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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글 | 박하선/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필리핀 북단에 위치한 원시 세계 이른 아침에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깬다. 한 마리가 목청을 돋우자 여기저기서 경쟁을 하듯 울어 댄다. 선잠을 깬 상태에서도 그 소리가 제법 구수하게 느껴진다. 이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잠자리에 누운 채로 머리맡의 담배를 찾아 물었을 것이지만, 나는 그냥 누워서 멍청하게 허공만 쳐다보면서 여기가 어딘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목청이 찢어져라 계속되는 그 닭들 울음소리에 그만 구수함도 사라져서 모기장을 걷고 잠자리에서 빠져나온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저놈의 닭들에게는 일요일도 없는 모양이구나' 하고 투덜대면서 창문을 열어본다. 야자수 너머로 동이 터 오고 해변의 물결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여기는 필리핀의 외딴곳 '엘니도'라는 곳이다. 요 며칠 동안 원시의 꿈에 젖어 이곳저곳을 헤맸고, 이 한가로운 어촌의 한 코티지에서 들려오는 저 물결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가. 아, 오늘도 그 원시의 세계에 묻혀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엘니도의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도 코티지 안주인이 점심으로 마련해 준 샌드위치와 바나나 몇 개만을 들고서 전세를 낸 방카를 타고 무인도들을 찾아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선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등지고 야자수들 사이에 들어서 있는 마을의 집들에서 아침을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또 길가의 조그마한 구멍가게들이 정겹다. 어젯밤 몇몇 여행자들이 들어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던 곳은 밤늦도록 있어서인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선착장에는 간밤에 그물을 쳐 고기를 잡은 어선들이 돌아와서 마을 사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리고 있다. 양손에 다랑어(Tuna) 한 마리씩을 집어 들고 물길을 걸어 나오는 소녀의 웃음이 해맑다. 그걸로 아침식사를 마련할 모양이다. 생선 값을 물어보니 물어 본 내가 죄스러울 정도로 거저나 다름없다. 아직도 이곳 엘니도 사람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이 '엘니도'라는 곳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사람의 때가 덜 묻어 자연관광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팔라완' 섬의 북단에 위치한 오지다. 이 일대는 빼어난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교통이 불편한 오지여서 세계 각국 여행자들이 이 엘니도를 방문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덕택에 아직껏 때묻지 않은 비경이 고스란히 간직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그 어원은 스페인어의 '제비가 있는 섬'이라는 것에서 유래한 것인데, 그 옛날 스페인 모험가들이 이 땅을 방문하여 제비가 대리석 섬들 사이를 날고 있는 것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태초의 모습 그대로의 무인도 소금쟁이 같은 모양의 방카를 타고 비취빛 바다 위를 달린다. 늙은 방카 주인과 조수인 그의 아들,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만 탄 방카는 통통거리며 제법 잘 달린다. 넓은 곳에 나오니 수심이 50m나 되어서 아무리 맑은 바다라지만 물밑은 보이지 않는다. 사방에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그 섬들마다 한결같이 수백 미터쯤의 수직 암벽이 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조그마한 백사장이 하얗고 가늘게 빛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저 무인도들의 그림 같은 백사장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40여분 걸려서 어느 무인도의 백사장에 닿는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 밑에 자리한 조그마한 백사장. 눈부시게 빛나는 고요가 감돌고 있어서 찰랑되는 물결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내가 이 백사장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은 아닐진대 그 어느 누구도 다녀간 흔적이 없다. 백사장 주변의 바위들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돋아 있고 몇 그루의 야자수를 제외하곤 온통 밀림이어서 한발자국도 들어설 수가 없을 것 같다. 무늬를 그리는 투명한 물밑으론 수많은 산호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열대어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 모든 것이 마치 태초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곳은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요 며칠 동안 찾아다녔던 섬들의 백사장마다 이처럼 원시의 멋을 한껏 풍기고 있지 않았던가. 그림 같은 백사장에 투명한 바다를 눈앞에 두고 어찌 보고만 있을 손가. 부담 없이 이 원시의 분위기에 몸을 던져 보는 거다. 수영이야 잘하든 못하든 아무 관계가 없다. 또 굳이 수영복도 필요 없다. 보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데 알몸이라고 해서 거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어쩜 이 원시적 분위기에선 수영복을 입는다는 것 그 자체가 죄악일지도 모른다. 속인들이 만들어 놓은 관습을 벗어 던져 놓고 한때라도 대자연 앞에 솔직한 내 자신을 들어내 놓는다는 것도 멋스러운 일이다. 이래서 나 자신도 원시가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오늘날 이 엘니도를 찾아오는 여행객들은 꽤 되지만 그림 같은 무인도의 백사장이 수도 없이 많아 모두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에 몇몇 섬을 제외하곤 자신만의 시간을 침해당하는 일은 드물다. 어촌에서 빌려 온 장비로 스노클링을 하면서 원시의 투명한 바다에서 형형색색의 산호들을 들여다보거나, 손에 잡힐 듯한 열대어들과 친구가 되면서 마음껏 즐긴다. 특히 알몸으로 물속을 헤치고 다니거나 백사장을 거닐다 보니 더없이 홀가분하다. 이때의 기분은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알몸일 때 가장 솔직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부부간의 갈등, 아니면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이런 곳에 와서 서로 알몸으로 한 며칠 지내면서 대화를 나누어 보도록 추천하고 싶다. 모든 것이 절로 풀려서 서로 잃었던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낙원 한켠에 공존하는 세속의 모습… 자외선이 강해서 피부가 금방 그을린다. 물놀이에 지치면 비취 파라솔을 대신하는 야자수 그늘에서 가져온 점심을 먹고 낮잠을 한숨 멋들어지게 자도 방해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가 다른 무인도의 원시의 낙원을 찾고 싶어 다시 방카를 타고 열대의 바다를 헤쳐 나간다. 한 무리의 물고기 떼가 짙푸른 해면 위로 연달아 뛰어 오른다. 다랑어인 듯싶다. 섬이 가까워지면 물빛이 다시 비취빛이 되면서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보석처럼 맑은 물을 보면 그 어떠한 청량음료도 이렇게 맑지는 못할 것 같아 그냥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 엘니도의 모든 섬들이 무인도인 것만은 아니다. '미니록'과 '팔랑가시안'이라는 두 섬에는 고급 리조트 시설이 되어 있다. 일본과 필리핀에 있는 두 기업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이 두 리조트 시설은 최고급이어서 서민들이 이용하기는 좀 벅찬 곳일 뿐만 아니라 투숙객이 아니고서는 허가없이 이곳에 상륙도 못하게 한다. 투숙객들에게 최대 안락한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사전에 엘니도 어촌에 있는 사무소에 들려서 무선으로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지만, 원시의 낙원 한 곳에 세속의 모순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잠깐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나온다. 편안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그곳이 좋을 것이다. 이 리조트의 프로그램에도 신혼부부를 무인도에 데려다 주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을 준비해서 백사장의 야자수 그늘에 내려놓고 방카를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약속 시간까지는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해서 둘만의 밀월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연상케 하는 아주 기막힌 시간이 될 것이다. 꼭 신혼부부가 아니더라도 투숙객이 원하면 점심 식사를 비롯하여 하루를 무인도에서 보낼 수 있도록 식탁까지도 운반해 주고 목이 마르다면 직접 야자수에 올라 야자도 따 준다. 좀 사치스러운 것이기는 해도 그러한 서비스에 젖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낙원에 온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원주민의 흔적은 텅 빈 오두막 뿐 이곳의 모든 무인도가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곳에는 바나나 잎으로 엉성하게 만든 텅 빈 움막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무인도에 표류해서 살다가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동화 속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지만, 알고 보니 제비집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기거한 곳이다. 이곳 엘니도의 이름에서 보듯 이곳에는 제비들이 많다. 그래서 제비집도 당연 많다. 예로부터 중국요리에서는 '제비집 스프'를 최고급으로 치고 있기 때문에 그 제비집들이 아주 고가로 팔린다. 그래서 이곳 원주민들은 철이 되면 이 섬 저 섬을 옮겨 다니면서 몇 날이고 절벽에 붙어 있는 제비집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철이 아니어서 이렇게 텅 비어 있는 채로 두 마리의 고양이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원히 간직해야 할 원시의 멋 발길을 어디로 돌려도 비취빛 맑은 바다와 인적없는 눈부신 백사장이 있어 꿈속 같은 곳이기는 하지만 이곳 엘니도는 분명 천국의 섬은 아니다. 단지 원시의 멋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이 시대의 숨겨진 보물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온갖 것에 잔뜩 찌들어 지친 몸을 쉬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결국 엘니도는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곳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이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한다면 뭇사람들이 뭐라고 말할까. 그것은 단지 엘니도의 원시적인 멋이 영원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엘니도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봤던 열 가지 주지사항 중 마지막 문구가 잊히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그 어느 것도 건드리지 말라" "발자국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남기지 말라" "추억 외에는 그 어느 것도 가져가지 말라" "시간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죽이지 말라" 이렇게만 지켜진다면 엘니도의 멋은 영원할 것이다. *엘니도의 환성적인 사진들을 새교육 9월호를 통해 확인해 보세요.
글 | 김연수/생태사진가 위태로운 공사현장의 희귀조 멸종위기의 세계적인 희귀조 검은머리갈매기(Larus saundersi, 환경부 지정 법정보호동물 36호) 20여 쌍이 인천신공항 화물청사 인근 마른 갯벌에서 집단 번식하고 있다. 둥지에는 2∼3개 알들을 산란하고 있다. 암수가 교대로 둥지를 지켰고 먹이를 구하러 10㎞이상이나 떨어진 갯벌로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둥지는 비교적 메마른 굳은 땅 위에 마른 칠면초를 이용했으며 둥지간 거리가 10∼20m정도로 밀도가 높았다. 이들은 지나가는 차량과 공사중인 포크레인에는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았으나 반경 2㎞이내에 사람이 들어오면 일제히 비상하여 사람의 머리 위 1m까지 하강하여 공격하는 등 괭이갈매기보다 대담한 공격성을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곧 빠지면 3분이 채 못돼서 둥지로 돌아가 안정을 되찾았다. 6년 만에 1/5로 줄어들어… 지난 1999년 4월 22일 필자는 인천광역시 영종도 신공항 주건물 공사현장에서 동북쪽으로 3㎞ 떨어진 메마른 갯벌에서 번식중인 검은머리갈매기들을 처음 발견하여 환경부에 보고했었다. 이때 이곳에서 번식중인 검은머리갈매기 개체수는 100여 쌍이 넘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2005년 6월에 그 숫자는 1/5이하로 격감했다. 이곳은 3면이 수로로 둘러싸여 천적이 접근하기 어렵고, 칠면초, 해옥나물 등 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이들의 번식지로 최적이다. 그러나 이곳도 매립공사가 진행중이어서 공사가 완성된 이후면 검은머리갈매기들은 더 이상 이곳에서 번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지구상에 7000여 마리가 생존해 있는 멸종위기종으로 국제습지보존연대회의(RAMSA)에서는 그 1%인 70마리가 서식하면 람사사이트로 지정하고 있다. 람사협약에 가입한 한국에서 그 기준을 따르면 영종도 신공항은 당연히 들어설 수 없는 곳에 건설되었다. 희귀조류에 무관심한 우리나라 검은머리갈매기들은 번식을 위한 산란에 27∼29일이 소요되며, 성장에는 29∼32일이 걸리는 등 산란과 날기 위한 기초 성장에 2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한국 순천만과 중국남부에서 주로 서식하며 낙동강에서는 겨울철에 50∼60여 마리가 발견된다. 97년 순천만에서 최대 개체인 1100여 마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전 세계에 7000여 마리 가 있으며 한국에 1100여 마리 정도가 오간다. 한국, 북한, 중국을 포함한 발해만과 내륙인 몽골지역에서 서식하는 검은머리갈매기는 주로 한국의 경기만에서 번식한다. 번식에 성공하면, 한국의 서남해안 갯벌을 따라 이동, 겨울철에는 전남 순천만과 일본 해안가, 중국남부에서 월동한다. 월동지인 일본에서는 해마다 검은머리갈매기의 숫자를 카운트하며 그 보호에 혈안인 데 비해 정작 번식지인 한국에서는 일부 조류에 관련된 학자나 환경단체에서만 이슈를 제기할 뿐 그 존재가치를 모르고 있다. 번식지를 보전하기 위한 배려 필요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이름을 붙인 전 세계의 동·식물은 약 140만 종. 이들 중 하루 평균 136종의 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적어도 매년 250∼300여 종에 이르는 야생 동·식물이 한반도 내에서 멸종되고 있다. 검은머리갈매기도 그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국제관문인 인천공항에 첫 도착한 외국인들이 멸종위기의 국제보호조인 검은머리갈매기가 대규모로 서식하는 광경을 본다면 한국의 대한 인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모순 속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관계당국인 환경부와 건설교통부는 지금이라도 검은머리갈매기의 영종도 번식지를 매립하지 말고 내년에도 이들이 찾아와 안전한 번식을 하도록 범 국가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 이곳은 주요건물이 들어설 곳이 아니고 활주로에 인접한 배후습지이기 때문에 항공기의 안전운항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존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귀여운 검은머리갈매기의 새끼들의 모습을 새교육 9월호에서 확인해 보세요.
조현호ㅣ울산 옥현초 교사 절터 찾아가는 길 벌써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네요. ‘시간은 화살처럼 난다’는 서양 격언이 실감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합시다. 이번 호와 다음 호는 옛 절터를 찾아갑니다. 절터란 절이 있던 곳입니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퇴락하여 망한 절도 있고, 외침으로 스러진 절도 있으며 이념에 의한 탄압으로 종적을 감춘 곳도 있습니다. 회암사터나 미륵사터, 청룡사터처럼 웅장한 규모의 절터도 있고 초석 몇 개만 달랑 남은 작은 규모의 절터도 있습니다. 황량한 들판이나 우거진 숲속에서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며 줄곧 그 자리를 지키는 그곳에 가면 ‘아, 내 속에 내가 있었구나’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유물이나 유적은 나그네로 하여금 옛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흔한 들꽃 하나도 보물이 되어 다가옵니다. 그럼, 절터로 떠나볼까요? 호국사찰 금당엔 소나무가 주인으로 - 원원사터 원원사는 안혜, 낭융 등 네 대덕이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안혜와 낭융의 제자였던 광학과 대연 등은 고려 건국시 해적을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명랑법사의 법맥을 이어받았는데 명랑은 신인종(神印宗)의 시조였습니다. 그 자신 또한 문무왕때 당나라를 비법으로 물리쳐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원원사는 법(法)으로써 외침을 극복하고자 했던 호국사찰로 창건되었습니다. 높은 축대 가운데에는 돌계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 계단을 오르면 쌍탑과 석등이 나타납니다. 쌍탑은 윗기단에 십이지신상을,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고부조로 새겼습니다. 통일 이후 탑에서 인왕상을 대신하여 사천왕상이 등장하고 윗기단에서처럼 십이지신상이 처음 등장하는 점이 인정되어 최근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탑과 서탑을 오가며 12지 동물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안타깝게도 양쪽 탑 어디에도 뱀을 볼 수 없습니다. 아직 문화재 안내판조차 세워지지 않은 이 탑은 대표적인 ‘초고속 승진형’문화재입니다. 이전까지 이 탑은 사적에 뭉뚱그려 포함될 뿐 국가나 시·도로부터 지정 유형문화재로는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문화답사 붐을 일으킨 한 교수가 문화재계 수장이 되면서 국가지정 유형문화재인 보물로 격상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지위가 격상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복권에 당첨되어 소위 대박 맞은 경우라 하지 않을까요. 시대를 잘 타면 사람도, 문화재도 출세하나 봅니다. 탑은 역사성을 인정받아 국가지정 보물이 되었지만 제 마음속 보물은 두 탑을 바라보고 있는 금당터입니다. 금당 주인인 부처는 사라졌고 그 자리엔 초석을 비껴가며 굵직하게 잘 자라준 소나무들이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원원사의 폐망과 함께 흙이 덮이고 그 위에 작은 씨앗들이 날아와 금당의 새 주인으로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어떤 역사가 펼쳐졌을까요. 그래서 감히 그 연륜에 존경하는 마음을 보태고 싶은 것입니다. 나를 묻으러 가는 길 - 무장사터 '무장사'라 하면 저는 개구리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니까 지난 3월 경칩이 막 지났을 때였습니다. 절터로 가는 길은 갓 겨울잠에서 깨어난 연갈색 개구리들로 지천이었습니다. 막 땅을 헤집고 나온 놈들이라 사람을 피하지 않아 행여 밟을까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떼며 계곡으로 들어갔었지요. 지난 7월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제 제 색을 입고 건강하게 자란 놈들이 곳곳에서 퍼덕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미타조상사적비가 서있었을 비좌 안에는 무당개구리 몇 마리가 둥지를 틀고 있어 마치 이 절터를 지키는 금와보살인듯 했습니다. 《삼국유사》 편에는 신라 38대 원성왕의 아버지가 숙부 파진찬을 추모하여 무장사를 세웠고, 소성대왕의 비 계화왕후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절 위쪽에 아미타전을 짓고 아미타불상을 조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장사(?藏寺)란 이름은 태종이 삼국을 통일한 후 이 깊은 골짜기에 병기와 투구를 감추어 둔 곳이라 해서 유래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절이 입지했던 곳은 경주 동북쪽 암곡리 북쪽으로 골짜기가 깊고 험준한 곳입니다. 암곡(暗谷)이라는 지명에서 예상하셨겠지만 지금도 비포장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는 걸어가야 하는 오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급한 사람은 절터를 찾기도 전에 포기하고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걸으면서 활엽수 가득한 숲을 감상하고, 계곡을 열 번 남짓 가로지르면서도 물이 옷에 젖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속세에서 알게 모르게 습득한 사악함을 모두 버려야만 나타나는 절터, 그래서 이곳은 나를 묻어 감추러 가는 길입니다. 현재 아미타조상사적비의 이수와 귀부, 삼층석탑이 남아있습니다. 사적비의 비신은 없어졌지만 일부 비편을 통해 이곳이 무장사임이 밝혀져 기록과 유물이 일치하는 곳입니다. 귀부는 창림사터의 그것과 같이 특이하게 쌍귀부입니다만 목이 절단되는 등 파손상태가 심합니다. 특히, 비좌 둘레에 십이지상을 조각하여 희귀한 경우를 보여주네요. 현재 여덟 종류의 십이지가 확인되지만 나머지는 파괴되어 볼 수 없습니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은 2층 기단에 3층 몸매를 가진 전형적인 통일 후 석탑입니다. 탑 윗기단엔 안상(眼象)이 두 면석에 걸쳐서 나타납니다. 나눔의 미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왕실의 원찰로, 통일 후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무기와 투구를 묻어두었다는 이 절은 고려 중기 경에 폐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자가 우주를 받들고, 극락조가 날아다니고 - 영암사터 저는 경남 합천 삼가란 곳에 초임발령을 받았습니다. 영암사는 초임지에서 가까이 있었는데 직원연수로 처음 다녀온 후로는 그 절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학교 아저씨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달려 절이 나타날 쯤이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듯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해야 했습니다. 특히 가는 길에 만나는 오래된 이팝나무가 하얀 꽃을 피울 때면 그 아름다움에 취했고, 모산재 깊숙한 땅속에서 나오는 약수는 감로수와 같았지요. 초임이라서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나 힘들었을 때면 이곳에 와 쌍사자석등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심기일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영암사터는 내겐 발령동기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막역지우(莫逆之友)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 친구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 찾아도 한적한 느낌이 좋았었죠. 하지만 이제는 황매산과 모산재를 등산하려는 사람들에겐 명물이 되었고 특히 절터를 답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답사1번지가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가진 매력이 무엇이냐고요? 한둘이 아닙니다. 우선 절터를 들어섰을 때 잘 다듬어진 석축이 눈에 들어옵니다. 돌못으로 석축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하였고 치성과 같이 요철을 두어 조형미가 풍깁니다. 특히, 쌍사자석등이 자리한 석축은 자칫 사각이 주는 밋밋함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돌출한 석축 좌우에 무지개 모양의 둥근 계단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계단 폭이 아주 좁아서 겸손하라는 계시를 던집니다. 쌍사자석등은 석축 아래에 서서 바위산인 모산재를 배경으로 올려다 볼 때 최고의 멋을 부립니다. 석등을 한가운데 두고 내 몸뚱이를 좌우로 조금씩 이동하면 모산재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과히 영암사 답사의 절정이라 하겠습니다. 이 석등은 풍화에 의한 상처를 보이지만 매끈한 속리산 쌍사자석등보다는 인간적이고 박물관에 갇혀있는 중흥사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젖살 오른 사자 두 마리가 모산재의 절경을, 푸른 하늘을, 우주를 받치는 모습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금당터를 지키는 역할은 여섯 마리 사자가 맡았습니다. 사자의 형상이 확실한 놈들도 있지만 개와 같이 귀를 반쯤 접은 넉살좋은 놈들도 있습니다. 삼면에 두 마리씩 자리하고 있는데 북쪽 면에는 새기지 않은 것이 이색적입니다. 아마 신령스런 바위들이 있기에 권속이 필요 없나 봅니다. 금당터 사면 계단에 만들어진 난간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가릉빈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극락정토에 산다는 이 새는 사람의 형상인데 날개를 가지고 있어 극락조라고도 하지요. 이 금당이 곧 극락정토임을 의미합니다. 안타깝게도 정작 이 친구 이름이 영암사였는지는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일대에 수많은 절들이 있었는데 이곳이 영암사임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서금당지에 남은 귀부 두 점의 주인공도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영암(靈巖)이라는 이름마냥 사력 또한 신령스러운 곳이라 봐야겠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사랑 - 만복사터 생육신이었던 김시습은 경주 금오산 아래 용장사에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썼습니다. 금오신화 중 의 배경이 남원 땅 만복사터입니다. 만복사저포기는 노총각 양생과 왜란 통에 죽은 처녀귀신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애틋한 사랑을 한다는 줄거리입니다. 김시습이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만복사는 퇴락하였던가 봅니다.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해서 이긴 양생에게 드디어 천생배필이 등장하고 두 사람이 절에서 사랑을 나누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때 만복사는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쪽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 법당 앞에는 행랑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고, 행랑이 끝난 곳에 아주 좁은 판자방이 있었다.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판자방으로 들어가자, 여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들어왔다.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는데, 보통 사람과 한 가지였다. 양생은 그녀가 혼령임을 알게 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접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여인이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는데도 말입니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양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밭과 집을 모두 팔아 사흘 저녁이나 잇따라 재를 올렸더니, 여인이 공중에서 양생에게 말하였다. "저는 당신의 은혜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도 이제 다시 정업을 닦아 저와 함께 윤회를 벗어나십시오." 양생은 그 뒤에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사랑과 영혼’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었지요? 그 영화의 원조격인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는 오늘도 만복사 넓은 터에 애잔하게 전해오고 있답니다. 이름 잃은 그대여 사료가 남아있어 그나마 절 이름을 알 수 있는 곳도 많지만 대부분의 절터는 이름도 없이 그 지역의 지명을 따서 붙여진 경우가 많습니다. 장항리절터가 그러합니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한 자락에 우뚝 솟아있는 절터인데 불대좌와 쌍탑, 금당터가 남아있습니다. 장항리(獐項里)라는 지명답게 국보 236호로 지정된 서탑이 고개를 쑥 내민 듯 우르러 보입니다. 이곳 쌍탑 배치는 독특합니다. 금당터 중심에 자리한 불대좌를 중심으로 해서 두 탑이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이웃한 감은사탑이 금당을 뒤로 두고 쌍탑으로 서 있는 것과 같이 일반적인 쌍탑 배치 형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죠. 그 이유는 훼손이 심한 동탑이 제자리가 아닌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절터가 서 있는 곳 양쪽으로 계곡물이 흐르는데 물난리를 맞으면서 절터가 유실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쪽 절터의 유실이 심해서 동탑이 계곡에 떨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동탑 부재를 모아 비교적 안전한 서탑쪽으로 옮겨 두었던 겁니다.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은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강합니다. 아래기단에는 비천상을 새겨 두었고 윗기단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두었습니다. 관덕마을이란 어감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아기자기함이 이 절터에서 느껴집니다. 이정표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 한참을 헤매다가 마을뒷길을 따라 절터에 올랐을 때 저는 이미 감상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감상은 과거에 만났던 옛사랑에 대한 기억을 자꾸만 끄집어냅니다. 자그마한 탑이 비천상으로, 사천왕으로, 돌사자로 치장을 하고는 혼자서 절터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한참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죠. 이름마저 잃고 동네 마을 이름을 갖다 붙여 놓았지만 분명 이 절도 분황사처럼 향기로운 이름이 있었을 터입니다. 그대, 관덕동 석탑에게 그대 / 안으면 쏙 안길 듯 / 어이해 홀로 골바람 맞고 서 계신가 / 몸서리치는 내 사랑아 / 그대 / 사천왕으로, 보살로 예쁜 화장을 하고 / 돌사자로 하여금 너를 돋우게 하여 / 맘껏 멋 부리려는 구나 / 천녀들이 날개 달아 / 부처의 나라로 데려갈 듯하구나……. / 그대, 자네 / 그 자리 잘 지키고 계시게나 / 첫사랑에 목멘 사람 있거든 / 그를 데리고 꼭 찾아옴세…….
충북 지역의 자랑으로 자리 메김 "동문회를 비롯한 지역 주민과 함께 한 개교 100주년 행사를 통해 청산초등학교는 새 역사를 쓸 것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특히 인구 약 4000명에 불과한 작은 면소재지에 위치한 초등학교가 약 9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은 옥천뿐만 아니라 충북 전체에서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지난 4월 청산초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100주년 기념탑 설치 및 기념 식수, 학생들의 학예 발표회, 사진 전시회, 시화전 등의 행사를 가졌다. 특히 동문들의 힘으로 건립된 100주년 기념탑은 청산초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이 학교 졸업생인 박수용 조각가에 의해 제작된 기념탑은 현재의 지구와 미래의 지구 모습을 형상화하여, 미래를 짊어져 나갈 청산초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총동문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41회 졸업생 박명식 씨는 "우리 모교는 신교육의 산실로 조동호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학교다. 100주년 기념탑의 의미에 맞게 앞으로도 많은 인물들이 탄생하길 기원한다"며 "객지로 간 후배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 또한 명예졸업장 수여라는 뜻 깊은 행사도 함께 진행했다. 26∼30회 졸업생 104명을 대상으로 한글 졸업장을 다시 수여한 것. 일제 시대 조국을 잃어버린 아픔 속에서 일본이름과 일본어로 된 졸업장을 갖고 있는 것을 아쉬워한 동문들을 위해 마련된 행사이다. 이를 위해 동문회와 학교가 함께 수소문을 하여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연락이 끊긴 동문을 제외한 전원에게 우리말 졸업장을 전달했다. 새로운 졸업장 수여는 졸업생들에게 매우 감격스러운 행사였다. 청산초는 앞으로도 도서관 증축, 전자도서관 신축, 100주년 사료관 건립 등의 사업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며, 특히 100주년 사료관을 위한 자료 수집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같은 행사가 주변에 알려지면서 인근 학교뿐만 아니라 기념 행사를 준비하는 전국의 학교에서 문의를 해 오고 있다. 새로운 학교로 바꾸기 위한 다짐 이러한 행사들은 청산초등학교를 새롭게 바꾸어 나가는 데 도화선이 되고 있다. 곽중섭 교감은 "이번 100주년 기념 사업을 통해 청산면을 하나로 묶는 계기를 마련했다. 앞으로 동문회, 지역주민과 힘을 모아 원어민 영어 교사 배치, 교원 보충, 시설 확충 등을 통해 새로운 학교로 탈바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학교지만, 다른 농어촌 학교와 마찬가지로 이농(離農) 현상에 따른 학생 수 감소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청산초를 위한 말이다. 이 학교 교무부장인 진순장 교사 역시 "즐겁게 일하고, 아낌없이 베푸는 것을 사명감으로 하는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우리 학교는 앞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곽 교감과 진 교사의 말은 "학교가 100주년이 되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100주년 기념행사 때 옛날 학교 사진을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학교가 자랑스러웠다"며 애교심을 숨기지 않은 김창희군(5학년)의 이야기 속에 그대로 나타났다. 올해 열린 제4회 전국지용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아 학교의 큰 자랑인 새내기 송유진 교사 역시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3, 4대가 함께 모여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학교의 역사적 무게감을 경험하게 되어 큰 영광"이라며 "앞으로도 학생들과 함께 역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엄성용 dyddl96@kfta.or.kr
이상익 / 영산대 교수, 철학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원의 권위는 추락할 만큼 추락하여, 더 추락할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초중등학교의 경우 얼마 전까지는 ‘촌지 문제’가 교사의 권위를 추락시키던 주범이었는데, 최근에는 ‘성적조작 문제’까지 불거져 교사들의 권위를 또 한번 거꾸러뜨렸다. 대학에서는 ‘성희롱’이나 ‘연구비 유용’ 등이 교수들의 권위에 먹칠을 하는 단골 소재로 등장한 지 오래되었다. 그리하여 교원들의 권위나 사회적 위상은 나날이 추락하는데도, 요즘 교직을 원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증가하여, 교직에 진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교사의 위상은 추락하고 있는데도 교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느는 까닭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보자면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간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답변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 까닭을 “교직은 ‘철밥통’으로 불황기 최고 인기직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현실적인 답변이겠지만, 또한 매우 위험한 답변이기도 하다. 이들의 생각에 의하면 교육은 서비스산업이요, 교직은 서비스업종일 뿐이다. 그렇다면 시세(市勢)에 따라 부동(浮動)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에게 우리의 교육을 맡겨둘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교육현실을 개선하고자 조금이라도 고심한다면, 우리는 고육책(苦肉策)으로 다른 답변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사후적(事後的)으로라도 ‘교직의 사명’을 새롭게 각성시킴으로써, 이해(利害)에 부동하는 서비스업종과 교직을 차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근래의 ‘교원평가제’에 대한 논란도 근원적으로 교육 또는 교직의 본질에 대한 인식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필자가 대략 알기로는, 교원평가제를 찬성하는 논리는 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원들을 평가하여 차등적으로 대우해야 하며, 교원의 평가에는 수요자들인 학생이나 학부모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짐작하기에 이러한 논리의 저변에 깔린 전제는 ‘교육은 서비스산업’이라는 것이다. ‘교육의 경쟁력’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수요자(고객)의 평가’라는 것도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생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대학교육은 이미 시장경쟁의 논리에 내맡겨져 있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구태의연하게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다시 던져본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지식기능 교육’과 ‘인격덕성 교육’으로 대별한다. ‘지식기능 교육’은 피교육자가 원하는 지식과 기능을 전수하는 것이니, 이 측면에서는 교육은 서비스 산업과 유사하다. 외국어를 가르치고 컴퓨터를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공교육기관은 저자거리의 사교육기관과 다를 바가 없다. 요즘에는 사교육기관에서 더 잘 가르친다는 소문도 공공연하다. 그렇다면 공교육기관을 폐지하고, 사교육기관에 일임하면 좋을 것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인격덕성 교육’이 교육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격덕성 교육’은 피교육자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교육자의 입장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교육해 가는 것이다. 이는 ‘고객’이 원치 않는 것도 강요하는 것인바, 이 측면에서 교육은 서비스 산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사교육기관에 인격교육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또 인격교육에서는 피교육자를 한 사람 한 사람 감화시키는 것이 중요할 뿐, ‘교육의 경쟁력’이란 애초에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이다. 교육을 단순히 서비스산업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데에 교직의 특수성이 있다. 그리고 교직의 이러한 특수성은 결국 교원 개개인을 ‘독자적인 권위체’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교사는 시세(時勢)나 주변의 평가에 영합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숙한 학생들은 교사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이해하지 못하고 호오(好惡)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 논의되는 방식의 교원평가제란 부적절할 수 있다. 요컨대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교원평가제에 대한 찬반은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교육을 서비스산업이라고 인식한다면 당연히 교원평가제를 시행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을 서비스산업 이상의 것이라고 한다면 교원평가제의 시행은 부적절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교원이 교직을 단순히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여긴다면 그에게는 교직이란 서비스업일 것이다. 서비스업 종사자는 고객의 평가를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런 교원이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면 그것은 ‘무사안일주의’로 밖에는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이대영 / 서울시교육청 공보담당관실 장학사 최근 2008년 논술고사를 둘러싼 본고사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면서 꼭 나오는 이야기는 ‘대학별 논술고사는 공교육만으로는 준비가 안 되고, 사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마치 공교육의 한계성과 사교육의 우월성을 대조하는 듯한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공교육 신뢰회복의 방안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속성을 비교하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공교육에는 경쟁이 없고, 사교육에는 경쟁이 있다고 한다. 교사는 ‘철밥통’으로 신분이 보장되고, 학원강사는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한다고도 한다. 공교육은 원하는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일정조건이 갖춰진 일반 다수를 위한 것이고, 사교육은 원하는 부분을 원하는 대상에 맞춘 교육으로 본다. 교사는 잡무가 많지만, 학원강사는 잡무 없이 수업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알고 있다. 공교육에는 투자가 별로 없지만, 사교육은 적극적인 투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전인교육을 해야 하지만, 학원은 오직 시험을 잘 치르는 방법만을 가르치면 되기 때문에 사교육이 공교육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공교육과 사교육을 보는 시각의 일 부분이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입시가 치열한 교육현실에서 우리의 학부모․학생들은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공교육은 항상 ‘피해자(被害者)’고 사교육은 ‘피의자(被疑者)’로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인 논리는 우리 교육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공교육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교육을 도입하였다. 특기적성교육이란 명목으로 행하는 교과관련 방과후교육활동, 학원강사를 동원한 교육방송(EBS) 강의, 일부 학교에서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시행하는 논술특강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기존의 인식을 거꾸로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장점이 많은 사교육이 오히려 부실한 공교육 때문에 악으로 매도당하는 ‘피해자(被害者)’라고 말이다. 공교육이 사교육의 치열함과 서비스 정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수입면에서도 교사와 강사는 대조된다. 학원강사는 돈을 많이 벌고 교사는 봉급이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언론에서 말하는 억대 수입을 올리는 스타강사는 극소수이다. 그들을 학원강사 전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 상당수의 학원강사는 현직교사보다 적은 수입에 신분보장도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현직교사 못지않은 잡무에도 시달리고 있다. 강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간, 소위 수명도 짧다. 굳이 공교육이 사교육과 경쟁을 하려면 상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교육은 환경적으로 좋은 조건이다. 대상은 공부하려고 제 발로 찾아오는 적극적 수요자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강좌이니만큼 어느 정도 대상의 수준도 비슷하다. 강사를 다른 업무로 이끄는 제약하는 공문도 없다. 넓은 범위보다는 좁은 범위를 세분화해서 깊이 있게 가르칠 수도 있다.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유지 의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게 강의한다. 그러면 학원강사는 어떤 생각, 어떤 상황인가. 학원강사는 학생을 소비자로 본다. 따라서 자신의 강의를 상품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 상품을 소비자가 우선적으로 선택하게하기 위해서 최선의 마케팅을 하는데, 수업의 질은 기본이고 수업의 디자인과 효율성, 수업의 개성과 차별성 등 학생들을 감동시키고 정서를 자극하려는 노력을 한다. 심지어는 사생활도 접고 오로지 재미있는 수업방법의 연구에만 몰입하는 강사들도 많다. 학생이 질문하면 학원강사들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그 문제와 연관된 참고자료를 학생에게 준다. 참고서의 선택도 단순히 부교재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원강사는 거의 모든 참고서를 자신이 검토하고 코멘트를 달아 수강생들에게 적절한 참고서의 선택을 도와준다.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교재와 프린트물 제작하고, 수강생 모집 전략을 짜며, 홈피나 싸이월드, 카페, 블로그의 수강생 질문에 답변을 달아준다. 그들 나름대로의 잡무(?)인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는 주말이 없다. 오히려 주말이면 수업이 더 많아진다. 한가로이 휴일을 즐길 여유가 없다. 여유를 가지면 다른 강사에게 지기 때문이다. 흔히 학원강사는 지식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강사들에게 학생들은 스승의 날 꽃을 선물한다. 졸업 후에도 지속적으로 찾아오고, 군에 입대한다며 작별인사를 하기도 한다. 학원강사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진지하게 자문을 구한다. 학원사회를 정글이라고 한다. 무서운 정글에도 꽃은 핀다. 이것을 공교육에 종사하는 주체인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반면에 교사는 어떤가? 물론 학교에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해서 비판의 말들이 많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경쟁은 적절한 긴장을 가져온다. 적절한 긴장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 어떤 사회치고 경쟁 없는 사회가 있던가? 그리고 학교도 교육은 서비스라는 인식을 가져야만 한다. 이젠 교사라는 권위 의식보다는 학생을 서비스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을 정서적으로 자극하여 진심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우리 한번 사교육과 치열한 경쟁을 해보자. 기왕에 입시교육도 공교육이 하려고 하면 오히려 사교육보다 나을 수 있다. 공교육에는 검증 받은 우수한 인적자원과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교사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만능이다. 개성과 실력에서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우수하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의 수능모의평가는 이미 그 신뢰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입시자료집의 발간이나 입시 설명회도 이제 어느 사교육기관에도 뒤지지 않는다. 최근 서울시교육연구원이 펴낸 입시자료집은 사교육의 전문가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니 사교육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인식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입시교육도 전인교육도 할 수 있다. 서술형 평가의 예시문항 같은 것은 사교육에서는 할 수 없는 분야이다. 공교육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가자. 통합형 논술고사가 시행되면 공교육에서는 대처가 힘들고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교육 강사가 할 수 있는 일을 교사는 왜 못한단 말인가? 모든 교과 선생님들이 팀을 짜서 영어교사는 영어논술을, 수학교사는 수리논술을, 과학교사는 과학 관련 심층면접 문제를 왜 가르치지 못한단 말인가? 특기적성 교육시간에 수준별로 분반수업을 하면서 각각 해당분야에 대한 논술강의를 하면 된다. 하루 이틀 공부하면 충분히 논술의 경향과 방향을 잡아 가르 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일부 학교는 이런 수업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학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예체능 교사들도 충분히 논술강의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술 전문가에게 예술적 지식을 배운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중에 누가 통합교과적 논술에 강할 것인가? 각 교과 전공별로 50~100명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는 학원이 어디 있는가? 교사가 해당 대학을 찾아가서 논술경향을 듣고자 한다면 어느 대학이 마다하겠는가? 투철한 교직관과 깊이 있는 교과지식을 가진 우수한 교사들을 왜 무능하다 하는가? 국가가 도와주고, 교육청이 도와주며, 교사 스스로 인식을 바꾼다면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못할 리 없다. 학원강사가 능력도 우수하고 시간도 많아서 지도를 잘 한다는 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교사는 그렇게 안 해도 별 지장이 없지만 학원강사는 그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위원회 천국?*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영어 선생님은 4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고, 과학 선생님은 6시 40분이니 두 시간 반 동안 어떻게 기다리지?" "종이 울렸는데 저 학부형은 왜 아직 자리를 뜨지 않는 거야? 이번 면담 후에 바로 다음 면담이 있어서 시간이 늦어지면 낭팬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여유 있게 순서 안배를 할 걸 그랬나 봐." "일본어 선생님은 6시부터 저녁을 드시기로 되어 있으니 우리도 그 시간동안 식사를 하고 오는 게 좋겠어요. 어차피 밤 8시 반 까지는 학교에 있어야 할 테니까 우선 밥부터 먹고 오자고요." 한국과는 반대로 1학기 겨울방학을 마치고 7월 중순 경부터 2학기가 시작된 호주 퀸스랜드 주의 한 고등학교의 어느 이틀간의 저녁풍경이다. 평소라면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건만, 이 날만은 3시 30분경부터 학부형들이 몰고 온 차들로 교정이 다시금 붐비기 시작해서 밤늦은 시간까지 좀체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날은 자녀들의 학교생활과 학업성취도를 교사들로부터 전해 듣고 자녀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전교 차원의 면담일로 지난 한 학기 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을 털어놓기 위해 학부형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호주의 각급 학교는 학기말과 학년말 두 차례에 걸쳐 전 학부형과 전 교직원이 자리를 함께 하는 면담(Parent Teacher Interviews)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각 학과 담당교사는 물론이고 담임과 학부형이 정식으로 상견례를 하는 기회도 학기말에 주워지는 첫 번째 면담시간을 통해 이뤄진다. 면담은 학기말과 학년말에 담임교사 및 학과 담당 교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학부형 측에서 신청을 할 수도 있다. 면담을 희망하는 학부형들은 1학기 성적표와 함께 각 가정으로 보내오는 인터뷰 신청 용지에 원하는 시간을 적어내면 다른 학부형들과 겹치지 않는 한에서 학교 측에서 안배를 하여 최종 면담 시간을 통보하는 것으로 주선된다. 면담 기간은 보통 학기가 시작된 지 1주일쯤 후이며 2일간에 걸쳐 실시된다. 하루의 수업을 마친 교사들은 4시부터 8시까지, 저녁식사 시간 30분을 빼고는 꼬박 4시간을 학부형들에게 제시할 시험답안이나 성적산출근거 자료, 학생들의 품행이나 행동발달 상황 등을 체크한 기록표를 꼼꼼히 준비하고 상담에 임하는 고된 시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각 가정에 할당된 면담시간은 최대한 10분이기 때문에 부모들 또한 묻고자 하는 요지를 잘 정리해서 교사들을 만나야 한다. 중언부언했다가는 자칫 알고 싶은 것을 놓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시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신청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잠재력이 있는 학생인데, 수업 중에 꾀를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집중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다음번 시험에는 꼭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집에서도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교우관계는 무난합니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고, 누구보다 명랑한 성격이라 급우들의 인기를 끌지요." 이 학교 10학년(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의 과학 교사를 만나기 위해 면담 신청을 했다는 마이클씨(43)는 앞 사람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3~4분 늦게 시작된 면담이 기어이 10분을 채우지 못하고 말허리를 잘렸다며 아쉬워했다. 자기 뒤에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학부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들의 과학 성적이 무난하고 학교생활에도 별 무리가 없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만족해했다. 전 교직원과 전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하는 면담장소는 체육관이나 강당을 이용한다. 마치 군부대의 면회 장소처럼 긴 평상을 줄맞춰 늘여놓은 후 각 과목 담당 교사들의 명패를 꽂아 놓는다. 60여명이 넘는 교사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10분 간격으로 드나드는 학부형들을 맞이한다. 강당의 단상 한쪽에는 교무주임이나 학생주임이 매 10분마다 면담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종을 친다. 종이 울릴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학부형들과 뒤이어 교사들을 만나러 들어오는 학부형들로 순간 혼잡이 빚어지기도 한다. 강당을 무시로 오가며 학부형들과 인사를 나누고 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도 이틀을 함께 보낸다. 웅성대는 강당에서 잡음을 무시해가며 두 귀를 모아 자녀들의 시험성적과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 교사들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머리가 서로 닿을 듯 집중하는 진지한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학부형들은 만나고자 하는 교사들의 시간순서를 거듭 확인하며 강당 로비에 비치된 커피와 차, 다과 등을 나누며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선생님들의 스케줄과 같이하여 저녁식사를 한 후 다음 시간을 대비하기도 한다. 호주의 각 학교는 한 해 두 차례 치러지는 일제 면담기간을 가장 중요한 학내 행사로 꼽는다. 교사와 학부형, 학생 간에 충분한 의사전달과 협력, 교류의 기회를 마련한 후 학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정돈된 상태에서 다시금 한 학기 수업을 진행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 주어지는 공식적인 일제 면담기간이 지나게 되면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학부형들이 교사를 만날 기회는 좀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 않으면 1년 내내 심지어 아이의 담임선생 얼굴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면담기간 외에는 체육대회나 학예회 등 학내 행사가 열릴 때에도 담임선생을 만나 인사를 하거나 자녀가 상을 받았다 해도 보통은 선생님을 따로 만나지 않는다. 이처럼 교사와 학부형간의 공개된 장소, 공개된 시간 속의 만남이 주어지는 호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간혹 불거져 나오는 촌지 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교장과 교감, 주임교사, 평교사 할 것 없이 전 교직원이 한 장소에 한데 모여 학부형들을 만나고 엄격하게 짜여진 시간표대로 앞 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봉투'를 건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 학기 초만 되면 학교를 찾아가서 선생님을 만나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고, 교사들 또한 학부형들을 만나고 싶어도 공연한 오해를 살까 염려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도 호주와 유사한 투명한 면담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각 대학의 졸업식이 한창이던 지난 7월초 중국 교육계에는 신동이라 불리던 한 대학생의 퇴학 소식에 술렁였다. 심양공업대학에 재학 중인 왕쓰한(王思涵)이라는 학생은 지난 2001년, 14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대학입시에 참가하여 대입 커트라인을 상회하는 점수를 받고 이 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월반을 하여 영재중학교에 입학한 후, 6년인 중고등학교 과정을 4년 만에 끝내고 불과 14살에 대학에 들어간 소위 ‘영재’ 학생이었다. 중고 과정 4년에 마치고 대학입학 그러나 이 학생의 화려한 경력은 여기서 그치게 된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대학 첫 해에는 3과목이나 낙제를 받았다. 이후 4년간의 대학 과정동안 낙제된 과목의 수가 늘었고, 마침내 졸업을 해야 할 올해 7월 성적불량으로 졸업자격을 상실하고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통보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동으로 불리던 한 소년의 몰락은 중국 교육계 내에서 현행 영재교육의 방식이 과연 영재를 길러내기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영재교육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 중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점수와 등수로 모든 학생들을 일률적으로 평가한다는데 있다. 중국의 국가적 특성상 즉, 많은 인구와 많은 학생,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대학 및 취업기회로 인하여 학생들에 대한 점수화 및 서열화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시험점수에만 의존하는 평가 및 선발방식은 중국 교육의 여러 방면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영재교육에 있어서도 영재교육의 본래 취지에 맞게 영재성을 지닌 학생들을 발굴하여 그 영재성을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이 아닌, 반복적인 암기와 쉴 틈 없이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교육을 통하여 남들보다 시험에 빨리 합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방식이 문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에서 언급한 이 학생의 경우 그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일은 공부와 잠이 전부였다고 할 정도로 어린 나이 때부터 또래들의 몇 배에 달하는 집중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하루에 고작 4~5시간의 잠을 자고 공부한 결과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시험대비 교육방식이 문제로 지적 하지만 이 학생이 대학에 입학한 후 이전과는 달리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처리해야 되었고, 학습조건 역시 과거 영재학교에서는 한 반에 14명 정도의 소수학생을 대상으로 교사가 집중적인 지도를 하기 때문에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될 뿐이었는데, 대학에서는 한 강의실에 몇 십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동시에 강의를 듣게 되면서 이 학생은 자연히 교수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때문에 교사에 의존한 교육에 익숙하던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특히 영재교육의 특성상 수학이나 영어교육에만 집중한 탓에 다른 과목들, 즉 지리나 정치 등 사회과학에서는 수업을 전혀 따라갈 수 없었다. 또한 학습 외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대학 동료들과도 나이차 때문에 교류가 원만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는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와 잠이 전부이던 그에게 대학은 한숨이 전부인 세상으로 변했다. 그 결과 그는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을 명받아 특별한 배려 조치가 없는 한 이전에 사회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입학한 대학을 졸업장도 받지 못한 채 마쳐야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번 일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중국 교육계에서는 그동안 진행되어 온 중국 교육, 특히 영재교육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영재교육은 교육의 중요한 한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다양한 유형의 영재학교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는데, 이들 학교는 대량의 신동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영아부터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북경의 한 영재학교의 경우 10살이 될 때까지 대학생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9개월의 영아부터 10세에 이르는 160여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잘못된 영재교육에 아이들만 상처 이렇듯 졸속으로 다량의 지식전수만을 목적으로 세워진 이 영재학교의 난립 및 그를 통한 영재 만들기 교육 열풍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교육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옛말에도 있듯이 200의 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100정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100의 능력은 여유분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상황은 200의 능력을 가진 아이에게 300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개인의 능력을 초과하는 기대로 인하여 아이들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둘째, 각급 학교들이 사적인 이익만을 너무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교들 즉,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는 이들 영재성을 지닌 학생들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영재학생이 몇 단계의 월반을 통하여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 중․고등학교에서 월반하여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학교의 큰 명예로 생각하고 이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대학을 들어갈 경우 이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학교생활 및 학업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결국 낙오되는 경우 많다. 셋째, 중국인들 사이에 만연된 신동콤플렉스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다 신동, 영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영재성을 지닌 아이들은 그에 합당한 영재교육을 받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만 현재 중국의 실정은 영재성이 보인다는 주관적인 부모의 생각으로 이들에 대한 집중적인 영재 만들기 교육을 통하여 영재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영재는 결국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아동 본인의 일생에 큰 손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영재교육 장치 및 교육방법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사이비 영재교육 열풍은 학부모들에게는 일시적인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아이들 당사자에게는 결국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신동학생의 경우처럼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신동도 아니고, 평범한 학생도 못되는 상황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가? 이러한 결과를 놓고 현재 중국 교육계에서는 학생 본인의 태만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전반적인 영재교육 시스템의 문제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희태 / 대구 다사초 교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 모든 부모는 자기아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해서 어떤 점이 뒤떨어진다고 말하면 그 부모의 가슴은 너무나 아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말을 듣는 아이 본인의 마음도 몹시 상할 것입니다. 유명한 음악가 정명훈의 부모는 공부 못하는 자식을 꾸중하였지만 담임선생님의 격려로 오늘날 성공한 음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장점과 특기가 무엇인지를 어릴 때부터 찾아서 꾸준히 칭찬하고 격려하면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본의든 그렇지 않든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지나친 꾸중을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교육적 행위가 될 것입니다. 꾸중할 일이 있다면 몇 번의 주의와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말했을 때만 꾸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수준에서 아이들을 보게 되면 꾸중이 있을 수 있으나 아이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못하지만 늘 기다리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게 되면 스스로 잘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교육에서 아이들이 즉각 잘할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입니다. 미숙한 아이들에게 한두 번 기회를 주고 어떻게 잘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어떤 일로 잘못하게 될 경우는 선생님의 지도 부족이라는 겸손한 생각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말에서 비롯되듯이 지금은 비록 미숙하지만 장차 뛰어난 제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아이들에게 무심코 던진 선생님의 말씀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결과가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더욱이 여러 아이들 앞에서 하는 말씀은 더더욱 교육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들은 어떠합니까? 가정환경이나 교육환경이 다른 학교보다 열악한 처지의 아이들입니다. 겉으로는 좋은 차와 좋은 옷을 입고 다닐지 모르지만 결코 우리 아이들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몇몇 우리 아이들은 숙제를 제대로 못한다고 하시는 말씀을 제가 들었습니다만 가정학습 여건이 부족한 결과이지 아이들의 잘못은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가정학습을 할 수 있는 학습수준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학습이 부진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정학습 과제를 해결한다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가정학습의 분량과 질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을 활용 할 수 없는 가정환경이라면 인터넷 조사 학습은 도저히 할 수 없잖습니까? 그렇다면 학교 컴퓨터실에서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의 선처가 필요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우리학교의 교육을 책임지고 계시는 두 어깨가 얼마나 무거우십니까? 선생님의 역할에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선생님의 무한한 칭찬과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꼼꼼히, 천천히 아이들을 바라보신다면 지금은 미숙하지만 앞날에는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칭찬으로 가득한 말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가지게 한다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저는 학부형들께 사석이나 공석에서 틈나는 데로 우리 선생님이 제일 능력이 뛰어난 선생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오해 소지가 있을 시, 그것은 교육적 지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선생님을 대변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여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학급경영을 하기 바랍니다. 학부형에게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기 위한 저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학부모에게 어떤 것이건 간에 요구하지 않는 선생님입니다. 비록 교육적일지라도 학급 일로 학부형의 역할과 기능에 의지하는 선생님은 존경받을 수가 없습니다. 학부형 입장에서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나 아이들 돌볼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공동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데 필요하거나 학습지 같은 것은 모두 학교 예산으로 구입하지 않습니까? 일부 학교의 학부형은 선생님이 말하지 않더라도 척척 해주는 경우가 있겠지만 우리 학교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둘째, 선생님은 비교육적인 꾸중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 학부형들은 선생님이 어떻게 말씀하는지를 아이들이 전하는 말을 통해 알게 됩니다. 예를 들면 귀걸이를 하는 아이에게 다방 아가씨 같다고 말하면 그 아이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아이에게는 충격을 주게 됩니다. 앞으로 잘할 것이라는 농담은 모르지만 실망과 열등감을 갖게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셋째, 아이들이 듣건 말건 간에 선생님 사이에 오고가는 말은 반드시 존대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동료선생님을 존대하지 않는다면 누가 선생님을 존경하겠습니까? 선생님께 존칭을 쓰지 않는다면 듣는 선생님은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습니까? 햇병아리 교사가 되기 위한 교생실습 때 친구끼리지만 존댓말을 사용해야 된다는 교생지도 선생님의 첫 번째 교육지도가 현장에서의 예절교육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쌓이는 경력과 함께 벌써 잊고 계신 분이 적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는 사회적인 시각이 늘 존재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교육적이어야 합니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스승 되기가 무척 어려운 세상입니다. 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신성인하시는 선생님에게 무한한 존경의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인간은 왜 사랑을 하고 나서 후손을 낳고 죽는 것일까? 생물이라면 본능적으로 당연히 하는 일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과 죽음은 섹스를 하는 생물에게만 나타나는 숙명적인 현상이다. 섹스의 즐거움이 있는 대신에 죽음의 고통이 있는 게 바로 인간이다. 무성생식을 하는 아메바 같은 하등동물에는 죽음도 사랑도 없다. 예를 들어 아메바는 환경만 적당히 주어지면 자신의 몸을 둘로 갈라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낸다. 이때 만들어진 두 개체는 같은 유전 정보를 갖는 복제품이다. 물론 아메바도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서 갈라져 나간 복제품이 대를 이어 수억 년 동안 계속 복제품을 남기게 된다. 돌연변이와 진화의 원동력 정자와 난자는 우리의 몸이 만들어 낸 가장 신선한 세포이다. 비록 몸은 바이러스나 기생충에 감염됐다 하더라도 우리 몸속 깊숙한 곳에 있는 생식세포에서 지금 바로 탄생한 정자와 난자는 청정 무공해 세포인 셈이다. 그래야 새로 태어난 아기는 기생충과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늘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해야 하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낡고 병든 '생존 기계'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낡은 기계는 버리고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쓰는 게 더 유리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 같은 기생충과의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지금도 인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1년 동안 유럽에서 2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무서운 에이즈로 일부 아프리카 국가의 평균 수명은 거의 절반으로 뚝 떨어진 상태다. 우리의 몸에는 지난 수십억 년 동안 기생충과 전쟁을 벌여 온 상처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상이 기생충과 맞서 싸우면서 습득해 유전자를 통해 물려준 면역 체계가 그것이다. 천연두에 대한 면역 능력이 없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이 퍼뜨린 천연두에 맥없이 쓰러져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때로는 기생생물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 우리 몸의 부속품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인체 세포의 에너지 생산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이다. 세포 내의 발전소로 불리는 미토콘드리아는 수십억 년 전 인간이 하찮은 하등동물이었을 때 우리 몸에 기생해 살림을 차렸다. 세포 내 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미토콘드리아만이 자신의 유전 정보를 지닌 핵을 갖고 있다는 것이 기생의 증거다. 다행히 미토콘드리아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걷고 뛸 수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인간의 염색체에는 박테리아 유전자와 비슷한 유전자가 2백 개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유전자들은 인간이 아직 하등한 무척추동물이었을 때 박테리아 감염 과정에서 우리 몸에 들어와 살림을 차린 것이다. 우리의 몸은 박테리아와 하등동물의 유전자를 짜깁기해서 만든 셈이다. 때로는 바이러스가 여러 숙주를 옮겨 다니면서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사람한테 옮기기도 한다. 또한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들어와서 유전자를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잠자고 있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는 일도 한다. 인간은 바이러스에 맞서 면역 체계를 만들어 전쟁을 벌여 왔지만 한편으로는 바이러스가 돌연변이와 진화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어렸을 적에 똥구멍을 가렵게 했던 기생충도 우리 몸에 꼭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긁적거리면 어머니는 요충약을 먹였다. 요충은 항문을 가렵게 하지만 그다지 위험한 기생충은 아니다. 일부 의사는 우리 몸이 이 기생충과의 싸움을 통해 조금씩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유아기 때는 오히려 우리 면역 체계의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 몸속의 세균은 1㎏ 사실 세균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매우 아늑한 집이다. 음식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고, 입에서 항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10m의 소화관 융모 조직은 표면적이 테니스 코트만큼이나 넓어 호화판 호텔과도 같다. 소화관에 사는 장내 세균은 무려 100조 개. 인체 내 세포의 개수와 맞먹을 정도로 많다. 세균을 다 합쳐 놓으면 무게가 1㎏이나 된다. 사람의 대변에서 수분을 빼면 무려 40%가 세균이다. 인체 내에 사는 장내 세균은 500종이나 된다. 사람의 배설물에 대해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인간의 내장에는 1200종의 바이러스가 살고 있으며 그 중 절반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다. 이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거나 잡아먹어 대장 내의 세균 생태계를 조절한다. 장내 세균 가운데는 병원균도 있지만, 유산균이나 젖산균 등 유익한 세균도 많다. 장내 세균의 역할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그다지 많은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저 소화를 돕는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장내의 유익한 세균(Probiotics)이 병원균을 물리치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독성물질과 발암물질을 분해하거나 생성을 억제하고, 소화관의 벽을 두껍게 해 면역 기능까지 높여 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유익한 세균은 '제3의 장기'로까지 불리기도 한다. 세균은 수백만 년 동안 사람과 싸우고 한편으로는 공생 관계를 이루며 진화해 마치 장기처럼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박테리아를 이용한 치료법 어떻게 해서 유산균이 암을 억제할까? 서울대 미생물학자인 지근억 교수는 쥐에게 대장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과 함께 비피더스균을 먹이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유익한 세균인 비피더스를 대장암 유발물질과 함께 먹인 쥐는 대장암 발생률이 현저히 줄었다. 또한 비피더스를 먹은 쥐는 장관 벽이 두꺼워지면서 면역세포가 활성화됐다. 만일 우리 몸속에 세균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는 없으나 동물을 보면 쉽게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다. 세균이 전혀 없는 인공 환경에서 사육한 무균동물은 몸이 허약해 항상 비실거린다. 무균동물은 장의 융모가 거의 발달하지 않고, 맹장은 기형적으로 크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이처럼 '약골'인 무균 쥐에게 유산균인 락토바실러스를 먹인 결과 소장의 융모세포가 빠르게 늘면서 창자벽이 두꺼워져 소화관 형태가 정상적으로 바뀌었다. 무균동물의 똥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똥에서 냄새가 나고 방귀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도 모두 장에 세균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똥 냄새는 장내 세균이 음식을 소화한 뒤 내놓는 분비물이 주원인이다. 사람도 냄새가 나지 않는 똥을 쌀 때가 있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 누는 똥이다. 태아의 장은 무균 상태여서 세균이 없다. 그러나 아기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음식을 통해 대장균, 유산균 등 수많은 세균이 장에 침입한다. 그래서 태어난 지 며칠만 지나도 아기의 똥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장내 세균들은 다른 생태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양분과 에너지 그리고 서식처를 놓고 경쟁하면서 서로 견제하고 침입자와 맞선다. 요즘에는 이를 이용해 유익한 세균을 인체에 투입해 병원균을 죽이거나, 병원균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박테리오 테라피'까지 등장하고 있다. 미국국립보건원 항생제연구소 펜티 후오비넨 박사는 항생제의 내성이 증가해 기존의 항생제로는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게 되자 병원균과 싸우는 새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다. 그는 유익한 세균으로 병원체를 몰아내는 '박테리오 테라피'를 유력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 박테리오 테라피로 병을 고친 사례는 많다. 뉴욕 몬테피오레 병원은 장염 환자의 항문에 남편의 똥을 밀어 넣어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항생제 남용으로 장내 세균 집단의 생태계 균형이 무너져 장염에 걸린 환자의 대장 생태계를 남편의 똥 속에 있는 장내 세균으로 복원한 것이다. 스웨덴 룬드비 병원 연구팀은 지난해 유산균인 스트렙토코커스를 어린이의 코에 스프레이처럼 뿌려 중이염 치료에 큰 효과를 거두었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중이염 환자에게 항생제를 투여했으나, 유익한 세균까지 모두 죽는 등 부작용이 컸다. 심한 방광염 환자는 카테터를 삽입해 소변을 보지만, 카테터 때문에 방광이 감염돼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휴스턴 소재 베일러 대학 의대 연구팀은 카테터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 미리 해가 없는 세균인 대장균을 환자의 방광에 주입한 결과 치명적인 병원균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2003년에 보고했다. 그렇다면 제3의 장기인 장내 세균을 잘 기르고 장내 생태계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생활 습관은 어떤 것일까? 유익한 세균을 가꾸려면 첫째, 부패 과정에서 독소를 내는 지방과 단백질을 과식하지 말고 식이섬유가 많은 야채와 과일을 먹어야 한다. 둘째, 항생제를 남용하면 안 된다. 셋째, 나이가 들수록 장내 유산균인 비피더스균이 줄어들므로 유산균 음료 등을 마시는 것이 좋다. 넷째, 적절한 운동을 해서 장이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 털이 없는 것이 생존에 유리 최근 들어 사람이 털 없는 짐승이 된 것도 세균이나 기생충과의 싸움 때문이었다는 학설이 나오고 있다. 동물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은 매우 우스꽝스런 존재다. 머리만 빼고 온몸에 털이 거의 없다. 왜 사람은 235종의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털이 없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털이 없는 포유류는 매우 드물다. 포유동물은 자신의 몸을 일정한 온도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털이 필요하다. 원래 육지에 살던 젖먹이 동물이었던 고래나 해마는 바다로 간 뒤 털을 벗었다. 매끈한 몸이 스피드를 내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알몸이 된 것도 고래처럼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지금까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막연히 체온 조절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나와 있을 뿐이다. 인간이 서늘한 숲의 그늘에서 영장류로 살던 때에는 털이 필요했다. 그런데 200만 년 전 빙하기가 지구를 덮치면서 인류의 요람인 아프리카에 급격한 기후 변화가 온다.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숲이 사바나 초원으로 바뀐 것이다. 나무에 매달려 사는 대신 초원에서 걷는 생활에 적응하면서 인간은 직립을 하게 됐고 털이 빠졌다는 게 지금까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가설은 허점이 많아 도전을 받아왔다. 알몸으로 초원에서 뙤약볕을 쪼이면 털이 있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열을 흡수해 해롭다. 또 밤에는 춥다. 사바나 초원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데는 알몸이 오히려 불리한 것이다. 왜 인간이 알몸을 선택했는지 설명해 주는 흥미로운 이론이 2003년 논문으로 발표됐다. 영국 레딩 대학 마크 페이겔 교수는 털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이와 벼룩 같은 기생충과 이들이 퍼뜨리는 전염병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유리했기 때문에 털이 빠지게 됐다고 논문을 통해 주장했다. 털이 없는 것이 생존에 유리해 자연선택이 됐고, 털이 없는 게 더 섹스어필해 성적 선택까지 일어났다는 것이다. 마치 공작의 꼬리 깃털이 커진 이유가 섹스어필이 이유였듯이 벌거숭이 인간이 상대를 유인하는 데 더 유리했고 따라서 후세에 더 많은 유전자를 남겼다는 것이다. 남성의 몸에 털이 더 많은 이유 털 없는 상대를 좋아하는 본능은 지금도 뿌리깊게 남아 있다. 요즘 여성들은 겨드랑이와 다리에 난 털을 깎는다. 남자도 매일 면도를 한다. 페이겔 교수는 이것이 모두 더 섹시하게 보이기 위한 행위라고 본다. 예를 들어 털이 전혀 없는 부위인 등을 드러낸 옷을 입은 여성 모델이 광고에 등장하는 것도 남성에게 섹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나는 벼룩이나 이가 없는 괜찮은 파트너'라는 강력한 신호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 여성은 남성보다 더 털이 적을까? 페이겔 박사는 털이 없는 여성의 성적 선택 압력이 남성보다 더 높았다고 본다. 요즘도 남성은 애인의 몸에 털이 난 것을 보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여성도 털이 적은 남성을 좋아하지만 그렇게 결정적인 선택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이유야 어쨌든 인류가 털을 벗은 것은 언제쯤일까? 미국 유타 대학 로저스 교수는 피부색을 결정하는 MC1R 유전자를 분석해 120만 년 이전에 털을 벗게 됐다고 발표했다. 이 유전자는 피부색을 결정한다. 멜라닌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느냐 끄느냐에 따라 자외선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검은 갈색이 되도 하고 자외선 차단 기능이 별로 없는 적황색이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에 살던 인류의 조상은 털이 빠지면서 한편으로는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검은색 피부를 갖게 됐지만 그 이전에는 침팬지처럼 털 속의 피부가 흑인도 흰색이었다. MC1R 유전자가 검은 색 피부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120만 년 전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독일 라이프치히 진화인류학연구소 마크 스톤킹 박사는 옷에 붙어사는 이의 유전자를 분석해 그 시기를 약 5만 년 전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앞서 수십만 년 전부터 네안데르탈인도 조악한 옷을 입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꽤 있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흔히들 우리나라는 빈부차가 크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혹 그렇다면 얼마나 그런가? 최근 들어서는 어떤가? 전보다 격차가 커지고 있을까 줄어들고 있을까? 빈부차를 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크게는 재산 크기와 소득 크기로 알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집이나 땅 같은 부동산 혹은 현금·예금·증권 같은 금융자산을 합한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달마다 혹은 해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즉 소득 크기로 알아보는 방법이다. 먼저 재산 크기로 알아보자. 극소수의 사람이 사유지 절반 소유 최근 화제가 된 뉴스로, 우리나라의 땅 소유 편중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려주는 흥미로운 통계치가 발표됐다. 행정자치부에서 2004년 말 현재 전국의 토지 소유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은 총 99642㎢. 전체 국토 가운데 사유지가 전체의 57%이다. 사유지를 나눠 갖고 있는 사람 수는 모두 1397만 명. 우리나라 총인구 4871만 명 가운데 28.7%에 해당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전 인구의 71.3%에 해당하는 3474만 명이 제 땅을 한 평도 갖고 있지 못하다. 반면 극소수 사람들이 엄청난 면적을 소유해 큰 부를 누리고 있다. 면적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사유지의 51.5%를 국민 가운데 상위 1%에 해당하는 48만7000명이 소유하고 있다. 서울시 면적의 48.7배다. 상위 5%의 땅 부자들이 소유하는 토지 면적은 전체의 82.7%, 서울시 면적의 78.5배나 된다. 땅 소유자들끼리만 놓고 봐도 편중도가 심하다. 면적 기준으로 상위 1%(13만9000명)가 전체 사유지의 31%를, 상위 5%가 전체 사유지의 59%를, 상위 10%가 73%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100명이 전체 사유지의 0.7%(서울시 면적의 0.6배)를 갖고 있고, 이들의 평균 소유면적은 115만 평. 서울 여의도 면적(254만 평)의 절반이다. 심각한 땅 소유편중 보여주는 통계 토지 가액으로 따지면 편중도가 더 심하다. 2004년 공시지가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토 전체의 평가액은 1771조 원이다. 공시지가란 이른바 '지가 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감정평가사라는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매년 1월 1일(기준일) 현재 땅 시세를 조사해 공시한 토지 1㎡ 당 평가액. 공시지가는 보통 민간에서 땅을 거래할 때보다는 가격이 낮지만 거래의 기준값이 되고, 정부에서 개발 목적으로 토지를 수용할 때 땅 주인에게 보상해주는 금액의 기준이 된다. 전체 국토 가운데 사유지는 공시지가 평가액으로 전체의 65%에 해당한다. 공시지가 평가액 기준으로 보면 상위 1%가 37.8%를, 상위 5%는 67.9%를 소유하고 있다. 토지보유자들끼리만 놓고 따지면 가액 기준으로 상위 1%가 전체 사유지 가액의 22%를, 상위 5%가 44%를, 상위 10%가 56%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100명이 차지하고 있는 사유지의 평균가액이 1인당 510억 원이나 된다. 사업자 가구에서 부집중도 높은 편 소득 크기로 빈부격차를 알아보려 할 때는 정부 통계기관에서 내놓는 소득배율지표를 활용하면 편리하다. '10분위 소득배율(혹은 소득 10분위배율)', '5분위 소득배율' 같은 것인데, 소득 크기로 빈부차를 나타내는 지표다. '10분위 소득배율'은 소득이 가장 높은 10% 해당자('10분위'라고 한다)의 평균소득이 소득 최하위 10% 해당자(1분위)의 평균소득보다 몇 배나 큰지 나타내는 지표다. 10분위 소득배율은 이렇게 구한다. 사람들이 일정 기간 올린 소득을 크기 순으로 최하위 10%(1분위)부터 최상위 10%(10분위)까지 10개 계층으로 나눈다. 그래놓고 최상위 10%의 소득 평균치를 최하위 10%의 소득 평균치로 나눈다. 이렇게 하면 최상위 10%의 소득이 최하위 10%의 소득보다 몇 배나 큰지 나타낼 수 있다. 당연히 10분위 소득배율 수치는 소득격차가 높을수록, 부의 집중도가 높을수록 커진다. 5분위 소득배율(혹은 '소득 5분위배율')도 10분위 소득배율을 구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구한다. 사람들이 일정 기간 올린 소득을 크기 순으로 5개 계층으로 나누고 상위 20%(5분위)의 소득 평균치가 하위20%(1분위) 평균 소득의 몇 배나 큰지 구한다. 5분위 소득배율은 상위 20% 해당자(5분위)의 평균소득이 하위 20% 해당자(1분위)의 평균소득보다 몇 배나 큰지 나타냄으로써 소득차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통계청이 매월 전국의 표본 가구(농가 혹은 어가가 아니면서 근로자와 자영업자, 무직자를 포함)를 '전국 가구'로, 도시 거주 2인 이상 근로자가구 표본을 '도시근로자가구'로 규정해 '가계수지동향'을 조사하고 분기별로 발표한다. 이 통계에 5분위 소득배율로 파악한 소득분배 동향을 싣고 있다. 5분위배율 산출을 위해 통계청은 표본으로 고른 가구에 매달 가계부를 쓰게 하고 있다. 통계청이 올해 5월 19일 발표한 '2005년 1/4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전국 3470개 도시 거주 근로자가구의 5분위 소득배율은 5.87(배)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17포인트 증가했다. 소득 5분위배율이 5.87배라는 것은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에 비해 5.87배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 도시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658만7300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6% 증가했다. 반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는 2.5% 늘어난 112만3000원에 머물렀다. 도시근로자가구의 5분위 소득배율은 1/4분기 기준으로 1997년 4.81에서 외환위기 여파로 98년 5.52로 올라선 이후 99년 5.85, 2000년 5.56, 2001년 5.76, 2002년 5.40, 2003년 5.47 등을 기록했다. 그랬던 것이 2004년엔 5.87로 도시근로자가구를 상대로 5분위 소득배율을 조사해 발표하기 시작한 지난 198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지난 25년을 두고 보면 소득 격차가 작년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는 얘기다. '전국 가구' 기준으로도 올해 1분기 소득 5분위배율은 8.22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0.47포인트 증가했다. 이것 역시 이 분야 통계조사를 시작한 지난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통계청이 '가계수지동향'과 따로 조사 발표하는 '가구소비실태조사결과'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2000년 말 기준으로 전국의 2인 이상 비농어가 2만7000가구를 상대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가구별 5분위 소득배율이 2000년 6.75로 5년 전인 1996년에 비해 2.01포인트 높아졌다. 근로자가구보다는 사업자가구에서 소득격차나 부의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통계청, 2000년 가구소비실태조사결과, 2002년 4월 발표) 통계로 보여지는 것보다 심각한 격차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해마다 커져 이젠 세계 13위권 안에 든다. 그렇지만 소득분배가 나빠지고 있어서 많은 국민들이 나라 경제 규모가 성장하더라도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은 함께 늘어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더 많은 수의 국민은 나라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자신과 자신의 가구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진다는 생각을 하는 쪽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질까? 통계청 말로는, 고소득 계층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데 비해 저소득층의 소득은 증가세가 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왜 그런가? 오늘날 일부 학자나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세계가 점점 더 머리 좋고 열심히 일하는 소수와 머리도 좋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 다수의 사회로 옮아가고 있어서일까? 세계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일하는 소수 엘리트와 그렇지 못한 다수로 대별되는 20:80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일까? 다른 나라에서라면 혹 모를까 우리나라에선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근로소득에 비해 땅과 집 같은 부동산에 기반을 둔 자산소득의 격차가 너무 크고, 자산소득의 성장세가 근로소득의 그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땅 소유나 금융자산 편중도에 다른 자산 보유 격차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빈부격차는 소득격차 통계로 나타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 실제로 한국은행과 국민은행이 조사해 밝힌 통계만 봐도, 2002년 현재 국내 소득 상위 5%의 부자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 금융자산 총액의 38%, 상위 20% 가구의 금융자산이 전체 개인 금융자산의 71%를 차지한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은 소득 하위 20%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에 비해 62배나 많다.(삼성경제연구소 CEO Information, 외환위기 5년 한국 경제의 흐름과 과제, 2002. 11. 27) 현실이 이렇다 보니 통계청이 발표하는 빈부차 관련 통계, 특히 소득격차 통계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분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소득격차를 분석하는 지표로 소득배율지표 외에 흔히 쓰는 '지니 계수(Gini coefficient)'라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지니 계수란 이탈리아의 통계학자 지니(C. Gini)가 제시한 소득 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다. 숫자로 0에서 1까지 표시하는데, 0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포가 균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균등하지 않다. 보통 0.4를 넘는 소득 분배는 매우 불균등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도시근로자의 가계 소득을 대상으로 구해본 지니 계수는 지난 1996년 0.290, 97년 0.283에서 98년 0.316, 99년 0.320, 2000년 0.317, 2001년 0.319로 높아졌다. 외국과 비교하면 2000년 우리나라의 지니계수(0.317)는 일본(99년, 0.301)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미국(0.460), 대만(0.326) 보다 낮다.(재정경제부 국정감사 자료, 2002. 9. 12) 지니계수로 보면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나라의 소득분배는 미국, 대만보다 균등한 편이다―이렇게 말한다면 듣는 이로서는 당연히 실감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니계수 산출 방법에도 문제가 좀 있다. 국내 도시 가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무직 가구의 비중(표본 기준)은 1996년 7.6%에서 2000년 12.7%로 급증했으나, 이들 무직 가구의 존재는 지니계수 산출 작업에서 제외된다.(한국개발연구원, 분배 관련 통계 개선 방안 보고서, 2002. 11. 12) 지니계수 산출에 이용하는 통계청 도시가계조사도 무직자나 자영업자 같은 비근로자가구와 1인가구, 농어가 등 비도시가구는 통계에 넣지 않는다. 서민층의 상대적 박탈감 한층 커져 빈부격차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게 마련이다. 다만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돈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기에 유리하고 재산의 사적 소유와 상속을 법으로 보장하므로 빈부격차가 커지고 고착되기 쉽다. 우리나라에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커지는 이면에 부자들의 탈세와 법제의 허점을 악용한 재산 증식 행위가 만연해, 서민층의 상대적 빈곤과 심리적 박탈감을 한층 키우고 있어서 특히 문제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고치는 쪽으로 법제도를 고치고, 조세나 사회보장 관련 정책을 적극 구사해 빈부격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서민층의 불만은 당연히 빈부격차에 비례해 커질 것이고 정권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