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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조현호 | 울산 옥현초 교사 선사인들이 던진 수수께끼 지난 호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울산 지역의 암각화 두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반구대암각화는 각종 동물상을 중심으로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고, 천전리암각화는 추상적인 기하하적문양이 돋보인다고 말씀드렸지요. 이번 호에서는 우리나라 암각화의 대세랄 수 있는 방형기하문 암각화를 찾아갑니다. ‘방형기하문’이란 네모모양의 기하학적인 문양을 말합니다. 그 형태는 지역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상하는 직선, 좌우는 안쪽으로 휘어진 곡선형이며 전반적으로 사다리꼴 형태입니다. 내부에는 가로 혹은 세로로 선이 몇 줄 그어지고 둥근 구멍을 파 놓기도 합니다. 이 바위구멍은 성혈(性穴)이라 하여 여성을 상징한다고 보며 풍요, 다산, 재생의 의미를 지닙니다. 외곽선에는 머리카락처럼 생긴 가는 선을 짧게 나타내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이 기하문을 일컬어 무복(巫服)을 입은 샤먼을 형상화하였다 하여 패형(牌形)암각화, 시베리아계열 암각화에서 보이는 신면(특히 태양신)으로 보는 신상(神像)암각화, 방패와 같은 모양에서 방패형암각화, 석검의 손잡이 부분에서 유래하였다는 검파(劍把)형암각화 등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이 글에서는 생김새만 따서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방형기하문이라 기술합니다. 이 독특한 기하문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그 시대를 살지 못한 우리로서는 선사인들의 생활상과 신앙관, 예술의식 등을 단지 추측만 할 뿐 비밀을 풀기는 아직 요원합니다. 우주여행을 하는 이 시대에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라 하겠습니다. 인류 최초의 도구이자 외경(畏敬)의 대상이었던 돌에 새겨진 이 수수께끼는 ‘우매한 현대인들아, 내가 남긴 문제 좀 풀어봐라, 모르겠지? 메롱!’ 하며 우리들을 놀리듯 합니다. 방형기하문의 본고장 고령 일대 암각화 우리나라 방형기하문의 시작은 고령 양전리암각화에서 시작합니다. 1970년에 발견되었지만 반구대와 천전리암각화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하다 1990년대 들어 경쟁적으로 비슷한 형태의 암각화들이 발견되면서 그 위상을 인정받습니다. 현재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알터암각화’는 낙동강의 지류인 회천과 인접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이 낮고 왼쪽이 높게 생긴 미끈한 바위 면에 방형기하문양과 동심원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방형의 아랫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에 머리카락과 같은 짧은 선을 집중적으로 묘사하였고 윗부분에는 ‘U’자 형으로 바위를 파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문양은 점차 머리카락을 모양의 짧은 선 부분이 간략화 되고 생략되어 가는 양상으로 새긴 것으로 보아 이곳의 것은 시대가 앞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곳의 동심원은 함안 도항리나 천전리암각화와 같이 태양신을 묘사했다고 봅니다. 이곳과 가까운 안림천변 안화리에도 암각화가 있습니다. 양전리 것에 비해 소규모로 태양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기하문 또한 양전리 것과 유사합니다. 울산과 고령의 암각화에서 보았듯 우리나라 암각화가 위치한 곳은 하천과 밀접합니다.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암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100여 미터 떨어진 하천가에 있었는데 거북을 빼닮은 길한 형상이라 마을 입구에 모셔둔 것입니다. 거북 등에 해당하는 부위에 기하 문을 새기고 가로줄을 그어 위아래에 각각 두 개의 성혈을 조성했습니다. 선사시대에도 거북모양의 물상은 길한 것이었나 봅니다. 거북을 닮은 반구대에 암각화를 새겼고 이곳 거북을 닮은 바위에도 역시 암각화를 남겼으니까요. 태양신을 맞는 포항 일대 암각화 포항이란 도시는 세계적인 제철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공장은 기계가 있는 곳이죠? 그래서 그런가요, 포항에는 ‘기계’라는 행정구역이 있습니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이지요. 물론 한자가 다르니 그 의미도 다르겠지만 이렇듯 재미있는 지명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특히, 전라남도 쪽에 가면 대구면, 마산면, 부산면 등의 지명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기계면 인비리에는 보기 드물게 석검 형태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논 한가운데 모인 세 기의 바위 중 제일 키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방형기하문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바위들은 생김새로 보아 고인돌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원래는 석검의 끝부분이 하늘을 향해 있었다고 하는데 논을 개량하는 과정에서 바위가 옆으로 누웠다고 합니다. 석검이 두 점, 맨 아래에 석촉 형태의 암각이 한 점 새겨져 있습니다. 맨 윗부분에 새겨진 석검의 경우는 이중선으로 나타나 아마도 칼집을 나타낸 듯합니다. 여수 오림동에서 발견된 암각화와 함께 보기 드문 경우라 하겠습니다. 석검 형태의 암각화는 방형기하문 형태를 검파형암각화라고 부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석검의 칼자루 부분이 방형기하문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방형기하문이 검파형암각화라고 학계에서 의견일치를 본다면 이곳 암각화는 검파형암각화의 시원이라고 봐도 무난하겠죠? 흥해읍 칠포리암각화는 곤륜산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암각화가 분포해 있습니다. 이곳이 위치한 영일만 일대는 해(태양신)를 맞는다는 뜻이니 태양숭배사상이 지배했던 선사시대에 이곳은 특히 신성한 곳이었나 봅니다. 또한 곤륜산은 전설의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다는 곳이고 마시면 불사신이 된다는 강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지상의 낙원이 아니던가요. 칠포해수욕장으로 흐르는 곡강천 인근에 규모면에서 으뜸가는 성혈바위가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칠성바위라 부르는데 바위 정상부뿐만 아니라 곳곳에 성혈을 파두고 정상부에서 아래로 바위 전체를 죽죽 파내어 온통 골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바위는 다른 곳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이 일대가 성혈과 암각화 천지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일대 암각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은 소위 곤륜산 ‘가’지구로 서북쪽 기슭 3부 능선의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모인 암면 네 곳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하문의 크기도 대규모로 위 길이가 96센티미터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길쭉하게 생겨 흙에 덮여있는 바위 면에는 여근암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곤륜산 ‘나’지구는 칠포2리 인근 바닷가에 위치한 범선 레스토랑 옆 계곡 일대입니다. 아쉽게도 곤륜산 일대에 대규모 산불이 난 후 나무더미를 계곡으로 모아 방치해 두어 접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불 덕분에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암각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별자리에서 따왔을 거라는 윷판형 암각화의 흔적도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지를 불태우는 엄청난 재앙 속에서 몸서리쳤겠지만 돌이라서, 바위라서 화마를 뿌리치고 살아남았습니다. 돌은 선사와 현대를 잇는 힘입니다. 선사도시 경주의 암각화 경주는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도시입니다. 하지만 선사시대 암각화도 볼 수 있는 선사도시이기도 합니다. 금장대암각화는 형산강 수면위에서 약 15미터 높이에 있는 암벽에 위치해 있습니다. 조선시대 금장대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암각화로 가기 전 만나는 산소에 초석자리가 남아 있지요.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면 앞으로는 제의공간으로 여겨지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서 경주시내를 바라보는 전경은 가히 일품인데 옛사람들은 ‘금장낙안(金丈落雁)’이라 하여 경주팔괴의 하나로 일렀습니다. 이 암각화에는 방형기하문은 물론이고 동물의 발자국, 꽃처럼 묘사한 원형다공문, 여근, 인면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합니다. 특히, 미완성 형태의 방형기하문이 한 점 보이고 있는데 그 형태가 두 눈(성혈)을 말똥말똥 뜨고 바위 면에 붙어있는 매미와 같습니다. 현재 육안으로 잘 보이는 암각화는 ‘V’자로 꺾인 주암면의 왼쪽 암면 좌측 끝에 모여 있습니다. 이 부분에는 역‘V’자형 바위 면에 방형기하문 여러 점과 여근형상 한 점, 동물 발자국 두 점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바위 면은 지의류(地衣類)가 퍼지면서 백화현상마냥 탈색해가고 있고 균열조짐까지 보여 안타깝습니다. 그런 바위 면에 안타까운 눈짓을 주고 시원하게 펼쳐진 형산강 너머 경주분지를 내다보다 잠시 눈을 감습니다. 이제부터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새벽부터 금장산 아래 강가는 분주했다. 며칠 전 제사장이 하늘신을 모실 제의 장소로 이곳으로 결정했고 드디어 오늘 신을 부르는 바위그림을 새기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부족에서 제일 솜씨가 좋은 청년들 몇이 제사장으로부터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치른 후 바위를 타고 올라와 바위 앞에 서 있다. 긴장했을까. 그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다. 동경을 만지작거리는 제사장은 태양신이 왕림하길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불덩이 같은 아침 해가 벌판을 비추자 제사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동경 빛이 눈부시다. 부족원들은 강 아래서 엄숙한 침묵으로 엎드린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이윽고 그림 한 점이 새겨지고 제사장은 신에 대한 의례에 여념 없다. 방패처럼 든든하게 태양신이 이 마을을 지켜주십사 하는 기원이었다. 이번에는 바위를 쪼아내 동물의 발자국을 새겼다. 더 많은 수확을 위한 기원이었다. 이어서 종족 번영을 위한 성혈을 새겨 넣었다. 얼마 전 다른 부족의 침입으로 피해가 극심했던지라 이들의 제의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바람이 있다." 안심리암각화는 경주 내남면 안심리 광석마을에 있습니다. ‘광석(廣石)’이란 이 일대에 고인돌 덮개돌과 같은 넓은 돌이 많아서 붙여졌습니다. 그래서 암각화가 새겨진 2미터 넘는 길이의 바위를 고인돌의 덮개돌로 보기도 합니다. 현재 바위의 정상부에 성혈이 뚜렷이 확인될 뿐, 바위 동쪽 윗부분에 집중된 방형기하문은 육안으로는 극히 일부만 확인됩니다. 이곳에도 지의류의 횡포가 말이 아닙니다. 게다가 일부 몰지각한 사람에 의해 훼손된 부분도 보입니다. 마을 이름은 ‘안심(安心)’인데 문화재 관리는 정 반대로 불안(不安)하기 그지없습니다. 암각화와 부처님의 만남-영주 가흥동암각화 시루떡을 옆으로 뉜 듯한 길쭉한 암벽에 자리하고 있는 이 암각화는 마치 새끼 게들이 영주시내를 흐르는 서천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의 암각화에 비해 많이 도식화되어서 암각화 중에서 후대에 속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로선만 나타나고 내부에 성혈이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위치에 암각화가 세 점 나란히 자리하고 보니 세로선과 세로선이 만나 원을 만들어 게의 몸체를 이룬 듯하고 두 줄로 그어진 내부의 가로줄이 게의 다리를 나타낸 듯합니다. 특히 이 암각화가 있는 암벽에는 보물 제221호로 지정된 마애삼존불이 자리하고 있고, 지난 2003년에는 6월 집중호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마애여래좌상이 함께 있어서 선사시대부터 신성한 공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애삼존불이나 마애여래좌상이나 불상의 눈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 파져있습니다. 돌부처의 눈이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중들의 그릇된 믿음의 결과라 아쉽기도 하지만 눈과 코마저도 민중들에게 과감히 내던져준 부처의 자비가 돋보인다 할 것입니다. 다른 암각화에서는 성혈이 흔히 보이는 데 반해 이곳의 성혈은 기하문 위쪽 한 곳에서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들을 바라는 민중들이 불상의 눈에 성혈을 새긴 모양입니다. 그들의 기자신앙은 곧 생산과 번식을 의미하는 성혈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Out of Altai, Out of Korea 인류의 기원을 아프리카에서 찾는 소위 ‘out of Africa’ 가설에 의하면 한국, 일본, 티베트, 몽골, 에스키모, 인디언들은 유전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동일하답니다. 이 북부아시아인들은 바이칼호 근처에서 살다 빙하기를 거치면서 이곳이 거대한 호수로 변하자 남으로 이동했다고 봅니다. 최근에 바이칼호 일대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도 이곳을 한민족의 시원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암각화가 알타이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걸작이건, 이 지역 토착세력의 걸작이건 관계 없이 방형기하문양만큼은 ‘한국형’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장방형의 기하문양은 우리 땅에서만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방형기하문 암각화는 ‘out of Altai’가 아니라 ‘out of Korea’가 아닐까요? 우리 암각화의 정형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지금도 흔한 바위 한 곳에서 ‘나야 나, 내가 암각화야’하며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놈들이 있습니다. 아울러 매일 보는 아이들에게서도 숨어있는 재능과 장점을 발견해내는 혜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김환희 | 강릉 문성고 교사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달동네 모퉁이 옆 연탄 창고 앞에서 곰방대에 궐련을 말아 피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어찌나 담배를 맛있게 피우시는지 어떤 때는 어린 내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까지 생기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늘 세상의 온갖 시름을 담배 연기로 달래시는 것 같았다. 얼굴은 항상 새까만 연탄 가루가 묻어 있어 가끔 친구들이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놀릴 때도 있었다. 아버지와 마주치기 싫어 집으로 가는 지름길인 창고 앞을 두고 돌아서 간 적도 종종 있었다. 안방보다 조금 더 큰 우리 집 창고 안에는 늘 연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기상과 동시에 연탄 창고로 달려가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긋이 미소를 짓곤 하셨다. 가끔은 자식보다 연탄을 더 애지중지하게 여긴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못마땅한 적도 있었다. 간밤에 비라도 올 것 같으면 아버지는 쓰다 버린 이불로 연탄을 덮어주는 등 온갖 궁상을 떠셨다. 그리고 비가 그칠 때까지 방으로 들어오시지도 않고 아예 그날 밤은 창고에서 주무시기까지 하였다. 비가 그치면 덮어 둔 이불 하나하나를 걷어내면서 젖은 연탄을 닦아 줄 정도로 시커먼 연탄에 대한 애착을 보이곤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언젠가 이틀 동안 배달을 하시지 않은 날이 있었다. 연탄 주문량이 많은 겨울철에 아버지가 이틀씩이나 배달을 하지 않고 집에 계신 적은 한 번도 기억에 없었으므로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자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내복만 입은 채로 술을 드시고 있는 아버지의 자그마한 체구가 눈에 들어왔다. 인사를 해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줄담배만 피우셨다. 아버지의 그와 같은 행동은 어머니의 애간장을 녹였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가 배달해 준 윗집의 아들이 그날 밤 연탄가스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죽음이 당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신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봉투에 돈 몇 천 원을 넣어 그 집에 갖다 주셨다. 넉넉하지도 못한 우리 집 형편에 아버지의 그런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연탄 장사를 하는 아버지가 싫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 특히 친구들에게 아버지의 직업을 떳떳하게 얘기한다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친구들과 동네에서 연탄 배달을 하는 아버지와 우연히 마주칠 때면 숨거나 내달음질친 적도 있었다. 체구가 작고 늘 얼굴이 새까만 아버지를 친구들이 알아채는 것 자체가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해 겨울이었다. 그 해는 눈도 많이 내렸고 날씨가 유난히 추웠다. 아버지는 불쑥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 목욕을 하러 가자고 하셨다.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아버지가 나에게 목욕을 같이 가자고 청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완강한 고집에 나는 장롱에서 갈아입을 옷 몇 가지를 챙겨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자라면서 나는 아버지의 알몸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얼굴이 새까만 아버지이기에 온몸도 그러리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몸은 나의 속살보다 더 하얗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누나가 얼굴이 하얀 이유가 엄마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를 닮아 그렇다고 여겨진다. 깡마른 아버지의 몸은 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볼품이 없었고 말라 보였다. 아버지의 등은 바람에 나뭇가지가 휜 것처럼 굽어 있었다. 오랫동안 연탄 배달로 축 처진 아버지의 양쪽 어깨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특히 아버지의 무릎은 온통 멍과 상처투성이뿐이었다. 아버지의 손마디는 굳은살이 박여 바늘로 찔러도 감각이 없을 정도로 무디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등을 밀어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버지의 말씀 중에 나이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 있다. “…… 아버지가 연탄 장사하는 게 창피하지. 아버지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하구나. 그런데 아버지는 연탄 장사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단다. 아버지가 갖다 준 연탄으로 동네 사람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도 있고 말이야.” 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시는 동안,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연탄을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달동네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들 마음까지 다 헤아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연탄을 배달하면서 힘들다고 그 누군가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가족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분이었다. 그런 것들이 가족들에게는 늘 불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날 아버지가 함께 목욕을 가자고 한 그 이유를 그때서야 알 것 같았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금세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옆에서 기분이 좋으신 듯 웃고만 계셨다. 평소에는 눈이 오면 배달 걱정을 먼저 하던 아버지가 오늘은 웬일로 눈이 오기를 바라고 계신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식하고 목욕탕에 갔다 온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뒤를 따라가는 나를 보고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그리고 내 손을 덥석 잡고 떡볶이를 팔고 있는 포장마차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포장마차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어묵을 시켜주셨다.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는 내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머쓱해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집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나는 슬그머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은 거칠고 무디었으나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스함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멋쩍어 하는 내 마음을 아셨는지 손을 꼭 잡아 주셨다. 볼을 타고 눈물 몇 방울이 흘렀다. 바로 그때, 얼굴 위에 차가운 무언가가 와 닿았다. 눈이었다. 그것도 함박눈이 하늘에서 펑펑 날리기 시작하였다. 눈송이와 눈물이 섞이니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쑥스럽지 않아 좋았다. “아버지, 눈이에요.” “그래, 올해는 대풍이 되겠구나!” 그 이후로 나는 연탄을 배달하는 아버지가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이 세상 어느 아버지보다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침마다 창고 문을 활짝 열고 연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마음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을 만큼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겨울은 연탄보일러보다 더 따스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었기에 그 어느 해보다 따뜻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집 연탄 창고는 금·은 보화로 가득 찬 금고보다 더 소중한 아버지가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사랑과 행복이 가득 담긴 보물창고였던 것 같다. 갈수록 자신만 알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작금에 내 어릴 적 아버지가 달동네 이웃들에게 베풀었던 그 사랑이 떠올려지는 이유는 왜 일까?
박성주 | 서울 잠원초 교사 좋은 어머니 되기란 성인군자 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어느 어머니의 얘기를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어머니도 인간인지라 자기 욕심의 노예가 되기 쉽고, 아이를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한 도구 내지는 소유물쯤으로 생각하기 쉬워서 여러 가지 우를 범하고 있다. 학교가 대학병에 걸려 있는 현실에서 많은 어머니들은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지상의 목표인 듯 전 교육의 과정에서 과잉보호 내지는 과잉충성을 하고 있다. 더구나 고교 3년이 되면 자녀는 부모에게 상전 중에 상전이기 일쑤이고,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온 가족이 아이의 눈치를 살피느라 쩔쩔매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들이 모두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어느 선생님께서 함께 여행을 하면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다. 자신들을 대하는 어머니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머니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고 한다. 자녀가 하겠다고 하면 무엇이든 팍팍 밀어주는 어머니,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부족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과외 선생님도 모셔오고 먹고 싶은 것도 척척 대령하는 어머니, 더운 날은 에어컨을 팍팍 틀어 공부방을 미리 시원하게 해 놓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적극 밀어준다고 하여 ‘밀모’라고 한다. 과외를 시키는 대신 몸소 뛰어다니며 공부하여 아들을 가르치는 어머니, 때가 되면 따뜻한 영양밥을 지어서 학교로 손수 대령하는 어머니, 아이와 함께 몸소 뛴다고 하여 그런 어머니를 ‘뛰모’라고 한다. 자녀의 공부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별로 관여하지 않고 저녁이면 그저 아이가 공부하도록 놓아두고 잠을 주무시기에 충실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주모’라고 한다. 아이는 시끄러워 방문을 닫아가며 공부하는데 이 채널, 저 채널 TV만 열심히 감상하는 무감각한 어머니를 ‘감모’라고 한다. 밤늦게 공부하는 아들에게 적당한 시간에 간식을 넣어주고 등을 톡톡 두드리며 먹으란 말도 않고 나가 아무 말 없이 거실에 앉아 뜨개질도 하고 독서도 하시는 어머니, 그저 멀리서 지켜봐주는 어머니를 ‘지모’라고 한다. 그런데 덧붙여 아이들은 그 중 지모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은 본인은 주모라고 하시며 낮 동안에 힘든 일에 시달리는 교사 어머니들은 주모가 되기 십상이라고 말씀하셔서 웃음이 피어났다. 아이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어떤 어머니일까 생각해 본다. 어떤 선생님은 “나는 그 중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도 제일 가깝다면 아마 주모일거야, 아니면 더 하나 만들어서, 방치하고 방관하는 ‘방모’일거야.” 하며 말한다. 어떤 사람은 “난 밀모인 것 같기도 한데 밀어준다고 간섭하고 잔소리를 많이 하니까 난 ‘잔모’일거야” 하고 깔깔거린다. 깔깔거리는 웃음 속에 모두들 자신은 어떤 어머니일까 반성해보는 눈치들이다. 나는 어떤 어머니일까?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한 몫을 하는 사람으로 자라서 ‘나는 우리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하고 말해줄 수 있는 어머니일까? 어머니로서의 나와 교사로서의 나는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입장이 다름을 많이 느낀다. 교사로서의 나는 비교적 아이들이 자기 일에 느린 경우도 잘 기다려줄 줄도 알고 격려해줄 줄도 안다.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 용서하고 다독일 줄도 안다. 친구끼리 싸우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서로에게 잘못을 인식하게 하여 손을 마주 잡게도 한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현 상황에 조급함을 느껴서 아이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대로 힘으로 다그칠 때는 “아이들도 인격이 있고 나름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므로 존중해 주세요. 그리고 길게 보고 기다리며 도와주세요. 어머니가 아이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렇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어머니로서의 나는 어떤가? 좋은 교사가 되는 것보다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래서 좋은 어머니는 더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다니기 싫은 학원 공부를 몰래 빼 먹은 적이 있었다. 달리 가서 피해 있을 데가 없어 그 시간에 친구들과 PC방에서 놀다 온 날은 완전히 감정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다.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이야기 했을 때 “다른 아이들은 공부하는데 너는 뭐할 거야?”하고 윽박지르며 등록을 해놓고 지금은 학원비가 아까우니까 열심히 다니라고 한다. 아이는 꽉 붙잡혀 저녁 6시부터 10시 30분까지 강의하는 학원에 가기 싫다며 이제는 거짓말까지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감정이 북받쳐 “공부도 않고 놀아서 나중에 거지될 거니? 네가 학원 한 번 빠질 때 낭비되는 학원비가 얼마인지 아니? 이제 엄마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어떡하자는 거야? PC방 가서 뭐했어? 네가 지금 잘 하는 것이 뭐가 있어?”하며 머리를 쥐어박고 마구 감정을 쏟아낸다. 아이가 울며 자기 방안에 틀어박히면 그때야 비로소 가만히 앉아서 내가 쏟아낸 말들의 비교육성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거지나 되라고? 네가 잘 하는 것이 뭐냐고? 아이의 괴로움보다 돈이 더 아깝다고? 하나하나 되새겨 보면 상처가 되는 말, 비교육적인 말만 꼭꼭 집어 말한 듯하다.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아 아이는 가지 않던 PC방도 가게 되고 엄마에게 거짓말까지 하게 되었는데도. 그냥 아이를 자기 마음대로 해보도록 놓아두어야 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게 아니구나!’ 자신이 느껴서 스스로를 채찍하며 털고 일어서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다가도 ‘다른 집 아이들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고 열심히 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뭔가?’ 하는 조바심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다. 머리와 가슴의 생각이 다르고 욕심이 앞서서 아이를 가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욕심 때문에 잔소리를 해대고 윽박지르고 감정적인 말을 퍼붓는 ‘잔모’ 더하기 ‘윽모’이다. 믿음으로 아이를 지켜봐주는 지모,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아이들의 판단이 옳다. 밀모와 뛰모는 심리적으로 너무 부담이 되어 힘들 것이고 소위 말하는 과잉보호형으로 마마보이를 탄생시키기 알맞다. 주모와 감모는 마음과 상황이야 어떻든 어머니로서 사랑의 표현이 부족한 것 같고 아이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 같아 우리가 판단하기에도 밉상이다. 그런데 지모는 공부하는 자녀를 지켜보며 격려를 주고 자신도 밤늦도록 열심히 무엇인가를 이루어가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가 고3이 됐을 때만 지모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생토록 멀리서 방관하듯이 그러면서도 꾸준한 관심으로 자녀를 지켜봐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들은 공부하라는 말씀 한 번 하시지 않았어도 호롱불 밝혀 눈썹 태워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가난한 시절의 우리의 부모님은 늘 일에 바쁘셨고 우리의 공부에 조바심을 낼 엄두도 내지 않으셨다. “너 하기 달렸다.” 하시며 믿음을 실어 말씀하실 뿐이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계시며 가끔 쌀자루랑 고춧가루, 참깨 주머니에 사랑을 실어 보내주신다. 우리는 지금 그런 연로하신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솟는다. 예나 지금이나 의도성이 있든 없든 우리들의 부모나 어머니는 지모임이 분명하다. 밥솥을 불 위에 올려놓고 다 되었나 뚜껑을 자꾸 열어보면 설익은 밥이 되고 만다. 자꾸만 뚜껑을 열어 재끼는 성급함이 우리 아이들을 설익게 만든다. 설익은 부모 아래서 설익은 아이가 자라나고 있다. 부모됨은 그 사람의 인간됨과 동일하다. 믿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려주어야 하겠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듯 아이들을 황홀한 웃음으로 보아주어야 겠다.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아이를 생각하는, 무관심 같은 관심으로 늘 지켜봐주는 지모가 되어 보리라. 그러나 언제, 어느 곳에서 조바심난 감정에 발동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교원법정정원 확보 및 양성임용제도 개편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2008년까지 100% 교원충원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스쿨폴리스(학교경찰) 도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부산시 교육청이 스쿨폴리스 시범운영 희망학교를 모집한다. 시 교육청은 부산시내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다음달 11일까지 희망학교 신청을 받는다. 시 교육청은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3개교, 고등학교 3개교 등 모두 7개의 시범운영학교를 선정할 계획이며, 5월 2일부터 7월 30일까지 3개월 간 시범운영 후 성과분석 및 교육수요자의 의견수렴을 거쳐 추진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다. 스쿨폴리스는 부산시 교육청과 부산지방경찰청이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전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제도로, 교원 및 퇴직 경찰관을 학교경찰로 선발해 2인 1조로 단위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토록 하고 교내.외 학교폭력 예방 및 선도 업무를 담당케 하는 제도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교권 및 학생인권 침해소지 때문에 도입을 놓고 다소의 논란이 있다"며 " 시범운영 후 성과분석과 함께 문제점 등을 파악해 전면도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원회 소속 학생 500여명은 31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집회를 갖고 "정부는 교육재정을 확충해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교육시장화를 부추기는 교육개방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등록금 인상으로는 대학교육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재정 확충이 시급하다"며 "정부는 교육 시장화를 불러오는 대학구조개혁방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사립대학은 대학을 교육기관으로 운영하기보다는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며 "사학비리근절과 대학투명운영을 위해 민주적인 사립학교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집회가 끝난 뒤 대학로를 출발해 종묘공원까지 행진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경일 재판관)는 31일 지방자치단체가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 입주자에게 학교용지 부담금을 부과토록 한 구 학교용지 확보에 관한 특례법 관련 조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의무교육을 부담금과 같은 별도의 재정수단을 동원해 특정 집단으로부터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의무교육이 아닌 중등교육에 관해 부담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일반적인 부담금이 갖춰야 할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해 허용될 수 있다. 분양받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분양 세대수를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용지 부담금은 지방자치 단체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한 2001년부터 징수된 이후 위헌논란이 불거지면서 매년 고의 연체자가 급증하는 등 입주자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이에 정부는 학교용지 부담금을 100가구 이상으로 하향조정하고 부담 주체도 개발사업자로 변경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해 이달 말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헌재가 학교용지 부담금을 물리는 행위 자체에 대해 위헌성을 인정함으로써 개정된 특례법에 대한 헌법소원 등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헌재에 따르면 지자체는 2001년부터 1994년 6월까지 3천370억원의 부담금을 징수해 이중 2천431억원을 사용했다. 인천지법은 2003년 인천시 서구청으로부터 학교용지 부담금을 부과받은 인천 서구 검암지구 P아파트 등 3개 아파트 주민 150명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인터넷 사이트에 '촌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자 관할 교육청이 사실여부를 가리기 위해 경찰에 IP 추적을 의뢰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26일 서울 동작구 관내 한 초등학교의 5학년 담임(여·교직 3년차)이라고 밝힌 사람(ID 이선생님)이 한 인터넷 카페에 '학부모들이 때만 되면 알아서 챙겨오면서 왜 교사를 욕하느냐'는 등의 글을 올렸다. 이 사람은 글에서 '촌지 안줘서 불이익 받는 것 인정한다. 그런데 학교에만 촌지가 있느냐?', '담임선생님 찾아오지 않는 학부모의 자녀는 예절교육도 엉망이더라', '억울하면 조기유학을 보내든지, 아이를 낳지 말아라'는 등의 글도 함께 게시됐다. 이 글이 인터넷에 올라온 후 이 교사를 비난하는 학부모의 댓글 수백건이 쇄도하는 등 파장이 일자 동작교육청은 이 교사의 신원을 파악, 징계하기 위해 노량진 경찰서에 IP 추적을 요청한 상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동작구 관내 18개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중 교직 3년차이면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교사가 아니면서 악의적으로 글을 올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