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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이성준 | 경기 용인 지석초 교사 올해도 작년에 이어 특별활동 부서 신청란에 영어연극부를 적어 냈다. 작년에 일곱 명을 데리고 연극반을 지도하면서 충실히 가르쳐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힘들지만 많은 추억을 남겨주는 연극에 대한 애정과 미련이 교차한 것이 그 이유이다. 연극은 늘 만족하게 끝나지 않지만 본 공연보다 준비 과정이 힘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로 걱정하고 부대끼는 가운데 아이들이나 지도교사는 형언키 어려운 값진 그 무엇인가를 얻게 된다. 처음 발령받아 영어교과 전담교사로서 큰 의욕을 가지고 시작했던 해의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모 대학에서 개최했던 초등학생 영어연극대회에 우리 학교도 영어연극부를 급조해 참여하게 되었다. 4학년 학생 중에서 성적이나 영어 실력이 아니라, 연극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겠다고 기대되는 아이들을 뽑는 것을 캐스팅 기준으로 삼았다. 대부분 생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상태라 학원에 안 다니는 학생이 많았다. 그러니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 남아서 연습하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소문난 개구쟁이 우람이, 천사 같은 언니 수연이 와는 달리 고집불통 수진이, 꼼꼼하고 착한 희숙이 등등 연극부원이 확정되었다. 이제부터 피나는 연습만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문화나 정서에 맞는 연극 대본을 구하기가 어려워 아이들과 직접 의논해 가며 대본을 직접 쓰기로 했다. 연극의 특성과 구조에 대해 설명해 주며 조금씩 대본을 써 나갔다. 아이들 대부분이 기초 단어도 읽을 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진척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그림을 눈에 익히듯 문장 전체를 보면서 소리를 외워 연결시키도록 반복훈련을 시켰다. 시간은 더뎠지만 아이들과 함께 만드니 재미있어 하며 뿌듯해 했다. 흥미를 고조시키기 위해 등장인물의 이름도 아이들이 정하도록 했다. 대본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무려 한 학기 이상이 걸렸다. 제목은 ‘뱃살공주’였는데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뱃살공주가 자신의 헤어스타일에 유난히 집착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미용사를 만나 결혼한다는 내용이었다. 나와 아이들이 많은 공을 들여서인지 단행본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거라고 자부할 만한 대본이 완성되었다. 대학 시절 희곡과 세익스피어 작품 수업을 빼놓지 않고 들었던 것이 그렇게 큰 도움이 되었다. 본격적인 연기 연습과 함께 무대 배경이며 소품 제작에 들어갔다. 마땅히 나서서 도와주실 학부형도 안 계셨지만 모든 것을 아이들과 나, 우리의 힘으로만 완성하고 싶은 욕심에 연극 연습이 끝난 후에도, 영어교실에 남아서 소품도 만들고 전지에 배경 그림도 그리고 색칠을 하였다. 어두워지고 추워서 더 이상 교실에 남아 있기 힘들 때가 되어서야 자장면을 한 그릇씩 먹여서 집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코러스는 도무지 지도가 되지 않아 하이라이트 부분만 빼고 카세트 테이프에 따로 녹음하여 더빙하기로 했다. 의상은 집에서 각자 구해오도록 했고, 분장은 6학년인 수연이가 맡기로 했다. 드디어 대회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마침 10월이라 쉬는 날이 많았지만, 휴일을 모두 반납하고 막바지 연습에 전념했다. 그동안 열심히 따르고 연습해준 아이들이 매우 고마웠고 이제야 ‘사서 고생’을 좀 면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6개 학교만이 참가 신청을 해 내심 좋은 성적의 입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대회 당일 열 두 명의 아이들과 함께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주최한 학교에 도착했다. 날은 눈부시게 맑았고, 마침 축제 기간이라 여기 저기 다양한 부스와 함께 먹거리 장터도 벌여놓고 있었다. 아이들과의 나들이는 더없이 아주 산뜻하게 시작되었다. 우리의 공연 순서는 네 번째였다. 막이 오르고 첫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무대 장치와 의상에 아이들이 압도된 것이다. 형형색색의 의상과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꾸민 무대 배경은 마치 동화책이 살아서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동물 모양의 소품의상을 입은 아이들이 무대 위를 오가며 유창한 영어로 말하고, 악기까지 연주해 가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나도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 때문에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어느새 두 번째 공연 준비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들이 무대에 여러 가지 무대 장치와 소품을 설치하느라 분주했고, 아이들에게 의상을 입히고 한 명씩 직접 분장을 해주었다. 두 번째 공연의 막이 오르자 이번에는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영어로 랩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발음도 아예 원어민 발음과 다르지 않았다. 내 이마에서는 급기야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둘러보니 풀이 죽어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이들이 자신감을 잃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수진이가 울상이 되어 내 의자 옆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어떡해요. 우리는 망신만 당하게 생겼어요.” “음, 괜찮아. 우리도 열심히 연습했잖아.” 하지만 수진이는 왜 우리는 준비를 더 잘하지 못했느냐, 의상이 초라하다는 등 떼쓰기를 계속하더니 창피해서 연극을 못하겠단다. 주인공을 맡은 수진이가 공연을 못하겠다기에 수진이를 데리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때는 내 마음도 몰라주는 아이가 야속하기도 했고, 여기까지 와서 떼를 쓰는 수진이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수진아, 너희들도 그렇지만 선생님도 최선을 다했어. 일요일, 국경일, 개교기념일에도 선생님은 학교에 와서 너희들과 연습했잖아. 선생님 입술 좀 봐! 그리고 다른 학교 아이들은 엄마들이….”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지만 누적된 피로로 내 입술은 전체가 트다 못해 주먹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헤지고 부어 있었다. 겨우 아이를 달래서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공연 전에 수진이에게 화낸 것도 미안했지만, 더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아이들에게 못내 미안했다. 위로 차원에서 먹거리 장터로 데려가 순대와 떡볶이를 사주니 아이들은 금세 즐거운 모습을 되찾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내가 왜 어린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었는지 겸연쩍고 우습기도 하다. 그 아이들은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가끔은 그 연극을 떠올려 보기도 할 것이고 내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나에게 주어졌던 아름다운 만남과 소중한 추억에 감사하듯이 그 아이들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내일 모레는 특별활동 수업이 있는 날이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소품들을 손질해야겠다.
윤석우 | 경기 고양 백석고 교사 “선생님! 저 결혼합니데이.” 원식이의 결 높은 목소리를 들은 건 그리 오래 되지 않다. 그간 자주 통화를 해서 그런지 경상도 사투리도 정겹게 들렸다.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파도가 바위를 치고 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들떠 있었다. “잘했다. 축하한다.” 기쁜 마음으로 맞장구쳤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의 신산했던 지난 날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흔쾌히 그 두 마디로 마음을 대신했다. 사람마다 상대를 대하는 느낌이 다를진대, 원식이는 사뭇 달랐다. 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다되도록 지속적으로 전화를 해왔었고, 그때마다 자신의 근황을 전해오는 몇 안 되는 졸업생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결혼 소식은 무엇보다 반갑고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자운영꽃이 햇살에 빛난다. 멀리서 응시하면 보료를 깔아 놓은 듯 신비롭게 보이는 꽃밭. 듬성듬성 자운영꽃이 피어있는 논들을 지나며 5월의 싱그런 햇살을 본다. 결석한 원식이네 집까지 가려면 제법 먼 길을 걸어야 한다. 버스를 타도 되겠지만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하는 마을이라서 아예 처음부터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작정했다. 학교에서 출발한 지 오래지 않아 그리 실하지 않은 자전거 바퀴에 그만 펑크가 나고 말았다. 차마 길가에 두고 갈 수 없어 자전거를 곁에 끼고 천천히 걷는다. 가끔 버스가 스쳐갈라치면 도로는 온통 먼지투성이다. 심동리 길로 들어선다. 다복솔이 깔린 붉은 황톳길이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넉넉하다. 그러나 펑크 난 자전거는 여전히 쿨럭거린다. 길지 않은 두 구릉을 넘어서야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초입의 점방에 닿았다. 몸뻬바지를 강똥하게 차려 입은 주인 아주머니가 가게 문을 열고 나선다. “아주머니, 실례합니다만……. 원식이네 집이 어딘가요?” “원식이 아부지. 누가 찾으요.” 주인 아주머니는 빠르게 나를 위아래로 한 번 인두질하더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점방 안쪽으로 목을 들이밀고 목청을 높인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늙수구레한 어르신 한 분이 가게 입구로 걸어 나온다. 옷차림이 추레하다. 아마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던 듯싶다. “내가 원식이 애비요.” “원식이 담임선생입니다.” 나는 얼결에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점방을 나선 원식이 아버지는 불콰해진 얼굴에 성하지 않은 다리를 끌고 앞장서서, 그리 멀지 않은 집으로 나를 안내한다. 슬레이트를 간신히 이고 있는 집은 허름하다. 군데군데 슬레이트가 떨어져 나가 엉성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다. 여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집의 어수선한 느낌, 그러니까 에푸수수하여 산만하기 그지없는 집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다만, 집 뒤쪽으로 둘러 있는 깊은 대숲이 햇볕을 따뜻하게 받고 서 있을 뿐이다. 원식이는 방에 누워 있었다. 끙끙거리며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곧장 방안으로 들어간다. 아직 열이 내리지 않았는지 얼굴이 벌겋다. 시골 방안의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약은 먹었니?” 아이는 고개를 흔든다. 나는 우선, 학교에서 준비해 간 몸살감기약을 먹였다. 그러고는 방안에 있는 수건을 쥐고 마당으로 내려와 세숫대야에 찬물을 듬뿍 담아 방안으로 들어왔다. 원식이 아버지는 툇마루에 돌미륵처럼 앉아 있다. 동공이 열려 있다. 아이는 찬물을 이마에 댈 때마다 움찔한다. 아직 아침은커녕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듯하다. 몇 번을, 수건을 번갈아 가며 열을 내리고 있는데 먼저 하교했던 기홍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선생님, 여기…… 밥…….” 기홍이 어머니께서 원식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간단한 식사를 소반에 보내셨다. 흰 밥과 김치, 깍두기에 된장국이 전부지만 정갈하다. “원식아, 밥 좀 먹자.” 완강히 거부하는 아이를 억지로 일으켜 앉히고 뜨끈한 밥을 된장국에 말았다. 몇 숫갈 뜨다 만다. 조금 더 먹으라고 했지만 단호하다. 모든 것이 소태맛일 것이다. 아이를 다시 눕히고 이마에 찬 수건을 대어 열을 내린다. 기홍이가 대숫대야 물을 부리나케 바꿔온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있자니 어느 결에 아이가 잠에 떨어진다. 오훗녘 해가 금세 기울었다. 편안한 느낌의 얼굴이다. 열도 내린 듯싶고 호흡도 고르다. 좀더 자게 두고는 툇마루로 나와 앉는다. 기홍이는 저만치 앉아 있다. “어제, 늦게까지 아이들과 축구하고 놀았어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제 잘못인 양 기홍이는 얼굴을 들지 못한다. 그만한 나이에 그럴 법도 한 일인데 일찍 철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같은 말을 했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원식이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술이 적당히 취해 툇마루에서 졸고 계시나 했는데 마루에도 없다. “기홍아, 원식이 아버지 어디 계신지 모르니?” “아까 제가 들어올 때, 선생님 자전거 끌고 점방 쪽으로 나가시던 걸요?” 기홍이가 원식이 밥을 들고 오면서 원식이 아버지를 보았다며 정황을 말한다. 그 순간 점방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석양이 머물러 있는 에움길에 원식이 아버지가 자전거를 몰고 걸어오고 있다.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는 않는다. 기홍이가 재빠르게 달려가서는 자전거를 받아 온다. “선생님 자전거가 빵꾸 난 것 같아서 때워 왔지라. 해드릴 것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노을이 자운영꽃처럼 피어나는 마당에서 나는 아직도 붉은 기운이 사라지지 않은 얼굴의 원식이 아버지께 감사 인사를 올린다. 원식이는 아직도 잠에 빠져 있다. 아마도 푹 자고 나면 내일은 등교할 수 있으리라. 원식이 아버지의 다순 배려를 느끼며 자전거 손잡이를 잡는다. 기홍이가 동구밖까지 따라 나온다. 나는 그에게 원식이를 부탁하고 길을 잡아 나선다. 중천에 반달이 걸렸다. 자전거를 타고 달빛을 헤쳐 서둘러 페달을 밟는다. 마음 한켠이 흐뭇하고 따뜻해진다. 그후로 군대에서 휴가 나와 우리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원식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내가 “이제 고아구나.” 했더니 계면쩍은 웃음만 흘리던 녀석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누이가 있는 부산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울산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길 들은 지도 꽤 오래 되었다. 긴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울산에서 만난 여자인 듯했다. 제법 나이가 들어 하는 결혼이니 만큼, 행복하고 또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은 아주 사소한 데서 오는 것, 그것을 행복으로 아는 지혜로움도 알았으면 좋겠다. 고향집, 5월 들판에 피어 있던 자운영꽃처럼 원식이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빈다.
조현호ㅣ 울산 옥현초 교사 할미들이 만든 세상 영화 ‘마파도’에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남자를 다 잃고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다섯 노파가 등장합니다. 험한 바다와 싸워가며 억척스럽게 삶을 살아가는 그 영화 속 노파들은 각기 성격이 다르면서도 그네들만의 나라를 잘 통치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런 여성중심의 영화가 개봉되기 전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 개정안이 지난 3월 초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과도기를 거쳐 2008년부터 호주제는 완전 폐지된다고 합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제도도 바뀌어야 하겠지요. 바야흐로 남녀평등의 시대를 맞이하여 이번 호에서는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을 신화 속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생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성은 창세신화의 주인공입니다. ‘마고할미’는 단군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세상을 만든 창조신으로 지역에 따라 ‘노고할미’, ‘서구할미’ 등으로도 불립니다. 할미가 무슨 힘이 있나 하고 의아해 하실지 모르지만 할미란 ‘한+어머니’, 즉 대모신(大母神)을 이릅니다. 마고할미 신화는 특히 온갖 수모와 학대에 시달린 여성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받아들여졌습니다. 아주 큰 덩치에 오줌을 누면 홍수가 지고 한숨을 쉬면 곧 태풍이 되었답니다. 깊은 남쪽 바다를 건널 때는 치맛자락이 적셔졌는데 젖은 치마를 벗어 월출산에 걸쳐놓으면 온 산이 덮인 채 캄캄한 암흑계로 변했습니다. 서해의 섬들은 그녀가 변을 보고 난 뒤에 생긴 것이랍니다. 할미의 힘이 엄청나죠? 이제 부안군 변산면 격포마을로 갑니다. 격포마을 해안가 돌출된 곳에 수성당(水聖堂)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서해를 다스리는 ‘개양할머니’와 그녀의 딸 여덟 자매를 모신 제당입니다. 조선 순조 1년(1801)에 처음 세웠으며 현재의 건물은 1996년에 새로 지은 것입니다. 신화 속 개양할머니도 마고할미마냥 엄청난 여신입니다. 그녀는 서해바다를 걸어 다니며 깊은 곳은 메우고 위험한 곳은 표시하여 어부를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게 해주는 자상한 여신으로 딸들을 8도로 시집보내었지요. 수성당 아래는 용굴처럼 움푹 팬 지형인데 거센 파도가 이곳에서는 잠잠해집니다. 어머니의 자상함이 그 억센 풍랑을 잠재우는 듯합니다. 개양할머니의 본적이 부안이라면 ‘설문대할망’은 본적이 제주도입니다. 할망은 옥황상제의 셋째 딸이라고도 하는데 한라산을 만들 때 조금씩 흘린 흙들이 한라산 자락의 오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할망은 빨래를 할 때 제주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빨래를 놓고 팔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서서 발로 빨래를 문질러 빨았다고 할 정도로 거신(巨神)입니다. 그녀는 아들을 무려 500명이나 두었는데 할망이 죽은 것을 알고는 모두 한라산 영실기암으로 변했습니다. 또한 제주도 사람들에게 제주도와 육지를 잇는 다리를 만들어주겠다 했거늘 명주 단 1필이 모자라 실패했다고 합니다. 마고할미나 개양할미, 선문대할망은 지역은 다르지만 실상 같은 성격의 창조여신들입니다. 생산만큼은 여신의 고유영역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지요. 본향신으로, 여왕으로 웃손당은 금백조 셋손당은 실령조 맬손당은 소천국과 백조할망은 서울 남산 송악산서 솟아오던 임정국 님애기 소천국과 가부간 되난 아아전 오랐구나. 소천국 만나고 가부간 삼안 부배간이 렴살 때 아들 팔성제가 떨어질 듯 막동이는 배였구나….(이하 생략) 위는 제주도 송당 본향본풀이의 시작 부분입니다. 제주도 마을신 본향신을 모시는 본향당은 마을마다 분포되어 있지만 이곳 송당리의 본향당이 원조입니다. 사연인즉 금백주라는 여신이 소천국이라는 부신(父神)과 결혼하여 많은 자식을 낳고 살다가 죽은 후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당신이 되었고 그들의 자식들도 뿔뿔이 흩어져 제주도내 여러 마을의 당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백주할망은 서울에서 살다 제주로 넘어와서 이곳에 정착하여 본향당신이 되고 그 자손들을 번성시키는 정착여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이런 본향당 주변의 나무에는 화려한 물색을 걸어두어 신목에 대한 예우를 받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최초의 여성지도자였던 여왕은 신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유명한 선덕여왕 지기삼사(知幾三事)를 보면 여왕의 선견지명이 돋보입니다. 그 중 생전에 자신이 아무 날 죽을 것이라고 예견하고는 자신을 낭산(狼山) 남쪽 도리천에 장사지내라는 주문은 후대 사천왕사가 건립됨으로써 확인됩니다. 그렇지만 성골의 남자가 다하여 덕만(德曼)이 왕위에 오른다고 했을 때 조정에서는 얼마나 논란이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성품이 관인명민(寬仁明敏)하여 치세자로서 손색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첨성대, 분황사, 영묘사, 황룡사 구층탑 등 신라문화의 상징물들이 당대에 건립되었고 김유신이나 김춘추 같은 인물을 등용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창세신화 속에서 여신은 생산력을 가진 창조자요 대모신의 너그러움을 지닌 존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창세신화를 비롯한 여신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화에서 후속 이야기가 없어 이야기가 단절되기 일쑤고 설문대할망의 경우는 최후에 물장오리에 빠져 죽었다는 허망한 결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군신화에서도 웅녀는 곰이 사람으로 환생했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정보가 없어졌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는 그녀로 인해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여자인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더라면 죄가 없었겠죠. 하지만 여신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여신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하는 것은 모든 것들이 남성중심사회로 변해 간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남자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자들은 필요악적인 존재로만 전락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세상은 다시 남녀평등 혹은 여성중심으로 회귀하고 있으니 희망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승화된 사랑이 신화로 몇 년 전 안동 택지개발지구에서 무덤을 이장하던 중 남편을 잃은 아내의 애절한 마음이 담긴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 급박하게 써내려가 쓸 공간이 모자라자 윗부분까지 돌려쓴 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중략)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정절을 강조하던 조선후기라지만 이토록 애절한 망부가를 부를 수 있었던 아내의 사랑이 숭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 남자 뒤에는 더 큰 여자가 있었습니다. 시조(始祖)라는 엄청난 남자 뒤에는 그의 어머니가 있었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남자 뒤에는 그를 뒷바라지 해준 아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모신앙(聖母) 혹은 신모(神母)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추앙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로서 남편을 지극히 사모하여 그 사랑이 승화되어 여신이 된 이야기는 ‘치술신모 신화’에서도 나타납니다. 신라 눌지왕의 부탁으로 왕의 두 동생을 구출해낸 박제상은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박제상의 부인은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치술령에 올라 통곡하다 죽어 그 몸은 망부석이 되고 영혼은 새가 되어 은을암에 숨었답니다. 나라에서는 그녀를 치술신모라 일컫고 제의를 모시도록 하였습니다. 선묘의 사랑 또한 극진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옆에는 선묘를 모신 선묘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의상이 중국 유학시절 머물렀던 집의 무남독녀 아가씨였는데 의상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을 당합니다. 그러나 선묘는 의상에 대한 지원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의상이 신라로 귀국할 때는 황해에 몸을 던져 황룡이 됩니다. 이승에서 못한 사랑을 죽어서도 따라가겠노라고 하여 황룡이 되어 황해를 건너는 의상을 호위해 주고 부석사를 세울 때도 부석으로 잡귀들을 쫓아내어 주었고 최후에는 석룡이 되어 무량수전 아래에 묻혔던 것이죠. 선묘의 사랑은 세속적인 사랑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한(恨)이 한(恨)이 되어 무속에서는 한을 품고 죽은 역사 속의 주요 인물들이 신으로 모셔지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무속의 역할이란 것이 정상적인 죽음보다는 비정상적인 죽음을, 결혼한 사람보다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영혼을 달래는 것이 본분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안타까운 영혼들은 한이 깊어서 이승과 저승을 떠돌게 되므로 굿을 통해 이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한이 지나치면 그 폐해가 마을까지 번지게 되기에 동제로까지 확대되기도 합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는 대관령국사성황신이 된 범일스님과 여성황신이 된 정 씨 처녀를 모시는 제의입니다. 범일국사는 강릉에 살던 정 씨 처녀를 호랑이를 시켜 몰래 업어 오게 하고는 자신의 처, 즉 대관령국사여성황으로 삼았습니다. 대관령여성황이된 정 씨는 또한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비정상적이고 험한 죽음이기 때문에 무속신앙이 관장하는 영혼이 된 것이죠. 사람들은 대관령국사성황과 여성황을 음력 4월 15일부터 단옷날까지 약 20일간 강릉에 있는 대관령국사여성황사에서 합신(合神)하고 무당으로 하여금 굿판을 벌입니다. 조선 3대 누각의 하나인 밀양 영남루에는 죽음으로 순결을 지켰다는 아랑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유모를 따라 영남루로 달 구경을 갔다가 괴한의 핍박을 피하다 낙동강변 아래 대나무밭에서 억울하게 죽었다는 겁니다. 이후 밀양 부사로 부임하는 사람마다 첫 날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가는데 한 부사가 이 사연을 듣고 관련자를 처벌하고 마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워 혼백을 위로하기 시작하면서는 출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남루 아래에는 아랑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아랑사가 있으며 밀양지역 축제인 아랑제에서 규수를 뽑아 제향을 받들고 있습니다. 삼척시 원덕읍 신남마을에는 미역을 뜯으러 애바위에 갔다가 풍랑에 휩쓸려 죽은 처녀의 영혼을 위로하려고 남근을 깎아 바치면서 풍어를 기원하는 풍습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 해신당 외에 고성군에도 시집 못가고 빠져죽은 처녀의 영혼을 위로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등 동해안에는 바다와 관련한 여신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도 억울하게 죽은 처녀의 혼령이 그 마을 수호신으로 모셔진 처녀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남제주군 성산읍 신천리 현 씨 일월당은 오빠가 심한 풍랑을 맞아 불귀의 객이 되자 너무 슬픈 나머지 봉수대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현 씨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현 씨들의 조상신으로 모셔진 것이 마을을 지켜주는 당신으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릿발이 내린다는데 그 원혼들을 달래줌으로써 그 여신들이 바다를 지키고 산을 지키고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신들의 부활을 꿈꾸며 우리 국토 동쪽 끝 외로운 섬 독도가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독도는 현재 우리 땅이고 천년만년 우리 땅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거라고 단정하기엔 상대방의 대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본은 치밀하고 장기적으로 독도문제를 국제사회에 홍보함으로써, 비단 독도 뿐 아니라 우리에게서 또 다른 무엇인가를 빼앗으려는 고차원적인 술수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서해를 주름잡던 개양할미시여, 제주도를 만든 설문할망이시여, 그리고 우리의 마고할미시여, 동해의 여신들이시여…. 바다를 첨벙대던 그 거대한 몸집으로 막내둥이 독도를 지켜 주시고, 바다를 다스리는 인자함으로 우리 바다를 지켜 주소서….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모(某)학원이 대도시(서울, 부산)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가 주목을 끌고 있다. 설문결과, 초등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부모(17.4%)를 꼽았다. 부모가 자녀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직까지 우리 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요즘 사교육비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든 부모에게 있어 아이들의 응답은 적게나마 힘이 되어준 부분이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부모 다음으로 존경하는 인물로 세종대왕(15.1%)이 그 뒤를 이었고 이순신, 선생님, 유관순 등의 순(順)이었다. 이순신, 에디슨은 남자 초등학생에게, 유관순은 여자 학생들에게 각각 인기가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영토를 넓힌 광개토대왕, 앙드레 김, 가수 장나라, 베토벤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학생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 최근 불거져 나온 독도 영유권, 일본 교과서 왜곡 등의 영향 탓인지 존경하는 인물로 이순신, 유관순 등도 포함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존경하는 인물 중에 선생님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일어나고 있는 비리로 교육 현장이 얼룩져 있는 현실에 비추어보건대 비록 비율은 높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존경하는 인물 중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아이들의 눈에 비추어지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지는 한, 21세기 우리 교육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들 각자가 참교육을 실천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모르겠으나 어지러운 사회 환경에 아이들의 마음이 멍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경기도와 도(道) 교육청의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도내 일부 소규모 학교의 학생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도 교육청에 따르면 도와 교육청은 2003년과 지난해 농어촌 지역의 소규모 학교 50개(초등학교 45개, 중학교 5개)를 '돌아오는 농촌학교 육성사업' 대상 학교로 선정해 학교당 6억7천만원씩 지원, 교육 프로그램과 교육환경시설을 개선했다. 해당 학교들은 지원 예산으로 통학버스를 운영하고 다목적 교실을 건립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을 실시했다. 이같은 교육환경 개선에 따라 이천 도암초등학교, 가평 마장초등학교 등 8개 학교의 학생수가 사업시행 이전보다 30명 이상씩 크게 증가하는 등 가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교는 예산 등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생수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 교육청이 파악한 학생수 10명 이상 감소 학교는 양평 모 중학교를 포함, 6개 학교에 달하며, 특히 지난해 사업대상으로 선정된 25개 학교의 경우 전체적으로 4학년은 전년도에 비해 3.9%, 6학년은 6.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농촌학교 지원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일시적인 성과만 거둔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 교육청은 앞으로 지원대상 농촌학교의 학생 감소를 막기 위해 해당 교육청에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각 학교에도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계획을 수립, 시행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학교의 경우 신입생은 적고 새로운 학생도 유입되지 않아 학생들이 감소하고 있다"며 "그러나 학교에 대한 지원은 학생수를 늘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며 기존 학생들을 위해 교육환경을 개선해준다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5월 2일자로 경기도교육청 본청 교육국장에 김성기(사진, 金聲起, 58) 시흥교육장을 발령했다. 같은 날짜로 경기도시흥교육청교육장에는 이영호(李榮浩) 본청 중등교육과장이, 본청 중등교육과장에는 이선용(李善鎔) 중등교육과 인사담당장학관이 임용되었고, 인사담당장학관에는 권선우(權善牛) 파주교육청 학무과장이 전보 발령되었다.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한 신임 김성기 교육국장은 1969년 수원북중에서 교편을 잡은 이래 수원농고, 안양공고, 수성고 등지에서 평교사 생활을 마친 뒤 수원교육청 장학사, 도교육청 장학사, 관양중 교감, 용인고 교장을 지냈으며, 도교육청 사회교육체육과 체육담당장학관, 안산교육청 중등교육과장. 학무국장 등 본청과 지역교육 현장을 두루 거쳤으며 지난 3월, 시흥교육청 초대 교육장으로 근무하면서는 ‘서해안 시대를 주도할 조화로운 시흥인 육성’을 위해 일해 왔다.
대구 달서구와 달성군지역 40여개 초등학교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학력평가 시험을 치르면서 인터넷에 이미 공개된 문제를 그대로 출제해 물의를 빚고 있다. 30일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달서구와 달성군지역 40여개 초등학교는 지난 29일 2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 수만 명을 대상으로 학년별로 동일한 시험문제를 사용, 학력평가 시험을 실시했다. 이들 학교들은 달서구 월성동 S초등학교에서 대표로 시험문제를 출제하게 하고 이를 일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초등학생 학력 평가는 단위학교별로 평가도구와 문항을 만들어 문제를 출제하고 자체적으로 평가하라'는 시교육청의 지침을 위반했다. 또 S초등학교에서 출제한 문제들은 대구 동부교육청이 제작, 일선 학교들에 참고자료로 배포한 CD-ROM 타이틀 '2004학년도 초등학교 교과학습 발달상황 평가문항'에 나와있는 기출문제를 그대로 사용했다. 동부교육청이 지난해 4천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제작한 CD-ROM 타이틀은 학년별, 과목별로 30-50문항씩의 문제를 수록, 교육청 홈페이지로도 공개되고 있는데 S초등학교는 독자적으로 시험문제를 출제하지도 않고 이 가운데 과목별로 절반 이상의 문항을 그대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들 문제들은 상업적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어 사설학원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일부 사설학원에서는 이같은 규정을 어기고 버젓이 교재로 사용,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사설학원에서 배운 문제가 이번 시험에 그대로 출제되자 의아해 하기도 했다. 학생, 학부모들 사이에 이같은 논란이 제기되자 관할 남부교육청은 뒤늦게 감사반을 편성, 조만간 S초등학교를 비롯한 이들 40여개 초등학교에 대한 감사에 착수키로 했다. 이에대한 달서구 지역 한 학부모는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대표적인 사례"라면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한국교총은 30일 제49회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 입상자들에 대한 시상식을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