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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북부교육청(교육장 윤낙영)이 초등학교 3학년 학생 30명과 학부모 27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미술교실이 결실을 맺어 8일부터 14일까지 부평동초등학교에 있는 북부미술교육관에서 미술작품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학생들은 회화, 디자인, 조소, 조형놀이 작품 등 70여점을, 학부모들은 소묘, 수채화, 문인화 등 30점 을 전시하는 등 100여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 미술지도를 담당했던 인천부마초등학교 김명숙교사는 전시작품들이 의외로 수준작들이 많다고 말하고 앞으로도 여러 다양한 미술 표현, 감상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학생, 학부모의 미술에 대한 이해와 특기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17대 국회 들어 해마다 되풀이돼 온 연말 대치정국이 올해도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재연될 조짐이다.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고 이에 반발한 한나라당이 장외투쟁까지 벌인 이후 국회가 열릴 때 마다 파행의 불씨를 제공해온 사학법이 결국 새해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연말 임시국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은 이날 소집된 국회 교육위 전체회의에서 재개정 방향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하자 일단 12월 임시국회 첫날인 11일 시한부로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기로 결정, 초장부터 가파른 대치를 예고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현행 사학법의 핵심인 '개방형 이사제' 조항을 전면 수정하고 임시이사 파견 주체도 법원으로 바꾸는 안을 여당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남은 의사일정에 모두 불참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역시 개방형 이사제 만큼은 손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국회파행의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이럴 경우 지난해 말처럼 한나라당의 불참 속에 우리당이 비교섭단체들과 함께 상임위와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과 주요 법안들을 처리하는 '반쪽 국회'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개방형 이사제란 학교 구성원인 교사와 학부모 등이 추천하는 '개방형 이사'를 사학 이사진 정수의 4분의 1 이상 임명하도록 하는 제도. 우리당은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제도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사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우리당은 개방형 이사제와 임시이사 관련 조항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학법을 재개정하되,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법도 함께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한나라당과의 합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이날 교육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우리당의 재개정안은 학교장 중임 허용, 이사장 친.인척의 학교장 취임을 조건부로 승인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지만, 한나라당 교육위원들은 이를 "핵심이 빠진 생색내기"라고 비판하면서 교육위에 이미 계류중인 자당의 재개정안을 처리하자고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상당수 사학을 보유한 종교계와 사학재단 당사자들의 측면 지원도 호소할 계획이다. 김형오(金炯旿) 원내대표와 이주호(李周浩) 제5 정조위원장을 비롯한 국회 교육위원들은 11일 오전 의총을 열어 사학법 재개정 의지를 다진 뒤 사학법인연합회 조용기 회장과 한기총 박종순 목사를 예방해 재개정 방향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다. 김 원내대표 등은 14일에는 불교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을 만날 예정이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과도 면담 일정을 잡고 있다고 주호영(朱豪英)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여야가 막후 협상을 통해 사학법 재개정안과 로스쿨법의 처리를 2월 임시국회로 미루기로 하고 새해 예산안은 예정대로 15일까지 처리키로 했다는 이른바 '이면합의설'도 흘러나오고 있으나 협상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서울지역 공립 초ㆍ중등교원의 명예퇴직 신청이 2.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공립교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결과 초등 462명, 중등 231명 등 693명으로 지난해의 187명(초등 94명.중등 93명)보다 무려 270.6% 늘어났다. 지난해 89명이 명예퇴직한 사립중등교원의 경우 올해 명예퇴직 신청자 수가 교육당국에서 아직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공립교원의 명예퇴직 신청 결과로 추정하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사립교원의 명예퇴직 신청 현황이 집계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은 해당 교원들이 교육당국이 아닌 사립학교 재단에 명예퇴직 신청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지역 교원의 명예퇴직 신청이 급증한 것은 연금액 축소를 골자로 한 공무원연금법 개혁안이 구체화되면서 상당수 교원들이 현재의 공무원 연금법에 따라 올해 명예퇴직을 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명예퇴직 수당으로 317억원의 예산을 잡아놓았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명예퇴직 신청이 너무 많을 경우 교장과 교감 등 상위직급자와 연금법상 재직기간이 오래된 교원 등을 우선으로 명예퇴직수당 예산의 범위 내에서 명예퇴직자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원도교육청은 맞벌이 부부 자녀의 보육 기회 제공과 양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치원 종일반을 대폭 확대키로 했다고 8일 밝혔다. 강원도교육청에 따르면 도내 공.사립 유치원 총 412곳(공립 304, 사립108) 가운데 현재 44.7%인 184곳(공립 97, 사립 87)에서 운영되는 종일제를 내년에는 64곳을 늘려 60.2%인 248곳(공립 49, 사립 15)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강원도교육청은 이들 유치원에 종일반 교육 담당자를 별도로 배치하는 한편 운영에 필요한 급식시설이나 취침, 안전, 교육시설 등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모두 4억여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이 늘어나면서 유치원 종일반 설치가 꾸준히 요구되어 왔다"며 "유치원 종일반 확대가 출산 기피 현상을 줄이고 질 높은 유아교육을 실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입니다. 옛날 어릴 적, 덜렁되던 우리들이 문을 덜 닫고 들어오면 할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뒤에 꼬리가 달렸나. 문은 왜 끝까지 안 닫고 들어오니?” 겨울에는 문이 조금만 열려있어도 찬 바람이 쌩쌩 들어옵니다. 생각보다 춥습니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옵니다. 교무실엔 사람들의 출입이 잦습니다. 특히 출입구 옆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조금 덜 닫힌 문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모릅니다. 한 사람 지나가면 일어서서 덜 닫힌 문을 닫고 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 또 일어나서 또 덜 닫힌 문을 또 닫고 옵니다. 그냥 있자니 작은 문틈으로 찬바람이 쌩쌩 들어오고 계속 닫으러 가지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닙니다. 하던 일도 중간 중간 끊기니 짜증도 납니다. 여기에 좋은 아이디어를 하나 냈습니다. 문방구에 가서 200원 하는 고무줄 세개를 사 왔습니다. 고무줄을 출입문 끝에 압침으로 고정시킵니다. 마찬가지로 반대쪽으로도 고무줄에 압침을 꼽습니다. 그러면 자동문이 됩니다. 문만 열면 닫지 않아도 스르르 닫힙니다. 여간 편리한 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세게 닫아 문소리가 크게 들리곤 하였지만 어느 정도 알고부터 자연스럽습니다. 혹시 출입문 앞에서 추위에 떠시는 분이 있다면 이 방법을 사용하여 따뜻한 겨울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정말 ‘바람 잘날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교장공모제 때문에 교직 사회를 술렁이도록 한 게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에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교육 자치를 말살시키고 있다. 또 퇴직 또는 사망과 공무로 인한 부상ㆍ질병ㆍ폐질에 대하여 적절한 급여를 줌으로써, 공무원 및 그 유족의 생활 안정과 복리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공무원연금마저 제도적 성격이 다른 국민연금의 논리에 맞추며 장래를 불안하게 한다. 어제(12월 7일) 충북교총과 충북교육청간에 있을 단체교섭에 관한 교섭위원 협의회가 충북교총 회관에서 있었다. 그 시간에 국회의원들은 학운위원들이 뽑던 시도교육감과 교육위원의 선출방식을 주민 직선으로 전환하고, 현행 시도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 내 특별상임위원회로 편입하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불어오는 칼바람이 화제가 되었다. 해결책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방안이 오고갔다. 이날 자리에 같이 참석했던 김운념 한국교총부회장님은 한국교총에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힘겨운 일이 많다면서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김용동 청주시회장님도 모든 회원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문제는 복잡한 사안이 발생해도 남이 해줄 때만 기다리는 교직사회의 무관심으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무관심이 유죄’라는 얘기였다.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갑자기 교섭위원을 맡고 보니 교섭내용을 찾아내는 게 문제였다. 사실 관리자들이 교직원의 근무나 복지에 대해 관심이 많고, 직원들끼리도 네 일ㆍ내 일을 가리지 않는 환경에서 근무하다보니 부족한 게 없었다. 교직원들의 근무환경이나 복지개선에 필요한 내용을 알려달라고 여러 사람에게 e-mail을 보냈다. 학기말 정리에 바쁜 시기라는 것은 잘 알지만 우리 모두의 일인데도 관심들이 없었다. 그나마 몇 명의 친구가 답장을 보내온 게 다행이었다. 만만한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다. 교사의 권위마저 호락호락 쥐어주지 않는 세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제 몫은 자기들이 알아서 챙겨야 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교직원들마저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에서 구호를 외쳐야 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집단행동에 익숙하지 못한 교직원들은 정치논리에 이리저리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교육자치법과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학교와 학생이 정치적 부속물로 전락하고, 퇴임 후 생활안정을 대비했던 수십 년 간의 꿈이 한순간에 날아갈 게 뻔하다. 그런데도 남의 일인 양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런 때 일수록 교직원들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 교원단체에서 이뤄 논 업적들이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야 한다. 그런데 아직 교원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교원들이 많다. 무임승차에 맛들이기 전에 교원단체들 때문에 누리는 혜택이 무엇인지 실리를 따져봐야 한다. 초가삼간 다 태운 뒤 후회하지 말고 이런 기회에 교원단체에 가입해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 피해당사자인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직접 나서는 게 먼저다. 모든 것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승전고를 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목소리는 내자는 것이다. 훗날 바보 같았다는 비아냥거림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 몫은 찾아내자는 것이다. 교원단체에서 할일도 그만큼 많아졌다.
▶「메기다」와「매기다」 위의 두 동사는 그 뜻이 서로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구분 없이 사용하는 예가 많다. “운동회에서 달리기 등수를 메기다” “화살을 시위에 매기다” 「메기다」는 ‘두 편이 노래를 주고받고 할 때 한편이 먼저 부르다’ 또는 ‘화살을 시위에 물리다’ 등의 뜻으로 쓰이며,「매기다」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물의 값이나 등수를 정하다’ 또는 ‘일정한 숫자나 표식을 적어 넣다’ 의 뜻이다. 그러므로 위에서의 두 문장은 「메기다」와「매기다」를 서로 바꾸어 써야 맞는 말이 된다. “운동회에서 달리기 등수를 매기다” “화살을 시위에 메기다” ▶「-하데」와「-하대」 이 말도 TV방송 자막에서 예사로 틀리게 쓰는 말 중의 하나이다. “자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대” “그 친구는 곧 결혼한다고 하데” 「-하데」와「-하대」는 둘 다 동사의 어미에 붙어 쓰이는 종결어미로서, 「하데」는 ‘과거 어느 때에 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사실을 현재의 말하는 장면에 그대로 옮겨와서 말함’ 이며, [-하더군]과 같은 말이다. 「하대」는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남이 말한 내용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말’ 이며 [-한다고 하더군] 과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위의 두 문장에서도「하데」와「하대」를 아래와 같이바꾸어 써야 맞는 말이 된다. “자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데” “그 친구는 곧 결혼한다고 하대”
요 며칠 간 우리 학교(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 교장 구이완)에서는 작지만 아름다운 전시회가 학생들,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학교 등나무 아래에서 푸른꿈, 맑은 생각 표현전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미술부, 만화부(지도교사, 송규상)가 일년 동안 특별활동 시간과 특기 적성을 살려 그림그리기, 만화그리기, 서예 작품 등을 만들어 부족하지만 아름다운 실력을 뽐내고 친구, 선생님들, 학부모님들께 스스로 그린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조금 쌀쌀한 날씨이지만 서로 격려하고 일년을 결산하는 의미 있고 뜻 깊은 자리이다. 인문계 학교에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활동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아름다운 작품들을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니 어떤 큰 작품전시회보다 더 아름다운 전시회 자리인 것 같다. 특히 미술부원들은 올 여름 무더운 뙤약볕 아래에서 한국사랑의집짓기(해비타트) 군산문화 마을에서 지도교사인 송규상선생님과 벽화를 그리기도 하였고 이번 겨울 방학에는 사회복지시설 사랑의 집에서 어르신들을 위하여 조그마한 운동 공간에 벽화를 그리기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이 재능과 소질을 더 발달시키고 학창 시절에 아름다운 꿈들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미술부, 만화부 학생들 송 선생님 파이팅입니다.
지난 해까지 문화일보·교육부·한국언론재단·SK네트윅스가 공동 주최한 ‘전국학교미디어콘테스트’ 가 어찌된 일인지 올해부터 한국언론재단 단독 주최의 ‘2006년도 NIE우수수업사례 및 학교신문, 교지우수작 공모’ 로 실시되었다. 이미 심사결과 발표에 이어 8일 시상식이 치러졌다. 재단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정하고 엄격한 지역예심과 본선심사를 시행했” 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학교신문·교지공모에는 내가 보기에 몇 가지 의문점 또는 아쉬운 점이 있다. 먼저 심사기준이다. 주최측이 제시한 심사기준은 5가지다. 작품내용·제작과정·편집체제·표지·인쇄제본 등이 그것이다. 그중 ‘교육적 공헌·편집내용의 창의성·학생작품의 질적 수준’ 등 3개항으로 된 작품내용이 가장 많은 배점(40점)이다. 결국 ‘교육적 공헌’ 이 당락을 좌우하는 셈인데, 이건 잘 맞지 않는 심사기준이다. 특히 ‘학생작품의 질적 수준’ 이 그렇다. 교지의 경우 일반계와 실업계 학생들의 학습량이나 면학 분위기 등 모든 것이 다른데, 어떻게 학생작품의 질적 수준이 심사의 주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학교신문의 경우 학생작품의 질적 수준은 전혀 말도 안되는 심사기준이다. 학생기자들이 쓰는 사실보도의 신문기사에 무슨 질적 수준을 가지고 심사를 한다는 것인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어쩌다 실리는 일반 학생들 문예작품의 질적 수준이라면 이 역시 실업계 차별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시해야 할 심사기준은 계속발행 여부이다. 교지야 어느 학교든 1년에 한 번 내는 것이 일반적이라 말할 나위가 없지만, 신문은 다르다. 예컨대 3개월마다 정기발행하는 것과 공모에 출품하려고 1년에 한 번쯤만 내는 신문이 같을 수는 없다. 아니 1년에 한 번 내는 것도 신문이라 할 수 있는가? 계간의 경우 연중 학교신문제작에 참여하게 되지만, 1년에 한번이라면 교지처럼 한두 달 반짝하면 만들 수 있다. 이 점은 일반계 고교가 처한 입시지옥의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도 ‘가볍게’ 상을 받는데 성공한다면 ‘우수작공모’ 의 명예에 먹칠이 됨은 물론이다. 다음은 시상규모다. 무슨 신춘문예도 아니고 552편(주최측 발표지만, 이것도 의문이다. 교지·신문의 경우 도교육청에서 예심통과작을 올려보낸 건 각 1편씩이니 말이다.)중 27명(3개분야 망라)만 뽑는단 말인가? 교직 23년동안 백일장이며 공모대회를 많이 참가해보았지만, 장려상이 없는건 한국언론재단의 이번 공모에서 처음 보는 것 같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심사위원의 자의적 판단이다. “외부 전문가에 의해 도움을 받아 제작된 작품(심사위원 판단)은 감점 또는 결격조치” 한다는 단서가 그것이다. 그러면 너무 잘 만든 것도 ‘죄’ 란 말인가? 그런 냄새가 풍기면 직접 확인을 거쳐 걸러내야 맞다. 만약 심사위원의 자의적 판단으로 탈락시킨 신문이나 교지가 진짜 학생들과 지도교사의 손길로 이루어져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묻고 싶다. 어떤 상이든 상은 수상자에 대해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 때 그 취지와 권위를 지닐 수 있는 법이다. 주최측은 이런 지적을 토대로 많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도교육청의 예심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어쩌다 한 번쯤 내는 ‘출품용’ 학교신문이 상을 받는 일은 없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 중의 하나가 ‘선생님’이다. ‘선생님’이란 ‘선생’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나온 ‘선생’의 뜻을 살펴보면 가장 흔히 쓰이는 의미로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의미가 점점 분화되면서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을 의미하고, ‘성(姓)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부르는 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디 또 그뿐인가.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남자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조선 시대에, 성균관에 둔 교무 직원을 이르는 말’이며, 또는 ‘각 관아의 전임 관원을 이르던 말’이기도 하다. ‘선생’과 비슷한 옛말을 찾는다면 ‘훈장’이란 말이 있다. ‘훈장’이란 옛날 ‘글방의 선생’을 이르는 말이다. 또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사람을 이르는 예스런 말’이다. 영어사전에서는 이에 맞는 말이 ‘Teacher’이다. 이 ‘Teacher'는 ’학교 또는 유사한 교육기관에서 직업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요, 또한 존칭의 의미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 현실은 ‘선생님’이란 말이 남용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교육계에서도 일반직 중심의 공무원노조와의 협약에 의해서 기능직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이도록 한 바 있다. ‘선생님’이란 용어 사용의 인플레 현상을 불러 온 대표적 사례의 하나이다. 바로 그 이후부터 학교를 비롯한 모든 교육기관에는 ‘선생님’들로 꽉 차 버렸다. 또한 은행, 관공서, 증권회사, 병원, 약국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시장, 이발소, 목욕탕, 백화점 등에도 온통 ‘선생님’들이 점령을 하고 말았다. 가히 우리나라는 ‘선생님’ 세상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선생님’이라는 말이 좋은 의미이니까 모든 사람에게 붙여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일지는 모르나,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는 정체성의 혼란을 주는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는 거지까지도 선생님이 되고 있는 세상’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한때는 학교 선생님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진 세상에서 흔하게 붙여 쓰는 말이 ‘선생님’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누구나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일 수 있는 세상은 현실 세계에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상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분명 이상세계이고 별천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선생이라고 붙여 쓸 수 있는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인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이젠 너무나 흔히 쓸 수 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 쓰임의 빈도만큼이나 흔한 것이 어쩌면 ‘선생님’이고, 그 흔한 만큼이나 특별한 구석이 없는 것이 또한 ‘선생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정말 두렵기까지 한다. DJ정부 이후 계속된 교사 때리기는 교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촌지수수와 부패에 오염된 선생님들을 연중 카메라에 담아냄으로써 선생님은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무도 선생님을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게 되면서 ‘선생님’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흔한 존재가 되었다.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을 만큼 ‘선생님’이란 호칭 또한 국민적 대중성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학교의 선생님’과 ‘일반 선생님’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말았다. 호칭의 남발은 ‘선생님’에 대한 비아냥거림과 얕잡음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일반직을 '선생님'부르는 경우, 대체로 직위가 낮은 분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시골 학교의 행정실장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교육기관의 과장이나 계장을 선생님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보면 '선생님'이란 호칭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낮은 지위'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나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매우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선생인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선생’이 아닌 사람에 대하여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는 것도 낯설다. ‘선생님’이라는 말에 대하여 일반 사회인들이 그렇게 집착하고 있으니 이 말은 국민 대중을 이르는 말로 돌려주고, 진짜 가르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새로 만들어 쓰자는 사람도 있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선생님’이란 말은 가르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일반들에게 쓰는 ‘선생님’이란 호칭은 일종의 장식품이지만, 선생님에게 붙이는 ‘선생님’은 하는 일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디 어울리기나 하는가. 선생님을 ‘과장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선생님’외에는 적당히 어울리는 호칭이 없다. 혹자는 너무 편협한 사고에 빠져 호칭 하나 가지고 너스레를 떨고 있다고 질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물을 대하는 이름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우리들의 이름에도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것처럼 ‘선생님’이란 호칭 속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기대와 바람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아무 의미도 공유하지 않은 채 일반인을 지칭하는 의미로 남용되고 있는 ‘선생님’이란 용어가 너무나 어색하지 않은가. 아무에게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선생님’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의미한다. 또한 ‘선생님에게 거는 기대 또한 별것 아니다’는 사회 적 인식의 일면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여 쓴다면 그 만큼 우리 교육은 위축되고 만다. 선생님이 ‘선생님’이어야 한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미사여구가 아니다.
N세대는 'Net Generation'이라는 뜻으로 미국의 정보사회학자 돈 탭스콧이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부연(敷衍)하자면, 1977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로 인지능력이 생길 때부터 이미 컴퓨터와 친숙한 환경에 노출된 젊은층을 가리킨다. 이전의 텔레비전세대가 지식이나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받던 세대였다면 N세대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쌍방향 통신세대로 정의 내릴 수 있다. 특히 N세대는 인터넷을 아무런 불편 없이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생활방식 또한 자연스럽게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으로 한정한다. 이러한 N세대들의 특징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에 리포터는 정보화 시대와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우리 N세대들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들에게 적합한 교육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N세들만의 독특한 특징 N세대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려고 애쓰며 자신의 개성을 존중받기를 원하고, 모든 활동에 있어서 자율적 판단능력에 맡겨줄 것을 원한다. 또한 기존의 권위적이고 수직적 교육환경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자신의 관심 밖 분야는 도외시하지만,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는 분야를 발견하면 금방 흥미를 갖고 그 속에 몰입하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인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사고와 생활방식에 맞는 교육방식을 갈망하고 있다. 둘째는 사이버 공간을 삶의 중요한 무대로 삼는다는 점이다. N세대가 접하는 가상세계는 그 자체가 바로 자신들의 삶이자 현실이다. 물리적 접촉이 없어도 사이버 공간에서 얼마든지 친구나 또래 집단을 사귀고 잡지나 영상을 만들면서 그들만의 아지트를 형성하며 행복해 한다. N세대의 세 번째 특징으로는 인터넷 쇼핑의 주요 고객이란 점이다. 각종 매스컴에서 'N세대를 잡아라'라고 떠는 것처럼 미래의 시장은 이들이 중요한 고객이 될 것이 확실하다. 따라서 일반 기업체에서도 N세대를 겨냥한 비즈니스와 마케팅 전략을 세우느라 고심하고 있다. N세대를 위한 효율적인 교육방안 이처럼 N세대는 머리않은 장래에 우리 사회의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에 사회 각 분야에서도 관심의 촉각을 세우고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교육계도 늦기 전에 이들을 위한 교육적 배려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학교를 인터넷 활용이 가능한 장소로 꾸며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반 시설을 갖추고 학생들의 욕구를 일부분이나마 해소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둘째, 학교와 포털사이트들이 힘을 합쳐 사이버 공간을 각종 창조적인 이벤트 공간으로 활성화시켜야한다. 예를 들면 학습관련 콘텐츠 개발, 인터넷관련 에피소드 올리기, 사이버 백일장, 청소년 창안공모전 등을 수시로 열어 청소년들이 불건전한 사이버환경에 빠져들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셋째, 인터넷을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NIE를 응용한 DNIE(Digital Newspaper In Education)로 통합논술 쓰기나 혹은 인터넷을 이용한 학습방법 등을 제시할 수 있겠다. 넷째, 처벌 위주의 인터넷 범죄에서 벗어나, 차라리 인터넷 예절과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인식의 전환을 모색해야한다. N세대들은 어려서부터 익명성과 가상적인 만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처벌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처벌위주보다는 사이버 윤리교육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섯째, N세대를 이해시키기 위한 교사들의 연수를 강화해야 한다. 모든 교사가 N세대를 충분히 이해할 때 비로소 원만한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N세대들은 '비트(beat)의 배를 타고 사이버 대륙으로 향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교사와 성인들은 N세대들이 사이버대륙에서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N세대가 개척하려는 사이버대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부정적인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에 대해 좀더 애정을 갖고 따뜻이 포용할 때 N세대는 진정 새 세대를 뜻하는 New세대로 거듭날 것이다.
교육감 직선 선거제를 골자로 하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전국 시.도 교육감 가운데 가장 먼저 선거를 치르게 되는 부산시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8일 부산시선관위에 따르면 현 설동근 부산시교육감의 임기가 내년 2월28일로 끝남에 따라 차기 교육감 선거일을 부산시교육청과의 협의를 거쳐 내년 2월14일께로 결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선거 입후보 예정 공무원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일 60일 전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에 내년 초대 직선제 부산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려는 교육 관료(사립학교 교원 포함) 등은 오는 16일까지 사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선관위가 잠정 결정한 선거 일정은 내년 1월 25일 선거공고, 1월 26-30일 부재자 신고 및 선거인 명부 작성, 1월 30-31일 후보등록 등으로 진행된다. 직선제 선거를 골자로 하는 법률의 통과로 '초대 직선 교육감'이라는 명예를 선점하기 위한 후보들의 치열한 각축전도 예상된다. 이번 법률안 개정으로 3선 도전이 가능해진 현 설동근 교육감의 출마가 확실시 되고 있는 가운데 초등학교 교장 출신과 대학 교수 등 5-6명의 전.현직 교육 관료들의 출마가 거론되고 있다. 설 교육감은 특히 초대 직선제 교육감 및 3선을 위해 지난 8월 청와대에서 제안한 교육부총리 자리까지 고사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선거에 전력을 쏟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조기유학 열풍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내 초.중학생의 불법 미인정 유학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회 박덕순 의원은 8일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분석, 초.중.고등학생 유학생이 지난 2003년 8천544명, 2004년 1만177명, 2005년 1만1천808명 등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가운데 국외 유학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초.중학생 불법 미인정 자비유학은 2003년 1천970명, 2004년 3천593명, 2005년 5천167명으로 매년 1천600명씩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별로 초등학생의 경우 성남이 23.6%(768명), 고양 21%(683명), 용인 9.9%(321명), 중학생은 성남 18.5%(354명), 고양 18.1%(347명), 용인 10.2%(196명)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은 자비유학의 조건을 '중학교 졸업이상의 학력이 있거나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제한하고 있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자비유학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박 의원은 "소득 수준이 높은 분당과 일산, 용인 등 신도시 지역 중심으로 초. 중학생 조기유학이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다"면서 "자비유학 제한 규정의 법적 실효성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오늘은 마지막 시험입니다. 출근하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어두운데도 의욕에 찬 학생들은 일찍부터 등교하여 공부를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내일은 반가운 12월 첫 놀토입니다. 이렇게 좋은 놀토를 왜 내년부터 전면 시행하지 않고 미루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다시 한 번 심사숙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주간 동안 학생들 때문에 시달리고 지친 선생님들을 볼 때면 당연히 쉬게 해야 하는데,우리나라도 선진국인데 왜 미루는지? 학생들을 위해 정열을 쏟고 에너지를 소비하다 보면 놀토가 그리워지는데 왜 그러하시는지? 선생님을 위한 배려가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행함이 좋은데, 놀토가 있는 연휴로 휴식을 취하고 나면 능률이 배가 되고 기쁨이 배가 되는데 하면서 혼자서 중얼거려 봅니다. 저는 어제 오후 어느 교수님의 글의 일부를 접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알고 지내던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는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으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지요./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는 데도/ 늘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 이 글을 읽고서 교훈을 받게 됩니다. 이 내용은 일하는 사람의 그림을 그린 것 아닙니까? 그 그림의 순서가 곧 집을 짓는 순서 아닙니까? 뭐 평범한 내용을 가지고 커다란 감동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집을 지을 때 순서를 무시하면 집이 안 되잖아요.우선순위가 바뀌면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없잖아요. 기초부터 짓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없잖아요. 순서를 무시하고 거꾸로 하면 집을 지을 수 없잖아요. 저는 이 글을 음미하면서 질서가 중요함을 배웁니다. 순서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기초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기본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기본을 무시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기초를 예사로이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순서를 외면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혼돈합니다. 사람들은 기본이 안 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않는데도 기본을 무시합니다. 사람들은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오래 서지 못함을 알면서도 기초를 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순서를 중시하고, 차례를 중시하고, 우선순위를 중시하도록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기초가 확립되고 기본이 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본이 제대로 된 학생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본이 안 된 학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초가 안 된 학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선순위를 잃은 학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순서를 모르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선생님도 모릅니다. 선배도 모릅니다. 위, 아래도 모릅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순서를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우선순위도 잃은 채 생활합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과 먼저 해야 할 것을 잃어버린 채 덜 중요한 것 먼저 생각하고 덜 중요한 것 먼저 행하고 하면 어찌 됩니까? 보나마나 거꾸로 사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바둑에서 우선순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않습니까? 먼저 선수해야 할 것 선수부터 해야 하지 않습니까? 타임을 놓치면 실패하고 맙니다. 학생들의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첫째가 공부입니다. 배우는 학생이 공부보다 앞서는 것이 있다면 우선순위를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배우는 학생이 공부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됩니까? 때를 놓치고 나면 공부다운 공부를 못하게 됩니다. 공부가 오히려 짐이 되고 맙니다. 학생들에게는 우선순위가 공부보다 앞서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본적인 체력, 기본적인 성품, 기본적이 소양 등을 두루 갖춰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초와 기본을 잘 다져 제대로 된 학생이 되어야 장차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초가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기초 실력입니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튼튼한 집을 세울 수 없습니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데 기둥을 세우려고 하면 세워집니까? 기둥이 세워지지 않은데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을 지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초등학교 실력이면 초등학교 공부부터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중학교 실력이면 중학교 공부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고1 실력이면 고1공부부터 하면 됩니다. 기초를 닦는데 부끄러워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시간이 더디더라도 기초가 튼튼하면 언제든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언제가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기초를 쌓아야 합니다.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기초 실력도 중요합니다만 기본 성품도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성품즉 성실, 노력, 인내, 절제, 정직, 근면, 예의범절 등을 두루 갖춰야 합니다. 이게 바로 집을 짓는데 전기나 설비에 해당된다 할 것입니다. 사람됨은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느냐, 그러하지 않느냐에 구분됩니다. 아무리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고 튼튼한 집을 짓는다 해도, 내부벽돌을 쌓고 벽을 바르고 좋은 벽지를 바르고 도색을 한다 해도 전기나 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집 구실을 못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기초 실력을 갖춰 공부를 잘하는 실력있는 자가 되어도 사람이 해야 할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초와 기본은 함께 가야 합니다. 기초와 기본은 필수입니다. 기초와 기본은 선택이 아닙니다. 기초와 기본은 둘 다 중요합니다. 기초와 기본이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기초와 기본이 평행선을 유지해야 합니다. 실력은 기초가 되어야 하고 성품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죽자사자'와 '죽자살자'에 대해서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한다고 할 때 '죽기살기로 한다'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으로 '죽자살자' 또는 '죽자사자' 같은 표현이 있지요. 예를 들어서 '죽자살자 그 일에 매달렸다'라든가 '죽자사자 싸운다'와 같이 말할 때가 있는데, 이 중에서 맞는 것은 어느 것일까요? 이때는 '죽자사자'가 맞습니다. 물론 이것은 '죽다'와 '살다'라는 동사가 어우러져서 나온 표현입니다만, 이 경우에는 '살자'의 'ㄹ' 받침이 뒤에 오는 'ㅈ' 때문에 탈락돼서 '죽자사자'가 맞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하자마자'라는 표현을 들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하자말자'라는 말에서 'ㄹ'이 탈락된 것입니다. 죽자사자 매달린다. (o) 죽자살자 매달린다. (x) 그리고 '죽기살기로'나 '죽자사자'와 비슷한 뜻으로 쓸 수 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흔히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라는 말도 많이 하는데, 여기서 '까무라치다'는 잘못된 것이고 '까무러치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즉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라고 말해야 올바른 표현이 됩니다. (자료출처: 국립국어원)
엄숙한 아침 직원 모임시간이다. 각 선생님이 여러 전달사항을 발표하고 있는 사이 휴대폰에 문자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아주 먼 변방의 자리라 살짝 휴대폰을 꺼내 쳐다본다. “고개 한번 돌려 보세요.” 이게 뭔 소리. 다시 한 번 문자판을 쳐다본다. 고개를 돌리라니. 뭔 의미이지 몰라 정말 고개를 좌우로 한번 돌려보았다. 그러자 조그맣게 열린 문틈으로 아침 조례시간까지 없었던 학생이 쪼그리고 앉아 나를 보면서 환한 미소와 함께 V자를 그린다. 늦게 왔지만 학교는 왔는데 직원 모임이 진행 중이라서 교무실에 들어갈 수는 없다. "선생님" 하고 작은 소리로 불러보기도 하고, 문을 살짝 두드려 보기도 하고 자기 나름대로 여러 신호를 보내도 담임은 전달사항 적느라고 바빠 문 쪽으론 쳐다보질 않으니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이다. 그 뛰어난 아이디어로 나중에는 칭찬을 받았지만 그땐 나도 놀라 얼른 손으로 ‘문 닫아라’는 신호를 보낸다. 학생은 문을 살그머니 닫고 사라진다. 우리 반은 성과급제다. 등교시간 기록부가 있다. 오는 순서대로 시간을 적는다. 일찍오면 칭찬을 듣는다. 늦게 오면 늦게 간다. 지각생은 담임에게 눈도장 찍히기 전에는 아직 안 온 걸로 취급한다. 늦게 온 사람은 늦은 시간 곱하기 2만큼 봉사하고 간다. "차라리 매 맞고 빨리 갈렵니다." 라고 주장하는 학생이 제법 있는 걸 보면 이 제도는 성과가 확실히 있나 보다. "선생님은 폭력교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 걸레로 바닥만 닦지 말고 마음도 닦으세요." "벌이라 생각말고 수양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합시다." 이제 학생들도 이 문구를 다 외운다. 이렇게 찌지고 볶다 보니 벌써 한해가 다 지나 가고 있다.
빠르면 2010년부터 거주지와 상관없이 원하는 학교에 지원할 수 있도록 서울의 고교 배정제가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감은 물론, 학군통합으로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보장될지도 의문이다. 특히 비강남권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어느정도 강남권을 선택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현재의 구조로 볼때는 그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우선 비강남권에서 강남권 고등학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정적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즉 비강남권에서 강남권으로 고등학교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거주지를 이전해야 하는데, 강남권의 부동산 가격을 볼때 그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신성적의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내신의 불리함을 각오하고 강남권으로의 지원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반면 강남권에 거주하면서도 비강남권으로 배정받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렇게 될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배정될 경우 강남권의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발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학군을 통합한다고 학생의 선택권이 높아진다고 보기 어렵다. 학생의 선택권 확대를 위한 제도개편이 별다른 실효성없이 혼란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제도가 바뀜에 따라 어느학교의 수준이 높다는 정확한 근거없이 막연히 좋을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진학후에 기대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면 멀리 학교를 힘들게 다닌 학생들이 피해자가 될 것이다. 이런 식의 개편은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자칫하면 명문과 비명문간의 차이만 가중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부여하기 위함이라면 평준화의 틀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기 전에는 해결되기 어렵다. 우선 여건이 갖추어진 고교만이라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향후에는 여건을 보면서 점차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학교간의 수준차가 커지지 않도록 여건을 조성하면서 서서히 확대하면 될 것이다. 한편 이번의 개편안이 부동산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즉 강남권의 부동산을 잡기위해 내놓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학부모들과는 엇갈리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앞서 밝힌바와 같이 학부모들은 강남권으로 무리하게 이전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통점은 효과가 별로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강남권으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거주지를 옮겨야 하기 때문에 현재보다 도리어 강남권으로의 이전욕구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도리어 강남권의 부동산가격을 더 높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강남권을 떠나는 비율에 비해 강남권으로의 전입욕구가 더 높게 되어 부동산가격이 더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방안을 발표하기까지는 많은 연구와 검토가 진행되었겠지만 그보다는 좀더 발전된 방안이 필요했다고 본다. 임시방편적인 방안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도 공동학군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생각보다 적은수의 학생들만이 지원하고 있는 형편이다. 시행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따라서 좀더 발전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해마다 세모가 되면 나는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 설계를 하곤 했다. 옛날 중학교 때의 일이다. 중학교 1학년이 거의 끝나고 2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연말이었다. 어떤 동기에서 그랬는지 기억에 없지만 내년에는 꼭 학급에서 일등을 해 보아야겠다 하고 혼자 마음으로 다짐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해 비록 일등은 아니었지만 이등을 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이 일을 두고 새해의 다짐과 그 결과물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지금까지도 자못 재미있는 기억으로 여기고 있다. 그 후로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일기장을 준비하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그리고는 일 년 내내 일기를 쓰며 나의 독서상황을 기록하고 나의 꿈을 확인하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일은 나중에 내가 성인이 되어시와 산문을 쓰게 되었을 때 상당히 귀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노총각 시절이었는데 새해에는 꼭 결혼을 해야 되겠다 하고 다짐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약속이 이루어져 노총각을 면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 일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새해의 다짐도 불혹의 나이가 지나고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면서는 흐지부지 되었는데, 아마 잡다한 세상사로 인하여 나의 꿈이 많이 좌절을 겪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 근 십년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연말이 오거나 새해가 되어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은 것이 말이다. 허겁지겁 아이들 뒷바라지에 신경 쓰고 경제문제에 매달려 노심초사했을 뿐인 것이다. 그 사이 벌써 나이를 먹어 오십 후반에 들었으니 이를 이제 어쩌겠는가. 그런데 세모가 가까이 다가오는 요즈음 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오는 것을 감지했다. 가만히 보니 옛날 젊었을 때와 같이 지나간 한 해에 대한 반성과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다짐 같은 것이 아닌가. 모처럼 다시 가져보는 나 자신의 발견이라 할까. 한편 신선하기 까지 하다. 더군다나 곰곰이 심사숙고 하여 새해의 다짐을 세워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떤 다짐 같은 것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들어앉는 것이 아닌가. 저절로 들어와 자리하는 새해의 다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래 모처럼 나는 새해의 다짐을 세워보았다. 우선 새해에는 욕심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런 저런 잡다한 욕심에 내가 찌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동안 내가 유별나게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난한 교사로 서민 아파트에 살면서 항상 부족을 느끼며 살아왔을 뿐이다. 새삼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 하는 것이 오히려 생소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드려다 보면 내 마음에도 많은 욕심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그런 거 떨쳐버리고 마음을 좀 비우겠다는 뜻이다. 안분지족이란 말이 적절할지 모른다. 먼저 나는 항상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왔는데 이젠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고 하기보다는 진실하고 소박한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근무하고 퇴근하면 파김치가 되는 생활인데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계속 갖는다면 아무래도 그것은 욕심이 될 것이다. 그것은 실현될 수 없는 과욕이 될 것이다. 그래 분수에 맞게 꿈을 낮추어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고 아름다운 것을 진실하고 소박하게 쓰고 싶은 것이다. 또 나는 경제적인 욕심도 버릴 작정이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고 박봉을 쪼개어 살아왔으면서 아직도 경제적인 여유를 바란다면 그것은 격에 어울리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간신히 연명하다시피 지내왔으면서 부자 될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미련한 짓이 되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벌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꿈을 버리든지 낮춰 갖는 것도 지혜가 되지 않겠는가.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돈 욕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돈을 벌려면 돈을 벌 수 있는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박봉으로 살아가면서 거기에 맞춰 만족하지 않고 마음속에 욕심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좋은 처세는 아닐 것이다. 이제부터는 돈보다는 다른 것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겠다. 주변에 보면 주식을 사고 혹은 집을 팔아 전세집으로 옮겨 다니며 아파트 분양을 신청해서 더러 성공한 분들도 있다. 물론 나는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우직하게 서민아파트에 눌러 살았고 단 한 번도 주식을 사본 적이 없다. 그래 돈을 벌지도 못했지만 돈을 잃지도 않았으니 손해는 아닌 것이다.집을 팔아 주식을 샀다가 급기야 집까지 날리고 빈 털털이가 된 동료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가끔 이제 밥이야 굶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을 퍽 다행으로 생각한다. 아마 우리 세대가 다 가난하던 시절을 살았던 세대라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도 누가 병이라도 나면 금세 휘청거릴 것 같은 위기감을 아직 다 떨쳐버린 것은 아니다. 그래도 젊었을 때 보다는 다소 나으니 새해에는 돈에 대한 욕심은 좀 덜어내고 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바로 어떤 경우에라도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명년에 실천해 보고 또 하나 좌우명 같은 것이다. 물론 초지일관 실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적지 않은 연륜을 교직에 있으면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감정을 폭발시켜 본분을 망각한 적도 많았다. 아이들의 수업태도나 생활태도가 거슬릴 때면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체벌을 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드는 것이다. 학생들의 마음의 행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내 청소년 시절의 잣대로 요즘 학생들을 바라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교수방법을 연구하고 학습 동기를 유발시킬 방법을 강구했어야 했다. 어떤 새로운 전환점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정년도 몇 해 안 남았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어떤 새로운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바로 학생들을 사랑하자는 것이었다.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 잠만 자는 학생들, 성적이 나쁜 아이들 모두를 사랑하자는 것이다. 절대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체벌을 가하지 말고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하지 말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자. 그러려면 아이들을 이해해야 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모욕감을 느끼게 될 때라도 그 원인을 내게서 찾고 학생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자는 것이다. 학생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훈훈한 사제의 정을 나누면서 교육에 임하자고 다짐을 해보는 것이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꼭 한번 노력해보고 싶다. 안 되더라도 계속 노력해볼 것이다. 옛날에 읽은 신문의 가십 기사가 잊어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한 선생님이 담임을 했던 아이들이 한결같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사례가 있어 한 기자가 수소문 하여 그 선생님을 찾아가 그 교육방법을 물었다는 것이다.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그 선생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더라는 것이다. 바로 자기는 학생들 하나하나를 모두 사랑으로 대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 짤막한 신문 기사가 왜 오래도록 잊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요새 그 분의 말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내가 그 동안의 교육 경험에서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식물이 수분과 온도와 햇빛이 있어야 잘 자라듯이 교육에서는 사랑이 그와 같을 것이다. 충분한 사랑을 받을 때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한동안 새해가 와도 특별한 계획이나 다짐 없이 지내다가 올 연말엔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라 적어보았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욕심을 좀 덜어내고 안분지족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볼 작정이다. 또 아이들을 진정으로 이해하여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책임을 아이들에게 떠넘기지 않을 작정이다. 이것이 잘 실천된다면 교직생활의 작은 보람 혹은 결실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일본 사립 대학에 합격 후 입학을 사퇴한 수험생이, 선납한 입학금이나 수업료 등 학교 납입금의 반환을 대학 측에 요구한 소송에 대한 상고심 판결이 27일, 일본 최고재판소 법정에서 있었다. 동 법정은 「합격자와 대학이 입학을 약속한다고 하는 「재학 계약」에는 소비자 계약법이 적용된다」라고의 첫 판단을 내렸다. 동법 시행 후의 2002 년도 입시 이후, 3월 31일까지 입학을 사퇴한 수험생에게는 원칙적으로 수업료를 전액 반환하도록 대학 측에 명했다. 동법 시행전의 입시에서는 반환 의무는 없다고 하여 입학금에 대해서는 반환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학교 납입금 반환 소송은, 전국 약 350명의 수험생이 약 150개교를 대상으로 제기하고 있어 1, 2 심의로 판단이 나뉘어 있었지만, 최고재판소가 처음으로 통일 판단을 내렸다. 사립대의 일부는, 학교 납입금의 납부 기한을 국공립대 후기 일정의 합격 발표(3월 하순)보다 앞당겨 설정하고 있지만, 재검토를 재촉당할 것 같다. 원고는 1997-04 년도 입시에서 20개 대학에 합격한 수험생 34명이 약 70만-930 만엔에 상당한 학교 납입금을 납부 후, 입학을 사퇴했지만 대학측은 「학교 납입금은 반환하지 않는다」 등과 입시 요항에 적은 「불반환 특약」을 근거로 반환을 거부했다. 판결은 우선, 입학금의 성격을 「대학측이 합격자에게 입학할 수 있는 지위를 주는 대가」라고 정의하였다. 사퇴 표명의 시기를 불문하고 원칙 반환의 필요는 없고, '적정 금액을 넘어선 고액'인 경우에 한정해 반환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수업료에 대해서는 입시가 2001년 4월의 소비자 계약법 시행의 전인가 후인가로 나누어 검토했다. 판결은, 해약시에 전망되는 손해액을 웃도는 위약금의 징수를 금지한 동법을 근거로 해 「3월 31일까지의 사퇴라면, 대학측은 정원 보충이 가능하고, 손해는 생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며, 동법 시행후, 3월말까지의 사퇴자에게는 수업료를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퇴의 방법은 구두의 신청도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동법 시행전에 대해서는, 「불반환 특약이 위법이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다」라고 해, 반환의 필요는 없다고 판시하였었다. 이 날의 판결로 최고로 830 만엔의 반환이 인정된 원고가 있었다.
인천굴포초등학교(교장 계동윤)에서는 12.7일 본교 특별실에서 학부모 100여명을 대상으로‘21세기 올바른 자녀교육’을 주제로 나근형 교육감을 초청 학부모 특강을 실시 한 후 참석한 학부모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져 참석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었다. 이 날 특강에서 나근형 교육감은 자녀교육의 원칙을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바른 생각, 자녀 교육의 방법, 자녀와의 대화 요령으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으며. 특히 부모 자신보다 자녀만 변하면 된다는 생각을 바꿔 부모 자신부터 변화하려는 자세를 가져야함을 강조했다. 특강을 마친 뒤 참석한 학부모들은 인천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의 특강을 들은 후 대화의 시간을 통해 자녀교육에 대한 궁굼증을 해결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고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표하기도. 한편 계동윤 교장은 앞으로도 이와 같은 학부모 특강시간을 마련하여 학부모와 학교가 함께 만들어가는 바람직한 교육을 실천하겠다고 말하고 “자녀의 목표, 꿈, 노력이 성공적이 되려면 부모의 응원, 격려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라며 21세기 교육에서 학교와 가정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현장을 이해해 더욱 많은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