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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가 세운 화실 '운림산방'의 전경. 최효찬 | 자녀교육 컨설턴트, 저자 유대인 자녀교육의 핵심은 모범 극성스러운 자녀교육 때문에 '유대인 엄마(Jewish Mom)'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유대인들은 자녀교육에서 아버지가 주도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먼저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고 자녀는 아버지를 닮아가려 노력한다. 랍비 토케이어는 한가한 시간이면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데, 이제 겨우 다섯 살인 그의 아들 역시 아버지의 흉내를 내면서 '공부하는 척'을 한다고 한다. 아이는 서재에서 가장 두꺼운 책을 꺼낸 다음 의젓하게 앉아 페이지를 넘기면서 눈을 치켜뜨는 아버지의 폼을 흉내 낸다. 물론 아직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내용을 알 리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아버지란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관념이 어린 그의 가슴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그것이 그의 정신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책 읽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성장한 어린이 중에 세계적인 명사가 된 사람이 유대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국무장관의 직위에까지 오른 헨리 키신저 박사이다. 그는 어렸을 때 매일 아버지와 함께 공부를 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의 아버지 루이는 독일 여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그의 일가가 살던 아파트는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닉슨의 중국방문 등을 일구어냈고 중동평화에 앞장서는 등의 공로로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키신저는 외교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 이면에는 19세기 유럽 외교사에 대한 그의 넓은 지식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보아온 아버지의 모습이 그를 깊은 학문 속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재능은 억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진도 운림산방의 소치 허련(1808~1893)에서 시작된 화계도(畵係圖)는 5대째 이어지고 있다. 소치에 이어 2대는 4남 미산 허형이 이었고 3대는 허형의 두 아들 남농 허건, 임인 허림으로, 4대는 허림의 아들 임전 허문으로, 5대는 남농의 손자 허진(전남대 미대 교수)과 4촌 간인 허은, 허청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 허재, 허준, 허윤정, 허윤선 등 10여명이 줄줄이 예비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한 가문에서 한 사람의 인재를 키우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5대째 화계도를 이어오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소치와 남농으로 대표되는 이 집안이 5대 200년에 걸쳐 30여명에 이르는 걸출한 화가를 배출하고 있는 비결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냉정한 대물림'에 있었다. 아이가 부모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결코 대물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냉정한 대물림을 하지 않으면 결코 아버지의 벽을 넘어 더 나은 경지에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남종화를 마지막으로 꽃피운 소치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제자로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될 때에도 그곳으로 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그림을 좀 그린다 하면 추사 휘하에 들어갈 정도로 그의 명성은 절대적이었다. 소치는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를 가자 자칫 높은 파도에 밀려 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제주행 배에 올랐다. 추사와 소치의 목숨을 건 사제지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추사는 소치가 재능을 펼 수 있도록 당대의 권력자들을 소개해주는 등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추사는 외척(영조의 장녀 화순옹주가 증조모)이자 고조부 김흥경이 영의정을 지낸 전통 명가의 후예다. 소치가 구현해낸 이상적인 화풍은 다름 아닌 추사가 추구했던 품격 있는 문인화인 남(종)화였다. 추사는 시·서·화가 일치하는 격조 높은 문인화를 원했는데, 이를 소치가 구현해냈다는 것이다. 소치는 42세 때에는 헌종 앞에서 어연(御硯, 임금이 쓰는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영예를 얻으면서 화가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조선시대의 화가는 크게 '화원화가'와 '사대부화가'로 나뉜다. 화원화가는 직업화가로서 주로 왕실에 소속된 화가들이다. 사대부화가는 정치적 탄압이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벼슬길이 막혔을 경우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양반출신들이다. 겸재 정선의 경우도 과거를 몇 번 보다 떨어져 결국 화가의 길을 걸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사대부 화가들이 주로 그리는 그림이 문인화(남화)였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화단의 권력은 직업화가(왕실소속 화원화가)들에게 있지 않고 사대부화가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사대부화가들이 그리는 격조 높은 문인화가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직업화가가 그리는 그림이 북(종)화였는데, 여기서 양반이나 사대부가 그리는 남화를 숭상하는 '상남폄북(尙男貶北)'의 풍토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고 한다. 상남폄북이란 남종화를 숭상하고 북종화를 배척하는 중국의 회화 이론으로 동기창(董其昌), 막시룡(莫是龍) 등이 제기한 남북종론(南北宗論)에 기초한다. 남북종론이란 역대의 화가들을 문인화가와 직업화가로 나누고, 그 작품을 각각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눈 것이다. 문인화가들이 그린 남종화는 고아하고 미적 가치가 높으며, 직업화가들이 그린 북종화는 천박하고 미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였다. 상남폄북론은 중국의 근·현대 회화사는 물론 한국의 회화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추사에 의해 자신의 이상적인 문인화를 그리는 화가로 신임을 받은 소치는 50세 때 귀향해 진도에 '운림산방'이라는 화실을 세웠다. 학문이 짧으면 붓을 들지 말라 이 운림산방에서 소치의 후손들과 제자들이 대거 배출되었고 남농과 의제에 의해 한국 남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게 된다. 소치는 4남을 두었는데 미산 허형이 그 뒤를 이었다. 시·서·화에 뛰어나 소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장남 허은은 18세에 요절했다. 소치는 이를 애석하게 여겨 허은에게 주었던 호(미산)를 막내아들 허형에게 물려주면서 대를 잇게 했다. 그러나 그림에 재능을 지녔던 미산은 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끝에 아버지로부터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소치는 장남에게만 그림 공부를 시키려고 하였다. 4남 중 막내인 미산은 서당에 가기가 싫어 지게를 지고 산에서 나무를 해 날랐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산에서 나무나 하자, 소치는 글공부를 싫어하는 막내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글공부를 게을리 하면 결코 화가로 대성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글공부가 싫었던 미산은 늘 아버지 몰래 사랑방에 숨어들어 형이 그림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들키고 말았다. 문순태가 쓴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에는 이에 대해 잘 묘사되어 있다. "이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산으로 쏘다니더니 이제는 네 형 그림 공부까지 방해하는구나!" 아버지의 호통은 대단했다. "아버님, 아우의 그림 솜씨도 대단합니다. 얘, 아버님께 한번 보여드려라!" 미산의 맏형은 가끔 아우가 붓장난하는 것을 훔쳐보았으며 그 솜씨가 대단한 데 놀란 터라 아버지께 보이기를 권하였다. "이깐 놈이 무슨!" 소치는 아예 미산을 무시해버렸다. 은근히 부아가 난 미산은 먹을 갈아 탐스러운 묵모란(墨牡丹) 한 그루를 그렸다. 소치는 아들의 솜씨에 놀랐다. 농담(濃淡)을 비끼는 솜씨가 대단했다. 그러나 소치는 아들의 솜씨를 칭찬해주기는커녕, "이것도 그림이라고 그렸느냐?" 하고 꾸짖으며, 미산이 그린 묵모란을 꾸적꾸적해서 휙 던져버렸다. 미산이 그린 묵모란을 처음 본 소치는 붓 솜씨는 놀랍지만 결코 성가(成家)하지는 못할 것으로 헤아림하고 있었다. 그것은 미산의 글공부가 너무 얕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치의 예견대로 미산은 끝내 아버지가 바라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 5대째 화통 잇는 5가지 비결 자칫 대를 이어야 한다는 집착이 강할 경우 가족의 정에 이끌려 분별력을 잃을 수 있지만, 소치가는 그렇지 않았다. 후계를 뽑는 대물림 과정은 핏줄의 정을 훨씬 뛰어넘는 엄격한 것이었다. 허진은 5대째 화가로 내려올 수 있었던 비결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붓 재주 하나로는 결코 화가로 이름을 남길 생각을 말라. 우리나라 예체능교육의 문제점은 기능이나 기교 위주의 교육에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예체능에서도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을 중요시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화가나 음악가로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단지 기교만 가지고 대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폭넓은 지식과 인성이 뒷받침될 때 예술의 거장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 우리나라도 화가로 대성한 인물들을 보면 시·서·화의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에 고루 바탕을 두고 있었다. 소치의 후계자는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었기에 글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소치는 훌륭한 화가로 성장하자면 붓 재주보다는 사람의 됨됨이와 높은 학덕이 앞서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먹을 항상 입에 달고 다녀라. 허진은 법대를 목표로 공부하다 고1 때 자신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미대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그림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인 남농이나 그의 부친도 화가로서 대를 이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게 자신의 천직임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던 것이다. 자신에게 잠재해 있는 '끼'를 느끼고 재능이 꿈틀댈 것이기 때문이다. 허진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게 된 데에는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고3 여름방학 때 목포에 내려가 할아버지 밑에서 사군자를 치며 처음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남농은 손자가 그림을 그려도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 반응이 없었다. 남농이 아무 말 없이 난을 하나 쳐주면 일주일이건 열흘이건 잘 그릴 때까지 그것만 그려야 했다. 할아버지는 늘 먹을 입에 달고 살 생각이 없으면 당장 그림을 그만두라고 늘 강조했다고 한다. 또 남농은 손자가 서울대 미대에 합격해도 손자에게 축하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할아버지가 무척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 사후에야 친지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자만심을 경계해 손자에게 직접 칭찬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 진도의 가난한 청년 소치가 조선 화단의 거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 사는 녹우당1)과의 인연과 함께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로 이어지는 큰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다. 녹우당에서는 그림에 대한 기본지식을 공부할 수 있었고 초의선사는 또 추사에게 소치를 소개해주었던 것이다. 소치의 명성은 두 스승의 입을 통해 번져나갔고 마침내 임금(헌종)이 그를 불렀다. 허진은 "요즘도 가끔 소치 할아버지의 이런 행로를 따라 녹우당을 찾아 소치로부터 시작된 인연을 되새겨보곤 한다"고 말한다. 넷째, 나를 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 운림산방의 최고 스승은 다름 아닌 가문 자체였다. 후손들은 소치, 남농 등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이 우러나왔고 닮으려 노력했으며 뛰어넘기 위해 도전했다. 그래서 그들을 뒤쫓은 후손들은 가난마저도 대물림했다. 허진은 서울대 미대를 거쳐 남농의 대를 이으면서 남농의 묵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한국화의 경지를 열고 있다. 허진의 그림에는 고답적인 산수의 묵향보다 현실이 살아있는 에너지가 묵향보다 더 강렬하게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형편이 어렵더라도 항상 베풀며 살아라. 인연의 소중함 때문에 남농 생전의 목포집은 이 고향의 사랑방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허진에 따르면 할아버지 화실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린 시절 사촌들과 함께 놀다가 화실에 가보면 커다란 책상을 놓고 작업하시는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무릎 꿇고 먹을 가는 제자들, 바둑 두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등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풍속화를 보는 듯 했다고 한다. 집안의 명성에 기대지 않는 노력 남농의 며느리이자 허진의 어머니 역시 생전에 베푸는 삶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허진의 어머니는 즐거운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기꺼이 베풀었다고 한다. 허진의 친구들도 "어머니 때문에 허진을 미워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라고 한다. "어머니는 늘 '인사를 잘해라', '겸손할 줄 알아라'를 반복해서 들려주셨어요. 특히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또 천성적으로 남에게 항상 베풀기를 즐겼습니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가면 어머니는 항상 진수성찬을 마련해 친구들을 대접해주곤 하셨어요. 제 친구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허진의 모친은 자녀교육에 정성을 기울여 미술계에서는 모범적인 자녀교육을 한 어머니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화관광부가 수여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1999)'을 수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허진의 어머니는 생전에 허진에게 엄격한 교육을 했다. 특히 허진에게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노력을 하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었다. 혹 허진이 할아버지인 남농의 명성에 의지해 자기계발에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언은 허진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나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허진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인정받기 전에는 결코 남농의 손자임을 내세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허진은 문화관광부장관이 수여하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으면서 어머니의 은혜에 답했다. 이에 앞서 남농이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1976)했는데, 이로써 3대에 걸쳐 정부로부터 상을 받은 것이다. 소치가는 그림 재주 하나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소치는 재능 하나만으로는 결코 대가의 경지에 오를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치가 "학문이 얕으면 절대로 붓을 들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붓끝 하나의 재능으로는 화가로 우뚝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때로 부모들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 눈감아주기도 한다. 그게 평범한 사람들의 인지상정인 것이다. 소치 가문에서는 이러한 얕은꾀가 결코 통하지 않았다. 소치가가 5대째 화가를 배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화가가 되기에 앞서 인간이 되고, 학문에 힘쓰도록 가르친 철저한 인성교육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daum.cafe.net/parque) 거대한 군사종교세력의 등장 이슬람교의 창시자는 물론 마호메트이다. 그가 탁월한 종교적, 정치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아라비아 전체를 통일하고 그의 후계자들이 정복사업을 계속하여 거대한 사라센 제국을 건설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가 그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은 이란의 사산 조(朝) 페르시아와 오랜 싸움을 계속하는 바람에 6세기 후반에 들어와 '비단길'과 '바다길'이 거의 막혀 아시아에서 오는 상품이 아라비아 반도로 집중될 수밖에 없없다. 자연히 그 중심지인 메카가 중계무역을 독점하면서 크게 번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호메트는 610년에 이슬람교를 창시했다. '이슬람'이란 아라비아말로 '신으로의 절대적 귀의'를 의미한다. 당시에는 부와 권력이 대상인(大商人)에게 편중된 것이었기 때문에 마호메트의 '알라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사회변혁을 통한 일종의 계급투쟁이었기 때문에 결국 메카에서 메디나(현재의 야슬리브)로 추방을 당하였다. 서기 622년 7월 16일의 이 사건을 '헤지라'라고 하며, 이것이 이슬람력(태음력)의 기원이다. 마호메트 사후,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후계자이며 신도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칼리프를 선출하고 그들의 지도하에서 대 정복사업을 하였는데 이를 지하드[聖戰]라 한다. 이슬람은 정복사업을 통해 급속한 속도로 세계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다. 상권 확대를 위한 정복전쟁 이슬람 군대가 동방에서 이란의 사산 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서방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영토인 이집트와 시리아를 점령함으로써 본격적인 지하드의 막이 올랐다. 한편 제4대 칼리프인 알리가 내분으로 암살을 당하니 서기 661년 무아위야(Muawiya)가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하는 우마이야 왕조를 세우고 인도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걸치는 땅을 정복하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4대 칼리프 알리의 암살을 계기로 이슬람 세계는 크게 시아파와 수니파로 분열되어 두 종파 사이의 갈등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시아파는 알리와 그의 자손만이 마호메트의 후계자로서의 정통 칼리프로 인정하는 반면에, 수니파는 이슬람교의 신도 누구나 자격만 갖추면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정복사업 이면에는 포교보다는 경제적 이익확대, 다시 말해서 상권 확대가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마호메트 시대의 아라비아 반도는 척박한 불모의 땅이었고, 북부를 지나는 풍요로운 실크로드 지역은 그리스도교의 비잔틴 제국과 조로아스터교의 사산 조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어 아랍상인들이 그 지역을 통과하려면 통행세 또는 높은 세금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이슬람은 아라비아를 통일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하면 화도 나고 지금까지 바친 세금이 아까워지기 시작하였다. 자기들이 직접 무력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지배하면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통행세라는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권 확대를 위한 정복사업 결과, 이슬람은 서방 그리스도교 국가의 통치 하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원주민을 해방시키는 존재가 되었으나 반면에 그 땅에 군림하고 있었던 그리스도교를 배척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나중에 십자군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8세기 전반에 이슬람 제국(사라센 제국)은 광대한 지역으로 확대되었는데, 특히 우마이야 왕조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이슬람의 영향권 아래 두었다. 이에 역대 스페인과 포르투갈 왕들은 이슬람으로부터의 국토회복 전쟁에 매달려야 했다. 이슬람 제국의 갈등과 분열 이슬람교는 아랍인에서 시작하여 조로아스터교의 이란인을 개종시키더니 투르크인(터키인) 등 많은 민족으로 확산되어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고 중세의 문명을 이끌어 나갔다. 661년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하는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왕국은 근 1세기 동안 세습적으로 칼리프를 계승하면서 활발한 통상과 문화적 융성시대를 맞이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인도에서 이베리아 반도까지 이슬람의 영향권 하에 두었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반대파가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마호메트 가문이 가장 불만이 많았다(암살당한 알리는 마호메트의 사위). 그들은 남 이라크를 거점으로 하여 마호메트의 조카인 아바스의 혈통을 이은 아바스가 중심이 되어 8세기 중반에 우마이야 왕조를 전복시키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다. 또한 수도를 바빌론이 융성하였던 메소포타미아에 '평안의 도읍지'라는 뜻인 바그다드로 옮기고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로 키워가면서 약 75년간에 걸쳐서 크게 번창하였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의 설화와 민담을 모은 아라비안나이트(아라비아 야화)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아바스 왕조의 제5대 칼리프인 하룬 알 라시드는 역대 칼리프 가운데 가장 걸출한 군주였다. 아무튼 당시 바그다드는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였고 사라센 대제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중동패권주의와도 연관이 있다. 비록 지금은 미군의 포로가 되어 재판을 받는 신세지만…. 8세기 초에 우마이야 왕조는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를 지나 이베리아 반도,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를 정복하고 그 여세를 몰아 인도 북서부까지 그들의 영향권 내에 두었다. 732년 이슬람 군대는 이베리아 반도의 게르만 국가인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계속 북상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을 침략하였으나 메로빙가의 궁재였던 샤를 마르텔에 의해서 격퇴되고 말았다. 패배한 이슬람군은 피레네 산맥의 남쪽으로 후퇴하였지만 서유럽의 세계는 커다란 위협을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아직 유럽 국가의 틀이 잡히지 않은데다가 프랑크 왕국도 국가로서의 틀이 완전히 여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우마이야 왕조가 망하고 아바스 왕조로 교체되자,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었던 잔존세력들은 코르도바 칼리프국을 세우고 이집트에는 카이로 칼리프국이 성립되어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의 후예인 파티마 왕조가 통치하였다. 한편 바그다드에 있었던 아바스 왕조도 10세기에서 11세기 중반까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는데, 아랍인들은 11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온 셀주크 투르크인에 의해서 페르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지배주체만 바뀌었을 뿐이다. 우마이야 왕조는 점령지의 주민들에게 일정한 토지세와 인두세를 부과하였다. 설령 그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더라도 면제해주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은 '코란이냐, 칼이냐' 즉 '이슬람교를 믿지 않으면 죽는다'고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 왜곡 과장된 말이다. 이슬람 군대가 파죽지세로 쳐들어오자 서방 그리스교 국가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한 말이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 다시 말해서 유대교나 그리스도교 신도들도 다 같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대우를 받아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이슬람교는 유대교의 토대 위에서 그리스도교적 요소를 기반으로 그들의 경전인 코란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로아스터교에서 개종을 한 이란 민족(페르시아)은 '세금도 내고 개종도 했는데 그럼 우린 뭐냐'면서 불만을 품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란인들의 불평불만을 선동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세력이 다름 아닌 우마이야 왕조에 비판적인 집단이었다. 특히 마호메트의 조카인 아바스의 혈통을 이은 아바스가(家)가 정권을 탈취하여 아바스 왕조가 세워졌는데,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었던 우마이야 왕조의 잔존세력들은 코르도바를 수도로 하는 후(後)우마이야 조를 세움에 따라 756년 이슬람 제국은 동·서로 분열되고 말았다. 새로운 지배자, 셀주크 투르크족 서기 751년에 세계사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아바스 왕조의 군대가 중앙아시아의 탈라스에서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는데, 이 때 포로로 잡힌 당나라 병사 가운데 제지술(製紙術)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는 곧 사마르칸트에 연행되어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해주었다. 중국으로부터 배운 제지기술은 훗날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유럽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서양인들도 동양의 선진문명에 감탄하여 사막을 가로지르는 동쪽 땅을 동경하게 되어 이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 이후 동양과의 교역에 더욱 열을 올리는 요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지리상의 대발견과 대항해시대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아바스 왕조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10세기에 들어와 이집트는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의 후예가 통치하였는데 파티마 왕조는 수도를 알렉산드리아에서 신도시 카이로로 옮김으로써 오늘날 이집트 공화국의 수도가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서기 946년에 이르자 이란의 시아파 군사정권인 부와이흐 조가 동 칼리프의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여 아라비아인의 아바스 왕조로부터 정교일치의 대권을 넘겨받았다. 이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옛 조국(사산 조 페르시아)을 멸망시킨 이슬람 세력에게 조상대대로 믿어오던 신앙(조로아스터교)까지 버리면서 개종했지만 찬밥신세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불만이 쌓여있던 터라 아바스 왕조의 쇠퇴를 틈타서 거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전체 이슬람인들의 정서를 고려해서 기존 아랍인 칼리프는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겨 두었다. 하지만 이란인 정권(부와이흐 조)도 11세기 중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 바그다드를 지배함으로써 십자군 전쟁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스승의 날과 관련하여 많은 부정적인 논의들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에 집단적으로 휴교하는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스승의 날을 아예 없애자든가, 학년 말인 2월로 옮기자는 의견 등이 집중적으로 제기되면서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스승의 날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스승의 날이 기타 여러 원인들로 인해 본질이 왜곡되면서 스승의 날의 존속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중국에서는 스승의 날이 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이 날만큼은 전국적으로 학생 교육에 전념하는 교사들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명실상부한 교사를 생각하는 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9월 10일을 우리의 스승의 날에 해당하는 ‘교사절(敎師節)’로 정해놓고 있다. 교사절은 중국의 교사법(敎師法) 6조에 명시되어 있는데, 교사들의 사회적인 지위를 한층 더 높이고, 교사의 업무를 사회에서 최고로 존경받고, 흠모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으로 만들며, 스승을 존중하고 가르침을 중시하며 지식을 존중하는 동시에 인재를 존중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자 법률에 교사절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의 날, 법에 명시 중국의 교사절은 1985년 제정된 것으로 1985년 1월 11일 국무원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심의를 제청하여 교사절을 만들도록 하였으며, 1985년 1월 21일 제6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9차 회의에서 동의를 얻어 매년 9월 10일을 교사절로 기념하도록 하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교사절이 되면 그동안 사회적인 관심이 소홀했던 교사들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이루어진다. 정부차원에서 모범교사들을 발굴하여 표창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사도의 길을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등의 국가적인 행사들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축하카드와 함께 꽃이나 정성이 담긴 선물 등을 선생님들에게 전하기도 하며, 국가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옛 스승을 찾아 스승의 은혜에 감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교사절에는 중국 교육에 공헌이 있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표창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교사들에 대한 장려제도는 ‘교사와 교육종사자 장려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데, 1998년에 제정된 이 규정에 의하면 오랜 기간 교육에 종사해 오면서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긴 교사나 교육종사자들에게 ‘전국우수교사’와 ‘전국우수교육종사자’의 칭호를 수여하며, 이들 중 특별한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국모범교사’와 ‘전국교육계통 선진종사자’라는 칭호가 부여된다. ‘전국모범교사’, ‘전국교육계통 선진종사자’와 ‘전국우수교사’, ‘전국우수교육종사자’는 3년마다 선발하여 교사절에 표창한다. 이들 교사들의 선발 정원은 해당 지역 교직원 총수의 1만분의 2 이내로 제한하며, 그 중 ‘전국모범교사’, ‘전국교육계통 선진종사자’는 해당 지역 교직원 총수의 10만분의 6 이내로 제한하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영예의 상을 수상하게 되는 교사들은 국무원 및 중국 중소학유아교사장려기금에서 제공하는 상금을 받게 되며, ‘전국모범교사’ 및 ‘전국교육계통 선진종사자’의 칭호를 받게 되는 사람들은 국가의 규정에 의해 성(省)급 노동 모범의 대우를 받게 된다. 특히 사립학교 교원으로서 모범교사에 선정된 사람들은 월급에서 우대를 받게 된다. 스승의 날에 대대적으로 표창하는 ‘전국모범교사’, ‘전국교육계통선진종사자’ 표창 이외에도 중국에서는 수업을 잘하는 교사나 집단에게 ‘교학성과표창’을 수여하여 교육종사자들로 하여금 교수·학습에 매진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 표창은 ‘교학성과장려조례’에 근거하여 수여되는 데 국가급과 성(省)급 표창으로 나뉘어 진다. 이 조례에 의하면 국가급 표창은 특등, 일등, 이등의 세 등급으로 나뉘며, 이들 수상자들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증서와 장려금이 지급된다. 교학성과표창을 받는 교사들은 직급 상승 및 봉급 인상에 있어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다. 수업을 특별히 잘하는 교사들에 주어지는 이 표창은 4년에 한 번씩 평가가 이루어진다. 국가가 스승존경 풍토 조성에 앞장 현재 중국에서는 9월 10일 교사절에 교사들에 대한 국가차원의 표창 외에도 국가차원에서 교사들의 사기 진작과 국민들에 대한 스승존경의 풍토 조성을 위한 홍보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일례로 작년 교사절의 경우 중국 국영방송인 CCTV에서는 ‘2005-중국의 초석’이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인 스승의 날 특집 방송을 했다. 교육부와 CCTV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 날 프로그램은 전국 1200만 명의 교사들에게 존경과 축복을 헌사하기 위해 이브닝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다양한 공연과 더불어 교사 탐방, 11명의 일선 교사들의 우수한 행적에 관한 이야기, 각종 기념행사 상황 등을 방송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교육과 교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중국에서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교사절의 열기와 정부의 교사에 대한 관심은 중국 정부의 교육 중시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난 20여 년간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중국정부는 향후 세계와의 경쟁 속에서 교육만이 중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교육개혁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교육개혁정책은 최근 들어 의무교육법 개정, 교육과정개혁, 교사자격제도 개혁, 빈곤지역 학생들에 대한 지원 강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같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하여 중국교육은 한 단계 발전하고 있다.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최근 호주 10대들의 가장 위험한 환경요소 가운데 ‘마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다. 즉, 학원폭력이나 학업 스트레스, 가정 문제, 이성 관계 고민 등 청소년들을 둘러싼 직간접적인 부정적 영향 가운데 약물 사용에 따른 것이 단연 으뜸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마약에 중독된 10대들의 연령층도 점차 낮아지고 있고 심지어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대는 일이 보도되는 지경이다. 호주 청소년들의 마약 복용률은 16~17세의 경우 약 20%, 18~19세의 경우 30% 선을 웃돌고 있어 이 수치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지적이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특히 12~15세 연령층에서는 14명당 한 명꼴로 불법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주위에서 보아도 자식이 마약을 하다가 죽었다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마치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사례처럼 흔하게 나돌고, 마약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과 학업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른 자녀 문제로 속을 끓이는 부모들이 한둘이 아니다. 자식 가진 부모들은 모이기만 하면 ‘마약만 안 해도 효도’라는 말을 할 정도로 호주 청소년들의 마약 복용문제는 가장 가까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와도 같은 요소이다. 그런 중에 지난달 초순 경, 10학년인 작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들려온 소식은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같은 학교 11학년(고 2) 여학생 세 명이 생일 파티를 하면서 마약을 복용하다가 한 학생이 절명을 했다는 것이었다. 접촉한 마약이 치사량에 이르렀는지, 아니면 그 학생의 체질로 인해 특별히 약물 부작용이 있었는지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지만, 말로만 들어오다 아이들이 그렇게 쉽사리 마약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 사건 전에도 학생들이 수업 중에 소위 ‘땡땡이’를 쳤을 경우 일차적으로 마약을 했는지 안 했는지부터 조사한다는 말이 있긴 했지만, 이번 일은 어린 학생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는 점에서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호주에서는 또래들 몇이 모이기만 하면 ‘마약을 하거나 적어도 한 번 정도는 해 봤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매스컴이나 학부형들, 심지어 당사자 아이들의 입을 통해 자연스레 들어왔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새삼 두려웠던 탓이다. 통계가 보여주듯이 호주 10대들 사이에는 그 나이에 보통 해보는 흡연 경험과 맞먹는 정도로 마약이 흔하게 돌고 우리 돈으로 3~4천 원 정도면 큰 어려움 없이 일정량의 약물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마약으로부터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부모와 학교 측의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약거래 또한 학생들끼리 음성적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지며 비밀스런 장소에서 직접 재배를 하거나 조제를 하는 일도 있어 그만큼 적발에 한계가 있다. 호주의 중·고등학생들 가운데는 약물 복용이 사유가 되어 정학을 맞거나 심지어 퇴학을 당하는 경우가 다른 사유에 비해 월등히 많고,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후에도 옛 급우들과 접촉하면서 심할 경우 마약 거래 책으로 나서는 일까지 있어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몇 주 전만 해도 뉴사우스 웨일즈 주의 한 중·고등학교에서 마리화나를 피운 학생 20명에게 무더기로 정학처분을 내리고 이들 중 상습 복용 여부에 따라 퇴학도 고려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학교마다 학생들의 마약 접촉에 대해 강경대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단속은 어디까지나 ‘학내 마약 불용인’에 근거할 뿐, 앞서도 말했듯이 마약 사용과 관련하여 제적된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계속 하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하는 형편이다. 실상 뉴사우스웨일스 주는 공립학교를 중심으로 교과과정 중에 마약 방지 프로그램이 운용되고 있고 정기적으로 외부 전문가를 초빙, 학생들에게 마약과 관련한 폐해를 경고하고 있지만 실상 학내 마약 반입 근절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4월 퀸즐랜드 주에서는 점심시간에 환각작용을 불러일으키는 향정신성 약물을 집단으로 과다 복용한 남녀 중학생들 15명이 구역질과 심장박동 증가 등의 부작용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학교 측과 학부모들은 의사의 처방전을 통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치료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약물이 교정에서 다량 유통되고 있었던 사실에 충격과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퀸즐랜드주 교육부는 이후 모든 학교에 학생들이 가지고 등교하는 약품에 대한 관리 정책을 도입했지만 실효성 여부에 대해서는 역시 미지수이다. 이처럼 학교 측과 학부모들의 염려가 극에 달해있는 상황에서 지난달 시드니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공립 고등학교의 한 임시 교사가 학생에게 마약을 공급한 사실이 드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은 마치 내부 소행자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처럼, 학부모들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했으며 학내 마약퇴치에 전력을 쏟고 있던 교육부 또한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더욱 믿기지 않는 일은 부모들 중에 자식에게 아예 마약을 대주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식의 마약 중독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마약을 구하기 위해 절도까지 행하게 될까봐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부모가 나서서 마약을 구입해 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마약 중독 자녀에 대한 그런 식의 대응이 더욱 깊은 중독으로 몰고 갈 것은 자명하다.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부모들의 무기력한 항변에 연민이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지만 자식들이 마약에 손을 대고 중독 지경에 이른 암울한 현실을 통과해 본 경험자들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손을 내젓는다. 이들에 따르면 아이들이 마약을 시작한 것을 알아차린 시점에서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하며, 꾸준한 재활치료를 통해 다시 정상생활을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자녀들이 한번 마약을 접한 것에 대해 지나친 반응을 하는 것을 자제할 것도 권하고 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때에 부모들의 호된 질책을 받게 되면 수치심과 죄의식이 깊어져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더욱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조기 영어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한 달 수업료 100만 원이 넘는 영어 유치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어린이 영어 과외, 해외연수가 유행이다. 아이의 조기 영어교육을 위해 초등학생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발음을 잘하게 하려고 혀 수술까지 한다고 한다. 조기 영어교육은 언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어려서 말을 배워야지, 이 시기가 지나면 '기회의 창'이 닫혀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어른이 된 뒤에도 영어에 많이 노출되고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얼마든지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뇌의 불균등 성장이 '결정적 시기' 좌우 언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가설은 1967년 미국의 언어학자 에릭 레너버그 교수가 〈언어의 생물학적 기초〉란 책에서 처음 내놓았다. 그는 인간의 언어 습득은 뇌나 발성 기관의 발달 특성 때문에 사춘기가 지나면 어렵다고 주장했다. 유명한 언어학자인 매사추세츠 공대의 스티븐 핑커 교수는 6세부터 사춘기까지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결정적 시기라고 〈언어 본능〉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왜 언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가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뇌가 불균등 성장을 한다는 데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폴 톰슨 교수는 핵자기공명영상장치를 이용해 3살부터 15살까지 어린이 뇌의 성장 과정을 4년 동안 추적해 뇌 성장 지도를 2000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는 3~6세 사이에는 전두엽이 발달하고 6~13세까지는 두뇌의 성장이 앞부분에서 점차 언어를 관장하는 뒷부분으로 옮겨간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두뇌의 각 부분이 골고루 균등하게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는 틀린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톰슨 교수는 6∼13세가 외국어를 배우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기간 동안 뇌 언어 영역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13세 이후에는 뇌 언어 영역의 발달이 급속히 둔화된다. 그렇다고 톰슨 교수가 사춘기 이후에는 외국어를 배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 이전에 배워야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춘기 이전에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뇌에 손상을 입은 경우 이를 다른 영역이 메워 말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에 언어 영역을 다치면 말을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톰슨 교수는 또한 13~15세까지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뇌 회로가 50% 가량 삭제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따라서 운동신경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악기나 운동도 그 이전에 교육이 이루어져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선천적으로 귀머거리가 돼 말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은 사인 언어인 수화도 배우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캐나다 맥길 대학 레이첼 메이베리 교수는 나이가 어렸을 적에 귀머거리가 된 사람일수록 나중에 수화를 배우는 능력도 떨어진다고 2002년에 발표했다. 어렸을 적에 언어를 배우면 언어중추가 발달하지만 귀머거리여서 말을 배우지 못하면 언어 학습과 관련된 뇌 영역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나중에 다른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어 습득은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져 결정적 가설을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심리학, 언어학, 교육학 분야에서 만만치 않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 신경과학자인 앙겔라 프리데리치 박사는 2001년에 결정적 시기 가설을 부정하는 연구 결과를 '미국과학아카데미 회보'에 발표했다. 그는 객관적 분석을 위해 '브론칸토'라는 인공 언어를 가르치고 뇌의 활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뇌는 인공 언어를 처리할 때나 모국어를 할 때나 똑같은 활동 패턴을 보였다. 이는 '결정적 시기 가설'을 신봉하는 학자들이 모국어와 나중에 배우는 외국어는 뇌에서 다른 방식으로 처리된다고 주장해 왔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나이가 들면 외국어를 배우기 어렵다는 주장은 외국어와 모국어는 뇌에서 서로 다르게 처리된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 교육학자 겐지 하쿠다 교수는 인구 센서스를 활용해 중국과 스페인계 이민자의 이민 시기별 영어 능력을 조사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일정 나이가 지나 영어 능력이 뚝 떨어지는 현상은 없었다. 그는 "결정적 시기 가설은 근거가 희박하며, 단지 나이가 들수록 완만하게 언어 습득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 뿐이다"고 말한다. 캐나다 맥길 대학 프레드 기니시 교수가 다른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 조사에서는 놀랍게도 어른이 된 뒤 이민한 사람의 3분의 1은 어려서 이민한 사람 또는 미국 본토인과 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그는 외국어 습득 능력은 나이 외에도 가정의 경제력, 인지 능력, 교육 정도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밝혔다. 뉴욕 시립대학 지셀라 시아 교수는 아예 '결정적 시기 가설' 대신에 '주요 사용 언어 교체 가설'을 주장한다. 이민 온 어린이가 어른보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어린이의 경우 학교에서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되는 반면 어른은 가정에서 모국어를 계속 쓰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꾸준한 노력만이 외국어 익히는 첩경 〈느림보 학습법〉을 펴낸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언어 능력은 듣기, 쓰기, 말하기, 독해, 문법 등 여러 영역에 걸친 종합적인 능력으로, 각 영역의 발달 시기는 나이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발음 능력은 어려서 발달한다. 성인이 된 한국인 또는 일본인이 영어의 'L'과 'R' 발음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어려서 영어를 배운 어린이들은 발음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잘 구별한다. 이에 반해 단어 능력은 뇌의 측두엽이 발달하는 초등학교 때, 언어의 논리성은 초등학교 2∼3학년이 넘어야 터득한다고 한다. 특히 6세 미만에 아이의 인성과 사회성 발달이 대부분 이루어지는데, 이때 아이에게 영어만 강요하면 주체성에 혼란이 생겨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경고다. 외국에 가지 않고 순수하게 국내에서만 영어를 배운 토종 영어 프로그램 진행자 이보영 씨도 영어를 어려서 가르치면 노력하지 않고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라고 단언한다. 이씨는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분명해야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른들 가운데서도 해외 근무 등 뚜렷한 목적이 생겨 나중에 공부를 한 사람 가운데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음을 그 사례로 든다. 특히 어른은 단어, 정보처리 능력 등 선행 지식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한다. 어른은 CNN 방송의 문장을 몇 개의 키워드만 들어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린이는 그렇지 못하다고 이 씨는 설명한다. 물론 언어는 조기 교육이 좋은 것이 사실이다. 사춘기 이전에 외국어를 배워야 말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찍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난 포기했어"하고 그만두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때가 되면 그리고 필요하면 외국어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뇌가 가진 능력의 대부분을 활용하지 못하고 무덤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커서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정작 가장 큰 장애물은 '꾸준히' 노력하지도 않고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서울 J초의 A교사는 학교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온다. 칭찬도 해보고 야단도 쳐봤지만 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 반의 권동윤(12·가명) 학생 때문이다.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권 군은 A교사 반의 골칫거리. 본인도 수업에 집중을 못할뿐더러 시도 때도 없이 앞 뒤 학생들까지 방해해 수업 분위기를 흐려놓기 일쑤다. A 교사는 “매년 반에 말 안 듣는 아이들이 꼭 있지만 동윤이한테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면서 “도무지 주의가 산만해서 알아듣게 얘길 해도 그때 뿐”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수업 한 시간을 진행하면서 보통 7~8번이 넘게 주의를 줘야할 만큼 신경을 쓰다 보니 이제는 그냥 내버려두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ADHD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중학교 1학년 이한성(14·가명)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왕따였고 학교생활이 힘들었다. 이 군의 가장 큰 문제는 분노조절이 안 되는 것. 친구들의 사소한 장난에도 화 조절을 못해 손이 돌아갈 정도였고, 한 단계 더 나아가 공격적으로 변하게 됐다. 이 군은 담임교사의 권유로 최근 ADHD 치료를 시작했다. 학기 초부터 이 군을 유심히 지켜본 담임교사가 학부모에게 치료를 권유한 것. 이 군의 경우 병원에서 약물과 뇌파 훈련 치료를 받은 후 현재는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고 성적까지 오른 상태. 이 군에게 치료를 권한 담임교사는 자신의 자녀가 ADHD를 갖고 있어 쉽게 학생을 관찰한 후 증상을 알아볼 수 있었다. 뇌에 악영향 미치는 환경 늘어나 ADHD 증가 교사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학생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모든 뇌를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기능을 상실해 충동적·무절제·과다행동이 나타나면서 소근육 협응이 안 되고, 학습장애, 정서가 불안정한 질병이다. 한마디로 자기조절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증상이 있는 학생들은 대개 학교 성적이 떨어지고, 특정한 학습의 장애가 심하며, 성적을 올리는 능력이 부족하고, 언어 및 회화의 문제가 있으며, 운동을 조절하는 타이밍이 늦다. 이런 학생들은 교실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정학 또는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문제는 ADHD 아동이 점차 증가 하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 학령기 아동의 5%정도가 ADHD라고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한 반에 두 명 정도가 ADHD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 등 집중력을 떨어트리고, 환경오염과 중금속, 화학성분 등 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ADHD가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이 선천적으로 발생한다.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뇌 발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학생 보다는 남학생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여자아이들은 ADHD라기 보다는 주의력이나 집중조절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ADHD 발견의 적기는 초등학교 1학년(7세) 때. 그 이전에는 발달단계 불균형으로 ADHD 진단이 잘못 판단될 수 있다. 학령기 아동의 5%, 한 반에 2~3명 전문가들은 ADHD를 앓고 있는 학생들은 교사가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ADHD는 주로 단체생활에서 구분될 수 있는데 10분만 지나도 자세가 흐트러진다거나, 다른 수업에 방해가 되는 등 또래에 비해 현저히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일단 집중력이 떨어지는 등 증상이 의심되면 병원 치료를 권유하는 것이 가장 좋다. 대부분의 경우 약물치료만으로도 상태가 크게 호전될 수 있으며 여기에 상태에 따라 뇌파훈련과 함께 식이요법 등의 비약물 치료도 받게 된다. 또 교사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마인드메디클리닉의 박형배 박사(정신과 전문의)는 교사의 행동에 따라 ADHD 성향을 가지고 있는 학생의 생활환경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박 박사는 “교사가 적극적으로 돕고자 한다면 상태도 호전되고, 자연스럽게 반에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ADHD인 것을 알게 되면 바로 낙인찍어 버리는 교사도 있다. 아이에게 선입관을 가지고 바로 그 아이를 고립시켜 버리는 것인데 이것은 아이의 상태를 훨씬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교사 가까이에 앉히고 자주 시선 마주쳐 줘야 교사는 일단 그 학생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고 인식해야한다. ADHD를 가지고 있는 학생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자신이 혼란 속에 빠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입장에서 도와주려고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 박사는 “되도록이면 교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게 하고 수업 중에 시선을 자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흐트러지는 집중력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서 “될 수 있는 대로 학교에서는 나쁜 행동이 나타나지 않게 조절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아도 단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꼼꼼하고 섬세하게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이기적이거나 계산적이지 않다. 또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열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직관력이 뛰어나고 창조적이며 헌신적이다. 나쁜 아이로만 보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비생산적인 과잉행동을 생산적인 과잉행동으로 바꿔준다면 또 훌륭한 인재로 자라날 것이라는 것이 전문의의 설명이다. | 이상미 smlee24@kfta.or.kr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교사는 경이로운 직업이다! 학생이나 학부모 심지어는 일부 교사조차도 교직을 단순한 책임과 의무로 점철된 일종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이러한 외침은 다소 생뚱맞은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6년 스페인의 작은 마을 가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는 진정한 교사의 길이 얼마나 경이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삶인가를 작지만 분명한 어조로 보여준다. 평등한 만남이 사람을 만들어 병약하여 조금 늦게 학교에 진학하게 된 몬초는 걱정이 많다. 형의 말에 의하면 학교는 엄한 선생님이 매와 벌로 학생들을 다스리는 무시무시한 곳이기 때문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첫 등굣길에 오른 몬초는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아이들의 장난과 담임을 맡은 그레고리오 선생의 농담 섞인 호칭을 야단치는 것으로 오해해 그만 바지에 오줌을 싸고 도망치고 만다. 그날 밤 몬초의 부모는 그레고리오 선생의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는다. 처음 학교에 온 아이의 예민한 마음을 살피지 못해 상처를 주었다면서 몬초에게 직접 사과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다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 교사는 정색을 하고 몬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 순간 여덟 살 아이는 '사람'이 된다. 학생을 훈계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교사 혹은 부모를 포함한 대개의 어른들은 여러모로 다듬어지지 않은 미성숙한 상태의 아이들을 대할 때, 보다 효율적인 가르침을 위해 '명령'과 '지시'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게 된다. 해묵은 세대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고질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의 내용과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이의 관계가 상하의 엄격한 위계(位階) 안에 놓이게 될 때 '억압'은 피치 못할 상황이 되고, 이에 대해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이유 없는 반항'은 필연적인 것이 되고 만다. 교사와 학생 상호간에 맺어진 수평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는 이러한 소모적인 긴장을 극복하는 근본적인 대안이 된다. 몬초의 어린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진지한 태도와 사려 깊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 그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으로 존중하고자 애쓰는 그레고리오 선생의 모습은 그런 평등한 만남의 첫 걸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지 잘 보여준다. 그렇게 집이나 거리에서 한 번도 그런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던 아이, 몬초는 그렇게 하나의 존엄한 인격으로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신세계로 이끄는 안내자, 교사 배움을 처음 시작하는 아이의 눈에 비친 선생님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그레고리오 선생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자연은 상상도 못할 지식의 보고야. 너희들은 개미가 가축을 길러서 우유와 당분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니? 또 수백만 년 전에 이미 거미가 잠수함을 발명했고, 무엇보다 나비에게 코끼리 코처럼 길고 시계 스프링처럼 돌돌 말려있는 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몬초의 얼굴은 신비로운 '앎'의 세계에 대한 놀라움으로 가득 찬다. 이를 통해 영화는 묻고 답한다. 학생에게 있어 교사란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바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알지 못했던 수(數)와 언어, 자연과 과학 그리고 시와 예술이라는 낯선 신천지로의 여행을 인도하는 특별한 안내자의 자리로 부름은 받은 존재가 바로 교사인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있어 '공부'라는 단어는 학창시절 내내 늘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요, 언제나 벗어 던지고 싶던 인생의 사슬 같은 부담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러한 무거움이 불현듯 새털 같은 가벼움을 넘어 신나는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던 짧지만 찬란했던 순간들은 분명 존재했다. 대체 무엇이 이런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 수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결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선생님'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가 단순한 의무와 책임의 영역이 아니라 가슴 설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충만한 것임을 확신하고, 이를 체감할 수 있도록 최선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열정적인 교사와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학생이 만나는 순간, '앎'의 경이로움은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다. 마음 속 씨앗으로 희망 싹 틔워 영화의 제목이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메타포(은유)로서 '마리포사'는 스페인어로 '나비'라는 뜻이다. 나비는 제 자리에 다소곳이 있을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꽃들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꿀을 빨고 꽃가루를 날라 결국 꽃이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존재이다.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오 선생은 어린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네들 가슴 속에 수많은 질문과 대답의 씨앗을 뿌리면서 언젠가 아이들의 가슴 속에 진정한 자유에의 열망과 의지가 싹트고 열매 맺을 수 있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이런 그레고리오의 소망은 보수우익의 쿠데타에 의한 스페인 내전의 발발로 말미암아 파국적인 결말을 맞는다. 마을은 이내 파시즘의 광풍에 휩쓸리고 애써 가꾸어 놓았던 민주주의의 싹은 자라기도 전에 짓밟히고 만 것이다. 결국 그간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던 동네 사람들은 하나, 둘 체포되어 끌려가게 되고 은퇴한 그레고리오 선생 역시 마찬가지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강제로 마을 광장에 모이게 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끌려가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매도하고, 몬초의 부모 역시 눈물을 머금고 함께 구호를 외친다. 이 모든 광경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보고 있던 몬초는 어느덧 떠나는 그레고리오 선생을 쫓아 뛰어가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어른들처럼 욕설을 외치기 시작한다. 한 평생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인격적인 교육을 펼쳐갔던 그레고리오 선생의 비극적 파멸을 끝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 가 싶은 바로 그 순간, 몬초는 욕설 후 몇 마디를 더 외친다. "틸로노린코! 프로보시스!" 그렇다. 어린 몬초는 그레고리오 선생이 말한 것과 같은 '증오'와 '잔인함'으로 가득 찬 지옥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어른들의 세계에 쉽게 동화되었지만 동시에 그의 가슴 속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귀한 난초를 바치는 새인 '틸로노린코'와 나비의 긴 혀를 뜻하는 '프로보시스'의 놀라움이 여전히 생생한 감동으로 남아 있었다. 영화는 몬초가 잔혹한 어른들의 삶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그레고리오 선생의 인격적인 삶을 따라 살아갈 것인지 결론지어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 마지막 순간 오직 자신과 그레고리오 선생만이 알 수 있는 암호와 같은 말들을 외치는 몬초의 모습 속에서 관객들은 '프로보시스', 곧 실낱같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경이로운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영화 는 그레고리오 선생 역을 맡은 배우 '페르난도 페르난 고메즈'의 기품 있는 연기와 아름다운 시골 마을의 풍광을 섬세한 시각으로 담아낸 영상, 그리고 인생의 빛과 어둠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준 구성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아 스페인 영화비평가 협회 상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유수한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신학기의 시작과 함께 시간을 내어 넉넉한 여백의 미가 충만한 영화 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김원석 | 협성대 교수·경영학, T.E.T.트레이너 교사가 리더라면, ‘훌륭한 교사는 과연 태어나는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개발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리더십 연구 결과에 의하면, 리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후천적으로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렇다면 리더십 개발의 방향과 내용은 어떠한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쉽게 이 대답을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지난 100년간의 리더십 연구 결과를 간단히 요약하면, 자신의 업무지식과 능력, 그리고 대인관계 능력이 모두 갖춘 사람이 훌륭한 리더라고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업무를 잘 처리하는 능력과 인간관계를 잘하는 능력은 각각 X축과 Y축의 역할을 한다. 이상적인 리더는 이 두 축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는 리더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교사란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교사는 한마디로 말하면, 잘 가르치는 교사이다. 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는 과목에서 남보다 뒤처진다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얼마 전 신문보도에 의하면, 일류대학교 이공대 교수들 중에서 아직도 카드 펀칭과 코볼 언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학생들로부터 원성을 샀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같은 강의노트를 들고 10년 이상 가르친다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 따라서 훌륭한 교사가 되려면 자기가 가르치는 분야의 전문지식을 따라잡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학문의 발전 속도나 소멸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모든 분야를 쫓아간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연구, 개척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그러나 훌륭한 교사는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라고 말한 사람은 의 저자 토마스 고든 박사이다. 고든 박사는 교사와 학생들 간의 관계의 질을 높이는 것이 교사가 잘 가르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쿠제스와 포스너는 리더십이란 ‘인간관계’라고 말하였다. 현대 리더십의 대체적인 경향은 리더십을 인간관계, 즉 대인관계 리더십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그렇다고 지식이나 실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식이나 실력이 비슷하다면, 차이는 대인관계 능력에서 나온다.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대인관계 능력 그렇다면 이 같은 훌륭한 교사는 타고나는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개발되는가? 리더십 행동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리더십은 얼마든지 후천적으로 개발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통해 밝혀진 대로 관계지향적인 행동과 과업지향적인 행동이 모두 탁월한 리더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업지향적인 리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어느 곳에서나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에서도 모든 연수교육과정이 교과목을 가르치는 업무관련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학생을 어떻게 지도하고 관계를 맺을 것인가’하는 부분은 교사들의 자기개발로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대인관계 능력이야말로 교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행동 중의 하나이다. 대인관계 능력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가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워나갈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이 항상 올바른 지식을 주는 것은 아니다. 대인관계 능력을 과학적으로 배양하는 방법은 기존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연습하여 실제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몸으로 체득하여야 한다. 우리는 가르치는 일만큼 학생과의 관계의 질이 교실의 분위기를 좌우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는 습관 1, 2, 3에 해당하는 성숙한 리더가 되기 위한 자기개발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습관 4, 5, 6에 해당하는 대인관계 협동추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의 균형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성공하는 리더가 가져야 할 중요한 습관이라는 것이다. 코비 박사의 이론과 토마스 고든 박사의 이론을 비교한다면, 고든 박사는 지난 45년간 습관 4, 5, 6에 해당되는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는 상호배타적인 이론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상생의 이론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같은 기술들을 습득하여 습관화할 수 있을까? 첫째, 대인관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빠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정도로 그 필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들은 이를 만든 수준의 사고로는 절대로 풀지 못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였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려우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생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로 상담실을 찾아와서 상담을 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하는, 적극적이고 용감한 학생들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친구들과 상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교사나 부모와 상담한다고 응답하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교사들이 간단한 상담 원리나 대인관계 기술을 습득하여 적절히 대처하여야 한다. 교사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실제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을 길러나가지만, 대부분의 경우 권위주의적인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다. 학생들은 변화하고 있는데 지시, 명령 일변도의 권위주의적인 행동만으로는 관계의 질을 향상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향이 더 크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둘째,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서적들을 찾아서 읽는 방법이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이 책, 저 책을 찾아서 관련된 이론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실제로 책을 찾아서 읽는 것만큼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얻는 좋은 방법은 없다. 독서를 통한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야말로 가장 값싸게 얻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항상 좋은 책을 바로 찾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한계점이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의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적합한 책을 찾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보자라면 적합한 책을 찾는 일이야말로 난제 중의 난제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은 주변의 선배교사들에게 묻는 방법이다. 묻다 보면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놀라는 경우가 흔히 있다. 주변에 의외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고 전문적인 식견과 탁월한 판단력을 보면서 놀라게 된다. 한편 자신은 지금까지 ‘왜 이 부분을 몰랐을까?’라고 자문하면서 자신의 지식과 정보가 보잘 것 없다는 것 때문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고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나는 다른 분야에 시간을 더 많이 썼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론만 읊지 말고 훈련을 받아라 셋째, 책을 찾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필요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필자는 그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대인관계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과 훈련을 구분하는 일은 교육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이론이 아닌 실제 연습을 통해 마치 탁구나 테니스, 혹은 골프를 배우듯이 대인관계 기술을 습득하기 위하여 집중적인 교육훈련과정에 참여하여 직접 훈련을 받는 일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어떤 운동이든, 기본기가 중요하듯이 가장 기본적인 기술을 잘 배워야 한다. 필자가 여러 훈련과정을 통해 현재 1000명이 넘는 교사역할훈련 과정의 수료자들을 지난 1년 동안 배출하였다. 참가자들이 훈련이 끝난 다음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서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적극적 경청, 나-메시지 등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하게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이제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훈련과정을 통해 인식의 전환만 이루어져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러한 기술들은 습관화할 정도로 체득하면 날마다 경험을 통해 기술사용의 빈도나 숙련도가 늘어나고, 그것을 통해 관계의 질이 높아져서 결국 우리 사회를 밝고 좋은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하기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를 가르쳤던 미국의 트레이너들 중에는 대학교수직을 포기하고 일생 동안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을 훈련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분들도 있다. 그 분 말씀이 본인은 자신의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부관계나 부모자녀관계 등에서 관계가 깨지는 일들이 흔히 일어나는데 아주 간단한 몇 가지 기술을 몰라서 혹은 사용할 줄 몰라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고든 박사 역시 자기의 이론을 전파하기 위하여 일찍 시카고대의 교수직을 포기하고 훈련기관을 만들어 운영하지 않았던가? 3일 혹은 4일간의 집중코스에 시간을 참가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기본기술을 몸에 익히는 지름길이다. 넷째, 훈련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지속적으로 기술사용을 연습하여야 한다. 필자가 배웠던 트레이너 중의 한 사람은 우리가 부딪히는 모든 상황이 대인관계 기술을 사용할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필자 역시 이 말에 동의하면서 가능한 한 기술사용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필자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기술사용을 극대화 할 것인가?’라는데 있다. 대인관계 기술은 오랜 연습을 통해 체득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사용을 많이 할수록 유리하다. 연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기술사용을 위한 일지를 작성하는 일이다. 매일 일기를 쓰듯이 ‘T.E.T. 저널’을 작성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번거롭고 부자연스럽지만 한 달 정도만 열심히 작성하면서 자신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해나간다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르면 더 이상 저널을 작성하지 않아도 스스로 실천에 옮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일정 기간마다 자신의 기술을 평가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인관계 전문가를 고용하여 코칭을 받으면서 기술 연마를 하면서 주기적으로 자신이 정확히, 그리고 적절하게 기술사용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코치는 운동선수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알지만, 요즘은 대인관계 전문 코치들도 많이 활약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늦어도 2008년 9월까지 서울시내 모든 초등ㆍ중학교에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가 배치된다. 서울시 교육청은 올해 초등학교 100곳과 중학교 100곳 등 모두 200곳에 원어민 영어보조 교사를 배치하는 등 2008년 9월까지 총 920명(지방자치단체 지원 원어민 교사 포함)을 채용하고 모든 초등ㆍ중학교에 근무시키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또 올해 공립고교 8곳에 중국어 원어민 보조교사를 배치키로 했다. 이들은 교육여건이 열악한 강북지역 고교에 우선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시교육청은 내년에는 올해의 2배 수준인 초등학교 200곳과 중학교 200곳 등 총 400곳에 원어민 영어교사를 배치할 계획이다. 종전에는 일부 학교만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이나 자체 재원을 통해 원어민 영어교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간 교육 불평등이 발생하고 무자격 교사가 채용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시교육청은 우수한 원어민 교사를 확보하기 위해 단계적 서류 심사와 심층 면접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 모두 200명(재계약 포함)을 선발, 1일자로 시내학교에 배치했다. 이들은 주로 교육여건이 좋지 않은 학교에 우선적으로 배치됐다. 이로써 서울지역의 경우에는 지자체나 학교 자체적으로 채용한 인원 등을 포함해 모두 500여명의 영어 원어민 강사가 활동하게 된다. 서울시 교육청이 이번에 채용한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 200명은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호주 등 영어 사용국가 출신들로 연령층은 20∼30대로 구성돼 있다. 특히 교사자격이나 영어교육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주류여서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영어교육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 교육청은 학교 배치전 원어민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와 기초 한국어 등을 교육하고 매년 1차례 원어민 영어교사 워크숍을 마련, 지속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들은 정규수업 시간에 국내 영어교사들과 협력 수업을 실시하고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과 초ㆍ중학생 영어체험캠프, 지역별 교사연수 등에 참여하게 된다. 시교육청은 이와 함께 일선 학교 영어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 교육연수원 등에도 원어민 영어교사를 배치하기로 했다. 시교육청은 또 각 지역청별로 초등ㆍ중학생 영어체험 캠프도 적극 활성화하기로 했으며 영어교사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2007년부터 3년마다 직무연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윷놀이용 카펫을 중심으로 어린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빙 둘러 앉았다. 학생 대 교직원간 윷놀이를 하고 있다. 1학년 꼬마에서부터 6학년 어린이들까지 10명의 학생과 교직원 10명이다. 생각보다 윷놀이에 대한 놀이 방법을 잘 모르는 어린이가 많았다. 던지는 방법이나 말 쓰는 규칙 등을 잘 모르고 있었다. 1~2학년 학생들은 모나 윷이 나와 모두가 박수를 치며 좋아해도 정작 본인은 무슨 영문인 줄도 모를 만큼 윷놀이를 처음 하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넓은 체육관 마루 바닥에는 3개조로 나뉘어 60여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윷놀이를 하고 있다. 윷놀이를 시작하기 전에는 청백 게임을 하였다. 각 팀에는 교직원과 학생들 30여 명씩이 한 편이 되어 각종 게임을 하였다. 학생들과 교직원 1:1 짝꿍끼리 벌이는 각종 경기는 그야말로 웃음바다였다. 교장선생님과 어깨동무를 하고 2인3각으로 달리는 1학년 학생의 모습이 코끼리에 올라 탄 어린이의 모습처럼 언밸런스를 이루어 우스꽝스러웠다. 고목나무에 매미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발을 맞추지 못해 뒤뚱거리던 여선생님은 어린 학생을 안고 넘어지기도 했다. 고학년 어린이는 자기와 비슷한 키의 짝꿍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발을 맞추면서 능란한 솜씨로 사뿐사뿐 잘도 달렸다. 어떤 남선생님은 아예 1학년 어린이를 한 손으로 옆구리에 끼고 달리기도 하였다. 원평초등학교(교장 유주영)는 지난 4월부터 ‘교육공동체’가 함께하는 멘토링을 운영하고 있다. 전교직원과 학교운영위원, 녹색어머니회 임원 등 40명의 멘토가 결손가정, 조손가정,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 자녀와 학습부진아인 멘티와 1:1 결연관계를 맺어 멘토링을 하고 있다. 멘토는 멘티에게 개별상담, 집단상담, 진로탐색, 부진학습 보충지도 등의 역할을 하여 자긍심을 갖게 하고, 재능 및 소질 계발의 가능성을 인식시켜주며, 따뜻한 정을 나누어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하게 하고, 정서를 순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잠재적인 문제행동 개연성을 차단하고 바른 생활 습관의 형성을 위해 수시로 대화를 하며 쪽지나 이메일에 의한 의사소통의 기회를 갖는다. 주1회 이상 개별상담을 하고 월1회 정도의 집단생활 체험의 기회를 제공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키고 있다. 오늘은 금년 들어 세 번째 집단상담 및 집단활동을 하는 날이다. 짝꿍이 된지 5개월이나 지났으며 의도적인 멘토링 운영으로 정다운 짝꿍 관계가 형성되어 처음의 어색하고 계면쩍어 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활짝 웃으면서 떠들고 민첩한 동작으로 자신감 넘치는 게임을 하는 어린이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게임이 끝나고 준비한 다과를 먹을 때 모와 윷이 많이 나와 많은 박수를 받았던 2학년 어린이는 “선생님, 너무 재미있어요. 윷놀이 더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젠 윷놀이를 잘 할 줄 안다는 듯이…… 선생님과 짝꿍이 되어 게임을 한 어린이들의 가슴속에 인간적인 애정과 신뢰가 쌓이고 긍정적인 자기 존중의식이 커져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생활습관이 형성되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오늘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장실에서 정년퇴임으로 떠나는 강수남(姜秀男 .62) 교장과 새로 부임하는 김영호(金永鎬.59) 교장이 만났다. 선배 교장은 후임 교장을 따뜻한 사랑으로 맞이하고 후임 교장은 선배 교장의 가르침을 받을 자세가 단단히 되어 있다. 선배를 대하는 예우가 깍듯하다. 학교 회계와 자산에 대한 공식적인 인계인수는 1주일 이내에 이루어지지만 오늘 만남은 보이지 않는 '교육 사명감'에 대한 인계인수이기에 더욱 뜻이 깊다. 이 인계인수가 제대로 될 때 교육은 연속성을 띄고 일관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떠나는 교장은 교직원의 구성, 학교경영 상의 유의점, 학생 생활지도면, 본교의 신입생 선호도, 운동부 운영 관계, 교직원 복지 등 학교의 현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개선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알려 주고 당부를 한다. 후임 교장은 선배 교장의 말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귀담아 듣는다. 학교 실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임자이기에 그 분의 말씀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 학교경영의 지침이 되는 귀한 말씀이다. 인생 선배, 교직 선배, 교장 선배의 말씀은 후배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교직 생활의 산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떠나는 교장은 자기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후배 교장이 완성시켜 주길 바란다. 후배 교장은 선배 교장의 말씀을 듣고 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점검하고 '교육 사명감'을 다시 한번 충전한다. 오늘, 신구 교장의 만남. 정말 뜻 깊은 만남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9일 장애인의 교육권을 획기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특수교육진흥법 개정안을 마련, 공청회 등을 거쳐 9월 중 입법예고한 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는대로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특수교육지원대상인 장애학생이 일반학급에 통합교육을 받기를 원할 경우 특수교육운영위에서 배정한 장애학생을 학교측이 거부하면 학교장을 1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규정이 강화된다는 내용이다. 나는 특수교육이 절실한 아동과 함께 살면서 우울증에 가까운 마음의 병을 앓으며 1학기를 보냈다. 학교를 옮겨간 곳에서 처음으로 1학년을 맡던 날, 입학식 내내 한 아이를 안고 어르며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1학기 119일 동안은 정말 시행착오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통상적으로 장애아동이 있는 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있고 특수교사가 있어서 하루 1, 2시간 정도는 일반학급에서 생활하고 나머지 시간은 특수학급에서 따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반학급에서 데리고 사는 어려움을 덜 느낀다. 그것도 18명의 1학년 아동들이 학교생활에 처음 적응하는 시기인데 천방지축 제맘대로인 장애아동과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누나의 하교 시간까지) 살아야 하는 생활은 나의 교직생활을 통째로 흔들었다. 그 아이만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커녕, 다른 아이들의 교육과정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며 생활지도와 교육과정 운영의 기본마저 흔들렸던 1학기의 삶은 다시 또 2학기에 시작해야 하는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물론 장애아동이 일반학급 아동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대명제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며 공동체 정신을 기르는 데에는 통합교육만큼 좋은 프로그램이 없기때문이다. 문제는 통합교육의 전제 조건이 수반되지 않은 채 나처럼 적지 않은 일반학급 아동과 함께 모든 학교생활을 수행하는 경우이다. 다행히 우리 반 학부모들은 장애 아동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내놓고 불만을 터뜨리기보다 동정하는 편이 더 많아서 다행이다. 통합교육을 위해서는 장애아동만을 위한 프로그램과 인력이 필연적으로 제공되어야 원만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1학기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만큼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를 주저했다. 통제불능인 장애아동에게 신경을 쓰느라 의도된 교육과정을 제대로 진행시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애아동 본인의 학습권 뿐만 아니라 다른 아동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었다는 뜻이며 잘 가르치고 싶은 나의 권리나 의지까지 침해를 당한 것이다. 오죽하면 이 모든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며 교직을 그만둘 생각을 여러 번 했던 1학기였다. 지금 우리 학교에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동을 위한 어떤 프로그램이나 인력이 없다. 그렇다고 학급 당 학생수가 적은 것도 아니다. 내일 당장 개학인데 나는 지금 학교 가기싫은 아이들처럼 등교기피증을 앓고 있다. 아이들과 즐겁게 행복하게 공부하고 싶은데 그 아이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다칠까봐 불안해 하고 찾으러 다니는 일을 반복하는 사이에 다른 아이들의 누적된 학습결손과 안정된 학교생활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금, 당장 9월1일부터 현재 통합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를 조사하여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인력을 배치하여야 한다. 이는 장애아동과 일반학급 아동, 학급담임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지녀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다른 친구들에게 무조건 이해를 해주라고, 동정을 구하게 해서는 안 되며 더우기 피해를 주어서 기피하게 만들어서는 더욱 안 되지 않겠는가? 장애아동을 처음부터 분리하여 가르치는 방식에는 원천적으로 반대하지만 그들만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특수교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일반학급 아동들과 함께 생활하는 '통합교육'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반학급 아동들 사이에 넣어서 장애아동과 담임교사, 친구들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설렘으로 아이들 곁에서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울려 살아가는 교실을 꿈꾸고 싶다. 내일이 개학이지만 내 마음은 참 어둡습니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보다는 '아동수용소'나 다름없는 교실이기 때문입니다. 안전에 신경을 쓰느라 좌불안석이니까요. 이제 입법 예고에 들어간 법안이 언제쯤 국회를 통과하여 시행될까? 를 쓴 앨빈토플러의 말대로 정치권은 가장 느린 집단이다. 아이들은 초고속으로 성장하는데 법을 집행하는 정치권과 국회는 뒷북만 치는 현실이니, 우리 반 아이가 2학년이 될 때만이라도 장애아동의 대우를 받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리라. 느린 법 앞에서 아이들과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며 우는 시간을 보낼 2학기. 그래도 희망의 끈만은 놓지 않으려 한다.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는 믿음만은 잃지 않았던 1학기보다는 더 낫지 않겠는가?
최근 정부는 2030년까지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 2030을 제시하였다. 지금부터 24년 뒤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논란이 많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24년 뒤를 예측하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것과 앞으로 방향을 알아야 그에 맞추어 모든 것을 추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더구나 2030년이면 우리의 학생들이 앞으로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는 시기인 남큼 우리 교사들이 관심을 기울여 학생지도를 함에 참고하여야 하겠다. 24년뒤인 2030년이 되면 우리 학교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초중고교 교육과 관련한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교육환경이 달라진다.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수가 2005년의 32명에서 2010년의 30명, 2020년의 27명, 2030년의 23명으로 감소시키겠다는 것이다. 둘째, 방과후 활동이 증가한다. 방과후 활동 수혜율을 2005년 32%에서 2010년 67%, 2020년 72% 2030년 75%로 증가시키겠다는 것이다. 방과학 활동에 대하여 저렴한 비용에 우수한 교육을 이수하는 만큼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학생들의 학교내 안전이 감소된다. 아동안전사고율(10만명당)을 2005년의 8.3명에서 2010년의 7.3명, 2020년의 6.0명, 2030년의 5.0명으로 감소시키려 하고 있다. 넷째,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사회에서 바로 쓸 수 있게 된다. 대학교육 사회부합도(IMD, 60개국)를 2005년의 52위에서 2010년 40위, 2020년의 20 위, 2030년의 10위로 줄이려하고 있다. 다섯째, 취학연령을 인하하여 만5세 취학하고 학제가 개편된다. 5세 취학하고 10세에 중학에 진학하고 16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식이다. 여섯째, 이밖에 공영형혁신학교가 확대되고 장애아에 대한 무상보육ㆍ교육, 대안교육, 아동급식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상의 시책방향에 대하여 만5세 취학에는 아직 합의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장애아에 대한 복지증대, 학교급식 양작 질적 개선, 대안교육 강화, 학교안전 강화, 학교교육환경 개선등은 비전 2030이 아니라도 당연히 개선되어야 할 영역이라고 보여 새로운 것이라 볼수 없다. 방과후 학교를 2030년까지 75%로 확대하여 사교육비를 감소시키겠다는 것은 논란이 있다고 보여진다. 어떤 면에서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막는 것으로 보여진다. 과연 앞으로 24년 뒤에도 방과후 학교 정책이 계속될것인가? 우려된다. 또 초등학교 학급당 인원수를 감소시키겠다는 주장도 현재 농촌과 중소도시의 대부분의 초등학교가 소인수학급을 유지하는 현실을 외면한 목표치라고 보여진다. 더구나 현재 전세계적으로 꼴찌 수준에 있는 우리 대학의 사회부합도가 10위 수준으로 가자면 우리의 대학이 엄청난 변신을 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지 우려가 된다. 100개 대학안에 상당수를 포함시키겠다고 하는데 과연 다른 나라는 놀고만 있는가? 기획예산위 보도자료를 보고 몇가지 정리하여 보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통상적인 내용보다는 2010년, 2020년, 2030년의 교육의 미래 모습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비전과 이를 위한 구체적인 사업을 제시하여야 하겠다. 재정투자계획이 없어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못주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도 되어야 하겠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차등 성과급, 교원평가제 등의 저지를 위해 10월 말 연가(年暇ㆍ연차휴가) 투쟁을 벌이기로 한 데 대해 학부모 단체와 교원단체들이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은 31일 성명을 내고 "전교조는 (11월)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연가투쟁을 벌이겠다는 집단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며 "전교조의 연가투쟁 방침은 교육자라면 있을 수 없는 극단적인 행동이며 학생을 한낱 투쟁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명은 "연가투쟁의 명분으로 전교조가 교원평가와 성과급제 반대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철밥통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전교조가 연가투쟁을 강행한다면 전교조 소속 교사들을 상대로 교단 퇴출운동까지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학사모는 "일부 집행부의 강경책으로 수많은 진실한 교사들까지 비난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뉴라이트(신보수) 계열인 서울자유교원조합(자유교조) 최재규 위원장은 "전교조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연가투쟁을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학생들의 학습권을 크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현장에서는 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 이기주의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최 위원장은 "특히 전교조는 자신들의 집단 행동을 부각시키기 위해 연가투쟁 일정도 수능시험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을 잡았지만 이는 교육자로서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연가투쟁 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교총 한재갑 대변인은 "전교조가 교원평가제와 차별 성과급 지급제를 반대하기 위해 연가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교사들의 연가투쟁이 현실화할 경우에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교조는 신중히 판단해 연가투쟁 실행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의의 전은자 사무처장은 사견을 전제로 "이전의 연가투쟁이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않았던 만큼 전교조가 발표한 연가투쟁 방침도 학생들을 볼모로 하는 악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전 사무처장은 "연가투쟁이 실행되더라도 (전교조 소속)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학습권에 피해를 주지 않을 조치를 취해놓을 것으로 믿고 있으며 전교조 집행부가 학생들의 학습에 큰 피해를 줄 만큼의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은 이날 서울 영등포 전교조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등성과급 폐지와 교원평가 저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저지는 물론 아이들 살리기 운동을 통한 공교육 개혁은 더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다. 올해 하반기 총력 투쟁을 통해 교육 공공성을 훼손하는 교육 정책에 쐐기를 박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연가는 엄연한 교사의 권리이며 행동권이 보장돼 있지 않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연가투쟁"이라고 덧붙였다. 전교조는 다음달 7∼8일 학교별 분회마다 성과급 반납식을 가지고 같은 달 11일부터 지도부가 전국을 순회하며 3대 요구사항을 알려나갈 예정이다. 전교조는 또 9월 하순 미국, 프랑스, 영국 등 교육전문가를 초청, 교원평가 국제 심포지엄을 열고 10월 중순 대의원 대회를 다시 개최해 10월 말로 예정된 연가투쟁 계획을 최종 확정키로 했다. 연가투쟁은 교사들이 연차휴가를 집단적으로 내는 것이어서 교육당국과 정면 충돌이 예상된다. 전교조는 전날 대전 청소년수련관에서 연 제50차 전국 대의원대회에서 차등성과급과 교원평가제, 한미FTA 협상 저지를 하반기 총력투쟁 목표로 삼고 10월 말 연가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했었다.
행정자치부가 공무원연금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교원단체 대표를 배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한국교총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당초 행자부가 교총에 위원 1명을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다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해 그 배경에 대해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교총은 29일 행자부장관 앞으로 공문을 보내 “50만 교육자 입장을 개진할 교원단체 대표의 위원 배제 이유와 경과에 대해 행자부가 명확한 입장을 공문을 통해 밝혀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교총은 또 “정부의 일방적인 공무원연금법 개정 추진을 전현직 공무원단체 등과 연대해 강력 투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교총은 “2005년 12월말 현재 공무원연금에 가입돼 있는 교원이 33만여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34% 정도에 해당되는 등 총 56만8000여명의 교원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의 직접적 당사자인데도 불구하고 교원단체대표의 참여를 배제한 것은 교육계와의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가 공무원연금법개정을 수혜폭 감소 등 정부의 의도대로 일방 강행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총은 또 “2000년 공무원연금법 개정당시 기여금 인상 등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고통을 감내한 교원들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을 재추진하는 것에 대해 공무원연금 기금 부실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교원공무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보고 상당한 불만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상태”라며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교총은 행자부가 공문을 통해 교원단체에 위원 추천을 의뢰했다가 뚜렷한 이유나 근거 없이 유선으로 교원단체 추천위원 배제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에 유감을 표하고 해명을 요구했다. 향후 참여문제와 관련 김동석 교총정책교섭국장은 “가장 많은 직접적 당사자를 가진 교원단체 대표를 배제하고 개선위를 구성한다는 것은 정부가 이미 정해 놓은 방침에 따라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들러리식’의 참여라면 참여에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교총은 29일 회장단회의에서 하반기 추진 7대 주요 교원정책의 하나로 ‘공무원연금개악저지’를 선정하고 타 공무원단체와의 연대 투쟁 등을 통해 연금법 개정을 막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편 교총․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등 11개 공무원연금관련 단체들은 5일 세실레스토랑에서 ‘공무원연금등 특수직연금 개악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2학기 개학을 하루 앞둔 31일 대구시 남구 봉덕초등학교에는 컨테이너를 연결해 만든 임시 교사(校舍)의 내부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다. 넓기로 소문났던 이 학교 운동장에 'ㄱ'자 모양으로 들어선 2층짜리 컨테이너 건물에는 개학 후 학생들이 수업을 받게 될 교실 20개가 배치됐다. 학년초도 아닌 시기에 이 공사가 벌어지는 것은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되는 학교 개축공사를 위해 기존 건물들이 9월부터 순차적으로 철거되기 때문이다. 기존 건물들이 학생들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안전진단결과에 따라 교사 3개 동 가운데 본관을 제외한 2개 동이 연내에 철거돼 내년 8월까지 새 건물이 들어서고 본관 건물은 2008년 초까지 개축될 예정이다. 이 때문에 재학생들은 개축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돌아가며 컨테이너 교실 신세를 질 수 밖에 없게 됐다. 교육당국은 컨테이너 내부를 기존 교실과 똑같이 만들고 냉.난방기를 설치하는 등 수업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축공사로 인한 소음과 분진은 물론 공사차량 출입에 따른 등하굣길 안전문제 등 학생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운동장이 반 토막 나면서 가을운동회 개최가 어려워 다른 학교 운동장을 빌려야 하는 등 야외수업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대구에서는 봉덕초교외에 서구 비봉초교에서도 똑같은 개축공사가 연내에 진행될 예정이다. 산 위에 위치한 이 학교의 경우 컨테이너 교실을 지을 운동장 조차 없기 때문에 전교생이 2년여동안 인근의 몇몇 학교로 분산수용될 예정이어서 학생들이 '생이별'을 경험하게 됐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오래된 건물들이 안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개축공사를 계속 미룰 수는 없다"면서 "재학생들에게는 공사에 따른 피해가 어느 정도 예상되지만 최대한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기국회를 맞는 각오는. “사학법 공방과 함께 한나라당이 재개정을 다른 법안 처리와 연계시키면서 현재 교육위에는 160개 법안이 계류된 상태다. 그 내용이 양극화 해소나 대학개혁 등 다 민생에 직결된 소중한 것들이다. 한나라당을 설득하면서 생산적인 교육위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법안심사소위 구성을 놓고 양당이 대치중인데. “현재 교육위 정수는 우리당 9명, 한나라당 7명, 비교섭단체 2명이다. 위원수를 고려하고 비교섭단체를 배려한다면 법안소위를 3대 2대 1로 구성하는 게 순리다. 또 타 상임위를 봐도 이게 관례다. 한나라 주장대로 3대 3으로 구성해 전반기에 얼마나 많은 폐해를 겪었나. 타 법안들을 사학법과 연계해 심의 못하겠다고 퇴장해 버려 소위 진행 자체가 안 됐다. 법안 심사와 처리에 있어 생산성을 고려해도 동수 구성은 안 된다.” -국정감사 계획은. “개인적으로 세 번째 국감이다. 그간 참여정부의 공약과 교육정책의 실천이나 집행을 점검하는 국감방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그 구체적인 주제는 우선 교육양극화 해소다. 교육이 부를 대물림시키고 지역적 격차를 가중시키는 면을 부각시키고 해소책을 제안하겠다. 다음은 대학경쟁력 강화다.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과제임에도 최근 뉴스에 의하면 글로벌 100대 대학에 우리는 한 대학도 없는 현실이다. 대학의 특성화,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제를 제시하겠다. 해외동포 자녀 교육문제와 역사왜곡 문제도 제기하겠다. 특히 올해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의 발해사 편입 실태를 폭로하고 바로 잡는 노력을 하겠다.” -사학법 재개정 충돌이 불가피하다. 청와대와 여권 내부의 양보요구도 있는데. “사학법을 사학비리나 잡는 법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보다 중요한 건 학교자치의 개념이다. 구성원이 이사회에 참여하고 운영에 동참하는 건 학교의 민주성을 높이고 부차적으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개방이사 도입과 취지를 양보하는 건 사학법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어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불가하다. 청와대의 양보 언급은 한나라당이 사학법과 연계해 국방, 사법개혁을 다 틀어막으니까 양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답답한 심정을 공유한 것이지 이견은 아니라고 본다. 제발 다른 법안과 연계하지 말고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교육위에 맡겨줬으면 한다. 그럼 우리도 몇 가지 부분을 개정하는데 나서겠다.” -여당이 의회 통합을 골자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입장과 추진 일정은. “(교육감, 교육위원 선거방식에 대해서는)이제 주민직선제로 갈 때가 됐다. 의식주 대신 교식주란 말이 있지 않나. 지역사회도 이제 교육이 제일 큰 관심사란 얘기다. 참여주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시도교육위는 시도의회로 일원화하되 일반 상임위 형식이 아닌 특위 방식으로 해 전문가가 일정부분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교육자치법 논의는 이번 국회에서 우선순위가 한참 밀린 듯하다. 이미 선거가 다 끝났기 때문이다. 넘어가면 법안이 폐기되니까 시간 여유가 있더라도 할 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직형 교장공모제, 교원평가제에 대한 교직단체의 반대가 거세다. “지금 평가 받지 않는 집단이 있나. 교원평가제는 당연히 해야 된다. 당장 월급 깎고 승진시키는 것도 아닌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 전교조는 평가가 교사를 서열화시키고 불이익을 주는데 악용될 것이라 한다. 전교조에 호소하고 싶은 건 이제 그들이 약자나 소수가 아니라는 거다. 그들의 우려처럼 되도록 국회가, 시민단체가 가만있겠나. 초빙공모제는 기존 승진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학교도 이제 사회를 향해 개방돼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교사 자격이 없어 교장이 되고, 일정 경력의 교사도 전문성과 능력을 갖추면 교장이 되는 다양한 트랙이 마련돼야 한다. 다만 그 적용은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재정 GDP 6% 확보는 물 건너 간 듯하다. 복안은 없나. “교육은 돈이다. 결국 양극화를 해소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도 다 돈이다. 그런 점에서 6% 교육재정 확보가 좌절된 데 아쉬움이 크다. 정권을 초월에 교육재정 확보는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 추진돼야 한다. 현 상황에서 재정 확충방안으로는 우선 교부금법 개정이 있다. 교부율을 내국세 총액의 20%로 하는 안과 20.7%로 하는 안이 있다. 양극화 해소, 저출산 대책 등을 고려하면 20.7%로 해야 한다. 또 학교신축 등에 민자를 유치하는 BTL 방식을 적극 활용하면 그 예산을 다른 교육사업에 쓸 수 있어 예산확충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지자체에 지원 확대를 호소하고 싶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순천시의 경우 연 30억원(내년에는 5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농민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친환경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공급함으로써 농민을 살리고 아이들의 건강도 챙기는 효과를 얻고 있다. 교육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은 결국 다음번 지자체장 평가 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법정 전입금에 대한 고민만 하지 말고 교육경비 보조금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당초 9월 11일부터 시작할 예정이던 올 국정감사가 한 달 늦춰진 내달 11일부터 실시된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29일 원내수석부대표 회담을 갖고 제262회 정기국회 의사일정 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르면 국정감사는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 11일부터 30일까지 20일간 실시되며 11월 1일에는 2007년도 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이 있게 된다. 2, 3일에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있고 6~9일 대정부 질문이 이어진다. 국감 연기는 28일 야4당이 “바다이야기 파문이 증폭되는 가운데 국정감사를 국면 전환용으로 이용하려는 여당의 작태가 한심하다”며 “바다이야기 문제를 마무리한 후 감사를 진행하자”고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우리당은 29일 “아무 이유도 없이 야4당이 국회법을 어기며 정략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라고 비난했다.
과학기술부가 고교 1학년용으로 만든 '차세대 과학교과서'가 학교에서 정식 교과서로 채택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기부는 2004년 7월부터 5억여원을 들여 올 2월 차세대 과학교과서 제작을 완료하고 교육부에 학교 교과서로 쓰일 수 있도록 추가검정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공식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31일 밝혔다. 교과서는 학교에서 사용되기 1년6개월 전에 교육부 검정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차세대 과학교과서가 이달 중 추가검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2008년 3월부터 사용되기는 사실상 어려워진 셈이다. 과기부 구수정 서기관은 "교육부가 내년 2월 8차 교육과정을 발표하고 새로운 교과서 검정계획을 밝히면 그 때 다시 검정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내년에 발표하는 8차 교육과정은 2011년 학교에 적용되기 때문에 차세대 과학교과서가 그 때 검정을 받더라도 학교에서 사용될 수 있는 시기는 2011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기부는 현재 서울, 경기 지역 고교 5곳을 연구시범학교로 선정해 차세대 교과서를 수업시간에 활용하고 있다. 구 서기관은 "차세대 교과서의 검정은 여러 활용방안 중 하나일 뿐"이라면서 "검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선 교사들에게 배포해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 및 초중등 교육재정의 안정을 위해 보통교부금 중 내국세 교부율이 현행 19.4%에서 2010년까지 20%로 인상된다. 또 시도지사가 관할 교육감과 협의해 관내 교육지원사업을 시행 또는 보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신설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런 내용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9월1일 입법예고한다고 31일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통교부금 중 내국세 교부율이 현행 19.4%에서 2008년 19.8%, 2009년 19.9%, 2010년 20%로 단계적으로 인상된다. 이렇게 되면 내국세 교부금은 2006년 20조5천935억원에서 2010년 29조5천683억원으로 늘어나 유아교육과 방과후 학교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만5세아 무상교육 대상자는 올해 14만2천명에서 2010년 20만8천명으로 늘어나고 저소득층 만 3ㆍ4세아 교육비 지원대상도 15만5천명에서 32만6천명으로 확대된다. 사립유치원에 기본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는 올 하반기 시범실시를 거쳐 2008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사립유치원에는 시범실시 기간에는 원아 1명당 월4만2천원씩이 지급되고 2008년부터는 원아 1명당 월6만3천원씩이 지급될 예정이다. 유아교육 지원비와 방과후 학교 지원비는 2007년에는 국고보조금으로 지원되지만 2008년부터는 내국세교부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지방이양사업으로 전환된다. 개정안은 이와 함께 시도지사와 교육감이 교육여건개선을 위해 자율적으로 지원할수 있는 근거조항을 신설했다. 이는 그동안 명확안 근거규정이 없어 시도가 법정전출금 이외의 교육투자에 적극 나설수 없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는 매년 시도세의 일부를 교육에 투자할 수 있도록 교원지원조례를 제정 운영중이며 이번 법 개정으로 다른 시도의 교육지원조례 제정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는 그러나 최근 시도지사협의회가 건의했던 시도세 법정전출금 비율 인상은 자치단체의 자율적 참여를 권장하기 위해 반영하지 않았다. 개정안은 이밖에 기초자치단체장도 각급학교에 교육경비 보조 뿐만 아니라 교육지원사업을 직접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