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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환경재난’이라는 말이 일반 대중에게 부담 없이 받아들여지고,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는 환경·기후변화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홍수·폭염·태풍 등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새로운 바이러스나 질병으로 인해 개인은 물론 인류의 영속성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학생들 역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기성세대에게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를 하고 있다. 광주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설문조사1 결과 ‘심각하다’는 응답이 평균 8.31점(1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보듯 청소년들은 기후변화·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직시하고 있었으며 보다 지속 가능하며 안전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교육’ ‘실천 중심의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학생들의 요구가 있기까지 국가적 또는 교육적으로 환경교육에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여긴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가적으로는 「환경교육진흥법」 제정 및 개정을 통해 학교와 사회 환경교육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며, 각 시·도교육청에서는 학교 환경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학교 환경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국가수준교육과정에도 환경교육을 제시하여 필수적으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학교 환경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기에 기후위기·환경재난에 직면한 지금에서야 학생은 물론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환경교육에 대해 단일 영역 또는 교과가 아닌 융합교육 관점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 학교 환경교육 패러다임이 바뀌고는 있지만 여전히 분리수거·해양오염·산림파괴와 같이 학생의 실질적 생활과 거리가 있는 이론중심의 도덕적·피상적 환경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환경교육에서도 지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선 기후변화가 환경문제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교육의 핵심과제이다. 이는 기후변화를 생태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는 새로운 질병 발생의 원인이며, 이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둘째, 학생을 사회발전을 위한 변화의 객체가 아닌 자신과 사회변화를 이끄는 능동적 행위주체자로서의 학습자로 보아야 한다. ‘OECD 교육 2030 : 미래교육과 역량 프로젝트’에서는 행위주체자로서의 학생(student agency)을 강조하고 있다.2 환경학습권을 보장해 달라는 청소년 기후행동의 요구는 학생들이 수동적인 존재에서 능동적인 행위주체자로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 현재와 같은 기후위기와 환경재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생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의 생활방식이나 국가정책까지도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와 같은 주장을 하는 학생은 1명이면 충분하다. 앞으로 학교 환경교육을 통해 우리는 툰베리처럼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실천력을 가진 학생을 많이 길러야 한다’라고 말한다. 셋째, 학교 환경교육은 지역사회와 연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환경교육은 크게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환경교육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환경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학교 환경교육은 교육과정 내에서 이루어지며, 수업전문가인 교사가 진행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여러 교과에 내용이 분산되어 있고 집중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해 생태계 파괴 등 이론 중심의 도덕적 환경교육이 이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사회 환경교육 영역에서는 전문성을 가진 시민사회단체가 실천중심교육을 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수업내용과 방향에 대한 사전협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학교는 지역사회 거버넌스의 한 축이 되어 학교 환경교육과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사회 환경교육과 연계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넷째, 학교의 모든 시설물은 환경교육의 자료가 되어야 한다. 교육부에서는 안전하고 쾌적한 녹색환경과 온·오프 융합학습 공간 구현을 위해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에너지 절감시설 설치 및 디지털 교육환경 조성을 위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계획을 발표하고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는 환경교육보다는 시설 구축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설을 환경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도 태양광 발전기·빗물저금통·다양한 나무·텃밭 등 환경교육자료로 이용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있지만 실제 학생교육자료로 활용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기존의 시설물들을 환경교육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학생 삶과 직접 연계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온도 1도 낮추기 교육활동 이런 의미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학교교육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인 ‘녹색커튼’3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광주 수완초등학교는 2018년부터 지구 온도 1℃ 낮추고, 사랑의 온도 1℃ 올리는 ‘녹색커튼 프로젝트’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특히 전 교과를 통해 지속가능발전교육(ESD) 즉, 기후위기 대응교육을 위한 교육과정 융합을 통한 재구성이 매우 특징적이다. 수완초는 ‘녹색커튼’을 활용하여 과학교과의 ‘식물의 한살이’ 관찰하기, 국어교과의 ‘시화 그리기’ 및 ‘토의·토론’, 실과교과의 ‘식물 가꾸기’ 등과 연계한 융합수업을 실시하였다. 우선 과학과 실과시간을 이용하여 식물을 심고 가꾸면서 한살이 과정을 관찰하도록 하여 일반 교과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ESD나 환경교육은 일시적 수업으로는 효과가 적어 국어시간에는 시화, 미술시간에는 이름표와 사진찍기 등을 하였다. 또한 도덕시간에는 기후변화와 인권·공정무역·로컬푸드 등이 연계되도록 프로젝트를 계획하여 실천하도록 하였으며, 특히 프로젝트의 마지막은 시민단체 주관 ESD 박람회에서 녹색커튼 홍보 및 학교에서 직접 재배한 작두콩차와 천연 수세미를 판매했다. 수익금 전액은 유네스코(UNESCO)와 연계하여 저개발국가 학교 짓는 활동에 기부하도록 함으로써 실천 의식과 세계시민의식을 길러준 점이 특징이다. 단순히 학교 외부환경 미화용으로만 사용될 수 있었던 시설인 녹색커튼’을 여러 교과의 융합수업을 위한 학습자료로 활용했다. 또 학습활동 과정 중에도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활동내용을 수정하고, 시민단체 주관 축제에 참여하여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시민들의 노력을 촉구하는 능동적 학습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
70대 미국 대통령과 10대 소녀가 맞짱을 떴다.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매섭게 쏘아보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사진 한 장은 당시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로도 툰베리와 트럼프의 기후와 환경에 대한 설전은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다보스포럼에서 ‘나무 1조 그루 심기’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하면서도 환경운동가들을 향해서는 ‘과거의 바보 같은 예언자들의 후손’이라고 비아냥거렸다. 툰베리는 그런 트럼프와 세계 지도자들을 성토했다. “우리들의 집이 불타고 있다. 당신들의 무대책이 시시각각 불길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70대 대통령과 10대 환경운동가의 설전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닌 인식과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당뇨병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한다. 당뇨병은 혈액 내 포도당이 높아져 소변으로 포도당이 넘쳐 나오는 질병으로, 치명적인 합병증을 동반한다. 말기 신부전이나 시력상실, 외상이 없어도 손·발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당뇨병은 국내 5대 사망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초기엔 증상이 없는 데다,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 하더라도 체중감소나 다갈증, 다뇨증과 같은 통증 없는 증상으로 시작하다 보니, 상당수 환자는 당뇨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당장 아프지 않으니, 치명적 위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과 기후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7월 29일은 올해 지구가 재생해내는 생태자원을 모두 소비해 버린 날이었다. 국제환경단체 세계생태발자국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에 따르면 올해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은 7월 29일. 지난해 8월 22일보다 한 달 가까이 앞당겨졌다. 남은 5개월간 우리는 ‘생태적자’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그해 지구가 재생하는 자원의 양을 인류의 생태자원 수요량으로 나눠 그 비율을 1년 달력에 적용한 것으로, 1970년 12월 30일에서 1980년 11월 4일, 1990년 10월 10일, 2000년 9월 22일로 10년마다 한 달씩 빨라지는 추세다. 올해 국가별 생태용량 초과의 날을 살펴보면 미국은 3월 14일, 영국은 5월 19일, 한국은 4월 5일에 각각 주어진 일 년간의 생태자원을 모두 소비해 버리고 말았다. 전 세계 인류가 미국인이나 한국인처럼 생활한다면 인류에겐 지구가 4개쯤 더 필요하다. 그러나 지구는 하나다. 우리는 미래세대에 할당된 생태자원을 허락 없이 끌어다 쓰고 있는 셈이다. 70대 트럼프에게 10대 툰베리가 호통을 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미래세대에게 고리대금의 빚을 떠넘기는 몰염치한 행위를 멈춰야 한다. 2018년 3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세계자연기금의 ‘지구생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0년간 생물 종의 75%가 멸종했고, 무분별한 자원과 에너지 사용으로 기후위기의 속도는 가팔라지고 있다. 인간과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를 멈춰야 하듯, 우린 지구에 대한 학대를 멈춰야 한다. 기후변화는 미래세대의 ‘위기’ 기성세대가 ‘현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기후변화는 미래세대의 ‘위기’가 됐다. 자본주의적 성장과 발전 그리고 편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양보받고, 모든 희생에 면죄부를 받았던 기성세대의 안이한 세계관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이제는 미래세대의 시간이다. 한국환경교사모임은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이었던 지난 7월 29일, 국가교육회의가 올해 발표할 ‘2022 개정 교육과정’에 현재와 미래의 청소년을 위한 기후행동과 환경교육을 반영하자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세계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감소, 자원과 에너지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기후위기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올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18ppm에 도달했으며,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2015 파리협약을 기준을 따른다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예산은 고작 7년도 남지 않았다”라며 현재와 미래세대가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 환경교육을 제안했다. 세계의 교육도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커다란 변화가 시작됐다. 핀란드에서는 환경과목을 선이수 9학점으로, 영국은 25개년 환경교육계획을 세웠다. 호주의 고등학교는 환경과목을 필수로 도입했고, 지난해 이탈리아는 초·중·고 주당 1시간씩 연간 33시간의 기후환경교육을 필수화했다. 캐나다에서는 2016년부터 탄소중립학교를 만들기 시작하여 2030년까지 학교 온실가스 80% 감축에 도전하고 있다. 올해 미국 뉴저지주에서는 유·초·중·고등학생 140만 명에게 기후환경교육을 필수 교육과정에 반영했다. 우리나라도 환경과목을 채택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020년 기준으로 환경과목을 선택한 중학교는 6.6%, 고등학교는 21.9%에 이르지만(표 1 참조), 이마저도 고3 자습 편성이 대부분이다. 더 암담한 것은 전국 약 50만 명의 교원 중 환경교사는 34명뿐이라는 사실이다(표 2 참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DA)가 지난달 초,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했지만, 한국의 환경교육은 아직도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기후위기 교육은 단순히 학교만의 노력으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교와 지자체, 유관기관 등 범사회적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이론만이 아닌 현실성 있는 사례를 기반으로 교과서를 개정하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환경 감수성과 기후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키워나가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참가국들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2도 아래로 유지하되 1.5도를 넘지 않도록 했다. 탄소배출량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줄이지 않으면, 2040년에 지구의 기온 상승은 1.5도를 넘길 전망이다. 1.5도가 대수냐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몸의 정상체온에서 1.5도가 올라가면, 우린 고열로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지구온도 1.5도 상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고, 스스로 대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공동의 집이다.
기후의 역습...내일은 늦다 지난여름 한반도가 지글지글 끓었다. 열돔 현상 때문이란다. 대서양 건너 북미 서부도 대가뭄으로 대지가 타들어가고 있다. 반면 라인강이 범람하고 서유럽이 홍수에 잠겼다. 수백 명이 사망하는 초유의 재난이 닥쳤다. 올해 지구촌을 휘감고 있는 기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기후를 현상으로 부르던 시대가 지나갔다. 이제는 기후위기란 단어가 익숙하다. 기후위기는 천천히 진행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심각성을 인식하기 어렵다. 혹자는 성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침묵의 살인자’ 당뇨병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참고 견디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안이한 인식이 지구를 더욱 병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해 지구조절시스템이 붕괴되어 기온 상승 등으로 인해 인간 삶이 힘들어짐은 물론이고 가뭄, 장마, 식량부족, 물 부족, 해수면 상승 등 문제들이 가속화되어도, 인류의 멸망이 재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도 절박함은 여전히 덜하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물려주는 최악의 재앙일 수 있다. 지구생태계에 비상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학교교육은 그래서 너무나 중요하다. 기후위기 교육의 키워드는 공생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개인의 자아실현 혹은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향한 삶을 위한 생태적 가치를 가르치고 강조해야 한다. 즉,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가 서로 연결된 존재이며, 따라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기후위기시대의 교육적 전환은 단지 기후위기에 대한 내용을 교육과정안에 포함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기후위기시대에 더 나은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기후위기의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는 삶을 말한다. 이번 호는 기후위기와 교육체제 전환을 중심으로 다룬다.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교육현장의 실천사례를 중심으로 다룬다. 또 우리의 학교와 교실 등 교육공간은 기후위기에 대응의 적합한 것인지,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아울러 학교 밖 인프라를 활용, 교육과 사회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들어가며: 기후변화 또는 ‘기후위기’를 교육적으로 바라보기 현재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분명 매우 빨리 변하는 듯하다. 최근의 몇 년을 되돌아보더라도 미세먼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났다가, 바로 다음 해에는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우려가 커지기도 하였다. 현재는 2008~2012년의 상황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맥락에서 기후변화가 중요한 화두인 듯하다.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노력을 기울이고 우리 사회와 정부도 탄소중립을 향해 매진하는 상황에서 학교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 지구기후변화 또는 소위 ‘기후위기’를 다룰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동안 환경교육이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의 심각성과 위기감을 강조하던 방식을 되짚어보고 동일한 상황에서 보다 교육적인(pedagogic) 방식으로 환경을 다루어야 한다고 공감한 것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환경교육을 논의하는 공론장에서는 학교 환경교육을 환경문제의 해결(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도구로 볼 것인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더디지만 꾸준히 참여할 수 있는 미래 시민의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적 시도로 볼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이어졌다. 현재의 기성세대 중 다수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처럼 기후변화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이지만, 우리나라 학교현장의 교사 대부분이 학급에서 만나는 학습자나 자신의 자녀를 또 다른 ‘그레타 툰베리’로 길러내고자 결심하고 있지 않다는 점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어떤 목소리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이 ‘기후변화’를 충분히 다루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그러한 취지에 공감하는 청소년 역시 분명 생겨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우리의 학교 환경교육이 매년 수십만 명의 어린 환경운동가를 길러내는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어떤 목소리는 육식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학교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교육자들은 자신이 먹는 것이 지구환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심하여 살펴보고 스스로 결정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기다려주자고 한다.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교육적 논의는 ‘기후변화교육은 어떤 시민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하여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는 생태발자국(탄소발자국) 개념과 생태시민성 논의를 통해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우리 교육의 방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생태발자국 개념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생태시민성 논의를 환경교육 또는 기후변화교육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실천 방향과 연결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생태발자국(탄소발자국)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지구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세계 각국이 인식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줄이려는 시도가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탄소발자국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과감하게 시도하지만, 장기적으로 에너지 생산 등의 영역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과 달리 탄소발자국 또는 생태발자국을 전혀 남기지 않는 현대인의 삶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 십여 년 전 생태발자국을 측정하는 웹사이트를 우리나라 산림청이 운영하였으나 현재는 자신의 생태발자국을 측정하려면 외국어로 된 웹사이트를 활용해야 하는데,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지구가 4개 또는 5개 이상이 필요합니다”라는 응답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즉, 생태발자국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은 고사하고 현재 우리는 1개의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살아가는 방식을 훨씬 넘어섰다. 생태발자국은 주거·교통·먹을거리 등의 영역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때로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나 물발자국(water footprint)을 포괄하는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교통체계·에너지체계·먹거리체계 등이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는 한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생태발자국 또는 탄소발자국을 줄이려는 노력이 종종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생태발자국의 의미와 적용 생태발자국이란 특정한 지역 인구의 자원 소비 규모를 생산적인 토지 면적의 규모로 환산한 것으로 한 사람이 현재 수준으로 자원을 소비하고 배출한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땅의 면적을 말한다(Wackernagel Rees, 1996). 그동안 생태발자국의 개념이나 환경교육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주로 생태발자국을 측정하고 각 개인에게 이를 줄이도록 하여 환경위기를 극복하려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생태발자국 개념이 갖는 중요하지만 비교적 덜 주목받은 의미를 생태부채와 환경정의 관계성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환경교육을 통해 길러내고자 하는 인간과 넓은 환경의 관계를 온전히 바라보는 관점을 갖고 살아가는 환경시민(또는 생태시민)을 길러내는데 토대가 될 수 있다. 생태발자국 지표를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면 개인이나 지역에 따라 소비 수준, 대외 의존도가 다른 것을 통하여 생태부채(ecological debt)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 나의 풍족한 생활이 가능한 것은 생태발자국 크기가 작은 누군가의 희생이나 부담을 기반으로 한다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생산성에 비해 초과되는 수준으로 소비하고 있다면 대외 의존도가 높음을 의미하고, 이는 생태공간에서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태발자국 지수가 큰 개인이나 국가는 생태발자국 지수가 작은 대상에게 부채를 가지고 있다. 특히 현재 지구상 여러 나라들 사이에는 북반구의 산업국가들이 남반구의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 생태부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태발자국 지수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현재의 나와 같은 방식으로 생활한다면 지구가 몇 개나 필요한지에 대한 결과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지 필요한 지구의 개수를 알게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위기가 경고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구가 유지되는 것은 누군가 나보다 생태발자국을 적게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으로 그 해석을 확장할 수 있다. 나의 생태발자국 지수와 다른 나라 사람의 생태발자국 지수가 다름을 인식하고, 그 이유를 생각해 봄으로써 생태발자국을 통한 환경정의 또는 환경부정의 상황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지구기후변화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개체가 똑같은 비중으로 자연환경을 이용하는지, 환경오염으로 인한 영향을 해결하기 위한 능력이 같은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개발국 사람들이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자원이나 자연환경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고, 열대우림의 목재 등 눈에 보이는 자원도 개발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부담도 개발국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본과 발달된 기술로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반면,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은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할 수밖에 없고, 한 국가 내에서도 빈부격차에 따라 환경문제의 부담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생태발자국은 환경교육에서 환경 불평등 상황, 환경부정의 상황을 인식하는 개념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또한 지구상의 누군가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통해 생태발자국은 ‘관계성’의 개념도 포함하고 있다. 생태발자국은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사람, 또는 환경에 대해 가해지는 영향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개인이 생활을 하면서 세계 곳곳에 찍어 놓은 생태발자국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내 주변 사람일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 사람일 수도 있고, 미래세대일 수도 있다. 이처럼 생태발자국 개념을 활용하면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더라도 생태발자국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의 다양성을 인식하도록 도울 수 있다. 생태시민성 개념과 특징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 차원의 환경문제는 공간적 영역이 제한된 전통적인 시민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의 시민성 논의를 요구한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새롭게 재구성된 생태시민성 개념은 다음의 특징이 있다. 첫째, 생태시민성의 주요한 차원은 비영역성(non-territoriality)으로 이는 기후변화와 같이 지구적 성격을 가지는 환경문제와 생태시민성을 연계시키는 중요한 특징이다. 대한민국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남극의 빙하나 투발루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생태시민성은 권리보다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고, 생태시민에게 요구되는 책임은 비호혜적이며 시·공간적 관계성에 기반하고 있다. 생태시민의 책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이며, 자신과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받게 되는 미래세대와 비인간 생물 종까지 확장된다. 또한 내가 미래세대의 삶이나 북극곰의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고 어떠한 호혜적 대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호혜성을 벗어난다. 셋째, 생태시민성은 공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전통적인 시민성은 정치나 경제와 관련한 공적인 영역에 적용되지만 생태시민성은 내가 무엇을 먹고 소비하며 살아갈 것인지와 같은 매우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도 적용된다. 이에 개인적 책임·배려(care)·공감(compassion) 등의 가치체계가 생태시민성의 핵심적 덕성으로 인식된다. 즉, 생태시민성이 발현되는 범위는 공간적으로 국가, 시간적으로 현재라는 영역을 넘어선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인을, 종의 경계를 넘어 모든 생물을 시민성 발현의 대상 또는 동료 시민(fellow citizens)으로 여기고,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관심을 확대한다. 생태시민성 논의가 기후변화교육에 주는 시사점 생태시민성 논의는 지구기후변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환경교육 또는 기후변화교육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시한다. 먼저 생태시민성이 갖는 비영역적 특성은 지구기후변화의 영향이 미치는 시·공간적 스케일을 이해하고 시민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구기후변화의 영향은 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많은 국가에 그 영향이 국한되지 않고 시·공간적으로 분산된다. 투발루와 같은 도서국가에서부터 안데스산맥의 마을이나 북극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시민성은 시간적으로 미래세대를 고려할 뿐 아니라 비인간 생물 종까지 우리의 배려 대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생태시민의 책무가 원인과 영향의 비대칭적인 분포에서 발생한다는 점은 환경교육에서 지구기후변화를 다룰 때 초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동안 환경교육은 환경문제의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점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때로는 저개발국의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도 (개발국이나 기업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하는 모두에게 환경문제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도록 하였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주 영향을 미친 주체와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생태시민성은 누가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고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평균적인 한국인은 저개발국 국민에 비해 1인당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는 생태발자국 또는 탄소발자국의 크기로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 모든 이들이 지구기후변화에 대해 동일한 책임을 갖기보다는 (공동의 그러나) 차별된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보아야 한다. 동시에 생태시민으로서 우리는 우리나라 안에서 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산업계 등의 영향을 이해하고 이를 따져 묻는 역할 또한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에서 지구기후변화를 주로 다루어온 방식이 원인과 영향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함께 각 개인이 온실기체 배출을 줄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한 것이라면, 생태시민성 논의는 시민의 책무와 역할, 사회구조적 문제의식과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지속가능성의 형평성 원칙 등의 측면에서 기후변화교육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시할 수 있다. 맺으며 지구기후변화를 비롯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접하게 될 다양한 실천적 상황은 생태적 성찰과 역량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새로운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생태시민성이 갖는 개념 자체를 논의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지구기후변화 등과 같이 생태시민성을 적용하여 해석할 수 있는 현실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은 또한 환경교육에서 지구기후변화를 다룰 때 주목해야 할 점을 제시해줄 수 있다. 글쓴이와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함께 꿈꾸는 좋은 교육이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면, 여기서 살펴본 생태발자국 개념과 생태시민성 논의가 ‘기후변화교육은 어떤 시민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방향을 일부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Q. 퇴직급여는 어떻게 나뉘나요? A. 퇴직급여는 총 4가지로 퇴직연금, 퇴직연금 일시금, 퇴직연금 공제 일시금, 퇴직일시금으로 나뉩니다. 퇴직연금은 공무원이 10년 이상 재직하고 퇴직한 때 받게 되며, 퇴직연금 일시금은 10년 이상 재직 후 퇴직한 공무원이 퇴직연금에 갈음하여 일시금으로 지급받고자 할 때 받을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 공제 일시금은 10년 이상 재직 후 퇴직한 공무원이 10년을 초과하는 재직기간 중 일부 기간을 일시금으로 지급받고자 할 때 받게 되며 퇴직일시금은 공무원이 10년 미만 재직하고 퇴직한 때에 받게 됩니다. Q. 연금을 받을 경우 퇴직 시에 받는 일시금은 따로 없는 건가요? A. 1년 이상 재직하고 퇴직 또는 사망한 때에는 재직기간에 따라 기준소득월액의 6.5%~39%에 상당하는 금액을 퇴직급여 또는 유족급여와는 별도로 퇴직수당을 지급합니다(단, 재직연수는 36년을 초과하지 못함). 퇴직한 날로부터 5년 이내에 공단에 직접 청구(인터넷·모바일·우편·방문)하시면 됩니다. Q. 휴직의 종류에 따라 연금산정 시 영향을 미치나요? A. 연금수급을 위한 재직기간 계산 시 「공무원연금법」에 따르면 재직기간에 대해서는 공무원으로 임명된 날이 속하는 달부터 퇴직한 날의 전날 또는 사망한 날이 속하는 달까지의 연월수로 계산하고 있으므로 휴직 시 또는 복직 시 기여금을 납부하셨다면 휴직기간은 모두 산정해주고 있습니다. Q. 퇴직수당은 퇴직연금과 동일한 방법으로 재직기간을 계산하나요? A. 휴직기간은 퇴직연금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퇴직수당에는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공무원연금법」 제25조(재직기간의 계산) 제5호에 따라 공무상 질병휴직·병역휴직·고용휴직·노조전임자휴직·육아 및 출산휴직, 그 밖의 법률에 따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휴직의 경우를 제외하고 기타 휴직기간·직위해제기간·정직기간 및 강등에 따라 직무에 종사하지 못한 기간은 그 기간의 2분의 1을 빼서 산정하고 있습니다. Q. 의원면직과 명예퇴직 시 연금수령액의 차이가 있나요? A. 의원면직과 명예퇴직 여부 자체로 연금수령액의 차이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공무원연금법」 급여액 산정의 기초사항에서 명시한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이나 퇴직 전년도의 전국 소비자물가변동률 등은 매년 달라질 수 있는 사항이다 보니 이에 따라 퇴직년도에 따라 연금수령액 자체에 소액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개인별 연금 세부사항은 공무원연금공단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Q. 기간제교사로 근무했던 경력은 연금수령 시 포함되지 않나요? A. 「공무원연금법」에 제25조(재직기간의 계산)에 따라 공무원의 재직기간은 공무원으로 임명된 날이 속하는 달부터 퇴직한 날의 전날 또는 사망한 날이 속하는 달까지의 연월수(年月數)로 계산합니다. 기간제교사는 연금법 적용대상 공무원이 아니므로 경력은 임용 시 호봉경력에 포함될 뿐 연금법상 재직기간에 포함되진 않습니다. Q. 2020년도 연금보다 2021년도 연금산정액이 삭감되었습니다. 왜 삭감이 된 것이며 내년에도 연금이 삭감되는지 궁금합니다. A. 연금개혁 이후 올해 처음으로 연금산정 기준 중 하나인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이 감소하였습니다. 이는 작년 코로나19로 인해 전 공무원이 연가보상비를 반납하는 등의 요인으로 실제 공무원의 급여가 개인별로 몇천 원~몇만 원까지 낮아지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올해 산정되는 연금액이 연동되어 책정되었습니다. 교원은 연가보상비가 없기 때문에 타 공무원보다 임금감소를 체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연금개혁 시 합의된 기준에 따라 2가지 산식으로 계산을 하고, 그중 더 유리한 것으로 택해서 연금지급이 이뤄지는데, 올해는 2가지 산식 모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중 덜 불리한 쪽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해당 내용을 근거로 내년에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이 오르면 연금도 오르고, 내리면 연금도 내리는 구조라서 인사혁신처도 확답을 줄 수 없으나, 작년처럼 연가보상비를 전액 반납하는 등 특수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예년처럼 오르도록 설정된 구조입니다.
주위에서 아무개 교사가 아동학대 또는 성폭력으로 고충을 겪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교사가 뭔가 잘못을 했겠지’라고 생각하거나,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라고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여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동학대·성폭력은 평범한 교사도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평소 학생에 대한 열정이 넘치거나 학생과 소통을 잘한다면 오히려 가해자가 될 확률은 올라간다. 아동학대·성폭력으로 문제가 되면 교사들은 ①교육활동 중에 학생을 지도하다 발생한 것으로 학대나 성폭력의 고의가 없었고, ②지속적이 아닌 일회적인 해프닝이었고, ③신고학생이 평소 지도에 따르지 않는 문제학생이었고, ④신고학생의 주장과 같이 심한 말을 하지 않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①아동학대·성폭력으로 문제되는 상황은 대부분 교육활동 중에 학생을 지도하다 발생하는 것으로 교사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신고학생이 정신적 고통 또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면 아동학대나 성폭력은 성립할 수 있고, ②아동학대나 성폭력은 일회적이라도 성립할 수 있으며, ③아동학대 또는 성폭력이 성립하는데 신고학생이 모범생이었는지 문제학생이었는지는 전혀 문제되지 않으며(오히려 문제학생을 지도하다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④교사와 학생의 주장이 엇갈릴 때는 대부분 학생의 주장이 인정된다. 학교폭력으로 신고되었을 때 가해학생이 흔히 주장하는 것이 ①장난이다, ②평소에 친하게 지내다가 어쩌다 한번 발생한 것이다, ③가해학생은 교우관계가 원만한 모범생이고 피해학생이 이상한 학생이다, ④나는 때린 적이 없고 살짝 밀기만 했다는 것이다. 가해학생이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행위가 있었다면 학교폭력으로 인정되는 것이 요즘 추세인데, 교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교사가 교육활동 중에 이루어진 지도행위였고, 신고학생이 평소에 문제를 일삼는 학생이었다고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행위가 있었다면 아동학대나 성폭력으로 인정되는 것이 최근의 분위기이다. 정서학대로 신고되는 사례 체벌·교육벌이 교육현장에서 사라지면서 신체학대가 문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정서학대·성적학대(성희롱)는 여전히 많다. 폭력에 대한 기준이 낮아지고, 사회적으로 폭력에 대해 엄격해진 것도 영향이 있으나 교사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면서 무심결에 문제가 되는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등학교는 중등과 달리 일부 교과수업을 빼면 담임교사가 대부분 학생을 지도하므로 아동학대에 취약하다. 담임교사의 지도방식과 맞지 않거나, 학생이 문제행동을 하여 매시간 또는 날마다 교사로부터 지적을 당하게 된다면 학급 학생들도 저 학생은 항상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으로 낙인을 찍고 무시한다. 학생은 자존감이 낮아지고, 학교에 가기도 싫어진다. 학부모가 이를 알게 되면 담임교사의 지도방식 또는 지적을 문제 삼아 담임교체를 요구하고, 학교가 이에 불응하면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아동학대사안으로 발전한다. 공개사과도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대표적인 유형이다. 학생이 어떤 잘못을 했을 때는 당사자에게만 따로 사과하도록 해야지 학급 학생들 앞에서 공개사과를 시키는 것은 학생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고, 학부모는 이를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다. 공개사과와 반대로 다른 학생들에게 특정 학생의 단점을 얘기하도록 시키는 것도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 친구가 없는 것이 고민이고, 같이 놀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다. 그런데 이 학생은 평소 다른 학생들을 놀리고, 때리고, 참견하고, 눈치가 없어서 학생들로부터 비호감인 학생이다. 어느 날 이 학생이 선생님에게 자신도 친구를 만들고 싶다고 하자 선생님이 “○○학생이 어떻게 하면 친구가 생길 수 있을까?”라고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학생들은 “○○학생이 안 때리면 좋겠어요”, “○○학생이 저를 □□□라고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생이 저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 수업이 ○○학생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되어버렸다. 얼마 후 해당 학생의 보호자는 교사가 ‘인민재판’을 했다면서 아동학대로 신고를 하였다. 성적학대(성희롱)·성폭력으로 신고되는 사례 최근에는 여교사도 성적학대로 신고되는 경우가 많다. 뚱뚱한 여학생에게 이렇게 살이 쪄서 나중에 연애나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말을 하거나, 생리를 이유로 체육시간에 자주 빠지거나 결석을 하는 학생에게 자꾸 이러면 선생님이 진짜로 생리하는지 검사할 수 있다고 말하거나, 여학생이 칭찬받을 행동을 해서 엉덩이를 토닥이면서 격려해준 행위 등이 여교사가 가해자로 신고된 사례들이다. 남교사들은 여학생의 어깨나 등을 토닥이는 행위, 컴퓨터 수업을 하면서 마우스를 잡은 손을 포개 잡아 마우스를 조작하는 행위, 체육시간에 시범을 보이면서 여학생에게 신체적 접촉을 하는 행위, 상담을 하면서 손을 잡았다는 것 등으로 신고되는 경우가 있다. 교사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더라도 대부분은 학생의 진술이 사실로 인정된다. 최근 TMI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교육현장에서도 아동학대나 성폭력으로 신고되는 사례를 보면 TMI가 문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건화가 되어 조사를 받다 보면 굳이 저 상황에서 저런 말을 왜 했을까, 저런 행동을 왜 했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나는 학대나 성적 수치심을 줄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런 감정이 들고, 불필요한 발언이나 행동을 했다면 아동학대·성폭력으로 인정될 수 있다. 교사가 교육자적 양심과 사명감·열정을 가지고 학생을 지도했더라도 이를 폭력으로 받아들이는 학생이 있을 수 있으며,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춰 소통하려는 의도에서 말을 했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아동학대나 성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교육활동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말만 하고 불필요한 농담이나 사적인 발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가급적 학생과 신체적 접촉을 하지 않아야 하며, 학생지도방법 역시 학생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되고, 필요 최소한의 한도에서 허용된 지도만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필요 최소한의 허용된 지도가 어디까지인지가 불분명하고 아직 확립된 기준이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괜히 지도를 해서 오해 살 행동을 하느니 학생의 문제행동을 보더라도 지도를 포기하는 교사가 많아지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이것이 현명한 행동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스승, 선생님보다 직업으로서의 교사가 되어야 무탈하다.
교사의 전문성은 어디에서 나올까? 나는 단번에 수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교사의 전문성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쉬운 내용을 40분 동안 정말 쉽고 재밌게’ 수업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만큼 수업은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전문성 요소라 생각한다. 어느덧 발령받은 지 2년. 기간제교사 경력까지 합하면 3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수업을 잘하는가?’라고 스스로 자문한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찜찜하다. 분명 나는 수업을 열심히 그것도 매일 연구하고 준비한다. 아이들과도 나름 즐겁게 수업을 하고 지난 학기도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도 이러한 찜찜함을 지울 수 없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여전히 수업은 힘들고, 시간에 쫓기고, 분주하다 교대 재학 시절, 나는 실습기간을 가장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것보다 강의실에서 벗어나 나름 어른 흉내를 내볼 수 있는 차림새로 출퇴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설렘의 포인트였다. 그래도 수업은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수업대표 교생을 두 번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것도 모두 자원이었다. 수업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준비하는 그 과정이 정말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업을 배우고 싶다는 그 열망이 패기로 드러났던 거 같다. 그렇게 몸으로 부딪쳐 교대 시절 배운 것은 바로 정답이 있는 수업이란 없다는 거였다. 수업에서는 더하기보다 빼기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이 점을 매번 놓치고 아직도 욕심을 부린다. 40분이란 시간을 넘기기 일쑤고 목청은 나날이 득음의 경지로 나아간다. (내가 보기엔)이렇게 재밌는 수업을 준비했는데 돌아오는 건 빨리 끝내 달라는 아이들의 아우성이다. 지난 학기 자화상이다. 아직 나의 수업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그래서 힘이 들고, 그래서 늘 시간에 쫓기고, 그래서 늘 분주하다. 지난 1학기 임상장학을 준비하면서 타교에 근무하는 수석교사에게 피드백 받을 기회를 얻었다. 당시 일수의 탄생이라는 책으로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계획하던 시기라 아예 프로젝트로 구성하여 그중 한 차시를 임상장학수업으로 할 생각이었다. ‘기특한’ 아이디어였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사서 고생의 서막이었다. 세안은 거의 소논문급으로 완성되었다. 수업으로 구성한 차시는 주인공이 자신의 좌우명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상황을 아이들이 해결하는 흐름이다. 수석교사는 내게 “아이들이 배웠으면 하는 건 무엇인가요?”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나요?” 이 두 가지 질문을 했고, 나는 “좌우명을 찾는 건데 사실 저도 제 좌우명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아이들이 주인공의 좌우명을 대신 찾아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정말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 임상장학은 보통 수학교과를 많이 한다. 수학교과 특성상 수렴적 성격이 강해 활동 흐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쉬운 길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 이 책을 뽑은 이유는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자기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걸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함께 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이들의 삶에 더 도움이 될 거란 확신이 있어 시작했지만, 늘 귀결을 앞두고 둥둥 떠다니는 딜레마 상황에 놓여버린 거다. 믿고 맡겨라, ‘궁리’하는 동안 이미 학습목표는 달성된다 수업은 정말 흡족하게 마무리했다. 그 비결은 바로 수석교사의 ‘동문서답’이었다. 나의 고백을 듣고서는 다른 수업이야기를 해주었다. 5학년을 대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긍정적으로 극복’하는 학습목표의 도덕수업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를 설명했다.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비슷한 딜레마 상황이라 느껴졌다. 교과서대로 수업하면 온갖 위인전을 섭렵하는 수업이 될 거 같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일러주면 감화하는 수업에서 멀어질 게 뻔했다. 수석교사는 아이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한 가지씩 학습지에 적고 서로 돌려 읽으며 각각의 어려움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아서 그 밑에 적어주는 활동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겨내는 방법을 궁리한다는 것 자체가 긍정의 사고가 필요하니 그것으로 학습목표는 달성하고도 남았다. 그 순간 좌우명의 의미부터 내가 정의할 필요성을 느꼈다. 고3 시절 독서실 자리에 붙여두었던 ‘잘하고 있어’라는 문구가 기억났다. 당시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게 좌우명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어떤 말이 듣고 싶을까?’ 이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졌고, 24개의 좌우명을 쉽고 재밌게 만들며 수업을 마쳤다. 수석교사의 동문서답은 ‘통찰’이었다. 수업 성장의 핵심 ‘수업 참관’, 문제는 볼 시간이 없다는 것 이러한 통찰의 시각이 나와 같은 신규교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려면 수업을 많이 봐야 한다. 실제로 내가 속한 교육지원청에서는 신규교사를 대상으로 멘토링도 진행하고, 수업나눔 프로그램도 기획하여 수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타교의 교육력제고팀 수업도 공개한다는 공문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없다. 해당 수업시간대에는 나도 수업 중인 터라 그 귀한 기회를 날려버렸다. 조금 더 편하게 수업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내가 참관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예약하는 것처럼 내가 관심 있는 수업을 검색하여 날짜와 시간을 골라 참관할 수 있는 ‘수업예약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 누구나 수업을 개설할 수 있어서 좋은 수업과 나쁜 수업 구분 없이 ‘모두가 즐기는’ 접근성 좋은 수업포털 말이다. 녹화본 형태로 공유한다면 더욱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수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거고, 전국에 걸친 포털이라면 다른 지역 선생님의 수업까지 참관하며 다양한 수업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업 참관으로 연수시간까지 인정해준다면 참여율은 더 높아 지지 않을까? 지난 1학기, 세 번 정도 수업을 공개했다. 코로나상황으로 인해 줌(ZOOM)으로 수업공개가 이루어졌다. 생각보다 참관하는 선생님은 적었다. 누군가 내 수업을 본다고 생각하면 부담감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내 수업을 사람들이 평가하는 거 같아 잘 준비해서 무사히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평가와 피드백이 수업을 성장시키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매의 눈으로 내 수업을 평가하는 스터디원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 부끄럽고 무서웠던 순간이었지만 장점과 보완할 점을 적절히 섞어 이야기해 준 덕분에 지금 이만큼 수업할 수 있는 거 같다. 나는 수업을 계속 공개하고 싶다 작년 임상장학을 준비할 때는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사전협의를 진행하셨다. 준비하면서 애매하다고 느낀 부분을 기가 막히게 지적해주셨다. 그 점들을 보완해서 다시 지도안을 작성하고, 이번에는 멘토 부장님께 피드백을 받았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빈 종이에 피드백 내용을 적어놓았는데 30개쯤은 되었다. 말씀하신 부분들을 머리와 마음에 새기고 수업에 임했다. 사후협의를 시작할 때 교장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좋은 이야기만 할 거야. 피드백은 사전에만, 사후에는 칭찬만.” 그날 이후 수업에 자신감이 붙었다. 내 수업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내 수업의 의미를 이해해 주는 분들이 있어 든든했다. 나는 수업을 계속 공개하고 싶다. 동시에 내 수업에 관심을 두고 의견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 내 수업을 많이들 참관하고 장점과 보완할 점에 대해 논해주면 좋겠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에 인턴과 레지던트의 모습이 나온다. 인턴은 어벙한 모습으로 참관에 임하고 여러 기상천외한 실수를 한다. 레지던트는 도대체 언제쯤 스스로 수술을 집도할 수 있을지 두려워하며 교수 옆에서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정신 바짝 차리고 수술에 임한다. 의사의 꽃은 수술이고 교사의 꽃은 수업이라 생각한다. 의사는 수술 참관 기회가 열려있다. 여럿이 수술에 대해 의논하고 함께 한다. 수업도 마찬가지면 좋겠다. 수업 참관 기회가 열려있고 여러 교사가 함께 의논하고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 수업을 참관하고 수업을 준비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여백이 주어진 상태에서 수업축제가 펼쳐지면 좋겠다.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데보라 레버 지음, 이로미 옮김, 수오서재 펴냄, 392쪽, 1만7000원) ADHD,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을 키우는 저자는 ‘신경다양성’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하는 글로벌 커뮤니티를 만들며 새로운 양육법을 제안하고 있다. 신경학적 ‘다름’을 ‘결핍’이 아닌 ‘다양성’으로 지지하며, 정상의 틀에 맞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대로 인정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18가지의 양육법을 안내한다.
고마워 교실 (양경윤·김미정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280쪽, 1만5800원) 아무도 맡고 싶지 않아 했던 ‘문제 학급’에 갑작스럽게 담임으로 투입된 교사가 수석교사의 코칭을 받으며 ‘고마워 교실’을 꾸려간다. 하루 100번 아이들에게 ‘고마워’를 말하는 ‘고마워 샤워’부터 ‘고마워 미소’ ‘고마워 안아주기’ 등 존재 자체에 대한 고마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훈련을 통해 놀랄 만한 변화가 시작된다. 감사일기 열풍을 불러온 한 줄의 기적 감사일기의 저자인 양경윤 수석교사의 후속작이다.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 (김현수 지음, ㈜창비 펴냄, 302쪽, 1만6800원) 정신의학과 의사이자 수많은 교사 모임과 함께하며 교사들의 치유자로 활동해 온 저자는 소진과 마음의 상처로 병원을 찾은 교사들의 아픔을 면밀히 분석하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자신이 만나고 상담했던 사례들을 통해 교사들의 아픔을 알아주며, 교사라는 직업의 중요성과 가르치는 일의 숭고함을 상기시키고 치유와 성장의 과정을 응원하고 있다.
최고의 교사는 온라인에서 어떻게 가르치는가 (더그 레모브·TLAC팀 지음, 김은경 옮김, 해냄출판사 펴냄, 252쪽, 1만6800원) 코로나19 장기화로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의 기초학력은 저하되고, 교사들의 부담은 커져만 가고 있다. 저자는 온·오프라인을 넘어 좋은 수업의 본질을 정의하고, 온라인 교실에서 학생들과 유대감을 쌓고 학생들의 집중력을 관리하는 온라인 수업의 핵심 비법 등을 담았다. 온라인 수업의 성패는 화려하고 다양한 도구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사의 교수법에 있음을 강조한다.
지난 4월 교육부는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교육 구현과 미래역량을 갖춘 자기주도적 혁신 인재 양성’을 비전으로 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비전에 따른 추진방향은 다음과 같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가장 큰 화두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디지털 전환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의 질 개선, 그리고 2025년부터 시행할 고교학점제인 듯싶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추진계획은 발표되었으나 총론이나 각론은 발표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현장 적용 상황을 토대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바라는 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바른 인성의 토대 위에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다양한 지식을 창조·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교과교육을 포함한 학교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핵심역량을 함양한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각 교과별로 교과역량을 정하고 이를 각론에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과역량은 실제 수업현장에서 얼마나,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연수가 2016학년도에 시·도교육청별로 진행되긴 하였으나 교과별 교육과정의 내용 변화(추가·삭제·이동 등)에 집중되다 보니 강사든 연수생이든 교과역량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낮았다. 강사 또한 교육부에서 연수받은 내용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으므로 교과역량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교과역량의 명칭을 안내하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현장교사들의 교과역량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었다. 즉, 지금까지는 학교현장에 대한 지원 부족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핵심역량과 교과역량이 학교수업과 평가에 적절히 적용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도 교육부에서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는 교과별 과정중심평가 연수를 통해 평가과제 설계 및 채점기준 작성 시 교과역량이 언급되면서 적용방안에 대한 논의가 일부 이루어진 상태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역량함양교육을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체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행 수업과 평가에 교과역량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학교현장에 대한 지원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성취기준 재구조화는 어떻게? 교과역량과 더불어 수업현장에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 중 하나는 성취기준의 재구조화이다. 성취기준의 재구조화란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실제 교수·학습 및 평가상황에 적합하도록 조정하는 것으로, 교사는 필요한 경우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성취기준을 보다 명료하게 구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마다 학생의 수준·환경 및 교사의 관점 등이 다르므로 교사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2020학년도부터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병행하면서 성취기준 재구조화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높아졌으나 교사들은 성취기준 분석의 과정을 수행하지 않은 채 단순히 교과서의 내용 순서를 바꾸거나 수업 소재와 도구 등을 변경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교육과정이 등교수업을 기반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원격수업을 적용함에 있어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성취기준에 대한 해설이 없다 보니 그 해석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다. 또 교사마다 견해 차이가 발생하고 성취기준 재구조화를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사연수 등의 부재에 기인한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성취기준과 함께 그에 따른 해설서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그 해설에 대한 교사연수를 병행하는 등 교육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해설서 및 연수자료에는 성취기준 재구조화에 대한 목적과 방안, 그에 따른 예시를 함께 제시하면 좋을 듯하다. 더불어 코로나19와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등교수업뿐만 아니라 원격수업 등 다양한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 과속 … 준비 안 된 현장은 혼란 마지막으로 매번 반복되는 일이긴 하지만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중·고등학교에 도입된 2018학년도가 시작되기도 전에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언급되었다. 교육과정 개정은 일선 학교의 수업과 평가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세계적인 교육의 흐름과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 같지만 교육과정 개정으로 인한 학교현장의 혼란과 어려움은 소외돼 아쉽다. 교육과정이 아무리 좋은 목적과 의미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학교현장에서 이를 소화할 수 없거나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교육과정 개정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혼란만 초래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오히려 현장교사들의 의견은 더욱 축소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아직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2020학년도에 와서야 비로소 모든 학년에 적용이 완료됐다. 때문에 현장교사들의 적극적인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현 교육과정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논의를 거친 뒤 보완해야 할 점을 찾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방향으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록 7차 교육과정의 테두리 안에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학교현장에 요구되어지는 변화의 폭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고려하여 서두르지 말고 체계적인 과정을 밟아 신중하게 개정되었으면 한다. 일정에 따르면 현재 교육과정 개정 작업은 총론 주요사항 및 각론 재구조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주요사항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책연구뿐만 아니라, 토론회·포럼·공청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얼마나 실천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육부에서는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 관련 간단한 웹사이트를 개설하거나 티클리어에 관련 게시판을 만드는 등 진행 상황에 대한 안내와 의견 수렴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형 교육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고 교육과정의 실제 운영자인 교사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고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프롤로그 _ 여행을 왜 하는가?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 여행을 왜 하느냐고. 인도 여행을 다녀왔을 때, 인도가 어떻더냐고 물어왔을 때와 비슷한 물음 같았지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금 식상한 비유로 답을 했습니다. 여행을 해도 세월은 가고, 여행을 하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다만, 여행을 하며 보낸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에 비해, 계량화하여 말할 수 없는, 내면적인 어떤 채워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잉카문명이나 그 유명한 우유니사막 같은 것에 크게 마음 두지 않았습니다. 히말라야 혹은 아프리카처럼 안데스 남아메리카 그리고 티티카카란 이름들이, 같은 세상이지만 세상 밖인 것처럼 여겨지던 그런 낯선 세계에 대한 그리움들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행은 어쩌면 사랑과도 닮았네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문득 끌리고 급기야는 그에게 온 마음을 사로잡히는 경우 같은 것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수직으로 땅굴을 파고 나가면 그 반대편으로 나오는 곳이 남미 땅이야”라며 어릴 적에는 이 대륙에 대해 동화 같은 표현으로 말하곤 했지요. 지구상의 가장 먼 곳, 쉬이 다가설 수 없고 그래서 더욱 그리운 사람처럼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생이 끝나기 전에 만나고픈 존재, 결코 이를 수 없을 것만 같던 먼 바다였던 당신이 바로 남미였습니다. #2 _ 페루의 두 얼굴 남국의 온화하고 즐거운 햇빛입니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시원하고 마주치는 사람들 얼굴엔 저마다 즐거운 미소가 흘러내립니다. 페루 리마에서 시작한 여행. 번화와 남루는 경극 배우의 뒤바뀌는 얼굴처럼 순식간에 드러나곤 합니다. 대통령궁과 리마 대성당 언저리의 식민지풍 세련미 그리고 신시가지의 번화함과 산트로발 언덕길 황막한 산길과 빈민가 모습들의 대조…. 오래된 삶의 모습들이지요. 그리고 또 페루는 두 얼굴을 가졌습니다. 안데스 산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인 이 지역은 연중 비가 내리지 않는 가장 건조한 지역이랍니다. 그러나 설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강물로 관제 시설을 한 곳은 남국의 싱그러운 푸른빛을 자랑합니다. 반면,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은 모래 먼지 흩날리는 목마른 사막, 황무지의 풍경입니다. 사막과 농경지가 한 풍경 안에 드는 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구도입니다. 원경으로는 황폐한 사막 구릉이 펼쳐져 있고 근경으로 푸른빛 성성한 농경지라니…. 이런 비현실적 구도의 반복이 단속적(斷續的)으로 계속됩니다. 1년 평균 강수량이 25~50m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불모의 땅이지만, 안데스의 축복으로 흘러내리는 빙하의 물줄기가 있어 푸른 목숨을 출렁이게 하는 것이로군요. 내가 지구 반대편 나라에 와 있단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 여기 페루에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내 생이 놀랍답니다. 다른 미사여구보다도 더 확실한 여행의 기적이지요. 따뜻한 남국, 강이 흐르는 낮은 곳에 접어들면 무성한 푸른빛이 출렁입니다. 1년에 사나흘밖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이곳 날씨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지요. 내가 있고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 삶의 가장 놀라운 기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또 다른 두 얼굴이 있습니다. 잉카의 토대 위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로이 새겨진 제국주의 문명. 태양을 모시던 잉카의 제단은 제국주의의 침탈로 몸체를 잃고, 그 위에 아이러니한 제국주의 문명의 상징인 성당으로 트랜스포머가 됩니다. 서구풍으로 광장이 세워지고, 계획된 도시는 삶의 편리와 새로운 문명의 합리성으로 치장되어 칼과 총으로 강제되었던 사실마저 종국에는 아득히 잊게 만듭니다. 원주민들에게 노동을 착취하면서 그 대가로 기독교인이 되게 해 준다는 지독한 모순이 몇 세기 지속되어온 곳. 그 이중성이 모자이크된 이 땅의 현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쿠스코를 향해 버스가 안데스 산줄기를 넘습니다. 버스에 탄 몇 사람들은 고산증을 호소합니다. 머리가 아프고 손발이 저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네요. 그래요,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줄곧 달려 밤을 새우는 이 길이 안데스 고산을 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해발 4,000을 어떨 땐 5,000m를 넘었다고 고도계를 가진 분들이 말을 하곤 합니다. 버스가 하도 더디게 운행을 해서 차창 밖을 내다봤더니, 세상에나 눈이 내립니다. 적도 조금 아래인 이곳에, 그것도 한여름인 계절에 눈이 내린다면 얼마나 높은 곳에 놓인 길인지를 짐작할 것 같지요? 그런 높고 꾸불꾸불한 길을 17시간가량 짚어 나갑니다. 내게도 옅은 두통이 밀려듭니다. 그러나 나는 아득한 이 고산의 느낌이 딴 세상에 온 표징이라도 되는 듯 반갑고 즐겁습니다. 희뿌옇게 하늘이 열리고, 마음속 탄성과 함께 높은 안데스의 희끗한 산봉우리가 눈에 듭니다. 대서양을 넘어온 비구름들은 모두 이 산줄기에서 그만 발목을 잡혔나 봅니다. 리마나 나스까에서 찾아볼 수 없던 푸른 빛깔들이 온 산과 언덕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쿠스코(해발 3,400m). 잉카인들이 세상의 배꼽이라 여겼다던, 잉카의 수도에 도착합니다. 고산 도시 특유의 으스스한 한기와 옅은 고소 기운이 먼저 마중 나와 온몸으로 안겨듭니다. 숙소에 짐을 푼 나는 주저함 없이 꼬리깐차로 향합니다. 잉카제국의 신전이었던 터를 깔고 앉은 산토도밍고 성당. 잉카인들은 하늘은 콘도르,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는 믿음에 따라 쿠스코 도시 전체를 퓨마 모양으로 본떠서 정교하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그 중심 허리부분에 설계한 것이 바로 꼬리깐차라고 하지요. 철기조차도 없었다던 16세기 잉카문명의 거듭 놀라운 석조 기술. 그 위에 기생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또한 너무나도 화려한 정복자들의 문명. 분명 거듭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입니다. 스페인 침략 전인 잉카제국 시절 꼬리깐차는 잉카제국이 숭배했던 태양(Inti)을 모시는 신전이었습니다. 침략 후 스페인 사람들은 이 꼬리깐차 신전의 본래 건물은 부수고 아주 견고했던 터와 외곽 벽을 기초로 그 위에 산토도밍고 성당을 짓고 수도원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두 차례 큰 지진에 성당은 무너져 다시 세웠지만, 지탱하고 있는 꼬리깐차 신전의 외벽과 기초는 견고하게 그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리마·쿠스코 등 주요 도시에 이를 때마다 이런 풍경은 계속됩니다. 어디 페루뿐이겠습니까. 남미 대륙 거의 대부분이 이런 모양새였으니, 지난 제국주의의 위세를 온몸으로 다시 느끼게 되지요. 나무를 고사시키고서라도 자신의 생명을 더욱 푸르게 하는 기생식물처럼 제국주의자들은 그런 식민지를 설계했나 봅니다. 해가 지지 않을 영원한 제국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광장을 중심으로 웅장한 성당들과 치밀하고도 견고하게 그리고 서구식 감성까지 더하여 만들어진 도심을 보며 느낀 생각입니다. 잉카의 토속 문명 그 토대 위에 파괴와 혼합의 배율이 혼재되어 있는 남미 곳곳의 풍경이 마치 우리의 식민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여행 내내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부산 금명초등학교 송지영(사진) 교사가 ‘제65회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교육부가 매년 공동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교수·학습방법 개선과 교원 전문성 신장을 위해 전국의 교원을 대상으로 열린다. ‘변화하는 사회, 선도하는 현장교육, 꿈을 이루는 미래학생’을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서 송 교사는 ‘소행성+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L-STAR 역량 기르기’를 출품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소행성+인공지능 프로그램’이란 블렌디드러닝을 기반으로 한 소통·행복·성장 교육활동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공감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 미래사회가 원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데 목적을 뒀다. L-STAR 역량은 2015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의사소통역량(story), 공동체역량(together), 자기관리역량(auto), 지식정보처리역량(report), 창의·융합리더역량(leader)을 기른다는 의미에서 첫 글자를 따 만든 용어다. 송 교사는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온택트 활동으로 학생들의 핵심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2학기에도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이 병행될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한 연구물로 보인다. 한창 뛰어놀며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에 모니터 앞에서만 선생님을 볼 수 있었던 학생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들 마음속에 꽁꽁 담겨있는 이야기를 꺼내 함께 나누며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보이는 거리두기는 지켜야겠지만 마음의 거리는 좁히는, 그래서 같이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큰 상을 받고 보니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 아직 얼떨떨하다. 소통과 행복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 눈길을 끈다. 온라인 학습이 길어지면서 기초학력부진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학력부진은 그 자체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자신감 하락과 무기력감, 우울감 등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교사인 나도 당혹스러웠는데 학생들은 오죽했겠는가.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사는 데서 오는 행복과 꾸준히 노력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심어주려 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소통교육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작년에 맡은 반이 3학년이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을 만나고 보니 모두가 낯설고 어색했다. 이대로는 정상적인 수업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서로 간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게 급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좌우명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즐기는 취미생활 등을 동영상으로 공개하게 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거나 수영하는 모습들이 영상으로 올라왔다. 교실에서는 마스크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관계를 형성해 갔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은 다음부터는 토론을 통해 학급규칙을 만들고 특정 주제를 정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신호등 토론이나 피라미드 토론, 악마와 천사 토론 등의 기법을 사용했다. 소심했던 아이들이 활기를 되찾고 자기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다. 소행성 프로그램은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학생들에게 ‘천천히 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를 입버릇처럼 말했다.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했다. 나부터 의도적으로 틀린 답을 말해 ‘선생님도 실수할 수 있구나, 그럼 나도 자신 있게 말해야지’ 하는 마음을 심어주려 했다. 교사가 망가지니까 모두들 좋아하고 활기찬 학급 분위기가 만들어지더라. 또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열심히 들어주려 노력했다. 궁극적으로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모두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연대의식과 또 언제 어디서든 학교는 너희들의 성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인공지능교육을 한다는 게 무리가 아닐까?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주로 5·6학년 실과시간에 다루는 내용이어서 솔직히 부담이 컸다. 학생 수준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했고 어떻게 하면 흥미 있게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원리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튜링 테스트나 안전 챗봇 놀이를 진행했다. 또 언플러그드 보드게임을 통해 컴퓨터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컴퓨터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했다. 연구논문에는 영역별로 유명인들이 등장한다. 소통에서는 오프라 윈프리, 행복은 개그맨 유재석, 성장에는 김연아 등 이들을 내세운 이유가 궁금하다. ‘소행성’이 추구하는 바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연구논문이 단순히 연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전파되고 스며들기 위해서는 일반화 가능한 요소가 많아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화두에 맞는 인물을 선정했다. 개인적으로는 유재석 씨를 가장 좋아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누구에게나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재석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 교사들이 이를 활용할 때 도움이 될만한 팁을 준다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부딪혔던 문제들과 풀어가는 과정, 학생들 반응까지 연구논문에 자세하게 실었다. 스스로 반성했던 부분도 언급해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좀 더 잘하려고, 좀 더 많은 성과를 얻기 위해 욕심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고 아이들도 조금은 힘들어했다. 역시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더라. 현장연구대회를 거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1년 반 정도 준비했다. 스스로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기회였다. 처음엔 학생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시작했는데 마치고 보니 내가 변하는 계기가 됐다. 도움 주러 같다가 도움 받고 온 기분이다. 현장연구대회 두 번의 도전 만에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앞으로 또 다른 목표가 있나? 미래역량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는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늘 변화하는 교사, 연구하는 교사, ‘라떼’에 머무르지 않는 교사이고 싶다.
“2022 교육과정 개정에 맞춰 초등 정보교육을 3~4학년군부터 시작하고 초·중등교육에서 SW 코딩에 기반한 AI 융합교육을 하루속히 확대 실시해야 합니다.” 이재호 한국정보교육학회 회장(사진·경인교대 교수)는 “미래세대인 초·중등학생에게 ‘SW 코딩 기반의 컴퓨팅 사고력’을 계발할 수 있는 정보교육을 공교육체제에서 시행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고 국가적 책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AI 시대 인재 양성을 위해 정보교육 시기를 앞당기고, 상급학년과 연계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SW/AI 디바이드’가 발생, 새로운 교육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996년 설립된 한국정보교육학회는 초등분야 정보교육에 특화된 학회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 존재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교육정보화 분야를 개척하며 대한민국 미래교육을 선도해 온 학회는 초등교사부터 대학교수, 전문가 등에 이르기까지 1,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발행하는 학술지는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인용됐느냐를 나타내는 임팩트 팩터에서 최상위 등급을 차지, 우수성을 인정받는다. 초등 정보교과 수업시수 연 17시간 불과 학회는 지난 8월 13일 ‘초등학교 정보교과 교육과정 구성 방안을 주제’로 하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2022 교육과정 개정을 앞두고 초등학교 정보교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였다. 이 회장은 행사에 앞서 새교육과 가진 인터뷰에서 “초등학교에 무슨 정보교육이 필요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는 데 첨단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 강력한 미래 경쟁력은 SW와 AI 분야에서 얼마나 우수한 인력을 양성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말했다. 현행 2015 교육과정에서는 학교 SW교육을 필수로 지정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 교육과정이란 호적에는 올라 있지만 대접은 형편없다. AI 등장으로 SW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과 반비례, 교육현장에선 되레 역주행이다. 우선 교육 시기가 너무 늦다. 대부분 초등학교가 6학년 2학기에 SW교육을 실시한다. 졸업을 앞둔 분주한 시기, 내실 있는 교육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회장은 인터뷰에서 초등 3학년부터 SW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3~4학년 시기에 SW교육을 받아야 5~6학년 때 본격적으로 각 교과에서 시행하는 AI 융합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으며, 교육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초등 SW교육 수업시수도 문제로 들었다. 초등학교에서는 SW교육이 의무적으로 실시되고 있지만 수업시수는 1~6학년 과정을 통틀어 17시간. 초등학교의 총 교육시간을 5,892시간으로 가정했을 때 비율은 0.289%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등학생들이 학원에서 SW교육을 받는 풍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공교육이 교육수요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사교육에 의존하는 셈이다. 실제 이 같은 사교육 격차는 학생들 간 ‘SW 및 AI 디바이드’ 발생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 회장은 “초등학생 시기에 형성된 ‘SW 및 AI 디바이드’는 상급 학교로 진급하면서 그 격차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성인이 된 후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정의 소득 격차가 학생 간 디지털 역량 격차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미래사회 역량을 좌우하면서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법은 없을까? 이 회장은 우선 SW교육 수업시수를 34시간을 늘려 최소 일주일에 한 시간은 수업할 수 있게 해야 기본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학생 간 ‘SW/AI 디바이드’ ... 교육불평등 초래 할 것 SW교육의 기반이 되는 초등 정보교과 독립도 학회의 숙원사업 중 하나. AI와 SW를 학생들의 필수 역량으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실과교과의 일부 단원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교과로서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의 정보교과 신설만이 ‘SW 및 AI 인재 강국’을 구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면서 “이를 통해 포스트 AI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사고력 즉, 컴퓨팅 사고력을 기르는 데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명제는 SW교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우수한 교사의 배출이 학교 SW교육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정부는 역주행이다. 대표적으로 교육부는 지난 7월 발표한 초·중등 교원양성체제개편 방안을 통해 교대 교육과정 기본이수과목에서 초등컴퓨터 과목을 과학/실과 교과군에 흡수 통합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이 대목에서 한숨을 쉬어가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 상황에서 학교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교사들의 우수한 컴퓨터 활용 능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 기초가 된 것이 교육대학 교육과정이었고요. 그런데 초등컴퓨터 교과를 폐지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입니다.” 이 회장은 이어 문재인 정부들어 AI교육에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교사연수 등 역량개발에서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종전에는 교사들에게 각종 연수기회가 많이 주어졌지만 지금 정부에서는 소수 정예 양성을 명분으로 AI융합대학원에서 연수를 실시하는 바람에 규모가 많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AI융합대학원이 심도 있는 연수로 질적 수준을 높인 것은 바람직하지만, 소수로 운영되다 보니 양적인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 회장은 한국정보교육학회와 함께 앞으로 초등 정보교육 활성화에 모든 것을 바칠 각오라고 포부를 밝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기 대권후보들에게 정보교육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주길 호소할 생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교육정보화사업을 주도했던 것처럼 차기 대통령 역시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보교육 활성화에 적극 나서 줬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고 말했다.
한국 교육이 쌓아온 찬란한 성공 신화는 고도의 경제성장 덕분 청년 중 실업자가 절반인 지금은 ‘전원일기’ 같은 옛 향수일 뿐 딜레마에 빠진 한국 교육 파괴적 혁신 절실 … 지금이 변신 적기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학은 곧 개인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인생 변수’가 되곤 했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학 졸업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직장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 경제성장을 교육이 이끌었다는 ‘한국판 드라마’의 신화가 세계적으로 회자 되었다. 한국 교육이 한 편의 ‘드라마’로 표현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학교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경제현장에서 효율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다면, 교육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학교 문을 나선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쳤다면,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도, 대한민국에 대한 교육 찬사도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칭송은 이제 드라마 ‘전원일기’ 같은 추억일 뿐이다. 경제가 침체하고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학교교육은 별반 바뀌지 않고 고학력자들이 끊임없이 양산된다. 전체 고졸자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해 미래의 부푼 꿈을 설계하지만,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절반은 실업자 신세가 된다. 4년제 대졸자가 좋은 직장은커녕 전문대 졸업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심지어 고졸자들의 일자리마저 위협한다. 교육의 배신이자 교육의 실패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5월 경제인구 활동조사-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실감이 난다. 우리나라 청년층 인구는 879만 9,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3만 6,000명(-1.5%) 줄어들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49%, 고용률은 44.4%에 불과했다. 주목할 대목은 대졸자 통계다. 대졸자 휴학 경험 비율은 48.1%였고, 졸업(중퇴) 후 첫 취업 소요기간은 10.1개월로 나타났다.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6.2개월, 첫 일자리 임금은 150만~200만 원 미만이 37%, 200만~300만 원 미만이 23.2%, 100만~150만 원 미만이 20%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나. 필자는 ‘대한민국 교육의 딜레마’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은 교육을 통한 희망사다리 오르기로 상징되는 교육 출세론에 부모주의(parentocracy)가 결합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학교에서는 칠판 하나만 놓고 가르쳐도 학생들이 넘쳐났고, 졸업장을 받은 청년들은 쉽게 취업하는 황금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환경이 확 바뀌었다. 대졸자의 절반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외국 대학 유학파까지 응시하니 이거야말로 교육의 실패이자 딜레마가 아닌가.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고등교육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입학자원이 급감하고 4차 산업혁명 등 국내외 환경변화로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2021년 이후 대학 입학정원이 입학 가능 학생 수보다 커지는 역전현상이 본격화하는 격변기를 맞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을 갖고 대응하는 것(피터 드러커)’인데 우리 교육이 딱 그런 꼴이다. 격변기에 가장 나쁜 일은 과거 방식으로 교육하는 것 왜 그럴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번 가까이 칭송한 한국 교육의 우수성은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한국 교육은 우리가 못 살고 학교 교육환경이 엉망이었을 때는 ‘인기 드라마’를 방영했지만, 외국 대학도 부러워할 정도의 쾌적한 호텔 같은 인프라를 갖춘 대학이 수두룩한 현재는 ‘실패의 드라마’를 억지로 내보내고 있다. 2021년도 전체 대학의 충원율은 91.4%로 미충원 인원이 4만 586명이었다. 특히 거점 국립대의 경우도 미달 사태가 속출했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지방 사립대는 말할 필요도 없다. 2021학년도 입학정원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정원 미달 인원이 2022년부터 매년 증가해 2024년에는 10만 명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 2024년에 지방대학 10개교 중에서 1개교는 신입생 충원율이 ‘50% 미만’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 교육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초·중·고 교육은 대학 진학을 위한 관문으로 고착화했고, 객관식 위주의 교육은 여전하고, 커리큘럼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분들에게는 야박한 평가라서 송구스럽다. 그럼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을 3학기 보낸 시점에서 반추해보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여전히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고등교육 구조조정, 국립대부터 실시해야 효과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대학 문턱이 낮아진다고 해도 상위권 대학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많을 수밖에 없다. 대학 수십 개가 문을 닫아도 소위 ‘SKY 대학’ 입시 경쟁률은 별로 완화될 것 같지 않다는 게 필자의 우둔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자녀를 한 명이나 두 명 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에 대한 교육비 지출을 결코 줄이지 않을 것이고, 교육 출세론에 대한 ‘희망 고문’ 또한 여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등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고등교육이 변화하지 않으면 고3 담임들은 계속 상위권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에 대한 평가 압박에 시달릴 게 자명하다. 유능한 교사와 무능한 교사의 평가 잣대가 SKY 대학에 몇 명 진학시켰는지가 되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업적주의(meritocracy)의 악령이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정원 조정 개입→자율→방기→개입을 되풀이하는 사이 대학은 자강 능력을 잃고 ‘눈치 대학’으로 변질됐다. 대학구조개혁의 기본은 교육시장원리에 따른 수요 공급과 수요자의 선택권 보장이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대학의 자생적 질(교육·연구·사회기여도)이 높아지는 데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 평가나 나눠주기 지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고등교육기관 수를 장기적으로 최소 100개 이상 줄여 양적 팽창을 질적 팽창으로, 추격형 교육을 선도형 교육으로 바꾸는 파괴적 개혁이 절실하다. 그러나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한 정치권의 입김에 대학구조개혁은 답보 상태다. 정치인들은 개별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와 경제적 비중에 대한 실증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대학이 문 닫으면 지역 경제가 초토화한다’는 레토릭만 반복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수요자의 선택권과 대학의 성적표인 ‘교육수요자 원칙’을 냉정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그 신호탄을 국립대가 쏴야 한다. 국립대에 웬 안경광학과인가 … 국립대부터 구조조정 해야 고등교육 재편은 곧 중·고교의 커리큘럼 변화와 교수법 변화와 맞물린다. 그런 만큼 신중해야 하고 수술 칼날은 예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립대와 국·공립대 개혁을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립대는 단계적으로 줄여 지역별로 통합해 광역화하는 게 당연하다. 궁극적으론 ‘1도(道) 1국립대’로 개편이 절실하다. 교육부가 대학을 인위적으로 손본다면,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대가 더 적합하다. 국립대 개혁의 필요성은 전공만 봐도 알 수 있다. 왜 국립대가 전문대 전공을 카피하는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국전문대학교협의회에 의뢰에 근거 자료를 찾아본 결과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국·공립과 사립을 포함한 전국의 대학 중 114개 대학(원) 520개 학과(학부 307, 대학원 213)에서 전문대가 운영하는 학과를 중복 개설하고 있었다. 전문대가 처음 개설한 전공을 일반대학(대학원)이 따라 한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경광학·치위생·치기공·철도·물리치료·작업치료·방사선·뷰티/미용·응급구조·외식·조리·카지노·소믈리에·바리스타·반려동물·제과제빵 전공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국립대의 전문대 카피 사례는 다음 표와 같다. 물론 국립대가 전문대의 전공을 더 심화해 학문적으로 발전시킬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더라도 그건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유 장관은 20대 국회의원 시절 정책자료집(전문대학 10년의 변화와 박근혜 정부 전문대학 정책 진단)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행 법·제도 안에서는 4년제 대학의 전문대학 관련학과 신설을 막기 어렵고, 오히려 확대되기 쉽다. 정부는 산업계에 대기업의 진출로 인해 중소기업 경영 악화 등을 막기 위한 조치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있듯이, 대학교육에서도 전문대학만이 유지할 수 있는 학과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해 전문대학이 ‘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관이 된 후에도 고등교육 체질개선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교육의 실패이자, 고등교육의 실패다. 대학을 나온 청년들은 더 이상 사회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전공과 기업 수요의 미스매치(mismatch)는 고사하고 절대 일자리 수가 부족해서다. 한국 교육이 쌓아온 찬란한 신화는 앞으론 허망한 옛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치고 있다. 그런 교육의 딜레마가 계속된다. 이제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도, 사회도, 기업도, 교육공무원도, 학교도, 학부모도 모두 의식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교육정책에 대한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또한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교육학자와 전국의 선생님,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이 적기(適期)다.
‘메타버스(metaverse)’를 향한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어떤 이는 또 한 번 교육계에 불어 닥칠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곧 지나갈 유행일 뿐이라며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메타버스가 전 세계 경제시장의 핫이슈로 떠올랐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빠르게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듀이(Dewey)는 생활 경험적 관점에서 교육이란 생활이며, 성장이고, 사회적 과정이자 계속적인 경험의 재구성이라고 하였다. 그에게 교육이란 끝없는 경험 개조의 과정이며, 경험을 사회적·실용적으로 넓히고 깊게 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 역시 최신 기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교육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생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시도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주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그런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기에,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적 시도와 실패 그리고 시행착오 속에서 더 큰 성장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 말이다. ‘메타버스’ 너는 누구? 그렇다면 메타버스가 대체 무엇이고, 우리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메타버스란 가상·초월의 의미인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신조어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온라인 속 가상공간에서 아바타 모습으로 구현한 개인이 돈을 벌거나 소비하고, 놀면서 일하는 상호소통과 현실 활동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초월적 가상공간에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콘텐츠가 모이게 되고, 그 안에서 현실세계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즉,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다. 따지고 보면 AR·VR로 대변되는 가상현실·증강현실은 이전에도 있었고, 더 이전의 싸이월드처럼 도토리를 모으며 온라인에서 친구들을 만났던 세상도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메타버스가 요즘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키워드가 된 까닭은 무엇이며, 우리 교육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첫째,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시대가 급속히 도래하면서 모든 기술의 원격지원이라는 시장의 니즈를 충족시켜 나갈 수밖에 없는, ‘디지털 지구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영상회의·원격수업·재택근무 등 대부분의 일상 활동에 비대면 방식이 빠르게 침투하였고, 대중 집합이 지속적으로 금지되고 제한되면서 교육·의료·공연 등 모든 분야에서 단순 일방 중계를 넘어 메타버스와 같은 상호작용이 가능한 디지털 공간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교육현장을 떠올려보자. 처음 코로나19가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원격수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일방향으로 진행되는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원격수업만으로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보다 효과적인 원격수업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였다. 그렇게 커졌던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에 대한 요구는 이제 가상공간에서 아이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수업도 듣고, 학교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친구들과 놀 수도 있는 새로운 가상세계인 메타버스로 옮겨가고 있다. 줌이나 구글 미트와 같은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 플랫폼이 여전히 수동적인 위치에서 교사의 지시에 따라 수업을 듣고 발표하고, 쉬는 시간에는 잠시 현실세계로 나왔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면 가상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라면,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의 수업은 이와 사뭇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수업과 상관없이 학생들은 이미 메타버스 세상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다 등교시간이 되면 학교로 이동하여 친구들과 만나고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과 동아리활동도 자유롭게 해나갈 수 있다. 수업이 시작되면 실시간 쌍방향수업을 받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자유롭게 메타버스 교실 속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놀이에 참여할 수 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친구들과 여전히 상호작용하며 현실세계에서 해왔던 것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또다른 자아실현을 둘째,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자아를 형성해 현실세계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과 목표를 실현해 나갈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 환경에 노출됐기에 가상세계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 이들의 절반 이상이 스냅챗·인스타그램·페이스북을 하루에도 수차례 사용하며, 비디오 스트리밍을 하는 시간이 1주일에 23시간 이상 된다고 한다. 또한 사회적 이슈,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데도 상당히 적극적이며, 하나의 게시물·트윗 또는 상태 업데이트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따라서 게임·유통·광고업계 등이 주 소비층으로 성장하고 있는 Z세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개발이 활기를 띄고, 메타버스를 핫 키워드로 만들고 있다. 이는 교육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 가능하다. 현실세계에서는 직접 체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직업세계를 메타버스 속에서는 경험할 수 있다. 메타버스의 선두주자 로블록스는 이용자가 레고처럼 생긴 아바타가 되어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게임으로 코로나19 사태로 등교를 못 하게 된 미국 초등학생들이 상호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55%가 가입했고, 하루 평균 접속자만 4,0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그 인기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다른 이용자와 함께 테마파크를 건설하고 운영한다. 애완동물을 입양하여 키울 수 있고, 레스토랑을 지어서 경영해 볼 수 있으며 스쿠버다이버가 되어 전 세계 곳곳을 헤엄칠 수 있다. 다양한 세상과 직업군을 경험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경험하지 못할 세계가 없다는 점이 바로 이 메타버스 세상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이런 메타버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의 세계는 가상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상세상에서의 음악활동이 현실세상의 음악활동으로도 이어지고, 가상세상에서의 가게운영이 실제 현실세계의 수익과도 이어지는 구조를 생각한다면 미래 우리 학생들의 직업·진로체험이나 금융·경제교육과도 연계해볼 수 있는 시사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우리나라 메타버스 선두주자인 모 기업의 경우 나만의 아이템을 직접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되어 이를 판매할 수 있게 했다.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내가 현실세계에서 못했던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셋째, 실감형 콘텐츠를 가능하게 하는 5G·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메타버스 핵심 기술인 AR·VR을 포함한 XR(확장현실)이 점차 성숙단계로 접어들면서 메타버스 시장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이는 교육적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잠시 디지털 교과서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디지털 교과서의 효과성 여부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서책형 교과서에서 디지털 교과서로의 전환은 단순히 종이에 담던 내용을 모니터로 옮긴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의 전환은 교수·학습방법의 새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디지털화된 교육의 내용은 초연결세상에 접근이 가능하므로 새로운 지식으로의 전환과 연결이 매우 용이해진다. 또한 수정이 용이하고 데이터화된 모든 학습행동이 저장되면서 이를 분석한 결과를 새로운 교수·학습환경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된다. 실감형 콘텐츠 교육효과 클 것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교육 역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실감형 콘텐츠가 주는 역동성과 현실감은 교육의 효과성에 큰 진작을 가져올 수 있다. 그동안 기술적 한계로 디지털 교과서를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들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면 지금의 빠른 기술적 발전은 이전보다 훨씬 더 훌륭한 실감형 교육 콘텐츠 개발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문제해결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얻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고 융합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은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지식의 폭을 상상 이상으로 확장시켜 줄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교육데이터들은 더 나은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교육활동을 위한 데이터로서 다시 또 활용되는 선순환적 디지털 교육생태계 조성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이상으로 ‘메타버스’가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키워드가 된 까닭과 우리 교육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메타버스 산업이 이제 막 부흥하고 있고 교육에의 접목 역시 아직은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교육에 적용된 사례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시대가 바뀌었고,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은 그런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나갈 때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사실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큰 성장을 위한 준비를 가능하게 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양한 세상에 대한 경험적 시도를 우리 아이들이 할 수 있도록 그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 교사가 해야 할 당연한 숙제는 아닐까. 메타버스와 교육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교실과 복도로 만들어진 학교의 모습은 1차 산업혁명 시대 영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학교공간의 구조가 당시 첨단생산체계인 컨베이어시스템을 모델로 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경제적이고 유지·관리·통제가 편하도록 고안된 장치인 컨베이어벨트는 노동자의 반복적인 단순작업을 통해 표준화된 생산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테일러주의에 충실한 성과중심의 대량생산 공장체계다. 이러한 공장 모델이 사람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학교에 적용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많은 학생을 표준화된 교육과정 속에서 단위화된 시·공간으로 나누어 균일하게 교육해야 하는 당시 학교의 목적과 맞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관리·통제·규율·표준화·성과중심주의 등의 가치관이 그대로 교육공간인 물리적 구조를 통해 학생들의 행태와 생활방식을 형성시켜 왔음을 의미한다. 학교와 더불어 근대를 대표하는 병원과 교도소 그리고 군대 막사 등의 건물들도 같은 모양을 지니고 있다. 결국 학교를 포함해 이 시설들은 공통적으로 많은 사람을 모아서 일정한 인원으로 나누어 수용하고, 규율과 권위로 통제하며, 동시에 관리하기 좋은 공간구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시설들은 표준화된 도면으로 규격화되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찍어내듯 만들 수 있는데다 대체로 공간구조가 비슷하고 건물을 구축하는 방법과 자재 내역이 같아 시설 유지관리에도 수월하니 최고의 발명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규격화된 학교 … 성과와 관리의 산물 근대는 ‘기획의 세대’였다. 생산방법의 표준화로 일정 수준의 상품 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기획을 통해 일정한 목표량을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일정을 세웠으며, 이를 통제 진행하는 일정관리와 생산관리가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근대기획의 성과추진방식이다. 근대학교의 보급은 앞서 말한 표준화된 공간구조뿐 아니라 이를 보급하고 시설을 확대하는 방법도 근대기획의 방식을 따랐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200년 전 생산체계 모델이 전혀 다른 생산과 평등한 사회구조를 지닌 지금에 적합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혁신기업들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환경을 설계하고 짓고 있는 것처럼 미래를 지향하는 학교도 새로운 교육환경의 학교건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또 하나의 문제는 근대적 성과달성방식의 고착이다. ‘기획-실행-성과평가’로 구성된 근대기획의 실행 방법은 효율적인 추진체계로 성과를 거둔 성공한 경험이 되어 변화된 사회와 공간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혁신기업에서조차 성과중심 관리자와의 갈등이 비극을 부르는 경우처럼 생산방식은 바뀌어도 이를 진행하는 담당자의 근대적 사업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교육비전과 내용이 바뀌어도 학교건물은 바뀌지 않았듯 사업의 내용이 바뀌어도 이를 집행하는 방식을 답습, 오히려 형식이 내용을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교육부는 2019년 ‘학교공간혁신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기획가로 참여한 필자는 사용자 참여 설계방법을 중심에 두고, 학교의 학생·교사·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과거 ‘열린교실사업’의 경우에서처럼 아무리 선진적 형태의 공간이라도 이를 사용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경험과 준비 없이는 실패한다는 교훈을 반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를 실행하는 사업방법으로 학교에서의 교육적 상상을 공간적인 상상으로 바꾸어 나가는데 협력할 ‘학교공간 촉진자’라고 이름한 공간전문가들을 선발하여 사용자 참여과정을 학교공동체와 함께 진행하도록 구상했다. 학교가 교육지원청 시설담당이나 건축사들을 직접 만나게 되는 데 따른 부담을 줄이면서 보다 바람직한 학교공간을 구성하는 일종의 ‘전문가 거버넌스 방식’으로 바꾸어 진행한 것이다. 사업과정이 시설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은 학교를 상상하고 만드는 것을 경험하고, 교사들은 더 적극적인 교육방법의 새로운 시도에 집중하며,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학교가 가능한 물리적 환경으로 협의하며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교육부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이라는 학교시설 관련 사업을 새로이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19년부터 실시된 학교공간혁신사업을 ‘40년 이상 된 노후학교’의 시설개축이 시급함을 반영하여 1,400여 학교를 대상으로 미래 지향적인 학교공간으로 개축 리모델링하는 확대(?)된 학교 단위 시설사업이다. 그런데 벌써 사업의 대상이며 주인인 학교공동체와의 참여 설계과정이 사라지고 기존의 시설사업으로 되돌아가는 등 사업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최근 몇몇 지역교육청에서 사업기간에 쫓겨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전기획 용역을 7~8개 학교, 또는 지역 전체를 한꺼번에 묶어서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미래학교구상의 핵심인 참여 설계과정과 학교-공간 마스터플랜을 사업집행의 속도와 편의에 따라 기존 시설사업 진행의 틀에 욱여넣어 ‘사전기획’이라는 대략 3개월 정도의 단기간 연구용역형식으로 축소한 결과가 결국 이렇게 학교의 미래를 덤핑으로 시장에 내놓는 것과 같은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참여설계과정을 15일에 마치라는 협의가 있었다니 참여설계를 통한 우리 학교의 변화를 기대했던 많은 학교구성원들의 진지한 노력을 무시한 사업 진행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 안에 있는 ‘사전기획’ 내용은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학교의 참여설계과정을 단지 시설공사를 위한 기획설계의 일부로만 보는 기존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학교공간을 다루는 일은 교육과정을 근간으로 학교 학습공간을 포함한 종합적인 학교의 마스터플랜과정이며, 학생들의 중요한 배움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 ‘학교공간혁신사업’이 나름의 호응을 얻고 확대된 배경에는 지금까지의 학교시설사업과 달리 학교구성원의 참여와 이를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신중한 방법적 접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축소해 형식적인 과정으로 시설사업 틀 안에 다시 가두려는 것이다. 왜 그토록 학교공간은 바뀌지 않았는가 교육부는 ‘미래’라는 의미를 사업의 수식어로 이해하고, 기획된 사업의 기간 내 완수라는 성과만을 바라보는 오래된 사업관리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마치 설거지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레시피를 제한하는 격이니 왜 그토록 학교공간이 바뀌지 않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래학교를 위한 공간·시설사업은 기간과 진행과정까지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계약(newdeal)이 필요한데 교육부 사업이 학교구성원의 바람보다 완고한 예산집행과 감사 등 옛 계약에 눈치를 더 보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그러므로 법은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하여 새로운 사업을 안정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등 미래형 학교전환을 돕는 교육시설 등의 안전 및 유지 관리 등에 대한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오히려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미래학교를 위한 개정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과거의 시설사업과정은 그대로 두고 그나마 의미 없는 참여과정으로 축소시킨 ‘사전기획’을 법제화하면서 이를 특정 기관에 위탁하여 적정성 검토 및 감독을 위임하는 독점권한을 주려고 하고 있다. 당연히 학교공간사업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이를 학교교육의 미래를 구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기에 기존의 시설사업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과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유지와 관리라는 시설의 관점에 충실한 기관이자 규제와 책임, 대응과 통제라는 틀을 유지하려는 기관이 사전기획의 질을 제고하고 미래를 견인한다는 건 난센스다.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그릴 학교공간을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지역이 참여하여 신중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진정한 사업과정이 되도록 사업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울러 미래를 함께 구상할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과정을 존중하는 새로운 제도적인 틀이 필요하다. 미래학교는 공간적 실천을 통해 지금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몇 가지 제언을 붙인다. 교육 수요자가 만들어 가는 학교공간 첫째, 학교공간을 기존 시설사업의 진행방식으로 무리하게 진행해서는 안된다. 사업의 기간과 예산의 감독이 아니라 현장에 같이 힘을 보탤 유연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방식, 그리고 감독할 또 다른 기관이 아니라 현장과 함께하는 지원기관이 필요하다. 둘째, 사업의 기본 구상단계부터 시설사업에 맞추어 짜인 사업구조를 시급히 재검토하여야 한다. 특히 사용자 참여를 통한 학교공간 변화의 힘든 과정을 같이 할 수 있는 학교공간 촉진자의 역할과 전문가 거버넌스 과정을 무시하고 과거 시설관련 용역의 일부인 소위 ‘사전기획’ 과정을 만들어 단기간(올해는 사업기간의 역산으로 산출된 3개월 남짓)안에 학교의 교육-공간 마스터플랜과 참여설계 그리고 미래학교의 밑그림까지를 그리라는 무리한 사업구조를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의 모든 가치가 박제화되거나 형식화되는 결과를 만들 뿐이다. 셋째, 각 학교에서 새로운 학교공간에 대한 역량과 교육과정을 반영하는 공간을 구상하고, 경험을 확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영역 단위사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학교 전체에 대한 갑작스러운 개축 리모델링 사업은 그 규모나 사업 진행 등의 복잡성으로 경험이 없는 학교공동체가 참여를 꺼리게 된다. 학교공동체를 예전의 수동적인 사용자로 머물게 하려고 기획한 것이 아니라면 단계적인 사업을 같이 포함시켜야 한다. 작은 규모와 경험이 주체적인 공간사용자들의 역량을 증진할 수 있고 이러한 경험이 쌓여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선 올해는 많은 사업을 미래학교라는 잣대로 무리하게 끌고 가기보다 시설의 노후도 및 보수 시급성과 학교공동체의 미래학교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과 역량을 고려하여 ‘노후시설 개축 중점사업’과 ‘미래학교 공간혁신중심사업’으로 구분하여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오히려 학교공동체의 미래학교에 대한 의지와 공동체의 역량에 적합한 미래학교 공간을 위한 지원을 집중할 수 있고 바람직한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용자가 대등한 입장에서 결정할 권리를 갖지 못하면 그 건물을 짓는 목적 자체를 잃게 되는 그런 과정이라는 점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이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옛 사업구조에 고착되어 진행한다면 새로운 학교사업의 목적을 잃게 하는 것이고 사용자의 주인됨을 빼앗아 과거 학교를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다시 강요하는 우를 범하게 될까 걱정된다.
매년 출판시장에 등록되는 어린이 책은 5천여 종 이상이다. 이 수많은 어린이 책 중에서 우리 학교도서관에서는 교과연계도서와 학생들의 수준과 관심을 고려한 다양한 주제의 책 1천여 종을 구입하고 있다. 학생 수만큼이나 다양한 책이 들어온다. 그러나 이 많은 책 중에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너무 많은 정보는 하나도 없는 것과 같다. 책의 홍수 속에서 나에게 맞는 책을 선택할 줄 아는 안목을 키워주는 것이 필자의 교육목표 중 하나이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도서관을 소개할 때, 도서관은 보물창고라고 알려준다. 재미있는 책을 읽은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도서관이 보물창고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직 책과 친해지지 않은 학생들은 책은 보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도서관에는 3만여 권의 책이 있는데, 이 중에서 내가 보물처럼 좋아할 만한 책이 단 한 권도 없을까?” 하고 물으면 “책이 그렇게 많다면 그중에 한두 권쯤은 있겠죠”라고 대답한다. 사서교사와 함께하는 독서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단 열권을 읽더라도 스스로 보물 같은 책 한두 권은 꼭 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보물의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파이어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돌멩이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어느 때나 읽어도 유익한 책은 없다. 나에게 맞는 책이란 읽으면서 내가 즐거워지는 책이고, 내가 처한 상황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권장도서 목록의 책 또는 누군가 추천해준 책을 읽었을 때 만족스럽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는지 묻자 대부분의 학생이 재미없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의 고민을 책 속에서 발견했을 때, 나와 웃음코드가 맞는 책을 읽었을 때, 숙제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책을 만났을 때 등 자신과 잘 맞는 책은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진다. 나의 상황을 인지하고 책을 고를 수 있어야 즐거운 독서생활을 할 수 있다. 수업의 전개 나에게 필요한 책, 내가 좋아하는 책을 알기 위해서는 그동안 책을 읽은 경험이나 내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4차시 온라인 수업을 구성하였다. 마침 4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첫 단원이 ‘읽을 책을 정하고 내용 예상하기’이므로 통합수업을 준비해도 좋다. 1·2차시에서는 목적에 맞게 책을 체계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배우고, 3·4차시에는 독서 성격유형 테스트를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장르에 대해 배우고 나의 성격에 맞는 책을 찾는 재미있는 시간으로 구성하였다. 독서 성격유형 테스트는 생각이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매년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매년 실시하고 있다. [PART VIEW] ● 1차시 ● 2차시 ● 3차시 ● 4차시 기대 학습효과 초등학교 때 형성된 책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가 평생 독자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책을 재미없고 누군가 시켜서 읽는 것이 아닌 스스로 필요한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다면 학생들의 책 읽기 동기가 높아지고 자기주도학습의 기초가 될 것이다. 책 읽기 전 단계인 책 고르기 단계에서부터 책을 비판적으로 찾는 학생들은 읽기 목적이 더욱 뚜렷해지고 정보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불법 특별채용 혐의가 인정된다며 검찰에 기소를 요구했다. 공수처는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조 교육감 등에 대한 공소 제기를 검찰에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은 2018년 해직교사 5명을 사전에 내정하고 불법적으로 특채하는 데 관여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공수처는 조 교육감과 A 전 비서실장이 채용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들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조 교육감이 임용에 부당한 영향을 끼쳐 '시험 또는 임용에 관해 고의로 방해하거나 부당한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다. 공수처는 권리행사방해에 의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검증 과정에서 수사팀과 레드팀의 공방이 있었고 공소심의위 의견도 경청해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해 직권남용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는 채용 실무자들이 업무 권한이 없는 A씨에게 지시 받아 절차를 진행하도록 했고, 특별채용과 인사위원회 참석을 거부하던 B씨를 인사위원회에 참석하도록 한 점이 인정된다고 봤다.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팀과 레드팀 모두 부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조 교육감 측 변호인은 입장문을 통해 "조 교육감은 관계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특별채용을 실시했다"며 "미리 특별채용대상자를 내정한 적도 없고, 직권을 남용하여 담당공무원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시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비서실장 개입 혐의도 부인했다. 이어 "공수처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전혀 특정하지 못했고, 담당공무원의 어떠한 권리를 방해 했는지 설명하지 못했으며, 이를 인정할 증거가 무엇인지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며 공수처의 판단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공수처는 판·검사와 고위 경찰관 등에 대한 기소권만 갖고 있어 최종 판단은 서울중앙지검에서 하게 된다.
인생의 길잡이 책 여행길에 단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365일 동안 금언처럼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된 책이다. 붓다의 어록을 바탕으로 깔고 있지만 현대적이고 시사적인 문제들을 함께 다루고 있는, 매우 세련된 책이다. 책을 읽을 수 없는 날, 마음이 불안한 날, 삶이 서글픈 날,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싫어지는 날에는 친구를 찾듯 이 책 속으로 숨곤 한다. 이젠 책장이 닳아서 너덜거리지만 그래도 가장 눈길이 가는 책이다. 누군가 나에게 딱 한 권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젊은 날 나는 성경을 달고 살았다. 힘든 서울 생활 속에서 주경야독의 시간을 견뎌낼 때, 내 곁에서 스승의 역할을 해준 건 성경의 잠언과 시편이었다. 나에겐 여러 권의 성경이 있다. 내 신앙생활의 길이만큼, 깊이만큼 책장 곳곳에 자리한 성경책. 그러나 목회자에 데인 상처로 성경마저 내 곁에서 밀어낸지 10년이 다 된다. 그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보여준 다양한 형태의 눈속임에 질려서 교회를 뛰쳐나오고 말았지만 후회는 없다. 종교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어찌 완벽하랴! 그럼에도 내 인생을 지켜낸 일등공신은 성경이다. 이런 나에게 흔히들 말한다. 사람을 보고종교를 갖지말라고. 그럼에도 말씀을 전하는 최전선의 선지자인 목회자의 부패상을 보고도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는 없어도 그 마음의 진실성이나 진정성은 알 수 있다. 그 진정성이 의심 받게 되면 신뢰 관계가 깨진다. 그것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이용하는 종교라면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붓다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부처를 따라오면 구원을 받는다거나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설화와 삶의 자세, 세상에 대한 애정, 개미 한 마리에게도 자비심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말씀들은 허전한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 그렇다고 절에 다니거나 불경을 외는 사람도 아니지만. 어쩌면 내가 사는 이 행성은 마법상자일지도 모른다. 이 우주, 은하계에서 아직은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는 곳이니. 이 순간에도 내가 사는 지구는 수십만 킬로미터로 자전과 공전을 한다. 태양은 또 엄청난 속도로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을 데리고 우리 은하를 공전하는 중이다.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라는 비행기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며 살고 있는내 존재도 기적이 분명하다. 내 안의 붓다를 찾아서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곳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하는 소식이 넘치는 세상이 무섭다. 죄 없는 어린 아기까지 희생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는 소식 앞에선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세상에 놀란다. 그러기에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간수하라는 붓다의 말씀은 인생의 금언이 되기에 충분하다. 365개의 금언 중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가르침을 소개한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 덕분이다. 세상의 바다 속에서 온전히 살아 남으려면 소금 같은 금언을 날마다 곱씹어야 한다. 붓다의 말씀은 썩지 않을 인생의 소금이다. 1월 1일 - 행복과 불행은 긴 시간 속에서 순간일 뿐이다. 자귀의 법귀의 (自歸依 法歸依)-다시 돌아가 자기를 의지하고 진리를 의지하라. 인생에 과연 행, 불행이 있는가? 이것은 행복한 삶, 저것은 불행한 삶이라고 나눌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과연 행복한 삶이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붓다는 "나만 믿고 의지하라"고 답하지 않고, 단지 "너 자신과 진리에 의지하라"고 대답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의 종노릇을 하지 말고 주인노릇을 하며 살라는 말이다. -14쪽 7월 2일 -고통을 부르는 세 가지 독 득실시비 일시방각 (得失是非 一時放却) -득과 실, 시와 비를 일시에 놓아버려라. 인간을 고통에 빠뜨리는 세 가지 독이 있다. 탐 貪, 진 瞋, 치 痴가 바로 그것이다. 탐은 자신이 즐기려는 대상을 찾아내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고, 진은 내가 싫어하는 대상에 화를 내며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치는 어리석어서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해 분별없는 행동을 한다. 이 세 가지 독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243쪽 2500년 전 인류는 위대한 성인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먼저 깨달음을 얻고 사람들을 마음으로 설득하여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붓다가 존재하니 깨닫는 순간 날마다 내면의 붓다를 만날 수 있다고 희망을 안겨주었다. 몸으로 보여주며 제자들을 깨달음의 언덕으로 이끈 붓다는 진정한 스승이 분명하다. 인간의 삶에서 마음의 행복을 잃어버린 성공은 아무 의미가 없다. 충돌보다는 타협, 독선보다는 합의, 독점보다는 상생의 통찰력으로 인간 각자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긴 위대한 스승의 다독임에 위로를 받고 싶은 분에게 권한다.