교육의 주체인 교사의 질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우수한 두뇌를 양성하는 것이 국가 융성의 관건 아니겠는가?
신동호 | 과학동아 편집장 1기억은 단편적인 경험을 체계적인 지식으로 저장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망둥이는 기억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몇 초 전에 했던 실수를 되풀이한다. 반면 기억력이 뛰어난 인간은 실패의 경험을 되살려 더 잘하게 된다. 요즘 “창의성, 창의성” 하는데 사실은 기억 없는 창의성, 어느 정도 외우지 않는 창의성은 사상누각과 같다. 창의성은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어떤 자극에 의해 기억한 정보가 서로 연관되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젊어서 이룩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타는 것도 젊을 때 기억력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네트워크로 기억을 저장 흔히 사람들은 반도체 기억소자를 떠올리면서 사람도 반도체처럼 정보를 기억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반도체는 내부에 아주 작은 구멍이 수없이 많이 있어 여기에 전자로 정보를 저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뇌세포의 네트워크로 기억을 저장한다. 뇌세포는 무려 1000억 개나 되고 하나의 세포는 수만 개의 다른 뇌세포와 뉴런으로 연결돼 있다. 뇌세포의 숫자는 탄생할 때나 지금이나 가진 숫자가 거의 같지만 태어났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 이유는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연결망이 무수히 생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평소 A라는 뇌세포는 B라는 뇌세포와만 연결돼 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이 연결은 강화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A 뇌세포가 흥분하면서 새 가지가 뻗어 나와 C라는 뇌세포와 연결된다. 이 새로운 연결망이 바로 새로운 기억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꾸 어떤 비슷한 학습이나 행동을 하다보면 특정한 연결망이 자꾸 강해진다. 인간이 반도체로 만든 컴퓨터와 다른 점은 기억이 곧 학습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을 학습해 더 고차원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네트워크로 기억을 저장하는 것은 학습을 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자꾸 학습을 하다보면 특정한 네트워크는 자꾸 강화되고 어떤 것은 약화된다. 따라서 네트워크가 계산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조금씩 변화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반도체 칩은 공장에서 출고될 때 이미 계산 규칙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사람의 뇌나 뇌를 닮은 신경망 칩은 자꾸 학습을 시킬수록 새로운 계산 규칙을 배운다. 그래서 신경망 칩은 음성 인식, 언어 처리, 로봇 제어, 패턴 인식과 같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주로 쓰인다. 기억은 순간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부에서 집 근처 자장면집의 전화번호를 찾아보았다 치자. 책을 펼쳐 본 순간 숫자의 상(像)이 뇌에 1초도 못 되게 잔상처럼 남는다. 이것이 순간기억이다. 우리가 만화영화를 볼 때 실제로는 끊어진 여러 장의 만화를 보는데도 마치 이어진 화면처럼 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는 마음속에 전화번호를 외우고 자장면집 번호를 누른다. 번호를 누른 뒤 몇 분 또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번호를 기억한다. 이것이 단기기억이다. 다음 날 깨어나면 전화번호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만일 일주일에 한번씩 자장면집에 전화를 걸어 요리를 시켜 먹는다면 이 사람은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번호를 잊지 않게 된다. 이것이 장기기억이다.[PAGE BREAK]공부를 재미있게 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눈과 귀 등 오감을 통해 자극받은 단기기억은 뇌의 원시적 부위인 변연계에 속하는 해마와 그 바로 옆의 편도체에 일시적으로 보관된다. 해마란 이름은 모양이 바다의 해마(海馬)와 닮았다 해서 붙은 말이다.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해마는 크기가 새끼손가락만하지만 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해마와 편도체가 손상되면 손상되기 전에 한 일은 잘 기억하면서도 최근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학습도 할 수 없고 지식도 늘지 않는다. 편도체는 행복, 공포, 불쾌감 같은 감정을 맡아 동기를 부여하는 부분이다. 편도체를 없애면 사람은 전혀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감정과 동기를 만드는 편도체가 왜 기억에 관여할까? 감정이 기억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불쾌한 경험이나 자극, 공포의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경험, 한밤중에 산 속에서 맹수의 푸른 눈과 맞부딪친 순간, 첫 키스의 쾌감을 우리는 절대 잊지 않는다. 이런 일을 기억함으로 해서 다음에 비슷한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고 다음에 또 연인과 만나 그 쾌감을 반복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감정은 기억 강화제이다. 따라서 기억은 차가운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재미없는 공부를 할 수 없이 할 때보다 흥미에 이끌려 하는 공부가 훨씬 오래 기억으로 저장된다. 따라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또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 성공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오래 기억하려면 반복학습이 중요한 이유 뇌의 기억 제조공장인 해마는 단기 정보가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늘 판단한다. 컴퓨터와 우리의 뇌가 다른 점은 컴퓨터의 경우 사람이 ‘delete’ 키를 눌러야 정보가 지워지지만 인간의 뇌는 스스로 판단해 삭제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뇌가 형편없어 보이지만 자동 삭제 기능 덕택에 인간의 뇌는 저장 용량 부족에 시달리지 않는다. 해마에 단기기억이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시간은 불과 5분 정도이다. 5분 안에 단기기억으로 갈지 장기기억으로 갈지가 정해진다. 런던 시내 택시 운전사들은 운전 경력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해마의 뒷부분이 크다. 여러 군데를 다니고 다양한 사람과 만나게 되는 택시 운전사는 많은 자극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해마의 특정 부위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단기기억 중 단편적 지식은 곧바로 기억에서 지워진다. 뇌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억 삭제 기능이다. 만일 중요하지 않은 단편적 지식을 모두 기억한다면 우리의 뇌는 기억 용량 초과로 결국 멈춰 버리고 말 것이다. 대신 중요한 지식과 경험은 축적됐다가 고등한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전두엽에 장기적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기억은 어느 정도의 속도로 지워질까? 독일의 심리학자인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100여 년 전 실험을 통해 ‘에빙하우스 망각 곡선’이란 것을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곡선에 따르면 암기한 단어는 네 시간 뒤에는 10개 중 5개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24시간 후에는 3~4개, 또 48시간 뒤에는 2~3개의 단어를 기억한다. 암기한 단어의 대부분은 잊혀지지만 머리 속에 살아남은 몇 개의 단어는 비교적 오랫동안 기억된다. 에빙하우스는 망각 속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완만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공부를 할 때 되풀이해서 복습을 하면 망각 속도의 기술기가 더욱 완만해져 더욱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 [PAGE BREAK]학습할수록 기억 유전자에 불이 켜져 영리해져 장기기억은 단기기억과 비교해 기억의 지속 시간 외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뇌세포와 분자 수준으로 내려가 보면 두 종류의 기억은 완전히 딴판이다. 단기기억 때는 뇌세포와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지 않지만,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바뀔 때에는 뇌세포에서 회로를 만드는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져 새로운 신경 회로망이 생긴다. 이 과정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과학자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신경생리학자인 에릭 칸델 교수이다. 오스트리아 출생인 그는 장기기억의 메커니즘을 밝혀낸 공로로 2000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칸델 교수는 1970년대부터 바다에 사는 민달팽이로 학습과 기억의 원리를 연구해 왔다. 처음에는 포유동물로 연구를 했으나 포유동물을 갖고 복잡한 기억과 학습 과정을 이해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뇌세포가 크고 수는 적은 민달팽이로 실험 모델로 바꾸었다. 칸델은 민달팽이를 학습시키면서 생물학적으로 기억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두 종류가 있고, 장기기억이 생성될 때에는 신경세포 사이에 새로운 신경 회로망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냈다. 칸델의 실험은 이랬다. 민달팽이는 호흡관으로 물을 빨아들여 이 속의 산소를 호흡한다. 호흡관을 툭 건드리면 달팽이는 아가미를 잠시 동안 몸 속에 숨기는 게 보통이다. 칸델 교수가 달팽이 꼬리에 약간의 전기 자극을 가한 뒤 호흡관을 건드리자 달팽이는 위험을 느꼈고 자극이 반복될수록 달팽이가 아가미를 몸 속에 숨기는 시간은 길어졌다. 전기적 자극을 감지하는 신경세포와 아가미를 움직이는 운동 신경세포 사이에 없었던 신경 회로망이 자꾸 만들어지면서 “위험하니 아가미를 내보내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기기억이었다. 그렇다면 단기기억은 무엇일까?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가해졌을 때 뇌 세포 내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이 늘어난다. 따라서 전기 신호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접속 지점을 훨씬 더 쉽게 통과할 수 있게 돼 잠시 동안 기억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극이 사라지면 이 기억은 잊혀지고 만다. 이것이 단기기억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자극이 반복되면 뇌 세포에서 프로틴 키나아제 A라는 물질이 활성화되면서 이것이 뇌 세포의 핵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핵 속에 있는 크렙(CREB)이란 단백질을 인산화시킨다. 인산화된 크렙 단백질은 뇌세포와 뇌세포 사이에 회로를 만드는 10여 가지 유전자와 결합해 스위치를 켜게 된다. 그래서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회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장기기억이다. 새로운 회로가 생기면 그 회로가 몇 시간에서 몇 주까지도 지속돼 기억이 장기간 저장되는 것이다. 뇌에선 기억 삭제-저장 간 전쟁 늘 벌어진다 그러나 뇌세포 사이에 회로가 만들어졌다고 무조건 장기간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뇌는 쓰지 않는 회로를 자꾸 없애는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복 학습을 통해 이 회로를 더 강하고 두껍게 만들어야 한다. 크렙 단백질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억을 촉진하지만 다른 하나는 기억에 제동 장치 역할을 한다. 기억을 촉진하는 크렙 단백질과 기억을 삭제하는 크렙 단백질은 보통 때에는 균형을 이룬다. 열심히 공부를 하면 기억 촉진 단백질이 더 강해져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꾼다. 반대로 멍청한 상태로 있으면 해마는 일시 저장된 단기기억을 지워 버린다. [PAGE BREAK]크렙 단백질의 존재는 시냅스의 활동을 활발히 하면, 다시 말해 공부를 할수록 사람이 영리해진다는 것을 분자 수준에서 증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유전적으로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경세포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그 기능이 점점 쇠퇴해 버리게 된다. 실제로 자극이 전혀 없는 환경에 사람을 오래 격리시키면 이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만다. 인간의 기억력과 지능은 선천적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도 개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자각과 행동이 유전자의 활성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유전자는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억력 강화제 개발 눈앞에 기억이 유전자의 장난이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기억도 강화할 수 있다. 크렙 단백질을 잘 만들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면 쥐와 초파리는 더 적은 자극으로도 기억을 잘 한다. 하나를 기억시키는 데 보통 10번을 연습해야 했던 초파리가 유전자를 조작하자 한번에 재빠르게 기억을 한 실험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기억력도 강화할 수 있지 않을까? 노인이 될수록 또한 치매 등 뇌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기억 상실이 매우 심각하다. 그래서 전세계 유명 제약회사와 벤처 기업은 크렙 단백질의 기억 원리를 이용해 ‘기억력 촉진제’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적어도 5~10년 안에 사람의 기억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신약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개발 중인 대부분의 치료약은 뇌세포가 파괴된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것이지만 언젠가는 학업 성적을 올리는 이른바 ‘스마트 약’으로 시판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 기억도 약물로 조절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뇌는 잠자는 시간 동안 학습했던 내용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잠을 자면서 뇌에 입력된 정보를 정리하고 필요 없는 기억을 삭제하고 기억을 업데이트 하고 새로운 경험을 우리의 장기기억 시스템 속에 통합하는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잠을 잘 때 뇌에 새로운 신경 회로망을 만들어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다. 수면 부족하면 기억에도 치명타 잠과 기억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하버드 대학 로버트 스틱골드 박사는 24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밤샘 공부를 한 사람과 공부를 한 뒤 잠을 잔 사람이 그 다음날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지 실험했다. 예상대로 충분히 잠을 잔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기억했다. 이처럼 잠은 장기기억의 형성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밤샘 공부는 시험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잠이 드는 순간 마치 불이 꺼지듯 의식이 멈추기 때문에 밤새 뇌가 쉬고 있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는 깨어서 활동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파가 발생하고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과 비 렘수면이 5~7차례 반복된다. 특히 잠든 지 한 시간 반쯤 뒤 잠이 깊어졌을 때 시작되는 렘수면 때에는 깨어 있을 때처럼 톱니 모양의 뇌파가 나타난다. 또 눈알을 빠르게 굴린다. 심장도 빨라지고 숨도 가쁘게 쉬고 혈압이 오르고 남자의 경우에는 발기가 된다. 잠을 잘 때 눈이 빙글빙글 도는 램수면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뇌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진다. 램수면 때에 뇌교는 척추신경을 차단하고 대뇌와 시상하부 쪽으로 신호를 보낸다. [PAGE BREAK]렘수면은 성인보다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서 훨씬 많이 나타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전체 수면 시간의 50%가 렘수면이지만 성인이 되면 렘수면이 20%가 되고 노인이 되면 더욱 줄어든다. 렘수면 상태에서는 꿈을 더 많이 꾸기 때문에 흔히 ‘꿈 수면’이라고도 부른다. 새로운 지식을 더 많이 경험하고 습득하는 어린이가 꿈을 많이 꾸는 렘수면 시간이 길다는 것은 꿈과 기억이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말해 준다. 꿈의 기능에 대해 현재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이론도 ‘기억과 학습 이론’이다. 이 이론은 꿈이 새로운 정보를 메모리 시스템 속에 짜 맞추면서 정서적 자극을 줄이는 동시에 다른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에 적응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 즉 꿈을 꾸면서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은 그날 습득한 경험을 뇌가 정서적으로 소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주장도 있다. 꿈은 단순히 렘수면 동안 발생하는 정신 활동의 부수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의견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색다른 경험을 한 날 꿈을 많이 꾼다. 특히 스트레스를 크게 받거나 또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그날 밤 강렬한 꿈을 꿀 가능성이 높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을 때 불이 나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며 쫓긴다는 것이다. 이런 꿈은 며칠씩이고 반복되지만 결국 상처가 치유되면 희미해져 없어지게 된다. 결국 꿈은 인간의 성장과정인 셈이다. 자꾸 꿈꿀수록 자란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 다음은 지난해 12월 19일 ‘연합뉴스’가 “발등의 불 산업공동화”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내용의 일부이다. “새해 벽두 우리 산업계에 던져진 또 하나의 화두는 산업(제조업)공동화 문제다. 경제단체와 연구소의 조사 결과는 심각하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국내 100개 기업 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30%가 이미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했거나 이전을 고려중이라고 응답했다. 해외이전의 원인으로는 고임금이 39%로 가장 많았고 잦은 파업 등 노사관계 불안 34%,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 20% 등 노동문제가 전체 응답의 대부분이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375개 중소제조업체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전체 37.9%가 이전을 준비중이거나 이미 마쳤고 이 중 85.2%가 중국을 생산기지로 택했다. 이전시기로는 1∼2년내 61.7%, 3∼4년내 27.8%로 산업공동화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반증했다. 제조업의 공동화는 설비투자 감소와 청년실업, 국민소득감소를 야기시킨다. 대한상의는 11월 `‘제조업 공동화 현황과 대응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우리 나라의 산업공동화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근거로는 성장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인 설비투자가 지난 96년 44조원으로 정점을 이룬 뒤 지속적으로 감소, 2002년에는 20조원으로 줄어든 점을 들었다.” 기업 경쟁력 상실에 따른 산업 위축 산업공동화라는 현상이 최근 우리 경제의 큰 문제로 떠올라 있다. 그런데 논의가 많은 주제가 흔히 그렇듯 그 의미가 오해될 때가 많고, 잘못 알고 쓰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정리해 보자. 산업 공동화란 어느 나라의 산업 전체 혹은 일부가 심하게 위축되어 공백이 생기는 현상이다. 한자로는 産業空洞化, 영어로는 hollowing out이라고 한다. 산업이 공동화하면 생산과 투자, 고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실업이 늘고 국민소득이 줄어든다. 기술의 국내 축적이 어려워져 국민경제의 향후 성장 잠재력도 떨어진다. 어느 나라에서 산업이 공동화하는 이유는 그 나라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잃어서이다.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은 나머지 대거 망하거나 생존을 위해 생산시설 등 기업 활동 기반을 생산비가 싼 저개발국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공동화가 찾아온다. 그 결과 산업이 위축되고 경제가 후퇴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공동화가 반드시 경제의 후퇴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산업 공동화가 산업구조를 고도화할 계기도 주기 때문이다. [PAGE BREAK]공동화는 산업 고도화의 계기 산업구조 고도화란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 부문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 부문으로 경제 자원이 이동해 전체 산업 구조가 질적으로 진보하는 현상이다. 공업화가 앞선 구미 선진국들은 일찍이 제조업 공동화를 겪었다. 하지만 이내 산업 고도화로 경제위기를 극복해냈다. 제조업 공동화란 말 그대로 제조업의 공동화. 산업 발전 과정에서 제조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부가가치가 낮아지면서 망하거나 해외로 이전되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구미에서는 대개 공업화 이후 국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제조업 공동화를 겪었다. 때문에 산업 공동화를 주로 탈공업화(deindustrialization)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우 1970∼80년대에 제조업 공동화 위기를 맞았으나 IT 산업을 일으켜 극복했다. 제조업 부문에서 남는 인력은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 부문에 활용해 새 시장을 만들어냈다. 홍콩, 싱가포르도 1990년대 전반기에 찾아온 제조업 공동화 위기를 산업구조 고도화의 계기로 삼아 극복해 냄으로써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를 이뤄냈다. 산업 고도화를 이뤄내는 나라는 제조업의 위축이나 해외 이전 러시가 찾아오더라도 고부가가치 자본재나 부품의 제조와 수출을 늘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산업 공동화 과정에서 산업 고도화를 이뤄내지 못하는 나라는 공동화에 따른 경제 후퇴를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다. 제조업 공동화, 무엇을 걱정해야 하나 문제는 지금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투자 러시(rush)가 과연 제조업 공동화를 가져올지 여부에 있다. 여러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경제기사를 보고 이 점을 우려하고 그러리라고 단정하기도 하지만, 이 문제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라면 달리 생각한다. 해외 투자가 반드시 공동화를 가져오는 것도 아닌 데다, 지금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투자에서는 공동화를 부를 만한 문제점이 별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 제조업의 해외 이전 러시는 값 싼 일손을 찾아 중국과 동남아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노동집약적 조립 가공을 위주로 하는 중소업체들이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이전해 가는 것이다. 대기업의 해외투자라 하더라도 국내에 생산체제를 갖추고 해외시장 확보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첨단 산업의 해외 이전도 조립 가공 공정에 머물고 있다. 곧 지금 우리 나라 제조업의 해외투자는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이 국내 투자 기회를 외면하고 해외로 이탈함으로써 공동화를 부르는 부정적 투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경쟁력을 상실한 비교열위 분야의 해외투자다. 그런 만큼 오히려 국내에 산업 고도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 투자다. 무역 측면에서 봐도 제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우리 국민경제에 긍정적이다. 해외진출 기업들이 국산 원부자재 수입을 늘리면서 발생하는 국산품 수출유발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투자로 해외 현지 생산 제품이 국산 수출품을 대체하는 수출대체효과도 크다. 하지만 효과로는 전자가 후자보다 더 크다. 중국 등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해외 거점을 향한 국산 자본재와 부품 수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점도 국산품 수출유발효과를 더욱 키우고 있다. [PAGE BREAK]최근 해외투자가 늘었다지만 알고 보면 규모도 비교적 크지 않다. 해외직접투자의 명목GDP 비중은 대만이 2000년대 이후 2%로 급등했지만 우리 나라는 2001년 1.2%, 2002년 0.6%로 1% 내외 수준에 그친다. 보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해외투자가 부진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최근 제조업체의 해외이전 러시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는 제조업 공동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 나라 제조업은 최근 투자 부진, 고용 급감을 겪으며 두드러지게 활력이 떨어졌다. 제조업 위주의 국내 설비투자는 지난 96년 44조원에 달했으나 2002년에는 20조원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사업체 수와 출하액 증가세도 90년대 후반 이래 크게 둔해졌고 고용 흡수력도 약해졌다. 업체들의 인력 합리화로 제조업 취업자가 전체 산업에 걸친 취업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90년 27.2%에서 2002년 19.1%로, 8.1%포인트나 떨어졌다. 지난 90년 504만개였던 제조업 일자리 수는 2003년 416만개. 13년 사이 88만개나 줄었다. 국민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서비스업 수요가 높아진 결과 제조업에서 활력이 빠지는 것이라면 걱정거리가 아니다. 탈공업화가 산업 고도화로 연결되는 과정에서는 제조업의 산업내 비중이 떨어지는 현상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제조업 경쟁력은 떨어지는데 산업 고도화는 진전되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다. 고용 측면에서도 마찬가지. 제조업에서 배제된 인력을 고부가가치 서비스업보다는 부동산·관광·음식점·유흥 레저 등 부가가치가 낮은 비제조업이 흡수하는 경향이 크다. 이대로 가면 제조업의 기술축적이 부진해지고, 그 결과 고부가가치 생산을 확대해 소득 수준을 안정적으로 키우기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제조업은 경쟁력 부진으로 쇠퇴하고,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도 발전하지 못해 산업 공동화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산업 공동화를 극복하려면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은 산업 공동화가 닥쳤을 때 기술력과 새 산업을 매개로 산업구조를 고도화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우리 나라는 현재 제조업의 기술력이 산업 공동화를 산업 고도화로 이끌어낼 만큼 부가가치를 높이지도 못한 상태다. 제조업을 대치할 만큼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이 발전하지도 못했고, 바이오 산업 같은 새로운 산업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경쟁이 가속되는 한 산업 공동화 압력은 앞으로 한층 높아질 것이다. 우리 나라가 산업 공동화로 인한 경제 후퇴를 겪지 않으려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산업 공동화는 근본적으로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져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은 더 키우고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 부문에서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워 고용을 창출하면서 산업구조를 고도화시켜나가야 한다. 기업들은 기술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정부는 새로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경영환경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한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개별 기업, 산업에 그치지 않고 노동, 교육, 금융, 외환, 통상 등 산업 기반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최홍길 | 서울 선정중 교사 “선생님들 제발 기말고사가 끝났다고 해서 수업을 등한히 하면 안 됩니다. 비디오나 CD 틀지 마시고 수업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교과서를 벗어나 선생님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교감의 부탁 사항이 끝났다. “방금 교감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저도 첨언하겠습니다.” 직원회의의 마지막 발언은 언제나 교장 몫이었다. “요즘 공교육 불신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적당주의는 금물입니다. 학교는 학원과는 다른 곳입니다. 국어시간 같으면 띄어쓰기나 맞춤법, 속담, 로마자 표기법 등 얼마나 다양합니까? 시험 때문에 가르치지 못했던 다양한 교양을 학생들에게 심어줄 절호의 기회가 바로 이때입니다. 선생님들이 인정받을 때가 바로 지금이란 말입니다.” 교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어제 교장실에 앉아 학부모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수업은 안 하고 온통 영화만 보고 집에 왔다는 자녀의 이야기를 듣고 학부모가 항의 전화를 해왔습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오늘부터 수시로 복도를 오가며 확인하겠으니 수업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직원조회가 끝났다. 기말고사가 끝난 12월 중순이 되면 여느 학교에서나 강조되는 학교관리자들의 훈시이다. 홍 선생의 선지중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학생들이었다. 교사들은 나름대로 학습지도 만드는 등 수업에 만전을 기하려 했으나 학생들이 문제였다. “선생님, 시험도 다 끝났는데 좀 쉬시죠.” “평상시 계속 공부만 하셨지 저희들에게 자유시간 한 번도 주신 적 없잖아요?” “창민이가 영화 CD 구워왔어요. 최신 개봉작이거든요.” “선생님, 그거 봐요.” 홍 선생은 과감히 거절했다. 교감과 교장의 간곡한 당부가 생각나서였다. 홍 선생은 분필을 들고 칠판에 적어나갔다. 1) 닭을 못 먹는다. 2) 부엌에 바퀴벌레가 많이 있다. 3) 밭이 잡초 때문에 말이 아니다. 4) 꽃아, 너는 왜 향이 그리 곱니? 흰색 분필로 큼지막하게 쓴 다음 빨간 색으로 닭을, 부엌에, 밭이, 꽃아에 밑줄을 긋고 있는 그 시간, 홍 선생의 뒤통수에는 학생들이 곱지 않은 시선이 집중됨은 당연한 이치. 홍 선생은 고개를 돌려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자 칠판을 보자.” 학생들은 이내 칠판에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놈들 말이야, 칠판을 보라니까.” 홍 선생의 목소리가 교실을 울리자 학생들은 물론 홍 선생 자신도 속으로 놀랐다. “얘들아, 오늘은 이렇게 할거야. 칠판에 네 문장 있잖아. 이것만 제대로 발음할 줄 아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수업 끝이야. 근데 나오지 않으면 선생님이 준비한 공부를 계속해야 해.” 학생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PAGE BREAK]“야, 우리 반 1등 누구야.” “재영이지.” “우리는 재영이 너만 믿는다.” 모든 시선이 재영이에게로 쏠렸다. 재영이는 지난 1년 동안 네 번의 시험을 치르면서 국어는 언제나 백점 만점이었다. 말하기 읽기 쓰기 듣기의 수행평가 역시 만점이었다. 360여 명의 1학년 학생 가운데 줄곧 백점을 받은 애는 재영이뿐이었던 것이다. “그래 재영이 일어나 읽어보자. 만약 재영이가 제대로 읽지 못하면 수업 계속하고, 제대로 읽어내면 오랜만에 자유시간이다.” 홍 선생의 말 뒤로 학생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선생님, 1, 2, 3번은 자신 있는데, 4번은 아리송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뜻밖에 재영이가 자신 없어 하자 홍 선생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4번은 선생님께서 몇 가지 답을 칠판에 쓰셔서 친구들의 의견을 물어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홍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재영이는 얼음 위에서 박 밀듯 1번, 2번, 3번을 읽어 나갔다. 그 사이 홍 선생은 분필을 들고 4번 밑에 네 가지를 적어 내려갔다. [꼬사] [꼬다] [꼬차] [다 답이다] “그래 7반이 총 36명이지? 한 사람이 한 번만 손을 드는 거야. 다수결로 해서 그게 정답이 되면 바로 수업 끝이다.” 홍 선생의 설명 뒤로 학생들의 손은 올라갔다. 꼬사 11명, 꼬다 15명, 꼬차 3명, 다 답이다 7명이었다. 학생들은 수업을 한 시간 내내 받아야만 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 시간이었다. 홍 선생은 7반 옆 반인 8반 교실로 들어갔다. 물론 수업내용은 7반 내용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 8반이 총 36명이지? 한 사람이 한 번만 손을 드는 거야. 다수결로 해서 그게 정답이 되면 바로 수업 끝이야. 자유시간이지. 방학 전전날이라 너희들이 원하는 것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 홍 선생의 설명 뒤로 학생들의 손은 올라갔다. 꼬사 5명, 꼬다 6명, 꼬차 23명, 다 답이다 2명이었다. 홍 선생은 약속을 들어줘야 했다. 쉬는 시간에 7반의 한 학생이 8반 친구인 부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린 것이었다. “그래 오늘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해. 마지막 시간이니 인심 쓰겠어. 독서를 해도 좋고, 빙고를 해도 좋아. 엎드려 잠을 자도 오늘은 봐주겠어.” 홍 선생은 인심을 썼다. “선생님, 아까 쉬는 시간에 끝장을 못 봤는데요, 말뚝박기 해도 되죠? 1분이면 되는데…” 학생은 말꼬리를 흐렸다. 홍 선생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몇 명이서 같이 한 거야?” 홍 선생이 물었다. “네 명이요.” 학생의 대답은 의욕이 없었다. “그래 국어수업 마지막 시간인데. 그 대신 빨리 끝내야 해.” [PAGE BREAK]학생 네 명은 교실 뒤편 청소도구함 쪽으로 이동했다. 청소도구함을 의지한 채 네 명의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은 의욕적으로 말뚝박기에 임했다. 나머지 학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쪽을 향했다. 엎드려 자는 애는 한 명도 없었다. 홍 선생도 히히덕거리며 놀이에 몰두하는 그들이 귀여웠다. 그때였다. 교실 뒷문이 슬며시 열렸다. 교장이었다. 말뚝박기 하는 학생 넷은 물론 나머지 학생 서른두 명의 시선이 일제히 교장에게 향했다. 찰나의 시간이었다. 이내 그들의 눈동자는 홍 선생 쪽으로 향했다. 교장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찰나였다. 앉아서 되새김질하는 외양의 소처럼 홍 선생은 뚱한 표정이었다. 교장은 다시 뒷문으로 나갔다. 홍 선생은 뒷날, 수업시간에 학생들하고 같이 말뚝박기 놀이를 즐긴 사람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신천호 / 한의사 건강한 척추 유지하기 인체의 중요한 경혈이 한곳에 모여 있는 척추는 앉아 있을 때나 서 있을 때 잘 관리해야 한다. 길을 걸을 때에 항상 자세가 부정확하다면 반드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예를 들어 자세가 불량하면 자연히 척추에 과중한 부담을 가함으로써 척추를 통과하는 신경을 압박하여 질병을 일으키기 쉽고 생리적 노화를 가속화한다. 그러므로 평소에 곧은 자세로 걸어야 한다. 이와 함께 평소에 척추펴기 운동을 하면 척추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 고혈압, 식욕부진, 신경쇠약, 성인병, 빈혈, 냉감증, 비만 등 전신 발육에 영향을 주는 나쁜 증상들을 없앨 수도 있다. 척추를 펴는 운동의 자세는 회교도가 알라신에게 엎드려 절하는 자세와 무척 유사하다. 그들은 신에게 절할 때 온몸을 땅에 엎드리는데, 이때는 등의 근육도 펴진다. 이처럼 등의 근육을 펴서 엎드리는 자세는 부지불식간에 몸을 건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 운동은 고양이가 몸을 펴는 운동의 원리와도 같다고 알려져 있다. 이 운동을 항상 연습하면 전신의 근육과 관절, 척추의 활동을 매우 원활하게 해준다. 척추를 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신체에 결함이 있거나 걸어다니기 불편한 사람 이외에는 매일 즐겁고 진취적인 정신을 유지하면서 척추를 곧게 하고 걷는다면 선생님들의 가슴도 자연히 펴질 것이다. 허리 비틀기로 요통을 예방하자 허리에 자그마한 이상이라도 생기면 불편함이 크다. 그만큼 허리는 우리 인체에서 중요한 부위이다. 평소에 허리 비틀기 운동을 통해 허리 통증을 예방하자. 이 운동법은 간단하다. ①두 다리를 어깨넓이로 벌린다. 상반신을 느슨하게 하고 자연스런 마음을 유지한다. ②허리를 힘껏 오른쪽으로, 뒤로 돌리며 흔든다. 이때 두 발은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야 한다. ③머리도 뒤를 향해서 돌린다. 머리를 돌릴 때 힘껏 돌리되 최대의 폭으로 한다. 그런 다음 정면으로 돌아온다. ④다시 왼쪽, 뒷쪽으로 흔들며 돌린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흔들며 돌린다. 동시에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구령을 붙인다. 허리를 균등하게 유지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 허리 비틀기 운동은 실패하는 법이 없는 좋은 방법이다. 초기 목표로 가장 좋은 것은 규칙적으로 30회 한도에서 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날이 갈수록 횟수를 늘여간다. 자연스럽게 습관이 든 다음에는 아침, 정오, 저녁에 앞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손 흔드는 운동을 먼저 하고 바로 이어서 허리 비트는 운동을 100회 정도 하면 좋다.[PAGE BREAK]매일 세 번 합계 300번 정도 하면 된다. 새벽 기상 후에 혹은 잠들기 전에 각각 150회씩 두 번에 나누어 해도 괜찮다. 앞에서 제시하는 운동 횟수는 일반인의 능력범위 안에서의 표준치이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므로 만약의 자신의 체질이 약하다면 매일 표준동작을 유지하는 게 좋다. 운동 횟수는 꼭 표준횟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최종 목표는 반드시 표준횟수와 같아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하루하루 횟수를 늘여나갈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다만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중지하면 안 된다. 만일 자신의 체질과 체력이 약해진 원인이 위장, 간장, 췌장 등 소화기관의 기능 이상이거나 변비, 불면증 등이라면 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가는 허리를 만들고 싶거나 뱃살을 제거하고 유방의 발육을 원하는 사람에게 허리 비틀기 운동는 매우 적합한 운동이다. 체력을 증강하는 체조 이 외에 다음의 체조도 체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을 준다. ①두 손을 등 뒤에서 교차하게 놓고 상반신을 힘껏 뒤를 향해 젖힌다. ②상반신을 똑바로 세웠다가 다시 뒤로 젖힌다. 자기가 목표하는 것이 신체가 45도 각도로 구부러지게 하는 것이라면 매일 적어도 10회는 해야 한다. 간단한 체조지만 허리가 이미 몹시 구부러진 사람에게는 매우 효과가 크다. 이와 함께 이 체조는 등뼈를 확장하고 성기능의 활력을 자극하며, 장양강정(壯陽强精) 등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여성들은 집안일로 인한 후유증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매일 시간을 내서 꼭 하는 것이 좋다.
최홍숙 | 충남 학봉초 교사 1년에 두 번 있는 방학 과제 중, 학생들에게 필수로 제시되는 것 중의 하나가 편지쓰기이다. 선생님, 부모님, 친구, 친척에게 편지를 보내도록 하고 방학이 끝난 후 점검까지 한다. 학생들에게 답장 한번 안 해 주면서 편지했나 안했나는 꼼꼼히 체크했다. 방학 과제상을 주어야 하니까!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후 지금껏 그렇게 해왔다. 현진이의 마음을 알게 되기까지는…. 현진이는 십여년 전 내가 가르친 1학년생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방학 중 많은 학생들로부터 과제 해결성이 짙은 편지를 받았는데, 현진이만은 답장을 안 해줄 수가 없었다. 현진이의 아버지와는 같은 교직원이었기 때문에 개학하면 마주칠 것이고, 1학년 어린것이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을 안 하면 눈총을 받을 것 같아서 엽서에 큰 글씨로 휘갈겨 답장을 보냈었다. 그런 이기적이고 거만함은 현진이 때문에 붓과 가까이 하게 되는 오늘의 나로 만들었다. 현진이 어머니가 선생님의 답장을 애지중지 하는 아들의 마음을 이렇게 전해 줬기 때문이다. “엄마, 이거 버리지 마아”하며 식탁 위에 세워 놓곤 날마다 읽어보며 즐거워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전하는 현진이 어머니의 표정은 아들을 키우는 보람과, 행복과,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번 담임은 영원한 담임인가? 지금도 현진이 아버지와 가끔 마주치면, 현진이 아버지는 얼른 달려와 내게 악수를 청하며 허리를 굽힌다. 내가 현진에게 보낸 사연은 대충 이런 것 이었다. 현진아 잘 있었니? 네가 학교 들어오기 전 아빠가 자주 네 이야기를 하셔서 선생님은 네가 예쁜 여자인 줄만 알았는데 씩씩한 남자였지 뭐니? 네가 착하고 씩씩하고 키도 크고 인사도 잘하고 친구들하고도 안 싸우고 잘 놀아서 선생님은 현진이가 참 좋단다. 앞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라 안녕. 될 수 있으면 적게 쓰려고 엽서로 보냈던 것이다. 현진이 아빠는 현진이를 학교 넣고서 얼마나 교실을 훔쳐보고 싶었을까? 춤 잘 추는 여자 어린이를 예쁘게 꾸며 단위에 올려놓고 중간놀이 할 때는 ‘내가 왜 딸을 낳지 못 했는가’하며 자기 아들이 뽑히지 못해 마냥 부러워 한숨을 쉬었단다. 현진이 이후로는 방학마다 엽서를 한 움큼 사다 놓고 모두 답장을 해주었다. 어쩐지 내 글을 받는 사람은 무척이나 좋아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성을 다하여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쓰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학생들의 가슴 떨림을 보기 위해 계속 편지를 쓴다. 일기장 밑에 소곤거리듯 남몰래 주는 단 두 줄의 글도, 공책 검사를 하고 잘했다고 써주는 외마디 문장도 그들은 좋아한다. 그들은 선생님의 필적으로 검사해 주고 격려해 주는 말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 [PAGE BREAK]학생들에게 부여하던 편지쓰기가 세월이 흐른 지금 이메일로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들은 이메일을 장난감 다루듯 가볍고 쉽게 잘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4학년생들은 아직 자유롭지 못한 학생이 많다. 1학년때부터 이메일을 갖도록 지도하지만 생활화가 안 되어서 자기 아이디를 까먹거나 집에 인터넷이 안 깔려서 못한다고도 한다. 어느 날 매주 한번 있는 컴퓨터 시간에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라고 시간을 준 후 답장과 함께 잘된 편지를 작품으로 만들어 복도에 게시해 놓는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저마다 멋지게 편지를 날렸고, 개구쟁이들의 아부에 기분이 우쭐해진 나는 그 동안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놓은 사진과 사연을 곁들여 컬러로 뽑아 꾸며 놓았다. 그 중에서 예쁜 합창복을 입은 진용이 사진과 함께. “아라비아 왕자 같이 잘생긴 네가 공부까지 열심히 해서 1등을 하겠다니 선생님은 참 흐믓하다”라고 전교생이 다 지나다니는 곳에 게시해 놓았더니, 학습발표회때 그것을 보신 진용이 아버지가 음료수 한 박스를 얼른 사가지고 오셨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 칭찬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부모들의 마음,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사랑을 주고받는 학생과 선생님이 많은 나라가 되어 온 세상이 좀 더 따뜻한 사람들로 가득 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