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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국교육신문 한병규 기자] 경기교총(회장 주훈지)이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4단계 스쿨넷사업의 학교 이관을중단해달라며 투쟁 활동을전방위로 펼치고 있다. 6일 경기교총에 따르면지난달 29일 지역 교원단체 3곳이공동으로 스쿨넷 학교 이관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음에도 도교육청이 별다른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자 지난달 30일부터 도교육청 본관 앞에서 1인 시위 및 서명운동을 시작했다.경기교총과 더불어 경기교사노동조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가함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교원3단체 명의로 전개하고 있는 서명운동은 6일 현재 1만2000여명의 교사가 동참한 상황이다. 교원단체들은 오는8일까지 서명지를 최종 취합한 뒤추후 도교육청을 방문해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스쿨넷은 통신 사업자가 학교에 인터넷서비스와 전용회선을 제공해주고 매달 고정 통신료를 받는 사업이다. 원래 도교육청이 일괄 선정했으나 내년부터 5년간의 사업자를 각 학교가 선정하라고 일방적으로 방침을 변경하면서학교 측의 반발을 사고 있다. 도교육청, 교육지원청, 학교가 서로 다른 업체의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보안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이 사업이 학교로 이관될 경우 교직원 1만여 명이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종전에는도교육청 전문 인력 10여 명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교원단체들은 스쿨넷 사업의 학교 이관을 전형적인 면피행정으로 규정하고, 이를 도의회와 언론사 등 기관에 그 부당성을 연일 호소하고 있다. 이에 도의회 교육기획위원회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도의회 교육기획위(위원장 정윤경)는도교육청의 4단계 스쿨넷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나섰다. 경기교총 관계자는 “교원3단체는 도의회의 특조위가 본격 가동이 되면 적극 협력해 해당 사업의 학교 이관이 중단될 때까지 총력 저지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교총과 한국장기기증협회가 생명나눔 실천 운동에 힘을 모은다. 양 단체는 6일 서울 한국교총회관 4층 회장실에서 업무협약을 맺고, ▲생명나눔 장기기증 캠페인 공동 전개 ▲공익적 나눔 실천인 장기기증 홍보 ▲올바른 교육환경 개선 활동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생명나눔 활동은 한국교총과 17개 시·도교총이 함께한다. 하윤수 회장은 “희망사다리 교육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교총이 고귀한 생명나눔 활동도함께할 수 있어 뜻깊다”면서 “생명과 생명나눔의 가치를 널리 확산하고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치영 회장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교총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데 특히 의미가 있다”면서 “장기기증 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됐다”고 의미를 더했다. 이어 한국장기기증협회(www.장기기증.kr)를 통해 생명나눔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하 회장은 장기기증 서약서를 직접 작성하고, 장기기증의 뜻을 밝힌 110명의 서약서도 함께 전달했다. 한국장기기증협회는 하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위촉했다. 한편, 이날 협약식에는 하윤수 교총 회장과 양영복 사무총장, 박충서 한국교육신문 사장, 강치영 한국장기기증협회 회장, 박성현 대외협력국장, 이태조 목사가 참석했다.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전 부산교대 총장.오른쪽)과 강치영 (사)한국장기기증협회 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 회장실에서 업무 제휴 협약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부터 적용되는 교원 인사·복무에 관한 사항이 일부 변경되었습니다. 이에 이번 호에서는 선생님들께서 교직생활에서 유의해야 할 주요 사항을 안내드립니다. 선생님들의 QA Q. ’22년 1월 1일 이후 음주 관련 징계를 받은 자부터 적용 대상이라면 ’21년 12월에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은 경우 교장으로 임용 제청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요? A. ’22.1.1. 전(’21.12.31.까지)에 음주운전(음주측정 불응 포함)으로 징계를 받은 경우 징계 말소 기간(최대 9년)이 도과하기 전까지는 교장 임용 제청에서 배제 됩니다. Q. ’22년 1월 1일부터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징계를 단 한 번만이라도 받게 되면 교장으로 임용될 수 없다는 것인가요? A. 그렇습니다. ‘22.1.1.부터는 음주측정 불응을 포함하여 음주운전 사유로 한 번이라도 징계를 받으면 교장 임용 제청에서 배제됩니다. Q. 담임에서 배제되는 ‘성비위’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A. 「교육공무원법」 제52조 각 호에 규정된 성폭력범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성매매, 성희롱, 「양성평등기본법」 제3조 제2호에 따른 성희롱 행위를 말합니다. Q. 법 시행일인 ’21.6.23. 이후에 성비위로 징계를 받은 교원만 해당되는 것인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21.6.23. 이전에 징계를 받은 경우라 할지라도 징계 처분이 종료된 후 법에서 정한 담임배제 기간이 지나지 않은 교원은 담임을 맡을 수 없습니다. Q. 2005.3.1.~2009.2.28. 교육부장관 지정 연구학교에서 근무했을 경우 공통가산점 개정 전에 근무한 경우로 해당되니 가산점 산정기준은 이전기준이 그대로 적용이 되는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해당 내용은 승진후보자명부 작성을 기준일로 하고 있으므로 이전에 근무했던 경우여도 22.3.31.까지는(48개월X0.021=1.008)로 계산되며 23.3.31. 이후로는 (48개월X0.018=0.864)로 적용됩니다.
2022 국가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한창이다. 그동안 국가교육과정 개정은 국가가 만들어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전달하는 하향식이었다. 소수의 전문가가 만들어 하달하는 방식의 획일적 교육과정 개정 과정은 학교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다양한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 왔다. 이를 개선하고자 교육부는 ‘국민과 함께 만드는 국가 교육과정’이라는 목표로 국가교육회의, 시도교육감협의회와 협력하여 국민들의 요구와 학교 현장의 의견을 국가 교육과정에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 여전히 하향식(Top-Down)을 고집하는 수학 교육과정 개정 과정 문제는 이와 같은 노력이 각 교과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학과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여전히 소수 전문가가 만들고 형식적인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는 방식이 재연되고 있다. 수학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기초 연구가 올해 4월에 마무리되었는데 국민들은 물론이고 수학교사들에게조차 개선되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묻는 설문 조사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런 지적을 의식했는지 2차 연구에서는 내용 체계를 모두 구성한 이후 공청회를 얼마 앞둔 8월에 갑작스럽게 형식적인 의견 수렴 과정만 거친 상태이다. 전국 수학교사 모임에서 수학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22 수학교육 과정 개정 과정에서 현장 수학교사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고 있다는 것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혀 반영 안 함”이 45.0%, “반영 안 함” 36.3%, “반영함” 13.8%, “매우 반영함” 5.0%로 반영 여부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이 무려 81.3%이었다. 과도한 수학 사교육, 코로나 이후 기초 학력 저하, 그리고 수학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포기하거나 배우기를 거부하는 수포자 문제 등 수학교육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이것은 가파른 계단형 교육과정, 중학교에서 갑자기 어려워지는 내용, 가르칠 내용이 많아 빠르게 진도를 나갈 수밖에 없는 수업 등이 주된 원인이다. 모두 교육과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도 학생, 학부모, 교사의 충분한 의견 수렴이 없다면 교육과정이 개정되더라도 현재 수학 교육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2. 고 1 수학 행렬 부활 과연 필요한가? 수학교육 과정 개정에서 가장 큰 이슈는 ‘고 1 수학에 행렬 부활’ 문제이다. 행렬은 다른 내용에 비해 단순 계산이 많고 수학적 가치가 크지 않으며 학생에게 학습 부담이 큰 내용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논의와 연구 끝에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삭제되었다. 이후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행렬의 수학 교육적 의미를 다시 논의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그 연구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개발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고 1 수학에 부활시키겠다고 예고했다. 이유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행렬이 정보를 정렬하고 처리하는 중요한 방식이기 때문에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AI나 빅데이터 전문가들은 행렬에서 필요한 내용은 정렬 방식 정도이고 대학에서 선형대수를 배울 때 다루어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행렬이 AI나 빅데이터에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AI 개발이나 빅데이터 전문가가 되는 학생은 소수이다. 고교학점제에서 자신의 진로와 흥미에 따라 인공지능 수학이라는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만 배우면 된다. 고 1 수학 행렬 부활이 학생들의 수학 학습 부담을 가중하는 이유는 또 있다. 고 2, 3 선택과목은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이지만 고 1은 여전히 9등급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변별을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될 수밖에 없다. 과거처럼 불필요한 고난도 행렬 문항이 출제될 수 있고 학생들에게 불필요하면서 과도한 학습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 전국 수학교사 모임 설문조사에서 “고등학교 과정에서 행렬을 추가한다면 어느 안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융합 선택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응답이 45.0%, 일반선택과목 21.3%, 고1 공통과목 19.4%, 현재처럼 같이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응답이 13.7% 순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교사의 65.3%는 고 2, 3학년 과정인 선택과목에서 행렬을 가르쳐도 된다고 응답하였다. 교육부와 연구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고1 수학에 행렬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교사는 20%가 되지 않았다. 3. 수학교육과정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을 위해 새로운 수학을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현재 수학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학생은 엎드려 자거나 딴짓하고 교사만 떠드는 수학 교실, 학생 교사 모두가 소외된 수학 교실을 다시 살리는 것이 수학교육 개정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1) 가파른 계단형 수학교육과정을 완만한 나선형으로 가파른 계단형 수학교육과정은 수학을 배우는 학생을 소외시키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자신이 수학을 포기했다고 말하는 고등학생 중 많은 학생이 대학을 가기 위해 수학 공부를 다시 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래서 중학교 내용부터 또는 초등학교 내용부터 다시 도전한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를 시작한 지 한두 주 또는 몇 달 정도 하고 나면 거의 다시 포기하게 된다. 내가 모르는 부분까지 찾아갔다가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에서 이와 같은 가파른 계단형 교육과정으로 수학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 생태교육에 관심 있으신 한 선생님께서 독일 베를린 지역의 9학년 수학 교과서를 소개해주신 적이 있다. ‘이산화탄소와 그 결과들, 환경친화적인 행동들, 폐휴지 재생 및 활용’이라는 세부 주제를 다루면서 수학적인 역량(복잡한 다이어그램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기, 다이어그램이나 텍스트의 정보를 검증하기 위한 수학적 도구를 찾아 검증하기, 다이어그램과 텍스트로부터 더 많은 정보 끌어내기, 백분율 계산과 유추하기, 수학적 모델 적용하기, 환경문제 이해와 해결에 수학 지식 활용하기)을 배운다. 독일 환경 수학 교육과정의 장점은 중 3이지만 초등학교 수학 내용을 이해하면 충분히 배울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이산화탄소 배출량, 온실가스 배출, 전력사용량, 재활용의 경제적 득실 소재를 통해 환경 문제를 알게 되면서 수학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학생들은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차기 수학 교육과정이 학생 소외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내려가도 끝이 안 보이는 계단으로 비유되는 위계적 수학 교육과정을 탈피하는 것이다. 고교학점제나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를 통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수학을 활용하며 수학의 필요성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선수학습이 부족한 학생이 내용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내용이 선수학습이 부족한 학생을 배려해야 한다. 단순히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고 선수학습이 중요하지 않으면서 의미 있는 수학을 배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교과의 위계와 상관없이 삶과 밀접한 관심 소재로 학생들이 배움의 기쁨을 알게 하는 내용을 배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학과 전체적인 교육과정이 현재처럼 모든 수학이 계단형 교육과정이 아니라 일정 부분 계단형을 벗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내용 중 일부 수학을 알고 있으면 배울 수 있는 소재 중심의 수학 교육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2) 단절된 초·중등 수학교육과정 연결하기 초등학교 수학교육과정과 중학교 수학교육과정의 단절은 수학을 배우는 것에서 소외되는 원인이다. 학교에서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중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이 초등학교 때 배운 수학과 전혀 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중학교 수학에 영어가 나오는 것에 당황했고, 방정식과 함수 같은 용어가 낯설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수학 공식들을 무의미하게 외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수학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학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배우는 내용이 끊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수학 교육과정에서 나오는 ‘수와 연산’, ‘도형’, ‘측정’, ‘규칙성’, ‘자료와 가능성’ 등은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대상을 측정하고 규칙성을 발견하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되어 있다. 반면 중학교 수학 교육과정은 고등수학 학문체계와 비슷한 ‘문자와 식’, ‘함수’, ‘확률과 통계’, ‘기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학교 수학에는 초등학교와는 달리 x, y와 같은 문자가 등장한다. 이와 같은 문자는 대수학(Algebra)과 해석학(Analysis)의 기초적인 용어로, 결국 중학교 수학 교육과정부터 본격적인 고등수학을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고등수학이 시작되는 중학교 수학 교육과정은 배움이 느린 학생들이 학습하기 쉽지 않다. 특히 수학적 성향이 약한 학생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비일상적인 용어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런 학생을 위해 교육과정은 충분히 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수학교육과정의 단절은 수학 교육계 안에서는 여러 번 지적이 되었다. 그런데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중학교 수학교육과정과 초등학교 수학교육과정을 만드는 주체 사이의 불통이다. 초등학교 수학 교육과정은 초등 수학교육 전공 교수와 소수 교사, 중등 수학 교육과정은 중등 수학교육 전공 교수와 소수 교사가 만든다. 그런데 이 두 그룹의 협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학교육과정을 만드는 주체들의 불통은 그사이를 뛰어 넘어갈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소외시키는 원인이다. 좋은 교육과정은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을 세심히 배려하는 교육과정이다. 따라서 차기 수학교육과정이 배움 소외의 원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초등 수학교육과정을 만드는 사람과 중등 수학교육을 만드는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논의해야 한다. 단순히 형식적인 논의가 아닌 초등은 중등을, 중등은 초등 수학교육을 충분히 이해하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다리를 놓아야 모든 아이가 소외되지 않고 수학을 배울 수 있을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2021년 9월 2일 기준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1차 57.37%, 접종 완료 31.71%다. 교육·보육 종사자 54만 7천 명에 대한 접종은 지난 7월 28일부터 시작되어 1차는 96.4%가 접종을 완료했으며 접종 완료는 35.1%라고 한다. 교원들은 mRNA(메신저 리보핵산) 계열 백신인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데, 화이자 백신의 일반적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두 번째 접종 후가 첫 번째 접종보다 더 강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는데 일반적인 부작용은 며칠 내에 사라진다. 화이자 백신과 같은 mRNA 계열 백신은 극히 예외적으로 심근염 및 심낭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접종 시의 이득이 접종으로 인한 손해보다 크므로 미국은 12세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백신 접종을 권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화이자 백신은 12세 이상 접종이 가능하도록 허가를 변경하였다. 백신 접종이 늘어나면서 부작용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8월 17일 화이자 백신 1차를 접종한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교대생이 23일 사망했는데 경찰은 사인미상으로 규정했다고 하고, 8월 27일에는 30대 체육교사가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후 급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사망과 같이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백신을 접종하고 몸에 이상이 생겨 휴가를 신청하는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인천의 50대 고등학교 교사는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고 뇌경색 판정을 받았는데 인천시교육청은 일반 병가로 신청하라는 답변을 하였다고 한다. 일반 병가와 공무상 병가 차이점은 그렇다면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으로 인한 휴가는 개인적 질병에 의한 ‘일반 병가’인가 ‘공무상 병가’인가? ‘일반 병가’와 ‘공무상 ’병가‘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반 병가는 연 60일 범위에서 사용할 수 있고, 공무상 병가는 연 180일 범위에서 사용이 가능하다(교원휴가에 관한 예규 제6조,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8조). 다만, 공무상 병가는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라서 인사혁신처에 구성된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가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여야 사용할 수 있다. 공무상 재해로 인정되면 공무상 병가 이외에도 요양급여, 간병급여가 지급되고, 3년까지 질병휴직이 기능하다(국가공무원법 제72조 제1호, 일반 질병휴직은 1년 이내로 하며 부득이한 경우 1년의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음) 공무상 재해의 인정기준은 「공무원 재해보상법 시행령」 별표2에 규정되어 있는데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의 이상반응이 “공무수행 중 예방접종·건강진단 등 소속 기관의 건강관리를 위한 조치로 인하여 발생한 질병”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다. 일단, 교육부가 발표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따른 복무처리사항[교원정책과-3450(2021.4.20.)]에 따르면 접종 후 면역반응으로 병가 사용 시 다음해 연가 가산은 받을 수 없다는 안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교육부는 코로나19 백신 이상반응에 따른 병가는 공무상 재해가 아닌 일반 병가로 보고 있는 듯하다.1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연가나 외출 등 개인적 사유로 인한 복무가 아닌 공가 처리를 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가에서 접종을 적극 장려하여 사실상 강제적으로 접종을 한다는 점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공무수행’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나타나는 이상반응은 공무상 재해로 볼 여지가 대단히 많다. 하지만 백신 접종을 위해 공가를 주는 것은 정책적으로 혜택을 주는 것에 불과하고, 백신 접종은 자율적인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므로 공무수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도 있다. 또한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무엇보다도 가장 큰 난관은 백신 접종 후 발생하는 이상반응을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받아야 공무상 재해로 볼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백신 접종 후의 이상반응이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공무와의 인과관계도 당연히 부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백신 접종 후의 이상반응이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받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2021년 8월 28일까지 백신 접종 후 중대한 이상반응(사망, 아나필락시스 의심, 주요 이상반응2)은 7,581건인데 인과성이 평가된 총 1,983건(사망 579건, 중증 781건, 아나필락시스 623건) 중 예방접종과의 인과성이 인정된 것은 229건(사망 2건, 중증 5건, 아나필락시스 222건)이며, 31건은 근거가 불충분한 사례3로, 1,710건은 불인정되었다. 백신 접종 인과관계 인정비율 11.5% 불과 인과성 평가가 완료된 사례 중에서 백신 접종과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비율이 11.5%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필요 조건인 백신과의 인과성을 인정받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망이나 중증과 같은 중대한 이상반응이 아닌 일반적인 이상반응으로 범위를 넓히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비율은 더욱 내려갈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백신 접종 후의 이상반응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으려면 ①이상반응과 백신 접종과의 인과관계 인정→②백신 접종을 공무수행으로 인정 등의 두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이상반응이 백신 접종으로 인한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백신 접종이 공무수행인지 아닌지는 살펴볼 여지도 없다. 국가는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하여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으며, 교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나와 가족, 주변 사람들, 사회의 건강을 위하여 기꺼이 백신을 맞고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 후 나타는 이상반응을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면 앞으로도 국가 정책을 지금과 같이 모든 국민이 적극적으로 따라 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백신 접종은 국가 방역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이고 특히 교원은 학생들의 안전 및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위하여 백신을 접종한 것이므로 이상반응으로 인한 피해는 국가가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학교 메신저로 전체쪽지가 왔다. 쪽지는 같이 근무 중인 20대 선생님이 시집을 내게 되었다며 시집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쪽지는 “날이 점점 풀리는 가운데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시집 한 권 어떠신가요?”라는 말로 끝났다. 어디에도 “부족하지만 써보았으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같은 관례적인 겸손의 말 따위는 없었다. 함께 온 시집 표지만큼이나 그 선생님의 산뜻하고 당당한 소개말이 좋아 한참 다시 읽어보았다. 나였다면, 내가 갓 발령받은 신규교사였다면 아마도 그 소개말에 ‘부족한 재주이지만’ 같은 뉘앙스가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던 일의 결과물이 나왔으니 함께 읽어보시겠느냐는 가벼운 손길. 어떤 과장된 겸손도 가식도 없어 보이는 시인의 권유. 그것이 참 좋았다. 겸손 강요하는 조직 문화는 건강한가 시는 교사 집단의 전문영역이 아니니 겸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필자는 누군가 취미생활의 결과물을 공유하더라도 교직 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저의 실력이 부족하지만’이라는 사족을 달았으리라고 감히 예상한다. 그러면, 교사 집단의 전문영역인 교육 분야에 대하여 논할 때는 반드시 겸손해야 하는가? 겸손의 기준은 무엇인가? 경력인가? 경력이면 대체 언제까지 겸손해야 하는가? 2008년 초임교사의 학교문화 적응과정을 연구한 논문이 있었다. 12명의 초·중등 초임교사를 대상으로 질적 연구를 한 논문1이다. 논문에 따르면 초임교사들은 교사 집단 안에 경력에 따른 차별적 속성이 있다고 느꼈다. 초임교사들은 “선배들이 뭘 시키면 예, 하면서 해.”라는 말을 듣거나 ‘신규교사는 무조건 잘 모르니 자신을 낮추며 말씀을 드리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해야 대우도 더 받는다’는 인식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초임교사들은 연구를 위한 면담을 할 때도 공통으로 “제가 잘 모르는데” “제가 초임이다 보니까…”라는 말을 했다. 연구자는 ‘초임교사의 정체성은 학교현장에서의 생활을 통해 가치, 규범, 신념 등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해 수동적, 부수적 존재로 형성된다’고 분석했다. 2011년에 발령받은 필자는 이와 같은 분석에 매우 공감했다. 필자 역시 ‘제가 경력이 짧아 잘 몰라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묻고 싶다. 나 한 사람만이 아니고 집단적으로 그런 말을 하고 태도를 보여야만 한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면, 스스로 침묵하게 만드는 겸손을 생존전략으로 장착해야만 별탈 없이 조직 안에 녹아들 수 있다면, 그 조직은 건강하다고 볼 수 있는가? 교직 사회의 정서적 대물림 2019년 초임교사 4명의 학교 적응과정을 살펴보는 논문2이 또 있었다. 그 논문에서도 초임교사들은 회의나 수업 연구 등의 협상 과정에서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거나 침묵했다. 연구자는 그 이유를 ‘초임교사 개인적인 성향에 기인한다기보다 초임교사에게 수동성을 기대하는 학교문화와 연관이 깊다’고 분석했다. 연구에 참여한 초임교사들은 관리자와 선배교사들로부터 자신은 ‘부족한 점이 많으니 지적하고 가르쳐 주어야 할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받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10년 전 연구에 참여한 초임교사들의 생각과 큰 차이가 없다. 10년이 지나도록 학교문화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이 또 지나면 그때는 뭔가 바뀔까? 문제는 ‘정서의 대물림’이다. 10년 전의 초임교사와 지금의 초임교사가 느끼는 바가 비슷한 이유는 10년 전 초임교사가 선임이 되며 자신이 학습한 대로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정서적 대물림은 부모자식 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제지간에도 있고 선후배 사이에도 있다. 초임 시절부터 체화된 ‘경력과 겸손과 무력함’의 관계는 문화가 되어 후배에게 대물림된다. 이 글에서 언급한 논문 두 편 외에도 “경력이 짧으니 배울 게 많다”는 말이 교사의 자아개념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내용의 논문은 많다. 겸손이 지나치면 미덕이 아니라 자아효능감의 싹을 자르는 농약이 된다. 학교에 만연한 교사들의 무력감과 무기력을 외부의 무시와 비난 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적은 내부에 있다. 유구하게 이어온 학교 문화라는 뿌리에 있다. 교사 생애단계와 사회적 자본 학교문화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이유는 단순히 관료제이기 때문이 아니다. 경력 10년은 되어야 말을 해도 되겠다 하는 자타 공인을 받기 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까지 그렇게 학교는 멈춰 있는 것이다. 관료제라는 제도가 직접 문화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문화는 그 안의 사람들이 형성한다. 경력 10년은 되어야 말할 만하다는 기준은 어디서 나왔는가. 교사 생애단계에 답이 있다. 교사 생애단계에 관한 연구도 많고 분류도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으로 ‘교사의 삶은 어느 정도 전형성이 있다’는 점,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는 다르지만 ‘초임 시절에는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은 후 발달기를 거쳐 10년을 전후로 성숙, 안정기에 접어들며 이후 교직에 회의적이거나 침체, 혼란의 시기를 보낸 후 초월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요약할 수 있다. 교사 생애단계 이론에서 한 가지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10년 전후로 성숙한 교사는 안정적이고 비로소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데, 그 이전까지 어떻게 발달하느냐가 그 성숙도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발달시켜야 하는가? 초등교사의 생애단계별 전문적 자본 차이를 분석한 논문3에서는 전문적 자본을 ‘인적 자본, 사회적 자본, 의사소통 자본’으로 분류하고 생애단계별로 어떤 자본이 발달하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였다. 이 논문에서 인적 자본이란 학생을 교육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말하고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자원을 말한다. 그리고 의사결정 자본이란 자율적 판단의 권한과 능력을 말한다. 연구자는 성숙 안정기까지의 사회적 자본이 교사의 전문성 요소 중 인적 자본과 의사결정 자본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경력 10년을 전후로 교사가 학교에서 학습하는 신뢰, 네트워크, 공동체의 규범이 교사의 지도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경력값 하는 조직을 꿈꾼다 나잇값이라는 말이 있듯 경력값이라는 말도 필요하다. 10년 이내의 경력을 가진 교사들에게 경력값은 사회적 자본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소통과 발전을 위한 노력이다. 묻고 따지고 답을 찾는 행위가 그들의 경력값이다. 이 과정에서 강요되고 과장된 겸손은 분명 방해물이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선배교사들은 후배에게 “네 경력을 알라”고 말하기보단 그만의 생애단계에서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누고 보태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리하는 것이 선배의 경력값이다. 경력값을 하는 선배 앞에서는 ‘겸손하지 못한’ 후배도 자연히 경의를 표하고 더 알려주시라 청하게 된다.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가식 없는 겸손이다. 강요된 겸손을 거부한다. 일방적인 훈계와 비방도 거부한다. 젊은 교사의 생각에는 원석이 있다. 그 원석을 발견하고 인정해주고 같이 다듬어가는 선배의 안목과 지혜를 청한다. 신규 교사들에게는 강요된 겸손을 함부로 생존전략으로 삼지 말며, 글머리의 시인 신규교사처럼 덤덤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길 청한다. 발령 11년 차, 실경력 7년 차인 필자는 전문집단이라는 우리 사이에 교육도 시처럼 다가가고 권하고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경제는 어렵지만 부자가 되고 싶어 (윌터 안달 지음, 윌북 펴냄, 160쪽, 1만3800원) 꼭 필요한 기초 경제 개념과 금융 지식을 초등학생 눈높이에서 쉽고 친근하게 풀어낸 책이다. 초등학생들이 공감할 만한 또래 친구들이 나와 직접 자기 용돈을 관리하고, 맛있는 컵케이크 가게를 열어 주식회사로 키우고, 원화를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로 환전하기도 한다. 돈을 탐하고 쫓기보다 제대로 이해하고 운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학교 가는데 말이야 (서지원 지음, 이갑규 그림, 스푼북 펴냄, 136쪽, 1만2000원) 학교 가는 길, 학교 종이 울려요, 쉬는 시간에 뭐 할 거니?, 수업이 끝나면 등 4부로 구성해 아이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담은 동시집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두근거리는 마음부터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까지의 어색한 마음, 함께 힘을 합해 든든해진 마음까지…. 아이들의 좌충우돌 학교생활과 순수한 마음을 따듯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나는 게임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동은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216쪽, 1만3800원) 게임은 청소년의 학업을 방해하고 폭력성 등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높다. 저자는 이 같은 게임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게임을 둘러싼 과학기술의 발달, 문화, 역사, 심리학, 철학에 이르는 인문학적 요소들을 친숙한 게임과 함께 살펴본다.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인문학 지식을 담아냈다.
게으른 십대를 위한 작은 습관의 힘 (장근영 지음, 메이트북스 펴냄, 264쪽, 1만5000원) 뇌는 깊이 생각하거나 선택할 필요 없이 자주 반복해 그냥 하는 습관을 좋아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공부는 의지력의 문제라기보다 좋은 습관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습관의 특성, 습관을 형성하거나 방해하는 요소들을 살펴보고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꾸고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핵심 프로젝트의 이론과 실제 (홍후조, 조용 지음, 교육과학사 펴냄, 296쪽, 1만5000원)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는 성적이나 빠르고 쉽게 배우는 학력보다는 지식이나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 실험·실습·실기 등을 통한 높은 수행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교실 수업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교수법이 바로 핵심 프로젝트다. 핵심프로젝트 교육과정의 구안과 설계의 방법, 이를 실제적으로 적용한 수업개발 사례를 교과별로 제시하고 있다.
메리토크라시 1·2권 (이영달 지음, 행복한북클럽 펴냄, 1권 452쪽·2권 412쪽, 각 1만9000원) 경영학자이자 CEO 양성 교육 전문가인 저자가 세계적인 혁신기업을 교류해 온 경험 등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교육의 방향을 말한다. 1권에서는 디지털 노동자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원에서 오랜 시간과 에너지,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을 제시하며 시대 변화에 맞춰 변해 가야 할 학교의 역할 정체성을 묻고 답한다. 2권에서는 실력과 매력이 학력과 재력을 이기는 시대가 왔음을 밝히며 이에 필요한 모두를 위한 21세기 실천교육을 말한다.
교사 역할 훈련 (토마스 고든 지음, 양철북 펴냄, 520쪽, 2만원) 1966년에 시작된 교사역할훈련(T.E.T)은 미국 모든 주의 공·사립학교 현직 교사들이 교육받고 교실에서 적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에 확산돼 왔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편안하게 말하고 교사 말을 귀 기울여 듣게 하는 법, 자기 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는 법,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체득해야 할 대화법과 갈등 해결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T.E.T의 핵심개념과 실제 사례를 집약했다.
누가 창의력을 죽이는가 (켄 로빈스, 루 애로니카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404쪽, 2만원) 2015년에 출간된 『학교혁명』의 후속작으로,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교육이 무엇이며 그것을 제공하기 위해 부모, 교육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담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즐거움이 아닌 인내로서 학습하게 되고, 창의력 대신 성적이라는 기준으로 평가되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비판하면서도, 그 시스템 안에서 아이의 교육을 지원하는 방법과 원칙을 제시한다.
1. 묻는 일 사람들은 어떤 것을 궁금하게 느끼면 어떤 것에 대해서 묻는 일로 나아간다. 사람들은 궁금하게 느끼는 것이 많을수록 묻는 일 또한 많아진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묻는 일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어떤 것이 무엇인지 묻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묻는 일이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 무엇인지 물어서, 어떤 것을 무엇으로 알게 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어떤 것을 어떻게 하는지 묻는 일로 나아간다. 한국말에서 ‘묻다’는 ‘뭇’, ‘무리’, ‘무릇’, ‘무엇’과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서 ‘묻는 일’은 먼저 ‘어떤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에서 비롯해서, 다음으로 ‘어떤 것이 무엇인지 무리를 나누어보는 것’을 거쳐서, 끝으로 ‘어떤 것이 어떤 무리와 같은 것인지 알아보는 것’으로서 매듭을 짓는다. ‘묻다’는 ‘묻다=묻+다’로서, ‘묻’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묻다’에서 ‘묻’은 ‘뭇’, ‘무릇’, ‘무리’, ‘무엇’과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묻다’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묻’과 ‘뭇’, ‘무릇’, ‘무리’, ‘무엇’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말에서 ‘뭇=무+ㅅ’은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하나의 모두로서 싸잡아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한국사람은 한자 낱말인 ‘중(衆)’을 ‘뭇 중(衆)’으로 새겨 왔는데, 이때 ‘뭇’은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중생(衆生)은 ‘목숨을 가진 모든 사람’ 또는 ‘목숨을 가진 모든 생명’을 하나로 아울러서 일컫는 말이다. 한국말에서 ‘무릇=물+읏’은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하나의 모두로서 싸잡아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한국사람은 한자 낱말인 ‘범(凡)’을 ‘무릇 범(凡)’으로 새겨 왔는데, 이때 ‘무릇’은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범인(凡人)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런저런 사람’을 하나로 아울러서 일컫는 말이다. 한국말에서 ‘무리=물+이’는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하나로 아울러서 갈래를 나누는 말이다. 예컨대 한국사람은 한자 낱말인 ‘류(類)’나 ‘륜(倫)’을 ‘무리 류(類)’, ‘무리 륜(倫)’으로 새겨 왔는데, 이때 ‘무리’는 모두를 일컫는 말이다. 인류(人類)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아울러서, ‘사람’이라는 갈래로서 일컫는 말이다. 한국말에서 ‘무엇=무+엇’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것을 이런저런 무리로 갈래를 나누어 놓는 것들 가운데서 아직 갈래를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들이 ‘뭇’, ‘무릇’, ‘무리’, ‘무엇’을 바탕으로 삼아서 무엇에 대해서 ‘묻는 일’은 무엇이 어떤 ‘무리’에 속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일’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떤 ‘무리’로서, 갈래를 나누는 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무엇을 어떤 ‘무리’와 같게 여겨서, ‘무엇’을 어떤 ‘무리’로서 풀어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묻는 일’의 결과는 사람이 무엇을 어떤 ‘무리’와 같게 여겨서, “무엇은 ~것이다”라고 일컫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람들이 무엇을 어떤 ‘무리’와 같게 여겨서, 무엇을 어떤 ‘무리’로서 알아보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떤 것에 속하는 것’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무엇을 사슴의 무리에 속하는 것으로 알아보면 “이것은 사슴이다”라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에 속하는 것”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무엇을 ‘밀어서 닫는 것’에 속하는 것으로 알아보게 되면 “이것은 밀어서 닫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2. 따지는 일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서 물었을 때 곧바로 답을 얻지 못하면 무엇을 따지는 일로 나아가게 된다. 묻는 것이 깊고 넓을수록 따지는 일 또한 깊고 넓어진다. 한국말에서 ‘따지다’라는 말은 사람들이 만들어 쓴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옛말에는 ‘따지다’라는 말을 찾아볼 수가 없다. 19세기 말부터 사람들이 캐묻는 일에 힘을 쏟게 되면서 ‘따지다’라는 말을 만들어 쓴 것으로 보인다. ‘따지다’는 ‘닿다’에 뿌리를 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다’는 ‘닿게 하는 것’을 뜻하는 ‘닿히다’가 ‘따지다’로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다’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알아보려면 ‘닿다’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옛말에서 ‘닿다’는 세 가지 것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첫째는 오늘날 ‘~에 닿다’라고 쓰는 ‘닿다’로서, 이것이 저것으로 나아가서, 이것이 저것에 닿아서 만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둘째는 오늘날 ‘~을 땋다’라고 쓰는 ‘닿다’로서, 사람들이 실이나 머리카락과 같은 것을 땋아서 하나의 가닥이 되게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셋째는 오늘날 ‘~답다’라는 말과 비슷하게 쓰는 ‘닿다’로서, 어떤 것이 다 이루어져서, 어떤 것이 어떤 것답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닿다’에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뜻을 바탕으로, ‘닿다’의 뜻을 풀어보면, ‘닿다’는 “어떤 것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아가는 일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온전히 다함으로써 어떤 것이 어떤 것답게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따지다’의 뜻을 살펴보는 일에서 매우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따지다’는 ‘따지다=땋+이+다’로서 ‘땋게 하는 것’을 말한다. ‘땋게 하는 것’은 ‘닿게 하는 것’과 ‘땋게 하는 것’과 ‘답게 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일로서,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서 묻고 푸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묻는 일과 저렇게 묻는 일을 차례를 밟아서 하나가 되도록 온전히 함으로써 묻고 따지고 풀어서 알아가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3. 푸는 일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서 묻고 따지게 되면, 어떤 것을 풀어가는 일로 나아가게 된다. 묻고 따지는 것이 깊고 넓을수록 풀어가는 일 또한 깊고 넓어진다. 한국말에서 ‘풀다’는 ‘풀’과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풀다’는 ‘푸는 일’로서, 뭉쳐 있거나 맺혀 있는 것이 풀처럼 풀려서 고루 자리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말에서 ‘풀다’의 바탕이 되는 ‘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땅이나 물에서 나고 자라는 ‘풀’이다. 풀은 뿌리나 덩굴이나 씨앗을 통해서 이리저리 풀어져 고루 자리한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다른 것에 붙이기 위해서 밀가루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서 물에 풀어서 쓰는 ‘풀’이다. 사람들은 풀이 물에 풀려서 고루 자리하게 되면 이것과 저것을 붙여서 하나게 되게 할 수 있다. 한국사람은 어떤 것이 ‘풀’처럼 풀려서 고루 자리하게 되면 어떤 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날씨가 풀리고, 몸이 풀리고, 일이 풀리면 뜻하는 일을 제대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묻고 따지는 일을 하나하나 풀어가면 무엇을 알아보는 일을 바르게 이룰 수 있다.
한국교육은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지형 변화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한국 교육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지형 변화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교육의 최대 가치는 교육의 본질과 지식교육에 있다. 한국 사회의 변화와 한국 교육 한국의 정체성 논쟁의 중심에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남북 간 긴장관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자본주의 체제가 있다. 또한 한국 사회는 위드(with)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성공적 삶을 위해 새로운 표준을 찾고, 양극화의 위기와 청년시대의 고민을 해결해야 할 부담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한국 사회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사상적 흐름 즉, 네오 막시즘적 사상의 뿌리를 갖고 있는 입법이 알게 모르게 발의되고 있고, 한국 교육에 유입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테면 젠더와 인권감수성 간의 논쟁, 인권교육과 급진적 성교육·민주시민교육 내용의 타당성, 평등법,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상황 가운데에서 한국 교육이 간과하고 있는 점들을 심각하게 점검해야 할 사실들이 있다. 첫째, 잃어버린 교육적 가치를 되살려내야 한다. 급진적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분별하게 변화하는 추세를 따라가는 데 급급한 나머지 수단적 가치에 매몰되어 교육의 본질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둘째, 시대사상의 흐름에 무분별하게 좇아가다 보면 정치적 편향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교육의 수단화와 제자리 상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전교조의 정치편향교육과 정치참여는 교육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서 이탈하게 된다. 셋째, 본질을 상실한 상상력과 창조력은 진리를 외면하고 ‘지식’교육의 기반을 흔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한국 교육을 지배하는 급진적 사상과 이념의 뿌리를 걷어내고 한국 교육정책의 건전한 에토스를 조성하는 문화적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사회의 기강 확립과 밝은 미래를 향한 한국 교육의 자유민주적 질서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교육 비판의 근거와 정당성 한국 교육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크다. 그런데 한국 교육을 비판하는 근거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과연 그 비판의 소리가 정당한지 알기 위해 그 비판이 어떠한 근거 또는 사상적 기반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인지, 역사적·시대적으로 낙후된 것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 편향된 사고에서 나온 비판은 매우 잘못된 편견과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한 사고가 교육정책화한다면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큰 불행이다. 한국 교육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예를 들면, ‘끔직한 헬조선을 만든 장본인이 한국 교육이다’ ‘우리나라는 성찰이 없는 사회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으로 돌리고 있다’ ‘한국 교육의 능력주의는 폭군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교육은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보여준다’ ‘어쩌다 한국이 이처럼 야만적인 사회가 되었는가’ ‘능력에 따른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등등 목소리가 크다. 왜 이러한 비판의 소리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최근 한국 사회의 이념과 가치전환의 측면에서 가치판단 근거를 분명히 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서 그 근거란 단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거나 단순히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 교육을 판단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비판의 근거로서 이론(준거의 틀·모형·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론 모형을 갖고 있지 않다면 비판의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이를테면 ‘사회란 무엇이냐’라는 것을 설명하고 비판하려고 할 때 사회를 설명하는 모형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한국 교육의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 실상 한국 교육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비판의 내용과 수준이 판이하다. 바라보는 시각은 일종의 패러다임(관점·프레임)이다. 듀이적 관점이냐 허스트적 관점이냐에 따라 한국 교육을 평가하는 내용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지식관에 따라 한국 교육을 평가하는 내용이 달라진다. 일례로 한국 교육 비판에 대중적 인기를 점하고 있는 모 교수의 강연내용을 잠시 인용해 보겠다. 그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4가지로 규정한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등이다. 이들 특징은 극심한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를 규정하기를 ‘한국은 강력한 현대 허무주의에 순응해 버린 나라’라고 말하면서 그 근거로 경쟁교육 문제를 지적한다. 독일 교육과 비교하여 경쟁의 끝판왕이 우리나라 교육현장이라면서 독일의 교육은 ‘시험이 없다’ ‘시험을 치르는 날짜를 모른다’ ‘시험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 교육방침이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경쟁은 안 된다’ ‘경쟁교육은 야만적이며 한국 사회는 경쟁 이데올로기 속에서 병들어 가고 있다’라고 외친다. 물론 이 말은 각성을 촉구하는 안타까움과 열정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필자가 바라보는 한국 교육의 역사와 한국 교육을 에워싼 한국의 정치·사회사상의 지평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비판적 지적을 해 볼 수 있다. 먼저 독일 교육을 예시하면서 한국 교육을 비판한다는 점이다. (1) 그는 ‘경쟁은 나쁜 것이다’라는 것을 신화화 내지 자연화하고 있다. 다음으로 (2) 자신의 사상적 기반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독일 교육의 문화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성해방교육의 논리와 윤리적 정당성을 논하고 있다. (3) 자신이 갖고 있는 논리를 절대화하고 있다. 자신의 논리를 교육의 논리에 비추어 정당화하거나 입증하려는 시도는 없다. (4) 한국의 모든 교육적 상황을 획일적으로 단순화하여 자신의 교육적 경험으로 한국 교육 전체를 싸잡아 네거티브적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한다. (5) 교육적인 것과 비교육적인 것, 그리고 반교육적인 것의 차이를 아동·학생의 발달과정에 따른 도덕적·윤리적 가치기준과 더불어 설명하지 않는다. (6) 교육의 본질과 지식교육에 관한 본질적 질문에 관한 담론은 찾기 어렵고, 상대적 진리관과 변증법적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지식관 속에서 논리를 전개한다. (7) 전교조 교육 지배가 오늘의 한국 교육에 미치는 병폐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8) 독일 교육을 교육 유토피아로 상정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인간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가운데 교육 유토피아를 주장하였다면, 그것은 실현될 수 없는 비현실적 주장이다. (9) 또한 독일은 대학입시·대학서열·등록금·귀족학교가 없는 나라인가? 무시험 무경쟁으로 행복한 학교생활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3 (10) 그의 비판은 부분으로서 전체를 비판하는 오류가 있다. 자신만이 지각한 평가의 잣대로 한국 교육의 공과와 역사를 평가하고 있다. 한국 교육의 실체와 역사는 상상외로 복잡하다. 고난의 시절을 겪어 온 한국적 상황에서 한국 교육은 한국적 시대적 상황에 적합한 최선의 정책적 선택을 하면서 꾸준히 성장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한국 교육학자들의 공이 컸다. 뿐만 아니라 공교육정책에서 터치하지 못했던 일들을 학부모와 학생들이 한국 고유의 교육열을 통해 (비록 부작용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충해 왔다. 그리고 지금껏 한국 교육을 살리려는 수많은 개혁안이 탄생했었고 또 실패하곤 했지만, ‘한국 교육’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적 경험들은 현실적이지 못한 환상적 대안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에 불과했었는지를 보여준다.
잉카의 태양신이 함께 하는 곳 모라이 경작지와 고원지대 염전 살리네라스, 그리고 며칠 머물고 싶던 인상적인 도시 오이얀따이땀보를 거쳐 잉카트레일을 타고 마추픽추 아랫마을인 아구아깔리엔떼란 곳에 이르렀습니다. 기차가 이르자 우릴 반겨주는 것은 어둠과 굵은 빗줄기였지요. 그래도 쿠스코보다 한결 낮아진 해발인 탓에 맴돌던 옅은 두통은 거짓말처럼 깨끗이 사라졌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를 청하는 창문 너머로도 빗소리가 잠을 까슬하게 만듭니다. 몇 번을 뒤척였을까. 새벽 4시 기상 시간으로 설정해 두었으나 잠은 이내 깨버렸습니다. 마추픽추를 만나게 되는 설렘이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나 봅니다. 버스 편을 이용하려 긴 매표 행렬에 동참하였습니다. 세상에 내가 마추픽추를 향하다니…… 세상 사람들의 수식과 수사(修辭)에는 사람들을 열렬하게 만드는 그 어떤 공통분모가 분명 있습니다. 마추픽추도 그런 곳의 하나일 테지요? 지상에서는 그 존재를 볼 수 없어 공중도시라고 한다든지 고도로 계획된 철저히 구획된 도시, 베일에 가려 있다가 20세기에나 발견되었다든지 하는 전설 같은 얘기들로 먼저 각인되었던 마추픽추. 그 신비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새벽까지 비가 내려 걱정을 했으나, 비는 개고 남겨둔 구름들이 오히려 마추픽추 풍광을 더 황홀하고 신비롭게 만들어 줍니다. 이 마추픽추는 잉카 문명의 고대 요새 도시로 15세기에 남아메리카를 지배했던 잉카 제국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2,430m나 되는 산맥의 정상 위에 위치해 있고,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8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잉카제국의 파차쿠티 황제가 이 요새 도시를 건립하였으며, 1450년 즈음에 지어졌고, 약 1세기 후에 스페인의 침략과 비슷한 시기에 버려진 것으로 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설도 많은 곳입니다. 그러다가 1911년에 미국의 탐험가에 의해 알려지기 전까지는 세상에 ‘잊혀진 도시’, 그래서 시간 속에 묻혀 있던 ‘시간을 잃어버린 도시’였습니다. 하루 200명만 입장을 허용하는 와이나픽추를(마추픽추 맞은편 산봉우리로 날개를 펼친 콘도르와 퓨마의 형상을 하고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감싸 안고 있다.) 향해 부리나케 걸음하였습니다. 그리고 와이나픽추 봉우리 위에서 마추픽추 도시 전체 조망을 황홀하게 마친 뒤 우르밤바 강물이 협곡 사이로 아찔하게 휘감는 와이나픽추 봉우리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멀리로는 설산이 이마를 보이고, 이국의 나무와 풀과 꽃들이 어우러진 등산로가 마추픽추와 함께 생의 기억 창고에 오래오래 간직되리라 예감하면서 말입니다. 먼바다였던 당신, 티티카카 호수 밤차로 쿠스코서 푸노로 이동. 푸노에 도착한 것은 5시. 해발 3,700m의 고소가 공기로 먼저 몸 인사를 합니다. 그 이름만으로 그에게 꼭 한 번쯤 다가가선 하염없는 눈길을 주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그 그리움의 연원이 정말 사소한, 어쩌면 터무니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이번 떠남에서 그는 마추픽추도 우유니도 아니었답니다. 티티카카. 여행을 떠나기 전엔 이 이름에 끌림이 많았습니다. 작은 배를 타고 그 속에 듭니다. 자외선이 강한 고산지, 안내인 사내는 햇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을 한 채 알아들을 수 없는 이방의 언어(아마 스페인어였던 듯)로 티티카카 호수에 대한 열정적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나. 는. 지. 금. 티티카카 호수 위에 있습니다. 그 호수 한가운데를 배를 타고 나아갑니다. 이런 세상에! 다른 이유가 설명이 필요한가요. 남미 대륙 안데스 높은 산줄기에 바다 같은 어쩌면 바다보다 넓은 그 호수 위를 말입니다. 밤 버스에 지친 여행객들은 피로의 무게에 쏠려 고개를 숙입니다. 하지만 난 지금 시선을 뗄 수가 없습니다. 갑판 위로 올라 서 보기도 하고 서늘한 바람이 장난기를 보이면 다시 선내로 들기도 하면서 티티카카와 유희를 즐깁니다. 사랑이란 어쩌면 저만의 순전한 착시거나 착각일 때 온전한 건 아닐까요? 윤선도도 그의 시에서 웃음도 말씀도 아니해도 마냥 좋은 것이 자연이라 노래했지요. 사람 사이에서의 사랑, 상대에게 기대는 것 기대하는 것이 자꾸만 커져갈수록 처음의 그 맹목적이다시피하던 사랑은 찾아볼 수 없게 되고 집착만 남게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네요. 그 어떤 무엇을 바라지 않는 마냥 좋은 마음 그대로가 순전한 사랑이라는 것을 드넓은 티티카카에서 다시 깨닫습니다. 갑판 위에 앉아 상상합니다. 아득한 시간 너머 바다... . 먼바다였던 당신, 어느 날 문득 맞닿는 시·공,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이 높은 산 위로 솟구쳐 오릅니다. 3,800m에 이르러 안데스와 만났지요. ‘바다 같은’이란 수식만으로는 가시지 않는 목마름일까요? 이 지천인 물기 속에서도 채울 수 없는 갈증. 그리고 결코 마르지 않을 그리움의 당신. 그리움이란 존재였던 것, 혹은 존재이거나 존재였으면 하고 소망하는 것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마음입니다. 나는 아직 세상에 있고 숨 쉬고 바라볼 수 있으므로 내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역으로 나라는 자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표징이 됩니다. 역설적이죠? 부재하는 것을 그리워하면서 실존의 자아를 느끼다니요. 심원을, 심연을, 존재를 생각합니다. 잊고 살아오고 있었죠. 무슨 치기 어린 청년 시절 얘기냐고 스스로 낄낄대곤 했었죠. 이윽고, 바다같이 넓은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타킬레섬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타킬레엔 먼저 비구름이 지나고 있네요. 타킬레는 동화의 나라 같습니다. 영화 속 호빗족의 마을 풍경도 같고 여느 목가풍의 마을을 닮은 듯도 합니다. 관광객들의 잦은 발길이 이들의 삶을 많이 바꿔 놓았겠지만요. 어디 그 본성까지야 바꿨을라고요. 풍경을 닮은 그곳 사람들의 표정은 순박한 가을 물빛 같습니다. 너나없이 아이들이 길목 곳곳 기념품팔이에 나와 있는 것이 조금 안쓰러웠지만 여느 관광지 아이들처럼 떼를 쓰지도 않으며 그저 수줍은 미소만 뿌려내는 정도입니다.
금리가 오른다? 지난 8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인상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금리인상을 더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올해 금리인상이 한 번 더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1%가 된다. 미국은 연방준비은행에서 아직 금리인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는 있지만 지금의 제로금리(0~0.25%)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제 금리인상 시기가 몇 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투자법도 금리인상에 맞게 바꿔야 한다. 금리를 왜 올릴까? 금리를 앞으로 얼마나 올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먼저 금리를 왜 올리는지 알아야 한다. 금리인상은 과열된 경기가 과속을 하지 않도록 적절한 브레이크 역할을 해준다. 경기가 과열되지도 않고 침체되지 않는 완만한 상승을 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이 금리인상의 핵심이다. 경기가 과열되면 소비가 늘어 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늘고, 고용이 늘면서 임금도 늘어난다. 기업의 주가도 오르고 내 월급도 오르니 경기호황이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부작용도 있다. 기업의 이익과 개인의 소득이 늘었으니 물가가 상승한다. 그리고 주가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가격도 상승한다. 즉, 물가, 임금, 자산가격이 치솟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조금씩 상승하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게 된다. 이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벌어지고 화폐가치는 급속도로 하락한다. 수레에 돈을 잔뜩 실어야 빵 하나와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물가가 상승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누가 가장 불리해지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산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물가상승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그래서 국가는 물가, 자산가격이 빠르게 상승하지 못하도록 이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금리인상을 하는 것이다. 금리인상을 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금리인상을 하면 물가인상을 억제할 수 있다. 미국도 한국도 소비자물가지수가 급등하고 있는 추세다. 한 줄에 만원하는 김밥을 보고 싶지 않다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 이론적으로 물가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 속도도 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근 20년간 금리인상기에 주택가격도 증시도 같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동안 경기호황이라는 엑셀 페달이 금리 인상이라는 브레이크를 이겼다. 또한 금리인상을 하면 은행 예금금리가 상승한다. 저축을 하는 사람은 이자매력이 더 늘어난다. 앞으로 추가 금리인상을 할수록 예금금리는 계속 상승할 것이다. 공제회 저축 이율도 올라갈 것이다. 그동안 저축 비중이 높았던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다. 금리인상을 하면 어떤 나쁜 점이 있을까? 금리인상이 좋은 역할도 하지만 나쁜 역할도 있다. 금리가 상승하면 대출이자 부담이 증가한다. 더구나 향후 추가 인상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대출금리는 계속 상승할 것이다. 그럼 빚을 내서 투자를 한 사람들, 기업들은 이자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대출이자가 늘어나면 소비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 그럼 기업들은 그만큼 매출에 타격을 받고 기존의 대출이자도 늘어나기 때문에 수익이 급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증시 하락 원인이 될 수 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대출이자가 부담스럽다 보니 욕심을 내서 집을 사기도 어렵다. 그럼 금리상승기에는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금리가 상승한다는 것은 유동성(돈)을 한국은행이 회수해 간다고 볼 수 있다. 즉, 원화가 귀해진다. 돈이 귀해졌기 때문에 예금이자도 올라가고 대출이자도 올라가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은 선진국 중 가장 먼저 금리인상을 했고 미국이나 다른 나라는 금리인상을 하지 않았다. 그럼 환율은 좀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환율이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한국에 투자매력이 생긴다. 오히려 한국 주식이 매력적인 투자가 되면서 달러가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이론과 다르게 금리 인상기마다 대한민국 증시는 고점을 기록했다. 물론 경기호황으로 인한 금리인상이기 때문에 증시만 좋은 것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도 좋았다. 하지만 이번 금리인상은 호황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기업들은 호황을 누렸지만 자영업자, 프리랜서, 관광업체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채관리, 물가, 자산가격 과열상승 억제를 위한 금리인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나려고 하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미국은 이런 우려로 아직 금리인상 시기를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선제적 결단이 효과를 볼지 부메랑을 맞을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부채가 적은 기업, 부채비율이 낮은 지역의 부동산, 물가 또는 금리상승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업, 국내비중보다는 해외판매 비중이 높은 기업들 위주로 투자를 하는 것이 금리인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투자수단이 될 것이다.
주변 식물에 관심을 갖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잡초다. 잡초(雜草)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다. 인간이 경작지에 목적을 갖고 재배하는 작물(作物)의 상대적 개념이다. 이 같은 구분은 인간 입장에서 한 것이라 자의적인 면이 있다. 잡초의 특징은 무엇보다 강인한 생명력이다. 아무리 가혹한 환경이어도, 작은 틈만 있어도 싹을 틔우고 자라 꽃을 피워 씨앗을 퍼트린다. 흙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시멘트 건물 틈, 보도블록 작은 틈에서도 꿋꿋하게 자란다. 작고 가벼운 씨앗을 대량 생산해 주변에 맹렬하게 퍼뜨리는 것도 잡초의 특징 중 하나다.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잡초는 무엇일까. 계절에 따라, 경작지인지 도로변인지 등 장소에 따라 흔히 볼 수 있는 잡초가 다르다. 그중에서 도시인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를 꼽자면 망초, 개망초, 바랭이, 왕바랭이, 명아주, 쇠비름, 환삼덩굴을 들 수 있다. 이 일곱 가지 잡초만 잘 기억해도 주변에서 이름을 아는 풀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대롱꽃 다발이 노란 개망초는 계란꽃으로도 불린다 이들 7대 잡초 중에서도 가장 친숙한 풀은 망초·개망초가 아닐까 싶다. 꽃공부하는 사람들 말 중에 ‘내가 망초, 개망초도 구분 못했을 때’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망초·개망초 구분이 꽃공부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주변에 흔한 풀이기도 하다. 개망초는 잡초지만 꽃의 모양을 제대로 갖춘, 그런대로 예쁜 꽃이다. 하얀 꽃 속에 은은한 향기도 신선하다. 흰 혀꽃에 가운데 대롱꽃 다발이 노란 것이 계란후라이 같아 아이들이 ‘계란꽃’ 또는 ‘계란후라이꽃’이라 부른다. 반면 망초는 꽃이 볼품 없이 피는듯 마는듯 지는 식물이다. 망초라는 이름은 개화기 나라가 망할 때 전국에 퍼진 풀이라 붙은 것이다. 보통 ‘개’자가 들어가면 더 볼품 없다는 뜻인데, 개망초꽃은 망초꽃보다 더 예쁘다는 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망초와 개망초는 가을에 싹이 터, 잎이 나와 땅 위를 덮은 상태로 겨울을 난 다음 봄에 줄기가 나면서 크는 두해살이풀이다. 초봄 아직 줄기가 자라기 전 망초는 길쭉한 잎에 가운데 검은색 줄이 선명하고, 개망초는 넓은 잎이 둥글둥글 부드럽고 잎자루에 날개가 있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사극에 망초·개망초가 나오면 어떨까. 조선시대, 고려시대 나아가 삼국시대가 배경인 영화나 사극에 망초·개망초가 핀 벌판이 나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개화기 이전이 시대적 배경인 사극에서 망초, 개망초가 나오면 전형적인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바랭이는 밭이나 과수원, 길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잡초다. 지면을 기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빠르게 퍼지는 식물이다. 바랭이는 꽃대가 실처럼 가늘고, 꽃대에 작은 이삭이 띄엄띄엄 달린다. 아이들이 이 꽃대로 우산을 만들며 놀기도 하기 때문에 ‘우산풀’로도 부른다. 일본 잡초생태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책 ‘풀들의 전략’에서 “바랭이의 부드러운 기품은 여성답고, 또한 세력에서도 여왕이라는 말에 손색이 없다”며 바랭이를 ‘잡초의 여왕’이라고 했다. 바랭이는 밭에서 뽑아도 뽑아도 계속 생기는 잡초다. 베거나 뽑혀도 한 마디만 남아 있으면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고(故) 박완서는 산문집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뽑아도 다시 자라나는 마당 잡초를 얘기하며 “내 끝없는 노동에 맥이 빠지면서 ‘내가 졌다’ 백기를 들고 마당에 벌렁 드러누워 버릴 적도 있다”고 했다. 왕바랭이는 여러 줄기가 뭉쳐서 나 튼튼하고 다부지게 생겼다. 땅속으로 뻗는 뿌리도 깊어 여간해선 잘 뽑히지도 않는다. 꽃대가 다소 두껍고, 꽃이삭도 두 줄로 촘촘하게 달리기 때문에 바랭이와 구분할 수 있다. 책 ‘풀들의 전략’에서는 왕바랭이의 굵은 이삭을 ‘호걸의 짙은 눈썹’ 같다고 했다. 명아주도 흔하디 흔한 잡초의 하나다. 줄기 가운데 달리는 어린잎에 붉은빛이나 흰빛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높이 2m까지 자란다. 다 자란 명아주를 말려 만든 지팡이를 청려장(靑藜杖)이라 하는데, 가볍고 단단해 지팡이로 제격이다.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나라에서 70세 또는 80세를 맞은 노인에게 청려장을 내리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장수 시대라 100세를 맞은 노인에게 청려장을 증정하고 있다. 봄에 어린 명아주를 보면 저렇게 작은 것이 어떻게 지팡이를 만들 수 있게 자라는지 잘 믿을 수 없다. 초여름에도 마찬가지다. 명아주는 늦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맹렬하게 자란다. 마치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막판에 경이적인 스퍼트를 하는 것 같다. 봄과 여름에 넓은 잎으로 광합성을 충분히 해놓고 뿌리로 부지런히 양분을 흡수했기에 가능할 것이다. 가을날 문득 보면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고 줄기도 제법 굵어진 명아주를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지팡이를 만들 만하겠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늦가을 마른 명아주 대는 재질이 단단한데 비해 속이 비어서 아주 가볍다. 근력이 약한 노인들에겐 안성맞춤일 것이다. 청려장을 생산하는 전북 완주군 홈페이지를 보면 ‘명아주를 이식한 후 바로 세우기, 삶기, 옹이 제거, 다듬질 등 50여 회의 공정을 거쳐 청려장을 만든다’고 했다. 쇠비름은 가지를 많이 치면서 사방으로 퍼져 땅을 방석 모양으로 덮는다. 채송화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같은 쇠비름과 식물이다. 뽑았더라도 그대로 두면 다시 살아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잡초를 가장 실감 나게 묘사한 소설은 천명관의 장편 ‘나의 삼촌 브루스 리’다. ‘쇠비름보다 더 악랄한 새끼!’, ‘뽑아내도 뽑아내도 질기게 다시 뿌리를 내리는 쇠비름처럼…’ 같은 대목이 있다. 환삼덩굴은 황폐한 곳에서 흔히 자라는 외래종 덩굴식물이다. 왕성한 생장력으로 토종 식물을 감거나 덮으면서 자라 큰 피해를 주는 식물이다. 환경부는 2019년 환삼덩굴을 생태계 교란식물 16종 중 하나로 추가 지정했다. 잎 양쪽 면에 거친 털이 있어 옷에 잘 붙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슴에 훈장처럼 붙이며 놀아 ‘훈장풀’이라고도 부른다. 맥주의 향을 내는 홉과 같은 속이라 비슷하게 생겼다. 요즘 잡초의 다양한 용도에 대한 탐색도 한창이다. 냉이·민들레처럼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는 식물도 있고 개똥쑥은 항암작용이 있다는 소문이 퍼진 이후 보기도 힘들어졌다. 잡초의 놀라운 생명력을 작물에 결합시키면 병충해에 끄떡없는 품종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