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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사교육비 지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상ㆍ하위 계층간 사교육비 지출 격차가 최고 8.6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성균관대 양정호 교수가 한국노동연구원의 2001∼2004년 한국노동패널조사 를 토대로 고등학생 이하 자녀에게 사교육비를 지출한 1천500여 가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2004년 기준으로 최상위 20% 계층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83만8천원이었다. 최하위 20% 계층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9만8천원으로 상ㆍ하위 계층의 사교육비 지출 격차가 약 8.6배에 달했다. 계층간 사교육비 지출 추이를 살펴보면 최하위 20%의 사교육비는 2001년 7만5천원에서 2004년에는 9만8천원으로 2만3천원 가량 늘어나는데 그친 반면 최상위 20%는 56만8천원에서 83만7천원으로 26만9천원이나 급증했다. 이에 따라 최상ㆍ하위 계층간 사교육비 지출 격차도 2001년 7.6배에서 2004년에는 8.6배로 그 격차가 확대됐다. 양 교수는 "사교육비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사교육비 격차 해소를 위해 학부모들이 교육정책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2일 오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개최되는 '제7회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구정을 보내고 인천으로 귀가하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차를 마시면서 두리번 하던 차에 안목에 들어온 것은 “가훈을 무료로 써 줍니다”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스님이 한지를 펴 놓고 여러 한자 성어를 쉼터의 귀성객에게 정성껏 써 주고 있었다. 마침 학교 면학실에 학생들의 마음에 강한 학습 동기를 불어 넣을 글귀가 생각나 “거안사위(居安思危)” “장자불와(長坐不臥)”를 청했다.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거사의 붓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현재를 태평스럽게만 살아가면 먼 훗날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는 헤쳐나기 어렵다는 거안사위와 오래 앉아 있기 위해서 눕지 않는다는 열반에 드신 성철 스님의 좌우명 장좌불와는 학업에 정진하고자 하는 이에게 큰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휴게소를 나왔다. 고등학교 3학년! 이들에게 진학의 새로운 각오를 불러일으킬 마음의 촉진제는 하나의 물질적인 선물보다도 영적인 감흥을 일으킬 “거안사위(居安思危)” “장자불와(長坐不臥)”를 주고 싶었다. 성철 스님의 성전을 방문했을 때 느낀 그 평범한 좌우명은 학업에 정진하는 자에게는 마음에 새겨야 할 정신적인 지주라고 느꼈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의 그 순수성은 현대 물질 문명의 세속화에 계속 희석되어 감에 따라 기성세대의 신세대에 대한 근심은 더욱 깊어 가고 있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라는 미명 아래 오로지 좋은 입시 성적을 산출해 내는 데 온갖 열정을 쏟다 보니, 자연히 인성 교육은 뒷전에 머무르고 마는 형상마저 만들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공부다운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학습을 하는 데도 자기 나름 대로다. 7차 교육 과정에서 내세우는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면 오죽 좋겠느냐 만은 그것도 아닌 자신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규율 없는 공부를 원한다. 이들에게 자신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좌우명이 무엇인가에 질문해 보면 각 반에 제대로 대답을 하는 학생들은 드물다. 각 반에도 급훈이 있어 그 급훈을 담임이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학생들의 내면에 그 의식의 자리매김을 간절하게 주입시키고, 그에 따라 자신의 좌우명을 설정하도록 훈화를 한다면 학생들에게 지(知)와 의(義)를 겸하는 교육이 되지 않을까? 가훈과 급훈 그리고 교훈! 그것은 가정과 학급 그리고 학교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갈 목적으로 설정해 놓은 셈이다. 학습을 통해 학급의 성적을 올리고 각각의 학생들의 인성을 바람직하게 이끌어 가는 데는 담임은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학급에 급훈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학생들의 내면에 자신의 좌우명을 지니고 학습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오늘날 학생들의 학업과 생활 지도는 전문적인 이론과 체험을 바탕으로 신세대를 지도하고 가르쳐야 학생들에게 효율적인 교육이 되지 않을까? 사랑으로 가르치고 칭찬하는 마음으로 지도하는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한 지금의 학생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교사들의 사랑과 자애로움이 신세대에게 전해줄 마음의 여유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외부기관 위탁운영’ ‘수익자 부담원칙’ 조항에 반발한 학원측의 압력 때문에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방과후 학교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다시 교육위로 유턴될 전망이다. 교육위와 법사위는 방과후 학교법의 논란 조항을 교육위에서 다시 심의, 수정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곧 관련 절차를 밟기로 했다. 교육위는 재심의를 통해 ‘학교의 장은 방과후 학교를 직접운영하거나 학운위의 심의와 계약에 의해 비영리단체, 비영리법인에게 위탁해 운영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학원연합회 측은 “대규모 학습지회사들이 비영리기관을 설립해 방과 후 학교에 진입할 경우 100만 학원인의 생존권이 위협받게 된다”며 “비영리기관 위탁 운영과 수익자부담 원칙을 폐지하라”고 요구해 왔다. 실제로 에듀닷컴, 대교, 웅진씽크빅 등은 방과후 학교 진입을 준비 중이며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조배숙 의원 측은 “모법에서는 위탁운영 조항을 삭제하고 위탁운영 여부를 시행령에서 규정하도록 할 수 있다”고 밝혀 새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학원연합회 김용현 사무총장은 “시행령에 규정하는 것도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수익자부담 조항은 입장차가 워낙 커 논란이 예상된다. 조배숙 의원 측은 “현재 일선 학교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에게 비용을 부담시키고 있는 터라 이에 대해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려는 것일 뿐”이라며 “이에 교육위원들이 공감한 상황이어서 궂이 삭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사무총장은 “학교가, 특히 의무교육기관이 저소득층 학생 등이 아닌 일반 학생에게 돈을 받고 수업을 하는 것은 학원의 상행위와 다를 게 없다”며 “학교의 학원화를 법제화하는 수익자부담 조항을 반드시 철회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두 달 사이 ‘성범죄자 교육기관 고용 규제법’ 를 둘러싸고 교육부 지침과 내무부(경찰) 지침사이의 모순이 불거져, 루스켈리 교육부 장관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말, 영국 동남부, 놀위치지역, 히웻 중등학교에서 채용한 임직 체육교사의 사건으로, 12월 한 달 동안, 놀위치교육청, 지방경찰청, 당해 학교 그리고 교육부사이에서 ‘공문’으로만 오가다가 겨울방학이 끝난 1월 2째주부터는 학부모 단체, 교사노조, 아동보호단체 등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여론화됐고어, ‘성범죄자 규제’ 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져, 1월 중순에는 교육부 장관의 역량 문제제기와 함께 사임설까지 흘러나왔다. 히웻 중등학교의 교장 사마인씨는 리브라는 전직 체육교사를 6개월간 임직 체육교사로 고용하면서, 리브씨가 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성범죄자 요주의 인물(리스트99)’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장은 채용여부를 결정하지 못해 교육부에 문의한 결과, 전직 교육부 차관보였던 호웰씨의 권한으로 "경미한 사안이라면, 채용 결정자의 재량에 맡긴다" 라고 했던 ‘전례’를 발견했다. 결국 교장은 리브씨를 ‘위험한 정도가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채용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리스트99’에 올라와 있는 요주의 인물들을 감시하고 있던 경찰은 리브씨가 학교에 고용된 것을 발견하고, 즉시, 놀위치 지방교육청에 경고를 했고, 이 경고는 다시 학교장 사마인씨에게 통보되고, 리브씨는 채용 이틀만에 해고 되었다. 교장은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판단을 했지만, 지역에서는 ‘교장으로서의 오판’을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고, 그는 교육부 장관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했다. 교육부장관 켈리는 "리브씨의 기록을 점검해 본 결과 ‘고용에 문제없다’ 라고 판단한다" 라는 답신을 보냈다. 이러한 켈리 교육부장관의 답신은 불과 일 주일 사이에 여론화되어, 내무부, 학부모, 아동보호단체, 노조, 등에서 여러 갈래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논쟁의 핵심은 교육부 쪽에서는 "‘경미한 사안의 인물’은 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리스트 99’에서 빼라"는 것이었고, 경찰 (내무부)은 "그 결정은 전문가를 고용하여 판단해야 될 ‘우리소관’의 일"이라며 교육부장관의 월권행위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전직 차관보, 호웰씨의 ‘견해와 해석’ 에 의해 일부 학교장들은 이미 ‘리스트99’ 에 올라와 있는 ‘성범죄 요주의 인물’을 고용하고 있는 상황이고, 교육부는 이러한 사람이 몇 명이 고용되어 있는지조차도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알려지자, 학부모단체와 전국아동보호협회에서는 “그런 위험한 사람들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발끈했다. 학부모와 아동보호협회에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배경에는 지난 2003년, 켐브릿지 지방의 ‘소함’이라는 지역에서, 9세와 10세, 두 여아가 ‘학교 잡부’로 고용된 헌틀리라는 남자에 의해 유괴, 성폭행, 살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의 조사 후에, 헌틀리는 이미 절도, 상해, 성폭행의 전과가 수차례 있었지만, 경찰은 그 위험을 학교에 통보하지 못했다는 맹비난을 받았고, 이후 경찰은 ‘성범죄 전과자, 요주의 인물’의 리스트를 작성해, 아동교육보호시설에의 취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여기서 모호한 부분이 경찰이 작성한 ‘요주의 인물’ 의 규정이다. 리브씨의 경우, 2003년 영국경찰이 미국의 FBI와 공동으로 벌인 대대적인 ‘차일드 포르노 소탕작전’에서 검거됐으며, 학교 체육 교사로 고용되어 있던 그는 미국의 차일드포르노 웹사이트에 접속을 하고 다량의 사진을 다운로드 받아 하드디스크에 저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린이 성학대 사진 소지’ 의 죄목이 적용되었고, 학교에서는 해고되었다. 지금은, 이러한 개인의 성적 성향 ‘집착’ 을 ‘범죄행위’로 봐야 되는지 아닌지로 그 논란이 번지고 있다. 교육부로서는 경찰이 작성한 ‘리스트99’에 의해 해고된 교사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도 되지 않고 있으며, 또한 교사들 중에 그런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한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안 되고 있다. 그리고 버커셔 지방교육청은 ‘남자 어린이의 나체사진’을 사진을 컴퓨터 하드에 저장하고 있었다는 혐의로 해고 된 교사를 "여자 중고등학교에서는 근무가 가능하다" 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켈리 교육부 장관은 여권 당내에서 교육부의 수장으로서 교육행정을 일관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역량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다, 더구나, 지난 해 12월에 국회에 통과 예정이었던 ‘2006년 교육개혁법’도 아직까지 통과시키지 못함으로서 그의 사임 압박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공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낙제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이 오히려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내고 있다고 미국 민간단체가 지난달 31일 주장했다. 워싱턴 소재 교육전문 단체인 '에듀케이션 섹터'는 이날 낸 보고서에서 낙제학생방지법이 연방정부 재정지원을 앞세워 주 교육 당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 시험을 선호하는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듀케이션 섹터는 심지어 캔자스와 미시시피주의 경우 아예 낙제학생방지법의 적용을 받는 학년에 대한 시험을 모두 객관식으로만 치를 정도라고 개탄했다. 부시 행정부가 지난 2002년 발효시킨 낙제학생방지법은 공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학부모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시험을 치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의 성적이 2년 연속 오르지 않을 경우 본인과 학부모의 희망에 따라 다른 곳으로 전학보내야할 의무도 갖는다. 이 법은 올해부터 미국의 모든 3-8학년생에게 확대 적용된다. 에듀케이션 섹터 관계자는 공립학교들이 이런 부담 때문에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 시험을 선호해 결과적으로 교육이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연방정부 지원도 턱없이 부족해 출제상에도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낙제학생방지법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을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저급한 (시험)요령만 길러주고 있을 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시험출제 전문가는 "객관식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면서 한 예로 "4학년생의 경우 40-50분간의 시험시간에 4-6개 주관식 문제를 풀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 교육부 대변인은 낙제학생방지법 시행 성과에 대한 주 교육당국의 보고 내용이 "대부분 긍정적"이라면서 따라서 "현 상황에서 교육의 질이 떨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도 충분하다는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에듀케이션 섹터는 빌 게이츠의 자선문화단체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파운데이션'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빌 게이츠는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반(反) 전교조' 기치를 내건 자유교원조합이 출범하기도 전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키로 하는 등 두 단체가 마찰조짐을 보이고 있다. 두 단체의 신경전은 출범을 선언한 자유교원조합에 대해 전교조가 한나라당과 연계성을 문제삼으면서 비롯됐다. 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은 지난달 10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이 배후에서 일을 꾸미고 있다.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음이 분명한 자유교조의 강령은 교원노조가 아닌 정당의 것처럼 보인다"며 자유교원조합과 한나라당간 연계성을 주장했다. 그러자 자유교원조합은 즉각 성명서를 내 "전교조가 무슨 근거로 한나라당과의 연계 주장을 펴는지 모르겠다"며 근거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자유교원조합은 전교조의 답변이 없자 1일 조합추진위 명의로 전교조에 공식 공문을 보내 "전교조 대변인이 자유교원조합 설립과 관련해 마치 야당인 한나라당이 배후에서 조종한 것처럼 근거없는 언론 인터뷰를 해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며 재차 근거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자유교원조합은 "12일 24시까지 근거를 제시할 것을 공식적으로 서면 요구한다"고 시한까지 못박았다. 최재규 자유교원조합 추진위원장은 "만약 전교조 측이 확인 가능한 사실에 기초한 근거를 밝히지 못한다면 자유교원조합 추진위원회는 법적ㆍ경제적ㆍ행정적 제수단을 통해 이러한 허위사실유포에 대한 전교조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 한 대변인은 "한국교원노동조합 전 위원장 등이 참여하고 사학법 반대 등 한나라당과 이념적으로 같은 단체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였던 것 같다"며 "자유교원조합이 학교현장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나갈지 고민하기보다는 전교조와 대립 국면을 조성해 이슈화하려는 의도로 보여 공식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왜 한국 아저씨 아줌마들은 나만 보면 이담에 의대를 갈 거냐고 물어보는 거지?" "공부를 잘 하니까 그렇지. 너 듣기 좋으라고 그러시는 거야." "글쎄, 한국 사람들은 공부를 잘 하면 왜 모두 의대 아니면 법대를 가야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에요. 세상에는 다른 재미있는 직업이 많이 있는데…" 새 학기가 되면 10학년(중 3)이 되는 아들애가 며칠 전 이런 식의 불만 아닌 불만을 털어놓았다. 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드는 아들애에게 주위의 한국 분들이 칭찬삼아 하는 말이지만 듣는 제게는 부담도 되고, 왜 어른들은 한결같이 의대 아니면 법대에 생각이 고정되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아들 말마따나 한국 부모들뿐 아니라, 고달픈 이민생활을 자식들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강한 아시안 부모들은 일단 성적만 되면 자식들의 적성을 고려하기 이전에 의대나 법대로 진학시키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어디서나 떳떳하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전문 직종에 종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전문직하면 언뜻 생각나는 것이 법관 아니면 의사이다보니 이웃 자녀인 우리 아들한테도 어른된 도리인양 가급적 의대에 진학하도록 강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해 말부터 시작된 호주의 대학입시 결과발표가 지난주에 모두 마무리 되었다. 올해 입시결과 및 경향분석에 따르면 예상대로 아시안계 학생들의 상위권 진출이 도드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의 일간지들은 현추세가 지속된다면 불과 한 두 세대만 지나면 호주의 전문직은 거의 아시안 이민자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논평하고 있다. 중동계 이민자들이나 유럽의 초기 이주자들이 주로 농업에 종사하거나 하급 기술 및 기능공 출신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아시안계 이민자들은 중산층을 중심으로 대거 호주에 유입되어 2세에 대한 높은 교육열을 보인 결과라고 덧붙였다. 호주는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된 2천만 명 남짓한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중 20% 정도의 인구비율을 가지고 있는 아시안 계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매년 대학입학시험 때마다 최고 득점자 1000명 중 350명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의과대학이나 치과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편으로 정원의 30%내지 50%가 아시안 학생들이다. 그런가하면 법학과와 경영학과, 회계학 전공자 중에도 한국을 비롯한 중국 등 아시안 학생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소위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해마다 주로 진학하는 몇 개 학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인 것이다. 높은 성적을 받아야만 합격할 수 있는 몇 개 학과를 놓고 벌이는 학생들간의 치열한 입시 경쟁은 호주라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앞도 뒤도 안 돌아보고 의대나 법대에 진학하기 위해 학창 시절 내내 공부에 매달린 결과, 특별활동이나 다양한 특기를 개발할 기회 자체를 잃어버린 채 자기 적성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성적이 되니까' 무조건 진학을 하고 보는 현상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아들애의 말처럼 요즘 세상에는 재미있는 직종도 많고 직업의 종류도 얼마나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있는가. 각 분야의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대학의 학과는 또 얼마나 많은지 대학마다 학과를 소개하는 안내책자의 부피만 보아도 학문적 호기심과 지적 소양을 축적시킬 수 있는 교육의 장이 얼마나 풍부하게 열려있는 지를 충분히 가늠하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안 수험생들의 경우는 성적순으로 나열되어 있는 순서에 맞추어 의대와 법대 그리고 몇몇 귀에 익숙한 학과만을 장래 직업을 위한 전공으로 선택할 뿐, 나머지 수많은 학과는 단순히 커트라인이 낮다는 이유로 홀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호주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이민자의 나라이다. 이들을 아우르는 국가 제도와 시스템이 아무리 완벽하다해도 각 이민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정 정서와 배타적 선입견이 사회문제의 불씨로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시안 2세들의 특정직업의 대거진출 또한 인종분규나 사회적 갈등의 한 요인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본다면 한 커뮤니티가 사회의 전문지식 분야로 편중되는 현상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타 이민자 그룹들을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대학 진학만이 능사가 아닌 것도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한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반드시 고학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이민 생활이란 곧 자녀들의 전문직 진출이라는 등식을 적용하는 한국 커뮤니티를 비롯한 아시안 계 이민자들의 고정관념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광묵 전국시·도교총사무총장협의회장은 10~12일 제주교총에서 전국시·도교총사무총장협의회의를 개최한다.
교육부는 최근 ‘우리 몸에 영양이 되는 체조’ CD를 제작해 전국 6179개 초등학교에 보급했다. 식습관이 서구화된 데다 놀이문화 변화, 소규모 가정 증가로 홀로 지내는 어린이가 늘어나 신체 움직임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나날이 심각해져가는 어린이 비만 문제를 간단한 학교 체조를 통해 줄여보자는 취지다. 이번에 제작된 CD는 신체 각 부위의 긴장을 풀어주는 체조, 졸음을 쫓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체조, 키 크기 체조, 몸치 탈출 체조, 친구와 함께 하는 체조 등 2분 내외의 체조 10종을 담은 3D 동영상물이다. 체육과 교육과정 개발위원인 장용규 서울교대 교수와 국제체조심판인 이은미 서울목원초 교사의 자문을 받아 기존에 많이 통용되고 있는 동작 위주로 친근한 음악을 곁들여 제작됐으며,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익숙한 어린이 캐릭터와 교육부 캐릭터인 ‘배움이와 희망이’를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교육부는 이 영상물을 각 학교의 교실 내 PC에 설치해 필요한 시간에 활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고등학생용도 개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현장 반응이 좋다”면서 “학교 현장에서의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영상물은 이달 20일에 교육부 홈페이지(www.moe.go.kr)에도 탑재될 예정이다.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라며 한국인의 예술혼을 세계에 알려온 아티스트 백남준씨가 74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EBS는 생전에 뉴욕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가졌던 EBS 단독 인터뷰를 비롯해 그의 생전 작품을 생생하게 재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오랜 병마와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작품세계와 한국에 대한 애정 등을 표현한 단독 인터뷰에서는 그의 생생한 눈빛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의 첼리스트 샤로트 무어맨을 소재로 한 비디오 작품과 파우스트 연작시리즈 등 그의 생전의 작품을 다시 만나보고 생전에 그와 절친했던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며 손수 벌인 한국의 전통적인 굿 퍼포먼스도 소개된다. 또한 10여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진 백남준 회고전을 비롯해 생전의 왕성한 작품 활동 모습도 공개된다.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늘 변혁을 꿈꿔 온 예술 혁명가 백남준, 21세기에도 꺼지지 않을 그의 예술혼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2월 1일(수) 밤 10시부터 50분간 방송되며 재방송은 다음날 아침 6시 10분부터.
최상근 |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점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이 문제 모 고등학교에서 같은 학년을 가르치는 국어과 교사 간에(4명) 협의 부족으로 출제범위와 방향이 다르게 고지되어(출제는 편의상 돌아가면서 맡고 있는 것 같음) 학급 간에 평균 차가 크게 났고(약 20점 정도), 그제야 교사들끼리 협의하여(학생들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신 등급표에서 이 결과가 다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재시험을 치루게 하였다. 학생들 모두가 기분 나빴지만 학교내신제 때문에 불평도 못하고 수용하였다. 학부모들에게는 일언반구 공식 멘트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학교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아무런 사고도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런 학교는 공급자 중심의 교육을 시행하였던 과거 전통적인 학교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중학교 국어과 선생님이 한 반 평균을 82점에서 85점으로 올렸다. 이 선생님은 유능한 선생님으로 평가받는다. 반 평균 성적을 무려 3점이나 신장시켰으니, 유능한 선생님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한 반의 학생이 80명일 때에도 이런 선생님이 유능한 선생님이었고, 한 반의 학생이 35명 정도인 오늘날에도 이런 선생님이 유능한 선생님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12년간 성적이 올라가면서 성장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에는 국어가 가장 어려운 과목이고, 별도로 과외를 해야 하며, 옛날에 비해서 국어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른 과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학년 전체에서 담임한 반이 몇 등이냐가 잣대가 되는 담임교사의 능력 평가 체제가 수 십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늘 선생님은 유능했는데, 늘 점수를 향상시켰는데, 학생들의 실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처럼 점수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못하는 데에도 그 점수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 학교사회의 맥락에서, 정작 유능한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일까? 전통적인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야 학급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을 실행하면서 교사는 전체성 또는 평균성, 타율성, 획일성, 경직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교육에서의 학습 원리를 고집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여럿이서 뭉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 학생들의 특성에 관계없이 경직되고 획일적으로 사전에 편성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기술자에서 한 단계 격상하여야 한다. 전체 학생들 중 평균적인 학생들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일제식으로 수업을 전개하는 방식은 어느 학생에게도 유익하지 못하다. 학부모나 학생의 특성과 요구와 관계없이 교사가 일방적으로 조성한 교과 학습 환경은 교사의 전문성을 의심케 한다. 이제 교사는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여야 한다. 학생들의 개별적 또는 전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수업행위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추어 자율적이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점을 강조하여야 하며, 학습자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학습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김차식, 2001). 교사는 담당하고 있는 교과목을 대상으로 교수 실천에 대한 지식, 내용지식, 교육과정 실행 지식에 정통한 자들이어야 하며(Doyle, 1990), 그러한 선생님들만이 유능한 선생님이다. 교수 실천에 관한 지식은 특정한 교사의 행위나 행위체제가 교실에서 사용되어졌을 때 어떤 결과를 낳았느냐에 대한 지식이다. 또한 내용지식은 교과지식과 교수적 내용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전자는 교과의 구조에 대한 이해, 개념적 조직의 원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탐구의 원리에 대한 이해인 교과지식를 말한다. 후자는 교사가 갖고 있는 내용 지식을 교수적으로 강의하면서 학생들의 능력과 배경에 따라 교수학습 활동에 적합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교육과정 실행지식은 교육과정의 실행을 형성하는 교실내의 구조와 과정에 대한 것으로 교실이 어떻게 운영되는가, 교수 효과가 어떻게 일어나는 것 등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스스로의 지식과 기술에 따라 결정 교사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재량권을 행사한다. 교수자의 일은 단순한 과정을 요구하고 사전에 주어진 지침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와 목표달성을 위한 실행의 절차가 객관화·일반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교수자의 일은 출발점에서부터 가시화·일반화될 수 없는 개성적 대상과 목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행과정에 시종일관 개별성과 우연성이 수반되기 때문에 교육받는 대상의 고유한 가능성과 교육적 필요를 포착하는 일에서부터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의 소재들을 선정·해석·번역하여 전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서 끊임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허병기, 1994). 그렇게 때문에 교사에게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며, 유능한 교사의 판정 여부도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고객이 코를 높여 달라고 해서 코를 높여주고, 눈을 크게 해달라고 해서 크게 만들어주는 성형외과 의사처럼, 과학자를 원한다고 해서 과학자를 만들고, 피아노 연주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 연주자를 만들어 주는 그런 교육을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형외과 의사도 고객의 건강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시술을 하지 않듯이, 교사도 학생과 학부모가 원한다고 해서 주문에 무조건 응하는 일을 자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이돈희, 2000). 교사는 도덕적·전문적 책무성을 담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학생, 학부모의 주관적 요구와 필요에 응하며, 그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전문성을 발휘하여야 한다. 즉 학습목표와 학습활동과의 연계성 모색, 학습의 개별화 전략의 수립 실천, 교과 병행 학습과 통합 학습의 적절한 활용, 소집단 학습의 구성 및 학습 방법에 대한 이해와 실천, 학생의 학습 계획 참여 여부 및 방법 결정, 토론 학습에 관한 연구, 훈련 및 학습 결과에 대한 종합 토론 실시, 학습 결과 정리 및 확인 등과 같은 전문적 지식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이용숙, 1997). 우리나라 교사들은 학생의 특성과 정보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인식을 대체로 가지고 있으며, 주된 방법은 학생과의 접촉 또는 면담(46%), 학교생활기록부(31%) 등이었다. 학생지도활동에 가장 중요한 학생 특성·정보의 내용은 성적수준(46%), 태도 및 성격(36%)의 순이라고 한다(최상근, 1999). 이와 같이 교사들이 학생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조사연구에서 볼 때, 전체 교과목을 대상으로 한 점수, 그것도 아마 전체 학생 가운데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순위에 관한 의식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교사들의 학생 파악 실태는 위에서 기술한 전통적 교육 상황에는 적합하다거나 효과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그런 풍토가 우리 학교사회를 주도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지향하고 있는 학생, 학부모를 교육 공급자 입장에서 보지 않고, 교육의 선택권을 갖고 있는 고객이며, 교사의 전문성과 존재적 의미는 그러한 수요자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는 수요자 중심의 교수 학습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막연한 점수 중심의 학생 정보에 그치지 말고 자신이 담당하는 교과, 그것도 교과에서 가르쳐야 할 주요 내용 영역별로 구체적인 학생 개인별 정보를 파악하여야 학생 개인의 필요에 부응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는 가르친 학생들의 능력 대변 각 교과별로 학년별로 교수하고자 하는 내용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 내용 영역별로 각 개별 학생들의 출발점 단계에서의 이해도 수준을 진단해야 한다. 대체로 주지교과(여기서는 수업시수가 많은 교과를 말함)의 경우, 학교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4~6개반(100~200명)을 담당한다. 이 담당하는 학생들의 내용 영역별 출발점 정보를 소상히 파악·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에게 무작정 '그것도 모르니' 하고 못을 박아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학습 실태와 수준과는 전혀 관계없이 교사 나름대로 작성한 천편일률적인 교육 내용의 전달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각 학생별로 내용영역별로 연간 지도 계획(방법)과 목표달성 내역을 작성하여 운영함으로써 주먹구구식 전체적, 일제식 수업을 지양하고, 맞춤형 수요자 중심 교과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과정 운영 및 실행자만이 전문직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실태가 그러할 때에 전문직으로서의 평가를 요구할 수 있다. 즉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의 업적은 교사 본인이 작성하고 수행한 내용, 영역별 성취도, 진단-교육과정 및 수업지도 운영-목표 달성도에 대한 자체 또는 전문가 평가를 통해서만이 평가되어야만 하며, 그 결과를 통해서 유능한지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수행한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학생 하나하나에 대해서 각 내용영역별 습득 수준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과를 예로 할 경우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등으로 구분하여 학생이 갖고 있는 능력과 부족한 점 등을 지적할 수 있으며, 앞으로 어떤 노력을 더 경주해야 하는지 등에 관하여 자신의 입장을 후임 교사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잘 못하는 아이와 잘 하는 아이로만 구분되어 후임교사에게 인계인수되고 있는 낙인의 현실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직 활동을 위해서는 동일교과 교사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전문성 중심으로 상호 협력하고, 각자의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는 과업지향적 교과 풍토 조성을 위한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매년 교사가 바뀌고, 독자적 전문성(예컨대 비밀주의, 폐쇄주의 같은 것)만을 중시하려는 교사들의 그릇된 직무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최원호 | 서울 중동고 교사 가르치는 기술 이상의 것이 필요 필자의 대학시절을 회고해보면 사범대를 다니는 동안 교사로서의 꿈을 탄탄히 키워온 것 같지는 않다. 사범대를 다니는 4년 동안 앞으로 교사로서의 생활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는 커녕 감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교사라는 직업을 원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업이 아닌 교사를 직업으로 택한 것은 주일학교 교사로서의 경험 때문이었던 것임은 확실하다. 사범대를 다니는 4년 내내 초등학교 1~3학년에 해당하는 유년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필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는 가르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1997년 필자는 강남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그 전 6개월 간 공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서의 경험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기간제 교사로서 정식 교사들에 비해 책임이라는 것에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고 열심히 가르치기만 하면 됐었다. 그 때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느낌은 '이렇게 재밌는 직업이 또 있을까?'였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지만 고등학교 1학년 공통과학을 가르칠 때는 생물을, 2학년 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물리1, 고등학교 2학년 이과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화학2를 가르치면서 수업준비의 부담과 다른 전공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히 있었을 텐데, 늘 수업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준비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빨리 가르쳐주고 싶었다. '여기서는 조금 지루하니까 이런 농담을 해야지'하는 식의 굉장히 자세한 대본을 짜서 수업에 임했던 것 같다. 사범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짜보았던 지도안의 형식 그대로 말이다. 솔직히 매시간 학생들과 만난다는 기대감보다는 준비한 내용들을 빨리 가르치고 싶어 몸달아 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필자는 남자 고등학교의 정식 교사가 되었을 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정식 교사가 되었을 때인 1997년을 회상해보면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꿈에 그리던 명문 사립고에서 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교직생활은 즐거웠지만 임시교사로서 있었던 6개월 동안 발견하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시교사 때와 마찬가지로 정식 교사로서의 첫 해는 학생들을 위해 나름대로 수업 교안을 열심히 준비했었다.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3~4시간은 교재 연구에 매달렸고 머릿속으로 수업하는 모습을 미리 상상해보면서 수업교안을 고쳐나갔고 매시간 수업에서 부족했던 점을 반영하여 다시 수업교안을 수정해 나갔다. '분필수업'은 소극적 반응 보일뿐 하지만 필자가 알아챈 것은 교사 혼자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특이한 몸짓을 연구해 가면서 학생들을 수업에 빠져들도록 노력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학생들의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그 동안 필자는 교안과 칠판을 열심히 보면서 가르쳤던 것 같고 학생들의 눈과 가슴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열심히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열심히 듣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말 그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고 필요한 내용을 잘 정리하여 가르치고 있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학점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화학이 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사범대학교를 다녔으면서도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지 고민하지 못했기 때문에 화학을 단지 시험점수를 잘 받아야만 하는 하나의 과목으로만 인식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화학의 정수를 맛보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화학 교과서에 들어있는 내용은 오랜 세월 수많은 과학자들의 실험에 근거하여 세워진 이론, 법칙, 사실들이다. 이 내용들을 분필 하나만으로는 가르칠 수는 없다. 학생들을 이해시킬 수는 있지만 진짜 화학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통하여 눈으로 확인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는 정보가 부족했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흉내만 내었던 어려운 대학교의 수많은 실험들은 고등학교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수업시간엔 교과서에 몇 개 나오는 실험을 흉내 내어 볼뿐 실험을 어떻게 구성해야할지, 무슨 재료가 적당한지, 양은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안전의 문제는 괜찮은지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교사들과의 만남을 갖기로 하고 서울·경기 지역 과학교사들의 모임인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에 매주 화요일마다 참석하기 시작했다. 멀리 인천과 평택에서까지 매주 그 모임에 참석하는 교사들이 있는 것을 보면 과학교사들이 얼마나 목말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모임은 학생들에게 과학을 신나고 재밌게 가르치기 위한 실험방법을 창의적으로 개발하거나 기존 실험을 교육과정에 맞춰 재미있게 변형하는 연구모임이었다. 필자는 정식교사가 된 1997년에 그 모임에 등록하였는데, 매주 참석해야 하는 성실함이 없었는지 장기결석에 들어가고 말았다. 역시나 그 당시 갈구하고 있었던 것은 얄팍한 실험 기술이었다.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런 실험 기술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 대신 교육청 주관 여러 실험연수에 나가서 수많은 실험을 배웠고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도 거의 다 해보았다. 하지만 교사 대상의 실험연수는 교과서에 나오는 많은 실험을 배우는 기회는 제공했지만 그 실험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는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연수가 끝나고 나면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다시 고민했었고 그러다가 실험보다는 개념강의 위주의 수업으로 다시 돌아가기 일쑤였다. 1999년부터 다시 그 교사연구 모임에 출석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정식 활동한지 6년이 되었다. 그 동안 화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분야의 실험과 답사 경험을 쌓으면서 실험에 자신이 생긴 것도 긍정적이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실험을 포함하여 교수활동의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수업을 '가르치는 기술에 숙련된 사람이 학생들에게 과거의 지식을 전수해주는 시간'으로 여겼던 필자는 수업을 '학생들이 수업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경험과 사고과정을 이용해 과거의 지식을 전수받음과 동시에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는 활동'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교사로서 생각하지 못했던 학생의 존재를 관객에서 주인공으로 격상시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수업을 화려하게 잘 진행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업에 잘 동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동료 교사들 간 정보 공유가 중요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과학교사들의 연구모임에서는 매주 두 명의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실험을 연구하여 발표해서 동료교사들의 수업진행 방식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시간에 매번 준비하면서 해보기 어려운 다양한 실험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개념적으로나 방법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을 토론하여 해결하는 과정은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에 참석하는 과학교사들의 수준을 한층 올려 주었다. 특히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일종의 과학교실과 과학캠프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실험을 개발하였고 과학 동아리 학생들과 실험을 발표하는 경험을 가지면서 실험을 교수학습 방법의 한 도구 정도로만 바라보던 인식을 바꾸어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교사들의 연구모임에서는 그 실험의 개발과정과 실험의 장단점을 함께 토론하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토론과정도 가지면서 단순한 테크닉만 익히던 실험교사 연수와 달리 실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운 임용고시에 합격하여도 학교에서 가르칠 자신이 없다면서 교사모임의 문을 두드리는 초임 선생님들을 보면서 과학교사로서의 중요한 능력을 대학시절에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필자가 교사가 되기 전과 초임 교사시절에 생각했던 교사는 개념적으로 잘 구성된 교안을 가지고 잘 가르치는 교사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는 좋은 교사도 그러한 교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잘 구성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대학시절 동안 배운 것을 학교 현장에서 다시 가르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교사의 중요한 사명임을 느꼈다. 그렇지만 어느 한사람이 변한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의 목표는 학생들을 훌륭하게 양성하여 좋은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앞뒤의 순서를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진정한 교육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쟁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한가하게 '진정한 교육' 따위를 논할 시간이 없었고 학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치열한 현실 속에서 학교가 살아남기 위해 많은 학생들을 그들의 소원대로 포장해주어야 했고 교사는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여 학교의 위상을 높여야 하는 사명을 가져야 했다. 학창시절 경험했던 1차원적인 목표를 교사로서 다시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진짜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학생들에게 실컷 베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학문의 진수를 경험토록 유도해야 요즘 필자는 과연 이렇게 빨리빨리 서두르는 선행학습 위주의 공부가 진짜 효과적인지 반문하고 있다. 최소한 과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1차적인 목표를 삼는 대학입학 시험에서 조차도 천천히 학문의 진수를 맛보면서 커나가는 학생들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필자는 경험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전체 학생이 이상한 교육방방법에 얽매인 상황에서 개인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속한 과학교사 연구모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목과 다양한 방법적 수업을 추구하는 다양한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교육학자들과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단지 대학 입학을 위해 문제풀이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 아님을 교사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입시라는 현실 속에 서로의 진정한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의 극복은 학생들이 진정한 공부를 해볼 수 있고, 교사가 스스로를 진정한 스승으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이루어 질 것이다.
장옥순 | 전남 구례 토지초 연곡분교장 교사 당황스러움으로 시작한 교사생활 1980년 10월 25일, 48명의 담임교사로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은 날의 풍경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마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연인들처럼…. 첫 날은 가을대운동회였고 둘째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바닷가로 가을 소풍을 갔었다. 그런데 필자의 기억은 셋째 날에 집중되어 있다. 마침 학력 진단평가 시험지가 준비되어 있어서 아이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준 10분 뒤, 다 풀었다는 아이들의 말에 공부를 잘해서 금방 끝낸 줄 알고 좋아하던 필자는 시험지를 들고 교장실로 달려가고 말았다. 48명 중에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이들이 15명이었는데 1학년도 아닌 4학년 아이들이니 그만 겁이 나서 교장선생님께 학교를 그만 두겠다며 울었던 기억만이 새롭다. 그 때는 교사가 부족해서 우리 반 아이들은 두 달 이상 옆 반과 함께 공부를 해왔으니 아동수용소에 가까운 실정이었던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어렵사리 배정받은 초보교사가 부임한 지 사흘 만에 그만두겠다며 울어버렸으니. 아이들 걱정이 커서 눈물을 보일 정도라면 한 달만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설득하셨는데, 아버지처럼 인자한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가 여기까지 오게 만든 시작이 되었다. 최남단의 바닷가 마을에서 늦가을에 만난 그 아이들과 해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히고 받아쓰기를 하며 한글을 깨우쳤다. 그렇게 4학년을 마무리할 무렵, 동네 학부모님들이 음식을 장만해 와서 교실에 차려놓고 전 직원을 초대하는 '사건'이 생겼다. 12학급에 전교생이 500명에 가까운 학교이니 직원 수도 많았는데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음식으로 때 이른 책거리를 한 것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5학년 때에도 계속해서 담임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어서라고. 전 직원이 음식촌지를 받은 때문이었는지 필자는 우리 반 48명을 그대로 데리고 5학년을 맡았고 그 아이들 중 2명의 결혼 주례까지 서주는 인연으로 지금도 만나고 있다. 교직의 출발은 힘듦과 갈등 속에 눈물을 많이 보인 나약한 모습이었다. 가족들과 너무 멀리 떨어진 외로움, 학습 결손이 심한 아이들을 끌어올리며 애태우던 시간의 나열이었으니 결코 아름다운 출발은 아닌 셈이다. 감사의 크기만큼 행복한 교직생활 필자는 인터넷신문 '한교닷컴' 리포터로서 복식학급인 우리 1, 2학년 다섯 명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써서 올리는 재미로 살고 있다. 20여 년 동안 줄곧 가르쳐 온 5, 6학년을 뒤로 하고 올해 처음 맡아본 1, 2학년 아이들과의 만남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와 생각 수준에 맞추느라 늘 쉬운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어려움, 순진하고 엉뚱한 질문과 대답에 웃느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은 내 쪽이다. 단순함과 밝음, 투명하게 세상을 보는 눈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은 못쓰게 된 어린이'이니 고치고 다듬어서 이제 겨우 아이들의 이야기를 알아듣게 되었다. '아름다운 시작보다 아름다운 끝을 선택하라'고 충고하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속삭임에 동감하는 즐거움으로 그 어느 해보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함을 기록하는 즐거움으로 보낸 2005년이었다. 또 어미가 육아일기를 쓰듯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 헤어지는 날 두 권의 책을 아이들 품속에 안겨 줄 수 있게 되었으니, 아름다운 끝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감사한다. 솔직히 산골 분교에 와서 아이들과 나눈 3년 동안의 기록만 되돌아봐도 몇 날 며칠을 웃으며 살 수 있을 만큼 행복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온 3년은 앞서 살아온 22년 동안 교직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까지도 다 들어내고 새살이 돋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교실에 있다. 바깥은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유리창을 건들지만 아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들이 필자를 불러놓고 자판으로 데려가 놓아주지 않는 탓이다. 낮에는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게 하고 밤에는 아이들 이야기를 남기는 즐거움이 자정까지 이어지곤 한다. 내일이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자기들 모습을 확인하며 즐거워 재잘대는 귀여운 참새들. 때로는 강아지이기도 하고 토끼처럼 큰 눈을 껌벅이며 웃음을 담고 바라보는 맑은 거울에 나까지 투명해지곤 했던 시간들. '감사함의 크기만큼 행복하다' 던 타고르의 말대로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생이다. 교직, 그 아름다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법을 위반하는 행위인 수업침해 한국인의 특성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2000년 교육부 인성정책자문위원회) 근면성이 좋은 국민인 반면 나쁜 습성으로는 부정직, 이기주의, 불공정이 판치는 전체적으로 불신사회라고 한다. 그러니 학교도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니 어느 만큼은 그러한 나쁜 습성이 있다고 본다. 정직하지 못한 회계처리나 인사부정, 권위나 자리에 연연한 극단적 이기주의, 신뢰감이 없는 불공정의 관행이 학교라고 예외적으로 없을 리가 있겠는가? 현직교사로서 겪었던 어려움은 수업 때문에 오는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직장 분위기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초등 선생님들의 대부분은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한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잘 만들어주는 리더를 만나고 수업침해를 법을 어긴 것만큼이나 깍듯하게 조심해 주는 관리자를 만나는 행운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한다. 8년 전에 모신 교장 선생님은 교직원들 사이에서 고약한 분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오랜 동안 장학직에 몸담으며 확고한 교육 철학과 리더십을 소유한 분이었는데 필자가 모신 분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분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교장실에 들르면 첫 마디가 "빨리 교실에 들어가십시오. 선생님보다 아이들이 먼저 와 있으면 안 되지요"였다. 그런 분이니 수업 침해를 염려해서 아침 시간에 교실에 아이들을 두고 회의하는 일은 일체 없었으며, 혹시나 급한 공문을 들고 교장실에 들어가면 충고를 들어야 할 만큼(모든 공문은 수업 종료 후 결재 가능) 엄격하셨다. 혹시라도 학습지를 복사하는 경우에도 점심시간이나 하교 후에만 가능했으니 그 분이 얼마나 아이들을 귀하게 여긴 분인지 알 수 있다. 학교 아이들이 외부행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어 그 부모가 감사의 표시로 식사 초대를 하는 경우에 응했다가는 난리가 날 정도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혹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면서, 복도를 지나치면서 큰 소리를 지르면 담임선생님까지 함께 지도를 받는 부끄러움을 선물하신 유별난 분이었다. "선생님이 저렇게 소리 지르라고 가르치셨습니까? 지나치게 목소리가 큰 것도 일종의 병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아동 지도에 좀 더 신경을 써 주세요. 그 아이의 불만과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PAGE BREAK]교실 중심의 장학 방침 고수돼야 다음 날 학사 일정을 위해서 교실에 아이들이 남아 있지 않은 4시 이후에야 영역부장과 학년부장을 소집하여 간단한 협의를 마치고 다음날 일정을 미리 게시한 후 퇴근하여 아침부터 회의 소집으로 선생님들이 교실을 비우는 일은 없게 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교무회의였다. 그러니 아이들과 선생님이 이른 아침부터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학교도 차분하고 질서정연했다. 어쩌다 방학 때 교장실을 들어가 보면 손때 묻은 교육 전문서적과 일본판 서적들이 즐비하여 엄청난 독서력에 감동하곤 했다. 말을 극히 아끼면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은 확실하게 전문서적의 내용을 소개하고 해석하여 강의에 가까운 조언을 메모하며 듣던 직원협의 시간들이 참 그립다. 그 시간은 늘 교육학을 다시 공부하는 기분이었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체 교직원 회의는 일주일에 단 한 번, 그것도 금요일 오후 4시 30분이며 5시를 넘기는 일조차 드물었다. 혹시 퇴근 시간 이후에 학교에 남아서 근무하는 선생님에게는 핀잔을 주셔서 근무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은 무능의 소치라며 면박을 주시니 일이 많은 분들은 일감을 들고 퇴근하거나 점심시간까지 쉬지 못하곤 했었다. 선생님들을 인자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험담하지 않아서 교직원들끼리도 화목했었다. 충고할 일은 혼자만 조용히 불러서 아무도 알지 못하게 꾸지람하고 공이 없는 데도 큰 상을 받게 하지 않으며 칭찬은 공개적으로, 꾸중은 남 몰래 하라는 교육자가 지녀야 할 상벌의 규칙을 엄히 지킨 덕분에 50명에 가까운 교직원들이 화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선생님이 특정한 아이를 싫어하면 덩달아서 그 아이를 싫어한다. 내 집에서 귀한 자식이 밖에서도 대접받는 것처럼, 관리자의 편애나 편 가르기는 직장 분위기를 죽이는 데 치명적이다. 아이들을 철저하게 훈육하고 바르게 키우길 바라셨고 교실수업은 교사의 생명이니 혹시라도 공문이 늦어지면 책임질 테니 수업부터 끝내고 오라셨으니 수업 시간에 결재를 위해서 교실을 비울 수도 없었고 수업 시간에는 면담조차 인정되지 않았던 그 엄격함이 그립다. 정년퇴임의 자리까지 거절하고 조용히 살아가시는 모습은 영락 조선시대의 선비 같으신 분이었으니 교육자에게는 그처럼 꼬장꼬장한 자존심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학부모에게 식사 초대를 받거나 졸업식 날 회식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하고 당당한 교사의 자존감을 심어주셨던 분이다. 소풍을 가도 출장비로 점심을 주문하여 학부모의 부담을 사전에 차단할 만큼 철저해서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안절부절 할 정도로 선생님들의 콧대를 높여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 친목날이 되면 강당에서 밤 8시가 되도록 내기 배구를 하며 전 직원이 웃고 떠들며 끈끈한 동지애로 뭉칠 수 있게 은근히 뒤에서 부추기던 장난스러움도 있었다. 내기에 진 팀이 시합에 건 돈으로 저녁을 사게 하고 다음에 다시 도전하게 만들어서 한겨울에도 강당에서 배구를 하던 일이 생각난다. 업무는 분위기에 따라 극복 가능 그런 깐깐함과 확실한 교육철학을 지닌 리더 덕분에 전남의 명문초등학교로 이름을 날렸던 2년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어쩌다 동학년 티타임이 1, 2분 늦어져서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날벼락이 떨어졌으니 최고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아무도 불평할 엄두를 못냈었다. 확고한 원칙과 교실중심의 장학 방침을 고수하는 관리자를 모시는 것은 선생님들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내인사까지도 교직원 인사위원회에서 조정하고 업무와 학년 배정을 점수화 하여 공개함으로써 투명성을 간직하여 교직원 간의 불화의 소지를 미리 차단하였으니 앞서가는 교육행정을 펼친 셈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연속하여 고학년을 맡게 하는 일이 없었고 업무의 경중을 따져서 수업시수가 적은 학년은 당연히 업무량이 많았다. 그러니 나이를 앞세워 업무를 회피하기보다 오히려 선배교사들이 더 열심히 일하는 풍토를 조성하고 서로 돕는 역할 분담이 철저했다. 필자는 6학년을 2년 연속 했는데, 그 이유는 6학년을 같이 했던 두 분 선생님들의 의견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6학년 3개 반을 교과 전담으로 구성하여 음악, 미술, 체육을 교담제처럼 운영하며 각자의 특기를 살려 학년을 이끌었다. 수학경시대회를 지도했던 필자는 수요일조차 5시까지 6학년 수학 반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제대로 배구를 못했으며, 점심시간에는 교수용 TP 자료를 만드느라 바쁘면서도 각자의 역할분담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 수 있었다. 업무란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이 서로 아끼고 격려하며 도와주는 직장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 가에 따라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 내의 분위기가 늘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고 서로 험담하여 신뢰하지 못하게 하거나 편 가르기를 하여 내 사람, 네 사람을 만들면 어떠한 조직도 살아남지 못한다. 특히 교직에서 교사의 자존감을 흔드는 관리자를 만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선생님이 즐거워야 아이들이 행복한 특수한 조직이다. 그 명제 앞에서는 어떠한 논리를 앞세워도 괴변이라고 단언한다. 학부모 앞에서 학교 선생님들을 폄하하는 관리자나 선생님은 이미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호되게 질책하고 충고해서 바르게 가르치되 서로의 상처나 아픔은 최대한 참아주고 묻어주는 어버이나 형님 같은 관리자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8년 전 그 교장 선생님이 참 그립다. 교사가 교실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교육은 개혁을 한다고 변화 하는 것이 아니다. 수업을 잘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고무시키고 자존감을 키우며, 교사가 아이들에게만 사랑을 쏟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믿어주고 여건을 조성해주는 '교실중심'체제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 선생님을 흔들고 교실에 머무는 시간을 빼앗으며 수업보다 업무 중심으로 가는 상황이 연출되면 이미 개혁은 물 건너 간 것이다. 교육은 한 시간 한 시간 수업을 통해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눈을 맞추고 앎의 기쁨과 가르침의 환희가 만나는 '예술적 경지'나 '절정적 체험'의 순간이 모여서 커지는 한 그루의 나무인 것이다. 교실수업을 지원해 주고 꾸준히 장학활동을 펼치며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이 활기찬 교직문화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함께 근무한 선생님이 최근에 교감 선생님으로 승진해 가셨는데 그 학교 선생님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들이 처리해야 할 공문의 대부분은 그 교감선생님이 거의 다 해 주신다는 것이었다. 급한 공문을 하느라 수업을 못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교무보조와 함께 처리해 주시면서도, 본인은 수업을 하지 않으니 그런 일을 도와 드리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신다는 것이었다. 현재와 같은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교직 풍토에서 그와 같은 관리자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어서 선생님들이 부러워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선생님들은 공문이나 업무를 할 때보다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급한 공문을 처리하느라 잃어버린 아이들의 시간은 찾을 곳이 없고 선생님이 바빠서 빈자리가 생기면 안전사고마저 도사리는 교실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아시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들이야 바쁘건 말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관리자보다 훨씬 더 멋진 교감 선생님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겸손이므로. 2001년 2월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원제 Pay it forward)는 누구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영화였다. 새 학기를 맞은 사회교사는 학생들에게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라'는 숙제를 낸다. 엄마와 단둘이 외롭게 살고 있던 트레버는 한 사람이 3명에게 사랑(선행)을 나누면 그 3명은 각각 또 다른 3명에게 좋은 일을 하게 돼 마침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세상 모든 사람이 선행을 주고받게 된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바로 그 교감 선생님은 오늘도 그 학교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소년 트레버처럼 나눔의 공식을 전파하고 계시리라.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나 교실, 아이들이 내가 오기 전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서로 믿고 의지하는 공간으로 변화되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니겠는가?
박하선 | 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지금으로부터 몇 해 전 일이다. 세계의 관심이 한 순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발표한 한 포고문에 집중되고 있었다. "신은 유일하기 때문에 형상을 신앙대상으로 삼은 것은 잘못이다. 모든 불상들은 이슬람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부터 그 불상들이 신앙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미안' 석굴을 비롯한 아프간 내의 모든 불상들은 제거돼야 한다!" 상식을 벗어난 문화유적 파괴 상식을 벗어난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에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다. 이 발표 이후 유네스코는 물론 UN 189개 회원국이 서둘러 불상 파괴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으며, 이집트, 터키,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조차도 탈레반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이 같은 비난 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의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완전 파괴하였고, 그 충격적 현장이 미국의 CNN방송을 비롯한 세계 통신사들의 통신망을 타고 전 세계로 중계되도록 해 세계인들을 충격에 빠지게 하였다. 아프간 중부의 산골에 위치하고 있는 '바미안.' 두 번째 아프간에 발길을 들여놓으면서 그토록 갈망해 왔고, 또 그 문제의 현장이었던 바미안 계곡을 찾아가고 있다. 수도 '카불'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하는 미니버스로 엉망진창의 산길을 가는 고행길 곳곳에는 부서진 장갑차들이 전흔을 말해주고 있고, 군데군데 흰색으로 지뢰 지대임을 표시해 두고 있다. 그러나 긴장감을 느끼기보다는 오랜 숙제를 풀 수 있게 된다는 기대에 가슴 벅차 오를 뿐이다. 9시간이 걸려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바미안에 도착했다. 도시가 아닌 산골분지 마을로 사방이 황토빛 산들로 둘러 싸여 있는 곳이다. 여관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MAMA NAJAF RESTAURANT'라는 식당 겸 여관의 허름한 방에 일단 여장을 풀었다. 외국인이라고 제법 비싼 달러 요금을 받는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날도 춥고 어두워져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 건물 지붕 위에 올라서니 그 고대하던 바미안 석굴 쪽의 전방이 그만이어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밤새 가랑비가 눈으로 변해 주변 높은 산들에는 하얀 눈이 쌓이고 구름들이 걸려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중국 실크로드 지역에 있는 화염산맥이 풍기는 기기괴괴한 멋을 이곳 산들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힌두쿠시' 산자락이다. 이곳 바미안 석굴을 대표하던 2개의 대불이 있던 자리가 동쪽과 서쪽에서 또렷하게 들어온다. 마음이 급해진다. 라마단 기간이어서 아침 식사를 기다릴 것도 없어 곧장 석굴 쪽으로 걸었다. 분노 일으키는 파괴된 역사현장 석굴 입구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허가증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사무소에 허가증을 받으러 가면서 또 허가비를 톡톡히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취재 왔다고 하니 별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이 엄청난 유적에 관람료가 없다는 것에 기분 좋아해야 할지…. 무장 군인의 감시 하에 첫 대면한 것은 서쪽에 있는 대불의 감실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엄청난 크기인 감실의 윤곽은 아직껏 또렷하게 남아있지만 1500년을 지켜오던 거대한 불상은 간데없고 빈자리 밑에 무너져 내린 흙덩이들만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다. 당시 뉴스를 통해 봤던 그 충격적 화면이 떠오른다. 세계 각처에서 이 불상의 파괴를 막아 보려고 그토록 노력했지만 결국 탈레반 정권은 파괴하고 말았다. "非이슬람 우상과 싸우겠다"는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을 파괴대상으로 삼겠다는 그 잘못된 사고가 '반달리즘(vandalism - 문화 예술 파괴행위)'의 차원을 뛰어넘은 '반문명적 폭거'로 이어졌다는 것에 세계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군데군데 많은 석굴은 이곳 주민들이 문을 달아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불상이나 벽화가 남아있지 않는 텅 빈 곳이라지만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이렇게 방치되고 훼손되어 가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복원 되야만 하는 불교 순례지 동쪽의 대불 또한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이곳은 그 불상이 있었던 자리의 윤곽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감실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여기저기의 석굴마다 놀랍게도 벽화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너무도 심하게 훼손되어 무슨 내용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불교미술사에서 이 바미안 석굴이 특별히 유명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 거대한 크기의 불상 때문이었다. 어느 지역의 어느 불상도 필적할 수 없을 만큼 큰 크기는 일찍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바미안 분지의 북쪽을 둘러싸고 약 1.3㎞에 걸쳐 펼쳐져 있는 암벽에는 이처럼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석굴이 파여 있다. 이 중 동쪽과 서쪽에 얼마 전 파괴된 그 커다란 대불이 하나씩 감실 안에 새겨져 있었다. 동쪽의 대불은 높이가 38m, 서쪽의 대불은 55m였다. 6세기쯤 바미안을 거쳐 가는 교역로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이곳에 불교가 번성하면서 이처럼 많은 석굴들이 조성되었고, 그 안에는 바로 전에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처럼 훌륭한 벽화들도 그려졌다. 간다라의 쿠샨왕조 때부터 불교도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였던 이곳에는 400년경에는 중국의 법현 스님이, 630년에는 현장법사가, 그리고 8세기 초 우리나라의 혜초스님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전해진다. 이제 바미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경관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가장 좋은 자리가 석굴 맞은 편 남쪽의 언덕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볼 때 펼쳐지는 장대한 암벽의 동서를 장식하고 있던 두 대불은 그 경관 안에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두 대불은 이처럼 멀리서 볼 때 더 웅대하고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민다. 유네스코와 아프간 새 정부에서 조만간 이 불상들을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옛 모습을 어느 정도까지 살릴 수 있을지 두고 볼일이다. 아직도 내전의 상처 남아있어 아쉬움에 잘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이끌고 마을로 내려오니 중무장한 미군들의 한 무리가 갑자기 나타나 사주 경계를 펴고 있다. 그중에는 금발의 미녀도 한 명 끼어있다. 인상이 좋아 보여 "지금 뭐하는 중이냐?"고 물으니 아프간 한 정부인사의 경호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좀 전에 군용 헬기 한 대가 머리 위에서 날더니 그 편으로 고위급 간부 일행이 이곳 바미안을 방문한 모양이다. 아직도 도처에서 탈레반 잔당들의 기습이 염려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미군들이 직접 경호를 맡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한 마디 더 물었다. "아프간과의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나는 잘 모른다. 직업일 뿐이다." 날이 점차 흐려져서 눈이라도 내릴 듯하다. 겨울철에는 엄청난 눈이 쌓여 바깥세상과는 내통이 쉽지가 않다고 한다. 그때의 바미안은 또 어떤 모습일까. 어수선한 시국이지만, 이곳 바미안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별다른 동요 없이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바미안 계곡의 세계적 유산의 흔적을 새교육 2월호에서 확인하세요.
손충기 | 원광대 교수·교육학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교육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교육의 세계가 끊임없이 변하기에 변화에 맞춰 습관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꿔야 한다. 구태를 고집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만의 개선과 개혁은 뒤쳐지고 도태되고 만다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그러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교육의 원칙과 규율과 기강이다. 교육에서의 원칙과 규율과 기강은 제2세들에게 가르쳐야 할 덕목이면서 동시에 덕목을 가르치는 방법적 원리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교육에서 원칙과 규율과 기강이 어떻게 지켜지고 무너지는가를 보고 배운다. 수능시험 장소에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매체를 소지하는 경우 처벌하기로 했으면 법대로 처벌되어야 한다. 사전에 다양한 방법과 매체를 통하여 소지하지 말 것을 홍보하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규정을 지켰는데, 몇 학생이 규정을 어겼음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구제방안이 논의된다면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일부 학부모들이나 정치권에서 법의 융통적인 운영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으나, 거기에 교육의 원칙이 휘둘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립주체와 관계없이 학교가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는 경우 법에 의하여 처벌하면 되는 것이지 법을 새로 만들어 교육주체들 간 갈등을 조장할 이유가 없다. 법과 원칙이 없어서 일부 사학의 비리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가 교육에 우선한다는 반 교육전문가적 행태의 소산이다. 학교와 교육을 정치인들이 좌지우지하려고 하면 자정력을 키우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교원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법과 원칙이 세워졌으면, 이를 어긴 경우 법대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법과 원칙은 잘 만들어져 있다. 문제는 법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법과 원칙에 없는 행동을 하는 교사가 오히려 이득을 얻고 큰소리치는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손해 보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학생들이 이러한 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 우리 교육에, 교사에게 권위는 있는가?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며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 들락거리는 학생 등 교육상황은 혼란스럽다. 학부모들이 교사를 대하는 행태도 존중에 기반하고 있지 못하다. 교원의 정년을 단축시키더니, 일부 촌지 교사문제를 전 교단의 문제로 매도하는가 하면, 체벌을 추방한다는 미명하에 교사가 학생의 잘 못을 보고도 외면하거나 눈 감게 만들고 말았다. 무능력하고 반교육적 행위를 하는 교원이 있다면 법에 의해 엄정하게 처벌하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교단에 불고 있는 교원평가제는 원래의 취지는 퇴색되고 결국 교원들의 사기와 권위만 위축시킬 것이 분명하다.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취지와 목적에 맞게 방법을 제대로 강구하고 실시하자는 것이다. 지구상에 모든 초등학교, 모든 중․고등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획일적으로 교원평가를 실시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어디 있는가? 학교장 공모제는 또 어떤가? 학교 운영은 공장 운영이나 회사경영과는 매우 다른 특수성이 있다. 인간관계의 상․하, 좌․우의 위계와 연계와 협업이 어느 조직보다 중요한 곳이 바로 학교다. 교육의 산출은 제품생산이나 판매고와 같이 수량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인적인 인간을 형성시켜 내는 학교라는 도량은 학생들의 성적 점수로만 서열이 매겨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학교장의 리더십도 몇 가지 준거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세계에서 평생을 몸 바친 교원들을 제쳐두고 엉뚱한 인사가 교장으로 초빙되면 누가 교직에 정열을 불태우고자 할까? 학교가 사교육 기능까지 수행하도록 하는 정책으로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원 법정 정원을 확보하고, 교원들로 하여금 교육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연후에 사교육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별도의 교원을 충원하여 학교가 나서도록 해야 한다. 2006년은 무너진 교육의 기강과 규율이 바로 서고, 추락한 교원의 사기와 권위가 회복되는 그런 해로 만들어야 한다. 법과 원칙을 지켜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행위준칙이 지켜져야 우리 교육에 미래와 희망이 있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흔히 쓰는 표현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다. 일본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일본인 하면 불쾌한 과거의 역사가 먼저 떠오른다. 마치 DNA에 새겨져 있기나 한 것처럼 반일 감정은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한(恨)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DNA에 기록된 2300년 전 일본사 하지만 정작 DNA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족보를 파헤쳐 보면 두 민족은 형제나 다름없다. 2300년 전쯤부터 수백 년에 걸쳐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이 사실상 일본을 세웠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이렇게 가까운 혈족이란 것은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우리는 그저 불교를 전파해 주고 도공들이 몇 백 명씩 건너갔다는 정도로 생각했지, 밝혀진 것처럼 한반도에서 수만 혹은 수십만 명씩 건너간 이민자들이 일본인이 됐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일제는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내선일체'와 한국인이 일본인과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는 '일선동조론'을 우리에게 강요했지만 이는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동북아대륙의 어느 인종과도 함께 자리 매김 되는 것을 원치 않았었다. 하지만 한국, 일본 등 아시아 4개국 유전학자들이 1996년 유전자를 통해 일본인의 기원을 밝힌 논문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이 연구는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가 주도하고 한국 학자도 참여했다. 이들은 남한, 중국, 혼슈 지방에 사는 일본 본토인, 오키나와인, 홋카이도의 아이누 족 등 모두 293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본토 일본인의 23%, 한국인의 27%가 같은 유형을 갖고 있었다. 반면 본토 일본인과 중국인은 서로 겹치는 유형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었고 본토 일본인과 아이누 족은 같은 유형을 가진 사람이 6%에 불과했다.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 사토시 호라이 박사는 "한국인과 본토 일본인의 유전적 거리는 거의 영(0)이다"고 논문에 썼다. 즉 2300년 전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과 일본 원주민이 섞이면서 야요이 시대(BC 3세기∼AD 3세기)가 시작됐고 융합이 서기 600년까지 계속되면서 현대 일본인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이주자들은 처음에 일본 규슈 지방에 먼저 정착하고 이어서 일본 열도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로 이주했다. DNA 뿐만 아니라 문화도 비슷해 일본 돗토리 대학 의학부 이노우에 다카오 교수 팀은 2003년 더욱 확실한 증거를 발표했다. 벼농사 도입과 청동기 전래로 상징되는 야요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전자가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이노우에 교수 팀은 야요이 시대 유적인 돗토리 현 절터와 사가 현에서 출토된 야요이인 유골 4점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인과 혼슈의 일본인이 동일한 집단에 속했다. 유골이 발견된 돗토리 현은 동해와 맞닿은 혼슈 지방의 해안 도시이고, 사가현은 규슈 지방 북부에 있다. 두 곳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이다. 일본에는 수만 년 전부터 동북아시아에서 들어온 아이누 족, 류큐 인 등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수렵이나 채집 생활을 했다. 기원전 4∼5세기경 한반도를 통해 도래인이 건너가 벼농사와 함께 청동기 및 토기 문화를 전파하면서 일본에서는 비로소 농업 혁명이 시작된다. 일본 문명의 원형이 만들어진 야요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100여 개의 부족국가를 세우고 서로 경쟁하다가 마침내 4세기에 야마토(大和)라는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다. 일본의 야요이 시대와 야마토 시대는 한반도 이주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치권력이 들어선 야마토 시대는 고분문화 시대(AD 300∼700)라 불릴 정도로 무덤이 많은데 대부분 백제의 고분과 비슷하다. 대륙 혼란이 일본 이주사 만들어 그렇다면 한국인이 일본으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한 2300년 전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대륙은 큰 혼란의 시기였다.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앞두고 진·초·연·제·한·위·조 7웅이 피의 전쟁을 벌이던 전국 시대(BC 453∼221)였다. 이때 한반도와 만주 지방에는 고조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중국의 역사서에 따르면 고조선은 기원전 7세기경 처음 등장해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중국 요녕 지방에서 한반도 서북 지방에 걸친 강력한 국가였다. 그러나 기원전 300년 전 중국 전국 시대 칠웅의 하나인 연이 고조선에 쳐들어왔다. 이로 인해 고조선은 서쪽으로 2000리에 이르는 땅을 잃고 평양 지역으로 옮겼다. 이때 많은 고조선 주민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 뒤 삼국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홍익대 김태식 교수는 4∼7세기에 한반도로부터 일본으로 대량 인구 이동이 세 차례 있었다고 본다. 먼저 삼국 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4∼5세기에 백제 북부 지역 주민들과 낙동강 유역의 가야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어 5세기 후반에 백제 귀족과 한강 유역의 주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7세기에 접어들어 신라가 3국을 통일하면서 백제와 고구려의 망명객들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DNA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특별한 관계가 드러나자 아키히도 일왕은 월드컵 공동 개최 직전 한일 왕실 간의 핏줄 커넥션까지 공개했다. 환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왕의 후손이라고 밝힌 것이다. 환무 천황의 생모는 789년에 죽은 다카노 니이가사이다. '속일본기'는 다카노 황태후가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 태자의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의 순타 태자는 505년 일본에 파견됐다가 8년 만에 죽었다. 짧은 일본 체류 기간 동안 그는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 후손이 바로 일본의 황태후가 된 다카노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순타 태자의 후손들은 다카노 황태후가 나올 때까지 무려 270년 동안 일본 귀족 사회에서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는 명분으로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산 셈이다. 고대 고구려어가 일본어의 뿌리 일본인과 일본 문화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총지휘한 도쿄 대학 인류유전학자인 오모토 게이이치 교수가 한국에 왔을 때 그를 호텔로 찾아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100명의 일본 학자들과 여러 분야의 연구자를 총지휘하며 일본 민족과 일본 문화의 기원을 밝혀낸 중심 인물이다. 그 역시 대륙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온 도래인이 일본인의 80%를 형성했고 한반도가 그 길목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도래인이 일본에 정착했을 무렵 사람들의 묘지가 있는 야마구치 현 도이가하마 인류학박물관에 가면 당시 묻혀 있는 사람들의 머리가 모두 한국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은 이처럼 가까운데도 왜 말이 다를까? 현대 일본어와 현대 한국어는 단어의 유사성이 15% 정도로 그다지 높지 않다. 핏줄이 가깝다면 말도 상당히 비슷해야 하는데 서로 말이 너무 다르다. 그 이유는 고대 고구려어가 일본어의 뿌리가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 한국어는 신라의 말이 뿌리가 됐고 그 후 훈민정음이 만들어지면서 상당한 변화를 겪었지만, 일본어는 이미 한반도에서는 사라진 고구려 언어가 뿌리가 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제어드 다이아몬드 교수도 고대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다른 언어를 갖고 있었으며 현재의 한국어는 신라어에서, 일본어는 고구려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어는 기원전 400년 경 한반도에서 일본 남부 규슈로 건너와 쌀농사를 짓고 이 농사법을 일본 북부로 퍼뜨린 고구려 농민의 언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는 이두나 구결, 향찰이라는 한자로 표기했다. 3, 5, 7 숫자는 고구려어로는 密, 于次, 難隱로 표기된다. 이는 '미', '이쓰', '나나'로 발음되는 일본어와 비슷하다. 과거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으로 우리는 일본인을 왜인(倭人)이라고 부른다. 키가 작기 때문이다. 키가 큰 한국 사람이 일본인과 어떻게 유전자가 같으냐고 할지도 모른다. 일본인이 키가 작은 것은 환경적 요인이지 유전자 때문이 아니다. 몇 년 전 일본의 생수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의 생수는 칼슘성분이 한국보다 매우 적었다. 일본인이 작고 치아가 튼튼하지 못하고 뻐드렁니가 많은 것은 칼슘 부족 때문이지 유전자가 우리와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한일 간의 혈족 관계가 밝혀지고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면서 한일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두 나라가 협력하면 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 수 있는데도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만 집착해 일본인을 증오하고 있다. 일본인도 같은 핏줄을 괴롭힌 부끄러운 역사를 솔직히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한국도 무조건적인 반일 감정에서 벗어날 때 한국과 일본은 피를 나눈 진정한 형제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산행교훈*
신아연 | 호주칼럼니스트 2월, 새 학년 시작을 앞두고 지난해의 묵은 교과서와 노트, 필기도구 등을 제 방 한가득 펼쳐놓고 정리하는 아들애를 돕다가 잡동사니 사이에 묻힌 유난히 낡은 과학책에 눈길이 머물렀다. 겉장은 벌써 어디로 떨어져 나가 없고 손때로 갈피갈피 말려 올라간 각 페이지, 여백의 군데군데 낙서까지, 지난 한 해 동안 아들애의 손에 몸살을 앓았을 과학책의 고단함이 한 눈에 읽히는 듯했다. 옆에 있는 영어와 수학책도 꼴이 남루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올해까지 계속해서 2년 연속 써야 하는 체육책은 그나마 좀 얌전하게 간수한 듯했다. 대학의 원서 버금가는 두꺼운 지질의 교과서가 이 지경이 될 정도로 책을 험하게 다룬 아들애에게 한마디 주의를 줄 법도 하건만, 책 더미 속에서 과학책의 표지를 찾는 손길 중에도 잔소리는커녕 오히려 흐뭇하고 내심 대견하기조차 했다. 아들애가 지난 1년간 사용한 과학 교과서는 실은 헌책이다. 표지 안쪽에 쓰여 있는 우리 아들의 이름 위에 또 다른 두 아이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교과서의 주인이 3년 내리 세 번이 바뀌었던 모양이다. 지난 해 9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을 시작하면서 아들애는 새 교과서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러는 녀석을 타일러서 되도록 깨끗하게 사용한 헌 책을 사도록 했는데 영어, 수학, 사회 등 죄다 남이 쓰던 것으로 장만하던 중에 과학책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새 책, 새 공책, 새 필기도구로 산뜻하게 새 학년을 시작하고 싶었던 소망이 일그러져서 제 딴엔 기분이 후줄근했을 텐데도 녀석은 헌 책들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여 학년말에는 우등상도 받고, 특히나 과학과목은 학년 전체에서 최고점수를 받았다. 갖가지 펜으로 어지럽게 밑줄이 그어진 공식하며, 연습문제 풀이에는 새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해답이 쓰여 있는 열악한(?) 환경의 교과서를 가지고도 우수한 성적을 냈으니 책을 좀 험하게 다루었다한들 대수일 것도 없고, 어미의 마음에는 그저 기특하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 애 뿐 아니라 호주에선 매해 학년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구입을 놓고 부모와 자식들 간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선배들의 교과서를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대개는 부모들의 뜻을 따르게 된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교복과 체육복, 가방, 심지어 신던 구두조차도 후배들에게 물려주어 재활용 할 수 있는 데까지 사용토록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새 학기 시작을 앞둔 1월 초순경에, 더 이상 필요 없는 교과서나 교복 등을 팔고 싶어 하는 학생들로부터 수거하여 일정한 값을 매겨 신학기 준비물 기간동안 판매를 대행해 준다. 물건이 팔리는 대로 각 개인별로 집으로 수표를 보내주기 때문에 학생들은 되도록 빨리 새 임자를 만나게 하려는 조바심에 평소 사용할 때도 깨끗이 취급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부모 마음으로는 자식한테 다른 것도 아니고 교과서 하나쯤 새 것으로 사주지 못하랴 싶지만, 만만치 않은 신학기 준비물을 생각한다면 보통 가정에서는 그도 쉬운 노릇은 아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새 책으로 구입할 경우 과목당 5만원 내지 10만원을 훌쩍 넘는 게 보통이고, 여기에 교복을 비롯해서 학용품 및 기타 신학기 필요용품을 전부 합치면 한 자녀 당 최대 80만원을 상회하기도 한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이보다 덜 들지만, 호주에서는 1년간 필요한 수업 준비물 일체를 새 학년 새 학기에 한꺼번에 일괄 갖추도록 하기 때문에 집집마다 목돈이 필요하고 형제가 여럿이다 보면 감당하기가 벅찬 가정이 많다. 그러다보니 되도록이면 쓰던 것을 물려받거나 비싼 값을 치루고 새로 산책은 절반이라도 건지기 위해 학생들의 신학기 용품 재활 습관이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교과과정이 개편되어 교과서가 바뀌지 않는 한 학교마다 펼치는 책 물려받기 전통은 좀체 대가 끊어지지 않으면서 학부형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데 한 몫을 하는 것이다. 한편 이맘 무렵이면 형편이 어려운 가정들의 새 학기 준비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회도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을 펼친다. 평소 생활 곳곳에 알뜰살뜰 배어있는 이 나라의 재활용 문화가 이웃을 향해 보람과 빛을 발하는 순간 중의 하나로 재활용품 판매 대금으로 장학금을 마련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일반 가정에서 내다버린 생활 집기나 옷가지 따위를 모아 깨끗이 수선하고 정리 정돈한 후 재활용 가게를 통해 1~2달러의 값으로 팔아 모은 수익금의 일부를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학자금이나 학용품 구입비로 환원을 하는 것이다. 재활용 기금을 통해 고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매년 50~100만원 정도를 보조 받으면서 학업을 마친 학생들의 경우 비록 액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 돈이 모아지기까지의 따스한 손길과 정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 푼을 쓸 때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감사를 표하곤 한다. 재활용품점은 또 신학기가 되면 시내 각 학교로부터 학생들의 작아진 교복이나 헌 가방 등을 수집하여 대대적인 할인판매에 돌입한다. 깨끗이 손질이 된 물건을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잇점으로 인해 자녀수가 많거나 소득이 낮은 가정들을 단골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무엇이 되었건 자식들에게 최상의 것을 해주고 싶고, 학업이나 학교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주는 것에는 그 정성이 더욱 앞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고, 그로인해 학생들 간에 위화감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호주 학교처럼 빈부 구분 없이 아예 헌 책으로 공부하는 것을 전통으로 굳혀 버린다면 학생들이나 부모들이나 마음 언짢은 일 없이 새 학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선배들의 수고와 땀, 노력의 흔적이 여기저기 배어 있는 교과서의 갈피갈피를 넘기면서 앞서 걸어가면서 빠뜨린 공식이라도 있다면 뒷사람이 챙기며 따라가는 재미도 느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