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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대회 이모저모 [한국교육신문김예람․김명교 기자]경인교대 경기캠퍼스는 발표준비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온 참가교원들로 북적였다. 완연한 봄기운 덕분에 캠퍼스 곳곳에서는 햇볕을 만끽하며 삼삼오오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고대혁 경인교대 총장은 “봄꽃보다 연구하는 선생님이 아름답다”고 환영했다. 올해는 인성교육 분과가 38편으로 가장 많은 편수가 출품됐다. 그중에서도 특히 ‘행복감’, ‘행복공동체’, ‘행복 역량’ 등 제목에 ‘행복’이 포함된 연구물은 총 16편으로 교사들이 인성교육 연구에 있어 행복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성교육 분과 심사위원은 “학교폭력, 교권침해 등 갈수록 삭막해지는 학교 현장에 대한 반영”이라며 “특히 학생, 학부모들의 관계성 회복에 중점을 둔 인성교육 연구들이 눈에 띄었다”고 분석했다. 제7회 공감나눔 페스티벌도 열렸다. 올해는 ‘현장교육 연구 방법과 수업실천 사례’를 주제로 진행됐다. 제55회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정상채 경기 중흥고 교감은 ‘현장교육연구의 이론과 실제’를 주제로 특강에 나섰다. 다년간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교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보고서 작성 노하우를 전수했다. 정 교감은 “연구대회에 출전하지 않더라도 수업 프로그램을 일기처럼 기록해두는 것이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연구 보고서의 얼굴인 제목(주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주제는 연구 내용의 전체를 요약한 ‘요약 중의 요약’이라야 한다”면서 “독립변인(방법)과 종속변인(결과)의 관계가 명료한 게 좋다”고 말했다. 출품 시 유의해야 할 점도 조언했다. 우선, 분과를 선정할 때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사소한 실수로 표절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보고서 내용은 자신의 문장으로 표현하고 출처를 명확하게 드러내야 한다. 참고 문헌은 그때그때 메모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질적 연구로 현장연구 보고서 쓰기’를 주제로 강의한 정현철 전북대사범대부설고 교사는 양적연구에서 질적연구로 변화하고 있는 연구 트렌드를 강조했다. 그는 “질적 연구는 현장 교사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여러 가지 교육 환경에 대해 자율성을 갖고 이해하는 연구”라며 “오늘날 교육현장의 문제를 극복하고 개선하는 데 질적연구가 기여할 역할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표본과 모집단에 관심을 갖는 양적연구와 달리 질적연구는 학생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갖고, 연구 과정에서도 수정과 적용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면서 “자료 수집과 분석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구성원 간 검토, 동료 간 협의 등을 통해 자료의 진실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장 사례 통한 질적 연구 이뤄져야 심사위원 말·말·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운영=방과후학교 업무는 학교 현장에서 어려운 업무에 속하기 때문에 이 분과에서 1등급 후보가 두 작품이나 나온 것 자체가 고무적이다. 두 작품 모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내실화를 위해 학교 구성원 전체가 똘똘 뭉쳤다. 학교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다방면에 능력 있는 교사들이 강사로 활약했다. 덕분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시스템화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학=치밀하게 재구성한 교육과정과 진실성이 보이는 실행 과정 등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아 심사가 어려웠다. 단순히 과학에 대한 흥미보다 기초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과학의 기본 활동인 실험을 강조한 점도 좋았다. 과학 분야에도 VR과 드론 등 스마트기기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눈에 띠었다. ▨수학=현장 연구에 동기를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점은 높이 산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만 많이 했다는 생각이다. 학교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나선 해결할 방법을 고안하고 실천해 결과를 내놔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연구가 제대로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다. 사례 연구를 추천한다. 선행 연구나 보고서를 참고할 때도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 1등급을 받은 작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참고해선 안 된다. ▨외국어=영어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의사소통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 주를 이뤘다. 특히 영어 핵심역량을 키우는 활동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교원들의 역량이 높아 연구 수준도 높아졌다는 생각이다. 학교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유아교육=교육 현장을 연구하는 것이 대회의 취지인데 양적 연구가 많은 점은 아쉬웠다.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질적 연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현장 연구의 한계이긴 하지만, 연구 대상과의 비교 집단이 없는 부분도 아쉽다. 현장 연구에 대한 초점을 학습자에게만 맞추곤 한다. 하지만 연구 과정에서 교사도 분명 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습자뿐 아니라 교사가 성장한 부분도 함께 밝혀주면 좋겠다. ▨특수교육=특수교육이야 말로 질적연구가 매우 중요하다. 소감문이나 인터뷰 등 학생 개개인의 상황에 맞게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하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교육적 관점에서 학교 안에서 특수학급이 어떻게 잘 연계될 것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춘 부분이 의미 있었다. ▨인성교육=소규모학교에서 이뤄진 연구물들이 특히 많이 출품된 점이 인상 깊었다. 연구 시도는 좋으나 ‘이름 짓기’에 너무 매몰돼 오히려 많은 연구들이 천편일률적인 구성을 하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 오히려 이론적 근거를 탄탄하게 세우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한국교육신문 김명교 기자] 이윤경 서울서강초 교사는 2년 전부터 취미로 드론을 즐기고 있다. 항공과학연구회에 소속돼 관심사가 같은 선·후배들과 드론 연수에 참가해 강의도 듣고 직접 날리기도 한다. 그러다 함께 근무하던 선배 교사로부터 “좋아하는 드론을 수업에 접목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2015 개정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려줄 수 있는 ‘나만의 수업’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 교사는 드론에 대해 차근히 공부한 후 2017년 2학기부터 수업에 녹여냈다. 수학, 과학, 실과 교과를 연계해 수업을 재구성 하고 학생들에게 드론을 소개했다. 드론이 날아가는 원리와 드론 경기장 만들기 등을 통해 과학을, 비행 결과를 수치화 하고 자료를 분석하면서 수학을 가르쳤다. 비행 용어도 실제 쓰이는 방식대로 영어로 알려줬다. 드론의 매력에 푹 빠진 학생들은 스스로 궁금한 내용을 공부하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교사는 “학습에 있어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전했다. “드론과 비행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관련 내용에 몰입했어요. 잘 모르면 사고가 나고, 드론이 고장 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배우는 데 적극적이었죠. 동아리 활동이 있는 날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고, 급한 일이 있어도 자투리 시간에 잠깐이라도 드론을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찾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서울시교육청 서부교육지원청 초등 영재교육원 수·과학 융합반 강사로 위촉돼 활동하는 한편, 교원 대상 직무 연수 강사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근무하는 학교뿐 아니라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아리도 운영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과학교육에 이바지하고 여러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를 통해 4차 산업혁명시대 미래 과학교육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제52회 과학의 날과 제64회 정보통신의 날을 맞아 과학기술·정보통신 진흥 유공자에 대해 정부 포상을 수여했다. 과학기술 진흥 부문에서는 훈장 28명, 포장 7명, 대통령 표창 20명, 국무총리 표창 24명 등 79명에게 정부 포상을 수여했다. 우수 과학 어린이 5559명과 우수 과학교사 228명 등에 대해서도 과기정통부 장관 표창이 주어졌다. 이 교사도 우수 과학교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거리에서 가장 찾기 쉬운 상점은 무엇일까?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커피 전문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2018년 통계 기준으로 서울에만 1만 6000여 개의 매장이 있다고 하니 커피 전문점이 없는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카페의 모습만큼이나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집중을 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보인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어수선한 움직임, 음악 소리 속에서도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 의아해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런 환경 속에서 더 집중이 잘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최근 ‘백색소음’에 대한 연구와 활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백색소음은 넓은 주파수 범위에서 거의 일정한 주파수 스펙트럼을 갖는 신호로 정의되는데, 일반적인 소음을 컬러소음이라고 부르며 이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백색 소음이란 백색광에서 유래됐다. 일반적으로 소음은 불쾌감을 주고 집중력을 방해한다. 그런데 백색소음은 반대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백색소음으로 진공청소기나 세탁기의 소리가 있는데, 이러한 소음에 어린 아이들이 평온하게 잠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연구기관에서도 이러한 백색소음의 효과에 대해서 연구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 의과 대학에서 피실험자에게 백색소음을 들려주고 뇌파를 측정했더니 베타파가 줄어들면서 집중력의 정도를 나타내는 알파파가 많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는 뇌파의 활동성이 감소하고 심리적인 안정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사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백색 소음을 평소 주변 소음보다 약 10데시벨 높게 들려주고 일주일을 지냈더니, 근무할 때 직원들의 불필요한 움직임이 크게 줄어들고 집중도가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적용 사례도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있는데, 남녀 중학생에게 자연의 백색 소음을 들려주면서 고등학생 수준의 영어 단어를 5분간 암기하게 했더니, 평소보다 학업 성취도가 30%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런 백색소음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이나 유튜브 영상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의 효과를 교실에도 적용시키고 싶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지쳐있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자기주도학습 시간 때 스터디카페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우선 백색소음의 역할을 하는 음악을 준비했다. 가사가 없으며, 아이들의 음악적 취향을 고려해 담당 학생이 목록을 정해 스터디카페 운영 시간 동안 백색소음의 범위로 음악이 재생되게 했다. 카페에 걸맞은 음료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 고카페인 음료에 의존하는 경우를 감안해, 건강에 좋은 차와 코코아를 준비했으며 담당 학생이 관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생일이거나 이벤트에 당첨된 아이들에게는 조각 케이크도 준비해 줄 계획이다. 크지 않은 변화지만 아이들의 표정 변화만은 분명하게 보인다. 서로를 격려하고 다른 때보다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환경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힘든 입시 환경이지만 조금은 편한 분위기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 속에서 진정 중요한 가치를 배워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부유한 양반 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한 최초의 여성 아버지로부터 전통이념과 근대주의, 애국주의의 요소 물려받아 강제 병합 후 북경서 독립운동에 헌신…지속적으로 재정 지원 윤정원은 1883년 서울 창신동 일명 조양루라고 일컫는 55간 기와집에서 태어났다. 아호는 남휘(藍輝)다. 강제 병합 이후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에는 윤국초(尹國憔), 윤동매(尹東梅) 등의 이름을 쓰기도 했다. 흔히 애국계몽기를 대표하는 여성으로는 하란사(河蘭史)나 박에스더, 차미리사와 윤정원 등을 드는 데, 이들 모두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근대 교육을 받고 1890~1910년대에 조선으로 돌아와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윤정원은 이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를 제외한 세 여성은 1870년대 하층 사회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여성 차별을 경험했고 요즘과는 달리 남편의 성을 따랐으며, 근대 서구 문명과 기독교의 영향을 배경으로 서양식 이름을 채택했다. 하란사의 본래 성은 김씨로, 란사라는 이름은 영어의 Nancy에서 따왔다. 박에스더의 본래 이름은 김점동으로 에스더(Esther)는 세례명이다. 차‘섭섭이’가 본명인 차미리사의 미리사(Mellissa) 역시 서양식 세례명이지만 최근 제 성을 찾기까지 오랫동안 김미리사로 불려왔다. 이와 달리 1880년대 부유한 양반 관료 집안에서 태어난 윤정원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고 기독교 배경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일본에서 공부했다. 운정(雲庭) 윤효정(尹孝定)과 창원 황씨 사이에서 태어난 윤정원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위었고,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탁지부 주사를 지낸 윤효정은 1898년 일본으로 망명해 일본 고학생을 수용하던 조일신숙에서 박영효 등과 교류하면서 고영근을 시켜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관련자 우범선을 죽이고 귀국했다. 1905년에는 이준(李儁)이 조직한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를 확대 개편해 1906년 4월에 장지연(張志淵)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를 조직해 부회장을 맡았는데,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이 조직은 같은 해 11월에 조직된 대한협회의 모체가 됐다.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대한 그의 응징에서 보듯 윤효정은 초기에는 근왕주의의 요소가 없지 않았지만 점차 개화사상과 근대화에 공명하는 사상의 궤적을 밟아갔다. 박영효와의 교유나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에서의 활동이 이를 잘 나타낸다. 애국주의 역시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다. 이런 점에서 윤정원은 아버지로부터 전통 이념의 편린들과 더불어 근대주의와 애국주의의 요소들을 물려받았다. 10살을 전후한 시기에 집에서 효경, 소학 및 열녀전(烈女傳), 예기(禮記)의 내칙(內則) 등을 공부한 것이나 28세의 나이에 한성고등여학교 교수를 하면서 황후에게 논어를 강연(講筵)한 것은 이런 전통의 영향을 보여준다. 1898년 아버지가 독립협회 활동으로 정치적 박해를 받아 일본으로 망명하면서 그녀는 “우리나라도 지금부터 순연한 문명 정도에 도달코저 하면 교육의 근본되는 여자교육이 불비함을 불가하고 여자의 교육을 창설코저 하면 본국 남자나 외국 부인에게 교무(敎務)를 전임키 어려운 사정이 많으니 너는 10년을 한정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최고등학문을 전수하여 조국의 창유(創有)한 여자법을 작함으로 자임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16세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그녀의 일본 유학은 서울의 일본인 공사 가또 마쯔오(加藤增雄)의 부인과 영사인 아키즈키 사츠오(秋月左都夫)의 부인이 주선했으며 일본에서 여성교육가로 널리 알려진 하라 도미코(原富子, 原六郞 부인)는 유학 중 재정을 지원했다. 1898년 일본 도쿄 메이지여학교 보통과에 입학해 1902년 4월 우등 졸업과 동시에 고등과에 입학, 1905년에는 우등으로 고등과를 졸업했다. 이후 그녀는 1905년 10월 여자학원(영어전문)과 동경여자음악원에서 영어와 서양음악을 공부했다. 한편으로는 도시샤(同志社) 병원에서 자원봉사로 간호부 실습을 하고 여자공예학교에서 각종 수예의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약간의 정책적 고려도 있었지만 윤정원은 일본에 유학한 최초의 여성으로 일본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대한 부인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1905년에 그녀는 아키즈키를 따라 벨기에로 가서 영국, 프랑스, 독일과 미주 등지를 순회하며 음악과 어학 공부를 했다. 1907년 3월 윤정원은 10년 동안의 일본 유학을 마치고 “국내 최초의 여자 일본 유학생”( 황성신문 1907년 3월 13일자)으로서 귀국했다. 1908년 칙령 22호로 최초의 관립 한성고등여학교가 설립되면서 윤정원은 1909년 3월 4일자로 한성고등여학교 교수로 서임(敍任)됐다. 어윤중(魚允中)이 초대 교장은 맡은 이 학교는 관립인 만큼 등록금과 수업료가 전액 면제됐으며 초기에는 교과서, 학용품, 실습 재료 등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한성고등여학교는 지금의 도림동 부근에 있었던 한성부 서쪽의 공조에서 쓰던 기와집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운동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은데다 남녀의 내외가 존속했던 시절이라 어명에 의해 궁궐에서 운동회를 개회하기도 했다.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되는 궁궐에서 여학교 운동회가 열린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었다. 창덕궁 비원 안 옥류천이 흐르고 푸른 잔디가 깔린 뜰에서 개최된 운동회는 달리기, 뜀뛰기, 공 던지기, 맨손 체조와 아울러 그네뛰기 등의 종목으로 진행됐다. 윤정원은 외국 유학에서 배운 이들 종목들을 지도했다. 고종 황제와 윤비는 운동회에 직접 참관했으며, 윤비는 이 자리에서 따로 윤정원을 불러 강연(講筵)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그녀가 왕실과 관련을 맺게 된 것은 이런 인연에서 비롯된다. 윤 황후는 윤정원을 창덕궁으로 불러들이기도 하고 궁 안에서 열린 한성고등여학교 운동회 때에 그녀를 불러 “논어를 읽게 한 다음 강관(講官)으로 내정”했다( 황성신문 1909년 5월 15일자). 같은 해인 1909년 6월에는 김인숙(金仁淑), 김인화(金仁和), 이각경(李珏卿), 이달경(李達卿), 이숙(李淑), 임청하(林淸河) 등과 함께 관·사립의 여학교 연합으로 각 여학교 연합장학회를 조직해 취지서를 발행하고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일본헌병대의 기밀 보고가 이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일제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를 받은 것은 이 조직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1909년 4월 28일에 경희궁에서 관민 합동으로 그녀를 비롯해 박에스더, 하란사 세 사람을 위해 개최된 초대 여자 외국유학생 환국 환영회는 널리 알려졌다. 윤치호, 김필순 등은 고종 태황제와 순종에게 부탁해 당시 개화 귀족들이 쓰고 다니던 것과 비슷한 금테두리 중고모에 흰 깃털을 꽂아 쓰고 검정 제복으로 단장한 마부가 올라앉은 호사스런 쌍두마차를 보내 이들 세 사람의 일가친척들까지 초대하도록 했다. 이날 주최자인 윤치호 학무국장을 비롯해 행사 관계자 및 내빈들이 모두 부부 동반으로 참석한 것은 남녀의 내외가 여전하던 당시의 관습에서는 매우 이채를 띠었다. 여성교육협회(Woman’s Educational Society)와 여성기업협회(Woman’s Enterprises Society)가 공동으로 주관해 여몌례황, 이아가다 등과 여러 여성단체 및 교육계와 종교 단체 등 여성 회중이 1000 명에 가까운 대성황을 이뤘다. 기록에 의하면 아펜젤러 목사와 언더우드 등 내외 빈객은 700~800명에 이르렀다. 유성준, 지석영, 최병헌 등이 차례로 환영 연설을 했으며 기념품으로 주빈인 세 사람에게 각각 금메달이 증정되고 여학생들이 축하 노래를 불렀다. 세 사람의 답사와 주악 이후 다과 잔치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여자로서 최초의 외국 유학을 한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취지에서 보듯이 이 환영회는 당시 여성 교육에 대한 국가와 지식인의 지지를 보이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자 유학생을 위한 행사라고 하지만 내각의 학무국이 주도했고 환영 연설 또한 모두 남성 사회 유지들이 나선 사실 등 남성들의 주도로 기획‧실행된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국가와 지식인 사회의 여성 교육에 대한 지지를 일반에 과시하고 선전함으로써 국민적 차원에서 여성 교육을 장려, 보급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해인 1909년은 윤정원 개인으로서도 의미가 있는 해였다. 이 해 여름 윤정원은 당시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늦은 27세의 나이에 동경 유학생 최석하와 결혼했다. 최석하는 윤정원의 아버지 윤효정이 일본 고베에서 박영효 등과 함께 일본 고학생을 수용하던 조일신숙에 있을 때부터 사제 관계의 인연을 맺은 사이로 아들이 없는 윤효정은 그를 자신의 아들처럼 아꼈다. 윤정원보다 한 해 먼저 귀국한 그를 윤효정이 딸에게 소개한 것이다. 이 시기에 남편 최석하는 안창호, 이시영 등의 신민회와 연결돼 활동했다. 결혼 이듬해인 1910년에 그녀는 아들 양(亮)을 낳았다. 아명은 갑손(甲孫)으로 나중에 그는 북경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계에서 일했다. 1910년은 한국이 일본에 강제 합병된 해이기도 했다. 지배층에 대한 회유정책의 일환으로 윤정원도 교수 직위가 1910년의 8월 24일 각의 결정에 따라 9품에서 6품으로 특승(特陞)했지만, 그녀가 지닌 강렬한 애국주의 성향은 결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윤정원은 교육에 뜻을 접었다. 그리고 망명의 길을 선택했다. 윤정원은 강제 병합 다음 해인 1911년 어린 아들을 안고 혈혈단신으로 중국 북경으로 떠났으며, 남편 최석하는 이시영과 함께 서간도로 향했다. 안창호가 동지들과 조직한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신민회가 그를 파견한 것인데, 최석하는 윤정원과 다시 만나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1926년 북경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민족유일당 운동이 전개된 것을 배경으로 원세훈, 안창호 등이 연합해 결성된 대독립당북경촉성회에 윤정원이 참가한 것은 남편을 매개로 한 안창호의 신민회와의 연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1926년 10월 12일의 제2차 회의와 16일 3차 회의, 그리고 28일의 선언서 발표에 참여했다. 이후 그녀는 임정을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북경, 하남, 중경 등지로 옮겨 다니면서 생활했다. 음악과 외국어 등의 개인교습을 하면서 일정한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같은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지속적인 재정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아예 중국인으로 행세하면서 줄곧 중국에서만 살아가던 그녀는 1945년 해방되던 해 6월 계모 김경원과 동생 윤창한에게 북경에서 보내온 서찰을 마지막으로 서서히 굳어져 갔던 냉전의 두꺼운 장막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생사 여부를 포함한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어린 시절 가정에서 전통 교육을 받은 윤정원은 10년 동안의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의 지식과 사상을 배우고 조선에 돌아와 그것을 실천하고자 했다. 최초의 여자 일본 유학생으로서 국가가 설립한 공식 여성 교육 기관인 한성고등여학교에서 최초의 여성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민족 자립의 달성을 위해 그녀는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했으며, 또 이를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1910년의 강제 병합 이후에는 중국으로 망명해 북경에서 안창호 등과 연결해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고 민족유일당 운동에 참가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는 근대주의의 요소를 내포하는 여성관과 아울러 그녀의 생애에서 중심 주제였다. 이번 글은 2015년에 발행된 필자의 책 '한국 근대 여성 63인의 초상'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워크숍에서 현장 실무 중심의 수업기술을 배우는 연수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고, 이에 대한 기술은 교직 경력에 관계없이 배우고 싶어 한다. 학생들의 호기심과 탐구심을 자극해 학습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수업 없어 실제로 토론 학습, 협동 수업, 거꾸로 수업, 하브루타 수업, 프로젝트 수업, 비주얼 싱킹 등의 교수법은 교사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것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면 교사는 수업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법 적용에 급급하게 된다. 이런 기술들은 무수한 변인들을 극복하고 만들어진 교수법이다. 극복의 맥락이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교수법 강의는 오히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 일반화된 교수법은 오랜 경험과 특별한 노력으로 교육과정을 체계화하고 수업을 효율화하면서 얻은 결과다. 수업 전문가인 교사라면 자신의 실천을 구조화하고 이를 통해 이론의 합리성을 생성하고 터득해야 한다. 가장 좋은 수업기술은 학생의 성향을 고려하고 설계한 것이다. 학생들은 개인화가 중시되면 자기 주도성이 활성화되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하게 된다. 학습자의 연령, 흥미, 능력 등 일반적 특성부터 학습에 대한 탐구력까지 고려해 성공의 경험으로 연결할 수 있는 수업기술이 필요하다. 물론 다른 교사들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탐구하고, 이를 토대로 적절한 교수법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정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교수법은 좋은 수업을 위한 수단이어야지 그것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칫 이론의 정교함에 압도된다면 교사의 수업 역량은 성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들은 세계 진출에 필수로 여기는 외국인 멤버나 영어권 출신의 교포가 없다. 유명 기획사가 배출한 그룹도 아니다. 그런데도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산만의 고유의 색깔로 승부를 걸었다. 진솔한 메시지로 노래를 했다. 모두가 지상파로 눈을 돌릴 때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들의 길을 개척했다. 나만의 수업기술을 찾는 노력 지금은 학습지 등 수업 콘텐츠 제작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교과서를 만든 출판사에서 제공하고 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쉽게 도움을 받는다. 이런 마당에 내 것이 아닌 남의 수업 방식에만 얽매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습관이 반복되면 교사로서의 역동성과 충만성을 잃어버린다. 외부에서 파생된 수업기술을 따라 다니다보면 수업이 업무가 되고 결국 지치게 된다. 교사로서의 ‘나’가 없다면 전문성은 물론 주체성, 자율성마저도 없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다. ‘나’라는 존재가 교실 속에 존재해야 의미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다. 학생들의 다양성과 교실의 복합성을 고찰하고 경험으로 배우는 교사가 돼야 한다. 거기에는 나만의 수업기술을 갖는 것이 핵심이다.
유튜버 ‘올리버 쌤’을 닮은 테오가 하루 동안의 수업을 마치고 마산초를 떠난 후 겨울방학이 지났다. 겨울방학은 뼈까지 암이 전이되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가 낙상사고를 겪고 큰 수술을 하게 되어 온통 병원에서 간호하며 보내야 했다. 어머니는 여러 후유증을 앓았고 우리는 인간의 어떤 장기가 기능을 멈추게 되었을 때 우리의 몸이 어떤 이상을 보이는지 하나하나 겪을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셰인은 나에게 괜찮은 거냐고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나는 괜찮아요, 셰인. 부모님이 아프다는 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일종의 홈 워크 같은 거죠.” “내가 염려하는 건 네 행복이야.” “행복해요. 엄마가 살아있다면.” 그렇게 전쟁 같았던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를 맞이했다. 나는 새 학기에 대한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았다. 몸과 마음은 너무 지쳐있었다. 새 학기를 차분히 준비한다기 보다는 전장을 옮겨가며 끝없는 전투를 치러내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훨씬 나은 수업과 평가를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는 직장인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그 때, 셰인이 내 옆에 있었다. 나는 작년에 원어민 강사로부터 별로 배우지 못했다. 뉴질랜드 출신 원어민은 잔뜩 빚을 지고 며칠 출근도 안 하고 달아나버려서 나는 처음 가르치는 교과목을 서툰 대로 계통 없이 여러 실험을 하며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코 티칭은 하지도 못하고 사고 친 원어민의 뒤처리만 했어야 했다. 신규교사로서 그 과정 또한 너무 서툴고 힘들었다는 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짐작 가능하리라. 셰인은 그런 상태에서 맞은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실제로 고등학교를 나와 바로 미군에 들어가 그린베레 스쿨에서 공수훈련을 받고 이라크 전쟁을 겪은 그는 주한미군 경력도 있었다고 했다. 군을 나온 후로는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위스콘신 대학과 런던대학 대학원을 나와 결국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그의 인생 역경은 어딘가 ‘마스터 키튼’을 연상시키는 데도 있고 어딘가 틀에 갇혀 발버둥치는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듯하기도 했다. 당장 그는 학생들에게 문화로서의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한국에서의 학생들은 항상 시험을 잘 보는 데만 집중하고 영어를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나 자신과 다른 개성과 배경을 지닌 문화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체험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들이 지적하고 틀릴까봐 걱정하는 한국의 문화에서 영어에 많은 비용을 들이지만 영어를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셰인은 가슴 아파했다. “셰인, 한국에서는 말입니다. 부모들이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자기 자식에게 굉장히 많은 돈을 씁니다.” 셰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공교육입니다. 영어가 잘사는 사람만을 위한 도구가 되어선 정의롭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셰인과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료가 되었다. 우리들은 영어 수업과 교육에 대한 철학에 있어서 맞는 데가 많았다. 마치 거대한 적을 맞아 함께 싸운 미군과 한국군처럼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팀웍을 이루는 동맹군이었다. 이것으로 박석희의 새내기열전은 끝을 맺는다. 시골학교 창고에서 SNS에 일기나 쓰던 경력 없는 새내기 교사에게 이름을 내건 고정 칼럼을 연재하게 한 한국교육신문 팀에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칼럼마다 멋진 일러스트를 그려준 삽화가 선생님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스테이시도 떠나고, 겨울방학은 다가오고 있었다. 요즘은 졸업식, 종업식까지 한 번에 끝낸 다음에야 방학을 시작하는 학교가 많다. 아이들이 방학 끝나고 종업식만을 위해 2월에 다시 등교하는 일이 비효율적이고 딱히 교육적이지도 않다는 이유인데, 안 오는 건 아이들뿐이고 교사들은 온다. 3월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학기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테이시의 계약 기간은 2018년까지라서 2019년 1월부터는 볼 수가 없었다. 당분간은 어학실을 혼자 쓴다는 생각에 아침 커피를 마시며 업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학실 뒷문이 드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Hello.” 커다란 곰 같은 체형을 한 우리 학교의 새 원어민 강사 셰인이었다. 생각해보니 셰인의 계약일은 2019년 새해부터니까 출근하는 게 맞았던 것이다. “무슨 일로 왔나요?”라고 물었는데 “출근일이니까 왔지!”라는 답에 나는 “하하, 그렇군요”라는 얼빠진 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당분간 어학실을 혼자 쓸 일은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아침 커피를 나누며 가벼운 차 모임을 갖던 중, 다시 어학실 뒷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Hello.”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유튜브 인기 채널의 어느 외국 남성을 닮은 키가 크고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을 한 잘생긴 백인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테오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왔다는데 보기만 해도 유쾌한 남자였다. 학기가 남은 동안, 계약기간이 만료된 스테이시 대신에 남은 학기 동안 순회학교인 우리 학교에 출근하게 된 것이다. 작년 3월에 동료 원어민 강사들에게 돈을 잔뜩 빌리고 무단으로 도망가 버린 원어민 선생 탓에 우리 학교 아이들은 잔뜩 실망한 채로 새내기 선생님의 서툰 영어수업만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원어민 강사 선생님이 두 명이나 있는 학교가 된 것이다. 갑자기 원어민 부자가 되어버렸다. 어학실은 국제기구가 되어버렸고 셰인과 테오는 같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였음에도 미국 위스콘신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물리적 거리만큼 서로를 신기해했다. 영어전담교사를 하면서 이런 분위기를 경험하며 공부할 기회를 얻길 항상 꿈꿔왔던 터라 나는 선물처럼 찾아 온 하루로 지난 1년 동안 도망간 원어민 때문에 고생한 나날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테오는 어차피 오늘만 출근하니까 최대한 서비스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 온 유쾌한 두 명의 남자들을 신나게 맞이했다. 그동안 못 한 게임들과 다른 나라의 문화들을 접하며 아이들은 간만에 원어민 강사를 둔 학교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테오와 셰인은 큰 덩치들만큼이나 급식을 잘 먹었다. 스테이시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급식을 안 먹곤 했다고 하자 테오는 “크레이지!”를 외치며 왜 이렇게 맛있는 밥을 안 먹느냐고 이야기했다. 미역국을 싹싹 긁어먹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선 학교에서 이렇게 좋은 급식을 주지 않는다고 한국 학생들은 정말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의 한국말을 하는 이방의 손님들로 마산초는 잠시 행복했다.
[한국교육신문 김명교 기자] 6일 열린 한국교총 제110회 임시대의원회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교권을 확립하고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교권 3법 개정이 눈앞에 다가온 것에 대해 전국 교육자들과 함께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해당 법의 시행령을 제정할 때 학교 현장의 의견을 반드시 수렴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대의원들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조들의 애국애족 정신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후학을 위해 헌신한 선배 교육자들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하는 한편, ‘스쿨 리뉴얼(School renewal)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결의했다. 스쿨 리뉴얼은 지난 1월 교육계 신년교례회에서 교총이 제안한 화두로,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학교를 살리자는 뜻이 담겼다. 교사의 열정을 되살리고 학생에게는 꿈과 희망을 주는, 학부모가 믿고 자녀는 맡길 수 있는 학교로 만들자는 취지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비행정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 설립도 촉구했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 정책으로 인해 학생, 학부모, 교원 모두가 피로감을 호소하는 만큼 일관성·연속성·안정성·정치적 중립성을 우선하는 초당적이고 초정권적인정책마련을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국가 책임과 의무를 약화하고 교원의 지방직화를 초래하는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과 장학관 특별채용 요건 완화, 무자격 교장 공모제 확대, 교장선출보직제 등 교단 안정을 저해하는 인사 정책추진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의원들은 이밖에도 ▲국가 차원의 공기 질 개선 대책 마련 ▲각종 교원처우 개선 예산 반영 ▲국·공립대 교원의 상호약탈식 성과급적 연봉제 폐지 ▲차등 성과상여금 폐지 ▲8월 퇴직자 성과상여금 지급 ▲1만 신규 회원 확보 운동 등 교육자들의 의지와 요구를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번 임시대의원회에서는 2018년도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 세입·세출 결산(안) 등에 대한 심의와 사업 보고도 진행됐다. 교총 대의원회는 한국교총의 최고 의결기구로 17개 시·도교총의 선출 대의원과 직능단체 배정 대의원 등으로 구성됐다. 아래는 제110회 임시대의원회 결의문 전문. --------------------------------------------------------------------------------------- 3·1운동 100주년 및 교권 3법 개정 실현 맞이 제110회 임시대의원회 결의문 올해는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다. 이에 전국의 55만 교육자는 위대한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열한 분이 교육선각자라는 데 큰 자긍심을 갖고 더욱 인재양성에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그간 한국교총이 전국 교육자의 염원을 담아 전 조직력을 결집해 줄기차게 추진해 온「교권 3법」 중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교원지위법이 3월 본회의에서 통과된 바 있다.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도 교육위를 통과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우리는 교권을 확립하고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법적 여건이 마련된 데 대해 전국의 교육자들과 함께 크게 환영하고,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희망하며, 이러한 법적 안정성을 통해 더욱 제자를 사랑하고 교육에 집중할 것임을 밝힌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폐허, 분단국가의 어려움 속에서도 세계가 놀라는 발전을 이룩한 것은 우리 국민의 힘이며 그 원천은 바로 교육이다. ‘대한민국은 교육을 통해 세워진 나라다’라는 긍지를 갖고, 한국교총 제110회 임시대의원회 참석자 일동은 교권 3법 개정 활동과 결실을 바탕으로 국가교육위원회 설립 및 유·초·중등교육 지방 이양 추진 등 교육현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의 결의를 밝힌다. 우리의 결의 1. 우리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선조들의 애국애족 정신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후학을 위해 헌신하신 선배교육자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한다! 1. 우리는 교육 기본으로 돌아가 선생님의 열정과 열의를 되살리고, 학생에게 희망과 꿈을 주며, 학부모가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학교를 다시 만들기 위해 교육계, 학부모, 정부와 정치권 등 각계각층이‘스쿨 리뉴얼(School renewal)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1. 우리는「아동복지법」개정안과「교원지위법」개정안의 국회 통과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학교폭력예방법」개정안도 조속히 국회 본회의에 통과되도록 적극 협력해 줄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정부는 시행령 제정 시 교권보호와 교육에만 매진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도록 교총 등 학교현장 의견을 반드시 수렴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1. 교총의 설문조사 결과 초등교원 10명 중 9명 이상이 미세먼지로 인한 수업 지장을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로 인해 학생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학교 단위 대응에 한계가 확인된 만큼 국가 차원의 공기 질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1. 우리는 2단계 특별승진을 기도해 교원들의 상실감과 혼란을 초래하는 장학관 특별채용요건 완화 및 도서벽지근무와 보직교사 업무 기피를 불러오고 있고 투표조작까지 일으킨 무자격 교장 공모제 확대, 교장선출보직제 등 교단안정을 저해하는 인사정책 추진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 또한, 16년간 동결된 보직교사수당, 19년간 동결된 교직수당 인상을 비롯한 각종 교원처우 개선 예산 반영은 물론 국·공립대 교원의 상호약탈식 성과급적 연봉제 조속 폐지, 차등 성과상여금 폐지, 8월 퇴직자 성과상여금 조속 지급을 강력히 촉구한다! 1.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 부활, 자사고 논란, 대입 개편의 혼란 등 수시로 바뀌는 정책으로 학생, 학부모, 교원 모두가 교육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시·도교육청은‘교육법정주의’와 ‘현장성’에 기반한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교육정책을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1. 우리는 ‘교육은 일관성․연속성․안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초당적·초정권적 교육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독립된 비행정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촉구한다! 1. 우리는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국가책임과 의무를 약화하고 교원의 지방직화를 초래할 수 있는 조건 없는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 추진을 반대하며, 정부가 이를 추진하기 위해 사회적·교육적 대화와 합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1. 우리는 교원단체 활동역량 제고 및 조직강화를 위해 1학교-1회원가입으로 1만 신규 회원 확보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을 결의한다! 1. 우리는 세월호 참사 5주기와 천안함 폭침 9주기에 즈음해 희생자와 순국 용사를 깊이 추모하며, 나아가 학생안전교육과 생명존중운동에 적극 앞장설 것을 결의한다! 2019년 4월 6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제110회 임시대의원회 참석자 일동
올해 우리 국민들에게 주어진 숙제 하나.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3·1 운동을 재조명해 보는 것. 기자는 숙제 하나를 빨리 끝마쳤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수원박물관에서 숙제 마감시한, 즉 전시기간은 6월 9일이지만 앞당겨 한 것이다. 이 기사를 보는 사람이라면 4∼5월 중에 수원박물관 기획전시실에 들려 수원 여성의 독립운동을 살펴보았으면 한다. 3·1 운동부터 광복까지 계속된 독립운동은 신분, 성별, 나이, 직업에 구애 받지 않고 전 민족이 참여한 투쟁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활동이 자료 부족으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수원박물관이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수원 사람들의 독립운동 특별전시회’도 주로 남성운동가를 중심으로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번의 전시회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구 위의 반은 남자, 지구 위의 반은 여자. 남자들이 독립운동에 앞장 섰으면 그것을 뒷받침한 사람은 여자다. 여기서 여자는 딸, 아내,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결혼을 했다면 아내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수원박물관 김경표 학예사는 “지금까지 자료 발굴은 안타깝게도 여성에게 주목을 하지 않아 남성이 90%. 여성이 10%”라고 한다. 이번의 테마전이 여성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된다. 기자의 첫 시선을 잡은 것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대한독립 여자선언서’. 1919년 2월 간도의 애국부인회가 작성한 것이다. 내용은 여성의 독립운동을 촉구하고 있다. 즉, 독립운동은 우리의 제일 의무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때를 놓치면 성사되지 못한다. 여성들은 속히 분기하자는 것이다. 거사를 앞두고 독립운동 동참에 대한 긴박감이 묻어난다. 이번 전시는 프롤로그, 1부 일제 식민지배와 수원 사람들의 항거, 2부 수원 기생 만세운동의 주역 김향화, 3부 구국의 선봉에 나선 학생 이선경, 4부 수원 여성의 독립운동,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 ‘전시회를 개최하며’는 우리글, 영어, 한자, 일본어로 구성되어 있고 에필로그는 ‘반성없는 용서란 없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타이틀이 붙어 있다. 우리의 기존관념에서 기생 이미지는 어떠한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전시물을 보니 생각이 확 바뀐다. ‘수원 기생의 성복참례’(1919. 1.29 매일신보.)는 수원 기생들이 고종의 승하 소식에 일체의 가무를 멈추고 근신하였으며 소복과 나무비녀 차림으로 상경하여 성복(成服) 참례(參禮)했다는 보도다. ‘수원 기생 자선극’(1922. 5.7 동아일보)은 수원 기생들이 수원강습소 운영비 마련을 위해 자선공연을 펼친 내용이다. 기생 신분으로 일제의 총칼 앞에 당당히 맞선 김향화와 32명의 기생들. 그 날은 1919년 3월 29일이었다. 일제가 화성행궁 앞에 설치한 자혜원과 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이다. 비록 기생 신분이었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한 그녀들의 투쟁은 그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경기도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이선경. 그는 박선태, 이득수, 최문순, 임효정 등과 등과 함께 비밀결사조직 구국민단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에 발각, 검거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8개월 후 석방되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석방 9일만에 19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유관순 열사가 1920년 순국하고 난 지 6개월만인 1921년 4월 21일 이선경 열사는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김향화와 이선경 외에 소개된 수원의 여성독립운동가는 더 있다. 남편 임면수와 독립운동의 평생 동지로 살아온 전현석,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와 결혼해 함께 독립운동을 한 간호사 출신의 이그레이스. 또 문봉식, 차인재, 최경창, 홍종레 등.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이 자신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생각했다. 특히 사진 한 장에 주목이 간다. 1916년 수원삼일여학교 송별회 사진인데 여기엔 김세환 선생과 나혜석, 박충애, 차인재 등 독립운동에 앞장 섰던 제1회 졸업생이 보인다. 흔히들 박물관을 구시대의 유물을 모아 놓은 곳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박물관은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다.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한 민족에게는 또 다시 비극이 찾아온다. 독립운동가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자유와 평화, 저절로 생겨나고 얻어진 것이 아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수원박물관 테마전 관람을 적극 권유한다.
교육현장에서 종종 활용되는 영상이 하나 있다. 유튜브(www.youtube.com)에 ‘오바마 대통령과 한국 기자’로 검색하면 나오는 장면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 회견장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특별히 질문할 기회를 주는데, 한국 기자들은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오바마 대통령께 질문한 사람은 한국 기자가 아니라 중국 기자였다. 질문을 좀처럼 하지 않는 것은 한국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조용히 듣기만 하지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남을 의식한 탓도 있지만, 마땅히 질문할 거리를 찾지 못해 입을 열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 없이 TV 드라마나 영화에 빠져드는 것처럼 학생들은 지식을 전수받는 수동적인 교육에 길들어 있다. 질문의 부재는 사고의 결핍을 의미한다.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질문할 거리를 찾지 못한다. 질문은 다양한 생각과 의문에서 시작된다. 질문은 세계와 대상을 바르게 바라보게 하는 인식의 틀로 사물에 대한 안목과 비판적 사고를 길러준다. 질문을 통해 학생들은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며 창의적 사고를 하게 된다. 또한 질문은 타인의 생각을 더듬어 보게 하며 소통과 경청, 공감의 태도를 기르게 해준다. 본 글에서는 고등학교 수업사례를 중심으로 질문 있는 배움중심수업의 전략을 제시한다. 배움중심수업은 수업의 목적이 교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배움은 학습자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로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는 것을 깊이 탐구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일어난다. 질문은 학습자의 배움을 일으키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다음은 ‘문학’ 시간과 ‘독서와 문법’ 시간에 실행한 질문수업사례이다. 사례 ❶ _ 고전수업에서 유형별로 질문 만들어보기 질문을 정교화하는 한 방법으로 사고 유형별로 질문을 생성하여 분류하는 방법이 있다. 질문을 사고 유형별로 나누면, 사실 확인 질문(사실적 이해), 추리 상상 질문(추리적 사고), 평가 질문(비판적 사고), 적용 질문(추리적 사고), 창의 질문(창의적 사고)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질문은 사실 확인 질문에서 창의 질문으로 갈수록 더 높은 사고를 필요로 한다. 여러 유형의 질문 만들기 수업은 다음의 절차로 전개된다.[PART VIEW] 1) 교사 안내 : 교사가 질문의 유형을 알려준다. 2) 학생 개별활동 ① 각자 제시된 글을 읽는다. 글을 읽을 때 궁금한 점을 메모한다. ② 각자 유형별로 질문을 하나씩 만들어보고 활동지에 기록한다. 3) 모둠 협력활동 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기가 쓴 질문을 말한다. ② 사실 확인 질문부터 유형별로 괜찮은 질문을 2개씩 모둠 토의를 통해 가려낸다. ③ 모둠원 한 사람씩 질문 유형 하나 또는 두 개씩 맡아 토의를 통해 가려낸 좋은 질문을 포스트잇에 기록하고, 모둠 활동지에 붙인다. 4) 공유 활동 ① 각 모둠장이 자기 모둠에서 완성한 것을 칠판에 붙인다(작은 자석으로 게시물 고정). ② 다른 모둠의 것을 관람하고, 유형별로 좋은 질문이라 생각되는 것을 노트에 써야 한다는 것을 교사가 사전에 알려준다. ③ 모둠 한 팀 한 팀이 차례대로 나와 다른 모둠의 활동을 살펴보며 참신하고 좋은 질문이라 생각되는 질문 옆에 칭찬 스티커를 붙인다. ④ 많은 칭찬 스티커를 받은 질문을 중심으로 교사가 학생들이 가려낸 질문을 유형별로 정리해준다. ⑤ 학생들은 노트에 유형별로 다른 모둠에서 만든 좋은 질문을 2개씩 기록한다. 사례 ❷ _ 시 수업에서 짝과 함께 질문 만들어보기 질문 만들기는 모르는 것과 궁금한 것을 의문형 형식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질문은 본인의 경험・지식・판단에 비춰 납득이 되지 않고 의문이 생길 때 만들어진다. 질문이 일어나려면 어떤 것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깊이 생각을 해야 한다. 학생들은 영상・사진・글 등의 자료에서 질문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짝과 함께 질문 만들기는 두 편의 시를 제재로 한 것이다. 수업은 기본 학습에 해당하는 ‘발판 활동’과 심화 활동에 해당하는 ‘점프 활동’으로 전개된다. 발판 활동에서는 이미지 그림을 보고 질문 20개를 만드는 활동이 이뤄진다. 점프 활동에서는 ‘우리가 물이 되어’와 ‘겨울바다’라는 두 편의 시에 대해 짝과 협력하여 질문을 만들어보고, 좋은 질문 3개를 각 작품에서 선정한다. 그리고 마무리 단계에서 학생들의 발표를 중심으로 교사가 정리한다. 1) 발판 활동 : 고래 사진을 보며 질문 20개 만들어보기 ① 위 장면을 보고 떠오르는 질문 10가지를 노트에 써보기(5분 내) ② 스스로 보기에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세 개 정도 가려 빨간 볼펜으로 별표하기 ③ 짝이나 다른 사람의 것을 살펴보고 질문 10가지 더 노트에 써보기(5분 내) ④ 스스로 보기에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세 개 정도 가려 빨간 볼펜으로 표시하기 2) 점프 활동 : 짝 토의를 통해 좋은 질문 가려내기 작품 1 :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 작품 2 : 「겨울바다」(김남조) ① 본인이 살핀 작품 1에 대해 질문 10개 만들어보기 ② 작품 2에 대해 짝이 만든 질문 10개를 그대로 옮겨 쓰기 ③ 짝과 의논하여 두 작품에 대해 좋은 질문 3개씩 가려내기 3) 점검 활동 ① 학생의 발표 및 교사의 정리 ② 차시 수업 안내 사례 ❸ _ 비문학 수업에서 질문카드로 질문 만들어보기 질문카드로 5지 선다형 문제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질문카드는 놀이카드의 크기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두꺼운 종이로 만들 수 있다. 4~5명의 모둠원은 지정된 부분의 글을 읽고 질문 두 개를 두 장의 질문카드를 쓴다. 이 질문카드를 가지고 모둠별로 질문 답하기 활동을 한다. 모둠에서 5장의 질문카드를 가려내고 모둠장이 이 카드를 들고 옆 모둠으로 이동해 모둠 이동 질문 활동을 한다. 2회 이동하는데, 모둠원들의 정답 여부로 평가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모둠원들이 각자 만든 질문을 바탕으로 5지 선다형의 객관식 문항 하나를 완성한다. 1) 개별 질문카드(2장) 만들기 ① 모둠별 모둠원에게 문단 배정(교사 지정 또는 무작위 선택) ② 지정 문단에서 각자 두 장의 질문카드 만들기 → 한 장의 카드에 ○, × 문제, 또 다른 카드엔 단답형 문제 만들기 2) 질문 답하기 활동 ① 모둠의 각 1번부터 자신이 만든 2장의 질문카드를 모둠원에게 질문하기 • 첫 번째 질문(카드) : 모두에게 질문 → 답하기 → (질문자) 피드백 • 두 번째 질문(카드) : 특정인에게 질문 → 답하기→ (질문자) 피드백 ② 모둠 전원, 질문 답하기 활동이 끝나면 모둠 박수 ③ 완료한 모둠은 모둠원끼리 토의하여 다섯 개의 좋은 질문 선정 (한 모둠의 인원이 4명인 경우 한 사람이 한 장씩 내고, 한 장을 더 가려냄) 3) 모둠장 이동 질문 활동 ① 모둠장이 질문카드(5장)를 들고 옆 모둠으로 이동한다. • 질문카드 1 : 모두에게 질문 → 답하기 → (질문자) 피드백 • 질문카드 2~5 : 한 사람씩 개별 질문 → 답하기 → (질문자) 피드백 ② 모둠의 질문 답하기 활동이 끝나면 짝-짝-짝짝 박수 ③ 위 활동을 2회 반복 실시함 • 이동한 모둠장이나 모둠의 기록이 역할을 맡은 사람이 맞춘 개수 확인(한 개당 10점) • 한 회가 끝날 때마다 교사가 모둠별 점수를 확인하고 기재해 최선의 모둠을 선정함 ● 교사-칠판 기재 활동 4) 마무리 활동- 5지 선다형 문제 노트에 쓰기 • 모둠별로 노트에 협력하여 5지 선다형 문제를 만들어 쓰도록 함 • 모둠원들이 쓴 질문을 바탕으로 5개의 진술문을 작성하고, 하나는 틀린 진술로 작성함 사례 ❹ _ 문법 수업에서 질문카드로 질문 만들어보기 [방법 ①] 1) 모둠 구성 : 4~5명으로 모둠 구성. 모둠원 번호 지정 및 모둠장 선정 2) 학습활동 안내 ① 익혀야 할 문법 개념 안내 ② 모둠 구성원 각자 공부해야 할 문법 개념 정하기(교사 지정 또는 무작위 선택) • 한 사람이 두 개의 문법 개념을 맡아 공부함 ③ 각자 카드 두 장에서 자신이 공부한 내용과 문제 만들어 적기 • 앞면 : 설명할 내용 5줄 내외로 적기 • 뒷면 : 뒷면에 문제(단답형 또는 OX 문제) 만들어 적기 3) 모둠 내 활동 ① 카드 앞면에 기록한 내용을 돌아가며 설명하기(2개 또는 1개, 1분 내로) ② 카드 뒷면의 질문을 돌아가며 말하기(모둠원들 답하기) 4) 모둠 간 활동 ① 모둠 내에서 좋은 문제 4~5개(4~5장 카드) 가려내기 ② 모둠장이 질문카드 들고 타 모둠으로 이동 ③ 모둠장이 문제를 읽어주면 타 모둠 학생 문제 답하기 (질문 방식 : 전체 모둠원에게 묻기 → 특정인 지정해 묻기) ④ 타 모둠으로 이동하여 ③번 실시(모둠장 3회 내 타 모둠으로 이동) 5) 점검 활동 ① 친구들 문제 중 좋았던 문제 노트에 5개 이상 쓰기 ② 형성평가로 배운 내용 점검하기 [방법 ②] 1) 모둠 구성 : 4~5명으로 모둠 구성, 모둠 구성원 번호 지정, 모둠장 선정 2) 학습활동 안내 ① 모둠 구성원 각자 공부해야 할 문법 개념 정하기(교사 지정 또는 무작위 선택) ② 카드 두 장에서 자신이 공부할 것을 바탕으로 단답형 또는 OX 문제 만들기 • 한 장의 카드에 하나의 문제 만들기(앞면에 문제 적기, 뒷면에 정답 표기) 3) 모둠 내 활동 : 한 사람이 돌아가면서 2장의 질문카드 문제 모둠원들에게 묻기 ① 한 장은 전체에게, 또 다른 한 장은 특정인에게 질문하기(맞히면 칭찬을, 틀리면 맞힐 수 있도록 힌트를 주며 도와줌) ② 묻고 답하는 활동이 끝나면 모둠 박수 4) 모둠 간 활동 ① 모둠의 질문카드 8장을 옆 모둠으로 전달함(모둠원이 5명인 경우에는 2장을 빼서 8장으로 맞춘다.) ② 타 모둠의 질문카드를 모둠장이 잘 섞어 책상 중앙으로 모아 놓는다. 질문이 적혀 있는 앞면이 위로 향하도록 한다. ③ 모둠의 1번 학생은 노출되어 있는 맨 위의 카드를 카드 맨 밑으로 넣고, 그다음 카드를 가져가 질문 내용을 읽고 답을 말한 뒤, 뒷면의 정답을 확인한다. 맞히면 그 카드를 가져가고, 틀리면 카드 맨 밑으로 넣는다. 아예 모르면 ‘통과’라고 말하면 바로 카드 맨 밑으로 넣는다. ④ 이렇게 모둠 1번부터 4번(5번)까지 순서대로 질문 맞히기를 하며, 중앙에 있던 질문카드가 없어지면 모둠박수를 친다. 5) 점검 활동 ① 친구들 문제 중 좋았던 문제 노트에 5개 이상 쓰기 ② 형성평가로 배운 내용 점검하기 이상에서 소개한 질문 수업의 사례는 배움중심수업의 한 전략으로 설계하고 실천한 것이다. 질문이 있는 배움중심수업은 학습자의 사고를 활성화하고, 학습자가 주도하는 학생 참여형 수업을 가능하게 한다. 학생 참여형 수업은 교실에서는 학생이 주도하고, 교실 밖 수업설계의 장에서는 교사가 주도한다. 배움의 즐거움이 있는 수업은 교사가 계속 질문하는 수업이 아니며, 학생들에게 질문을 마구 강요하는 수업이 아니다. 이 수업에서는 소외되거나 낙오되는 학생이 없어야 한다. 소외되는 학생 없이 모두가 배움에 동참하려면, 실제 활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질문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게 하면서 조금씩 말문을 열게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학습자의 수준과 제재의 특성을 진단하여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수업전략이 교사에게 요구된다.
# 1 무작정 떠난 인도 배낭여행 인도는 배낭여행객 사이에서 여행하기 어렵기로 손에 꼽히는 국가이다. 그런 인도를 아무런 계획 없이 여행했었다. 대학 졸업 전에 잠시 공장에서 근무했었다. 그때 함께 일하던 한 동료가 쉬는 시간이면 인도의 자이살메르에서 담아온 낙타 사파리 사진을 보여 주며 인도 여행기를 들려줬었다. 덕분에 그때 번 돈으로 카메라를 장만하고 인아웃 항공권만 결제하고 인도를 한 달 남짓 다녀왔다. # 2 가이드북 두 권에 모든 것을 의지한 여행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2009년이었다. 인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이드북을 두 권 챙겼다. 지금은 스마트폰에 많은 정보를 저장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그때는 종이에 대한 의존이 높던 시기였다. 가이드북을 통해 교통편, 숙박업소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며 여행을 계속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첫날 하루는 숙박업소를 돌아다니며 빈방을 찾고, 다음 도시로 향하는 교통편을 예약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이게 당연한 절차였기에 여행의 일부라 생각했고 재미있게 즐겼다. 물론 지금도 이런 방법으로 여행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시간은 금보다 귀하기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사전에 예약하길 추천한다. 요즘엔 라틴아메리카 소도시에 있는 숙소도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다. 아고다·호스텔월드·부킹닷컴·호텔스닷컴과 같은 숙박 앱을 통해서 여행하고자 하는 지역의 숙소를 여행객들의 후기와 실제 사진을 확인해 예약할 수 있다. 현지 교통편도 도시 간 이동에 사용되는 비행기·버스·기차 정도는 사전에 예약할 수 있다. # 3 낭만적인 기차여행을 즐겨보자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오랜 시간 겪은 나라이다. 영국은 인도 대륙 전체에 자원 수탈과 식민지 경영을 목적으로 촘촘한 철도 교통망을 설치했다. 오늘날 영국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그때 만들었던 철도는 아직도 잘 작동하고 있다. 인도 배낭여행에선 두 가지 이유로 철도교통을 활용하길 추천한다. 첫째, 인도 기차에는 외국인 전용칸이 있다. 외국인 전용칸 기차를 타면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하는 같은 처지의 다양한 국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여행객들에게 인터넷에서는 구할 수 없는 실시간 알짜배기 정보를 들을 수 있다. 마음이 잘 맞는다면 길동무가 새로 생길 수도 있다. 둘째, 인도 기차에는 슬리퍼 클래스 칸이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여행지에서는 시간이 금이다. 인도는 대륙으로 불릴 만큼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이다. 슬리퍼 클래스 기차를 활용해 밤에 잠을 자며 이동하면 여행에서 이동으로 소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비행기 이용이 시간을 아끼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비행기가 빠를지라도 공항에서 각종 탑승 절차에 소비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잠자는 시간을 이동에 활용하는 슬리퍼 클래스가 인도에서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인 것 같다. # 4 인도의 관문 도시 뭄바이 인도는 대륙이라 불릴 만큼 넓은 나라이다. 당시 여행에서 뭄바이(Mumbai)공항으로 들어가 델리(Delh)공항으로 나오는 항공편을 결제했다. 이렇게 인·아웃 공항을 달리해서 여행 경로를 짜면 이동 시간을 단축해 여행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뭄바이공항에 내렸을 때 엄습했던 덥고 습한 공기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뭄바이에는 ‘게이트 오브 인디아’라는 상징적인 건축물이 있다. 1911년 당시 인도의 왕이었던 조지 5세의 방문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항공교통이 발달하기 이전 뭄바이는 유럽과 인도를 오가는 선박들이 거쳐 가던 중요한 항구였다. 델리가 정치적 수도라면 뭄바이는 무역이 번성해 경제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도 뭄바이는 인도 서부해안 최대 경제 중심지로 통한다. 뭄바이에 도착하면 식민지배 시절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그때부터 달렸을 것 같은 올드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뭄바이에는 도비가트(Dhobi Ghat)라 불리는 빨래터가 유명하다. 인도는 카스트라 불리는 신분제도가 아직도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나라이다. 최근에는 도시를 중심으로 카스트가 점차 무너지고 있다고는 한다. 도비가트에는 도비왈라라고 불리는 카스트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그들이 일하는 빨래터가 있다. 도비왈라들은 일평생 이곳에서 뭄바이 곳곳에서 몰려드는 옷을 세탁한다. 도비가트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으로 사용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 5 화강암 풍화의 세계 함피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다음 여행 장소를 찾아 가이드북을 넘기다가 대학 전공 서적에서 봤던 그림과 유사한 사진을 발견했다. 속초 영랑호에 있는 범바위는 ‘토르’라고 불리는 지형이다. 지하 깊숙이 있던 화강암이 지표에 노출되면 압력이 제거되면서 팽창해 암석이 쩍쩍 갈라진다. 갈라진 틈을 따라 수분이 침투해 풍화가 진행되면서 마치 시루떡을 쌓아 놓은 것처럼 화강암 돌덩이가 포개져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함피(Hampi)에는 토르와 같은 화강암 풍화 지형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다. 함피는 인도의 마지막 힌두 왕조인 비자가나야르 왕조의 수도였다. 화강암은 훌륭한 건축재료이기도 하다. 함피에는 화강암을 활용한 비자가나야르 왕조의 유적이 곳곳에 있다. 덕분에 함피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함피를 소개하는 글을 읽으며 하루는 지형 경관, 하루는 역사 유적을 들르는 식으로 이곳에서만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다시 인도를 여행한다면 첫 번째로 들르고 싶은 곳이 함피이다. # 6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라나시 바라나시(Baranasi)는 힌두교 최고의 성지이다. 바라나시는 갠지스강변에 위치한 도시이다. 수도인 델리(Delh)와도 가까워 델리를 통해 들어와 짧은 일정으로 인도를 들르는 여행자들이 꼭 방문하는 도시 중에 하나다. 인도에서는 강변에 있는 계단을 가트라고 부른다. 바라나시에 있는 가트는 인도의 여러 가트보다 더욱 특별하다. 바라나시 가트에는 수많은 화장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갠지스는 힌두교도들에게 어머니의 강으로 통한다. 힌두교의 윤회 사상에 따르면 지금 삶은 잠시 거쳐 가는 순간일 뿐이며,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힌두교도들은 어머니의 강인 갠지스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길 소원한다. 바라나시의 수많은 화장터는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화장터에서는 울음소리를 듣기 힘들었다. 가트의 계단에 앉아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있으면 하루가 멍하니 지나가 버린다. 여행 중에 만난 어느 한국인은 바라나시를 멍 때리기 가장 좋은 장소로 소개했다. 한 줌 재로 변해버리는 고인을 바라보며 한국에서의 수많은 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삶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았던 사람일지라도 바라나시에서는 인생이란 무엇인지 한 번쯤은 되돌아보게 된다. 인도 여행지를 돌고 돌아 바라나시에 도착할 때쯤이면 육체적·정신적으로 모두 지쳐있을 가능성이 크다. 바라나시는 잠시 인도를 떠날 역할도 한다. 바라나시의 버스정류장에서는 매일 네팔의 포카라(Pokhara)로 떠나는 국경 버스가 출발한다. 포카라는 히말라야 트래킹을 시작하는 거점도시이다. 인도의 복잡함·지저분함에 지쳤다면 바라나시에서 잠시 네팔에 들러보길 추천한다. # 7 자이살메르에서 즐기는 낙타 사파리 인도 서부 파키스탄과 맞닿는 곳은 아열대고압대의 영향으로 타르사막이 형성되어 있다. 자이살메르(Jaisalmer)는 인도와 아랍 세계를 연결하는 무역로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이다. 낙타에 짐을 실어 교역을 하던 시절 자이살메르는 중계무역으로 크게 번성했다. 자이살메르성에는 그때의 찬란했던 모습을 간직한 고택들이 여럿 있다. 인도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자이살메르는 낙타 사파리를 즐길 수 있는 도시로 인기가 높다. 낙타 사파리는 보통 1박 2일 코스로 자이살메르에서 출발해 사막 한가운데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점심때쯤에 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된다. 물론 원한다면 더 길게 떠나는 투어 상품도 있다. 혼자 하는 여행에 지친 여행자라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숙소에서 낙타 사파리를 예약하면 좋다. 그러면 숙소에서 한국인들로 그룹을 만들어 여행상품을 준비해준다. 가이드도 어느 정도 한국말을 할 줄 알아 오랜만에 한국말을 편하게 사용하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저녁에는 낙타 몰이꾼이 준비한 간단한 저녁 식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다. 낙타에 실어 올 때는 분명 미지근한 음료였는데, 낙타 몰이꾼이 아는 수풀 사이에 몇 시간 보관했더니 음료수가 금세 시원해져 다들 놀랐던 기억이 난다. 자이살메르에서 사막의 한적함을 최대한으로 느끼고 싶다면 근처 작은 마을인 쿠리 방문을 추천한다. 쿠리는 자이살메르에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근처에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묵었던 숙소에서 하루 세끼를 전부 제공했던 기억이 난다.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은 부족하지만, 사막의 황량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자이살메르의 낙타들은 여행객들에게 혹사당한 나머지 야윈 느낌이었는데 쿠리의 낙타들은 건장하고 보다 야생의 느낌이 났다. 쿠리에서 1주일 정도 머물렀던 스페인 친구 ‘사라’는 혼자서 낙타를 몰며 사막 여기저기를 달렸다. 한적함, 그리고 자유로움이 함께했던 쿠리는 함피 다음으로 인도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 인도에서의 아침은 짜이와 함께 짜이는 인도식 밀크티이다. 짜이는 우리가 아는 밀크티에 마살라와 같은 인도 향신료를 첨가한 음료이다. 인도 사람들은 짜이를 사랑한다. 이른 아침 길거리를 나서면 어디에서나 “짜이”를 외치는 짜이왈라를 만날 수 있다. 몇 루피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에 짜이 한 잔을 받아 들면 ‘아 여기가 인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짜이를 마시는 티타임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인이 아닌 로컬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눈빛과 미소로 교감했던 순간은 인도 여행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아침에 짜이를 마시고 점심이나 저녁에는 라씨도 꼭 마셔보길 권한다. 힌두교에서 소는 중요한 동물이다. 그래서 인도에는 어디를 가도 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면 길거리에 있는 소에서 우유를 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요플레와 비슷한 음료가 라씨이다. 라씨가 생소한 여행객들을 위해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다양한 열대과일을 섞은 라씨를 판매하고 있다. 바나나라씨, 파인애플라씨 등 달콤새콤한 라씨로 식사를 마무리하며 인도의 맛을 느껴보길 추천한다. 에필로그 힌두교는 하나의 신이 아니라 수많은 신의 존재를 믿는 다신교이다. 인도를 여행하며 인도의 다양한 문화와 경관을 경험하니 이곳에서 왜 수많은 신이 탄생했는지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았다. ‘Incredible India!’는 인도 관광청을 대표하는 문구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인도로 다시 한 번 떠나고 싶다.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 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시작됐다. 올해는 다문화 학생을 위해 다국어 설문지가 제공된다. 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주관으로 한국교육개발원에 위탁해 1일부터 시행 중이다. 대상은 전국의 초등 4학년~고교 3학년 학생이다. 기간은 1일 오전 9시~30일 오후 6시까지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12년부터 매년 2회 시행하고 있다. 다만, 2017년까지는 매년 2회 전수조사를 하던 형태에서 지난해부터는 1차는 전수조사, 2차는 심층 표본조사로 시행하고 있다. 올해 달라진 점은 다문화가정 학생 증가에 따라 우리말 설문지 외에 영어·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필리핀어(타갈로그어)·태국어·러시아어 등 7개 외국어 설문지도 제공된다는 점이다. 설문지는 초등학생용과 중·고생용으로 구분되고,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체적인 사례와 그림도 제공된다. 학생들은 학교폭력 실태조사 사이트(survey.eduro.go.kr)와 NEIS 대국민 서비스, 학교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접속 후 인증번호를 입력하고 실태조사에 참여할 수 있다. 가정에서 온라인 참여가 어려운 학생을 위해 학교에 개별 참여가 보장되는 독립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응답 내용의 비밀 보장을 위해 조사화면 오른쪽 상단에 투명도 조절 기능도 제공된다. 조사 결과는 9월 학교정보공시를 통해 공개된다.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 지난해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중학교는 국·영·수 세 과목 모두에서 미달이 늘었다. 교육부는 지난달 28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2018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통상 연말 정도에 발표하던 결과를 3개월 이상 미뤄 대책과 함께 발표했어야 할 정도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이 높았다. 특히 전수평가를 하던 시절과는 크게 차이가 났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수학은 중학교 3학년 11.1%, 고교 2학년 10.4%로 모두 10%가 넘었다. 영어는 중학교 5.3%, 고교 6.2%였다. 국어는 중학교 4.4%, 고교 3.4%였다. 중학교는 세 과목 모두 표집 평가로 회귀한 첫 해인 2017년보다 기초미달 학생이 늘었다. 2017년에는 수학 7.1%, 영어 3.2%, 국어 2.6%였다. 전수조사를 하던 2016년에는 수학4.9%, 영어 4.0%, 국어 2.0%였다.그래픽 참조 고교는 2017년에 비해 국어(5%)는 미달비율이 줄었고, 수학(9.9%)과 영어(4.1%)는 늘었다. 다만, 수학의 비율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다. 2016년에는 수학 5.3%, 영어 5.2%, 국어 3.3%였다. 중학교는 보통 학력 이상 비율도 세 과목 모두 줄었다. 2017년에 수학 67.6%, 영어 72.6%, 국어 84.9%에서 62.3%, 65.8%, 81.3%로 줄었다. 고교는 기초학력 미달과 마찬가지로 국어는 보통학력 이상이 75.1%에서 81.6%로 늘었고, 수학과 영어는 각각 75.8%에서 70.4%, 81.5%에서 80.4%로 줄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2017년에는 평가 시행 일주일 전까지 전수평가를 전제로 준비했지만 올해는 표집으로 전환된 이후 성실도나 준비도가 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했다. 다만, “사후적인 해석을 하면 초등 지필고사 폐지, 자유학년제 등의 과정 중심 평가로 인해 지필고사에 덜 익숙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학력 저하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한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중학생의 기초학력미달 증가는 자유학기제로 인한 교과학습 시간 감소에 따른 학력 수준 저하”로 해석했다. 고교도 “영어의 학업성취 하락은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 실시에 따른 학습 부족”으로 설명했다. 성별로는 고교 수학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여학생의 학업성취가 높았다. 보통학력 이상 비율은 중학교 국어는 11.8%p, 영어는 11.2%p 차이가 났다. 고교 국어는 11.6%p, 영어는 10.2%p 차이가 났다. 중학교 수학의 차이는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었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도 중·고교 모두 영어와 국어에서는 남학생의 비율이 높았고, 수학은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지역별로는 대도시가 읍면지역에 비해 수학, 영어의 보통학력 이상 비율이 높은 경향이 나타났다. 중학교는 수학 11.1%p, 영어 9.7%p 차이가 났고, 고교의 차이는 각각 9.0%p, 9.4%p였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지역규모에 따라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학교 생활의 행복도는 ‘높음’ 비율이 중학교 61.3%, 고교 58.9%로 비교적 높았다. 2015년의 54.6%, 47.3%에 비해 6.7%p, 11.6%p 증가했다. 성취수준별로는 보통학력 이상 학생들이 기초학력 미달 학생보다 높음 비율이 높았다. 성별로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고 지역규모별로는 대도시가 중소도시보다 행복도가 높았고, 중소도시와 읍면지역은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교과기반 정의적 특성 설문 결과는 중·고교 모두 수학에 비해 국어, 영어가 ‘가치’, ‘학습의욕’의 ‘높음’ 비율이 높았다. ‘수포자’가 많은 현실이 반영된 것. 전반적으로는 ‘가치’와 ‘학습의욕’이 ‘자신감’과 ‘흥미’에 비해 ‘높음 비율이 높았다.
최근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KICE)은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수능 시행계획’과 함께 6월 ‘수능 모의평가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주관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20 수능과 수능모의평가 세부 계획을 밝혔다. 올해 수능 모의평가는 6월4일, 본 수능은 11월14일 각각 시행된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이 같은 계획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www.kice.re.kr), EBSi 홈페이지(www.ebsi.co.kr), 대학수학능력시험 홈페이지(www.suneung.re.kr) 등에 게시했다. 2020학년도 수능과 수능모의평가는 지난해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실시됨에 따라 큰 차이가 없다. 시험 교과목(영역)은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사회ㆍ과학ㆍ직업탐구, 제2외국어ㆍ한문 영역으로 구분된다. 한국사 영역은 모든 수험생이 반드시 응시해야 하는 필수 영역이고, 나머지 영역은 전부 또는 일부 영역을 선택해 응시할 수 있다. 올 수능 출제범위는 국어ㆍ영어ㆍ한국사의 경우 전 범위를 포함한다. 사회탐구 영역 및 물리ㆍ화학ㆍ생명과학ㆍ지구과학Ⅰ, 직업탐구, 외국어ㆍ한문도 전 범위가 시험에 출제된다. ‘수학 가’은 미적분Ⅱ은 전 범위, 확률과 통계는 확률 단원까지, 기하와 벡터는 평면벡터 단원까지다. ‘수학 나형’의 경우, 수학Ⅱ는 전 범위, 미적분Ⅰ은 다항함수의 미분법단원까지 확률과 통계는 확률 단원까지다. 과학탐구Ⅱ 과목 역시 일부 단원만 출제범위에 포함된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한국사와 영어 영역은 절대평가를 유지한다. 한국사 영역은 필수과목인 만큼 응시하지 않으면 수능 성적 전체가 무효 처리되며 성적통지표도 제공되지 않는다. 금년 6월 4일 시행되는 모의평가 역시 EBS 수능교재, 강의와 모의평가 출제의 연계를 문항 수 기준으로 70% 수준으로 유지한다. 평가원은 기본 개념과 원리에 충실하고, 추리, 분석, 종합, 평가 등의 사고력을 측정하도록 출제할 방침이다. 수능 모의평가 접수 기간은 4월 1일부터 11일까지이며, 재학생은 재학 중인학교에서, 졸업생은 희망에 따라 출신 고등학교 또는 학원에서, 검정고시생 등 출신 학교가 없는 수험생은 현 주소지 관할 86개 시험지구 교육청 또는 응시 가능한 학원에 신청하면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본 수능은 11월14일 실시되는데, 8월22일부터 9월6일까지 응시원서를 교부·접수한다. 성적은 12월4일까지 통지할 예정이다. 모의평가 시 점자문제지가 필요한 시각장애 수험생은 희망하면 화면낭독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와 해당 프로그램용 문제지 파일을 받을 수 있다. 수학영역 시간에는 점자정보 단말기를 쓸 수 있다. 실제 수능처럼 통신ㆍ결제 등 블루투스 기능이나 전자식 화면표시 시계나 이어폰, 전자담배 등은 반입 금지된다. 단, 시ㆍ분ㆍ초침만 있는 아날로그 시계는 휴대할 수 있다. 이번 수능 모의평가는 작년 숙명여고 평가지 유출로 부모와 자녀 간 상피제(相避制)가 시행되는 등 평가 관리에 엄정을 기하기로 천명한 가운데 시행되는 전국 단위 시험이다. 이번 수능부터 평가 보안 관리가 엄정하게 실시돼 문제 공개 전 유출, 유포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받는다. 2017학년도 6월 모의평가 출제 내용 유출 사건을 계기로 고등교육법이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각 학원은 반별로 반드시 100명 미만이 되도록 인원을 편성하고, 반과 번호를 철저히 구분해 동일한 수험번호가 부여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평가원은 지난해 치러진 수능이 '불수능' 논란과 함께 난이도 조절 실패 지적이 빗발친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올해 수능 난이도를 지난해 평균 수준을 유지하기로 밝혔다. 특히 고난이도 문제 평가 출제를 지양(止揚)하기로 했다. 지나치게 지문이 길거나 복잡한 사고를 요구하는 초고난도 문항은 출제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소위 ‘킬러(Killer) 문항‘을 가급적 출제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평가원은 초고난도 문항 출제는 지양하되, 갑자기 난이도가 떨어질 경우 학교 현장의 어려움도 예상 되는 만큼 난이도를 조절하기로 했다. 평가원은 학교교육을 충실히 받고 EBS 연계 교재와 강의로 보완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출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도 EBS 수능 교재·강의와 수능 출제 연계율은 70%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 평가원의 2020 수능 계획과 모의평가 발표는 학교교육과정 정상화에 방점이 찍혀있다. 다만, 교육부와 평가원은 해마다 이와 같은 원론적 발표를 해왔으나 복수 정답 등 이의 신청이 쇄도해 왔다. 작년 국어 31번 문항 등 불수능 논란과 함께 역대 최다인 991건의 이의신청이 제기된 바 있다. 평가의 공신력이 극도로 실추된 것이다. 이와 같은 논란의 일소시키기 위해서 교육부와 평가원은 문제를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해야 하고 고급 사고력, 문제해결력 등을 파악하는 문제라도 교육과정의 내용으로 진술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출제, 검토, 선제, 인쇄 등 평가 관리를 엄정하게 수행해야 할 것이다. 물론 평가원은 올 수능에서 검토위원 사전 연수를 1박 2일에서 2박 3일 정도로 늘리기로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검토위원 입소 기간을 늘려 정답률 예측 훈련을 강화해야 하고, 지진 등 유사 시에 대비해 예비 문제를 출제해 놓아야 할 것이다. 특히 교육부와 평가원은 2020 대입수능에 즈음하여 전국 단위 평가의 공신력 확보와 함께 변별력과 난이도 조절의 균형을 맞추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입수능은 보통 교육의 총 결산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무게 있는 시험이다. 그런 시험이 복수 정답, 무정답 논란과 이의 신청으로 공신력을 잃으면 안 된다. 현재 6:4인 교수와 교사의 참여 인원 수를 증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평가의 신뢰도, 타당도, 객관도 등 공신력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변별력 확보와 난이도 조절은 양날의 검이다. 누구나, 아무나 정답을 맞출 수 있는 문제는 문제로서의 기능이 없는 평가다. 또 모두가 정답을 맞출 수 없는 문제도 좋은 문제가 아니다. 이 두 상반되는 평가 기능의 균형에 2020학년도 수능의 지향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 안에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의 정답이 내재해 있자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올해 11월 14일 예정된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시험영역과 EBS 연계율 등이 지난해와 동일하게 치러진다. 올해도 지진에 대비해 예비문제가 만들어지고, 교육과정 중에서 어떤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인지 문제별 출제 근거가 공개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26일 발표했다. 올해 시험영역은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사회/과학/직업탐구, 제2외국어/한문으로 지난해와 같다. 수학영역은 가형과 나형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가형은 미적분Ⅱ·확률과 통계·기하와 벡터에서, 나형은 수학Ⅱ·미적분Ⅰ·확률과 통계에서 출제된다. 영어영역은 총 45문항 중 듣기평가가 17문항 나온다. 탐구영역의 경우 사회탐구는 9개 과목 중 최대 2개, 과학탐구는 8개 과목 중 최대 2개, 직업탐구는 10개 과목 중 최대 2개를 선택할 수 있다. 제2외국어/한문 영역은 9개 과목 중에 1개를 선택할 수 있다. 영어영역과 한국사영역은 절대평가다. 학생들이 받을 성적통지표에 원점수 절대평가에 따른 등급(1∼9등급)만 표기된다. 필수영역인 한국사는 응시하지 않을 경우 성적 전체가 무효 처리되고 성적통지표도 나오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기본 소양을 평가하고 수험생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핵심 내용 중심으로 평이하게 출제된다. 평가원은 올해 수능도 예년처럼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고 EBS 연계 교재와 강의로 보완하면 문제를 풀 수 있는 수준으로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EBS 연계도는 지난해처럼 영역(과목)별 문항 수 기준 70% 수준으로 유지된다. 점자문제지가 필요한 시각장애 수험생은 희망하면 화면낭독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와 해당 프로그램용 문제지 파일·녹음테이프를 받을 수 있다. 수학영역 시간에는 필산 기능이 있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쓸 수 있다. 정부는 올해도 저소득층 교육비 부담 완화 등을 위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차상위 계층(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지원대상자 포함)에 대한 응시수수료 면제·환불 제도를 시행한다. 평가원은 수능일 전후 지진 발생에 대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능 예비문항을 준비하며 수능 후 문항별로 출제 근거(교육과정 성취기준)를 공개한다.
지난해 금지됐던 초등 1, 2학년의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교육·수업·활동 포함)이 부활됐다. 최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선행학습을 금지하되 초등 1, 2학년의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은 예외로 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영어는 정규 교과에서는 초등 3학년 때부터 배우지만 1, 2학년 때에는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후 방과후학교 과정에서 배울 수 있게 됐다. 2학기는 돼야 정상운영 가능 빠르면 4∼5월경부터 운영할 수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운영 중인 올해 새 학기 교육과정과 시간 운영 계획 등을 변경하기 어렵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방과후학교 과정은 학년(1년), 학기(6개월), 분기(3개월) 단위로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초등 1, 2학년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이 일선 학교 현장에서 원활하게 도입되려면 오는 6월초는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방과후학교를 학기 단위로 운영하는 학교가 가장 많다. 따라서 단위 학교 학교교육과정과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1, 2학년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을 온전히 포함하여 운영하는 전국적인 정상 운영은 2학기부터가 될 전망이다. 분기 단위로 방과후학교 과정 프로그램을 조직·운영하는 학교와 교내에 영어전담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운영할 수 있지만 소수에 국한된다. 실제 외부 업체 위탁 운영, 외부 강사 채용 운영 방식 절차를 진행하려면 1∼2개월 정도 기일이 걸린다. 따라서 이번 학기에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 수강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초등 1, 2학년의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 운영 금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관련 법안인 공교육정상화법이 통과돼 3년간 유예 기간을 거친 후, 2018년 3월부터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초등학교의 사교육 팽배와 영어 몰입교육이 과열된 양상을 해소하고자 이 같은 정책을 추진했다. 그동안 영어 교육은 유치원 허용, 초등 1, 2학년 불허, 초등학교 제3학년 이상 허용이라는 비정상적인 형태였다. 물론 초등 저학년인 1, 2학년은 영어가 정규 교과가 아니므로 선행학습을 금지해 공교육을 정성화하고자 하는 근본 취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학부모들 생각은 다르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사교육을 지향한다. 2018학년도부터 이번 학기까지 초등 1, 2학년의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 금지로 많은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최근 교육부에서 발표한 2018학년도 초·중·고교 사교육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교육비는 19조 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초·중·고교 학생수는 15만명 줄었는데, 총액 기준 평균 4.4% 증가한 것이다. 초등학교는 5.2%, 영어 영역은 4.6% 각각 증가했다. 대안 없이 무조건 금지만 하며 오히려 사교육이 늘어나는 ‘풍선 효과’를 야기한다. 실질적으로 영어 사교육과 몰입교육을 억제하려면 사교육까지 규제해야 하는데 법령상 쉽지 않다. 정치권은 혼란부추긴 책임 커 이번 초등 1, 2학년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 부활에 즈음하여 국민적 성찰이 요구된다. 교육당국은 오락가락 교육정책으로 국민들의 불신, 학부모들의 반발, 학생들의 피해 등을 가중시켰다. 당리당략에 얽매여 학기 중에 법안을 통과시켜 학교와 학생들에게 혼란과 피해를 준 정치권의 책임도 무겁다. 이제 영어교육은 유치원과 초등 1, 2학년 방과후학교 과정, 초등학교 제3학년 이상 정규 교육과정 수업 등으로 일관성을 갖게 됐다. ‘산고(産苦) 속에 옥동자 낳는다’는 말처럼 이제 현장 친화적 영어교육으로 제대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초등 제1, 2학년의 영어 방과후학교 과정은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놀이·체험·활동 중심이라는 취지에 충실해야 한다. 흥미와 참여 지향의 영어교육이 선행학습 금지와 공교육 정상화라는 법률과 정책의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다.
글씨와 함께 단어의 뜻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어 감수성‧이해력‧표현력‧창의력 쑥쑥 자라나는 학생들 그림 실력 말고 좋은 아이디어를 칭찬해 북돋아야 [한국교육신문 김예람 기자] 영어교과에 있어 가장 기초이자 필수는 단어 학습이다. 엄청난 양의 단어를 무작정 달달 외우기만 하는 학생들…. 많은 학생들이 영어에 대한 흥미를 차츰 잃어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알파벳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더해 생명을 불어넣는다면 어떨까. 애착과 함께 단어에 대한 기억력 또한 향상될 것이다. 오정화 전북 청웅중 교사는 이런 생각에서 ‘타이포셔너리(Typotionary)’와 ‘비주얼씽킹(Visual thinking)’을 활용한 영어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타이포셔너리란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와 딕셔너리(Dictionary)의 합성어다. 문자에 생각이나 의도를 표현하는 시각 디자인 기법으로 ‘문자도’라고도 부른다. 글자의 의미와 관련된 그림을 글자 속에 넣음으로써 보는 사람이 글씨와 함께 단어의 뜻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주얼씽킹도 비슷한 개념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과 이미지 등을 통해 체계화하고 기억력과 이해력을 키우는 시각적 사고 방법으로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나누는 것을 통칭한다. 비주얼씽킹의 장점은 정보를 직관적으로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 교사는 “사람들에게 오늘 보고 들은 정보들을 3일 후에 기억하게 할 경우, 들은 정보는 10% 밖에 기억하지 못하지만 본 정보는 65%를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각적 기억력은 더 오래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타이포셔너리와 비주얼씽킹의 좋은 점으로 감수성, 이해력, 창의력, 표현력 향상을 꼽았다.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고 생각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게 하는 등 이미지로 많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학생이 수업의 주인공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수업을 시작하고부터 아이들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참여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 강의식 수업은 오래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거든요. 주로 모둠활동을 통해 아이디어를 모으고 결과물을 내면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프로세스로 이어지다보니 오히려 교사의 설명이 필요 없어지더라고요.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 입장에서도 한결 수월해진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오 교사는 “모든 것을 학생들 손에 맡기고 나니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창의적인 결과물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며 전북 금구중 학생들과 작업했던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예를 들어 물에 잠긴다는 뜻의 ‘drown’이라는 단어의 경우 o모양을 튜브 모양으로 그리고 물방물 그림 등을 더해 물 밑으로 가라앉는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제일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딱딱한 문법도 표현 할 수 있어요. 관계부사에서 the reason why, the place where, the time when 등은 같이 쓰일 수 있지만 the way와 how는 함께 쓸 수 없잖아요. 이 점을 아이들이 많이 헷갈려 하죠. 동일한 의미의 부사가 중복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한 학생이 이 둘의 관계를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에 비유해 표현해 놓았더라고요. 이렇게 해서 배운 내용이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죠?” 그는 학생들이 배운 단어들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전교생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으로 초대해 학생들의 결과물을 동영상으로 제작, 공유하고 있다. 수업에서 나왔던 중요한 내용들도 요약해서 올리는 등 카카오톡 채팅방을 잘만 활용하면 수업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오 교사는 또 학생들이 노트에다 그림을 그리게 하기 보다는 다양한 형태와 모양의 색지를 제공하고 단원별로 중요한 단어나 문법을 스스로 정리하게 한 뒤 결과물을 단원 당 10페이지 정도의 책으로 제작해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그림에 자신 없는 학생들이 주눅 들지는 않을까. 오 교사는 타이포셔너리와 비주얼씽킹 수업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그림을 칭찬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생각을 이미지로 표현하려다 보니 그림을 잘 그리려고 애를 쓴다는 것. 그럴 때마다 오 교사는 ‘그림을 잘 그렸다’, ‘그림이 예쁘다’라는 표현은 하지 않고 그림은 다소 엉성하더라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에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그러다보면 학생들도 자연스레 그림을 못 그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더 쉽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고. 그는 “사람을 유치원생처럼 졸라맨 모양으로 그려도 상관없고, 다른 사람들이 고양이 그림을 강아지 그림이라고 해도 스스로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우기면 되는 일이지 그림 실력에 부담 갖지 말라고 학생들을 자주 북돋워준다”고 덧붙였다. 타이포셔너리와 비주얼씽킹 수업은 교사로서의 자존감도 되찾아줬다. “사실 저희 세대가 배운 영어는 독해와 해석, 문법 위주의 강의식 수업이었잖아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영어 실력도 천차만별이고, 영상위주의 세대여서 강의식 수업에는 금방 집중력이 떨어지는 등 여러 모로 수업에 한계를 느끼던 참이었습니다. 제 수업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명예퇴직을 해야 하나 생각도 했습니다. 자괴감이 컸죠. 그런데 이 방법을 도입하고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아이들이 영어시간을 지루해하지 않는 게 보이고 수업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하니까 그런 에너지가 제게도 전달됐습니다. 수업에 대한 부담도 많이 덜었고요.” 올해 전교생 13명의 소규모 학교 전남 청웅중으로 옮긴 오 교사는 수업방식에 새로운 숙제를 받아들었다. 한 학년에 한명인 경우도 있어 더 이상 모둠 활동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 학기를 맞은 요즘 이미지를 활용한 영어 수업을 어떻게 하면 소규모 학급에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든 응용 방법을 찾든 수업방법의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죠. 그러나 이 또한 제 타이포셔너리, 비주얼씽킹 수업에 대한 경험치를 높이고 보다 폭 넓고 다양한 수업연구를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 한해 수업이 또 기대되는 이유죠.”
시골 교사로 재직한 지 벌써 10년.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 학교를 떠난다. 무슨 기구한 운명이었는지 한 학교에 10년을 머물렀다. 지난 10년이라는 세월은 나에게 어떤 성장과 숙제를 던져 준 것일까? 30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서른 살에 처음 이 학교에 왔던 그 날을 곱씹으며 지난 10년이 준 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전교생이 100명 남짓 한 경기도 소외 지역 외딴 시골 초등학교에 한 선생님이 전근 왔다. 그는 키가 크고 덩치가 있었으며, 안경을 쓰고 다니면서 온화한 미소로 사람을 마주하는 평범한 듯 하면서도 단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전 학교의 열악한 여건을 피해 전근을 희망했던 그였지만, 더 깊숙한 산골 외딴 지역으로 덜커덩 발령이나 단단해 보이는 그 사람도 우울한 그늘을 피할 순 없었다. 그래도 시골이 주는 소박함과 목가적인 전원 풍경으로 자위하면서 2009년 3월 때묻지 않은 119명의 학생과 마주하며 제 2의 교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어가 특기인 그는 시골 초등학교에서 명물이 되었다. 마치 ‘웰컴투더 동막골’ 영화처럼 혀 꼬부라지는 말로 외국인과 대화하고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시골 아이들에게 깨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한 주 한 주 시간이 가면서 아이들은 그 선생님에게 동화되어 갔다. 영어가 신기해서도 그랬겠지만, 그 영어 선생님이 좋아서 아이들은 아침마다 그 선생님 출근 길 주차장에 마중 나오기까지 했다. 어쩌다 늦게 출근하게 되면 이 아이들 때문에 여지없이 교장 선생님께 지각한 것을 들키곤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눈 마주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따스함과 정겨움으로 1교시를 시작할 수 있어 그 선생님은 행복했다. 어느덧 선생님은 아이들과의 래포와 이 시골의 서정성에 흠뻑 빠져들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소속감과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그런 자세로 한 해 한 해 영어 전담교사로 시골 아이들에게 단어를, 문장을 그리고 말하기를 해마다 꾸준히 가르쳐 아이들의 큰 성장을 손수 일궈 냈다. 나중에 이것은 세계비교교육학회에도 발표가 돼 시골학교에서도 학원을 다니지 않고 얼마든지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이 학교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들에게 불어 넣어 주기에 충분했다. 3년쯤 지나고 나니, 이 학교의 아이들이 이젠 제법 선생님처럼 혀 꼬부라지는 말로 외국인과 노는 모습이 왕왕 목격되곤 하였다. 2011년 졸업한 20명의 학생들 중 과반수 정도가 영어선생님을 장래희망으로 생각할 정도여서 그 선생님은 기쁘기도 하면서 경각심을 갖기도 하였다. “선생님이 이렇게 위대할 수 있구나! 아이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그 아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니 좋은 사표와 모델이 되어야 하겠구나!” 그 선생님은 시골학교 온 지 3년 만에 ‘작은 학교가 주는 가치와 감동’에 대해 깊이 깨닫고 이 시골학교에 공모교사로 재임용을 신청하면서 최대 5년 근무할 수 있는 재직 연한을 2배로 늘려 이곳에 몸과 마음의 닻을 내리게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 그 선생님은 교육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생겼던 거 같다. 아이들에게 꿈의 씨앗을 심어 주는 시골 농부교사로…. 4년 차 때 일이다. 담벼락 하나를 두고 학교 옆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강아지와 함께 매일 아침 인사를 나오다 그만 둔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걱정이 되었는지, 안부를 여쭈러 할머니 집에 들렸지만 할머니는 뵐 수 없었고, 슬픈 소식만 아이들 가슴을 후려쳤다. 폐렴으로 돌아가셨다는 고독사를 아이들은 경험한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라 서럽게 울었던 아이들 모습에 그 선생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 아이가 고독사를 보고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슬프다고 했다. 그 말 한 마디가 그 선생님 인생을 바꾸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우리가 한 번 해 보자!’라는 말로 마을의 소외계층을 돕는 교육활동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한두 명의 아이들이 부리나케 대답하더니, 이내 대다수가 방방 뛰며 서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이 작은 시골학교는 살아 숨쉬는 교육활동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영어 동아리를 확장하여 아이들의 꿈을 담아 낼 수 있는 진로 동아리와 그들의 삶과 앎을 담아 내는 영화 동아리까지 생겼다. 이 세 가지 동아리가 결합하여 하나의 창의적인 교육활동이 생겼는데, 이것이 자신이 속한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M.O.V.I.E. 프로젝트’였다. ‘Make Our Video In Education’의 이니셜을 모아 우리가 배운 공부 내용에서 우리의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자신의 꿈을 마을에서 탐색하고, 꿈 멘토와 함께 인터뷰를 한 후,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유사한 금빛 승부차기 챌린지를 통해 소외계층을 돕는 영상을 꿈 멘토와 함께 찍는 것이다. 영상을 활용한 이 활동은 마을 중소기업의 후원을 받아 성금을 모금, 연말에 독거 어르신, 장애가족, 다문화 가정 및 홀로 지내는 소외계층에게 이불, 쌀, 김치, 고무장갑 등을 전달하는 봉사교육으로까지 이어졌다. 이것은 또한 영어로 자막을 생성하여 UCC를 제작하고 SNS에 올려 해외에 있는 수십 개의 학교와 소통하는 글로벌 프로젝트가 되기도 하였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 일궈낸 교육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교육활동은 학생, 학부모는 물론 지역사회 인사들과 교육청, 나아가 TV, 라디오, 신문사 등에도 전달되어 시골학교의 존재감과 교육력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이런 교육을 그 선생님은 어언 5년간 했다. 자신이 잘 하는 영어교육을 중심으로 시골에 사는 아이들에게 꿈을 주겠다는 다짐에 아이들 삶 속에 일어나는 현장감 있는 소재를 결합한 것이다. 그는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교육으로 학생들이 행복하고 스스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을 키워 주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학교 교육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인근 다른 학교 학생들도 참여하게 되어 마을의 거점학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13개의 초·중학교에서 총 34명의 학생들이 창의융합형 교육을 배우기 위해 매주 월요일 저녁에 영어영화 야학에 참석하고 있다. 또한 졸업생들이 모교로 돌아와 학교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후배들을 가르쳐 주는 재능기부도 솔선하는 선순환의 모습도 연출되었다. 이제는 학교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 나아가 더 큰 타 시·도와 연결된 교육생태계가 생동감있게 그려졌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학교 학생들의 교육적 성장은 확연하게 보여졌고, 스스로 시민다운 모습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자치력도 발휘되었다. 나아가 교육공동체라는 거대한 거버넌스가 형성되어 이제 이 곳은 교육을 논하는 것을 뛰어 넘어 삶의 무늬를 그려내는 아름다운 배움의 터가 되었다. 꼭 10년이 걸려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 선생님은 이런 활동을 ‘드림샤워’라고 부르고 싶어했다. 꿈꾸는 소나기! 아이들이 ‘소’통하고 ‘나’누면 ‘기’쁨이 찾아온다는 꿈꾸는 소나기는 정말 외딴 시골 마을의 메마른 땅을 단비처럼 적셔 주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 선생님은 이제 10년을 채우고 올해 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서른 살에 와서 딱 마흔 살에 떠나는 것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고 선생님은 말한다. 지난 10년은 이 선생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청춘이다. 교사로서 주어진 소명을 부끄럽지 않게 실천하며 아이들과 행복의 무늬를 그려냈던 30대의 청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가치이자 소산이 아닐까! 그 선생님은 넌지시 소회를 밝힌다. “제 2의 고향이죠! 많이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지난 10년이 제 삶에도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았어요. 참 행복합니다. 학생의 학생이 되어 보낸 이 작은 학교에서의 교직 생활을 전 잊지 않을 거예요. 학생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 2019 교단수기 공모 은상 수상자 수상 소감 -10년에 걸쳐 쓴 교직 생활 일기 2009년 시골 학교에 처음 부임하였을 때, 한 시간이 넘는 출퇴근 거리에 불만 가득했던 그 해 봄 내 모습이 떠오른다. 작은 학교 전담교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미약함 속에 빠져있던 내 모습은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해를 거듭하면서 아이들과의 눈 마주침이 좋아졌고, 학부모와 함께 학생의 성장을 지원해 나갔으며, 동료 교사와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교육의 무늬를 그려 나갔다. 몇 번의 변곡점을 통해 나도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러한 10년 교직 생활의 발자취를 이번 교단 수기 공모에 쏟아냈다. ‘학생의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철학으로 “학교에 오면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라는 말을 학생에게 수시로 했던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러한 경험과 소회를 일기 쓰듯이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것 뿐인데, 생각지 않게 큰 상을 주셔서 어리둥절하다. 그저 먼저 일기 숙제를 마쳤던 것 뿐, 이 글을 읽는 현장 교사 누구라도 자신이 경험한 삶의 모습을 담담히 적어 보길 권한다. 수상 소감을 말하라고 하면,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시골 학교 10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사택에서도 살면서 그저 덤덤히 내 뒤를 챙겨주고 응원해 준 아내의 역할이 컸다. 함께 작은 학교 운동장을 거닐며 미래를 그려갔던 아내에게 이 모든 공을 돌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시골 학교 10년을 보내면서 함께 고민하고 역경을 헤쳐나갔던 여섯 분의 교장 선생님과 늦은 밤까지, 때로는 주말에도 함께 교육을 궁리했던 선생님들께도 역시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것은 분명히 똥 냄새였다. 교실에 퍼지던 불쾌한 냄새를 두고 아이들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일렀고, 나도 이내 그 냄새를 인지했다. 하지만 시골학교에서 나는 똥 냄새는 그럴 만하다고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아이들도 더 이상 냄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습지를 검사받기 위해 영균(가명)이가 내 앞에 왔을 때, 그 냄새가 매우 가까워짐을 느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균이 엉덩이 가까이 코를 갖다 대었고, 냄새의 원인을 확신했다. 영균이를 조용히 화장실로 보냈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공부하라고 당부한 후 화장실로 따라갔다. 문을 걸어잠그고, 바지를 내려 보게 했더니 속옷과 엉덩이에 똥이 짓이겨져 있었다. 언제 쌌는지, 왜 그랬는지, 왜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지만 영균이의 대답은 전부 ‘모르겠다’였다. 영균이를 다시 샤워실로 데려다놓고, 청소용 고무장갑을 찾아 꼈다. 바지를 전부 벗기고 샤워기로 똥을 씻어낸 후, 비누를 묻혀 다리와 가랑이를 일일이 씻겼다. 유치원 선생님께 부탁하여 여벌의 바지를 구했고, 발목이 전부 드러나는 작은 원복을 입혔다. 똥이 묻은 속옷과 바지를 비닐봉지에 담아 영균이 가방이 넣었다. 영균이는 불안함도, 당황함도, 안도의 눈빛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없었다.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어라, 그러면 한 끼를 배부르게 먹을 것이다. 아이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그러면 평생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감지 못해 늘 기름져있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영균이의 눈빛은 초점이 없었다. 질문이나 대화도, 웃음도 없었고, 희망과 행복을 읽을 수도 없었다. 탈무드의 격언처럼 아이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도 급했다. 그전에 아이가 굶어 죽을 것만 같았다. 단 한 순간의 행복도 맛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2009년 9월 경상남도의 한 시골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11명의 3학년 첫 제자들을 만났다. 젊은 남자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은 나를 참 좋아해주었다. 나에게 온갖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쏟아내었고, 기대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재잘대었다. 그러나 영균이 만큼은 내게 오지 않았다. 질문도, 대화도, 웃음도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스스로 씻는 방법을 알려주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대화하며 먼저 마음의 문을 열 것을 요구했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고, 덧셈을 하지 못했고, 한글을 잘 읽지 못했기에 시간을 내어 정성스럽게 가르쳤다. 하지만 변화를 찾을 수 없었고 나는 그 원인을 아이에게서 찾고자 하였다. 다그치고 달래기를 반복했다. 한글 쓰기 숙제를 잔뜩 내고 문제를 풀렸다가 화를 내고,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 후에도 영균이는 여러 차례 더 똥을 쌌다. 소풍을 다녀오던 날에도, 학예회 날에도, 수업을 하다가도 영균이는 바지에 똥을 쌌고, 내가 발견하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샤워실에서 아이를 씻기고, 유치원에서 옷을 빌리는 일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아무리 가르쳐도 변하지 않는 영균이에게 점점 짜증이 밀려왔다. 신규 교사였던 나는 아이가 싼 똥을 치우는 일에 점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발령받은 지 한 달쯤 된 어느 날, 교무부장 선생님과 함께 읍내를 돌아다니며 한 아이를 찾게 되었다. 영균이의 형 정균(가명)이는 벌써 여러 차례 가출을 했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길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살펴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정균이의 소식은 며칠 후 경찰서에서 온 공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인적이 없는 새벽시간, 다른 학교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주차된 차들의 문을 열어 천 원짜리 몇 장과 담배를 훔치다 잡힌 것이었다. 교무부장 선생님의 노력으로 다시 학교에 나오게 되었지만 정균이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찾아 부산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가출했다. 이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영균이를 특수교육 대상자로 신청해야겠다고 하셨고, 부모의 동의를 얻기 위해 함께 영균이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께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대접받았다. 공사 현장에서 팔이 골절되어 일을 쉬고 계신 아버지께서 교무부장 선생님의 설명을 전부 들은 후 동의서에 서명을 하셨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멍하니 생각했다. 충격적이었던 영균이의 집안 모습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기력한 할머니와 아버지, 가난을 이기지 못해 3형제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찾아 집을 나선 그의 형과 어머니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영균이와 어린 동생. 또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보살핌에 대한 안도와 부모의 사랑을 통해 얻는 작은 행복과 사랑을 모른 채 초점 없는 눈빛으로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어린 영균이에게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무엇을 위해 교육해야 할까? 어쩌면 지금의 영균이에게 한글을 바로 읽고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구구단을 외워 곱셈과 나눗셈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은 오히려 영균이에게 교육과 사랑이 아니라 고통일 것 같았다. 한 없이 작은 그 아이에게 절망을 더하고, 무기력을 주고, 자존감을 빼앗는 일일 것 같았다. 토요일 수업을 마친 후, 영균이를 읍내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그 언젠가 엄마를 만났을 때 짜장면을 먹어본 후로 한 번도 짜장면을 먹어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햄버거나 피자, 치킨 혹은 짜장면이 가장 맛있다고 말할 때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매일 연필과 지우개가 없어 멍하니 앉아있던 영균이에게 왜 필통을 가지고 다니지 않느냐며 화를 냈던 내 행동을, 마음 속 깊이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며 필기구들을 사주었다. 집으로 데려다 주던 길, 영균이는 처음으로 감사하다는 표현을 했다. 다음 해 나는 영어와 체육 전담을 맡았고, 여전히 나의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또 다음해 5학년이 되던 아이들의 담임을 다시 맡았다. 영균이는 더 이상 똥을 싸지도 않았고, 친구들과 조금씩 대화를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다른 아이들 모르게 가끔 읍내로 데리고 나가 먹고 싶은 음식을 사주거나 필요한 용품들을 사주었다. 그때마다 영균이는 감사하다는 표현을 했지만 나는 오히려 미안한 감정이 더욱 커졌다. 그 해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키우며 기저귀를 갈아주고, 때마다 분유를 타 먹이고,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며,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아내와 사진을 찍으며 기뻐했다. 서툴지만 그렇게 부모가 되어 가는 나에게 영균이는 여전히, 아니 점점 더 아픈 손가락이고, 안쓰러운 내 아들이었다. 여러 선생님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다시 6학년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갔다. 3년 간 담임을 맡는 것을 우려한 교장선생님께 영균이 만큼은 초등학교 졸업까지 꼭 책임지고 싶다는 말씀으로 설득했다. 영균이도 나에게 안심의 눈빛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체육담당 선생님과 특수 선생님의 노력으로 영균이는 그해 열린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남자초등부 T20 100, 200m에서 우승하며 2관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의 가정 상황을 알게 된 여러 단체에서 격려와 함께 장학금을 전달하였고, 비로소 영균이의 수줍은 미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감이 생겼고, 미소를 지었으며 친구들 앞에 조금 더 당당해지려 했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작은 행복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학력평가가 한참이었던 그 시절, 특수교육 대상이었음에도 영균이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말 공부를 위해 학교에 나왔고, 가을 배구대회 준비 기간에는 주전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자신의 역할이 공을 주워주거나 서브 연습이 전부였음에도 역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에 참가했다. 3년의 담임, 4년의 동행을 마치던 날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고향이 있는 타시도로 전출 발령이 났기에, 이제 서로 만나기가 어렵게 된 사실을 알고 있던 제자들도 함께 울었지만 영균이는 이를 꽉 물고 눈물을 참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정리가 끝난 후, 영균이가 교실에 홀로 앉아 있던 나를 조용히 찾아왔다. 그때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선생님, 감사했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그런 영균이를 부둥켜안고 다시 한참을 함께 울었다. 어쩌면 영균이를 향한 내 마음은 성숙하지 못한 교사의 판단이었을지 모른다. 쓰러져 가는 아이의 집과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몰라 불안한 영균이에 대한 연민의 정이었을지 모른다. 젊은 혈기에 다해주고 싶었던 마음은 오히려 자만심일수도 있었다. 추운 날조차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던 영균이의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말았어야 함이 분명함에도 할머니와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의 깊이마저 가벼이 여겼고, 자녀에 대한 그 안타까움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이가 가진 상처에 쉽게 접근했으며, 내가 감히 그 폭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영균이의 삶과 희망에 대한 의지를 쉽게 단정했다. 다만 변명이라면 언젠가 스스로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게 해주더라도, 지금 당장 작은 기쁨과 만족만이라도 알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작은 생채기를 즉시 치유해주어야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 같았고, 그 작은 기쁨과 만족이 더 큰 행복을 갈망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던 영균이의 마지막 모습은 큰 여운으로 남았다. 나의 자만심일 수도 있었던, 측은했던 사랑이었음에도 영균이는 스스로 성장했고, 스스로 희망과 용기를 찾았다.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그렇게 부모가 되어갔던 것처럼, 서툴고 오만하게 판단했음에도 그렇게 내가 교사가 되어가고 있음을 오히려 영균이가 깨우쳐준 것이다. 아직까지 초심을 잃지 않도록 매일 다짐을 새로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깊이 있는 사랑을 베푸는 꿈을 꾸고 희망을 찾는 일 모두 영균이에게 배웠다. 이제 성인이 되어 마음의 온도가 더욱 따뜻해졌을 영균이를 꼭 다시 만나 이 감사함을 고백하고 싶다. 네 덕분에 내가 이렇게 교사가 되어간다고,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이다. ----------------------------------------------------------------------------- 2019 교단수기 공모 금상 수상자 수상 소감 -짊어져야 할 책임감에 눈 떠 초임 시절, 영균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아프게 하던 아이였습니다. 뜨거웠던 열정과 미숙하고 서툴렀던 교육 방법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고, 좌절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완벽하지 못했던 그 경험들 속에서 앞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감에 대해 조금은 눈 뜰 수 있었습니다. 이 미안함과 감사함을 덤덤하게 고백해보고자 했던 수기가 금상으로 선정되어 큰 기쁨과 감사함을 느낍니다. 10년의 교직생활을 모두 6학급 이하의 시골학교에서만 보냈습니다. 매년 만나는 아이들 중 누군가는 상처를 지니고 있었고, 그 아이들에게 진심어린 사랑을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용기와 웃음을 주는 일,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는 일보다는 그 아이들을 위한 행·재정적 지원만을 생각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꺼내기 쉽지 않았던 영균이 이야기를 망설임 끝에 세상 밖에 내놓으며, 늘 곁에 있어 든든하고 따뜻한 교사로 성장하겠다던 처음의 그 마음 다시 한 번 다잡아봅니다. 그리고 꾸준히 안부를 전해주며 큰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랑스러운 제자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합니다.
초등 1·2학년 영어수업이 빠르면 4월부터 허용된다.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해당 법에서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수업금지는 예외로 한다는 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이 3월말 공포된다고 한다. 늦었지만 바람직한 결정이란 생각이든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부유층들은 방과후 영어 수업이 다양한 사교육을 통해 영어 선행학습을 하는데 그렇지 못한 계층의 사람들만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불안감 때문에 오히려 학부모들의 사교육비가 늘어났다는 학부모들의 불만이 가중되던 차에 초등 1·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 허용은 잘한 조치이다. 지금까지 28년의 교직생활을 하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교육정책이 단위학교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이 많다는 것이다. 현장과의 괴리감이 크면 클수록 교육공동체는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교육부를 불신하기 마련이다. 우스개소리로 한 때는 교육부의 정책이 학교 문턱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간다는 얘기도 있었다. 3년전부터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네트워크 현장교사 자문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해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선안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이 있었고 현장교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였다. 공교육 정상화법 개정안이 시행되어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이 허용된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향후 교육정책을 결정할 때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교사, 학생, 학부모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