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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언젠가 신문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실력을 다져간 세화여고의 사례를 접했었다. 세화여고에서도 처음부터 모든 교사나 학부형 그리고 학생들이 신문학습을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신문보다는 문제 하나 더 풀고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주위의 시선을 이겨내며 발전적 교육의 대안을 찾아간 활동이기에 그 성과는 더 의미 있다. 이렇듯 내가 실천하는 교육활동에 확신이 있다면 때론 나를 믿어주지 못하는 주위의 시선도 과감하게 이겨내며 그 교육에 올인하고 그 교육활동의 열매를 기다려볼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학생들에게 학부형들에게 나의 교육활동에 대한 적극적 안내도 펼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학급 아이들이나 담임의 사진을 활용해 수업 동기를 유발시키는 활동이 유행이다. 텔레비전 화면 가득 학급 친구들의 얼굴이 나타나는 신기함 때문에 학습에의 집중을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유한적인 말초적 흥미로 수업 초기의 감각적 흥미가 학습의 질을 끝까지 담보하지 못할 수 있음을 염려해야한다. 그래서 필자는 학습 목표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 들려주기나 역사적 사건 들려주기 그리고 신문 자료를 활용하여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안목을 기르는 수업을 즐긴다. 그래서 평소 이런저런 책을 편독 없이 읽으며 내가 읽는 책을 어떻게 가르칠까를 늘 고민한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가 무엇을 읽든지 늘 나의 관심은 ‘ 내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할까’ 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들려주는 정약용과 정조의 일화도 앞으로 그 어린아이들이 더 많은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지식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지도한다. 단 내가 읽은 지식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맞춰 흥미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자칫 지루한 암기의 대상으로만 여길 수 있는 형식적 지식을 에피소딕 지식으로 재구성하고 그 지식 속 교훈도 함께 전한다. 화려한 사진자료 없이도 나의 이야기만으로 전해지는 에피소딕 지식은 이해가 쉽고 장기 기억으로 전환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순 시청각 자료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화려하고 더 번득이는 자료이어야만 아이들의 학습 호기심을 계속 유지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인터넷과 전기가 끊긴 교실에서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재미를 오롯이 교사에게만 집중시킬 수 있는 교사의 역량이 수업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한다. 수업 중의 동영상 시청의 재미, 게임의 재미보다는 하나 둘 알아가는 지적 성장의 기쁨과 새로운 배움에 대한 호기심의 성장이 진정한 수업에의 재미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세화여고의 신문학습의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 교육가족 대다수가 불신했던 신문읽기를 교사와 학생 모두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하나 둘 더 많이 알아가는 지적 성장의 즐거움, 학습의 지루함을 이겨내고 알게 된 앎의 즐거움만이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큰 행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난 믿는다. 자신 있게 용감하게.
명예와 돈은 같은 부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편안함, 행복함, 부유함과 넉넉한 상황 속에서는 명예를 얻을만한 위대한 업적이 탄생되기 어렵다는 의미이리라. 사기를 쓴 사마천도 곤경과 가난이 사람을 분발하게 하고 걸작을 만들어 낸다고 말하며 이를 발분지서라고 표현했다. 역경이 업적을 만들어 낸 사례는 역사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그러했으며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그러했다 글이 사람의 울분을 어떻게 순화시킬까?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마음속 울분을 지면 위에 쏟아냄으로써 내 울분을 객관화 시키는 과정이다. 내 맘속 격정을 글로 쏟아내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속 울분이 한 번 걸러진다. 지면 위에 쏟아놓은 내 울분들을 내가 다시 한 번 읽을 때 나는 독자라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 울분을 들여다보게 된다. 타자의 입장에서 나는 나의 울분에 대해 좀 더 냉정해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글쓰기는 영혼의 카타르시스이고 필자 자신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이 괴롭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인터넷과 신문지상을 채우는 어린 학생의 자살, 학교폭력 기사들은 그네들의 아픔의 아우성 같다. 대구광역시 교육청에는 독서교육만을 전담하는 장학사가 있고 학생 글쓰기 동아리를 운영해 해마다 학생의 글들을 정식으로 출판하고 있다. 학생 출판 활동은 정서적 치료를 통한 놀라운 지적 성장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괴롭고 아프고 힘든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자.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자신의 괴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안내하자. 통섭교육의 대가 최재천 교수는 글쓰기가 모든 안다는 것의 최종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시험지에서만 빛을 발하는 지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는 방법이 글쓰기이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내면을 객관화하여 되돌아봄으로써 어제와 다른 내일을 살아내는 지혜와 결단도 기를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낸 안네 프랑크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보호 관찰 대상인 아이들과 마약 중독에 걸린 아이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통해 희망을 가르친 에린 그루엘을 통해 글쓰기의 치유기능은 이미 검증받았다. 이젠 글쓰기를 통한 변화가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나야할 시간이다. 변화와 성장이 바로 내 아이들에게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하루 한 줄이라도 나의 생각을 진솔하게 정리하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쓰게 하자. 바로 나 자신을 서술하는 나만의 글이기에 굳이 허세도 멋도 부릴 필요도 없다. 실크같이 매끄러운 글쓰기가 아니어도 좋다. 그렇게 내 생각을 적어가다 보면 내가 고집했던 나만의 감옥이 보인다. 내가 살았던 나만의 동굴의 깊이가 보인다. 내 감옥의 깊이에서 탈출하고 내 동굴의 어둠을 이겨낼 내 반성과 다짐의 글은 앞으로 내가 내일을 살아갈 지침이 되어준다. 그렇게 글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이끌어준다. 글쓰기를 강조한 사마천의 절실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요일 오후가 기다려진다. 12시간 후면 다시 고단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일요일 오후를 손가락 헤아려 기다리는 이유는 슈퍼맨을 만날 수 있어서다. 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강한 파워를 발휘하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슈퍼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슈퍼맨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슈퍼맨과 함께 하는 예쁜 아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모두 예쁘다. 젊음이라는 것 자체가 고가의 화장품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발산하듯 아이의 사랑스러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단어를 열거해 표현해도 부족한듯하다. 슈퍼맨 속 예쁜 아이들 중 삼둥이의 귀여움은 더욱 특별하다. 삼둥이가 뿜어내는 귀여움이 KBS 시청률의 효자로 떠올랐다고 한다. 삼둥이를 모델로 한 2015년 달력의 판매 수익금이 10억 원 이상이라는 기사만으로도 우리 국민들의 ‘삼둥이 앓이’가 피부로 전해진다. 삼둥이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보는 이들의 혼을 쏙 빼놓는 그들의 귀여움일 것이다. 삼둥이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언어량의 폭발적 증가 시기인 어린 그들이 내뿜는 서투른 말 한마디가 세련되게 완성된 언어보다도 더 많이 어른들의 마음을 빼앗아간다. 삼동이의 모습을 보며 장성한 자녀를 가진 가정에서는 어린 내 자녀들을 키웠던 지난시간들을 떠올리며 내 자녀가 주었던 기쁨을 다시금 떠올리고, 미혼의 남녀들에겐 어여쁜 자녀를 키우는 즐거움과 보람을 가상 체험함으로써 결혼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시켜주기도 했다. 그와 함께 아빠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 증가라는 긍정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내가 삼둥이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는 어린아이의 의젓함이 있고, 내가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도 동생에게 형에게 나누어 줄줄 아는 어린아이의 양보가 있고, 어린 내가 어린 내 동생의 손을 꼬옥 잡고 길을 가는 어린아이의 책임이 있다. “이모 밥 주세요. 배고파요.”라고 예의를 지켜가며 나의 배고픔을 전할 줄 아는 어린아이의 예절도 있다. 그런 너희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은 사랑받을 행동을 하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사랑받을 자격을 가진 그 사람에게서 사랑은 시작된다.’는 너무나 명료한 삶의 진리가 떠오른다. 나이 들면서 지켜내야만 하는 삶의 의무에 갇혀 모른 척 넘겨온 소중한 관계의 예의를 다시 내게 깨우쳐주는 거울이 바로 삼둥이다. 서로 도와주고, 참아주고, 나눠주는 삼둥이의 모습에서 순간순간 나를 잠식해오는 나태함과 이기성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어서 일요일 오후를 기다린다. 내가 먼저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려 노력하지도 않은 채 사랑받는 누군가의 모습만 부러워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나의 형편을 한탄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Super Baby를 만날 수 있어서 너희들을 기다린다. 사랑받을 자격을 가진 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것처럼 나를 감동시키는 일도, 나를 성장시키는 일도 없기에 난 일요일 오후 그 시간을 기다린다.
이젠 슬픔의 눈물을 거두고 희망의 노래로 너희들이 못다 한 시간을 채워 가리라. 충청북도 영동초등학교 수석교사 김명희 비상상황 발생 시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으며 탑승객 구조를 도와야 하는 세월호의 선장을 비롯한 선원 대부분은 침몰 직전까지 탑승객에게 객실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만을 남기고 자신들은 배 밖으로 탈출해 해경, 경비정에 의해 제일 먼저 구조되었고 선박 안전운행기준을 초과하는 무리한 화물 적재와 청해진 해운의 불법 노후선박 개조 작업 그와 함께 청해진해운의 배후가 되는 유병언 일가의 탈법행위들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커다란 불신을 초래하였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을 슬픔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너희들이 수학여행이라는 설렘으로 승선했던 그 배 세월호가 남긴 얼룩들이다. 4월 아름다운 봄날의 한가운데서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져간 너희들의 죽음 앞에서 막 피기 시작한 아름다운 꽃망울조차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너희들은 차가운 물속에서 작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고 대한민국은 온통 가슴 저리는 막막함과 울분으로 그리고 가슴치는 후회로 꽁꽁 얼어붙은 2014년의 봄과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누구의 아들딸의 죽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아들이고 딸인 너희들의 애달픈 죽음은 이 땅의 어른들에게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통한의 죄책감을 남겼다.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너희들에게 우리 어른들의 부도덕함과 부주의의 결과로 남긴 죄악이었기에,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고 피할 수 있었던 참사이었기에 우리 어른들은 더 긴 긴 날들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었단다. 2015년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일주기를 맞는다. 할 수만 있다면 2014년 4월 16일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 헐거워지고 허술해진 이 나라 곳곳의 빈틈을 꼭꼭 메워 미처 피지도 못한 너희들의 꿈을 그리고 웃음을 다 되돌려 놓고 싶다. 하지만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우리가 과거로부터 얻을 것은 미래를 살아갈 삶의 교훈뿐이다. 교훈 없는 기쁨은 순간의 화려하고 달콤한 축제로 끝나지만 가르침 가득한 슬픔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멈추지 않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 세월호라는 차가운 배 안에서 차마 피지 못하고 사라져간 꽃 같은 너희들이 지금 우리 남겨진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우리 어른들이 울음을 그치는 일이며 원망을 그치는 일이며 사회를 향한, 지도자를 향한 불신의 언어를 멈추는 일은 아닐까! 너희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하나하나 헤아려보고 되짚어보며 우리의 옷깃을 여미고 새로운 다짐과 실천을 통해 너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 살아있는 자의 의무임을 기억하는 이 땅의 어른들이어야 하리라. 너희들의 죽음이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지금 우리가 목을 놓아 눈물 흘리는 일보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지탄하는 일보다 우선해야 할 일임을 기억하며 교사인 내게 세월호가 남긴 교훈을 풀어 헤치려 한다. 세월호에 선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이 있었다면 학교라는 배에서 삶의 바다라는 학생들의 항해를 책임지고 있는 나는 교사라는 선장이다. 내 배는 지금 아름다운 순항 중인가? 학교라는 배에 승선한 그들의 영혼을 건강하게 성장시키기 위한 책임에 소홀하지 않은 나인가? 그들의 지력과 지혜를 무럭무럭 알차게 성장시키는 책임에 나의 시간과 땀방울을 기꺼이 내어주는 선장인가? 쉽게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정신과 지혜의 성장이기에 때론 이런저런 교육 현장의 어려움들을 앞세우며 학생들의 성장에 대한 선장의 책임을 내려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니 세월호의 선장을 탓하기조차 두려워진다. 그와 함께 무책임한 선장의 행위에 대해 선장 개인의 직업윤리에 대한 책임만을 비난하고 벌주기에 앞서 이젠 개인의 반사회적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적 책임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스쳤다. 군부대의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 묻지 마 칼부림 사건 등 내가 무심히 넘긴 이웃집 아이의 외로움이, 사회 부적응이 어느 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의 칼을 휘두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칼끝에서 최고의 정성을 들여 키워낸 내 아이가, 사랑하는 내 가족이 상처를 입고 있다. 개인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사회적 문제로 양산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준석이라는 선장의 부도덕한 소양이 불러온 엄청난 참사를 통해 우리는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뼛속까지 기억해야만 한다. 아픔으로 소리치고 있는 내 이웃의 문제를 그네들만의 문제로만 치부하며 외면하는 대신에 이웃의 문제를 내 가족의 문제처럼 지켜보고 함께 고민하고 염려해주는 것이 사랑하는 내 가족을 지키는 또 다른 지혜라는 것을. 각종 보도를 통해 접하게 되는 이 땅 젊은이들의 가슴 아픈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교사로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절대적 시간 양을 차지하는 학교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무심히 넘긴 어느 학생의 마음의 상처가 지금 오늘 사회에 대한 분노의 결과를 초래하진 않았을까?’ 에 대한 가슴 찔림이 있어서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무심히 던진 상처의 말 한마디가 지금 사회의 어느 곳에서 곪아 터진 상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지 가슴이 섬뜩해진다. 또한 배의 침몰을 직감하고 죽음의 위기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질서를 지키고 선내에서 기다리라는 선원들의 안내방송을 그대로 따른 학생들이 오롯이 희생자로 남았음은 더욱 마음을 서늘하게 하였다. 양심을 저버린 선장의 어처구니없는 지시와 안내를 너무나 잘 따라준 대가가 너희들의 귀하디 귀한 목숨 값이 되었음에 남은 자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크기만 했다. 그 안타까움 뒤에 남은 것은 물음이었다. 삶의 연륜과 경험을 앞세워 전하는 어른들의 충고가 가지는 허점은 정녕 없는 것일까? 어른의 경험과 지혜라는 명목으로 너희들의 삶의 틀을 지나치게 결정하고 구속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우리 어른들이 선택하지 않은 노란 숲 속의 또 다른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어른들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제는 옳다고 굳게 믿었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너희들 마음 깊숙한 곳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너희들의 눈높이에서 너희들을 존중하며 어른으로서 먼저 경험한 삶의 지혜를 안내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생각한다. 그것이 소중한 너희들의 목숨 값으로 미생의 어른이 가슴으로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남긴 더 긴 깨달음은 다음의 시로 대신하며 다시 옷깃을 여민다. 더는 슬픔의 눈물이 아닌 희망의 결의로 너희들이 못다 한 이 세상을 채워가는 삶을 살아야겠노라고. 너희가 남긴 것들 드넓은 세상을 향해 크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힘찬 날갯짓을 준비하던 너희들을 차가운 바닷속에 묻어 버린 어른들은 밥을 먹어도 허기가 지고 마음속 채워지지 않는 커다란 슬픈 구멍 하나 짊어지고 그렇게 너희가 떠난 그 뒤의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차가웠을까? 얼마나 목 놓아 외쳤을까? 얼마나 애타며 기다렸을까? 너희가 떠난 후 어른들은 그토록 당연하던 내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내 옆의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내가 행여 마음으로라도 행한 잘못을 돌아보게 되었단다. 허물 많은 이 땅의 어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옷깃을 여미게 한 너희들은 영혼의 어버이였고 영혼의 스승이었음을
스타벅스의 혁신은 이탈리아의 편안한 카페 문화를 미국으로 가져오자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착한 화장품 가게를 표방하는 더 바디샵의 혁신은 일반 화장품 제조사들의 비인도적인 동물실험을 싫어하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데서 착안되었다. 두 기업의 성공 요인은 바로 지금 현재 매장의 모습을 살핀 통찰이었다. 혁신의 출발점인 Insight(통찰)의 영어 사전적 정의는 clear, deep, and sometimes sudden understanding of a complicated problem or situation이다. 복잡한 문제나 상황에 대한 명확한 때론 섬광 같은 이해가 통찰인 것이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무엇만이 혁신이 아님을 Insight의 영어 사전적 정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행복 교육을 모토로 혁신학교가 학부형들의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지금,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충북 도의회의 혁신학교 예산 배정금액 보다 더 먼저 헤아려야 할 중요한 교육 문제들이 있다. ‘갔다’와 ‘갖다’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글을 쓰는 교실 속 많은 아이들이 글에서 얻어야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며 글을 읽을 수 있을까? ‘선생님께서는 친구를 베려 하라고 말씀하시자만 난 친구를 베려 하면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여름 어느 교장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강의 슬라이드의 하나였던 이 문장은 차마 웃어넘기기엔 교사로서 마음 서글픈 문장이었다. 이 글을 쓴 아이는 ‘보살펴 주려함’의 배려와 ‘날이 있는 물건으로 상처를 내다’는 베려의 의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노후를 대비할 여력도 없이 자녀 교육에 모든 걸 다 쏟아부었음에도 교육 투자비용이 무색할 만큼 늘어만 가는 청년 실업문제가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는 아닐까?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은 문법교육 때문이 아니라 문법만 가르치고 문법을 활용한 말하기 연습 활동을 소홀히 한 잘못된 영어교육 때문은 아닐까? 정확한 맞춤법을 익히게 하는 공부, 수업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공책 정리 방법의 필요성을 알게 해 주는 일 등 너무 기본적인 학습이어서 누구나 이미 다 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미시적 문제의 진단 또한 시급한 혁신과제이다. 이와 함께 사회적 이슈의 근본적 대책으로서의 교육의 책임도 두루두루 살피는 폭넓은 안목이 학교혁신의 핵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혁신학교를 운영함에 있어서 별도의 혁신학교를 선정하기보다는 각 학교별로 학생들의 지적, 정서적 특성에 맞는 혁신 과제를 발굴하고 혁신의 과정 및 성과들을 서로 벤치마킹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혁신학교 운영방법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누군가만 할 수 있는 거창한 계획과 구호가 혁신이 아니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기 위해서 혁신은 우리 모두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에 그 이야기와 문장의 포로가 되었다. 나는 인도의 햇볕이 내리쬐는 긴 대낮부터 저녁 무렵까지 열심히 읽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듯 끝까지 탐독하고 완전히 만족감에 젖었다. 그리고 책 페이지마다 곳곳에 나의 의견을 적어 넣었다. 처칠이 지은 (나의 청춘기)에 수록된 글이다. 처칠이 포로가 되어 읽은 책은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성망 사이다. 처칠의 고백 속에서 행복한 독서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니?”라는 질문에 “ 재미있었어요.” 라는 대답을 가장 많이 하는 우리 아이들이 체득해야 할 독서의 과정을 이 짧은 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을 주는 독서의 첫 단계는 내가 읽는 이야기와 문장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포로가 된다는 것은 그 문장으로 내 마음이 저려온다는 것이다. 그 문장에 의해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뜨거워진 마음으로 내 의지의 변화가 그리고 실천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둘째, 시간의 흐름도 잊게 만드는 사로잡힘의 경험이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적은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글을 읽어내는 지혜의 눈이 부족하고 사로잡힘의 경험이 없어서는 아닐까? 그래서 독서지도의 첫 단계는 “책 읽어”라는 지시적 말이나, 방안 가득 책을 채워주는 환경제공이 아닌 아이들이 책 속 보물 문장을 찾아내는 눈을 먼저 길러주는 일이 되어야만 한다. 셋째, 책을 읽으며 스스로 성장의 기쁨을 스스로 느끼는 일이다. 독서를 통해 성장의 경험을 한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읽는 자신에 대해 만족을 느끼며 누가 말하지 않아도 책을 끝까지 탐독한다. 마지막 책 읽기의 가장 절정적 단계는 책 페이지마다 곳곳에 나의 의견을 적어 넣는 비판적 사고 즉 저자의 생각에 대한 나의 이견이나 저자의 생각에 대한 나의 비판 및 대안 제시하기이다. 처칠처럼 우리 아이들도 책의 포로가 되기 위해 현장에서 시급한 교육활동은 어휘력 신장이다. 학력 우수 아동조차도 쉬운 단어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족한 어휘력으로 책을 읽은 들 책의 내용이 얼마나 이해될까 걱정이 든다. 책을 읽으면 어휘력이 향상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고, 어른들께 여쭈어 볼 때 어휘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그저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어휘력을 향상시키지 않는다. 낯선 어휘를 사전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 없이 책을 읽어 똑똑해지지 않는다. 책 속 어휘가 내 삶 속에서 체득화될 때 세계가 내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사가 부모가 책 속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책의 내용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독서 지도가 필요하다. 질문을 받을 때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해결해야 하는 그 순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나에게서 시작된 자발적 궁금증이 진정한 배움의 씨앗이 된다. “책 읽어.”라는 지시보다는 “이렇게 책을 읽어보세요.”라는 책 읽기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는 교육이 시급하다.
혁신학교와 행복교육, 충북 교육의 두 가지 키워드이다. ‘오늘의 배움이 즐거워 내일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학교’가 충북교육이 추구하는 행복 교육이다. 충청북도 혁신 학교의 별칭이 행복 씨앗학교로 선정된 것만 보아도 행복이 충북교육의 기저임을 말해준다. 배움과 행복의 조화에 대해 그리고 행복한 배움이란 표현에 혹자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좋은 직장을 위해서 내 안락한 미래를 위해서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쓰디쓴 과정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부다. 학창 시절 우수한 성적표의 결과가, 치열한 공부의 결과가 행복이지 배움의 과정 제체를 행복이라 여기며 즐기는 이들은 아주 미미할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배워라. 열심히 공부해라. 그 배움의 끝에 행복한 너희들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우리 어른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우리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 종종 접하게 되는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비도덕적 행위는 좋은 직장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누군가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과 행복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달콤함, 거저 얻어지지 않는 것, 그리고 거저 지켜지지 않는 것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게 행복이라면 아이스크림을 맛보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듯이 행복도 거저 얻어지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필자는 우리가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것은 독서라고 생각한다. 책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책 읽는 사람은 책 속 수많은 타인의 삶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려 노력하게 된다. 책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의 현실에 더 감사할 수 있다. 책 읽기로 얻은 행복은 삭막한 현실에서 마르지 않는 나만의 오아시스를 얻은 것과 같다. 그 오아시스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 속에서도 그가 당당하게 고난과 맞서게 해준다. 아이스크림을 더 오래 맛보기 위해 냉동고가 필요하듯 독서를 통해 얻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책에서 얻은 교훈을 끊임없이 나에게 적용하는 실천의 아이스박스가 필요하다. 책에서 얻은 교훈을 어떻게 나에게 적용할까를 고민하고자 하는 노력과 실천에서 책의 뒤대함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그렇게 책이 나를 변화시키는 경험을 한 이들은 책을 늘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책을 통한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은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일 뿐이다. 삶을 변화시키는 독서교육 없이는 행복 교육의 시작도 완성도 불가능하다. 교과서를 뛰어넘어 나의 행복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주는 사회인의 육성이 교육의 막중한 역할 중 하나이기에 행복 씨앗으로서의 독서교육은 시급하다. 모든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행복교육에 가슴 설레며 기대하는 많은 학부형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 행복 씨앗으로서의 독서교육을 체험하지 못한 학생들이 너무나 많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오늘(6월 16일)까지 국내 감염자수 154명, 사망자수 16명으로 연일 늘어나고 있다. 정부와 보건당국은 메르스 확산 방지에 대한 확신을 하고 있지만 줄어들지 않은 두려움은 다시 공포로까지 다가오고 있다. 어린 초등학생까지 양성, 음성 판정을 거듭하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학교휴업 연장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의료 선진국의 이미지는 물론 자존심마저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세계적 기업의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환자 부실관리가 하나씩 들어나면서 사회적 경제적 손실도 세월호를 능가할 정도다. 삼성서울병원이 이번 메르스에 대한 대처능력은 그 명성을 무색할 정도도 무능했다. 그 결과 메르스에 대한 새로운 진원지가 되었고 온 국민이 메르스 공포에 시달리게되었다. 메르스의 전국 확산으로 모든 국민이 불안해 하고 국가경제는 물론 국민들의소비심리까지 더 위축되는 상황에서 우리 교육에도 위기로 다가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교육현장을 찾고 있다. 이미 일부 국가들은 한국여행과 유학 자제를 권고하고 있고, 한국인 입국자까지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이미 한국인에 대한 신뢰와 우정이 금이 가는것이다. 어떻게 하든 우리는 이 위기를 단시일 안에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메르스확산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연일 골드타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이 골드타임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합심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메르스에 대한 위기관리 의식을 가져야 한다. 만일하나 확진환자가 학생들에게까지 확산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도 없다. 지금과 같이 몇일 학교휴업만으로도 그 후유증은 너무나 크다. 학교휴업으로 인해 학교교육과정에서 수업일과 수업시수를 수정해야 하고 학교행사를 다시 재수정해야 한다. 이들은 학부모들의 생활계획과도 맞물려있어 생각보다 그리 단순하지 않는 일이다. 매일 학생들의 등하교에 체온을 재는 일도 교사의 새로운 업무로 나타나면서 메르스로 인해 교사의 피로도도 다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한 학부모의 민원 증가는새로운 학교갈등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번 메르스로 인해 우리 교육이 더 이상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도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학생 보건교육이 필요하다. 아울러 외부인의 학교 출입 통제를 포함한 학부모들의 학교 출입자제에 대해 상호이해와 '메르스 의료진' 자녀들에 대한 배려교육도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메르스로 인한 경기도의 많은 학교가 5-10일간 휴업을 했다. 이러한 학교휴업이 장기화되면서 일선 학교들이 고민에 빠졌다. 교육부나 도교육청의 지침서는 일주일 이상 휴업을 한 학교의 경우 법정 수업일수를 맞추고 수업시수도 반드시이수하라고 했다. 이러한 190의 법정 수업일수와 수업시수를 확보하려면 여름방학은 물론이고 겨울방학까지 줄여야 할 상황이다. 단 휴업일이 15일을 초과한 경우에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 45조에 의해 10분의 1 범위에서 수업일수를 감축할 수 있다고 일수 감축을 허용했다. 문제는 수업시수는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수업일수만 줄여주고 수업시수는 이수해야 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않는다. 이렇게 되면 하루에도 7-8교시 수업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은 올해부터 관광주간 단기방학을 권장했다. 권장이라기보다 일률적으로 강제한 것과 다름없어 모든 학교가 실시했다. 이로 인해 각급학교의 수업일수는 대부분이 190에 맞춰져 있어 올 여름방학은 3, 4주에 불과하다. 여기에 메르스로 인한 휴업 결손까지 채우려면 가뜩이나 짧은 여름방학을 더 줄여야 할 판이다. 이렇게되면 1주일 이상 휴업을 한 학교는 7월 30-31에나 여름방학이 가능하다. 또 한번 더위와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메르스로 인한 학교휴업을 두고도 학교장 권한과 재량이라고 강조한 교육당국의 태도도문제였다. 이번 학교휴업을 두고일선 학교장들은 학보모로부터 많은 갈등과 학교경영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학교휴업 이후 후속조치에 대한 진짜 필요한 재량권은 학교장에게 정작 없다. 물론 교육법령에 의한 것은 이해하지만 이번과 같은 일은 특수한 경우는 이에 대한 적절한교육행정력을 발휘하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메르스 바이러스의 전파는 무엇보다 신체적 접촉이 가장 위험하다. 그러함도 이번 도교육의 지시사항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등교, 출근시 발열체크를 일부 학생 및 직원만 실시하지 말고 전직원 전교생 대상으로 실시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이다. 만일 하나 바이러스에 감연된 학생이 있다는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사항이다. 그렇다고 비접촉 측정 체온계가 모든 학교에 학급별로 보급된 것도 아니다.전혀 줍비 안 된 학교현장 상황을 재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교육당국의 행정이나리더십은찾아볼 수 없다. 재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대안이 있어야 한다. 일부 병원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매일 메르스 확진확진자가 늘어나는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메르스 사태로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철저한 교육행정과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문득 어린 시절 뛰놀았던 동네 모습이 그립다. 그 동네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도 무척 많이 변했을 것이다. ‘실행이 답이다’를 신조로 삼고 있는 필자, 아내와 같이 그 동네를 찾았다. 그 동안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요즘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곳은 수원시 권선구 매산로 3가 111번지. 모교인 세류초등학교 인근이다. 지금의 정문이 아닌 옛정문 앞 골목에 위치한 곳이다. 필자는 이 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러니까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살았다. 유년시절,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다. 자가용으로 그 당시 우리집 골목길을 천천히 오른다. 얼굴이 익은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보인다. 바로 어렸을 적 구멍가게 주인이다. 그렇다면 이 분은 이 곳에서 60년 이상을 사신 분이다. “바로 앞 집에 살던 영관이여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인사를 드리니 알아보지 못한다. 그 분의 연세는 88세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보다 5살 아래인데 아직 정정하시다. 가장 궁금한 것은 우리집 모습. 그러나 그 흔적은 전혀 없다. 그 대신 2층집이 들어섰다. 대문안에 들어서면 대추나무, 매화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등을 기억했지만 삭막한 건물만 버티고 있다. 주소는 세류로 83번길로 바뀌었다. 우리집 뒷집인 방00 선생님 댁도 당시 흔적이 없고 2층집이 들어섰다. 골목길 마루터기로 올라섰다. 나무가 우거진 서울대 농대 교수 집터는 연립주택이 들어섰고 자가용 한 대가 주차해 있다. 이 마루터기에서의 추억. 명절이면 윷놀이를 했고 기다란 의자를 내놓아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였다. 지나가던 엿장수와 장기놀이를 했고 동네 누나가 기타로 가르쳐준 ‘해뜨는 집(The House of Rising Sun)을 연주해보던 곳이다. 마루터기에서 골목길로 접어들면 한 쪽 공터가 유리 구슬치기 하던 곳. 지금은 대문이 들어서 있다. 이 곳에서 구슬치기를 하였는데 ‘알빼기’라는 것이 있다. 구슬 여러 개를 던져 상대방이 지적하는 구슬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면 내 놓았던 구슬을 모두 가져가는 놀이다. 그 당시 소년들은 얼마나 실력이 뛰어났는지 어려운 위치에 있는 구슬을 곧잘 맞추었다. 막다른 골목도 한 곳 있었다. 지금도 막다른 골목인데 대문 두 곳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아마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이 곳은 얼마 안 있으면 주거 환경 개선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잡초가 우거진 것을 보고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비가 오면 빗물이 비탈 아래에 있는 저 집으로 몰려 들겠네!” 당시 한옥 기와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6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유년시절 이 기와지붕 속에 할미새가 둥지를 치고 새끼를 쳤다. 그 당시만 해도 개발이 되지 않아 동네에서 할미새, 때까치 등의 새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집 울타리 위를 보니 깨진 유리가 박혀 있다. 그 당시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다시 옛 우리집 앞에서 모교 세류초교를 바라다본다. 당시의 모습은 아니지만 학교 건물과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학교의 시종 사이렌 소리가 우리집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선생님들의 출퇴근 모습도 종종 보았다. 담임선생님은 가정방문으로 우리집을 찾기도 하였다. 박00 선생님은 우리집에서 자취를 하였다고 들었다. 아내와 같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가는 골목은 아직도 있다. 이 곳에서의 까까머리 중학생의 추억 한 장면. 당시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신호를 보내는 방법은 휘파람. 대개 남학생이 부르면 고고한 여학생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친구 중 한 명이 골목길에서 한길을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휘파람을 부니그녀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린 골목길 안쪽으로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하는 말, “아! 우리가 불렀는데 왜 도망치는 거지? 그 여학생에게 가자!” 골목길 빈터에서 그 여학생과 마주했다. 그 여학생 허리에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면서 하는 말, “야,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왜 도망가는 거냐!” 우리 친구 중에 누군가 조그맣게 한 마디 한다. “야, 쟤랑은 안 되겠다.” 이 곳을 돌아보니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집도 눈에 보이고 집을 허물어 공터가 된 곳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세류초교 인근은 세류지구 주거 환경개선사업으로 15층짜리 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서고 있다. 여기도 머지않아 이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유년시절, 학교 건물이 그 동네에서 가장 높고 최신식 건물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모교 모습을 보니 역사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낡기도 하였지만 주위 고층 아파트에푹 파묻혀 있다. 어찌보면 이게 교육의 모습이다. 학교가 그리고 교육이 앞서가야 하는데 뒤쫒아 가기 바쁘다. 누군가가 변하는 동네 모습과 학교 모습을 기록해 두었으면 한다. 이게 살아있는 우리네 삶의 역사 기록이다.
학생들 맘 속 크고 작은 아픔 보듬기 위해 이야기 써내려가 교단에서의 경험이 곧 글감 최근 다문화 소재로 책 펴내 “초등학교 때부터 교사를 꿈꿨습니다. 교단에 서면서 아이들과 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데 몰두했지요. 그러다 아이들이 직면한 크고 작은 아픔을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부모님이 없는 아이, 몸이 불편한 아이….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안타까운 마음이 쌓이고 앓다가 곪으면 동화를 지었습니다. 아이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동화에 담아 읽어줬죠.” 교직에 몸담은 지 40년에 접어드는 박경선 대구 대진초 교장.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기 위해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글감 대부분은 교단에서 제자들과 생활하면서 얻은 것들이다. 때문에 그의 동화에는 ‘희망’ ‘배려’ ‘사랑’ ‘이해’ ‘용기’가 녹아있다. 최근 박 교장은 ‘아기 반달곰 친구 불곰’을 펴냈다.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지만 이들 가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과 이로 인해 상처 받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기 때문이다. 불곰들이 자신과 다르게 생긴 아기 반달곰을 멀리하지만, 친해지고 싶어서 노력하는 반달곰의 진심을 알아채고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우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 반달곰은 반달곰대로, 그 애들 불곰은 불곰대로 모두 소중하게 태어났어. 뽐내는 건 남을 업신여기는 일이야.’ 그는 “이 동화를 접한 학생들이 적어도 나와 다른 친구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박 교장은 알려진 동화 작가다. 1993년 단편 동화 ‘동전 두 개’로 문단에 데뷔해 지금까지 동화책 18권을 출간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우수 도서로 선정된 동화집 ‘너는 왜 큰소리로 말하지 않니’, 대한출판문화협회 선정 가정의 달 우수 도서 ‘바람새’ 등이 대표적이다. 가장 애착 가는 작품으로 1995년에 펴낸 장편 동화 ‘신라 할아버지’를 꼽았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를 가꾸기 위해 애쓴 윤경렬 선생님의 이야기다. 박 교장은 “동화를 쓰면서 반 아이들에게 읽어준 후 반응을 살펴 여러 번 고치고 다듬었다”면서 “이 작품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귀띔했다. “언젠가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윤경렬 선생님의 이야기에 감동해 피아니스트 대신 미대 공예과에 진학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한 아이의 꿈을 바꾼 ‘신라 할아버지’, 그래서 더 특별합니다.” 박 교장은 더 많은 교사들이 교육에 동화를 접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대구교대 대학원 아동문학과 강의를 맡아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동화 쓰기를 가르친다. 함께 수업한 교사 가운데 한 해에 한 명을 문단에 데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세상이 아무리 교권을 짓밟고 스승을 존경하지 않더라도 우리 교사는 아이들의 영혼을 키우는 최고의 교육자라는 자긍심을 잃지 말자고 후배 교사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동화작가보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더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 자체가 바로 동화이기 때문이죠. 이들의 가슴 속에 따스한 선생님으로 남고 싶습니다. 일 년 밖에 안 남은 교직 생활… 아이들과 교감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 자리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베풀고 나누는 것뿐입니다.” 박 교장은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면서 받은 인세(印稅) 모두를 제자들을 위해 쓰고 있다. 전교생에게 생일 선물로 동화책을 건네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에겐 남몰래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천생(天生) 교사’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청년이 사명감과 훌륭한 의술을 갖춘 최인혁이란 선배 의사를 통해 성숙된 의사로서 달라져 간다. 생사의 갈림길 마지막 한 시간 골든타임에서 환자들에게 소중한 삶을 되돌려 준 의사들의 이야기가 2012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골든타임이다. 환자의 고통을 진단하고 치료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학생의 답답한 마음과 학생이 가지고 있는 학습 수행상의 어려움을 현시적으로 진단하고 가르침으로 처방하는 점에서 의사와 교사는 닮았다. 의학 드라마 골든타임을 통해서 교사로서 삶의 자세를 생각해본다, 1. 능력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건 배우고자 하는 의지였다. 간단한 시술에 해당하는 기도관 삽입조차 하지 못 했던 무능한 의대 졸업생을 유능한 의사로 변화시킨 건 좋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이었다. 열정이 모든 완벽에의 시작이며 열정의 유지가 성공을 만든다. 달라져야겠다는 그의 의지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을 만들어 냈고 그 애정이 환자의 목숨을 구했다. 2. 실력을 돋보이게 한 것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었다. 골든타임 드라마의 주인공의 멘토 선배 의사였던 최인혁은 깊이 있는 의학 지식을 갖춘 훌륭한 의사이기 전에 환자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환자의 고통을 가장 먼저 염려한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의 안위와 명예가 아닌 오로지 환자를 살리는 한 가지 생각이 그의 전부였다. 3. 사람을 향한 사랑을 돋보이게 한 것은 실력이었다. 사랑을 가진 의사로서 그의 모습을 더 빛나게 한건 그 어떤 동료 의사보다도 탁월했던 그의 의술이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외과의로서의 경험을 통해 누구도 따르지 못할 의술을 펼치며 환자들을 지켜나갔다. 실력은 사랑이라는 별을 더욱 빛나게 한다. 사랑이라는 별을 더 빛나게 하는 것 또한 실력이다. 4. 사람을 변화 시키는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안락함과 편안함만을 먼저 추구하던 한 청년이 환자를 사랑하는 의사로 변한 그 시작엔 최인혁이라는 선배 의사의 헌신적 삶이 있었다. 사람을 통해 의술을 배우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생각하며 오늘 나의 시간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도, 나에게 영향을 주는 그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도 오늘 내가 할 일이다. 드라마 속 아름다운 의사의 모습을 통해 교사인 나의 모습을 반추해본다. ‘나는 아이들을 정확히 진단하고 가르치는가? 의사들처럼 밤을 새우며 가르침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적이 있는가?’라고. 성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나 자신의 물질적 성공, 사회적 명예를 추구하는 성공이 이기적 성공이라면 제자를 위한 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제자의 풍성한 성공을 만들어 주는 것은 이타적 성공이다. 제자들의 아름다운 삶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나를 내려놓았던 수많은 선배 교사들이 걸어왔던 그리고 앞으로 나와 나의 동료 그리고 후배 교사들이 걸어가야 할 그 길의 이름이 바로 이타적 성공이다.
6월 9일, 청주화요산오름산악회원들과 인천국제공항에서 가까운 무의도와 실미도로 섬 산행을 다녀왔다. 무의도는 인천국제공항 건설로 영종도, 삼목도와 연결된 용유도의 남쪽 해상에 위치한 섬으로 큰 섬은 대무의도, 작은 섬은 소무의도다. 무의도(舞衣島)라는 이름은 섬의 형태가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장수가 칼춤을 추는 모습이나 여인이 춤을 추는 모습을 닮아 붙여졌다 한다. 무의도는 육지에서 가깝지만 용유도와 찻길로 연결된 잠진도 선착장에서 페리호를 타야 무의도 큰무리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는 섬이다. 주변에 소무의도와 실미도가 있는데 소무의도는 연륙교로 연결되어 광명항 선착장에서 도보로 10여분이면 갈 수 있고,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실미도는 바닷길이 열리는 썰물 때라야 사유지인 실미해수욕장을 통해 건너갈 수 있다. 아침 7시 집 옆에서 출발한 관광버스가 중간에 몇 번 정차해 회원들을 태우고 인천으로 향한다. 메르스 여파로 차에 빈자리가 많고 짙은 안개 때문에 시야가 막혀 답답하다. 관광버스가 평택제천고속도로 안성맞춤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리는 사이 떡과 과자에 커피까지 자리로 배달되고, 회장님의 인사와 산행대장의 산행일정 안내, 첫 참여자 소개와 인사가 이어진다. 송도국제도시와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를 연결하는18.38km의 인천대교를 건너 용유도 서쪽에서 육지와 찻길로 연결된 잠진도로 간다. 차에서 내려 주변 풍경과 바다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무의도를 카메라에 담는다. 잠진도 선착장에서 무의도 큰무리 선착장까지는 배로 5분 거리라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산악회원들을 태운 버스가 10시 5분 여객선 페리호에 오르자 바로 출항한다. 금방 도착하지만 버스의 차창너머로 바라보는 바다풍경이 새롭다. 섬으로 가는 길을 차안에서 건너니 어려울 게 하나 없다. 큰무리 선착장에 도착해 배에서 내린 관광버스가 남쪽으로 달려 광명항에 도착하면 광명항 선착장과 414m 길이의 다리로 연결된 소무의도가 멋진 풍경을 눈앞에 펼친다. 소무의도에는 트레킹을 하며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2.5㎞ 거리의 무의바다누리길이 있다. 인도교부터 시작되는 바다누리길의 하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명사해변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가족, 친지들과 휴양을 즐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악회 일정상 소무의도를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무의도는 남쪽의 호룡곡산, 중앙의 국사봉, 북쪽의 당산이 크게 3개의 봉우리를 만들고 봉우리 사이의 골짜기가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통로다. 광명항에서 시작해 호룡곡산과 국사봉을 거쳐 큰무리 선착장에 도착하는 길이 7.6㎞의 섬 종주가 일반적인 트레킹 코스지만 실미도를 구경하기 위해 실미유원지로 하산하기로 했다. 담장이 낮은 어촌마을의 벽화를 구경하며 산행을 시작한다. 제법 가파른 산길도 있지만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숲이 그늘을 만들어 비교적 산행이 편하다. 숲길을 걷다보면 사방이 다 트여 조망이 좋은 전망대를 만난다. 조망대 쉼터에 서면 소무의도가 발아래에서 속살을 드러낸다. 무의도의 최고봉인 호룡곡산(높이 244m) 정상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하나개해수욕장과 악어처럼 바다로 발을 길게 뻗은 해변의 경치가 일품이다. 조망대 쉼터를 지나 산 아래로 내려서면 재빼기에 무인 카페가 있다. 1000원을 항아리 속에 넣고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땀을 식힌다. 구름다리를 건너 국사봉을 바라보고 산위로 오르면 사방이 트인 조망대 쉼터가 있다. 이곳에서 하나개해수욕장과 실미도가 가깝게 보인다. 하나개해수욕장은 섬에서 가장 큰 갯벌이라는 뜻을 지녔다. 날씨가 맑은 날 황해도 장산곶이 보일 정도로 경관이 좋은 이곳에 천국의 계단 세트장이 있다. 무의도의 중앙에 위치한 국사봉(높이 230m) 전망대에 서면 방금 지나온 호룡곡산과 하나개해수욕장, 하산 지점인 실미유원지와 실미도, 바다 건너편의 잠진도와 용유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내려서 헬기장을 지나 실미유원지로 간다. 실미도를 바라보고 있는 실미도해수욕장과 실미도를 한데 묶어 실미유원지가 되었다. 실미도해수욕장은 2km에 달하는 초승달 모양의 해변이 아름답고 100여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피서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실미도는 영화촬영지이자 실제 북파공작원들이 지옥훈련을 받은 곳으로 실미해변과 실미도가 바닷길로 이어지는 썰물 때만 오갈 수 있다. 실미모세길의 물에 잠긴 징검다리를 건너 실미도로 들어간다. 해변을 걸으며 실미도해수욕장이 있는 무의도 방향을 바라보고 실미도를 알리는 팻말 옆 야산으로 섬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을 10여분 따라가면 영화 '실미도' 촬영지가 나타난다. 세트장은 철거되어 볼 수 없지만 각종 기암괴석이 만든 해변 풍경이 멋지다. 실미유원지 주차장의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얼음이 잔뜩 담겨 시원한 도토리묵밥을 안주로 뒤풀이를 하고 4시 10분경 청주로 향했다. 아침에 왔던 길을 되짚어 평택시흥고속도로 송산포도휴게소와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려온 관광버스가 7시 40분경 출발지인 용암동에 도착하며 처음 만났지만 살갑게 대해주던 청주화요산오름산악회원들과의 섬 산행을 마무리했다.
김성규 경기 당촌초 교장이 11일 방글라데시 교육부 관계자 및 교육과정, 교과서 담당위원4명을 초청, 한국 수학․과학 교육과정의 우수성을 알렸다. 이날 방문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방글라데시 초등학교 교육과정 및 교과서 개발 지원을 위한 교육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당촌초 교사들과 방글라데시 교육부 관계자들이 한국의 수학․과학 교육의 현황 및 특징, 교육과정과 수업 지도 방법, 교과서 내용과 체계 등에 대해 협의하고 공유하는 자리였다.
회색빛 저승땅거미가 후루룩 날아올랐다. 봄의 속삭임이 초록으로 물든 공원묘지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바람결에 조화가 현란한 무당춤을 춘다. 시간은 봄바람을 타고 머리카락, 손가락, 어깨너머로 은비늘처럼 빠져나간다. 푸른색 포도주를 가득 채운 유리잔에 투영되는 시간의 파편들이 쑥국새, 멧비둘기 합창 속에 무논으로 녹아내리고 있다. 찌걱찌걱! 군데군데 버짐처럼 녹슨 철 대문을 열어젖히자 개망초, 고들빼기, 잡풀들이 폐허의 행성을 점령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란다. 평생을 바쳐서 마련한 삼 칸 집! 어머니 먼저 보내시고 십 년 넘게 위리안치 되어 머물다 간 곳이다. 마루로 오르기 위해 뻐걱거리는 문을 열자 손바닥 남짓한 문지방 위엔 빛바랜 액자만 추억에 잠겨 있다. 진갑기념 가족사진, 사각모 쓴 막내아들 졸업식, 서울 나들이에서 찍은 딸과의 모습. 살갑게 반추되는 기억의 저편만 긴 안식의 레일 위에 멈춰 있다. 안방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윗목에는 묵은 때 낀 뿌연 돋보기, 신호음 가지 않는 왕눈이 버튼 전화기, 재떨이, 구불구불 큼지막하게 쓴 지인의 전화번호가 한쪽 벽면에 크로마토그래피처럼 번져있다. 그해 이월 말 영화원으로 가던 길을 돌려본다. 십여 년을 혼자 보내며 말년에는 실례도 한 그 방에 마지막 미련도 모두 갖고 가야 자식들에게 이롭다고 영정을 보듬고 온몸으로 방바닥을 뒹굴었다. 냉이 싹 오르고 매화꽃 피는 그 길이 이승의 마지막인데 뽑을 수 없는 앓던 이를 뽑았다는 묘한 기분이 교차했다. 언제나 혼자인 것이 안쓰러웠지만 경화된 시멘트 같은 그 성격이 싫어 자식들은 멀리했다. 입동을 지나 찬바람이 더해지는 어느 해 섣달이었다. 잔뜩 울적한 마음으로 해시를 지난 시각 대문간에 선 일이 있다. 바람은 뒤란의 대숲을 뒤흔들고 오 촉짜리 백열등 불빛 속에 졸고 있는 아버지의 그림자에 눈물을 훔치며 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버지 삶의 주요소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오래된 옷장에는 며느리에게서 받은 예단이 벽장 속에는 화투 한모, 다 피우지 못한 장미 담배 한 보루, 녹슨 공구가 만물상을 벌이는 연장통,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전기면도기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평생 붉은 포도주만 채운 줄 알았는데 푸른색 포도주도 아닌 백포도주만 유리잔에 담겨 있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숨죽인 날들은 쉬이 태워지지 않았다. 마지막 유골을 확인하는 순간 회백색 가루와 뼈 몇 조각, 그을린 의치만 숨을 죽이고 있다. 저것이 아버지 평생의 주요소였을까? 그 회한을 영영 부수기라도 하듯 믹서에서 퍼지는 금속 파열음은 삶의 재고를 알 수 없는 목숨의 숙명이란 분명 젊은 사람 늙은 사람을 차별화하지 않는다는 커다란 기흉을 새겼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다. 결실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지만 시간은 독을 묻힌 화살촉처럼 뚫린 구멍 속으로 잘도 빠져나간다. 몹쓸 사냥꾼이다. 그 속에 아버지도 있었고 지금 나도 있다. 나뭇잎처럼 떨어져 나간 아버지와의 시간을 찾아 조각조각 꿰매면 예쁜 목도리를 두를 수 있을까? 아버지의 삶은 천둥벌거숭이였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다. 정방형 집의 마당을 골목이 좁고 긴 안집에 내어준 후 사다리꼴로 변했다. 삼십 년 전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당장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마당을 떼어 파는 것이었다. 도회의 달동네에서 살던 형님 내외가 겨우 병원비를 마련하여 퇴원하는 날 안방에는 고성이 오고 갔다. 큰아들 명의로 된 집을 마음대로 손을 댔다는 것이 화근이었다. 그게 부자간의 실금이 되어 잊을 만하면 덜 치료된 충치의 신경처럼 되살아난다. 언젠가 혼자서 조석을 해결하는 게 힘들어서인지 외로움에 지쳤는지 큰 아들 내외가 있는 도시로 갈 것이라며 주섬주섬 옷을 꺼내 보따리에 싸고 풀기를 반복한 일이 있었다. 결국, 도시에 가면 귀양살이 눈치 살이라며 주저앉는 모습에 시원섭섭한 내 마음은 또 다른 얌체공 이었다. 그 후 평생 혼자 생솔가지를 부러뜨리며 세상에 오직 한 종뿐인 은행나무처럼 아버지란 이름으로 스러질 때까지 그렇게 머물던 집이었다. 인적 없는 집, 낮아진 처마엔 더는 제비들이 들지 않는다. 요즘처럼 제비들의 지저귐 소리가 들리던 이른 새벽에는 아버지의 푸른 발걸음소리와 어머니의 부지런한 숨결 소리가 인화되어 있다. 그런 새벽은 부드럽고 아름다움으로 사방에서 출렁이는 살아있는 시간으로 행복감에 젖어 늦잠을 청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날은 언제나 또 다른 폭풍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평화를 며칠 담지 못하고 자신이 감은 고치 속 삶을 알코올로 일탈을 시도하며 폭풍우를 쏟아냈다. 그런 날은 별빛이 초롱초롱해질 때까지 담벼락에 기대있어야 했다. 그렇게 자신의 서슬이 너그러워진 다음에야 새벽을 보는 일이 반복되었다. 헛간 속에 세월의 더께를 쓰고 있는 지게를 본다. 등짐으로 한평생을 살면서 본인의 뜻에 맞지 않을 때는 사정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 부숴버리고 다시 짜 맞추기를 반복하는 정․반․합이 삼각형으로 서려 있다. 그 피도 대물림되는 것일까? 그을음을 단청처럼 뒤집어쓴 서까래는 헛간에서 부엌으로 이어져 있다. 알매가 떨어진 흙 바람벽은 갈비뼈만 드러낸 채 바람만 드나든다. 녹슨 가마솥 반대편엔 솔가지 삭정이가 파삭거린다. 아궁이에 거미줄을 걷어내고 성냥만 그으면 모든 것이 화르르 깨어날 무성영화 같다. 아버지! 그는 돌담 아래 납작한 민들레처럼 낮은 운명을 타고난 사내였다. 장딴지 살 빼고 뼈까지 깎아야 하늘을 날 자격을 얻은 새였다. 살아생전 방에서 밥해 먹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가는 집에서 살아보는 게 원이었던 어머니의 한이 아버지 가슴에 대못이 되었을까? 유월 찔레꽃이 지천으로 수더분하다. 그 꽃술은 어머니의 광목 치마 저고리 같다. 내가 잘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은 미웠든 고왔든 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전자이다. 그렇다면 아버지 주유소나 내 삶의 주유소나 다를 게 뭐 있을까?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오월의 봄을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갖자고 외출 제안을 했지만 각자 자기 할 일에 바쁘다고 너스레만 둘러댄다. 정한 시각이 가까워지자 쓸쓸함만 흘러든다. 품에 들어서 자식이지 크면 모두 제 주장에 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매운탕을 끓이면 가운데 살점은 언제나 아이들 몫으로 가고 아내와 나는 머리와 꼬리 차지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유난히 옷 갈아입는 것을 싫어하셨다. 근육질이었던 팔다리는 홍수가 지나고 뼈만 남은 논바닥처럼 변했다. 그래서 지탄의 목소리가 담을 넘는 것이 주말 통과의례였다. 아버지의 빈집! 그곳엔 여전히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있고 손 떼 묻은 농기구는 정겨움을 준다. 하지만 더는 재생 하고 싶지 않다. 헤어짐은 죽음의 완성이다. 아버지는 나와 같은 또 나이다. 예닐곱 아이들을 보면 참 예쁘다. 그러나 성장할수록 뼈가 세어져 자신의 그늘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가 더 높아지면 나도 언젠가 부고를 전할 것이다. 삶의 선물이라는 부고는 그 선물을 반납하는 절차이다. 죽음은 다음 계절을 예약하지 않는 서사이다. 그때 한 자리에서 아버지의 회초리를 맞을 수 있을까? 삶이란 결코 대신해 줄 수 없는 것들 속에 사는 목숨이 갖는 슬픈 한계 존재의 이치로 살아있다는 것이 파도처럼 몸을 뒤집는다. 진해지는 유월의 여름 속으로 내 마음 한 자락을 들어내 걸어 들어간다. 젊은 힘의 긴장과 이완, 나이 먹음은 어제와 오늘의 차이뿐이다. 삶의 색과 무게를 추억하는 일은 반야심경을 외는 가슴만큼이나 처연하다. 삶의 경영이 녹록지 않아도 담담히 나아가는 것이 아버지의 빈집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오일장 이른 새벽 골목길. 다섯 걸음 가고 숨 돌리는 할머니들의 자식 자랑 이야기가 먼동 속에 번져온다.
서울신문 6월 9일자 보도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 학생 1만 484명을 대상으로 최근 1년 동안 차별을 받았던 경험(복수 응답)을 물었더니 ‘공부를 못해서’ 차별받은 경우가 30.5%로 가장 많았다. 공부에 이어 ‘나이가 어리다’는 25.5%, 성별은 24.3%였다. 기타 외모나 신체조건, 지역, 종교, 가족 유형(이혼 등)으로도 차별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성적에 따른 차별은 초등학생은 13.7%, 중학생은 30.3%였지만 고등학생은 43.8%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심했다. 또 성적이 ‘상’인 학생은 16.1%, ‘중’인 학생은 30.3%였지만 ‘하’는 47.9%로 성적이 좋지 않을수록 심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학업에 따른 스트레스도 이에 비례해 심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초등학생은 43.1%, 중학생은 70.2%였다. 고교생은 일반·특목·자율고 기준으로 86.6%였다.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른 차별 경험은 상·중·하 순으로 각각 24.2%, 32.1%, 44.8%였다. 보고서는 “학생에 대한 차별은 학교급, 성적, 경제적 수준과의 상관관계가 크다.”고 설명했다. 통계의 요점은 우리나라 청소년은 가정과 학교에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에 따라 스트레스도 많다. 특히 저학년보다는 고학년에서 많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른 차별도 경제 수준이 낮을수록 심하다는 통계다.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과 그에 따른 적절한 직업을 갖는 것이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공부가 매우 부담스럽다. 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부모와 갈등을 겪고 학교에서 나아가서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사회적 병폐로 나타난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전체 자살률 1위로 매우 심각한 사회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아동들의 행복감도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루마니아와 네팔 등 12개국 아동 4만2천5백 명을 대상으로 ‘아동의 행복감 국제 비교연구’를 한 결과 한국 아동의 ‘주관적 행복감’이 가장 낮았다. 차별은 비교에서 시작한다. 어린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비교 프레임에 갇히기 시작해 학교에서 더욱 극성을 부린다. 이로 인해 성장 동력을 찾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자아개념을 형성하고 일찌감치 낙오자가 아닌 낙오자가 된다. 주변에서 ‘엄친아’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것도 비교 프레임이 작동한 표현이다. 이 말은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뜻인데, 대다수의 어머니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다. 즉 자신의 자녀와 비교해 볼 때 많은 장점을 가진 우월한 자를 의미한다. 사실 ‘엄친아’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부모의 욕심이 만들어 낸 대상이다. 이를 듣고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당사자는 스트레스의 원천이다. ‘엄친아’는 과도한 경쟁 체제에 치우쳐 있는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개성도 다르고 학습 능력도 다르다. 늘 이야기 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는 학습 능력이 우수한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조금 뒤처진 아이들도 훗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장려해야 한다.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실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 배움이 빠른 아이도 있고, 느린 아이도 있기 마련이다. 느리게 가는 것이 반드시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면이 꽉 차고 단단해져 길게 갈 수도 있다. 수준이 다양한 아이들이라 가르칠 때 공통분모를 찾아내기 힘들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문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할이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하고 당장 성과를 내기 힘들다 해도 교사와 부모는 묵묵히 매진해야 한다. 아이의 수준에 적합하게 가르치는 기술이 만족하지 못해도 격려와 칭찬만으로도 성장의 힘을 얻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른 차별 인식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일반적인 교육 목표는 모두가 빈곤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는 빈곤층 아이들에게 희망의 사다리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근 오히려 빈곤층 아이들이 학교에서 소외당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들은 부모와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하고 성장한다. 그에 따라 자기주도적인 학습 태도도 부족하다. 수업 시간에도 논리적인 학습 전개에 적응하지 못한다. 부모들이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으로 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빈곤층의 아이들이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처한 환경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처한 환경에 근거하여 지도하면 학습 능력 회복이 빠르다. 학습 부진의 탈출은 비법이 없다. 오직 본인에게 답이 있다.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듯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에게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한다. 그러면서 주의할 것은 이미 학습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이 많다. 학습에 흥미를 갖도록 한다. 계획을 세우고 시간 관리를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한다. 기타 학습 부진의 원인을 스스로 진단하고 탈출 문화를 찾도록 도와준다. 차별은 실체가 없지만, 당사자에게는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아픔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내면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실에서 학습을 포기하고 앉아 있는 아이들도 공부를 못해서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아이는 아무도 없다.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습 부진이 누적되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학습 성취가 만족하지 못한 아이들은 비교 프레임에 갇혀 자신이 늘 열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잘하는 아이도 없지만, 모든 것을 못하는 아이도 없다. 이들에게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신감은 간단한 생활의 변화로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자신이 잘한다는 사실을 알면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이러면 아이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하려고 하게 되고, 이것이 누적되면 눈부시게 성장한다.
마을교육공동체가 힘을모아 평생교육의 새로운길을 만들어 나가는 학교가 있어서화제다. 다양한 문화유적과 인물탐구, 인문학등 학교와 지역사회의 힘을 모아 함께 성장해 나가는화성 청원초등학교다. 청원초등학교(교장 구영회)는 2015년에 마을교육공동체가 함께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지정받아 학부모 및 지역주민이 학습자가 되어 역사 속 인간의 길을 찾는, 그야말로 인문학 속에서 활기가 넘치는 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청원초 평생교육 프로그램인 “ 역사 속에서 인간의 길을 묻다” 개강식이 있었다. 청원초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총 5회의 화성유적지 체험과 관련 인물 탐구, 또 1박 2일 인문학 강좌 2회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 구성으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된 자체 개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화성문화원과 화성의제 21, 지역사회 다문화재단인 옥란재가 함께하는 그야말로 교육공동체가 함께 나서서 학부모와 지역주민을 교육공동체로 묶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하겠다. 아침 9시 30분, 본교 1층 도서실에 모여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구영회 교장선생님의 역사와 인문학에 대한 기조 말씀을 들었다. 이어지는 화성문화원의 고정석 원장님의 화성문화원과의 협력 시스템 및 화성 유적지의 역사적 의의 등의 말씀은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더욱 가중시켰다. 화성 관내의 역사적 유적지에 관한 설명은 화성문화원 내의 문화해설사 열분이 직접 역사체험을 함께 하며, 화성의제 21이라는 단체는 1회 행사의 역사체험에 담당 해설사와 버스를 제공하며 프로그램에 힘을 보탰다. 대절버스로 화성관내 융릉과 용주사의 역사적 의의와 관련 인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옥란재에 들어섰다. 옥란재에서는 홍사정 재단 이사장님의 이야기 숲 해설을 들으며 나무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3학년 전현우는 “ 우리 고장 화성에 관한 역사와 인물에 대한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보니 우리 고장 화성이 효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하는 이유도 알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역사 공부를 하니 공부 내용이 쏙쏙 들어옵니다.”라며 우리 지역의 문화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본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총 5회의 화성관내 유적지 탐방과 총 2회의 1박 2일 인문학캠프를 계획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기관인 화성문화원과 화성의제21, 옥란문화재단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로 이루어진 마을교육공동체 프로그램이 향후 1년간 지속되어 12월에는 평생교육 수료증과 학습우수상, 노력상 등을 수여할 예정이다. 지역사회와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 학생, 학부모, 학교가 함께 성장하는 청원초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급속한 확산에 따라 교육현장에도 비상이 걸린 가운데 교총이 교육계 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또 교육·보건 당국의 책임 있는 대처를 주문했다. 한국교총은 3일 서울 교총회관에서 '한국교총 회장단, 시·도교총 회장, 시·도교총 사무총장 긴급 연석회의'를 열어 교원 스스로 예방수칙을 철저히 숙지하고 정부 대책에 적극 동참해 학교현장에서 제자들의 건강을 지킬 것을 결의했다. 교육부가 학교장 재량으로 휴업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 부처끼리도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전문 지식과 정보가 없는 학교에 판단을 맡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교는 많은 학생이 모인 곳인 만큼 일반 사회보다 월등히 강화된 방역이 시행돼야 한다"며 휴업을 적극 고려토록 했지만, 같은 날 보건복지부에서는 "일부러 학교를 휴업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정반대 의견을 피력해 일선학교의 혼란을 부추기는 일도 있었다. 교총은 "학생, 학부모의 휴업 요청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명확한 지침 없이 보건 전문지식이 부족한 학교장에 판단을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적극 통제하고 정확한 의학적 정보와 자료를 일선학교에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총은 메르스 공포 확산에 따른 수학여행 등 단체활동의 취소·연기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위약금에 대한 대책마련도 요청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처럼 정부 차원에서 관광업계의 전향적 협조를 이끌어내 달라는 것이다. 또 학교기본운영비 삭감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교에 손세정제, 체온계, 마스크 등 관련 물품 구입을 위한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 교총은 장기적 관점에서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충분한 지식을 습득해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과정 개정 시 초등학교 1~2학년에 ‘안전생활체육’ 교과를 개설할 것도 촉구했다.
세상 참 별일이다.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메르스’ 때문에 낙타가 한 마리도 없는 우리나라가 불안의 늪에 빠졌다. 그동안 모든 생활이 자유스러웠는데 갑자기 메르스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활동을 제한하니 관광예약 취소, 모임 축소 등 경기침체가 심각하다. 여러 가지 상황상 평소와 같이 활동하며 잘 대처하는 것이 좋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래서 모처럼만에 계획했던 대로 바닷가를 찾아 콧바람을 쐬며 스트레스를 날리기로 했다. 6월 3일, 사진동호회 설레임 회원들과 강릉의 경포대해수욕장과 주문진의 아들바위공원을 거쳐 주문진항에서 회를 맛있게 먹고 오는 길에는 대관령의 양떼목장에도 들렀다. 수면이 거울과 같이 청정하다해서 경포라 이름 붙였다는 곳. 이곳에 가면 관동팔경의 하나인 경포대, 호반을 따라 갈대가 길게 늘어선 경포호, 울창한 소나무 숲 너머에 질 좋은 모래밭이 펼쳐진 경포해수욕장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다섯 개의 달이 하늘, 호수, 바다, 술잔, 그리고 님의 눈동자에 있다는 곳이다. 경포해변(鏡浦海邊)은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동해안 최대의 해변으로 수심과 경사도가 낮고,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백사장을 둘러싼 소나무 숲이 멋진 풍경을 만든다. 지중해를 닮은 동해안의 물빛은 날씨가 맑은 날 더 빛난다. 해변에서 추억남기기를 하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에 설렘이 가득하다. 부근에 오죽헌, 선교장, 허균 생가 등 역사적인 명소도 많다. 주문진항에서 가까운 바닷가에 아들바위공원이 있다. 이곳의 지명 소돌(牛岩)은 마을의 모양이 소가 누워있는 것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돌의 상징은 아들바위공원에 있는 소바위다. 아들바위공원으로 들어서며 계단 오른쪽에 있는 작은 구조물에 5백 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입구에서 맞이하는 파도노래비의 노랫말을 음미하며 1960년대 가요계를 풍미하다 요절한 가수 배호의 히트곡 '파도'를 감상할 수 있다. 주변에 음향시설을 설치해 저음의 노래가 파도소리와 함께 공원에 크게 울려 퍼진다. 아들바위공원은 바위와 바위 사이를 다리로 연결해 바위를 건너다니며 공원과 바닷가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 아들바위, 코끼리바위 등 바람과 파도에 깍여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들이 가득한데 그 모습이 쥬라기 공원에 온 듯 신비스럽다. 공원 바닥에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와 물이 빠져나갔을 때의 느낌도 다르다. 아들바위(소돌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데 거무스레하고 날카롭게 각진 큰 바위가 힘센 수소를 닮았다. 옛날 노부부가 이 바위 앞에서 백일기도하여 아들을 얻은 후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하는 바위로 알려져 신혼부부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기도에 의해 태어나는 아기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 동자상은 아들바위 앞 물속에 있어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아들바위공원을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타원형의 소돌해수욕장이 있다. 바닷가 풍경이 멋진 소돌해수욕장은 경계선 없이 주문진해수욕장과 이어진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수많은 갈매기들과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곳이다. 날씨가 맑고 하늘이 푸른 날 더 멋을 내는 주문진항에 가면 고깃배들이 부지런히 물위를 오가고 갈매기들이 여유롭게 하늘을 나는 풍경과 함께 계절에 맞게 싱싱한 해산물을 직접 구입하여 맛볼 수 있어 바다의 향기가 느껴진다. 대관령 양떼목장(www.yangtte.co.kr)은 우리나라 유일의 양 목장으로 2000년 겨울 풍전목장에서 대관령 양떼목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관광목장이 되었다. 대관령 옛길의 옛 대관령 휴게소 뒤편으로 펼쳐진 해발 850~900m의 산등성이에 있어 마치 알프스에 와있는 느낌을 준다. 겨울철에는 오두막 옆 경사면이 아이나 어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천연눈썰매장으로 변신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양들의 순수한 큰 눈망울과 낭랑한 울음소리를 듣고 목장 둘레를 따라 만들어진 1.2Km의 산책로를 걸으면 넓은 초지와 부드러운 능선, 언덕 위의 작은 오두막과 능선에 걸쳐있는 구름이 눈길을 끈다. 특히 사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목장의 모습에서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오두막은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세트장으로 중요한 사진촬영 포인트다.
마곡사에 다녀오는 길에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선화당과 한옥마을에 들렀다. 선화당(충남유형문화재 제92호)은 조선시대 충청도 도청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지면서 관찰사가 행정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공주 한옥마을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도록 설계된 신 한옥으로 우리의 전통난방 구들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출입문 역할을 하는 포정사문루(충남유형문화재 제93호)는 조선시대 공주에 있던 충청감영의 정문으로 무령왕릉과 금강사이의 곰나루에 위치한다. 2층의 문루로 된 건물 아래가 감영을 출입하는 큰 출입문이고, 위는 루의 마루로 사용하다 전쟁 때는 장군의 지휘소로 이용했다. 문루에 들어서면 선화당이 나타나는데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며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건물의 규모가 축소되었다. 선화당 옆에 1896년에 건립되어 1911년까지 목사가 정무를 보던 관청으로 지방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동헌(공주시향토문화유적 유형 제1호)과 빗물을 그릇에 받아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 중 1877년에 만들어져 공주 감영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금영측우기(보물 제561호)의 모형이 있다. 현대는 총, 대포, 핵무기 등 무시무시한 무기가 많지만 활은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생계 수단으로 사용하던 도구다. 옛날 중국인들이 우리를 동쪽에 사는 활 잘 쏘는 민족이라며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선화당 바로 옆에 국궁을 체험할 수 있는 국궁장이 있다. 안내판의 내용에 의하면 국궁장 옆에 있는 관풍정(觀風亭) 정자는 관리와 유생이 발의하여 을해년(1635년) 산성공원 쌍수정 뒤쪽에 건립하고, 병자년(1936년) 산성공원 남쪽으로 이전하였으며, 신미년(1991년) 현 공주시 웅진동으로 이전하였다. 또한 낙성을 축하하여 빈객을 청하니 동서남북 사방에서 모여들어 편액을 관풍(觀風)이라 하였다. 공주 한옥마을은 무령왕릉과 국립공주박물관 사이에 2010년 9월 개촌했다. 한옥마을은 구들장 체험이 가능하게 한국 전통난방으로 설계되었고, 도시 사람들이 머무는데 편리하도록 소나무와 삼나무 집성재를 사용하여 친환경적으로 건축하였다. 또한 한옥마을 내에 단체동과 개별동의 객실, 오토캠핑장, 야외취사장, 다목적실, 식당(한정식·단체식당·밤음식점), 매점 등이 있다. 황토찜질방과 가마솥 밥이 대접받는 세상에서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서 난방을 하는 한옥은 우리의 전통 주거 공간으로 현대인들에게 최고의 잠자리다. 금강이 바라보이는 햇볕 잘 드는 아늑한 터에 조성된 한옥마을은 콘크리트 숲에 찌든 도시민들이 생활하기 편하도록 냉난방시설이 완벽히 갖춰져 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옥들이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최근에 개촌한 마을이지만 고샅길을 거닐면 한옥의 정취가 느껴지고 객실 외부에 농기구 등 전통 민속용품을 전시하여 역사가 깊은 마을에 와있는 착각에 빠진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전통한옥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실내가구와 마루나 마당에서 바라보는 이웃집 풍경이 설레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미리 전화(041-840-8900~6)로 알아보면 백제문화를 배울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하기, 무인자전거로 문화유적 탐방하기, 주말의 전통혼례 관람하기 등 이색적인 볼거리들이 있다. 주변에 상설전시공간과 특별전시실에서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국립공주박물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 위치한 무령왕릉, 위례성으로부터 도읍을 옮긴 후 64년간 왕도를 지킨 포곡식 산성 공산성 등 볼거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