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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저학년 국어교과서에 마음씨 착한 형과 아우의 이야기가 실려 가슴 찡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벼 베기를 한 후 형은 아우에게, 아우는 형에게 서로 볏가리를 높이 쌓아주려고 밤새 자기의 볏가리를 옮기다가 마주쳐 겸연쩍어하며 형제의 우애가 더욱 돈독해진다는 이야기다. 서민들이 엮어낸 질박한 아름다움 형제의 우애가 볏짚 높이만큼 불어나듯 들판의 푸짐한 짚들은 작은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민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여름에는 보릿짚, 밀짚, 가을에는 볏짚이 생긴다.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곡식을 추려낸 볏짚들이 퍼포먼스 작가가 널어놓은 작품처럼 마을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무늬를 이루며 들판 가득 수를 놓는다. 이처럼 짚은 항상 곁에 있던 흔한 것이어서 일상생활에서나 사람들에게 그다지 귀중함을 느끼게 하지 못하였으리라. 그렇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것을 천대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때로는 생활용품으로, 때로는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물건으로 변화시켜 생활 속에서 늘 간직할 수 있는 우리만의 짚의 아름다움을 창출하였다. 한국미로서 짚의 아름다움은 짚으로 엮어서 만든 우리 물건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다. 짚의 종류도 여러 가지지만 만들어진 종류도 다양해 의식주의 생활용품에서부터 공예, 농기구, 주술적 의미의 물건 등 어떤 것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의 전통 문화 유산이 시간이 갈수록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반면 짚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이나 문화는 날이 갈수록 버림받고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속에 한국문화의 위상을 더 높이 세울 수 있는 길은 유달리 손재간이 뛰어난 우리 민족의 장점을 알리는 것이다. 짚은 바로 우리 문화유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서민들이 엮어낸 고졸하고 질박하며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생활에 바로 녹아있는 삶의 미학, 일상 미감으로서 짚의 아름다움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한국적 의식주 문화의 필요충분조건 짚으로 만든 물건은 우리나라 서민들의 의식주 어느 곳에서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간 미감을 살린 지붕, 건강 미학으로서 신발, 모자, 생활필수품으로서 농기구와 어린이들의 놀이기구까지 짚은 조용히 우리 곁에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짚을 이용한 공예품 중 사람들의 일상 미감이 가장 잘 묻어있는 것으로 단연 짚신을 꼽을 수 있다. 볏짚을 엮어서 만든 것이 짚신이다. ‘초혜(草鞋)’ 또는 ‘망리(芒履)’라고도 한다. 고무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민족의 신발 노릇을 톡톡히 했다. 논농사를 많이 지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짚을 이리저리 꼬아 엮어냈던 짚신은 서민들이 사용하는 신발이었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이름으로 응용되기도 하였다. 처음에 짚만을 써서 네 날로 엉성하게 짜 신던 짚신은 차츰 치장을 더하기 위해 왕골, 부들 등을 이용해서 섬세하고 고운 신발을 삼아 신었다. 삼으로 만든 고급스럽고 세련된 미투리, 왕골로 만든 왕골신, 칡덩굴의 속껍질로 만든 청올치신, 부들로 만든 부들신 등이 그것이다. 짚신은 사람과 같이 생활하면서 때로 동행하던 소에게도 이용 기회를 줬다. 먼 길을 가야 할 때면 하루에도 수십 리씩 걸어야 하는 소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소 주인은 어디서고 잠시 쉬는 틈만 생기면 쇠짚신을 삼아서 닳아진 신을 갈아주었다고 한다. 정 많은 주인장이 짚 한 가닥 한 가닥에 정을 뚝뚝 묻혀서 인정 넘치게 짚신을 삼는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짚은 옛 사람들의 지혜를 담아 생활에 필요하면서도 모습을 멋스럽게 하는 옷으로도 사용되었다. 들판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면 농부는 짚으로 엮은 집시 스타일의 우비 도롱이를 꺼내 입고 논두렁을 성큼 성큼 걸어 나온다. 이 도롱이 의상은 패션 잡지에나 나올 만한 무기교적인 디자인으로 현대적 미감에도 손색이 없는 독창적 미감을 가지고 있다. 의생활 외에도 짚은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음식문화와 깊숙이 관련지어 소박하고 질박한 미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저장의 용도로 만든 김치광은 마치 움집처럼 짚을 엮어 쌓아 올려 질박하지만 푸근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주거문화와 어울림의 미를 보여주는 예도 있다. 메주를 뜰 때 둥글고 각진 모양의 메주를 짚으로 엮어 공중에 가지런히 매달아 놓은 풍광은 한국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을 더욱 고취시켜 준다. 짚으로 엮은 초가지붕과 처마 아래 매달려 있는 황톳빛 메주를 엮은 짚의 조화는 어느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겠지만 그 어울림은 통일미를 보여주는 한국 미감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짚은 주거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 지붕은 자연과 맞닿아 자연친화적인 공간 미감으로 자리 잡으며 산등성이와 이어질 듯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었다. 凶을 쫓고 福 부르는 행운의 상징 짚으로 엮은 것들에는 생활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주술적인 의미도 있었다. 그 중 기원을 담은 예로 예전에는 가정에서 아이를 분만하게 되면 마귀를 쫓는다는 의미에서 왼새끼를 꼬아 대문의 양쪽 기둥에 어른 키 정도의 높이로 금줄을 쳤다. 사내아이를 분만했을 때는 새끼줄 사이사이에 생솔가지와 숯, 빨간 고추를 같이 매달고, 여자아이일 경우에는 생솔가지와 숯만 간간이 끼워 대문에다 새끼줄을 쳤다. 손마디가 굵은 순박한 남자들은 자신의 자식이 태어날 것을 기뻐하며 오직 아기를 위한 소원만 담고 볏짚의 생김 그대로 꾸밈없이 새끼줄을 꼬았다. 가지런히 묶어 놓은 볏단에서 서너 가닥씩 볏짚을 꺼내 양손에 잡고 왼쪽으로 말면서 꼰 새끼줄 사이사이에 아기의 건강과 장래 희망을 담았던 것이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신성한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서 마을 어귀나 산등성이에 있는 큰 나무, 바위 등에 흰 종이나 흰 헝겊 또는 주먹만 한 짚 뭉치를 매달았다. 펄럭이는 흰색 헝겊과 함께 매달았던 짚 뭉치는 무작위적인 미감으로 큰 나무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서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어떤 지방에서는 터줏가리라 하여 그 집의 복을 지키는 터줏신을 모셔놓기 위해 추수가 끝나면 햇짚으로 정성스럽게 짚을 엮어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가 아기를 가지면 남편은 산에 올라가 가장 정결한 장소에 난 띠를 뽑아다 돗자리를 만들어 쳤다. 짚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산모가 맑은 기운을 받아 아기를 잘 낳기를 바라는 주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민속놀이를 보면 짚이 놀이문화에도 다양하게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정월에 짚을 거두고 고를 만들어 줄의 머리 부분에 단 다음 농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고싸움이라는 것을 했다. 동쪽은 수줄, 서쪽은 암줄이라 하여 암줄이 이겨야 그 해에 풍년이 든다며 보통 암줄을 수줄보다 길게 만드는 것이 민속풍습이다. 길고 짧음, 음양의 조화로 고를 올린 고싸움은 놀이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농경의식으로 전승되어 농민들이 희망을 품고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행사는 하루에 끝나지 않고 20여 일을 계속하면서 승리할 때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역할도 했다. 이처럼 놀이에 사용하도록 한 것이든 서민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것이든 이런 저런 물건을 만들거나, 또는 다른 물건과 어우러지게 꾸며진 볏짚은 어느 한 곳 가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우리 아름다움이었다. 엮고, 꼬고, 묶어 사용되는 농기구 짚은 농기구의 사용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듬해 쓸 종자들을 보관하거나 직접 밭에서 뿌릴 때 사용하던 종다래끼부터 농사를 지을 때 갖가지 씨앗을 넣을 씨오쟁이까지 농기구 보관용 재료로도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보관용이나 농업 경작을 위해 필요하게 만든 짚으로 만든 물건들은 그 쓰임새에 적합한 모양에다 크고 작은 주둥이를 만들어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소박하고 은근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갖가지 농기구의 사용 시 움직임을 위한 유연성 있는 역할은 모두 짚으로 만든 밧줄이 담당하였고, 농촌사회에서 빼 놓을 수 없던 거름의 도구인 장군의 마개도 짚이 담당했다. 짚은 엮든지, 꼬든지, 묶기만 하여도 하나의 공예품으로 손색이 없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짚으로 엮은 아름다움이 더 고귀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이것들은 분명 전문 장인이 만든 것도 아니었으며, 예술가가 만든 것도 아닌 일반 서민의 솜씨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중 촘촘하게 엮어서 성실한 솜씨를 보이는 삼태기나 멍석은 짚으로 만든 것 중 우리 선조들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물건 중 하나다. 그 쓸모도 대단하여 삼태기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며, 멍석은 언제 어디에서나 펴놓기만 해도 앉고 눕고 뛸 수 있는 공간 역할을 하였다. 삼태기는 크기만 다를 뿐 모양은 비슷했지만, 멍석은 짜임도 독창적이고 모양도 둥근 모양, 네모 모양 등 집집마다 멍석을 짜는 주인의 솜씨에 따라 제각기 달랐다. 어떤 것은 가늘고 촘촘히 엮은 것이 있는가 하면 굵고 투박하게 남성적으로 엮은 것도 있다. 또 색깔 있는 헝겊이나 비사리로 ‘상(上)’자 혹은 ‘복(福)’자를 넣기도 하고, 의미 없이 줄을 두어 가닥 넣어 단순한 모양에 멋을 더하기도 했다.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 멍석을 깔고 차양만 치면 무엇이든 못하는 일이 없었다. 가을 농가마당에서는 추수한 곡식들을 말리기 위해 집안에 있는 멍석이 총동원되기도 했다. 이처럼 멍석은 우리 선조들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했던 물건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우리 선조들이 전천후로 사용하던 멍석 문화가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더 이상 만드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있던 것마저도 점차 사라지거나 손상되고 있으며, 멍석 위에서 행해지던 여러 가지 문화들도 흔적 없이 사라져 가는 실정이다. 독창적 솜씨 있었기에 꽃피웠던 문화 짚은 이처럼 우리 의식주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들을 차지했다. 이제 이러한 짚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 짚으로 엮은 여러 가지 우리의 문화를 살펴보았지만 짚 문화는 짚으로만 된 것은 아니다. 짚 외에도 피나무껍질, 비사리, 일년피껍질, 싸릿개비, 띠, 청올치 등 산과 들에 있는 엮을 거리라면 무엇이든 생활에 필요한 물건으로 만들어져 순박한 아름다움이 표출되었다. 빗자루를 만들 때는 갈목, 억새풀, 신서란, 순비기 등으로 엮었고, 힘이 많이 받는 단단한 것을 만들 때에는 칡덩굴 새삼, 자골 등으로 엮었다. 또 부드러운 돗자리를 만들 때는 부들로, 바구니를 만들 때는 댕댕이 덩굴, 키나 바구니 등을 단단한 용구를 만들 때는 버드나무 가지, 가장 단단하다는 솔포 등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엮는 재료는 짚 외에도 그 종류도 헤아릴 수없이 많았다. 이것은 바로 농가 주변에 널린 모든 풀들을 생활용품의 재료로 활용할 줄 알았던 우리 민족의 기지와 뛰어난 솜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정한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일상 속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짚 문화는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조차 적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져가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고 있지만, 짚으로 엮은 아름다움이야말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진정한 한국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늪 품고 낙동강 구원하는 황강 거창군 가북면의 산악지대에서 출발된 황강은 덕유산에서 내려온 위천을 만나 몸통을 불린 다음, 거창과 합천군을 가로질러 가다가 청덕군 적포리에서 낙동강에 흘러 들어간다. 전체 길이는 111㎞이고, 물길의 경사가 심해 토사가 많고 일부에서는 하천의 바닥이 평야지대보다 높은 천정천을 이루기도 한다. 토사의 대부분은 은백색의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 강바닥과 주변은 황금 색깔을 보인다. 먼저 자리 잡은 모래알들은 강물에 떠내려 온 작은 진흙 입자를 받아 들여 넓은 퇴적층을 이루고, 그 퇴적물들은 버드나무의 씨앗을 잉태하여 웅장한 버들숲을 만들었다. 여름이면 황금빛 나는 강변에 시원하게 잎을 드리우는 버들숲은 그 자체가 즐거움을 준다. 그 뿐만 아니라 버들숲은 사람들에 의해 더렵혀진 강물에서 나쁜 성분을 걸려 내고, 몸속에서 많은 산소를 뿜어 강을 맑게 해 준다. 이렇게 깨끗하게 정화된 강물은 낙동강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구원의 물이 된다. 새 생명이 어미의 젖을 먹고 생명을 이어 가듯 주변의 공단에 의해 크게 오염된 낙동강에 다량의 용존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에 ‘모성의 강’이라고도 한다. 합천은 경상남도에서 가장 큰 군이지만 80%가 산으로 되어 있어 골이 깊고 물이 맑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던 이곳에 1988년 홍수 조절과 전력 생산을 위해 합천댐이 들어섰다. 합천댐의 건설로 낙동강의 수위가 60㎝ 정도 낮아져 홍수의 피해를 크게 줄였지만, 평상시에 황강을 흐르던 물이 크게 감소하여 자연늪의 입장에서는 많은 물을 빼앗겨 이들의 육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합천의 자연늪들은 황강에 의해 만들어진 배후습지성 호수들인데, 용주면의 박실늪과 연당늪, 대양면의 정양늪이 있고, 인위적으로 산의 중턱에 조성된 율곡면 내천리의 연지못이 있다. 한때 39.7㏊였던 정양늪은 대양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황강으로 들어가다가, 홍수 때 역류하여 만들어졌다. 황강으로 들어가는 수로의 길이는 매우 짧아 황강의 물높이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몇 년 전 수로의 바닥을 낮추어 호수의 물이 많이 빠져나가 대부분의 늪이 육상화 되었다. 박실늪은 둘레 5.5㎞, 넓이 40㏊의 장화모양으로 황계폭포에서 내려오던 황계천의 물이 황강에 들어가다가 역류하여 만들어진 늪이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2호인 백조 도래지로 지정되었다가 1974년 해제된 곳으로 지금은 이 사실을 기록한 비석만이 제방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아직도 이곳에는 여름에는 백로 류가, 겨울에는 백조 무리가 무리지어 찾고 있다. 황강에 인접한 연당늪은 연꽃이 자라고 있기에 이름이 붙여졌고, 규모는 작지만 지금은 합천에서 유일하게 보존이 잘된 자연늪이다. 배후습지는 아니지만 율곡면 내천리에 있는 연지못은 내천마을에서 1㎞ 떨어진 해발 180m의 야산 정상부에 있으며 넓이는 0.5㏊이다. 산 정상부근의 샘에서 임진왜란 때 우리의 군사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판 곳이 연못의 형태로 남아 있다. 샘에서 나오는 물에 의해 일 년 내내 같은 물 높이를 유지하나 비가 오면, 일시적으로 물의 높이가 증가한다. 희귀식물 낙지다리의 군락 박실늪 한때 박실늪의 버들밭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8년 버들밭을 없애고 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귀한 유산이 사라졌다. 남아있던 부분도 근래에 수로의 바닥을 황강의 높이로 낮추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육상화 되고 있다. 이곳의 습지에는 솔방울고랭이, 송이고랭이, 물옥잠, 선버들, 버드나무, 고마리, 낙지다리, 질경이택사, 택사 등이, 물속에는 개구리밥, 생이가래, 어리연꽃, 가시연꽃, 통발, 붕어마름, 물수세미 등이 자라고 있다. 동물로는 붕어, 잉어, 메기 등의 여러 종류 물고기와 수달, 남생이, 금개구리, 유혈목이 등이 살고 있다. 물옥잠은 한해살이풀로 9월에 청자색의 꽃이 피는데, 그때 박실늪 전체는 보라색의 밭으로 변한다. 물옥잠의 사촌인 물닭개비는 꽃의 색깔이나 잎의 모양이 비슷하지만, 원줄기에 하나의 잎이 달리고 물옥잠보다는 작은 잎을 가진다. 물닭개비는 물에 사는 달개비라는 뜻으로 꽃이 육상에 사는 닭의장풀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낙지다리는 전 세계에 단 3종뿐으로 학자에 따라 돌나물과 또는 낙지다리과로 나누고 있는데, 어디로 분류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은 특이한 식물이다. 7월에 줄기 끝에 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며 황백색 꽃이 하늘을 보며 모여 달리는 모습이 낙지다리처럼 보인다. 뿌리에서 짜낸 즙을 부스럼에 바르는 낙지다리는 그렇게 흔하게 나타나는 식물은 아니다. 습지가 파괴되고 하천이 정리되면서 살 곳이 없어져 버린 낙지다리를 산림청에서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선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자연늪의 변화과정 보여주는 정양늪 1983년 정양늪은 습지와 물이 드러나는 부분이 반씩 나누어져 있었다. 이때 습지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줄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줄은 4월에 싹이 나오기 시작하여 점차 자라기 시작하다가 태풍이 오기 전에 최대 250㎝까지 자란다. 이때 줄 밭에 들어서면 공기가 혼탁하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씩 늪에서 발생한 메탄가스들이 터져 나오면서 ‘끙끙’ 울음소리를 낸다. 이런 줄 밭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자연늪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합천댐이 완성되면서 정양늪도 박실늪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정양늪을 통하여 우리나라 늪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추정할 수 있었다. 호수에는 상류에서 내려온 흙들이 쌓여 점차 물 깊이는 낮아지고, 이곳에 습지식물인 부들과 줄 및 갈대가 들어서게 된다. 이때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게 되는 가뭄이나 댐의 건설로 인하여 들어난 습지에 버드나무가 들어서게 된다. 육지화가 진행됨에 따라 나도미꾸리낚시와 고마리가 버드나무 밑에서 자라기 시작하고, 이런 늪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 육지로 변하게 되고 버드나무 대신 소나무나 오리나무가 자리를 잡게 된다. 우리나라 늪의 육지화에 큰 역할을 하는 버들에는 선버들, 왕버들, 수양버들, 갯버들, 버드나무 등 30여 종류가 있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4월에 피고, 5월에 열매가 익으며 가을에 낙엽이 진다. 버드나무 껍질에는 살리실산이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어 이것으로 진통제 성분인 아스피린을 만든다. 살리실산은 배고픈 딱정벌레가 버들잎을 먹을 때, 벌레를 죽이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약품을 만들었다. 이처럼 자연이란 보는 눈을 조금만 바꾸면 파괴하지 않고도 더 좋은 이용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멸종 위기의 순채 자라는 연지못 연지못에는 순채, 통발, 창포, 나래새, 털여뀌가 자라고 있으며 이 중 순채가 가장 넓게 분포한다. 특히 이곳은 경남에서 유일하게 순채가 나타나는 곳으로 순채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 및 보호 식물이다. 순채는 물 위에 잎을 띄워 살아가는 여러해살이풀로서 땅속줄기는 옆으로 기어 다니고, 줄기는 물 위까지 자라 드문드문 가지를 친다. 어린줄기와 잎은 투명하면서 미끈거리는 점액으로 덮여 있고, 잎자루는 잎의 중앙에 달렸으며 잎의 뒷면은 자주빛이 난다. 긴 꽃자루에 달린 꽃은 검은 빛을 내는 홍자색이며 물에 약간 잠긴 채로 초여름에 핀다. 전 세계에 1속 1종이 있으며, 온대와 열대지방에 자라는 순채는 점액질이 분비되는 어린줄기가 있다. 잎은 피부병 치료를 위해 바르거나 소화제로서 그대로 먹는다. 예전에는 남한 전역에서 자랐지만, 현재는 연지못, 울산의 못산늪, 전남 영암의 형제제, 익산의 신성저수지, 김제의 석동저수지와 명덕저수지, 충남의 삽교천, 제주도의 괴살메와 갈마못, 속초 근방의 광포호와 봉포호 등에 분포하고 있다. 세월 아닌 사람에 의해 변해가는 자연 사람이 변하듯이, 우리 삶의 모태인 자연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1917년 자료에 의하면 박실늪은 지금의 약 2배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해곡동 앞의 들에도 물이 고여 있는 호소였는데, 지방도로에서 해곡동까지 둑을 쌓아 논을 만들면서 넓이가 반으로 줄어든다. 이후에 박실늪 상류 제방에 황계천에서 떠내려온 흙들이 쌓이면서 습지대가 점차 넓어지다가, 합천댐이 완성되면서 황강의 물 깊이가 급격히 낮아져 박실늪의 습지대가 갑자기 늘어나게 된다. 그때까지 경작지의 옆에만 자라고 있던 몇 그루의 버들이 갑자기 물에서 드러난 습지대에 많은 씨를 뿌려 자라기 시작하였다. 그런 중에 1990년대 초반에 가뭄이 자주 우리나라를 찾아 왔다. 가뭄이 들어 박실늪의 수위가 낮아질 때마다, 버들이 몇 년 간격으로 찾아오면서 나이가 다른 버들 밭이 습지를 원 모양으로 그리면서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 박실늪의 버들밭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말 귀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버들밭을 보면서 이를 없애고 논을 만드는 작은 이익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결국 1997년 겨울에 버들들은 모두 베어졌고 1999년 여름에 모내기를 하면서 사람들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논은 해마다 홍수 때 물에 잠기게 되고, 눈앞의 이익에 현혹된 사람들은 기어이 황강으로 들어가는 보를 허물어 박실늪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고대 다라국의 신비 간직한 황강변 예전부터 삶의 터전으로 이용된 황강의 주변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지천에 늘려 있다. 박실늪 상류에 있는 황계폭포는 구장산의 계류가 험준한 계곡을 감돌아 20m 높이의 절벽 위에서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2층 폭포이다. 여름철에 떨어지는 물줄기는 천둥소리를 내고, 사시사철 일정한 수량을 보인다. 1단 폭포 밑의 소는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닿지 않을 정도의 깊이를 가져 예전부터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 선비들은 이곳의 풍광이 아름다워 중국의 여산폭포에 비유하였고, 합천 8경 중 7경에 해당된다. 황강의 금빛 모래를 이용하여 번성을 누렸던 다라국(多羅國)도 황강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적중면에는 옥전고분(玉田古墳)이 있는데, 옥이 출토된 밭에 있는 고분이라는 의미이다. 다라국은 가야의 한 소국으로서 일본서기와 중국의 양직공도에 나타나는데, 합천의 황강과 낙동강을 끼고 서기 400년 전후에 등장하여 560년대에 신라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황강의 모래를 이용하여 구슬과 옥 및 철제무기를 만들어 수출하였는데, 고분에서 전쟁 시 말을 보호하기 위한 말 투구 6점과 갑옷 3구가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말 투구 14점 중 반이 이곳에서 나왔다. 황강의 모래를 이용하여 구슬과 옥을 다듬었던 다라국은 합천박물관 주변에 대형 고분 27기와 약 1천기의 무덤을 남겼다. 봄철에 만나는 합천댐과 백리 벚꽃 길(44㎞)은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 등의 수려한 산이 감싸고 있어 절로 신선이 된 느낌을 준다. 그 외에도 합천호를 감싸는 황매산의 철쭉제, 합천댐 아래에 조성된 합천 영상테마파크에서는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가능하게 한다. 존재의 위협을 받는 자연늪! 비단 합천의 늪만이 가진 문제는 아닐 것이다. 늪의 파괴가 계속 일어난다면 우리 후손들은 책을 통해서만 자연늪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자연늪이 만들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자연늪이 사라지면 늪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많은 생물들이 살 터전을 잃고 같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빨리 깨우쳐야 한다.
2004년 10월에 발표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은 현 정부의 야심작이었다. 복지 정책을 강조하는 참여정부는 살인적인 경쟁과 만성적인 입시위주의 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야심에서 혁신적인 대입제도개선안을 확정하여 발표하였다. 대학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내신 성적의 석차나 수능 시험의 백분위 점수를 제공하지 않고 각각 9개로 구분된 등급만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정책에 대한 대책 부실이 문제 사실 정책입안자들의 주장처럼, 2008학년도 대입정책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방안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수능과 내신에 등급제를 도입하고, 내신에서도 교과뿐만 아니라 교과 외 활동의 반영을 유도하는 대입 정책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과 사교육비 문제 등을 어느 정도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대학들이 정책입안자의 의도대로 움직여 준다고 가정할 때에 그렇다. 그러나 좀 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의 학생 선발의 관성에 비추어 볼 때, 2008학년도 대입 방안을 대학이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학생 모집단위별로 분석해 볼 때, 지원자 대부분의 수능과 내신 등급이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수능과 내신을 지원 조건이나 일차적인 선발 기준으로 격하시키고, 논술이나 면접시험 점수를 학생 선발의 최종적인 기준으로 삼고자 하였다. 논술이나 면접이 학생 선발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함에 따라 각 대학은 논술의 신뢰도와 변별도를 높이기 위하여 논술을 이른바 통합논술, 수리논술, 본고사형 논술 등과 같은 형태로 바꾸고자 하였다. 면접도 더 이상 단순한 면접이 아니라 오랄 테스트로 성격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정책입안자들은 모든 ‘정책’에는 반드시 ‘대책’이 따름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의 2008학년도 대입 ‘정책’에 본고사형 논술과 면접시험이라는 대학의 ‘대책’이 뒤따랐다. 정부의 2008학년도 대입 정책은 본고사형 논술 열풍을 불러왔고, 이에 대해 정부는 논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2008학년도 입시가 다가옴에 따라 고등학교 간에 존재하는 현저한 실력 차이로 인하여 내신의 비중을 높일 경우 우수 학생의 선발에 어려움을 느낄 것을 예상한 대학은 각 대학에 지원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내신을 동일하게 취급하기 위하여 대학별로 내신 1·2등급, 1·2·3등급, 1·2·3·4등급에 모두 만점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이처럼 각 대학 지원자의 대다수에게 내신 만점을 주려는 대학의 ‘대책’에 정부는 내신 무력화 조치라고 경고하였으며, 이를 취소하지 않을 경우 각 대학에 행·재정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08학년도 대입에서부터 내신 실질 반영률을 50%로 끌어 올릴 것을 요구했다. 내신 실질 반영률이 10% 내외에 그쳤던 그간의 교육 현실을 고려할 때, 교육부의 이러한 요구를 대학은 황당한 요구로 간주하고,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저항하였다. 내신 실질 반영률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대해 각 대학은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성을 허용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각 대학의 교수협의회까지 정부의 대학에 대한 통제와 이로 인한 자율성 침해를 비판하면서 내신 전쟁에 가담하는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정부의 ‘정책’과 대학의 ‘대책’의 계속적인 맞대응으로 인하여 학생들은 첫째로 내신, 수능, 논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갇히게 되었고, 둘째로 대입정책의 불확정 속에서 ‘저주받은 89년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요컨대, 2008학년도 대입정책 입안자들이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학교교육은 더욱 왜곡되었고,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은 더욱 커졌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내신 논란이나 대학의 학생 선발의 자율권 문제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으로부터 초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교육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난 2004년 10월에 발표된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에 이미 이런 논란의 씨앗이 담겨져 있음을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5년 초에, 2008학년도 대입제도개선안의 파급 효과를 우려하면서 교육관련 잡지에 실린 필자의 글 한 토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민주적·교육적 가치 중시돼야 대입 논술 고사가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맥락으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 대입 논술 고사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과 ‘교육부의 본고사형 논술금지’라는 이념적 대결 구도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교육부는 상당한 유연성과 동시에 경직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의 논술 고사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책의 유연성을 드러내 보인다. 다만 논술이 통합형 논술이나 교과형 논술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할 뿐이다. 교육부는 대학의 논술 고사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대학 논술 고사의 가치를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육부는 본고사형 논술을 금지하는 이유로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한 목적’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지점이 교육부가 매우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본고사형 논술이 사교육비를 정말로 증가시킬 것인가? 일시적인 사교육으로 본고사형 논술에서 점수를 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학생과 학부모들이 깨닫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더 나아가 본고사형 논술을 치르지 않는다고 사교육비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가? 여기서 목하 우리가 다루고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다르게 진술될 수 있다.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교육적 가치를 지닌 대학 논술 고사를 놓고 진행되는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과 ‘교육부의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본고사형 논술 금지 정책’간의 싸움의 결말은 어떠할 것인가? 현재의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본고사형 논술 금지는 한시적인 효과만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논술 가이드라인’과 ‘사후심의’ 정책으로 인한 논란은 궁극적으로 본고사 실시와 관련한 논란으로 발전할 것이며, 논란이 본격화될 경우 본고사 실시 정책이 본고사 금지 정책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본고사 실시는 한편으로는 대학의 학생 선발의 자율성이라는 ‘민주적 가치’로, 다른 한편으로는 수월성 추구라는 ‘교육적 가치’로 정당화될 것이다. 이에 반해, 본고사 금지는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비교육적인’ 이유에 근거하고 있으며, 본고사를 금지한다고 하더라도 사교육비가 생각만큼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통제정책 아닌 지원정책 필요 2년 반 전, 교육부가 2008학년도 대입정책을 발표했을 때 필자가 예상했던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 논란은 처음에는 ‘본고사형 논술’ 시험 문제에서 ‘서로 다른 내신 등급의 동점화’ 문제로 바뀌어 다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3불 정책 자체의 폐기를 요구하는 새로운 흐름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와 대학은 학생 선발의 자율권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할 태세다.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 논란의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필자는 여기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사고방식의 전환, 즉 정책 수립 및 집행의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다. 정부는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통제’보다는 학생 선발 결과에 따른 ‘지원’의 차등화를 통해서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학생 선발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허용하되,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여 균형 있게 학생을 선발한 대학에 행·재정적인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통제 패러다임’을 ‘지원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현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더 나아가 미래의 사회에서 정부가 대학의 학생 선발을 통제한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학을 통제한다는 발상을 버리고, 정부의 정책 의도와 일치하는 선발 결과를 보인 대학에 행·재정적인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책 집행 방식이 대학의 학생 선발에 있어서의 자율권 보장이라는 시대정신에도 부합하며, 사회적 약자에게 대학 진학의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는 정책 취지도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명문 대학일수록 사회적 약자의 진학 비율이 낮아져 온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부는 대입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할 때 교육의 문제와 사회복지의 문제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08학년도 대입정책의 배후에는 사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가 놓여 있다.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대입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부의 관심과 노력은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교육을 통하여 사회 불평등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정당한가? 사교육비 증대나 학력과 부의 대물림 문제가 입시제도 등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통하여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교육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할 때 교육적 관심이 무엇보다도 앞서야 한다. 교육 논리를 무시한 채로 정치 논리, 경제 논리 또는 사회복지 논리로 입시문제 등에 접근할 경우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복잡하게 엉클어 놓는 경우가 많다. 대학도 사회적 책임 잊지 말아야 대학의 학생 선발에 대한 교육부의 간섭, 즉 본고사 금지, 논술가이드라인 제시, 서로 다른 내신 등급의 동점화 금지와 같은 문제 해결 방식으로는 사교육비 증대나 학력과 부의 대물림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교육 자체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많다. 달리 말하면 사회 계층의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교육까지도 망가뜨릴 가능성이 있다. 학력과 부의 대물림이라는 사회계층의 양극화 문제는 사회복지제도나 경제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대입제도와 같은 교육정책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교육을 정치나 경제, 사회복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정부의 태도 전환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렇다고 대학의 잘못은 없는가? 대학의 사회적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의 대입 정책에 대한 ‘간섭’도 대학의 사회적 책무성 부족 때문에 초래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최근 하버드 대학의 사례는 이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감동적이다. 미국 사회에서 보편화된 ‘조기입학허가제(early admission)’가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자체 분석 결과에 따라 하버드 대학은 우수 학생 선점에 유익한 정책으로 간주되어 왔던 조기입학허가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대학의 자율은 이처럼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대학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가능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학생 선발은 한편으로 고등학교 간의 학력 차이를 정확히 반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도 있지만, 대학의 학생 선발 방식이 고등학교 간의 학력 차이를 키우거나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학은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그리고 학교 간의 학력 차이를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학생을 선발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대학은 변별력 있는 선발제도를 통해 탁월한 학업 성취를 보인 학생을 선발하는 것 못지않게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으나 사회적 여건이 불리하여 발전할 기회를 놓쳤던 학생들에게까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에 정부가 간섭하는 정도를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매우 심한 편에 속한다. 적어도 학자들이 느끼기에는 그런 듯하다. 1997년 미국의 카네기재단에서는 12개국 학자들을 대상으로 고등교육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때 조사 항목 가운데는 “대학의 주요 학사 정책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지나친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90% 가까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조사 대상 나라들 가운데 긍정 비율이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부분 반응이 50% 이하였던 것에 비교하여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같이 조사된 나라들 가운데 오스트레일리아와 멕시코에서만 50% 조금 넘는 긍정 반응이 나왔을 뿐, 아시아의 일본과 홍콩, 유럽의 네덜란드와 스웨덴, 남미의 브라질과 칠레, 그리고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다른 모든 조사 대상 국가에서 긍정 반응을 한 빈도는 상대적으로 소수였다. 정부 간섭 지나치다는 응답 90%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간섭(통제)은 일반적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국가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전제적 정권들이 으레 자행했던 대학 통제의 유습, 뒤늦은 근대화 과정에서 대학을 국가 발전 수단으로 여겼던 통념, 일천하고 척박한 고등교육 역사 속에서 불거졌던 대학들의 부정과 부패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민주화 운동의 진원이었던 대학들은 여러 이유로 정권의 통제를 받았고, 성장이든 배분이든 대학은 그 문제에 대한 중요한 국가 정책 수단으로써 조정돼 왔으며, 급속한 팽창 와중에 빚어진 대학의 비리들도 정부의 개입을 불렀다. 이런 역사의 연장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대학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등교육의 문제를 대학에 맡긴다는 생각은 아직 멀다. 문제가 터지면 정부를 탓하고 정부가 나서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관성은 여전하다. 대학에 대한 정부 간섭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관성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이 자율권을 요구하는 강도는 세지고 있다. 대학들의 이런 변화(요구)에 대한 사회적 동조도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일차적으로 이른바 자유주의적 교육 개혁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대학들이 자유시장적 경쟁을 통해 강해져야 한다는 개혁 논리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다. 대학 스스로 생존을 모색하라는 방안들이 중요한 개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연히 대학 경영상에서 자율 폭이 커지고 있다. 경쟁적 생존을 요구하면서 자율을 제한하는 것은 모순인 셈이 된다. 대학의 자율권은 이런 개혁 추세가 아니더라도 점차 회복되기 마련일 것이다. 대학은 본디 자율의 바탕 위에서 제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통제적 전통은 점차 해소될 것이다. 대학이 그 긴 역사에서 정치 경제적으로나 사회(종교)적으로 완전하게 독립적이었던 적은 없을 것이다. 대학 생존에 이바지하는 주체가 늘 대학 밖에서 받치고 있었다. 그 주체는 때로는 귀족이기도 했고, 때로는 교회이기도 했으며 자선재단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만 본다면 많은 나라에서 대학을 뒷받침한 주요 주체는 정부(국가나 지방 정부)이다. 대학이 이들에 의존했다는 점에서 독립적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자율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지원한 주체들은, 적어도 대학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었던 시기와 지역(국가)을 두고 보면, 대체로 후원자(patron) 자리에 머물렀지 대학 운영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전통적으로 대학의 자율은 대학의 본질에 붙박여 있는 것으로 여겼다. 본질적 자율 범위에 대한 논란 우리나라에서는 학생 선발 권한이 대학의 본질적인 자율 범위 안에 들어가는지 종종 논란이 생긴다. 특히 정부쪽에서는 학생 선발의 쟁점이 대학 자율 문제와 거리가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대학의 자율은 본질적으로 학문의 자유에 관한 것으로, 어떤 학생을 어떻게 선발하여 교육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자유에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의 학생 선발에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서 대학의 학문적 자유(대학이, 교수가 무엇을 어떻게 탐구하고 어떤 결론에 이르는지와 관련해서 가져야 할 자유)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 입장은 사실 옹색하다. 대학에 대한 정부 간섭을 어쨌건 합리화해야 하는 궁지에서 학문의 자유를 좁게 규정함으로써 빠져나갈 논리를 찾는 꼴이다. 대학의 역사를 서구 유럽에서 찾는다면 대학의 자율권은 본래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설립 900주년을 맞던 1988년에 유럽 대학 총장들이 볼로냐에 모여 채택한 대학대헌장(Magna Charta Universitarum)은 근본원칙(Fundamental Principles) 첫 조항을 이렇게 시작한다. “대학은 사회의 심장에 자리한 자율적인 기관이다.” 이 원칙대로 대학의 자율권이 사회적 심장의 자리에서 향유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필경 전면적인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학생 선발에서의 자율도 물론 포괄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당위적이고 선언적인 바탕에서 대학 자율권이 학생 선발 문제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맥락에서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생겨난 많은 신생국의 경우와 크게 다름없이,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애당초 국가 기관이나 마찬가지인 의미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대학이 초기부터 주목받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회적 지위 이동에서 문지기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 사회적 환경에서 대학 진학 기회가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대한 관심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관심이 예민한 데 따른 시비는 종종 증폭되고, 결국 증폭되는 시비를 해결할 당국(곧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해진다. 우리나라 대입 선발에 대한 정부 개입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학생 선발권을 전적으로 대학에 주었던 역사가 우리에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초기 역사는 대학들의 비리로 얼룩졌다. 이 역사적 기억은 오늘에 와서 자율의 이름으로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주려는 생각을 너무 순진한 발상으로 여기게 한다. 서구 대학의 전통이 그 순진한 생각을 지지해준다 하더라도, 우리 상식은 그런 전통에 기대는 정책 행위를 쉽게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우리는 학생 선발에 관하여 규범적인 검토보다 ‘사실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학과 정부 가운데 어디가 학생 선발에 대한 정책 권한을 가져야 할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전통(규범, 당위)이 어떤 답을 주는지 살피기보다 우리의 대학 운영 현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살피는 것이 합당하리라는 것이다. 선발권 가질 때 예상되는 문제들 대학이 학생 선발의 권한을 가질 때 예상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역사적 사실이 잊지 못하게 하는 문제는 대학들의 부정 가능성이다. 대학들이 적격하지 못한 지원자들을 받아들이고 정작 자격을 갖춘 지원자들을 버릴 위험이 있다. 과거 대학들이 보였던 입학부정 사례들이 이런 걱정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이와 같이 탐욕을 보였던 대학들은 더 나아가 학교교육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대학들이 초·중등 교육의 ‘정상화’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신입생들을 챙길 방도만 찾을 것이라는 우려이다.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하여 대학들이 최근 보이는 경쟁은 이런 우려를 절감하게 한다. 경쟁에 눈이 어두운 대학은 또 사회 정의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사회는 여긴다. 이를테면, 불우한 여건에서 도전하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배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요컨대 대학들이 공익에 먼저 마음을 쓰기보다 자체의 이해(利害)를 먼저 계산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에서 정부가 내놓는 입장도 이런 것이다. ‘공공성’의 견지에서 정부가 대학 정책(특히, 학생 선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스스로 공공 기관으로서 몫을 해내지 못하거나 안할 수 있다는 전제가 여기에 들어 있다.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서 자율을 구가한다면 학교교육의 정상화나 교육기회 균등을 위한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이 걱정할 만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문제들이 반드시 걱정한 대로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이 물론 이해관계에 매인 행위를 보이겠지만, 공공성을 견지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마냥 방기하지만은 않을(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가 대학의 자율권을 유보한 채 학생 선발에 대한 정책 권한을 행사한다고 해서 곧 공적인 이익이 확보된다는 보장도 없다. 정부가 정책을 책임진다고 해서 공공성이 당연히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정부가 그 유지를 위해 사력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으로 그 결과가 취지에 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간섭 결과 냉철히 따져봐야 우리나라 대입 정책은 적어도 반세기 가까이 정부가 좌우해왔다. 물론 정책 입안과 시행 과정에 다양한 목소리가 개입했고, 대학들의 목소리도 작지 않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궁극적인 정책 권한은 정부에 있었다. 단순하게 자문해보자. 과거 반세기 정책 역사가 대입 학생 선발에서 공익을 키워왔는가? 그렇다고 긍정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무엇보다도 대입 부정 사례가 과거보다 현격하게 줄었다. 교육기회 배분(학생 선발)이나 장학금 지원 등이 사회적 평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런 변화가 대입 정책을 대학 자율에 줄곧 맡겼었더라도 가능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대학도 발전을 강구하면서 사회적 요구를 의식하기 마련이다. 한때 부정을 자행했던 대학이라 하더라도 그런 행위가 궁극적으로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학습하게 되고, 정책의 정도(正道)로 돌아갈 수 있다. 대학들이 학생 선발에서 강자 우선의 정책만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이 학교의 위신을 높이거나 사회적 지원을 얻어내는 데 더 유효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외국의 명문 대학들이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그 대학들이 고매한 도덕률을 지니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런 정책이 종국에는 대학에 득이 된다는 인식을 경험적으로 얻게 된 점도 작용한 결과이다. 우리 대학들이라고 이런 역사적 지혜를 체득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사실 무의미하다. 대학에게 맡겼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보다 정부가 권한을 행사한 결과를 좀 더 따져보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오늘날 정부가 지휘하는 대학입학 제도에 묵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 수능시험이나 대학별 전형 등에서 큰 사건 없이 한 해 한 해 넘겨오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대입과 같은 심각한 사안에는 정부가 개입했을 때 안심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외면적인 무난함이 공공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객관적 관리가 오히려 파행 불러 대입정책에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얻는 성과 가운데 중요한 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정(査定)이 이루어지게 되는 점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정부가 엄정하게 관리하는 시험을 통하여 핵심적인 전형자료를 제공한다. 다른 전형자료들(예컨대, 학교생활기록부, 논술고사 등)에 대해서도 국가적인 지침으로 표준적인 활용을 도모한다. 이런 수고를 통하여 정부는 입학 사정에서 ‘커트라인’을 긋고 당락을 가르는 데 다른 입김이 작용할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객관적이고 효율적이게 보이는 정부의 대입 관리는 역설적이게도 대입 경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교육의 파행을 더 조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국적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전형을 위해서는 국가 수준에서 하나의 표준 잣대를 가져야 한다. 누구나 이의 없이 받아들일 척도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잣대는 학생 전형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대학의 서열을 가르는 데도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몇 점이면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진학할 수 있는지 탐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가 되고, 학과나 대학의 커트라인이 해당 학과와 대학의 위세를 결정하게 되는 현상도 따라서 일어난다. 대학들 역시 위세를 확보하기 위해 입학전형에서 전국 표준의 잣대를 가장 중시하게 된다. 학생이나 학교가 학습(교육) 과정에서 그 잣대를 가장 중요하게 의식하게 되리라는 짐작은 우리 현실에서 입증되고 있다. 결국 학교교육이 정상적이지 못하게 되는 파행이 거듭될 수 있다. 정부가 개입해서 전국 표준의 지침(또는 잣대)을 적용하게 되는 사태는 불리한 학생들을 배려한다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효과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최근 정부가 고집하고 있는 대로 내신 성적을 중시하는 지침이 전국 대학에서 관철된다고 해보자. 단순하게 보면, 이 지침은 우수한 학생들이 집중되어 있는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를테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과학고등학교 등 특수목적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적용되지 않는 중소도시 또는 읍면 지역의 이른바 ‘우수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불리하다. 정부는 소위 ‘특수한’ 학교 학생들이 불리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식하고 있는 듯하지만, 작은 도시나 시골의 우수한 학생들이 불리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어려서 도시로 나가지 못한 형편에서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문제는 간과된 듯하다. 이 경우에 정부가 실수로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실수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실은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실수라는 점이 심각한 것이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통일된, 즉 획일적인 정책을 추구할 때 ‘목소리 낮은’ 소수는 흔히 고려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획일적이지 않은 정책을 추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맞다. 그런 정책이 바로 대학에 자율을 허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목표’를 제시하고 요구할 수 있다. 그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규칙’(정책)은 대학이 스스로 만들고 지키도록 맡겨두는 것이 그 대안이다. 국가가 이를테면 대학에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입학전형 방안을 요구하는 데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그 구체적인 방안까지 만들어 강요할 만한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대안을 강구하고 그 결과에 대해 사회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대안을 고려해봄 직하다는 것이다. 이런 대안에 대학들이 사악한 방책들로 대응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견제는 정부와 우리 사회 전체의 몫이다. 대학답지 못한 대학들을 의식하며 대학다운 대학 만들기를 주저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