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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침, 이른 시각에 걸려온 전화, "선생님, 오늘은 찬우를 학교에 못 보낼 것 같습니다." "아니, 왜요? 찬우가 아픈가요?" "아닙니다. 아무래도 오늘 찬우 엄마가 아이들 낳을 것 같아서 순천에 갑니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찬우도 데려 가야 할 모양입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몸조심하시고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하시겠습니다." 찬우네는 이번에 네 번째 아이를 낳는답니다. 지난여름 늦가을에 아기를 낳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축하드린다고 했더니, "아이고, 축하는 무슨 축하요. 오히려 동네 사람 보기가 창피합니다요. 자식 키우기 힘든 세상에 넷씩이나 낳는다고 수근대는 것만 같아서요."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요새처럼 아이들이 귀한 세상에 낳을 수 있으면 낳아야지요. 국가적으로도 찬우 아빠는 애국자입니다. 용기를 내세요. 산모에게 힘을 주시고 행여라도 부끄럽다는 생각마시고 적극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래야 태어날 아기도 당당해진답니다." 찬우 엄마는 일본 여인이시다. 그런데 얼마나 얌전하시고 온화하신지 늘 탄복이 나오게 하는 분이다. 항상 웃음 띤 얼굴에 조심스런 태도도 그렇고 아이들을 챙겨 보내는 게 빈틈이 없으신 분이다. 찬우는 일본에서 6개월 이상 머무는 바람에 유치원도 다니지 않고 입학한 아이이다. 그래서인지 학기 초에는 한글을 깨우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데리러 오시면 항상 운동장 밖에 오토바이를 세우시고 밖에서 기다리셔서 보다 못해서 교실로 오시라고 했는데 그나마도 밖에서 기다리신다. 착실한 부모를 닮아서인지 찬우는 글씨 쓰는 것도 예술이고 그림은 더욱 잘 그리며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매우 착실하다. 아마도 농촌 총각들이 장가가기 힘든 실정에서 종교적 모임에서 이루어진 결혼인 것 같은데 자식 교육에 열성을 보이시는 모습을 보면 일본과 한국의 공통점인 모양이다. 종교적 가르침때문에 생긴 자식을 어떻게 하지 못 하고 낳을 수밖에 없다시면서도 자신감이 없어하고 미리부터 걱정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오실 때마다 용기를 불어넣는 말밖에 해드리지 못 했다. 이 아이들이 자랄 때쯤이면 국가에서 교육 문제에 드는 비용의 대부분을 해결해 주게 될 것이라는 얘기나, 아이를 낳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이며 자식만큼 확실한 투자(?)가 어디 있겠냐며 더 낳지 못해서 둘밖에 없는 내 이야기를 들려드리곤 했었다. 아무튼 우리 산골 분교의 입장에서는 경사 중에 경사가 난 셈이다. 동네에 아기들의 울음이 사라진 나라, 더 이상 아기를 업은 모습을 볼 수 없는 동네의 모습은 암울한 미래의 사진인 것이다. 학생 수 한 명이 아쉬운 우리 산골 분교에서는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축하 잔치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마음 같아서는 현수막이라도 내걸고 싶은 심정이다. 친정이 일본이니 산후 뒤처리도 찬우 아빠가 혼자서 다 해야 하고 세 아이들을 돌봐야 할 테니 그 어려움이 오죽 할까? 날마다 일하던 손길도 멈추고 아내와 아이들 뒷바라지에 바쁜 찬우 아빠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다. 힘든 시골 일도 열심히 하시고 일거리가 없을 때면 품을 팔아서라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라는 숭고한 의식까지 갖추고 성스럽게 자식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이 일렁인다. 아침마다 트럭에 태우고 오셔서,"우리 왕자님, 공주님, 내리세요."하시며 1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이를 위해 차문을 열어 주시는 모습이 익숙한 그림이 되었다. 나는 동네에서 아이들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 몇 살인지, 또 동생은 없는지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는 후임자에게 이 학교를 두고 가야할 시간이 가까워 오지만 3년을 10년만큼이나 소중히 하며 아이들과 함께 숨쉰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찬우네 집을 시작으로 동네에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으면 참 좋겠다. 젊은 엄마들을 볼 때마다 아기 더 낳기 운동을 주장하는 내 모습은 아마 보건복지부 직원이 아닌가 의심할 지도 모른다.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 집안,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사라진 동네, 학교가 없어지는 곳에서는 어떤 미래도 보장받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책보다도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가임 여성들을 보호하고 아이들을 소중히 하는 대대적인 정부 시책이 따라오지 않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여성들의 결혼 기피, 임신 기피는 막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밤늦도록 학교에 남아 불을 켜 놓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쓰곤 했다. 학교가 지역의 구심점으로 살아나야 한다는 잠재의식 덕분인지 지나가던 학부모님들도 전화를 주시곤 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미약한 일이지만 학교와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게 하는 일만은 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아온 3년. 찬우네 집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를 신호음으로 이 산골에도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아이들이 먼 길을 다니며 힘든 학교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기를,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풍경 속에서 좋은 책을 읽으며 바이올린을 배우며 감성과 예지를 키워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일이나 모레쯤 찬우네 집에 미역이라도 사서 보내야겠습니다. 때맞추어 자주 미역국을 먹고 젖이 잘 나와서 튼튼한 아기로 키우라고 말입니다.
2005년 11월 9일 보도된 오마이 뉴스 인터넷 기사에 “지난 8월말 초등학교 평교사로 정년퇴임한 노형근(64·전 안산성포초등학교 교사)씨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수여하는 녹조근정훈장을 받을 자격이 됐지만 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실려 있다. 그가 훈장을 거부한 이유는 “죄인이 무슨 포상이랍니까?"이다. 교원 생활을 하는 동안 학부모로부터 돈봉투를 받은 사실이 있기에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훈장을 받지 못하겠다는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퇴직교원 정부포상을 보면 1등급 청조훈장, 2등급 황조훈장, 3등급 홍조훈장, 4등급 녹조훈장, 5등급 옥조훈장이 있다. 황조훈장 이상은 근무경력이 40년 이상 되어야 하고, 홍조훈장은 39〜38년 근무 경력, 녹조훈장은 37년〜36년 근무 경력, 옥조훈장은 35〜33년 근무 경력이 있어야 한다. 30년 이상 33년 미만은 근정포장, 28년 이상 30년 미만은 대통령 표창, 25년 이상 28년 미만은 국무총리 표창, 15년 이상 25년 미만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표창을 받게 된다. 이처럼 훈장을 받는 것은 몇 시간을 소비하고 받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세월만 지켜갔다고 해서 훈장을 받는 것도 아니다. 교육에 공로를 인정하는 그 만한 대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려는 정화 운동의 상징으로 언론에 공개된 노 선생님의 결단은 개화기에 나타난 신파극처럼 우선은 신선한 이미지를 던져 주고 있는 듯하다. 한국 교육의 처음과 끝은 어디인지 그 말로를 알 수 없는 것이 오늘의 교육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오류인지 그것을 가려내기 힘든 것이 오늘도 교육의 현장에서 느껴진다. 한 사람의 희생은 또 다른 사람의 희생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계도 의식이 솟아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기운은 냄비식 기운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빨리 데워져서 빨리 식어 버리는 냄비식 사회 기운은 개혁에 대한 새로운 사고보다 좀 지나면 괜찮겠지라는 사고가 더 팽배해 있지는 않는 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 교육이 잘 되어간다고 하는 것은 노 교사와 같은 분들이 각 학교에 수없이 잠재해 있기에 교실은 썩고 병들어 가는 경향은 있을지라도 학교는 하루하루 교육의 장을 지켜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만년에 주는 훈장을 서슴없이 거절할 수 있는 결단이 쉽지는 않다. 그것도 지나간 시절에 일어났던 한 토막의 사건인데. 이런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분은 그래도 우리 시대의 교사상의 상징이요, 한국형 선비정신의 대변자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선비된 교사는 자신을 지켜가는 데 게으르지 않고 후학을 길러가는 데 온갖 열정을 쏟는 것이다.
대전고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조관행)는 21일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제직(吳濟直) 충남도교육감에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이로써 오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현행 지방교육자치법에서는 당선자 본인이 징역 또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최종 선고 받을 경우 당선이 무효가 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오 교육감의 사전 선거운동이 계획적, 조직적으로 보여지지 않는 데다 자신의 글이 실린 책을 돌린 것도 매표행위에 해당하는 기부행위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오 교육감은 지난해 1-6월 학교운영위원 1천여명에게 전화를 걸어 지지를 부탁 하고 2003년 말과 지난해 초 자신의 글이 실린 책 5권을 운영위원들에게 배포하며 지지를 호소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 6월 1심에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2005 문화예술교육 국제 심포지엄'이 21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세션에 발표자로 나선 아널드 에이프릴 시카고예술교육연맹 소장은 "소외 계층의 예술 교육에 대한 민주적 접근의 열쇠는 기본적으로 접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관련돼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초기아동교육 및 기록 전문가인 지지 슈뢰더-유와 공동 발표자로 나선 그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자선행위'를 특권계층이 소외계층으로부터 그리고 소외계층과 함께 배우는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외계층이 문화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예술 교육 모델들을 열거했으며 슈뢰더-유는 아이들과 성인들이 각자 동등한 목소리를 내며 동등한 학습 참여자로 인식되는 레지오 에밀리아식 도큐멘테이션을 예술 교육에 접목시킨 예를 보여줬다. 이들은 "소외 계층에 대한 예술 접근권을 민주화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 및 노력도 모든 공동체에 필요한 그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며 "이러한 전략과 노력은 최상위 단계의 광범위한 국가적 정책으로 기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앞서 열거한 예술 교육 모델과 도큐멘테이션을 근거로 '10대 핵심 정책 권고안'을 제시했다. 권고안은 ▲모든 학교에 모든 예술을 ▲모든 공동체에 모든 예술을 ▲전통 및 현대 예술 형태에 대한 대중적 존경 ▲현직 예술가들과의 접촉 ▲동료로서의 학습자 ▲교육과정으로서 전시 ▲신기술 ▲지도 인턴십 ▲직업 종사자 연구 ▲전세계적 실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유알아트(URART) 김영현 대표는 '빛을 만지는 아이들'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점자촉각그림책 제작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그는 "일본 미국 프랑스 노르웨이 같은 국가에서는 이미 시각장애아의 발달에 적합한 점자촉각그림책을 제작해 오고 있다"면서 "우리의 시각장애인들과 교통할 수 있는 우리의 문화적 코드를 찾아내고 규격화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9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방화미수 사건 용의자를 현장에서 붙잡아 대형 참사를 막은 고교생 3명이 표창장을 받았다고 한다.(21일 조선일보 인터넷판) 주인공은 19일 오후 대구시내에서 영화감상을 마치고 대구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영남공고 3학년 김형석(19·화공과), 최고영(19·화공과), 주세별(19·섬유과)군 등 3명으로 이들은 인화성물질을 들고 불을 붙이려던 30대 남자에게 달려들어 스프레이와 라이터를 빼앗아 참사를 막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를 피하기에 바쁜틈에 신속하게 대처한 학생들의 희생정신이 뒷받침 되었기에 이러한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제2의 대구지하철 참사가 생길수도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이들의 행동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행동뒤에는 교육의 힘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만일 이들이 교육을 전혀받지 않았다면 그런행동이 쉽게 나타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그 증거가 명백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의 교육은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육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 효과성이 여러가지로 입증된 '잠재적 교육'이 바로 이런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잠재적 교육은 교과수업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잠재된 다양한 교육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재적교육과정이 또하나의 주목받는 교육과정이 아닌가 싶다. 공교육을 불신하고 학교교육에 불신을 갖는 경우가 많다지만, 잠재적교육과정을 훌륭히 실현 할 수 있는 곳은 학교가 아니고서는 그 어디에서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다양한 층이 함께 생활하면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은 학교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일을 계기로 학교는 물론 교육에 관심있는 모든 인사들이 힘을 합쳐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다양한 인성교육실현을 통해 학교교육을 정상화 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얘들아, 6명이 참가한 매천백일장에서 5명이나 입상했단다." "정말이세요? 야, 신난다. 그런데 좀 아쉽디. 다 탔으면 더 좋을 텐데..." "그래도 자랑스럽구나. 우리 구례에서 가장 알아 주는 백일장에서 우리처럼 작은 분교 학생이 글 솜씨를 발휘해서 상을 탔으니 말이다." 우리 연곡분교 아이들은 감성이 발달해서 글을 참 진솔하게 잘 쓴답니다. 꾸미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잘 표현하는 아이들이랍니다. 가지고 있는 바탕이 고우니 격식을 갖춰 쓰는 방법적인 면만 조금 지도해 주면 1학년짜리도 제법 글을 잘 써서 놀라곤 합니다. 매천 황현 선생님의 우국충정을 기리고 그 분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매년 열리는 매천백일장은 이 고장 구례에서는 으뜸가는 문학행사입니다. 이 고장에서 글 솜씨를 지닌 초중고 학생들이 모여서 자웅을 겨루는 귀중한 시간이 됩니다. 학교에서 국어 쓰기 시간에 엶심히 글 쓰기 공부를 한 실력, 일기 쓰기로 달군 솜씨, 좋은 책을 읽어서 마음 밭에 뿌려놓은 알곡들을 챙겨서 글밭을 자랑하는 그 시간은 참으로 좋은 기회가 됩니다.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살아있는 글을 쓰는 동기가 됩니다. 2시간 동안 한 편의 글 속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글쓰기 행사도 교육과정의 일부로서 매우 교육적인 활동이 됩니다. 그러니 할수만 있으면 많은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싶어합니다. 자신이 쓴 글이 책으로 출간되는 기쁨까지 얻고 상장과 상금을 타서 집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표정이 참 행복하게 보입니다. 2학년이지만 글 솜씨가 보통 수준을 능가하는 우리 반 나라도 처음 참가해서 언니들처럼 상을 탔습니다.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는 기쁨과 자신감으로 충만되는 수상의 영광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뇌리에 남아 아이들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갑니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감을 키우는 일입니다. 할수만 있으면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함을 생각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 자부심은 실패와 실수를 덮을 수 있는 좋은 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매천 선생님이 '글을 아는 것이 힘들다'하신 그 깊은 뜻을 새겨서 공부하는 자의 바른 자세까지 그 분을 닮아서 이 고장의 든든한 기둥으로 거듭나는 문장가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매천 황현 선생님의 정신은 더욱 또렷이 다가서는 요즈음, 자기 혼자만 살찌우는 지식과 학문이 아닌 두루 살필 줄 아는 지식인의 책임을 다 하는 매천 선생님의 후예로 우뚝 설 수 있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23일 치뤄지게 될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고사 시험지 및 답안지가 21일 전국의 시도 교육청에 도착돼 교육청 관계공무원들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입고되고 있다. 사진제공=광주시교육청
민노당 최순영(교육위) 의원이 17일 학운위가 평교사 중에서 교장을 선출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및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같은 교장선출보직제는 그간 전교조가 부르짖어 온 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교총은 21일 입장을 내고 “교장선출보직제는 학교를 파벌화, 정치화시켜 진흙탕으로 만들 것”이라며 저지활동에 나서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최 의원은 17일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와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승진경쟁과 관료행정으로 얼룩진 교단의 교육력을 제고하고 학교 구성원의 의견에 부합하는 교장을 선출해 민주화를 실현해야 한다”며 법안 발의의 취지를 밝혔다. 법안의 골자는 학운위가 교장 모집공고를 내면, 학부모, 학생, 교사 등으로 구성된 교장인사위원회가 지원자를 심사해 2명의 교장 후보를 추천하면 학운위가 투표 등을 통해 최종 선출하는 것이다. 유치원장(감)은 이번 법안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런 선출교장은 교직 경력 5년 이상의 교원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일정 부분 수업도 맡아야 한다. 교장은 4년 임기(1차에 한해 중임)를 마치면 다시 평교사로 복귀하게 된다. 교장을 ‘보직’화 했으므로 교장 자격증제는 당연히 폐지하고 교감 자격기준도 현행법에서 삭제했다. 아울러 개정법 이전에 임용된 교장은 직을 마친 후 교사로 복귀해야 하고, 현 교감도 개정법 시행 후 1년 이내에 교사로 복귀하도록 부칙을 뒀다. 이에 대해 교총은 21일 공식입장을 내고 “교장선출보직제는 학교와 교장이 인사권을 갖게 된 학운위 눈치 보기에 급급하게 만들어 상호견제 기능을 무너뜨리고 결국 전문적인 학교운영, 교육행정을 학운위에 종속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특히 이분화된 교원단체로 인한 교내 파벌화와 충돌이 증폭될 경우 자칫 교장 없는 학교가 발생할 수도 있고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될 우려도 크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현 승진제는 소외된 지역에 우수 교사들을 배치하는 데 기여해 왔지만 선출보직제나 공모제가 도입되면 우수 교사들이 열악한 도서벽지 학교를 기피하고 여건 좋은 학교에만 몰려 교육격차가 심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총은 “전문성을 성격으로 한 어느 조직도 기관장을 보직제로 운용하는 곳은 없다”며 “과열 승진경쟁 해소와 교육력 제고를 위해서는 현행 승진제를 개선하고 수석교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침부터 작은 산골 분교의 교실마다 아이들의 작은 짐들이 주인을 따라 학교에 왔습니다. 자기 책가방보다 더 큰 살림 보따리들이 토론방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알고보니 오늘은 아이들이 자치 활동 시간에 정한 '아나바다 시장'이 열리는 날입니다. 키가 커서 못 입게 된 옷은 깨끗이 세탁을 하고 손질을 해서 차곡차곡 개어서 보낸 얌전한 진우 엄마의 솜씨가 돋보입니다. 동생들의 장낭감도 나오고 작은 인형, 새 공책들도 새 주인을 기다립니다. 서로 물건을 바꾸어 쓰며 물건 주인의 정성과 사랑도 함께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6명이 일 주일에 한 번씩 자치활동 시간을 통하여 규칙을 정하고 지켜가는 모습을 보며 먼 후일,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보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자기들이 정한 규칙을 지키기 위해 점심 시간에 음식을 남기는 일도 없고, 수업 시간에 연필을 깎는 일도 삼가하는 모습, 죄측 통행을 한다며 90도 직각으로 방향을 틀어 화장실을 출입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도 나옵니다. 오히려 어른들인 우리 선생님들보다 더 깍듯이 질서를 지키는 모습 앞에서는 작은 부끄러움마저 갖습니다. 착한 행동을 한 아이를 찾아서 칭찬해 주는 모습, 잘못을 한 친구를 고치게 하면서도 마음 다치지 않게 충고하는 모습, 나이 어린 후배들을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참아주고 배려하는 형들의 모습을 보며 전교생이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에 안도하게 됩니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는 것은 작은 학교만이 가지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살뜰하게 챙겨주고 다독이는 모습을 보고자 함이 교육이 추구하는 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한 가치를 향해, 혼자만이 아닌 어울려 살아가며 함께 그 가치를 공유하는 모습은 학교 교육이 지향점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만의 개성있는 꽃을 피우면서도 함께 무리지어 피어나는 어울림을 자연스럽게 익혀가는 16명의 공동체가 자랑스럽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서로 아끼고 다독이며 아픔과 힘듦도 함께 나누는 따스한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랍니다. 이미 나무들은 옷을 다 벗어버리고 시원스레 서서 겨울 노래를 부릅니다. 바깥 공기는 차가워도 '아나바다 시장'을 열어 마음을 나누는 아이들의 체온은 참 따스하답니다.
이틀 앞으로 대입 수능시험이 다가왔다. 그 동안 학교에서 배운 실력을 100% 발휘해볼 시간이 다가오고 있지만 고3수험생들은 초조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정당당하게 시험에 임한다면 별 일이 없겠지만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하여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이 시간에도 부정한 방법을 생각하는 수험생이 있다면 자신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관계당국에서는 부정행위 예방을 위해 수많은 묘안을 짜서 시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첨단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 근절은 어디까지인지 우리 모두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학생들의 생리적인 현상을 무시되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피해를 본다든지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강구하기에 앞서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거꾸로 가는 방법만을 택하고 있지 않은지 교육당국과 학부모 단체들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꼭 대학을 졸업해야 출세의 길이 열린다는 사회적 구조를 과감히 개혁하지 않고 엉뚱한데 교육력을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우수한 인재양성만이 살 길이라는 사실도 상기하며 30년 동안 최고의 교육정책이라고 자부하는 고교 평준화제도를 고수하면서 수월성 교육을 병행하려는 이중적인 의도가 오늘의 한국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정당한 노력에 의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학생, 학부모들의 의식변화 없이는 부정행위는 끝이 없을 것이다. 과정을 무시하며 결과만 중시하는 이 나라의 교육정책은 너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교육현장의 일부에서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대단히 강조하고, 또한 쪽에서는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고, 아울러 인권교육도 중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모두 다 일리가 있고 타당한 말씀이다. 위와 같은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방법을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추진해볼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부 학교에서 시도하는 무시험 감독제가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시행에 따른 문제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평가결과에 대한 지나친 학생과 학부모의 과잉대처와 학교당국이 1회성 평가결과를 모든 성적의 기준으로 삼는 일을 탈피해야 한다. 평가내용도 그렇다. 지나친 객관식으로 학생들의 컨닝 때문에 무감독 시험이 어렵다고 한다.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옆 사람과 사이 경계막을 이용하는 사례들이 학생들의 인성을 망쳐버리는 일이 되고 있다. 무감독 시험 평가제를 정착하기 위해 평가내용은 선택형과 단답형 출제를 금지시키고 서술형과 논술형으로 문항이 작성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1+1=0,1,2,3…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답이 되는 경우의 수 0일 때, 1일 때, 2일 때, 3일 때의 각각 이야기를 만들어 보거나 우리 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요구한다면 학생들의 창의력과 실생활 적용 능력 등 고도의 상상력을 평가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또 평가대상자의 능력에 따라(수준), 기본, 보충, 심화형 등 수준별 문항에 상당히 포함된다면 더욱 평가내용이 알차게 될 것이다. 채점기준도 학생의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제작하여 사용한다면 학생들끼리 서로 보지도 않고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평가문항 작성 연구는 교사들의 몫이다. 지역 실정이나 학교의 특성을 고려해 평가하는 방법이 모색될 때 평가 부정행위는 근절되고 올바른 평가가 정착되리라 생각된다.
오는 23일 치러지는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지가 20일 전국 시도교육청 수능 관리본부로 전해졌다. 21일 인천지역 문제지가 인천시교육청에 도착 경찰의 삼엄한 보안 속에 교육청 직원들에 의해 문제지가 관리본부로 옮겨지고 있다.
이제 중학교 졸업 예정자들이 어느 고교로 지원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학부모 면담을 하는 시기가 다가온다. 학생과 가정의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실업계 고교 진학은 오히려 권장할 만한 장점이 많다. 지난 2005년 6월 서울시교육청에서 실업계 고교에 진학한 전체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취업률과 대학진학률에서 아주 실속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도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취업 희망자 1만234명 중 9907명이 취업, 96.8%의 취업률을 보였다. 조건이 안 맞아 포기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희망자 대부분이 취업했다고 볼 수 있는 수치다. 일류 기업 취업률을 보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5년 2월 졸업자 중 취업한 조사 대상자 총 9907명 중 삼성그룹 138명, LG그룹 175명, 현대그룹 78명 등을 비롯해 한국전력 등 유명기업에도 많은 학생들이 취업했다. 이것은 일반 고교 졸업생에게는 꿈도 꾸기 어려운 수치일 것이다. 취업 학생들의 급여 조건을 보면, 2005년 2월 취업자 중 4.9%인 485명이 2000만원 이상을 받고, 2800만원 이상 연봉자도 다수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취업자의 77.7%가 14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어, 전문대 졸업자와의 임금 격차가 많이 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새내기 취업자의 나이를 감안하고, 앞으로 누적되는 근무 연수를 고려한다면 대졸자 못지않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실업계 고교 졸업생의 4년제 대학 진학 비율도 일반 고교와 큰 차이가 없다. 2004년도에 2527명이 진학했고, 2005년도에는 3217명이 진학했다. 서울 소재 대학 1607명(50%), 수도권 대학 766명(23.8%), 지방대학 826명(25.7%)으로 전체 졸업생 2만3316명 중 13.2%에 해당한다. 특히 연세대(66명), 고려대(8명), 서강대(16명), 숙명여대(27명), 경희대(55명) 등 유명 대학에도 많은 수의 학생들이 진학했다.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절반 정도는 중학교 내신석차 백분율이 중하위권(40% 이상) 학생들이었다. 이들 학생들은 실업계 고교로 진학해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상위권으로 향상시킴으로써 대학에 입학하는 데 유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고교 석차가 중하위권인 학생들은 자격증·특기적성 등 대학별 특별 전형에 의하여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2005학년도 고교 신입생부터 적용되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실업계 고교생에게 유리한 점이 더 많다. 학교 생활기록부 반영 비율이 크게 높아져 상대적으로 내신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이와 함께 2004학년도부터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대학 입학 정원 외 3% 특별 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취업과 대학진학에서 실업계 고교의 장점이 많은 만큼 중학교 졸업 예정자들은 실업계 고교 진학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입동이 지난 요즘이지만 아직은 가을의 냄새가 나는 우리집 주변이다. 주변에 심어진 단풍은 아직도 남은 며칠이라도 마지막 봉사를 하려는 듯 찬바람에도 색채를 잊지 않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우리 집에서는 이런 가을을 뒤늦게나마 맞아들이기로 하였다. 나는 보통 국화보다 항상 늦게 피는 설국-그것도 송이가 아주 작고 많이 달린 황색 설국-을 매우 좋아한다. 이 설국 화분 몇 개를 구해 다가 현관입구에 진열을 하였더니 7가구 15명의 식구들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하여 주었다. 이 설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내가 고향을 떠나와서 경기도에 전입을 하였던 1979년 가을에 이 설국을 가꾸어서 유난히 많은 송이를 달고 있는 설국에 취한 적이 있었다. 이 후로 이 설국을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 가꾸었으나, 너무 잦은 학교 이동으로 그만 어디선가 이것을 잃어버리고는 다시 구해서 가꾸다가 또 옮기면서 두고 오곤 하다가 그만 몇 년째 이 설국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1986년 가을에 우리 교실에는 이 설국 화분이 두 개 선물로 들어 왔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여서 교실 유리창 앞에서 꽃이 피고, 오이 덩굴이 자라서 오이가 열린 것을 아이들과 함께 따먹는 파티를 열기도 하였기 때문에 학부모님이 국화 화분을 보내주신 것이었다. 이 국화꽃이 거의 시들어 가려고 할 무렵에 나는 아까운 국화를 그냥 버릴 수 없어서 송이를 모두 따서 깨끗이 씻어서 소주 한 됫 병에 국화 30여 송이씩 두 병의 국화주를 담갔다. 거의 석 주가 지난 어느 날 학교 직원들의 친목 체육대회가 있었다. 나는 이 국화주를 내놓았다. 물론 술병과 함께 아직 시들지 않은 설국 화분에서 따서 씻어서 물기를 말린 국화송이를 준비했다. 술 한잔을 따르고 국화향이 그윽한 그 술잔에 설국 한 송이가 띄워져서 권해진 것이다. "햐아, 이 향기! 그리고 이 동동 뜬 국화 한 송이 내 평생이 잊을 수 없는 멋진 술잔이로구나!" 감탄사를 연발하는 선배님 덕분에 아주 조그만 정성이 유난히 돋보이고 좋은 추억거리가 되기도 하였던 설국이기에 더욱 정이 가는 지 모른다. 화분을 가져다 둔지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만 날씨가 상당히 추워지고 말았다. 화분을 계단 한쪽에 놓인 다른 화분의 사이사이에 배치를 하였다. 각 층마다 두 개씩 나누어 배치를 하여 두었더니 집안 가득 국화향이 퍼져서 현관문을 열면 집안까지 향기가 스며든다. 아래층의 할머니께서 너무 향기가 좋다고 하시면서 "향기는 너무 좋은데 이렇게 이쁜 꽃들만 사와서 돈이 많이 들었겠어요. 우리는 보니까 좋긴 하지만..."하시면서 미안해하신다. '온 집안 퍼지는 국화 향처럼 따뜻한 정을 나누면서 살면 되지 국화 화분 값이 얼마나 된다고.....' 혼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은 한없이 흐뭇하고 풍요로운 것 같다.
날마다 해가 뜨고 지고 하지만 어느 날이나 누구에게는 특별한 날일 수가 있다.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하루를 특별한 뜻을 부여하며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그만큼 가치가 있는 날이거나, 기억 할만한 날이어서 일 것이다. 그렇다. 오늘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날이다. 오늘은 나에게 D-100일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해서 D-100일인가? 내가 교직에 발 들여놓은 지 42년. 그 긴 세월을 마감하고 정년을 맞기 100일 전이라는 말이다. 정년이라는 것은 이제 맡아 왔던 일을 끝내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아주 어린 중학교 1학년부터 '스승'이라는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제 만 49년을 살아온 셈이 된다. 사범학교 병설중학교를 입학하자 모자에는 스승 '師'자를 모표로 달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시내 어디를 가도 비록 중학생이지만 항상 사범학교 학생 취급을 당했다. "장차 선생이 될 사람이 그러면 쓰나?" "선생이 되겠다는 학생이 당연히 그래야지." 잘못하면 스승사[師]자 때문에 더 호된 꾸중이 날아오고, 잘해도 칭찬보다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는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스승의 길]을 걸어 온 셈이다. 중학교 3년, 사범학교 3년의 중, 고등학교 6년에다가 사범학교 막내인데 교대 1회생과 함께 배출되어서 발령이 1년 늦게 났으므로 도합 7년은 선생도 아니면서 선생처럼 몸조심을 하며 살아온 시간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나는 엄밀히 따져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1957년 4월7일부터 언제 어디를 가도 따라 다니는 스승 師를 머리에 새기고 다녀야만 하였으니 49년이다. 반 백년을 몸 담아온 교직을 이제 100일이 지나면 그만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 착잡하고 걱정이 되시지 않으셔요?"하고 묻곤 한다. 그러면 나는 "무슨 소리야. 이제 떠날 때가 되어서 떠나는 게 무엇이 섭섭해. 난 50년이란 세월을 선생이라는 굴레를 쓰고 살아온 셈인데 이제 그 굴레를 벗어 던지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어서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하곤 한다.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긴 교장선생님은 정년을 하시면 더 바빠지실 것 같아요." 하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40년 이상 해오시던 일을 그만 둔다는 것이 쉽지 않지 않겠어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해본다. 내가 교직생활 42년 동안에 직접 담임을 했던 27년 동안에 가르친 제자가 약 1,000명이 되고, 관리직으로 다니는 동안 몇 천 명을 배출하였다. 그 많은 제자들 중에서 나에게서 어떤 행동 때문에 또는 잘 못한 말 한 마디에 상처를 입었던 제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리고 나를 마음속으로나마 '스승'으로 여겨줄 제자는 몇 명이나 될 것인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 속담에 '만 날 해봐야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만 날(10,000일)은 27년하고도 몇 개월이나 되는 긴 세월이다. 나는 이미 15,000날이 225일이나 더 지나고 있다. 그 많은 세월 동안 나름대로 게으름 피우지 않고 꽤 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 왔다고 생각은 되지만 그래도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 찾을 길이 없다. 다만 큰 죄 짓지 않고 무사히 정년을 맡게 된 것만도 다행이다싶을 뿐이다. 앞으로 100일 후 나는 그러니까 1만5325일 동안 교직 생활을 하게되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그 동안 교직생활에서 겪은 일, 느낀 일, 건의할 일들을 경향 각지의 신문이나 잡지, 사이버상에 발표한 글을 모아서 작은 책자를 만들어 볼까 한다. 1만5325일. 어쩌면 엄청난 긴 세월이다. 아니 내 일생에서 스승 [師] 자를 달고 살아온 날을 계산한다면 거의 18,000일이다. 퇴직을 한다고 선생이었다는 굴레가 완전히 벗어진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100일 후에 정년을 하고도 결코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D-100일을 보낸다.
지난 10월, 교육부에서는 내년도 초·중·고등학교의 주5일제 수업을 월2회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같은달 25일에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여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겠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한 달 여가 지난 지금, 아직까지 교육부에서는 이렇다 할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예정대로 실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올해처럼 월 1회로 가는 것인지, 답답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통상 11월 중순이면 일선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내년도 학사일정 등 상당히 구체적인 내년도 계획을 세우게 된다. 우리학교도 이미 내년도 학사일정 짜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주5일수업제와 관련한 내용의 발표가 미루어지면서 학사일정을 짜면서도 다시 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찜찜할 뿐이다. 실제로 올해에도 월 1회 주5일제 수업을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선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월 1회 휴업일을 정했었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될 즈음에 '모든 학교는 월 1회 토요휴업일을 매월 마지막주로 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뒤늦게 학사일정을 조정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실제로 내년도 학사일정을 제대로 짜기 위해서는 최소한 11월 이전에 내년도의 모든 계획이 나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껏 아무 발표가 없는 교육부에서는 이러한 일선학교의 상황을 알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일선학교에서의 어려움은 토요일 휴업을 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즉 보통 전일제 계발활동을 어느시점에 넣을 것인가와 통상 이루어진 토요일의 학교행사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요일별 수업시수 계산등 고려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토요휴업일을 언제 어떻게 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또 1회와 2회의 경우에도 학교에서 계획을 세우는데에는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일정을 이미 다 짜놓은 상태에서 그것을 바꾸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작업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교육부에서는 조속히 입장을 정리하여 결과를 알려주어야 한다. 물론 교육부에서도 여러가지 여건상 조속한 결론을 내기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일선학교를 생각할 때는 최대한 빠른 정리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모든 물가가 오르기만 하고 국립대 조차 등록금을 지속적으로 인상하는 시대에 오히려 등록금을 절반으로 인하한 사립대학이 있어 화제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전문가 육성을 특성화 한 강원도 동해시 한중대학교는 2006년도 신입생 전원에게 4년간 등록금의 40∼50%를 감면, 국립대보다 더 낮추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50% 감면 대상자는 이 대학과 교육교류협정을 체결한 고교출신, 직장인, 만학도, 기혼여성, 가족 가운데 2인 이상이 입학하는 신입생 등이고 나머지는 40%를 감면받게 된다. 이럴 경우 올해 등록금 기준으로 4년간 등록금은 공학계열(1천328만원)과 체육계열(1천161만원), 예능계열(1천328만원)은 강원도내 소재 국립대보다 최고 300만원 가량 싼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사회계열과 이학계열의 경우도 저렴하긴 마찬가지다. 이밖에 올해 기준으로 한 신입생 등록금의 경우도 사립대학의 훨씬 비싼 입학금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학계열(190만원선)과 체육계열(169만원선), 예능계열(190만원선)은 국립대보다 최고 30만원 가량 저렴하다. 인문사회계열(160만원선)과 이학계열(190만원선)은 국립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학생 부족으로 지방 사립대학이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이처럼 국립대보다 낮거나 거의 비슷한 수준의 파격적인 등록금까지 제시하고 있는 한중대가 지방 사립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9개 학부, 23개 전공에 모두 850명의 신입생을 모집하는 한중대는 또 내년 신입생 뿐 아니라 재학생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혜택을 주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육동헌 총장직무대행은 "학비 부담을 대폭 덜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4년간 등록금 40∼50% 감면이라는 특단을 조치를 마련했다"며 "등록금은 인하하지만 오히려 교육환경에 대한 예산은 대폭 증액해 수준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한중대는 지난 7월 기존의 동해대학교에서 '중국 전문가를 기르는 대학, 중국에서 유학오는 대학'으로 이름을 바꿔 출범한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사립대학이다.
내년도 경기도 평준화 적용지역 5개학군(수원권.성남권.안양권.부천권.고양권) 가운데 수원.부천.고양 등 3개 학군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도(道) 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18일 경기도내 일반계 고교 신입생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도내 5개 평준화 적용지역은 5만2천435명 모집에 5만2천72명이 응시, 평균 0.9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모집정원 9천660명인 성남권에 9천831명, 모집정원 1만605명 안양권에 1만752명이 지원, 각각 171명과 147명이 탈락하게 됐다. 그러나 나머지 3개 학군 가운데 수원권(모집정원 1만2천60명)은 110명, 부천권(1만150명) 70명, 고양권(9천960명) 501명이 정원에 미달됐다. 이와함께 167개교가 4만8천771명을 모집하는 도내 평준화 비적용지역에도 정원보다 597명이 부족한 4만8천174명이 지원, 평균 0.98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평준화 비적용지역의 64개 고교 지원자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지난해 도내에서는 평준화 적용지역의 경우 성남권을 제외한 4개 학군의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된 가운데 평균 0.99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평준화 비적용지역에서는 78개교가 미달된 가운데 평균 0.9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대구 사람들은 지하철을 싫어할까?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다'고 한다. 그 이유로 첫 번째는 사고 악몽, 두 번째는 탁한 공기를 들고 있다. 3년 전 지하철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이후 한 번도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악몽을 떠올리기 싫어서. 막상 타려고 하니 아직은 두렵다"고 한다. 극단적인 애기일지 모르지만 대구시민들의 보편적인 정서일 것이다. 지하철 사고의 악몽은 두려움뿐만 아니라, 대구의 아픔이다. "1995년 4월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 2003년 2월 중앙로역 지하철 방화 대형 참사, 2005년 10월 달성터널 미사일 화재 사건 등 대형 참사는 앞으로도 지울 수 없는 대구의 아픔"이다. 대구지하철 2호선은 1997년 1월 첫 삽을 뜬 지 8년9개월만에, 지난 10월18일 전동차 3편성(18량)이 다사읍 문양역에서 수성구 사월역까지 26개 역을 거치는 총연장 29㎞. 2조3천33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어 지하철 2개 노선이 운행되게 되어, 대구는 서울과 부산에 이어 국내 세 번째로 지하철 시대를 맞게 되었다. 만성 교통체증 구간인 달구벌대로인 동서 방면을 완전히 관통할 지하철 2호선은, 매일 오전 5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총 312회 운행되고, 전 구간 소요시간이 49분에 불과해 출 · 퇴근길 승용차(약 80분)에 비해 통행시간이 31분이나 단축돼 대구의 교통체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고, 지하철 역세권 활성화는 물론, 시민 생활 패턴과 도심 상권 변화 등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반쪽 지하철'에 그친 지하철 1호선은 환승 효과로 하루 승객이 14만명에서 22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또 대구지하철 2호선은 기존 1호선과 더불어 지하철 이용승객이 하루 43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물론 전동차와 역사내 마감재가 불연재 또는 극난연재로 설비됐고,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와 연기가 전동차와 터널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수막 및 제연설비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갖춰져 있고, 노약자 및 장애인들을 위한 에스컬레이터 설치 및 역사출입구 음향유도기, 젖먹이를 위한 수유공간 등 국제적 수준의 안전시설과 편의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19일 오후 대구지하철 2호선 전동차 안에서 30대 남자가 불을 지르려다 고교생 3명과 격투 끝에 붙잡인 방화미수사건이 발생했다. 용감한 고등학생 3명이 그 자리에 없었으면 또 한 번 대구지하철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19일 오후 1시18분께 대구지하철 2호선의 제2135 열차가 다사 문양에서 수성구 사월 방향으로 운행하던 중, 모 병원역 승강장으로 진입하던 때에 전체 6량 중 5번째 객차 안에 타고 있던 이 모씨가, 객차 통로에 서서 인화성 물질이 든 스프레이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승객들을 향해 "다 죽여버리겠다"고 외쳤다. 때마침 대구시내에서 학교 계발활동인 영화감상을 끝내고 귀가하던 대구 영남공고 3학년 김 형석(19.화공과). 최 고영(19.화공과).주 세별(19.섬유과)군 등 3명은 불꽃이 발생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단숨에 격투를 벌여, 이 남자에게서 인화성 물질이 든 스프레이와 라이터를 빼앗아 제압했다. 객차에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은 다른 칸으로 가거나 내릴 준비만 했을 뿐, 이 남자의 행동을 말리거나 중단시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를 떠올린 김 군과 그 친구들은 신속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학생의 이름 그대로 이 시대의 최고(최고영)이며, 별(주세별)이고, 반석(김형석)이다. 하지만 나머지 승객들은 한참 후에야 객차 안 비상전화와 휴대전화로 기관사와 112에 신고를 했다고 하니 얼마나 무관심하고, 안전불감증이며, 가슴 답답한 이야기가 아닌가? 타고 있던 승객들은 서로가 눈치만 보고 있었을 뿐 아무런 행동을 안했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가슴이 답답하고 분통이 터진다. 2003년의 대구지하철 대형 참사를 한 번 생각해보라! 아직도 채 아물지 않은 끔직했던 악몽의 순간들을! 사랑하는 제자을 잃은 슬픔 등.....이루말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들을 벌써 잊고 있는가? 사건 당시 해당 객차 안에는 50여명 정도의 승객이 있었으나, 다행히 전동차 내부의 의자나 내벽 등으로 옮겨 붙지 않아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하니 정말 천만다행이다. 호텔리어가 꿈인 김 군은 "사상 최악의 지하철 참사가 있었던 대구지하철에서, 용감한 행동을 했다고 주변에 있던 시민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니 아직은 얼떨떨하다"며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것을 함께 막아주었던 내 친구들이 더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말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이지만 얼마나 겸손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말인가? 한편 지난 서울 지하철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0월 24일 저녁 8시쯤 사당역에서 동작역 방향으로 달리는 서울지하철 4호선 열차 안에서 임 모씨가 갖고 있던 일회용라이터로 수차례 신문에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다. 이 때에 임 씨는 당시 만취 상태였으나, 옆에 있던 어떤 건장한 남자들은 임 씨를 말리지도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상반된 이야기인가? 불을 붙이려 한 사람도 나쁘지만, 이를 보고도 외면한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도 이름 그대로 이 시대의 최고이며, 별이고, 반석의 장한 고등학생들이 있으니, 이 지구는 돌아가고 살맛난다.
후발 다종족 통합국인 요·금·청 고구려에 관심 표명 말갈, 거란 등 족속과 문화 포괄 제국적 면모 보이기도 고대국가 태동, 문화표준 정립 한국고대사 진원지, 만주 한국 및 동북아고대사 시각 교차시켜 다각적 접근 필요 2005년 11월 12일,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불과 1시간 30분 만에 흔히 만주라 불리는 중국 동북지방의 관문 선양공항(瀋陽空港)에 도착했다. 공항 문을 나서자 싸늘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체감온도가 서울보다 10도 이상 낮은 것 같았다. 만주 땅을 처음 밟는다는 대학원생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어리둥절해 한다. 광활한 대평원, 그 너머로 펼쳐지는 지평선에 넋을 빼앗긴 듯했다. 지난여름 동안 풀숲에 가려있었을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기 위해 낙엽이 떨어진 청명한 가을날을 골라 만주 땅을 찾았는데,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한반도와는 사뭇 다른 날씨와 지형을 마주한 것이다. 그렇지만 일정이 워낙 빡빡해 공항 주변의 이국적인 풍광을 마음껏 즐길 겨를이 없었다. 필자와 대학원생을 태운 차량은 곧장 고구려의 발흥지인 환런(桓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0분쯤 달리자 구릉이 하나 둘 나타났다 사라지더니 제법 높은 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달리자 8년 전에 답사했던 고구려 변우산성(邊牛山城)이 둥근 자태를 뽐내며 차창을 스쳐 지나갔다. 조금 더 달리자 고구려시기에 ‘부경(桴京)’이라 불렸던 다락창고가 눈에 뛰기 시작했다. 압록강 지류인 훈강(渾江) 유역으로 들어서자 산세가 조금 완만해지면서 들판은 더욱 넓어졌다. 어느 마을을 가나 옥수수를 가득 채운 부경이 눈에 뛰었다. 바로 이곳이 고구려 발흥지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옆에 앉은 대학원생도 한반도와 너무나 흡사한 지형에 놀랐는지, “선생님, 제 고향 홍성과 너무 비슷한데요”라고 말한다. 고구려 발흥지인 훈강유역의 환런분지 전경. 오른쪽 마을이 하고성자고성, 뒤쪽 산이 오녀산성이다. 그렇다. 우리는 만주라고 하면 흔히 광활한 대평원을 떠올린다. 고구려라고 하면, 중무장한 기마병들이 광활한 만주 곳곳을 누비던 모습을 떠올리고. 만주 서북쪽에는 따싱안링(大興安嶺) 산맥이 기다랗게 뻗어 내리며 몽골초원과 경계를 이룬다. 동북쪽에는 샤오싱안링(小興安嶺) 산맥이 뻗어 내리며 시베리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남쪽에는 장백산맥이 동서로 기다랗게 놓여 있으면서 한반도와 경계를 이룬다. 지리적인 의미에서 만주는 이들 세 산맥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가리킨다. 이들 산맥 사이에는 랴오허(遼河)와 쑹화강(松花江)이라는 큰 강이 흐르고 있다. 두 강 사이에는 높다란 산줄기가 없고 한반도보다 더 긴 평야가 펼쳐져 있다. 만주를 광활한 대평원이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필자와 동행했던 대학원생이 선양공항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잠시 넋을 잃은 것도 이 대평원에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주에 광활한 대평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랴오허와 쑹화강 본류 좌우로는 광활한 대평원이 펼쳐져 있지만, 그밖에 다른 지역에는 크고 작은 산맥들이 종횡으로 뻗어 있다. 그 사이로는 랴오허나 쑹화강의 지류 그리고 압록강 지류를 따라 산으로 둘러싸인 구릉성 평지나 하곡평지가 펼쳐져 있다. 일찍부터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곳도 주로 이러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 유적은 이를 잘 말해준다. 고조선이나 부여, 고구려도 이러한 지역에서 발흥했다. 고조선 초기의 중심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체로 거대한 고인돌이 집중 분포하는 천산산맥 서북쪽의 구릉지대로 추정된다. 부여의 중심지는 쑹화강 중류의 지린(吉林) 지역인데, 동남으로는 비교적 높은 산지가 이어지고 서북으로는 구릉성 평지가 펼쳐진다. 고구려가 발흥했던 훈강(渾江) 유역도 장백산맥이 뻗어 내린 산간지대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으면 만주가 아니라 마치 한반도의 평야지대나 산간지대를 온 듯 착각이 든다. 필자와 동행했던 대학원생이 번시를 지나 환런에 들어섰을 무렵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신석기시대 이래 한반도와 자연지형이 비슷한 만주 중남부의 구릉지대나 산간지대 곳곳의 들판을 배경으로 농사지으며 생활을 영위했다. 이를테면 농경족이었던 셈이다. 중국 사람들은 만주 중남부에서 한반도 북부에 걸쳐 농사지으며 생활하던 우리 조상들을 예맥족이라 불렀다. 그렇지만 만주에 농사짓기 좋은 땅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주의 서쪽 지역은 비가 적게 오기 때문에 초원이나 사막이 많다. 그리하여 이곳 사람들은 수풀에서 짐승을 사냥하는 한편 말이나 양을 방목하며 생활했다. 반렵반목(半獵半牧)의 생활을 영위했는데, 역사적으로 동호(東胡), 선비(鮮卑), 거란(契丹) 등으로 불린 족속이 이에 속한다. 이에 비해 만주의 동쪽 지역은 날씨가 춥고 산림이 우거져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사냥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다. 수렵민이었던 셈인데, 지금 만주족의 조상으로 읍루(挹婁),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등으로 불렸다. 만주에는 농경민인 예맥족뿐 아니라 유목민과 산림족 등 여러 족속이 이웃하며 살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각 족속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서로 문화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활발히 교류하기도 했다. 더욱이 만주 서북쪽을 통해 일찍부터 우수한 청동기문화가 전파되었고, 서기전 4~3세기경에는 중국의 전국(戰國) 연나라가 요동으로 진출함에 따라 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만주지역은 한반도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던 선진지역이었던 셈이다. 이 가운데 고조선은 우수한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고대국가로 성장했고, 부여나 고구려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고대국가로 발흥했다. 그리고 이들이 이룩한 선진문화는 초창기에는 주로 정치적 격변에 따른 유이민 파동을 따라 한반도 중남부로 전파되었다. 삼국의 건국설화는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고구려의 건국설화에 따르면 시조 주몽(朱蒙)은 고구려보다 한발 앞서 선진문화를 수용했던 부여에서 남하했다고 한다. 종래 부여와 고구려의 무덤양식이 전혀 달라 주몽의 남하설을 부정하기도 했지만, 최근 환런의 망강루(望江樓) 고분군에서 부여 계통의 유물이 다량 출토됨에 따라 그 역사성이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또한 백제의 시조 온조는 고구려에서 남하했다고 하는데, 서울 석촌동의 거대한 돌무지무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신라 역시 고조선 유민들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하는데, 경주지역에서 발견되는 초기 철기유적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만주는 고대국가들이 태동하고, 또 그들이 이룩한 선진문화를 한반도 중남부로 전해주던 한국고대사의 진원지였던 셈이다. 다만 고구려 이전에는 이러한 역사 전개과정이 단속적(斷續的)으로 이루어졌다. 고조선이나 부여가 예맥족 전체를 포괄하는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당시 한반도 중남부에 이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할 만한 정치체가 등장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구려의 역사적 위상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있는 압록강 중류유역에서 발흥했다. 고구려는 이러한 입지조건을 적극 활용하여 한반도 북부지역으로 진출하는 한편, 부여의 중심지였던 쑹화강유역과 고조선이 발흥했던 요동지역까지 석권하여 만주 중남부와 한반도 북부에 걸쳐 흥기했던 예맥족 전체를 통합했다. 이로써 고조선 이래 흥기했던 예맥족의 여러 주민집단은 고구려라는 용광로로 용해되어 하나의 역사체로 거듭 태어나게 되었다. 고구려는 예맥족을 통합하여 민족사의 근간을 마련한 존재인 것이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 중남부에도 정치적 통합이 진행되어 백제와 신라가 고대국가로 발돋움했다. 이들은 고구려와 대립과 교류를 반복하며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이에 따라 삼국은 시간적 선후를 달리하며 비슷한 역사적 전개과정을 밟아 나갔는데, 대체로 백제나 신라가 고구려를 뒤쫓는 형국이었다. 가령 고구려의 정치체제는 1~3세기에 부체제(部體制), 4~6세기 중반에 중앙집권체제, 6세기 중반~7세기 후반에 귀족연립체제 등으로 전개되었는데, 백제나 신라도 1~2세기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또한 고구려는 4세기부터 각지에 성곽을 축조하고 군사적 성격이 강한 지방제도를 정비했는데, 백제는 5세기, 신라는 6세기경에 고구려와 유사한 지방제도를 정비했다. 한국 성곽문화의 근간을 이룬 고구려 석축성벽인 고검지산성 북벽. 이러한 양상은 문화적 측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정교하게 축조하는 고구려의 축성술은 백제나 신라뿐 아니라 고려를 이어 조선시기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또한 무덤 양식도 삼국 초기에는 고구려는 돌무지무덤, 백제는 토광묘와 돌무지무덤, 신라는 돌무지덧널무덤 등으로 각기 달랐지만, 고구려 지역에서 먼저 돌방흙무덤으로 전환되더니 백제나 신라도 이를 뒤쫓아 갔다. 이처럼 고구려에서 확립된 정치체제나 선진문화는 일정한 시차를 두며 백제나 신라로 전승되어 삼국문화의 표준으로 정립되었다. 고구려는 백제나 신라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면서도 이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문화적 동질성이나 역사적 유대감을 강화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삼국 후반기에 이르면 중국인들도 삼국을 ‘해동삼국(海東三國)’이라 부르며 동일한 역사적 범주로 인식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고구려의 역사적 위상을 우리 민족사의 범주 안으로만 가두려 해서는 안 된다. 고구려의 외연은 5세기 이후에도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예맥족뿐 아니라 말갈(만주족의 조상) 나아가 만주 서부의 거란의 일부까지 포괄했다. 이들 가운데 말갈의 일부는 고구려인으로 동화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생활양태가 달라 고구려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이종족으로 남아 있었다. 고구려는 예맥족을 중심으로 여러 족속을 포괄했던 만주 최초의 다종족 통합국가였던 셈이다. 고구려나 발해 이후 만주에서 흥기했던 요(遼), 금(金), 청(淸) 등이 고구려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구려사는 한국고대사의 범주뿐 아니라 동북아 고대사라는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은 주민의 대다수가 말갈족으로 이루어진 발해사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다만 이 경우 고구려사나 발해사를 주도했던 주체가 우리 조상이었던 예맥족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현재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계승한 역사체는 한민족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고구려인들이 즐겨먹던 된장과 김치, 그들의 보금자리를 지켜주던 온돌은 한민족의 삶 속에서만 살아 숨 쉬고 있다. 동그스름하며 바닥이 평평한 고구려 토기는 동글동글한 백제·신라 토기를 밀어내고 한민족 질그릇의 주류를 형성했다. 이처럼 지금 만주는 육로로는 가기 힘든 타국에 속해 있지만, 불과 천 수백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고대국가들이 태동하고 고대문화의 표준이 정립되던 한국고대사의 진원지이자 중심지였다. 또한 예맥족 전체를 통합한 고구려나 이를 계승한 발해는 민족사의 근간을 형성하는 한편, 말갈이나 거란 등 다양한 족속과 문화를 포괄하며 제국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만주 그리고 그곳에서 발흥했던 국가체의 성격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고대사라는 범주와 동북아고대사라는 시각을 교차시키며 다각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다음 회는 피터 윤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의 ‘이민족 왕조, 왜 만주에서 나왔을까’ 입니다. 필자소개여호규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조급한 만장일치 잘못된 지각 교정 효과적 의사결정이 집단사고 배제 지난 호에서는 집단사고의 사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그 반대되는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바로 피그만 침공에 뒤이은 쿠바해상 봉쇄사건입니다. 1962년 10월 13일은 전 세계가 일촉즉발의 핵 재앙 위기 속에 놓여 있었다. 소련은 미국의 쿠바침공이 실패로 끝나기는 했으나, 피그만 침공사건으로 위협을 느껴 쿠바에 핵미사일기지를 설치하여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미사일기지가 완성되면 8천만의 미국인이 사정권 안에 들게 되었다. 이 위기를 해결하고자 케네디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집행위원회를 구성토록 했다. 이들은 5일 동안 이 문제를 생각하고 가능한 해결책을 토의한 끝에 쿠바에 이르는 모든 해상을 봉쇄하는 결정을 내렸다. 소련은 이 행위를 해적행위라 비난했으나, 결국 핵무기를 적재한 선박은 소련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쿠바 미사일위기는 소련이 미사일발사대를 해체하는 대신 미국은 쿠바에 대한 불가침약속을 하여 해결되었다. 이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피그만 침공 작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러스크 국무장관, 맥나마라 국방장관, 딜런 재무장관, 번디 국방담당 특별보좌관, CIA 국장과 부국장,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 등 백악관 참모들이 이 계획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머리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집단사고가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집단사고가 일어나는 원인들 중 하나는 조급하게 만장일치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집단에는 동조압력이 어느 정도 있지만, 집단사고의 경우 이 압력은 더욱 뚜렷해지고 압도적으로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이의가 허용되지 않으며, 반대자에겐 상당히 가혹한 조치가 취해지기도 합니다. 또한 집단에 부정적인 정보는 차단됩니다. 집단의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파괴적인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케네디도 피그만 침공작전에서 몇 명의 구성원으로부터 반대의 메모를 받았으나 회의에서는 그 메모를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집단사고의 또 하나의 이유는 착각입니다. 피그만 침공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들이 완전무결하며 도덕성 높은 집단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카스트로는 멍청한 인물이며, 1,400명만을 파견해도 카스트로의 정규군을 격파할 수 있으리라는 ‘엉뚱한’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 6개월 후의 쿠바해상 봉쇄는 집단사고를 배제한 결정이었습니다. 피그만 침공과 쿠바해상 봉쇄의 두 결정을 비교해 보면, 두 결정 모두 같은 지도자 밑에서 거의 같은 사람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압력 하에서 이루어졌고, 같은 지역에서 충돌하여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같았습니다.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위원회에서는 이전의 결정과는 다른 결정을 내놓았습니다. 위원들은 다양한 행동 대안을 철저히 분석했고, 그들이 내릴 조치가 갖는 부담들을 신중히 검토했으며, 해상봉쇄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2차 계획도 구체적으로 수립했습니다. 케네디 또한 회의분위기를 바꾸고 위원 개개인의 생각을 북돋우며 상호간 의사소통을 증진시켰습니다. 즉 조급한 만장일치의 억제, 집단성원들의 잘못된 지각의 교정, 효과적인 의사결정기법이 집단사고를 배제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